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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사랑] 09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21.10.12|조회수298 목록 댓글 0

[안녕 내사랑] 09

 

 

 

 

 




S# 1 포장마차 (밤)

골치가 아프고, 난감한 민수. 술에 취해 뻗어버린 연주를 본다.

S# 2 달리는 택시 안 (밤)

축 늘어진 연주를 보는 민수. 착잡하다.
연주가 문 쪽으로 기울어지자 자기 쪽으로 기대게 한다.

S# 3 옥탑방 (밤)

작업복을 다림질하고 있는 정애. 연주를 기다리고 있다.
전화벨이 울리자 얼른 받는다.

정 애 연주니?
민 수 (E. 숨찬) 저 민순데요, 연주가 술에 취해서 지금 집 앞인데,
좀 나와보세요.

정애, 민수의 목소리에 기분이 상하는데, 어떻게 된 건가하는 표정.

S# 4 연립주택 앞 골목길 (밤)

정애 달려나오면, 민수 축 늘어진 연주를 업고 있다.

정 애 (놀라며)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민 수 (면목이 없는, 들어가며) 그렇게 됐어요.

S# 5 옥탑방 (밤)

연주를 내려놓는 민수.

정 애 (이불 덮어주며) 야,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어? 야, 괜찮아?
민 수 (지쳐서, 나가며) 그냥 놔두세요.
정 애 (따라나가며, 감정이 안 좋은) 어떻게 된 거예요?

S# 6 옥상 (밤)

민수 나오고, 따라나오는 정애.

민 수 혹시 쟤 요즘 무슨 일 있어요?
정 애 일은 무슨 일이요?
민 수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애요. 잘 좀 보살펴 주세요. (가려는데)
정 애 (뒤에다 대고 쏘며) 민수씨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민 수 (문득 표정이 무거워지고는, 돌아보더니) 지난번엔
미안했어요. 내가 너무 심했던 거... 본심이 아니었으니까
그냥 이해해줘요.
정 애 그게 하시는 일이라면서요?
민 수 (기분 상하지만, 잠시 머뭇거리다) 사실 할 말은 없네요.
미안하단 말 밖에. (한숨) 너무 마음에 두지 말고 잊어주길
바래요. 갈게요.

정애 쳐다보지도 않는다.
민수 내려가면, 정애 속상해서 들어간다.

S# 7 연립주택 앞 골목 (밤)

연립주택에서 나오는 민수. 착잡하게 잠시 멈춰 선다.
담배부터 피워 물더니, 한숨 쉬듯 길게 내뿜고는 그대로 내려가는 민수. (F.O)

S# 8 옥탑방 (아침)

연주 잠자리에 누운 채 멍하니 있고, 정애 바쁘게 출근준비를 하고 있다.

정 애 (화가 난) 대체 어떻게 된 거니? 왜 그 자식한테 업혀와?

연주 멍하니 아무 반응이 없다.

정 애 너 진짜 무슨 일 있니? (답답한) 아니면 그 자식 때문에
난리 한번 친 거야, 뭐야? 왜 그렇게 퍼마셨어?
연 주 (쳐다보지 않고, 멍하니) 나 오늘 출근 못한다고 얘기 좀
해줘...
정 애 잘났다. 미친년. (챙겨서 나가 신발 신는데)
연 주 이방 빼면... 너 다른 데로 옮길 돈 있니...?
정 애 (예민하게) 왜? 이제 나랑 같이 살기 싫으니? 따로
나갈려구? (대답이 없자) 그래 나도 지겨워. 잘됐다. 방 뺄
거 없이 니 돈 빼줄 테니까, 가지고 나가! (가버린다.)

정애 나가고 난 후에도, 연주 멍하니 그대로 있다.
한동안 멍하니 누워있던 연주,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S# 9 은행 창구 (낮)

연 주 (통장을 내밀며) 이거 지금 해약하면 얼마나 될까요? (얼른
생각나서 덧붙이는) 저기, 대출은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도
좀 알아봐 주실래요? 최대한으로요...

이때 옆 창구 위로 직원이 내놓는 돈 다발. 다른 사람이 찾아가는 것이다.
연주 그 돈 다발들에 시선이 간다. 우울한 연주의 표정.

S# 10 공중전화부스 (낮)

연 주 (전화하는) 오늘 못나가서 죄송해요.

전화 끊고 얼른 다시 전화를 건다.

연 주 경리부 좀 대주세요.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저 생산2팀에
서연준데요, 제 퇴직금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 좀
해주실래요?

S# 11 도심거리 (낮)

길을 걷는 연주. 거리의 사람들을 보게 된다.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보는 연주의 시선들.
쇼윈도를 기웃거리는 여자들.
신문 가판대에 무료하게 앉아있는 주인.
손수레에 진열된 악세서리를 고르는 여학생들.
한쪽 방향을 보며, 지루하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등.

S# 12 운수회사 (낮)

김계장 게시판에 배차 현황을 적다가 돌아보며,

김계장 무슨 소리야? 니가 여길 다시 오다니?
민 수 (머쓱하게) 그렇게 됐어요.
김계장 왜? 많이 안 좋으냐?
민 수 (대답은 않고) 다시 오면 받아주실 거죠?
김계장 (하소연하듯) 돈도 안되고 힘만 드는데, 뭣 하러 다시 와.
여기보단 난 거 같던데, 웬만하면 그냥 있지.
민 수 이번엔 딴 생각 안하고 열심히 할게요.
김계장 자리 날려면 좀 기다려야 돼.
민 수 많이 기다려야 되요?

실망해서 쳐다보는 민수.

김계장 (E) 비는 대로 연락해줄게.

S# 13 공장, 식당 (낮)

핸드폰이 울리자, 혼자 밥을 먹다가 받는 정애.

정 애 여보세요.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

S# 14 운수회사 앞 (낮)

민 수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연주 괜찮아요?

S# 15 공장, 식당 (낮)

정 애 괜찮을 리가 있겠어요? 오늘 출근 못했어요.

S# 16 운수회사 앞 (낮)

민 수 알았어요.

그냥 끊고 다시 전화를 거는 민수.

S# 17 옥탑방 (낮)

전화벨이 울리는 집안. 아무도 없다.

S# 18 운수회사 앞 (낮)

핸드폰을 끊는 민수. 걱정도 되고, 심란하다.

S# 19 마을버스 (밤)

맨 뒷자리에 앉아, 화가 난 듯 멍한 연주의 얼굴.
차체를 따라 얼굴이 흔들린다.

연 주 (E. 중얼거리듯 멍한 목소리) 더럽게 재수도 없지. 왜 하필
나야. 난 아직 유럽도 못 가봤는데... 난 아직 사랑도 못
해봤고, 결혼도 못 해봤는데... (울컥 잠기는 목소리) 난
겨우... 스물 넷인데...

눈을 감는 연주.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힘있게 닦아내는 연주.
그대로 눈을 감은 얼굴. 차체를 따라 흔들린다.

S# 20 오피스텔 밖 복도 (밤)

민수 안에서 문을 열면, 문 앞에 기태가 서있다.
껍껍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는 민수와 기태.

S# 21 오피스텔 (밤)

기태, 문가에 세워둔 가방을 보며 앉는다.

기 태 너 무슨 생각으로 이러냐? 나랑 끝내기로 작정했냐?
민 수 (좋게 대하려고) 나도 언제까지 이렇게 살수는 없잖냐. 이제
나이도 있고, 직업을 가져야지.
기 태 지난 번 일 땜에 그러냐?
민 수 (표정 굳어졌다가) 그렇게는 생각하지 마라. 너도 나 어려울
때 많이 도와줬잖아.
기 태 그런데 왜 이러니?
민 수 여기서 경험도 쌓고 했으니까, 이제 나 혼자 해봐야지. 나도
남잔데.
기 태 (기분 상했다는 듯) 너 혼자 될 거 같애?
민 수 (정색을 하며 보는데)
기 태 지난 번 일은 나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그게 그렇게 어렵냐? 내가 다 해결해 주께! 우리 사이에
그런 거 말로 해야되니?
민 수 (단호하게) 그런 거 아니라고 그랬지!
기 태 (자기가 참는다는 식) 더 얘기해 봐야 그렇고, 오늘 얘기
못들은 걸로 할게. (일어나려는데)
민 수 (먼저 일어서며, 화도 나고, 확고한) 그러지 마라. 나 좋게
끝내고 싶어. 마음 굳혔다.

민수 자켓을 입는다. 반지를 빼서 오피스텔 키 옆에 놓는다.

기 태 (보다가) 어? 좋아! 어디, 니 마음대로 해봐! 니가 날 떠나서
잘 될 거 같애? 넌 나 못 떠나. 내 밑으로 오게 돼있어!

민수, 기태를 날카롭게 쳐다본다.
순간 기태 주춤하며 수그러든다.
이내 가방 들고 그대로 나가버리는 민수.
민수를 부르지도 못하고 착잡한 기분이 드는 기태.

S# 22 옥탑방 (밤)

연주 들어오면, 정애 방을 닦다가 걸레를 던지듯 놓는다.
지친 표정의 연주, 본 척 만 척 말없이 화장대에 돌아앉는다.

정 애 어디 가서 뭐하고 이제 오는 거야? 회사로 전화 왔던데, 또
그 자식 만났니?
연 주 아니. 그냥 좀 돌아다녔어. 피곤해. (옷장에서 이불 꺼내 대충
펴는데)
정 애 너 방 보러 다녔니?

무시하며, 대꾸 않고 그냥 눕는 연주.

정 애 (이불 걷어치우며) 나랑 얘기도 하기 싫으면, 뭐 하러
들어왔니? 아예 짐 싸 갖고 나가.
연 주 (울화가 치밀어, 일어나는) 그래, 내 돈 빼줘. 나가게! (질러
놓고 속상하다.)
정 애 뭐 이런 기집애가 다 있어? 너 말 다했니!

연주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버린다.

S# 23 동 욕실 (밤)

연주 문을 닫고 운다.

정 애 (E) 좋아. 내일 빼줄 테니까, 당장 갖고 나가.

속이 상하는 연주의 얼굴. (F.O)

S# 24 여관방 (아침)

눈을 뜨는 민수. 방안을 낯설게 둘러본다. 여관방이다.
더러운 기분으로 일어나는 민수. 가방에서 칫솔을 꺼낸다.

S# 25 여관방 욕실 (아침)

치약을 짜다가 심란하게 거울을 보는 민수.
꺼칠한 턱을 만져본다. 이내 이를 닦기 시작한다.

S# 26 택시 회사 앞 (낮)

택시들이 보이고, 모여서 서성거리며 담배를 피우는 기사들.
민수 그 속에 엉거주춤 끼어서 기사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다.

민 수 (담뱃불 붙여주며) 한달 수입은 얼마나 되요?
기 사1 맨날 사납금 맞추고 나면 뭐 남는 게 있는 줄 알아?
기 사2 밤엔 합승이라도 있어서 좀 나은데, 낮 근무 뛰면 그거
맞추기 힘들어.
민 수 네에... (이것도 만만치 않겠구나 싶은 표정.)

S# 27 생산과 (낮)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연주. 문득, 문득 열심히 하려고 애쓴다.
그러다 넋 놓고 흘러가는 제품들과 여공들의 모습을 보는 연주.
재잘거리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있는 여공들의 모습.
연주 갑자기 손을 놓고 앉아있다. 화가 난 듯 굳어진 표정.
정애 말없이 연주를 쿡 찌른다. (정애도 껄끄러운 상태)
그래도 연주 그대로 일하지 않는다. 조금씩 감정 격해지는, 화가 나고 억울한
기분.
정애 연주를 본다.
연주 그대로 일어난다.

정 애 (뚱해서) 어디 가? 일하다 말고?
연 주 (화가 난 듯) 화장실.

연주 그대로 나가버린다.
이상하다는 듯 돌아보지만, 얼른 연주 몫까지 일손이 바쁜 정애.

S# 28 락커룸 (낮)

아무도 없고, 연주 혼자 옷 갈아입고 있다.
모자를 벗어 던지고, 가방을 들고 나가버리는 연주.

S# 29 국립 도서관 열람실 (낮)

의학서적 코너.
연주 화가 난 듯 백혈병, 암에 관한 책들을 뒤적이며 보고 있다.
글자를 훑는 연주의 눈.
연주의 시야에 들어오는 충격적인 내용들. 이미 누군가 읽은 듯 밑줄이
쳐있다.

< 골수 이식의 문제점.... 이식한 후 120일 이내에 많은 환자가... 감염, 재발
등으로 사망했다는... > (암백과. 서음 출판사. 205페이지 중하단.)

연주 다급하게 페이지를 넘기고는, 또 읽는다.

<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경우... 이중 20%의 환자만이 5년 이상을 생존할 수
있다... >
(같은 책. 247페이지 중간.)

절망적인 표정이 되는 연주. 책을 서가에 거칠게 꽂고 돌아선다.

S# 30 카페 (낮)

음료가 놓여있고, 희정과 민수 마주 앉아있다. 희정은 민수를 보고 속이
상한다.

희 정 오피스텔에선 왜 나갔어?
민 수 새 출발할려고.
희 정 이게 새 출발이야? 나 다 알고 왔어.
민 수 뭘?
희 정 운전 오빠가 한 거 아니지?

민수 보면,

희 정 정말 순수한 우정으로 그랬어? 그런 것도 아니지?
민 수 쉽게 말하지 마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희 정 그럼 대신 감옥에라도 갈 작정이었어? 대신 지옥에라도 갈려
그랬냐구!
민 수 다 끝난 일이야.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 게 좋아.
희 정 다 끝났다고? 겨우 이렇게 끝낼려고 여태 우리오빠 뒤나
따라다녔어?
민 수 뒤나 따라다니다니.
희 정 그 동안 우리 집에 붙어있었던 게 아깝지도 않아? 정말
이러구 나가버릴 거야?
민 수 그게 좋을 거 같다. 나한테도 그렇고 기태한테도 그렇고...
희 정 우리오빠도 문제지만, 민수오빠도 문제야. 옳지 않은 일
해주는 것도 그렇고, 두 사람 그러면서도 왜 서로한테
질기게 집착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어.
민 수 기태 불쌍한 놈이야. 니가 좀 잘해줘라.

둘 잠시 말이 없다. 표정 둘 다 무겁다.

희 정 아버지한테 다 말씀드렸어.
민 수 왜 그랬니? 니가 나설 일이 아닌데... 괜한 짓했구나.
희 정 아버지도 아셔야 돼.
민 수 니가 내 맘 알아주는 건 고마운데, 그게 나를 위하는 게
아니야.
희 정 오빠가 이러는 것도 기태오빨 위하는 게 아니야. 난 오빠만
보면 화가 나! 이럴 거면 차라리 트럭회사나 그대로 다니지,
그랬으면 이렇게 되진 않았잖아! (마음이 아픈) 나도 다시
오빠 만나지도 않았을 거구...
민 수 (뭔가 말하려다 마는데) ....
희 정 (속이 상하는) 차라니 날 어떻게 해보지, 그렇게 눈칫밥
먹고도 머리를 어떻게 굴려야 될지 모르냐...?
민 수 내가 보기엔 너 부족한 게 없다. 근데 왜 나한테 그래... 난
어떻게 될지, 앞날도 불투명한 놈이고, 여자한테 부드러운
남자도 못되잖니.
희 정 그래도 난 오빠만큼 나한테 순수하게 해준 사람 못 봤어.
민 수 내가 뭐가 순수하냐? 니가 남자를 몰라서 그래. 첫사랑 그거
아무 것도 아니야. 그만 잊어버리고, 너한테 맞는 좋은 놈
만나라.
희 정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상처받을 거 같애...? 휴대폰
없애버리지 않을 거지?
민 수 (한참 볼 뿐 말이 없다가) 그래...
희 정 내가 불러내면 지금처럼 나와야 돼?
민 수 알았어.

희정과 민수 처음으로 편안하게 서로를 본다.

S# 31 기태부 사무실 (낮)

기태부 앞에 앉아있는 기태. 기태부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있지만 엄청
참고있다.

기태부 (그래도 자식이라) 너 왜 그랬니?
기 태 (땀이 배어있고, 말을 못한다.)
기태부 왜 그랬냐고 묻잖아.
기 태 (머뭇거리다가) 잘 생각이 안나요. 왜 그랬는지. 그냥 정신이
하나도 없고, 갑자기 겁이 나서, 민수한테 먼저 전화를 한
것이 그만 그렇게 됐어요.
기태부 너 그러다 그 사람이 죽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니. 그
생각은 하나도 안나디?
기 태 .... 그래서 더 겁이 났어요. 감옥에 갈까봐...
기태부 사내놈의 자식이...! 지가 벌인 일을 지가 책임져야지, 겁이
난다고 덜컥 친구한테 떠넘겨?! 너 왜 그 모양이냐? 왜
매사에 그런 식이야? 니가 부족한 게 뭐가 있냐? 민수에
비하면 니가 없는 게 뭐가 있어!

기태, 고개를 못 들고 쩔쩔매다가 민수 얘기에 힐끔 본다.

기태부 아들놈이라고 하나 있는 게, 언제 한번 애비 마음에 들게
해본 적이 있냐? 내가 너 사람되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런데 또 실망을 시켜? 니가 사내냐? 겉만 멀쩡해 가지고,
사내야? 용기도 없고, 의리도 없고, 그렇다고 반성을 할 줄
아냐, 정직하길 하냐? 너 같은 자식은 민수하고는 비교가
안돼!

충격을 받는 기태.

기태부 호텔이 있으면 뭐하고, 빌딩이 있으면 뭐하냐?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애비한테 믿음은 못줄 망정 실망만 시키는데.
생각 같아서는 어디 다 기부해버리고 죽고 싶다, 내가. 내가
너 때문에 살맛이 안나. 살맛이...
기 태 아버지, 앞으로 다시는...
기태부 됐다. 민수 다시 불러들여.
기 태 민수 오피스텔 나갔어요.
기태부 뭐라구?
기 태 내 밑에 안 있겠다고 나갔어요.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기태부 이놈의 자식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장 데려와! 너 같은
놈의 자식을 아들이라고... 꼴도 보기 싫다, 나가!

기태 난감한 표정이 되며 일어서고,
기태부 절망적인 표정으로 소파에 기댄다.

S# 32 기태부 사무실 밖 (낮)

참담한 표정으로 나오는 기태.
나와서는 표정이 굳어지며 생각에 빠진다.

S# 33 직업소개소 (낮)

앉아서 상담을 기다리고 있는 민수. 몇몇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핸드폰이 울리면, 조심스럽게 받는 민수.

민 수 여보세요?

S# 34 기태 사무실 (낮)

전화하고 있는 기태.

기 태 (하기 싫은데 억지로) 민수니? 할 얘기가 있는데 오늘 좀
만나자.

S# 35 직업소개소 (낮)

민 수 난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데.

S# 36 기태 사무실 (낮)

기 태 그래도 꼭 좀 봤으면 좋겠다.

S# 37 직업소개소 (낮)

민 수 당분간 좀 떨어져 있자.

S# 38 기태 사무실 (낮)

기 태 나도 니 기분 아는데, 꼭 해야 될 얘기가 있어서 그래.
한번만 보자.

S# 39 직업소개소 (낮)

민 수 어디서? 알았어. (전화 끊는데)
직 원 (E) 다음 분 오세요.

민수 일어난다.

S# 40 술집 (밤)

민수와 기태 마주 앉아있다. 기태는 술을 마시고, 민수는 마시지 않는다.
기태는 담배를 피우고 있어도 좋겠다.

민 수 꼭 해야 될 얘기가 뭐냐?
기 태 그날 오피스텔에서 내가 좀 심했지? 너 짐 싸놓은 거 보고
순간적으로 욱해서 그런 거야. 다른 뜻은 없다. 그래도
참았어야 됐는데, 미안하게 됐다.
민 수 그 얘기 할려구?
기 태 니가 다시 와줘야겠다.
민 수 됐어. 난 생각 없다.
기 태 아버님이 부르셔. 너한테 그 일 다시 맡기고 싶어하신다.
민 수 갑자기 왜?
기 태 내가 사실대로 말씀 드렸다.
민 수 왜 그랬니?
기 태 너 그러고 나가서 나도 마음이 안 좋았어. 우리 10년도 넘게
잘 지냈는데, 그런 식으로 끝내서는 안되잖니. 들어와서 다시
제주도 일 해라.
민 수 됐다. 난 이미 결정했어.
기 태 마음 풀어라. 아버질 봐서라도 그냥 들어와.
민 수 아버님은 나중에 찾아 뵙고 말씀드릴게.
기 태 너 내 생각은 안 하니?
민 수 나 지금 내 생각하느라고 니 생각 할 여유가 없다.
기 태 너 나한테 실망 많이 했구나. 그랬겠지. 그래... 내가 나쁜
놈이지. 형편없는 놈이다. 친구라고는 너 하나밖에 없었는데...
결국 이렇게 됐구나. 다 내가 모자라서 이렇게 된 거지... 난
왜 하는 일마다 이런지 모르겠다. 너하고도 이럴 마음은
없었는데, 왜 이지경이 됐는지... 이제 만날 사람도 없고, 니
생각 많이 날거야. 니가 날 네 몸처럼 아껴줬는데... 그걸
지키지 못하고, 바보 같은 놈... (손으로 가리고 운다.)

얼굴 가리고 어깨 크게 들썩거리며 운다. 손가락 사이의 반지가 보인다.
민수, 보기가 안됐다는 표정. 또 마음이 약해진다.

기 태 (민수 손을 잡으며) 민수야. 나 니 마음 돌리는 거 어렵다는
거 안다. 그래도 한번만 다시 생각해봐. 우리 얼마나 좋았냐.
내가 세상에서 젤 좋아하는 사람도 너야... 니가 이러면 난
너무 비참하다... 민수야.... 내 부탁인데 들어줄 수 없겠니?

민수 손을 빼려는데,

기 태 (다시 꽉 잡으며) 아버지 한번만 만나줘. 내 마지막
부탁이다.

난감하게 기태를 바라보는 민수.

S# 41 옥탑방 (밤)

혼자 있는 정애, 연주 걱정을 하고 있다.

정 애 어떻게 된 거야, 정말.

이때 전화가 오면 급히 받는다.

정 애 (혹시 연준가해서) 여보세요!
황박사 (E) 서연주씨 댁인가요?
정 애 연주 지금 없는데요? 누구세요?
황박사 (E) 저는 인성병원 혈액내과에 황인철이라고 하는데요.
정 애 네? 병원이요? 무슨 일이신데요?
황박사 (E) 서연주씨하고 상의할 일이 있어서요.

이때 연주 들어온다.

정 애 (더 얘길 하고 싶지만, 보고는) 잠깐만이요. 지금
들어오네요... (수화기를 내민다.) 받아 봐. 병원이래.
연 주 (놀라서 정애 눈치보며, 받는) 여보세요...?

정애 옆에 서서 보고 있다.

황박사 (E) 입원한다고 하고서 연락이 없어서 전화했어요.
연 주 네에...
황박사 (E) 내일 당장 나와요. 꼭 나와야 되요.
연 주 (일부러 웃는) 네, 그러죠. 그럼 수고하세요. (얼른 끊는다.)

연주 정애의 표정을 살피는데,

정 애 무슨 전화야?
연 주 어 저번에 건강진단 받은 거 땜에.
정 애 그게 왜? 뭐가 잘못됐대?
연 주 아니. 그게 아니라, 소영이랑 바꿔서 했잖아. 나보고
산부인과 빨리 가보랜다...
정 애 그런 걸로 집까지 전화를 해줘?
연 주 그러게 말이야... (피하며 부엌으로 가려하면)
정 애 (잡아채서 앉히며) 너 좀 앉아봐.
연 주 왜 그래?
정 애 말해봐. 너 무슨 일 있지?
연 주 일은 무슨 일이 있다고 이래?
정 애 너 나 속일 생각하지마. 낮엔 일하다 말고 어디 갔니? 왜
그랬어?
연 주 어... 그냥 좀 돌아다녔어. 가을이라 날씨도 좋은데, 일은 하기
싫고 그래서...
정 애 (따지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니? 너 며칠 전엔
민수씨한테 업혀서 들어오고, 왜 그렇게 됐는지는 한마디
설명도 없더니 방이나 빼자 그러고, 이젠 회사 관둘
작정이니? 병원에서 온 전환 또 뭐야?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해.
연 주 (더는 피할 수 없어서) 저기... 사실은 나 악성 빈혈이래.
저혈압에다가...
정 애 그래...? 악성이면 심하다는 뜻 아니야?
연 주 조금.
정 애 병원에선 뭐래?
연 주 그냥 약 타다 먹으면 된대. 심해지면 수혈 받아야 되는데, 난
아직 그 정도는 아니래.
정 애 그래...? 근데 왜 얘기 안 했어?
연 주 걱정할까봐 그랬어... 걱정하지마. 별일 아니니까.

연주 웃어보이고는 일어나고, 정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시선으로 쳐다본다.

S# 42 희정방 (낮)

술에 취한 기태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잠옷바람의 희정 놀라서 본다.

희 정 뭐야? 왜 남의 방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기 태 너, 내가 누구냐? 나 니 친오빠야. 넌 내 하나밖에 없는
귀여운 여동생이구.
희 정 그래서?
기 태 니가 내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너 나를 꼭 이렇게
만들고 싶었냐? 내가 오늘 어땠는 줄 알아? 어이가 없어서...
그 놈한테 내가 왜 사정을 해야 되니? 넌 친오빠인 내가
그런 놈한테 벌벌 기고 다시 와달라고 애원하길 바란 거냐?
희 정 그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해?
기 태 좋아. 까짓 거. 그거야 내가 어쩌다 실수를 한 게 있으니까.
근데 넌 그 전부터 그랬어. 왜 옛날부터 니 친구들한테도
민수만 소개하고, 민수 얘기만 하고 그랬냐?
희 정 부러웠어? 그러면 친오빠답게 행동 좀 해줘. 내 친구들한테
오빠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게 좀 해봐.
기 태 (손이 올라갔다가 멈추며) 이걸 그냥.
희 정 갈수록 볼만하군. 나가줘. 나 잘 거야. 방해하지 말고 나가.

기태 돌아서려다가,

기 태 너 진짜 민수 그놈이랑 같이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희 정 못할 거도 없지. 첫사랑하고 결혼하면 잘 산다는데 한번
해볼까봐.
기 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희 정 왜, 그렇게 되면 오빠가 싫은 게 많은가보지?

기태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간다.

S# 43 종합병원 전경 (낮)

S# 44 진찰실 (낮)

황박사 왜 빨리 안 왔어요? 시간은 자꾸 가고 있는데.
연 주 .... 치료비가 안돼서요.
황박사 정말 부모나 형제가 아무도 없어요?
연 주 네...
황박사 (한숨) 그래도 치료 포기하면 안되는데....

잠시 말이 없는 황박사.

연 주 나 정말 죽나요?
황박사 .....
연 주 (갑자기 눈물일 고이며) 그럼 살려주세요. 무료로 치료해주는
데는 없나요?
황박사 .....
연 주 수술비 후원해주는 재단 같은 건 없어요? (흐르는 눈물
손바닥으로 닦아가며) 살려 놔 봤자 사회에 별 도움은
안되겠지만, 그래도 나 같은 사람 치료해주는 후원단체 같은
건 없어요? 왜 정부에서는 이런 거 안 해줘요? (얼굴이
일그러지며)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죽어도 상관없다는
건가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고개 숙인 연주의 어깨가 들썩거린다.

S# 45 기태부 사무실 (낮)

기태, 민수를 데리고 들어온다.

기 태 아버지, 민수 왔는데요.
민 수 (인사하며) 안녕하셨어요.
기태부 (소파로 오며, 민수에게) 앉아라. (기태에게) 넌 나가 있어.

기태, 쭈삣거리며 나가고, 민수와 기태부 마주 앉는다.

기태부 (한숨, 얼굴을 못보다가) 어떻게 내 집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참... 내가 할말이 없구나. 내가 널 그렇게
봐왔으면서도 기태 말만 듣고, 널 보기가 민망하다. 그 동안
나한테 섭섭했겠구나.
민 수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태부 지난 일은 빨리 잊어버리고 다시 제주도 내려가서 일을
해라.
민 수 아닙니다. 이제 제 힘으로 살겠습니다. 좀 힘들어도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기태부 나가서 무슨 일을 할려고?
민 수 일은 곧 구하게 될 거예요.
기태부 민수야.
민 수 예.
기태부 니가 나가서 일을 한다한들 어디 쉬운 일이 있겠니? 그리고
너 우리 집에서 해온 일이 다른 데 가서 경력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고, 그 나이에 힘들 게 다시 시작해야 될 텐데,
그러면 내 마음이 어떻겠니? 밖에서 괜히 고생하지 말고,
들어오너라.
민 수 저... 한번 마음을 정한 거라서요...
기태부 니가 나를 아버지처럼 생각한다면 고집부리지 마라. 나를
봐서라도 들어오는 걸로 해.

민수 착잡하다.

기태부 그리고 꼭 이번 일 때문만은 아니고, 진작에 너한테 뭘 하나
해줄려고 그랬는데, 니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다.

민수 기태부를 본다.

기태부 호텔에 우리가 직영하는 부대시설 중에서 지하 디스코텍을
니가 한번 맡아서 해보는 게 어떻겠니? 그게 좀 거칠어서
기태 저놈은 맡기가 힘들 거고, 너라면 해볼 수 있을 거
같은데?
민 수 (다소 놀라지만) 아니요, 됐습니다.

기태부, 어리둥절한 민수의 표정을 보고,

기태부 왜? 마음에 안 드냐?
민 수 그런 게 아니구요. 제가 받아서는 안될 거 같아서요.
기태부 그렇지 않다. 받아도 돼. 내가 너한테 이 정도 못해주겠냐.
옛날에 니 몸 다쳐가면서 기태를 구해준 일도 있고, 그 동안
니가 와서 내 일을 해온 것만 해도 그게 어딘데. 그냥 내
마음이니까, 한번 맡아서 운영을 해봐라.
민 수 그래도 너무...
기태부 괜찮아. 너도 곧 가정도 꾸려야할 테고, 그 정도면 너 하나는
평생 별 문제없을 거다. 항상 니가 마음에 걸렸는데, 나도 너
잊어버려도 되고, 좋지 않니. 내가 너한테 줄 수 있는 건 그
것뿐인 것 같다. 해볼 수 있겠지?
민 수 네...

민수 갑작스러워서 얼떨떨한 기분이다.

S# 46 기태 사무실 (낮)

기태 우울하게 창 밖을 보고 있으면, 민수 들어온다.

기 태 얘기 잘 끝났니?
민 수 음.
기 태 아버지가 뭐라 그러시디?
민 수 호텔 디스코텍을 맡아보라고 하시네?
기 태 어떻게 하기로 했니? 니가 할 수 있겠어?
민 수 음. 해봐야지.
기 태 잘 생각했다. 디스코텍이 문제가 좀 있긴 할텐데, 내가 너
정도면 잘 할 거라고 말씀드렸어.
민 수 그리고 사무실도 옆에 꺼 쓰라고 하시네?
기 태 그래 사무실 하나 있어야지. 그러고 보니 니가 여기 온지가
언젠데, 내가 여태 사무실도 하나 못 줬다.

둘 잠깐 말이 끊기고 각자 생각들이 스치는데,

민 수 나 가볼게. (돌아서는데)
기 태 오늘 오피스텔로 들어오는 거지?
민 수 그래야지.
기 태 잘됐다. (다가와 악수 청하며) 자식. 다시 와줘서 고맙다.
민 수 (악수하며) 그래.
기 태 다시 내 옆에 있게 돼서 기뻐...!

서로 얼굴은 웃고 있으나 만만치 않은 눈빛이 마주친다.

S# 47 오피스텔 건물 앞 (밤)

오피스텔 건물에 기대어 혼자 서있는 연주.
택시 멎는 소리자 들리자 쳐다보는 연주.
택시에서 가방을 들고 내리는 민수.
연주 보다가 고개 숙이고 그대로 있다.
민수, 오피스텔 건물을 착잡하게 한번 올려다보더니, 입구로 걸어온다.
걸어오다 문득 연주를 발견하고 멈춰서는 민수.
연주와 민수 눈이 마주치면, 연주 시선을 돌린다.

민 수 (보자마자 대뜸) 왜 또 술 먹고 싶은데 돈이 없니?
연 주 아니. 오늘은 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 얘기가 하고 싶어서
왔어.
민 수 너 장난하니? 나하고 뭐 하자는 거야? 그렇게 하고 나서
전화한통 없더니, 갑자기 나타나서는 얘기가 하고싶어?
연 주 미안해. 근데, 나 너무 외로워. 나랑 얘기 좀 해주면 안돼?

착잡하게 굳어지는 민수의 얼굴.

S# 48 도심 공원 (밤)

연주와 민수 말없이 걷는다. 민수는 화가 나있다.

민 수 어디 무슨 얘긴지 한번 들어보자. 말해봐. 지난번부터 왜
그런 건지.
연 주 아니야. 그냥 나 좀 지쳤나봐.
민 수 (화를 내며) 그런 식으로 대충 넘어가려고 하지 마. 난
솔직히 너 한 번씩 보고 나면 더 갈피를 못 잡겠어. 정리를
하든지 새로 시작을 하든지 오늘은 결단을 내리자. 왜
그랬니? 얘길 해. 얘길 하든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질
말든지.
연 주 보고 싶어서 왔는데, 왜 그래... 알았어. 다 얘기할게... 우리
좀 앉자.

연주 벤치로 가 앉으면, 민수도 천천히 가 조금 떨어져 나란히 앉는다.

연 주 (잠시 생각) 저번 날은 미안했어. 내가 너무했지? 다시는 안
그럴게.
민 수 미안하단 말 듣고 싶은 거 아니니까, 무슨 일인지를 말해.
연 주 나 많이 지쳤나봐. 살려고 바둥댔는데 이젠 정말... 지쳤어. 그
화살을 엉뚱하게도 민수씨가 맞았네. 그날은 고마웠어.
민 수 너 지금 나 바보 만드니? 겨우 그거였다고 내가 믿을 거
같애? 무슨 일이니? 너 회사에서 무슨 문제 있니?
연 주 그것도 그렇고... 사실 5년째 일하니까 지겨워. 화장품 향기,
처음엔 좋았는데 그것도 신물나고. 그렇다고 그만 둘 수도
없고... (한숨) 나 진짜 이렇게 외로워 본 적 처음이야.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나 누구한테 기대본 적 없었어.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어렸지만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엄마
시집간다 그럴 때도 잡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이렇게
외로운지... 내 옆엔 아무도 없는 거 있지. 젠장, 가을이라
그런가.
민 수 너 힘든 거 알겠는데, 내가 보기엔 니가 지금 배가 불렀다.
외롭다구? 나 그런 거 느껴본 적 없어. 그런 쓸데없는 소린
딴사람 잡고 해.
연 주 왜 그래... 정말 보고 싶어서 온 건데. 정말 누군가가
필요했어. 그런데... 비빌 언덕이 없더라. 민수씨 밖에...
우습게도 민수씰 좋아하는 거 같애. 어떤 여자가 어떤
남자네 집 앞에서 그 남자 올 때까지 기다렸잖아. 나 좀
받아 줘. 모른 척 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번만 좀
기대보자.

민수 말없이 묵묵히 시선 돌린다. 연주도 잠시 말이 없다.
이때 산책을 나온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지나간다. 그냥 일상적인 날씨
얘기라도 하면서.

연 주 (그 부부를 보며)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행복하다는 거
알까...? 나도 저렇게 살고 싶어. 집이 없어도 상관없는데...
못생겨도 상관없는데... 그냥 공장 다니는 남자도
상관없는데... (생각에 빠졌다가 나오며) 나 실은 공장에서
남자들한테 되게 틱틱거렸어. 못되게 시리... 사실 다 필요
없는데... 그냥 같이 밥 먹고, 9시 뉴스보고, 저렇게 산책 나갈
수 있으면 되는 건데... 그렇지 않니?

민수 말이 없다.

연 주 많이 바라는 것도 아닌데... (무심결에 좀 추워한다.)

민수 연주를 보더니, 자켓을 벗어 무뚝뚝하게 준다.

연 주 됐어.

민수 말없이 옷 걸쳐준다. 그리고는 다른 곳 보는 민수.
연주 그런 민수를 보다가 옷깃을 끌어당겨 꼭 감싼다.

연 주 (잠시 후) 참 따뜻하다...

그렇게 말없이 앉아있는 민수와 연주.

S# 49 정류장 근처 (밤)

걸어오는 민수와 연주.

연 주 (옷을 벗어 주며) 오늘 고마웠어. 갈게. (가려는데)
민 수 연주야.
연 주 (돌아보면)
민 수 정말 나 보고 싶어서 온 거니?
연 주 (볼 뿐) ...
민 수 우리 정말 새로 시작하는 거야? 너 진짜로 좋아해도 돼?

민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을 못하는 연주.

민 수 너 진짜로 좋아해도 되냐고.

연주 끄덕인다.

민 수 그럼 내가 연락할게.

연주, 민수를 본다.
이때 버스 오면, 달려가는 연주.
민수 연주를 바라보고 서있다.
버스 떠나자, 돌아서는 민수.

S# 50 달리는 버스 안 (밤. 몽타주)

서 있는 연주.

S# 51 오피스텔 앞 (밤. 몽타주)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민수.

S# 52 달리는 버스 안 (밤)

앉아있는 연주.

S# 53 오피스텔 (밤)

다시 짐 풀어 옷장에 거는 민수. (F.O)

S# 54 공장 생산과 (아침)

일을 하고 있는 연주와 정애.
연주 진땀이 나기 시작하고, 손이 허둥댄다.
갑자기 기계 소음이 커지면서 그대로 쓰러지는 연주.

정 애 연주야, 연주야...

정애의 목소리 공장 소음에 묻힌다.

S# 55 양호실 (아침)

연주 눈을 뜨면 정애가 걱정하며 보고 있다.

정 애 괜찮아?
연 주 (끄덕인다.)
정 애 아직도 어지러워?
연 주 괜찮아. 일어나야지. (몸을 일으키면)
정 애 좀 더 있어. (이상한) 입원해야 되는 거 아니야? 의사가 정말
괜찮댔어?

이때 송과장 들어오자, 둘 다 입을 다문다.

송과장 (들어오며) 좀 괜찮아졌니?
연 주 (일어나려 하며) 죄송합니다.
송과장 괜찮아. 누워있어, 누워있어. (정애에게) 넌 일하러 가봐야지?
(정애 나가면)
송과장 너 어디 안 좋은 데 있니? 요즘 조퇴도 잦고 휴가도 자주
내던데.
연 주 아니요. 휴가는 다른 일 땜에 낸 거예요.
송과장 그래두 이렇게 쓰러지는 게 아주 안 좋은 거야. 어디 이상이
있으면 차라리 좀 쉬지 그러니?
연 주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제부터 열심히 하겠습니다.

미소를 짓지만, 불안한 연주의 얼굴.

S# 56 빌딩, 민수 사무실 (낮)

테이블에 마주 앉아있는 민수와 윤변호사.

윤 지금까진 객실수에 비해 디스코텍 매출이 현저하게
낮거든요. 그게 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죠.
민 수 지난번에 가서 보니까 디스코텍에 이권을 갖고있는
영근이파라는 조직하고 지배인이 결탁이 돼있는 거
같더라구요. 그렇다면 이 회계서류들도 다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겠네요.
윤 만약 그런 문제에 지배인까지 얽혀있는 게 사실이라면
디스코텍뿐만 아니라 호텔 전체에 상당히 문제가
심각한데요.

이때 밖에서 지나가던 기태가 창으로 보고, 들어온다.

기 태 (윤에게 인사) 안녕하세요.
윤 오랜만이예요.
기 태 많이 도와주세요. 민수 처음하는 건데, 잘 되야지요.
윤 그래야지요.
기 태 (민수에게) 어려운 거 있으면 많이 여쭤봐.

이때 노크를 하며 들어오는 미스오.

미스오 (민수에게 봉투 주며) 실장님! 이거요. 회장실에서
내려보내셨어요.
민 수 (펴보며) 뭐야?

봉투 펴보면, 차키가 들어있다. 기태 나가다 말고 본다.

미스오 차는 지하주차장에 있대요.

S# 57 빌딩, 관리 사무실 (낮)

민수 사무실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향하는 기태. 표정이 굳어진다.

S# 58 양호실 (낮)

연주 혼자 누워있다. 이게 뭔가 싶은 심정.
이때 노크소리 나더니, 동식이 들어온다. 연주와 동식 다 어색하다.

동 식 (음료수 들고서) 많이 아프니?
연 주 아니요. 오후 일은 해야죠.
동 식 뭐 그런 걱정을 하니. 5년씩이나 다닌 덴데. 더 숴. (음료수
놓고는 쭈삣거리다 돌아서는데)
연 주 (미안한 기분이 들며) 오빠. 고마워. 이거 잘 먹을게.
동 식 그래... (나간다.)

S# 59 양호실 앞 (낮)

동식 나오면, 양호실로 오던 정애와 만난다.

동 식 연주 어디 아픈 거니? 아니면 혹시 그 남자랑 잘 안돼서
그러는 거냐.
정 애 악성빈혈이래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동 식 그래... 빈혈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던데... 졸도까지 했으면
예사로 넘겨서는 안돼. 큰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은데... 니가
큰 병원에 꼭 좀 데리고 가봐라.
정 애 네.
동 식 빈혈이면 잘 먹어야 되는데... 걱정이다.
정 애 제가 잘해 먹일게요.
동 식 그래. 들어가 봐라.

정애, 가는 동식의 뒷모습을 본다.

S# 60 레스토랑 (밤)

기태와 윤경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윤경 옆에는 기태가 준 것으로 보이는 꽃다발이 놓여있다.

윤 경 기태씨 여자들한테 인기 좋았죠?
기 태 글쎄... 그건 여자들한테 물어봐야지, 내가 아나. 왜?
윤 경 여자가 뭘 좋아하는지 너무 잘 아는 거 같애서요.
기 태 난 그냥 윤경씨가 뭘 좋아할까, 그 생각만 하는데?
윤 경 매너도 너무 좋구요. 그 매너에 넘어온 여자들 많았을 거
같은데...?
기 태 윤경씨는 너무 잘해줘도 트집을 잡네?
윤 경 아니에요.

기태 와인 잔을 들어 청하고, 두 사람 마신다.

윤 경 참, 저번에 그 친구는 잘 있어요?
기 태 누구? 민수?
윤 경 네. 요즘은 왜 같이 안나와요?
기 태 아버지가 일을 좀 맡겼어. 그거 하느라고 바빠.
윤 경 그래요. 인상이 참 좋던데...
기 태 인상이 어떻게 좋은데?
윤 경 아니, 그냥 뭐... 왜요? 질투하는 거예요?
기 태 아니. 보는 사람들마다 그 녀석을 다 잘보는 편이라서. 왜
그런지 궁금하기도 하고.

와인을 마시는 기태.

S# 61 기태집 거실 (밤)

기태모 소파로 와 앉으며 희정을 부른다.

기태모 너 좀 이리와 봐.
희 정 (막 들어온, 와 앉으며) 왜?
기태모 너 내 속에서 나온 애 맞니? 어떻게 니 오빨 그렇게 만들어?
희 정 오빠는 내가 그렇게 만든 게 아니고, 엄마가 싸고돌아서
이렇게 된 거야.
기태모 싸고돌다니? 니 아버지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 기를 못 펴게
하는데, 나까지 그랬어봐라. 니 오빠가 뭐가 되겠니? 안
그래도 주눅이 들어 가지고 불쌍해 죽겠는데. 니 아버지가
엉뚱한 놈 데려다 와 가지고, 말끝마다 비교나 하고, 그 동안
니 오빠 마음이 얼마나 멍이 들었겠니?
희 정 오빠가 원래 문제가 있는 거지, 괜히 민수오빠 트집 잡지마.
기태모 대체 넌 누구 편이니? 우리 식구가 누구야? 막말로 민수 그
녀석 하나 감옥가면 그만이지. 오빨 꼭 그렇게 해야 돼?
요즘 걔 속이 어떻겠니? 생각이나 해봤어?
희 정 아니 그럼 잘못된 일을 그냥 덮어두란 말이야?
기태모 까놓고 말해서 민수가 그런 일을 왜 대신 해줬겠니? 지금
우리집 식구 모두 그 놈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는 거야.
결국 그 놈 뜻대로 되가고 있잖아!
희 정 오빤 엄마가 그러는 한 인간 되기 힘들어. 아직도 멀었어.
(일어나 버린다.)
기태모 뭐? 얘, 그리고 너. 행여나 윤경이한테 안 좋은 얘기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

희정 한숨 쉬며 올라가 버린다.

S# 62 거리, 달리는 민수의 차안 (밤)

기태부에게 받은 차를 몰고 가는 민수. (국산 중형차 정도.)

S# 63 식당 (밤)

대호가 저녁을 먹고 있고, 들어온 민수가 대호 앞에 와 앉는다.

민 수 미안해 좀 늦었다.
대 호 뭘. 내가 갑자기 불러낸 거잖아. 점심을 못 먹어서 먼저
시켰다. (카운터에 대고) 아줌마 여기 공기밥 하나 더!
(민수에게 신나서) 야, 형님한테 너 다시 온단 얘기 듣고 내
마음이 다 홀가분하더라. 솔직히 그런 새끼 밑에 있어봤자
그렇지. 잘 생각했다.
민 수 나 다시 들어갔다. 어제 아버님 만났어.
대 호 설마 너 그 호텔인지 뭔지에 아직도 미련 못 버렸냐? 그렇게
당하고도 질리지도 않어? 자존심도 없냐?
민 수 이번엔 달라. 아버님이 부르신 거야. 호텔 디스코텍 맡기로
했다.
대 호 너 진짜 한심하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 일 꼭 하고 싶냐?
그런 거야?
민 수 이번엔 다르다니까. 나도 할만큼 했고 받을만하니까 받는
거지.
대 호 그 집에서 너한테 그런 거 왜 주겠니? 발 못 빼게 해서
언젠가 또 이용해 먹을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나도 너
처음엔 부러웠어. 근데 알고 보니 실상이 다르잖냐?
민 수 이제 전하곤 달라. 다르게 살 거야. 내 생각대로 열심히 한번
해볼 거야. 내 여자 행복하게 해 줄만큼 돈도 벌 거고,
언젠가 내 힘으로 독립해서 나올 거야.
대 호 독립? 독립한다면서 또 빌붙냐? 사내자식이 아무리 없어도
떳떳하게 살아야지, 그게 열심히 사는 거야? 넌 아직도
멀었어. (일어서 나가려다) 우리 엄마 병원비 하라고 가져온
돈도 그런 돈이었지? 내가 갚는다, 이 새끼야.

가버리는 대호. 혼자 남은 민수.

S# 64 옥탑방 (밤)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연주. 정애는 방을 닦고 있다.
켜놓은 TV에서는 9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방을 닦는 정애, 연주를 힐끔힐끔 보고, 연주도 정애의 시선 느끼고 있다.

정 애 너 정말 괜찮아? 내가 할게 놔둬.
연 주 괜찮아. 낮에 잠깐 그런 것뿐인데 뭐.
정 애 수혈 받아야 되는 거 아니야? 자꾸 그렇게 쓰러지면 어떡해?
연 주 그건 정말 심할 때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지. 난 괜찮댔어.
정 애 소꼬리라도 한번 사다가 고아야 되겠다.
연 주 됐어. 소꼬리는 무슨...

이때 TV에서 고르바쵸프의 아내 라이사 여사가 급성백혈병으로 한 달만에
죽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9월 20일 MBC뉴스)
뉴스소리 들리면, 그릇 손에 든 채 와서 보는 연주.
TV를 보다가 문득 정애와 눈이 마주치면 다시 가서 닦는다.
정애 이상하다는 듯 뉴스를 본다.

정 애 어머머, 멀쩡하던 사람이 한 달만에 죽었네? 그럴 수도
있나?

설거지 그릇에 손을 담근 채 서있는 연주.
이때 노크소리 들리고 현관문이 열리고 소영이 들어선다.

소 영 연주야...
연 주 (얼른 정애를 힐끔 보는데)
소 영 (정애를 보고) 안녕하세요.
정 애 (별로 달갑지 않은) 왔어요.
연 주 니가 여긴 웬일이야...?
소 영 우리 할 얘기 있잖아...
연 주 (한숨) 무슨 얘길 한다고 그래... 나가자.
정 애 (달갑지는 않지만 연주 때문에) 얘가 왜 이래? (소영에게)
들어와요. 들어와서 얘기해요.
연 주 (소영의 등을 밀며) 아니야, 나가서 애기해. 나가.

연주 급히 소영을 데리고 나간다.
정애 순간 기분도 나쁘고, 의아해서 본다.

S# 65 동네 골목 (밤)

소영을 데리고 내려오는 연주. 화가 나있다.

연 주 여긴 왜 왔니? 뭐 하러 왔어? 누가 너보고 찾아오래? 나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어. 니가 자꾸 찾아오고 전화질
해대면, 정애도 알게 되고, 회사에도 알려지고 복잡해져.
소 영 회사는 무슨 회사야. 다 관두고 입원을 해야지?
연 주 난 입원 같은 건 안 해. 우리 아버지 어떻게 하다
돌아가셨는지 너도 다 봤지? 차라리 그때 집안 살림
병원비로 다 들어먹지만 않았어도, 나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어.
소 영 그래도 치료는 받아야지.
연 주 치료받는다고 다 사는 줄 아니? 60%래. (일그러지는 얼굴
애써 펴며) 나 괜찮아. 너나 잘살아. 됐으니까 가. 다시는
오지마.

그대로 달려가버리는 연주. 얼굴이 일그러진다.

S# 66 옥상 (밤)

계단에서 올라온 연주.
눈자위와 머리를 만지며 감정을 수습하고 옥탑방으로 들어간다.

S# 67 옥탑방 (밤)

연주 들어와 다시 모른 척 하고 설거지하면,
정애 노려보다가 나와서 그릇 뺏어 챈다.

정 애 너 나한테 뭐 더 숨기는 거 있지?
연 주 숨기긴 뭘 숨겨.
정 애 그럼 소영인 왜 왔다 갔어?
연 주 그냥 온 거야... (다시 설거지 하려하면)
정 애 (잡으며) 아니야, 말해. 숨기지 말고!
연 주 뭘 말해?
정 애 너 그냥 빈혈 아니지?
연 주 빈혈이 아니면 뭐. 의사한테 전화 한번 왔다고, 얘가 왜
이래?
정 애 그럼 뭐야? 구지 왜 걜 데리고 나가?
연 주 또 지 문제 땜에 온 거야. 나도 귀찮아서 그냥 돌려보냈어.
정 애 아니야. 내가 널 그 정도도 모를까봐? 분명히 무슨 일
있잖아. 걔하고는 터놓고, 나한테는 왜 말 못해? 몇 년을
같이 살았는데, 난 겨우 그 정도 밖에 안되니?
연 주 (입 닫고 가만히 있다. 이젠 정말 짜증도 나는 것.)
정 애 너 끝까지 이럴래? 정말 지독하다.
연 주 정애야... 관심 고마운데, 너무 그래도 피곤한 거 모르니?
정 애 뭐? 피곤해? 내가 이러는 게 피곤하다구?
연 주 (지친) 미안해, 그런 뜻이 아니라...
정 애 난 니가 이러는 게 피곤해! 너 언제 나한테 마음 연 적
있기나 해! 언제나 이런 식으로 사람 애먹이고, 소외감
느끼게 만들면서, 나랑 같이 사는 이유가 뭐니? 방값
모자라서 같이 사는 거야?
연 주 (울고 싶은 지경) 정말, 왜 이러니? 별일 아니라는데. 왜
자꾸 이래! 그냥 나 좀 내버려 둬. 나 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란 말이야!

그대로 뛰쳐나가는 연주. 속도 상하고 점점 더 걱정이 되는 정애.

S# 68 오피스텔 (밤)

민수 소파에 누워 서류들을 보고 있다가 착잡하게 덮고는 일어나 앉는다.
담배를 피워 무는데, 이때 초인종이 울린다.
떨떠름하게 담배 물고 나가는 민수.

S# 69 오피스텔 앞 복도 (밤)

문을 열면, 기태와 윤경이 서있다.

윤 경 안녕하세요?
민 수 (담배 내리며) 아니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하면서 기태를
본다.)
기 태 어, 윤경씨가 너 보고 싶다고 그래서.
민 수 들어오세요. 좀 지저분한데...

S# 70 오피스텔 (밤)

들어오는 기태와 윤경. 기태는 선물을 들고 있다. (양주정도?)
문을 닫고 나중에 들어오는 민수. 얼른 담배부터 끄고, 소파 치운다.

윤 경 (둘러보며) 어머, 깨끗한데요, 뭘.
기 태 워낙 내 성격이 지저분한 걸 못 참거든.

민수, 기태를 본다.

윤 경 어떡하지? 난 결혼하면 이렇게 할 자신 없는데...
민 수 앉으세요.
윤 경 (앉으며) 갑자기 와서 실례가 안됐는지 모르겠어요.

기태 선물을 테이블 위에 놓고 앉는다.

민 수 괜찮아요.
기 태 여긴 나도 와서 같이 많이 지내던 곳인데 뭐.
윤 경 결혼하면 받아주지 마세요, 민수씨.
민 수 예. 그래야죠.
기 태 참, 이거 오다가 윤경씨가 사자 그래서... 사왔다.
민 수 뭘 이런 걸 사오셨어요. 참, 뭐 드실래요? 주스도 있고...
윤 경 그냥 주스 주세요.
민 수 (기태를 보며) 넌?
기 태 나도 같은 걸로.

이때 둘 사이에 짧게 스치는 어색한 기분.
돌아서는 민수를 보는 기태.

S# 71 동네 공중전화 (밤)

동네를 무작정 걸어나온 연주.
지나다가 공중전화를 보고 주머니를 뒤진다.
동전을 꺼내들었지만, 선뜻 전화를 걸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

S# 72 오피스텔 (밤)

셋 모두 동시에 웃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윤 경 어머, 그럼 꽤 친했나봐요?
기 태 그럼 민수랑은 중학교 때부터 친했는데. 햇수로 따지면 몇
년이냐?
민 수 13년.
기 태 술도 이 자식하고 같이 배웠고, 담배도 처음 이 놈하고
피웠어. 그때 담배맛 생각나냐?
민 수 뭐 알고 피웠냐.
기 태 그래도 그때 너랑 나랑 진짜 사나이가 된 기분이 바로 이런
거라고 그랬잖냐. 생각 안나?
민 수 나.
기 태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데 말이야. (괜히 주머니
뒤적여, 반지 꺼내 주며) 참, 이거 빼놓고 같더라. 안 찾았냐?
민 수 너한테 있었구나. (받아서 들고만 있으면)

기태가 본다.
민수 그 시선 느끼면서 반지를 낀다.

윤 경 (기태손의 반지 만지며) 이 사람은요, 결혼해도 결혼반지 안
낀다고 아예 선언했어요. 이거 껴야 된대요.
민 수 그래요...
기 태 다음에 언제 저녁이나 같이 하자.
윤 경 그래요. 같이 저녁 한번 해야죠.
민 수 그래요.

민수와 기태의 시선이 스친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면,

민 수 잠깐만이요. (받는) 여보세요?
연 주 (E) 민수씨? 나야.
민 수 (약간 껄끄러운) 어, 웬일이니?
연 주 (E) 지금 나올 수 있어? 보고 싶어.
민 수 어딘데?

기태, 민수를 보고 있다.

민 수 어, 알았어. 기다려. (끊는다.) 어떡하죠? 지금 좀 나가봐야
될 거 같은데...
윤 경 저희도 그만 일어나야죠. (일어나며)
기 태 누군데?
민 수 (핸드폰과 키 챙기며) 어... 대호.
기 태 (어깨 툭 치며) 자식, 누구 만나는 데? 여자 같다? 느낌이?
윤 경 제 느낌도 그런대요?
민 수 아니야.

셋 모두 나간다.

S# 73 오피스텔 밖 거리 (밤)

민수, 차안으로 들어가는 기태, 윤경과 헤어진다.

기 태 술 먹을 거야? 그럼 타라. 내가 태워다 줄게.
민 수 아니야, 둘이 가야지.
윤 경 괜찮아요. 타세요.
민 수 아니에요. 다음에 뵙죠.
기 태 그럼 같이 식사 한번 하자. 언제가 좋겠니?

민수 선뜻 대답을 하지않고 기태를 보는데,

윤 경 제가 날짜 잡을까요?
민 수 그러세요. 잘 가라.

기태차 출발하고 나면, 민수 내려서서 택시를 잡는다.

S# 74 술집 (밤)

민수와 연주 마주 앉아있다.

민 수 보고 싶다더니, 술이 보고 싶은 거였어? 오늘 또 술 먹고
그날처럼 나한테 업혀갈려고 그러는 거 아니지? 난 책임
못져.
연 주 이제 나만 보면 겁부터 나나보다? 아니야. 다시는 안 그럴
거야. 이젠 그러지도 못해. 나도 겁나서. 그냥 마시자, 기분
좋게. 오늘 기분 좋다.

연주 잔을 내밀면, 둘 잔을 부딪치고 마신다.
민수, 빈 잔을 채워준다.
연주, 민수의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본다.

연 주 그 반지 말이야...
민 수 (자기도 보며) 이거... 왜?
연 주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계속 친구
밑에서 심부름하면서 그렇게 살 거야?
민 수 내 친구랑 똑같은 말을 하네. 니 눈에도 내가 그렇게
보였구나... (스스로도 맞다는 듯 끄덕끄덕)

술을 한잔 들이키는 민수.

연 주 미안해. 내가 괜히...
민 수 아니야. 나 참 한심한 놈이지?
연 주 조금.
민 수 맞아. 한심하게 살았지. 넌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거 같은데,
난 자존심 버린 지 오래됐어. 그런 거 사는 데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주저 없이 버렸어. 내가
전에 트럭 몰았다는 얘기했나?
연 주 아니.
민 수 (씁쓸하게) 그땐 왜 그렇게 그게 하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그때 잘못한 거야. 사람이 한번 도망가면, 걷잡을 수가
없더라. 기태 밑으로 들어가서, 일 같지도 않은 일들 하면서,
그때 자존심 다 버린 거야. 생각 같은 건 오래하면 골치만
아프니까 아무 생각도 안할려고 하면서 살았어. 그런데 결국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더라. 그렇게 되더라구...

술을 마시는 민수. 따라주는 연주.

민 수 하지만 이제는 달라. 달라졌어. 절대 그렇게 안 살아.
정면으로 부딪칠 거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연 주 어떻게?
민 수 다시 내 힘으로 할거야. 트럭 몰았을 때처럼. 기태 아버님이
나한테 기회를 준거고. 그 기회는 내가 만든 거야. 남들이
보면 공짜로 운 좋게 줏은 거 같겠지만, 아니야. 난 잘 해낼
거야. 열심히 해서 생각보다 빨리 거기서 나올 거야.

민수 술을 마시고 연주를 본다.

민 수 너 저녁 먹고 9시 뉴스보고 아파트단지 산책 나가면서 살고
싶다 그랬지? 나도 그래.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야. 앞으로
어떻게 될지야 아무도 장담 못하는 거지만, 그 희망 너나
나한테 과분한 거 아니라고 생각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시선을 돌리는 연주.

민 수 저녁 먹고 아파트 단지 산책 나가는 거... 그거 정말 어렵지
않아. 너 나 잘 선택한 거 같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
연 주 나중에? 나중에 언제...?

슬픈 눈빛으로 물끄러미 민수를 보고있는 연주.

민 수 나중에.

S# 75 거리 (밤)

말없이 걷고 있는 두 사람.
연주 민수보다 조끔씩 뒤쳐지며 민수를 본다.
연주 문득 멈춰서면, 민수 가다가 돌아본다.

연 주 (나직이) 나하고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댔지...
민 수 (볼 뿐) ...
연 주 나 알고 싶다 그랬지...
민 수 ....
연 주 나도 그래. 우리 오늘 알아보자.
민 수 무슨 소리야?
연 주 오늘 나하고 같이 있자. 나도 너 알고 싶어.
민 수 가. 내가 바래다줄게.

민수 성큼성큼 도로로 내려서 택시 잡으려 한다.
택시 잘 잡히지 않는다. 합승도 하려고 소리도 지르는 민수.
연주, 그런 민수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이윽고 택시가 와서 서면,

민 수 (택시 문을 열고, 연주를 향해) 어서 와. 타.

천천히 택시를 향해 가는 연주.

연 주 (탈 듯이 보이다가, 그대로 택시 문을 닫으며) 아저씨,
됐어요.

민수, 연주를 본다.
택시 떠나고, 쳐다보고 있는 두 사람.

연 주 (절실한) 난 오늘 너랑 있고 싶어.

민수, 잠시 망설이는 기분. 다시 연주를 본다.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

민 수 (감정이 오르는 기분) 진심이니?

연주 대답대신 민수의 손안에 손을 넣는다.
민수, 연주의 손을 잡고 간다.

S# 76 여관 입구 (밤)

들어오는 민수와 연주. 민수 어색하게 연주를 놓고 카운터로 향한다.

민 수 (카운터에) 방 있어요? 얼마예요?

계산을 하고 숙박계를 쓰는 민수를 물끄러미 보는 연주.
키를 들고 돌아서는 민수, 연주를 보고 계단을 향하면,
연주, 민수를 따라 걸어 계단을 올라간다.

S# 77 여관복도 (밤)

민수를 따라 걸어 들어가며 연주.
머슥하게 걸어들어가는 민수와 연주.
연주 머슥해하는 민수를 본다.
열쇠를 꽂아 문을 열고 돌아보는 민수.

민 수 들어가.

연주 들어간다.

S# 78 여관방 (밤)

들어온 연주, 방을 둘러보며 핸드백을 놓고는 침대에 걸터앉는다.
연주 문을 잠그고 돌아서는 민수를 본다.
민수 어색해서 시선 피하며 키를 놓고는 다시 연주를 본다.

민 수 뭐 좀 마실래? 물 줄까?

민수를 물끄러미 보면서 고개 젓는 연주.
민수 혼자 물을 마신다. 자켓을 벗어 놓는 민수.

민 수 답답하지? 창문 좀 열을까?

민수를 보며 고개를 젓는 연주.
민수 어정쩡하게 연주 옆에 와서 나란히 앉는다.
둘 말이 없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연주가 민수를 끌어안아 버린다.
민수 엉거주춤 연주를 안는다.
그러다 키스하는 두 사람.
둘 침대로 쓰러진다.
(시간경과)
연주를 애무하는 민수. 연주 고개를 돌리면,
뺨 위로 조용히 눈물이 흐른다.



- 9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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