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사랑] 05
S# 1 정류장 근처 큰길 옆 골목 (밤)
커다란 나무. 무수히 비를 맞는 나뭇잎들. 그 아래.
빗방울이 부딪치는 우산. 우산 속에서 키스를 하고 있는 민수와 연주.
이때 나타나는 자전거 한 대. 우비를 입은 사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연주 얼른 떨어져 서고, 둘 계면쩍게 다른 곳 본다.
민 수 (머쓱해서, 농담) 아이, 자식... 눈치도 없이... (그러면서 연주를 보면)
연주 눈이 마주치자, 잠시 머쓱한데
연 주 아직 하라고 하지 않았잖아.
민 수 그랬어? 난 눈빛으로 하라고 한 줄 알았는데?
연 주 다음부턴... 허락 받고 해.
민 수 (능청) 아이, 그런 걸 어떻게 말로 하니.
연 주 (얼른 자기 우산 펴고 나오며) 얼른 가!
민 수 알았어.
그러다가 쳐다보는 민수. 연주도 물끄러미 쳐다본다.
민 수 가기 싫은데...
연 주 얼른.
민 수 화났어?
연 주 ......
민 수 갈게.
민수 돌아선다. 연주 보고있다.
민 수 (몇 걸음 가다가 돌아보며, 큰 소리로) 보고 싶을 거야!
이내 쑥스러운 듯 달려가는 민수.
연주 돌아선다. 소리 없이 얼굴에 살풋 웃음기 인다.
두 개의 우산이 멀어진다. 걸어오던 연주가 돌아본다.
민수가 골목 밖으로 사라지자 다시 되돌아오는 연주.
와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무를 올려다본다.
S# 2 연립주택 골목 (밤)
우산을 받고 걸어 올라오는 연주.
문득 멈춰 서더니 우산 속에서 혼자 미소가 떠오른다.
이내 그대로 연립주택을 향해 달려간다.
S# 3 택시 안 (밤)
혼자 히죽히죽 웃는 민수.
택시기사가 자꾸만 백미러로 본다.
기 사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봐요?
민 수 네? 아, 예...
민수 창 밖을 향해 무표정하게 고개 돌린다.
이내 다시 연신 싱글벙글 웃음이 나오는 민수.
S# 4 옥상 (밤)
뛰어올라온 연주. 숨이 찬 듯 가쁜 숨을 쉬며 그 자리에 선다.
우산을 옆으로 내리는 연주. 얼굴에 쏟아지는 빗방울.
그대로 하늘을 향해 비를 맞으며 입을 꼭 다물고 웃는 연주.
잠시 후 문이 빼꼼히 열리면서 정애의 얼굴 나타난다.
정 애 (의아해서) 야... 너 거기 왜 그러고 있어?
연 주 (쳐다보지 않고 눈감고) 그냥... 비 맞고 싶어서.
연주 뒤로 정애의 표정, 묘하게 보며 웃는 것이 보인다.
S# 5 오피스텔 (밤)
빗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누워있는 민수. 심각한 표정.
문득 전화기를 들었다 그냥 내려놓는다.
S# 6 연주집 (밤)
비가 흐르는 창. 자고 있는 정애가 보이고,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못 이루고 있는 연주. 역시 심각해진 표정. (F.O)
S# 7 오피스텔 (아침)
창틀로 빗물이 똑똑 떨어지고, 맑게 개어있는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커튼을 여는 민수. 문득 어제의 생각이 스친다.
혼자 미소 짓고는 돌아서는 민수.
커피를 뽑아 따른다. 이때 초인종이 울린다.
민수 커피를 놓고 나간다.
S# 8 오피스텔 문 앞 (아침)
민수 문을 열면 희정이 서있다.
민 수 아침부터 웬일이냐?
희 정 (무뚝뚝하게) 카메라 찾으러 왔어.
S# 9 오피스텔 (아침)
민수 들어와 침대 쪽으로 가 카메라를 꺼낸다.
희정, 막상 들어와서는 따라놓은 민수의 커피를 마시며 테이블에 걸터앉는다.
민 수 여자가 좀 예쁘게 앉아봐라.
희 정 (물끄러미 보다가 시선 돌리며) 날 그렇게 잡으라고 했건만...
민 수 (어이없어) 뭘 임마, 널 잡어?
희 정 그럼 내가 오빨 잡아줄까? 자존심 쪼끔만 버리면 되는데.
민 수 (기분 나쁜 표정, 카메라 주며) 빨리 가지고 가라.
희 정 만약에 내가 오빨 잡으면, 따라올래?
민 수 (참고) 헷소리하지마. 넌 자식아, 기태 동생이고...
희 정 (말 자르며) 누구야? 호텔에서 차에 태우고 갔다는 여자?
민 수 (그제야 왜 왔는지 알겠다는 듯) 그게 궁금해서 왔냐? (자기
커피 따른다.)
희 정 좋아해? (얼른) 아니, 어떤 애야?
민 수 그건 니가 알아서 뭐 하려구?
희 정 나한텐 오빠가 원하는 거 다 있잖아. 그 여자도 오빠가
원하는 거 다 있어?
민 수 (민감하게 본다.)
희 정 있다고 쳐. 있다고 쳐도,
민 수 (말 끊는) 집어 쳐.
희 정 (딱딱하지 않게) 내가 훨 낫다는 얘길 해주고 싶어서 그래.
난 오빨 다 알잖아. 오빤 내 앞에서 차 끌고 나와 폼잡을
필요도 없고, 얼마나 좋아? (다소 씁쓸하게) 그리고 난
오빠가, 나보다 나한테 딸린 장식품을 더 좋아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아. 상관 안해. 그 여잔 아마 안 그럴걸?
얼마나 유리해? 내가 더 쉽지 않아?
민 수 시끄러. 학교나 가라. 가, 빨리!
희정 속상한 표정으로 카메라가방 들고 나가려다가 멈춰서며,
희 정 (야속하다는 듯) 오빤 내가 싫어?
민 수 (현관으로 나가며) 니가 싫긴 왜 싫어.
희 정 (민수를 와락 끌어안으며) 난 좋은데...
당혹한 민수의 표정.
민 수 (아주 곤란한) 야... 넌 기태 동생이니까 내 동생이야. 놔라 좀.
희 정 (팔 풀지 않고) 오빤 내가 이렇게 하면 이상하지 않아?
민 수 (불편한 표정, 떼어내며) 하나도 안 이상해. 놔! 난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왜 나한테 이러냐?
희 정 (슬픈) 나도 그게 이해가 안돼. 그러니까 이러지.
민 수 (설득, 달래듯 나직이) 우린 안돼. 알지? 가라. (문 여는데)
희 정 (강하지 않게, 감정 실어) 오빤 나 말고 다른 여자 못 만나.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희정 나간다. 민수 뚱하니 본다.
S# 10 공장, 락커룸 세면대 앞 (아침)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여공들. 세면대에 모여 수근거리며 얘기하고 있다.
여 공2 걔가 글쎄 어떤 남자랑 외제차를 딱 타고 가더래니까.
여 공1 외제차!? 진짜야?
여 공3 남잔 어떻게 생겼디?
여 공2 몰라, 자세히는 못 봤어.
여 공1 혹시 불륜 아닐까? 왜 그냥 갔지? 돈 많은 유부남이랑 사귀나?
여 공2 그런 것 같진 않던데...?
문득 보면 연주와 정애가 옷 갈아입고 나온다.
여공들 뿔뿔히 흩어지면서,
여 공2 (궁금한) 너 그 사람 누구야? 사귀는 남자니?
연 주 뭐? 뭔 소리야?
여 공2 저번에 양평에서. 보기 좋던데? 근사한 차까지 타고.
연 주 (뜨끔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은) 니가 알아서 뭐 할려구?
여 공2 아니 뭐... 그냥.
연 주 웃겨. (나간다.)
S# 11 공장, 락커룸 밖 복도 (아침)
연주를 따라나오는 정애.
정 애 (걱정스럽게) 무슨 얘기야? 언제 민수씨랑 같이 있다가
쟤들한테 들켰냐?
연 주 부딪칠 뻔했는데 먼저 나왔어. 근데 쟤가 본 모양이네?
정 애 (한숨) 아휴, 조심해, 야! 안전수칙 1호. 절대로 쟤네들
다닐만한 촌스러운 데는 가지 않는다! 알았지? 그러다 정말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휴...
연주 혼자 생각이 스치는지 미소를 머금는다.
정 애 (보고, 이상하다는 듯 툭 치며) 너. 무슨 일 있었지?
연 주 아니.
정 애 이상해. 좀 달라졌다? 너 그 사람 좋아하지?
연 주 (펄쩍 뛰며 돌아서서 옷 입는) 아니.
정 애 기집애, 역시 돈이 좋긴 좋을 거다.
연 주 (정색하며) 아니야. 그런 거...
정 애 아니긴 뭐가 아니냐? 좀 솔직해봐라.
연 주 아니라니까! (얼른 걸음 빨리 한다.)
히죽 웃는 정애. 따라간다.
S# 12 기태부 사무실 (낮)
테이블에는 방대한 서류가 놓여있고, 기태부와 기태가 앉아있다.
기 태 (기태부 앞에 이력서를 내놓으며) 진우가 소개한 사람인데요,
대학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했구요, 특급호텔 경력만 4년이
넘는 친구예요.
기태부 (이력서 보지도 않고) 너 왜 쓸데없이 사람은 만나고
그러니? 시키지도 않는 짓을 왜 해?
기 태 (주춤하며) 사람은 괜찮아요. 실력도 있고...
기태부 (호통치며) 한번 봐서 사람을 어떻게 알아? 민수 시키면
되지, 왜 괜히 일을 만들어서 하느냐고 그래? 복잡하게!
기 태 (주눅 들며) 아니요, 그게 아니라... 민수 그 자식 아직
생각이 복잡해요.
기태부 그럼 소속감이 없는데 생각이 복잡하지 단순할 리가 있겠어?
니가 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민수가 어디가 어때서
그래? 니 친구고, 잘 하고 있는데, 뭐 하러 엉뚱한 놈을 데려와?
기 태 (쩔쩔매며) 네, 알았어요.
이력서를 슬그머니 집어넣으며 일어서는 기태.
S# 13 관리사무실 (낮)
민수, 미스오와 쭈쭈바를 먹으며 농담 따먹기를 하고있다.
들어오는 기태. 자기 방으로 향하다가 문득 멈춰서서 민수의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민 수 그래서 첫 키스는 언제 했니?
미스오 (펄쩍 뛰며) 어머, 그런 건 왜 물어요?
민 수 왜 어때? 너 아직 키스 못해봤구나?
미스오 (곤란하면서도) 해보기야 해봤죠...
민 수 정말?
미스오 그럼요.
민 수 언제 했는데?
미스오 고... 3 겨울방학 때요.
민 수 그렇게 빨리 했어?
미스오 그거 빠른 거 아니에요.
민 수 그래? 그래서 아직도 만나?
안쓰럽다는 듯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기태의 표정.
미스오 (문득 기태를 보고 인사하는) 어머, 오셨어요?
민 수 (돌아보며) 언제 내려왔냐?
기 태 방금. (자기 방으로 향하며) 참, 갔다왔냐?
민 수 (기태를 따라가며) 응. 자식들, 노래방이라 그러더니
단란주점을 할 모양이더라구...
S# 14 기태 사무실 (낮)
기태를 따라 들어오는 민수.
민 수 (들어오며) 나갈 때는 인테리어 원상복구 해놓고 나가기로
했고, 내일부터 공사 들어간다 그래서, 주말하고 밤에만
하라고 그랬어.
기 태 (이력서 책상서랍에 넣으며) 그래, 수고했다. (문득 보며 표정
살피는) 민수 너, 제주도에 내려가고 싶니?
민 수 (놀라며) 왜? (얼른) 나야 뭐... 니가 가면 같이 내려가는 거 아닌가...?
기 태 언제 아버지하고 무슨 말 있었니?
민 수 왜? 뭐라고 하셔?
기 태 아니. 오늘 우리 저녁때 술이나 한잔할까?
민 수 (의아해서 보며) 우리 둘이?
기 태 응.
민 수 갑자기 왜?
기 태 그냥. 왜, 뭐 다른 약속 있냐?
민 수 (영문을 몰라 쳐다보며) 아니...
기태 시선 피하며 노트북을 켜고, 기태를 보는 민수. 의아한 표정.
S# 15 공장, 식당 (낮)
동식, 식판을 내려놓으며 연주와 정애 맞은 편에 앉는다.
동 식 (앉으며) 안녕!
옆 테이블의 여공2, 힐끔 보며 찝찝하게 얼굴을 구긴다.
연주 무시하고 눈길 주지 않고 밥만 먹는데,
동 식 (신바람 나서) 연주야, 정애한테 얘기했냐?
연 주 뭘요?
동 식 우리 화진포 놀러가기로 했잖냐. 차는 빌리기로 다 얘기 됐거든.
순간 주변의 시선들이 좍 모인다.
연 주 (의식하며) 우리가 언제 놀러 가기로 했어요? 이상한
사람이야 정말. (식판 들고 가버린다.)
동식 뚱하니 돌아보는데,
정 애 (식판 들고 일어서며, 안됐다는 듯) 오빤 다 좋은데, 오바가 좀 심해. (간다.)
쳐다보는 동식. 이때 식판을 들고 나오는 여공2.
여 공2 (속상한) 왜 그렇게 오빤 눈치가 없어? 연주 사귀는 남자
있는 거 몰라요?
동 식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여 공2 우리 양평 놀러갔을 때, 연주 거기 놀러왔었어요. 어떤
남자랑 외제차 타고.
동 식 니가 어떻게 알아?
여 공2 제가 봤으니까요. 둘이 퍽 친한가 보던데요? (간다.)
동식 식판 놔두고 뛰쳐나간다. 더 속상한 표정으로 동식을 보는 여공2.
S# 16 공장, 식당 밖 야외 길 (낮)
달려나온 동식, 정애와 함께 가는 연주를 쫓아가 잡는다.
동 식 너 잠깐 나 좀 보자.
연 주 깜짝이야. 왜요?
동 식 (연주의 손목을 잡아끌고 가며) 잠깐 일루 와!
연 주 어머, 왜 이래요?
정 애 (말리며) 왜 이러세요?
동 식 (정애에게) 넌 빠져! 상관없는 일이야. (끌고 간다.)
연 주 (끌려가며) 어머, 미쳤나봐. 정애야! 정애야...
동 식 안 잡아먹어. 따라와!
정애 삐죽거리며 어쩔 수 없이 섰다가 다시 살금살금 따라간다.
S# 17 공장, 건물 뒤켠 (낮)
자재들 쌓여있는 으슥한 구석으로 연주를 끌고 와 놓는 동식.
연 주 (아파하면서 노려보는) 이게 무슨 짓이에요? 이런다고 내가
같이 놀러갈 줄 알아요?
동 식 (허리에 손 올리고, 열 받아) 너 사귀는 남자 있다는 거, 사실이야?
연 주 (찔끔하며) 오빠가... 무슨 상관...이에요?
동 식 (정색하며 소리지르는) 상관있으니까 묻지! 만나는 남자
있어? 없어?!
연 주 (문득 겁이 나며) 왜... 이러세요...?
이때 멀리 모퉁이에 정애의 모습이 나타난다. 몰래 연주를 지켜보고 있는 것.
연 주 (정애를 보고는 의기양양해지며) 네, 있어요! 그러니까
저한테서 관심 끊어주세요.
동 식 뭐? 너 다른 남자 못 만난다.
연 주 어머머머, 별꼴이야.
동 식 너 다른 남자 만나고 그러면, 나 미쳐!
연 주 아이, 미쳐요! 미치거나 말거나? (가려는데)
동 식 (잡는) 너 진짜 이럴래? 나 미치는 거 정말 보고 싶어?
연 주 왜 이래요? 오빤 내 이상형이 아니에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거 몰라요? 나하곤 상대가 안 된다구요! (뿌리치고 가버린다.)
동 식 (충격 먹고 할말 잃으며) 뭐? 상대가 안돼...?
연 주 (가면서) 주제파악을 해야지...
허탈하게 서있는 동식. 연주 사라지고, 정애 동식의 모습을 보더니 사라진다.
S# 18 술집 룸 (밤)
민수에게 술을 따라주는 기태. 민수는 다소 긴장해있다.
기 태 우리 둘이만 술 마셔본 건 참 오랜만인 거 같다.
민 수 진짜. 그렇네?
기 태 너 왜 나보고 먼저 술 마시잔 소리 안하냐?
민 수 그랬나?
기 태 고등학교 때 너 때문에 술 배웠는데... (술잔 들며) 자!
오늘은 차 잊어버리고 마셔.
민 수 그래.
둘 마시고 잔 내려놓는다.
민 수 (기태에게 따르며) 근데, 갑자기 무슨 일 있냐?
기 태 임마, 친구랑 술 마시는데 꼭 무슨 일 있어야 되냐?
민 수 아니, 그건 아니지만...
기 태 (민수 잔에 따르며) 너 가끔 전에 일하던 친구랑은 술
마시지?
민 수 (약간 찔리는) 어? 어... 자주는 못 마시지.
기 태 나보고도 술 마시자고 해. 실은 그날 좀 섭섭했다.
민 수 그랬어? 미안하다. 그냥 난, 니가 항상 바쁘구 그래서 귀찮아 할까봐...
기 태 귀찮아한다구? 내가 널?
민 수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기 태 넌 내 친구야, 임마. 자꾸 멀리하면 섭섭하다.
민 수 멀리하긴... 자식.
하지만 민수는 기태의 부드러움이 더 긴장된다.
기 태 자, 마시자.
민 수 그래.
마시는 기태를 보며 술 마시는 민수.
S# 19 연주집 (밤)
정애 엎드려 누워있고, 연주 정애의 허리를 주물러 주고 있다.
정 애 아휴, 좀 살 거 같다.
연 주 그럼 생리휴가 내지 그랬어. 달달마다 이래 가지구 어떡하냐...?
정 애 그래도 여긴 얼마나 천국인데. 너 질퍽질퍽한데서 하루종일
무거운 장화신고 먼지 마시면서 일해봤어?
연 주 아니.
정 애 (아파하며) 아! 거긴 아퍼. 살살해.
연 주 옛날에 너 있던 데 거긴 되게 힘들었나봐?
정 애 거긴 퇴근하고 오면 허리, 어깨, 팔뚝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야. 게다가 겨울엔 냉동고, 여름엔 찜질방이 따로 없지. 아,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거기 있다 여기 오니까, 천국인 거
있지. 화장품 다루니까 깨끗하지, 공기 좋지, 공기가 뭐야?
향기지. 이제 다른 덴 못 갈 거 같애. 됐어. 이제 그만해. 너 팔 아퍼. (일어나 앉는다.)
연 주 괜찮은데... (하면서 손아귀 아픈지 주무른다.)
정 애 (갑자기 히죽 웃더니 생각난) 야, 기태씨가 뭐라 그랬는 줄 알아?
연 주 뭐라 그랬는데?
정 애 나보고 학교 때려치우고 아예 제주도로 같이 내려가재.
연 주 그래서? 공장 때려 칠 거야?
정 애 아니,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넌 무슨 말 없어?
연 주 무슨 말?
정 애 미래에 대한 얘기 말이야.
연 주 미래?
정 애 그래. 이 바보야. 어딜 같이 가자든가, 뭘 같이 하자든가,
그런 거 말이야.
연 주 아니.
정 애 그래? 그럼 넌 좀 두고 봐야겠다. (혼자 희희낙낙)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정 애 (받으러 가며 화득 짝 좋아서) 눈치도 빠르다, 야. 또
얘기했더니 금방 전화 오네. 여보세요? (실망) 네, 잠깐만요.
(전화기 주며, 떨떠름한) 자!
연 주 누군데? 여보세요? (정애 눈치보며 반겨하지 못하는) 소영이니?
S# 20 캠퍼스 주차장, 차안 (밤)
소 영 (핸드폰, 걱정 급하게) 연주야, 너 지금 잠깐 시간 좀 낼 수 있니?
연 주 (E) 왜?
소 영 어떡하니? 나 큰일났어.
S# 21 연주집 (밤)
연 주 무슨 일인데 그래?
소 영 (E) 만나서 얘기해야 돼. 잠깐 나올래?
연 주 지금은 안돼. 야근하고 방금 왔거든. 피곤하고 아직 씻지도 못했어.
정애 괜히 관심이 있게 힐끔힐끔 본다.
S# 22 캠퍼스 주차장, 차안 (밤)
소 영 그래...? 그럼 어떡하지?
연 주 (E. 흥분) 왜? 경철씨가 뭐 또 딴소리하니? 병원에 가재?
소 영 (옆자리의 경철을 보며) 아니...
S# 23 연주집 (밤)
연 주 그럼 왜? 혹시 집에 임신한 거 들켰어?
문득 눈이 동그래지며 쳐다보는 정애. 연주 순간 찔끔해서 정애에게 등 돌린다.
소 영 (E) 아니. 그런 건 아니구... 그럼 내일은 몇 시에 끝나? 토요일이잖아.
연 주 1시.
소 영 (E) 그럼 좀 나올래?
연 주 그래... 그 카페로 갈게. 끊어. (찜찜하게 끊는) 또 왜 그러지?
정 애 (궁금해서) 왜에...? 소영이 걔 임신했니?
연 주 (뚱하니 쳐다본다.)
정 애 같이 병원에 가재?
연 주 넌 몰라도 돼!
정 애 (삐쭉대며) 치. 얌전한 고양이가 씽크대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내 이럴 줄 알았어. 어떡하냐? 잘난 친구 덕에 처녀가 졸지에 산부인과 구경하게 생겼다?
연 주 (눈흘기며 쏘아붙이는) 산부인과에 갈지 안갈지 니가 어떻게 아니?
정애 찔끔하면서도 고소해한다.
S# 24 술집 룸 (밤)
기태와 민수 제법 취했다. 민수는 더 긴장해있다.
기 태 (술잔 만지작거리며) 민수야, 너 나랑 지내는 거 어떠냐?
민 수 (조심스럽게 눈치보듯) 갑자기 그런 건... 왜...?
기태 대답이 없다. 민수 더 긴장한다.
기 태 (쑥스럽기도 하고) 난 너 정말 좋아하거든. 너랑 있으면 아무
부담 없고, 편하고 좋아. 너도 좋은지 어떤지 몰라서.
민 수 (갑자기 확 풀어지며) 아이, 자식. 싱겁긴. 갑자기 왜 그래, 임마!
기 태 아니야. 정말이야. 민수 니가 늘 내 옆에 있어서 참 좋아.
민 수 새삼스럽게 왜 그러냐...
기 태 넌 다른 애들 하곤 달라. 그렇지?
민 수 (갑자기 또 긴장) 뭐가...?
기 태 돈이나 뭐 다른 거 때문에 내 옆에 있는 거 아니지?
민 수 (당황. 선뜻 대답을 못하고 쳐다볼 뿐) .....
기 태 난 널 그렇게 믿고 싶다. (쓸쓸한 표정, 잠시 후) 아니지?
민 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그럼...!
기 태 맞아, 넌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넌 진짜 친구거든. 내
하나밖에 없는. (술 털어넣는다.)
민 수 아이, 자식. 갑자기 왜 이러냐? 징그럽게.
기 태 (잔 내려놓고) 고맙다. 너까지 다른 놈들처럼 날 그렇게
생각한다면, 난 정말 참기 어려울 거야. 솔직히 내 옆에 너
같은 애가 누가 있었냐? 다들 하나같이 뭐라두 바라는
놈들뿐이었지.
민수 갑자기 기태의 외로운 표정을 바라본다.
기태 테이블 너머로 갑자기 팔을 뻗어 민수의 손을 꽉 움켜잡는다.
기 태 고맙다, 민수야.
똑같은 반지를 낀 둘의 포개어진 손.
손을 잡힌 민수의 표정. 기태의 친근함이 민수에게는 섬짓하게 느껴지는 것.
점점 더 혼란스러운 감정과 옥죄어드는 느낌.
기 태 우리말이야, 옛날에 참 좋았지?
민 수 응.
기 태 앞으로도 우리 그때처럼 지내자.
민 수 그래...
기 태 솔직히 나, 너 없인 안돼. 혼자 있다는 게 상상이 안돼... 너
내 옆에 있어야 된다. 꼭?
민 수 (멍하니 보며) 그럼.
기 태 우리 죽을 때까지 가는 거야. 죽을 때까지!
민 수 (멍하니 미소지으며 되뇌이는) 그래... 죽을 때까지...
S# 25 기태집 앞, 차안 (밤)
도착하는 외제차. 대리운전수가 운전을 하고 왔고, 기태와 민수는 뒷자리에 앉아있다.
민 수 (운전수에게 돈을 주는) 수고했어요.
운전수 내리고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만취한 기태를 부축해서 나오는 민수.
민 수 내려야지, 기태야. 다 왔어. 집에 들어가야지. (대문으로 가 초인종 누른다.)
기 태 어, 그래. 그래... (흐뭇하게 보며 웃는다)
민 수 (문득 보며 같이 웃어준다.)
기 태 봐라. 오늘도 니가 내 옆에 있으니까 좋지 않니.
민 수 (씁쓸하게) 그래... (이때 자동문 열리면) 들어가.
기 태 (들어가며) 잘 가라...
돌아서는 민수 찝찝한 표정이 된다.
대 저택들 사이 골목길을 씁쓸하게 걸어 내려가는 민수.
문득 멈춰 서더니 생각에 빠진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거는 민수.
S# 26 연주집 (밤)
자려고 누워있던 정애와 연주.
전화벨이 울리자, 정애 불을 켜고, 연주 받는다.
연 주 (받으며) 여보세요?
S# 27 기태 집 근처 골목길 (밤)
민 수 (취한, 벽에 기대어 핸드폰) 연주씨, 나야. 민수.
연 주 (E) 이 시각에 웬일이야?
민 수 (쓸쓸한) 미안해, 밤늦게. 갑자기 생각이 나서... 되게 보고 싶다...!
S# 28 연주집 (밤)
연 주 (문득 짜릿한 기분이 들지만) 그럼 안됐네? 못 봐서...
실망한 정애 다시 눕는 것이 보인다.
민 수 (E. 허탈한 기분) 지금 잠깐 보면 안될까...?
연 주 미쳤어. 지금이 몇 신데...
S# 29 기태 집 근처 골목길 (밤)
민 수 내가 그쪽으로 갈게. 우리 헤어졌던 데로 잠깐만 나와.
S# 30 연주집 (밤)
연 주 (놀라며 일어나 앉는) 안돼. 이 시각에 어딜 와?
민 수 (E. 외로운) 오늘은 꼭 좀 봤으면 좋겠어.
연 주 (문득 심각해지며) 왜 그래? 술 마셨어?
S# 31 기태 집 근처 골목길 (밤)
민 수 (쓸쓸한 표정으로) 음. 실은 오늘 기분 엄청 좋았어. 술
마시는데 무척 보고 싶더라... 잠깐이면 돼. 나올 거지?
S# 32 연주집 (밤)
연 주 (심각하게) 알았어... (전화 끊고 한동안 그대로 가만히 있는다.)
정 애 (일어나 보며) 왜? 온데?
연 주 으응...
연주 그제야 갑자기 일어나 거울을 본다.
연 주 (서둘러 시계 보며 옷을 걸치는, 혼잣말) 가만 있어봐. 버스 끊겼을까...
정 애 (덩달아 일어나 지갑 챙겨주며 호들갑) 택시 타고 가야 돼.
이게 웬 오밤중에 날도깨비 같은 일이니... (나가는 연주에게) 조심해!
S# 33 달리는 택시 안 (밤)
창 밖을 보고 있는 연주.
초조한 듯 시계를 본다. 설레임과 심각한 상기된 표정.
S# 34 나무가 있는 골목 입구 (밤)
연주, 골목 입구까지 달려와 빼꼼히 골목안을 보면,
골목 안, 나무 아래 담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민수가 보인다.
연주 어쩔까 잠시 망설이다 다시 돌아 달려나간다.
S# 35 다른 골목과 골목들 (밤)
연주 골목길을 달려 모퉁이를 돌고,
죽 달려가 또 모퉁이를 돈다.
S# 36 나무가 있는 골목 (밤)
연주, 골목 윗길에서 숨을 고르며 내려온다.
민수 나타난 연주를 보고 담배를 끈다.
연주, 문득 쓸쓸하게 웃어 보이는 민수를 보며 다가온다.
연 주 갑자기 무슨 일이야? 12시도 넘었는데?
민 수 (미소지으며) 미안해.
연 주 (그러다 걱정 근처 세워진 차들 보며) 혹시 차 몰고 온 거 아니지?
민 수 그럼. 음주운전 하면 안되지...
민수 양손을 주머니에 꽂고 행복한 듯이 연주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연 주 (경계하며) 왜 이래?
민 수 맞아. 이 얼굴이야. 술 마시는데 갑자기 얼굴이 생각 안 나잖아.
연 주 (시선 돌리며, 머쓱해서) 나한테 함부로 반하고 그러지 마...
민 수 (웃고는, 다른 곳 보며 마치 자신 없는 말투) 그래, 너한테
반하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연 주 (물끄러미 민수를 본다.)
민 수 (덮썩 안으며) 어떡하냐, 연주야. 나 좀 살려주라...
연 주 (빠져나가려고) 어머, 왜 이래?
민 수 (안고서 흔들흔들, 한숨) 이미 반한 거 같애. 어떡하냐...
연주 가만히 둔다. 이상한 기분.
연 주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민 수 아니. (놓고는 얼굴 보며) 아니... (얼굴 들여다보는) 나 너
좋아해도 되니?
연 주 (보다가 시선 피할 뿐) .....
민 수 좋아해도 되지?
연 주 (머슥해서) 왜 그래...?
민 수 (혼자 웃고는, 씁쓸하게) 나 미친놈 같지? 병났나봐.
연 주 (시선 피하며 떨어져 서는) 맞아. 정상은... 아니야.
민 수 (웃고는, 어리광처럼) 나 내일 되면 니 얼굴 또 잊어버릴 거
같은데...?
연 주 (그제야 미소, 수줍게 말꼬리 흐리며) 그럼 한번 보여주지, 뭐...
민 수 (귀엽다는 듯 보며) 어디서 보여줄 건데?
연 주 (눈을 못 마추며) 글쎄... (밀어내며) 자꾸 쳐다보지 마.
민 수 (다시 보며) 1시에 올리버에서.
연 주 안돼. 5시에 올리버에서!
민 수 알았어. (미소 지으며) 고마워. 오늘 나와줘서.
연주 다시 민수를 쓸쓸하게 쳐다본다.
민 수 갈게. 들어가.
연 주 먼저 가.
민수 미소 짓고는 돌아서서 걸어간다.
쓸쓸한 민수의 뒷모습. 연주 바라보고 있다.
민수가 사라지자, 보고 있던 연주의 얼굴이 굳어진다.
연 주 (당혹감이 밀려드는, 중얼거리는)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F.O)
S# 37 기태방 (아침)
기태 욕실에서 씻고 나오는데,
기태모 (옷장에서 양복을 고르며) 웬 술을 그렇게 마셨어? 오늘
중요한 약속 있는데. (양복보며) 왜 다 색이 이러니?
기 태 놔두세요. 제가 골라 입을게요.
기태모 (한 벌을 꺼내며) 이게 저번에 민수가 찾아온 거야?
기 태 네.
기태모 (기태에게 대보더니 다시 넣으며) 아휴, 이것도 안되겠네.
기 태 그냥 놔두세요. 아무거나 입죠, 뭐.
기태모 (다시 고르며) 아무거나라니? 윤경이 걔가 뉴욕에서 공부하고 와서 눈이 높아.
기 태 (어리광) 그래요? 그럼 새로 한 벌 사주시든가요.
기태모 (눈 흘기며 웃는) 아이구? (옷 대보며) 참, 행여나 오늘
선보는 자리에 민수 데리고 나오지 마라.
기 태 그럼, 운전은 누가 하구요?
기태모 니가 하면 되잖아. 오늘 아예 출근하지 말라고 전화해.
기 태 알았어요.
S# 38 오피스텔 (아침)
민수 외출준비를 끝내고 막 나가려고 하는데, 전화가 온다.
민 수 여보세요.
S# 39 달리는 차 안 (아침)
기 태 (운전하면서 핸드폰) 민수니? 난데, 어제 잘 들어갔니?
S# 40 오피스텔 (아침)
민 수 응. 넌 그렇게 마시고 속 괜찮아?
S# 41 달리는 기태 차 안 (아침)
기 태 괜찮아. 참, 오늘 출근하지 말라고 전화했어.
민 수 (E) 왜?
기 태 아이, 씨, 오늘 선보잖냐. 미치겠다.
S# 42 오피스텔 (아침)
민 수 아, 참. 그렇지.
기 태 (E) 너도 오늘 데이트 하냐?
민 수 어.
S# 43 달리는 기태 차 안 (아침)
기 태 몇 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S# 44 오피스텔 (아침)
민 수 5시.
기 태 (E) 그래? 그럼 그 전에 대치동 빌딩에 좀 들려라. 거기
1층에 자동차 매장 새로 입주했잖아. 나무 하나 괜찮은 걸로
사가지고 가서 내가 보냈다 그러고, 얼굴이나 좀 내밀고 와.
민 수 (떨떠름한 표정) 어, 그래. 알았어.
전화를 끊는 민수. 삐딱하게 웃는다.
S# 45 공장, 휴게실 (낮)
정애와 연주, 아이스크림을 사 가지고 돌아서는데,
막 남자 동료들과 들어온 동식과 마주친다. 순간 세 사람 모두 당황하는데,
연주 쳐다보지 않고 성의없이 고개만 까딱 인사하고,
정 애 (다소 미안한, 눈치보며) 안녕하세요...
동식 굳은 표정으로 시선 피하며 차갑게 지나친다.
연주 피식거리고, 정애는 무색해서, 뚱하니 나온다.
S# 46 공장, 휴게실 밖 로비 (낮)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오는 연주와 정애.
연 주 똥식오빠 왜 저러냐? 웃기지 않니?
정 애 야, 너 좀 심한 거 아니니?
연 주 내가 뭐얼?
정 애 어제 보니까 야, 안됐더라. 너무 그러지 마.
연 주 (찔끔하면서도) 뭐가 안돼? 저 혼자 좋아서 난리친건데?
(생각해보니 열 받는) 너 왜 이래? 언제는 부자 좋다고
만나라며?
정 애 아니, 뭐... 누가 뭐래니? 안됐지만 할 수 없다 이거지... (말
돌리며) 오늘 민수씨 만나면 뭐할 거야?
연 주 (좀 심란한) 글쎄...
정 애 (한숨) 아! 황금 같은 주말인데, 기태씬 오늘 같은 날 뭐
하느라고 바쁘다는 거야?
S# 47 호텔 커피숍 (낮)
테이블 위, 양가 부모들이 마신 빈 잔들을 치워 가는 직원.
기태와 윤경이 선을 보고 있다.
기 태 드디어 우리 둘만 남았네요. 어른들 계셔서 불편했지요?
윤 경 아니에요. 어머님이 아주 개방적이시던데요. 미인이시구요.
기 태 제가 보기엔 윤경씨가 더 미인이신데요.
윤 경 그렇게 봐주시니 고마워요.
기 태 뉴욕에서 디자인을 전공하셨다구요?
윤 경 네. 학교 마치고 디자인 프로모터 일을 좀 하다가 돌아왔어요.
기 태 디자인 프로모터라고 하면... 새로운 디자인이나 아이디어를
고안해서 기업에다 파는 겁니까?
윤 경 네.
기 태 그럼 여기서 벤처창업을 한번 해보시지 그러세요?
윤 경 개별적인 창업은 아직 부담스럽구요, 아버지께서 하시는
사업에 힘을 보태볼려고요.
기 태 (호감을 보이며) 너무 그쪽에만 신경쓰지 마시구요, 저희
호텔 인수하면 이쪽에도 실력발휘를 좀 해주세요.
윤 경 어머, 제가 뭘 알겠어요?
윤경을 유심히 보며 웃는 기태.
S# 48 대학교 캠퍼스, 트럭 안 (낮)
캠퍼스 안으로 들어오는 트럭.
희정과 남자1은 대호 옆에 타있고, 짐칸엔 영화써클 회원들과 기자재가 실려있다.
S# 49 동 캠퍼스 건물 앞 (낮)
트럭에서 기자재를 내리는 회원들. 서로 이름 부르며, 받아! 조심해, 조심해.
등등.
대 호 (둘러보며) 학교 참 좋네요. (수줍게) 오늘 제가 잘 하기나
했는지 모르겠어요.
희 정 그럼요, 잘하셨죠. 촬영 끝나고 나중에 시사회 때 연락
드릴게요. 아, 그 전에 민수오빠랑 같이 술 한잔해요. 술
좋아하신다면서요?
대 호 아이, 좋죠, 술!
남 자1 (인사하며) 오늘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다 실어다주시고.
대 호 아이, 뭘요.
희 정 (트럭 위에다) 빠뜨린 거 없어?
남 자2 없는데. (트럭에서 뛰어내린다.)
회원들 기자재 들고 사라지며 대호에게 인사한다. 수고하셨습니다, 갑사합니다,
등등.
대 호 (일일히 인사하며) 네. 네. (또 감탄) 학교 정말 좋네!
희 정 (보고 웃으며) 그래요? (악수 청하며) 그럼 다음에 뵈요.
대 호 (악수하며) 네. 또 뭐 언제든지 필요하면 연락주세요.
희 정 네. 그럼, 안녕히 가세요. (건물로 향한다.)
희정과 헤어져 다시 한번 학교를 둘러보며 트럭으로 향하는 대호.
대 호 아, 씨... 학교 드럽게 좋다! (트럭으로 올라간다.)
S# 50 빌딩 1층 자동차 매장 (낮)
배달된 화분의 나무가 보이고,
오픈을 앞두고 자동차들과 매장 곳곳을 청소하고 있는 직원들이 보인다.
영업소장 (민수와 악수를 하며) 아이, 뭘 이런 걸 다 보내주셨어요.
민 수 저희 빌딩에 들어오셨으니까 무궁한 발전 있으시라구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영업소장 (명함을 내밀며) 참, 차 구입하실 분 있으시면, 제가 싸게
해드리겠습니다.
민 수 아, 예. (웃으며 나온다.)
S# 51 빌딩 1층 자동차 매장 밖 (낮)
나오는 민수. 이때 핸드폰이 울린다.
민 수 (받는) 여보세요? 어, 대호구나? 글쎄... 나 약속 있거든. 그
전에 잠깐밖에 시간이 없는데? 어디? 알았어. (끊으며 바삐
간다.) 아이, 자식...
S# 52 마을버스 정류장 근처 (낮)
정애, 연주의 팔장을 끼고 걸어온다. 연주는 생각이 복잡하다.
정 애 그럼 소영이 잠깐 보고 민수씨 만나러 가?
연 주 (딴 생각에 빠져) 응...
정 애 근데 어째 심드렁하냐?
연 주 (심란한) 저기, 민수씨 말이야...
정 애 응?
연 주 내가 여공이라도 날 좋아할까?
정 애 아니. 난 절대 아니라고 봐!
연주 허공을 보며 한숨 쉰다.
연 주 차라리 그 사람... 빌딩 같은 거 없었으면 좋겠어.
정 애 어머, 얘 좀 봐. 너 지금 착각하는 거야. 당장 마음 좀
캥긴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하니? 난 기태씨 호텔 있는 게
백 번 좋아.
눈만 말똥거리는 연주. 다시 한숨을 쉰다.
연 주 아, 괴로워! 나가지 말까?
정 애 얘가 또 왜 이래? 잘해, 기집애야. 민수씨, 생각보다
멋있더라. 한밤중에도 막 달려오고. 너 되게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꽉 잡어!
연 주 (고민하며, 혼잣말처럼) 아니야, 그냥 사실대로 다
말해버릴까봐.
정 애 안돼! 난 어떡하라구? (단호하게) 절대로 안돼!
연 주 말해도 날 좋아하지 않을까?
정 애 너 그건 섣부른 판단이다. 그러다 다 망쳐. 뭘 고민하니?
너도 그 사람 좋아하잖아. 좋아하지?
연 주 (끄덕끄덕)
정 애 이젠 감정대로 따라가. 나중에 뭐라 그러면, 감정 때문에
놓치기 싫어서 사실대로 못 털어놨다 그래. 사랑해서
그랬대는데, 지가 어쩔 거야? 안 그래?
연 주 (버스 오자 타러가며) 아이 모르겠다.
정 애 (소리 지르며) 야, 너 말 안 할 거지? 절대 말하면 안된다!
버스 출발한다. 걱정되는 표정으로 보는 정애.
S# 53 공원 앞 (낮)
달려나오는 민수. 대호 트럭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민 수 아이, 참 자식. 나 약속 있다니까.
대 호 (담배 끄며) 나도 바빠 임마. 밤에 장거리 뚸야 돼.
민 수 그럼 잠이라도 자두지, 뭐 하러 연락했냐?
대 호 왜? 안 반갑냐?
민 수 반갑지. 참, 오늘 영화 촬영은 잘 했냐?
대 호 (심드렁하게) 그럼. 내가 메탈한 트럭 운전수 아니냐.
확실하게 보여줬지.
민 수 근데 왜 심사가 삐딱하냐?
대 호 (기지개 켜며) 아이, 씨... 대학교 첨 들어가 봤는데, 씨발
디게 좋더라. 난 그렇게 좋은지 몰랐다, 야. 거긴 그냥 널린 게 학생이더만.
민 수 촌놈. 학교에 그럼 학생 말고 뭐가 있냐.
대 호 하, 누군 부모 잘 만나서 그런 데 다니는데, 누군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트럭이나 몰고 들어갔으니... 나오는데 기분
참 지랄 같더라.
민 수 (씁쓸하게 동조) 거기 가있으면 좀 그렇지... (정색하며) 실은
나 사귀는 애도 거기 다녀. 사회학과.
대 호 그래? 민방이 그 학교 다니냐?
민 수 야, 자꾸 민방이라고 그러지 마라.
대 호 (앉으며) 그럼 이름을 갈켜 주든가.
민 수 (서서 어슬렁거리며) 연주야. 서연주.
대 호 연주씨? 이름은 뭐 그냥 그렇네.
민 수 (기분 나빠서) 이름이 뭐가 그냥 그래, 임마. 이쁘지.
대 호 자식, 그새 단단히 빠졌나보다?
민 수 아니, 뭐... 빠진 건 아니구...
대 호 말하는 폼이 상당히 진전됐나본데?
민 수 (다른 곳 보며) 진전은 무슨...
S# 54 대학가 카페 (낮)
마주 앉아있는 연주와 소영. 소영은 근심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다.
연 주 무슨 일인데 그래?
소 영 (울쌍) 우리 집 해마다 건강검진 받는 거 있잖아. 그거 받아야 되거든.
연 주 그게 왜? 가서 받으면 되잖아.
소 영 (소근거리며) 건강진단 받으면 임신한 거 들통날 거 아니야.
연 주 아, 그렇지... 바보야, 차라리 잘됐다. 어차피 다 알게 될텐데 뭐?
소 영 안돼. 아버지 친구분이 의사로 계시는 병원이란 말이야.
결혼이라도 하고 나서라면 모를까 지금 알려지면 무슨
망신이니? 연주야, 그러지 말고 니가 나 대신 좀 받아줄래?
연 주 (펄쩍 뛰며) 뭐? 안돼! 어떻게 그런 걸 대신 받니?
소 영 괜찮아. 그냥 같이 검사하러 가서, 이름만 바꿔서 하면 돼.
(손가락으로 가볍게 너 나 가리키며) 나는 니 이름으로 너는 내 이름으로.
연 주 (더 놀라며, 소근거리는) 뭐? 그럼 내가 임신했다고 나올 거 아니야?!
소 영 연주야, 나 좀 살려줘.
연 주 (찝찝한, 짜증) 야, 넌 뭐 그런 일을 시키냐?
소 영 이번 한번만, 응?
연 주 (곤란하다는) 근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돼?
소 영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게.
연 주 (눈 흘기며, 무뚝뚝하게) 으휴, 알았어. 언젠데?
소 영 (좋아하며, 미안한 듯) 다음주 수요일 오전 11시.
연 주 (질색하며) 뭐? 그럼 나더러 휴가까지 내란 말이야? 미치겠네, 정말.
소 영 (두 손을 싹싹 빌며) 한번만 봐줘...
못마땅하다는 듯 한숨 쉬는 연주.
S# 55 공원 (E)
대 호 (벤치에 앉아서) 그 여자도 니가 좋대냐?
민 수 (서성거리며) 모르겠어. 좀 심란하다, 야.
대 호 왜? 무슨 문제 있어?
민 수 문제라기 보단... 내가 무일푼에 거지라는 걸 알면
도망갈지도 몰라. (발로 돌맹이라도 차며) 아이 씨, 항상
그전에 내가 먼저 찼는데...
대 호 자식, 많이 좋아하는 구나? 그럼 그냥 말해버려. 되면 되는
거고, 아니면 그만이지.
민 수 (눈치보며) 근데, 그게 좀 그렇다, 야. (찝찝하게) 만나서
뭐라고 그러냐? 기태네 빌딩이 내 껀 줄 아는데.
대 호 (놀라며) 뭐? 설마, 너 여자 만나서 똥폼 잡고 사기치냐?
민 수 자식, 뭘 또 말을 그렇게 하냐. 어떻게 우연히 그렇게 된
거야.
대 호 당장 얘기해, 임마. 빈털털이라고. 나 실은 가진 게 없다!
그런데 널 사랑한다! 여자들은 사랑한다 그러면 가진 거
없다는 말은 금방 까먹을 수도 있어.
민 수 그게 임마, 잠시 까먹을 수는 있지만 영원히 까먹기야 하겠냐.
대 호 물론 있는 놈들한테 우리가 좀 밀리기는 하지. 하지만 못할
짓은 제발 하지마라. 혹시 아냐? 그 여자가 널 진짜로
좋아해서 감동 딱 먹고 널 더 예뻐해줄지?
민 수 (시계보며) 나, 그만 일어나야겠다.
대 호 그래. 가봐라... 난 여기서 잠이나 좀 때리지 뭐.
민 수 잠깐이라도 어디 편한 데 가서 눈 붙여라. 밤 운전할려면.
대 호 너나 잘해 임마. 괜히 여자 울리면 벌 받어. 차라리 채이는 게 낫지.
민 수 알았어. 간다...
민수 착잡하게 걸어간다. 대호 민수를 보다가 길게 드러눕는다.
S# 56 1층 카페 (E)
연주 혼자 앉아있다. 심란하고 고민스러운 표정.
S# 57 카페 밖 (E)
걸어오던 민수, 창안으로 보이는 연주를 발견한다.
잠시 멈춰 서더니 착잡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S# 58 1층 카페 (E)
들어와 앉는 민수.
민 수 많이 기다렸어?
연 주 방금 왔어.
둘 앉아 잠시 말이 없는데, 이때 종업원이 온다.
메뉴를 보는 두 사람. 얼른 고르지 못한다.
민 수 (동시에) 뭘 마신다?
연 주 (동시에) 뭘로 하지...?
둘 힐끔 보고는,
민 수 (대충) 콜라 주세요.
연 주 (그냥 덮고 주며) 저두요.
종업원 간다.
민수와 연주 살풋 웃는다.
연 주 항상 술 그렇게 많이 마셔? 어제처럼?
민 수 아니. 어제 나 때문에 놀랬지?
연 주 조금. 나한테 뭐라고 한지 다 기억 나?
민 수 (쑥스럽게) 그럼...
둘 말이 끊긴다.
둘 문득 마주보고 머슥해서 살픗 웃는다.
(시간경과)
반쯤 마신 콜라가 놓여있다.
테이블 밑으로 다리를 떨고 있는 민수와 손으로 옷자락을 돌돌 말고 있는 연주.
둘 말이 없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는 두 사람.
연 주 (쑥스럽게) 어제 왜 그렇게 나한테 좋아해도 되냐고 물어봤어?
민 수 어? 내가 그랬나...?
연 주 어머? 다 기억난다 그래놓고서?
민 수 (쑥스러워서) 아니야, 생각 나...
민수 착잡하게 창 밖을 보고, 연주 손을 내려다보며 손톱을 만지작거린다.
민 수 우리 나갈까?
연 주 (보며) 응?
민 수 어디 가서 신나게 소리 지르자.
연 주 어디?
S# 59 축구장 (밤)
쏟아지는 써치라이트. 야간 축구경기가 펼쳐지는 운동장.
응원하는 물결 속에 함께 손을 들고 일어섰다 앉는 연주와 민수.
둘 각자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며 신나게 경기를 본다.
연주가 응원하는 팀이 골을 몰고 슛을 쏘는 상황. 민수는 안절부절 이다.
연 주 안정환! 파이팅! 그렇지, 그렇지. (실망하며) 아이, 그걸
넣어야지, 자식아.
민 수 (동시에) 야, 야. 안돼. (안타까워) 뚫리면 안된다. (결정적인
순간 막은) 그래, 그래! 잘했어. (약오르게 낄낄댄다.)
민수는 신이 나서 웃고, 연주는 민수를 삐쭉이 본다.
이때 이내 거꾸로 민수 흥분의 도가니가 되고, 연주 안절부절 한다.
민 수 야, 문전으로 바로 날려! 거기 볐다. 문전으로! 그렇지. 슛!
슛! 야, 뭐 하냐. 슛! 골인! 2대1!
연 주 (동시에) 어? 야, 그걸 뺏기면 어떡하냐? 멍청한 자식. 어?
막어. 몸이라도 던져서 막어야지. 어휴!... 으, 열 받어.
민 수 (좋아하며) 2대1! (연주보고, 의기양양) 2대1이야!
그 일대 관중들 일제히 실망하는데 민수 혼자 좋아한다.
얄미운 듯 물끄러미 민수를 보는 연주.
뒷자리의 사내들, 이 사람이... 당신 왜 여깄어? 저쪽으로 가. 등등 한마디.
민수 얼른 삭 죽는다. 이내 두 사람 키득거리며 고개 숙이고 웃는다.
이때 뒷자리에 앉은 사내들의 얘기소리 들린다.
사 내1 안정환이 쟤 고대 출신이지?
사 내2 아이, 무슨 소리야? 연대 출신인데.
사 내1 웃기지마. 고대 출신이다.
사 내2 넌 꼭 잘 모르면서 우기더라. 쟤 연대 출신이라니까.
사 내1 너야말로 우기는 덴 뭐 있어. 쟤 고대 출신이야, 임마.
민 수 (연주에게) 참, 웃기죠? 어른들이. (돌아보며) 에이, 싸우지들
마세요. 연대 출신이에요.
사 내1 그래요?
사 내2 그 봐. 내 말이 맞지. 하여튼 정말...
민 수 그러고 보니까 연주씨하고 동문이네?
연 주 (문득 다시 심란해지며) 어? 으응... 맞아, 그러네...
연주의 표정 다시 무거워진다.
이때 관중들 일제히 슛을 외치다가 실망한다.
민 수 에이 자식. 저걸 못 넣냐!
연주, 민수를 착잡하게 바라본다.
이때 다시 응원의 물결이 돌아오는데, 연주는 일어나지 않는다. 민수만 일어난다.
일어나는 사람들 물결에 가렸다가 다시 나타나는 두 사람의 모습.
일어났다 앉던 민수가 앉아있는 연주를 물끄러미 본다.
민 수 왜? 재미없어?
연 주 아니, 재밌어...
민 수 참, 핫도그 좋아하지? 사올게. (일어서는데)
연 주 (잡으며) 저기, 우리 여기서 나가.
민 수 그래? 그러자. 그게 좋겠다.
둘 일어나 경기장을 빠져나간다.
S# 60 경기장 밖 광장 (밤)
환하게 불을 밝힌 경기장이 보이고,
걸어나오는 연주와 민수. 연주 다소 무거운 표정이다.
민 수 (분위기 바꾸려고) 아이, 나오니까 좋네. 조용하고, 시원하고.
이제 슬슬 가을이 오려나... 무슨 계절 좋아해?
연 주 겨울.
민 수 겨울? 겨울은 너무 춥잖아.
연 주 그래도 좋아. 겨울바다도 좋고, 눈 내리면 좋잖아. 근데,
서울은 별루야. 내려도 쌓이지도 않고.
민 수 그럼 스키장에 가면 되지. 거긴 언제나 쌓여있잖아.
연 주 아 참, 그렇지...
민 수 아, 잘됐다. 우리 겨울 되면 스키 타러 가자. 야간개장 할 땐
조명 쫙 켜있고 무슨 축제에 온 거 같잖아. 가봤지?
연 주 (얼른) 어, 응...
민 수 스키 잘 타?
연 주 아...니. 별로. 소질이 없어서... 무섭기도 하고.
민 수 어이구, 천하의 서연주씨께서 무서운 것도 있어?
연 주 그냥 좀 그렇더라구... 민수씬? 잘 타?
민 수 나도 그냥 그래... 실은 몇 번 못 가봤어. 막상 또 그때가
되면 시간이 잘 안나더라구...
둘 할말이 끊기고, 말없이 걷는다. 둘 다 좀 갑갑한 분위기다.
연주 고심하며 망설인다. 민수도 고민하며 복잡한 표정이다.
그러다 갑자기 멈춰서는 연주.
연 주 (고백할 듯 용기를 내서) 저기! 민수씨.
민 수 음?
서로 쳐다보는 두 사람.
연 주 나 실은... 할말이 있어.
민 수 뭔데?
연 주 저기... 나...
이때 지나가던 여자들이 민수에게 말을 건다.
여 자1 저기, 지금 몇 시쯤 됐어요?
민 수 (시계 보며) 지금요... 10분 전 8시요.
여 자1 감사합니다.
민수를 보며, 망설이는 연주의 표정.
여자들 가고, 다시 연주를 향하는 민수와 눈이 마주치자, 연주 얼른 시선
돌린다.
민 수 어, 무슨 얘긴데? 해봐.
연 주 (얼른 둘러대며) 아니, 나 배고프다구...
민 수 겨우 그 말 하려고 그랬어?
연 주 (시선 피하며, 끄덕끄덕)
민 수 진작 말하지. 음... 그럼. 우리 어디 가서 빨리 저녁 먹고,
(잠시 생각) 오늘은 특별한 데 가보자.
연 주 어디?
민 수 그냥 한번 가보자. 가보면 알아.
민수와 연주 서로를 보며 어색한 미소 짓는다.
걸음을 빨리 하며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 걸음걸이가 밝아진다.
S# 61 오피스텔 건물 앞 (밤)
연주를 데리고 오는 민수.
연 주 (보며) 여기가 어디야?
민 수 내가 사는 덴데... 들어가.
연 주 (좀 어색한) 어머, 싫어.
민 수 괜찮아. 나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주스 한잔만 마시고 가.
연주 민수를 따라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S# 62 동 엘리베이터 (밤)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두 사람.
문이 닫히고, 민수 버튼을 누른다.
말이 없이 올라가는 두 사람. 어색하다.
민 수 (문득 혼자 씩 웃더니, 연주에게 농담) 이번엔 제대로 눌렀어.
연주도 살픗 웃는다. 하지만 다시 어색하게 표정 굳어지는 두 사람.
엘리베이터 서고, 둘 내린다.
S# 63 동 복도 (밤)
민수 연주를 데리고 간다.
연주 건물 구조가 신기한 듯 둘러보며 따라간다.
S# 64 오피스텔 (밤)
민수 문을 열면 연주가 들어선다. 실내를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연주.
연 주 (여전히 긴장, 둘러보며) 좋다.
민 수 (의자 위에 남방을 치워주며) 편하게 앉아.
연 주 (서서 계속 구경하며) 응.
민수 주방으로 가서 주스를 준비한다.
연주, 이때 벽에 걸린 나팔바지를 보며 웃는다.
민 수 (돌아보며) 왜?
연 주 어떻게 저걸 걸어놓을 생각을 했어?
민 수 기태가 걸어놓고 간 거야. 원래 그놈 바진데 그날 내가 빌려 입었거든.
연 주 (앉으며) 남자들도 옷 같이 입는구나. 우리도 서로 빌려 입고 그러는데...
민수 말이 없다. 연주, 민수를 힐끔 본다.
앉아서 어색하게 다시 실내를 둘러보는 연주.
연 주 (골프채를 보며) 골프도 쳐?
민 수 아니. 기태 꺼야.
연 주 (농담) 여기 그 사람 물건이 많네?
민 수 (혼자 씁쓸하게 웃는) 응...
주스를 내오는 민수. 와서 마주 앉는다.
민 수 (잠시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실은 이 오피스텔 기태 꺼야.
연 주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 근데 왜 민수씨가 살아?
민 수 (연주를 물끄러미 봤다가, 거짓말) 어, 걘 내 빌딩에 사무실 쓰잖아.
연 주 서로 좋네, 뭐.
민 수 (넘어가며) 그렇지...
무거운 표정으로 주스를 마시는 민수. 맑은 표정으로 방안을 둘러보는 연주.
S# 65 대학가, 호프집 앞 거리 (밤)
영화 동아리 회원들과 우르르 몰려나와 헤어지는 희정.
잘 가. 내일 늦지마. 현상소로 10시까지야. 전철 타는 사람! 같이 가. 등등
헤어지고, 희정 혼자 걸어간다.
걷다가 문득 생각에 빠지는 희정.
문득 멈춰서더니, 반대방향으로 가는 택시를 잡는다.
희정 타고, 떠나는 택시.
S# 66 오피스텔 (밤)
민 수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래?
연 주 뭔데?
민 수 왜 나한테 한번도 전화 안 해? 내 연락처 알고는 있어?
연 주 (끄덕이며) 음, 알아.
민 수 근데 손가락 뿌러질까봐서 그러지?
연 주 (다시 밝아지며) 알았어. 할게.
민 수 그리고 왜 평일날은 나 안 만날려고 그래?
연주 문득 불편한데,
민 수 (계속, 농담) 난 뭐 주말용 남잔가?
연 주 (다소 무겁게 농담) 어떻게 알았어?
둘 가볍게 웃는다. 연주 불편하다. 팔걸이를 만지작거리다가 주스를 마신다.
그런 연주를 유심히 보며 미소짓는 민수.
연 주 (주스잔 놓고 일어서며) 저기, 그만 갈게.
민 수 벌써?
연 주 너무 늦었어.
민 수 그래. 나가자.
나가는 민수와 연주.
S# 67 오피스텔 건물 앞 거리, 택시 안 (밤)
오피스텔에서 나와 택시를 잡으려고 서있는 민수와 연주.
민 수 (농담처럼 삐지는) 정말 난 주말용 남자야?
연 주 (눈 흘기며) 왜 그래...
민 수 난 주말까지 못 기다려.
연 주 알았어. (생각하며) 그럼... 수요일 날 만나.
민 수 정말?
연 주 음. 한 2시 쯤.
민 수 좋았어! (택시 잡으며) 택시!
택시 두 사람 앞에 선다. 이때 두 사람 뒤로 나타나는 희정의 모습.
오피스텔을 향하다 말고 민수의 목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본다.
연주와 민수를 바라보는 희정.
민 수 조심해서 가. (택시 문을 열며) 오늘 고마웠어.
연 주 뭐가?
민 수 내 오피스텔에 와본 여자는 니가 처음이거든. 언제 너 사는
모습도 보면 좋겠는데...
연 주 (멈짓 하지만, 살픗 웃으며, 미안한 듯) 나중에. 언젠가 그럴
때가 있겠지. 갈게. (들어간다.)
이때 두 사람 뒤로 연주의 얼굴을 보고 놀라는 희정.
민 수 (얼른 택시비를 운전수에게 들이밀며) 조심해서 모셔요.
택시 안의 연주 혼자 웃는다.
창 밖의 민수 손을 들어보인다. 민수를 남겨놓고 출발하는 택시.
민수 뒤로 연주를 보고 있는 희정의 모습이 스친다.
택시 속의 연주, 민수에게만 손을 흔들고 멀어진다. (연주는 희정을 보지 못한 것)
한참이나 택시를 바라보고 서있는 민수.
민수 너머로 멀어지는 택시.
민수를 바라보고 있던 희정 돌아선다.
- 5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