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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사랑] 03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21.10.11|조회수391 목록 댓글 0

[안녕 내사랑] 03

 

 

 

 

 

 

 




S#1. 호텔, 엘리베이터 앞 객실 복도 (밤)


민수,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리지 않고 있는 연주를 향해 돌아본다. 

민수 : 안 내려? 
연주 : (어이없어하다가 잠시 후, 당돌하게) 좋아! 

이때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엘리베이터 문을 손으로 막아 열고 나오는 연주. 
민수 막상 의외라는 표정, 이내 빙긋이 미소가 스친다. 

연주 : (만만치 않은) 어디야? 가! 

민수 앞장서고, 연주 민수의 뒤통수를 만만치 않게 바라보며 따라간다. 

 


S#2. 동 호텔, 객실 (밤) 


민수 문을 잠그고 있는 동안, 연주가 먼저 들어서며 긴장된 표정으로 실내를 둘러본다. 
그 와중에도 근사한 객실에 다소 놀라는 표정. 

민수 : (다가오며) 자식들, 좋은 방으로 달래니까.
연주 : (얼른 표정 바꾸며) 방이 좀 그렇다. 
민수 : (연주의 어깨에 걸린 핸드백을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바라보는) 할 수 없지, 뭐. 오늘은 그냥 지내자. 

민수 그대로 연주를 안으려 하면, 

연주 : (부드럽게 피하며) 여기까지 와서 촌스럽게 굴진 않을게. 먼저 씻을래? 

민수 미소 지으며 침대에 걸터앉고는,

민수 : (연주의 손을 끌어당겨 무릎 위에 앉히며) 이리 와봐. 
연주 : (앉지만 긴장, 마음을 여는 척) 왜? 안 씻어? 
민수 : 좀 있다가. (연주를 안으며, 로맨틱하게) 실은 아까부터 널 안고 싶었어. 

연주 순간 이상한 기분을 느끼지만, 이내 민수의 팔을 풀고 일어서며.  

연주 : (친근한 척 묻는) 모든 여자들을 이렇게 빨리 안나봐? 
민수 : (고개를 젓고, 강렬한 눈빛) 아니. 너한테 반했으니까. 

연주 믿지 않는 듯 시선 돌리며 웃는다. 

민수 : (일어나 매우 가까이 다가가) 정말이야. 우리, 감정을 확인하는데 시간낭비하지 말자. 
연주 : (옆으로 돌아서며 시선 피하는) 서로를 알아가는 건 시간낭비가 아니야. 하지만 뭐 좋아. 아는 게 없으면 어때? 
민수 : (달콤한 거짓말, 눈 맞추고, 장단맞추듯) 그럼, 이제부터 알면 되지. 중요한 건 알고싶다는 거니까. 난 널 알고 싶어. 

연주, 똑바로 쳐다보는데, 민수 연주의 옆머리에 입을 맞추고 옷을 대충 벗고는 욕실로 간다. 

연주 : (혼잣말) 알고 싶다구? 알게 해주지. 

 


S#3. 동 호텔 욕실 (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콧노래를 부르며 비누칠을 시작하는 민수. 

 


S#4. 동 호텔 객실 (밤)


샤워소리 들리고, 앉아서 고심을 하고있는 연주. 
문득 일어나 서성거린다. 
그냥 가버릴까 하고 핸드백을 집어들고 나가려는데, 
문득 전화기가 눈에 들어온다. 
핸드백을 놓고 수화기를 집어드는 연주. 비치된 안내카드를 보며 버튼 누른다. 

연주 : (긴장) 룸서비스 부탁합니다. (사이, 부드럽게) 여보세요? 여기 607혼데요,

        급히 필요해서 그런데, 가위좀 갖다주시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연주. 음악을 튼다. 

 


S#5. 동 호텔 욕실 (밤)


샤워기를 끄는 민수. 타올로 몸을 닦으며 밖으로 나간다. 
문을 열면 잔잔하게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S#6. 동 호텔 객실 (밤)

민수 : (나오면서) 많이 기다렸지? 씻어. 

하면서 둘러보면, 연주가 보이지 않는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화장대 거울. 
거울에는 루즈로 커다랗게 하트가 그려있고, 그 안에 글자가 남겨져 있다. 
" 개자식! 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
그리고 밑으로 향하는 화살표. 화살표 끝에는 커다란 가위가 펼쳐져 놓여있다. 
민수 허탈하게 수건을 던져놓는다. 
실망해서 할 수 없이 옷을 주워 입기 시작하는 민수. 
그런데 바지 가랑이에 다리를 넣는 순간, 뭔가 허전해서 놀라는 민수. 
바지가 너덜너덜 가위로 오려져 나팔바지가 되어 있다. 

민수 : (열 받아) 아이, 씨. 이게 뭐야? (마저 다른 다리도 넣어보며) 어? 

이리저리 돌아보고 다리를 들어보는 민수. 

민수 : 아이, 기집애. 이거 내 바지도 아닌데. 

 


S#7. 동 호텔 밖 (밤)


나팔바지를 입은 민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푹 숙이고 부지런히 걸어나온다. 
막상 나와서는 허탈하게 멈춰서는 민수. 밤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이내 어이없어 허허롭게 웃고 만다. 

 


S#8. 연주집 (밤)


핸드백을 턱 내려놓고 앉는 연주. 열도 받았지만, 승리의 미소. 

연주 : (기가 차서) 흥! 지가 빌딩 좀 가지고 있으면 다야? 웃기고 있어!

그러다 시계를 보는 연주. 12시가 넘었다. 

연주 : (갑자기 걱정이 되며) 얘 좀 봐? (전화를 걸며) 또 가자는 대로 졸졸 쫓아간 거 아니야?

         ... 어? 전화까지 꺼놓고? 이게 정말. (급히 버튼 눌러대고, 메모 남기는) 나 연준데, 너 지금 어디서 뭐 하니? 

         당장 들어와! 걔네들 질 나쁜 애들이란 말이야! 

이때 배시시 웃음을 가득 머금은 정애가 현관으로 들어온다. 
연주 의아해서 수화기를 놓고 일어선다. 
정애 장미꽃 한 송이로 지휘를 하듯 부드럽게 휘저으며 다가와 연주 앞에 딱 내밀며, 

정애 : (감동에 젖어) 넌 어땠어? (이미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니다.)
연주 : 여태 어디 있다 온 거야? 빨리 말해봐. 
정애 : (장미꽃을 향기 맡으며) 기태씨 정말 끝내주더라. 
연주 : (놀라서) 뭐? (마시려고 물잔을 들면) 
정애 : (장미꽃을 물잔에 꽂으며) 다음에 만날 땐 두 송이 사준댔어. 그 다음엔 세 송이, 그 다음엔 네 송이...

        내 계획은 백 번째 만나는 날 아흔 아홉 송이와 함께 프로포즈를 받는 거야. 

        (연주를 보며) 넌? (둘러보며) 뭐 받아온 거 없니? 
연주 : (기가 막혀서) 어디 있다 왔냐니깐? 
정애 : 어디긴 어디야? 호텔에서 놀다왔지. 
연주 : 뭐? 호텔방에 들어갔었어? 
정애 : 얘가 왜 이래? 호텔에 뭐 방만 있냐? (기분이 좋아서) 밥 먹고, 술 먹고, 춤추다왔다. 왜! 
연주 : 그게 다야? 
정애 : 응. (그제야 이상하다는 듯)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었구나? 
연주 : (찔끔해서 피하며 욕실로 가는) 아니. 아무 일 없었어. 
정애 : (궁금해서 따라 들어가며) 아닌데? 분명히 무슨 일 있었지? 

정애 들어가고 닫히는 욕실문. 

 


S#9. 오피스텔 (밤)


의자에 걸쳐놓은 나팔바지의 밑단을 맨발로 주르륵 훑다가 멈추는 민수.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다가, 후회와 난감함이 섞이는 표정. 얼굴이 구겨진다. 

민수 : (혼잣말) 아이, 미친놈. 거긴 왜 데려가 가지고. (침대에 벌렁 드러눕는다.)

 


S#10. 연주집 (밤)


정애는 꿈꾸는 표정으로 잠들어 있고, 연주 뒤척거린다. 

연주 : 날 어떻게 보고! (돌아누우며) 나쁜 자식! 

 


S#11. 헬스클럽 (낮)


기구 운동을 하다 말고 껄껄 웃는 기태. 

기태 : 연주 걔, 보통이 아니다? 차밍한 걸(Girl)! 
민수 : 웃지마. 심각해 야! 
기태 : 심각? 누가, 걔가? 니가?! 존심 상했냐? 
민수 : 존심이 문제가 아니라... (심각하게) 걜 꼭 잡아야겠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태 : 엄청 끓나본데? 
민수 : 끓는 정도가 아니야. 가만히 안둘거야! 
기태 : 그럼 작전을 다시 짜야지. 
민수 : 됐어, 작전은 무슨. 자취한다는 집 전화번호하고, 정애씨 핸드폰 연락처 좀 불러봐.
기태 : 아니, 여태 그런 것도 몰라? (껄껄 웃으며) 도대체 뭘 했냐? 
민수 : 불러봐 좀! 빨리. 

기태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메모리 되어있는 번호를 보여주면, 
민수 죽을 맛이라는 표정으로 자기 핸드폰에 입력한다. 

 


S#12. 공장, 재료 창고 (낮)


자동창고 시스템이 움직이고, 그 앞에 연주와 정애가 서있다. 

정애 (소근거리며 키득대는) 야, 그 바지 입고 갔을까? 버리고 갔을까? 
연주 (화가 난 상태) 조용히 못해? 
동식 (박스를 들고 나타나며) 트윈케이크 라벨하고 용기만 있으면 돼? 
연주 네. 
동식 (지게차에 실으며) 가 있어. 내가 갖다 줄게. 
연주 (기분은 심드렁한) 감사합니다. 
정애 가자. 
동식 아니, 정애 너만. 

연주 멈칫해서 보고, 정애 삐죽대고 간다. 
창고 안쪽에서 힐끔거리며 일을 하고 있는 남자동료들이 보인다. 

동식 연주야, 오빤 오늘 시간 있는데? 
연주 (무심하게) 알았어요. 있다가 로댕으로 나오세요. 

돌아서서 나오는 연주. 
동식 씩 웃으며 지게차에 올라탄다. 
이때 창고 안쪽에서 왁자지껄 웃으며 나타나는 동료들의 모습 보인다. 

동료1 (E) 강동식! 성공했네?
동식 (E) 이 정도야 기본이지, 뭐.

연주 아주 질색이라는 듯 얼굴 구기며 나온다. 

S#13. 공장, 생산과 후문 (낮)
창고 쪽에서 걸어오는 정애. 
핸드폰이 울린다. 
뒤따라오는 연주가 보인다. 

정애 (받으며) 여보세요? 누구요? (나오는 웃음 참으며) 아, 민수씨! 

연주 오다가 멈칫하고는 급히 피해서 가려는데, 

정애 (연주를 잡으며) 네, 바꿔드릴게요. 잠시만요. (연주에게) 받어. 
연주 (가려하며) 싫어. 
정애 (붙잡고 들이대며) 받어!
연주 (눈 흘기며 받는) 여보세요!

S#14. 기태 사무실 (낮)

민수 저예요, 연주씨. 어제 일 진심으로 사과 드릴게요. 제가 원래는 그런 사람은 아닌데...

노트북 앞에서 민수 쪽을 보며 히죽대는 기태가 보인다. 

S#15. 공장, 생산과 후문 (낮)

연주 (말을 가로채며) 사과 같은 거 하실 필요 없어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으니까. 바빠서요, 그만 끊을 게요. (끊는다.) 

연주, 정애에게 핸드폰을 주는데, 

정애 너, 민수씨 버릇 고치려고 그냥 한번 튕기는 거지? 
연주 너도 정신차려. 걔들 그만 만나는 게 좋아. 
정애 어머? 왜 기태씨까지 같이 싸잡아서 그러니? 기태씨가 얼마나 잰틀한데?

연주 뚱하니 쳐다본다. 
정애는 안 그러냐는 표정. 

S#16. 기태 사무실 (낮)

민수 (구겨진 표정, 전화 끊으며) 단단히 화가 났는데... 말도 하기 싫은 모양이야. 
기태 (껄껄 웃으며) 장민수 연속 안타행진에 드디어 무리가 오는구만. 
민수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아! 돌아버리겠네. 
기태 야야, 쪼잔하게 여자한테 사과하고 그러지 마. 자꾸 그러면 버릇만 나빠져. 
민수 (그만 하라는) 이제 니 말 안 들어. 니가 그날, 뭐 그런 스타일은 초장에 어쩌구 하면서 바람만 안 넣었어도... 관두자. 
기태 (웃으며) 아니, 왜 갑자기 나를 탓하냐, 너? 
민수 니 입으로 그렇게 말해놓고, 넌 정애씨 잘 들여보냈잖아. 
기태 아니, 내가 초장에 잡으라 그랬지, 언제... 

이때 전화벨 울린다. 
민수, 전화를 받고, 기태 어이없어 웃는다.

민수 (받는) 여보세요. 네, 아버님. 지금요? 네. 알겠습니다. (끊고, 일어서며 자켓 집는) 잠깐 올라오라시는데? 
기태 (일어나며, 귀찮은 척) 아이, 또 무슨 일이야? (선심 쓰듯) 내가 갔다 올게. 넌 차분하게 마음이나 가라앉히고 있어. 
민수 (섭섭한) 그래? (다시 앉으며 자켓 놓고) 알았어, 갔다와. 

나가는 기태. 민수 떨떠름한 표정. 
두 발을 테이블 위에 거칠게 올려놓는다. 
이내 표정 풀어지면서 곰곰히 다른 생각에 잠기는 민수. 

S#17. 기태부 사무실 (낮)
기태 들어온다. 
기태부와 윤변호사가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이다. 

기태 (윤과 인사하며 앉으며, 기태부에게) 부르셨어요? 
기태부 민수는? 
기태 (거짓말) 급한 일이 있어서요. 처리하라고 시켰어요. 
기태부 그래?
기태 무슨 일이신데요? 
기태부 제주도에 말이다, 계약금만 치르면, 바로 우리 쪽 사람을 하나 심어놔야 할텐데, 민수가 어떨까 해서. 니 생각은 어떠냐. 
기태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잖아요. 
기태부 장기적으로 봐서 민수도 자리를 하나 주는 게 좋고, 눈치는 빠릿빠릿한 놈이니까 가있으면 하다못해 돌아가는 분위기라
도 쫙 꿰찰 거 아니야. 
윤 (기태에게) 제 생각도 그 친구가 괜찮을 거 같은데요. 우리 쪽에 직접 관련된 사람을 내려보내면 그쪽하고 마찰이 심할 
수도 있고, 또 우리가 원하는 바를 잘 알고있는 친구니까 적당할 듯 싶어요. 
기태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 지역 텃세도 있고 하니까, 더 적당한 사람이 있는지도 알아보고, 계약금 치를려면 시간 좀 
있잖아요. 
기태부 어차피 호텔은 네가 맡을 일이고, 앞으로 민수하고 같이 해야할텐데, 시간 끌며 다른 사람 찾을 필요가 뭐 있어? 
기태 알았어요. 그 문제는 저한테 맡겨두세요. 

S#18. 기태 사무실 (낮)
민수 테이블에 다리를 올려놓고 연주가 돌려준 손수건을 손아귀에 감았다 풀었다 하면서 생각에 빠져있다. 

S#19. 공장 옥상 (낮) 
정애 머리수건을 다시 묶고 있고, 
연주 심드렁하게 음료수캔 구기고 있다. 

정애 정말 다시는 안볼 거야? 

연주 힐끔 볼뿐 대답이 없다. 

정애 요즘 처음 만나서 바로 그런데 가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니넨 세 번째 만난 거잖아. 그냥 용서해 줘. 
연주 뭐? 
정애 아니...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연주 (후회. 마치 정애를 무시하듯) 그날 널 따라가는 게 아니었지, 내가. (한숨) 
그런 데서 만난 애들 뻔한 건데...
정애 (기분 나쁘게 보지만, 참고는 무뚝뚝하게) 전화가 온 걸 보
면 반성하고 있는 거야. 다시 오면 모르는 척 하고 그냥 넘어
가. 
연주 아이, 됐어. 차라리 잘됐지 뭐. 어차피 가짜 상표 달고 만난 건데.
정애 무슨 가짜 상표? 
연주 우리가 그럼 진짜 학생이니? 
정애 으유, 앞뒤가 꽁 막혀 가지고. 진짠지 가짠지 낯짝에 써있냐?
      우린 뭐 여공이라고 엉덩짝에 써있어? 
연주 난 너랑은 달라. 만나고 있는데 즐겁기는커녕 죄책감만 들더라. 
정애 (갑자기 민감하게) 기집애, 너 가만 보면 참 싸가지가 없다? 
말을 해도 꼭 그렇게 말해야 되니? 니가 나랑 뭐가 다른데? 
내가 보기엔 어차피 너나나나 원하는 건 똑같애. 죄책감? 그거 먼저 갖는 쪽이 손해야! 세상 그렇게 살아보고도 몰라? 
(비아냥거리는) 그래, 혼자서 실컷 잘난 척이나 해라. 미련한 기집애. 떡을 쥐어줘도 못 먹어. (가버린다.)

연주, 정애를 바라보고 서있다. 
이때 작업시작 멜로디 울린다. 
연주 심드렁하게 내려간다. 

S#20. 기태 사무실 (낮)
생각에 빠져있던 민수. 핸드폰이 울리자, 얼른 손수건 집어넣고 받는다.

민수 (받으며) 여보세요. 

S#21. 영화 서클룸 (낮)
몇몇 서클회원들이 보이고, 
희정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다. 

희정 민수오빠! 나 희정인데, 부탁하나만 할게. 

S#22. 기태 사무실 (낮)

민수 (귀찮다는 듯) 뭘 또.

S#23. 영화 서클룸 (낮)

희정 들어보지도 않고 왜 그래? 

S#24. 기태 사무실 (낮)

민수 뭔데? 

S#25. 영화 서클룸 (낮)

희정 우리 영화에 트럭씬이 한 컷 필요하거든. 한 씬도 아니야, 한 컷! 

S#26. 기태 사무실 (낮)

민수 야야, 관둬. 난 그런 거 못해. 

S#27. 영화 서클룸 (낮)

희정 누가 오빠더러 하래? 옛날에 오빠 운수회사 다녔잖아. 거기 소개 좀 시켜줘.

S#28. 기태 사무실 (낮)

민수 안돼. 니가 알아서 하든지 말든지,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못 도와줘. 

S#29. 영화 서클룸 (낮)

희정 오빠아~! 정말 이럴 거야? 그냥 소개만 시켜주면 돼. 

S#30. 기태 사무실 (낮)
이때 기태 들어온다. 

민수 (테이블에서 발을 내리며, 빨리 끊으려는) 아무튼 안 된다면 안돼는 줄 알아.

S#31. 영화 서클룸 (낮)

희정 그럼 나 오늘부터 오피스텔로 퇴근한다? 

S#32. 기태 사무실 (낮)

민수 (기태 때문에 아무 말 못하고) 야! 너... 

S#33. 영화 서클룸 (낮)

희정 해줄 거지? 

S#34. 기태 사무실 (낮)

민수 (기태에게 등 돌리고) 알았어. 알았으니까 빨리 끊어. 

S#35. 영화 서클룸 (낮)

희정 고마워, 오빠! 역시 짱입니다요! 

S#36. 기태 사무실 (낮)
전화를 끊는 민수, 기태를 힐끔 쳐다본다. 

기태 무슨 전환데 그래? 
민수 어... 희정이... 
기태 희정이가 왜? 
민수 영화 찍는데... 트럭이 필요하데나 뭐래나... 
기태 그래서? 해준다 그랬어? 
민수 (딱 잡아떼는) 아니. 
기태 집에서 싫어하는 줄 뻔히 알면서 괜히 그런 부탁 들어주고 그러지 마. 
민수 그럼. 내가 더 잘 알지. (뜨끔해서 시선 돌리다가) 참, 무슨 일이셔? 
기태 어, 계약금 넘겨주는 시기 의논하신다고...
민수 그래? 뭐 다른 말씀은 없으셨구? 
기태 (태연하게) 아니. 
민수 이상하네.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으신 거 같았는데...? 
기태 (모르겠다는 투로)그래? (말꼬리 돌리며 씩 웃는) 참, 내가 힘 좀 써줄까? 
민수 뭘? 
기태 연속 안타행진 말이야. 한번 타석에 올랐으면 끝까지 쳐야지. 안 그래? 
민수 니가 어떻게 도와줄 건데? 
기태 나만 믿어. 

S#37. 공장, 생산과 (낮)
거친 손놀림으로 일을 하고 있는 정애와 연주. 

연주 미안해. 아까 그렇게 말한 거. 원래 널 무시하거나 그런 생각은 없다는 거 알지? 
정애 (쳐다보지 않고) 됐어! 이제부터 니 일은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랑 다르네 어쩌네, 그런 말 나도 듣기 싫어. 
연주 아이, 참 왜 그래...
정애 진실한 척, 괴로운 척 하지마. 누군 뭐 내숭떨 줄 몰라서 안 떠는 줄 알아? 
그래봤자, 너만 손해야. 단순하게 생각할수록 얻는 게 많은 거야. (냉정하게) 
아이, 몰라. 니가 알아서 해. 

연주, 정애를 힐끔 볼 뿐 각자 일만 한다. 

S#38. 빌딩 앞 (낮)
기다리고 있던 기태 앞에 차를 대는 민수. 
민수 조수석 문을 열어주려고 하는데, 

기태 (운전석으로 오며) 난 좀 갈 데가 있으니까, 오늘은 그냥 퇴근해라. 
민수 (나오며) 어디 가는데? 
기태 (타며) 그냥 갈 데가 좀 있어. 
민수 (기분이 상하지만 감추며) 그래? 

기태 차 떠나면, 
차를 향해 인사를 하는 수위. 

민수 (삐딱한) 에이, 더러워서. (시계를 보며 걸어나간다.) 

S#39. 달리는 차 안 (낮)
기태 운전하며 전화를 걸고 있다. 

기태 진우니? 나 기탠데, 바쁘냐? 잠깐 보자. 내가 지금 니네 사무실 근처로 가고 있거든. 

S#40. 카페 (낮)
혼자 음료를 마시며 앉아있는 기태. 

진우 (들어와 앉으며) 웬일이냐? 여기까지 다 오고? (따라와 물잔 놓는 직원에게) 어, 콜라. 
기태 부탁이 있어서. 
진우 나한테? 무슨 부탁? 
기태 저기, 호텔 때문에 사람이 필요해서 그런데, 
진우 (물 마시고) 제주도에 인수한다는 거? 
기태 응. 니 후배 중에 제주도 출신으로 말이야, 영리하고 믿을만한 친구 하나 소개시켜 주라. 
진우 꼭 제주도 출신이어야 돼? 민수 괜찮잖아.
기태 걘 서울 일 봐야지. 그리고 생각보다 걔 다루기 힘들어. 
진우 그래? 근데 다들 일이 있는데, 마땅히 자기 일 관두고 달려올 애가 있을까? 
기태 실장 급으로 쳐서 보수는 괜찮게 줄 거야. 
진우 (기태를 빤히 보며) 알았어. 한번 알아볼게. (기태와 민수 사이에 무슨 일이 있구나 감지.)

S#41. 도로 (석양) 
무섭게 질주하는 트럭 한대. 

S#42. 달리는 트럭 안 (석양)
민수 화가 난 표정으로 거칠게 
운전하고 있고, 대호 조수석에 앉아 안절부절이다. 

대호 야, 야 너 왜 이러냐? 그만 밟어. 왜 그래? 느닷없이 나타나서 남의 차 갖고? 뭐 안 좋은 일 있었냐? 
민수 (속력을 더 낼 뿐)...
대호 야, 인마! 이게 미쳤나. 이러다 딱지 떼면 어쩔려 그래? 차 빨리 안세워? 
민수 (속도만 올릴 뿐) ... 
대호 그만 밟아, 인마! 저쪽에 대! (어이없어 포기하는 표정.)

이때 혼자 비웃듯 서서히 웃는 민수. 
갑자기 신이 나는지 웃더니, 엔진소리 더 커진다. 
경적 울려가며 환호성 지르는 민수. 

대호 어? 이 자식이 이거 진짜로 맛이 갔네. 빨리 안서? 
민수 (비웃음, 기태를 두고 하는 말) 너 내가 그렇게 쉬운 인간으로 보이냐? 
대호 아니, 그러니까 빨리 세워라. 제발 좀. 
민수 나 우습게 보지 마. 나 그렇게 만만한 놈 아니야. 알지? 
대호 알지. 야, 야. 제발, 그럼 속도라도 좀 늦춰라, 응? 
민수 (혼잣말)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난 무서울 게 없는 놈이거든. 

대호 민수를 이상한 눈길로 바라본다. 
민수의 웃음 속에 냉소가 짙게 배이면서, 
도로 위. 죽 멀어져 가는 트럭 한 대. 

S#43. 카페 앞 (석양)
가테에서 나오는 진우와 기태. 

진우 온 김에 저녁이나 같이 하지? 
기태 아니야, 됐어. 나중에 술이나 한잔하자.
진우 그래, 그럼 들어가 볼게. (돌아서서 빌딩 안으로) 

기태 차로 향하며 전화를 건다. 

S#44. 공장, 락커룸 밖 복도 (석양)
퇴근차림으로 락커룸에서 나오는 정애와 연주. 아직도 분위기 서늘하다. 

연주 (눈치보며 팔짱끼는) 오늘 내가 장봐서 들어갈게. 
정애 그래, 니가 당번이니까 니가 해야지. 
연주 그만 화 풀어. 
정애 (무뚝뚝하게) 나 화 안 났어. 

연주 삐죽거리는데, 
이때 핸드폰이 울린다. 

연주 (지레 도망가며) 나 찾으면 없다 그래. 
정애 (피식거리며, 받는) 여보세요? (좋아하며) 어머, 기태오빠? 

연주 저만치에서 걸음 멈추고 정애를 힐끔 본다. 
머슥해서 표정 뾰로통해진다. 

S#45. 카페 주차장 (석양)

기태 (차에 오르며 전화) 오늘 좀 보자. 지금 나올 수 있니? 

S#46. 공장, 복도 (석양)

정애 (좋아서) 네, 나갈게요. 어디로요? 

정애를 보고 있다가 돌아서는 연주. 
괜히 우울하게 손톱만 들여다본다. 

S#47. 정류장 근처 거리 (석양)

정애 (아직도 안 풀린, 재듯) 어떡하니? 나만 좋은 데 가서? 괜히 미안하다, 야. 
연주 (괜히 은근히 심통) 괜찮아, 나도 동식오빠 만나. 
정애 (대단하다는 듯, 비아냥) 그러니? 갈게! (버스를 향해 달려간다.) 
연주 (뒤늦게 걱정, 소리지르는) 저기, 기집애야! 일찍 들어와! 

정애 정신없이 버스에 오르고, 버스 떠난다. 
혼자 남은 연주, 웬지 쓸쓸하기도 하고, 
괜히 입술에 삐딱하게 힘을 주더니 돌아선다. 
혼자 터덕터덕 걸어가는 연주. 

S#48. 건설 현장 근처 (석양 ~ E)
건축자재가 쌓여있고, 트럭이 보인다. 
민수와 대호, 새우깡에 소주를 일회용 잔으로 마시고 있다. 
민수, 대호를 보고 히죽 웃는다. 

대호 웃지 마, 징그러, 인마. 
민수 왜에? 오랜만에 한번 몰아본 건데. 
대호 그게 그냥 한번 몰아본 거냐? 그 옷에 트럭이 어울리기나 해? 
민수 (시원한) 그래도 야, 속이 쫘악 뚫리는 거 같다. (마시고는, 잔 주고 따르며) 
아, 씨! 옛날에 우리, 화물 딱 싣고, 부산에서 밟기 시작해서 김포공항까지 2시간 반이면 테이프 딱 딱 끊고 그랬는데! 생
각 안나냐? 
대호 (같이 좋아하며) 휴게소 같은 건 들르지도 않았지. 
민수 맞아, 병에다 오줌 받아가면서? (표정은 즐거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금 하라 그러면 못하겠어. 
대호 자식아, 넌 운 좋은 줄 알아. 기태 같은 친구가 어디 흔한 줄 아냐? 
민수 (그말에 문득 욱 하지만, 떨떠름하게) 하긴... 그렇지. 
대호 왜? 기태하고 안 좋냐? 
민수 아니, 얼마나 잘해주는데? 친구 이상이야. 
대호 그래, 넌 복권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야. 
민수 (씁쓸하게) 그래... 복권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지... (문득 대호를 힐끔 봤다가, 말 돌리면서) 야,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대호 (시덥지 않게) 뭔데? 해봐. 
민수 음... 어떤 정신나간 놈이 말이야... 제법 괜찮은 여자애를 만났는데, 어떻게 해볼려구 호텔방에 데리고 갔어. 
대호 응. 
민수 그런데 그 정신나간 놈이 잠깐 방심하면서 샤워를 하는 동안, 
대호 여자애가 퉜구나. 
민수 아니. 여자애가 놈의 바지를 갈기갈기 오려놓은 거야. 가위로. 
대호 가윈 어디서 났는데? 
민수 모르지. 하여튼 이 정신나간 놈은 그날 시원하게 통풍 잘 되는 바지를 입고, 개쪽 다 팔고 돌아왔지. 근데 생각해보니까 
기분이 나쁘다 이거야. 
대호 니 얘기냐? 
민수 어떻게 알았냐? 
대호 가위로 인마, 그 정도로 당한 게 다행이다, 자식아. 
민수 그래? 아이, 근데 생각할수록 뚜껑이 열리면서 점점 열이 받는다 이거지. 
어떻게 하지? 걔를 잡긴 잡아야겠는데.
대호 왜? 개망신 당한 게 억울해서? 
민수 아니. 복수할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애가 괜찮거든. 
대호 이쁘냐? 
민수 이쁘지. 
대호 뭐 하는 여잔데? 
민수 학교 다녀.
대호 (얼굴 구겨지며, 질색하는) 미성년자냐? 
민수 아이, 이 미친놈. 대학생, 인마! 
대호 그래? 너보다 낫네? 
민수 나보다야 낫지. 집안도 괜찮고. 
대호 있는 집 애구나? 
민수 좀. 지역민방을 가지고 있대나 뭐래나... 애도 괜찮고. 가진 
집 애 치고는 괜찮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꽉 잡아야겠는데 말이야...
대호 하하하, 자식. 꿈 깨라. 그런 애가 너한테 잡히겠냐. 주변에 남자애들이 수두룩할 텐데?
민수 야, 솔직히 내가 그 지역민방만 아니어도 이러지 않는다. 이걸 말이야, 달콤하게 어떻게 녹여서 홀려야겠는데...
대호 그럼 그냥 밀어붙여! 
민수 밀어붙여? 
대호 그래, 밀어붙여! (트럭 텃짓으로 가리키며) 저걸로 부산에서 김포까지 내리쏠 때도 그냥 밀어붙인 거 아니냐. 한번이라도 
실패한 적 있었냐? 
민수 없었지. 2시간 반만에 공항 안까지 들어가서 화물 선적, 딱 딱 했지. 
대호 그 봐! 밀어붙이는데 지가 안되겠어? 밀어붙여!
민수 그래, 맞아. 밀어붙여...! (갑자기 일어서며) 야,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너 나 사는데 한번도 안와봤지. 가자. 오늘 거기서 밤 새 푸자. 
대호 (일어서며) 좋지! 

둘 트럭으로 걸어간다. 

S#49. 공단 근처 카페 (밤)
연주와 동식 커피를 마시고 있다. 

동식 (은근슬쩍) 연주야, 여름도 끝나가는데, 휴가 내서 같이 놀러 안갈래? 
연주 (찡그리며) 네? 
동식 아니, 둘이 가자는 게 아니라, 생산2팀에 창호 있잖아. 걔랑 정애랑 해서 넷이 가자구. 동해안 화진포. 어떠냐? 괜찮겠지? 
연주 (빙빙 돌리며, 새침 떠는) 아마 정애가 바쁠 걸요? 안될 거예요. 
동식 그건 걱정마. 내가 꼬실게. 
연주 (비웃음) 맘대로 하세요. 
동식 (들떠서) 우리 사촌 형님네 차 내가 빌려올 수 있거든. 
연주 (참 좋기도 하겠다는) 그냥 형님도 아니고, 사촌 형님네 차요? 
동식 그래. 신나게 쫙 달리는 거야. 기름값도 우리가 대고, 니넨 그냥 몸만 오면 돼. 

연주, 억지로 나오는 하품을 참으며, 무관심하게 다른 곳 본다. 

동식 왜? 어디 아프니? 
연주 아니요. 
동식 (빼꼼히 보며) 생리하냐? 
연주 아니요! (눈 흘긴다.) 
동식 기운 없어 보이는데? 
연주 (떨떠름하게) 좀 피곤해서 그래요. 하루 종일 서있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동식 맞아, 어떨 땐 사무실에 앉아있는 애들 보면 참 좋겠어. 그지? 

연주 힐끔 볼뿐 반응 없다. 

동식 근데 이번에 결혼한 애 말이야, 사무실에 이은영이. 걘 관둘려고 그런댄다. 
연주 (삐죽거리며) 그렇게 좋은 자리를 왜 관둬? 그냥 다니지? 
(그러다가 무심히) 
그럼 여직원 새로 뽑겠네요? 
동식 아니, 이번엔 외부공채 안하고 생산직에서 충원하기로 했다는데? 
연주 (관심이 생기며) 정말이요...? 누가 그래요? 
동식 송과장이. 
연주 언제요? 
동식 엊그제 술자리에서. 왜? 관심 있냐? 
연주 (얼른 고개 저으며) 아니요!

하지만 생각이 있는 연주. 
고개를 갸웃하며 머리를 굴리는 표정. 

S#50. 락카페 (밤)
정애와 기태 나란히 바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정애 (싫다는) 어머, 호텔 인수하면 오빤 제주도로 내려가요? 
기태 당분간만. 왜 싫어? 
정애 그럼요. (삐지며) 그럼 난 어떡해? 
기태 자주 올라올 텐데 뭘. 니가 그쪽으로 놀러와도 되고. 
정애 말이 그렇지 그게 쉽겠어요? 
기태 (농담) 그럼 아예 학교 때려치우고 내려와라. 
정애 (뜨끔하지만, 때리며) 아이 참, 어떻게 그래요? 하긴 뭐, 오빠가 무지하게 잘해주면 갈 수도 있지만... 
기태 야! 너 보기보단 열정적이다? 
정애 그럼요. 연주 걔하고는 틀려요. 전요, 솔직해요. 
기태 참, 연주씬 지금 상태가 어때? 
정애 안 좋아요. 민수씨가 잘못했지. 내가 보기엔 어려울 거 같애요. 
기태 그럼, 할 수 없네. 걔네들 우리가 구제해주자. 
정애 어떻게요? 
기태 다 방법이 있지. 

정애, 술을 마시는 기태를 본다. 

S#51. 오피스텔 (밤)
민수와 대호, 맥주를 사들고 들어온다. 

대호 와! 생각보다 좋다? 
민수 좋긴 뭘. 
대호 (침대에 앉아 들썩거려보며) 근사한데? 건물에서 냉방도 되나봐? 시원하네. 부럽다! 
민수 (봉지에서 캔맥주 꺼내 던지며) 오늘 자고 가라. 
대호 (받으며) 그럴까? (따서 흘러내리는 거품 마시고는 테이블로 온다.) 

대호 앉으려고 의자에 있던 나팔바지를 들어 다른 곳에 놓으려다 보고, 

대호 (웃으며) 이게 그 바지냐? 
민수 (집어서 치우며) 됐어. 참, 기태 여동생, 희정이라고 있거든. 
대호 영화배우 한다고 설친다는 애? 
민수 영화배우가 아니라 영화감독. 너 언제 트럭이나 하루 몰고 나와서 걔 영화에 찍게 해줘라. 
대호 안돼. 김계장 알면 큰일 나. 
민수 그러니까 형님 몰래 끌고 나와야지. 
대호 영화에 번호판이라도 나와봐라. 곤란해, 인마. 
민수 아이, 자식. 번호판 안나오게 찍으라고 내가 말할게. 그리고 형님이 볼만한 영화도 아니니까 걱정 말고. 알았지? 
대호 뭐 그런 부탁을 하냐. 영화 출연이라면 모를까. 
민수 그 인물에 무슨. 해줄 수 있지? 
대호 알았어. 

S#52. 공단거리 카페 앞 (밤)
번잡한 카페 앞에서 옥신각신하는 연주와 동식. 

동식 (팔을 잡으며) 오빠가 살게. 호프 딱 한잔만 하고 가라.
연주 (팔 빼며) 됐어요. 저 그만 들어가 봐야돼요. 
동식 (뒤에서 연주의 어깨를 잡고 방향을 돌리는) 어떻게 니가 산 거만 딱 마시고 그냥 가니, 오빠가. 가자! 
연주 (빠져나가며) 아이, 저 바빠요. 가다가 장도 봐야 하고, 가서 밥도 해놔야 되요. 내일 아침에 먹고 나갈려면. 
동식 잠깐이면 돼. 오빠가 사준다는데도 싫어? 
연주 싫은 게 아니라요. 다음에 사주세요. (서둘러 인사) 저기, 안녕히 가세요! 

돌아서서 급히 달려가는 연주. 
입모양만 툴툴거리며 바삐 걸어간다. 

동식 (허탈하게 보며) 아이, 기집애 고거. (돌아선다.) 

S#53. 동네 수퍼 (밤)

연주 (야채를 요리조리 보며 트집잡는) 어째 시들시들하다. 
아줌마 그럼 새벽에 가져온 건데, 쌩쌩이야 하겠어? 연주 깎아주실 거죠? 
아줌마 (담으며) 알았어, 알았어. 
연주 (지갑을 꺼내며) 두부 한모하고요, 파도 한단 주세요. 

S#54. 연립주택 골목 (밤)
시장거리를 들고 연주 혼자 
곰곰히 생각에 빠져 걸어온다.

동식 (E) 아니, 이번엔 외부공채 안하고 생산직에서 충원하기로 했다는데? 

갑자기 걸음을 빨리 하는 연주. 

S#55. 연립주택 옥상 (밤)
연주 올라오면, 불을 꺼져있는 옥탑방 앞, 
평상에 소영이 앉아있다. 
사온 주스상자가 보인다. 

소영 (오는 소리에 돌아보며) 연주니? 
연주 (어두워서 자세히 보며, 놀라며 반가운) 어머, 소영이니? 니가 여길 다 웬일이야? (비닐봉지 놓고, 전구 켜는) 언제 왔
어? 많이 기다렸니? 
소영 (근심이 있는 얼굴) 아니, 좀 됐어. 
연주 (주스상자보고) 이런 건 뭐 하러 사왔어? (얼른 가서 열쇠로 문 열며) 들어가자. 저녁은 먹었어? 
소영 (일어나며) 나 배 안 고파. 
연주 (집안의 불만 켜고 다시 오며)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 
소영 (봉지 들고 먼저 들어가며) 무슨 일은... 그냥 보고싶어서 온 거야. 

연주 이상하다는 느낌으로 주스상자 들고 따라 들어간다. 

S#56. 연주집 (밤)
식탁에 놓여있는 봉지와 주스상자. 
소영 서성거리는데, 

연주 (창문들 열며) 앉아. 좀 덥지? 옥탑방이 여름엔 더워. 선풍기도 고장났거든. 
있다가 저녁은 밖에서 먹자. 앉어. 
소영 (앉으며) 응, 그래. 
연주 (봉지에 것들 꺼내며) 세상에... 정애 핸드폰 번호 몰라?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
소영 아니, 아는데... 그냥 왔어. 저 밖에 혼자 앉아있는데, 참 좋더라. 다 보이고... 
연주 (이상한 느낌, 다시 오며) 너 무슨 일 있구나? 경철씨랑 싸웠어? 
소영 아니. 
연주 (옆에 앉으며) 그럼? (얼굴 보며) 말해봐. 
소영 (애매한 미소 지을 뿐) ... 
연주 (그냥 일어서는) 그럼 잠깐만 기다려. 저녁부터 해먹자. 

연주 주방으로 가는데, 

소영 (갑자기 일그러지며) 연주야... 나 어떡하지? 
연주 (돌아보고 다시 천천히 오는, 걱정스런) 무슨 일 있구나. 
소영 ...
연주 (옆에 앉으며) 무슨 일인데? 
소영 ...
연주 괜찮아. 말해봐. 
소영 지난번에... 나 경철씨랑 여행 갔었잖아...
연주 으응... (눈 깜빡이다가 쳐다보며, 감 잡는) 혹시 임신했니? 

끄덕이는 소영. 

연주 (놀라며) 어머, 세상에... 
소영 어떡하면 좋지? 
연주 (조심스럽게) 그 사람은 아니? 
소영 아니, 아직. 말못했어. 
연주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가) 너 그 사람 사랑하지? 

끄덕이는 소영. 
눈만 깜빡거리는 연주. 

연주 어차피 둘이서는 결혼하기로 한 거잖아. 그럼 지금 하자고 해. 
소영 그 얘길 못하겠어. 그 사람은 지금 결혼할 생각 없거든. 우리 집하고 감정도 안 좋아. 헤어지자고 하면 어떡하지? 
연주 (그대로 안아주며) 에이, 바보같이... 아직 그런 생각하지마... 

S#57. 달리는 기태 차안, 
집에서 떨어진 정류장 근처 (밤)

정애 (놀라서 기절할 지경) 음! 인수하는 데만 200억이요? 
기태 그럼 특급호텔인데. 거기다 객실보수 좀 하고 오픈 준비할려면 더 들지. 
정애 어마어마하다. 상상이 안돼요. 
기태 언제 또 내려갈 기회가 있을 거야. 그때 한번 같이 갈래? 
정애 (좋지만 망설이다 빼는) 글쎄요... 수업도 있고, 시험 때는 안 될테고... 그때가서 생각해보구요. (하지만 내심 들뜨는 표정.) 
기태 그래, 생각해봐. 지난번에 내린 대로 저 앞에 세워주면 되지? 
정애 (정신이 없는) 네. 

기태의 차에서 내리는 정애. 

기태 (뒷좌석의 장미꽃 두 송이를 집어주며) 자! 또 만나! 
정애 (감동하며) 어머, 두 송이네! 
기태 연주씨 눈치 못 채게 잘해야돼? 
정애 민수씨나 이번엔 잘하라 그래요. 조심해서 가요! 
기태 안녕! 

기태 차 떠나고 정애 황홀한 표정으로 서있다. 
이때 마을버스가 오자 퍼뜩 정신이 들며 달려가는 정애. 

S#58. 연립주택 골목 (밤)
연주, 소영을 바래다주러 내려오며 이야기한다. 

연주 (차분해진) 괜히 혼자 그러지말고 일단 그 사람한테 얘기해.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잖아. 알았지? 
소영 (끄덕이고는) 고마워, 연주야. 
연주 내가 뭘. 
소영 참, 너 엄마한테 전화 해봤어? 
연주 (표정 굳어지며) 아니. 
소영 한번 해봐. 
연주 그 얘긴 관두자.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말 돌리며) 차 어디 뒀어? 
소영 (가리키며, 무선시동 거는) 어, 저기! 

이때 장미꽃을 들고 
경쾌하게 오던 정애와 마주치게 된다. 
정애, 연주와 팔짱을 끼고 있는 소영이 떨떠름하다. 
소영은 정애를 긴가민가 금방 못 알아본다. 

연주 (정애에게) 이제 오니? 소영이 왔었어. 
소영 정애씨? 어머, 헤어스타일이 달라져서 다른 데서 만나면 못 알아보겠어요. 
정애 (떨떠름한) 그래요? 놀러왔었나봐요? 
소영 네. 가는 길이에요. (차로 향하며, 연주에게) 들어 가. 

뒤에서 소영과 연주의 모습을 삐죽거리며 보고있는 정애. 
소영 차에 오르고, 연주 그 앞에 서있다. 

연주 운전 조심해. 어떻게 됐는지 나한테 꼭 전화하고. 
소영 (끄덕이며) 알았어. 

소영의 차 떠나고, 
보다가 돌아서는 연주. 

정애 쟨 하러 왔대? 
연주 그냥 놀러온 거야. 
정애 근데 뭘 꼭 전화를 해? 
연주 그럴 일이 있어. 넌 몰라도 돼. (장미꽃 보며) 예쁘다. 정말 두 송이네? 

정애 삐죽거린다. 

연주 오늘 재미있었어? 
정애 너도 몰라도 돼. 

연주 웃는다. 

S#59. 오피스텔 (밤)
대호와 민수의 무르익은 술자리. 
대호는 런닝셔츠 차림이다. 

대호 야, 너 그 호텔에서 뭐 좀 맡으면 말이야, 나도 좀 어떻게 안될까? 
민수 기다려봐라. 내가 한 건 잡기만 하면 너 하나 해결 못해주겠냐. 
대호 고맙다. 잊지 마라. (엄지로 자기 가리키며) 친구!
민수 (웃으며) 그래. 

대호와 민수 건배한다. 
이때 초인종이 울린다. 

대호 누구 오기로 했어? 
민수 (일어나 나가며) 아니. 누구세요? 

문 열면 기태가 서있다. 

민수 웬일이야? 집으로 안 갔어? 
기태 (들어서며) 귀찮아서. 여기서 잘려구. (대호를 발견, 시큰둥하게) 누구 왔었네? 
대호 (일어나며, 반갑게) 오랜만입니다! 예전에 한번 봤지요? 
민수 친구 송대호라고. 
기태 (쳐다보기만 하며) 그랬어요? (자켓 벗고 침대에 앉는다.)

셋 잠시 어색하다. 
대호 불편하다. 

민수 (대호에게) 앉아. (기태에게) 우리 마시던 중인데, 너도 한잔 할래? 
기태 아니야, 난 됐어. (신문을 펼쳐 든다.) 
대호 (옷 입으며) 그만 가야지. 
민수 아니, 왜에? 
대호 (나가며, 기태에게) 다음에 봅시다. 
기태 (그대로 앉아서 고개만 돌리고) 아, 예. 
민수 (따라 나가며) 아이, 왜 그러냐? 있어도 되는데...

S#60. 오피스텔 앞 (밤)
나오는 대호와 민수. 

민수 (따라나오며) 미안해서 어떡하냐. (건물 쪽 보며) 자식, 평소에는 오지도 않다가 갑자기 전화도 없이... 
대호 괜찮아. 다음에 와서 잘게. 들어가라. 
민수 미안하다. 
대호 괜찮다니까. 어서 들어가. (가다가 돌아보며) 참, 그 여자랑 잘 되라! (간다.)

민수 웃으며 대호를 좀 보다가 얼른 뛰어들어간다. 

S#61. 오피스텔 (밤)
민수 들어오면, 
기태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다. 

민수 (얼른 술 테이블 치우며) 어디서 오는 길이야? 저녁은? 먹었지? 
기태 (신문 넘기며) 다른 날도 저런 친구 여기 데려오고 그러니? 
민수 아니, 처음이야. 오랜만에 만난 거라 그냥 헤어지기도 뭐하고 그래서... 
기태 (신문 접고는) 이제 만나지 마라. 구질구질하지 않니? 
민수 으응... (휴지 빼서 테이블 닦는) 어디서 오는 길이야? 
기태 정애 만났어. (나팔바지 발견하고) 야, 이거구나? (펴보고 껄껄 웃으며) 하하하, 이거 완전히 무슨 전리품 같다? 
민수 (잡아채서 쓰레기봉투에 넣으려는데) 아이, 야. 
기태 (다시 뺏어가며) 야, 야. 그걸 왜 버리리냐? 아깝게. 이거 벽에 걸어놓자. 장식품으로. (벽에 대보며) 여기가 어때? 
민수 (멋쩍어서) 아이, 그만해. 
기태 왜? (벽에 걸린 거 떼며) 이거 떼버리고. (바지 걸며) 어때? 하하하. 아주 좋은데? 좋아. 
민수 참, 연주 걔는 어떻대? 
기태 (바지 감상하며) 너 이렇게 당하고도 걔한테 마음 있냐? 
민수 아니, 뭐... 솔직히 지금까지 만난 애들 중에 제일 낫잖아. 
기태 그래? 일단 내가 작전 다 짜놨으니까 걱정 마라. (웃다가 피곤하다는 듯) 아차, 집에 들어가봐야겠네? 
민수 왜? 
기태 (피곤하다는 듯) 요즘 잘 보여야 돼. 엄마가 선보라고 해서 아주 죽겠어. (자켓 들고 나가며) 피곤하다, 정말. 
민수 (문까지 나가며) 내가 술을 마셔서, 오늘은 그냥 혼자 가라. 
기태 그래. (씩 웃으며) 꿈이나 잘 꿔라. 

문을 닫고 돌아서는 민수. 
힘들었는지 한숨을 내쉰다. 

민수 자식. 자고 가지도 않을 거면서. (남은 맥주 마신다.)

S#62. 연립주택 (밤)
식탁 위엔 약간 시든 한 송이의 장미와 새 장미 두 송이가 보이고, 
연주 주스를 따라 정애에게 내민다. 

정애 (주스상자를 보며) 걔가 사온 거지? 난 싫어. 
연주 (그냥 자기가 마시며) 싫음 관둬라. 
정애 (물 따라 마시고는, 슬쩍 떠보는) 너, 아직도... 민수씨 그래? 
연주 (아무렇지도 않다는) 아니, 다 잊어버렸어. 
정애 정말? 
연주 (주스 마실 뿐) ...
정애 실은 그 사람 지금 병났댄다? 너 땜에. (표정 살피는) 
연주 아이구, 별꼴이야. 그럼 병원 가라 그래. 
정애 진짜야. 얘기 들어보니까 좀 안됐드라. 한번 만나주지 그래? 
연주 내 앞에서 자꾸 얘기하지 마.

정애 삐죽거리는데, 
이때 전화벨이 울리고, 
정애가 받는다. 

정애 여보세요? (연주를 보며) 네,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정애에요. 

순간 표정이 변하며 돌아보는 연주. 

연주 (급히 욕실로 가며) 나 없다 그래. 
정애 (이미 말이 나온) 네, 옆에 있어요... (눈치 보며) 바꿔 드릴게요. (욕실로 가 전화기 내밀며) 받어. 
연주 (다시 나오며, 무뚝뚝하게) 여보세요. 웬일이야? 

S#63. 고속버스터미널 앞 공중전화 부스 (밤)
허름한 차림의 연주모가 
전화를 하고 있다. 자존심은 세 보이나 고생에 찌든 표정. 

연주모 (정감과 어색함이 섞여) 잠깐 서울 올라왔다가 생각나서 전화했어.

S#64. 연립주택 (밤)

연주 (예민하게) 서울엔 뭐 하러 왔어요? 
정애 (쿡 찌르며) 오셔서 주무시고 가시라 그래. 

S#65. 고속버스 터미널 공중전화 (밤)

연주모 (머뭇거리다) 으응... 애들 큰댁에 일이 있어서.

S#66. 연립주택 (밤)

연주 (차갑게) 그럼 엄마 시댁에 가서 자면 되겠네. 

정애 연주에게 눈총을 준다. 

S#67. 고속버스 터미널 공중전화 (밤)

연주모 연주야. (불러놓고) 아니다. 우리 못 본지 오래 됐는데, 잠깐 얼굴이라도 볼까? 

S#68. 연립주택 (밤)

연주 지금 너무 늦었잖아. 

S#69. 고속버스 터미널 공중전화 (밤)

연주모 내가 내일 공장으로 잠깐 갈게. 거기가 어디라 그랬지? 

S#70. 연립주택 (밤)

연주 아니야, 오지 말아요. 면회 오고 그러면 복잡해. 나갈 시간도 없어요. 
연주모 (소리) 그래...? 밥이나 잘 해먹는지 원. 
연주 여태 잘해먹었으니까 살았지! 그럼 잘 있다가 잘 내려가요. 그만 끊어요. (끊는다.) 
정애 어쩜? 보고싶어서 전화하셨을 텐데, 인정머리라곤 요만큼도 없냐? 

연주 현관문 거칠게 열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정애 눈흘기면서도 또 따라 나간다. 

S#71. 포장마차 (밤)

연주 (들어와 앉으며) 여기 소주 주세요.
아저씨 (소주 내주며) 뭐 안 좋은 일 있나봐? 연주 사는 게 더러워서요. 
아저씨 벌써 그런 얘기하면 돼? 안주는? 곰장어 궈줄까? 
연주 네. 

연주 소주부터 따라 마신다. 
화도 나고, 후회도 되고, 복잡한 심정이다. 
이때 정애 들어와 아니나달라? 하는 표정으로 연주 옆에 앉는다. 

정애 (앉으며) 잔 하나 더 주세요, 아저씨. 

아저씨 잔을 주면, 정애, 
연주와 자기 잔에 술을 채운다. 

정애 금방 후회할 짓을 왜 하니? 
연주 시끄러. (마신다.) 
정애 와서 자고 가라! 그말 하기가 그렇게 힘드냐? 전생에 무슨 악연이 꼈나... 
연주 서울까지 올라온 걸 보면 또 분명히 돈 필요해서 전화했을 거야. 
정애 돈 필요하다 그러면 그냥 드려. 니가 줘봤자 얼마를 주겠니? 
연주 (화가 나서) 내가 왜 뼈빠지게 일해서 그 여자 자식새끼하고 남편한테 돈을 주니?
      (속상한) 딸년 버리고 시집갔으면 잘 살아야 될 거 아니야! 
정애 그 여자가 뭐니? 엄마보고. 

연주 가슴만 들썩거리며 거친 숨 몰아쉰다. 

정애 (한잔 마시고는 잠시 후, 나직이) 너, 그러다 엄마 돌아가시면 후회해. 
연주 (원망스러운, 울먹)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정애 (중얼거리듯) 기집애... 나 봐. 엄마 없으면 세상에 내편이 아무도 없는 거야. 
아버지? 내 엄마가 있어야 내편이지, 다른 여자랑 사니까 금방 다른 여자 편 되더라...
       아무리 가난해도 엄마만 있었다면 고등학교 등록금 그거 몇 만원 못 만들어 줬겠어? (눈물이 
금방 고이며) 우리엄만 뭐 작은 거 하나만 봐도 내 입에 넣
어주고 싶어했는데... 이 세상에 엄마 말고, 내 입으로 들어가 
는 거 보고 좋아서 웃어주는 사람이 있는 줄 알아...? 나쁜 기집애... 
연주 (중얼거리듯, 잠긴 목소리) 그 여잔 내편 아니야. 원래부터... 

정애 눈물 닦고, 둘 말이 없다. 
소주도 마시지 않는다. 

정애 (잠시 후) 다시 전화해. 그 집 전화번호 몰라? 
연주 몰라... 

쓸쓸한 연주의 얼굴. 
술을 털어 넣는다. 

연주 (빈잔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리는) 두고봐. 그 여잔 날 버렸지만 난 잘 될 거야. 두고 봐... (F.O) 

S#72. 기태집 식당 (아침)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기태부, 기태모, 기태. 

기태모 (기태에게 재촉하는) 너 어떡할 거야? 
기태 생각 좀 해보고요. 
기태모 (질렸다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하니? 
기태부 아직 장가갈 뜻이 없나본데, 당신 왜 그래? 사람도 마음이 있
을 때 만나야 눈에 들어오는 거지, 억지로 본다고 돼? 
기태모 이러고 있으면 놓치니까 그렇지요. 당신도 윤경일 봤으면 이런 얘기 안해요. 

이때 희정 나타나 식탁에 앉으며,

희정 (경쾌하게) 안녕히 주무셨어요? 
기태부 어, 그래. 
기태 (별로 맘에 안든다는 듯) 너 오랜만이다. 
희정 (그냥 경쾌하게) 응, 오랜만이야. 
기태부 어떻게 식구끼리 인사가 그 모양이냐. 
희정 아빤? 각자 바쁘면 그럴 수도 있죠. 오누이끼리 현대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지 않으세요? 
기태모 (희정에게) 야휴, 넌 까불지 말고 밥이나 먹어. (기태에게) 얘, 윤경이 말이야, 
딱 우리 식구 했으면 좋겠어. 한번 보기나 해라, 응? 
기태 (다소 귀찮은) 알았어요, 그렇게 하세요. 
기태모 (좋아하며) 아이구, 진작에 그럴 것이지. 너, 나 죽고 난 후에
도 두고두고 나한테 고마워 할 거다. 좋은 여자 만났다고. 
기태부 (일어나며) 죽긴 누가 죽어? 아침부터. 
기태모 (따라 일어나며) 아이, 누가 죽는데요? 색시 잘 얻으면 내 생
각 할 거다 이 말이죠. 
기태부 (나가며, 나무라는) 이제 선보겠다고 한 거야. 뭘 벌써 혼인 다 된 거처럼 호들갑은. 
기태모 (따라나가며, 좋아서) 여보, 당신은 언제 시간이 괜찮아요? 

이때 기태와 희정, 같은 반찬에서 젓가락이 만난다. 

희정 (쳐다보며) 어휴 역겨워. 싫다 정말. 무슨 선을 보냐? 
기태 너나 잘해, 기집애야. 민수한테 괜히 쓸데없는 부탁이나 하지말고.
희정 (뜨끔해서) 내가 뭘?... 
기태 민수 그렇게 좋은 놈 아니야. 내가 옆에 있어봐서 잘 알아. 
그러니까 가까이 하지 마. 
희정 어쩜 자기 친구보고 그렇게 말하냐? 그럼 같이 왜 다녀? 이중인격자 아니야? 
기태 기집애. 오빠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희정 네, 오라버니. (열심히 밥 먹는다.)

기태 못마땅해서 보지만, 그냥 밥 먹는다. 

S#73. 공장, 사무실 (낮)
뒷춤에 음료수캔을 들고 
사무실을 기웃거리며 들어가는 연주. 

연주 안녕하세요! 송과장님. (음료수 놓으며)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송과장 아니, 니가 여긴 웬일이냐? 
연주 그냥요. 
송과장 (의자 당겨주며) 좀, 앉아라. 
연주 (앉으며) 네. 
송과장 왜? 뭐 할말 있니? 
연주 (눈치보며) 아니요. 
송과장 괜찮아. 해봐. 
연주 저기... 사무실에 근무하는 이은영이 그만둔다면서요? 
송과장 응. 왜? 
연주 그 자리를 생산직에서 뽑아서 올린다는 얘기가 있든데요, 사실인가 해서요. 
송과장 지금 인사부에서 검토중이지. 왜? 누구 추천할만한 사람이라도 있니? 
연주 음... (끄덕이며) 네. 
송과장 누군데?
연주 저기... 글씨도 잘 쓰고요, 성격도 좋고, 머리도 좋거든요. 
서류처리나 경리 일도 잘 볼 거예요. 그리고... 용모도 그 정도면 빠지지 않구요, 딱 적임잔데... 
(빤히 보는) 
송과장 누군데 그래? 
연주 음... (빤히 보며) 저요. 
송과장 (크게 웃고는) 너? 
연주 네. 저요... 
송과장 (또 한번 웃고는) 그래, 내가 한번 추천해보지. 
연주 정말이요? 
송과장 그래.
연주 (일어나 인사하며) 감사합니다. 

연주 돌아서서 나온다. 
쌩끗 웃으며 희망에 부푼 표정. 

S#74. 공장 사무실 밖 복도 (낮)
연주 나오면, 여공들 떡을 쟁반에 
나르고 있고, 로비 한쪽에서 
웅성웅성 모여 떡을 먹는다. 

정애 (떡 먹는 부류에 속해) 연주야! 이리와, 떡 먹어. 

연주 달려오자 여공2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색. 

연주 (냉큼 집어먹으며) 맛있다. 무슨 떡이야? 
정애 은영이 결혼 떡. 신혼여행 갔다왔잖아. 
연주 (하나 더 집으며) 음, 그래? 

연주 열심히 떡을 먹으며 여공들 하는 얘기를 듣는다. 

여공3 (이름. 조현숙) 근데 왜 공채를 안하고 생산직에서 뽑아? 
여공2 공채도 비용 나가고 시간 드는데, 한 명 뽑자고 공채를 하겠냐? 
정애 그럼 송과장님이 추천해서 올리겠네? 2년 전인가? 그때도 그랬잖아. 
여공2 (은근히 기대) 어머, 그럼 누가 될까? 

이때 떡접시를 들고 
나타나 합류하는 여공1. 

여공3 상미 걔가 좀 똑똑하고 팀별 회의할 때도 문제 대처 능력이 있지 않나? 
여공1 그건 생산과에서나 필요한 능력이지. 사무실에서도 같냐? 
여공2 그럼 누가 되지? 내가 됐으면 좋겠는데... (이내 여공1, 3의 알밤 세례가 날아든다.) 
정애 (그 사이 연주에게) 사무실에 이은영이 관둔대. 그럼 자리 비잖아. 그 얘기야. 
연주 (처음 듣는다는 식으로 끄덕이며) 으응... (떡을 먹는데) 
여공1 넌 축의금도 안낸 애가 떡은 입으로 잘 들어간다? 
연주 허! 참! 내! (반쯤 베어먹은 떡을 다시 놓으며) 치사 빤쓰다, 
어! (가버린다.) 
정애 안내긴 누가 안내냐? (떡을 한 움큼 집으며) 둘이 3만원! 냈잖아? (가버린다.)
여공1 (어처구니없어 보며) 이젠 아주 세트로 노네? 

생산과로 향하는 연주. 
혼자 회심의 미소 짓는다. 

연주 (뒤따라오는 정애에게) 쟤네들 안됐지 않니? 아무리 그래봐야 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안 그래? 
정애 그렇지. 원래 늘 그래왔잖아. 

S#75. 빌딩 사무실 (낮)
기태와 민수 나란히 자켓을 걸치며 이야기한다. 

민수 그래서 선은 보기로 한 거야? 
기태 별 수 있냐, 봐야지. 참, 나 선보기로 한 건 정애한테는 안 들어가게 조심해라. 
민수 걱정할 걸 해라. 그럼 오늘 연주 걔는 모르고 나오는 건가? 
기태 그렇다고 봐야지? 왜 걱정 되냐? 
민수 아니. 
기태 준비는 다 됐지? 
민수 준비할 게 뭐 있나...? 
기태 평소대로 하겠다? 
민수 플랜이 다 있지. 설마 그냥 나갈까. 

둘 웃으며 나간다. 
그러나 민수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소 걱정이 된다. 

S#76. 공장, 락커룸 (E)
퇴근복장의 연주 거울을 보며 
다소 들뜬 표정으로 희망에 부풀어 있다. 

정애 너 무슨 좋은 일 있니? 
연주 (하지만 여전히 밝게) 응? 아니. 
정애 저녁에 무슨 약속 있어? 
연주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정애 그럼 내가 오늘 근사한 데 가서 저녁 살게. 
연주 (안 먹어도 무방한) 갑자기 무슨 저녁이야? 무슨 날도 아닌데? 
정애 그냥. (팔짱끼며) 실은 니 덕에 기태씨도 만났잖아. 나만 잘돼서 미안해서 그래. 내가 한턱 낼게. 
연주 에이, 그런 거라면 됐어. 
정애 (섭섭한) 연주야.
연주 됐다구. 먹은 걸로 칠게. 
정애 (약간 기분 나쁜 투로) 너 왜 남의 마음을 몰라주니? 아직도 나 무시하지? 
내가 잘 되는 게 니가 보기엔 아무 것도 아니다 이거 아니야. 
연주 무시하는 거 아니야. 그냥 됐다는 거지. 
정애 (팔 뿌리치며) 기분 나빠. (나가버린다.)
연주 (뚱하니 보며) 어머? (따라나가며) 어후, 기집애. 삐지는 대회 나가면 그랑프리 먹을 거야.

S#77. 공장, 건물 밖 (E)
연주 쫓아나와 정애의 팔짱을 끼며 붙든다. 

연주 알았어. 저녁 사줘. 갈게. 됐지? 

정애 뾰로통해서 연주와 나란히 간다. 
정애 혼자 히죽 웃는다. 

S#78. 달리는 차 안 (E)

민수 선물이라도 준비할 걸 그랬나? 
기태 왜, 안했어? 
민수 응. 있는 집 애들은 물량공세에는 꿈쩍도 안하잖아. 
기태 너 뭘 모르는구나. 있는 집 애들은 더 큰걸 바래요. 출혈이 클수록 감동하는 게 여자라니까. 다 똑같애. 
민수 내가 보기엔 이게 말이야, 이벤트성이나 깜짝쇼루다가 해결될 일이 아니야. 
(심각하게) 어떻게 해서든 마음을 움직여야 되는데 말이야... 
기태 하여튼 난 만나게만 해주고 빠질 테니까 나머진 니가 알아서 해라.

민수 심각하게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S#79. 고급 레스토랑 (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와 앉는 정애와 연주. 연주는 잔뜩 쫄아있다. 

직원 (메뉴를 주며) 주문하시겠어요? 
연주 잠깐만이요. 
직원 더 오실 분이 있나요? 
정애 (지레 놀라서, 얼른) 아니요. 
연주 의논 좀 할려구요. 
직원 네, 그럼. (간다.) 
연주 (소근대며) 미쳤니? 이런 데서 뭐 하러 내 돈 내고 저녁을 먹어? 일어나. 딴 데로 가자. 
정애 괜찮아. 니 돈 내니? 내 돈 내지? 
연주 니 한 달 월급이 얼만 줄이나 알아? 이건 우리 둘이 야근 수당 일주일 치는 합쳐야 돼.
      난 못 먹어. 갈래. 
정애 얘가 왜 이래? 챙피하게. 
연주 (챙겨서 일어나며) 창피가 밥 먹여 주니? 일어나 빨리. 
정애 (잡아당기며) 내가 산다는데 왜 그래? 나중에 기태씨랑 더 잘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야. (메뉴 펴며) 일단 주문해. 

연주 한숨 쉬며 다시 앉는다. 
둘 다 메뉴판 본다. 

연주 (메뉴판을 펼치더니, 더 놀라며) 차라리 돈으로 주라. 
정애 시끄러. 빨랑 시켜. (메뉴를 읽으며) 나는 데일리 스페셜 메뉴에서 샤또 브리앙 시켜줘. (일어서는) 화장실 갔다올게. 
연주 (메뉴 뒤적거리며) 뭐? 뭐라구? 그게 어딨어? 

정애 메뉴판에서 찾아 손가락으로 짚어주고는 
그냥 갈까 하다가 핸드백 들고 간다. 

연주 (가격표 보고) 미쳤나봐. (메뉴판 뒤적이며 고민한다.)

연주 그렇게 한참을 
열심히 뒤적거리고 있는데, 
이때 테이블 주변에 나타나는 남자의 기척. 

연주 (메뉴판만 들여다보고 읽으며) 저쪽은 데일리 스페셜 메뉴에서 샤또 브리앙 주시구요, 저는 그냥 오므라이스 주세요. 

메뉴판을 내밀며 고개를 드는 연주. 
서있는 남자 민수다. 

연주 (얼굴 일그러지며) 뭐야~? 이 기집애 정말!...
민수 (앉으며) 실은 내가 초대한 거야. 그날 일 사과할려고. 

연주 얼른 가방 들고 밖으로 나간다. 

민수 (따라가며) 연주씨! 연주씨...! 

S#80. 레스토랑 출입문 밖 (밤)

민수 (나오자마자 연주를 잡으며) 사람을 보자마자 그냥 가면 어떡해. 나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야. 그날은... 
연주 (존댓말로 나오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면, 나를 아주 우습게 본 거네요. 
그죠?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가버리면) 
민수 (쫓아가며, 존대말로 바뀌는) 연주씨, 연주씨! 아이, 씨. 내 말 좀 들어봐요! 

S#81. 근처, 차 안 (밤)
거리에서 옥씬각씬하는 연주와 민수를 보고있는 정애와 기태. 

정애 (안절부절) 어머, 어떡하죠? 더 성났나봐. 아까까진 괜찮았는데?
기태 (웃으며) 걱정하지 마. 민수가 다 알아서 할거야.
정애 정말이요? 
기태 그럼. (출발한다.) 

S#82. 동 거리 (밤)
기태의 차 출발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연주를 잡는 민수. 

민수 (잡으며) 내 말 좀 들어봐요, 연주씨. 잠깐이면 돼요. 
연주 (빼며) 난 할 얘기 없다니까요? 
민수 (다시 잡으며) 그럼 그냥 일단 들어봐요. 
연주 이거 놓고 얘기해요. 
민수 (얼른 놓으며) 아, 미안해요. 내가 그날 연주씨한테 그런 거는...

연주 듣지 않고 가버린다. 
민수 열받는 표정이 되지만 
이내 다시 잡으러 쫓아간다.

민수 연주씨! 연주씨! 

연주도 잡힐 듯 하자 달려가기 시작한다. 
민수 더 빠르게 달려간다. 
모퉁이를 도는 연주. 
길을 건널까 어쩔까하는 사이에, 
모퉁이에서 나타나 금새 연주를 잡는 민수. 

민수 (헉헉거리며) 정말 왜 이래요? 내가 그렇게 싫어요? 

연주도 헉헉거리기만 할 뿐 
대답없이 시선 피한다. 

민수 잠깐이면 돼요. 어디 들어가서 얘기해요. 
연주 좋아요. (바로 옆 포장마차를 보며) 여기 가죠. 

연주 먼저 들어가면, 
민수 어이가 없는지 자신을 한번 내려다보더니 따라 들어간다. 

S#83. 포장마차 (밤)

연주 (앉으며) 아저씨, 여기 소주부터 주시구요. 안주 대강 주세요. 

민수 그런 와중에도 연주를 귀엽다는 듯 보면서 조용히 앉는다. 

연주 어디, 한번 들어보죠. 
민수 내가 그날... 

이때 소주와 잔을 내주는 주인. 

민수 (잔을 놓으며) 그날 내가 연주씰 그런 데 데리고 간 거는... 
(소주병 집으려 하면) 
연주 (먼저 집어 자기잔에 따르며) 됐어요. 계속 하세요. (자기 잔에만 따르고 이내 마시는 것.)
민수 그 건 분명히 경솔했고, 잘못했어요. 그런데 연주씰 얕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아무런 감정없이 그냥 어떻게 한번 해볼려
고 그런 것도 아니에요. 
(연주의 빈잔에 따라주고, 자기 빈잔도 채우며) 이런 말, 실은 
좀 쑥스러운데, 솔직히 말하면, 연주씨가 정말 맘에 들어서, 
어떻게 하면 빨리 연주씨하고 친해질까, 빨리 확실한 남자친
구가 되고 싶은 욕심에, 성급하게 그런 실수를 저지른 거예
요. 이 것만큼은 믿어 줘야 되요. 

아무런 대꾸도 없이, 
믿는 기색도 없이 깡소주를 마시는 연주. 

민수 (안절부절) 아저씨, 여기 안주 아무 거나 좀 빨리 주세요. 
(따라주며, 걱정이 되어) 천천히 조금씩 들어요. 
연주 그런 식으로 하면 빨리 친해진다고 생각하나보죠? 
민수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제 말은...
연주 그럼 그런 스타일의 여자를 만나세요.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여자. 그럼 되잖아요. (술 마시려 하면) 
민수 (술잔 잡으며) 아이, 왜 그래요? (연주 잡은 손 쳐다보자, 얼
른 떼며) 내가 그날 얼마나 후회를 했는데요. 지금도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다시 돌이키고 싶은 심정 뿐이고, 부끄러워 죽겠어요.
정말이에요. 아니면, 내가 지금 여기까지 왜 왔겠어요?

연주 반응 없이 소주만 마신다. 

민수 저기, 내 말을 당장 못 믿는 건 좋아요. 하지만 기회를 좀 줘요. 믿을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연주 자기 잔에 따르고 술병 놓으면, 
민수도 얘기 더 하려다 말고 
그냥 소주를 마신다. 
민수 술 따라 연거퍼 마신다. 
연주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민수 한동안 말이 없자, 
연주 힐끔 민수를 본다. 

민수 (다소 절망한, 아까와는 다르게 차분해지며) 연주씨. (사이) 
연주씨를 좋아하는 마음이 없다면, 나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
지 않아요. 연주씰 몇 번 안 봤지만, 내가 원하는 여자라는 
느낌이 왔어요. 우리 정식으로 다시 시작합시다. 
그만 화 풀고 용서해요. 
연주 (비아냥거리는) 그래요. 그 마음 잘 알았어요. 그럼 됐죠? (핸드백 챙기며) 그만 가볼게요. 
민수 (붙들며, 정색하며 심각한) 연주씨. 정말 왜 이래요?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날 그렇게 못 믿어요? 어떻게 하면 그날 
일 용서하겠어요? 무릎이라도 끓고 빌까요? 
연주 (잠시 후, 나직이) 네. 꿇어봐요. 
민수 (다소 곤란한) 네? 아니, 못할 건 없어요. 근데 정말 그러면 용서가 되겠어요? 

말이 없는 연주. 

민수 좋아요. 

민수 의자를 밀고 맨바닥에 꿇어앉는다. 
사람들 쳐다본다. 연주도 막상 난처하다. 
하지만 모르는 척 그냥 두는 연주. 
꿇어앉은 민수, 꾹 참는 듯 
눈을 한번 감았다 뜨더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민수 난 연주씰 이대로 놓치고 싶지 않아요. 연주씨한테 좋은 남
자가 될 자신도 있고,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고 싶어요. 
다시는 연주씨 허락 없이는 엉뚱한 생각이나 행동, 하지 않
겠다고 약속할게요. 우리 다시 시작합시다. 네? 

민수를 내려다보는 연주. 
둘 눈이 마주친다. 
이내 차갑게 고개 돌리는 연주.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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