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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11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3.02.21|조회수845 목록 댓글 0

[신의] 11

 

 

 

 

 

 

 

 

 

 

#1. 강안전 공민의 집무실

 

최영이 서억 칼을 빼들더니 바로 기철의 목에 댄다.

 

최영 : 주상전하의 앞에서 감히 있을 수 없는 무엄한 언행. 우달치의 임무에 따라 즉시 처단할 수 있습니다. 전하.

공민 : 나의 한마디 명에 따라 즉시 처단할 수 있답니다. 

        덕성부원군. 이쯤은 각오를 하고 홀로 이곳까지 온 거 아닌가요.

       목숨 정도는 내놓아야 나. 왕의 앞에서 그리 겁 없는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거 아니오.

기철 : (빙긋이 웃는) 설마 신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리 무모한 짓을 하겠습니까.

공민 : 대책이라.

기철 : 그 첫 번째 대책은 왕비마마께서 거하시는 곤성전에 두었고.

 

공민의 얼굴에 어쩔 수 없이 당황함이 드러난다.

 

기철 : 그 두 번째 대책은 (최영을 보더니) 의선에게 두었습니다.

 

최영도 순간 흔들림.

 

 

#2. 거리 어느 집 앞

 

천음자는 평소 걸음 그대로 걸어가며 피리 속의 칼을 빼든다.

사내가 무슨 일인가 해서 천음자를 보는데 슥슥 다가선 천음자 한칼에 그자를 죽인다.

비명도 못 지르고 무너져 내리는 사내.

은수.. 충격에 말에서 미끄러져 내릴 뻔 한다.

 

기철소리 : 그 명단의 첫 번째 인물. 제가 듣기로는 백주 대낮에 도적을 만나 명을 다하였다지요.

 

 

#3. 마을 두번째 집

 

은수가 넋을 잃어 본다.

그 보는 앞에서 천음자가 또 다른 사내를 아무 느낌 없이 간단하게 죽인다.

 

기철소리 : 두 번째 인물도 도적을 만난 거 같습니다.

 

 

#4. 강안전

 

공민 : (결국 누르지 못하고 버럭) 그래서. 그래서.

기철 : (딱하다는 듯) 아시지 않습니까. 어찌하셔야 할지.

 

최영이 빠르게 공민에게 다가가 기철이 보지 않게 공민에게 낮게 말한다.

 

최영 : 신이 가보겠습니다.

공민 : (떨고 있다)

최영 :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주십시오.

 

 

#5. 궁 안 회랑

 

최영이 거의 달리듯 움직이고 있다.

달리면서 옆의 우달치를 손으로 부른다. 달려온 우달치를 휘어잡아 지시한다.

 

최영 : 곤성전으로 가. 최상궁께 전해.

 

 

#6. 마을 길

 

신비거사가 달리고 있다. 달리다가 멈추더니 보부상 하나를 잡는다. 

뭔가를 묻는다. 돌아보더니 한쪽을 가리킨다.

그의 손짓을 받은 시울이 그 방향으로 달린다.

 

 

#7. 다른 길

 

이성계를 납치한 수레가 이동하고 있다. 수레를 지키며 끌어가고 있는 자는 네명 정도.

그 때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그 중 하나의 가슴에 박힌다.

나머지가 놀라 무기들을 빼드는데 뒤에서부터 달려온 최영이 거의 한꺼번에 둘을 쓰러뜨린다.

검도 빼지 않고 검집으로 거칠게.

뒤이어 나타난 지호가 나머지 하나를 창으로 상대해 쓰러뜨리고. 시울이 활을 들고 나타나고.

최영이 휘장을 거칠게 벗긴다. 그 안에서 놀라 보고 있는 이성계.

최영으로서는 은수가 아니라서 초조함이 더해진다. 이성계에게.

 

최영 : 너. 의선 알지.

성계 : (급히 끄덕이는) 예.

최영 : 어디루 갔는지 알아? 봤어?

 

성계가 고개를 젓는다. 최영 초조하다.

그때 들리는 호각소리.

돌아보면 저만치 담 위에서 대만이 호각을 불고는 최영에게 한쪽을 가리켜 보인다.

최영이 달린다.

 

 

#8. 오솔길

 

은수가 웅크려 앉은 채 고개를 숙여 땅을 보고 있다. 그 앞에 쭈그려 앉은 화수인.

 

화수인 : 셋 중에 누구냐고.

 

고개를 숙인 상태의 은수. 움직임이 없다.

 

화수인 : (짜증나서) 이래서 난 말로 을러대는 거 짜증나. 그냥 죽이면 안되나.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묻겠어. 대답이 없으면..

은수 : 그래서.. (고개를 들어 화수인을 노려보는) 셋 중에 누구라고 답하면. 어쩔 건데.

화수인 : (이제 좀 재밌다) 셋 중에 가장 아끼는 사람부터 없애라 그러든데?

            그대가 제대로 온순해 질 때까지 그렇게 길을 들이라 그랬어.

은수 : 길을.. 들여?

화수인 : 그게 우리 사형의 방법이야. 누가 탐나서 갖고 싶으면 먼저 그 주변인부터 정리한다고.

            세상 천지에 사형 말고는 갈 곳이 없어질 때까지.

은수 : 혹시..

화수인 : 혹시 뭐?

은수 : 경창군 마마한테 독을 준 거. 그것도.

화수인 : 당연하지. 우리 사형이 준거지. 그걸 그 어린 마마한테 먹인 건 최영이지만. 몰랐어? 알았잖아.

은수 : (화수인을 보고 있는데 많은 생각이 오간다)

화수인 : 어쩔 거야. 누구 먼저 죽여줘. 아무나 빨리 대봐.

 

은수 일어선다. 비틀하지만 그래도 똑바로 선다.

화수인도 일어나 마주본다.

 

은수 : 맘대로 해.

화수인 : 뭐?

은수 : 그딴 말 같지도 않은 질문. 절대 대답 못하니까 니들 맘대루 하시라고.

 

돌아서 가려는데. 두걸음 앞 쯤. 막아서는 천음자.

 

화수인 : 우리가 잡아놓은 니 환자는 어쩌구. 성가시게 굴면 그 아이 먼저 죽어야 되는데.

은수 : ... 그러시든가. (천음자에게) 비켜.

 

천음자가 난감해서 화수인과 시선을 마주친다.

 

은수 : 당신들. 아직 나 못 죽여. 그 정도는 내가 알어. 

        나 말고 다른 사람? 죽이든가 말든가. 내가 알게 뭐야.

 

은수가 움직이려 하자. 천음자가 휘릭 칼을 빼들었다. 칼로 은수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 칼을 잠시 보던 은수가 곧바로 칼을 향해 간다.

천음자가 난처하다가 칼이 은수의 목에 닿기 전. 휙. 위를 치켜들어 피해준다.

화수인이 짜증 내며 막 은수 쪽으로 움직이려는데.

천음자가 그런 화수인을 막으며 귀를 기울이며.

 

천음자 : 셋. 넷. 다섯.

 

 

#9. 길 다른 곳

 

은수가 허청이는 발걸음으로 계속 간다.

은수가 가는 방향에서 달려오는 덕만. 주석. 돌배. 다른 우달치 두명.

덕만 의선 반가워 달려들고. 우달치들이 재빨리 은수의 뒤를 막아선다.

그들이 막아선 앞에 오고 있는 화수인과 천음자.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본다.

천음자가 고개를 갸웃해서 은수를 본다.

우달치들이 막고 있는 은수는 다 상관없다는 듯이 그냥 가고 있다.

우달치들이 일제히 칼을 빼들지만. 천음자네의 관심은 은수에게 있다.

 

천음자 : 저 여인. 그냥 가는데.

화수인 : 정말 상관없을까. 지 말고 다른 사람들 죽거나 말거나.

천음자 : 알아봐?

 

하며 피리를 돌려 잡는다.

 

주석 : 거기 니놈들이 백주대낮에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것들이냐?

돌배 : 그에 더해 의선을 납치하고?

 

덕만이 뒤를 돌아본다. 의선이 혼자 가고 있다.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 걸어오던 은수. 멈춘다. 피리소리가 들리고 있다. 후딱 돌아본다.

가로막은 우달치 저 너머에서 천음자가 피리를 불고 있다. (지금은 은수 들으라고 그냥 연주)

 

 

#10. 회상. 플래쉬 9부 #8 은수의 별채

 

천음자 피리를 입에 대고 분다.

// 방 곳곳의 호롱불들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그러다가 저쪽의 테이블에 놓여있던 잔이며 자기 주전자들이 파박 파박 폭발하듯 깨진다.

 

 

#11. 길 다른 곳

 

은수가 겁이 나서 보는 앞에서 주석이 한걸음 나서며 

(은수와 우달치들은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는 설정입니다)

 

주석 : 이것들 잡아 꿇려.

 

순간. 화수인이 뒤로 민첩하게 빠지며 천음자의 피리 연주 소리가 달라진다.

맨 앞에 있던 주석이 먼저 아.. 해서 귀를 감싼다. 공격하려던 다른 우달치들도 비틀.

천음자의 뒤쪽에 자리한 화수인이 빤히 은수를 본다.

은수가 순간 망설이는가 싶은데.

덕만이 아아 하며 무릎을 꿇자 그만 이쪽으로 달려온다.

 

은수 : 그만해. 그만 두라고.

 

화수인 미소 지으며 그저 본다.

천음자는 피리에서 입을 떼지 않고 있다.

달려오던 은수가 비틀 선다. 자기 귀를 막는다. 고통스러워지는데.

순간 허공을 날아오는 화살이 천음자의 얼굴을 향해 날아든다.

천음자가 뒤로 허리를 꺽으며 간신히 피한다. 피리가 멈췄다.

은수가 돌아본다. 거기 최영이 달려오고 있다.

그 옆에서 활을 날린 시울이 적당한 거리에서 자리 잡으며 두 번째 화살을 잰다.

똑바로 천음자와 화수인을 보며 달려온 최영이 은수의 옆에 멈춘다.

고통스러웠던 우달치들이 대장의 옆으로 몰려들며 아픈 중에도 방어형태를 갖춘다.

더러는 귀에서 흘러내린 피를 후딱 닦아내고. 코피를 흘렸던 덕만도 닦는다.

저만치 화살을 천음자에게 똑바로 겨누고 있는 시울.

최영, 그제야 은수를 향해 돌아서더니 내려다본다.

은수는 계속 최영을 보고 있었다. 이렇게 나타난 최영이 어쩐지 안 믿어지는 느낌.

최영이 고개를 기웃해서 은수의 귀에 흘렀던 피를 살핀다.

손을 들어 은수의 귀에서 흘러내린 피를 손가락 끝으로 스윽 닦아본다.

은수가 움찔한다.

최영을 올려다보았다가 자기도 모르게 화수인 쪽을 보는 은수.

화수인이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다.

최영이 화수인 쪽을 향해 똑바로 선다.

 

주석 : 대장 저것들이 학자분들 죽이고 의선을..

최영 : (손을 들어 말을 막고. 화수인들을 향해) 어쩔래. 계속 할래. 물러갈래.

화수인 : 어쩐다.

천음자 : 붙으면 길어져. (하며 화살을 당겨 겨누고 있는 시울 쪽을 보는)

화수인 : (은수를 보며) 뭐.. 알고 싶은 건 다 안 거 같으니까.

 

은수가 화수인을 노려본다. 화수인이 은수를 보며.

 

화수인 : 아무래도 옆에 있는 그 자가 첫번째겠지? 

          언제나 달려오잖아. 그대를 찾아서 매번. 어김없이. (최영에게) 또 보자구.

 

하더니 돌아서 간다. 천음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따라간다.

 

돌배 : 저것들 그냥 보냅니까? 대장.

 

우달치들이 우루루 몰려나갈 기세인데.

 

최영 : 멈춰. 니들 상대가 아니야.

 

은수를 본다. 은수가 서 있는 모양이 영 위태롭다. 억지로 버티고 있는 듯.

 

최영 : 괜찮습니까?

 

하며 어깨를 잡아주려는데. 그 손을 매정하게 쳐내는 은수. 돌아서더니 혼자 걸어간다.

그런 은수를 어이없어 보다가 옆을 보니 모든 우달치들이 자기를 흥미진진해서 보고 있다.

옆에 있는 아무나 괜히 퍽 패서.

 

최영 : 의선을 전의시까지 모시고. 니들은 거기서 대기해.

 

옆에서 대만이 말을 끌고 부지런히 오고 있다.

// 덕만 등에게 호위를 받으며 걸어가는 은수. 

아직 이 상황이 다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어서 발걸음이 자꾸 휘청인다.

옆에서 덕만이가 안타까워서 보며, 잡아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며 따라 걷는 중.

그러다 은수가 옆을 돌아본다.

거기 최영이 말을 타고 달려 지나간다. 은수 쪽은 한번 돌아보지도 않는다.

 

 

#12. 강안전

 

공민이 기철을 본다. 기철은 우뚝 서서 한가롭게 공민을 보고 있다.

 

공민 : 그대가 원하는 것이 날더러 아무것도 하지 마라. 왕이되 왕 노릇 따위 하지 마라.

기철 : 지금 왜 전하께서는 궁지에 몰리시고 저는 이렇게 당당한지 아십니까? 

        전하께서 아직 미련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미련이 좋은 왕이 되겠다는 미련이지요.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는 좋은 왕.

 

공민이 고개를 든다.

입구에서 들어오는 최영. 공민을 보더니 고개를 숙여 보이고.

 

최영 : 곤성전에 왕비마마께서는 무탈하시고, 의선께서는 무사히 전의시에 돌아가셨습니다.

공민 : 사람들은.. 명단의 인사들은 어찌 되었나요.

최영 : 개경 성내 다섯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의 주검마다 남겨진 문구가 있었다 하는데.

        (기철을 똑바로 보며) 지과필개. 자신의 잘못을 알면 반드시 고쳐라. 그리 적혀있었다 합니다.

공민 : 다섯명. (기철을 보는)

기철 : 그 정도면 개경 뿐 아니라 고려 천지에 경고가 되지 않았을까요.

공민 : 그래서 이제 내 사람이 될 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기철 : (안타깝다는 듯) 좀 적었을까요.

 

최영이 슬쩍 공민을 본다. 공민, 분노를 간신이 누르고 있는 모습.

말려야겠다 싶어 한 발자욱을 내딛는데.

 

공민 : 이달 보름. 서연이 있을 것입니다.

 

최영, 후딱 공민을 본다. 이게 아닌데.

 

공민 : 그 때에 내 사람들이 나에게 왕의 덕목에 대해 가르칠 것이니 경도 와서 들어보세요.

 

최영, 기철을 본다. 기철, 반항하는 공민에 대한 짜증이 확 오르는 얼굴.

기철이 공민 쪽으로 다가서는데. 그 앞을 딱 막아서는 최영.

 

기철 : 전하의 사람들이라 하셨습니까.

공민 : 이 고려에는 협박에 굴하지 않고, 적당한 밥에 만족하지 못하며 

        제대로 된 왕을 원하는 백성도 있다는 것. 보여드리지요.

 

기철이 최영을 비켜 앞으로 나가려 하나. 다시 막아서는 최영.

기철이 오른손을 최영의 왼 어깨에 얹는다.

최영, 떨치려다가 멈춘다. 기철은 최영의 어깨에 빙공으로 누르는 중이다.

최영, 흠칫해서 왼손을 올려 기철의 팔목을 잡는다.

충석이 뭔가 심상치 않아서 움찔하여 본다. 공민도 뭔가 이상해서 본다.

지금 최영은 있는 힘을 다해 버티고 있다. 뇌공을 일으키며 어깨를 보호하려는 중이다.

잠시 둘의 누르고 막으려는 싸움.

실은 서로간의 내공의 힘을 알아보는 순간이다.

그러나 기철은 여유가 있고. 최영은 있는 힘을 다하고 있다.

기철의 팔목을 잡은 최영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최영의 한 무릎이 슬쩍 꺽어질 뻔 하다가 가까스로 버틴다.

충석이 후다닥 다가온다. 다른 우달치들도 몇걸음 다가선다.

기철이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난다. 최영에 대해 충분히 알았다. 미소를 띄며 공민에게

 

기철 : 알겠습니다. 이달 보름. 전하의 사람들을 기대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인다.

 

공민 : 그럼 그날..

 

기철이 물러나기 무섭게 공민이 다가온다.

 

공민 : 대장.

최영 : 별일 아닙니다. 전하. 곤성전에 먼저.

 

 

#13. 궁 회랑

 

빠르게 이동하는 공민. 그 뒤를 따르는 도치와 충석. 그리고 내관 우달치 무리들.

 

 

#14. 곤성전 노국의 처소

 

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서는 공민.

시녀들과. 방안을 둘러서 지키던 무각시들이 놀라 절을 하며 좌우로 비키는데.

그대로 들어선 공민이 노국을 본다.

탁자 앞에 앉아있던 노국이 놀라 공민을 본다. 그 옆의 최상궁이 고개 숙여 절을 한다.

공민은 멈추지 않고 노국의 옆으로 오더니 노국의 손목을 잡아 끈다.

그 모양새가 예전 원에서 손목을 잡아끌던 것과 흡사하다.

 

 

#15. 오버랩 플래쉬 / 3부 #49 원나라 궁안

 

공민이 노국의 손을 잡고 이끈다.

 

 

#16. 곤성전 노국 처소

 

노국이 놀라 버티려하자 공민이 돌아보며.

 

공민 : 이제부터 왕비께서는 내가 있는 강안전에서 거하시게 될겁니다.

       (최상궁을 보더니) 여기 이곳 곤성전의 모든 간자. 모든 위험이 완전히 없어졌다 

       장담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 할 것이네.

 

하더니 그대로 노국을 끌고 나간다.

최상궁이 놀라서 쫓으며 재빨리 뒤에서 시녀 무각시들을 따르라 지시한다.

 

 

#17. 궁의 회랑

 

여전히 노국의 손목을 잡아 끌고 오는 공민.

그 뒤에서는 우달치며 내관들. 무각시며 시녀들이 서로 엉키고 자리를 못 잡아 난리가 났는데.

 

공민 : 오늘 덕성부원군이 찾아왔어요.

노국 : 들었습니다.

공민 : 왕비의 목숨을 놓고 나를 위협했어요.

노국 : 들었습니다.

 

공민이 멈춘다. 그 바람에 뒤에서는 급정거를 하느라 또 난리.

 

공민 : (노국에게) 그래서.

 

하다가 그제야 자기가 노국의 손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 의식되었다. 어색하게 놓아준다.

노국도 어색하게 손을 감춘다.

 

공민 : 그래서..

노국 : 함께 있겠습니다.

공민 : .. 그래요. (그래놓고 그냥 서있다. 뭐하고 있었는지 잊어먹은..)

노국 : (머뭇머뭇 앞길을 가리키는)

 

공민이 아.. 해서 걷기 시작한다. 그 옆을 함께 걷는 노국.

이만치 뒤에서 충석과 도치가 따르려 하자 최상궁이 양손으로 그들을 잡아서.

 

최상궁 : 좀 천천이.. 좀 멀찌거니..

 

하고 거리를 두고 따른다.

공민, 노국은 서로 다른 데를 보며 나란히 걷고 있다. 어쩐지 좀 평안해진 느낌으로.

 

 

#18. 궁의 일각

 

최영이 들어선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아까 기철에게 잡혔던 어깨의 옷깃을 내려 확인한다. 어깨가 퍼렇게 얼어있다.

(손자국 모양은 좀 더 검게. 주변은 퍼렇게. 약간의 동상 자욱 느낌?)

슬쩍 건드려 보는데 아프다. 맘에 안 든다.

 

 

#19. 전의시 은수의 방

 

은수가 혼자 앉아있다. 생각하다가 생각을 떨치려는 듯 일어서 서성이다가 다시 멈춰 생각하게 된다.

 

화수인소리 : 셋 중에 가장 아끼는 사람부터 없애라 그러든데?

             그대가 제대로 온순해 질 때까지 그렇게 길을 들이라 그랬어.

 

 

#20. 회상 #15 길

 

최영이 고개를 기웃해서 은수의 귀에 흘렀던 피를 살핀다.

손을 들어 은수의 귀에서 흘러내린 피를 손가락 끝으로 스윽 닦아본다.

은수가 움찔한다. 최영을 올려다보았다가 자기도 모르게 화수인 쪽을 보는 은수.

화수인이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다.

 

화수인소리 : 아무래도 옆에 있는 그 자가 첫번째겠지?

 

 

#21. 은수의 방

 

은수가 멍해서 있다.

 

화수인소리 : 언제나 달려오잖아. 그대를 찾아서 매번.

 

은수. 안되겠다 싶어서 문쪽으로 이동한다.

 

 

#22. 문 밖 복도

 

문을 열고 나오는 은수. 문 앞에서 지키던 덕만이 얼른 바로 선다.

 

 

#23. 약초원

 

나오던 은수가 보면, 약초원 이쪽에서 수런거리고 있던 돌배와 주석이 얼른 바로 선다.

은수 머뭇머뭇 전의시 쪽으로 가다가 보면 대만이 거기 이상한 자세로 매달려 있다가 얼른 바로 앉는다.

대만을 보니 그가 근처에 있을 거 같다. 전의시 쪽을 돌아보는 은수.

 

 

#24. 장빈의 진료실

 

문 쪽으로 다가서던 은수가 멈칫 저도 모르게 몸을 숨기고 본다.

거기 최영이 이성계와 얘기를 하고 있다.

이성계는 순수한 흥분으로.

 

성계 : 다들 그랬습니다. 우달치의 대장은 진짜 대단하다구요. 혼자 백명도 상대한다 들었습니다.

 

앞에서 최영이 팔짱을 끼고 앉아 그렇게 말하는 이성계를 보며.

 

최영 : 그런 말을 믿었냐?

성계 : 직접 봤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장이 칼을 한번 휘두르면 한칼에 두세명씩 베어넘기신다고...

        어.. 그.. 칼입니까? 그게 귀검입니까?

 

하며 최영의 허리에 달린 검을 본다. 너무 만져보고 싶어서..

 

최영 : 잘 들어.

성계 : 예.

최영 : 첫째 남의 검은 탐내지 않는다.

성계 : (얼른 칼에서 시선을 거두는) 죄송합니다.

최영 : 둘째. 백명의 적이 날 기다리고 있으면 일단 내뺀다.

성계 : 예?

최영 : (성계의 머리통을 퍽 쳐주며) 그 백명 뒤에 숨어있는 한 놈만 베면 되는데 

        뭐하러 백명하구 싸워. 안 그냐?

성계 : 아.. 예. 그 뒤에 한 놈.

 

최영 웃으며 일어서 돌아서다가 입구 쪽의 은수를 본다.

은수가 이성계를 봤다가 다시 최영을 본다. 복잡한 감정.

최영, 좀 어색하지만 은수 앞으로 걸어와서.

 

최영 : 귀는..

은수 : 괜찮아요. 그쪽 부하분들 체크해봤는데.. 그니까 검사해봤는데 

        심하게 상한 분 없구요. 다들.. 괜찮아요.

최영 : 예. 괜찮을 겁니다. 그놈들은.

 

최영, 다음 말을 어떻게 꺼내야할지 망설이는 동안.

 

은수 : 그럼..

 

하더니 돌아서 가려고 한다.

 

최영 : 저기..

은수 : (돌아보는)

최영 : 얘기를 좀.. (역시 어색하다)

 

 

#25. 궁 일각 / 야외

 

은수와 최영이 걸어온다.

최영이 걷다가 문득 허리를 굽히더니 잔돌을 하나 주워든다. 돌을 갖고 좀 놀다가 대충 뒤를 향해 던진다.

저 뒤, 담 뒤에서 엿보던 돌배가 하마터면 맞을 뻔 해서 겨우 피한다. 담에 딱 맞고 떨어지는 돌.

같이 엿보던 덕만이 얼른 돌배를 이끌어 사라진다.

아무 일 없던 듯 걷던 최영. 은수가 멈추는 바람에 따라 멈춘다.

은수가 최영을 빤히 보는데 말이 없다.

(아직 최영은 은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못한 채.

계속 더 미안해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최영 : (어색한 마음에 일단 말을) 아까 그 애 맞지요? 앞날에 날 죽일 거라 했습니까?

        근데 아무리 봐도 날 죽일 수 있을 거 같지 않던데.. (웃는데)

은수 : (웃지 않고 보기만)

최영 : (웃음 거두고 자세를 바로 하더니) 전하께 청을 드릴 생각입니다. 

        얼마동안 궁을 떠날 수 있게 해주십사고. 허락해주시면 모시고 하늘문 쪽으로 가겠습니다.

은수 : 거기까지 가도 그 하늘문이란 거 열려 있을 보장 없다면서요.

최영 : .. 없습니다.

은수 : 지금 최영씨 임금님하고 해야 되는 일 무지 많지요?

최영 : 예.

은수 : 그런데 나하고 약속 지키겠다구요?

최영 : 여기 계시는 게 점점 위험해질 거 같습니다. 그러니..

은수 : 내가 앞날에 대해서 알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 기철이라는 사람이 날 원하니까?

최영 :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원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이 임자에 대해 알기 전에 떠나는 게 좋습니다.

은수 : (보다가) 하나 알고 싶은 게 있는데.

최영 : 말씀하십시오.

은수 : 저번에.. 내가 혼자 도망가보겠다고 하다가 비탈길에서 떨어질 뻔 했을 때.. 

        나 잡아준 사람. 당신 맞죠.

최영 : (대답 못하는)

은수 : 당신 맞죠. (빤히 보는)

최영 : ... (순하게 보는)

은수 : 그 날.. 내가 그 사람하고 있는 게 위험해보였으면 싸웠겠네요. 나 구해주려고.

최영 : .. 언약했으니까요.

은수 : 날 지켜 준다고. 돌려보내준다고.

최영 : 예.

은수 : 그 기철이란 사람하고 싸우면 이길 수 있어요?

최영 : .. 질 겁니다. 제가.

은수 : 이 세상에서 진다는 말은.. 죽는다는 거죠?

최영 : 싸우다 지면.. 그렇습니다.

 

은수. 맥이 빠지는 기분으로 보다가.

 

은수 : 알았어요. 나도.. 생각을 좀 해볼게요.

 

돌아선다. 두어걸음 가는데.

 

최영 : 이젠..

은수 : (멈추는)

최영 : 웃지 않습니까?

은수 : (돌아보는)

최영 : 단지 내 앞이라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이젠.. 웃지 않게 된 겁니까?

 

최영이 진지하게 묻고 있다.

은수. 그런 최영을 본다. 그렇게 묻는 최영이 마음에 쿵 들어온다.

그러나 은수 돌아서 걷는다. 그 뒤로 최영이 은수를 보고 있다.

 

 

#26. 기철의 집 전경

 

순찰 도는 사병들..

 

화수인소리 : 최영, 그 자 어쩌실라고.

 

 

#27. 기철의 서재

 

기철의 탁자에 쌓여진 두루마리들. 명단 서책들.

기철이 빠르게 두루마리를 열어 안을 보고 맘에 안 들면 던져버리고.

옆에서 양사가 부지런히 돕고.

 

기철 : 최영. 그 놈은 금군 이천명보다 값어치가 있어.

화수인 : 그렇다구 가질 수도 없잖우. 넘어올 놈 같진 않던데?

기철 : 가질 수 있는 방법이야 있지. 간단하게.

화수인 : 뭔데.

기철 : 그 놈이 매여 있는 왕을 가지면 되지. 그럼 놈은 자연히 따라올 수 밖에 없어. 그게 그 놈의 한계야.

         (보던 두루마리를 던져버리더니) 그래서 이 중에서 주상의 사람이 될만한 자가 누구란 거야.

양사 : (던져버린 두루마리를 주워들어 펼치며) 여기 몇몇의 이름이..

기철 : 귀찮다. 그게 누구든. 주상의 서연에 나타나는 자들은 죄다 죽인다.

기원 : 서연장에는 우달치들이 수비를 맡을 것인데요.

기철 : 칠살을 부르겠다.

양사 : (놀라서) 나으리. 칠살이라면 그 살수집단.

         주인도 없고 적도 아군도 따로 없다는 그것들.. 자칫 잘못 불렀다가 통제가 안되면..

천음자 : 우리가 하면 되지. 학자 나부랭이에 우달치 정도는.

기철 : 느이들은 너무 내 사람들인 게 알려져 있잖아.

화수인 : 의선은 어쩔 거요. 끌고 와요. 놔둬요.

기철 : 쓸모는 많으나 이 땅의 실정 따윈 모르는 어리숙한 여인이다.

         왕도 최영도 없으면 갈 곳이 또 있겠는가. 제 발로 기어오게 되어있어.

 

 

#28. 공민의 서재

 

최영이 별로 좋지 않은 얼굴로 보고 있다.

조일신이 공민에게 흥분해서 말하는 중.

 

일신 : 이 고려에는 협박에 굴하지 않으며. 제대로 된 왕을 원하는 백성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하아.. 참으로 훌륭하셨습니다.

 

공민은 최영을 보고 있다.

 

일신 : 덕성부원군 기철이 지금쯤 코가 빠졌을 것입니다.

공민 : (최영에게) 이달 보름이라고 했어요.

최영 : 들었습니다.

공민 : 그때까지 내 사람을 모아서 보여주겠다 했어요.

최영 : 예.

일신 :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전하. 작금 고려에는 충성을 바칠 왕을 기다리는 자들이 곳곳에 숨죽여 있고.

         전하께서는 그들에게 보여줄 징표를 갖고 계십니다.

공민 : (그제야 일신을 보는) 징표라 했습니까?

일신 : 의선이 계시지 않습니까.

 

최영, 걱정하던 것이다. 일신을 짜증나서 본다.

 

일신 : 하늘에서 내려주신 의선입니다. 왕비마마의 목숨을 되살리고. 여기 우달치 대장을 다시 살려냈으며,

         죽어가던 천호장의 아들을 반나절만에 살려냈습니다.

         뿐입니까. 그분께서는 장차 이 나라. 이 세상이 어찌되어갈지. 죄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 분이 전하의 옆에 계시단 말입니다.

 

공민이 최영의 눈치를 본다. 최영은 일신을 노려 보고 있다가 공민을 본다.

공민이 슬쩍 시선을 피한다. 그 위로 계속 떠드는 일신.

 

일신 : (신이 나서) 소신이 벌써 먼 곳까지 다아 소문을 내고 있습니다. 

        개경이.. 고려가.. 곧 다아 알게 될 것입니다.

 

 

#29. 궁안 회랑

 

공민왕이 충석. 도치 등. 수행원들과 걸어오는데

그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최영. 공민의 옆으로 붙으며.

 

최영 : 전하.

공민 : (멈춘다) 나도 걱정하고 있어요.

최영 : 의선을 여기서 더 내보이게 되면..

공민 : 알고 있다구요. 더 위험해지는 거. 허나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최영 : (화가 나고 있다) 덕성부원군 같은 자는 사람을 죽이고 겁박을 해서 모아놓고 

        그 마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전하께선 뭐가 다르십니까?

공민 : 내가 뭐가 다르냐고? 내가 그자와 같단 얘깁니까? (이쪽도 화가 나고 있고)

최영 : 아니십니까? 하늘이니 앞날이니 허황된 이야기 늘어놓고. 거기 혹해서 모여든 자들을 보면서,

         내가 이들 마음을 가졌다 자랑하시려는 거 아닙니까.

 

공민이 어이가 없어 주위를 본다. 안도치와 충석 등이 못 들은 척 난처해하고 있다.

 

공민 : 그렇게 자신의 왕을 속시원하게 비난할 주제면 적어도 대안 정도는 갖고 있겠지.

최영 : 모아오겠습니다. 전하의 사람.

공민 : 내 사람을. 어떻게.

최영 : 의선을 팔아먹지 않고도 데려 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공민 : 그 대신 의선은 조용히 돌려보내라. 그대의 언약이니까.

최영 : 당연하지요.

공민 : 도대체 이 사람. 나의 첫 번째 충신이라는 자는 

        때도 장소도 가리지 않고 왕인 나를 비난하고 큰소리치고.

최영 :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이제 신이 모아올 사람들에 대면 저는 참으로 순한 신하일 것인데.

공민 : (보는)

최영 : (불퉁하게) 겁나십니까?

공민 : 최영 그대보다 더 버르장머리 없는 신하들일 것이다.

최영 : 안되겠습니까?

공민 : .. 그래. 그런 신하들 어디 얼굴 한번 봅시다.

최영 : 그럼 데려 오겠습니다.

 

꾸벅 절하고 가려다가 다시 돌아본다.

 

최영 : 그리하면 의선은..

공민 : (버럭) 돌려보냅니다. 내가.

 

최영, 끄덕이더니 다시 간다. 그 뒤에서 공민이 허 웃는다.

 

 

#30. 전의시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원나라 관리의 복장. 50세?)과 그 옆에 선 이성계.

성계는 아직 복부의 통증 때문에 엉거주춤한 자세..

그들의 하인과 수행사병. 하인이 탁자 위에 커다란 선물 상자를 내려놓는다.

그들 앞에는 장빈이 상대하는 중.

 

자춘 : 내 좀 더 일찍 찾아와서 감사를 표해야 했을 것인데. 공무가 시급하여 이제야 왔네.

장빈 : 의선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자춘 : 그 의선께서는 그럼 안에..

장빈 : 실제로 뵙기가 어려운 분이셔서요.

성계 : (얼른 부친에게) 저는 실제로 뵈었습니다. 아버님. 

       참으로 하늘의 선녀란 이런 분이시구나. 하였습니다.

자춘 : 그 하늘의 외모. 하늘의 실력에 대해선 이번 개경 길에 여기저기서 들었지.

         아무튼.. 나 또한 쌍성에 돌아가면 의선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전할 생각이오.

         원나라 사람들도 들으면 아마 대단히 놀라고 부러워할 것이야.

 

자춘은 허허 웃는데.

장빈은 불안해지며 은수가 있을 안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31. 은수의 방

 

은수가 이지러진 동경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고 있다. 

이리저리 돌리면서 제대로 된 각도를 찾아보려다 포기한다.

 

최영소리 : 이젠.. 웃지 않게 된 겁니까?

 

은수. 고개를 든다.

 

은수 : 그럴 리가. (동경을 향해) 유은수. 돈 워리. 비 해피. (한주먹을 흔들어 보이며) 아자.

 

 

#32. 약초원 정원

 

장빈이 전의시 쪽에서 나오다 보면 거기 은수가 덕만이와 마주 앉아있는데.

은수는 엎드리다시피 한지에 붓으로 뭔가를 적고 있는데. 볼펜처럼 쥔 붓. 서툰 붓글씨.

 

은수 : 개경에서 절령도 길을 따라.. 어디요? (종이에는 개경--> 절령도라고 쓰여지고 있는)

덕만 : 서경까지 갑니다. 거기서 운종도 길로 연주까지 가신 담에.

은수 : 잠깐만.. (쓰면서) 서경.. 운종도..

장빈 : 뭐하십니까?

 

은수가 고개를 드는데 먹물이 코 옆에 묻어있다.

 

은수 : 사람들한테 길을 물어보려고 해도 뭘 물어봐야할지는 알아야 되잖아요. 

        (또 쓰며) 운종도 길로 어디까지 간다구요?

덕만 : (장빈의 눈치를 보며) 연주까지 가십니다. 그 후에 동쪽으로 빠지셔서 평로진 국경지대까지...

장빈 : (은수의 손에서 붓을 스윽 빼앗아) 어딜 가신다구요?

 

 

#33. 전의시

 

은수가 오락가락하며.

 

은수 : 가서 달라고 하면 줄 거 같아요? 기철이라는 그 변태같은 놈. 사람 죽이는 게 제일 쉽다는 그 미친 여자.

         그 사람들한테 가서 내 수첩 달라 그럼 주겠어요? 안 줄 거잖아. 그러니까 포기한다고. 됐다고.

 

은수가 떠드는 동안 면수건 끝을 적셔서 짜는 장빈.

 

은수 : 그냥 그 하늘문인가 거기 가서 조용히 기다릴라고요. 

        한번 열렸던 문인데 언제고 다시 열리지 않겠어요.

 

장빈이 서성이는 은수 앞에 막아 서서. 

(장빈과 은수는 어디까지나 담백한 관계입니다. 절대 남녀관계가 아닌)

 

장빈 : 얼굴 들어 보세요.

은수 : (순순히 얼굴 들어 보이며) 그래서 말인데요.

장빈 : (젖은 수건 끝으로 은수의 얼굴에 묻은 먹물을 닦아주는)

은수 : (얼굴을 맡긴 채) 거기까지 좀 멀잖아요. 그래서 가는 길에 여비가 좀 필요하지 않겠어요?

         왕비님한테 가서 여비 좀 구할까 하는데. 얼마 달라구하면 될까요. 내가 여기 돈 개념이 없어서.

장빈 : (잘 닦였나 확인하며) 왕비님한테 여비를 달라고 하시겠다.

은수 : 수술도 해줬는데. 좀 받을 수 있지 않나.

장빈 : 우달치 대장에겐 말했습니까?

은수 : (멈칫)

장빈 : 말도 안하고 떠날 생각이었던 겁니까?

은수 : 아. 남자 옷 한 벌만 주세요. 사극에 보면 여자들이 먼길 갈 땐 다 그렇게 하드라구요. 

        남장하고. 이렇게.. 삿갓도 쓰고.

장빈 : 여기 있는 게 무섭습니까?

은수 : ...

장빈 : 우달치들이 지켜주는데.. 그걸로는 안심이 안되요?

은수 : 내가 지금 제일 무서운 건 .. 나에요. 내가. 앞으로 이 땅에서. 무슨 짓을 하게 될지 모르겠어서 

        그게 너무 무섭다구요. 난 진짜 역사니 정치니 이딴 데 책임지는 거 싫어요. 딱 질색이라구.

 

 

#34. 산길

 

보부상 둘이 걸어오다가 뒤를 본다.

거기 검은 삿갓을 쓴 일곱명의 무리가 조용히 걸어오고 있다.

걸음이 몹시 빠른 듯. 어느 틈에 보부상을 지나쳐 간다.

보부상이 저희들끼리 툭 치며 수군대는데.

지나가던 자 중의 하나가 삿갓 밑으로 스윽 노려보는데. 무섭다.

그들이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간다.

 

 

#35. 기철의 집 마당

 

사병들이 여기저기 순찰을 돌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잉 뭔가 이상해서 돌아본다. 그 공간에는 아무도 없다.

사병이 다시 다른 데를 보는데.

그 공간에서 어느 틈에 나타난 칠살 중에 하나가 스윽 사병의 뒤를 이동해간다.

사병이 다시 돌아본다. 여전히 빈 공간. (워낙 빠르고 은밀하게 움직인다는 느낌?)

그렇게 사병이 이쪽을 보는 동안 그 뒤쪽 다른 공간에서 또 다른 칠살 중의 하나가 이동해간다.

 

 

#36. 기철의 치료실

 

탕욕을 끝낸 기철이 옷을 입고 있다가 멈춘다. 옆에서 돕던 양사가 왜 그런가해서 본다.

기철이 문 쪽을 본다.

 

기철 : 왔는가.

 

양사가 잉?해서 돌아본다.

어느 틈에 문 안에 들어와 서 있는 칠살 중의 두명. 일인자와 이인자.

일인자가 앞으로 다가온다.

양사가 얼른 막아서며.

 

양사 : 어디 감히 살수들이 주인 가까이 다가서는가. 좀 멀리서. 할 말이 있으면 거기 떨어져서.

 

하며, 일인자를 툭 쳐서 밀어낸다.

일인자가 양사에게 쳐진 자기 어깨를 내려다본다.

기철이 쯔쯔해서 본다.

순간. 일인자의 뒤에 있던 이인자가 스윽 앞으로 나서는가 싶은데 이미 허공에 뿌려진 칼날.

양사가 놀란 얼굴로 그를 본다.

이인자가 검을 다시 검집에 꼽는다.

그 다음에서야 양사가 깨달았다. 머리털이 위에서 일직선으로 잘려 우수수 내려앉는다.

히엑.. 뒤로 넘어질 듯 물러서는.

 

기철 : 언제 어디서 누구를 없애야하는지는 그때그때 내가 알려준다. 댓가는 언제나와 같이.

 

하면서 손을 뻗어 가리키는 곳. 탁자 위에 놓여있는 주머니.

이인자가 들어서 안을 살펴보더니 일인자를 향해 끄덕여보인다.

 

기철 : 아 그리고 느이들 중에 하나는 여인 하나를 감시해줘야겠다. 일거수일투족. 내가 다 알 수 있게.

 

 

#37. 동네 길

 

걸어오는 최영과 그 양 옆에 붙어오는 지호와 시울.

과묵한 타입의 시울과 달리 지호는 연신 떠들어대고 있다.

 

지호 : 날 잡읍시다. 내가 완전 장소 끝내주는 데로 잡아서 준비 다 해놓을게.

 

최영 관심없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집을 찾는 중.

주변은 초가집들이 모여 있는 서민주택가.

 

지호 : 내가 시울이하구 둘이서 진을 짜놓은 게 있는데. 

        그걸루 대적하면 최영이 대장두 검을 빼들지 않군 못 배길걸. (시울에게) 그치?

시울 : 글쎄

지호 : 아 왜애. 이번엔 해볼만하다며.

시울 : 저 집이요. (하며 한 집을 가리켜 보인다)

최영 : (멈춰 보는데)

지호 : (막아서며) 응? 해봅시다. 딱 삼세판만 제대로 붙어 보자구. 그럼 내가 더 안 조를게.

최영 : (지호를 옆으로 밀치고 집을 보는)

지호 : 아 씨. 사람 말을 그렇게 씹어 뱉어버리면 진짜...

최영 : 진짜 뭐.

지호 : .. 빈정 상하지.

 

최영이 집으로 다가선다.

 

 

#38. 이색의 집

 

최영이 들어서 둘러본다.

여기저기 궁색한 살림살이가 보이고, 마당 한쪽에 늙은 아주머니가 멍석에 나물을 말리고 있다.

 

최영 : 이색 선생 댁입니까?

 

아주머니.. 이색의 모친이 힐끗 돌아본다.

 

최영 : 선생을 뵈러 왔는데요.

 

아주머니가 끄응 일어서더니 툇마루로 간다.

거기 잘 안보였는데. 웬 사내 하나가 배를 드러내고 댓자로 자고 있다.

아주머니가 들고간 광주리고 사내를 사정없이 내려친다.

사내가 아야아야.. 하며 딩굴면서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버틴다.

최영이 한심해서 본다.

옆에서 구경하던 지호가.

 

지호 : 저 인간은 아니겠지. 고려 제일의 학자라매.

시울 : 학자는 잠 안 자냐.

지호 : 자도 저렇게는 안 자지.

 

그제야 부스스 일어나 앉는 이색. 헝클어진 머리에 비뚜러진 상투. 부스스한 얼굴로.

 

이색 : 아 왜요.

 

모친이 대답 대신 광주리로 최영네를 가리키더니 다시 멍석으로 간다.

 

최영 : 우달치 대장 직을 맡고 있는 최영이라 합니다.

이색 : (물끄러미 보더니 다시 벌러덩 드러눕는다. 더 자려는 모양이다)

최영 : (옆의 시울에게) 이 집이 맞어?

지호 : (시울에게) 아닌 거 같은데. 설마 저 양반이 열세살에 고려 진사시에 급제하고.

         고려. 원나라 여기저기서 과거 볼때마다 수석을 몇차례나 했다는 그 양반이겠냐.

시울 : 맞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지며) 맞을 건데..

 

최영이 이색에게 다가간다. 자는 얼굴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최영 : 이색 선생 맞습니까?

이색 : (배를 긁으며 눈을 감은 채) 덥소. 바람 막지 말고 좀 비키시오.

최영 : 어명을 받잡고 왔습니다.

이색 : 어명은 무슨.. 똥을 싸쇼.

 

순간. 최영이 이색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더니 마당 아래로 집어던지고는

 

최영 : 학자 이색은 어명을 예와 절로 받들어야 할 것이다.

이색 : 어이구우.. (허리를 잡아 쩔쩔매며) 어명이 대체 뭔데 사람을 이렇게 패가면서 받으래. 

        그게 먹는 거요 입는 거요. 주시오. 받을 것이니.. (하며 손을 내민다) 어서 달라고.

 

최영이 어이가 없어서 보다가 옆에 쭈그려 앉더니

 

최영 : 선생의 선생께 전할 말이 있는데.

이색 : 내 선생님께서는 주먹 나부랭이들하고는 쓰는 말이 다르셔서 전해도 못 알아 들으실텐데.

최영 : 학자나부랭이 아니랠까봐 비비 꽈서 말씀하시긴. 그냥 목숨이 아까워서 숨어 있는 거잖아.

         가서 선생의 선생께 전해요. 나 전하의 우달치 대장. 만날 용기가 있으면 연락하시라고.

 

말하다가 돌아보면 길 쪽에서 대만이 펄쩍펄쩍 뛰며 최영을 부르고 있다.

 

 

#39. 전의시

 

장빈이 지나가다가 멈춘다. 돌아본다.

거기 깨끗한 면포에 은수의 수술도구가 깨끗하게 정리되어 놓여져 있다.

 

 

#40. 은수의 방

 

들어서는 장빈. 방이 비어있다. 더기가 입구에서 들여다본다.

 

장빈 : 의선. 어디 갔나.

 

더기가 한쪽을 가리키며 손짓발짓. 거기에 있는 이자춘이 갖다준 선물 상자.

장빈이 열어본다. 안이 텅 비어있다.

 

장빈 : 이거 다 들고 갔다고?

 

 

#41. 길

 

은수가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다. 뒤에는 커다란 봇짐을 짊어지고. 

남자 옷을 입고. 남자처럼 머리를 묶고. 삿갓을 쓰고 있다.

삿갓이 커서 자꾸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을 밀어 올리며.

걸으며 손에 들린 메모지(덕만과 함께 적은)를 본다.

 

은수 : 절령도길을 따라 서경까지..

 

갈림길 앞에 선다. 망설이다가 보면 저만치 나무꾼이 하나 오고 있다.

부지런히 쫓아가서 막 부르려다가 참.. 해서 남자 목소리.

 

은수 : 말 좀 묻겠소. (장빈처럼 뒷짐을 지고 의젓하게 서서)

나무꾼 : (보는)

은수 : 서경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오. 이쪽인가. 저쪽인가.

나무꾼 : (은수를 아래위로 본다. 암만 봐도 여자)

은수 : 그러니까 지금 이 길이 절령도 길은 맞소?

 

나무꾼이 은수의 뒤쪽을 보더니 그냥 은수를 지나쳐 가던 길을 간다.

 

은수 : 아니 내 말이 어렵습니까. 우리 말을 잘 모르시나..

 

하면서 나무꾼을 따라 돌아서다 보면.

거기 저 앞에 최영이 깝깝한 얼굴로 보고 서있다.

은수. 얼른 삿갓을 눌러쓰고 돌아서더니 걸어가기 시작한다.

최영이 보다가 한숨을 쉬고 성큼성큼 쫓아와서 은수가 지고 있는 봇짐을 잡는다.

은수 앞으로 더 못가고 버둥대다가 멈추고.

 

은수 : (남자 목소리) 이게 뭐하는 짓이오.

최영 : 그러니까. 지금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은수 돌아서 냅다 발로 차려 하지만 최영 긴 팔로 은수를 밀어 잡고 있어서 발이 닿지를 않는다.

허공에 헛발질하고 비틀하는 은수.

 

은수 : (아직도 남자 목소리) 댁이 상관할 일이 아니오. 놓으시오. 이 손.

 

최영, 손을 놓아주는가 싶더니 삿갓을 슥 벗겨버린다.

그 아래서 드러나는 남자 머리의 은수. 최영을 노려본다.

최영 한심해서 보다가 뒤로 돌아 걸어간다. 거기 우물쭈물 서있는 덕만과 대만.

 

최영 : (덕만에게) 제대로 지키라 했지.

덕만 : 그럼 어쩝니까. 저 몰래 도망가시려고 무지 애를 쓰시더니 막 튀시는데, 

        그걸 잡아 묶어놓을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계속 지켜보면서 여기까지.

 

최영에게 한 대 얻어맞을 뻔.

최영 뒤를 돌아본다. 은수가 이때다 하고 부지런히 도망가고 있다.

 

최영 : 대만아.

대만 : 예.

최영 : 말 한필 끌고 와라.

대만 : 두필 아니고 한필입니까.

최영 :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저 분. 말타는 거 배워줬거든.

         한필 따로 주면 바로 튈 거 같다. 한필만. 묶어서 끌고 가게.

대만 : 예. (벌써 뛰어간다)

최영 : (덕만에게) 넌 여기서 대기하고.

덕만 : 예. 대기하겠습니다.

 

최영, 한숨이 나와서 은수를 돌아본다.

 

 

#42. 다른 길

 

은수의 옆을 나란히 걷는 최영.

 

최영 : 그래서.. 생각 좀 해본다더니 그게 이겁니까? 혼자서 하늘문까지 가겠다.

 

은수가 최영이 들고 있는 삿갓을 뺏으려 하지만.

최영이 슥 손을 뻗어 허탕친다. 흘겨보지만.

최영이 은수의 등에 매고 있는 봇짐을 벗기려 든다. 

은수가 반항해보지만 쉽게 빼간다. 무게를 재보더니.

 

최영 : 야무지게도 챙기셨구만.

은수 : 내가 치료비로 받은 거에요. 이성계 그 집 사람들이 주고 간 거.

         (혼잣말) 와아 진짜 이건 암만 생각해도 간 떨려. 이성계..

최영 : 어뜩하면 그렇게 겁이 없습니까. 거기가 어디라고 혼자서.

은수 : 계속 그렇게 따라오면서 잔소리 할 거에요?

최영 : 생각중입니다. 이분을 강제로 끌고 가야 되나. 말로 설득을 해야 되나. 설득이 되겠나..

은수 : (멈추더니 보는) 우리. 이제 약속 끝내요.

최영 : 무슨 뜻입니까.

은수 : 말 그대로에요. 나 납치해온 거. 잊을께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어쩌겠어요. 

        내 팔자가 드럽다 생각하고 잊어줄테니까. 나 돌려보내준다는 약속. 없던 걸로 해요.

최영 : 언약을 없던 걸로 하자.

은수 : 그렇게 해요.

최영 : 내가 언약을 지키겠다고, 임자 때문에 싸우다 죽을까봐요?

은수 : 그건...

최영 : 그래서 혼자 하늘문까지 가겠다고 결정한 겁니까? 내 생각해서?

은수 : (보다가 좀 웃는다. 웃더니) 악수.. 모르죠?

최영 : 모릅니다.

은수 : 나 살던 세상에선 처음 만나서 인사할 때,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울 때. 그리고 헤어질 때 악수를 해요.

         (오른 손을 내민다) 자. 잡아요.

최영 : (은수의 손을 내려다보는)

은수 : 어서.

 

최영이 왼손에 들고 있던 삿갓을 은수의 머리에 씌우더니 

빈 왼손으로 은수의 손을 잡고는. 뒤돌아 끌고 간다.

은수 삿갓에 앞이 가리워져 밀어 올리며 끌려가느라 휘청이며.

 

은수 : 이봐요.

최영 : (끌고 가며) 내가 맺은 언약입니다. 그래서 끝내든 말든 그건 나만 할 수 있습니다.

은수 : 잠깐만요. (그러는 와중에 삿갓이 벗겨져 땅에 떨어지고)

최영 : 그러니 좀만 더 조신하게 기다려주시면..

은수 : 이렇게 끌고 가봤자 나. 다시 도망칠 거에요.

최영 : (멈춰 본다) 도망이라고 했습니까?

은수 : (잡힌 손을 빼내며) 보내줘요.

최영 : (답답)

은수 : 나 더 이상 내 앞에서 사람 죽는 거 못 보겠어요. 더 이상 당신들 세상에 껴들기 싫구.

         그리고 당신 땜에 우는 것두 싫어요. 그러니까 보내줘요.

최영 : 어떻게 보내줍니까. 내가 임자를. 여기서.

은수 : 나 지켜주는 거. 이제 하지 마요. 더 이상 나 안 지켜도 된다구.

최영 : (뭔가 가슴이 지끈, 상처 받은 느낌)

은수 : 약속. 언약. 그거 끝내는 거 쉬워요. 그냥.. 끝내요. 그럼 되요.

 

은수가 손을 내밀어 최영이 들고 있던 봇짐을 잡아 당긴다.

최영, 잠시 잡고 있다가 내준다.

은수가 등에 매더니 외면한 채 돌아선다. 걸어간다. 중간에 땅에 떨어져 있던 삿갓을 집어든다.

최영, 허.. 실소가 나온다.

은수가 점점 멀어진다. 그렇게 멀어지는 그들이 보이는 이쪽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자.

검은 중국풍 삿갓의 칠살 중의 하나. 은수가 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43. 양반 주택가 길 / 밤

 

최영이 걸어가고 있다. 옆에 붙어 따라오는 대만.

저 앞에서 달려오는 돌배. 최영을 보더니.

 

돌배 : 다들 모여 계십니다.

 

최영이 끄덕이며 계속 걸어간다.

 

 

#44. 익재의 집 앞 / 밤

 

대문 앞에 당도하는 최영과 대만 돌배.

대문을 지키던 하인들이 그들을 보더니 문을 열어준다.

 

 

#45. 사랑채

 

문이 열리고 최영이 들어선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온 돌배와 대만은 문 양쪽으로 비켜서 멈추고.

최영은 문 앞에 선다. 주위를 둘러본다.

커다란 방, 사방에는 그늘에 잠겨 앉은 선비들. 얼굴이 잘 보이지 않게 음영처리.

그리고 가운데 저 앞에 익재가 앉아있다. (아직 익재로 알려진)

익재의 옆에는 목은이 익재를 모시듯 앉아있다. 둘만은 조명 아래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가운데 방석이 하나 달랑 놓여있다. 최영을 위한 것인 듯.

 

최영 : 우달치 중랑장 최영이 어르신의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인다.

 

익재 : 우리가 오늘 몇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자네를 불렀어. 

        마음을 열고 진심을 다하여 대답해주겠는가.

최영 : 그리하겠습니다.

익재 : 앉으시게.

 

최영이 검을 풀어내더니 옆의 돌배에게 넘긴다. (아무런 수비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걸어가 가운데 놓여진 방석 위에 앉는다.

목은이 평소와는 다르게 똑바른 자세로 허리를 펴고 앉더니 또박또박한 말투로.

 

목은 : 최영. 평장사 유청의 5세손. 아비는 사헌규정 원직입니다. 

        양광도도순문사의 휘하, 적월대의 최연소 부장을 지냈습니다.

        적월대 해체 후. 지난 칠년 우달치로서 선왕들을 모셨습니다.

 

최영. 자리가 불편해서 꿈지럭.

 

익재 : 자네 부친과는 사헌부 때부터 잘 알고 지냈네

최영 : 그러셨습니까.

익재 : 부친이 사석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네. 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고. ...들었는가?

최영 : 임종 직전에 주신 말씀이.. 견금여석이라 하셨습니다.

익재 : 견금여석. 황금 보기를 돌과 같이 하라.

최영 : 예.

익재 : (끄덕이더니) 자네에 대해 알아보았네. 새로 오르신 주상의 오른팔이 되어 실세를 부리게 되었으나,

         돌처럼 여길 황금쪼가리는커녕 무쇠솥 하나 자기 것이 없다 하더군.

최영 : (난처한 얼굴이 되더니) 저를 불러 묻고 싶으셨던 게 그런 것들이십니까.

익재 : 어째서 지금 주상인가.

최영 : ...예?

익재 : 지난 칠년. 재물에도 출세에도 세상 무엇에도 미련이 없던 자네가 어째서 갑자기 지금 주상인가.

최영 : 지금 저더러.. 주상에 대한 품평을 하라고 하시는 겁니까?

 

익재가 대답이 없이 보고만 있다.

최영 주위를 둘러본다. 그늘 아래 들어앉은 이들이 하나같이 최영을 주시하고 있다.

 

익재 : 우리는 이미 고려 왕실에 대한 기대를 다 버린 사람들이네. 각자 남은 나날, 숨만 쉬며 버티고 있었지.

         이런 우리에게 설명해보게. 왜 이분 주상인가.

 

최영이 난처해서 익재를 본다.

 

 

#46. 강안전 공민 서재 / 밤

 

공민과 노국이 사이좋게 앉아 차 마시는 중. 탁자 위에는 명단 두루마리가 얹혀져 있다.

최상궁이 옆에서 모시며 얘기 중.

 

최상궁 : 오늘 우달치 대장이 만나게 될 분은 익재 이제현 선생이십니다.

 

공민이 명단 중에서 그 이름을 가리켜보인다. 노국 보라고.

노국이 기웃해서 가리키는 것을 보며 작게 끄덕인다.

 

최상궁 : (계속) 고려 뿐 아니라. 원나라며 한족 출신 학자들과도 상당히 넓고 깊은 인맥을 갖고 계십니다.

노국 : 익재 선생이라면 저도 원에서 이름을 들었습니다.

공민 : (최상궁에게) 혹시 지난번 입성책동의 난이 있었을 때 

        원에 직접 들어와 입성반대상서를 올렸던 이가 아닌가.

- 자막 입성책동(立省策動) : 고려를 원나라의 성 하나로 편입시키자는 친원파들의 주장

최상궁 : 맞습니다. 익재선생 덕분에 당시의 입성책동이 저지되었다.. 그리들 보고 있습니다.

노국 : 그런 분이 와줄까요

공민 : (최상궁에게) 그대가 보기는 어떤가.

최상궁 : 글쎄요. 큰소리를 치고 간 자가 워낙에 입정치에는 재간이 없는 인간이라 어떨른지요.

 

 

#47. 사랑채

 

이하 빠르게 거의 오버랩으로 주고받는 문답.

 

익재 : 새로우신 주상전하. 자네가 본 중에 특히 총명하신가.

최영 : 총명하시긴 합니다만

익재 : 백성에 대한 자애심이 특히 깊으시든가.

최영 : 친히 백성들을 대하시는 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

익재 : 원에 대한 자주심이 강하신가.

최영 : 그러신 듯 합니다만

익재 : 우리 고려의 자립 자긍을 위해 능히 목숨을 바치실 분이신가.

최영 : 시험을 해 본적이 없어 모르겠습니다.

 

오버랩 문답 여기까지.

익재가 말을 끊고 최영을 본다. 최영, 똑바로 마주본다.

 

익재 : 그럼 이렇게 묻지. 새로운 주상께 우리의 남은 생을 바친다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실 수 있겠는가.

최영 : 먼저 한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익재 : 듣고 있네.

최영 : 어르신들께서 원하시는 주상은 대체 어떤 분입니까?

익재 : (보는)

최영 : 처음부터 제갈공명의 머리를 갖고 태어나, 백성들에겐 부처와 같이 자비롭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부와 명예와 만수무강까지 내려주는, 그런 분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익재 : (조용히 보는)

최영 : 그러십니까? 그래서 지금 간을 보고 계신 겁니까?

익재 : (흔들림없이 엄하게) 다시 묻지. 자네. 최영. 어째서 이번 주상인가.

최영 : 이 분은.. 부끄러움을 아셨습니다.

익재 : .. 부끄러움.

최영 : 그래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이 분. 그 부끄러움에 둔해지기 전에 지켜드려야겠다고. 

        ..,,답이 되었습니까?

 

어둠 속에 앉아있는 선비들. 조용한 술렁거림.

뒤에서는 돌배와 대만이 그런 선비들 눈치를 본다.

 

익재 : 이달 보름. 주상께서 여시는 서연에 참석해달라고 했는가.

최영 : 그렇습니다.

익재 : 그 서연에 참석한다는 것은 주상의 아래에 들어가 그 부끄러움을 지켜드리겠다는 뜻.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일단 살아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대가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겠다. 언약할 수 있겠는가.

 

최영, 언뜻 대답을 못하고... 익재를 본다. 뭔가 막막한 무게가 다시 눌려지는 기분.

 

 

#48. 양반 주택가 길 / 밤

 

아까 가던 길을 돌아오는 최영.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다.

그 뒤를 좀 떨어져서 따르는 돌배와 대만.

문득 최영이 걸음을 멈춘다. 따르던 이들도 멈춰서서 최영의 눈치를 본다.

우두커니 서있던 최영이 고개를 든다. 들리는 소리.

 

익재 : 그러니 그대가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겠다. 언약할 수 있겠는가.

 

저도 모르게 무겁고 깊은 한숨이 나온다.

 

 

#49. 만두집 / 낮

 

언젠가 최영과 은수가 함께 있던 그 집이다.

의자에 앉은 은수가 탁자 위에 놓여진 만두 접시를 본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보면

거기 전에 최영이 서 있던 그 자리에 덕만이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가. 

최영이 앉았던 맞은편 자리에 와서 앉는다. (예전과 같은 앵글이면 같은 사이즈로 짧은 오버랩도 좋을 듯)

그러다가 은수의 시선을 느꼈는지 돌아보고는 겸연쩍게 웃는다.

은수 웃고. 만두 접시를 내밀어 준다.

 

은수 : 드세요.

덕만 : 잘 먹겠습니다.

은수 : 나 땜에 괜히 고생이 많네요. 나 혼자 가도 되는데.

덕만 : (열심 먹으면서) 아닙니다. 혼자 못가십니다. 

        화적떼도 많구요. 여자들 사냥하러 다니는 원나라 놈들도 있고.

       암튼.. 전.. 괜찮습니다. 실은 이쪽이 더 좋습니다.

 

하며 좋다고 먹는데. 은수가 가만히 본다. 어쩔 수 없이 겹쳐지는 예전의 최영 모습. 바로 그 자리에.

(짧은 오버랩. 시큰둥해서 앉아있던 모습)

// 그리고 이만치 뒤.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시선. 칠살 중의 한명.

 

 

#50. 궁안 회랑

 

최상궁이 걸어오는데 마음이 급하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51. 강안전 공민 집무실 / 낮

 

공민 : 와준다고. 익재선생이.

최영 : 와줄 겁니다.

공민 : 아무 댓가없이.

최영 : 댓가야 앞으로 계속 요구하겠지요. 그건 이제 전하께서 알아서 잘 하셔야 할 겁니다.

공민 : (웃는) 알아서 자알..

최영 : 의선은 보냈습니다.

공민 : 들었어요. 나나 왕비에게 인사도 안하고 가셨더군요.

최영 : 인사하다가 또 잡힐 수 있으니까요.

공민 : 하여튼.. 한마디 봐주는 법이 없군.

최영 : (미소짓는데 어쩐지 공민을 새삼 보는 느낌) 전하.

공민 : 왜요. 또 무슨 잔소릴 하려구.

최영 : 우달치 아이들은 굳이 명령이 없어도 자율적으로, 웬만한 상황에는 대처하게 훈련이 되어있습니다.

         늘 옆에 두어주십시오.

공민 : 그야 물론..

최영 : 익재 선생이 와주신다면 고려의 삼공삼사를 다시 세울 수 있으실 겁니다.

- 자막 삼공삼사(三公三師) : 고려의 정1품 관직. 왕의 고문역.

공민 : (뭔가 좀 이상해서 보는)

최영 : (싱긋) 왕비마마께서 강안전에 함께 거하신다 들었습니다.

공민 : (당황) 아.. 그건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최영 : 자알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공민이 어허 해서 본다. 민망해서.

 

 

#52. 강안전 앞

 

문이 열리며 최영이 나온다. 문 밖에서 지키던 우달치들이 최영을 돌아본다.

최영은 단정하게 문을 닫더니 문을 향해 바로 선다. 그리고는 문을 향해 깊이 숙여 절을 한다.

그렇게 잠시 숙인 채 있다. 작별을 고하는 기분으로.

그러다 똑바로 서더니 미련 없이 돌아선다.

걸어 나오다 보면 거기 최상궁이 서서 최영을 보고 있다. 고개짓을 한다. 이리 오라고.

 

 

#53. 궁 일각

 

최상궁이 최영을 끌어오며 주위를 둘러보며 말조심을 하며

 

최상궁 : 칠살이 개경에 들어왔댄다.

최영 : (놀랐다) 칠살이요? 그 살수 집단 말입니까?

최상궁 : 그래.

최영 : 누가 불렀는데.

최상궁 : 누구겠냐.

최영 : (멈춘다. 후우) 그 자. 정말로 다 죽일 생각인가. 전하께 오는 자들은 다?

최상궁 : 그것들도 다 상대할 참이냐? 너 혼자?

최영 : (대충 앉으며) 생각 중.

최상궁 : 니가 다 지켜준다고 했대매. 그 익재 영감부터 그 주변 것들 다.

최영 : 하여간 진짜 빨러. 바로 어제 밤중에 한 얘기를.

최상궁 : 이눔이 배창자에 칼을 맞았다드니 그 때 들어간 바람이 아직 빠져나오질 않고 있는 거냐.

            니가 무슨 힘으루 그 자들을 다 지켜.

최영 : 고모도 못 믿겠지요.

최상궁 : 내가 몇 번을 말해. 덕성군 그 자에겐 의선만 장난감이 아니야. 

          주상도. 세상도 백성도 다 그자의 장난감이라고.

최영 : 그런데 내겐 그자를 막을 힘이 없다는 거잖아요.

최상궁 : 그럼 있어?

최영 : (웃으려 하는데 웃어지지가 않는) ... 매희. 그 아이도 믿지 못했어요. 내가 자기를 지켜줄 수 있다는 거.

최상궁 : (멈칫하는 기분)

최영 : 그 분도 마찬가지. 믿지 못하더라고.

최상궁 : 그분?

최영 : 고모.

최상궁 : 말해.

최영 : 매희. 그 아이 얼굴이 생각나질 않아요.

최상궁 : .. 뭐?

최영 : 너무 오래 돼서. 생각이 잘 안난다고.

최상궁 : 그게 뭐.

최영 : (무겁지 않게.. 가볍게 말하고 있다) 이러다가 진짜 저 세상에서 만나도 못 알아보면 어뜩해요. 

        그럼 안되잖아. 그래서. 그 전에.. 정말 잊어버리기 전에 만나봐야하지 않나 싶네.

최상궁 : 너, 머라는 거냐.

최영 : (일어선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생각이에요.

최상궁 : (최영의 소매를 잡아채며) 니가 할 수 있는 거 뭐.

최영 :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 가장 고급의 전략은 가장 단순한 것이다.

 

최상궁에게 잡힌 소매를 스륵 털어내고 가며.

 

최영 : 먼저 가우.

 

그렇게 걸어가 버리는 최영을 더 잡지 못하고 보고 있는 최상궁. 아무래도 뭔가 불안하다.

 

 

#54. 기철의 부유고

 

기철이 탁자 위에 귀해 보이는 작은 상자를 올려놓고 뚜껑을 연다. 안에는 양피지같은 가죽이 깔려져 있다.

옆에 놓아두었던 은수의 수첩을 조심스레 드는데. 수첩의 뒷부분이 스륵 미끄러져 빠지려 한다.

아이쿠..해서 얼른.. 그 뒷부분만 조심스레 잡아 상자에 넣는다.

(이 뒷부분은 일기 부분입니다. 앞의 숫자 부분과 구별되는. 나중에 따로 사용되는)

남은 수첩은 그 옆에 나란히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그리고 상자의 뚜껑을 닫고 잠근다.

 

 

#55. 궁의 정원

 

노국이 돌아본다.

 

노국 : 최영, 그 자가?

최상궁 : 아무래도 불안합니다.

노국 : 그 불안해하는 마음이 맞다면 말려야지.

최상궁 : 누가 말린다고 들을 놈이 아닙니다. 제가 압니다.

노국 : 내가 불러 명해도 안되겠는가.

최상궁 : 이미 병영에 없습니다. 그 놈 방에 가봤더니 모든 물건을 깨끗이 정리해 텅 비어있었습니다.

   

그렇게 둘이 말하는 저 옆에 보초를 서는 무각시 중에 장희가 있다. 귀를 기울이고 있는 중.

(굳이 악인의 표정을 일부러 과하게 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담담하게 해주세요)

 

노국 : 그럼... 어찌하나.

최상궁 : 혹시 한분.. 그 분이라면.

노국 : 그분.

최상궁 : 그 놈의 마음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짐작은 되는데.

노국 : 그럼 무얼 하고 있는가. 어서.

 

 

#56. 길

 

말 한필이 달리고 있다. 최상궁이 타고 달린다.

(꼭 말을 달려주세요. 최상궁 말 잘 타십니다.)

 

 

#57. 거리

 

담에 기대 서서 최영이 기다리고 있다. 옆에는 웅크린 대만.

최영은 길다란 장대같은 나무 가지를 하나 짚고 서서 단검으로 잔가지를 쳐내고 있다.

그러다 돌아보면 거기 지호와 시울이 달려온다.

 

지호 : 바로 오늘 밤이요. 한달에 한번 들르는 거니까 오늘 놓치면 또 한달 기다려야 될 거요.

         (소맷자락에서 종이 내주며) 주소하구 이동하는 길은 거기 약도에 그려놨소.

최영 : 날짜. 시간. 정확한 거 맞아?

시울 : 지난 넉달간 똑같은 날. 떳떳한 수금이 아니니까 한밤중. 술시에서 해시 사이.

최영 : 수행자는.

지호 : 늘 하던대로라면 서너명 델고 가지 싶은데.

최영 : 수고했다. (종이를 품에 넣는)

지호 : 정말 혼자 갈 거요?

최영 : 니 놈 델구 가서 뭐하게.

지호 : (대만을 가르키며) 저런 놈보다야 내가 낫지.

대만 : (으르렁거리는 얼굴로 지호를 노려보는)

최영 : (단검을 거둬 넣으며) 창 잡아봐.

지호 : 내 창? 왜. (하면서 후다닥 창을 휘둘러 자세를 잡는다)

 

최영이 몸을 일으켜 서더니 손질하던 길다란 장대나무를 휘릭 돌려 무게를 가늠해보고는

오른손은 장대 끝에 왼손은 중간에 잡으며

 

최영 : 악창. (다음 순간 지호를 향해 일직선으로 찌르며) 찰창.

 

지호가 놀라 간신히 피하며 자기 창을 찔러내자 최영이 그 창을 거두어 빗겨내며

 

최영 : 란창. (연이어서 지호의 창을 눌러) 나창. (숨도 안쉬고 연속적으로 지호를 내려치며) 벽창.

         (지호가 반격하는 창을 찍어 튕겨내며) 점창.

 

지호가 헉헉대며 간신히 피하다가 겨우 창을 뻗어 최영을 찌른다.

최영이 간단히 막으며

 

최영 : 가창.

 

시익 웃으며 지호의 눈을 빤히 보는가 싶더니 

들고 있던 장대를 휘릭 돌려 뒤쪽으로 지호의 배를 퍽 찔러 버린다.

지호가 배를 잡고 캑캑거리는데.

 

최영 : 넌. 눈이 틀렸어.

지호 : 내 눈이 뭐.

최영 : 다음에 어딜 공격할지 미리 보고 있잖아.

지호 : 내가?

 

최영이 들고 있던 장대를 던져버리고 가면서.

 

최영 : 다음 패를 다 보여주면서 싸우는 놈이 어떻게 이기냐.

 

대만이 옆에 붙는데. 그 뒤를 쫓는 시울. 다급하게 활을 빼고 화살을 먹이면서

 

시울 : 난. 나두.. 나하군 왜 안 해. 나두우.

 

 

#58. 길 가 주막

 

/여전히 남장 차림의 은수. 삿갓을 쓰고.

덕만이 주막 안을 기웃거려 보더니.

 

덕만 : 오늘 밤은 이 집에서 묵으면 될 거 같습니다.

은수 : 아이구우..

 

오래 걸어 아픈 다리 비틀비틀.. 마당 가운데 평상에 널부러지듯 앉는다.

덕만이 안으로 들어가며.

 

덕만 : 주모. 누구 없소. 손님 왔잖아.

 

하다가 덕만이 멈춘다. 어느새 칼을 돌려 잡아 발검 자세를 취하며 달려와 은수의 앞을 막아선다.

은수가 뭔일인가 보는데.

주막 앞으로 달려오는 말들. 멈추더니 내리는 최상궁.

 

덕만 : 어.. 여긴 웬일이십니까.

 

하는데. 최상궁이 덕만을 옆으로 치우며 은수를 본다.

 

은수 : (어리둥절) 안녕하세요.

최상궁 : 애기 좀 합시다.

 

다짜고짜 은수의 팔목을 잡아 일으킨다.

잽싸게 주위를 둘러보며 으슥한 곳으로 은수를 이끌며 덕만에게.

 

최상궁 : 제대로 지켜. 아무도 얼씬 못하게.

 

하며 은수를 조용한 곳으로 이끈다.

은수 놀랐지만 최상궁의 기세에 눌려 따른다.

그 뒷 배경으로 안에서 나오던 주모는 덕만이 얼른 밀어내는 바람에 도로 들어간다.

최상궁은 은수를 끌어가며. 적당한 장소를 두리번거리며 찾으며.

 

최상궁 : 그 놈이 의선 말이라면 들을까 해서 왔소.

은수 : 그 놈이 누구..

최상궁 : 최영이. 내 조카놈 말입니다.

은수 : 무슨 일 있어요?

 

 

#59. 주막 일각

 

최상궁이 은수를 이끌어 들어와 자리를 잡으며.

 

최상궁 : 무슨 일이 있을 거 같아서 그럽니다.

 

 

#60. 거리 다리 위

 

최영이 기대앉은 채 자신의 칼을 손질하고 있다. (우달치복이 아니라 야습을 위한 간편한 복장을 하고 있다)

검을 들어 날의 날카로움을 가늠해보고, 기름먹인 헝겊으로 닦아내고. 검집에 넣고.

그리고 검손잡이에 묶여있는 매희의 두건끈을 본다. 끝의 올이 낡아서 풀려있다.

 

최상궁소리 : 혹시 그놈이 갖고 다니는 검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게 지 스승한테 물려받은 검인데요. 그 검자루에 낡은 끈이 한줄 매어져 있습니다.

 

 

#61. 주막 일각

 

최상궁 : 그 끈은.. (망설이며 은수를 보는)

은수 : (기다리는)

최상궁 : 그 놈의 정혼자 것이었습니다.

은수 : 정혼자면... 약혼.. (하다 놀라) 했어요? 그 사람?

최상궁 : 했었나봅니다. 지들끼리. 나라가 편해지면 혼인을 하자하면서.

은수 : 했었다면..

최상궁 : 죽음을 당했습니다.

은수 : 어머..

최상궁 : 그게 칠년 전 일입니다. 한 스승 아래서 무예를 배웠던 사형사매지간이었는데.

           그 스승이 당시 주상께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그게 그 사매아이가 원인이 되어 그리된 것이라.. (망설)

은수 : (기다리는)

최상궁 : 견디지 못해하더니 며칠 뒤 자진하였지요.

은수 : 자진.. 자살... (충격)

최상궁 : 이후에 영이 그놈.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맨날 잠이나 퍼자구. 어디 쌈판만 벌어지면 제일 먼저 뛰어들고.

          그러던 놈이 요즘 변한 줄 알았습니다. 뭔가 해보겠다고 뛰어댕기고.. 그게..

          (은수를 보며) 의선 때문이 아닌가. 저는 생각했지요.

은수 : (자기를 가리키는)

최상궁 : 그놈이 그분이라 칭하는 분. 의선.. 맞지요?

은수 : (보기만) 글쎄요..

최상궁 : 그놈에게 믿지 못한다. 하셨습니까? 이제 더 필요없다 하셨습니까?

은수 : (뭔가 감이 온다. 자기 입을 두손으로 막는)

최상궁 : 그래서 그 놈은 자신이 필요한 자리를 따로 찾은 거 같습니다. 

           그게.. 죽을 자리인 거 같아요. 의선.

 

 

#62. 거리 다리 위

 

/최영이 검자루의 노끈을 정성스레 다시 땋아 내리고 있다.

저만치 옆의 대만은 지루해서 신발을 긁고 있는데.

 

최영 : 궁에 들어가. 부장한테 내가 한 말 전하고.

대만 : (뚱해서 보더니) 싫습니다.

최영 : (어이없어서) 뭐임마?

대만 : 대장 따라갈 겁니다.

최영 : 나 혼자 간다 했지.

대만 : 따라갈 겁니다.

최영 : 이 자식 이건.. (화내려다가) 덫을 놓구 기다리는 일이야. 나 혼자 해야 승산이 있어.

대만 : 덫.. 사냥.. 그런 건 제가 더 잘 합니다.

최영 : (어이없어 웃고 노끈의 매듭을 마저 짓는데)

대만 : 근데.. 덫입니까?

최영 : 왜.

대만 : 대장은 정면돌파잖습니까.

최영 : (손이 멈췄다가) 역시 이상하지?

 

매듭지어진 노끈을 다시 살펴보며.

 

최영 : (대만을 이해시키자고 하는 소리는 아니고. 혼잣말처럼) 뭐 아까울 것이 있고.. 돌아볼 것이 있다고..

         (일어선다. 검을 허리에 차며) 대만아.

대만 : (뚱해서) 예

최영 : 아무래도 내가 겁이 나는 모양이다.

대만 : (놀라서) 예?

최영 : 너 따라 오기만 해. 다신 나 못 본다.

대만 : (울상이 돼서) 대장

최영 : (대만의 머리를 눌러주며) 내 말. 장난 아니야.

 

하더니 혼자 걸어 다리를 건넌다.

대만 울상이 되어 종종거리면서도 따라가지 못한다.

 

 

#63. 주막 앞

 

은수가 허둥지둥 최상궁이 타고 온 말에 타려고 하고 있다.

옆에서 덕만이가 걱정이 돼서 말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며.

 

덕만 : 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리시면 저도 말을 구해서.. 바로..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덕만의 소리가 점점 적어지고.

은수의 귀에 들리는 말소리.

 

은수소리 : 그 기철이란 사람하고 싸우면 이길 수 있어요?

 

 

#64. 회상 #29 궁 안

 

은수와 마주 선. 최영.

 

최영 : .. 질 겁니다. 제가.

은수 : 이 세상에서 진다는 말은.. 죽는다는 거죠?

최영 : 싸우다 지면.. 그렇습니다.

 

 

#65. 궁 다른 일각 담 옆

 

장희가 걸어지나가고 있다. 눈만 돌려 주변을 살핀다.

저 앞에서 순찰을 도는 금군 하나가 오고 있다. 장희와 스친다.

스치는 와중에 장희의 손에 들려있던 쪽지가 금군에게 전해진다.

 

 

#66. 기철의 집 대문 앞 / 밤

 

닫혀있던 대문을 여는 보초들.

금군 하나가 말을 달려들어서고 있다. 아까 장희와 스쳤던 그 금군이다.

 

 

#67. 길 / 밤

 

은수가 탄 말이 달린다.

 

 

#68. 기철의 집 마당 / 밤

 

하인 몇이 기철의 야행 준비를 하고 있다.

하인이 말을 준비하고 있고, 수행원 격인 사병 몇이 대기하고 있고.

천음자가 자신의 말 고삐를 받으려다가 돌아보는 곳. 금군이 달려 들어오고 있다.

안에서 기철이 나온다.

천음자가 금군에게서 받은 쪽지를 기철에게 전한다.

기철이 쪽지를 펼친다. 내용을 읽다가 새 장난감이라도 받아든 양 좋아하는 얼굴이 된다.

 

기철 : 그놈이 날 찾아올 모양이다.

천음자 : (누구? 해서 보는)

기철 : 주상과 의선이 바라보고 있는 그 놈. 우달치 대장. 

        (손에 들린 쪽지를 다시 보며) 죽음을 각오하고 나를 찾아온다는데?

 

 

#69. 밤길

 

최영이 혼자 걸어오고 있다. 야습용 검은 간편복.

 

 

#70. 다른 밤길

 

은수가 말을 달려 오고 있다.

 

 

#71. 밤길

 

최영이 걸어오다가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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