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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03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3.02.21|조회수985 목록 댓글 0

[신의] 03

 

 

 

 

 

 

 

 

 

 

#1. 천혈 앞

 

최영이 돌아선다. 거기 은수가 분노하여.

 

은수 : 약속했잖아.

 

하며 옆에 땅에 꽂혀있던 칼을 뽑아든다. 무거워서 두 손으로 들고서도 휘청하며.

 

은수 : 돌려보내 준다구 했잖아. 이 사이코. 살인마. 죽여 버릴 거야.

 

하더니 두 손으로 검을 겨누어든 채 달려온다.

최영. 그런 은수를 향해 오히려 양발을 벌려 똑바로 선다. 가슴을 내민다.

일신이 놀라서 본다. 무사들이 놀라서 본다. 대만이 놀라 달려들려고 한다.

그런데 똑바로 달려온 은수의 검이 그대로 최영의 복부를 뚫는다.

거의 동시에 최영의 두 손이 검을 잡은 은수의 손을 덮쳐잡는다. 찌르는 힘을 보태어 관통시킨다.

잠시 모든 것이 정지했다가. 은수가 믿기지 않아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검이 분명 최영의 배에 박혀있다. 최영을 올려다본다.

우뚝 선채 은수를 내려다보는 최영.

 

은수 : 왜…. 어째서….

 

최영 울컥 하더니 입에서 피를 한 모금 뱉어낸다.

 

 

#2. 객잔 노국공주 방

 

공민왕의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찻잔이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진다.

침대에 기대 누운 노국, 노국을 보살피던 장빈이 돌아본다.

부서진 찻잔을 내려다보고 있는 공민.

 

노국 : 고려무사의 약속은 목숨과 같다지요.

공민 : (돌아보는)

노국 : 고려무사의 이름으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어기라는 어명.

        그러니 다시 말해 어명을 거역하든가. 죽든가. 둘 중 택해라 그런 뜻이었을까요.

       아…. 아니네. 그건 둘 다 죽으라는 말이네. 어찌해도 최영, 그 자는 죽어야 되는구나.

공민 : (똑바로 노국을 보는) 지금 과인을 비난하고 있는 겁니까.

노국 : 설마요. 그냥 정리해보고 있는 겁니다. 전하께서는 정말 그 자를 죽이고 싶은 걸까. 궁금해하면서요.

 

하며 노국이 공민왕을 빤히 본다.

 

 

#3. 천혈 앞

 

최영이 스르르 무너져 내린다.

그런 최영을 받아 안아 같이 무너져 앉는 은수.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넋을 잃는데.

순간 짐승 같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오는 대만.

 

일신 : 저. 저놈이….

 

달려온 대만이 은수를 잡아채 거칠게 밀어버린다. 밀려 넘어지는 은수.

보는 시선으로 최영. 그 배에 칼이 박혀있다.

잡아주던 은수가 없어지면서 더 버티지 못하고 뒤로 넘어진다.

대만, 휘익 은수를 돌아보는데 살기가 팍 솟는다. 그 팔목에서 빠져나오는 손칼.

 

일신 : 막아.

 

그러나 대만은 그대로 도약해서 은수를 베어 내리는데.

어느 틈에 은수의 앞을 막아선 충석의 손바닥에 맞고 뒤로 저만치 튕겨져 날아간다.

땅 위를 몇 바퀴 구르다 중심을 잡고 흙바닥을 긁으며 착지하는 대만.

다시 순식간에 은수와의 거리를 좁혀 들어가는데.

그런 대만의 목덜미를 터억 잡아 바닥에 처박아버리는 충석.

대만이 기를 쓰고 일어서려 하자 다시 거칠게 던져버린다.

다시 구르는 대만. 또 일어서는데.

 

충석 : (벼락같이 소리 질러) 그만 해.

 

대만. 멈추긴 했는데. 분노 때문에 와들와들 떨고 있다.

그 앞을 막아서는 일신. 다짜고짜 대만을 따귀를 후려갈기더니.

 

일신 : 이 정신 나간 놈이. 어디 감히 하늘에서 오신 분께 칼을 들이대.

 

대만. 저도 모르게 이빨이 드러나며 짐승처럼 으르렁 소리가 나는데.

일신은 이미 은수에게 쫓아가고 있다.

은수는 대만에게 밀려 넘어진 채 넋이 나가서 최영을 보고 있다.

그 앞을 막아서는 일신.

 

일신 : 전하께서 기다리십니다. 제가 모시구 가겠습니다.

은수 : 비켜 봐요.

일신 : 의선님. 지금 전하께서

은수 : 비키라구 좀.

 

일신을 잡아 제치고 최영에게 다가서 상처를 본다.

최영, 아직 의식이 있어서 은수를 돌아본다. 그 배에는 아직 꼽혀있는 칼.

은수, 손이 덜덜 떨리지만 의사답게 냉정하려 애쓰며 최영의 상태를 체크한다. 급히 목의 맥을 짚어보며.

 

은수 : 내 말 들려요? 의식이 있냐구.

 

최영, 뭔가 대답을 하려하지만 울컥 피만 뱉는다.

은수, 급하게 최영의 눈을 벌려 상태를 살피는데. 옆으로 다가서는 일신.

은수가 날카롭게 소리 질러.

 

은수 : 그 칼. 조심해요. 빠지면 안 돼. 그게 지금 간신히 출혈을 막고 있으니까, 그니까….

일신 : 이러구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언제 다시 놈들이 습격해올지 몰라요.

        놈들은 이제 전하뿐이 아니고 하늘에서 오신 의원님까지 노리구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은수, 일신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 중얼중얼….

 

은수 : 여기 수혈도 안되구. 수액도 없고….

 

눈앞을 가리는 일신을 밀어 제치고 그 뒤의 충석에게.

 

은수 : 어떻게든 빨리 수술하는 수밖에 없어요. 테이프 같은 거 없어요?

충석 : 테… 뭐요?

은수 : 여기 칼하고 같이 묶어서 이동할 거예요. 지혈을 할 만한 거. 질긴 천이나 아니면….

일신 : 이럴 시간이 없다잖습니까. 당장 이동하셔야합니다.

은수 : 가긴 어딜 가요. 이 사람은 어쩌구요.

일신 : 버리고 가야지요.

 

그 말에 충석과 다른 무사들이 울컥해서 한두 걸음 나서지만.

일신은 냉정하게.

 

일신 : 우달치. 정신이 있으면 답하시오. 그대 때문에 지체하게 되면 전하가 위험해져.

        그래서 그대는 놓고 가야겠네. 동의하시는가.

충석 : (애가 타서) 대장.

 

최영이 충석을 돌아본다.

 

최영 : 가.

충석 : 그럼 몇 놈 남겨놓고….

최영 : 자꾸 말 시키지 마. 아퍼. 다 델구 가. 귀찮아.

은수 : 난 못가요.

일신 : 지금 상황을 잘 모르시는가본데….

은수 : 상황…. 알아요. 이 사람. 내가 찔렀고 이 사람 죽으면 내가 뭐가 돼. 살인자가 되잖아. 난 그렇게 못해.

일신 : 그럼 이렇게 하지요.

 

하더니 순간. 최영의 배에 꼽혀있는 칼을 쑤욱 빼버린다. 왈칵 쏟아지는 피.

은수가 비명과 함께 와락 달려들어 두 손으로 배를 눌러 지혈하러 애쓰는 옆에서.

 

일신 : 이제 우달치 이자는 내가 죽인 겁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일어나시지요.

은수 : (버럭 소리 질러) 내 도구. 수술 준비.

충석 : 대만아.

대만 : 준비하겠습니다.

 

대만이 달려 나간다.

 

은수 : 누가 이거 좀 눌러줘요.

 

충석이 달려든다. 그 바람에 일신이 충석에게 부딪혀 휘청 밀려난다.

 

은수 : 여길 눌러요. 여기. 이렇게.

일신 : 모두 내 명을 들으라. 당장 하늘에서 오신 분을 모시고….

충석 : (버럭) 하늘에서 오신 분께서 명하시잖소. 여기. 누르라고오.

 

 

#4. 길

 

노을이 뉘엿뉘엿 지는 길을 달리는 대만. 전속력 모드. 네발로 달리고 있다.

돌아가는 길이 아닌 직선으로 달리고 있기 때문에 

수풀 사이 잔 나뭇가지에 볼이 스쳐 상처가 나는데도 아랑곳없이 달린다.

 

 

#5. 객잔 앞

 

지키고 있던 보초 무사들이 재빨리 경계 태세를 갖추며 돌아보는데 

이미 그들 옆을 지나 달려 들어가는 대만. 문이 벌컥 부서지듯 열렸다가 닫힌다.

 

 

#6. 객잔 노국공주 방

 

창가에 서있던 공민이 돌아본다. 방 밖이 소란스럽다.

무사들이 멈춰라. 안에 전하가 계시다. 등등 떠드는 소리와 함께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문이 벌컥 열린다.

대만이 막아서는 보초들의 사이를 빠져나와 문을 연 것이다.

대만이 공민을 보더니 다급해서.

 

대만 : 도구를 가지러 왔습니다. 하늘 의원이 준비하라 했습니다.

공민 : 의원의 도구? 왜.

 

공민의 말에 대만의 뒤를 따라 들어오려던 무사들이 멈춘다.

 

대만 : 가져가겠습니다.

 

침대에 기대 앉아있던 노국이 본다. 목에는 붕대. 그 옆에는 장빈.

대만은 그냥 들이닥쳐 노국 공주의 침대 옆에 있던 은수의 도구들을 보에 마구 싸는데.

그 손목을 잡는 장빈.

 

장빈 : 누가 다쳤나.

 

그 바람에 싸던 도구들 중에서 항생제 병이 굴러 떨어지지만 아무도 신경 안 쓴다.

 

대만 : (초조해서 울음이 터지려 하며) 대장이 칼에 찔렸습니다.

공민 : 대장이 다쳐? 그럼 그 자가 내 명을 거역한 건가? 그래서 그를 벤 것이야?

대만 : (울컥) 우리 중에 누가 대장을 베요. 우리가 다 덤벼도 대장은 못 벱니다.

        제발 좀…. 대장이 죽습니다. 이거 가져가야 됩니다.

 

장빈이 손을 놓아준다. 대만이 잽싸게 도구를 보에 둘둘 말아 돌아서는데.

 

공민 : (버럭) 내가 묻지 않는가.

대만 : (할 수 없이 멈추는데 반항기가 가득)

공민 : 우달치 최영. 그 자가 내 명을 거역했어? 그래?

대만 : 어명. 따르셨습니다. 그래서 죽어갑니다. 그러니까 제발….

노국 : 가라. 내가 허락한다.

 

대만. 꾸벅 절을 함과 동시에 달려 나간다. 그 바람에 대만의 발에 항생제 병이 밟혀 깨진다.

대만 흘낏 아래를 보지만 그냥 나간다.

공민이 노국을 돌아본다. 노국. 공민 쪽은 보지도 않으면서.

 

노국 : 장어의.

장빈 : 예.

노국 : 가보게. 우달치 대장은 내 목숨을 살린 사람. 내가 왕비의 이름으로 명을 내리니 가서 살려주게. 그 사람.

 

장빈 고개를 숙이면서 슬쩍 곁눈질로 공민을 본다.

울컥하지만 아무 말 못하고 있는 공민.

 

노국 : 이렇게 명을 내려도 괜찮겠습니까. 전하?

 

그제야 공민을 돌아보는 노국. 순진한 듯 바라보는 눈.

 

 

#7. 천혈 앞

 

부하들이 급히 들것을 만들고 있다.

이만치에 눕혀진 최영은 겉의 갑옷이 벗겨져 있고 배 부분에 칭칭 천을 감아 임시로 지혈하고 있는데. 

그 천이 붉게 물들고 있다.

은수가 최영의 옷, 가슴 부분을 거칠게 헤집더니 가슴에 귀를 대고 듣는다.

청진기가 없어서 귀로 직접 들으려는 것이다.

상체를 일으키다가 멈칫. 바로 가까이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최영.

 

은수 : 이봐요. 아직 정신 놓으면 안 돼요. 내 말 들려요? (최영의 목 정맥을 짚어보는데)

최영 : 그렇게 여기저기 더듬어대는데 어떻게 정신을 놓겠소.

은수 : (멈칫했지만 애써 냉정하게) 심박수가 여기서 더 올라가면 저혈량 쇼크에 빠질 수 있어요.

        지금 수액 공급이 안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하며 상체를 일으키려는데 최영이 어느 틈에 한손을 올려 은수의 멱살을 잡아끈다.

은수. 졸지에 끌려가 얼굴이 가까이.

 

최영 : 임자가 한 게 아니야.

은수 : 뭐요?

최영 : 임자는 죽었다 깨도 날 찌를 수 없어.

은수 : (최영의 손을 떼내려 하는데)

최영 : (더 세게 틀어쥐며 은수만 듣게 낮게) 내 말 잘 들어. 정말 날 살려주고 싶으면 그냥 냅두고 가.

        나 혼자 알아서 살아날 거니까 제발 나 좀 여기 버려 달라고. 어?

은수 : (잠시 보다가) 샤랍.

최영 : 뭐?

은수 : 입 닥치라구요.

 

최영, 잠깐 멈칫한 새. 은수가 최영의 손길을 뿌리치고 똑바로 앉더니.

 

은수 : 잘 들어요. 순서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우선 내가 당신 살릴 거야.

        그 담에 혼자 어디 가서 죽든가 말든가 알아서 하라구. 그 전에 지맘대루 죽기만 해봐.

 

부하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온다. 은수가 재빨리 지휘를 한다.

 

은수 : 그거 이쪽 옆에 놓구요. 팔 다리 하나씩 잡으시고. 그렇지. 셋에 들어 옮길 거에요. 하나. 둘. 셋.

 

최영을 들어 들것으로 옮긴다.

 

 

#8. 객잔 일층 홀

 

문이 벌컥 열리며 부하들이 최영의 실은 들것을 들어 빠르게 들이닥친다.

안에는 이미 대만 등이 준비해놓은 시술대. 탁자를 여러 개 붙인 테이블이 준비되어있다.

그 위로 놓여지는 최영.

은수가 재빨리 옆으로 붙으며.

 

은수 : 불 있는대로 다 켜줘요. 완전 밝게 만들어줘야 되요. 

        누가 물 좀 끓여주고. 깨끗한 천도 필요해요. 많을수록 좋아요.

 

하면서 탁자 옆에 펼쳐져 있는 자신의 수술도구를 체크하다 멈칫.

 

은수 : 항생제는?

대만 : (보는… 잉?)

은수 : 요만한 병 못 봤어요? 항생제. 그거 없이 이런 그지같은 데서 개복 수술하면 이 사람. 패혈증 걸려 죽는다구.

대만 : 아…. (생각났다)

 

 

#9. 플래쉬컷 / 객잔 노국공주 방

 

떨어져 구르던 항생제병. 대만이 뛰쳐나가며 밟아 박살이 난다.

 

 

#10. 객잔 일층 홀

 

대만, 울상이 되었다.

은수, 난감해서 주위를 돌아본다. 부하들이 우르르 둘러서서 긴장해서 은수만 보고 있다.

 

은수 : 당신들. 다 물러서요. 근처에두 오지마. 당신들 다 세균 덩어리거든.

 

우르르 물러나는 부하들. 그 바람에 계단 쪽에 서있던 장빈이 보인다.

 

은수 : (장빈에게) 항생제하고 마취약이 필요한데 비슷한 거 뭐 없어요? 

        세팔로틴. 반코마이신… 그런 거. 아무거나….

 

장빈이 찡그려 본다. 뭐라고?

 

 

#11. 객잔 노국공주 방

 

약원이 빠르게 약 가방을 챙겨서 방을 나간다.

공민이 나가는 약원을 따라 나가려는데 그를 막아서는 충석.

 

충석 : 이곳에 계십시오. 왕비마마와 나누어 지켜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공민. 반대하려다 참고 돌아서다가 멈칫. 자기를 빤히 보고 있는 노국.

공민의 뒤로 충석이 부하들을 지휘해서 방안의 창문마다 지키게 하는 등. 조용히 빠르게 명령내리고 있고.

말없이 노국을 보다가 다가서는 공민.

 

공민 : (부하들이 듣지 못하게 낮게)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잘 들어두세요.

노국 : 듣고 있습니다.

공민 : 앞으로 무엇을 하건. 먼저 나에게 허락을 구하세요.

        내 명이 있고나서 그에 따라 왕비께서 말 한마디. 발걸음 하나. 행하시는 겁니다. 들었습니까?

노국 : (말없이 보는)

공민 : 원나라 귀하신 공주께서 하필 나 같은 자에게 넘겨지게 되어 분한 거 압니다.

        이제 고국을 떠나 알지 못하는 나라로 끌려가게 되었으니 반항하고 싶기도 하겠지요.

        허나 나는 한 나라의 왕이고. 그대는 내 사람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에 걸맞는 예를 갖추세요.

노국 : ….

공민 : 대답 안하십니까?

노국 : 대답… 해도 된다는 명이 없으셔서… 대답 못하고 있습니다.

 

공민. 어이없어 본다.

노국. 말간 얼굴로 마주 보고 있다.

 

 

#12. 길 / 밤

 

말 한필이 달리고 있다. 원나라 복색의 옷을 입은 전령이다. (군인은 아니고 무인의)

 

 

#13. 기철의 집 대문 / 밤

 

보초들이 급히 대문을 열어주고 그 문으로 달려 들어가는 전령의 말.

 

 

#14. 기철의 서재 앞

 

천음자가 걸어온다. 발걸음이 좀 느려진다.

기철의 서재 안에서 뭔가가 던져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안에서 던져진 화병이 문을 맞춘 것.

그 문 앞에 서서.

 

천음자 : 천음자입니다.

 

 

#15. 기철의 서재

 

문을 열고 들어서는 천음자. 문 앞에 흩어져 있는 화병의 파편을 피해서 안으로 들어온다.

기철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이마를 짚고 서있다.

그 옆에는 송구한 듯이 서 있는 양사. 그 앞에는 납작 엎드려 있는 전령.

 

기철 : 원의 공주가 살아있다. 그러면 안 되잖아.

양사 : 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기철 : 어떻게.

양사 : 바로….

기철 : 바로. 바로 될 일을 내가 수년 전부터 그리 매달려왔단 말인가. 

        (미소지으며 온유하게) 내가 참으로 모자란 놈이었구만. 그대 양사가 바로 해치울 수 있는 일을 

        지난 수년간 하루하루 노심초사, 오늘까지 이렇게 부여잡고 살아왔어. 내가.

양사 : (우당탕 무릎을 꿇어) 말이 헛나왔습니다.

기철 : 왕을 하나 끌어내리고. 왕을 하나 만들어 세우고. 

        (점점 말투가 냉냉해지며) 이제 그 왕이 이 나라를 보자기에 싸서 내게 가져오기 직전이야.

        이 날을 위해. 나는 하룻밤도 깊이 잠들어 본 적이 없고. 하루 한 끼니도 기쁘게 넘겨본 적이 없어.

        그런데. (멈추어 침묵. 문득 천음자를 돌아본다. 다시 부드럽게) 원의 공주가 살아있다네.

천음자 : 예.

기철 : 그럼 안 되지.

천음자 : 사매가 그리 달려간다 합니다. 하루만 더 기다리십시오. 사매라면 실수 따윈 없을 것입니다.

기철 : …. (애처롭게) 그럴까.

천음자 : 사매… 아시지 않습니까. 화수인입니다.

기철 : 원의 공주는 죽어야 돼. 그 여인이 살아서 이곳 개경에 들어오면 안 돼. 

        그건 (생각해보더니)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야.

천음자 : (고개를 숙여 보이는) 알고 있습니다.

 

기철. 문득 납작 엎드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전령을 본다.

 

기철 : 저 자….

천음자 : 예.

기철 : 너무 많은 걸 들었어.

천음자 : 예.

 

기철. 긴 옷을 휘날리며 밖으로 나간다. 양사가 슬그머니 일어나서 부지런히 뒤를 따른다.

그들이 나가고 문이 닫긴다.

엎드려 있던 전령이 부들부들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문 쪽을 살피다가 멈춘다.

스으….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뭔가 이상하다.

자기 코를 만진다. 코피가 주룩 흘러나온다. 흡….

목이 졸린 듯한 얼굴이 된다. 순간. 귀와 눈에서도 피가 흐른다.

가까스로 돌아본 곳에 천음자가 조용히 피리를 불고 있다.

 

 

#16. CG

 

천음자의 피리에서부터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음파가 부채꼴을 그리며 시작되어 전령에게 이른다.

전령의 귀로 들어가는 음파. 고막을 파열시키며 더 안으로 들어간다.

음파가 지나가는 곳에 혈관이며 신경줄기들이 격렬하게 진동을 일으키며 파열된다.

 

 

#17. 기철의 서재

 

눈과 귀. 코에서 피를 흘리며 전령이 죽어간다.

천음자는 소리 나지 않는 피리를 불며 문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방향은 전령을 향해서.

눈을 감고.. 뒷걸음질을 하여 문에 이른다.

잔혹하게 죽어가는 이를 보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한다.

버둥거리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어가는 전령. 피리를 멈춘 천음자가 조용히 문을 열고 사라진다.

문이 닫기고 전령이 마지막 숨을 거둔다.

 

 

#18. 객잔 외부 / 밤

 

보초를 서고 있는 부하들. 문소리에 돌아본다.

충석이 안에서 나오고 있다. 보초들 반사적으로 자세들을 바로 한다.

충석이 끄응.. 불만스러운 얼굴로 걸어온다.

부하 하나가 못 참고 묻는다.

 

돌배 : 어찌 되가고 있습니까?

덕만 : 우리 대장. 괜찮은 거지요? 하늘 의원님이 봐주고 계신 거 맞지요?

충석 : 그게..

 

부하들 쫑긋해서 보는데.

 

충석 : 시방.. 싸우고 계시다.

 

 

#19. 객잔 일층 홀

 

누워있는 최영. 코에 얹혀져 있는 젖은 천. 그 위로 드러난 난감한 표정.

그 위로 들려오는 은수와 장빈의 목소리.

 

은수소리 : 마취제가 필요하다구 했잖아요.

장빈소리 : 이게 그겁니다. 제가 직접 만든 마비산.

 

최영을 가운데 놓고 양쪽에서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은수와 장빈.

최영의 머리 쪽에 앉은 약원이 사기병의 액을 최영의 코와 입에 얹혀진 천 위에 조금씩 떨어뜨리며 둘의 눈치를 본다.

 

은수 : 근데 이 사람 왜 이리 멀쩡해요.

장빈 : 산사람의 정신을 어찌 그리 금방 닫을 수 있겠습니까? 기다려보세요.

은수 : 수술을 지금 당장 해야 된다니까요.

장빈 : 대장이라면 웬만한 통증은 참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은수 : (다다다다) 이게요. 참아서 되는 문제가 아니구요. 

        지금부터 개복을 해서 장기 손상이 어느 정도인지 보고. 그에 따라 봉합 시술을 해야 되는데. 

        환자가 참느라구 힘을 주면 장기들이 경직될테구. 그럼 제대로 시야 확보가 안 될 거고 

        그럼 제대로 봉합시술을 할 수가 없으니까..

약원 : 놓으셨습니다.

은수 : 놓긴 뭘 놓았..

 

하며 돌아보면 약원이 최영을 가르키며.

 

약원 : 정신 놓으셨습니다. 완전히.

 

은수 재빨리 이마의 루뻬에 불을 켜며.

 

은수 : 끓인 물 식힌 거. 준비하세요. 출혈이 되는대로 씻어내줘야 되요.

        석션이 없으니까 거기 그 천으로 피를 계속 흡수해주셔야 되구요.

 

하면서 메스를 최영의 복부 중앙에 얹는데. 그 팔목을 잡는 장빈.

 

장빈 : 뭐하시는 겁니까.

은수 : 개복을 한다고 했잖아요. 개복. 배를 갈라야 한다고.

장빈 : 칼에 찔린 사람 치료하신다더니 멀쩡한 배를 또 가르겠다고?

은수 : 명치에서 배꼽까지 제대로 개복을 할 거에요. 그래야 다른 데 어디가 상했는지 보죠.

        현재로 봐선 간 부위 손상 같은데. 일단 열어봐야 확실히 알 거 아니에요.

장빈 : (믿지 못해서 보는)

은수 : 이봐요. 한의 선생. 이 환자 이렇게 출혈이 계속되면 수술이구 뭐구 그냥 죽어요. 그러니까, 놔요.

장빈 : 그대가 죽이려고 찔렀던 사람. 이제 다시 살리겠다는 말, 믿어도 되겠습니까?

은수 : 믿으세요.

장빈 : 어떻게.

은수 : (잠깐 할 말을 찾다가) 나.. 하늘에서 온 사람이래매. 그러니까 믿으시라고.

 

보던. 장빈 은수의 팔목을 놓아준다.

이하 수술 장면 몽타주 위로 은수의 나직하고 빠른 목소리.

//최영의 옆으로 피에 젖은 무명천들이 쌓인다.

 

은수소리 : 다행히 위는 멀쩡해요. 오토다이제스쳔은 없겠어.

- 자막 autodigestion : 위산에 의한 복강 내 다른 장기의 손상.


// 은수가 시술하는 부위와 은수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장빈. 경계하는 마음 반. 신기해서 배우는 마음 반.

// 완전 집중해 있는 은수.

 

은수소리 : 이제 간에 손상된 부위 봉합 시작합니다.

 

// 클램프와 수술바늘 등을 잡고 다루는 은수의 손.

 

은수소리 : 큰 혈관은 묶어서 지혈하고, 미세 혈관은… 이게 문제네. 보비가 없는데….

- 자막 bovie(보비) : 전기적으로 지지는 수술도구. 지혈이나 조직을 자르는데 사용

은수소리 : 갖구 있는 침 중에 제일 큰 게 어떤 거예요?

 

// 좌르르 펼쳐지는 침 보관 가죽 보자기.

 

은수소리 : 그건 너무 크구…. 저거.

 

// 약원이 길고 가느다란 대침을 불에 달구고 있다. (손잡이 부분은 가죽으로 싸는 식?)

 

은수소리 : 클램프 잘 잡아줘요. 미세혈관들 태울 겁니다.

 

// 달군 침으로 손상된 간 부분의 찢긴 큰 혈관들을 피해서 주변 조직을 지져 지혈하는 은수.

지진 부분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은수가 식은 침을 던지면 옆에서 장빈이 새로 달궈진 침을 내준다.

// 아까의 피 젖은 천 위에 다른 천이 떨어뜨리어진다. 아까보다 적은 피가 젖어있다.

 

은수소리 : 봉합합니다.

 

// 니들 홀드와 봉합용 바늘과 실을 쥔 은수의 손길 아래 상처부위가 봉합되어진다.

// 시술하던 은수가 옆을 돌아본다.

최영의 목의 맥을 짚어보던 장빈이 돌아본다. 끄덕인다. 아직 괜찮다고.

 

 

#20. 객잔 외부

 

보초서는 무사들. 그 중의 하나가 졸리고 지친 얼굴을 쓰다듬어 잠을 깨려 애쓴다.

그가 쳐다보는 하늘가. 검던 밤하늘에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

 

 

#21. 객잔 최영 방

 

방의 한 쪽에 넣어둔 화로. 그 안에서 벌겋게 타오르고 있는 나무.

그 위에 얹혀진 주전자에서 김이 오르고.

그 옆에. 침상에 누워있던 최영. 눈을 뜬다. 잠시 멍하다가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피다가 멎는다.

거기 옆에 누군가 의자에 웅크려 잠들어 있다.

잘 보려고 고개를 들다가 아아. 복부가 땅긴다.

겨우 아래를 보면 배를 칭칭 감아놓은 흰 천.

최영, 끄응 간신이 일어나 앉는다. 이제 보니 옆에 웅크려 자고 있는 이는 은수이다.

저쪽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자기 칼을 보았다. 침대에서 내려 칼 쪽으로 이동한다.

배가 당겨서 아프다. 간신이 칼을 집어 들다가 통증으로 탁자를 짚는다.

그 바람에 요란한 소리가 난다.

후딱 잠이 깬 은수. 벌떡 일어났다가 자기 앞의 최영을 보더니 튕기듯 뒤로 물러난다.

그 바람에 굴러넘어지는 의자.

최영. 칼을 든 채 은수를 본다.

은수가 재빨리 옆에 있던 도구들에서 메스를 집어 들더니 최영을 겨눈다.

 

은수 : 꼬. 꼼짝 마.

최영 : (멀뚱히 보는)

은수 : 그 칼 내려놔. 안 그러면..

최영 : 어쩌시려고.

은수 : ..

최영 : 찔러놓고. 밤새 치료해주고. 또 찌르실라고?

은수 : (그래도 그냥 그대로)

최영 : 그리고 또 치료해주고?

 

은수. 그러고 보니 그렇다. 슬그머니 메스를 든 손을 내리는데.

그 때 은수의 뒤 쪽 입구가 거칠게 젖혀지는 바람에 은수가 또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튕기듯 피한다.

대만이 안의 최영을 보고는 반가워서.

 

대만 : 대장.

최영 : 내가 얼마나 정신을 놓았었냐.

대만 : 하루 밤입니다. 지금은 새벽이구요.

최영 : 전하는 떠나셨겠지.

대만 : 아직.. 계십니다.

최영 : (짜증이 확) 왜애.

대만 : 전하께서 기다린다 하셨답니다. 대장과 같이 움직이신다구요.

최영 : 빌어먹을. 내 옷.

은수 : 뭐하는 거예요.

 

대만이 재빨리 최영의 옷가지를 챙긴다.

 

은수 : 어디 가요.

 

이미 최영이 밖으로 나가고 있다. 은수가 급히 따라 나가며.

 

은수 : 미쳤어요? 이봐요. 환자.

 

대만. 나가려다가 은수의 도구들을 보고는 그것도 챙기기 시작한다.

 

 

#22. 객잔 일층 홀

 

지키던 무사들이 기뻐서 우르르 최영에게 모여든다. 대장. 괜찮습니까?

 

최영 : (대충 옷을 걸쳐 입으며) 전하는 어디 계신가.

부하 : 위층에 계십니다.

 

따라 나온 은수가.

 

은수 : 내 말 안 들려요? 지금 절대안정이 필요하다구요. 간신히 봉합해 놓은 거 다 터지면 어쩌려구.

최영 : (무시. 부하들에게) 덕만이. 돌배.

부하들 : (예. 예. 대답)

최영 : 바로 떠날 테니까 배 준비해. 선주 놈 기다리구 있을 거야.

 

호명 받은 부하들. 대답을 하고 달려 나간다.

 

은수 : 이게 무슨 피부 찢어진 거 몇바늘 꿰멘 건 줄 알아요.

        뱃속에 간이 절개된 걸 혈관 하나하나 봉합해놓은 거란 말이에요.

 

최영. 대만이 가져온 웃옷을 걸치며.

 

최영 : 주석아.

주석 : 예.

은수 : 이 환자가 진짜….

최영 : 바로 출발해야겠다.

주석 : 예.

 

달려 나간다.

최영 앞을 막아서는 은수. 진짜 화났다.

 

은수 : 당장 저 방, 침대로 돌아가요. 내일 이 시간까지 경과를 보고 움직여도 되는지는 내가 말해줄 거예요.

        그리고 방구, 방구 알죠? 제대로 방구 나올 때까지는 금식.

 

옆의 대만이나 등등…. 어이없어 보는데.

 

은수 : (당당) 절대 아무 것도 먹으면 안 돼요. 그리고, 실밥은 일주일 후에 뽑을 거에요.

        그때까진 내가 하란대로 해줘야겠어요. 문제는….

 

하는데 최영이 은수에게 기우뚱 기운다. 은수가 급히 부축하는데.

최영이 은수의 어깨에 팔을 둘러 의지하며.

 

최영 : 문제는 지금 당장 도망가지 않으면 우리 다 죽는다는 겁니다. 이 몸으론 내가 싸울 수가 없어요.

은수 : 왜요.

최영 : 방구 나올 때까지 먹지도 말래매. 어떻게 싸워.

은수 : 아니 내 말은.. 우리가 왜 죽냐고. 누가 우릴 왜..

최영 : 누가 왕비마마께 신발 하나 얻어와. 이분 신을 거라고.

 

부하 중의 하나가 대답하며 위로 뛰어가고.

 

은수 : 이 인간이 증말.. (성질나서 기댄 최영을 뿌리치려는데)

최영 : (그 힘을 이용해 빙글 은수를 돌려 자신을 바로 보게 하고는)

        임자를 골라 잡아간 것은 임자가 누군지 저들이 알았단 얘기요.

은수 : 저들?

최영 : 어디까지 놈들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놈들이 다시 붙기 전에 도망치는 게 상책이야.

은수 : 도망가다니. 어디루. 내가 왜.

최영 : (한숨을 쉰다) 그냥 네. 하는 법이 없구만.

은수 : 아니 그니까..

최영 : 임자를 돌려보내준다는 약속 지키려면 일단 임자가 살아있어야 되잖아.

        그때까진 내가 지켜준다고. 그러니 나한테 딱 붙어 있으시라고.

 

말이 끝난 은수를 옆으로 치우고 이층 쪽으로 움직이며.

 

최영 : 전하와 왕비마마를 모신다. 마차 준비하고.

 

부하들 분분이 대답하며 움직이는데 뒤에서 은수가 날카롭게 소리친다.

 

은수 : 가긴 어딜 가.

최영 : (할 수 없이 돌아보는)

은수 : 내가 돌아가는 문. 그 구멍. 여기 이 동네에 있잖아요. 근데 여기 놔두고 어딜 가. 난 안 가요. 못 가.

 

하더니 문으로 달려 나간다.

최영, 한심해서 보다가 귀찮은 목소리로.

 

최영 : 대만아.

대만 : 예 대장.

최영 : 어떻게 좀 해.

 

 

#23. 객잔 앞

 

이동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부하들이 힐끗거리고 킥킥대며 돌아보는 곳.

은수가 부지런히 움직여 이동하려는데 

그 앞에 떡 가로막아서있는 대만. 불퉁한 얼굴로 팔짱을 낀 자세.

은수가 슬금슬금 대만의 눈치를 보며 옆걸음질을 치다가 냅다 돌아서 달린다.

달리는가 싶은데 어느새 앞을 턱 가로막는 대만. 같은 자세.

은수, 휙 돌아서 달리려는데. 또 어떻게 움직여왔는지 앞을 턱 가로막아 서있는 대만.

은수 미치겠다.

 

 

#24. 포구 / 낮

 

찬바람이 부는 부두에서 만티르가 기다리고 있다.

작은 배 한척이 들어오고 있다.

만티르가 재빨리 달려가 배의 사공이 던져주는 밧줄을 받는다. 얼른 자세를 갖추어 절을 한다.

배에서 내리는 여인. 붉은 치마에 붉은 바람막이 망토.

만티르가 재빨리 길을 안내한다. 비스듬히 두어 걸음 앞서 안내를 하다가 힐끗 뒤를 본다.

여인. 화수인의 얼굴. 어쩐지 미소를 머금은 듯한 표정으로 만티르를 돌아본다.

만티르. 혼이 나가서 얼른 고개를 숙여 길을 걷는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또 뒤를 돌아본다.

뒤를 따르던 화수인이 만티르를 향해 생긋 웃는다. 미끈한 다리가 치마 사이로 슬쩍 드러나보인다.

만티르 그만 발을 헛딛을 뻔해서 겨우 걷는다.

저 앞에 매어져 있는 말 두필.

 

 

#25. 객잔 앞

 

달려오는 말 두필. 화수인과 만티르가 타고 있다.

화수인이 말고삐를 당겨 말을 세운다.

보이는 객잔. 입구가 열려져 있고. 무사들은 보이지 않고 점원 하나가 비질을 하다가 돌아본다.

 

 

#26. 객잔 일층 홀

 

여유 있게 들어오는 화수인.

저만치에선 만티르가 점원의 멱살을 잡고 성질을 내며 뭔가를 물어보고 있고.

실내는 넘어지고 부숴진 가구들이 보일 뿐. 텅 비어있다.

화수인은 살랑살랑 거닐며 여기저기 전투로 부서진 흔적들을 구경한다.

저 안에서 나오던 주인이 만티르 등을 보고 도로 안으로 들어갈까 하는데.

 

화수인 : 주인장.

주인 : (화들짝 놀라 서며) 예에.

화수인 : 배고프네. 요리 두어 접시하고 술 제일 좋은 거.

주인 : 예에, 예.

 

얼른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만티르가 점원을 놓아주고 화수인 옆으로 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만티르 : 놈들이 배를 타고 떠났다 합니다. 제가 배를 전부 묶어놨는데.

           아무래도 선주 놈이 숨겨놓은 배를 내놓은 모양입니다.

화수인 : (그리 급하지 않다) 아아 어쩌나. 그거 참 큰일이네….

만티르 : 연락을 받고 바로 와주셨으면… 새벽에만 와주셨어도 놈들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전서구 보내구 나서 밤새 기다렸거든요. 놈들 대장이 부상당한 것 까지 알아냈는데. 근데..

 

하다 보면 화수인이 빤히 자기를 보고 있다. 말이 목에 걸린다.

화수인이 의자를 가리킨다. 앉으라고.

만티르가 의심스러워 보면. 화수인은 생글거리며 다시 의자를 가리킨다.

만티르가 조심스레 의자에 걸터앉는다.

화수인이 미소 지으며 다가온다. 만티르가 언다.

화수인이 만티르의 바로 앞으로 와서 탁자에 걸터앉는다. 점점 굳어가는 만티르.

화수인이 오른손에만 끼고 있던 가죽 장갑을 천천히 벗는다.

 

화수인 : 어쩔 수가 없었어. 어젯밤… 내가 좀 바빴거든. 왜 바빴나…. 그건 내가 부끄러워서 말 못해.

            (생글생글) 그럼 그놈들 놓친 거야? 내가?

만티르 : (이제 말이 잘 안 나오지만) 머… 멀리는 못 갔을 겁니다. 그러니….

화수인 : 우리 사형들. 이거 알면 석삼년은 빈정댈 텐데. 게다가… 니가 고할 거잖아. 내가 늦장 부려서 놓쳤다구.

만티르 : 아니 그건…. 아닙니다.

화수인 : 그럼 나 너무 속상한데.

만티르 : 지금이라두 쫓아가면…. 저는 암말도….

화수인 : 아. 이렇게 하자.

 

화수인이 일어나더니 만티르의 무릎에 걸터앉는다. 완전 굳어버린 만티르.

 

화수인 : (상냥하게) 니가… 우릴 배신한 거야.

만티르 : 예? (뒤로 빠지려는데)

화수인 : (한팔로 만티르의 목을 감으며) 니가 왜 우릴 배신했을까.

            돈을 받았나? 아니믄… 몇 대 얻어맞구 불어버렸나? 아 몰라. 암튼….

 

만티르. 벗어나려고 기를 쓰지만. 화수인은 아예 다리로 그와 의자를 한꺼번에 감싼 채 더 가까이.

 

화수인 : 그래서 내가 왔을 땐… 너무 늦어 버린 거야. 내가 온다는 걸 니가 그 놈들한테 알려줬거든.

            그래서 일찌감치 다 내뺐어. 봐. 아무도 없잖아.

 

화수인이 얼굴을 만티르 가까이에 댄다.

 

화수인 : 니 놈이 나빠. 그치?

 

그렇게 가까이한 화수인의 얼굴.. 그 아래.. 가슴 왼쪽 심장 부위.

 

 

#27. CG

 

화수인의 가슴 안, 심장이 뛰고 있다. 그렇게 펄떡이며 뛰는 심장에서 뻗어져 나가는 혈관.

주욱 따라가다 보면 오른손 쪽으로 이어진다. 손으로 가까이 갈수록 혈관이 붉어지고 있다.

손으로 이어지는 혈관. 그리고 손 마디마디로 퍼져나가는 미세혈관들이 붉게 끓듯이 펄떡인다.

 

 

#28. 객잔 일층 홀

 

만티르의 목을 감싼 화수인의 오른손. 그 손에 붉게 열이 나고 있다. 마치 타오르는 듯.

옆에서 보던 점원. 놀라서 입이 떡 벌어져 있다. 그 앞에 타는 연기가 난다.

만티르의 얼굴이 벌겋게 고통스럽게 변하고 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사이.

화수인이 잡고 있는 만티르의 목덜미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다. 손이 닿은 옷깃도 조금씩 타서 연기가 오르고 있다.

화수인이 만티르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인다.

 

화수인 :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죽였어. 니놈을. ...미안해.

 

화수인이 살랑 일어서더니 옷자락을 살랑 나부끼며 비켜서는데.

만티르가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며 앞의 탁자와 함께 무너진다. 이미 사망해있다.

 

 

#29. 길 / 낮

 

공민왕의 일행이 이동하고 있다.

충석이 맨 앞에 말을 타고. 중앙에는 공민왕과 노국의 마차. 그 양 옆에는 장빈과 일신.

마차의 바로 뒤를 따르고 있는 최영.

그 옆에 바싹 붙어 말을 모는 대만. 슬쩍 최영을 본다.

최영은 말에 몸을 맡긴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마 위로 덮어 쓴 바람막이 두건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통증 때문인지 상체가 앞으로 구부러져 버티고 있다.

 

 

#30. 노국공주 마차 안

 

노국과 나란히 앉은 은수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서 뒤를 보려다가 단념하고 자세를 바로하고 옆의 노국을 본다.

노국은 쿠션에 싸여서 뒤로 기대 눈을 감고 있다.

은수가 노국의 손목을 잡아 맥박수를 잰다.

 

은수 : 심박수는 안정 되있고, (안색을 살피며) 혈압도 괜찮아 보여요.

 

다시 앞을 향해 앉다가 불쑥.

 

은수 : 망할 놈. ..미친 사이코 또라이.

 

노국이 눈을 뜨고 본다.

 

은수 : (궁시렁 궁시렁) 저러다 수술 자리 터져 죽어도 난 몰라. 나두 할 데까지 했으니까. 

        고소할래믄 해. 나두 할 말 많어. (그러다 갑자기 노국을 보더니) 이름이 뭐에요.

노국 : (멀뚱히 보는)

은수 : 나 전은수라구 해요. 보아하니 내가 언니 같은데…. 이름이?

노국 : 보르지긴 보타슈리.

은수 : …뭐?

노국 : 원나라 위왕의 딸이오.

은수 : 왕의 딸이면 공주네.

 

은수,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듯 웃다가 보면 노국은 무표정하게 자기를 보고 있다.

웃음기가 가신다. 울상이 되며….

 

은수 : 무슨 꿈이 이래. (생각해보다가) 그럼 저 앞에 마차에 탄 분이….

노국 : 왕이십니다.

은수 : 왕에 공주에.. (멍해서 보다가) 아까.. 원나라라고 했어요? 중국에 원나라?

노국 : (무표정하게 보는)

은수 : 원나라 때면 우리가 무슨 나라야. 고구려? 신라? 내가 이과라서 사회계열이 좀 약하거든요. 그니까 여기가..

노국 : 좀 전에 고려 땅으로 들어섰다 했습니다.

 

은수, 멀뚱하게 노국을 보다가 어이구우…. 한숨을 쉰다. 정말 미치겠다.

 

은수 : 그럼…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왔단 거에요? 내가… 대한민국 강남 땅에서 여기 고려 땅으루?

        그러니까 이천십이년에서…. 고려가 몇 년도야. 하여간 몇백년 전으루? 아님 천년쯤 되나?

노국 : (여전히 무표정하게) 무사들이 모두 보았다 했지요. 의원께서 하늘 길을 통해 오시는 것을.

        우달치가 강제로 모셔왔단 얘기도 들었습니다. 나 때문인 것으로 압니다. …아주 많이… 미안하오.

 

은수. 그렇게 말하는 노국을 보고 있는데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이구우…. 다시 한 번 울음 같은 한숨.

 

은수 : 무슨 꿈이 이렇게 길어.

 

 

#31. 고려 내 마을 길

 

고려의 군사 한 분대 정도가 급히 말을 달려온다.

저 앞에 오고 있는 공민왕의 행렬. 여전히 검은 바람막이와 눌러쓴 두건으로 모습을 감춘 복장들.

군사들이 우르르 달려와 행렬을 멈추게 한다.

멈추라. 행렬 멈춰. 소리 지르며 반원을 만들어 그들의 길을 막는다.

맨 앞의 충석이 그들을 향해 버럭.

 

충석 : 어느 안전에서 길을 막는가. 니놈들 어디 소속이야.

산원 : 감히 왕의 행렬을 참칭하는 부랑배들이 있다 해서 달려왔다.

충석 : (어이없어 웃더니) 우달치의 랑장. 배충석이다. 걸친 걸 보아하니 감문위 놈들인가.

 

산원. 부하들과 서로 의심스러운 시선을 교환하더니.

 

산원 : 감문위. 산원 오덕소라 하오.

충석 : 국경에서 전갈을 보낸 것이 하루 전이다. 전하를 호위하러 나와야 할 금군들은 어찌 아니 보이고.

         니들은 시방 이게 뭐하는 행패냐.

산원 : 황감하오나 전하의 용안을 뵐 수 있겠습니까? 확인하기 전에는….

충석 : 이 썩어 뒤질 놈들이….

 

불끈 칼을 빼들려 하고. 상대쪽도 더러 무기를 빼들며 분위기가 험상궂게 되는데.

뒤에서부터 뚜벅뚜벅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선 최영이 두건을 벗는다.

 

최영 : (조용히) 우달치에 중랑장 최영이다. 용안을 뵌다 한들 니놈들이 뭘 알 수 있겠는가. 

        (뒤의 부하들을 향해) 우달치.

대원들 : (일제히 우렁차게) 예.

최영 : 이제 위장을 벗고 (버럭) 제 복장으로. 전하를 뫼신다.

 

하더니 먼저 바람막이 옷을 벗어 날려 던진다. 그 뒤의 부하 무사들도 일제히 바람막이 옷을 벗어 던진다.

휘리릭 어지러이 날려 떨어지는 바람막이들. 그 아래서 드러나는 기품 있는 우달치군의 제복들.

(왕의 직속 근위대다운, 객잔까지의 위장복과는 다를 것)

 

최영 : 산원.

산원 : (저도 모르게 소리 높여) 예.

최영 : 전하께서 가실 길이다. 반은 앞으로 보내 길을 예비하고 반은 가마의 뒤를 지킨다.

 

산원 순간 망설이며 어쩔까 싶은데.

최영이 뒤의 자기 부하들에게 연이어 쩌렁쩌렁 명한다.

 

최영 : 지금부터 앞에 걸리는 놈은 상대불문. 문답무용. 무조건 벤다.

부하들 : 예.

 

우렁찬 대답과 함께 일제히 무기들을 빼드는 우달치 무사들. 기세가 흉흉하다.

산원 그 기세에 밀려 자기 부하들에게 다급하게 명령한다.

 

산원 : 일대. 우로. 이대. 좌로.

 

산원의 명에 따라 그 부하들이 길 양쪽으로 급히 달려 앞길을 트고 양옆으로 자리를 잡는 와중에.

충석이 최영에게 낮게 말한다.

 

충석 :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중간에 농간을 부리는 자가 있을까요.

 

최영이 찡그리고 앞에서 바쁜 군사들을 보며.

 

최영 : 담부턴 자네가 해.

충석 : 예?

최영 : 소리 지르는 거.

 

최영은 수술한 배 부근을 부여잡고 있다. 무지하게 아프다.

 

 

#32. 기철의 집 회랑

 

기철이 걸어오고 있다. 그 양 옆을 따르는 양사와 기원.

 

양사 : 왕의 행렬이 벽란도에 당도했다 합니다. 시간을 지체시키라 했으나 여의치 않나 봅니다.

기원 : 중신들이 술렁이고 있습니다. 새 왕께 어느 정도의 충성을 보여야 하는지 눈치들을 보고 있는 게지요.

기철 : (멈추더니 갸우뚱. 생각해본다) 나.. 알고 싶은데.

양사 : 알고 싶다 하심은….

기철 : 그들은 새 왕께 어느 정도의 충성을 보일까.

양사 : 부원군 마마와 비교해서입니까.

기철 : 그들, 태어나기를 금 방석에서 태어나 이미 주어진 땅과 이미 주어진 노비들에 둘러 싸여 자란 

        소위 권문세가 족속들. 그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뭔지 아나?

양사 : 듣고 있사옵니다.

기철 : 더듬이야. (재미있다는 듯) 어느 누구에게 붙어야 내가 안녕할 것인가. 

        내 땅과 내 노비를 더 많이 불릴 수 있을 것인가.

        그 더듬이는 그들이 날 때부터 갈고 닦은 것이라 참으로 믿을만 하거든.

        그 타고난 더듬이가 누굴 가리 키는지…. 그게 알고 싶어.

양사 : 시험해보시겠습니까.

기철 : 응. 하고 싶네. 하고 싶어.

양사 : (빙그레 웃더니 기원에게) 혹시 대감댁 아드님께서 돌잔치를 벌일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기원 : (어리둥절) 우리 애가요? 돌은 아직….

양사 : 되었을 텐데요. 그리 기쁜 경사를 어찌 조용히 보내려 하십니까?

기원 : (아직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는데)

기철 : (기쁜 듯 웃으며) 그렇지. 그리 기쁜 일은 다 함께 나누어야지.

 

 

#33. 본궐 앞 길

 

마차 안 은수. 까물까물 졸고 있는데 밖에서 들리는 소리.

 

충석소리 : 왕비마마. 신 충석입니다.

은수 : (잠이 깨는)

노국 : 말하라.

 

은수. 창문을 연다.

충석이 마차와 나란히 말을 몰면서.

 

충석 : 이제 곧 황성입니다. 전하와 비마마께서는 바로 선인전으로 드시게 됩니다.

         기별을 보냈으니 지금쯤 고려의 모든 중신들이 모여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 자막 선인전(宣仁殿) 고려 왕이 정사를 처리하던 정전.

은수 : (입을 헤 벌리고 듣다가 중얼중얼) 고려의… 모든 중신….

충석 : 전하께서 전하라 하신 말씀 그대로 전해 올리겠습니다.

        (헛기침, 성대모사하듯) 옥체가 불편하신 거 압니다만

        잠시라도 참여 하셔서 중신들의 예를 받아주셨으면 하오…. 라 하셨습니다.

노국 : (짜증스러운 얼굴) 좀 씻고, 의복도 차려입고, 목에 이것도 가리고. 

        그 다음에 하면 안 되겠는가. 지금 내 꼴을 좀 봐.

충석 : 어…. (힐끗 노국을 보는) 말씀.. 전했습니다. 그럼..

 

후다닥 도망치듯 가버린다.

은수, 노국을 돌아본다. 노국은 부시럭거리며 거울을 찾아 꺼내 얼굴을 비춰본다.

은수, 갑자기 자신의 백을 뒤적뒤적, 콤팩트를 꺼내며.

 

은수 : 나 좀 봐요.

 

노국이 은수를 돌아본다.

 

은수 : 회복 중인 환자치고는 피부가 좋네요.

        (노국의 얼굴에 분칠을 꼼꼼히 해주면서) 메이크업베이스 없어두 잘 먹어요. 아주.

노국 : (찌푸린 얼굴로 가만있는)

은수 : 내추럴한 누드 메이크업으로 해줄까요. 아니면 좀 진하게?

        공주님이시라니까 좀 우아하게… 브라운 톤으로 해볼까. 핑크 펄도 어울릴 거 같은데.

        (가방 뒤져 아이섀도며 립스틱 찾아 꺼내며) 립스틱이 이거밖에 없네. 립글로스도 어디 있을텐데.

 

노국 여전히 찌푸린 얼굴로 보다가 슬쩍 눈만 돌려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본다.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보고 찌푸린 것을 펴본다.

 

 

#34. 개경 전경 CG

 

그 중에서 선인전 궁궐 대문 앞으로 주욱.

 

 

#35. 선인전(편전) 앞 / 입구

 

대전 대문이 활짝 열린다. 우르르 달려 나오는 금군들. 양쪽으로 도열하여 길을 낸다.

그 앞에 도착한 공민의 행렬.

//마차에서 은수가 먼저 내려 노국이 내리는 것을 도와주다가 보면.

노국이 은수의 등 뒤를 보고 있다.

은수도 뒤를 돌아본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장엄한 궁의 모습.

노국에게도 처음 보는 모습이다.

//최영과 충석이 양쪽에서 호위하며 공민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조금씩 더 많이 보이는 열려진 대문 안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대전.

공민이 지나가는 대로 군인식의 경례를 올리는 금군들.

그런데… 최영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충석을 돌아본다. 충석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최영을 본다.

대문을 들어서기 전. 최영이 공민에게 나직하게.

 

최영 : 전하 잠시만 멈춰주십시오.

 

공민이 걸음을 멈춘다.

최영의 한손이 검 손잡이에 얹힌다. 언제라도 뺄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성큼 앞서 대문을 넘어 들어간다.

 

 

#36. 선인전(편전) 앞 마당

 

거기 넓은 대전 앞마당은 수비하는 금군들의 모습만 보일 뿐. 신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비어있는 마당. 비어있는 중신들의 자리.

대문 안 쪽 옆을 지키던 금군 중의 하나가 최영의 신호에 달려온다.

 

최영 : 어찌 너희들뿐이야. 중신들은 다 어디 있어.

금군 :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최영 : 전령을 두 번이나 앞서 보냈잖아. 전하께서 당도하신다. 모든 중신에게 전해 예를 갖추어 맞이하게 하라.

금군 : 그게…. (난처한 듯)

최영 : 그게 뭐.

 

금군 병사가 머뭇거리며 최영의 뒤를 본다.

굳은 표정의 공민이 대문을 들어서고 있다.

// 가장자리에 자리한 금군들만 보일 뿐. 중앙은 텅 빈 대전의 마당.

그 가운데를 공민왕이 외롭게 걸어가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노국공주와 은수.

그 뒤의 양쪽을 따르는 최영과 충석. 장빈…

그렇게 걸어가는 위로 일신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일신 : 역사고금 하늘 아래.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전하.

         제아무리 패악한 만고의 역적, 간신, 모리배도 이런 짓은 아니했습니다아.

 

일신이 미친놈처럼 이리저리 너른 마당을 헤매 다니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일신 : 이 나라의 왕께서 오신다는데. 그 왕의 녹을 먹고 사는 아랫것들이 다 어디 있단 말입니까.

         무엇이 어째요. 누구네 돌잔치에 가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전하아. 소신 비통하여 피를 토할 거 같사옵니다. 전하. 어찌 견디십니까. 어찌 말씀이 없으십니까아.

 

공민왕은 조용히 대전으로 가는 내부 계단을 오른다.

충석을 비롯한 무사들은 계단 아래 머문다.

 

 

#37. 선인전(편전 내부)

 

들어서는 공민. 그 뒤를 따르는 노국. 그 옆의 은수.

뒤쪽에 따라 들어오는 최영과 장빈.

대전에는 시녀와 내관들이 전하를 맞이하여 무릎을 꿇어 맞이할 뿐.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중신들 자리를 텅 비어있다.

중앙에 외로이 보이는 옥좌.

공민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노국과 눈이 마주친다. 노국은 아무 표정 없다.

공민. 자존심이 팍 상하는 것을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돌아서는데.

안쪽이 소란스럽더니 최상궁이 시녀들을 우르르 이끌고 들어서더니 일제히 엎드려 예를 올린다.

 

최상궁 : 전하. 왕비마마. 오시었습니까. (고개를 들어 공민을 보며, 빠르게) 혹시 기억하시겠습니까?

            전하께서 열 살 어린 나이에 원으로 끌려 들어가실 때 마지막까지 저의 손을 잡고 계셨습니다.

공민 : (기억을 더듬다가) 최상궁?

최상궁 : 그렇습니다. 최상궁,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만 일어날 수 있게 허해주십시오. 할 일이 많사옵니다.

공민 : (희미하게 미소가 일어나며) 그 성격도… 기억나네. 여전하구려. 일어나게.

최상궁 : (격조 있는 몸짓으로 빠르게 일어서며) 여기는 더 계실 필요가 없사옵니다. 

           일단 안으로 드셔서 여독을 푸십시오. (하며 노국에게 시선이 가는) 왕비마마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목을 감고 있는 붕대를 보는) 한때 왕비마마께서 변을 당하셨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돌았던지라

           이처럼 뵙게 되오니 참으로 하늘님이 보우하사이옵니다.

 

말하는 사이 시선이 은수에게 간다.

무사들이 입는 바람막이에 아직 입고 있는 현대양장. 신발은 노국에게 받은 원나라 방식의 신발.

샅샅이 훑어보는 최상궁의 시선에 은수가 민망해서 어눌하게 미소 지으며 한 손을 들어 보인다.

최상궁 싹 돌아서며.

 

최상궁 : (대기하는 내관들을 향해) 무엇들 하시는가. 전하를 뫼시지 않고.

 

우르르 달려오는 내관들. 공민을 에워싸 안으로 들어가고.

시녀들은 우르르 노국을 에워싸고 안으로.

최상궁은 따라 가며 최영을 휙 흘겨보며 말을 던진다.

 

최상궁 : 얼굴 꼬락서니하곤.. 전하를 뫼셔야 할 우달치가 제 몸을 어찌 굴려 대기에. (혀를 차며 가버린다)

 

멍하니 구경하던 은수가 최영을 돌아본다.

무뚝뚝하게 서 있는 최영의 얼굴에 진땀이 흐르고 있다.

은수가 놀라 다가서며.

 

은수 : 이봐요. 나 좀 봐요.

 

은수가 최영의 손목을 잡으려는데 최영이 교묘히 손목을 돌려 그 손을 피한다.

 

은수 : 지금 열나는 거 맞죠? 그거 패혈증의 전조일 수 있어요. 그러니 열 좀 재보게..

 

그러나 최영은 은수를 피해 밖으로 이동하며 입구 쪽에 서 있던 장빈에게.

 

최영 : 저 분 좀 부탁합시다.

 

장빈도 최영의 기색이 심상치 않아 멈춰 세우려는데.

미끄러지듯 보법을 써서 빠져나가버리는 최영.

 

 

#38. 선인전(편전) 근처 으슥한 곳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 들어오는 최영. 문득 비틀하더니 벽에 기대선다.

얼굴에 흐르는 땀. 벌겋게 열이 오르고 있다. 손바닥으로 땀을 훔쳐낸다.

참고 있던 열에 들뜬 숨을 가쁘게 쉰다.

 

 

#39. 전의시 내 길

 

장빈이 은수를 안내해 걸어온다.

오가던 의원. 의생들이 분분히 장빈에게 인사를 한다. 은수를 향하는 호기심어린 눈길들.

(장빈은 전의시의 두 번째 직책)

은수는 신기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도 계속 떠드는 중.

 

은수 : 그니까 패혈증, 셉티시미아. 이게 뭔가 하면요. 몸 안에 세균이 혈액 속에 들어가서 번식을 하는 거예요.

        그럼 그게 번식하면서 독소를 생산하거든요. 그 과정에 중독 증세를 일으키거나.

       아니면 혈액의 순환에 의해 2차적으로 여러 장기에 감염을 일으키게 되는 거죠.

장빈 : 사람 몸 안에서 균이 번식을 한다?

은수 : 그니까 여기가 한의 선생님 병원이에요? 원장이신가? 여기 의사가 몇 명이나 되요? 디따 크네.

장빈 : 전의시입니다. 제 것이 아니라 전하의 것이구요.

         그럼 우달치 중랑장이 그 패혈증이란 것에 걸릴 수 있다는 겁니까?

- 자막 전의시(典醫寺) 고려 후기 궁중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은수 : 모르죠. 이 인간을 잡아 눕혀놓고 경과를 봐야 하는데.

         내 이렇게 의사 말을 엿같이 아는 환자는 첨 본다니까. 진짜.

 

 

#40. 선인전(편전) 근처 으슥한 곳

 

가부좌로 앉은 최영이 운공을 하고 있다. 조용히 단전호흡을 하며 내부의 기를 돌리는 중.

비오듯 흐르는 땀. 그 위로.

 

은수소리 : 초기증상으로는 호흡수가 빨라지고 급작스런 발열. 아니면 저체온증.

 

최영의 손끝에서부터 전기가 지직지직 형성되더니 기맥을 따라 흐르기 시작한다.

 

은수소리 : 간혹 정신착란 같은 신경학적 증세도 나타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초기에 치료하는 거에요. 다른 장기까지 감염되면 진짜.. 힘들어진다구요.

 

그러나 전기는 중간에 흩어지면서 최영이 울컥 피를 쏟아낸다. 더욱 고통스러워 상체를 꺽는다.

 

 

#41. 전의시 약제실

 

안내하던 장빈이 멈춰서며.

 

장빈 : 힘들어진다면..

은수 : 치료할 수가 없다구요.

장빈 : 살릴 수가 없단 얘깁니까?

은수 : 살릴 수야 있죠. 약만 있으면요.

장빈 : 무슨 약이요.

은수 : 페니실린이나 엠피실린. 세팔로틴. 테트라사이클린…. 근데. 그 중 아무것도 없대매요.

장빈 : 아직 그 패혈증인지는 모른다 이거지요?

은수 : 제일 확실한 건 혈액검사를 해보는 거예요. 백혈구의 증가치나 감소 치를 보면…

         근데. 혈액배양검사…. 그런 거 안 되죠?

장빈 : (뭐?)

은수 : 패혈증쇼크까지 왔다 치면 치사율은 이론적으로 70퍼센트가 넘어요.

장빈 : 퍼… 센….

은수 : 그니까… 열 명에 일곱 명은 죽는다. 그것도 투약 치료를 하면서 외과 시술을 병행할 때 그렇다구요.

         근데 말했지만… 약이 없잖아요.

 

장빈이 어이없어 은수를 본다.

은수. 어쩌라고.. 하는 얼굴로 마주보고 있다.

 

 

#42. 곤성전 노국의 처소

 

문이 열리며 노국을 호위하여 들어오는 최상궁과 시녀. 무각시들.

최상궁이 재빨리 방 가운데 탁자 앞에 노국을 모셔서 앉히며.

 

최상궁 : 목욕물을 준비하겠습니다. 그 전에 간단히 요기를 하시겠습니까? 시장하시다면..

노국 : (들은 거 같지도 않게 꼿꼿이 그대로)

최상궁 : (궁시렁) 우리 말이 안되시는구만. (주위를 둘러보며) 장희 어디 갔냐. 와서 거시기 나라 말 좀 전하라 해.

 

시녀 하나가 고개를 숙여보이고 재빨리 밖으로 나간다.

다른 시녀가 다과쟁반을 들고 오고 최상궁이 받아서 노국의 앞에 놓아주며 중얼중얼.


최상궁 : 죽었다드만 이리 팔팔 살아계시네. 어떤 괭이새끼가 그런 소문을 퍼뜨려가지구 인심 흉흉하게스리..

         보자. (스윽 노국을 훑어보며) 성질머리는 상당히 있어 보인다만 이쁘네. 응. 괜찮아.

 

장희가 총총 들어온다.

 

최상궁 : 왕비마마께 여쭈어보거라. 목욕. 식사 어느 걸 먼저 하시려는가.

 

장희가 마악 입을 열려는데.

 

노국 : 먼저 씻겠다.

 

최상궁이 놀라서 주저앉을 뻔.

그러나 노국은 얼음같은 표정 그대로. 문득 고개를 돌리더니 문 쪽을 본다.

거기 닫혀있는 문. 그리고 기억 속에 누군가의 발소리.

 

 

#43. 원의 궁 내부 일각 / 회상

 

(회상장면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모노톤도 괜찮을 듯)

원나라 복장을 한 안도치가 초조해서 이리저리 살피며 급히 걸어오며 남들이 들을새라 소리를 낮춰 애타게 부르고 있다.

 

도치 : 마마. 대군마마.

 

자막 원나라, 오늘로부터 이년 몇개월 전. (자막 좀 길게 보여주세요)

 

 

#44. 원나라 궁의 어느 방 / 회상

 

대기실 격의 어느 방.

문이 열리며 다급하게 들어서는 공민. 얼른 문을 닫고 밖의 기척에 귀 기울인다.

그러다 몸을 돌려 내부 쪽으로 들어서다 놀라 선다.

거기 웬 여자가(노국) 눈만 내놓고 코 아래는 가리개를 한 채로 앉아서 놀란 눈으로 공민을 보고 있다.

공민 당황해서 작은 소리로.

 

공민 : (원나라말) 놀라지 마십시오. 잠깐만 몸을 피할 것이니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금방 나갈 겁니다. (<--자막)

 

하는데 방 밖에서 들리는 소리.

 

도치소리 : 대군마마.. 대체 어디 계십니까.

 

공민이 찌푸려서 밖의 소리를 듣는다.

도치가 그렇게 낮은 소리로 거의 울먹이며 공민을 찾으며 방 밖을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노국을 돌아보며.

 

공민 : (원나라말) 실례했습니다. 그럼..

 

문 쪽으로 다가서 살짝 열고 밖의 동정을 살피는데.

 

노국 : (우리말) 강릉대군.. 아니십니까.

공민 : (의외라서 돌아보는) 고려 여인인가.

노국 :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이는)

공민 : (반가와서) 복장이 그래서 원의 귀족여인인줄 알았다. (아..해서) 혹시 이번 조공행렬에 끌려온 여인인가.

노국 : ...

공민 : .. 미안하구나.

노국 : (?해서 보는)

공민 : 나도 고려 왕실의 한 사람. 위에 앉은 자들이 부실하여 아래 백성들이 고초를 겪는구나.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노국에게 가까이.

노국이 흠칫 피하려 하는데.

 

공민 : 돌아가고 싶으냐? 우리 땅. 고려로 돌아가고 싶으냐.

노국 : (놀라서 그저 보는)

공민 : 가자.

 

하더니 다짜고짜 노국의 팔목을 잡고는 문 쪽으로 간다.

 

 

#45. 곤성전 회랑 / 현재

 

노국이 최상궁 등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 나온다. 목욕소로 가는 길.

걸어가다가 노국이 문득 멈춰 선다.

최상궁이 ?해서 보면.

노국은 앞에 길게 놓인 회랑을 보고 있다.

 

 

#46. 원나라 궁 내 회랑 / 회상

 

노국을 이끌어 오던 공민이 다급해서 선다. 저쪽 코너를 돌아오는 여럿의 발소리.

그때 노국이 오히려 공민을 잡아끈다. 노국이 바로 옆의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노국소리 : 무엇을 피하고 계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47. 원나라 궁 내 홀 / 회상

 

위의 복도 씬하고 디졸브? 바로 연결해버리고.. 회상의 느낌이니까.

 

공민 : (씁쓸하게 웃는) 오늘 여기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어있다. 그것을 피하는 중이야.

노국 : 누군가라면..

공민 : (자기도 근처에 앉으며) 이 궁에 공주다.

노국 : (굳어서 보는)

공민 : 날더러 원의 여인과 혼인을 하라 하는구나.

         (다시금 성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열두살 어린 나를 여기까지 인질로 끌고 와서

         저들 황태자의 시중을 들라며 수모를 주더니, 이젠 그들의 사위가 되라 한다.

노국 : .. 싫으십니까?

공민 : 싫으냐고? 허. 저들 마음대로 고려의 왕을 임명하고 폐위시키고..

         나 또한 이제 저들의 사위가 되어 부복을 하고 고개를 숙이고 부르면 기어가고 내어 쫓으면 얻어 맞으면서..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다가 멈춘다.

내려다보면 노국이 공민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가 공민의 시선을 받고는 얼른 거둔다.

잠깐 어색한 기운이 맴돌다가..

 

노국 : ... 그래도 상대가 공주라 하니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공민 : 도움?

노국 : 강릉대군께서는 고려인 왕비님의 출생이시라 고려에서 세력이 약하시다.

         그러니 원의 공주와 혼인을 하면 다음 왕위 계승자로 오를 수 있으실 것이다.. (말을 하다 멈추고 보면)

공민 : 그래서 날더러 받아들여라. 그래야 왕에 오를 가능성이 생기니..

노국 : 송구스럽습니다. 전 그저..

공민 : 일면식도 없는 그 여인, 듣기만 하여도 치가 떨리는 원의 여인을 받아들여라.

노국 : ... 일면식도 없으십니까?

공민 : 없다.

노국 : 이 궁에 공주님이라면서..

공민 : 설령 만났었다 한들 원의 계집 따윈 기억하지 않아.

 

 

#48. 곤성전과 강안전 사이의 정원

 

노국이 이쪽 길로 가다가 돌아보면

정원 반대쪽에는 공민이 안도치와 충석 등의 호위를 받으며 가고 있다.

공민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노국은 이미 정면으로 시선을 돌린 뒤.

그런 노국을 잠시 보다가 공민도 시선을 돌린다.

(이런 부분은 슬로우 같은 기법으로 편집을 부탁합니다. 각자의 방향으로 가는 둘인데 시선은 엇갈리는 느낌 살려서)

 

 

#49. 원나라 궁 내 홀 / 회상

 

// 공민과 노국이 피한 장소는 둘이 바싹 붙어 앉아야 할 정도의 스페이스.

그렇게 가까이 붙어 앉은 채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공민. 그제서야 자신이 아직 노국의 손을 잡고 있는 걸 알았다.

노국도 그제야 정신 차리고 손을 빼내려 하는데.

공민이 놔주지 않으며. 노국의 코 아래를 가리고 있는 가리개 위의 눈을 들여다본다.

 

공민 : 아무래도 원의 공주와의 혼인. 내 힘으로는 피하지 못할 거야. 

        허나. 고려인인 그대가 나의 첫 번째 부인이 되어줘.

       지금처럼 우리 고려말로 내가 하소연하면 들어주고. 두렵거나 분이 나서 떨면 잡아줘.

       원의 계집 따위, 결코 그대의 자리에 근접하지 못하게 할 것이야.

 

그렇게 말하는 공민을 보는 노국. 어느새 눈에 고인 눈물이 주루루 흐른다.

공민이 손을 들어 눈물 닦아주려고 가까이 하는데 고개를 돌려 피하는 노국. 공민에게 잡혀 있던 손도 빼낸다.

 

 

#50. 강안전 공민의 처소

 

공민이 들어선다. 새로운 침실이 될 공간이다.

 

충석 : 이제부터 전하의 처소가 될 곳입니다. 저희 우달치가 항상 지근에서 지켜 모실 것이니 부디 편히 거하십시오.

 

충석이 고개를 숙여 보인다.

 

 

#51. 전의시 약초원

 

사방에 피어져 있는 온갖 약초들.

은수. 우와 해서 구경한다.

그 옆에서 장빈이 재빨리 이 약초 저 약초 몇 개의 잎을 따고 있다.

 

은수 : 여기… 무슨 마녀의 허브정원 같네. 이거 다 약초에요?

장빈 : (대꾸 없이 유심히 약초 잎을 살피며 따내는 등 작업)

은수 : (어느 약초의 냄새를 맡아보다 으엑…)

장빈 : 기다리시겠습니까? 약을 좀 달여야겠어서….

은수 : 그러세요. 근데 점심때가 넘었는데 밥은… 어떻게….

장빈 : (나가려다가 멈추고 천천히 은수를 향해 돌아선다. 인상이 별로 안 좋다)

은수 : 아침도 제대로 못 먹었잖아요. 막 빨리 가야 된다구 재촉해서…. 

        이 병원에 구내식당 같은 거 없어요? …없나?

장빈 : 하늘에 의원님들은 다 그러십니까?

은수 : 뭐가요.

장빈 :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그리 사소한 일입니까?

은수 : (보는)

장빈 : 여기 땅에 사는 의원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약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하고 그리 쉽게 단념하지 못해서요.

         그 약이 안 되면 이 약. 이도 안 되면 저 침이라도… 하면서 매달리게 되지요. 그런 것이 구차하게 보입니까?

은수 : (보는)

장빈 : 식사는 곧 마련해드리라 이르겠습니다.

 

장빈 가버린다.

 

은수 : 어디 가요. 나 혼자 여기서 어쩌라고. 여기가 어딘데.

 

그러나 이미 나가버린 장빈.

불안해지는데. 뭔가 뒤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후딱 돌아본다.

화초들 사이로 휘릭 지나는 그림자를 본 것 같다. 놀라 일어선다. 다시 보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은수 : 누구 있어요? 이보세요.

 

대답이 없다. 다른 쪽에서 뭔가 휘릭 지나간다.

으아아 소리를 지르며 몸을 피하다가 바지 아래 쪽이 뭔가에 걸려 주욱 찢어진다.

은수. 비명을 지르며 손에 잡히는 대로 옆의 농기구 하나를 두 손으로 집어 든다.

사방을 경계해서 둘러보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울고 싶다.

 

 

#52. 전의시 입구

 

최영이 걸어 들어오고 있다. 배가 땡기는지 한손을 수술한 부근에 얹고.

들어오는 길에 저 앞에서 오는 더기를 본다. 더기는 뭐가 불만인지 불퉁해있다.

 

최영 : 안에 계시냐? 이상한 옷을 입은 여인이신데 그게..

더기 : (맹렬한 손짓)

 

더기가 뭔가 화가 나서 지껄인다. 안을 가리키고 자기 가슴을 쳐가면서.

장빈이 이상한 여자의 밥을 차려주라고 해서 화가 난 상황이다.

 

최영 :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있구만. 니가 성난 거 보니.

 

스쳐 들어간다.

 

 

#53. 약초원

 

들어서던 최영이 멈칫 멈춘다. 옆의 기둥? 뒤로 스윽 숨는다.

숨어서 보는 저 앞. 은수의 거처 쪽.

그 앞에 은수가 농기구를 든 채 사방을 이쪽저쪽 경계하고 있다.

그러다가 머뭇머뭇 마루 쪽?으로 가서 앉는다. 많이 지쳐있다.

앉은 채 아래를 내려다본다. 바지가 너덜너덜. 더러워져 있다.

 

은수 : (울상이 돼서) 바지가 이게 뭐야. 신상으루 산건데. 

        드라이해두 안되겠지? 아아 진짜.. 잘라내서 반바지루 입어?

 

하며 걷어 올려본다. 다리가 드러난다.

// 숨어보던 최영이 당황해서 고개를 돌린다. 그렇게 시선을 다시 돌리지 못하고 있는데 들리는 소리.

 

은수소리 : 여보세요. 핼로우..

 

최영이 슬쩍 다시 고개를 돌려 본다.

// 은수가 집의 안 쪽을 들여다보며 부르는 중.

 

은수 : 암도 안계세요?

 

안에서는 아무 소리가 없다.

은수 점점 열이 받기 시작하며.

 

은수 : 아 뭐야. 사람 델다 놨으면 누가 안내를 해줘야지. 무슨 매너들이 이따우야.

        (누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사방을 기웃거리며) 어디서 좀 씻었으면 좋겠는데. 화장실이 어딨는지. 응?

        밥은 왜 안줘. 준대매.

 

최영, 저도 모르게 미소가 나오려다가 표정관리를 한다.

더기가 인절미가 든 접시?를 들고 불퉁한 얼굴로 온다. 최영을 스쳐서 안쪽으로 간다.

은수가 놀란 얼굴로 더기를 본다. 그만큼 더기의 기세가 등등하다.

은수 앞으로 턱턱 오고 은수가 저도 모르게 두어걸음 물러나는데.

그 앞에 접시를 탕 놔주는 더기.

 

은수 : (들여다보고) 이게 웬... 떡?

 

더기는 휙 돌아서더니 다시 가려는.

 

은수 : 저기요. 아가씨. ... 언니.

 

더기가 선다.

 

은수 : 저 물 좀.. 마실 물도 좀 주실래요? 떡은 물 없이 먹으면 체하기 쉽잖아요. 그니까 떡을 주시려면 물도 같이..

 

그러다 더기가 휙 흘겨보는 바람에 움찔해서.

 

은수 : 됐어요. 내가 알아서 찾아 먹을게요.

 

더기가 안을 향해 손을 휙 뻗쳐 가리킨다.

 

은수 : 저기.. 안에 있나? 나.. 들어가도 되요?

 

더기가 가버린다.

은수가 더기의 눈치를 보며 떡 접시를 집어들고. 안으로 슬금슬금.. 이미 떡 하나는 집어먹으며.

최영이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더기를 잡는다. 뒤를 돌아본다.

은수는 이미 안에 들어갔다.

 

최영 : 우달치 애들 몇 명 보낼 거야. 성가시겠지만 참아라.

더기 : (불퉁해서 끄덕끄덕)

최영 : 그동안 니가 저분.. 지켜줘야겠다.

더기 : (싫은 얼굴로 노려보는)

최영 : 지켜줘. 내가 지켜주기로 약속한 분이야.

 

더기. 기분 안 좋아서 한번 끄덕이더니 간다.

최영이 후우 긴 숨을 내쉬고. 배를 누르고 기대섰던 곳에서 몸을 일으키다가 돌아본다.

거기 안채의 창문이 열리면서 은수가 밖을 내다본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고 이리저리. 계속 떡을 먹고 있는데.

그러다 목이 막혔는지 캑캑거리며 가슴을 친다.

돌아서다가 뭔가에 걸렸는지 넘어질 뻔 하는 은수.

최영. 혀를 차는 기분이 돼서 본다.

징징대는 은수의 소리가 들리며 최영이 가만히 은수를 보고 있다. 잠시 언제나 팽팽하던 긴장을 잊고.

 

 

#54. 선인전(편전) 근처 으슥한 곳

 

천을 들어내면서 보이는 상처부근. (벽에 기대 선 최영이 상의를 걷고 배에 감은 붕대용 천을 열고 있다.)

봉합이 되어있는 실이 아직 그대로 보이는데. 상처의 부근이 곪아가고 있다.

그 때 들리는 소리.

 

대만소리 : 대장. 대장.

 

최영. 얼른 겉옷을 여민다.

으슥한 곳으로 들어선 대만.

 

대만 : 전하께서 부르십니다.

 

하다가 문득 최영의 앞의 땅에 흩뿌려진 피 한모금 분량을 본다.

최영, 무표정하게 걸어 나오며 대만의 머리통을 잡아 밀고 간다.

 

 

#55. 강안전(공민왕 침전)

 

최영이 들어선다.

방 중앙에 서 있는 공민왕에게 내시들이 용포를 입히고 있다. (원나라식)

공민왕의 옆에는 분을 못 이기고 오락가락하고 있는 일신.

환관인 안도치(내시감)가 명단의 이름을 읽고 있다.

 

안도치 : 문하시랑 도목 안정수. 어사대부 강희 장득영. 국자박사 대암 이세달.

일신 : (울분에 차서) 그들이 다 죽었단 말인가. 한날한시에?

안도치 : 예. 한날 한시에 선혜정에서 극독에 중독이 되어. 스물네분 모두...

일신 : 전하 들으셨습니까? 도목. 강희. 대암…. 그들이 누굽니까? 

        하나같이 고려 왕실에 충성하며 원에 대항하던 자들입니다. 전하의 중신이 될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누가 죽였는가. 오늘 전하께 이토록 패역을 저지르고 있는 바로 그자입니다.

공민 : (말없이 서 있는. 생각 중이다)

일신 : 우달치. 그대는 당장 금군을 죄다 이끌고 기철의 집으로 쳐들어가라. 항거하는 자들은 죄다 죽여도 좋다.

         그 자리에 참여한 것들은 모조리 기철의 하수인들이니 한 놈도 살려둘 필요가 없느니라.

 

최영. 말없이 서서 공민왕을 바라보고 있다.

 

일신 : 어째 대답이 없어. 우달치 니놈도 기철의 한패인 것인가? 그래?

공민 : (최영에게) 가능한가요?

최영 : 불가능합니다.

일신 : 어째? 전하. 우달치 이놈이….

공민 : (손을 들어 일신의 입을 다물게 하는)

최영 : 황궁을 호위하는 응양군 일천 명. 용호군 이천 명은 상장군의 명을 받습니다.

         저도 방금 들었습니다만. 그 상장군이 지금 부원군 집에 가 있다 합니다.

         참리께서 방금 말씀하셨잖습니까. 그 자리에 참석한 것들은 모조리 기철의 하수인들이다….

일신 : 이군이 안 되면 육위의 군사를 죄다 불러오면 될 것이 아닌가.

최영 : 부원군의 사병은 수천에 이릅니다. 육위의 군사가 도달하기 전에 그 사병들이 황궁을 포위할 게 뻔합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일신을 보며) 여기 계신 참리의 목을 원할 것입니다. 그래도 해볼까요?

일신 : 어허어…. (저도 모르게 자기 목을 만지며 기가 찬데)

공민 : 기철이란 자가 나에게 충성할 자들을 미리 다 죽였답니다. 그럴 수 있을까요?

최영 : 그럴 수..는 있겠으나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일신 : 전하. 칼이나 쓰는 이런 놈에게 무슨 상의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저를 보아주십시오. 제가 누굽니까. 

        원에서 십년. 전하의 곁을 지키며 오늘날 전하를 이곳으로 모셔온 일신이옵니다.

공민 : (일신을 보며) 지금 이 하늘 아래. 내가 진정 믿을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 뿐이오.

일신 : (자기를 칭하는 줄 알고 미소가 활짝 피는데)

공민 : (최영을 보며) 대장. 그대뿐이야. 그대는 이미 목숨으로 그것을 증명해주었어요.

         어명이라 했더니 제 목숨을 내놓아 받아주지 않았소.

 

일신은 비틀하는 마음이고.

최영은 난처한 기분으로 공민을 본다. 뭔가 무지 귀찮은 일에 휘말릴 거 같은 불안함으로.

 

공민 : 이제부터는 최영, 그대를 내 믿을 수 있는 벗으로 대할 것이야. 그대도 나를 그리 대해주겠는가.

최영 : (한숨을 쉬고. 생각을 해보더니 문득 품을 뒤져 봉서를 하나 꺼내 내용을 펴서 두 손으로 바친다)

공민 : (무언가 해서 받아 펼쳐보는) 무엇인가.

최영 : 선왕이신 경창부원군께 받은 것입니다. 원에서부터 전하를 모시고 오는 것이 저의 마지막 임무라는 것.

        전하를 무사히 개경으로 모시고 오면 우달치 직을 사임하고 궁을 나가 평민으로 살아도 좋다는 허가서입니다.

        거기.. 경창부원군 마마의 낙관도 찍혀 있는데 보이시지요?

공민 : (굳어서 보는)

최영 : 이제 전하께서 궁에 드셨으니 소신의 마지막 임무는 끝이 났습니다. 떠나는 것을 허하여 주십시오.

공민 : 이런 곳에.. 이런 때에 나 혼자 남겨놓고 나가겠다고?

최영 : 전하.

공민 : 나를 버리겠다고?

최영 : 윤허하여 주십시오. (고개를 숙인다)

 

 

#56. 선혜정 외부

 

우달치대원 몇이 오가는 것이 보인다.

 

 

#57. 선혜정 내부

 

이미 시체들은 다 치워진 상태.

사건 당시의 정황을 말해주는 듯. 집기들이 이리저리 넘어지고 흩어져 있고. 

바닥에는 토해냈던 혈흔들이 아직 남아있다.

최영의 부하 무사들이 헤집고 다니며 뭔가를 찾고 있다.

충석도 발로 뒤적뒤적 뭔가를 뒤지다가 돌아보는 곳. 거기 최영이 벽에 기대 앉아있다.

최영은 눈을 감고 있는데 고개가 옆으로 꺾이는 모양이 졸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

그 위로 들리는 공민의 소리

 

공민소리 : 한가지 더.

 

 

#58. 회상 / 강안전 (공민왕 침전)

 

아까의 장면 계속.

마주 선 공민과 최영.

 

공민 : 내가 주는 임무를 하나 더 완수하면 (손에 든 허가서를 흔들어보이며) 그때 가서 이것을 생각해보지.

최영 : 전하. 그게 선왕이신 경창 부원군께서..

공민 : 그대는 지금 선왕과 현왕. 누구의 명을 따르겠다는 건가.

최영 : (할 수 없이 입 다무는)

공민 : 증거를 찾아오세요. 선혜정에서 독살당한 중신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리하였는지. 증거를 찾아와요.

         내가 누구와 왜 싸워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줘요. 그게 현 왕인 내가 내리는 임무입니다.

 

 

#59. 선혜정 내부

 

조는 듯 앉아있는 최영의 옆으로 다가 서는 충석.

 

충석 :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최영 : 몰라.

충석 : 정확하게 뭘 찾는 건지 알려주시면 우리가 찾겠습니다. 

        대장은 제발 좀 들어가십쇼. 우리 장어의든 하늘에서 오신 분이든 만나서 좀 봐 달라 하시고….

최영 : 하지 마.

충석 : 예?

최영 : 크게 말하지 말라고. 머리가 울려.

 

충석 답답한데. 저기서 무사 중 하나가 소리 지른다.

 

무사 : 여기요.

 

최영이 끄응 일어나 소리 난 곳으로 간다.

무사가 가리킨 곳은 돌바닥. 무늬가 이어지는 돌 타일로 만들어진 바닥.

그런데 그 중의 한 타일이 무늬가 어긋나 있다.

최영이 끄덕이자 무사가 단도로 타일 가장자리를 집어 들어낸다.

모여서 보던 무사들이 감탄의 소리. 그 타일 아래에 깔려있던 종이.

겉으로 보기에는 2부에서 중신들이 받았던 밀지와 같은 모양과 색깔. 겉에는 피가 묻어있다.

무사가 재빨리 집어서 최영에게 내민다. 최영이 펼쳐 본다.

밀지 안에는 두 줄의 한시가 적혀져 있다. (2부에서 중신들이 받았던 것과는 다른 내용임)

江 陵 位 亡 日氐求 日 立 大 義

 

충석 : (흥분해서) 찾았습니다. 증거입니다.

최영 : 어째서.

충석 : 여기서 독에 당해 죽어가던 자가 감춘 거잖습니까.

         보십시오. 여기 혈흔.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자가 감추었으니까… 그게 증거니까….

최영 : 무엇의 증거.

충석 : 그게… 그러니까…. (모르겠다)

 

말없이 글자를 내려다보던 최영. 밀지를 품에 넣으며.

 

최영 : 모두 이동한다.

충석 : (반색하여) 궁으로 돌아갑니까?

최영 : 아니. 잔칫집에 간다.

 

 

#60. 기철 집 중앙 마당

 

음악이 울려 퍼지며 거나하게 취한 자들. 각각의 관복을 입은 중신들이다. (원나라 복장과 고려 복장이 혼재해있는)

연주하는 자들. 음식을 나르는 자들이 어지럽다.

상석에 앉은 기원과 기원의 옆에 앉은 부인이 안고 있는 어린 아이. 그 앞에 쌓여있는 선물더미.

그 한쪽에 기대앉은 기철. 뭔가 아부를 하는 이들을 지겨운 듯 보고 있는데.

양사가 종종 다가온다. 기철의 귓가에 뭔가를 이른다.

기철의 입가에 냉랭한 미소가 감돈다.

기철이 돌아보는 곳. 입구 쪽이 술렁이며 사람들이 갈라선다.

사람들 뒤로 모습이 드러나는 입구 쪽.

거기 최영이 양쪽으로 충석과 대만을 거느리고 뒤에도 부하들 몇을 거느리고 서 있다.

최영, 시끄러운 잔치소리 속에서 묵묵히 서있다.

이윽고 음악소리가 서서히 잦아들며 사방이 조용해진다.

기원이 당황해서 기철 쪽을 돌아본다. 어찌할까 하고….

그러나 기철은 흥미로운 듯 최영을 구경하고만 있다.

그저 조용히 서 있는 최영. 충석이 힐끗 최영을 돌아본다.

최영은 묵묵히 서있는데. 입술이 꺼멓게 열로 타들어가 있다.

충석 고개를 들더니 심호흡을 하여 뱃심을 모아.

 

충석 : 덕성부원군 기철. 어명을 받드시오.

 

사람들이 분분이 고개를 돌려 기철의 기색을 살핀다.

기철이 천천히 일어서더니 앞으로 나선다. 부드러운 미소.

 

기철 : 이 자리에 모이신 중신들. 들으시었습니까?

         우리의 전하께서 원에서 이곳까지 멀고도 먼 길. 여장을 푸시기도 전에

         기씨 집안의 경사에 축하를 보내시었습니다.

 

조용하던 중에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오오…. 박수소리가 커지고 억지 웃음소리도 커진다.

충석이 당황해서 최영을 돌아본다.

기철이 손을 들어 조용하게 하더니.

 

기철 : 그래…. 전하께서 하사하신 선물은 무엇이오. 참으로 궁금하여 기다리기가 어렵소이다.

 

최영이 앞으로 걸어간다. 중앙에 서더니 우뚝 멈춘다. 기철을 본다.

최영의 시각으로 보이는 기철. 잠깐 초점을 잃고 흐려졌다가 겨우 다시 보인다.

 

최영 : (온화하게) 덕성부원군 나리.

기철 : (미소) 듣고 있네.

최영 : 장내가 소란하여 잘 듣지 못하셨나봅니다. 방금 받드시라 한 것은 어명입니다.

         십년 만에 이 나라 고국에 돌아오신 전하께서 가장 먼저 내리신 왕지. 왕의 뜻입니다.

         (따박따박 점점 강하게) 그러니 전하를 친히 뵈어 모시듯, 무릎을 꿇고, 땅을 짚어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춰 받드셔야 할 것이외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 속에.

최영이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더니 두 손에 받들어 들고는.

 

최영 : 덕성부원군 기철.

 

최영이 기철을 본다. 재미있다는 듯 최영을 보고 있는 기철.

최영이 스윽 주위를 둘러본다. 모두가 차갑게 보고 있다.

그들 뒤로 기철의 사병들이 둘러싸며 자리를 잡고 있다.

최영의 뒤에서 충석과 대만 등. 무사들도 검 손잡이를 잡아 발검 자세를 갖춘다.

대만이 팔목에서 손칼이 반쯤 나오고 있다.

최영이 두루마리를 든 채. 기철에게 좀 더 다가선다.

기철 옆으로 양사와 기원이 바싹 다가서며 경계한다.

 

최영 : (낮게) 그런데 말입니다. 보아하니 이 댁에 경사가 있는 모양인데

         골치 아픈 어명은 어디 조용한 곳에서 전해드리면 안되겠습니까?

 

기철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최영도 시익 웃는다.

기철이 기어코 소리를 내어 웃기 시작한다.

최영도 소리 내어 웃으며 두루마리를 도로 품에 넣는다.

웃으며 기철을 보는 최영의 시선이 또 잠시 흐려졌다가 돌아온다.

 

 

#61. 전의시 내부

 

오가던 의생이며 의원들이 수군거리며 보는 곳.

거기 은수가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다. 아직도 입고 있는 양장 옷, 원나라 신발.

그런데 양장 바지는 무릎 위쪽에서 잘라버려서 종아리며 허벅지 일부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은수가 지저분한 아래 부분을 잘라버린 것.

이만치서 수군거리던 두명의 의생이 놀라 본다.

은수가 똑바로 자기들에게 온다.

 

은수 : 안녕하세요.

 

의생들 황급히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

 

은수 : 사람을 좀 찾는데요. 우달치란 자가 어디 있는지 혹시 아세요?

 

의생1은 말을 하려다가 수줍어서 못하고.

의생2가 용기를 내어.

 

의생2 : 우달치가 사람 이름이 아니옵구요. 전하를 지키는 숙위군인데….

은수 : 에? 그래요? 우달치, 우달치 불러대던데. 하아. 그럼 이 인간을 어디 가서 찾나.

의생1 : 저어기….

은수 : 저기?

의생1 : (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키며) 저쪽에 우달치 숙소가….

 

 

#62. 병영 장교 홀

 

충석 : 참말로 십년감수했습니다. 대체 그놈의 두루마리는 어디서 난겁니까?

         부원군 집에 가라는 어명 같은 건 받은 바가 없잖습니까.

 

충석. 대만. 그 외 몇몇 장교급 인사들이 이리저리 자유롭게 앉고 서서 쉬는 중이다.

최영은 눈감고 늘어져 누워 있다가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더니 휙 던져준다.

충석이 받아서 펼쳐본다. 안에는 이름과 직위들이 주욱 쓰여 있다. 아까 안도치가 읽던 명단이다.

 

충석 : 뭡니까 이게.

최영 : 정자에서 독살당해 죽은 자들 명단.

충석 : 이걸… 부원군 그 자에게 보여준 겁니까?

최영 : 아니. 보여준 건 다른 거. 미끼.

 

 

#63. 회상 / 기철의 서재

 

탁자에 펼쳐놓는 것. 돌 타일 아래서 건진 밀지다. 열 글자의 시.

들여다보는 기철. 그 옆에 양사. 그 앞에 최영.

 

기철 : 이것이….

최영 : 선혜정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기철 : 오호….

최영 : 제가 학문에 어두워 무슨 뜻인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해서 부원군 나리의 지혜를 구하고자 찾아왔습니다.

기철 : 나의 지혜를….

최영 : 그것이 어명이셨습니다. 덕성부원군 기철은 우달치 중랑장. 최영을 도와 이번 사건의 전모를 밝히라.

 

최영을 살펴보는 기철의 흥미로운 눈길.

 

최영 : 어뜩게.. 사본이라도 베껴 놓으시겠습니까? 그래야 연구를 하지요.

 

 

#64. 병영 장교 홀

 

충석 : 그러니까 그 덕성부원군이 붕어인 겁니까?

최영 : 몰라.

충석 : 미끼를 물어 줄까요?

최영 : 모른다고.

충석 : 만약 아무 반응이 없으면..

 

하는데 갑자기 일어나 앉은 최영이 충석을 발로 차서 쫓는다.

 

최영 : 잠 좀 자자. 나가. 다 나가.

 

옆에 놓여있던 방패를 들어 냅다 던진다.

회전을 하며 날아오는 방패를 피하느라고 부하 몇이 기겁을 하고 몸을 날리고 소란을 피며 문 쪽으로 도망친다.

가장 먼저 문에 도달했던 대만이 밖의 소리에 쫑긋.

 

대만 : 밖에 뭔 일 났나본데요.

 

그제서야 들리는 밖의 소란스러운 소리. 사내들이 야유하는 소리. 좋다고 낄낄대는 소리가 들린다.

뭐야 이건….

 

 

#65. 병영 마당

 

병영 숙소가 난리가 났다. 이층에도 병사들이 우르르 나와서 난간에 매달려 휘파람을 불어댄다.

문을 박차고 자던 놈도 뛰어나온다.

그들이 보는 아래. 은수가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다.

주변에 병사들도 헤에… 구경하는데.

그들의 시선은 훤하게 드러난 은수의 종아리에 가있다.

은수가 마당 중앙에 딱 선다.

거기 상체를 벗고 있던 병사 하나가 은수의 시선을 받고는 저도 모르게 옆의 물바가지를 들어 가슴을 가린다.

 

은수 : 여기가 우달치 숙소에요?

병사 : (얼어서 끄덕끄덕)

은수 : 대장 어디 있어요? 당신들 대장.

 

병사가 손을 들어 가리킨다. 거기 있는 중앙 장교 홀.

마침 문이 열리더니 내다보는 충석. 은수를 보고는 입이 딱 벌어진다.

은수는 반가워서 그리로 가면서.

 

은수 : 여기 왜 이렇게 넓어요. 한 시간은 열라 헤매 다녔네. 진짜.

 

놀라 서있는 충석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며.

 

은수 : 안에 있죠? 내 환자.

 

 

#66. 병영 장교 홀

 

최영이 어이없어 일어서며 본다.

들어서는 은수. 최영을 보더니 다짜고짜.

 

은수 : 거기. 앉아 봐요.

 

다가서며 메고 온 가방에서 붕대용 흰 천 두루마리 등을 꺼내며.

 

은수 : 내가 인턴에 레지던트에 그 개고생을 할 때 딱 한 가지 좋았던 게 뭐냐 하면요.

         모든 환자는 다 지 발로 찾아온다는 거죠. 내가 찾아다니는 게 아니고. 앉으라구요.

 

최영이 상체를 기웃해서 은수의 하반신을 살핀다. 드러난 다리.

 

은수 : 윗옷 좀 벗어주시구요.

 

입구에는 어느새 구경하러 고개를 들이민 병사들 우르르. 모두 입이 헤 벌어져서 보고 있다.

 

은수 : 안 들려요? 옷 벗으시라구. 청진기는 없지만 타진이라도 좀 해봐야 겠어요. 수술 부위도 다시 봐야겠고.

         열은 어때요. 손 줘 봐요.

 

하며 최영의 손목을 잡으려는데. 최영이 스륵 피한다.

 

은수 : (어이없어서) 손을 잡겠다는 게 아니구. 맥 좀 재보겠다구요. 손 안 잡아. 걱정 말고. (손을 내민다)

 

그런데 최영은 슬쩍 뒤로 물러서며 부하들에게.

 

최영 : 오늘 보초 누구야. 아무나 들고 나는 데야 여기가?

 

은수. 최영의 얼굴을 살핀다. 열에 바싹 타오른 입술.

 

은수 : 손목 좀 달라고.

최영 : (옆의 부하에게) 이 분. 전의시에 모셔드려.

 

돌아서 계단 쪽으로 간다.

은수 노려보고 있다.

은수의 옆으로 와 서는 부하. 우물쭈물….

 

부하 : 가십시오. (하는데)

 

순간 은수가 집어던진 붕대말이가 최영의 뒤통수로 날아간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젖혀 피하는 최영.

 

은수 : (버럭)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최영, 멈춰 돌아본다.

 

은수 : (부들부들 떨리게 화가 나서 최영에게)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 니가 잡아왔잖아.

        나, 작년에 겨우 열다섯 평짜리 내 오피스텔 샀어. 그거 아직 대출 한참 남았지만. 그래도 내 집이라구.

       (점점 울음이 북받치면서) 나 지금 내 집에 가서 내 욕실에서 샤워하구. 내 잠옷 입구. 내 침대에서 자구 싶다구.

        근데 니가 잡아왔잖아. (이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다) 밥도 제대로 안 주고..

 

최영 어이없어 보고 있고.

다른 이들도 모두 놀라서 굳어 보는 앞에서 은수가 엉엉 울며 말하고 있다.

 

은수 : 꿈인 줄 알았는데 암만 자구 깨도 아니구. 그럼 내가 진짜 사람 찌른 건데….

        치료해주겠다는데. 건드리지두 못하게 하구. 나보구 어쩌라구.

        그래 내가 당신 찔렀어. 미안하다구. 미안하니까 제발 치료 좀 받으라구우….

 

하며 우는 은수.

그런 은수를 보던 최영이 갑자기 은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양 어깨를 잡아 민다.

어어 밀리다가 뒤의 기둥에 막혀 서는 은수.

그 은수를 보는 최영의 얼굴은 진짜로 울컥 성이 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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