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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사랑] 13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21.10.12|조회수229 목록 댓글 0

[안녕 내사랑] 13

 

 

 

 

 

 




S# 1 병원 전경 (밤)

S# 2 병실 (밤)

연주, 민수 손의 상처에 소독을 하고 작은 반창고를 붙여준다.

연 주 많이 아물었네. 거의 나았다. 다시는 술 먹고 다치고 다니지마.
민 수 알았어.
연 주 참, 제주도는 언제 내려가?
민 수 (거짓말) 어, 당분간 여기서 처리해도 될 일들이라서...안가도 돼.
연 주 거기 일 많이 밀려있다고 그러지 않았어?
민 수 전에 디스코텍 영업정지 맞은 게 있는데, 인수할 때 법적인 문제를 깨끗이 처리해야 되거든. 
      그건 서울에서 해도 되는 거야.
연 주 그래?
민 수 검찰 쪽 사람 몇 명 만나서 해결하면 돼.
연 주 요즘은 왜 공부도 안 해? 책 사온 거 침대 밑에 다 쳐박아 두고.
민 수 시간이 없어서 그랬지. 넌 내 걱정 말구, 니 걱정이나 해. 
      이 조그만 머릿속에 뭐가 그렇게 생각이 많냐?
연 주 맞아. 내가 자꾸 그러면 민수씨 피곤하겠다. 조심할게.

시선을 돌리는 민수. 착찹한 표정.

S# 3 기태집 거실 (밤)

기태모와 기태가 소파에 앉아있다.

기태모 밤 되면 꼭 금방이라도 들어오실 거 같고 그렇다...
기 태 자꾸 그러시면 안 좋아요. 너무 집에만 계시면 계속 생각나고 힘드시니까, 
       낮엔 밖에 많이 나가세요. 친구분들도 만나시고.
기태모 어디 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너라도 일찍일찍 들어와.
기 태 알았어요.
기태모 사업은 어떻게 잘 되가니? 빌딩관리야 니가 전부터 해온거지만, 제주도 호텔은 어떠냐? 
       오픈 준비는 잘 되니?인수인계는 잘 받고 있어?
기 태 그럼요. 걱정 마세요. 그 동안 제대로 기회가 없어서 그랬지,이제 제가 알아서 잘 해요. 
       말 안했는데, 윤변호사도 알아서 제 위주로 체계를 다시 짜고 있구요.
기태모 그래... 그 사람이야 변함없는 사람이지. 그나저나 상속세는 어떻게 했니?
기 태 회계사가 알아서 처리하고 있어요.
기태모 그래... 참, 이제 민수 내보내라. 아버지도 안 계신데, 걔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잖니.
기 태 신경 쓰지 마세요. 갑자기 그러는 것도 보기에 안 좋잖아요.
저한테도 다 생각이 있어요.
기태모 그래도 희정이가 저러고 있는데, 마음이 통 안 놓여서 그러지.
기 태 민수는 제가 가까이 보고 있으니까, 염려하실 거 없어요.
기태모 그래... 이제 니가 우리 집 기둥이다. 너 밖에 없어... (눈물바람)
기 태 엄마두 참.
기태모 희정이도 니가 보살펴 줘야 돼. 저게 시집이라도 가고 이랬어야 되는데...
        말을 툭툭해서 그렇지 저 것도 지금 속을 어디다 대야 될지 모를 거다. 
        니가 마음도 좀 헤아려주고 그래. 알았지?
기 태 네.

안됐다는 생각이 드는 기태.

S# 4 희정방 (밤)

기태 들어오면, 혼자 서랍정리를 하고 있던 희정이 본다.

희 정 왜?
기 태 아니야, 그냥. (앉는다. 위로라도 해보려고 온 것. 그런데 어색하다.)
희 정 뭐?
기 태 아니, 오빠가 니 방에 좀 못 들어오냐? 중간고사 볼 땐가?아버지 일 치르느라 공부도 잘 안되지?
희 정 갑자기 웬 관심? 시험 다 끝났어.
기 태 그래...
희 정 오빤 어때? 아버지 사무실 차지하고 있으니까 기분이 좋아?
기 태 너 말을 꼭 그렇게 밖에 못하니?
희 정 왜, 날개 달았으니까 이제 멋지게 한번 날아봐야지. 이 순간을 꿈꿔온 거 아니었어? 아버지한테 불만 많았잖아.
이제 오빠 마음 대로해도 되고 잘된 거 아니야?
기 태 (일어나며) 이 기집애가 정말.
희 정 그렇다고 아버지가 내주신 디스코텍을 마음대로 처리해?그렇게 하면 안되지. 아버지가 다 보시고 계셔.
기 태 니가 뭔데, 내가 하는 일에 나서? 걔 여자 있다는데, 왜 이러니? 오라, 니가 지금 나한테 도전하는 거냐? 잘
생각해서 행동하는 게 좋을 거다. 너 아버지가 예뻐해 준다고 여태까지 막했는데, 난 아버지하곤 달라. 영화고 뭐고
다 때려 쳐! 뒤로 몰래 하고 있는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희 정 웃기고 있어. 오빠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야?
기 태 너 내말 안 들으면 유학이고 뭐고 꿈도 꾸지 마. 기껏 공장다니는 기집애한테 밀리는 주제에... (나가버린다.)
희 정 뭐? (정리하던 물건을 닫히는 방문에 던져버린다.)

속이 상하고 불안해지는 희정.

S# 5 진찰실 (아침)

황박사 막 출근해서 가운을 입고 있고, 민수 들어온 상태다.

황박사 앉아요.
민 수 (앉으면) 상태가 더 안 좋아졌나요?
황박사 (앉으며) 그런 건 아니고, 내가 보자고 한 건, 전에 말했던 신약을 써서 고용량 약물요법을 시작해도 되는지 물어볼려고
그런 거예요.
민 수 해야죠. 시작해주세요.
황박사 (곤란한) 돈이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하든데요.
민 수 내일까지 준비하겠습니다. 일단 시작해주세요. 그리고 저 돈 문제는 앞으로 저하고만 상의해주세요. 어떻게든 내일까지
마련할 테니까 걱정마시구요.
황박사 그래요.

S# 6 병원 복도 (낮)

닝겔 봉을 밀고 걸어나오는 연주. 쵸코렛 상자를 끼고 있다.
이때 맞은 편에서 입에 막대사탕을 물고 걸어오는 남자애. 역시 닝겔 봉을 밀고 온다.
서로 길을 비켜주며 보게 되는 두 사람.
두건을 두르고 한눈에도 악성환자임이 분명한 남자애는 명석(15세)이다.
사탕은 입에 물었으나 무표정하고 힘들어 보인다.
명석의 눈빛을 스친 연주 문득 표정이 굳어지며 나오다가 다시 돌아본다.
명석, 연주의 맞은편 방으로 들어간다.
천천히 걸어오는 연주. 다른 환자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헝크러지고 지친 보호자에게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
걸음하나를 떼기 위해 덜덜 떨리는 수족을 옮기며 걷는 사람.
휠체어에 멀건히 앉아 나오지도 않는 마른 눈물을 손가락으로 찍어내는 사람 등.
충격을 받은 연주의 표정. 이윽고 간호사 데스크에 와서 멍하니 멈춘다.
이때 들려오는 간호사들의 이야기.

간호사1 (상황판 보며) 609호 환자 바꿨네? 퇴원했어?
간호사2 새벽에 영안실로 내려갔어.
간호사1 그래...?

물끄러미 서있는 연주.

간호사1 (연주를 보고) 왜요?
연 주 예? (쵸코렛 상자 주며) 아, 이거요. 드시라구요...
간호사1 뭘 이런 걸 갖고 왔어요. 애인이 사온 거 같은데...
연 주 밤 근무할 때 드세요... (돌아서려다가) 저기, 언니. 골수 받아서 오래 사는 사람들도 정말 있나요?
간호사1 그럼요. 성덕바우만도 잘 살고 있잖아요.
연 주 그래요...

돌아서는 연주. 간호사를 향해 지었던 미소가 가시며 표정이 불안해진다.

S# 7 공장 일각 (낮)

공장 건물벽에 붙는 대자보. '연주를 살립시다!'
동식이 대자보를 붙이고 있는데, 지나가는 여공 1, 2가 보고 온다.

여 공1 이게 뭐야?
동 식 응, 연주가 많이 아파서 병원비라도 모금할려고. (테이블을
똑바로 놓고, 그 위에 모금함 놓으며) 우리가 걷어봤자 그걸로는 별 도움도 안되겠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정애.
여공1, 2 대자보를 보고, 모여드는 노동자들 몇이 보인다.
놀라기도 하고, 휙 보고 그냥 가기도 하고...
동식 걸어나오면,

정 애 (동식에게 가서) 오빠,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연주 이런 거 좋아하지도 않을 거예요...
동 식 그래서 나도 곰곰히 생각하다 모금함이 제일 나을 거 같애서...
      그래도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인데, 각자 마음도 있잖아. 자유롭게 하는 거니까 괜찮을 거야.
정 애 ...
동 식 그러고 보니까 니 얼굴이 핼쓱해 진 거 같다. 연주도 연주지만, 너도 축나지 않게 조심해야지.
정 애 괜찮아요.
동 식 오늘 끝나고, 요 앞 삼계탕집으로 와라. 병원 가기 전에 잠깐 저녁이나 사줄게. 먹고 가.
정 애 아이, 됐어요.
동 식 (바쁘게 가며) 아니야, 꼭 와라!

동식을 바라보는 정애.

S# 8 기태 사무실 (낮)

민수 들어오면, 은행지점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기태 앞에 앉아있다.

기 태 아니, 싫다는 건 아니구요, 아버지가 10년 넘게 거래하시던 덴데 쉽게 바꾼다는 것도 그렇잖습니까. 다음에
생각해봅시다, 다음에. 지금 좀 바빠서요...

기태 먼저 일어나면, 지점장 인사하며 일어나 나간다.

지점장 그럼 다음에 꼭 좀 생각해주십시오.
기 태 나중에 봅시다.

지점장 나가면 문을 닫는 민수.

기 태 자식들 귀찮아 죽겠네.
민 수 뭔데? (소파로 오는)
기 태 은행. 거래지점을 바꿔 달라고 해서. 똑같은 은행인데 왜 지들끼리 귀찮게 경쟁을 하는지 모르겠다.

민수 앉으면, 그 앞에 기태가 내미는 돈봉투.

기 태 자. 한몫에 다 주긴 뭐하고 해서, 일단 필요한 정도만 넣었다. 급한 대로 먼저 처리해라.
민 수 (실망) 그래...
기 태 어차피 내가 다 해줄 건데 신경 쓰지 마라. 앞으로도 돈 들어갈 일 많을 텐데, 
       그때그때 어려워 말고 얘기해.주저하지 말고.
민 수 고맙다.
기 태 그건 그렇고, 오늘 있다가 술 한잔하자. 오랜만에 기분도 그렇지 않은데. 
      그 동안 너 없으니까 그런 데 가본지도 오래됐고, 
      곧 약혼하고 결혼까지 하고 나면 꼼짝도 못할텐데, 미리미리 저축 좀 해놔야 되지 않겠냐?

그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돈봉투 만지며, 미소짓는 민수.

S# 9 카페 앞 (낮)

조심스러운 기분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 희정.

S# 10 카페 안 (낮)

들어오는 희정, 둘러보다 소영을 발견하고 가서 앉는다.

희 정 바쁠텐데, 나오라고 해서 미안해요.
소 영 아니에요. 무슨 일이에요?
희 정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소 영 뭔데요...?
희 정 실은... 옛날에 서연주라는 친구 말이에요.
소 영 네...
희 정 실은 그 연주씨라는 분이 사귀는 남자가 제가 잘 아는 오빠거든요. 우리오빠랑 친한 친구예요.
소 영 그래요? 연주 사귀는 남자가 정말 아는 오빠예요?
희 정 네. 근데 그 오빠 결혼한다던데, 연주씨한테 그런 얘기 들으셨어요?
소 영 결혼이요...? (고개를 저으며) 글쎄요... 걔 지금 결혼할 상황이 못될텐데...
희 정 왜요?
소 영 걔 지금 많이 아파요. 병원에 있는데...?
희 정 아파요...? 어디가요?
소 영 왜 그러세요? 혹시 그 남자하고 무슨...
희 정 아니에요. 제가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친구분께 나쁘게 하진 않을 게요. 말씀해주세요. 어디가 아픈데요?

머뭇거리는 소영을 보며, 의아한 희정.

S# 11 병원 방사선 치료실 (낮)

방사선 치료를 받는 연주.
본격적인 항암치료를 받는 연주의 모습들. 몽타주.

S# 12 병실 (낮)

기진맥진해서 힘들게 침대에 눕는 연주.

간호사 혈소판 수혈이에요.

지친 연주, 팔만 내주면 알아서 하는 간호사.
연주 물끄러미 있다가 간호사를 보며 묻는다.

연 주 언니, 저 맞은편 방 남자애는 무슨 병이에요?
간호사 뇌종양이요.
연 주 나이도 어린데...
간호사 몇 년 됐어요. 수술도 여러 번 받았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요.원래는 참 짓궂고 재밌는 앤데... 개그맨 되고싶대요.
연 주 그래요... 언니, 나 치료 이거 해도 골수 못 받으면 어떡하죠?
간호사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요. 연주씨는 지금이 굉장히 중요해요.
잘될 거니까 걱정 말아요. (나간다.)

연주 불안하고 불길한 기분이 든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넘기는 손이 파르르 떨린다.
힘들어서 그대로 눈이 감기는 연주.

S# 13 고급 식당 앞 (낮)

커다란 창을 통해 보이는 식당 안의 한 테이블.
기태가 국회의원정도로 보이는 남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있다.
그 창 밖 식당 앞에 세워져 있는 기태의 차안에는 기다리는 민수의 모습이 보인다.

S# 14 희정방 (밤)

혼자 서성이며, 생각에 빠져있는 희정.

소 영 (E) 연주 지금 결혼할 상황이 못돼요. 그 남자가 하자고 해도
아마 안 할 걸요. 혈액암에 걸려서 투병 중이거든요. 처음엔
돈 없어서 치료도 안 받으려 했는데... 다행히 그 남자가
능력이 있어서 치료비를 대고 있대요.
민 수 (E) 사랑할 시간이 부족할 뿐이야.

희망을 가질 수도 없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의 희정.

S# 15 병원 복도 (밤)

간호사들에게 인사를 하며 들어서는 정애.
손에는 순대와 떡볶이 봉지가 들려있다.

S# 16 병실 (밤)

정애와 연주, 떡볶이와 순대를 먹고 있다. 연주는 우울한 상태.

정 애 야근하는데 졸려서 죽는 줄 알았다.
연 주 그럼 그냥 집으로 가지, 뭐 하러 나왔어. 나와서 두 시간도 못 있다 갈 거.
정 애 괜찮아. 왜 맛이 없어?
연 주 (젓가락 놓으며) 입맛이 없네.
정 애 그럼 괜히 사왔네? 난 동식오빠가 저녁 사줘서 먹고 왔는데.치울까?
연 주 (끄덕인다.)
정 애 (치우며) 참, 동식오빠가 니 병원비 모금하고 있어.
연 주 미쳤나봐? 그런 걸 뭐 하러 해? (순간 신경질 내놓고 자기도 놀란다.)
정 애 (놀라서) 왜 그래... 너 도와줄려고 그러는 건데?
연 주 미안해. 피곤한가봐. 나 누울게.
정 애 오늘 치료 힘들었구나...

정애 배게 고여주고, 이불 덮어준다.
이때 전화 오면, 연주 쳐다보고, 정애가 받는다.

정 애 여보세요? 네, 잠깐만이요. (연주에게 주며) 민수씨.
연 주 (받으며) 민수씨? 지금 어디야?

S# 17 나이트 클럽 일각 (밤)

핸드폰 통화를 하고있는 민수.

민 수 전화가 늦었지? 미안해. 누굴 좀 만났는데, 술 한잔하다보니 그렇게 됐네.
연 주 (E) 왜 안 와?
민 수 어... 일 때문에... 검찰에 있는 사람 좀 만났어. 내가 부탁하는 입장이고 그래서, 술자리가 좀 길어질 거 같은데, 어떡하지?
연 주 그럼 못 들어와?
민 수 아니, 많이 늦어질지도 모르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구.
연 주 그냥 빨리 오면 안돼?

이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태가 부른다.

기 태 뭐하냐?
민 수 (급하게, 전화) 최대한 빨리 갈게. 연주야, 지금 통화 오래 못하니까, 나중에 들어가서 얘기하자. 그만 끊어.

전화를 끊은 민수, 얼른 나이트 클럽으로 들어간다.

S# 18 병실 (밤)

연 주 민수씨! 민수씨!

섭섭하게 수화기를 정애에게 주는 연주.

정 애 왜? 못 들어온대?
연 주 아니야...

S# 19 나이트 클럽 (밤)

기태와 민수 테이블에 앉아있다. 기태 여자 둘이 온 테이블을 유심히 보고 있다.
기태는 술을 마시고, 민수는 콜라를 마신다.

기 태 나 혼자 마시면 무슨 재미냐? 차 기사 불러서 가게 술 마셔라.
민 수 아니, 됐어. (콜라 보이며) 술같이 생겼잖아.
기 태 그래도 마셔 임마. (마시고 술잔 주며) 자.
민 수 (술잔 받는다.)
기 태 (술 따르며) 오랜만에 왔더니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너도 그렇지?
민 수 음.
기 태 저쪽에... 쟤들 어떠냐?
민 수 응? 누구?
기 태 둘이 온 애들. 잘 놀게 생겼는데, 어때?
민 수 (보며) 뭐, 괜찮은데. (하지만 앉아있다.)
기 태 뭐 하냐? 가만히 있으면 재네가 지발로 오냐?
민 수 어... (그제야 일어난다.)

맘에 들지 않지만, 할 수 없이 여자들 테이블로 가 서는 민수.

민 수 안녕하세요! 잠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합석해도 될까요?

여자1,2 자기들끼리 뚱하니 마주 볼 뿐 고개 돌린다.

민 수 두 분이 오셨나봐요? 저희도 둘이거든요. 제가 술 한잔 대접하고 싶은데... 어떠세요?

여자1,2 아무 반응없이 다시 자기들끼리 마주본다.
민수 고전을 면치 못하자 빙긋이 웃으며 보고 있는 기태.
여자2는 고개 돌리고, 여자1이 민수를 쳐다보자,

민 수 (여자1에게 공략하며) 학생이신 거 같은데, 여기 자주 오세요?
여 자1 가끔요.
민 수 (앉으며) 두 분이서 심심하실 거 같은데... 제가 재미있게
해드릴게요. 친구분이 맘에 안 드시나...? 저 친구도 괜찮아요. 가셔서 같이 술 한잔하세요.

여자들 기태쪽을 본다.
민수쪽을 물끄러미 보며 술을 마시는 기태.
이윽고 여자1,2를 데리고 오는 민수.
기태 일어나 여자들에게 자리 권하며 민수를 보고,
여자들 가벼운 목례하며 쑥스럽게 앉는다.

민 수 (얼른 여자들에게 너슬레) 한잔하시죠. 저는 장민수라고
하고요... 이쪽은 제 친구 최기태라고 합니다. 받으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민수를 보는 기태의 표정.

S# 20 병실 (밤)

누워있는 연주와 무료하게 앉아있는 정애. 둘 동시에 시계를 본다.
1시가 훨씬 넘어있는 시각.

연 주 너 그만 들어가라. 너무 늦었다.
정 애 아까 온다고 하긴 했어?
연 주 응.
정 애 그럼 올 때까지 그냥 있을 게.
연 주 일찍 출근해야 되잖아. 얼른 가.
정 애 너 어떻게 혼자 두고 가? 괜찮으니까 그냥 둬.

둘 다시 말없이 있다가,

정 애 전화라도 한통화 해주지 뭐 이러냐?
연 주 아까 가래니까 왜 안가고 이래? 그냥 가!

정애, 연주를 본다. 연주 시선 피한다.

정 애 (일어나며) 알았어. 갈게.
연 주 미안해. 조심해서 가.
정 애 그래.

안좋은 기분으로 나가는 정애. 연주 불안한 표정.

S# 21 달리는 차안 (밤)

커다란 음악. 운전을 하는 민수. 그 옆에 기태, 뒷좌석엔 여자1, 2가 앉아있다.
여자1은 콤팩트 열어 얼굴 손질하고, 여자2는 음악에 맞춰 까딱거리고 있다.
민수를 빼고는 모두 적당히 취한 상태. 기분들이 좋다.

민 수 (백미러 속으로) 아까 말했다. 오늘 빼고 그러기 없다고!
여 자1 오빠들이나 시시하게 그러지 마세요.
민 수 (기태에게) 어디로 갈까?
기 태 니네 가고 싶은데 있냐?
여 자1 오빠들이 정하세요.

웃는 기태.

민 수 (맘에 안든다는 듯 기태 보면서도) 진짜 우리 맘대로 해도 되니?
여 자2 (동시에) 네.
여 나1 (동시에) 알아서 하세요.
민 수 어떻게 할까?

기태 씩 웃으며 눈짓하면, 말없이 운전하는 민수.
민수 슬쩍 시계를 본다. 그런 민수를 보는 기태.

S# 22 호텔 로비 (밤)

체크인을 하고 키 두 개를 받아 돌아서는 민수.
이때 핸드폰이 울리면 받는다.

민 수 여보세요?
연 주 (E) 민수씨...? 아직도 안 끝났어?

기태와 여자2가 팔장을 끼고 있고, 여자1이 기다리고 있다.

민 수 (가다가 멈춰서며) 어, 미안해. 어떡하냐. 술자리가 더 길어질질 거 같은데?
연 주 (E) 그럼 언제 와?
기 태 뭐하냐? 빨리 와라.
민 수 (손 들어보이며) 글쎄. 내가 먼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S# 23 병실 (밤)

전화기를 붙들고 웅크리고 누워있는 연주. 불안하다.

민 수 (E) 오늘 치료 많이 힘들었구나.
연 주 ....
민 수 (E)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연 주 잠이 안 와.

S# 24 호텔 로비 (밤)

민 수 그래, 알았어. 빨리 끝나는 대로 갈게.

찝찝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고는, 돌아서는 민수.
돌아서면서는 웃으며 간다.

S# 25 병실 (밤)

전화를 끊고는 더욱 불안하게 웅크리고 누워있는 연주.
원망도 되고, 화도 난다.

S# 26 호텔 복도 (밤)

기태와 여자2, 민수와 여자1이 걸어온다.
다소 썰렁한 분위기로 들어오는 네 사람.
민수 방 앞까지 와서 기태에게 키를 넘겨준다.

기 태 나중에 보자.

민수와 여자1이 옆방으로 걸어오는 동안
기태와 여자2,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민수 기태가 들어간 걸 확인하고, 방 앞까지 와서는 멈춰서서 잠시 머뭇거리자,

여 자1 왜요?
민 수 아니야. (문 연다.)

들어가는 민수와 여자1.

S# 27 호텔방 (밤)

들어오는 민수와 여자1.
민수 피곤한지 한숨을 쉬며 옆방 쪽을 보는데,

여 자 (민수를 끌어안으며) 오빠, 뭐해?
민 수 (떼어놓으며 신경질) 야, 야. 됐어. 피곤하게 이러지 마. 난 갈 테니까. 넌 자고 가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라.
여 자 웃기는 오빠 다 있네?
민 수 그래, 나 웃기게 살았다. 너도 이렇게 살지 마라. (갈려고 하는데)
여 자 뭐? 기분 드럽네 증말. 그럼 넌 여기까지 뭐 하러 왔냐?
민 수 충고하는데, 사람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거 좋지 않아. 빨리 깨닫는 게 니 인생에 좋을 거다.

그대로 나오는 민수. 꼬운 표정으로 고개 돌리는 여자가 보인다.

S# 28 거리 인써트 (밤)

S# 29 택시 안 (밤)

뒷좌석의 민수.
피곤한 듯 와이셔츠며 양복 깃을 툭툭 털다가, 생각이 난 듯 안주머니에서 돈봉투를 꺼낸다.
봉투 안을 보고는 다시 넣는 민수.

S# 30 병원 복도 (밤)

모두가 잠든 조용한 복도. 걸어 들어오는 민수.
한 병실에서 고통의 신음소리가 스친다.

S# 31 병실 (밤)

들어오는 민수. 쳐다보지 않고 뚱하니 있는 연주.

민 수 (자켓 벗으며, 껄끄러운) 아직 안 잤어? 기다리지 말고 자라니까.
연 주 .....
민 수 (양말도 벗는) 잠을 자야 치료도 받는 건데, 이러면 내가 미안하잖아.
연 주 (일어나 앉으며) 뭐야? 혼자 내버려두고? 일이 그렇게 중요해?
민 수 미안해. 어쩔 수가 없었어.
연 주 여자 냄새도 나는 거 같다?
민 수 어, 술집에서. 별 거 아니야.
연 주 이럴려구 나 여기 데려왔어? 병원에만 데려다 놓으면 다야?
민 수 미안해. 미안하니까 그만 하자. 몸에 안 좋아.
연 주 내 몸 걱정하면 이럴 수 있어? 내가 그 사이에 어떻게 되기라도 했으면 어쩔 테야?
민 수 너 왜 이러니? 일부러 그런 거도 아니잖아. 미안해하고 있는데, 왜 이래?

민수 화를 내놓고 참담하다.
연주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표정이 일그러진다.

연 주 나 겁나... 죽을까봐 겁나. 어제 새벽에 요 옆방 사람 영안실로 내려갔대... 자기도 없을 때 나 죽으면 어떡해...
민 수 너 그러면 안돼. 왜 약해지고 그러니?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데, 니가 이래?

우는 연주.
연주를 안아주는 민수.

민 수 나 지금 이러는 거, 너 하나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니가
약해지면 난 뭐니? 나 너하나 믿고 이러는데. 약해지면 안돼.
너 약해지면 우린 다 끝이야. (잠기는 목소리) 알았어?

민수의 볼에도 눈물이 흐른다.
연주를 안고 소리 없이 우는 민수.

S# 32 병실 (밤)

어둠 속에 앉아 자고 있는 연주를 보고 있는 민수.

S# 33 기태집 전경 (낮)

S# 34 동 거실 (낮)

들어서는 민수.

민 수 안녕하셨어요?
기태모 왜 이렇게 늦게 왔니? 올라가 봐라.
민 수 예.

2층으로 올라가는 민수.
민수를 곱지 않게 보는 기태모.

S# 35 2층 기태방 앞 (낮)

민수 올라오면, 방에서 나와 내려가던 희정과 마주친다.
서로 어색하다.

민 수 오랜만이다.
희 정 음.

희정 착잡하게 시선 피하고 내려간다.
희정을 돌아보고는 기태방으로 들어가는 민수.

S# 36 기태방 (낮)

민수 들어오면, 기태는 휘파람을 불며 넥타이를 매고 있다.

기 태 왔니? 이 거 괜찮냐? (다시 풀까하며) 너무 튀지 않나?
민 수 괜찮은데.
기 태 그래? (마저 맨다.) 양복은 어떠냐?
민 수 신경 좀 쓴 모양이다?
기 태 그럼. 윤경이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만 볼 텐데, 이런 날 신경 안 쓴 듯이 좀 써줘야 되는 거 아니냐? (향수
뿌리며) 자켓 좀 주라.
민 수 (뒤에서 자켓 입혀주면)
기 태 (기분 좋게 입으며) 같이 데리고 살 여자는 확실히 폼도 좀 나고 그래야 돼. 괜히 나까지 기분이 좋다 야. 가자.

민수 나가는 기태를 본다.

S# 37 기태집 거실 (낮)

기태와 민수 내려오고, 커피를 뽑아든 희정 올라오다가 계단초입에서 스친다.
민수와 희정 말없이 그냥 지나치자

기 태 니네 왜 인사도 안하냐?
민 수 아까 했어.

희정 돌아보고는 그냥 가려는데,

기 태 너 끝까지 고집 피우지? 정말 안 갈 거야?
희 정 됐어, 난.
기 태 그럼 새 언니 될 사람을 약혼식날 처음 볼 작정이냐?
기태모 (부엌에서 나와) 놔둬라. 나중에 나랑 따로 가지, 뭐.

희정은 2층으로, 민수와 기태, 기태모는 현관으로 향한다.

기 태 참 꽃은 준비했지?
민 수 어? 무슨 꽃?
기 태 아이, 참. 그럼 그냥 갈 거야? 늦었는데, 그런 거 미리미리 준비했어야지?
민 수 어제 화환만 보내라고 하고, 그런 얘긴 안 했잖아.
기 태 짜증나네 정말? 내가 따로 얘기 안 해도, 오늘 간다
그랬으면, 딱딱 알아들어야지. 그런 거 가지고 가는 거 당연한 거 아니냐? 미리 하나 딱 준비를 못해?

2층으로 올라가다 보고 있는 희정.

민 수 갈 때 잠깐 들리면 되잖니.
기태모 그래, 그런 건 밑에 사람이 알아서 해줘야지, 어떻게 일일이
위에서 신경을 쓰니? 할 일도 많은 사람이. 민수 니가 각별히 신경 좀 써라. 이 사람 옛날하곤 달라. 특히 다른
사람들 듣는데 친구처럼 반말하고 그러지 마라. 너부터 주의좀 해.
민 수 네. 그러겠습니다.
기태모 그리고, 넌 오늘 운전만 해라. 괜히 같이 따라 들어가지 말고.
민 수 네.

2층에서 내려다보는 희정.
이때 전화벨 울리면 잘 갔다오라는 손짓하며, 급히 달려가는 기태모.
민수 문 열어주면, 기태 나가고,
밖에서 다시 문 닫으면서 희정과 눈이 부딪치는 민수.
희정의 표정이 좋지 않다.

S# 38 병실 (낮)

정애, 연주의 머리를 빗기고 있다. 연주는 창백하고 기운이 없는 것.
이때 머리카락이 한 웅큼 빠지자 얼른 몰래 치우는 정애.
이때 과일바구니를 들고 들어오는 소영.

연 주 어머, 소영아...
소 영 연주야... 괜찮니?
정 애 왔어요?
소 영 정애씨가 수고가 많네요. (연주에게) 어때? 의사는 뭐래?
연 주 좋아지고 있대.

정애의 표정은 착잡하다.

소 영 (정애에게) 정말이에요?
정 애 네...
소 영 내가 정애씨한테 진작에 얘기했어야 되는 건데...
정 애 됐어요. 다 지난 일이잖아요.
소 영 여기도 좀 와있어야 되는데, (정애에게) 미안해서 어떡해요?
정 애 결혼준비도 바쁠 텐데요, 뭘...
연 주 아 참, 어떻게 됐어? 언제야?
소 영 .... 다음주 일요일.
연 주 축하한다.
정 애 축하해요.
소 영 고마워요. 넌 이러구 있는데, 미안하다.
연 주 뭐가. 곧 내가 못해본 애기까지 날 거면서. 몇 시에 어디야? 적어놔야겠다. 볼펜 줘봐.
정 애 (볼펜을 집어준다.)
소 영 뭘 적어. 니가 어떻게 온다구. 됐어.
연 주 왜? 말해봐. 내가 가야지. 몇 시에 하는데?
소 영 아이, 참... 됐다니까. 미안하게 자꾸 왜 그래.
연 주 알려줘. 너 결혼하는데 내가 안 가볼 수 있니? 창문으로 도망가더라도 간다.
정 애 그래요. 연주 못 가면 나래두 대신 갈게요.
소 영 2시에 그냥 아는 카페에서 해.
연 주 어디?
소 영 (한숨) 학교 앞에 민들레 영토라고 있잖아. 거기.

연주 적어서 주면, 정애 탁자 위에 놓는다.

연 주 (소영을 보며) 그러고 보니 배도 좀 부른 거 같다. 좋겠다...

부러운 듯 소영을 보며 웃는 연주. 그런 연주를 보는 정애.

S# 39 미술관 전시실 (낮)

디자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
기태 들어서면, 민수 뒤에서 꽃을 들고 따라간다.
윤경, 다른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기태를 발견하고 온다.

윤 경 기태씨. (민수에게 인사) 민수씨도 오셨네요?
민 수 (고개인사만)
기 태 (민수에게 꽃다발 받아서 윤경에게) 축하해. 보기 좋다.
윤 경 고마워요.
기 태 근사한데? 이게 다 윤경이 머릿속에서 나온 작품인가?
윤 경 쑥스럽게 왜 그래요. (뒤로 빠져있는 민수에게) 정신도 없을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여자친군 좀 괜찮아요?
민 수 덕분에 좋아지고 있습니다.
윤 경 그래요. 다행이네요. 언제 병문안이라도 가야 되는데...

문득 민수를 보는 기태. 민수 얼른 기태 눈치 알아차리고,

민 수 괜찮아요. 여기 일도 많을 텐데요. 신경 쓰지 마세요.
윤 경 그래두요. 시간 내서 꼭 가봐야죠. 기태씨, 오늘 저녁 때 어때요? 잠깐 가보죠?
기 태 난 오늘은 좀 곤란할 거 같은데?
윤 경 그럼 내일 갈까요?
기 태 글쎄... 내일도 지금 약속을 하기가 좀 그렇네?
윤 경 잠깐 들르는 건데 뭘 그래요? 그러지 말고 시간 내봐요.
민 수 천천히 오세요. 다음에 여유 있을 때 천천히...
기 태 그래, 무리 할 거 뭐 있어? 앞으로 시간 많은데...
윤 경 그래도 소식들은 지가 언젠데, 말이 되는 소리예요?
기 태 아 참, 면회 안 된다 그랬지?
민 수 요즘 면회를 제한하고 있어요. 보호자만 되고... 못보고 가실수도 있으니까 다음에 오세요.
윤 경 그래요...? (이상하다는 듯 기태와 민수를 본다.)

S# 40 전시관 앞 (낮)

나와서 차로 향하는 기태와 민수.

기 태 윤경이 병원엔 절대 안 된다. 그러다 정애라도 부딪치면 곤란해.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큼은 막아.
민 수 염려 마.
기 태 이거 계속 골치 아프게 생겼네? 넌 왜 하필 연주하고 그러냐? 여자애도 많은 데?
민 수 (기태를 볼 뿐. 차안으로 들어간다.)
기 태 (차안으로 들어오며) 뭐 하러 그런 애랑 결혼까지 할려고
그래? 결혼이라도 하면 꼼짝없이 보게 될 텐데, 난 아주
껄끄럽다. 헤어지는 게 제일 좋은데... 병원비만 대주고
헤어지든지.
민 수 (무시하며) 이제 어디로 가면 되지?

출발하며 가는 차.

S# 41 차안 (낮)

민수 운전하고 있고, 나란히 앉아있는 기태.

기 태 참 그 친구는 잘 있냐?
민 수 누구?
기 태 트럭 몬다는 친구. 사무실에 한번 왔었던.
민 수 대호.
기 태 음. 가끔 그 친구 생각이 난다.
민 수 그땐 진짜 미안했다.
기 태 아, 아니. 그런 얘기 듣자고 그런 건 아니고, 그땐 기분나빴는데 멋있는 친구다, 그 친구. 의리 있더라. 그런 친구
있다는 거도 부럽고. 생각난 김에 한번 만나자.
민 수 ....?
기 태 니가 자리 한번 마련해라. 한번 보지, 뭐.
민 수 뭘 만나냐.
기 태 왜? 니 친구면 나하고도 친군데, 한번 풀어야지. 안 그래? 말나온 김에 빠른 시일 내에 한번 보자.
민 수 연락해봐서 되면.
기 태 그러지 말고 나오라 그래. 내가 보고 싶다고. 술 한잔살테니까, 자리 한번 마련해라.

대답 없이 운전만 하는 민수.
그런 민수를 보는 기태.

S# 42 병원 휴게실 (밤)

다른 환자와 보호자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연주.
맞은 편에 명석이 손안에 오락기를 가지고 무료하게 하고 있다.
엄마로 보이는 보호자가 명석에게 아이스크림을 프라스틱 스푼으로 떠먹이고 있다.

정 애 (자판기 커피를 들고와 앉으며) 갑자기 무슨 커피야.
연 주 너랑 공장 뜰에서 마시던 생각이 나서 그래.
정 애 (눈총주며 건네주는) 조금만 마셔.
연 주 음, 좋다. 이 냄새. 정애야,
정 애 응?
연 주 내가 커피 왜 좋아하는 줄 알아?
정 애 왜?
연 주 커피는 사람하고 이야기를 하게 해주거든. 근데 나 공장에서 누가 차 한잔하자 그러면 기겁을 하고 내뺐다. 
      생각해보니까 너 말고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 커피 한잔을 안 했어.
      정말 잘못 산 거 같애. 그 사람들 이름하고 얼굴 말고는 아는 게 없잖아. 난 헛똑똑이야. 멍청해.
정 애 이제부터 여기서 나가면 잘하면 되지, 뭘.
연 주 맞아. 그럴래. 정말 그러고 싶어...!

그러면서 물끄러미 다시 명석을 보는 연주.
명석도 힐끔 시선 느끼고 연주를 본다. 서로 시선을 피하는 두 사람.

정 애 민수씨 바쁘면 내가 휴직이라도 할까?
연 주 미쳤어. 너 내가 이러고 있다고 성질 다 죽은 줄 아니?
정 애 낮에 혼자 있는 게 걸려서 그렇지.
연 주 괜찮아.
정 애 민수씨 요즘 너무 밖으로만 도는 거 같애. 어제도 늦었지?오긴 왔어?
연 주 왔어.
정 애 그 사람 너 너무 혼자 놔두는 거 아니니? 봐, 오늘도 아직 전화 없잖아.
연 주 아니야. 걱정 말어.

하면서 불안한 표정의 연주.

S# 43 대포집 (밤)

민수, 대호에게 술을 따라준다.

민 수 나 안 볼 참이었냐? 진짜로 연락 없더라?
대 호 만나봐야 깝깝한 얘기 밖에 더하냐.

민수 술잔 내밀고 둘 잔 부딪치고 마신다. 민수 잔 내려놓으며 대호를 본다.

민 수 대호야. 나 사실은 여자친구가 병원에 입원해있다.
대 호 어디가 아픈데?
민 수 많이 안 좋아. 백혈병이다.
대 호 (놀라며) 백혈병? 그거 죽는 거 아니냐?
민 수 치료 못하면 얼마 못살아. 그래서 내가 병원비를 대느라고,기태한테 돈 갖다 쓰고 있다.
대 호 뭐? 이런 미친놈. 그걸 왜 니가 해!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그런 여잘 왜 만나고 있어? 아휴, 이런!... (말문이 막히는)
민 수 일단 살려놓고 봐야지. 살기만 하면 내가 뭐든지 해서 그거 못 갚겠냐.
대 호 한 두 푼도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들어갈 텐데? 어떡 할려
그래? 너 여자 하나 때문에 니 인생 망칠려고 그러냐?
민 수 나 그 여자 죽는 거 못 보겠다. 다른 건 생각 안 해. 이
세상에 그 여자 없는 거보다 있는 게 더 좋다. 참 아까운
여자야.
대 호 제발 답답한 소리 좀 하지 마라. 사랑 그거 평생 갈 거 같지.
그렇지 않아! 병수발 3년에 쌀 떨어지고 빚만 느는데, 효부효자가 어딨냐? 너 중간에 그 여자 싫어지고, 병원비 대는
거 힘들어지면 어떡할려고 그래? 당장 헤어져라. 당장!
민 수 나 그럴 수 없다. 그렇게 못해. 싫어.
대 호 당장은 야속하고 냉정해도 그게 좋아. 그 여자도 그렇고. 그 여자 너 이러는 거 아냐?
민 수 (고개 젓는) 알면 안돼. 치료 안 받을 거야. 모르게 해야 돼.
끝까지.
대 호 아이, 자식! (술 마신다.)
민 수 대호야, 나 행복해. 아무리 힘들어도, 그 여자 얼굴 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게 기쁘다.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거. 이
여자를 위해서. 그거 참 기쁘다. 다른 사람들 이해 못해도
상관없어. 나 행복해.
대 호 .....
민 수 그래서 말인데, 부탁하나 하자. 기태 한번만 만나주라.
대 호 (어이가 없는) 뭐? 그 재수 없는 자식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데, 만나서 사과라도 하라는 거냐?
민 수 나 한번만 도와줘. 쉽진 않을텐데, 그 자식이 어떻게 나와도 꾹 참고, 한번만 만나주라. 그냥 날 위해서.
대 호 .... (괴로운 표정으로 술 마신다.)

그런 대호를 바라보는 민수.

S# 44 기태방 (밤)

음악을 듣고 있는 기태.
들어오는 희정. 기태가 듣고 있던 음악을 끊다.

기 태 너 뭐하는 짓이야?
희 정 왜? 내려가서 안방까지 차지하지 그래?
기 태 뭐?
희 정 어떻게 그렇게 엄마랑 죽이 잘 맞냐? 도대체 속셈이 뭐야?
민수오빨 굳이 데려다가 그렇게 짓밟아서 오빠가 얻는 게 뭐야?
기 태 너 뭐 착각하는 모양인데, 민수 내가 데려온 거 아니다. 지 입으로 내 밑으로 들어오겠다고 한 거야.
희 정 오빠가 제주도일 뺏어서 그렇게 만든 거잖아. 민수오빠 제주도일, 그건 아버지가 주신 거야, 분명히. 그것도 그냥이
아니라, 아버지가 뼈아프게 미안해하시면서. 왜 오빠 맘대로 했어?
기 태 니가 신경 쓸 일 아니다.
희 정 민수오빤 죽어 가는 여자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그러는 건데, 오빠는 그런 순수한 사람 겨우 돈을 빌미로 붙잡아서
그렇게 치사하게 만들어야 돼?
기 태 공짜가 어딨냐. 살려줄 사람은 이 세상에 많아.
희 정 맞아. 세상엔 없어져야 될 사람도 많아.

나가버리는 희정. 벌떡 일어서는 기태.

S# 45 병실 (밤)

연주와 정애 들어와 보면, 기태가 보내온 화분이 놓여있다.

연 주 (침대로 올라가며) 뭐야?
정 애 (등에 배게 고여 연주 앉히는) 누구 화분 보낼 사람 있어? 잘못 온 거 아닌가? 어디...

정애 쪼그리고 보면,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최기태" 라고 적혀있는 리본이 보인다.
말없이 일어나는 정애. 핸드백 챙긴다.

연 주 뭔데? (하면서 보고는) 밖에다 내다놔라.
정 애 됐어. 괜찮아. 민수씨 오면 봐야지.
연 주 내가 얘기할게. 내다 놔.
정 애 (신경질) 괜찮대니까. (나직이) 민수씨 그 사람네 일도 하고 있는데 그냥 놔둬. 나 갈게.

정애 가방 챙겨 나가는데,
이때 들어오는 민수. 술에 취해있다.

정 애 왔어요? (연주를 향해) 내일 보자.
연 주 조심해서 가.
민 수 벌써 가요? (반응 없이 나가자) 수고했어요! (연주에게) 왜
난 쳐다도 안보고 가지?
연 주 (화분 눈짓하며) 기태씨가 보냈어.
민 수 (떨떠름한) 그래?
연 주 또 술 마셨네?
민 수 음. 조금. (자켓 벗어 놓는다.)
연 주 조금이 아닌데? 요즘 일은 잘 돼?
민 수 잘 돼.
연 주 근데 왜 술만 마셔? 점점 자주 그러네?
민 수 일하다 보면 마셔야 돼.
연 주 기태씨랑은 어때?
민 수 뭐가?
연 주 이상하잖아. 그 사람 전화만 오면 한밤중에도 달려나가고.
민 수 일 때문에 그런 거야.
연 주 일을 새벽에도 해? 두 사람 좀 이상해.
민 수 (버럭) 뭐가 이상해!

순간 쳐다봤던 시선 피하는 민수.

민 수 참, 공테입 사다달라 그랬지? 사 가지고 올게.

자켓 들고 나가는 민수.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연주.

S# 46 빌딩 전경 (낮)

S# 47 기태 사무실 (낮)

민수와 기태 마주 앉아있다.
민수 비굴한 처지지만, 기태를 똑바로 응시하며 얘기한다.

민 수 참, 화분 잘 받았다. 뭘 그런 걸 보내고 그랬니.
기 태 내가 바빠서 가보지도 못하고, 미안해서. 좋은 걸로 보내라 그랬는데, 괜찮디?
민 수 응...
기 태 연주씨가 보고 좋아했어야 되는데... 치료는 잘 되니? 그게 쉽지가 않다고 하던데?
민 수 잘 돼.
기 태 그럼 다행이고. 나도 도와준 보람이 있어야 되잖니.

기태를 보는 민수.

기 태 참, 내일 제주도에 내려가야 되는데, 알고 있지?
민 수 내일...? 그렇게 빨리?
기 태 우리가 본격적으로 사업인수 받아야지. 윤변호사님 벌써
내려가 계신데, 여기 상속세 처리하고 그러느라고 사실 좀 늦어졌지.
민 수 얼마나 있어야 되니?
기 태 이번에 가면 오픈 날까지 계속 있을 거다. 일이 많아.
민 수 내가 꼭 가야 되나?
기 태 당연하지. 너 호텔일 안 할 거냐? 나랑 같이 하기로 한 거잖아.

민수 생각이 복잡하다.
기태 민수를 본다.

민 수 (일어나며) 그래, 알았어.

S# 48 민수 사무실 (낮)

민수 들어오면, 창 밖을 보고 있던 희정이 돌아본다.

민 수 니가 여긴 웬일이니?
희 정 나 정말 오빠 이해 못하겠어. 하지만 도와줄게. 그 돈 내가
대신 해줄게. 기태오빠 밑에서 그러지 마. 나 더 이상 오빠
그러는 거 못 보겠어.
민 수 무슨 소리냐?
희 정 나 서연주씨 친구 만났어. 우리 학교 다닌다는. 오빠 그 여자
병원비 대느라 돈 필요한 거잖아. 이럴 필요 없어. 아버지도
이런 거 원하신 거 아니야. 아버지가 내 몫으로 남기신 거
달래서 오빠 줄게. 오빠 그 망나니 밑에서 이러고 살지 마.
민 수 고맙다. 고마운데, 니 돈은 받을 수가 없다. 내 마음 그
여자한테 있어. 그건 곤란해. 잘 알지?
희 정 나 솔직히 그 여자만큼 억울해. 그 여자 죽길 바랄 수도
없잖아. 죽어간다는데 질투를 할 수도 없고, 오빠한테 내
감정 호소해서 오빨 괴롭힐 수도 없고, 됐어. 그런 거 모두
접을게. 오빠한테 어떤 조건도 걸지 않을게. 단지 오빠
이러는 거 더 이상 보고싶지 않을 뿐이야.

S# 49 병실 (낮)

황박사와 간호사가 와있고, 연주 누워있다.

황박사 수치가 다시 떨어지고 있어요.
연 주 정말이요?
황박사 생각보다 기대 이상으로 호전되고 있으니까 정말
다행이에요. 백혈구를 일부러 감소시키는 거니까, 저항력이
떨어질 거예요. 다른 감염을 조심해야 되요. 수시로 체크를
하겠지만, 열이 나거나 하면 바로 알려야 됩니다.
연 주 네.
황박사 밥도 잘 먹지요?
연 주 네. 억지라도 다 먹어요.
황박사 그래요, 입맛도 떨어지고 구토 증상도 있고 할텐데,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돼요. 마음 편히 먹고. (가려는데)
연 주 저 선생님! 머리가 자꾸 빠지는데... 어떡하죠?
황박사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약물요법만 끝나면 금방 또 나니까.
연 주 그래요?

황박사와 간호사 나가고, 연주 모처럼 활짝 웃는다.

S# 50 민수 사무실 (낮)

희 정 이건 정말 옳지 못해. 아버지가 주신 디스코텍도 자기
맘대로 처리해버렸잖아. 아버질 대신해서, 디스코텍
대신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그냥 받겠다고 해.
민 수 됐다. 더 이상 너 괴롭히고 싶지 않아. 나 어떻게 되든
잊어버리고 니 갈길 가라. 이게 내가 너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우정이고... 생각 같아선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할 뿐이다.
희 정 바보. 사람 마음을 그렇게 모르니? 오빠가 이러는 게 날 더
괴롭히는 거야.
민 수 그래도 네 돈은 받기가 곤란해. 너한테 도리가 아니다.
희 정 정말 왜 이래? 그럼 만에 하나, 해도해도 안됐는데 그 여자
잘못되면, 그때 오빠한테 나 밖에 없는 거로 하면 안돼?! 정
걸게 없으면 그런 거라도 좋아. 그냥 그렇게 해줄 수는 없어?

민수, 희정을 본다.
희정, 흔들리는 시선을 피한다.
이때 정적을 가로고 전화벨이 울린다. 받는 민수.

민 수 여보세요.
연 주 (E) 민수씨?
민 수 (희정 눈치보며) 어, 웬일이야? 무슨 좋은 일 있었구나?

S# 51 병실 (낮)

전화하고 있는 연주.

연 주 음. 박사님 오셨다 가셨는데, 수치가 팍 팍 떨어지고 있대.
민 수 (E) 그래? 잘됐네.
연 주 그런데 한가지 안 좋은 소식도 있어.

S# 52 민수 사무실 (낮)

전화통화를 하는 민수의 모습을 보는 희정.

민 수 (심각해지며) 뭔데?
연 주 (E) 우리 이제 뽀뽀도 못할 거 같애.
민 수 (웃으며) 왜?
연 주 (E) 선생님이 백혈구 감소되면, 감염 조심해야 된다구 주의하래.
민 수 알았어.

기쁘게 통화하는 민수를 보다가 쓸쓸하게 돌아서서 나가는 희정.
웃던 민수, 나가는 희정을 본다.

S# 53 하바나 앞 (밤)

간판을 보며 와서는 잠시 생각하는 대호.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S# 54 하바나 안 2층 (밤)

실내를 둘러보며 들어와 자리를 보다가 앉는 대호.
실내의 시가를 피우는 젊은 남자들을 본다.

S# 55 차안 (밤)

민수 운전하고 있고, 옆자리의 기태.

기 태 너 제주도 가면 연주는 어떡하냐? 많이 걱정되겠다.
민 수 일주일에 한번 정도 잠깐 올라올 수는 있겠냐?
기 태 상황 봐서 그렇게 해야지. 일이 아무리 급해도 사람보다야 중요하냐.

봉투를 하나 꺼내서 넘겨주는 기태.

기 태 참, 이거. 넣어둬라. 내려가기 전에 처리할 것들은 처리하고 가야지. 미리 주는 거다.
민 수 고맙다. (안주머니에 넣는다.)
기 태 너 왜 얘길 안 해? 니가 얘길 안 하니까, 언제 줘야 되는지 얼마나 줘야 되는지 애매하잖냐. 보고 더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길 해라.
민 수 그래.

만족스럽게 민수를 보는 기태.

S# 56 하바나 (밤)

들어온 기태 가까이 오면, 앉아있던 대호 일어서서 맞는다.

기 태 오랜만입니다.
대 호 오랜만입니다. 근데 민수는...?
기 태 곧 올 거예요. 차 좀 대고 오느라고. (자리 권하며 앉는다.)
대 호 (앉는) 예....
기 태 뭐 좀 시키지 그랬어요. 여기!

(시간경과)

대호와 기태, 민수가 앉아있다.
민수는 술을 마시지 않고, 기태와 대호만 마신다.

기 태 원래는 이 친구가, 실수가 없는 친군데, 그때 왜 일을 그렇게
처리했는지 모르겠어요. 별로 많지도 않은 돈 가지고, 서로 모양만 우습게 됐네요.
대 호 아닙니다. 민수가 실수를 한 건 아니고, 내가 잘못한 거죠.
그때 사무실까지 찾아가서 그런 거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기 태 괜찮아요. 친한 친구 위해주다 보면 작은 일로 오해도 커질수 있고 그렇죠. 나도 가끔 그러는데요, 뭐.

잠시 말이 끊기고 어색한데,

기 태 둘이는 군대 동기라구요.
대 호 예, 민수는 운전병이었고, 나는 수송병이었습니다.
기 태 이 친구 군대에서도 아주 영리했을 거 같아요.
대 호 그럼요, 사단장 차는 아무나 몰 수 있는 게 아니죠. 사실 사단장님이 민수 휴가 나가는 거 참 싫어하셨어요.
기 태 그래요?
대 호 워낙 까다로운 사람이기도 했지만, 민수가 빠삭하게 잘해서,민수 휴가 나가고 없으면 이 친굴 대신 할만 놈이
없었거든요. (민수에게) 그래서 휴가는 가야 되는데, 못 간적도 있었을 걸, 아마?
민 수 하루 정도 붙잡혀 있다가 늦게 나가고 그런 거지.
기 태 (끄덕이며 민수에게) 그 사단장 마음 이해가 간다.
(대호에게) 나도 이 친구 없으면 꼼짝도 못해요. 워낙 시키지 않아도 잘하니까. 사실 내 친구들 중에 이 친굴 탐내는
애들도 많은데, 못 보내죠. 민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불안하니까. 안 그러냐?
민 수 음... 그렇지.

대호 듣기에 거북한지 술을 마신다.
이때 기태, 담배를 꺼내 들고 있으면, 민수, 불을 켜서 내민다. 불을 붙이는 기태.
보는 대호. 민수 대호를 힐끔 보자, 대호 시선 피해 모르는 척 해준다.

기 태 10년도 넘게 지내왔지만, 이 친구 트럭 몰 때가 나는 마음이 제일 안 좋았어요. 사실 이 친구 내가 볼 땐 그냥 트럭이나 몰 게 놔두면 안돼는 놈이었거든요.
민 수 기태야, 대호는 트럭 몰고 있는데 왜 그래.
기 태 아, 미안합니다.
대 호 아닙니다.
기 태 어찌됐든, 그래서 데려온 겁니다. 그게 잘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뼈가 있는 표정.)

말이 없는 민수와 대호.

기 태 트럭 모는 거 힘들지 않아요?
대 호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기 태 하긴 그렇죠. (민수에게) 그러고 보면 너 나한테 온 거 잘한거 같다. (대호에게) 그렇게 생각하시죠?
대 호 그럼요.
기 태 힘들면, 대호씨도 오세요. 회사에 자리도 많고 하니까.
대 호 됐습니다.
기 태 아니, 왜요? 생각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그 정도는 내가 쉽게 해줄 수 있으니까.

말없이 있다가 꼽다는 듯 술을 들이키고 있는 대호.
그런 대호를 보는 민수.
민수를 보는 기태.

S# 57 하바나 앞 (밤)

대호와 기태, 민수 차 앞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기 태 (한 손 주머니에 꽂고 악수) 오늘 반가웠어요. 가끔 봅시다.
대 호 네, 그러죠. (민수에게) 운전 조심해라.
민 수 (대호 어깨 손 얹고) 나중에 보자. 연락할게. (차문 열어주고 운전석으로 간다.)
기 태 회사로도 놀러와요. 제주도에 한번 내려오든지. 거기로 오면 호텔에서 풀 코스로 대접이 가능하니까.
대 호 그러죠.

기태 차안으로 들어가고, 차 출발한다.
대호 멀어지는 차를 보며 서 있다가 돌아선다.

S# 58 병실 (밤)

민수 들어오면, 연주가 새 꽃을 꽂고 있다가 반갑게 돌아본다.

민 수 누구 왔다갔어?
연 주 아니. 간호사 언니가 사줬어. 결과가 좋아서 기분 좋다고.
민 수 (가까이 와서) 정말 우리 이제 뽀뽀하면 안돼?
연 주 (돌아서며 안는) 살짝 하면 돼. (그러다 닝겔 줄이 엉켜 두사람 조심조심 다시 팔 푸는) 어머머... 이제 안지도 말라는데?
민 수 (그런 연주 보다가, 봉 밀고, 침대로 데리고 가며) 이리 와,앉아봐.

연주 앉아서 민수 보면, 그 앞에 앉는 민수.

민 수 (손부터 잡으며) 제주도 내려 가. 내일.
연 주 내일...?
민 수 가면 오래 있어야 될지도 몰라. 여기 있을 때라도 같이 많이 있어줬어야 되는데...그래도 좋아지는 거 보고 가서 한결 낫다.
연 주 그걸 왜 이제 얘기해. 진작 말해주지. (서운하다.)
민 수 전화 자주 할게. 그리고... (품에서 사진 꺼내며) 이거 낮에 일부러 오피스텔 들러서 줄려고 가져왔어.

민수 나란히 연주 옆으로 옮겨 앉는다. 같이 사진을 보는 두 사람.
방파제에서 트럭 옆에서 찍은 사진이다.

민 수 사진이 몇 개 없더라. 그 중에서 제일 나은 거 골라왔어.
연 주 좋은데... 이게 언제야?
민 수 3년 전에 대호랑 트럭몰 때. 이 방파제 우리가 만든 거야.
연 주 정말? 언제 여기 가보면 좋겠다.
민 수 가자. 언제 데리고 갈게. 너 나 없어도 이 사진 보면서
힘내야 돼. 저번처럼 이상한 소리하고 그러면 안 된다?
연 주 알았어. 그럴 게.

연주를 한 팔로 안는 민수. 연주 민수의 손을 꼭 잡는다.

S# 59 제주도 호텔 전경 (낮)

S# 60 동 호텔, 디스코텍 (낮)

기태와 새 임대 사장이 앉아있고, 지배인과 곽영근 등이 보인다.
민수는 기태 뒤에 서류철 들고 서있다.

기 태 (사장에게) 앞으로 잘해주세요. 지하 나이트클럽이 물이 좋아야, 호텔 전체가 살아나는 것 아닙니까.
사 장 그럼요. 마음 푹 놓으세요. 제가 서울하고 부산에 이런 게 몇 개 더 있잖습니까. 빤히 잘 알죠.
기 태 (민수에게 고개짓) 참, 준비한 거.

민수 기태 앞에 서류철을 놓는다.

기 태 (서류 넘겨주며) 맞나 확인해 보세요.
사 장 (서류 훑어보며) 맞네요. 이제 명의이전 바로 하면 되겠네요.
법적인 문제도 깨끗하게 처리돼있고, 미리 정리를 아주 잘 하셨네요.
기 태 이 친구가 깔끔하게 잘 해놨죠.
사 장 (민수 보며) 그러고 보니까, 인상이 아주 좋네요.
기 태 그렇죠? 저 운전도 해주고 도와주는 친군데, 아주 괜찮습니다.
사 장 그러지 말고 여기서 웨이터로 있어도 될 거 같은데요.
손님도 많이 끌 거 같고. (일어난다.)
기 태 그래요? (일어나며) 너 그럼 여기 취직해라.

모두 가볍게 지나가는 웃음. 굳어지는 민수의 표정.

기 태 (악수하며) 수고하셨습니다.
사 장 앞으로 종종 뵙죠.

나가는 기태를 따라나가는 민수. 기분이 더럽다.

S# 61 호텔 뒤 뜰 (낮)

기태와 민수, 호텔에서 나온다.

기 태 인상이 너무 좋아도 시달리는 구나. 이제 뭐 남았지?
민 수 (다이얼리 펼치며, 시계 보는) 30분 뒤에 제주호텔 연합회장이 오기로 했고,
     기획실 회의는 2시로 잡으라고 얘기해놨어. 
    객실보수 업자선정은 영선부 부장이 데려오면 만나보면 되고...

그러면서 민수 기태를 보면,
기태 물끄러미 호텔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민 수 왜?
기 태 아니야. 아버지 생각이 나서.
민 수 ....
기 태 마음이 아프다. 이게 바로 그렇게 원하시던 거였는데. 결국은 이렇게 되는 거 보지도 못하시고... 이럴 때 아버지가
계셨어야 되는 건데, 참...

기태를 보던 민수도 다른 곳 응시하며 생각에 빠진다.

민 수 (굳은 표정) 그래. 아버님 지금 계신다면 얼마나 좋겠냐...

그 소리에 기태 생각에서 빠져 나오며 민수를 본다.
민수도 얼른 시선 느끼며 기태를 본다.

기 태 (걸어가며) 뭐라 그랬지?
민 수 (다시 수첩펼쳐 들고 따라가며) 제주도호텔 연합회장 오기로 했고...

두 사람 그렇게 멀어진다.

S# 62 병실 (낮)

연주, 닝겔 봉을 밀면서 다 먹은 식사 쟁반을 들고 옮기고 있다.
조금씩 움직여 문을 열고 쟁반을 내놓는다.
들어와서는 힘들게 침대에 앉는 연주. 작은 일도 힘들어 보인다.
액자 속에 끼워져 있는 민수의 사진으로 시선이 간다.
연주 액자를 들어 민수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본다.

S# 63 병원 로비 (낮)

들어서는 희정. 주스상자를 들고 있다.

S# 64 병실 앞 (낮)

병실홋수를 찾아 온 희정. 막상 병실 앞에 오자 멈춰 선다.
다가서서 조그만 창안으로 병실 안을 들여다본다.

S# 65 병실 안 (낮)

연주, 침대에 세워둔 밥상 테이블을 힘겹게 접어 넣고는,
바닥의 휴지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는다.
그러다 문 앞에 서있는 희정을 보게 되는 연주.
한눈에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든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희정.

희 정 서연주씨지요?
연 주 (생각하는) 우리... 한번 봤죠? 학교 근처에서.
희 정 네. 최희정이라고 해요.

그리고는 액자에 끼워져 있는 민수의 사진으로 시선이 가는 희정.
그런 희정을 보는 연주.


- 13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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