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SBS대본

[신의] 09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3.02.21|조회수770 목록 댓글 0

[신의] 09

 

 

 

 

 

 

 

 

 

 

#1. 선인전 (편전)

 

공민 : 지난 십년, 떠나 있어 알지 못했던 내 나라 고려의 실상을 은밀히 조사시키고 처리해 왔는 바.

         그 임무를 시행해온 자들에게 그에 걸맞는 포상을 내리고자 합니다. 그들을 들게 하라.

 

대전 뒤의 문이 활짝 열린다. 모두 뒤를 돌아본다.

기철과 은수도 돌아본다.

활짝 열린 문 뒤로 주욱 뻗은 회랑. 그 회랑의 저 끝에서 그들이 오고 있다.

맨 앞에 최영이 서고. 그 양 옆을 충석과 주석이 모시고.

그들 뒤로 우달치의 대원들이 정규제복을 깔끔하고 위용있게 차려입고 저벅저벅 발을 맞춰 걸어온다.

놀란 은수가 그들을 본다.

최영과 그 부하들이 다가오고 있다. 점점 더 가까이.. 가까이..

// 훈련을 잘 받은 군대의 느낌으로 정연하게 대전 입구 앞까지 오더니 최영을 필두로 일제히 멈춰 선다.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군모를 벗더니 똑같은 동작으로 옆구리에 낀다.

최영의 시선이 잠깐 은수에게 간다.

그 시선을 받은 은수, 저도 모르게 한걸음 나서려는데 옆의 기철이 부드럽게 은수의 어깨를 감싸 멈추게 한다.

최영의 시선이 스치듯 공민에게 간다.

최영과 충석, 주석이 안으로 들어선다.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대기.

그런 최영을 보고 있는 은수.

최영은 은수 쪽은 눈길도 돌리지 않고 똑바로 공민을 보며 걸어온다.

최영이 은수의 앞을 지나간다. 애타는 은수의 시선에도 최영은 결코 돌아보지 않는다.

은수의 앞을 지나간 최영이 멈춘다. 최영이 한 무릎을 꿇어 고개를 숙인다.

양 옆. 한걸음 뒤의 충석과 주석도 똑같이.

 

최영 : 우달치 최영과 그 대원들, 전하의 부름 받잡고 도착하였습니다.

 

공민이 그들을 본다. 이제야 안심되는 기분을 애써 감추는 중.

 

공민 : 그간 노고가 많았어요.

 

더 말하려는데 앞으로 달려와 부복하며 소리 지르는 자운.

 

자운 : 주상 전하아. 저 자는 전하를 대적하여 역모를 꾸민 자이며 선왕을 참살한 자입니다.

         당장 능지처참을 하여도 부족한 놈인데 어찌 감히 이곳 대전에..

공민 : 어느 쪽입니까? 우달치 최영이 선왕과 손을 잡고 나를 대적했다는 겁니까.

         아니면 나를 대적하려는 선왕을 죽였다는 겁니까.

자운 : (얼핏 말을 못하는데)

공민 : (모두를 둘러보며) 중랑장 최영이 그간 해온 모든 언행은 하나하나 과인이 시켜 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자운을 보는) 과인이 과인에게 역모를 했단 얘깁니까?

 

자운이 당황해서 기철을 돌아본다.

기철이 싸느랗게 미소 지으며 공민을 보고 있다.

 

공민 : 오해를 사고 누명을 써 옥고를 치르기를 무릅쓰며, 암중에 진행되던 역모의 싹을 뿌리 뽑고,

         (기철을 보며) 그 모든 사악한 계책의 배후를 밝혀내온 (최영을 향해) 정5품 중랑장 최영.

 

기철의 미소가 사라진다.

 

공민 : 그대를 종4품에 임명하며, 예하 우달치 부대에는 다음과 같은 특권을 내린다.

        금후 우달치 부대는 과인을 제외한 그 누구에 의해서도 무장해제되거나 

        하달복명, 존치해산, 군정간섭하지 못한다. 이는.. 고려의 왕. 나의 명이다.

 

최영 이하 우달치 대원들이 안팎에서 일제히 우렁차게 대답한다.

 

우달치들 : 명 받듭니다.

 

대신들 모두 할말을 잃고 그 중에 일부는 힐끔거리며 기철의 눈치를 본다.

기철은 말없이 공민을 보고 있다.

공민은 최영을 보고 있다. 고개를 든 최영이 공민을 향해 싱긋 웃는다.

그제서야 공민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오른다.

 

 

#2. 기철의 집 대문 앞

 

가리개 있는 원나라 모자를 써서 얼굴을 가린 여인 하나가 종종 걸음으로 도착한다.

보초를 서던 자들이 막아서자 얼굴 가리개를 슬쩍 젖혀 보인다. 장희다.

보초들이 그 얼굴을 알아보고 얼른 문을 열어준다.

 

장희소리 : 간밤에 전하께서 곤성전에 들르셨습니다.

 

 

#3. 기철의 서재

 

기철이 보고를 받는 중. 양 옆에 양사와 기원. 그리고 창가에 걸터앉은 천음자.

기철의 앞에서 보고하는 장희.

 

장희 : 고려의 왕비 복식을 아예 들고 오셨습니다.

양사 : 그래서 왕비께선 뭐라 하시드냐. 

        원나라에서 나신 왕비마마가 고려 옷을 그냥 좋다고 받진 않았을 거 아니냐.

기원 : 전하하고 두분 사이가 별로라고 소문이 파다하던데. 원나라에서부터 그런 원수가 따로 없다며.

장희 : 그냥 받으셨습니다.

기원 : 그냥 받다니..

장희 : 그냥.. 아무 말없이 받으시던걸요.

양사 : 니년이 몰라서 그렇지 둘 사이에 뭔가 협박이나 거래가 오고 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기철 : (자르며) 주상의 교지가 내려진 것이 새벽이라 했느냐.

장희 : 그리 들었습니다.

 

 

#4. 전법옥 앞 / 새벽

 

옥을 지키던 군졸들이 놀라서 본다.

안도치가 교지를 받쳐 들고 오고 있다. 안도치의 뒤로 몇몇 내관이 따른다.

 

장희소리 : 동트자마자 언부에 교지가 전달되었다 합니다.

 

 

#5. 전법옥 내부

 

최영이 무릎을 꿇어 교지를 듣고 있다. 그 앞에 안도치가 어명을 전하고 있다.

 

안도치 : 어명으로 우달치 중랑장 최영에게 이르니 즉시 거행하라.

 

 

#6. 우달치 병영 내부 / 새벽

 

충석을 필두로 해서 병영 뜰 가운데 도열해 있는 대원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대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린다.

열린 대문으로 잠시 빈 공간만 보이더니 들어서는 최영. 그 뒤로 함께 들어서는 대만과 주석.

대장.. 소리를 지르며 최영에게로 몰려드는 대원들.

충석은 위치상 달려들진 못하고 좋아서 헤에 보다가 표정관리를 하고.

덕만은 바로 대만의 목을 휘어잡고 좋다고.

그 뒤, 대문으로 들어오는 커다란 수레 몇 개. 수레에는 대원들의 갑옷이며 무기들이 가득 실려 있다.

신이 나서 달려들어 자기의 무기를 고르는 대원들. 그런 몽따쥬 위로.

 

기철소리 : 우달치 병영의 금줄을 끊어 문을 열고, 압수했던 무기를 돌려주고.

           이 모든 게 새벽 동틀 무렵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는 말이겠다.

 

 

#7. 기철의 서재

 

기철이 생각에 잠겨서 혼잣말처럼 정리해보고 있다.

 

기철 : 최영 그 자가 탈옥해서 주상을 만난 것이 어제 오후였어. 하루 밤 사이에 이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하루 밤 사이에 변발을 풀고 호복을 벗어 던지고 우달치부대를 불러들이는 용기를 내었다? 

        그 어린 왕이?

기원 : 아무래도 배후 세력이 있을까요? 에이 설마 감히 누가 형님을 대적해서..

양사 : 정동행성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원나라 쪽에는 어찌 해명하실 것인지요.

         원의 보호 아래 있는 소국의 왕이 조정 대신들 다 보는 앞에서 호복을 벗어던졌으니..

기철 : (아직도 혼자 생각에 잠겨) 주상이 가진 힘이라고 해봐야 최영의 우달치 백명 뿐이야.

         조정대신들은 다 나의 사람들이고. 개경과 궁을 지키는 이군. 응양군과 용호군도 내 아래 있어.

기원 : 뿐입니까. 의선도 이제 형님의 사람이잖아요.

 

양사, 그 말에 기분이 나빠서 기원을 흘겨보는데.

기원은 은수의 화제에 헤벌레해져서.

 

기원 : 오늘 조례에 형님하고 의선, 두 분이 나란히 들어오는 모습을 보구 대신들이 다 넋이 나갔었다면서요.

         히야. 천상신선도가 따로 있겠습니까. 두분이 바로 그림이시지.

 

그제서야 생각에서 빠져나와 기원을 보는 기철.

 

기원 : 그나저나 의선의 마음을 어찌 잡으신 겁니까. 하늘에서 오신 분의 마음인데.. 히야아..

 

기철이 그 말에 창가 쪽의 천음자를 돌아본다.

천음자가 그 시선을 받고는 슬쩍 미소가 스친다.

 

 

#8. 회상. 은수의 별채 / 밤

 

밤이라 방의 곳곳에 불이 밝혀져 있고. 새장 속의 새 한 마리가 푸드득거리고 있다.

방의 한쪽에 선 천음자가 옆에 선 은수에게 말하고 있다.

 

천음자소리 : 절대 내 앞으로 나서면 안됩니다.

은수 : 왜요.

 

천음자 별로 대답할 생각은 없다.

은수의 앞으로 한걸음 나서더니 피리를 입에 대고 분다. 스읏 소리가 날 뿐 연주 소리는 안 난다.

연주를 기다리다가 은수가 묻는다.

 

은수 : 피리 불 줄 아는 거 맞아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 곳곳의 호롱불들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그러다가 저쪽의 테이블에 놓여있던 잔이며 자기 주전자들이 파박 파박 폭발하듯 깨진다.

은수가 어머나. 해서 보다가 후다닥 앞으로 나선다.

천음자가 놀라 피리를 급히 멈추느라고 진기가 역류해 휘청이며 기침을 한다.

은수가 겁도 없이 깨진 잔들 쪽으로 다가서서 탁자의 위 아래를 살피며.

 

은수 : 어떻게 한 거에요?

 

천음자가 손을 들어 한 쪽을 가리킨다. 그 쪽에 새장이 있다.

그게 뭐.. 해서 다가서 보던 은수가 굳는다. 새장 안의 새가 죽어있다.

 

은수 : 이 새. 설마.. 죽은 거에요? (아. 해서) 이것도 마술? 짠 하면 다시 살아나죠? 

        (억지로 웃으며 본다. 그러기를 믿고 있는)

천음자 : 살리는 건 못합니다.

은수 : 마술.. 이잖아요.

천음자 : 음공입니다.

은수 : 그게 뭔데.

천음자 : 소리로 사람을 죽입니다. 사람만 죽으면 좋은데. 새도 죽고 고양이도 죽어서요.

 

은수 멍하니 보는데 조금씩 이해가 된다. 천음자가 들고 있는 피리를 본다.

 

은수 : 그 피리로 소리를 내서 이 새를 죽였다구요?

천음자 : 이제 겨우 소리를 앞으로만 보낼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에 있는 것들만 죽이죠.

            전에는 그게 안되서 주위에 있는 것들은 다..

은수 : 피리로 사람을 죽여요?

천음자 : (무심하니) 예.

은수 : 이 집에 그 여자는 손에서 불을 내갖구 사람을 죽이고?

천음자 : 사저가 쓰는 건 화공입니다.

은수 : (죽어있는 새를 다시 돌아보는) 이 새.. 내가 이름도 붙여줬는데 해피라고..

         좀 강아지 이름 같지만.. 그래도 우리 같이 행복하자고. 해피라고.. (이씨.. 울먹해지는데)

천음자 : 감옥에 갇혀 있는 자라면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아무리 무공이 강하다 해도.

은수 : (후딱 돌아보는) 감옥?

천음자 : 오늘 밤. 그 자에게 가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은수 : 그 자면.. 최영.. 그 사람.

천음자 : 가기 전에 의선께 여쭈라 했습니다. 그 자. 죽일까요. 살려둘까요.

은수 : 내가.. 그니까 나한테.. (마른 침을 겨우 삼키고) 내가 살려두라면.. 살려줘요?

천음자 : 아니요. 반대입니다. 의선께서 살리라 하면 죽이고. 죽이라 하면 살려두라고.

 

 

#9. 회상 기철의 서재 / 밤

 

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서는 은수. 기철이 탁자에서 서찰을 쓰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본다.

은수 거침없이 다가와 기철의 탁자에 두 손을 짚더니.

 

은수 : 장난해요?

 

은수의 뒤로 천음자가 난처한 듯 따라 들어온다.

 

기철 : 야심한 시각에 어찌..

은수 : 야심한 시각에 장난치시냐고. 댁이 무슨 대법 판사야? 

        우리 지금 망나니 놀이해요? 칼 들고 물 뿌리면서 춤 춰야 돼?

 

기철이 천음자를 본다.

천음자. 난처해서 시선을 피하더니 딴 데를 본다.

 

은수 : 그리고 이건 또 뭐하자는 플레인데. 내가 살리라고 하면 죽이고 죽이라고 하면 살려?

         우리말로 해봐요. 내가 좀 알아듣게.

기철 : 의선.

은수 : 듣고 있어요. (탁자에 삐딱하게 기대며) 말씀 하시라고.

기철 : 계속 말했잖습니까. 의선의 마음. 내게 줄거냐.

         의선의 마음이 내게 있다면 그런 자는 죽든가 말든가 상관없어야 하는데. 상관.. 있습니까?

은수 : (말이 막혀 보다가) 지금 협박하는 거에요?

기철 : (미소) 저는 질문을 한 것인데.. 협박으로 들리셨습니까?

 

은수 말없이 기철을 노려본다.

기철이 한쪽을 가리키며.

 

기철 : 의선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저 옷을 입어 달라 청하고자 준비해놓고 있었습니다만..

 

거기 길다란 대나무 옷걸이에 하얀 의상(은수가 궁에 입고 가게 되는)이 널찍하게 걸려있다. 

(어떤 옷인지 알 수 있게)

 

은수 : (똑바로 기철을 보며 낮게) 잘 들어요. 그 사람 최영. 날 여기까지 납치해온 놈이야. 

        죽이든 살리든 내 손으로 해요. 함부로 건드리기만 해봐. 

        하늘의 이름을 걸고 당신. 가만 안 둬. 이게, 협박이란 거야.

 

은수 똑바로 서더니 홱 돌아선다. 곧장 문 쪽으로 가는가 싶더니 멈춘다.

머뭇거리다가 옷걸이 쪽으로 가더니 거칠게 옷을 잡아채 들고는 방을 나간다. 아무래도 그냥 가긴 불안해서.

 

 

#10. 기철의 서재 / 현재 낮

 

은수의 옷이 걸렸던 옷걸이가 빈 채로 거기 있다.

기철이 옷걸이를 보며 혼자 미소 짓다가 일어선다.

기원 등이 기철의 명을 바라며 바라보고 있다.

 

기철 : 원나라 쪽에는 기다리라 해라.

양사 : 기다리라 한다고 그자들이 말을 들을 것이 아닌데..

기철 : (휙 돌아보는)

양사 : (얼른) 말을 듣게 하겠습니다. 무엇을 쥐어주고라도..

기철 : 내가 구경할 것이 있으니 아직. 소리 내지 말고 기다리라고.

 

 

#11. 최영의 방

 

동경에 비치고 있는 최영의 얼굴. 최영이 흩어진 머리칼을 단정하게 뒤로 쓸어넘기고 질끈 동여맨다. 

(이마에 끈을 묶을 수도)

옷깃도 잡아당겨 반듯하게 하고 허리띠도 졸라맨다.

이제까지 대충 너저분하던 모습에서 제대로 된 복장으로 바꾸고 있다.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단속하듯.

마지막으로 검을 꼽던 허리춤으로 손이 가는데. 검이 없어 비어있다.

 

 

#12. 우달치 장교 홀

 

덕만이 충석에게 또 한번 넘겨치기를 당한다.

에이씨.. 하고 일어서서 다시 덤비려다가 보면 모두 계단 쪽을 보고 있다.

덕만도 돌아보니. 거기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최영. 평소와는 다른 단정한 모습에 모두 헤에.. 구경한다.

대만이 재빨리 난간에서 날아 내려와 착지한다.

최영, 거기 무기대에 꼽혀있던 검 중에 하나를 집어들어 허리에 차며.

 

최영 : 전하를 뵈러 간다. 우달치 부대. 바로 근무지로 복귀하게 될 거니까 준비하구 있어.

충석 : 알겠습니다.

 

최영, 문 쪽으로 가다가 돌아보면 어느새 뒤에 붙어 따르는 대만. 한소리 하려다가 단념하고 나간다.

따라 나가는 대만.

 

돌배 : 대장 왜 저래요.

충석 : 뭐가.

돌배 : 머리 묶은 거 봤어요? 꼭 진짜 대장같이 묶었잖아.

 

 

#13. 공민왕 서재

 

최영이 탁자 위의 물건들을 한손으로 쓸어서 치우며.

 

최영 :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궁 안의 청소가 필요할 것입니다.

 

공민과 최영, 최상궁이 얘기 중이다. 공민의 뒤에는 안도치가 배석하고.

 

최상궁 : 좀 더 확실하게 말씀 올리자면 전하 주변에 있는 쥐새끼들을 처리해야 한다.. 는 뜻이옵니다.

 

 

#14. 궁 내부 복도

 

내관이 걸어가고 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종종걸음으로 간다. 그 위로.

 

최상궁소리 : 말 할 줄 아는 쥐새끼들이 가장 많이 서식하는 데가 바로 이곳 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15. 궁 내부 일각

 

내관이 기다리고 있던 일신을 만나고 있다. 은밀히 뭔가를 열심히 아뢰고 있다.

 

최상궁소리 : 전하께 가장 가까운 자들부터 하나씩 그 주변을 정리해 놓으셔야 할 것입니다.

 

 

#16. 궁 내부 복도

 

아까의 내관이 돌아오고 있다.

코너를 돌려는데 대기하고 있던 주석과 돌배가 양쪽에서 내관을 잡는다.

내관이 놀라서 소리 지르려는데 돌배가 팔꿈치로 가슴을 쳐서 숨이 막혀 조용하게 만든다.

 

공민소리 : 조참리는 원에서 10년 내 옆을 지켜온 사람입니다.

               좀 시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함께 지내온 사인데..

 

 

#17. 궁 내부 금군 장교실 앞

 

금군 복장의 병사들이 보초를 서다가 길을 내준다.

일신이 들어서고 있다. 일신 뒤로는 일신의 시종 둘이 상자를 맞들고 따르고.

보초 중에 한명이 일신을 스윽 돌아본다. 그 위로.

 

최상궁소리 : 그 조참리께서 요즘 바쁘게 하시는 일이 있으십니다.

 

 

#18. 장교실 내부

 

금군의 우두머리들이 앉아 있다가 일신을 보고는 일어선다.

그리 달갑지는 않은.. 삐딱한 모양을 보이는 자들도 있다.

 

최상궁소리 : 시방 금군들에게 공들이는 중이지요.

 

일신이 친밀하게 웃으며 자리를 잡아 앉는다. 그를 경계심으로 보는 우두머리들.

 

최상궁소리 : 용호군과 응양군. 그놈들이 시방 기철의 아래에 있기는 한데.

             기철의 사병들에 비하면 병참이고 녹봉이고 언제나 홀대를 받고 있으니까요. 쑤셔볼만 하지요.

 

일신이 신호를 보내자 일신의 시종들이 탁자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뚜껑을 연다.

그 안에 가득한 은표. (원나라 시대의?)

 

 

#19. 공민왕 서재

 

최영 : (최상궁에게) 조참리가 돈이 어디 있어서.

최상궁 : 그러니 무식한 무사 소릴 듣는 겁니다. 

           전하를 따라 귀국하자마자 조참리께서 가장 먼저 틀어쥔 곳이 궁전 창고 열쇠였습니다.

공민 : (최상궁에게) 어찌 그리 아는 게 많은가.

최영 : 궁 안에는 최상궁이 있고, 궁 밖에는 수리방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민 : 수리방.

최영 : 전하께 필요한 집단일 것입니다. 곧 데려오겠습니다.

최상궁 : 와주겠습니까.

최영 : 두들겨 패서라도 잡아 와야지요. (하며 비워진 탁자 위에 벼루 하나를 올려놓으며) 

        먼저 필요한 것은 정보. 그에 따라 (또 하나를 올리며) 사람을 구하고. 

        (다른 뭔가를 올리며) 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선 군사력이 필요한데.

        (다른 뭔가를 올리며) 그러자면 돈이 필요합니다.

최상궁 : 고려의 돈줄은 덕성부원군 집에 있습니다.

공민 : (웃는) 가서 달라면 주겠습니까.

최상궁 : (최영을 툭 치며) 하문하시지 않습니까.

최영 : (긁적거리며) 주지는 않을 거 같고. 뺏자니 우리가 힘이 약하구요.

공민 : 먼저.. 의선을 찾아오고 싶은데.

최영 : (보는)

최상궁 : (최영을 슥 보는)

공민 : 의선을 찾아와야 내가 왕비 앞에 면이 설 거 같아서요. 대장 그대에게도 마찬가지고.

최영 : 내기를 했다 하셨습니까.

공민 : 그랬어요. 일곱날 안에 마음을 먼저 얻는 자가 의선을 가지기로.

최영 : .. 그럼 그 마음 먼저 확인해보겠습니다.

 

 

#20. 궁 회랑

 

나란히 걸어오는 최영과 최상궁. 상궁이 계속 최영을 흘낏거린다.

 

최영 : 왜요.

최상궁 : 왜.

최영 : 뭐가.

 

최상궁이 갑자기 최영을 채잡아 끌더니 옆쪽으로 밀어 넣는다.

 

 

#21. 궁 일각

 

최상궁이 최영을 질질 끌어와서 대충 주저앉히며.

 

최상궁 : 꿈도 꾸지 마.

최영 : 그니까 뭘.

최상궁 : 니 입으로 말했잖아. 궁 안이 모든 소식이 내 손 안에 있다고.

           백주대낮에 맨다리 드러내고 너를 찾아가 울던 분에 대해선 이미 여러군데서 얘기가 들어왔어.

최영 : (어이없어 웃는데)

최상궁 : 의선 그분. 니 놈이 허튼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될 분이야.

최영 : (보다가 어이없다는 듯 그러다 돌아보더니) 왜 안되는데.

최상궁 : 몰라 물어? 기철. 그자가 탐내는 여인이니까.

최영 : 그런데.

최상궁 : 그런 여인을 니 놈이 마음에 둬?

최영 : 내 걱정 마시고...

최상궁 : 니 놈 걱정을 내가 왜 해. 의선, 그분 걱정을 하는 것이야. 기철 그자. 아직 모르냐? 

          이 세상에 갖지 못하는 것이 없어. 왜. 갖지 못할 것은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니까.

          그러니 의선을 살리고 싶으면 감히 눈길도 주지 말고. 이름도 입에 올리지 말고. 생각도..

최영 : 대충 해요. 그런 거 아니니까. 

        단지 내가 모시고 온 분이고 돌려보내 드린다 언약한 분입니다. 그 뿐.

최상궁 : (보다가) 하긴 니 맘에 아직 그 처자가 있으니까.

최영 : (멈칫하는)

최상궁 : 너하구 적월대에 있었다는 애. 니 놈을 칠년 동안 잠만 퍼자게 만든 그 무사계집...

 

최영 벌떡 일어나 몇 걸음 가는데 뒤에서 던져지는 것. 반사적으로 받아서 돌아보면. (최상궁이 던진 목패)

 

최상궁 : 수리방. 그게 있어야 안내를 받을 수 있을게다. 계속 거처를 바꾸는 자들이니까.

 

 

#22. 기철의 정원

 

은수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기철이가 내준 하얗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혼자 생각에 잠겨서 걸어가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멈추고. 다시 돌아서 걸어오다가 멈춘다.

다시 돌아서다가 멈칫. 보는 곳.

거기 정원 구석에 예의 그 꽃이 한무더기 피어있다. 꽃을 보는데.

 

기철소리 :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십니까.

 

흠칫해서 돌아보면 기철이 다가오고 있다.

 

은수 : (얼른 멍했던 표정 관리하고 뚱하니) 남의 생각은 알아서 뭐하시게요.

기철 : 오후 내내 정원에 나와 계신다기에 걱정이 되서 왔습니다.

은수 : 왜요. 도망이라도 칠까봐요?

기철 : 도망칠 생각이십니까?

은수 : 말나온 김에 묻죠. 나 지금 잡혀 있는 거에요? 

        아까 대문 쪽으로 좀 갈려구 그랬더니 이놈 저놈 몽땅 나와서 막던데요?

기철 : 어딜 가고 싶으신데요.

은수 : 이 분이 증말. 사람이 뭘 물어보면 대답 먼저 하셔야죠. 질문엔 질문으로 답한다. 그럼 폼나요?

기철 : 폼..

은수 : 아. 하늘말이 자꾸 나오네. 그래서, 나 이 집 나가도 되요?

기철 : (웃더니) 안됩니다.

은수 : 그럴 줄 알았어. (돌아서 가며 궁시렁) 마음 좋아하네. 사람 잡아 가둬 놓구 마음은 무슨 얼어죽을..

기철 : 거래 좋아하시지요?

은수 : (돌아보는)

기철 : 하늘말로 딜.. 이라 하셨습니까?

 

 

#23. 기철의 서재

 

커다란 탁자 위에 좌르르 펼쳐지는 두루마리. 고려 당시에 제작된 세계 지도이다. (원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지도를 펼친 기철이 건너의 은수를 보며.

 

기철 : 알아보시겠습니까?

은수 : 이거.. 지도에요? (살펴보는데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는)

기철 : 원나라 곧 망한다 하셨습니까?

은수 : 아 ..(그런 말 했던 게 기억났다)

기철 : 언제 어찌 망하는지도 아십니까? 그럼 그 다음엔 어느 나라가 들어서게 되며 얼마나 큰 나라가 되는지.

         이 지도에서 짚어볼 수 있겠습니까?

은수 : (잠시 기철을 보다가) 알면 어쩌시려구요.

기철 : 세상을 바꿔보려구요.

은수 : .. 예?

기철 : 앞날이 어찌 될지 아시는 분의 도움을 받아 정말 좋은 세상을 한번 만들어볼까 하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은수 : 어.. (억지로 웃더니) 제가 사실은 잘 몰라요. 국사나 세계사나.. 제가 잘 모르는 분야고..

기철 : 전에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백성들이 정말 원하는 자를 왕으로 만들어 백성들을 위하는 정치를 하게 한다.

은수 : (난감하다.. 나가고 싶어 문쪽을 보는)

기철 :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은수 : 저기요. 역사란 건 그렇게 막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기철 : 왜요.

은수 : 만약 지금 뭔가 잘못 바꾸면 앞날이 완전 큰일나게 되요. 

        나도 잘은 모르지만 하여간 다들 그렇게 말해요.

기철 : 앞날이 어떻게 됩니까. 우리 고려.

은수 : 고려가 아니구 다른 이름이 되는데.

기철 : (지도를 짚으며) 얼마나 큰 나라가 됩니까.

은수 : 그게.. 지금보다 작아지죠. 그것도 둘로 갈려서..

기철 : 그럼 저에게 가르쳐 주세요. 어느 나라가 망하고 어느 나라가 일어서는지. 

        누구를 얻고 누구를 버려야 하는지. 그럼 제가 우리나라 참으로 힘있고 큰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백성들 세상에 대고 떵떵거리며 살게 할 수 있습니다.

       가르쳐 주세요. 그럼 제가 의선을 가장 높은 곳, 제 옆자리에 앉혀드리겠습니다.

 

은수가 질려서 기철을 본다. 이거 어뜩하지.


 

#24. 기철의 대문 안쪽 마당

 

천음자가 빠르게 걸어 나오다가 멈춰서 본다.

거기 뒷짐을 지고 서서 등을 보이고 있던 최영이 돌아선다. 천음자를 보더니 싱긋 웃고는.

 

최영 : 찾아갈 것이 있어 왔다.

 

천음자가 뭐라 말하려는데 화수인이 냉큼 끼어들며.

 

회수인 : 뭘 찾으러 오셨는데. (하며 최영의 옆으로 붙어선다)

최영 : 자네가 줄 수 있겠나.

화수인 : 말이나 해보라구. (하며 더 친밀하게. 최영의 어깨를 쓰다듬는) 어찌 되나 보게.

 

천음자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 그들을 본다.

 

최영 : (천음자를 돌아보더니) 가서 전해. 내 것. 찾으러 왔다고.

 

 

#25. 기철의 서재

 

은수가 난감해서 보고 있다.

양사가 탁자 위에 종이를 주욱 펴고 문진을 올리고 먹을 준비하고 있다.

옆에서 기철이 적이 흥분해서.

 

기철 : 자아.. 우선 우리 고려의 이야기부터 시작할까요.

      하늘분이니 아시겠지만. 작금 우리 고려의 형편이 아주 안 좋습니다.

      워낙에 기본이 부실한지라 제 생각에는 그냥 원나라에 넘겨 버리는 게 어떨까 싶은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은수 : (한숨이 나온다)

기철 : 원나라가 얼마 못 간다 했나요? 그럼 어디로 넘기는 게 낫겠습니까?

         일단 넘겨버리고 그 다음 그 나라를 가지는 게 더 간단하지 않겠습니까?

은수 : (초조해서 생각해보다가) 만약.. 아니라고 하면요.

기철 : 아니라니 뭐가요.

은수 : 내가.. 하늘에서 온 게 아니고.. 역사도 잘 모르고. 그렇다면요.

기철 : 그럼 저를 농락한 요물이 되시는 거죠.

은수 : (굳는)

기철 : 의선이 아니고.. 요물이십니까? 그럼..

 

문 밖에서 들리는 소리.

 

천음자소리 : 사형. 그 자가 왔습니다.

기철 : (말이 잘려서 확 짜증이 솟구치는)

천음자 : 우달치 대장, 최영이 청할 것이 있다고 하는데요.

 

은수가 후딱 문을 돌아본다.

기철이 그런 은수를 보며.

 

기철 : 저는 많이 서운할 것입니다.

은수 : 만나야겠어요. (문 쪽으로 이동하는데)

기철 : (그 앞을 막아) 태어나서 내 앞에 계시는 하늘의 사람을 만난 것만큼 

        흥미있고 기쁜 일이 저에겐 없었거든요.

은수 : 내가 그 사람. 만나야겠다구요.

 

기철. 그러는 은수를 쯔쯔해서 본다.

 

 

#26. 기철 집 중앙 정원

 

우뚝 서서 기다리고 있는 최영. 문득 느껴지는 것. 천천히 고개 돌려 본다.

거기 나오고 있는 은수. 최영과 눈이 마주치자 멈춰선다.

은수의 옆에 함께 걸어 나온 기철이 미소로 최영을 보며.

 

기철 : 나에게 청할 것이 있다고.

최영 : (시선이 은수를 스쳐 기철에게 멈춘다. 살기가 띄워졌다가 간신이 누르고) 

        제 검을 갖고 계시지요. 찾으러 왔습니다.

기철 : 아아 그거. 그대의 스승이 물려준 검이라 했던가.

최영 : 설마 부원군 나리께서 일개 무관의 검을 탐내실 리는 없고, 

        아마 잊으셨나봅니다. 그 검, 이 집에 있습니다.

 

기철, 웃더니 천음자를 향해 고갯짓을 한다. 천음자가 자리를 뜨고.

묵묵히 서있던 최영. 비로소 고개를 돌려 은수를 본다.

계속 최영을 보고 있던 은수가 최영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런 은수를 눈을 가늘게 뜨고 보고 있는 기철.

은수가 최영의 앞까지 와서 서는 동안 무뚝뚝하게 보고만 있던 최영.

 

최영 : 편안하셨습니까.

은수 : 날.. 만나러 온 거 아니에요?

최영 : 제 검을 찾으러 왔습니다.

은수 : 우리 얘기 좀 해요. 나 묻고 싶은 것도 많고.. 그리구..

최영 : 부원군 나리와 함께 대전에 나오신 것은 그 마음. 이 집에 두기로 하신 것.

         전하께서는 그리 알고 계십니다. ..그러십니까?

 

은수 잠시 말없이 최영을 본다.

기철이 이쪽을 보고 있다. 최영은 조용히 은수를 보고 있고.

 

은수 : 내가.. 이 집에 갇혀 있는 거고. 정말 나가고 싶으니까 데리고 나가달라 하면. 

        당신 또 싸울 거죠? 피 흘리면서.

최영 : (멈칫하는 기분이 되어 보는)

은수 : 난 잘 있어요. 이 집 주인. 나한테 함부로 못해요. 나한테서 바라는 게 좀 있거든요. (애써 웃어 보인다)

 

최영 아래를 내려다본다.

은수가 손을 뻗어 최영의 옷자락을 잡고 있다. 꼭 잡은 손에 그 간에 억눌렀던 감정이 담겨서.

 

은수 : 당신 죽는 줄 알았어요. 다들 그렇게 겁 줘서. 근데 살아있으니까.. 됐어요.

 

은수가 손을 놓고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돌아서려다가 아.. 해서 다시 보더니.

 

은수 : 경창군 마마. 새 옷 입혀 드렸어요.

최영 : (움찔하는 느낌)

은수 : 비단옷은 안된다구 해서 하얀 모시옷으로 입혀서 보내드렸어요.

 

은수가 돌아서더니 가려고 한다. 최영이 한걸음에 다가서 막는다.

뒤쪽의 기철이 기웃해서 보는데.

최영이 낮은 소리로.

 

최영 : 하늘나라에서도 거짓말 합니까?

은수 : (?)

최영 : 잘 하십니까?

은수 : 거짓말..요?

최영 : 필요하게 될 겁니다.

 

하더니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은수를 스쳐서 저쪽으로 간다.

거기 천음자가 최영의 검을 가지고 오고 있다. 그 검을 받아 살피는 최영.

그런 최영을 보고 있는 은수. 그 은수 옆으로 다가서는 기철.

 

기철 : 저 자에게 더 하문할 것이 있으십니까. 잡아 둘까요.

 

은수가 멍한 기분으로 최영을 보고 있다. 이제 최영은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27. 기철 집 앞 길

 

최영이 걸어온다. 그 허리의 검집에는 최영의 검이 매달려 있다.

옆의 담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대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 조용히 최영의 옆을 따라 걷는다.

 

 

#28. 기철 집 별채 내부

 

은수가 방 안에 우뚝 서있다. 문득 자기의 옷을 내려다본다. 

기철이 줬던 화려한 옷. 갑자기 옷을 거칠게 벗기 시작한다.

 

 

#29. 길

 

최영과 대만이 걸어오고 있다. 대만이 따라 걸으며 최영의 눈치를 보다가..

 

대만 : 잘.. 계십니까?

최영 : ...

대만 : 안 만나셨습니까?

최영 : 만나 뵈었다.

대만 : .. (더 묻지 않는데)

최영 : 여전히 씩씩하시고. (걸으며 혼자 미소) 밥 얘기, 안하는 거 보니 음식도 잘 대접받는 모양이고.

대만 : 그래서.. 거기가 좋으시답니까?

최영 : 갇혀 있다고 말씀하시더라.

대만 : 그럼..

최영 : 모른 척 했다.

 

대만 더 묻지 못하고 따라 걷는다.

그런데 최영이 문득 걸음을 멈춘다. 대만이 눈치를 본다.

혼자 무언가 생각하던 최영이 혼잣말처럼.

 

최영 : 언제부터지.

대만 : 예?

최영 : 기억이 안난다.

대만 : 뭐가요?

최영 : 그 아이 얼굴이.. 기억이 안나.

 

대만. 뭔소리인가 해서 보는데.

최영은 혼자 생각에 빠져있다.

 

 

#30. 기철의 서재

 

기철이 고개를 들어 본다.

문가에 선 천음자. 곤란한 표정.

 

천음자 : 가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사형이 직접..

 

 

#31. 기철 집 대문쪽 마당

 

창을 든 사병들이 우루루 막아서 있다가 우물우물 한발짝씩 뒤로 물러선다.

그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은수. 기철이 준 옷은 원래 약초원에서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은수 : 비켜요. 나 하늘의 의원이에요.

 

은수가 또 한발짝 앞으로 나서자 당황해서 뒤로 한발짝 물러서는 사병들.

창이나 검으로 은수를 겨누고 있는데 감히 휘두를 생각은 못하고 있다.

 

은수 : (겁은 나지만 나름 도도한 자세를 취하며 애쓰며) 감히.. 나를 찌를 거에요? 하늘이 무섭지 않나? 응?

 

또 앞으로 나서려는데 바로 앞을 막아서는 기철.

 

기철 : 어디 가시려구요.

은수 : 알아서 뭐하시게요.

기철 : 아직 파악이 안 되시는 거 같은데. 의선은 이미 내 사람입니다.

은수 : 뭐.. 혼자 계속 그리 생각하시든가.

기철 : 전하께서 이미 내어주셨단 말입니다. 의선을. 저에게.

은수 : 그건 두 분이 알아서 하시고. 난 누가 누구에게 내어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나, 하늘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아시고 비키세요.

 

하며 기철의 뒤를 본다. 그 앞에는 아직 창을 들어 막고 있는 사병들.

 

기철 : 저 병사들 들고 있는 검이며 창. 날이 제대로 서 있어서요. 자칫 다치실까 두렵습니다.

은수 : 맘대루 하세요. 찌르든 베든 맘대로 하시라고.

 

은수. 기철을 옆으로 밀치고는 앞으로 나서려는데 그런 은수의 팔목을 잡는 기철.

 

기철 : 손목에 사슬을 묶어 가둬놓아야 되겠습니까.

은수 : 그래서 고문이라도 하실라고? 

        그럼 내가 사실을 얘기할지 대충 알아서 거짓말을 해줄지 어떻게 구분하실라고.

기철 : (멈칫해서 보는)

은수 : 내가 앞날에 대해 말을 한다면 언제 누구한테 털어놓을지는 내가 정해요.

         그러니까.. 일단 나한테 잘 보이는 게 좋지 않겠어요?

 

기철이 은수의 손목을 잡은 상태로 은수를 가만히 보며 생각해본다.

은수 마지막 용기를 다 내서 그런 기철을 마주 노려본다.

기철이 싱긋 웃더니 은수의 팔목을 놓아준다. 은수가 아픈 팔목을 만지는데.

기철이 뒤를 향해 눈짓. 사병들이 우루루 달려들더니 은수를 잡는다.

 

기철 : 내 인내심은 여기까지. 그럼..

 

기철 먼저 들어가고.

사병들이 은수를 잡아끌어 다른 쪽으로. 은수 더 어찌해볼 것이 없다.

 

 

#32. 개경 거리 일각

 

최영이 담장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다. 그 옆에는 웅크리고 앉아서 사방을 경계하고 있는 대만.

대만이 멈춘다. 슥 노려보는 곳. 거기 약장수 차림의 사내가 건들거리며 다가온다.

대만이 자세를 낮추며 언제라도 공격할 준비를 하는데.

그런 대만의 머리통을 눌러 자제시키는 최영. 물끄러미 다가오는 사내를 보고 있다.

사내가 최영의 근처에 오더니 허리를 굽혀 짚신 끈을 조인다.

최영이 품에서 최상궁이 준 목패를 꺼내 보여준다. 곁눈으로 목패를 살피는 사내.

 

 

#33. 만보방 대문 앞

 

최영이 걸어온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안보이는 적적한 집. 열려져 있는 대문.

최영의 뒤를 따르는 대만은 바짝 긴장을 하고 있다.

 

대만 : 빈 집이 아닙니다.

최영 : 그러겠지

대만 : 안에 사람들 냄새가..

최영 : 먼저 가라.

대만 : 대장.

최영 : 가서 부장한테 전해. 나 좀 늦을 거 같다고.

대만 : 대자앙.

최영 : 알아서 잘 좀 하고 있으라고.

 

그래도 대만이 움직이지 않고 불만스러워 쳐다보고 있자. 최영이 스읏 해서 대만을 본다.

대만 할 수 없이 걸어가면서 불안해서 다시 집을 돌아본다.

최영이 어슬렁 어슬렁 대문 쪽으로 걸어간다.

 

 

#34. 만보방 마당

 

열려있는 대문으로 들어오는 최영. 둘러본다.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객방들.. 다 문이 닫혀있고, 인적은 없다.

최영이 걸어오다 귀찮은 얼굴이 된다. 우뚝 서는가싶더니 허리를 뒤로 꺾어 피한다.

아슬아슬하게 그의 얼굴 위를 지나가는 화살. 연이어 화살이 날아든다.

최영이 피하며 옆의 나무 광주리를 들어 화살을 막는다. 뒤로 이동하는데.

그 뒤에서 순식간에 찔러오는 창.

최영이 창을 피하며 화살이 박힌 나무 광주리를 이용하여 막는다.

창을 들고 사정없이 공격해오는 이는 지호.

지호의 공격을 막으며 슬쩍 보는 곳.

이제 지붕 위의 시울은 아예 일어 선 채 최영을 향해 연달아 화살을 날리고 있다.

최영과 지호가 엉겨 싸우고 있지만 화살은 교묘하게.

최영이 지호를 공격하는 흐름을 끊으며 정확하게 날아든다.

막고 피하기만 하던 최영이 옆의 담장에 기대 세워져 있던 길다란 괭이를 들어 반격한다.

괭이로 지호의 창을 휘감고 배를 공격하는 바람에 지호가 뒤로 주르르 밀려간다.

그 틈에 최영이 들고 있던 괭이를 창처럼 지붕 위의 시울에게 날린다.

시울이 그 창을 피하려다가 지붕에서 떨어져 내려 겨우 착지한다.

(대충의 느낌은.. 시울이나 지호는 언제나 최영만 찾아오면 이렇게 싸움을 걸어왔음.

한번이라도 이겨보려는 일념에 언제나 집요하고 거칠게 싸움을 걸고.

최영은 그동안 한번도 검을 검집에서 빼지 않은 상태로 상대해왔음.

지형지물이나 근처의 물건, 혹은 상대의 무기로 상대를 상대하는 식으로)

 

최영 : 대충 하지.

 

하는 순간. 닫혀 있던 방문 하나가 열리며 뻗어져 나오는 검.

최영을 향해 검과 함께 날아오는 신비거사. 최영이 간신히 피하며

 

최영 : 지겹지 않나?

 

거사가 연이어 공격해오며.

 

거사 :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최영이 여전히 검은 빼지 않은 채 막고 피하는 척 하다가 뒤의 지호의 창을 잡아 거사를 상대한다.

거사, 지호를 찌를 수 없어. 검을 비켜 착지한다. 언제나 지나치게 멋진 폼으로.

 

거사 : 불역열호아.

 

하는데 시울이 바로 앞에서 최영에게 활을 겨누며

 

시울 : 검을 빼.

최영 : 싫어.

 

지호가 최영에게 잡힌 창을 간신히 빼내어 겨누며

 

지호 : 아 뭐야. 아직도 검을 안 뺏잖아. 진짜 제대로 안 할거요?

최영 : 싫다고.

거사 : (다시 다른 멋진 폼으로 자세를 잡으며) 먼데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아니 반갑겠는가.

 

최영 그만 질려서 안을 향해 소리 지른다.

 

최영 : 사숙. 어떻게 좀 해봐요. 이러다 얘들 다쳐도 모른다.

지호 : (완전 열받아서) 죽어!

 

하며 창을 거칠게 찔러온다. 최영이 할 수 없이 피하며 앞에 있던 시울의 발을 걸어버린다.

시울이 엎어지며 지호를 덮치는 양상이 둘이 간신히 피한다.

신비거사가 다시금 폼을 잡으며

 

거사 : 오매불망. 전전반측.

 

공격해 들어온다. 최영이 피하며 검을 잡은 거사의 팔목을 잡아챘는데.

거사는 오히려 최영에게 다소곳이 기대며

 

거사 :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최영이 질겁을 해서 떨어지며 에잇.. 안의 방으로 달려들어가는데.

막 열려는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만보가 내다본다.

 

만보 : 너 최영이.

최영 : 오랜만입니다.

만보 : 새 왕의 개가 됐대매. 짖어봐. 월.. 월..

마마 : (얼굴을 내밀며 무뚝뚝) 밥은 먹고 다니냐?

최영 : 저녁은 아직..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는)

 

마마가 들고 있던 목침으로 자기 얼굴 앞으로 날아온 화살을 막는다. 목침에 박히는 화살.

 

마마 : (여전히 무뚝뚝) 국밥 한 그릇 주까.

만보 : 개한테 밥은 왜 줘.

마마 : 개도 먹어야 짖지.

 

 

#35. 만보네 방 내부

 

주저앉아 국밥을 맛나게 먹는 최영. 그 앞에 나란히 앉은 만보와 마마.

최영이 먹으며 슬그머니 자리를 옆으로 피한다. 그 옆으로 바싹 다가앉는 거사를 피해서.

 

만보 : 너, 이 달 내로 우달치 때려치고 궁을 나온댔잖아.

마마 : (서툰 솜씨로 바느질 중이다) 궁을 나오면 우리한테 온다 그랬지.

만보 : 하늘에서 델고 온 의원은 또 뭔 소리야.

마마 : 사기 치는 거지.

만보 : 최영이가 언제부터 사기까지 치게 됐냐.

마마 : 궁 생활 칠년이야. 부처님이라도 협잡꾼이 되고 남았지.

만보 : 그래서 왜 왔어.

 

 

#36. 궁 앞 길

 

두필의 말이 달려 나오고 있다. 한필의 말에는 최상궁이 타고 있다.

 

 

#37. 기철의 집 대문

 

대문이 열리며 최상궁네가 들어간다.

 

 

#38. 기철의 서재

 

기철이 돌아본다. 거기 들어서는 최상궁과 무각시.

 

기철 : 내궁의 상궁이 어쩐 일인가.

최상궁 : (고개 숙여보이고) 참으로 다급하여 달려왔습니다.

            왕비마마께서 귀국길에 얻으신 상처가 덧나시어 상태가 몹시 좋지 않으십니다.

기철 : 그거 참 큰일이 아닌가.

최상궁 : 하여. 이 집에 계시는 의선을 청하러 왔습니다.

기철 : (의심스러워 보는)

최상궁 : 원래가 의선께서 하늘의 신기로 다스려주었던 부상이옵니다.

            땅에 있는 의원들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 하니 부원군께서 나서주시길 간청하옵니다.

기철 : ... 내가.

최상궁 : 의선은 이 댁. 부원군에게 마음을 내주셨다 들었습니다. 아니십니까.

기철 : .. 그렇지.

최상궁 : 그래서 부원군께 청을 드리는 것이지요.

기철 : .... 의선을 내드리면. 내드렸다가 그 왕비마마의 부상이 도통 차도가 없으시어 돌아오질 못하시면..

최상궁 : .. 함께 입궁하시게 하라..는 명이었습니다.

기철 : 내가 함께.

최상궁 : (슥 괜히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직하게) 왕비마마께서 따로 은밀히 하실 말씀도 있다 하십니다.

 

기철.. 여전히 의심스러워 보고 있다.

 

 

#39. 노국의 침실

 

장희가 물이 담긴 그릇? 정도를 들고 이동하면서 보는 곳.

휘장 뒤에 침상에 누워있는 노국. 그 옆에서 장빈이 노국의 맥을 짚어보고 있다.

장희가 이쪽에서 뭔가를 하는 척하면서 신경을 쓰고 있는데

장빈이 휘장 뒤에서 나오며 약원에게 나직하게 이른다.

 

장빈 : 침향을 더 피워야겠다. 도무지 정신이 돌아오시질 않는구나.

 

장희가 가만히 방 입구 쪽으로 움직인다.

 

 

#40. 기철의 집 회랑

 

이동하고 있는 기철과 양사.

 

양사 : 왕비마마께서 위중하신 건 틀림없는 듯 합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신다는데요.

 

기철이 끄덕인다.

 

 

#41. 기철 별채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은수가 돌아본다. 문이 열리고 있다.

기철이 들어선다.

 

기철 : 식사는 하셨습니까?

은수 : (허. 외면한다)

기철 : 저와 함께 좀 가셔야겠습니다.

은수 : 뭘 물어보나. 그냥 질질 끌고 가면 되지.

기철 : 왕비마마께서 위중하시답니다.

은수 : (돌아보는)

기철 : 하늘에서 오신 의선만이 봐주실 수 있다면서 궁에서 찾아왔는데 어찌할까요. 거절할까요?

 

 

#42. 노국의 침소

 

공민이 들어선다. 장빈이 얼른 나서며 맞는다.

장빈과 공민이 서로 시선이 교환된다.

 

공민 : 좀 어떠신가.

장빈 :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공민 : 내가 좀 봐도 되겠는가.

 

장빈이 고개를 숙여보이고 주위에 눈짓을 한다.

안에서 일을 보던 시녀나 약원, 공민을 따라왔던 도치 등이 줄줄 나간다.

장빈이 마지막으로 나가며 문을 닫아준다.

공민이 침대 쪽으로 다가선다. 휘장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헛기침을 하더니.

 

공민 : 어려운 일을 시키게 돼서.. 미안한 마음이에요.

 

안에서 잠시 조용하더니 노국이 일어나 앉는다.

 

노국 : 어렵지 않습니다.

공민 : 그자가 뜻대로 움직여줄지는 모르겠으나.. 한나라 왕비가 이런 것까지 하게 되다니..

노국 : 하고 싶었습니다.

 

공민이 노국 쪽을 돌아본다. 비치는 휘장 안의 노국의 모습.

 

노국 : 하고 싶었습니다. 뭐라도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뭔가를 하려고 들면 언제나 그것이 더 노여움을 샀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공민. 보다가 참지 못하고 휘장을 젖힌다. 거기 노국이 공민을 빤히 보고 있다.

 

공민 : 내가.. 많이 모자라서요.

노국 : 그리고 그런 말씀이 가장 듣기 싫었습니다.

 

공민이 더 말을 못하고 그저 노국을 보고 있다. 노국이 슬쩍 시선을 피한다.

 

 

#43. 궁의 회랑

 

기철의 무리가 오고 있다. 기철의 옆에는 은수.

양사 천음자 기원까지 우루루 데리고 들어선다.

은수가 걸아가다 문득 한쪽을 돌아본다. 웬지 모를 느낌으로.

정원 건너편. 아무도 보이지는 않는다.

기철의 행렬이 지나가고 나서.

은수가 보던 자리의 기둥 뒤에서 최영이 나서며 그들의 뒷모습을 잠시 보더니 돌아서 걷는다. 빠르게.

 

 

#44. 궁의 일각

 

덕만이 지호를 데리고 기다리고 있다.

들어서는 최영을 보고. 지호가 거의 반사적으로 창을 돌려 겨누려는데.

덕만이 또 반사적으로 막는 바람에 거의 싸움이 붙기 직전.

최영이 양쪽의 목덜미를 잡아서 멈추게 하고는.

 

최영 : 어떻게 됐어?

지호 : 갖고 왔지. 자 여기 있네. (하며 품에서 문서를 꺼내는)

덕만 : (지호를 패려하며) 이게 어디서 반말이야.

최영 : (덕만을 발로 밀어 떼어내며 문서를 받으며) 부장은 뭐하구 있어.

덕만 : 대기중이십니다.

지호 : 돈 받아오래. 정보 대금.

덕만 : 아놔 이 자식 혀가 반토막이냐. 마저 뽑아줘?

 

둘이 다시 싸우기 시작했는데.

최영 내버려두고 문서를 펼쳐보며 이동한다. 뒤에서 우당탕.

 

 

#45. 곤성전 입구

 

들어서던 기철의 무리가 무각시들에 막혀 선다. 무각시들이 빈틈없이 복도를 막아서있고.

최상궁이 앞으로 나선다.

 

최상궁 : 왕비마마가 계시는 내궁 중에서도 내궁입니다. 아무나 출입하지 못하십니다.

            덕성부원군 나리. 의선. 드십시오.

 

천음자가 불안해서 기철을 보는데. 기철이 손을 들어 괜찮다 하고 의선을 모시고 들어선다.

들어서며 의선과 최상궁의 시선이 마주친다.

은수가 반가워서 웃어보이는데 최상궁은 냉냉하다.

 

 

#46. 곤성전 내부 회랑

 

최상궁이 안내해간다. 기철이 이쯤인가 해서 방문을 봐도 최상궁은 그 앞을 지나쳐서 계속 간다.

은수도 점점 불안해지며 둘러본다. 곳곳에 무각시들.

 

 

#47. 궁 내 방

 

문이 열리며 최상궁이 기철을 안내해 들어선다.

좀 들어서다가 문득 기철이 은수를 팔꿈치를 잡아 멈추게 한다. 뭔가 이상하다.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우달치들이 문을 막고 사방을 에워싸며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는 잠시 후. 앞에서 걸어 들어와 자리하는 공민왕. (좀 높은 대에 놓여진 의자에 앉는다는 설정)

 

공민 : (먼저 은수를 보는) 의선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은수 : (기철의 손을 떼내며) 별루요. 임금님은 안녕하셨습니까?

공민 : (미소) 나는 좋았습니다.

은수 : 근데 왕비님은 어디 계세요. 어디가 안 좋으신데요.

공민 : 그 일은 좀 나중에. (기철을 보는)

 

기철 공민의 눈을 빤히 보며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

 

기철 : 덕성부원군 기철. 주상전하를 뵈옵니다. 여기 곤성전에서 뵈올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공민 : 나의 비께서 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여기가 조용히 일을 처리하기 좋을 것이라구요.

 

하는데 옆의 문으로 들어서는 최영. 뚜벅뚜벅 공민의 근처로 와 서더니.

 

최영 : 전하. 친국 준비되었습니다.

공민 : 시작하세요.

기철 : ? 친국.. 이라 했습니까.

최영 : (무시하고 똑바로 은수를 본다)

은수 : (이게 대체 뭔가 싶어서 보는)

최영 : (좀 망설여지는 마음. 열중쉬어 자세로 두 다리를 벌려 버텨 서고 어쩔 수 없다. 흐음 해서 시작한다)

         의선. 하늘 이름 유 은수.

은수 : (읭? 스러운)

최영 : 이 여인은 지난 초닷새. 위리안치 중이신 경창군 가택에 침입.

         와병 중이신 경창군을 하늘 나라에 모셔간다며 유인. 일박 이일동안 납치, 이동하였습니다.

 

은수 어이가 없어서 입이 벌어지는.

옆의 기철. 이게 뭔가 해서 공민을 보는데. 공민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최영 : (계속 은수를 똑바로 보며) 이를 배후조종한 자는 현 강화군수 안성오입니다.

         경창군과 의선을 자신의 사택에 숨겨둔 채, 저 우달치 중랑장 최영과 협상을 꾀했습니다.

 

동시에 뒷문이 열리며 주석과 돌배가 질질 끌고 들어오는 강화군수.

봉두난발에 흐트러진 의복. 두어대 맞은 듯한 얼굴. 가운데로 끌고 와서 패대기친다.

 

 

#48. 궁 일각

 

대기하고 있던 천음자 무리. 천음자가 먼저 긴장해서 돌아본다.

거기 충석이 우달치들을 우루루 데리고 오더니 그들을 둘러싼다.

 

충석 : 왕비마마가 거하시는 곤성전에서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자는 무각시와 우달치 뿐. 압수한다.

 

천음자가 반사적으로 피리를 돌려 자세를 잡는데.

우달치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어 들더니 가운데 든 자들의 목을 겨눈다.

 

충석 : 이것은 어명. 거역하면 반역. 이해가 안되나.

 

덕만이 웃으면서 천음자의 피리부터 거둔다.

 

 

#49. 궁 내 방

 

군수가 울부짖으며 공민을 향해.

 

군수 : 억울합니다. 전하아.. 이 무슨 날벼락입니까. 

        (하다가 기철을 봤다. 기어오며) 나리이.. 저올습니다. 안성오.

공민 : 부원군이 아는 자입니까?

 

군수가 기철의 다리를 감싸 안으려는데. 기철이 스윽 발로 차고 밀어내며.

 

기철 : 저는 나를 아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최영을 보는) 그래서 나의 사람이 된 의선이 무엇을 어찌했다고?

 

아직도 전하아. 나리를 외치는 군수를 보고 최영이 돌배에게 눈짓.

돌배가 군수의 머리칼을 쥐어잡아 조용히 시킨다.

 

최영 : 의선에게 묻겠다. (은수를 본다)

은수 : (이제 최영을 노려보고 있다)

최영 : 경창군에게 가라 시킨 자가 누군가.

은수 : (보다 허어 웃는다. 기가 차서)

최영 : (가만 보고 있다)

은수 : 이봐요. 아니 그 자리에 나하구 함께 있었잖아. 그래놓고..

 

하다보니 최영이 아주 약간 고개를 젓는다. 어라.. 해진다.

 

최영 : 경창군의 병을 고쳐달라고 청한 것은 강화군수였나.

은수 : 그야.. (하면서 기철을 가리키려다가 멈칫. 기철을 돌아보는)

 

기철은 최영을 노려보고 있다.

은수 순간 생각나는 장면.

 

최영소리 : 하늘나라에서도 거짓말합니까?

 

 

#50. 회상 # 26 기철집 정원

 

최영이 은수에게 말하고 있다.

 

최영 : 잘 하십니까?

은수 : 거짓말..요?

최영 : 필요하게 될 겁니다.

 

 

#51. 궁 내 방

 

최영이 은수를 보고 있다.

 

은수 : 그러니까 나에게 청한 것이 누구냐하면...

 

최영이 눈만 움직여 군수를 본다.

은수가 기철을 가르키던 손가락을 내려 군수를 지목한다.

 

은수 : 이 분인데요.

 

강화군수 군수가 머라 떠들려다가 돌배에게 막혀 캑캑.

 

최영 : (휴 하는 마음을 숨기고 공민을 향해) 들으신 대로입니다.

        강화군수 안성오는 경창군의 병을 고치고자 하늘의 의선을 청하였고, 

        위리안치 중이신 경창군을 빼돌렸습니다. 또한. 본인의 면전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군수를 보며) 만약에 경창군의 복위를 도우라 한다면 어찌하겠는가.

 

그 말에 군수가 그만 넋을 놓으며 최영을 본다.

 

기철 : 잠시만 전하. 따져 볼 것이 있습니다만.

공민 : 뭐 달리 더 아시는 게 있습니까? 원래 저에게 말하시길 

        부원군 댁에 있던 의선을 저기 우달치 대장이 데려갔다 하지 않았나요.

기철 : 그것이.. (최영을 보는)

최영 : 제가 무슨 힘으로 덕성부원군 댁에 단독 침입해서 사람을 훔치겠습니까.

         덕성군께서 직접 의선을 내어주고 경창군께 가라고 이른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공민 : (기철에게) 그러신 건 아니지요?

기철 : (잠시 보다가 활짝 웃더니)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공민 : 이 시간으로 강화군수는 봉고파직시키고. 강화군수 개인이 점유했던 모든 재산은 국고에 귀속한다.

 

최영이 아까 지호에게 받았던 문서를 도치에게 넘겨주고 도치는 공민에게.

공민이 펼쳐보며..

 

공민 : 강화의 인삼밭. 포구.. 재산이 엄청나시군.

 

군수가 울며 기철을 본다. 기철 얼굴이 안 좋다.

 

공민 : 이거.. 세의 삼분의 이가 경세가로 들어간다 되어있는데. 혹시 덕성부원군의 소유 아니오?

기철 : (딱딱한 얼굴) 아닙니다.

공민 : 그럼 됐소. 국법을 어기고 반역을 도모한 안성오는 언부에 넘겨 그에 맞는 죄값을 치루게 할 것이다.

         또한 이에 동조하여 경창군을 빼돌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의선 또한..

은수 :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보는)

공민 : 그에 상응하는 죄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은수 : (휙 최영을 본다)

최영 : (은수를 보고 있다)

공민 : (기철에게) 의선이 그 댁에 사람인 것은 알고 있으나 상황이 이러하니 

        법에 따라 처리해야겠습니다. 이해하세요. 죄인들을 끌어내라.

 

기철. 굳어서 보다가 허.. 허허 웃는다.

돌배 등이 군수를 질질 끌어 나가고. 뒤이어 다가온 무각시들이 은수의 양 팔을 끼어 잡고 나간다.

은수가 다급해서 최영을 돌아본다. 최영은 묵묵히 은수를 보고만 있다.

은수 그제야 정신이 나며.

 

은수 : 아니 잠깐만요. 이봐요.

 

 

#52. 궁 복도

 

은수가 무각시들에게 질질 끌려가며 발버둥치며 도망가려고 주위를 둘러보고 난리를 치며.

 

은수 : 잠깐 서보라구요. 나 저 안에 있는 놈하고 잠깐만 얘기하구우.

         이봐요. 나 어디루 델구 가는데. 설마 나 역모죄 그런거야?

 

은수가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버티며 거의 울며..

 

은수 : 그럼 나 죽일 거야? 여기선 역모죄인 그렇게 죽인대매. 기둥에 묶어서 살점 베내면서..

         엄마아.. 이거 좀 놔봐요오..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에..

 

무각시들이 서로 눈짓하더니 아예 은수를 들어 질질 데려간다.

 

 

#53. 궁 외부 일각

 

기철과 그들의 무리가 빠르게 나선다.

기철이 열받아 있어서 걸음이 빠르다. 걸어가던 기철이 잠깐 돌아본다.

거기 서있던 최영이 슬쩍 고개를 숙여보인다.

기철.. 허.. 한번 더 웃고 스쳐 지나간다.

최영이 그들을 보내고는 돌아서 걸어간다.

 

 

#54. 궁 외부 다른 일각

 

돌배와 주석이 끌고온 강화 군수를 땅에 쳐박는다.

군수는 이제 가련하게 아이구우 아이구우.. 하다가 돌아보면 거기 최영이 오고 있다. 엎어질 듯 하여.

 

군수 : 이보오 우달치 대장.. 나한테 왜 이러시오오. 대체 왜..

최영 : (성가신 표정이지만 할 수 없다는 듯 다가와서 굽히더니) 나리의 그 대대손손 잘 사는 법 세가지..

         그게 좀 문제였던 거 같습니다.

군수 : 이봐요. 내가 다 잘못했소. 그러니 제발 용서하시고 목숨만 좀,, 이보오.. 대자앙.

최영 : 미안합니다. 제가 좀 뒤끝이 깁니다.

 

하더니 일어선다. 언부의 금군들이 달려와서 군수를 인계받아 끌고 간다.

최영이 뒤를 돌아본다. 은수가 있을 쪽.

 

 

#55. 궁의 복도

 

무각시들에게 질질 끌려가던 은수, 어느 방문 앞에 선다.

무각시가 문을 열려고 하자 은수가 악착같이 버티며.

 

은수 : 여기가 어딘데. 싫어요. 안 들어가. 이거 좀 놓으라고.

 

악을 쓰다 보면 문이 안에서 열린다.

최상궁이 은수를 보며.


최상궁 : 기다리고 계십니다.

 

몸부림치느라 산발이 되다시피한 은수가 헉헉대며 최상궁을 본다.

 

 

#56. 노국의 처소

 

노국이 일어나 마중하러 나온다.

무각시들에게 부축되다시피 들어온 은수가 덜덜 떨며 무너지듯 의자에 앉는다.

 

노국 : 괜찮으십니까.

은수 : (아직도 떨며 노국을 보고 최상궁을 보고)

노국 : 물..

 

시녀가 종종 간다.

 

은수 : (공포의 여운이 남아서 소리도 잘 안 나오며) 나보구 역모.. 대역죄인이라고.. 

        난 그 놈이 거짓말하라고 해서.. 그래서..

최상궁 : 덕성부원군을 직접 치기에는 그자의 세가 너무 세서 일단 강화군수로 대상을 잡았다 들었습니다.

은수 : 근데.. 죄값,, 그건 머에요. (진짜 울 거 같다) 나 어쩔 건데.

최상궁 : 하늘분이 땅의 일을 잘 모르시어 저지르신 죄. 허나 왕비마마의 목숨을 구하신 공을 크게 셈하여,

         다음과 같이 죄값을 정한다. 향후 왕비마마의 옥체강령을 담당할 것이며 

           거주지는 전의시로 한정한다. 라는 것이 어명이셨습니다.

 

은수... 시녀가 갖다 준 물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신다. 아직도 정신이 아득하다.

 

 

#57. 왕궁 내 복도

 

벽에 기대어 기다리던 최영이 한쪽을 보더니 몸을 일으킨다.

거기 은수가 나오고 있다.

최상궁이 어느만큼 안내하듯이 함께 오다가 최영을 보더니 흘겨주고는 멈춘다.

은수가 걸어오다가 최영을 봤다. 외면하더니 걸어서 지나친다.

최영이 어슬렁거리며 뒤를 쫓는다.

앞서가던 은수가 갑자기 서더니 쿵쿵 돌아와서 최영의 앞에 서서.

 

은수 : 해도해도 진짜.. 너무하잖아.

최영 : ...

은수 : 내 세상에서 나 강제로 납치해왔던 거. 기억은 해요?

최영 : 기억합니다.

은수 : 오자마자 말도 안되는데서 억지로 수술시키고, 사람 잡아서 패고 묶어서 끌고 다니고.

최영 : 그건 저한테서 도망을 가시다가..

 

은수가 냅다 최영의 조인트를 깐다.

최영. 어이없어서 아..하며 맞은 자기 다리를 내려다본다.

은수가 쿵쿵 걸어간다. 최영이 또 따라간다.

주변을 지나던 시녀나 내관들이 길을 비켜주고 그들을 구경하지만 

아랑곳없이 저만치 서더니 은수가 돌아보고 소리질러.

 

은수 : 또 여기. 고련지 뭔지 여기까지 싫다는 사람 질질 끌고 왔잖아. 

        치료해주겠다는 사람 개무시하고. 저 구석 무슨 한약방에 처박아놓고. 

        그러다 또 납치되구. 또 갇히고. (울먹울먹)

 

옆을 슬금슬금 지나가는 시녀가 받쳐 들고 있는 다반의 떡을 집더니 최영에게 던진다.

 

은수 : 이번엔 또 뭐야. 뭐? 거짓말 잘 하냐구?

 

시녀의 다반도 뺏어서 최영에게 던진다.

 

은수 : 그래서 역모죄라구? 죄값을 받으라구?

 

최영이 가까이 다가서며 뭔가 해명을 해보려는데 은수가 또 조인트를 찬다.

최영이 슬쩍 피하는 바람에 은수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 한다.

최영이 재빨리 은수의 팔을 잡아 세워주자. 은수가 거칠게 뿌리치며 뒤로 물러나며.

 

은수 : 손대지 말라구 했지. 더 가까이 오기만 해봐. 

        진짜 뭐 이런 놈한테 잡혀와 가지구. 이게 뭐야. 아이 씨.

 

은수 울기 직전으로 돼서 돌아서 쿵쿵쿵 간다.

최영, 난처해서 보다가 또 따라간다.

주변에 구경꾼들 헤에..

 

 

#58. 약초원

 

터덜터덜 들어오는 은수. 앞의 씬 감정이 연결되고 있는.

안에서 나오던 장빈이 보았다.

 

장빈 : 의선.

 

그 부름에 그만 은수의 억눌렀던 울음이 터지기 시작한다. 흐느끼며 장빈에게 가며.

 

은수 : 나 정말 못 살겠어요. 여기.. 이 세상 너무 끔찍해.

        (장빈의 앞 가슴을 부여잡고 운다) 내가 왜 이래야 되는데.. 

        우리 엄마 보구 싶구.. 아부지도 보구 싶고. 나 더 못하겠다구. 진짜.

 

장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운다. 장빈이 그런 은수 때문에 난처해하며 보면.

저쪽에 우두커니 서있는 최영. 어쩔 줄 모르고 보고 있다.

 

장빈 : 가보십시오. 제가 돌보겠습니다.

 

장빈이 은수를 감싸 안으로 들어간다. (장빈은 의사의 감정입니다)

은수는 우느라고 다리 맥이 풀려있어서 장빈이 거의 안아 부축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들어가는 둘을 더 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보고 있는 최영. 머뭇머뭇 돌아서 가려다가 다시 돌아본다.

미안함. 뭔지 모르겠는 상실감?

 

 

#59. 은수의 방

 

장빈이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아 준다.

 

장빈 : 온감차입니다. 안정 작용이 있습니다.

 

은수가 조금은 진정되서 멍하게 앉아 있다가 차를 들어 마신다. 마시는데 아직 조금 흐느낌이 남았다.

 

장빈 : 언제나 밝은 분이어서.. 놀랐습니다. 아까는.

은수 : .. 나두 놀랐어요. (울어서 잠긴 목소리) 나.. 잘 안 울어요. 울면.. 자존심 상해서...

장빈 : 힘드신 거 압니다. 허나.. 대장이 돌려보내드린다고 약속했으니 지킬 겁니다.

은수 : ...

장빈 : 지금은 워낙에 할 일이 많아서 좀.. 기다리시면..

은수 : 난 여기 사람이 아니에요. 여긴 내 자리가 아니고.

         근데요. 내가 여기 살아있는데.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니란 거. 무슨 뜻인지 알아요?

장빈 : 글세요.

은수 : 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 사람. 그 어린 임금님 죽어갈 때 나한테 묻더라구요. 

        방법이 없냐구. 모르냐구. 너 뭐냐구.

장빈 : 들었습니다. 경창군 마마 화고독에 당한 거.

은수 : 한의 선생이면 뭐 할 수 있는 거 있었어요? 그래요?

장빈 : 화고독은.. 치료할 방법이 없습니다. 얼마나 편하게 고통없이 죽게 할 것인지. 그 길을 찾는 거 밖에는..

은수 : 그렇죠? 장선생님도 살릴 수 없었던 거죠? 내가 모자라서 죽인 거 아니죠?

장빈 :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은수 : 그랬으면.. 뭔가 방법이 있어요?

장빈 : 적어도 최영 대장이 칼을 쓰게는 안했을 겁니다.

은수 : ... 뭐라는 거에요.

장빈 : 최영 대장은 무사. 주군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가 자기 손으로 주군이었던 자를 죽였습니다.

은수 : 그래요. 그 사람이 그 아이를 죽였어요. 내가 봤다구.

장빈 : 아니요. 최대장이 죽인 건 자기 마음입니다.

은수 : ..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장빈 : 그 일이 있고 난 뒤. 대장이 궁을 나가겠다는 마음, 접은 걸로 압니다.

은수 : 그게 뭐요.

장빈 : 그게 그 사내. 유일한 희망이었거든요. 궁을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거.

 

은수의 마음이 복잡하고 먹먹해진다.

장빈이 별 말 없이 조용히 찻잔을 은수 쪽으로 밀어준다.

은수가 차를 마시다 사레에 걸리는데. 그래서인가 눈물이 핑 돌아있다.

 

 

#60. 기철의 집

 

 

#61. 기철의 부유고

 

기철이 분을 참느라고 오락가락하고 있다.

부유고에는 기철. 양사 화수인. 천음자.

양사가 그런 기철의 눈치를 보며 장부를 뒤적이며.

 

양사 : 강화에서 올라오던 것이 매년 인삼 2만 4천채. 인삼 교역으로 남기던 이문은 철전 오천냥.

        이게 주상의 손으로 넘어간 것입죠. 그리고 새로운 강화 군수로 부임한 자는 

        우리 손이 미치지 않는 자입니다.

화수인 : (구석에서 화약을 재며 탄을 만들며) 고작 그 몇푼 가지고 뭘 그리 방정인데.

양사 : 이게 고작 몇푼의 문제가 아니고요. 우리 나으리의 것이..

 

더 말하려다가 기철이 타앙 뭔가를 탁자에 놓는 바람에 찔끔.

 

기철 : 그래 그것이야.

 

갑자기 후다닥 금고?로 가서 열쇠로 열고 뒤지느라 부산을 떤다.

천음자가 화수인을 보며 뭐지? 묻고 화수인이 으쓱. 몰라.

기철이 가죽으로 싼 뭔가를 꺼낸다.

 

기철 : 이거면 분명히 확인해볼 수가 있어. 그래.

양사 : 나리. 강화도 껀은 어떻게..

기철 : 강화도고 고려고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 여인. 아직까지 내겐 반신반의. 

        사실이면 좋겠다는 내 간절한 마음. 그런데 정녕 사실이면. 응?

 

가죽으로 싼 수첩을 품에 갈무리한다.

 

기철 : 그 여인 어디 있다 했나. 주상께서 깜찍하게도 농간을 부려 내게서 빼앗아간 의선. 어디 있어.

천음자 : 약초원으로 들어갔다 합니다.

기철 : 가야지.. 내가.

 

하다가 아.. 해서 한손으로 다른 손을 움켜잡는다. 왼손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양사가 급히 다가서며.

 

양사 : 경련입니까. 탕욕을 준비하겠습니다.

기철 : 아니야. 필요없어.

 

화수인과 천음자도 걱정이 돼서 본다.

기철이 두손을 움켜쥐고 용을 쓰며 떨림을 멈추려 하며.

 

기철 : 이 세상에 해야 할 것. 가질 것이 이렇게 많은데. 시간이 너무 없어. 너무 없어.


하며 두 손을 움켜쥔 채 밖으로 급히 나간다.

화수인이 짜증나서 보다가 옆의 천음자를 밀어낸다. 니가 따라 가라고. (빙공의 후유증이라는 설정입니다)

 

 

#62. 전의시

 

더기가 약재를 들고 나오다가 놀라 선다. 거기 밀고 들어오는 기철과 천음자.

더기가 놀라 약재를 떨구며 약초원 쪽으로 달려간다.

 

 

#63. 약초원

 

은수가 화초에 물을 주고 있다가 놀라서 일어선다. 나무 물통이 떨어진다.

기철이 들어오고 있다.

더기가 달려와 은수의 옆에 선다. 안에서 장빈이 급히 나온다.

 

기철 : 여기 계셨습니까.

 

장빈이 은수를 가리며 앞으로 나선다.

 

장빈 : 의선께서는 어명에 의해 전의시의 약초원을 거주지로 한정 받으셨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기철 : (은수만 보며) 제가 보여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은수 : (장빈 뒤에 숨다시피하고) 보고 싶은 거 없는데요. 별로 궁금한 것도 없구요. 그리고..

기철 : 전에 말씀드렸던 화타의 유물 세가지. 기억하십니까.

은수 : (어쩔 수 없이 굳어서) 그런데요?

기철 : 그 중에 두 번째 것을 가져 왔는데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은수가 당황해서 보다가 장빈을 본다. 장빈이 뭐라 하려는데.

 

기철 : 단 둘이 은밀하게. 다른 자들은 듣도 보도 못하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만..

 

은수가 망설이며 기철을 본다.

기철이 품에서 꺼내는 것. 양가죽 같은 것으로 싼 얄팍한 물건이다. 물론 보고 싶다.

 

 

#64. 은수의 방

 

은수가 먼저 들어온다. 기철이 따라 들어오며 방의 내부를 둘러본다.

 

은수 : 자. 단 둘이 은밀하게 있으니까. 보여주세요.

 

기철이 여유있게 방 가운데의 탁자 앞에 앉으며.

 

기철 : 제가 내드린 방보다 협소해보입니다만. 이곳이 더 마음에 드십니까?

은수 : 이럴 때 하늘에서는 이렇게 말하죠. 꼼수 부리지 말고 패 까요.

기철 : (웃더니 손에 든 것을 탁자에 올려놓는다)

은수 : (손을 뻗는데)

기철 : (물건에 제 손을 덮고) 이것은 일종의 서책인 듯 합니다.

        오랫동안 공을 들인 결과. 이 안의 글자 중에 일부는 서역에서 쓰이는 숫자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는 도무지 읽을 수가 없어서요.

은수 : 나더러 읽어보라는 거죠? 일단 보자구요.

 

기철이 잠시 은수를 살피다가 손을 치운다.

은수가 그것을 끌어와서 감싸고 있는 가죽을 편다.

드디어 드러나는 안의 물건. 그것은.. 수백년을 넘게 이어져 내려와서 거의 본 색깔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분명. 핑크색 가죽으로 된 수첩이다.

은수가 완전 얼어서 겉표지를 들여다본다. 분명히 영어로 DIARY라고 씌어져 있다.

손으로 쓰다듬어 본다. 숨이 막혀서 손이 좀 떨린다.

그러는 은수를 살펴보고 있는 기철.

 

은수 : (떨리는) 이게.. 화타의 유물이라구요?

기철 :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은수 : 그럼.. 지금부터 수백년 전에 물건이라구요. 이게?

기철 : 천년 전에 사람이지요. 화타는.

 

은수가 떨리는 손으로 몇 장을 넘긴다. 어라.. 거긴 한 페이지 가득.. 직접 손으로 쓴 글자가 적혀있는데.

오랜 세월에 잉크가 바래긴 했지만 분명 아라비아 숫자와 영어들이다. (내용은 별첨)

 

기철 : 알아보시겠습니까?

 

은수,, 대답을 못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두어장을 더 넘긴다. 매 페이지마다 빼곡이 쓰여진 숫자. 아라비아 글자.

그러다가 무슨 생각에선지 수첩의 맨 뒷장을 펼쳐본다.

맨 뒤의 안쪽 페이지에 적혀진 글자.

은수가 얼었다. 믿을 수 없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거기 오랜 세월에 희미해진 글자는 한글로 된 이름. ‘은수’라고 적혀있다.

 

 

 

 

 

 

 

 

 

 

 

 

 

 

 

 

 

 

 

 

 

 

 

 

 

첨부파일 신의9-완.hwp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