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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10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3.02.21|조회수815 목록 댓글 0

[신의] 10

 

 

 

 

 

 

 

 

 

 

#1. 약초원 은수의 방

 

기철이 손에 든 것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은수 : (손을 뻗는데)

기철 : (물건에 제 손을 덮고) 이것은 일종의 서책인 듯 합니다.

         오랫동안 공을 들인 결과. 이 안의 글자 중에 일부는 서역에서 쓰이는 숫자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는 도무지 읽을 수가 없어서요.

은수 : 나더러 읽어보라는 거죠? 일단 보자구요.

 

기철이 잠시 은수를 살피다가 손을 치운다.

은수가 그것을 끌어와서 감싸고 있는 가죽을 편다. 드디어 드러나는 안의 물건.

그것은.. 수백 년을 넘게 이어져 내려와서 거의 본 색깔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분명. 핑크색 가죽으로 된 수첩이다.

은수가 완전 얼어서 겉표지를 들여다본다. 분명히 영어로 DIARY라고 씌어져 있다.

손으로 쓰다듬어 본다. 숨이 막혀서 손이 좀 떨린다.

그러는 은수를 살펴보고 있는 기철.

 

은수 : (떨리는) 이게.. 화타의 유물이라구요?

기철 :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은수 : 그럼.. 지금부터 수백년 전에 물건이라구요. 이게?

기철 : 천년 전에 사람이지요. 화타는.

 

은수가 떨리는 손으로 몇 장을 넘긴다.

어라.. 거긴 한 페이지 가득.. 직접 손으로 쓴 글자가 적혀있는데.

오랜 세월에 잉크가 바래긴 했지만 분명 아라비아 숫자와 영어들이다. (내용은 별첨)

 

기철 : 알아보시겠습니까?

 

은수,, 대답을 못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두어 장을 더 넘긴다. 매 페이지마다 빼곡히 쓰인 숫자. 아라비아 글자.

그러다가 무슨 생각에선지 수첩의 맨 뒷장을 펼쳐본다.

맨 뒤의 안쪽 페이지에 적혀진 글자.

은수가 얼었다. 믿을 수 없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거기 오랜 세월에 희미해진 글자는 한글로 된 이름. ‘은수’라고 적혀있다.

은수가 충격으로 거의 숨을 멈추었다가 속삭이듯.

 

은수 : 이게 뭐야. 이런 게 어딨어.

기철 : (빤히 은수를 살피며) 무어라 쓰여 있습니까.

은수 : (그제야 고개를 들고 기철을 보는데 덜덜 떨고 있다. 억지로 웃어보려 하며) 

        제발.. 말해줘요. 지금.. 이거 다.. 꿈이라구.

기철 : 의선. 그게 무슨 뜻의 글자입니까.

은수 : 아주 길고.. 복잡하고.. 말도 안되는 꿈이라구. (충격 때문에 눈물이 맺히고 있다. 목이 메이며) 

        꿈이 아니면 이럴 수가 없다구. 그니까 이제 내가 잠만 깨면 이런 거 다 끝난다구. 제발..

 

은수가 떨면서 운다.

기철이 일어나 은수 쪽으로 돌아오더니 어깨를 감싸주며.

 

기철 : 대체 여기에 뭐라 쓰여져 있길래 이리 격동하십니까. 의선.. 저한테 얘기를 해보세요.

은수 : (입은 벌렸는데 충격에 질려 말이 잘 안나온다)

기철 : (뒷장 안쪽에 쓰여진 은수 이름을 가리키며) 이거 알아보시는 거지요. 역시 하늘의 글입니까?

은수 : (떨며 속삭이듯) 내.. 이름이요. 봐요. 은수라고.. 내 이름.

기철 : (놀랐다가 수첩의 앞쪽을 펼쳐 보인다. 영어와 숫자들) 이건 무슨 뜻입니까.

은수 : 모르겠어요. 모르겠지만.. (눈물을 닦아내며 다시 자세히 보는. 그중에 형광칠한 부분 읽어보는)

        일일칠하나 일일일육 일삼일오 엑스.. 무슨 좌표 같기도 하구..

기철 : 좌표요...?

은수 : 이거 어쩜 돌아가는 문이 있는 장소를 적어놓은 거 아닐까요. 

        내 나라. 내 시간으루.. 맞아. 그럼 이 좌표는..

 

하면서 수첩을 끌어잡아 자세히 보려는 순간.

일기를 채가는 기철. 은수 벙해서 본다.

 

기철 : 그렇다면 여기까지.

은수 : 뭐하는 짓이에요.

기철 : 아직은 돌려보낼 수 없어서요.

은수 : 줘요. (손을 뻗지만)

기철 : (수첩을 든 손을 멀리 보내 피하며) 미안합니다.

 

 

#2. 전의시. 혹은 약초원

 

문의 양쪽에 지키듯 서있던 장빈과 천음자가 어라..해서 안의 소리에 귀기울인다.

안에서 들리는 은수의 외치는 소리.

 

은수 : 내놔. 이리 달란 말야.

 

장빈이 문을 열려는데. 천음자가 피리를 뻗어 가로막는다.

순간 장빈이 그 천음자의 팔목의 맥을 찌르려 한다. 천음자가 피하는 틈에 장빈이 문을 벌컥 연다.

 

 

#3. 약초원 은수의 방 안

 

은수가 미친 듯이 기철에게 달려들고 있다. 기철이 들고 있는 수첩을 빼앗으려 하는 중이다.

장빈이 놀라 보는데.

은수가 손에 잡히는대로 화병을 들더니 기철을 내리친다.

기철이 어이없는 얼굴로 간단히 화병을 치우고는 달려드는 은수를 가볍게 밀어버린다.

뒤로 밀려 넘어지려는 은수를 받아 안는 장빈.

어느 틈에 기철의 앞을 가로막아 서는 천음자.

은수는 장빈을 밀어젖히고 다시 기철에 달려들려고 하며.

 

은수 : 저거 좀 뺏어줘요. 저거 봐야겠으니까. 저거 좀.

 

하는데 장빈이 은수의 허리를 잡아 못 가게 한다. 기철과 천음자 둘에게 덤비게 놔둘 수 없다.

은수가 장빈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며.

 

은수 : 이거 놔요 쫌.

 

하다가 멈춘다. 기철이 은수에게 다가서고 있다.

장빈이 은수를 자기 뒤로 보내 보호한다.

 

은수 : 내놔요.

기철 : 내드리면, 어쩌시려구요.

은수 : (진정하려고 애쓰며) 그 수첩에 적힌 글. 어차피 못 읽잖아요. 내가 읽어준다구요. 그니까 내놓으라구.

기철 : 여기 있는 글자들이 하늘로 가는 지도라 하셨지요?

은수 : 모른다니까. 모르겠으니까 좀 달라구요. 내가 알아볼테니까.

기철 : 하늘의 글자가 적힌 하늘의 서책. 그 서책에 적힌 의선의 이름. 하늘로 가는 문이 있는 장소.

         이리 귀한 책을 내드렸다가 의선이 답싹 들고 하늘로 가버리면 저는 어찌하구요.

은수 : (말이 막혀 보는)

기철 : (미소) 좀 진정이 되시거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때에 다시 이야기하지요.

 

기철이 문으로 나간다. 따르는 천음자.

은수가 벌컥 따라 나가려는 것을 장빈이 막는다.

 

은수 : 놔요.

장빈 : 저 혼자서는 저 둘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은수 : 저거 뺏어야 된다구.

장빈 : 제 능력으로 못합니다.

 

은수 맥이 빠지며 멈춘다.

 

장빈 : 어찌된 일입니까. 하늘의 책이라니요.

은수 : (다시 울음이 나오려한다)

장빈 : 의선.

은수 : 한글이었어요. 저 수첩에 적힌 글자. 내 이름. 

        근데.. 그게 참 말두 안되는데... 그럴 수가 없는데. 그거 내 글씨 같았어요. 

        내가 내 이름 그렇게 쓴다구요. 근데 난 저런 수첩 첨 보거든요.

 

장빈 이해가 안되서 본다.

은수도 어찌 더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장빈을 본다. 또 울고 싶다.

 

 

#4. 궁 내 전의시 앞길

 

기철의 무리가 전의시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다 문득 기철이 돌아본다. 거기 최영이 보인다.

최영이 옆으로 길을 비켜서며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다.

그 앞을 지나가는 기철. 그냥 지나가는가 했더니 멈춘다. 최영을 돌아본다.

 

기철 : 우달치.

최영 : (고개 들어 보는)

기철 : 하늘에 다녀왔다 했는가?

최영 : 그리했습니다.

기철 : 무엇을 보았는가. 하늘 세상이란 대체 어떤 곳이야.

최영 : 워낙 짧은 시간 머문 터라. 보고 들은 것이 거의 없습니다.

기철 : 없어?

최영 : 없습니다.

기철 : 허어.. (답답하여) 그래 기껏 하늘에 가서 의원 한분을 달랑 모셔왔다는 말인가.

최영 : 받은 명이 그랬습니다. 의원을 모셔오라.

기철 : 하늘에서 가져올 것이 그리도 없었어? 하늘에 갔다면서 눈에 뵈는 게 의원 하나밖에 없었어?

최영 : 그 말씀은.. 제가 하늘에 다녀온 것을 이제 믿으신단 뜻인지요.

기철 : 칼잡이치고는 머리가 돌아가는 자다.. 여겼으나 내 생각이 짧았다.

         하늘의 문을 열고 하늘 세상에 가서 기껏 왕의 명이나 따랐어?

최영 : (싸느랗게 웃는) 기껏 왕의 명이라 하셨습니까?

기철 : 아깝다. 아깝고 분해. (말하다 보니 점점 더 열이 받는) 

        어찌하여 너같은 밥버러지 같은 놈 앞에서 그런 문이 열렸단 말인가.

        이 땅이 복이 없었다. 이 나라가 재수가 없었어. 어찌하여 나를 놔두고 니놈이었는가.

최영 : 뭐.. 하늘의 깊은 뜻이 아니었겠습니까. 

        자칫 나으리같은 분을 하늘로 들였다가 하늘 창고를 다 도둑맞으면 어쩝니까.

        저같은 밥버러지야 기껏 의원 하나 업고 가겠지만요.

 

기철이 최영을 보다가 어허허 웃는다. 허허허허 웃으며 돌아서 간다. 웃음으로 분을 누르고 있다.

가는 기철을 보다가 최영이 기철이 나왔던 전의시 쪽을 돌아본다. 얼굴이 굳어있다.

 

 

#5. 강안전 외부 다른 일각

 

우달치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최영이 멈춰 서며 생각해보고 있다.

 

돌배 : 안 가보십니까?

 

최영이 둘러보면 모두 자기를 빤히 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최영이 옆에 붙어있는 대만을 본다. 대만이 명을 기다리며 긴장하는데.

최영이 다시 덕만을 보며.

 

최영 : 덕만아.

덕만 : 예 대장.

최영 : 약초원에 가라. 의선을 지켜드려.

덕만 : (신나서) 알겠습니다.

대만 :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의선을..

최영 : 넌 한번 놓쳤었잖아.

대만 : 그러니까 제가..

덕만 : (대만을 밀어 제끼며 말을 막으며) 걱정 마십시오. 제가 목숨을 걸고 의선을 지켜..

 

하다가 최영에게 머리통을 얻어맞는다.

 

최영 : 그 목숨 좀 아무 데나 걸지 말랬지. 주머니에 목숨 몇 개 넣어 갖고 다니냐.

덕만 : 그래도 의선께서 위험에 처하게 되시면..

최영 : 걸지마. 하지마. 그냥 지켜보기만 하라고.

덕만 : (뚱해서) 알겠습니다.

 

최영, 걸어가다가 멈칫. 부하들을 돌아본다. 모두 자신을 빤히 보고 있다.

 

주석 : 대장은.. (머뭇)

최영 : 나 뭐.

돌배 : 안 가보십니까?

덕만 : 의선께서 기다리실 건데..

 

하다가 최영이 휙 노려보는 바람에 얼른 입을 다문다.

최영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덕만의 코앞으로 다시 온다. 덕만이 다시 맞을까봐 머리를 움츠리는데.

 

최영 : 위험에 처하시게 되면 무조건 들쳐 업구 도망쳐. 맞싸울 생각하지 말고.

덕만 : (좋아서) 업어두 됩니까? 그럼 그게 좀 이렇게 만지게 되기두 할 것인데..

 

결국 따악 얻어맞는다.

 

 

#6. 전의시

 

덕만이 들어오다가 어어 해서 옆으로 피한다.

총관부 하인이 열여섯살의 이성계를 업어서 옮기고 있다.

옆에는 다른 병사가 따라붙고 있는데. 쌍성총관부 병사다. (둘 다 원나라 복장)

안에서 장빈이 급히 나오며 맞이한다. 진료실 쪽으로 옮기며 하인이 다급해서.

 

하인 : 쌍성총관부 천호장의 자제분이십니다. 어제부터 복통이 심하셨습니다. 밤새 토하시구요..

 

장빈이 안내하며 이미 이성계의 팔목을 잡아 맥을 짚고 있다.

그렇게 급해하는 사람들 뒤로 지나쳐서 안으로 들어가는 덕만.

 


#7. 약초원

 

덕만이 기웃거리며 들어오다 보면 저만치 은수가 멍하니 서있다가 덕만을 본다.

덕만 바싹 긴장해서.

 

덕만 : 우달치, 파평 윤씨 문하시중 관의 9대손 윤덕만입니다.

         의선을 지켜드리란 명을 받고 왔습니다. 우리 대장의 명이었습니다.

은수 : (대충. 늘 하던대로) 난 유은수라구 해요. 반가워요.

 

덕만이 입이 헤 벌어져서 어떻게 답을 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그런데 이미 은수는 덕만의 뒤를 보고 있다. 더기가 뜸도구를 들고 나와 전의시 쪽으로 달려간다.

 

 

#8. 장빈 진료실

 

은수가 들어서며 본다.

장빈이 침상에 누은 이성계를 살펴보고 있다.

은수가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오며.

 

은수 : 급한 환자분인가봐요.

장빈 : 장옹입니다.

은수 : 장.... 뭐요?

장빈 : 습열과 어혈이 장으로 흘러들어와 곪았습니다.

 

은수가 환자의 상태를 본다.

이성계는 복통이 심한지 한쪽 배를 누르며 참고 있다.

 

은수 : 제가 좀 봐두 되요?

장빈 : 보시겠습니까?

 

은수가 환자의 웃옷을 휙 제낀다.

이성계는 아픈 와중에 여인이 옷을 젖히니 놀라서 옷을 잡고 버티려 하는데.

은수는 어느새 복부의 위쪽을 눌러본다.

 

은수 : 어때요.

성계 : (아프고 당황하여) 거긴 별로..

은수 : (아래 쪽을 눌러본다) 여긴.

성계 : 어이구우.. (자지러지게 아픈)

 

은수가 옷을 더 젖히더니 배에 귀를 대고 장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

뜸을 준비하며 그러는 은수를 보고 있는 장빈.

 

은수 : 충수염 같은데요. (성계의 이마를 집고 다른 손으로 자기 이마를 짚어 열을 재며) 

        언제부터 아팠어요? 발열이 있고.. 구토증세도 있었어요?

성계 : (아픔과 당황함으로 말을 잘 못하는)

장빈 : 맥이 홍삭합니다. 지금쯤 성농이 되었을.

은수 : (성계의 손목 맥을 짚고 시계를 보며) 우리 말로. 내가 아는 쉬운 말로 좀.

장빈 : 홍수가 난 듯 맥의 폭이 넓고 힘차며 그 흐름이 매우 빠릅니다. 화농.. 곪았다는 얘기죠.

은수 : CT까지 안해봐도 알겠네요. 개복해야 되요. 내 수술도구. 아.. 뺏겼지. 참.

장빈 : (더기에게) 가미의이인탕하고 대황목단피탕을 준비해줘.

더기 : 어어.. (하며 달려간다)

장빈 : (뜸을 놓기 시작한다)

은수 : 뭐하는 거에요.

장빈 : 이렇게 뜸을 놓고 약을 먹여 환자의 몸 안에 있는 농혈을 다 빼낼 생각입니다.

 

은수 갑갑해서 보다가 문득 돌아서서 나간다.

장빈이 힐끗 봤지만 지금 바쁘다. 다시 환자에게 집중.

 

 

#9. 전의시 앞 길

 

은수가 빠르게 걸어 나온다. 그 뒤를 안절부절 덕만이 따르며.

 

덕만 : 저기.. 나가시면 안되는데.. 어디 가시는지.. 우리 대장이 알면..

은수 : 덕만씨.

덕만 : (바싹 자세를 바로하며) 예 의선.

은수 : 내가 좀 길치인데다가 맨날 끌려 다니기만 해서 길을 잘 모르겠네. 안내 좀 해줘요.

덕만 : 안내입니까.

은수 : 덕성부원군이란 사람. 그 집이 어느 쪽이에요?

덕만 : (완전 놀라서) 예에?

 

그러나 은수는 덕만의 팔을 잡아 끌고 간다.

 

은수 : 급해요. 천공이 되기 전에 수술해야 되거든요.

 

덕만, 은수에게 잡힌 팔 때문에 완전 뻣뻣해져서 따라가긴 하는데 이를 어째 해서 뒤를 돌아보며.

 

 

#10. 기철의 서재

 

기철이 돌아본다.

 

기철 : 의선이?

양사 : 대문 앞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들어오진 않겠다. 내 물건 내놔라. 이러면서.

 

 

#11. 기철의 집 대문 앞

 

사병들이 줄줄 나오며 자리를 잡는다.

덕만이 칼집을 앞으로 돌려 언제라도 뺄 수 있게 자세를 잡으며 은수의 옆에 버티어 서는데.

은수가 덕만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은수 : 좀 봐봐요.

덕만 : (움찔) 뭘..

은수 : 나 웃는 거. (웃어 보이며) 여유 있어 보여요? 아님 역시 어색한가? (또 웃어보이는)

덕만 : (벙해서) 이..이쁘십니다.

 

은수가 한심해서 보는데. 덕만이 후딱 은수의 앞으로 돌며 막는다.

기철이 천음자와 화수인과 나오고 있다. 뒤에는 양사도 졸레졸레.

 

은수 : (흠.. 헛기침. 연습한 미소를 띄우며 덕만의 옆으로 빠져나와) 안녕하셨어요.

기철 : 집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겠다 하셨다면서요.

은수 : 임금님 명이 그렇답니다. 다른 집은 안된다. 전의시에만 있어라.

기철 : (싱긋) 그래.. 의선의 서책이 아무래도 궁금해서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은수 : 아뇨. 내 수술도구 찾으러 왔어요.

기철 : 수술.. 도구?

은수 : 나 의사.. 의원이잖아요. 내 도구가 있어야 내 일을 해요.

         그 도구 댁이 백년 갖고 있어봤자 쓸 일 없으니까. 그냥 주세요.

기철 : (기웃해서 보는) 딜.. 안합니까? 그냥 주면 재미가 없는데.

은수 : 아니 벌써 포기하신 거에요?

기철 : 내가요. 뭘요.

은수 : 내 마음 가져 보겠대매. 해보시라구요. 우리가 한마음이 되면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서

         그 수첩에 뭐가 써있는지 연구도 같이 하구.

기철 : 나란히..

은수 : 혹시 알아요? 거기 하늘 가는 좌표가 제대로 적혀 있다면 우리 같이 하늘나라 갈 수도 있잖아요.

기철 : ... 같이.

은수 : 가보고 싶지 않으세요? 하늘나라?

기철 : (말없이 보는)

은수 : 근데 내가 오늘은 좀 바빠서요. 그니까 주세요. 내 도구.

 

하며 은수가 한 손을 뻗었는데. 기철이 그 은수의 손을 내려다본다. 

손바닥을 내밀고 있는 은수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은수도 기철의 시선을 알아채고 얼른 다른 손으로 그 손을 감싸 숨긴다.

 

기철 : (미소 지어) 저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은수 : (노려보는)

기철 : 지금 저에게 의선은 이 나라보다 중합니다. 

        내일은 어찌 될지 모르겠는데 오늘. 이 순간은 그렇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 부디 자중하세요. 곧.. 그 전의시에서 빼내드릴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고.

 

하며 미소 짓는다.

 

 

#12. 강안전 집무실 앞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충석이 다가오는 최영을 위해 문을 열어준다.

 

충석 : 내내 기다리셨습니다.

 

 

#13. 강안전 집무실

 

공민왕이 두루마리를 펼쳐 보는 중.

그 앞에 최영. 편히 열중쉬어 자세로 서서.

 

공민 : 익재 이제현이라.. (두루마리를 살펴 읽으며) 이 자를 정승감으로 생각한다.

최영 : 생각은 합니다만. 전하의 부르심에 냉큼 달려와 줄지는 모르겠습니다.

공민 : 덕성 부원군이 두려워서?

최영 : 전하의 부름에 응한다는 것은 곧. 덕성부원군과 맞서겠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두렵지요.

공민 : (씁쓸히 웃는) 내가 주는 것이 벼슬이 아니라 저승 명부가 될 수도 있다.

         (붓을 들어 이름 옆에 점을 찍다가) 이 위의 이름은 누구요. 목은 이색?

최영 : 익재 선생의 수제자입니다. 전하의 사람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방통을 얻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공민 : 이 명단을 준 것이 수리방이라 했나요.

최영 : 예. 겉으로는 약을 팔고, 뒤로는 정보를 팔면서 연명하는 자들이지요.

         그 수장이 저의 스승님과 동문이셨던 사숙이십니다.

공민 : 그들도 내가 가질 수 있습니까?

최영 : (망설이는)

공민 : 왜요.

최영 : 저를 보고 임금나부랭이 밑의 개..라고 부르는 자들이라서요.

 

 

#14. 만보네 방 내부

 

최영이 밥을 먹고 있는 앞에 만보와 마마.

 

만보 : 나의 사형이며 너의 스승인 문치후. 누구에게 어찌 죽었는지 잊었냐.

최영 : 기억하죠.

만보 : 주인에게 충성하던 개가 말이다. 주인이 잡아 먹으려고 옆에 물 끓여 놓고 두들겨 패. 

        왜. 두들겨 패야 살이 연해지거든. 그런데 줄이 끊겨서 개가 도망을 갔어. 왜. 아프니까. 

        그런데 주인이 불러. 그럼 또 꼬리 치면서 와요. 왜. 개니까. 니 스승. 그렇게 죽었어.

최영 : 같은 왕이 아니잖아요.

만보 : (마마에게) 같은 왕이 아니래. 왕이면 다 왕이지. 같은 왕이 아니래. 허어..

마마 : 뜨거운 밥 줬더니 애가 쉰소리하구 자빠졌네. 고만 먹어. 

        (하며 밥상을 뺏어가는. 최영의 손에 들려있는 숟가락도 뺏는)

만보 : 가라. (하더니 돌아앉는다) 다신 이 쪽으로 발길도 하지 마.

최영 : 사숙.

만보 : 부르지도 마.

 

 

#15. 강안전 집무실

 

공민 : (어이없어 본다)

최영 : (슬쩍 웃는)

공민 : (이색의 이름 옆에 방점을 찍으며) 스승도 제자도 저자거리 왈짜도 다 만나보겠어요.

최영 : 만나신 다음엔?

 

이때쯤이면 최영 공민 둘은 대화하는데도 호흡이 착착 맞는 느낌.

 

공민 : 덕성부원군은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것이 사는 낙이라 하더군요. 

        (두루마리를 내주며) 나도 모아보려고요. 사람의 마음.

최영 : (슥 웃는다. 웃다 보면)

공민 : (불퉁해서 보며) 지금 비웃었습니까?

최영 : 그냥 웃었습니다. (두루마리를 받아) 분부대로 준비하겠습니다.

 

 

#16. 궁 회랑

 

두루마리를 들고 나오는 최영. 기다렸다는 듯 얼른 따라붙는 대만.

 

대만 : 저기. 그..

최영 : 누구

대만 : 의선이요.

최영 : (멈췄다)

대만 : 덕성부원군 집에 가셨습니다.

최영 : (바로 멱살을 잡아) 뭐야.

대만 : 다시 오셨습니다. 지금 사람 고치고 계십니다. 그 도구 가지고.

 

최영이 번쩍 고개를 든다. 대만을 치우고 가려다가 멈추더니 대만에게 두루마리를 넘긴다.

 

최영 : 부장에게 갖다주고. 거기 방점 찍힌 자들. 소재 파악하라구 해.

대만 : 부장.. 방점.. 소재..

 

대만이 열심히 외우는데 최영은 이미 움직여 가고 있다.

 

 

#17. 장빈의 치료실

 

수술이 거의 끝무렵이다.

이성계의 머리맡에서는 약원이 앉아 입을 가린 헝겊 위에 마취약을 적시고 있고.

옆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은수의 수술도구들.

은수는 루뻬를 켜고 마지막 봉합 중이고. 장빈은 옆에 서서 마지막 실을 끊어준다.

더기가 옆에 저제탕 그릇을 놓아주고. 서로가 착착 손발이 맞는 느낌.

그러다가 앗.. 은수가 쓰고 있던 루뻬의 불이 꺼졌다.

은수가 멈추고. 장빈이 쳐다보고.

 

 

#18. 약초원 정원

 

은수가 앉아서 루뻬를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있다. 불 켜는 데를 만져보지만 이미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에이.. 한숨. 옆으로 틱 던져놓는다.

이만치에서 그런 은수를 지키던 덕만. 돌아본다. 후딱 일어나서 자세 잡는다.

 

덕만 : 대장.

 

은수가 고개 들어본다. 거기 최영이 들어서고 있다. 불편한 만남이라서 불편한 얼굴 그대로.

덕만의 앞을 지나갈 때 덕만을 무섭게 노려보고. 덕만.. 이크.

은수의 앞까지 오더니 무뚜뚝하게 서서.

 

최영 : 덕성부원군 집에 갔었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은수 : .. 그런데요.

최영 : (말이 막혔다가) 전하께서 의선을 그 집에서 빼내기 위해 얼마나 애쓰셨는지 아신다면...

은수 : 쓸데없는 짓 하셨어요.

최영 : ..

은수 : 말했잖아요. 나 그 집에서 잘 지낸다고. 

        그러니 굳이 역모니 뭐니 사람 갖고 놀면서 그러지 않으셔도 됐다구요.

최영 : ..(이런 말싸움 별로다. 허. 했다가) 그렇습니까.

 

더 말하고 싶지 않다. 돌아서는데.

 

은수 : 그건 미안하게 됐어요. 경창군 마마. 독을 당했다는데.

최영 : (돌아보는)

은수 : 내가 의사면서 아무 것도 못하고 헤멘 거. 그래서 당신 손으로 그렇게.. 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최영 : ..

은수 : 그때 그 하늘문 앞에서 내가.. 당신 찔렀던 것도 미안하구요.

최영 : (뭔가 이상하다)

은수 : 그래도 살아줘서 고맙고.

최영 : (은수를 향해 똑바로 선다)

은수 : 맨날 구박하구 귀찮아 죽겠으면서도 나 지켜줬던 거 알아요. 고맙게 생각하구 있어요.

최영 : 뭡니까.

은수 : 이젠 내가 알아서 할게요.

최영 : 뭘 알아서 한다는 겁니까.

은수 : 나 이제 덕성부원군이란 사람. 어떻게 상대해야 될지 알 거 같아요.

         오늘 가서 한번 시험해봤는데 먹히는 거 같드라구요.

최영 : (어이없다)

은수 : 그 사람 나한테서 원하는 게 있거든요. 그걸로 거래만 잘 하면 내 수첩도 찾을 수 있을 거 같고.

최영 : 그게 뭡니까. 그 자가 원하는 거.

은수 : .. 알 거 없구요. 내가 알아서.

최영 : 뭡니까.

은수 : (어이구. 저 성질 해서 보다가) 내가 역사를 좀 알잖아요. 

        그 사람이 원하는 건 앞날에 대한 약간의 정보. 그니까..

최영 : 그런 걸 알려주겠다고 했습니까? 그 자한테?

은수 : 알려주는 척만 할 거에요. 듣고 싶어하는 것들 대충 지어서 말해줄 수도 있고.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지가 어떻게 알겠어요.

최영 : (초조해서) 임자. 덕성부원군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 모르는 거 같은데.

은수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제 나한테 신경 쓰지 말라구요. 

        내가 알아서 내 세상으로 돌아갈 길, 찾을 거니까.

        (일어서더니) 다시 못 만나게 될지 몰라서 미리 인사하는 거에요. 

        그동안 미안했다고. 고마웠다고. 그리고.. 웬만하면 싸우지 마요. 다치지 말고. 때가 되면 좀 먹고.

 

최영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오는데.

은수 슬쩍 고개 숙여 보이더니 안으로 간다.

최영, 서 있다가 돌아 나온다. 나오는 길에 멀뚱히 서있는 덕만을 거칠게 휘어잡아. 성이 나서 보다가.

한손으로 안을 가리키며 겨우 말한다.

 

최영 : 저 분. 다시 밖에 기어나가게 하면. 너 알아서 해.

덕만 : 알겠습니다.

최영 : 다시는...

덕만 : 절대. 막겠습니다.

 

최영, 성이 안 풀려 보다가 덕만을 밀쳐놓고 나간다. 왜 자기가 이렇게 성이 나는지 잘 모르겠다.

 

 

#19. 은수 방 쪽

 

은수가 스윽 고개를 내밀어 본다. 저기.. 가버리는 최영을 본다.

냉냉하게 대해놓고 나서 맘이 별로 편치는 않다.

 

 

#20. 전의시

 

언짢은 기분으로 나오던 최영이 문득 선다. 뭔가 기척을 느꼈다. 지붕 쪽을 쳐다본다.

 

 

#21. 지붕 위

 

천음자가 피리를 안은 자세로 앉아있다.

조용히 손가락을 자기 코에 대서 숨소리를 막는다. 미동없이 그대로.

 

 

#22. 전의시

 

최영, 뭔가 찝찝하지만 그냥 나간다.

 

 

#23. 궁 내부

 

충석이 급히 걸어오고 있다. 그런 충석을 부지런히 따르면서 대만이 말하는 중.

 

대만 : (두루마리를 건네며) 여기 방점 찍힌 사람들. 소재. 파악.

충석 : (대충 두루마리 품에 넣으며) 근데 이 돌배놈 어디 간 거야.

대만 : 거기 방점. 소재

충석 : (자꾸 성가시게 하는 대만의 머리를 밀치며) 알았다니까.

 

하다가 저만치 오는 돌배를 보더니 버럭.

 

충석 : (한대 패고) 을조 순찰 어떻게 된거야. 왜 그리 구멍이 많아. 제대로 배치 안할래.

돌배 :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충석이 맘에 안들어서 움직이려다가 마주오는 장희와 부딪힌다.

장희가 충석의 품에 거의 안기다시피 했다가 넘어질 뻔한 것을 충석이 겨우 잡아준다.

충석. 완전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는데.

장희가 부끄러운 듯 고개 숙여보이고 지나간다.

그러는 장희를 대만이 돌아본다. 뭔가 맘에 안든다.

 

 

#24. 궁의 다른 일각

 

장희가 들어선다. 품에서 두루마리를 빼낸다. 충석의 품에서 빼낸 것이다.

 

 

#25. 기철의 서재

 

양사가 그 두루마리를 기철의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양사 : 주상께서 모으고자 하는 자들의 명단입니다.

 

그 앞에서 기철이 오락가락하며 생각하는 중.

 

기철 : 의선이 그 입으로 그리 말했다고? 앞날에 대한 정보. 알려주는 척만 하겠다.

         내가 듣고 싶어하는 거. 대충 지어서 말해줄 수 있다?

천음자 :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어찌 알겠느냐. 그리 말합디다.

기철 : (웃는다)

화수인 : 그 의선이란 계집. 다 허풍 아니요? 

          주상부터 왕비. 우달치 대장. 다 한통속이 돼서 우리 갖고 노는 거 아니냐고.

기철 : 의선이 치료했다는 자는 어찌 됐느냐.

천음자 : 의술은 확실히 있는 모양입디다. 다 죽어가던 애가 반나절만에 살아났다는 거 보니.

화수인 : 사형. 더 웃음거리 되기 전에 포기하지. 하늘문이니 하늘세상이니..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요.

기철 : (생각하는)

양사 : (조심스레) 이 명단은 어찌.. 할까요.

기철 : 나를 갖고 논 것이라면. (두루마리를 들어 흔들며) 그자들 하나하나 그 값을 치러야지.

        허나.. 아깝다. (천음자를 보며) 조금만 더.. 참으로 참이 아니란 확신이 설 때까지 알아보고 싶다.

       왜냐면.. 난 그 하늘 여인. 참이기를 너무나 바라고 있으니까.

 

 

#26. 궁의 일각

 

최상궁이 걸어오고 있다. 슬쩍 주위를 살피고 한쪽으로 들어선다.

 

 

#27. 궁의 으슥한 곳

 

나란히 앉아있는 최상궁과 최영.

 

최상궁 : 앞날을 본다.

최영 : 말을 그렇게 해요.

최상궁 : 그럼 그 의선이란 자가 점쟁이라는 거냐?

최영 : 점을 치는 게 아니고 하늘에 무슨 기록부가 있는데..

         (말하다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구요. 덕성부원군이 그걸 믿고 있다면 어쩔 거 같으냐구.

최상궁 : 한마디루 기철이 그 놈은 새 장난감 좋아하는 어린애 같은 놈이야.

            의선이라는 여인네를 새 장난감으로 여겼다면.. 일단 갖고 놀겠지.

            장난감이란 건 갖고 놀다 싫증나면 버리거나. 찢거나. 부숴버리는 거야.

최영 : .. (그런 비유가 듣기 싫다) 고모는 말을 할 때 좀 과장하는 버릇 있는 거 알아요?

최상궁 : 금선이라고 아냐? 원나라에까지 이름이 알려졌던 화가였어.

         하도 그림이 실제같아서 금선이 꽃을 그리면 나비가 와 앉는다고 하든가.

         기철이 그 놈이 금선에게 반했어. 그래서 기와집을 사주네 놀이배를 사주네 난리도 아니었지.

최영 : 그게 뭐.

최상궁 : 그렇게 이뻐 죽어가다가 어느 날 금선이 그림을 그렸는데 그게 마음에 안든 거야.

            기철이 자기를 그리라 했는데 금선이 뱀을 그렸다든가..

            그날 밤 금선의 두 손을 자르고. 두 눈알을 파내서 구당천에 내다 버렸드란다.

최영 : (얼어서 보는)

최상궁 : 다음날 저녁까지 죽지도 못하고 기어 다니는 걸 아무도 도와주지도 못했다지. 

          기철이 그놈의 화를 살까봐.

 

최영이 멈췄던 숨을 후 내쉬더니.

 

최영 : 장난감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최상궁 : 말을 잘 들어야지. 비위 잘 맞추고. 좀 더 오래 이쁨 받게.

최영 : 그게.. 안 될 거에요. 남의 비위를 맞추고.. 그럴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최상궁 : 내 보기에도 그래 보이드군.

최영 : .. 도망시켜야 되나.

최상궁 : 어디로. 기철이 손아귀가 고려를 넘어 중원까지 뻗쳐 있는데. 무슨 수로.

최영 : (생각에 잠기는)

최상궁 : 왜 니가 데리고 도망치게? 근데 그러기엔 너 일을 너무 많이 벌려놓은 거 아니냐? 

          감당은 할 수 있는 거야?

 

최영, 답답하다.

 

 

#28. 저자거리 혹은 길거리

 

대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약장사 패거리가 지들끼리 떠들며 걸어오고 있는데.

그 중에는 창을 둘러멘 지호도 있다.

그러다 문득 지호가 긴장을 한다. 한곳을 본다. 달려오는 말발굽소리.

지호가 슬그머니 옆으로 빠진다.

저 앞에서 대여섯 필의 말이 달려오고 있다. 우달치 부대원들이다.

그 중에는 돌배. 순식간에 약장사 패거리들을 둘러싼다.

놀란 약장사 중의 하나가 항의한다.

 

약장사 : 아이구 나으리들. 저희는 그냥 떠돌이 약장사 패거리들입니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돌배 : 몰라 나두. 우리가 왜 이러는지.

 

우달치부대원들이 우르르 말에서 내리더니 다짜고짜 약장사 패거리들의 등짐을 빼앗고 꿇리고 포박한다.

이미 담 모퉁이 이쪽으로 피한 지호가 그런 모습을 보고 있다. 놀라서.

 

 

#29. 저자 거리 일각

 

우르르 몰려서서 구경하는 행인들.

그들이 보는 가운데, 살포시 걸어 나오는 신비거사. 야릇한 미소를 사방에 날리며 구경꾼들 앞을 지나다가

어느 여인이 안고 있는 바구니를 들여다본다.

여인이 어머머 해서 수줍어하고 옆의 친구들하고 웃고.

거사가 여인의 바구니에서 사과를 꺼내든다. 미소를 날려주고 다시 가운데로 간다.

폼을 잡으며 서더니 우아하게 팔을 뻗어 한쪽을 가리킨다.

사람들이 모두 그쪽을 돌아보면, 거기 지붕 위에 우뚝 서 있는 시울. 무뚝뚝한 얼굴로 화살을 뽑더니 활에 잰다.

거사가 구경꾼들을 향해 미소를 여기저기 날리더니 사과를 공중으로 높이 던져 올린다.

높이 오르는 사과. 시울이 화살을 당긴다. 겨냥한다. 사람들이 집중해서 본다.

쌔앵 시울을 떠난 화살이 공중에 오른 사과에 정확하게 박힌다.

화살이 박힌 사과가 핑.. 옆으로 튕기다가 떨어져 내린다.

그때 아래서 기다리던 거사가 순식간에 칼을 뽑아 사과를 향해 휙휙 날린다.

구경꾼들이 다 벙해서 보는데.

거사가 어느새 네 조각이 된 사과를 양손에 두 조각씩 받쳐 들고 입에는 화살을 물고 서서 모두를 둘러본다.

감탄과 박수가 요란한데.

약장사네 졸개들이 재빨리 약상자를 받쳐 들고 사람들 사이를 돌며 장사를 시작한다.

지붕에서 떨어져 내린 시울이 거사에게서 화살을 받아들다가 문득 긴장한다.

거사도 여기저기 인사를 날리다가 멈춘다. 둘이 서로 마주본다.

동시에 돌아보는 곳.

구경꾼들 뒤에서 우르르 달려드는 우달치 대원들. 장사를 하는 약장사 패거리들을 다짜고짜 덮친다.

도망가려는 이들은 사정없이 잡아채고 물건들은 압수한다.

난리 와중에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하는 거사와 시울.

 

 

#30. #27 객주집 / 밤

 

마당의 평상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최영. 술병을 들어 따르려는데 비어있다.

주모가 새 술병을 내려놓아준다. 그 옆에 주저앉으며 사방을 둘러보는 대만.

 

최영 : (자기 사발에 술을 따르며) 고만 좀 두리번대지.

대만 : 예. (하면서도 힐끔힐끔)

최영 : 넌 아직 술이 안 되냐?

대만 : 마시면.. 죽습니다. 제가 아니라.. 옆에 누군가가..

최영 : 한두잔만 마셔두 도저히 통제가 안돼?

대만 : 안됩니다. 근데 저기..

최영 : 알어. (술을 마시는)

 

대만, 저도 모르게 바로 도약할 듯이 웅크린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최영은 또 술을 빈 사발에 따른다. 술잔을 드는 것과 동시에 날아온 화살이 술상에 콱 박힌다.

대만의 손칼이 휙 뽑아져 나오는데. 최영은 덤덤하니 술을 마신다.

순간 사방으로 날아 내리는 자들. 시울 지호 거사 등이 최영의 양 옆과 뒤를 포위한다.

순간 튀어 오르려는 대만의 팔목을 잡아 제지하는 최영.

이미 둘러싼 시울은 활을 재어 겨누고 있고, 지호는 창을 휘둘러 자세를 잡고 있으며

거사는 스윽 칼을 빼서 최영의 뒷덜미를 겨눈다.

술잔을 내려놓는 최영. 순한 얼굴로 앞을 본다.

어느새 만보와 마마가 술상 앞을 막아 앉는다.

 

최영 : 사숙.

만보 : (성이 나있다) 니놈이 꼴통인 건 일찍이 알고 있었다만 이렇게 드러운 개자식이 될 줄은 몰랐다.

마마 : 개가 무슨 죄야. 왜 맨날 개를 빗대.

만보 : (마마에게 벌컥) 그럼 머라 그래.

마마 : 앞잽이.

만보 : (최영에게) 왕의 앞잽이가 되드니 눈에 뵈는 게 없지. 니 사숙과 사형제들을 팔아넘기고 얼마 받기루 했냐.

마마 : 설마 돈을 받기로 했겠나. 최영이 이놈은 돈을 줘봤자 어떻게 쓰는지두 모르잖아.

만보 : (마마에게 버럭) 그럼 뭘 받어서 이 놈이 이렇게 돌아버렸는데.

마마 : (최영에게) 왜 그러냐 너. 우리 애들 장사하는 데마다 쫓아와서 깽판치고. 물건 뺏고. 줘패고.

만보 : 니놈의 왕이 그리 시키드냐. 그 발 아래 쫓아가서 왈왈 댈 때까지 우리 애들 잡아 족치라고 니 왕이 시켰냐고.

최영 : 직접 여쭤보세요.

만보 : ... 뭐?

 

하는데. 순간. 사방에서 우르르 포위를 해오는 우달치 부대원들. 위장을 하기 위해 바람막이들을 둘러쓰고 있다.

순간 튀어나가며 창을 휘두르는 지호. 그 앞을 막아서며 창을 받아내는 돌배.

그 옆에서 주석이 어느새 지호에게 칼을 겨누고. 시울이 화살을 재어 잡아당기는데.

어느새 뒤로 붙은 대만이 손칼로 시울의 목을 겨눈다.

거사가 주위 눈치를 보더니 스윽 칼을 도로 검집에 집어넣는다.

충석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서는 공민. 역시 위장하기 위해 수수한 겉옷을 걸치고 있다.

만보와 마마가 멍해서 보는데.

어느새 일어선 최영이 옆으로 비키며.

 

최영 : 주상전하십니다.

 

만보와 마마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슬금슬금 바닥으로 내려선다.

만보가 엉거주춤 허리를 숙여 절하다 보면 옆에서는 마마가 어느새 당에 넙죽 엎드려 있다.

내키지 않은 채 자기도 엎드리는 만보.

 

공민 : 대외로는 만보네 약장사 패거리. 알고보면 고려의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수리방. 

        그대 둘이 만보 남매인가.

 

만보가 휙. 최영을 노려본다. 최영이 식 웃어보인다.

공민이 최영이 앉았던 자리에 앉는다.

그러는 배경으로 우달치들이 거사며 시울네 패거리들을 제압해서 바닥에 사정없이 꿇리고 있다.

 

공민 : 과인이 부른다 해도 오지 않을 것이고, 찾아가면 더 깊이 잠적할 것이라 들었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어.

 

공민이 술병을 들더니 만보에게.

 

공민 : 내 술 한잔 받겠는가.

 

 

#31. 약초원 마당 / 밤

 

저만치 은수의 집이 보이는 장소.

피리를 안고 가부좌로 앉아있는 천음자가 조용히 내기를 운용하는 중이다.

천음자의 귀 쪽으로 줌인.. 그러면서 점점 크게 들리는 은수의 소리.

 

은수소리 : ... 하늘의 기록은 이렇게 되어있지요. 고려는 이제 계에속 발전하여 코리아가 될 것이다.

               전 세계는 이제 우리를 코리아라 부르게 되는데 여기서 전 세계라 하는 것은..

 

 

#32. 은수의 방

 

은수가 서서 오락가락하며 마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처럼.

 

은수 : 어.. 그러니까 이때쯤에는 전 세계에 나라가 무지 많아지는데..

 

하다가 앞을 본다. 거기 장빈이 앉아서 난처한 얼굴로 보고 있다.

 

은수 : 이런 거 별로 재미없죠.

장빈 : 재미없습니다.

은수 : 그럼.. 뭘로 하지. 역사 이런 거 말고 차라리 과학 기술을 가르쳐준다 그럼 어떨까요.

        전기.. 이런 건 좀 너무 나가는 거 같고, 고려시대면 뭐가 필요하지. 화약? 총? 어이구 무기는 안 되구.

        상수도 하수도 이런 거 어떨까요. 이건 백성들 건강에도 아주 중요한 건데.

       그래. 하는 김에 수세식 화장실. 나 이거 진짜 필요하거든요.

장빈 : 그래서. 그런 하늘의 지식을 알려주고 의선의 수첩이란 것을 찾으시겠다.

은수 : 그렇죠. 그 수첩에 적힌 좌표인지 그 숫자를 풀면 어쩌면 나 돌아갈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 거 같아요.

장빈 : 그게 돌아갈 방법인지는 확실하구요

은수 : 모르죠. 모르니까 알아봐야죠.

장빈 : 의선.. 나 역시 대장하고 생각이 같습니다.

은수 : 무슨 생각이요.

장빈 : 덕성부원군. 참 무서운 사람입니다.

은수 : 괜찮아요. 나 강남에 살던 사람이에요. 거기 큰길에 나가면요. 

        서너배쯤 더 무서운 사람들이 수천명씩 오락가락해요.

        겉으로는 다 웃고 있는데 그 속이 얼마나 무서운데요.

장빈 : 하늘나라에 무서운 사람들이라..

은수 : 실은요. 나 살던 데 하늘나라가 아니에요. 내가 최영씨한테는 한번 말했는데.

         뭐 그 인간 내 말은 죄다 개무시하니까 기억도 못할 거에요.

장빈 : 하늘 나라가 아니다.

은수 : 내가 살던 데는..

 

 

#33. 약초원 마당 / 밤

 

진기를 일으켜 듣고 있는 천음자. 귀쪽으로 가까이 샷.

 

은수소리 : 그러니까 미래라고 해야되나.

 

하는데 따악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며 천음자가 고통스러워한다.

천음자가 찡그리고 앞을 본다.

바로 앞에서 다시 따악 박수를 치는 덕만. (딴에는 천음자가 자는 줄 알고 박수를 쳐서 깨웠다)

 

덕만 : 이봐요. 잘래믄 자기 집에 가서 자든가. 왜 남의 집 마당에 그러구 앉아서 조냐고.

천음자 : (놓친 소리가 안타까와서 은수의 방 쪽을 보는)

덕만 : 뭘 봐. 어딜 보는데. 어이 허연 머리털. 그거 암만 봐두 기분이 나쁜데 말이지.

      (칼을 좌악 빼들더니) 기분 나쁘니까 그냥 여기서 니놈 베어버리구. 

       죄명 같은 건 나중에 만들까 하는데. 응? 니놈이 밤중에 의선을 덮칠라구 했다든가.. 어때?

 

천음자가 한심해서 덕만을 보다가 일어선다.

덕만이 펄쩍 뛰어 뒤로 물러나 간격을 벌이며 칼을 겨눈다. 진짜 싸워볼 생각인데,

천음자는 안고 있던 피리를 등에 꽂더니 몸을 돌린다. 이런 애한테 말려들 생각이 없다.

덕만은 가는 천음자를 칼을 겨눈 채 계속 따라가며.

 

덕만 : 왜 그냥 갈라고? 함 붙어보구 가지. 어이 허연 머리털. 도망은 이따 가고. 한판 하지.

 

 

#34. 객주집

 

만보와 마마가 술상 맞은편에 불편하게 꿇어 앉아있다.

만보가 술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잔을 내려놓는다.

술상 바로 앞에는 공민왕.

공민의 바로 옆에 우뚝 서 있는 최영. 느긋한 자세로 서있지만 눈길은 날카롭게 만보를 보고 있다.

 

공민 : 어찌 생각하는가.

만보 : ... (마마를 돌아보는) 어찌 생각한다구 하지.

마마 : 인재를 아끼시어 이처럼 천한 것들을 찾아주시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고. 이만 물러가면 안될까?

 

둘의 대화를 듣고 공민이 어이없어 최영을 본다.

 

최영 : 전하. 이렇게 무서운 집단은 내 사람으로 만들든가 아니면 싹도 남지 않게 처리해야 합니다.

 

만보 마마 믿기지가 않아서 최영을 본다. 최영은 당연하다는 듯.

 

최영 : 여기서 놓치면 다시 잡아오기 어렵습니다. 허니 이 자리에서 결정하여 주십시오.

         (칼에 손을 얹으며) 이 자들. 거두시겠습니까. 없애시겠습니까.

만보 : 너.. 최영이 니놈이.. (폭발 직전인데)

최영 : 전하. 명을 내리십시오.

 

절컥. 최영의 검이 한뼘 칼집에서 나온다. 

사방의 우달치 부대원들이 일제히 절컥절컥 발검 자세를 취한다.

 

공민 : (난처하다는 듯) 이보게 만보. 어찌할까.

 

만보가 부들부들 떨며 옆을 본다.

거기 우달치 부대원들에게 에워싸여 꿇려 앉혀있는 거사 시울 지호 등이 보인다.

 

공민 :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둘 중 하나를 택할 생각이네.

         내가 가야 하는 왕의 길. 피를 뿌리더라도 좀 쉽게 지름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좀 늦더라도 정도를 걸어 사람답게 갈 것인가.

         오늘. 이 자리에서. 자네를 놓고 결정할 것이야. 그러니.. 어찌할까.

 

 

#35. 객주 앞 길 / 밤

 

검은 바람막이들을 둘러 입은 우달치 부대원들이 엄중히 에워싸고 지키는 객주집.

입구 쪽을 지키던 주석이 뭔가 이상해서 한쪽을 본다.

거기 어둡게 뻗어있는 길. 주위를 살피지만 별다른 기척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주석이 다른 데를 본다.

그런데 아까 보았던 그 길.. 주우욱 들어가서 옆의 어느 지붕. 혹은 나무 위.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것. 화수인이다.

화수인이 서역에서 구입했음직한 초기의 망원경으로 주욱 객주집 쪽을 살피고 있다.

보고 싶은 것을 다 봤는지 망원경을 눈에서 떼며 생긋 웃는다.

 

 

#36. 궁안 회랑

 

은수와 장빈이 걸어가고 있다. 그 뒤를 덕만이 수행한다.

장빈이 슬쩍 옆의 은수 기색을 살핀다. 은수는 뭔가 우울한 얼굴이다.

생각에 잠겨 있어서 코너를 돌아야 하는데 혼자 직진하다가 아.. 해서 장빈이 기다리는 쪽으로 돌아선다.

그쪽부터는 무각시들이 안내하고. 덕만은 멈춰서 기다린다.

 

 

#37. 곤성전 정원 일각

 

담 앞을 지나가는 무각시들. 두명씩 짝을 지어 순찰 중이다.

무각시 중의 하나가 멈춘다. 뭔가 기척을 들었다. 뒤를 돌아본다.

함께 순찰하던 동료도 뒤를 돌아본다.

거기 담장 위 기와의 일부 조각이 누군가 밟았던 듯. 여운을 남기며 부스스하다가 떨어져 내린다.

무각시 둘이 시선을 마주치고 일제히 검을 빼든다.

기와담장 쪽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서는데, 뒤에서부터 쌔액 날아온 장침이 무각시1의 목에 꽂힌다.

윽.. 또 다른 장침이 옆의 무각시2에게 날아오지만 무각시2가 재빨리 옆으로 구르며 피한다.

무각시1은 마비침에 마비되며 쓰러지고 무각시2가 튀어오르듯 뒤를 향해 방어자세로 선다.

거기 독침발사기를 들고 서있는 장희.

무각시2가 더 생각할 것 없이 검을 휘둘러 공격해 들어간다.

장희와 무각시의 공방이 몇 합 이루어지기도 전에 무각시2는 뒤에서 휘두른 검을 맞고 소리없이 쓰러진다.

그 뒤에는 천음자.

 

 

#38. 노국의 처소

 

은수가 노국의 목의 붕대를 떼고 손전등으로 살펴본다.

그 뒤 좀 떨어진 곳에서는 공민왕이 안보는 척 보고 있다.

장빈이 그 옆에서 그런 공민왕을 보고 모르는 척 해주고. 최상궁은 노국 뒤에.

 

 

#39. 궁의 일각

 

충석과 마주 선 최영. 그 옆에 안절부절 대만.

 

최영 : 무슨 소리야. 명단을 잃어버리다니.

충석 : 그게 .. (대만을 보며) 니가 나한테 준 거 맞냐.

대만 : 아 분명히 드렸는데. 내가. 진짜루.

최영 : 뭐야.

충석 : 제가 받은 거 같기는 한데.. (하며 미친 듯이 품을 뒤지는. 식은 땀이 나고 있다) 여기 넣은 거 같은데..

 

최영. 확.. 짜증이 나는데. 돌배가 달려온다.

 

돌배 : 수리방에서 전갈입니다.

최영 : (보는)

돌배 : 천음자가 의선 옆에 붙어 있다.

최영 : 뭐.

돌배 : 천음자가 가진 능력 중에 입밀법이 있다.

최영 : (놀랐다)

돌배 : 그러니 조심하라고 전하라든데요. 입밀법이 뭡니까?

최영 : (빠르게 머리 굴리며) 먼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술이다. 의선은 지금..

충석 : 곤성전으로 가셨을 겁니다. 아까 들어가시는 거 뵈었는데..

 

말이 끝나기 전에 최영이 급히 이동하고 있다.

 

 

#40. 곤성전 외부 일각

 

장희가 먼저 걸어온다. 주위를 살핀다.

저만치 무각시 둘이 순찰을 하며 지나간다. 더 앞에는 우달치들이 보인다.

그들은 공주의 처소 앞쪽에 몰려서서 지키는 중이다.

순찰하는 무각시들이 가버리는 것을 보고 장희가 뒤를 보고 끄덕인다.

뒤에서 나타난 천음자가 지붕을 올려다본다.

장희가 벽에 두손을 짚더니 버틴다.

천음자가 날렵하게 몸을 날려 장희의 어깨를 딛고 지붕 위로 날아오른다.

 

 

#41. 곤성전 지붕 위

 

천음자가 몸을 낮춘 자세로 소리 없이 이동해간다.

 

 

#42. 노국의 처소

 

은수가 노국의 목의 상처를 보고 있다. 거의 아물어서 흔적만 남아 있다.

 

은수 : 잘 아물고 있네요. 한달만 더 있으면 아마 어디가 다쳤었나 찾아봐야 될 거에요. 

        제가.. 솜씨가 좀 있거든요.

 

물러서서 다시 상처를 보더니 옆을 본다.

거기 공민이 좀 떨어진 곳에 앉아 노국의 상처를 기웃거리고 있다가 얼른 표정관리를 한다.

 

은수 : (공민을 보며) 어때요. 이제 붕대를 풀고 다녀도 될 거 같은데.

공민 : 그렇습니까.

은수 : 보세요. 상처자국 이젠 별로 흉하지 않죠?

공민 : 글쎄요.

 

하며 들여다보다가 노국과 눈이 마주친다. 둘 다 움찔해서 외면한다.

 

은수 : (장빈을 돌아보는) 이젠 장선생님이 보약만 잘 지어드리면 될 거 같아요.

장빈 : (미소짓는) 그리하겠습니다.

노국 : 오늘 또 한사람을 살려주었다 들었습니다.

은수 : 아.. 그 아이. 간단한 수술이었는걸요 뭐.

공민 : 쌍성총관부 고관의 아들이라 했든가요. 지 아비를 따라 모처럼 개경에 왔었는데.

         여기서 목숨을 잃었다면 내가 곤란할 뻔 했어요.

은수 : 아.. 높은 분 아들이셨구나.

최상궁 : 천호장 이자춘의 차남 이성계라 합니다.

 

은수. 손전등을 가방에 넣다가 멈췄다. 뭐?

 

공민 : 내가 생색을 좀 냈습니다. 우리 왕비를 치료해주신 의선께서 직접 보아주었다고..

은수 : (최상궁에게) 이름.. 뭐라고 했어요.

 

 

#43. 곤성전 지붕 위

 

지붕 기와 사이에 들어앉아 가부좌를 틀고 있는 천음자. 내기를 모아 지붕 아래의 소리를 듣는 중이다.

작게 들리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최상궁소리 : 이자춘의 차남 이성계라고.

은수소리 : 말두 안돼. 설마.. 설마..

공민소리 : 의선?

은수소리 : 그 이성계는 아니겠죠? 역사책에 나오는 그 이성계..

 

천음자의 눈이 번쩍 떠진다.

 

 

#44. 노국의 처소

 

은수.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는 중이다.

그런 은수를 보고 있는 공민. 노국. 장빈과 최상궁.

은수가 벌떡 일어나더니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장빈을 본다.

 

은수 : 만약에 내가 아니었으면 왕비님 돌아가셨을까요?

장빈 : (노국을 슬쩍 보고는) 그러셨을 겁니다. 당시 상세가 워낙 중하셔서.

은수 : 만약에.. 내가 찾아가지 않았다면.. 경창군 마마 독으로 죽진 않았겠지요? 

        근육암이었으니까 죽더라도 독이 아니구..

공민 : (장빈에게) 의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신 건가.

은수 : 만약에.. 오늘 그 아이. 내가 수술을 해주지 않았다면 죽었을까요?

장빈 : 아까 복부를 갈랐을 때 저도 봤습니다만. 화농이 터져 상세가 아주 심각했습니다. 

        의선이 아니었다면..

은수 : 그 아이가.. 진짜 내가 아는 그 이성계라면.. (혼란..)

 

 

#45. 전의시 치료실

 

침상에 누워 잠들어있는 어린 이성계.

 

 

#46. 노국의 처소

 

은수 : 그럼.. 이게 다 뭐야.

공민 : 아는 사람입니까? 천호장의 아들이라는 그 아이.

은수 : 그 아이가 나중에.. 나중에.. (지금 정신이 없다. 새로 밀려드는 깨달음이 한번에 처리가 안되고 있다)

        이씨 조선을 만드.. (하다가 제 손으로 입을 막는다)

 

순간. 방 밖에서 들리는 최영의 소리.

 

최영소리 : 최영입니다. 전하. 계십니까.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공민 : (은수를 신경쓰며) 들어오세요.

 

최영이 급히 들어온다. 급히 공민과 노국을 향해 절을 하며 거의 동시에 은수의 옆으로 다가서며.

 

최영 : 의선을 잠시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공민 : 대장. 지금 의선께서는...

최영 : 전하 부디. (하며 은수의 팔꿈치를 잡는다)

 

 

#47. 궁의 일각

 

최영이 은수의 팔꿈치를 잡은 채 질질 끌고 밀어 간다. 그 손을 빼려 하며.

 

은수 : 놔요. 놓으라구.

 

거칠게 빼낸다.

최영은 주변을 둘러보고. 지붕 쪽도 보며.

 

최영 :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은수 : 나부터 말할게요. 당신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에요.

최영 : 의선.

은수 : 나 여기, 이 세상으로 잡아온 거. 그거 무슨 의민지 알았어요?

최영 : 입을 좀 다물어 주십시오. 그게 내가 드릴 말씀이라고. 

        (하며 다시 은수의 팔목을 잡고 끌어 가려는데)

은수 : (버럭 화내며 잡힌 팔목을 빼내려 하며) 내가 먼저 할 말이 있대잖아.

 

최영, 무시하고 그냥 잡아 끌려는데. 은수가 또 정강이를 찬다.

최영. 아. 어이가 없다.

은수가 억지로 팔목을 잡아 빼더니 두어걸음 물러나.

 

은수 : 내가 아무리 사회상식 부족하게 대충 살아온 여자라두 그 정도는 알아요.

         역사 함부로 바꾸면 안된다. 그래서 나 이 세상에 떨어지고 나름 조심해왔다구.

최영 : (은수에게 다가서려는데)

은수 : 내 말 끝나기 전에 오기만 해.

최영 : (갑갑하다)

은수 : 그러다 나 오늘 딱 한번 수술했네요. 그것두 내가 무슨 대단히 훌륭한 인격의 의사래서가 아니구.

        기철이 그 인간 한번 떠보자구. 수술도구 핑계 대구 가서 얼굴 한번 보자구.

        그래서 어쩌다 보니 수술했는데, 그런데 그 환자가 누군지 알아요?

최영 : 입 다물어요.

은수 : 그 애가 나중에 커서 누가 되냐면.

최영 : 하지 말라구.

은수 : 왜. 내가 지금 속이 터져 죽겠는데 그럼 누구한테 말해.

최영 : 임자가 아는 척 하고 떠드는 것들. 앞날이니 역사니. 

        그런 말들이 임자를 얼마나 위험하게 만드는지 알기나 해?

은수 : 내가 오늘. 당신 죽일 사람을 살려냈단 말이야.

최영 : (멈칫.. 잘 이해가 안되서 보는)

은수 :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되는데. 여기 끌려와서. 내가 왜 이러구 있는 건데. 

        이거 누구한테 물어봐야 되냐구.

 

최영이 뭐라 말하려다가 멈춘다. 귀를 기울인다.

 

 

#48. 지붕 위

 

기와 하나의 끝에서 흙먼지가 스르르 흘러내린다.

흘러내리는 흙먼지를 거꾸로 따라 올라가면. 천음자의 발.

 

 

#49. 궁의 일각

 

최영, 옆의 지붕 위 쪽을 올려다본다.

순간. 은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겨 보호하면서 버럭.

 

최영 : 우달치.

 

그때까지는 보이지 않던 사각의 그늘 속에서 튀어나오는 몇 명의 우달치들. (보이지 않게 보초를 서고 있던)

 

최영 : 의선을 지킨다.

우달치들 : 예에.

 

그러는 동안 최영의 시선은 줄곧 지붕 위를 향하고 있다. 소리가 난 지점을 찾는 중.

우달치들이 달려와 은수를 둘러싸는 와중에.

최영의 시선이 지붕 위의 한 점을 따라 주욱 돌아간다. 지붕 위에서 누군가 기와를 밟으며 달리는 소리.

은수를 우달치들에게 넘기자마자 최영이 그 소리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며 손은 발검자세로..

우달치들에 둘러싸인 은수가 그런 최영을 본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저도 모르게 최영을 따라 가려고 나서지만 우달치들이 더 둘러싼다.

덕만이 저만치서 달려오고 있다.

 

 

#50. 지붕 위

 

천음자가 허리를 낮춘 자세로 지붕 위를 달리고 있다. 달리며 옆을 돌아본다.

보이지 않는 지붕 아래 땅을 최영이 따라 달리고 있다는 설정.

 

 

#51. 지붕 아래

 

달리는 최영의 주위에서 우달치며 무각시들이 빠르게 진형을 짜며

반은 남고 반은 최영을 따라 달리는 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빠르고 날렵하게.

 

 

#52. 지붕 위

 

천음자가 순간 지붕 저쪽으로 날아 내린다.

 

 

#53. 지붕 아래

 

우달치. 무각시들과 함께 달리던 최영. 

지붕 위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혼자 옆의 좁은 길로 빠져 달린다.

 

 

#54. 궁 일각

 

좁은 길을 달려 나오는 최영, 마악 코너를 돌려는데 마주 달려오던 누군가와 부딪힐 뻔 한다.

최영의 검이 거의 반 이상 빠져나오다가 보면, 장희다.

 

장희 : 무슨 일입니까?

 

그 때문에 지체했던 최영, 걸리적거리고 있는 장희를 옆으로 밀쳐버리고 다시 달려 나온다.

그러나 이쪽저쪽 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천음자는 이미 도망갔다.

 

 

#55. 기철의 집 전경

 

순찰을 도는 기철네 사병들.. 그 위로.

 

기철소리 : 사실이었어.

 

 

#56. 부유고

 

기철이 어쩔 줄 모르고 좋아서.

 

기철 : 그 여인은 참이었어. 화타의 유물. 하늘문. 하늘 사람. 하늘의 글자. 하늘의 세상. 

        죄다.. 실재하고 있었던 게야.

 

은수의 수첩을 꺼내서 들춰보는데. 오래 되어 삭은 페이지 하나가 그만 흥분한 기철의 손에 바스러진다.

 

기철 : 아이쿠. 이런. 바스라졌다. 이 귀한 것이..

 

하며 바스러진 종이조각을 모은다고 요란을 떤다.

 

기원 : 그럼 어쩔까요. 그 의선이란 여인 다시 데려 옵니까? 다시 잡아와요?

양사 : 잡아오면 어쩌시려구요. 그 계집에게 앞날에 대해 물어보신다 해도

        그 여인이 참말을 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것인데..

 

그들이 떠드는 동안, 화수인이 천음자의 귀쪽을 보았다.

천음자의 한쪽 귀에서 피가 주룩 흘러내리고 있다.

 

기철 : (갑자기 깨달았다는 듯) 그렇지. 참. 그 문제가 남아있었구나. 

        뭐.. 어찌 간단하게.. 처리해야지. 간단하게 쉽게.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하다. 할 것도 많고. 가질 것도 많고. 시간만이 너무 부족하구나.

 

신이 나서 수첩을 다시 잘 싸서 금고에 넣는다.

 

 

#57. 기철의 치료실

 

의자에 앉아있는 천음자. 그 옆에 선 화수인.

화수인이 천음자의 귀를 치료해주고 있는 중. 

솜을 길게 말고 자기병의 약물을 묻히고 천음자의 상한 귀에 넣고 등..

 

화수인 : 사제 귀는 남들보다 열두배는 민감하잖아. 그래서 닫아 놓은 귀를 왜 자꾸 열어.

            이러다 아예 귀가 멀어버리면 어쩌려구.

천음자 : (그답지 않게 순하고 만족한 얼굴로 앉아서) 사형이 알고 싶어하니까.

화수인 : 거짓말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지. 입밀법을 썼으나 들은 것이 없다. 그럼 되는 걸.

천음자 : 사저는 거짓말이 그리 쉽나.

화수인 : 원래가 참말을 말하는 거 보다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훨 쉬운 법이야.

천음자 : 그런가.

화수인 : 당연하지. 좀 쉽게 살아 보자고 하는 것이 거짓말이니까.

 

약을 묻힌 솜을 귀안에 넣었다가 조심스레 빼내고. 안을 들여다보고.

 

화수인 : 그 아이는 만났니?

천음자 : 누구.

화수인 : 우달치 대장.

천음자 : (표정이 굳어진다)

화수인 : (천음자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고 귀 뒤로 넘겨주며) 여전히 그 여인네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나? 

          하늘에서 왔다는 의선.

천음자 : 알고 싶은 게 뭐야.

화수인 : (천음자의 머리에 입 맞출 듯.. 가까이..) 우리 사형은 세상 갖고 노는 게 재미있고. 

           난 사내들 마음이 제일 재밌고. 우리 사제는 무엇이 재미있나.

천음자 : (화난 표정으로 있지만)

화수인 : (천음자의 볼을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어주며) 골내지 마. 

          최영. 그자는 많고 많은 노리개 중에 하나. 우리 사제는...

 

천음자가 눈을 감는다. 화수인의 소매자락이 천음자의 눈을 스친다.

화수인의 낮고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멀어진다.

천음자가 눈을 떴을 때 화수인은 방문을 나서고 있다.

 

 

#58. 전의시

 

덕만과 함께 들어서는 은수. 약초원 쪽으로 가려다가 머뭇.. 진료실 쪽을 돌아본다.

 

 

#59. 진료실

 

은수가 들어온다. 거기 침상에 누워있던 이성계가 돌아본다. 정신을 차리고 있다.

그 옆에서 지키던 하인이 은수를 보더니 반가워하며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은수가 침상 옆으로 다가서서 어쩐지 주저되는 마음으로 묻는다.

 

은수 : 좀 ..어때요. 수술 부위 많이 아파요?

성계 : (일어나 앉으려 하며) 참을만 합니다.

은수 : (말려 눕히며) 그냥 누워있어요.

성계 : 하늘에서 오신 의선.. 맞습니까?

은수 : .. 그렇게들 불러요.

 

하며 이성계의 맥을 보며 시계를 보며..

 

성계 : (좀 흥분하고 있다) 제가 죽을 목숨이었는데 살려주셨다 들었습니다.

은수 : (멈칫해지는)

성계 : 아버님께서 곧 오실 겁니다. 크게 보답하실 겁니다. 지금 급한 일이 있어 못 오고 계신데 곧..

은수 : 이름이..

성계 : 제 이름. 이성계라 합니다. 본관은 전주고 현재 쌍성 쪽에 가문을 두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은수 : 전주 이씨.

성계 : 예 그렇습니다.

 

은수 웃는데 허탈한 느낌.

 

 

#60. 궁 회랑

 

걸어가는 최영, 아무래도 뭔가 불안하다. 멈추고 돌아본다.

저만치서 쫄래쫄래 따라오던 대만이 얼른 붙는다.

 

최영 : 전의시에 가봐라.

대만 : 예.

 

후딱 돌아서 가다가 돌아온다.

 

대만 : 가서 뭐합니까?

최영 : 가서.. 의선, 제대로 지 자리에 잘 붙어 계신지 보구와.

대만 : 예.

 

달려간다. 최영 돌아서는데 달려오는 돌배.

 

돌배 : 덕성부원군이 입궁했습니다. 지금 강안전으로 들어서는 걸 보고 오는 길입니다.

 

 

#61. 약초원

 

은수가 방 쪽으로 가는 걸 보는 덕만. 이제 거기서 지킬 생각이다. 으으..하며 몸을 푼다.

 

 

#62. 은수의 방

 

들어서는 은수. 무심코 몸을 돌리다가 굳어 선다.

거기 방 구석에 무릎이 꿇려진 더기. 눈물이 글썽해서 은수를 보고 있다.

더기의 뒤에 선 화수인. 한 손이 더기의 어깨에 올려진 채.

 

화수인 : 안녕.

은수 : 뭐에요.

화수인 : 델러 왔어. 같이 산책 가자구.

은수 : 그 아이 놔줘요.

화수인 : 아직 안돼. 대답 먼저. 지금부터 나하고 기쁘게 산책을 간다. 좋아?

은수 : 아이 먼저 놔주고 그 담에..

화수인 : (짜증난다는 듯) 아이 먼저 죽이면 대답이 빨라질 거야?

 

은수가 굳어서 본다.

 

 

#63. 약초원

 

서서 하품을 하던 덕만이 돌아보고 얼른 자세를 바로 한다.

안에서 나오는 은수. 좀 굳어있지만 덕만 쪽으로 오며..

 

은수 : 안에 좀 들어가 봐요.

덕만 : 안.. 입니까?

은수 : 더기가 무거운 걸 들어야하는데 좀 도와 달라구.. 내 방에 있어요. 가서 좀 도와줄래요?

덕만 : 알겠습니다.

 

덕만이 부지런히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은수가 옆을 본다. 거기 화수인이 숨어서 보며 미소.

 

 

#64. 은수의 방

 

문 밖에서 덕만이 부른다.

 

덕만소리 : 여어 더기.

 

들어간다. 이거 문 연다. 아.. 대답을 못하지.

잠시 후 덕만이 조심스레 문을 연다.

 

덕만 : 나 이 방 들어가두 되나?

 

하다가 엇. 거기 방 가운데 쓰러져 있는 더기.

덕만이 놀라 달려 들어가 더기를 부축한다.

 

덕만 : 어이 왜 그래. 어이.

 

그제야 막혔던 숨을 컥컥대며 정신을 차리는 더기. 더기가 정신없이 문 쪽을 가리킨다.

덕만 그제야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더기를 놔두고 문으로 뛴다.

 

 

#65. 진료실

 

장빈이 약사발을 받쳐 들고 들어오다가 어라.. 해서 멈춘다.

이성계가 있어야 할 침상이 비어있다. 근처에 물품들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다.

 

 

#66. 약초원

 

달려 나오는 덕만. 전의시쪽에서 들어서던 대만과 부딪힐 뻔.

 

덕만 : 못 봤어?

대만 : 내가 뭘 봐야 되는데.

덕만 : 아이 씨..

 

달려 나간다.

 

 

#67. 강안전 공민의 집무실

 

들어서는 최영. 거기 공민의 옆에 충석이 배석하고.. 안도치와 다른 우달치들도 자리하고 있고.

앞에는 기철이 마주하고 있다가 최영을 돌아본다.

최영이 공민에게 절을 하는 것을 보며 부드럽게 웃는다.

최영이 성큼성큼 걸어 공민의 다른 한쪽에 자리해 선다. 충석과 좌우 양쪽을 지키는 배치로.

 

기철 : 자아.. 이제 전하를 지키는 자들은 다 모인 셈인가요. (둘러보며) 이게 전부입니까. 더는 없는지요.

공민 : (싸느랗게 보다가) 긴히 급히 해야겠다는 말. 하세요.

기철 : 사람을 모으고 계신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재야의 인재들. 학식이 뛰어나거나 재주가 특출난 자들.

 

공민이 저도 모르게 옆의 최영을 돌아보려다가 참는다.

최영, 빤히 기철을 보고 있다.

 

기철 : 아주 잘 생각하신 겁니다. 권력, 힘을 갖거나 유지하기 위해서 첫 번째 가져야 할 것은 사람이지요.

         그래서 신은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편하게 다 가지시도록 놔둘 수가 없구나.

공민 : (억지로 웃는) 왜요. 저하고 권력 다툼이라도 할 생각이라서요?

기철 : 다툼... 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툼이 일어나기 전에 정리를 좀 할까 합니다.

 

하더니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낸다. 내밀어 보여준다.

도치가 받으러 가는 동안. 최영이 그 두루마리를 봤다. 충석이 장희에게 빼앗긴 것.

최영이 충석을 돌아본다. 충석. 미치겠는 심정.

도치가 두루마리를 공민에게 건넨다. 공민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기철 : 우달치 대장이 뒷골목에서 잠행하는 검은 귀들을 동원, 

        재야의 인재들 명단을 받았다 들었습니다. 그게 맞습니까?

 

공민이 두루마리를 펼쳐보긴 하는데. 말이 없다.

 

기철 : 전하. 제가 바로 전하의 사람입니다. 

        저에게 한가지 고쳐지지 않는 단점이 있는데. 질투가 좀 심합니다. 그래서..

공민 : 그래서.

기철 : 그 명단에 있는 자들이 싫습니다. 살려두고 싶지가 않습니다.

 

순간. 성큼성큼 기철의 앞까지 걸어온 최영이 서억 칼을 빼들더니 바로 기철의 목에 댄다.

 

최영 : 주상전하의 앞에서 감히 있을 수 없는 무엄한 언행. 

        우달치의 임무에 따라 즉시 처단할 수 있습니다. 전하.

공민 : 나의 한마디 명에 따라 즉시 처단할 수 있답니다.

        덕성부원군. 이쯤은 각오를 하고 홀로 이곳까지 온 거 아닌가요.

        목숨 정도는 내놓아야 나. 왕의 앞에서 그리 겁 없는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거 아니오.

기철 : (빙긋이 웃는) 설마 신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리 무모한 짓을 하겠습니까.

공민 : 대책이라.

기철 : 그 첫 번째 대책은 왕비마마께서 거하시는 곤성전에 두었고.

 

공민의 얼굴에 어쩔 수 없이 당황함이 드러난다.

 

기철 : 그 두 번째 대책은 (최영을 보더니) 의선에게 두었습니다.

 

최영도 순간 흔들림. 고개를 들어본다.

저 뒤쪽(입구쪽?)에 대만과 덕만이 서있다. 둘 다 초조하고 다급한 얼굴.

대만이 최영을 향해 고개를 저어 보인다. 의선이 없다고.

 

 

#68. 길

 

화수인이 은수를 데리고 나오고 있다.

은수의 마음은 반반. 이걸 상대해줘야 하나. 도망가야 하나.

 

화수인 : (사방을 둘러보며) 아아 좋다. 난 이런 날씨 좋아. 

          승마를 하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뒤끝이 산뜻하거든.

 

은수가 돌아보면 거기 천음자가 말 두필을 끌고 오고 있다.

 

은수 : 어어.. 내가 승마를 배우긴 배웠는데요. 그게 억지로 배운 거라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화수인 : 저기 보여?

 

거기 수레 하나가 지나가고 있다. (감옥 수레?)

검은 천으로 전체를 둘렀는데. 보란 듯이 이쪽만 열려져 있다.

은수가 무심코 보았다가 놀랐다. 달려가려는데 천음자가 막았다.

수레 안에는 복부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이성계. 

성계가 은수를 봤다.

 

성계 : 의선. 의선..

 

그러나 수레를 끄는 이들이 휘장을 마저 쳐버려서 보이지가 않게 된다.

 

은수 : 지금.. 이거 다 뭐에요.

화수인 : 땅의 의원이든 하늘의 의원이든 자기가 치료하던 환자가 죽으면 아주 기분 나쁘지 않나?

            그래서 잡아왔는데. 잘 한 건가?

은수 : (이거 장난이 아니다. 똑바로 서더니) 당신들 뭐야. 저 아이. 지금 당신들이 납치한 거야?

화수인 : 워어.. 이 언니 봐. 화났네.

은수 :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해. 상관도 없는 사람. 기절시키고 납치하고. 

        저 환자. 저렇게 움직이면 안되는 환자니까.

화수인 : 죽일 수도 있어.

은수 : 뭐?

화수인 : (웃지 않고 있다. 덤덤하게) 간단해. 우리하고 같이 어딜 좀 가서 뭔가를 좀 하면 돼.

            중간에 성가시게 굴면 수레 안의 저 아인 죽어. 그게 다야.

은수 : (너무 어이없어 웃는다) 이건 뭐 사람 죽인단 말이 무슨 개야 하품이야. 

        뭐가 그렇게 쉬워? 당신들 도대체..

화수인 : 쉬워. 사람 죽이는 거. 난 그게 제일 쉽던데.

은수 : (말이 막히는)

천음자 : 이쪽으로.

 

천음자가 말 앞에서 손을 내민다. 태워주겠다고.

은수. 도대체 이걸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도 안 온다. 다시 수레 쪽을 돌아보는.

 

 

#69. 강안전

 

최영이 여전히 기철의 목에 칼을 대고 있다.

 

최영 : 전하. 이 자를 먼저 죽이고 그 다음 대책은 그 다음에 파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공민 초조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기철은 아직도 여유로 공민을 보고 있다.

 

기철 : 주상의 자리란 것이 그렇습니다. 누굴 버리고 누굴 취할까. 누굴 희생해서 누굴 구할까.

         그것을 끝없이 판단하는 거지요.

최영 : 전하.

공민 : ... 우선 칼은 거두세요.

 

최영, 기철을 노려보다가 칼을 거둔다. 검집에. 절컥.

 

기철 :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공민 : 원하는 게 뭐요. 내가 뭘 해주길 바라는 겁니까.

기철 : 아무것도요. 전하. 아무것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공민 : (보다가 웃는) 내 면전에 대고 허수아비 왕이 되어라.

기철 : 아닙니다. 백성을 아끼는 주상이 되시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 명단에 있는 자들. 전하의 백성이지요? 주상께서 포기만 하시면 그들은 삽니다.

공민 : ... 어째요?

 

그들이 말하는 사이. 최영이 입구 쪽에 있는 우달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덕만, 돌배, 주석, 대만 등이 재빨리 고개 숙여 받들고 밖으로 이동한다.

 

 

#70. 거리 어느 집 앞

 

세필의 말이 오고 있다. 은수 화수인 천음자.

은수. 성도 나고 무섭기도 한 상태.

 

화수인 : (명단이 적힌 종이를 펼쳐보며) 여기가 첫 번째 집이네. 

          (읽는) 윤대영. 나이는 마흔이 넘었다는데. 저자인가.

 

그다지 부유해보이지는 않는 서민 집. 마당을 나서는 선비 차림의 남자.

어느새 말에서 내린 천음자가 그에게 다가간다.

은수 아직 상황 파악이 안되서 보고 있다.

그런데 천음자는 평소 걸음 그대로 걸어가며 피리 속의 칼을 빼든다.

사내가 무슨 일인가 해서 천음자를 보는데 슥슥 다가선 천음자 한칼에 그자를 죽인다.

비명도 못 지르고 무너져 내리는 사내.

은수.. 충격에 말에서 미끄러져 내릴 뻔 한다.

옆에서 화수인이 잡아준다. 쯔쯔..하는 듯이.

천음자가 죽은 자의 옷에 칼의 피를 닦더니 품에서 꺼낸 종이 한 장을 시신의 입에 물려준다.

 

 

#71. 강안전

 

공민이 급히 명단을 펼친다.

 

기철 : 그 명단의 첫 번째 인물. 제가 듣기로는 백주 대낮에 도적을 만나 명을 다하였다지요.

공민 : (충격.. 누를 길이 없어) 죽였는가. 그대가.

기철 : 일각 정도 후에 그 명단의 두 번째 인물도 도적을 만난 거 같습니다.

 

 

#72. 마을 두번째 집

 

은수가 넋을 잃어 본다.

그 보는 앞에서 천음자가 또 다른 사내를 아무 느낌 없이 간단하게 죽인다.

 

 

#73. 강안전

 

기철 : 다시 일각 후에는 역시..

공민 : (결국 누르지 못하고 버럭) 그래서. 그래서.

기철 : (딱하다는 듯) 아시지 않습니까. 어찌하셔야 할지.

 

최영이 빠르게 공민에게 다가가 기철이 보지 않게 공민에게 낮게 말한다.

 

최영 : 신이 가보겠습니다.

공민 : (떨고 있다)

최영 :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주십시오. 괜찮으시겠습니까.

공민 : (떨림을 가라앉힌다) 그러지요.

최영 : 다녀오겠습니다.

 

둘의 시선이 잠깐 마주친다. 최영이 돌아서 입구 쪽으로 빠르게.

 

 

#74. 마을 두번째 집

 

주석과 돌배가 달려온다. 마당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거기 집 식구들이 울부짖고. 동네 사람들이 몇 구경하는 와중에.

아까의 인물과는 다른 인물이 죽어있다.

주석이 그 시체의 입에서 종이를 꺼낸다. 펼쳐본다. 피와 타액에 젖은 종이에는 知過必改 라고 쓰여있다.

자막 知過必改(지과필개) 자신의 잘못을 알면 반드시 고치라

 

 

#75. 오솔길

 

은수가 나무에 기대 주저 앉아있다. 토할 거 같아서 억억대다가 가쁜 숨을 내쉰다.

천음자가 수건을 내밀어 준다.

은수가 기겁을 하며 그 수건을 쳐낸다. 땅에 떨어지는 수건.

천음자가 기분이 나빠서 본다.

화수인이 다가와 수건을 집어들며.

 

화수인 : 좀 괜찮은가. (다가가자)

은수 : (땅에서 비비며 뒤로 피하는)

화수인 : (명단을 보는) 그 다음 집으로 가야 되는데. 대충 일어서지. 

          해 떨어지기 전에 들러야 될 집이 많다구.

은수 : (완전 공포다. 더 피하는데)

화수인 : (천음자에게) 어때 보여. 이 정도면 우리 의선. 충분히 아신 거 같은데.

            우리가 얼마나 나쁜지. 우리 앞에서 장난 치면 어떻게 되는지.

천음자 : 그럼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나.

화수인 : 그럴까. (은수에게) 다음 단계는 의선. 그대가 골라야 돼.

은수 : (떨며 노려보는)

화수인 : 셋 중에 하나 골라봐요.

은수 : (뭔가 대답하려 하지만 목이 갈라져 말도 안 나온다. 아예 외면하는데)

화수인 : 첫째 곤성전의 왕비마마.

 

 

#76. 플래쉬 노국의 처소

 

최상궁이 노국의 옷차림을 돌보고 있는 이쪽에서 장희가 차를 준비하고 있다.

찻잔을 슬쩍 만지는 장희의 손길.

 

 

#77. 플래쉬 전의시

 

장빈이 지나간다. 그 앞에 약탕기에서 김이 오르고 있다. 그 위로 들리는.

 

화수인소리 : 둘째 전의시의 장어의.

 

 

#78. 오솔길

 

화수인이 기웃해서 은수의 얼굴을 빤히 보며.

 

화수인 : 세 번째. 우달치 최영.

 

멈칫했던. 은수 어쩔 수 없이 화수인을 돌아 본다.

 

화수인 : 셋 중에 그대가 가장 아끼는 사람. 누구야? 그 자가 바로 다음 단계인데. ...누구일까?

 

은수. 완전히 얼어서 그러는 화수인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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