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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콩깍지] 09 - 프로포즈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0.12.23|조회수502 목록 댓글 0

[내 인생의 콩깍지] 09 - 프로포즈

 

 

 

 

 

#1 S 인천공항 입국장 앞 (낮)

카트를 밀고 나오는 은영. 밝게 웃으며 걸어나온다.

자막. 2년 후. 2000년 4월.

마중 나온 은영부와 은영모, 인경이 은영을 발견하고 부른다.

은영, 달려와 카트를 놓고 은영모부터 끌어안는다.

은  영 엄마!

은영모 은영아! 어디 봐. 괜찮니?

은  영 괜찮지. (은영부 보며) 아빠...! (끌어안는데)

은영부 그래, 우리 딸 잘 왔다. 다시는 유학 같은 거 갈 생각

하지마라.

은  영 알았어. 다시는 안 갈게. (팔 풀며, 인경 보고) 넌 왜 나

왔어? 며칠 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야근했다며?

인  경 (그 동안 섭섭했던 감정) 지지배야! 몰라보겠네? 뉴욕

물 먹더니 이뻐졌다?

이내 환호성을 지르며 끌어안는 은영과 인경.

즐겁게 밖으로 향하는 일행.

은  영 은호는 언제 온대요?

은영부 다음주에 귀국한다더라.

은  영 잘됐다. 그럼 모처럼 온가족이 다 모이겠네?

은영모 이제 얌전하게 있다가 시집 갈 생각이나 해!

은  영 (지겨운) 아휴, 알았어.

은영도 밝게 웃으며 밖으로 향한다.

은  영 (N) 유학을 갔다오니, 어느덧 스물 아홉이 되어있었

다. 이대로라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서른잔치를 맞을 게 뻔했다.

하지만 새 천년이 시작되었듯이, 나에게도 왠지 근사한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2 S 소제목

9. 프로포즈

#3 S 식당 (낮)

영진이 경수에게 보험상품 팜플렛을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하고 있

다.

영  진 (밥은 건드리지도 않고) 이게 판매 두 달만에 100억 돌

파한 보험상품인데, 우리나라 사고가 좀 많이 나냐? 너도 언제 당

할지 몰라요.

경  수 (열심히 먹으며) 너 지금 악담 하냐?

영  진 그게 아니라 미리 준비를 하란 얘기지. 너같이 좋은 친

구를 잃어봐라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 그러니까 이거 하나 들

어 둬.

경  수 됐어. 임마. 기분 나쁘게.

영  진 그럼 생명보험 말구, 건강보험, 암보험은 어떠냐? 이

거 당뇨병 고혈압, 심장질환 다 되구, 자궁암, 유방암...

경  수 야, 내가 유방이 어딨냐? 그리고 나 돈두 없어. 생활비

대고 주택청약 붓고나면 빠듯하다.

영  진 그래? 그러면 좀 싼 걸루 자녀안심보험, 주택화재보

험, 하다못해 자동차 보험이라두...

경  수 야, 내가 애가 어딨구, 집이 어딨구, 차가 어딨어? 말

이 되는 소릴 좀 해라.

영  진 (울쌍) 야, 나 이번 달에 한 건도 못했어.

경  수 진짜 미안하다. 딴 사람 찾아봐라. (다 먹고 급히 일어

난다.)

일어나는 경수, 계산하고 나간다.

영  진 야, 경수야, 경수야! 아이, 씨... (배가 고픈지, 급히 밥

먹는다.)

#4 S 빌딩 숲 뒷골목 (낮)

한숨 쉬며 괴로운 표정으로 걸어오는 경수.

이때 예쁜 카페를 배경으로 조명을 치고 남녀모델의 화보촬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사직작가, 메이크업, 코디네이터 등이 보인다. 그 속에 은영이 있

다.

구경꾼들 모여있고, 경수도 구경을 하면서 바삐 지나간다.

은  영 (비쥬얼 시안을 들고 모델에게) 이번엔 인상을 좀 써보

죠! 거칠게! 도전적인 이미지니까, (여자모델이 남자모델의 어깨

를 짚고 인상쓰면) 네, 좋아요.

경수, 모델만 보다가 무심코 목소리를 따라 은영 쪽을 보게 된다.

멈춰 서는 경수, 잘못 봤나 싶어서 자세히 보며 사람들 뚫고 들어

간다.

은  영 (사진작가에게) 몇 커트만 더 찍고 다음 의상으로 넘어

가죠.

이때 뒤에서 다가와 은영을 톡톡 치는 경수.

은  영 (스텝인 줄 알고 돌아 봤다가, 놀라며) 어머...! 경수

야! (반가움)

경  수 너 맞구나? 여기서 뭐하니?

은  영 (사람들을 뚫고 경수 데리고 가며) 오랜만이다...! 나

의류회사 마케팅실에 있어. 지금 여름 신상품 카달록 촬영하는 거

야.

경  수 그래...? 근데 넌 어떻게 통 연락이 안되냐?

은  영 미안해. 유학 갔다 얼마 전에 돌아왔어.

경  수 정말 유학 갔었어? 연락이라도 하고 가지? 아니면 가

서 전화라도 해주던가?

은  영 정신이 없었어. 안 그래도 생각은 했었다. 전화 한번

할라 그랬는데...

경  수 생각만 하면 뭘 하냐? 난 하도 소식이 없길래, 너, 그

때 왜 쫓아댕기던 그 이상한 놈 있었잖아, 그 놈한테 끌려가서 결

혼이라두 한 줄 알았다.

은  영 (웃더니) 아, 그때 그 사람 몰래 부랴부랴 출국하느라

고... 넌 어떻게 지내? 결혼은 했어?

경  수 나?

이때 영진, 촬영을 구경하며 오다가 경수를 발견하고,

영  진 어? 경수야! 여깄었구나! (다가오는데)

경  수 (은영에게 급히 명함 꺼내주며) 저기, 나 결혼 안 했

구, 오늘 안에 반드시 연락해라. 알았지? 나 튀어야겠다! 간다! (영

진을 피해 재빨리 도망한다.)

은영 명함을 받고 어리둥절 보면,

영  진 (쫓아가며) 경수야!

경  수 이거 놔. (도망하고)

영  진 (끈질기게 쫓아가며) 에이, 경수야! 정말 친구 사이에

이럴래?!

경  수 나 좀 괴롭히지 좀 마라. 제발...!

영문은 모르지만, 그런 경수를 바라보며 웃는 은영.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며 명함을 바라보는 은영.

은  영 (N) 정말 신기한 일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자주 부딪

치는 것일까? 이 넓고 넓은 서울 땅에서... 마치 누군가 우리에게

자꾸 인연이라는 다리를 놓아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것이 운명

일까...?

#5 S 경수 회사 (밤)

창 밖은 까만 밤인데도 분주해 보이는 직원들의 움직임.

경수도 서류들 쌓아놓고 보고서 작성하고 있는데,

이때 선배가 경수자리로 온다.

선  배 언제쯤 끝나? 초안 상태라도 빨리 올리지?

경  수 (심각한)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데요?

선  배 (모르는 건 아니고) 일단 아우트라인만 대강 잡아. 나

중에 보강하고.

경  수 (모니터 보면서) 미회수 채권이 천7백억이나 되는데

단기손실로 처리가 잘 될지, 그리고 해외법인 지급보증액 4천2백

억원에 대해서두요... 짜맞춰진다고 해도 오래 덮어질지가 의문인

데요?

선  배 그걸 왜 서대리가 걱정하나? 위에서 시키는 대로하기

나 하지?

경  수 내부거래 밝혀지면 주가 하락될 게 뻔한데, 자꾸 덮을

게 아니라 차라리 화학 쪽을 매각하는 게...

선  배 거 참 이상하네? 그걸 왜 서대리가 걱정하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해. 나도 골치 아퍼.

경  수 (기분 더럽다. 잠시 후) 알았어요...

선배 가고 나면, 경수 서류철을 덮어버린다. 일할 맛 안 나는 것.

이때 핸드폰이 울리면 받는 경수.

경  수 (지친 투로) 구조조정본부 재무경영팀... 아, 여보세

요...?

은  영 (E. 피곤한 투로 웃으며) 나 은영이야.

#6 S 의류회사 마케팅실 & 경수 사무실 (밤)

모두 퇴근했는지,

은영 혼자 남아 일하면서 이어폰으로 핸드폰통화 하고있다.

은  영 너무 늦게 전화했지?

경수 사무실 화면 들어오며, (와이프 인)

경  수 아냐, 아직 일하고 있었어.

은  영 (신발 벗어 발 주무르며) 나두 아직 회사야. 일이 늦게

끝났어. 하루종일 서있었더니 정말 피곤하다. 그래도 일은 대기업

보단 재밌어.

경  수 그럼 다행이다. 난 주주총회 앞두고 회계장부 다시 꾸

미고 있다. 내가 이럴라구 경영학과 가서 비싼 등록금 내고 공부

한 건 아닌데...

은  영 (씁쓸하게 웃으면서 서류 덮으며) 언제 끝나? 난 슬슬

들어갈까봐.

경  수 (컴퓨터 끄며) 나두 그만 들어가야지.

은  영 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도 못하고 그냥 헤어져서 섭

섭하더라.

경  수 (갑자기 화색이 돌며) 야, 이럴 게 아니라 우리 만나

자.

은  영 지금?

경  수 (일어나 퇴근 준비하며) 뭐 어때? 즐거운 일도 없는

데, 내가 귀국파티 해줄게.

은  영 (잠시 생각하더니) 좋아.

경수화면 밀어내고 (와이프 아웃), 계속 통화하면서 밖으로 나가

는 은영.

#7 S 의류회사 앞 (밤)

의류회사에서 튀어나오는 은영.

은  영 (이어폰으로 통화 계속) 귀국하면 뭔가 신나는 일이 기

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주말에도 밤늦게까지 일에만 파묻혀 지

내. 데이트 할 시간도 없는 거 있지? (택시 잡는) 아저씨! 삼성동이

요!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은영.

#8 S 다른 택시 안 (밤)

경수가 핸드폰으로 통화하며 가고 있다.

경  수 데이트? 너 데이트 할 사람이나 있냐?

은  영 (E) 일단 시간이 나야 사람을 만들지.

경  수 맞다. 난 지난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했어. 다들 가정

있고 애인 있다고, 나밖에 일할 사람이 없다는 거야. 그날 데이트

있다고 박박 우겼는데, 아무도 믿질 않아. 결혼은 둘째치고 애인

도 없잖냐? 그럼 인간취급도 안해요. (운전사에게) 조기 세워주세

요. (전화에) 난 다 왔거든? 넌 어디니?

#9 S 거리 (밤)

먼저 와서 기다리며 전화통화하고 있는 은영.

은  영 벌써 도착했지.

경  수 (E) 아, 보인다. 잠깐만...

이때 택시 와서 멎고, 경수가 내린다.

그제야 두 사람 서로를 보며 핸드폰 끊고는, 다가가 마주 선다.

경  수 오래 기다렸어?

은  영 아냐, 금방 왔어.

경  수 어디 한번 안아나 보자! (덥석 안고 어깨 툭툭 치며) 어

이구, 반가워라!

은  영 (괜히 주위 둘러보며) 어? 야~?! 너 성추행이야?

경  수 (팔 풀며) 늙어 가는 처지에 무슨 추행이냐? 안아주면

고마운 거지.

은  영 얘가?

경  수 (얼굴 살펴보며) 밤이라 그런가...? 낮에는 주름도 보

이던데, 지금은 괜찮네?

은  영 (삐죽) 너두 밤에 보니까 많이 삭은 거 같진 않다?

경  수 난 원래 동안(童顔)이잖냐. 너보다 두 살은 더 젊어 보

일 걸?

은  영 (팔꿈치로 옆구리 찌르며) 어쭈!

#10 S 락카페 (밤)

잔을 부딪치는 두 사람.

경  수 (음악소리 때문에 소리 지르는) 야, 정말 잘왔다! 보고

싶었어! 알지?

은  영 어, 알어.

술을 마시는 두 사람.

경  수 너 아까부터 나한테 성민이 소식 묻고 싶었지?

은  영 아니. (웃는다.)

경  수 에이, 궁금하면서.

은  영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잘 있지? 성민씨?

경  수 음. 잘 있지.

은  영 그럼 됐어. (성민이 얘길 많이 하고 싶진 않다.)

경  수 (의외라는 듯) 그래...? (분위기 바꾸며) 너두 이제 슬

슬 노처녀다? 대책은 있냐?

은  영 몇 살부터 노처년데? 나 아직 이십대야.

경  수 스물 아홉이 어떻게 이십대니? 너 문제다? 위기의식

자체가 없구나? 집에서 시집가라고 안해?

은  영 볼 때마다 하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그러는

넌 대책 있어?

경  수 남잔 괜찮아, 서른 셋까진.

은  영 그런 게 어딨니?

경  수 그러지 말고, 너 나한테 시집 와라!

은  영 치, 아무 남자한테나 갈 거면 진작에 갔지!

경  수 내가 무슨 덤으로 껴주는 별책부록인 줄 아냐? 아무 남

자게?! 싫음 말고.

웃는 은영.

경  수 야, 우리도 춤이나 추자.

은  영 무슨 춤을 춰? 이 나이에?

경  수 빨리 나와. 더 늙으면 이런 데 들어오지도 못해. 우리

가 지금도 이 집 물 많이 베려놓고 있다. (은영 끌고 나가며) 일어

나. 나가자. 물 흐리러.

경수 신바람 일으키며 환호성 지르면서 은영을 끌고 나가고,

억지로 끌려나가 어색하게 박수를 치는 은영.

경수 괜히 환호성을 지르며 광란의 춤을 춘다.

은영. 어색하지만 곧 어울리며 재밌어한다.

경  수 오늘 내가 풀 코스로 모실게!

#11 S 포장마차 (밤)

소주잔을 기울이는 경수와 은영. 둘 다 발그레하게 취해있는 상태

에서.

은  영 이게 풀 코스니?

경  수 좋잖아? 뉴욕에 이런 포장마차 있어?

은  영 (둘러보며) 그래, 좋다. 오랜만에...

경  수 근데 너 춤 좀 추더라?

은  영 그럼 내가 못하는 게 있는 줄 아니? (술 마시고는) 참,

너 그 여자하고는 어떻게 됐어? 이름이 뭐였더라...?

경  수 (씁쓸해지며, 은영잔에 술 채우는) 어... 희정이...

은  영 그때 그냥 그렇게 헤어진 거야?

경  수 그렇지 뭐... (괜히 강조) 이젠 괜찮아. (씩 웃어 보이

고는) 이별을 하면 성숙해지네 어쩌네 하지만, 다시는 그런 경험

하고싶지 않다. (잔 내밀며, 호기롭게) 자, 한잔하자.

부딪치고 마시는 경수.

은  영 (잔 부딪치기만 하고 내려놓고) 그때 보니까 참 괜찮던

데... (경수 잔에 술 따라준다.)

경  수 괜찮으면 뭘하냐... 내가 아니라는데...

은  영 생각보다 심각했었나보네?

경  수 그럼. 처음으로 사랑한 여잔데.

은  영 처음? 너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세 번째다?

경  수 아무튼! (술 마시고는 자기 잔에 술 따르며, 허탈하게)

감정이란 게 오래 만났다고 깊어지는 건 아닌 것 같더라. (한숨) 결

혼이란 게 감정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난 자신 있었는데, 날

믿고 기다려줬으면 좋았을 걸... (씁쓸하게 술 들이킨다.)

은  영 야, 천천히 마셔.

경  수 (잔 내려놓더니) 야! 근데 너는 다 잊어먹은 얘길 왜

또 꺼내서 사람을 괴롭히냐?

은  영 어? 미안해...

경  수 에이 씨... (화가 나는지, 자기 잔에 술을 따라서 또 마

신다.)

#12 S 포장마차 밖 거리 (밤)

엄청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경수.

은  영 (부축하며) 경수야, 정신 차려. 집에 가야지. 너 내 귀

국 파티 해준다더니 이게 뭐야?

경  수 (갑자기 은영을 쳐다보더니 끌어안으며) 사랑한다. 사

랑해...!

은  영 (밀어내며) 어머, 얘가 왜 이래? 너 취했어.

경  수 (비틀거리며) 아니야... 나 하나도 안 취했어. 내가 오

늘 맨 정신에 확실하게 얘기하는데, 너 진짜 사랑한다. (갑자기 얼

굴 붙잡고 키스한다.)

눈이 동그래지는 은영.

경  수 (키스 끝나자마자) 희정아.

은  영 (경수를 밀치며) 얘가?

떠밀리자 비틀거리며 뒤로 벌러덩 넘어지는 경수.

은  영 (놀라서 달려들며) 어머, 경수야! 괜찮니?

#13 S 여관 카운터 (밤)

경수를 부축해서 들어오는 은영.

경수를 벽에 기대어 세워놓고, 카운터로 간다.

눈이 감겨있는 경수, 한 팔로 벽을 짚고 서서 건들건들 거의 혼수

상태다.

경  수 (계속 나직하게 중얼중얼) 사랑해... 사랑한다... 희정

아... 사랑해...

은  영 (괴로운, 카운터에) 저... 방 하나만 주세요...

아저씨 자고 갈 거예요?

은  영 네? (배시시 웃으며) 저는 안 잘 거구요, 저 사람만 자

고 갈 거예요...

#14 S 여관방 (밤)

경수를 부축해서 들어와 침대에 눕히는 은영.

그 바람에 같이 넘어지며 경수 밑에 깔린다.

은  영 (일어나려 하며) 저리 좀 비켜 봐.

경  수 (눈도 못 뜨고 은영을 안은 채, 술 주정) 사랑해... 우

린 잘 될 거야... 나만 믿어... 근데 은영이는 어떻게 하지...? 우리

은영이? 참, 착한 앤데... 은영아... 너두 사랑한다... (잠이 든다.)

조용해지자, 그런 경수를 보다가 살짝 밀어내고는 일어난다.

가려다가, 한숨. 경수의 웃옷에서 핸드폰을 꺼내 알람을 맞춘다.

#15 S 여관방 (아침)

핸드폰에서 알람이 요란하게 울리자,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는

경수.

경  수 (핸드폰을 받으며) 아, 머리야, 아, 머리야. 여보세요?

여보세요? (알람소리 그치자, 핸드폰 내려놓고) 여기가 어디야? 내

가 왜 이런 데 있지?

주변을 둘러보면, 물잔 옆에 쪽지가 놓여있다.

쪽지를 풀어보는 경수.

은  영 (E) 너 사랑하는 사람 많아서 좋겠다. 무슨 남자가 그

러니? 아무튼 술 잘 깨고 출근 잘 해라.

경  수 (읽으며) 추신. 근데 넌 어쩜 키스를 그렇게 못하니?

그러니까 희정씨가 떠났지. (쪽지 내려놓으며) 아니 어떻게 된 거

지? 내가 어제 어디까지 간 거야? (흐트러진 자기 옷을 내려다본

다.)

#16 S 경수회사 비상구 계단 (낮)

비상구 문을 열고 들어와 서성거리며 고심하는 경수.

전화를 걸까 말까, 뭐라고 해야 되나 고민이다.

이윽고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기다리는 경수.

신호가 가자, 전화를 받는 은영.

은  영 (E) 여보세요?

경  수 (조심스럽게) 어, 저기 은영아, 나 경수거든?

은  영 (E) 어, 그래...

경  수 어제 무슨 일이 있었든...

#17 S 마케팅실 (낮)

은영은 회의 중에 전화를 받은 상황이다.

경  수 (E) ...내가 다 책임질게.

은  영 (소근소근) 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나중에 전화

할게...

경  수 (E) 아니야, 은영아, 나도 이제 남자로서 책임질 나이

가 됐어. 나만 믿어.

은  영 야, 내가 나중에 전화한다니까?

경  수 (E) 나도 모르게 너를 좋아했던 마음이 술 취해서 겉으

로 드러났나봐. 어제 일은 용서해주고, 내가 이제부터 차근차근 단

계 밟아서 정식으로 프로포즈할게!

은  영 (놀라며) 뭐 프로포즈?

주변 사람들 모두 쳐다본다.

은  영 (사람들에게) 잠시만요...

양해 구하는 눈빛으로 핸드폰 들고 밖으로 나가는 은영.

#18 S 경수회사 비상구 계단 & 은영회사 복도 (낮)

은  영 (밖으로 나오며) 야, 너 오바하지마. 우리 아무 일도 없

었어.

경  수 그게, 그렇게 덮기만 할 일이 아니고... (진지하게) 난

차라리 잘된 거 같애!

은  영 됐다. 내가 널 만난 게 실수였지. 다신 너랑 술 안 먹

을 거야.

경  수 실수? 은영아 난 실수 아니었는데? 우리가 스물 아홉,

서른인데, 실수할 나이니? 우리 진지하게 만나서 얘기해보자.

은  영 나 지금 바빠. 끊어!

#19 S 경수 사무실 (낮)

경수 영문으로 보고서 작성하다가 심각하게 고민에 빠져있다.

경  수 선배님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하죠?

선  배 뭐?

경  수 술김에 친한 여자랑... 아시죠?

선  배 (감 잡고) 아, 그런 일이 있었어?

경  수 근데 그 여자가 자꾸 나를 피하는 거 같은데 어떡하

죠?

선  배 서대리는 그 여자가 어떤데?

경  수 뭐... 싫지는 않아요. 한때 좋아했었고.

선  배 그래?

경  수 (얼른) 아니, 뭐 지금도 좋아요. 근데 왜 하필 그런 일

이 먼저 생겨갖구, 곤란하게 됐네...? 어떻게 풀어야 되죠? 잘 풀

고 싶은데...?

선  배 여자가 심리적 부담을 느껴서 그럴 수도 있어. 그럴

땐 말이야...

경  수 예...

고개를 맞대고 소근거리는 선배와 경수.

#20 S 의류회사 앞 (밤)

은영과 동료들이 퇴근을 하며 나오면,

빨간 장미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경수.

경  수 은영아!

은영, 경수를 보고 멈춰서면, 동료들 프로포즈? 잘해봐...하면서 먼

저 간다.

은  영 너 왜 그래? 그 꽃은 뭐니? 우리 아무 일도 없었어.

경  수 그래? 정말이냐?

은  영 그래!

경  수 그럼 키스가 형편없었다는 얘긴 뭐냐?

은  영 (기분 나쁜) 니가 막 희정아, 희정아 하면서 덤벼들었

잖아! 불쾌하게.

경  수 내가 희정이를 불렀다구? 진짜? 나 희정이 다 잊었는

데? 왜 그랬지? 너 기분 나빴겠구나...?

은  영 좋을 턱이 있니?

경  수 날 한 대 팍 패주지 그랬어? 정신 차리라고?

은  영 아니야, 됐어. 괜찮아. 내가 이해해야지, 누가 이해하

겠니?

경  수 근데 내가 정말 키스를 그렇게 못하디?

은  영 (딴 데 보며 대꾸 없다.) ....

경  수 그럼 이 꽃은 어떡하지? 너 줄라고 사왔는데?

은  영 (귀찮다는 듯) 그럼 줘. (받아들며) 별 이상한 꽃을 다

받아보겠네.

경  수 아이, 씨. 식당도 예약해놨는데? 너랑 같이 갈라구?

은  영 (어이없어 웃는다.)

경  수 (주머니에서 반지 꺼내며) 반지두 샀는데?! 어떡하지?!

은  영 고이고이 뒀다가 나중에 만나는 여자 줘라. (간다.)

경  수 (얼른 따라가며) 저기, 은영아. 그러지말구, 이거 니가

갖고 우리 이제부터 만나보자, 슬슬. 나 너 좋아하긴 좋아해. 내가

너 어제 만나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 줄 아냐?

은  영 뭐?

경  수 몇 년에 한번씩 나타나서 내 마음을 들쑤셔놓고, 너도

나한테 책임은 있어.

은  영 내가 언제 니 마음을 들쑤셔 놨다고 그래...?

경  수 니 존재 자체가 나를 들쑤셔 놓는 거야. 그거 몰랐니?

은  영 (웃고 만다.)

경  수 왜 웃어? 나 지금 프로포즈하는 거야?

은  영 (진지해지며) 프로포즈?

경  수 그래. 하다보니 떨린다, 야. (반지상자도 쥐어주고) 저

기, 그렇게 알고 일단 받어. 내일 연락할게. 간다!

은  영 어머, 경수야...! 경수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바삐 걸어오는 경수.

경  수 (N) 뜻하지 않은 프로포즈였지만, 말을 해놓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그래, 이제 우린 애인사이가 되는 거다! 남들도

다 하는 연애 우리라고 못할쏘냐.

#21 S 은영 자취집 (밤)

들어와 꽃과 반지상자를 내려놓는 은영.

인  경 무슨 꽃이야? 그건 뭐니?

인경이 열어보면, 예쁜 반지가 나온다.

인  경 어머, 반지네? 이쁘다. (반지를 자기 손에 끼어보려 하

자)

은  영 이리 줘. (얼른 뺏어서 보며) 이쁘긴 이쁘다. 반지 잘

골랐네?

인  경 누가 줬어?

은  영 (상자에 다시 넣고) 내 꺼 아니야. 다시 갖다 줘야 돼.

하지만 은영 괜히 기분이 나쁘진 않다.

인  경 나도 돌려줘도 좋으니까 한번 받아나 봤으면 좋겠다.

#22 S 인천공항 입국장 앞 (낮)

은영이 오면, 먼저 와있던 은영부와 은영모가 은호를 기다리고 있

다.

은  영 아직 안나왔어?

은영모 궁금하다. 어떻게 생겼을지. 빨리 좀 나오지.

은  영 누가 같이 와요?

은영부 여자친구하고 같이 온다더라.

은  영 은호가요? 그럴 리가 없는데...?

은영부 최근에 만났나보더라.

은  영 그래요...?

은영모 (보지도 않고 흡족) 아버지가 하와이에 호텔도 갖고 계

시고, 성공한 교포시란다.

은  영 (은영모가 맘에 안 든다는 표정.) 네...

은영모 (눈으로는 은호 기다리며) 은호는 가서 여자도 사궜는

데, 넌 뭐했니?

은영, 괴로운 표정인데, 이때 사람들 속에 섞여 은호가 나오자,

은영모 어머, 저기 나와요.

은영부 은호야, 은호야!

은호 뒤쪽으로 여자친구, 소라가 함께 나온다. 소라는 은호와 동갑

으로, 한국에 처음 와보는 교포 3세다. 무지할 정도로 멍하고 맑은

표정이다.

은  호 엄마!

은영모 세상에... 잘 왔다. (소라에게) 오느라고 고생 많았지

요?

은  호 인사해, 소라야. 우리 엄마, 아빠, 누나.

소  라 (혀 꼬부라진) 안뇽~하세요. (은영모에게 달려들어 양

쪽 볼에 키스하고)

이어 은영부에게도 키스하는 소라. 은영에게도 키스하려 덤벼드는

데...

모두 당황하는 가족들.

은  영 (얼른 손 붙잡고 악수하며) 반가워요.

은영부 (이내) 한국말이 좀 서툴구나.

은영모 여기서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그럴 수도 있지, 뭐...

(소라에게) 피곤하지? 가자.

모두 밖으로 향하는데,

은  영 (은호를 잡아 뒤쳐지며, 나직이) 너 어떻게 된거야?

은  호 뭐가?

은  영 너 인경이 좋아한다며?

은  호 인경이 누나? 에이, 그거야 어려서 한 때 감정이지. 소

라는 내 이상형이야. (앞서 간다.)

어리둥절 따라가는 은영.

#23 S 춘천집 거실 (낮)

여행가방들 들고 들어서는 일행. 소라는 들어서며 집안을 둘러보

고.

은영모 옛날에 지은 집이라 좀 아담하지?

소  라 (은호를 보며) 아담? 이브...?

은  호 어, 아담과 이브가 아니구... 작고 포근하고... 뭐 그런

거...

소  라 (끄덕끄덕) 아... 아담! (둘러보는데)

은영부 (소라에게) 은호랑 은영이랑 다 이 집에서 태어났거

든. 그래서 새로 짓기도 그렇고, 이사를 못 간단다.

소  라 (두 팔 벌려 으쓱하며) What?

순간 당황하는 가족들.

은  호 어, 저기... (영어로) 내가 태어난 집이라구....

은  영 (은호에게) 니넨 말도 잘 안 통하면서 어떻게 사랑한다

는 거니?

은  호 누난? 사랑은 바디 랭귀지, 몰라? (소라 어깨 안으며)

우린 첫눈에 뿅 갔어. 그렇지? 소라야?

소  라 (맑게 행복한 듯 웃고)

은영부 (은영모에게) 차라도 내오지?

은영모 (부엌으로 가려는) 아, 예. 아줌마...!

은  호 차는 됐구요. 소라가 많이 피곤해서, 올라가서 씻고 쉴

게요.

은영모 그럴래? 그럼, 당분간 소라는 은영이 방에서 지내라.

(은영에게) 괜찮지?

은  영 네. (소라에게) 내방 써요. 어차피 난 여기 없으니까.

소  라 (혀 꼬부라진) 은호랑~ 같은 방~ 쓸래요.

모두 뜨악해서 보는데,

은  호 그래, 엄마. 우리 미국에서도 같이 지냈어.

은  영 (은호 팔꿈치로 툭 치며) 얘... 그래두 아직 결혼두 안

했는데...

은  호 사랑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 거야. 솔직하게 같이 있고

싶으면 같이 있는 거고. 괜찮죠? 엄마!

은영모 엉? (은영부를 보면)

은영부 그래... 그러려무나...

은영모 (은영부 보며) 네? 아이, 이이가? 안된다. 그런 법은 없

지.

소라, 이상하다는 듯 은호를 보면, 은호 걱정말라는 눈짓한다.

벙 쪄서 보고있는 은영. 이때 핸드폰 문자메시지가 왔다는 신호음

이 울린다.

나머지 사람들은 가방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고...

은영은 얼른 핸드폰 꺼내보면,

경  수 (N) 요즘은 문자를 많이 때려줘야 여자들이 좋아한다

며? 너도 그러냐?

이내 또 울리는 메시지 신호음. 은영 얼른 버튼 눌러 보면,

경  수 (N) 우리 언제 만날까? 난 벌써 보고 싶다. 우리가 만

나는 건 니 마음에 달렸다. 빨리 결정하길.

슬슬 고민이 되는 은영. 망설이는 기분.

#24 S 은영 자취집 (밤)

욕실에서 씻고 나오는 은영.

인경은 혼자 맥주를 마시며 무료하게 TV 리모컨 이리저리 돌리고

있다.

은영, 괜히 인경의 눈치를 보는데,

인  경 (쳐다보지 않고) 은호 여자친군 어때?

은  영 (지레 당황) 응?

인  경 실물은 괜찮디?

은  영 은호가 무슨 여자친구가 있다그래?

인  경 이번에 같이 데리고 나온다고 이메일로 사진까지 보냈

던데?

은  영 어? 알고 있었구나...?

인  경 치사한 놈. 나보고는 연애하지 말래놓고. (한숨)

은  영 너 내 동생 때문에 그 동안 연애 안 했니?

인  경 (괜히 버럭) 아니! 내가 니 동생을 남자로 치기나 하는

줄 아냐?

은  영 그럼 다행이구... (괜히 머슥해서) 혼자 마시냐? 같이

마시지...

은영, 냉장고에 가서 캔맥주 꺼내온다.

은  영 (나란히 앉아, 한숨) 아무래도 은호 걔가 먼저 결혼할

거 같애. 괜히 심란한 거 있지...

인  경 (더 뚱한 반응) 넌 반지 준 사람도 있잖아?

은  영 (망설이는 기분) 반지...? (괜히 딴 척, 한숨) 아이 씨,

전화 오는데도 없냐? 금요일 밤을 이렇게 보내야 되나?

인  경 (더 심란한) ....

은  영 내일 같이 심야영화나 보러 갈래?

인  경 너랑 나랑 심야에 무슨 영화니? 피곤하기만 하지.

은  영 알았어... (옆에 같이 있어서 좋을 게 없다. 일어나 자

리 피한다.)

은영 혼자 식탁에 앉아 맥주 마시며, 물끄러미 핸드폰을 만져본

다.

#25 S 경수회사 사무실 (낮)

경수 들어오면, 와이셔츠 차림의 직원들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둘

러서 있다.

상황이 좋지 않아, 모두다 심드렁한 표정들.

선  배 우선주 포함해서 계열사 열 다섯 개 상장종목이 다 하

락했어.

경  수 (같이 들여다보며) 어휴, 낙폭도 예상보다 큰데요.

선  배 연초에 비하면 반토막이 난 상태니, 주주총회 앞두고

이러면 곤란한데... 오늘부터 비상이야. 집에 들어갈 생각들 하지

말어. (자리로 간다.)

경  수 (자기자리로 오며) 언제는 비상 아니었나...? 일주일

안에 무슨 수로 주가를 끌어올리나...

이때 여직원이 다가와.

여직원 서대리님. 삼진회계법인에서 들어오셨는데요.

경  수 어... 잠깐만... (괴로운 한숨)

경수, 급히 서류철 한아름 챙겨들고 가려는데,

이때 핸드폰 문자메시지 신호음이 울린다.

경수 얼른 핸드폰을 보면,

은  영 (E) 오늘 심야영화 한편 어때?

경수 씩 웃는다.

금새 신바람 나서, 심야영화 좋지~ 하면서 핸드폰 답신 보내는데

서.

#26 S 마케팅실 (낮)

일을 하다말고, 핸드폰 신호음이 울리면 보는 은영.

경  수 (E) 공주님, 어떤 영화를 예매해 놓을까요?

웃고는, 이내 핸드폰에 문자 찍는 은영.

(문자를 주고받다 보면, 괜히 재미도 있고, 연애감정도 조금씩 느

끼는 기분.)

#27 S 인경 의상실 (낮)

의상실 밖에 스포츠카가 들어와 멎고, 차에서 나오는 은호와 소

라.

은호와 소라 의상실로 들어오면,

다른 점원과 함께 손님의 의상을 봐주던 인경이 돌아본다.

은  호 누나! 잘 있었어?

인  경 어서 와... (하면서 소라를 본다.)

은  호 (소라에게) 옛날에 내가 좋아했던 누나야. 이 누나가

나 힘들 때 좋은 얘기 많이 해주고 붙잡아줬어.

소  라 아~ 연습상대! 말 많이 들었어요~.

인  경 (감 잡고, 은호에게) 연습상대? 그게 뭐니?

은  호 어... 그런 게 있어. 아이, 소라야. 그런 얘긴 하면 안되

지. 우리 둘이서만 한 얘긴데... 다른 사람은 몰라두 이 누나만큼

은 친해야 돼. 알았지?

소  라 (샐쭉 웃으며 끄덕인다.)

인  경 (은호 때리며) 야, 너 나가.

은  호 아니, 누나... 내 맘 몰라? 진짜루 연습상대가 아니구,

소라한테 그냥 그렇게 얘기한 거야.

인  경 나가, 임마! 빨리 안가?

은  호 아이, 참. (선물 내밀며) 누나. 이거 주러 온 거야. 이

거!

인  경 (집어던지고) 필요 없어. 나가!

소  라 어머, 죄송해요. 연습상대 누나~!

인  경 빨리 못 꺼져!

은  호 (소라 데리고 도망가면서) 가자, 가자. 누나! 정말 그

런 건 아니라는 거 알지? 갈게!

인  경 (씩씩거리며) 나쁜 놈. 누구 염장 질르러 왔나?

안에 있던 손님과 점원이 쿡쿡 웃는다.

밖으로 허둥지둥 싸우며 차를 타고 떠나는 은호와 소라가 보인다.

#28 S 마케팅실 (밤)

일을 마치고 시계를 보며, 퇴근 준비하는 은영.

이때 핸드폰이 울린다.

은  영 (나가며) 여보세요?

인  경 (E. 화난 톤) 나야, 은영아. 우리 심야 영화 보자.

은  영 (당황) 엉? 무슨 일 있니? 왜 그래...?

인  경 (E) 여기 극장 앞인데, 표 두 장 사놨어. 빨리 나와.

은  영 (난감한) 어... 저기... 그게... 알았어...

#29 S 지하철 역 (밤)

지하철 개찰구로 들어가며 핸드폰 통화하고 있는 은영.

은  영 경수야, 어떡하지? 오늘 영화 못 보겠어. 인경이하고

봐야할 것 같애.

#30 S 극장 앞  (밤)

경수가 영진을 끌고 극장으로 향하고 있다.

영  진 야, 우리끼리 무슨 심야영화냐...?

경  수 은영이 친구도 나와있대.

영  진 여자냐?

경  수 당근이지.

영  진 예뻐?

경  수 그걸 내가 어떻게 함부로 평가하냐. 여자의 미모를.

영  진 안 생겼나보구만. 나 그냥 갈래.

경  수 아이, 이뻐, 이뻐.

이때 경수를 발견하고 부르는 은영. 인경과 함께 있다.

인경은 눈살 찌뿌리며 시계를 본다. 많이 늦은 것.

은  영 경수야!

경  수 어! 많이 기다렸어?

은  영 아니. 여긴 인경이. 기억나지? (인경에게) 경수.

경  수 그럼 기억하지. 안녕하세요.

인  경 (기분별로다. 고개 인사하고)

경  수 이쪽은 제 친구예요.

영  진 (인경이 별로다. 떨떠름한) 이영진이라구 합니다. (은

영과는 눈인사하고)

은  영 늦었어. 빨리 들어가자.

모두 들어가는데,

인  경 (은영에게, 영진을 말하는) 나 저 사람 싫어. 우리 둘

이 보자.

은  영 응...? (곤란한 표정으로 경수를 보는데)

영  진 (경수에게 속삭이는) 야, 진짜 아니다. 폭탄이야, 폭

탄! 그냥 우리 둘이 앉자.

경  수 (곤란한) 넌 원자탄이야, 임마! 그냥 잠깐 같이 영화 한

편 보는 건데 뭘...?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들어가는 영진.

#31 S 극장 객석 (밤)

영화를 보고있는 인경과 은영.

좀 떨어진 곳에서 은영을 돌아보는 경수. 영진과 함께 앉아 있다.

영진은 졸고 있다.

미안한 표정으로 경수를 보는 은영. 은영도 왠지 섭섭하다.

#32 S 극장 앞 (밤)

영화를 보고 나오는 네 사람. 영진은 늘어지게 하품하고,

은영의 팔장을 끼고 나오는 인경도 그다지 재미없었던 표정.

은영은 왠지 이런 상황이 조금 웃기는 듯 피식 혼자 웃는데,

경  수 (은영과 둘이 있고싶다. 영진과 인경 눈치 살피며) 이

제 어떡할까?

영  진 어디 가서 호프나 한잔씩하고 헤어지지 뭐.

경  수 (눈치 주며) 아니 너 어제 술 많이 먹었다며?

영  진 (눈치 없이) 많이 안 먹었어. 그리고 어떻게 그냥 헤어

지냐?

경  수 (섭섭한 듯) 그럴래? 인경씨도 한잔 하실래요?

인  경 (대강 분위기 보더니) 그러죠, 뭐...

경  수 (위협하듯) 우린 술 먹었다하면 아주 끝장을 보는데,

괜찮겠어요?

인  경 뭐... 끝장볼라면 보죠, 뭐... 잘됐네. 나도 오늘 꿀꿀했

는데...

경수 안되겠는지, 갑자기 은영의 옆구리 찔러 자기 가까이로 잡아

당긴다.

영문을 모르는 은영, 왜 그러나... 경수를 쳐다보는데,

경  수 (마치 생각났다는 듯) 아차! 깜빡했네? 은영이 너 나

랑 저기... (막상 핑계 안 떠올라) ...거기 가보기로 했었지? (영진

에게) 저기 인경씨랑 둘이 한잔하고 가라. 우린 가볼 데가 있어서.

(반응할 틈 주지 않고 갑자기 은영의 손을 잡아끌고) 가자.

영문을 모르던 은영, 인경의 팔장을 놓고 경수에게 이끌려 달려간

다.

은  영 (경수에게) 어디 가는데?

경  수 (끌고 가며) 있잖아~ 거기... 너 생각 안나?

순식간에 두 사람 사라져버리고, 두 사람을 부르던 인경과 영진만

남는다.

어색하게 서로를 보고, 참으로 난감하다.

#33 S 근처 거리 (밤)

경수에게 손을 잡혀 달려오는 은영.

은  영 어머, 왜 그래? 인경인 어떡하구?

경  수 놔둬. 둘이 알아서 하게. 우리 첫 데이트 아니냐. (돌아

보고 멈춰 선다.)

은  영 (숨이 찬) 우리...?

경  수 그래. 걔네들 알아서 갈 것 같지도 않던데...

그제야 손을 빼는 은영.

경  수 (다시 꽉 움켜잡으며, 터프하게) 뭐 어때? 왜 손을 빼

고 그래?

은  영 너 왜 그래, 어색하게?

경  수 (잡은 손 팔짱 끼게 만들고 꽉 움켜쥐고) 가만있어.

은영, 손을 빼지 못하고 경수만 쳐다본다.

경  수 어디 갈까? 가고 싶은데 있어?

은  영 아니. 잘 모르겠어.

은영, 어색하기도 하지만 기분이 좋다.

경  수 그럼, 나만 따라 와!

#34 S 호프집 (밤)

영진과 인경이 술을 마시고 있다.

인  경 (약간 호기심 느끼며) 그럼 옛날에 춘천에서 꽤 유명

한 사람이었네요?

영  진 그럼요. 제가 그때 당시에 한가닥 했지요. 내가 그쪽

학교도 많이 갔었는데?

인  경 그럼 지금은 뭐하세요?

영  진 지금요? 컨설턴트예요, 인슈어런스(insurance) 컨설

턴트.

인  경 (이내 시금털털한 표정) 보험회사 외판원이란 얘기네

요?

영  진 (주눅들어) 아, 예... (이내) 보험만큼 한국인들이 잘

못 알고 있는 분야가 없어요. 선진국에서는 보험, 하면 대단한 직

업에 속해요.

인  경 (관심 뚝 떨어져) 아, 예, 알고 있어요....

영  진 (좋은 얘기해준다는 듯, 은밀하게) 제가 오늘 꼭 드리

고 싶은 말씀은... 판매 두 달만에 100억을 돌파한 좋은 상품이 있

거든요. 우리나라가 사고가 좀 많이 납니까? 인경씨도 언제 당할

지 몰라요.

인  경 뭐라구요? 지금 악담하세요?

영  진 그게 아니라 미리 준비를 하시란 말씀이죠. 생명보험

이나 암보험 하나 들어두시면 어떤 일이 생기든 끄떡없습니다. 당

뇨병 고혈압, 심장질환 다 되구요, 자궁암, 유방암까지...

괴로운 표정이 되는 인경. 외면하며 혼자 술 마신다.

#35 S 수산물 시장 (밤)

손을 잡고 다니는 은영과 경수. 횟감을 구경하며 지나간다.

낙지를 들어 장난도 치고, 횟감을 고르는 경수.

은영이 어색해서 손을 잠시 빼기라도 하면 얼른 다시 꽉 움켜쥐고

가는 경수.

은영도 기분이 나쁘진 않다.

야외 파라솔 아래에서 생선회 안주에 소주를 마시는 두 사람.

은  영 (술 따라주며) 오늘은 조금만 마셔라.

경  수 그럼.

은  영 근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어.

경  수 뭔데?

은  영 너 술 취하면 아무 여자한테나 달려들고 키스하고 그

러니?

경  수 엉? 아~니.

은  영 전에도 다른 여자한테 그런 적 있지?

경  수 아니, 없어. 정말이야! 미치겠네? 난 저기, 우리 그날

일 잘 생각도 안 나지만... 모르긴 몰라도 너니까 그랬을 걸? 내가

얼마나 눈이 높은데? 취중에도?

은  영 확실하지?

경  수 그럼. 걱정마. 다른데 가서 그런 일 없으니까. (얼른 회

를 집어 은영의 입에 넣어주는데)

은  영 너 먹어. 내가 먹을께...

경  수 줄 때 먹어. 남들도 다 이렇게 해.

은영 못이기는 척 받아먹는다.

기분이 좋은 경수.

#36 S 은영 자취집 앞 골목 (밤)

은영과 경수가 손을 잡고 걸어온다.

은  영 (손 빼며) 다 왔어.

경  수 어느 집인데?

은  영 조기 조 집.

경수 물어봐 놓고 집은 안보고 은영의 옆얼굴을 본다. 기분 이상하

다.

괜히 옆머리 몇 올 슬쩍 넘겨주는데,

은  영 (그런 경수 보며) 왜 그래...?

경  수 (일단 오늘은 자제하는, 좀 어색) 아니야. 저기, 오늘

첫 데이트 치곤 괜찮았지?

은  영 (어색한 분위기 감지) 나 갈게. (얼른 뛰어가 버린다.)

경  수 아이, 저기, 은영아... (뭔가 아쉽지만 이내) 잘 자!

은  영 그래. 잘 가! (집으로 들어간다.)

은영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주머니에 손 꽂고, 괜히 골목 안을 한번 둘러보고는 혼자 허허롭

게 웃고,

돌아서서 즐겁게 가는 경수.

#37 S 은영 자취집 (밤)

들어오는 은영.

열 받은 상태의 인경이 욕실에서 씻고 나오다 은영을 뜩 쳐다본

다.

은  영 미안해 인경아...

인  경 너 경수랑 뒤늦게 연애하니?

은  영 응? 아니... 아직 연애는 아니구...

인  경 겨우 고르고 골라서 그놈이냐?

은  영 경수가 왜...? 넌... 영진씨랑 어땠어?

인  경 (대뜸 지르며) 어땠을 거 같냐?

인경을 뚱하니 침실로 들어가고,

은영은 미안해하던 표정, 이내 혼자 멋쩍게 히죽 웃는다.

#38 S 경수집 마루 (아침)

출근 차림의 경수 바쁘게 나오면, 할아버지가 경수를 따라나온다.

경  수 (바빠서 건성으로) 자석요 요?

조  부 그게 원적외선인가 하는 게 나와서 관절에두 좋구, 당

뇨병두 싹 다 낫는다더라...

경수모 (부엌에서 나오며) 아휴, 아버님은? 출근하는 애한테

아침부터 무슨 자석요예요?

경수 마당으로 나가는데, 할아버지, 경수모는 아랑곳 않고 얼른 경

수 따라 나가며,

조  부 (안달이 난) 그거 지금 안 사면 안돼. 2백만원이 넘는

걸 한시적으루다 구십만원에 해줄 때 빨리 사야지!

경수모 (조부 못마땅해서, 경수 등 떠밀며) 어서 가라, 어서.

조  부 내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아침에 일어나도 삭신이 쑤

시고 영~ 개운치가 않은 게, 이제 몸이 말을 잘 안 듣는다.

경수모 (경수에게 눈짓) 뭐 하니? 어서 가지 않구?

경  수 아니에요, 할아버지. 자석요 다음주에 월급 나오면 사

드릴게요. (마당으로 나선다.)

조  부 (화들짝 좋아하며) 그래? 고맙다. 내가 핸드폰으로 전

화하마.

경수모 (따라 나가며 경수 옆구리 찌르는, 나직이) 핸드폰 꺼

놔. 받지 말구.

조  부 (어느 새) 핸드폰 꺼놓으면 안 된다!

경  수 (웃으며) 알았어요. 염려 마세요.

경수모 저 노인네. 귀는 밝아가지고... (경수에게) 다녀와라.

경  수 네. (나간다.)

경수 대문 밖으로 나가고 나자,

경수모 (조부를 향해, 복창이 터지는) 그 자석요 못사니까, 그

런 줄 아세요! 경수가 어디서 석유 퍼내는 줄 아세요? 장가라도 갈

려면 주택청약도 부어야되고 돈 쓸데가 얼마나 많은데... (외면하

고 들어가 버린다.)

섭섭한 듯 경수모 쳐다보다가, 그래도 기분 좋아 씩 웃는 조부.

#39 S 우동집 앞 (낮)

우동집에서 나오는 은영과 경수. 점심시간에 만나 식사를 한 것이

다.

경  수 만나면 팔짱 좀 자진해서 딱딱 못 끼냐?

은  영 끼고 싶으면 니가 껴!

경  수 얘가 진짜. (은영의 손잡아다 팔짱 끼며) 오빠 말 잘

안 듣네?

은  영 (손 빼며) 여기 회사 근처야.

경  수 (다시 손잡아다 끼며) 뭐 어때?

은영 이번에는 내버려두고, 대신 주변을 둘러본다.

경  수 이렇게 좋은데, 우리가 맨 처음 만났을 때 그때 진작

연애를 할 걸. 니 고집 땜에 이렇게 됐어. 최씨 고집, 어디 가냐?

은  영 그때 연애했으면 지금쯤 헤어졌을지도 몰라.

경  수 하긴... 그것도 그렇네... 안 하길 잘했다. 그지?

은  영 (대답대신 웃는) ...

경  수 근데 너 내가 준 반지 왜 안 끼냐?

은  영 너 하는 거 봐서.

경  수 알았어. 근사하게 해주겠어.

#40 S 한강 유람선 (밤)

경  수 너 유람선 한번도 안타봤지?

은  영 응. 처음이야.

경  수 나도 처음이야. 촌스럽게 누가 이런 걸 타나 했더니,

막상 타니까 좋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변의 야경을 보는 경수와 은영.

경수, 추워하는 은영에게 자켓을 벗어 둘러주고는,

자기가 춥다. 하지만 경수 남자답게 은영의 어깨에 팔 둘러 안아준

다.

이빨을 덜덜 떨다가도 은영이 돌아보면 재빨리 입을 꽉 다무는 경

수.

행복해 보이는 은영. 경수도 춥지만 행복하다.

은  영 근데 우리 너무 자주 만나는 거 같애.

경  수 연애를 늦게 시작했는데, 그럼. 그 동안 남들 해본 거

다 해볼려면 밤낮없이 만나야지! 근데 내일은 하루 쉬어야겠다.

은  영 왜?

경  수 주주총회 있어. 언제 끝날지 잘 몰라.

은  영 주주총회에 니가 왜 가?

경  수 모르겠다, 나도 내가 왜 가는지. 남들은 요리조리 잘

만 피하던데...

은  영 어디서 하는데? 내가 내일 끝날 때쯤 그 앞으로 갈게.

#41 S 호텔, 주주총회장 (낮. 몽타주)

경  수 (소리치는) 진정하십시오! 진정들 하세요!

단상 위에서 소리치는 경수에게로 날아드는 계란.

계란은 경수의 머리에 맞고 양복을 타고 흘러내린다.

단상 위에서 이사는 주주총회 결정사항을 급히 읽어 치우고는 내

뺀다.

이  사 (후다닥 읽어치우는 E.) 넷째, 이사회는 전원 임기연장

하기로 하였으며... 다섯 째, 주가회복방안에 대해서는 차후 설명

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로서 제 26회 주주총회를 마치기로 하겠

습니다. (지휘봉을 두드리고 내빼는 것.)

동시에 단상 아래 주주들이 항의하며 계란 세례를 퍼붓고 있다.

이미 난장판이 되어있는 상황. 사람들의 목소리 뒤섞여 알아들을

수 없다.

사 내1 (E) 주가가 폭락했는데, 임원들 왜 안 바꿔?!

사 내2 (E) 책임경영 해야 될 거 아니야!

사 내1 (E) 구조조정은 무슨 구조조정이야! 니들이 몇 프로 갖

고 있는데, 니들 맘대로 다 헤쳐먹어?

사 내2 (E) 이사들 퇴진하라 그래!

사 내3 (E) 지분 거래 깨끗하게 밝혀!

중년여 (E) 내 딸 결혼자금가지고 투자했는데, 누가 책임질 거

냐구!

정통으로 날아오는 계란에 머리를 맞는 경수.

#42 S 호텔, 화장실 (밤)

세면대 앞에서 세수하고 휴지로 얼굴 닦는 경수.

양복에 흘러내린 계란도 닦아내고 있다. 염증을 느끼는 표정이다.

선  배 (미안한 듯) 이해해라. 우리가 무슨 힘이 있냐. 월급 받

고 사는 셀러리맨인데... (와이셔츠 주머니에 3만원 꽂아주며) 목

욕비나 해.

경수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나가는 선배.

거울 속으로 착잡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경수. 헐렁하게 매진 넥타

이를 풀어낸다.

#43 S 호텔 앞 (밤)

양복 자켓과 넥타이를 들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경수가 나오면,

비가 내리고 있다.

경수 우산도 없는데, 그냥 밖으로 나서려 하면,

은영이 다가와 우산을 받쳐준다.

경  수 어? 여기서 기다렸어?

은  영 (와이셔츠에 계란자국 보며) 어머, 왜 그래?

경  수 (우산 받아들며) 어... 계란 맞았어. 주주들이 항의하

는 바람에...

은  영 세상에...

경  수 목욕비하라고 3만원 주더라. 기분 드러워서 진짜... 내

가 왜 이런 일을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당장 회사 때려 치고 싶

은데, 꾹 참았다.

은  영 잘했어...

은영 경수가 안됐다. 얼굴에 붙은 휴지조각 떼어준다.

은  영 (그러다 안쓰러운 듯 어린애 안듯 안아주며) 으유... 정

말 안됐다...! (곧 팔 풀며) 가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경  수 (그런 은영을 보며, 씁쓸하면서도) 기분 좋네? 니가 안

아주니까?

은  영 엉? (그제야 부끄러운 기분인데)

이번엔 경수가 행복한 듯 은영을 안는다.

경  수 은영아. 난 니가 참 좋다.

은  영 .... 왜 그래? 사람들 지나가잖아.

경  수 뭐 어때? 우리가 좋다는데? (더 꼭 안으면)

그제야 은영도 경수를 안는다.

경수, 우산으로 사람들을 가리고 은영에게 키스한다. 아주 감미롭

게.

은영도 행복해하고... 키스가 끝나자 미소 지으면서 서로를 보는

두 사람.

경  수 우리 진작 이렇게 사귈 걸. 바보 같이 다 늙어서 이게

뭐냐?

은  영 (미소 지을 뿐) ...

경  수 (생각났다는 듯) 아, 우리 이번 일요일에 자전거 타고

춘천에 놀러 갈까?

은  영 하이킹?

경  수 음. 옛날에 가기로 하고 못 갔잖아. 경춘가도 타고 기

차하고 나란히 쫙 달려가는 거야. 좋겠지?

은  영 음.

두 사람 서로에게 팔 두르고 빗속을 정답게 걸어간다.

#44 S 대형마트 (낮. 몽타주)

자전거를 사는 은영. 직원이 은영이 고른 자전거를 꺼내준다.

새 자전거를 살펴보며 즐거운 은영.

#45 S 경수집 마당 (밤. 몽타주)

녹슨 자전거를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면서 휘파람을 부는 경수.

경  수 (하늘을 보며) 설마... 비는 안 오겠지?

경수모 (마루에서 내다보며) 밤에 잠 안자고 뭐하니?

경  수 아니에요... (얼른 기름걸레 감추고 딴 짓 한다.)

#46 S 은영 자취집 (밤. 몽타주)

자전거용 핼멧, 장갑, 고글, 물통, 수건 등 들뜬 기분으로 하이킹

을 준비하는 은영.

인  경 (컴퓨터로 채팅하다 은영보고) 좋겠다.

은  영 넌 뭐해? (하면서 모니터 들여다보면)

인  경 (모니터 가리며) 절루 가.

은  영 남자랑 채팅하니?

인  경 몰라두 돼.

은영, 웃으며 돌아선다.

문득 생각났는지, 반지상자를 꺼내 열어보는 은영.

반지를 손에 끼고 본다. 빈 반지상자를 서랍에 넣고 닫는다.

#47 S 은영 자취집 앞 골목 (아침. 몽타주)

하이킹 복장을 하고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 은영.

반지를 끼고 있다. 설레는 기분이다.

#48 S 경수집 동네 골목 (아침. 몽타주)

자전거를 끌고 나와 타고 출발하는 경수.

경  수 (저절로) 음, 날씨 좋다!

#49 S 오피스텔 앞 거리 (아침)

한쪽에 자전거 세워두고 경수를 기다리는 은영.

길 건너편에 경수가 나타나자 손을 흔드는 은영.

경수도 은영을 향해 손을 흔든다.

이때 경수의 핸드폰이 울리면, 경수 자전거를 세우고 전화를 받는

다.

경  수 여보세요?

길 건너편의 은영이 손을 흔들다말고 보는데,

경  수 (의아한) 어머님이세요? 안녕하시죠? 무슨 일이세요?

(놀라며) 네? 성민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구요?

길 건너편에서는 은영이 내가 그쪽으로 갈까? 손짓하는데,

경  수 아니, 어쩌다가? 많이 다쳤어요? (사이. 심각해지며)

어느 병원이라구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는 멍하니 은영을 보는 경수.

잠시 망설이는 경수.

어쩔까하다가 은영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는 은영의 모습이 보인다.

은  영 (E) 여보세요?

경  수 은영아...

은  영 (E. 경수를 바라보며) 왜? 빨리 와. 내가 그쪽으로 갈

까?

경  수 (어쩔까 망설이는) 아니. 저기... 춘천은 다음에 가야겠

다. 일이 생겨서...

은  영 (E) 그래? 무슨 일인데...?

경  수 (말할까말까 갈등하는) 나중에 얘기해줄게. 미안해.

전화 끊고는, 그대로 자전거를 집 쪽으로 방향 돌려 가버리는 경

수.

전화 끊으며 그런 경수를 의아해서 보는 은영.

#50 S 병실 (낮)

경수, 병실에 들어서면,

성민모 (돌아보고 일어나며) 왔구나?

경수 성민모에게 고개 인사하고 성민을 보며 다가가면,

코에 산소 튜브를 꽂고 누워있는 성민.

성민은 다리에 기브스한 상태고, 여러 개의 닝겔 주사 달고있고,

침대 밖으로 연결된 소변팩도 보이고, 복부엔 수술 후 압력붕대를

감았다.

경  수 어떻게 된 거야...? 괜찮니?

경수를 보더니 힘없이 웃어 보이는 성민.

성  민 (일부러 밝은 듯이) 괜찮아...

경  수 괜찮지 않은데...? 어쩌다가 이랬어?

성  민 괜찮아... 자식... 바로 달려왔네...? 이렇게 해야 니 얼

굴 보지, 언제 얼굴 보겠냐...?

밝게 웃지만 힘들어 보이는 성민.

경수 속이 상한다.

#51 S 마케팅실 (다른 날. 낮)

다른 회의 끝내고 들어온 은영. 직원들에게 일을 분담해서 지시한

다.

은  영 황사철이라 빨리 빨리 진행해야 돼. (남직원1에게) 디

자인실에서 마스크 도안 넘어오는 대로 바로 제작 맡기고, (여직원

1에게) 이벤트 홍보문구 뽑아서 인터넷에 빨리 띄워주고, 매장에

걸 플랫카드도 주문 맡기고. 오늘 중으로 다 진행해야 돼.

열심히 지시하지만 뭔가 기운이 빠진 은영의 표정.

#52 S 은영 자취집 앞 골목 (밤)

경수가 기다리고 있으면, 은영이 반갑게 나온다.

은  영 전화해두 안받구, 무슨 일이야?

경  수 어... 친구가 아파서...

은  영 친구 누구?

경  수 있어... 나중에 얘기해줄게...

은  영 많이 아파?

경  수 좀.

뭔가 연애의 불안함을 느끼는 경수. 은영을 안는다.

경  수 (그냥 허허롭게 불러보는 느낌) 은영아...

은  영 왜 그래...?

경  수 (그냥 안고만 있으며) 은영아...

은  영 (팔 풀며) 왜에?

경  수 (쓸쓸한 미소) 아니야. 얼굴 봤으니까 이제 가야지.

은  영 싱겁긴... 정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경  수 (없다는) 그럼. 갈게.

은  영 응...

돌아서서 착잡하게 걸어가는 경수.

그런 경수를 의아해서 바라보는 은영.

#53 S 병실 (낮)

CD 플레이어가 돌고 있고, 음악이 나직이 흐르는 실내.

(출근했다 들른 차림의) 경수가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부치고,

성민에게 면도를 해주고 있다.

경  수 (일부러 분위기 즐겁게) 야, 역시 인물이 되주니까...

훤칠하다.

성  민 (손으로 턱 더듬어보며, 기력이 약해진 목소리) 다 됐

어...?

경  수 가만 있어봐. 혹시 아냐? 있다가 여자라도 면회 올지?

멋있게 하고 있어야지. (그러다가) 힘드니?

성  민 그만 했으면 좋겠는데?

경  수 (면도기 치우고 수건으로 닦아주며) 그래. 거울 좀 볼

래? 자, (작은 손거울 보여주며) 니가 봐도 홀딱 넘어가겠지?

성민 힘없이 희미하게 웃는데,

경수, 말끔해진 성민의 코에 산소튜브를 꽂아주고, 씩 웃어준다.

마음은 아프다.

경  수 힘들지? 수고했다. (등받이 내려주려고 성민을 안고)

준비됐어?

성  민 (힘없이 웃으며) 어...

경수가 등받이 내리며 성민을 안아 눕히면, 성민은 그것도 고통스

럽다.

경수 이불 덮어주고는 돌아서려는데,

성  민 경수야, 혹시 은영이 소식은 아니?

성민을 돌아보는 경수. 착잡한 표정이다. (우정과 질투심 사이의

복잡한 기분.)

#54 S 매장 (낮)

‘황사철 특별 이벤트. 3만원이상 구매고객께 예쁜 마스크 증정.’ 현

수막을 걸고있고,

사은품 박스들 풀고 있다.

도안을 보면서 매장 디스플레이를 지시하는 은영.

이때 은영의 핸드폰이 울린다.

은  영 (전화 받는) 여보세요? (아무 말이 없자) 여보세요...?

경  수 (E) 은영이니?

은  영 (반갑게) 경수구나?

#55 S 병원 뜰 (낮)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경수.

은  영 (E) 여보세요...?

경  수 은영아, 여기 병원인데, 니가 이리로 좀 와야겠다.

#56 S 매장 (낮)

은  영 병원? 무슨 일인데?

경  수 (E) 오면 얘기해줄게. 일단 빨리 와. 기다리고 있을게.

이내 끊기는 전화.

어리둥절 전화 끊으며 가방을 집어드는 은영.

#57 S 병원 건물 앞 (낮)

택시에서 내리는 은영. 두리번거리면,

기다리고 있던 경수가 은영을 발견했는지, 피우던 담배를 끄면서

손을 들어 보인다.

시위가 있었는지, 병원 앞은 의약분업 비대위 현수막과 피켓들로

어수선하다.

‘진료수가 인상하고 임의조제 금지하라.’ ‘의약분업 바로잡아 의권

수호 관철하자.’ 등

경수 뒤 벽면에는 3일간 집단휴진을 하겠다는 안내문과

‘집단휴진에 들어가는 의사들의 입장’이라는 공고문도 보인다.

은  영 무슨 일인데 그래...?

경  수 저기, 성민이가...

은  영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며) 성민씨가 뭐...?

경  수 교통사고를 당해서 입원해있어.

은  영 뭐? 아니 어쩌다가...?

경  수 밤에 혼자서 왕진 가다 사골 당한 모양이야. 빗길에 오

토바이가 미끄러지면서.

은  영 세상에...

경  수 워낙 많이 다친 데다, 아침에서야 발견되는 바람에...

서울에 와서 수술을 두 번이나 한 모양인데...

은  영 그럼... 위험한 거야?

경  수 (착잡하게 끄덕이며) 의사가... 장담은 못 한다고... 그

러네...

충격을 받은 은영.

그런 은영을 보는 경수.

#58 S 병실 앞 복도 (낮)

은영을 데리고 병실로 오는 경수.

경  수 들어가 봐.

은영 잠시 그대로 있다가 마음의 준비를 한 듯 병실문을 노크한

다.

#59 S 병실 (낮)

은영이 들어서면, 닫히는 문 밖으로 경수의 모습이 사라지고,

무심코 돌아보는 성민. 은영을 보고 놀라는 데서.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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