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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프린세스] 01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1.01.19|조회수1,834 목록 댓글 7

[마이 프린세스] 01

 

 

 

 

 

 

 

 

 

 

1. 덕수궁/대한문. 낮.

 

쨍하니 맑은 하늘.

고운 단청 가운데 ‘대한문’ 현판. 비에 씻긴 듯 말끔하다.

취타대의 호쾌한 가락 따라 휘날리는 화려한 깃발.

멋진 자태로 도열한 금군의 모습...

대한문 빙 둘러싼 시민들, 수문장 교대식 구경하고 있는데...

그 앞으로 줄 맞춰 도착하는 의전용 리무진.

문 열리면 수트 입은 해영, 챙모자(클로쉐) 쓴 스텔라 공주 에스코트해 내린다.

마치 영화 속 왕자, 공주 같다.

스텔라, 우아하게 손 흔들면 와- 환호성 쏟아지는데...

 

해영E : 공주님 도착하셨습니다.

 

 

2. 덕수궁 일각. 낮.

 

덕수궁 안으로 길게 뻗은 길.

저기- 공주다! 어디 어디? 하며 뛰어가는 관람객들.

웅성대는 인파 몰려있는 곳. 정관헌이다.

 

 

3. 덕수궁/정관헌. 낮.

 

고풍스런 소품 가득한 서양풍 회랑.

활옷에 화관 쓴 공주차림의 이설, 화려한 장의자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런 이설 뒤로 광고 배너 보인다.

“마지막 황실, 대한제국의 공주와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장당 5000원”

진행 요원 인솔 하에 줄 선 관람객들, 한 팀씩 나와 이설과 폴라로이드 사진 찍는다.

갖가지 포즈 척척 잡는 이설, 사랑스러운데...

서양인 노부부 사진 찍고 일어서자 이설, 핸드폰으로 얼른 시간 보고는

 

이설 : 나 먼저 퇴근한다

진행 : 야 설아!

 

이설 꾸벅하고 그대로 뛰어나가면

해영, 다가오는데..

 

해영 : (화관 거슬리는) 이벤트 담당자 되십니까.

진행 : 네? 네.

해영 : (명함 내밀며) 외교부 의전팀입니다. (배너 가리키며) 스텔라 공주가 기념사진을 찍으려는데 협조 부탁합니다.

진행 : (사색되는) 지, 지금요? 아, 어떡하죠. 저희 공주가 금방 퇴근을 해서요. 전화 걸어볼게요. (핸드폰 거는)

김사무관 : (뛰어오는) 촬영 준비됐어?

진행 : 안 받는데 어쩌죠?

해영 : (김사무관에게) 오분만 시간 끌어요.

 

해영, 이설 달려간 쪽으로 뛰어가는.

 

 

4. 덕수궁/컨테이너 박스 앞. 낮.

 

전통복식 줄줄이 걸린 행거들, 해영 눈으로 훑으며 빠르게 걸어오는.

옷 걸고 빼는 사람들 뒤로 컨테이너 박스 보인다.

출입문에 붙은 메모. “여자 탈의실 - 관계자 외 출입금지”

해영, 메모 무심하게 보더니 쾅쾅- 문 두드리고는 벌컥 연다.

순간, 꺄악-!! 옷 갈아입다 비명 지르는 여자들, 벗던 옷 덮고 난리난.

해영, 시크하게 고개만 틀어 시선 돌리더니

 

해영 : 공무수행중입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들어가는)

여자들 : 악- 누구야!/당장 안 나가!/경비실에 빨리 신고해! /안 막고 뭐 해!/야 잡아!

              (안으로 뛰고 옷 뒤집어쓰고 비명에 난린데)

해영 : (구석에 이설 발견. 성큼성큼 다가가는)

이설 : (저고리, 치마 다 입은. 그래도 활옷 풀어헤친 터라 헉! 앞 가리는데)

해영 : (의자 위 진동 오는 폰 보고) 공주 맞죠. 전환 왜 안 받아요.

이설 : (황당) 여기 여자 탈의실이거든요? 누구세요?

해영 : 일단 나가서 얘기합시다. (팔 잡고 데리고 나가는)

이설 : (깜짝! 끌려가며) 어머, 왜 이래요. 이거 놔요-!

여자들 : (오오- 분위기 좋은데? 남친인가? 잘생겼지? 문에 달라붙어 구경들 하는)

 

 

5. 덕수궁 일각. 낮.

 

해영, 이설 질질 끌고 나오며 말 이어가는.

 

해영 : 외교통상부에서 나왔어요. 바쁘니까 자세한 질문은 나중에 받고 일단 연장 근무 좀 합시다.

           내 말 알아들었어요?

이설 : 첨 본 여자 손을 참 꼭 잡고 말씀하시네요. 놓고 하셔도 들리는데.

           (놓는) 근데 제가 너무 바빠서요. 연장근무는 못하겠어요.

해영 : 사진 찍는데 얼마 안 걸립니다.

이설 : 그 얼마에 제가 사망할 수도 있거든요. 저 알바 시간 진짜 늦었단 말에요.

해영 : (인상) 시간 없는데. 나랏일인데 협조 좀 합시다.

이설 : 어머, 지금 초면에 성질 내시는 거예요? 솔직히 국가가 저한테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제가 밥줄 끊겨가며 희생할 순 없죠. (뒷걸음질 치는) 나 알바 짤리면 그쪽이 책임질 거 아니잖아요.

해영 : 책임지면 돼요?

이설 : 네?

해영 : 그 알바비 내가 내죠. 한 시간에 십만원.

이설 : (!!) 시, 십만원이요?

 

 

6. 정관헌. 낮.

 

감격한 얼굴의 이설. 스텔라 공주와 나란히 앉아 촬영 중이다.

김사무관 꼿꼿하게 서서 스텔라 촬영 보고 있는.

해영, 옆에 와 나란히 서는데.

 

김사무관 : (정면 보고 입으로만) 특급정보. 얼마에 살래.

해영 : (똑같이 앞만 보며) 됐습니다.

김사무관 : 어허, 재벌 3세라고 지금 선배 무시하는 건가? 내 특별히 간장게장 정식에 넘기려 하였는데.

                  박회장님 단골집 있다매. 거기 어디냐.

해영 : 뭔데요.

김사무관 : 지금 대국민담화 생중계 중이잖냐. 청와대 발칵 뒤집혔댄다.

해영 : 거기야 아침마다 뒤집잖아요. 또 왜.

김사무관 : (살짝 눈 돌려 주변 보더니) 정부에서 황실 재건한댄다.

해영 : !!

 

놀란 해영, 표정 심각해지는데, 마냥 행복해 보이는 이설...

찰칵찰칵-!! 카메라 소리 점점 요란해지는.

 

 

7. 청와대. 낮.

 

열띤 취재 열기 속에 대통령 단호한 표정으로 연설 중이다.

 

대통령 :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으로 황실재건안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

              국민 여러분의 뜻을 묻고자 합니다.

              황실은 지역, 계급, 세대를 아우르는 우리의 민족적 구심점이 되어줄 것이며

              외세에 의해 얼룩지고 상처받은 우리의 역사관을 바로세워 국가의 자존을 확립케 할 것입니다.

소순우E : 이게 지금 말이 됩니까!!

 

 

8. 금자당 총재 사무실. 낮.

 

기자들 잔뜩 불러다 놓고 핏대 세우는 소순우.

 

소순우 : 목숨 걸고 쟁취한 민주주의를 대통령이 손바닥 뒤집듯이 엎어버리겠단 거 아닙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하다 억- 심장 부여잡는)

유기광기자 : (놀라) 소의원님?! 괜찮으십니까?

소순우 : (죽는 소리 내가며) 정부의 만행을 보고 있자니 제 심장이 웁니다.

              이 자리에서 맹세컨데 제 정치 생명을 걸고 황실 재건 반대합니다!

 

 

9. 대한문. 낮.

 

이설과 포옹하고 리무진에 오르는 스텔라. 경호원들 줄줄이 호위하며 가는.

뒤에 서 있던 김사무관과 해영, 차 있는 쪽으로 가는.

 

김사무관 : 대통령은 야당이 반대하건 말건 밀어붙일 기센데? 외교부에 황실이랑 쪼인하는 부서두 만든댄다.

해영 : 생겨봤자지. 거길 누가 가겠어요?

김사무관 : 왜. 승급할 때 유리할 거 같지 않냐? 일도 재밌을 거 같구.

해영 : 말 안돼요. 황실은 무슨.

김사무관 : 그래도 우리나라에 저런 공주 하나 있음 괜찮잖아.

                  (이설 오는 거 보며) 스텔라 공주, 진짜 완전 헐리웃 스타같지 않냐?

                  이상형이 귀여운 남자래. 나같이. (귀여운 척)

해영 : (무시하고 이설에게) 수고했어요.

이설 :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할 일 한 것 뿐인데요. 꽁짜로 한 것도 아니구요.. 그럼 계산은,

해영 : (지갑에서 수표 꺼내다 멈칫)

이설 : (수표 잡는) 감사합니다-. (하는데 해영 수표 안 놓는. 서로 땡기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나랏일 하는 분이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맘 바뀌면 안 되죠.

해영 : 이거 백 만원 짜린데.

이설 : (깜짝! 본능적으로 손 떼는) 현금 주시면 되죠.

해영 : (지갑 보고) 현금 없는데, 거슬러 줄래요?

이설 : (인상 팍팍 쓰면)

해영 : 카든 안 될 거고. (명함 주는) 계좌번호 문자로 보내요. 바로 부쳐줄게.

이설 : 와 그런 게 어딨어요. 이런 건 현장에서 계산 하는 거지.

해영 : 가요 선배. (전화 울리는데 이설에게) 문자 보내요.

          (전화 받고) 네, 오실장님. 할아버지가요? 알았어요. (차에 오르는)

이설 : 어머! 어머! 뭐야 나쁜 놈!! 야! 너 거기 안 서? 얘기하다 말고 어디 가는데!!

 

죽어라 차 쫓아가는 이설이고.

한적해진 덕수궁, 아름다운데...

 

 

10. 산소. 낮.

 

탁 트인 명당자리에 잘 가꾸어진 산소.

동재, 힘든 거동으로 술 따르고 절한다.

그런 동재를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보고 선 젊은 남자, 동재의 손자 해영이다.

해영의 옆에 동재의 휠체어 손잡이 잡고 서 있는 초로의 기택.

동재, 쉽게 일어서지 못하고 무언가 떠올리며 눈가 붉어지는데...

마치 방금 전 일어난 일처럼 괴로워하며 눈 질끈 감는 동재. 식은땀 배어 나온..

 

해영 : (지켜보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기택 : (달려가 동재 부축하려고 하며) 회장님. 차로 모시겠습니다.

동재 : (손사래) 수선 떨지 말어.

해영 : 그러게 여긴 뭐하러 자꾸 오세요. 황박사님 오전 진료 다 취소하고 세 시간 째,

동재 : 입 닫어. 단추도 닫고. 절 올려.

해영 : 저 시간 없어요. 빨리 들어가 봐야 해요.

동재 : 뭔 놈의 시간이 5분도 없어?

해영 : 예. 마음이 없으니 5분도 기네요. 대체 누군데요 여기 누운 양반이.

동재 : 절부터 드려. 때가 되면 다,

해영 : 이십 년이 적어서요? 알았어요. 이제 안 여쭤 볼 테니까 아주 오래오래 사세요.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묘 이장해 버리고 여기다 확 별장 짓고 살 거니까.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내려가는)

기택 : 타일러서 데려오겠습니다. (따라 내려가는)

동재 : (침통한.... 무덤 바라보며) 마마...참으로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회한에 젖어 무덤 앞에 머리 조아리는 동재고...

 

 

11. 서림대 전경. 낮.

 

사복 차림의 이설, 가방 메고 죽어라 뛰어들어간다.

 

 

12. 서림대 조교실. 낮.

 

문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이설. 공주머리 그대로다.

복사하던 선아 손으로 목 그어 보이는.

 

이설 : (입모양으로 “알거든!” 하고 코맹맹이 소리) 조교니임-

조교 : (모니터 보다 고개 들며) 또 공주놀이가 바빠서 행정알바는 까맣게 잊으셨나 봅니다. 마마.

이설 : 아흑- 저 오늘 사기 당했어요.

선아 : 주어가 잘못 됐겠지. 니가 쳤음 모를까 설마 당했을까.

이설 : 우씨! 진짜야. 촬영 끝나고 일당 받기로 했는데 참나, 백만원짜리 수표밖에 없다면서

           저 보구 카드 받냐는 거예요. 그러더니 명함 주면서 자기 번호로 연락하라구,

조교 : (싸늘) 잘생겼디?

이설 : 생긴 건 멀끔하게 생겼더라구요. 저 알바 가야된다고 하니까

          못가게할라구 제 팔을 이르케 확 잡아채는데.. 와..

조교 : 쟤 지금 작업 들어왔다고 자랑하는 거지.

선아 : 작업이 아니라 늦잠 자서 꿈꾼 거 같은데요. 개꿈.

정우 : (들어오며) 좋은 아침.

여자셋 : (동시에 헉! 오늘도 멋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정우 : 음. (하고 자기 방으로 가려다 이설 머리 모양과 화장보고 뜨악..)

이설 : (어머 왜 날... 눈에 하트 뿅뿅이다가 아.... 머리... 창피하고...) 왜요? 아.. 교수님 이런 스타일 좋아하세요?

정우 : 까분다. (하고 조교에게) 숙소 좀 잡아줘. 주말에 구제발굴 가.

조교 : 네.

정우 : 되도록 러브호텔은 좀 피해 줘. 너무 시끄럽더라. (방으로 들어가는)

조교 : (아씨.. 하는데)

선아 : (동시에) 까르르. 시끄럽대. 어쩜 좋아.

이설 : (동시에) 까르르. 아니 조교님은 대체 어떤 방을 잡으셨길래.

          어, 어디에요 거기. 우리 담에 꼭 가 봐요 조교님 네?

조교 : 이것들이! 수업 안 들어가!

 

 

13. 서림대/강의실. 낮.

 

어둑한 강의실.

롤 스크린 위로 각종 고문서와 궁중 보물들 자료화면 흘러가는.

화면 보며 강의 중인 정우.

 

정우 : 사료란 인류가 남긴 모든 삶의 흔적이다. 그 중 고문서는 생활과 언어를 잘 보여준다.

          특히 사람 사이에 직접 주고받은 내용이라 연구과정에서 왜곡, 첨삭이 어렵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자료지.

학생들 : (아.... 일단 열심히 듣고 있는)

이설/선아 : (이미 강의 내용은 뒷전이고 정우 얼굴만 뚫어져라 보는)

이설 : (소근) 불 끄고 보니까 더 잘생겼다. 어쩜 저렇게 섹시해? 이제 방학하면 못 볼 텐데 일분이라도 더 봐.

선아 : (소근) 사돈 남말 하냐?

이설 : (소근) 이 언닌 이집트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아주 눈에 넣어버릴 거거덩.

선아 : (소근) 진짜 가게? 근데 이집트가 무슨 동네 마트냐? 간다구 다 만나게?

이설 : (소근) 넌 머릴 파마 할 때만 쓰더라? 고고미술사학 교수가 가면 어딜 가겠니.

          피라미드에서 한 3박 4일만 버티면 게임 오버야.

 

어디선가 모래폭풍 바람소리 들려오는.

눈 감고 상상 속에 빠져드는 이설.

 

 

14. (상상) 이집트 피라미드 앞. 낮.

 

허접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앞에

원색 스카프 머리에 쓰고 선글라스 낀 이설, 트렁크 끌고 나타난다.

휙- 주변 살펴보더니 냅다 피라미드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15. (상상) 이집트 피라미드 안. 낮.

 

파라오관 뚜껑 열고 달랑 들어가 눕는 이설. 양손 가슴에 얹고 행복하게 눈 감는.

다시 반짝, 눈 뜨더니 관 뚜껑 다시 닫는.

 

이설NA : 수천 년의 신비를 품은 피라미드 안에서 운명적 사랑을 기다리는 거야.

                사랑은 타이밍이잖아?

정우 : (들어오는. 관 뚜껑 열고 놀란) 이설? 자나? (얼굴 가까이 들여다보는)

이설 : (눈 꼭 감은 채, 입술만 쭉 내미는)

정우 : (뜨악하게 보더니 뚜껑 도로 닫는)

이설 : (헉!)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교수님? 교수님!!

 

 

16. 서림대/강의실. 낮.

 

정우와 학생들의 시선 이설에게 쏠려 있다.

몽롱하게 정우 보던 이설 왜 날 봐? 정신 못 차리는데,

 

정우 : 왜.

이설 : 네?

정우 : 너 방금 나 불렀잖아.

이설 : 그게.. 죄송합니다. 잠시 딴생각을 하는 바람에 그만..

정우 : 잠시 딴 생각을 했는데 그 속에도 내가 있어?

이설 : 네?

학생들 : (까르르)

정우 :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주말들 잘 보내고. (나가는)

이설 : (호들갑) 봤지 봤지. 내가 교수님 생각했다니까 교수님도 은근 좋아하는,

          (하다 롤스크린 보고 어라? 표정 심각해지는)

선아 : (잉?) 왜? (하고 보면, 화면 가득 ‘李永’이라고 쓰인 낡은 종이 사진이다)

이설 : 어...! 저거...!

선아 : 너 아까 졸다 못 들었구나? 순종 친서. 원본은 없고 사진만 남았는데

          저 사진이 이영 왕자의 존재를 처음 밝히게 된 동기였대.

이설 : (... 뭐지? 왜 낯익지? 심장 쿵쿵 뛰는)

선아 : 참 너 교수님한테 그만 좀 들이대. 교수님 애인 있대.

이설 : 뭐? 왜?

선아 : 거기서 왜가 왜 나와. 교수님 첫사랑이라는데.

이설 : 첫사랑?!! 첫사랑은 네 살 때 만나는 거 아냐? 뭘 아직까지 사겨?

 

 

17. 대한백화점 전경. 다음날 낮.

 

선아와 이설 팔짱끼고 걸어오고 있는.

이설 한쪽 손엔 호빵 들고 먹으며 열심히 듣는.

 

선아 : 별별 소문 다 있는데 정리하자면 댑따 이쁘고 댑따 늘씬하고

           거기다 가장 중요한 돈도 댑따 많댄다. 해영 박물관 관장이래.

이설 : (충격!!) 교수님 연상 좋아한대? 관장이면 사십? 오십?

선아 : 교수님보다 어리대.

이설 : 갑자기 신빙성 확 떨어진다? 그렇게 젊은 관장이 어딨냐?

선아 : 나야 들은대로 말하는 거지. 데려다 줘서 땡큐. 가.

이설 : (애교) 여기까지 왔는데 매장까지 데려다줘야지 무슨 소리야.

선아 : 너 또?!

 

 

18. 백화점/여행가방 매장. 낮.

 

여행용 트렁크 들고 셀카 찍는 이설. 온갖 웨딩촬영 때 취했던 포즈 다시 척척 나오는.

매니저 옆에서 희한한 애구나... 싶어보고 있고,

유니폼 갈아입고 들어오는 선아.

 

이설 : (사진 찍고 탐정포즈) 넌 생긴 건 이쁜데 왤케 사진빨이 안 받니?

           (하고 다른 가방 보다) 웬일이야 웬일! 너 너무 이쁘다. (다시 셀카 찍는) 어머! 얘 사진빨 받는 거 봐.

선아 : 저 왔어요 매니저님.

매니저 : (반기며 소곤) 저 손님 또 왔어. 니가 좀 보내.

선아 : (어색하게 웃으며) 그럼요. 보내야죠. 저한테 맡기세요.

          저기... 고객님. 자꾸 사진 찍으시면 안 됩니다. (죽을래? 눈짓 마구 보내는)

이설 : 아... 죄송해요. 얘들도 다 초상권이 있는데. 근데요 금방 제꺼 될 아인데 딱 한 장만 더 찍으면 안 될까요?

선아 : (매니저 몰래 눈 부라리며) 사실 거예요?

이설 : (배시시..) 조만...간? 딱 이십 만원이 모자라서요. 근데 얘 사막 모래바람에도 잘 버틸까요?

선아 : (소곤) 너 설마 나 없을 떄두 이러냐? 모래바람은 또 왜.

이설 : 얘랑 같이 이집트 갈 거거든. 그러니까 나 다시 올 때까지 절대 팔면 안 된다?

          딴 여자랑 사진 못 찍게 하구. 알았지?

선아 : (쿡쿡 찌르며) 가, 빨랑 가.

이설 : 알았어. (매니저에게) 여기 직원분이 참 친절하시네요. 이 분 때문에 제가 꼭 이 매장에서 가방 사야겠어요.

매니저 : (뭐지?) 네.... 고객님. 감사합니다.

이설 : 그럼 수고하세요. (가방에게) 지조 지켜. 조만간 데리러 올게.

매니저 : (가방 보고 어?) 저기, 고객님. 근데요. 이 모델 단종 돼서 그게 마지막이거든요. 딱 한 개 남았어요.

이설 : 진짜요?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 (선아 보는)

선아 : (아는 척 말라니까!!) 그러시겠죠. 친구가 백화점 직원도 아닌데 어디서 그런 얘길 들으시겠어요.

이설 : 진짜 이제 없어요? 안 되는데? 저 이 가방 살려구 2년 동안 적금도 부었단 말예요.

매니저 : (황당) 그럼 2년 동안 삼십만 원 모으신 거예요?

이설 : (선아 보기 좀 창피한) 2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꾸벅 인사하고 나오는)

 

 

19. 백화점 복도. 밤.

 

핸드폰 통화하며 걸어가고 있는 이설.

 

이설 : 나 그 가방 꼭 살 거다? 너 절대 팔면 안 돼? 담주에 알바비 받으니까

           그때까지만 버텨줘. 알았지? (하며 가다 주얼리 매장보고 와... 탄성) 야 끊어봐.

 

 

20. 백화점/티파니 매장. 밤.

 

쇼케이스 위에 반지 몇 개 올려져 있는.

넋 놓고 구경하는 이설. 장갑 낀 직원 마주 서 있는.

 

직원 : (기다리다 좀 지친) 고객님?

이설 : 네? 아, 죄송해요. 다 너무 예뻐서 잠깐 홀렸네요. 이런 건... 얼마나 해요?

직원 : 450만원입니다.

이설 : 와... 한 학기 등록금이네요. 이건... 요? 얘도 비싸요?

직원 : 600만원입니다.

이설 : 유, 육백이요? 와- 세상에 무슨 반지 하나가,

해영E : 그거 포장해 줘요.

 

고개 돌리면 빈틈없는 슈트 차림의 남자, 지갑에서 카드 꺼내 내민다. 해영이다.

 

이설 : 어?! 맞죠? 아까 낮에.

해영 : 바빠 죽겠다더니 여기 와 있어?

이설 : 알바야 진작 끝났죠. 대박 지각했어요. 잘됐네. 십만원 주세요.

해영 : 계좌번호 안 왔던데?

이설 : 집에 가서 통장 봐야 계좌번홀 알죠.

해영 : 숫자 열 한 자릴 못 외워요?

이설 : 최, 최근에 만든 통장이라 그래요.

직원 : (해영에게) 고객님. 결제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해영 : 일시불요.

이설 : 일시불요? 유, 육백을요?

해영 : (그게 뭐? 시큰둥하게 보면)

이설 : (얼른 고개 앞으로 돌리는. 말로만) 싸, 싸인 하시라는 데요?

해영 : (이설 빤히 보더니 싸인하는)

직원 : 감사합니다 고객님. 여기요. (포장한 반지와 영수증 내밀며) 지금 백화점 행사중이라

          영수증 가지고 지하 1층 가시면,

해영 : (손으로 됐다 하고 이설에게) 계좌번호 안 줄거예요?

이설 : 지금 모른다니까요?

해영 : 문자 넣으면 바로 보내줄게요. 바빠서 그럼. (반지, 영수증 들고 바로 나가버리는)

이설 : 우와. 뭐 저런 사람이 있냐. 언니도 보셨죠.

직원 : 네?

이설 : 육백을 단칼에 (카드 긁는 시늉) 와.. 짱인데? (잽싸게 해영 간 쪽으로 냅다 뛰어가는)

 

 

21. 백화점/엘리베이터 안. 밤.

 

해영, 닫힘 버튼 누르는데 닫히는 문 사이로 쑥- 손 들어오는.

해영, 귀찮게.. 하는 표정으로 열림 버튼 누르면 “죄송합니다” 하며 비비적 들어오는 이설.

그러더니 해영과 뚝 떨어져 서서 해영 흘깃거리는...

 

해영 : (닫힘 버튼 누르고 B2 누르는)

이설 : (어? B2? 그럼!! 눈 반짝하며 해영 뚫어져라 보는)

해영 : (시선 느끼고 보는)

이설 : (헉!! 시선 피하는)

해영 : (시큰둥한 얼굴로 앞만 보는)

이설 : (그런 해영 몰래몰래 흘깃거리는....)

 

 

22. 백화점/지하 2층. 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해영. 자기 차 찾는데 약간 떨어져 이설 따라오는.

해영 멈추자 이설도 멈칫. 다시 걸으면 이설도 따라 걷는..

그러다 해영 홱 돌아보면

이설 당황해서 어어... 하다 오도가도 못 하고 어정쩡 멈춰 선.

 

해영 : (그런 이설의 꼬라지 건조하게 보다가) 어디까지 따라올 건데요.

이설 : 아... 그게...

해영 : 돈 때문에 그러나? (한숨) 계좌번호 부르라니까. 근처에 은행 알아요? 들렀다 갑시다.

이설 : 그게 아니구요...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해영 : 해요.

이설 : (후..) 아, 막상 할래니까 부끄럽네.

해영 : (의아한)

이설 : 저기... 이런 말 드리는 거 어이없고 당황스러우실 줄 아는데요.

           저도 제가 이런 용기가 있는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해영 : (얘 나한테 반했구만?)

이설 : 아, 아니에요. 그냥 가세요. 못 하겠네요. (홱 도망가는)

해영 : 머, 거 답답하게. 두 번 볼 사이 아닌데 그냥 확 해요.

이설 : 그럼 그럴까요? 실은요. 아까 그... 반지 사시고 영수증 받으셨잖아요.

해영 : (?!!)

이설 : 어차피 안 쓰실 거면 그거 저한테 확 버려주심 안될까요?

해영 : (뭐래는 거야.)

이설 : 300만원 이상 구매하면 상품권 받을 수 있거든요. 그쪽은 필요 없으신 거 같은데....

          전 정말 필요하거든요! 제 인생이 걸렸을 수도 있는 문제거든요.

해영 : (뭐 이런 찌질한.. 그때, 핸드폰 울리는. 윤주다) 어, 윤주야. 전시 준비는 잘 돼?

          (사이) 고무장갑? 그걸 니가 왜 껴.

 

 

23. 레스토랑/와인저장고. 밤.

 

사방 유리벽인 와인 저장고, 빈티지 눈으로 확인하며 통화중인 윤주.

바깥 보면 빈 테이블 닦는 웨이터 보이고....

 

윤주 : 개관20주년 전시 내일 시작하는 거 아시죠?

          욕심 많은 관장 덕에 우리 직원들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거든요.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좋을까... 하다 일찍 퇴근시키고 직원들 책상 닦아주는 중이에요.

해영F : 놔 둬. 사람 보낼게.

윤주 : (당황) 아뇨. 좋아서 하는 일은 안 힘들어요.

 

하다 창밖의 누군가와 눈 마주치면 정우다!!

윤주, 입모양으로 ‘미안’하면, 괜찮다고 고개 저어보이는 정우...

 

윤주 : 내일 발표식장에 오빠 와주면... 더 안 힘들 것 같구요

 

 

24. 백화점/주차장. 밤.

 

해영 : 무슨 사람이 꾀부릴 줄도 몰라. (사이) 알았어.. 내일봐. (끊는. 표정 안 좋고)

이설 : (안되겠다 싶어.. 슬쩍 돌아서 가는데...)

해영 : 아! 저기, (하며 돌아보면 있던 자리에 이설 없고. 어? 하는데)

이설 : (냉큼) 네? 저요? (영애씨 버전) 저 여깄어요. (하며 얼굴 쑥- 디미는)

해영 : (앗. 깜짝. 미간 좁히고 한숨 쉬다) 근데,

이설 : 네?

해영 : 학생이에요?

이설 : 그럼요. 딱 봐도 그래 보이잖아요.

해영 : 딱 보면 별로 아니니까 물어본 거죠.

이설 : 칫. 눈 나쁘신가봐요. 근데 그건 왜요?

해영 : 잠깐 아르바이트 할 생각 없어? 사무실 책상 몇 개 닦는 건데, 페이는 영수증 + 3만원. 어때.

이설 : (빤히 보다) 혹시 애인이세요? 꾀도 못 부리는 분이?

해영 : 그게 왜 궁금해.

이설 : (큼큼 냄새 맡더니) 짝사랑이구만? 맞죠?

해영 : 뭐?

이설 : 오케이. 딱 3분!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요.

          짝사랑 쫑치고 바로 ‘여보 자기’로 레벨 업 시켜 드릴 테니까. 딱 기다려요? 알았죠?

          (해영 손에 들린 영수증 낚아채 가며) 혹시 모르니까 이건 일단 내가 가지고 갔다 올게요!!

해영 : 이봐! 어디가! 영수증 얼른 안 가져와? 뭐 저런...

 

(시간경과)

자동차보닛에 CF처럼 앉아있는 해영. 그러다 팩! 성질내고 일어서는.

 

해영 : (시계보고 허- 고개 절래 절래) 기다리는 게 바보지.

          (차에 올라 시동 붕- 가려는데 탕탕!! 누군가 트렁크 마구 치는. 놀라 보면)

이설 : (숨 헐떡이며 운전석으로 오며) 에그, 3분을 못 기다려요?

          평생 컵라면은 못 드시겠네요. 자요. (고무장갑 틱 던져주는)

해영 : 이게 뭐야.

이설 : 바보 아냐.

해영 : 뭐? 바, 바보? 하- 이봐. 뭘 몰라 그러는 모양인데 내가 바보 소릴 들을래야 들을 수가 없는 조건이거든?

이설 : 됐구요. 그쪽 부자죠. 그 여자분도 부잘 거예요.

          돈 많은 여자가 비싼 반지 사주고 돈 써서 청소 시킨다고 감동 먹을 거 같애요?

          절대 아니죠. 원래 사람은 상대가 죽어도 줄 수 없다고 생각한 걸 줄 때, 심장이 쿵쾅거리는 거거든요.

해영 : !!!

이설 : 그러니까 그거 끼고 가서 직접 책상 닦으세요. 그럼 내년 이맘때 쯤 애 백일 떡 돌릴 수 있을 거예요.

해영 : 백일 떡? (황당해 보다 하하!! 웃음 터진)

이설 : 너무 좋아하신다. 채신머리없게.

해영 : (그런 이설 귀엽고) 너 진짜 학생 맞아? 왤케 노골적이야.

이설 : (영수증 흔들며) 슷- 이거 내꺼죠? 이걸루 알바빈 퉁쳐요. 잘 해봐요 홧팅. (다다다~ 달려가는)

 

해영, 귀신에 홀린 듯 이설 뒷모습 보는데 띵동- 문자 온다. 확인하면

‘설마 지금 고무장갑 사들고 달려오는 건 아니죠?^^*

혹시나.. 하고 기다리게 될까봐 서둘러 퇴근해요. 내일 봐요. 굿 나잇’

해영, 씁쓸하게 보다 휴지통에 고무장갑 툭 넣는.

 

 

25. 레스토랑/윤주 테이블. 밤.

 

윤주 빈손으로 정우 앉은 테이블로 다가오더니 그대로 서서.

 

윤주 : 나 정말 못 말려. 와인빈티지가 대한제국 연대표로 읽히는 거 있지.

          내일 전시 오픈까지 이럴 텐데... 아무래도 박물관 다시 가봐야겠어.

정우 : (익숙한 일이고... 차분하게) 앉아. 디저트 먹고 데려다 줄게.

          너랑 나랑 십년 전 오늘 처음 만났어.

윤주 : (!!) 십년? 벌써 그렇게, 아... 그래서 오늘 꼭 만나잔거였어?

정우 : 얼굴 본 지도 오래됐구.

윤주 : 하여간 은근 로맨티스트야. 그걸 어떻게 기억했어? 혹시 선물도 준비했어?

정우 : 웃지 마. 잡고 싶어져.

윤주 : (더 예쁘게 웃는) 협박치곤 너무 달콤한데? 우리사이 헷갈리게.

정우 : (빤히 보다) 내 짐작보다 더 대단한 놈인가 보네.

윤주 : !!

정우 : 얼마나 대단하길래 오윤줄 이렇게 웃게 해.

윤주 : (유물 얘기구나...) 그렇게 궁금함... 보여줄까?

 

 

26. 해영박물관 전경. 밤.

 

윤주네 태운 차 들어오는.

 

윤주E : 내일 특별전시에 누가 오는 지 알아?

 

 

27. 해영박물관 복도. 밤.

 

은은한 조명 떨어지는 가운데 윤주, 정우 걸어오는.

 

정우 : 되게 신난 얼굴이네. 첫사랑이라도 와? 아, 그건 난가?

윤주 : 대통령. (어느 문 여는) 이정도면 아무리 바빠도 와야 되지 않겠어?

정우 : (열린 문 사이로 유물들 보고 놀란)

 

 

28. 해영박물관 특별전시실. 밤.

 

대한제국 황실 복식과 보물들 전시되어 있는.

정우 놀란 얼굴로 들어서는.

 

정우 : 황실에 들어와 있는 거 같아. (뒤에서 안는) 자랑스럽다 오윤주.

윤주 : (몸 살짝 빼내려는데)

정우 : (더 꽉 안는) 헷갈리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있어.

윤주 : !!

정우 : 내일이 지나면... 이제 누구도 널 두고 함부로 떠들거나 무시하지 못할 거야.

           젊고 아름다운 관장이란 이유로 말이지.

윤주 : (싫지 않은. 잠시 아늑함 즐기는데)

정우 : 이제 순종의 친서만 찾음 완벽하겠다.

윤주 : (!! 몸 빼는) 아직 포기 못했어? 학자 개인이 찾기엔 무리야.

정우 : 소장잘 찾았어.

윤주 : !!

정우 : 어떻게 꼬실까 고민 중인데 거야 천천히 찾음 되는 거고...

          이집트, 같이 안 갈래? 이렇게 고생했는데 휴가 좀 써줘야지.

윤주 : 조만간 박물관에 경사가 하나 더 있을 거 같아.

정우 : 무슨 경산데.

윤주 : 비밀. 그때 가서 축하해 줘.

 

의아해 보는 정우... 묘한 여운 남기는 윤주고...

 

 

29. 이단오피스텔 복도. 밤.

 

신나서 여행 가방 끌고 오는 이설. 비밀번호 삑삑- 누르는데, 안 열린다.

 

이설 : 어? 왜 이래. (다시 누르는. 또 안 열리는) 어? 0722 맞는데? (전화 거는)

           단아. 어디야? 도어락이 이상해. 혹시 비밀번호 바꿨, (하는데 삐빅- 문 열리는)

이단 : (문손잡이 잡고 서서 이설 보는)

이설 : 뭐야, 집에 없는 줄 알았잖아. 잤어?

이단 : (한숨... 팔로 문 막고 서서) 혼자 있고 싶어.

이설 : 어?

이단 : 혼자 있고 싶으니까 나가 달라고.

이설 : 아우 야아- 왜 또 그래. 또 기분 별루야? 불닭 사주까?

이단 : 하룻밤 혼자 있고 싶다는데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넌 친구 없니?

이설 : 있지. 많지. 근데 언니 니가 이럴 때마다 신세져서 나 이제 댈 핑계도 없다.

          내 친구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는 상관없는데 널 어떻게 생각할지 난 그게 정말 걱정이야.

이단 : 그렇게 걱정됐음 서울에 따라오질 말았어야지. (하더니 들고 있던 칫솔 휙 집어던지고 문 쾅!! 닫는)

이설 : 이씨! 야! 입에 넣는 건데 이렇게 패대기치는 게 어딨냐!!

          어우 진짜! 아- 또 어디 가서 자냐고...

 

 

30. 서림대 조교실. 밤.

 

스탠드 불빛뿐인 어둑한 조교실.

드르륵, 조용히 문 열리면 고개 빼꼼히 내미는 이설.

앞주머니에 칫솔 꽂힌. 조용히 가방 끌고 들어오며

 

이설 : 헤. 문 안 잠겼네? (테이블 신문지 둘러쓰며) 으으- 추워. 담요 없나?

          (여기저기 뒤지는데) 담요, 담요, 담요, 담,....

 

뭔가 철컥-! 움직이는.

이설, 놀라 멈칫.... 정적 흐르고....

휴... 안심하는 순간, 위이잉-!! 하며 프린터기 미친 듯 종이 토하는!!

으악-! 놀라 뒷걸음질하다 교수실 문에 턱 부딪힌!!

어버버- 말도 안 나오는데 벌컥! 문 열리는!!

꺄아아-!!! 앞으로 넘어지며 비명 작렬하는데!!

 

정우E : 이설?

이설 : 으아아-.....아... 아.... (하이톤으로 비명 지르다 점점 줄어들더니 뚝) 교수님?

          교수님이... 왜 여기 계세요?

정우 : (프린트물 집으며) 자료 놓고 간 게 있어서. 넌?

이설 : (아씨... 얼른 조교 책상에 뭔가 되는 대로 집어 들고) 저, 저두 뭐 놓고 간 게 있어서요.

          (하고 제 손 보면 컵라면!! 냅다 책상 구석으로 던지는. 망했다 싶은데)

정우 : (빤히 보다) 출출하네. 컵라면 하나 더 있나?

 

(시간경과)

책상 마주하고 앉아 컵라면 먹고 있는 두 사람.

 

이설 : (정우와 함께 있는 게 마냥 설레고 좋은...) 교수님은 왜 결혼 안 하세요?

정우 : 인기 떨어질까 봐.

이설 : 우헤헤 거짓말. (떠보듯) 여자친구분이 들으면 되게 속상하시겠다.

           애들 말로는 되게 미인이라던데.... 맞아요? (표정 살피는)

정우 : 미인이래?

이설 : (반색) 아니에요?

정우 : 맞어. 이뻐.

이설 : (피이-) 그렇구나.. 어떤.. 스타일이신데요? 섹시? 청순? 단아? 큐우트?

정우 : 넌 뭔데.

이설 : 네?

정우 : 넌 넷 중에 뭐냐고.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라서.

이설 : 어우 교수님은? 딱 보면 모르시겠어요? 저야 넷 다죠.

정우 : 아닌 거 같은데?

이설 : 앗! 안 속으시네요.

정우 : (피식. 제 방으로 가 재킷 걸치고) 다 먹었음 가자. 버스 타니? 전철?

이설 : 에? 아... 먼저 가세요. 전 쫌만 더 있다가요.

정우 : (앞주머니 칫솔, 구석에 여행가방 보는) 왜.

이설 : 조교님이 자료정리 시켜논 거 있는데 온 김에 후딱 하고 가게요.

정우 : 그럼 먼저 간다. 아, 캐비닛에 담요 있을 거야. (나가는)

이설 : 네? (멍하니 있다 헉! 캐비닛 열어보면 담요 정말 있고. 생글거리는) 뭐야.

          나 자고 가려는 거 어떻게 아셨지?

 

(시간경과)

담요 덮고 행복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있는 이설. 그러다 눈 반짝하더니

고개만 한껏 젖혀 보면, 닫힌 문 옆에 ‘조교수 : 남정우’ 작은 명패달린.

글씨 거꾸로 보이는...

잠깐 망설이다 괜히 까치발 들고 문 앞으로 가 문 살금 여는데

 

 

31. 정우 교수실. 밤.

 

‘달칵’ 불 켜면, 방안에 꽉꽉 들어찬 책들 압도적이다.

우와... 이설 저도 모르게 한 발 들여놓는....

돌멩이, 부서진 토기, 그림 등등 여기저기 고미술품들도 보이고....

이설, 살짝 정우 책상 의자에 앉아봤다 책도 꺼내 봤다 하는.

책상 위 엎어놓은 책 보고

 

이설 : 어! 교수님이 쓴 거네? (펼친 고대로 책 들어보는) 쿡, 귀여워. 자기가 쓰고 자기가 또 읽나 봐.

           (첫장 넘겨보는데 “공저 오윤주” 찍힌) 오윤주? 오윤주... 누구냐 넌!

 

핸드폰으로 미투데이에 글 올리는.

“의선군 - 이름없이 살다간 마지막 황태자의 공동저자 오윤주 아시는 분?“

댓글들 뿅뿅 올라오는.

 

이설 : (댓글들 읽어보는) “그런 책 안 읽음.”, “우리 엄마 이름임.”

          “레포트는 셀프요.”, “내 첫사랑인데 ㅠ”, “해영 박물관 관장 아님?”

 

마지막 댓글 보고 이설 헉! 눈 커지는.

 

이설 : (가슴 쿵! 내려앉는) 뭐야... 진짜... 박물관장이었어?

           ... 에이, 아냐 아냐. 이거 땜에 소문 난 거네 뭐. (하는데 또 댓글 올라오는)

           “인물 검색 첫번째에 나옴. 컴퓨터로 고고!?”

 

급하게 컴퓨터 켜는 이설. 로딩하는 동안 두근두근해 바라보는데....

헉!! 너무 놀라 제 입 막는 이설.

바탕화면 가득한 여자 얼굴, 환하게 웃는 윤주다.

그 옆으로 탁상 달력에 “윤주 - 해영박물관 pm 3:00” 적힌 것 보이고...

오래 오래.... 화면에서 눈 못 떼는 이설... 시무룩한 얼굴로 의자 빙글 돌려 앉는...

핸드폰 다시 쳐다 보더니 다시 글 올리는. “내 남자의 여자 떼어내는 법은?!!”

다시 뿅뿅 올라오는 댓글들 보며 주먹 불꾼 쥐는 이설이고...

 

 

32. 해영 박물관 전경. 낮.

 

20주년 기념 전시 플랜카드 걸린 입구.

사람들 길게 줄 서 있다.

긴 줄 가운데 이설의 모습 보인다. 팸플릿 속, 윤주의 사진 째려보며 섰는데...

 

 

33. 해영박물관/특별전시실 앞. 낮.

 

이설, 팸플릿으로 얼굴 가리고 사람들 틈에 끼어 어딘가 보면,

윤주, 환하게 웃으며 뉴스 인터뷰하고 있는.

그 여자 맞네... 맞어....

이설, 윤주의 아름다운 모습에 입 삐죽 하고 기죽어 돌아서는데

누군가와 눈 딱 마주친다. 헉! 해영이다!

사람들 틈으로 쏙 숨는 이설.

헌데 구경하던 한 무리 우르르 비켜나는 바람에 쭈그려 앉은 것 그대로 들키는.

 

해영 : (왜 저래? 그런 이설 보고 선...)

이설 : (뭐가 이렇게 허전해.. 하며 불길하게 시선 들다 헉!!)

해영 : 또 보네? 의외의 장소에서?

이설 : (어정쩡 일어서며) 네. 뭐.. 제가 워낙 취향이 고상하다 보니...

해영 : 나 쫓아온 거 아니구?

이설 : 제가 왜요.

해영 : 근데 나 왜 피해.

이설 : 피했다기 보단... 스쳐지나갈 남자랑은 세 번은 만나지 말자는 주의라,

          (하다) 아, 어떡해. 어떡해. (해영 뒤로 숨는)

해영 : 왜 이래.

이설 : (해영 어깨너머로 어딘가 보면 윤주 손님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고..)

          아.. 난 또 이쪽으로 오는 줄 알았네. 조기 저 여자요.

해영 : (보면, 윤주고. 얘가 왜 윤줄?!!!) 아는.. 사이야?

이설 : 안다고 하긴 좀 그렇구요. 저 여자가 여기 관장인데요, 치, 순 사진빨. 실물 완전 별로네 뭐.

해영 : 뭐가 별로야. 저 정도면 이쁘지.

이설 : 뭐가 예뻐요? 여우처럼 생겼구만? 그리고 솔직히 저렇게 젊은데 여기 관장이란 게 말이 돼요?

          이 ‘해영 박물관’이 대한그룹 껀 건 아시죠. 대한그룹 회장이 자기 아들 이름 따서 지은거거든요.

해영 : (재밌는...) 아들이 아니라 손자. 손자 이름이 박해영이거든.

이설 : 근가? 아, 맞다 맞다! 오- 쫌 아시네요? 암튼, 저 여자 분명

          대한그룹 임원 중 누구 애인이거나 뭐 그런 걸걸요?

해영 : 뭐 그런 거 아니거든? 엄마 미용실 하셔? 썬데이 위주로 공부한 거야?

이설 : 왜 정색은 하고 그러세요? 그냥 해보는 소리, 악- 어떡해 어떡해. (또 해영 뒤로 숨는)

해영 : 왜 또. (보면, 윤주 다가오는. 아.. 윤주 때문이구나...)

윤주 : 언제 왔어요?

해영 : 금방. 손님 많네.

이설 : (헉!! 둘이 아는 사이야? 악-- 미쳐 미쳐!! 도망치려는데 해영이 턱 잡는)

윤주 : (그런 두 사람 신경 쓰이고..) 누구...?.

해영 : (이설 뒷덜미 잡아 당겨 옆에 세우며) 오관장한테 관심 많은 친구. 인사드려.

이설 : (미치겠고..) 아, 안녕하세요...

윤주 : (표정관리 안 되고..) 네... 반가워요. (하고 이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데)

직원 : 관장님.. 잠시만...

윤주 : (미소) 잠깐 실례할게요. (이설 날카롭게 보고 직원한테 가는)

이설 : (윤주 가면) 서로 아는 사이예요? 어떻게 아는 사인데요?

해영 : 반지 주인.

이설 : (순간 퍼뜩!!) 자, 잠깐! 그럼 설마 어제 그 고무장갑? 어? 그럼 우리 교수님은요?

해영 : 뭐?

이설 :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근데 아까 썬데이, 그거 진짜 아닌 거 확실해요?

해영 : 함부로 그런 소리하면 큰일난다. 저 여자, 대한그룹 며느리될 사람이야.

이설 : (완전 좋아하는) 진짜요? 진짜요?

해영 : 니가 시집가는 것도 아닌데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이설 : 아, 죄송해요. 잠깐 제 생각만 해가지구. (해영 탁치며) 으이구, 어떡하면 좋아.

해영 : (인상 쓰면)

이설 : 하긴 돈 많은 남자 밝히게 생겼어.

해영 :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이설 : (가슴 찡한) 뭐야. 아유. 속도 좋으시다. 딴 놈이랑 결혼한다는데 이 와중에 감싸는 거예요?

          아....크....진짜 좋아하시는 구나... 좋아요.

해영 : 뭘?

이설 : 제 생각엔 어찌됐건 저 냥반이랑 거기랑 잘 돼서 백일 떡만 돌리면 다 해결 될 거 같거든요?

          어제 어떻게 됐어요? 고무장갑 딱 먹혔죠.

해영 : 못 만났어. 일찍 퇴근한대서.

이설 : 아우 진짜! 집 앞에 가서라도 좀 만나죠. 왜 그렇게 적극성이 떨어져요.

          떡 돌리고 싶음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여자 맘 사는 만고불변의 법칙. 바로 질투죠.

해영 : 뭐?

이설 : 긴지 아닌지 볼래요? 일단 먼저 소개 안 했는데 눈꼬리 살짝 올리면서 “누구?” 하면 게임 끝이에요.

          어? 온다. 온다.

윤주 : 미안해요. 오빠만 오면 꼭 이렇게 바쁜 척이에요. 근데 진짜 누구?

해영 : (엇!!)

이설 : (봤죠? 해영 팔짱끼며) 네. 전 오빠 여자친구 고은별이라고 합니다.

해영 : (의외에 행동이라 살짝 놀란)

윤주 : (살짝 안색 변하는. 우아떨며) 여...자친구요? 오빠 나 몰래 여자친구 만들었어요?

해영 : (상황 재밌고) 그랬나 봐. 꽤 귀엽지?

윤주 : 오빠 여자친구면 제가 그냥 보낼 수 없죠. 차 한 잔 하고 가세요. (일부러 이설에게) 괜찮죠?

이설 : 그럼요. 비싼 차 주실 텐데 너무 좋죠.

 

생글거리는 이설.

단아한 표정 억지로 지으며 보는 윤주고..

 

 

34. 해영박물관/관장실. 낮.

 

찻잔 놓고 마주 앉은 해영, 이설, 윤주.

 

이설 : 오빠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윤주 : 그래요? 난 은별씨 얘기 전혀 못 들었는데.

이설 : 그러셨을 거예요. 오빠가 저한테 되게 집착하거든요.

          말끝마다 우리 엄지공주, 주머니 속에 꽁꽁 숨겨놓고 나만 봐야된다구 난리예요.

해영 : (이설 하는 짓 재밌는. 웃음 억지로 참는)

윤주 : 그래 오빠가 나에 대해 뭐라던가요?

이설 : 특별한 얘긴 아니구요, 음.. 어린 나이에 관장 돼서 소문 많은데 절대 아니구,

          또...아! 여우처럼 생겼다 남자관계 복잡하다, 말 많은데,

          실상은 되게 여리고 천사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구요.

윤주 : 오빠가 그랬어요?

해영 : (어쩔까 싶다가) 오윤주 천사 맞잖아.

이설 : (헉! 그거 아니죠! 해영 째려보는) 오빠가 매사에 이렇게 나쁜 말을 못하잖아요.

          제가 여기 푹 빠졌잖아요. 저희집에서도 오빠 너무 좋아하세요.

          남잔 자고로 오빠처럼 자수성가해야 가정 책임질 줄 안다고.

          아! 생각난 김에 울 엄마 보러 가자. 엄마한테 콜 해볼게. 잠깐 실례할게요. (계속 해요... 눈짓하고 나가는)

해영 : (참다 풉- 웃음 터지는)

윤주 : (기막혀) 자수성가요?

해영 : (웃음 겨우 진정하고) 아... 애 놀랄까 봐 말 못 했어.

          저 친구 집은 그냥 평범한 거 같더라구. 미용실 하신다나 뭐 그래.

윤주 : ...오빠 이렇게 엉뚱한 줄 몰랐어요. (하는데 똑똑!! 비서 들어오는)

비서 : 관장님. 행사 시작 십 분 전입니다. (해영에게도 인사하고 나가는)

해영 : 바쁜 사람 너무 오래 잡아뒀다. 어서 가 봐.

이설 : (벌컥 들어오며) 오빠! 엄마가 씨암탉 잡는다고 같이 오래!

해영 : (쿡쿡- 웃음 참는) 그래? 어머니 힘드신데 그냥 두시라 그래.

이설 : 우리집 씨암탉이 동네서 알 잘 낳기로 일등먹은 앤데 오빠 온대니까 글쎄 그걸 확,

           (하다 윤주 보고) 어? 행사 시작한다고 방송하던데 아직 계셨네요?

윤주 : (일어나는) 네. 이제 가려구요. (이설에게 미소 지으며)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또 놀러와요. 담엔 맛있는 저녁 대접할게요. (해영 보는)

해영 : (미소)

이설 : (이거 아닌데...) 아. 네. 발표 잘 하세요.

 

짝사랑 ... 아닌가? 헷갈리는 이설, 두 남녀 눈치만 도록도록 보는데...

 

 

35. 해영박물관 복도. 낮.

 

해영, 이설 걸어나오는.

 

이설 : 관장님이 뭐래요? 나 누구냐고 막 꼬치꼬치 캐묻죠?

해영 : 아니.

이설 : 이상하다. 막 질투심이 불타올라야 되는데?

해영 : 너보고 그럴 리가 있냐? 상대가 안 되는데.

이설 : 왜요? 자기랑 나랑 비교하면 일단 내가 나이두 어리구,

해영 : (또 뭐? 하며 보면)

이설 : 키!... 는 좀 작지만, 돈은! (기 팍 죽어) 좀 못 벌지. 에이씨. 그래두, 피부는 내가..

          (목소리 기어들어가는) 더 좋지 않나? 아...닌가? 아 몰라. 어리면 장땡이죠. 칫.

해영 : 근데 넌 윤주한테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데.

이설 : 그야 당연히 우리, (하다 헉!! 정면에 꽃다발 든 정우!!) 일루 와요 빨리!! (해영 잡아당기는)

해영 : (끌려가며) 야, 왜 이래!

정우 : (요란한 소리에 이설 사라진 쪽 무심히 보는... 전시실로 들어가는...)

 

 

36. 특별전시실. 낮.

 

경호원들 우르르 몰려오고 그 뒤로 호위 받으며 들어서는 대통령!!

관람객들 놀라 웅성대고, 기자들 셔터 소리 빨라지는데!!

대통령, 윤주에게 먼저 허물없이 악수 청하는.

수많은 시선과 탄성 속에 짜릿함 느끼는 윤주.

 

 

37. 특별전시실 무대. 낮.

 

마이크 들고 낮은 무대 위로 올라오는 윤주, 쉴 새 없이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윤주 : 안녕하십니까. 해영박물관 관장 오윤줍니다.

일동 : (박수치는)

윤주 : 해영박물관은 20년 전 오늘, 그릇된 역사를 바로세우고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첫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억해 주십시오.

 

정우, 기대에 차 윤주 바라보는데 진행요원들 바퀴달린 진열장 밀고 들어온다.

진열장 윤주 앞에 놓이는. 장갑 낀 윤주 감개무량하고...

 

기자들 : (카메라 셔터소리 점점 빨라지고 다들 윤주만 주목하는데)

윤주 : (진열장 열어 친서 들어보이는) 바로 이것이 순종황제의 친서입니다.

          숨겨진 적자에게 ‘이영’이라 이름을 지어 보낸 것으로서

          쇠락한 왕조의 숨겨진 왕자의 안위를 염려하는 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해영박물관 개관 20주년에 이토록 귀한 보물을 공개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대통령 비롯한 객석에서 박수 터져나온다.

윤주, 자신만만한 미소로 객석 둘러보다 순간 눈빛 흐려진다.

저만치 정우가 앉아 싸늘한 눈초리로 윤주 보고 있다.

싸울 듯 질문 해대는 기자들로 시끄러운 소리도 신경 쓰이지 않고,

그저 정우의 반응에 신경쓰는 윤주. 이내 다시 미소 짓고 환하게 웃는다.

정우, 더는 보고 싶지 않다는 듯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빠져나가는.

 

 

38. 특별전시실 2층. 낮.

 

이설, 아래 내려다 보다 정우 나가는 모습 보고 안도의 한숨 내쉬는.

하지만 순종 친서 보고 쿵쾅대는 심장 멈추질 않는데...

 

해영 : (이상하다 싶어) 너, 왜 그래? 괜찮아?

이설 : 저기... 순종 친서 저거요. 나 저거 아는 거 같아요.

해영 : 인터넷에서 봤겠지. 사진 자료는 흔하게 돌아다니니까.

이설 : 그게 아니라요. 우리집에 한자 두 개에 도장 꽝 찍힌거 있었거든요?

해영 : 우리집엔 그런 거 수십개 있어.

이설 : 뭐예요 유치하게. 그럼 우리집엔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있어요. 수십개.

해영 : 진짜거든?

이설 : 뭐야, 은근 승부욕 있으시네? 저기 그럼 남은 얘긴 가서 하죠.

해영 : 어딜?

이설 : 아이 참, 이정도 했음 인간적으로 밥은 멕여야죠!

 

 

39. 국밥집. 밤.

 

국밥 먹고 있는 해영과 이설. 테이블 위 해영의 핸드폰 진동.

해영과 이설 동시에 보면, “윤주”뜨는.

이설 얼른 핸드폰 뺏는.

 

해영 : 뭐야. 내 놔. (뺏으려고 하면)

이설 : 이런 바보!! (핸드폰 높이 들며) 이렇게 냉큼 받음 어떡해요.

          관장님 보니까 질투심에 불타오르려면 완전 하드코어한 밀당이 필요하겠어요.

해영 : 그런 걸 왜 해.

이설 :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해서.

해영 : 뭐?

이설 : 자기 좋아 죽겠다는 남자, 여잔 매력 없어요. 대한그룹 손자 이길라면 내말대로 해요?

          참 , 반지요. 그거 왜 산거예요? 생일? 기념일?

해영 : ... 프러포즈 하려구.

이설 : 안 돼요!

해영 : 뭘 자꾸 안 된대.

이설 : 반지는요. 여자가 받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을 때까지 기다렸다 줘야 된다구요.

          여자들이 날 잡아놓고도 반지 보면 싱숭생숭한다는데, 벌써 그걸 주면 어떡해요.

          앞으론 일절 뭐 사주지 말고 생일날도 축하한다 전화만 하고 선물은 일주일 있다 줘요.

해영 : 생일을 지나서 챙기는 사람이 어딨어.

이설 : 일주일 있다 주면서 “내 선물이 다른 사람의 선물과 섞이는 게 싫었어.”

           한마디면 그런 반지 열 개 보다 효과 짱이거든요?

해영 : 어 느끼해.

이설 : 대한그룹 손자, 그까이꺼 확-! 이길 수 있어요! 아자아자! 화이팅!

해영 : (실소하는) 다 먹었음 가자.

이설 : (전화 오는) 어, 엄마. (사이) 여행?

 

 

40. 펜션/엄마방. 밤.

 

입 벌린 여행 가방에 부지런히 짐 챙겨 넣는 손. 이설의 양엄마다.

비닐 봉지에 싼 샴푸, 린스. 치약, 칫솔, 수건, 옷가지, 뜨다만 목도리와 실뭉치 보이고...

“필승! 이단 사법고시 수석 기원” 적힌 머리띠도 보이고.

 

엄마 : 지리산에 기도빨 끝내주는데가 있다네? 가서 니네 언니 시험 잘 보라고 치성 좀 드리고 올라고.

          그러니까 너 주말에 내려와서 개 밥 좀 줘.

 

 

41. 국밥집. 밤.

 

이설 : (나가며) 이씨. 엄마는 뭐 내가, (하다 눈 반짝!!) 언제라고? 주말?

 

 

42. <이설의 상상> 이설네 펜션 마당. 낮.

 

엄마 탄 차 쌩- 사라지면, 환하게 손 흔들던 이설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

무선 전화기 어깨에 낀 채, 한 손은 핸드폰 문자 콕콕콕, 한 손은 홈페이지 클릭클릭.

펜션 마당에 손님들 미친 듯이 몰려드는.

이설 앞에 빛의 속도로 쌓이는 돈 다발.

우산만한 모자에, 한손엔 비행기 티켓, 한손엔 이집트 여행가이드,

트렁크 끌고 쌩-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이설이고....

빈 밥그릇 핥고 있는 불쌍한 견공 두 마리...

 

 

43. 국밥 집 앞. + 거리. 낮.

 

해영 계산하고 있고, 이설 문 앞에 서서 통화 중인.

 

이설 : 아휴- 개밥 줘야지 그럼. 나 원래 내 밥은 굶어도 개밥은 칠첩반상으로 차리자 주의잖아.

           (사이) 음. 걱정말구. 설이두 알라뷰-

해영 : (계산하고 나오다 콧소리에 미간 좁히고 보면)

이설 : (전화 끊으며) 글쎄 우리 모친께서 주말여행을 가신다네요? 나 너무 좋겠쬬!

해영 : (차로 걸어가며) 니가 왜 좋냐? 여행은 어머니가 가시는데?

이설 : (따라 걸으며) 집이 비잖아요. 집이 비어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제가 비행길 타죠.

해영 : 비행기? 유학 가?

이설 : 요즘 같은 환율에 어떻게 유학을 가요. 유학은 담에 가고 고백하러 갈라구요.

해영 : 뭐? (하는데,)

이설 : (너무 신난 나머지 걸으며 노래하며 춤추는)

 

해영, 너무 순식간이라 말리지도 못하고 이설 보는. 사람들 큭큭 웃으며 지나가고..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 이설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신선한데...

 

이설 : 어때요? 같은 남자로서 봐봐요. 나한테 넘어올 거 같애요?

해영 : 너 어머니 전화번호 좀 줘 봐.

이설 : (응?) 내 번호가 아니구 울 엄마 번호요?

해영 : 딸래미 이러고 다닌다고 말씀 드려야지. 그딴 거 연습할 시간 있음 책도 좀 보고, 외국어 공부도 좀 하고, 어?

          청년실업 600만 시대에 정신 못 차리긴, (차 타려다 이설이 쳐다보자) 왜, 데려다 달라 소린 안 할 거지?

이설 : 혹시 같은 방향이면,

해영 : (전화 와서 받는) 네. 저예요. 말씀하세요. (듣다 놀란. 차에 타며) 바로 갈게요.

이설 : (어-! 차창에 붙어서서) 같은 방향 아니면 쪼기 전철역까지만,

해영 : 먼저 갈게. 가라. (붕- 가 버리는)

 

 

44. 동재 저택 전경. 밤.

 

가로등 아래 해영 차 다가와 멈추는. 급하게 들어가는 해영이고.

 

 

45. 동재 저택/동재 침실. 밤.

 

해영과 기택 지켜보는 가운데 침대에 누워 주치의 검진 받고 있는 동재.

 

해영 : (걱정스럽게 보다가 소근) 언제부터 저러신 거예요.

기택 : (소근) 낮에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키셨어.

해영 :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기택 : 좋은 소식이 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아도 저러셔.

해영 : (?!! 기막힌..) 뭐 얼마나 좋은 일이 있길래 심장이 발작을, (하는데,)

 

주치의 심장 체크하는 도중임에도 손짓으로 해영 부르는 동재.

해영 가까이 가면 더 가까이 오라는 손짓.

해영, 동재의 입 가까이 귀 가져다 대면...

 

해영 : (자세히 들으려 애쓰며) 이..설.. 이요?

동재 : (눈 감았다 떠 그렇다는 표시..)

해영 : (화나는 거 억지로 참는...) 그게 누군데요.

동재 : (기력 없어 눈 감아버리는)

해영 : 할아버지!

 

주치의 괜찮다고, 조용히 하라고 제스처하는.

해영, 심란한 얼굴로 보고 있는데...

 

 

46. 동재 저택/ 정원. 밤.

 

정원 테이블에 작은 메모지 내려놓는 손,

보면 <이름, 오피스텔 주소, 핸드폰 번호> 딸랑 적힌.

 

기택 : (메모지 밀어주며) 회장님이 말씀하신 아가씨야. 서둘러야 되지 싶다.

해영 : 이 여자가 대체 뭔데요. 데려와서 뭘 어쩌시게요.

기택 : ... 갚아야 할 빚이 있다고 생각하셔.

해영 : 제가 아는 할아버지는 평생 남한테 빚진 적도 없고 설사 그랬대두 미안함 따위 모르는 분이에요.

기택 : (사실이 그렇고...)

해영 : 근데 딱 하나 예외가 있죠. 자주 가시는 무덤. 그 무덤 주인이랑 상관 있는 거죠.

기택 : ... 그래. 너도 똑똑한 아인데 그만 세월에 눈치 없었을까.

          하지만 감히 내가 입에 올릴 얘기가 아니다. 다녀와서 회장님께 들어.

해영 : (한숨) 하나만 여쭤요.

기택 : (보면)

해영 : 할아버지 자식이에요? 아님... 아버지 자식이에요?

기택 : 뭐? (하다 당황해서 해영 뒤편 보고) 윤주야.

해영 : !!

윤주 : 두 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해영 : (윤주에겐 말하고 싶지 않은) 가볼게요. (대문 나가는)

윤주 : 오빠! (잡지도 못하고..) 대체 이게 다 무슨 말이에요?

 

 

47. 동재 저택/기택 방. 밤.

 

기택, 마호가니 책상에 앉아 돋보기 너머 서류만 보는.

윤주 꼼짝 않고 기택 보다가.

 

윤주 : 말씀 안 해주실 거예요?

기택 : 네가 상관할 일이 아냐.

윤주 : 저도 이 집 식구예요. 대체 뭘 숨기고 계신 건데요.

기택 : (대답 없는)

윤주 : 아빠.

기택 : (돋보기 내려놓는) 난... 니가 야무지고 이쁘게 커줘서 늘 고맙고 미안한 애비다.

          근데, 늘 불안하고 두려운 애비이기도 하구나.

윤주 : (무언가 불안한) 무슨.. 말씀이세요?

기택 : 니가 품은 생각이, 니가 오르고자 하는 자리가, 니가 탐내는 사람이, 과해.

윤주 : !!!

 

윤주, 자신의 욕망을 꿰뚫어 보는 기택을 원망스럽게 노려보는데...

 

 

48. 이단오피스텔 복도. 낮.

 

딩동! 초인종 누르는. 대답 없는...

짜증난 얼굴로 문 쾅쾅 두드리는 해영.

잠시 후, 문 열리더니 차가운 얼굴의 한 여자 서 있다. 이단이다.

 

이단 : 누구시죠?

해영 : 이설..씨?

이단 : (해영 아래위 훑는. 양복, 구두, 시계.. 다 명품이다...) 설이 지금 없는데요. 어제 안 들어 왔어요.

해영 : ...외박을.. 했단 말입니까?

이단 : 안하는 날이 드물죠. 근데 걘 왜요?

해영 : 혹시 연락 됩니까?

이단 : 걔한테 돈 꿔 주셨어요?

해영 : 그런 거 아닙니다.

이단 : 그럼 돈 빌리시게요?

해영 : (어이없고) 그런 건 아니고,... 이설씨랑 어떻게 되는 사이예요.

이단 : 설이와 어떻게 되는 사인지는 제가 먼저 물은 거 같은데.

해영 : 설명하기가 좀 그렇네요. (지갑에서 명함 꺼내며) 내가 아는 건 이름 나이 핸드폰 번호 여기 집 주소가 다예요.

           집에는 없고 핸드폰은 꺼져 있고 난감하네요. (명함 건네며) 집에 오거나 연락이 닿으면 전화 좀 줄래요?

이단 : (명함 보다 엇!! 외교통상부면.. 외교관!! 새삼 해영 얼굴 보면)

해영 : 부탁할게요. (하고 돌아서는데)

이단E : 어딨는지 알아요.

해영 : (!! 돌아보면)

이단 : 어딨는지 지금 알려드려도 (명함 보이며) 전화 드려도 되나요?

해영 : (어쭈! 하는 표정으로 보는데...)

 

 

49. 펜션 앞. 낮.

 

한적한 시골길. 낡았지만 운치 있는 펜션 앞에 해영의 고급 차 멈춘다.

마음 복잡한 해영, 핸드폰 누르며 펜션으로 들어가는데

개밥 주고 있는 여자. 강아지 사료 봉투 끌어안은 채 핸드폰 꺼내 받는다.

저 애구나...싶은데,

‘여보세요?’ 하며 옆으로 고개 돌리면 낯익은 얼굴이다!!

 

이설 : (환한 미소) 사랑과 낭만이 함께하는 햇살가득 펜션입니다. 여보세요? 안 들리세요?

 

해영, 핸드폰 통해 들리는 이설 목소리 믿기지 않고...

이설은 뭐지? 싶다 핸드폰 끊고 강아지사료 와르르- 부어주더니 다시 전화 거는.

 

이설 : 여보세요? 저 이설인데요. 금방 전화하신 분이죠? 누구세요?

해영F : 이름이, 이설이라구?

이설 : (뒤통수 이상한) 잉? (돌아보면!!) 되게 반갑다. 어떻게 여깄어요?

해영 : (전화 끊는) 진짜 이름이 이설이야?

이설 : 이쁘죠? 다들 생긴 것 마냥 이름도 샬랄라하다구, (하다 아차! 입 막는)

해영 : 언젠 고은별이라며.

이설 : 아... 들킬까 봐 그랬죠. 여자들은 라이벌 생기면 미니홈피부터 뒤진단 말예요.

해영 : 그렇다고 감히 날 속여?

이설 : 작전상 암호명이죠. 근데 진짜 우리집에 웬일이에요? 내 전화번혼 어떻게 알고?

해영 : 그까짓 거 아는 게 뭐 어려워?

이설 : 설마 내 뒷조사 했어요?

해영 : 했으면 뭐.

이설 : 와, 웃긴다. 외교관이라더니 공권력을 그런데 행사해요?

해영 : 너 나 누군지 첨부터 알고 있었지? 설마 의도적으로 접근한 거냐?

이설 : 어머. 자뻑도 그정도면 치료 요망이거든요?

해영 : 긴지 아닌 지 두고 보면 알겠지. 방 있어?

이설 : 예?

해영 : 오늘 내일 있을 거야. (펜션 향해 성큼성큼 가는)

이설 : (따라가며) 에? 여기 묵게요?

해영 : 싫어? 엄마 몰래 돈 번다며.

이설 : 환영합니다 고객니임-!

 

- 1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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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웃음의 여왕 | 작성시간 11.03.24 감사합니다~*^^*
  • 작성자잉발수열 | 작성시간 12.01.08 담아가요^_^
  • 작성자꿀벙므므 | 작성시간 12.09.16 담아가요!!
  • 작성자★ 귀여운 작가 ★ | 작성시간 13.01.17 감사합니다.
  • 작성자장희영 | 작성시간 13.05.0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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