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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17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3.02.21|조회수1,334 목록 댓글 0

[신의] 17

 

 

 

 

 

 

 

 

 

 

#1. 전의시

 

더기가 약탕기를 깬다. (이거 약탕기 깨지는 샷. 음향. 따로 없는지요)

그 모습을 보는 은수.

 

은수나레 : 그날 아침, 그 아이는 약탕기를 깰 거야. 그리고 또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더라.

               맞아. 창문 턱에 가득 피어있던 국화 꽃이 생각 나.

 

은수가 후딱 또 다른 곳을 본다. 거기 창문턱 오지항아리에 국화꽃이 가득 피어있다.

 

 

#2. 길 / 아침

 

최영이 혼자 걸어가고 있다. 검을 들고 언제나처럼 혼자서 걸어간다.

 

은수소리 : 그 날 그 사람을 보내면 안돼. 그 날 그 사람을 기다리는 건 함정이었어.

               그러니 은수야. 제발 그 사람을 잡아줘.

 

 

#3. 전의시

 

은수가 떨리는 손으로 속지의 다음 장을 넘긴다. 거기 쓰여져 있는 글자를 읽는다.

 

은수나레 : 내가 산 이유는 오직 하나. 그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해서였어. 그걸 이제야 알았어.

 

충격으로 들고 있던 속지를 떨어뜨린다. 한장한장 날려 떨어지는 속지.

 

은수 : 이게.. 뭐야.

 

 

#4. 전의시 앞

 

대충 겉옷을 걸친 은수가 달려 나오고 있다. 달려 나왔으나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멈춘다.

이쪽저쪽을 보는데 여기 저기 보초를 서고 있는 금군만 보일 뿐.

문득 뭔가를 생각했는지 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5. 궁 내부

 

뛰어들던 은수가 금군에 막힌다. 초조함을 겨우겨우 누르며.

 

은수 : 가서 전해요. 당신네 그 덕흥군 마마한테 전하시라고. 하늘에서 온 의선이 만나야겠다고. 지금 당장!

 

 

#6. 궁 내부 정원

 

덕흥이 돌아본다. 은수가 금군들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오고 있다. 

덕흥을 보더니 급해서 달리듯 오다가 넘어질 뻔 한다. 얼른 잡아 부축해주는 덕흥.

 

덕흥 : 뭐가 그리 급하신가.

은수 : 오늘.. 최영 그 사람, 죽일 생각이에요?

 

순간. 멈칫 놀라는 덕흥을 은수가 보았다.

 

은수 : 진짜야? 정말 그럴 생각인 거야?

덕흥 : 어찌 알았나.

 

은수. 그 대답에 자기가 더 놀랐다. 굳어서 보다가.

 

은수 : 진짜였어? (순간 북받치며 덕흥의 가슴을 두 손으로 밀치며) 내가 말했잖아. 그 사람 건드리지 말라고. 

        그런다고 했잖아.

덕흥 : (자신의 가슴을 쳐대는 은수의 두 팔목을 잡아) 그리 해줬을텐데.

은수 : (그의 손을 떨쳐내려 하지만)

덕흥 : 온 세상이 쫓고 있는 죄인이. 궁에 들어왔고. 왕의 대리인 나를 독살하려 했는데.

         그런 자를 털끝하나 다치지 말고 궁 밖으로 내보내주라고. 해서 내가 그리 해주었지 않은가.

은수 : (거칠게 손을 빼내더니) 오늘 함정. 뭐야. 어디야.

덕흥 : (놀람과 신기함) 함정.. 인 걸 아는가.

은수 : (눈물이 차오르며) 어디냐구. 어디서 그 사람 죽일 생각이냐구.

덕흥 : (다구치는) 어찌 안 것이야. 오늘 그 자를 함정에 몰아넣을 거.

은수 : (노려보는)

덕흥 : 초조한 건 내가 아니지. 그 함정 곧 발동하게 되어있는데.

은수 : 내 수첩. 나머지 부분에 적혀있었어.

덕흥 : (놀랐다. 허 웃는)

은수 : 살려줘. 그 사람.

덕흥 : 그 수첩이란 거 뭔가? 설마 그 몇장 안되는 것에 오늘의 함정이 적혀있다는 게야. 

        (웃는) 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은수 : 다 해줄게요.

덕흥 : (보는)

은수 : (다시 차오르는 눈물을 후딱 닦아내며 노려보는) 해달라는 거 다 해줄게. 제발.

 

 

#7. 길 / 낮

 

최영이 걸어가고 있다. 몇 명의 행인이 지나가는 평범한 길인데 최영이 문득 신경이 쓰인다.

양쪽에 늘어진 집들. 그 지붕을 본다. 아무도 보이진 않는다.

최영이 문득 멈춘다. 눈을 감고 집중한다. 살수를 상대했을 때처럼.

 

 

#8. 지붕 위

 

궁수들이 납작 지붕에 엎드려 있다. 우두머리인 자가 손을 들어 모두에게 꼼짝마라고 하고 있다.

 

 

#9. 길

 

최영이 다시 걷기 시작한다.

 

 

#10. 지붕 위

 

소리없이 엎드린 채 이동하는 궁수들.

 

 

#11. 길

 

걸어가는 최영. 이제 확실히 궁수들의 존재를 알았다. 으이그.. 성가신 표정. 걸음을 그대로.

 

 

#12. 안가 마당

 

익재네가 기다리고 있는 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최영. 다시 멈칫. 선다.

집안을 한바퀴 둘러본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텅 비어있다.

 

 

#13. 집 뒤

 

궁수가 아닌 자객들이 주루루 벽에 붙어서서 숨을 죽이고 있다.

(현재 상황. 덕흥이 깔아놓은 함정은 집 아래에 깔아놓은 화약입니다.

화약을 터뜨리고 혹시 집에서 뛰쳐나오는 생존자들이 있으면 궁수로 쏘고, 자객들로 마무리하려는 구도입니다)

 

 

#14. 안가 마당

 

최영이 이거 골치 아프게 되었군.. 하는 기분으로 잠시 서서 

주변에 얼마나 많이 포진해있는지를 가늠해보다가 그냥 집 안으로 들어간다. 

화약의 존재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냥 싸울 생각이다.

 

 

#15. 안가 내부

 

입구에 목은이 기다리고 있다가 최영을 맞아들인다.

익재가 가운데 앉아있고, 양옆에 다른 중신 두명. 목은까지 넷. 

먼길 이동을 위해 관복이 아니라 사복을 입고 있다.

최영이 인사는 치우고.

 

최영 : 이 집. 오늘의 이동. 누가 알고 있습니까.

목은 : 우리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을텐데요.

최영 : (익재에게) 그 옥새라는 거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익재 : 이보시게. 이건 우리 백성들이 주상의 뜻을 받들어..

최영 : 그 뜻을 받들어 몇 번이고 제작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저 밖에 놈들이 그 옥새를 노리고 온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알아야겠어서 그럽니다.

익재 : 밖의 놈들이라니.

목은 : 어.!

최영 : (보면)

목은 : 스승님. 문학사 어디 갔습니까?

최영 : 그게 누군데.

목은 : 이집 주인이요. 요 근래 우리가 이 집을 비밀회동 장소로 사용해 왔습니다. 헌데...

 

최영, 손을 들어 말을 멈추게 하고 밖의 소리에 귀 기울더니 바로 일어나 문 쪽으로 가며.

 

최영 : 거기 꼼짝 마십시오.

 

최영이 문을 열려다 멈칫. 힘을 주어 열려는데 열리지가 않는다.

그리고 들리는 탕탕 못 박는 소리.

 

 

#16. 안가 외부

 

학자 차림의 남자 하나가 후다닥 빠져 나가고 있다.

뒤에서 대기하던 자객들이 재빨리 방문이며 창문마다 굵은 널판을 엇갈려 박고 있다. (혹은 고리를 잠그거나)

 

 

#17. 안가 내부

 

최영이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돌아본다.

거기 불안해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중신들. 네명.

최영이 검을 다잡다가 멈춘다. 냄새를 맡는다. 사방의 냄새를 맡다가 바닥 쪽으로.

방바닥의 냄새를 맡는다. 아무래도 불길하다.

 

 

#18. 공민 집무실

 

먼저 들어서는 덕흥. 돌아보면 은수가 초조해서 따라 들어온다.

덕흥은 움직이며 말하는 중.

 

덕흥 : 최영 그자는 검으로는 죽이기가 쉽지 않다 하더군. 

        헌데 부원군이 가르쳐주었어. 그 자의 약점은 명분이다.

     

말을 하면서 문방구를 준비하고 글을 죽죽 써내려간다.

 

덕흥 : 자기를 팔아먹은 나부랭이들도 명분만 들고 가면 내치질 못해.

         그래서 그 명분으로 덫을 놓고. 함정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중인데.

은수 : 그래서 죽이겠다고? 그 사람. 이제 우달치 대장도 아니고 도망중인 사람이고.

         누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절대로 누구 해치는 사람이 아닌데. 왜.. 죽여야 되는데.

덕흥 : (덤덤하게) 그 자가 방해가 되니까. 자네가 내 사람이 되는데.

은수 : (어이없어서) 뭐래는 거야.

덕흥 : 자네를 가져야 내가 덕성부원군까지 가질 수 있단 말이네.

 

 

#19. 안가 집 아래

 

검은 화약더미들이 깔려있다. 그 중의 한 더미에서 주욱 이어져 나오는 화약가루 줄기.

그 줄기가 이어지며 대청 마루 아래로 빠져나온다.

자객의 하나가 화약을 줄줄 한줄로 뿌리며 마당을 가로지르고 있다.

 

덕흥 : 지금 그 자가 있는 곳 아래에는 백근의 화약이 깔려 있어.

         불씨 하나면 제아무리 내공의 고수라도 견딜 수가 없을 거야.

 

 

#20. 공민 집무실

 

은수 : (공포로) 뭘 해주면 되는데.

덕흥 : 자네하고 나. 혼인부터 할까 하는데.

은수 : .. 뭐?

덕흥 : (쓰던 종이를 접으며) 왕족인 나와의 혼인. 조금만 기다리면 자넨 왕비마마가 될 수도 있어.

 

대기하는 금군 하나를 부른다. 달려와 서는 금군.

덕흥이 편지를 들어 보이면서.

 

덕흥 : 이 서찰. 모든 작전 중지하라는 명이야.

은수 : (노려보는)

덕흥 : 시간이 별로 없네.

은수 : (턱을 세우더니) 그거 뿐이야?

덕흥 : ?

은수 : 혼인만.. 해주면 돼? 그럼.. 하자구.

 

덕흥이 웃고 서찰을 금군에게 건넨다.

 

 

#21. 길

 

금군을 태운 말 한필이 달리고 있다.

 

 

#22. 안가 내부

 

최영이 검을 뽑아들며 내부의 이문 저 창문 등을 살핀다. 빠져나갈 곳을 찾는 중이다.

 

목은 : 대체 무슨 일입니까?

 

최영은 대꾸할 여유가 없다.

 

 

#23. 안가 마당

 

화약가루의 줄을 주욱 이어서 뿌려온 자객이 통을 던진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수신호를 하자 마당에 있던 자들이 전부 빠르게 마당에서 빠져나간다.

// 마당 건너. 지붕. (멀리 거리를 둔 곳)

아까의 궁수들이 자리를 잡는다. 그곳에서 바로 보이는 안가의 마당. 혹은 대문.

궁수들이 화살을 꺼낸다. 그 궁수 중의 하나가 옆에 궁수가 내밀어준 횃불에 화살끝 뭉치를 불붙인다.

마당을 향해 불화살을 당긴다. 그의 시선을 주욱 저 멀리 보이는 화약줄기.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발굽소리/. 점점 더 가까이.

 

 

#24. 안가 내부

 

최영이 창문 하나를 찾아 흔들어보더니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목은에게.

 

최영 : 좀 비켜봐요.

 

해놓고 장지를 칼로 후려친다.

 

 

#25. 안가 마당

 

창문 하나가 박살이 나며 안에서 튀어나오는 최영.

몸을 굴려 예상되는 화살을 피하는 자리로 굴러 들어가며 바로 전투태세를 하는데.. 사방이 조용하다.

최영이 이상해서 몸을 일으킨다. 경계하며 마당을 돌아 나오다가 보는 곳.

거기 주루루 이어져 있는 화약가루. 그러나 어디에도 적이 보이지 않는다.

최영,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화약가루를 집어들어 냄새를 맡아보고.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26. 전의시 내부

 

더기가 열심히 손짓을 말하는 중. 옆에서 장빈이 통역 중.

앞에서 은수가 듣고.

 

장빈 : 대장은 무사히 떠났다합니다. 수리방 사람들이 합류를 했구요.

더기 : (두손을 들어 보인다)

장빈 : 더 알고 싶은 게 있는지 묻는데요.

은수 : 됐어요. 그 사람 무사하면.. 됐어요.

 

그러다 돌아보면 궁녀들이 두명 들어서고 있다. 옷상자며 장신구 상자들을 각각 들고 있다.

 

장빈 : 무슨 일이신가.

궁녀 : 덕흥군마마께서 의선께 보내신 것들입니다. 

        (은수에게) 저녁에 소연회를 열 것이니 참석해주십사 하셨습니다.

은수 : 그게 뭔데요.

궁녀 : 그 때 뫼시겠습니다.

장빈 : (은수에게) 뭐가 어찌되는 겁니까.

은수 : 내가.. 그 덕흥군이라는 인간하고 혼인을 하겠다고 했거든요.

장빈 : .. 뭐요?

 

 

#27. 현고촌 입구

 

익재 등을 모시고 들어서는 최영. 그들을 둘러싼 우달치.

지키고 있던 우달치들도 마중 나온다. 충석이 좋다고 나온다.

최영은 계속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거기 일반 백성들이 맘대로 입구를 들고 나는 것을 보며.

 

최영 : 여긴 개나소나 다 들락거리냐.

충석 : 전하의 명이십니다. 밤낮으로 문을 열어두라 하셨습니다.

최영 : 그럼 간자나 자객은.

충석 : 잘 보고 감으로 찾아내야 하지 않겠나..

최영 : (어이없어 노려보는)

충석 : (찔끔)

 

 

#28. 현고촌 내부

 

익재 등을 모시고 이동해오는 최영은 주변의 상황들을 보며 영 못마땅하다.

여기저기 우달치와 일반 백성들이 섞여 있고.

도치가 안에서 급히 나오며.

 

도치 :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최영 : (멈추며) 그럼 전 여기까지. (돌아서려는데)

익재 : 이보게.

최영 : 예. (귀찮은)

익재 : 고맙네. 무사히 호위해준 것.

 

최영이 물끄러미 본다. 한마디 해주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눈빛.

익재가 결국 시선을 피한다.

 

최영 : 들어가 보십시오.

 

선뜻 자리를 뜬다.

 

 

#29. 현고촌 일각

 

앞에서 구경하고 있는 최상궁. 최영이 오락가락하면서.

 

최영 : 맘에 안 들어. 뭔가 이상해.

최상궁 : 느들 가둬놓고 화약을 터뜨릴 생각이었다고?

최영 : 일보직전이었지. 근데 갑자기 다 사라졌어요. 화약을 그대로 놔두고. 뭐야. 이거.

최상궁 : 부원군 짓일까?

최영 : 부원군이 저런 영감 몇 죽이겠다고 그 복잡한 수를 쓴다고?

최상궁 : 그럼 덕흥군이구만.

최영 : 그깐 옥새 하나 부수겠다고? 얼마든지 새로 만들 수 있다던데?

최상궁 : 아니면 널 죽이고 싶었나부지.

최영 : .. 그런가.

최상궁 : 저 영감들이 미끼. 니 놈이 사냥감.

최영 : 내가 왜.

최상궁 : 그러니까.

최영 : 그리고 대체 여기 경비상태가 왜 이 모양이야. 맘에 안 드네.

최상궁 : 전하께서 저자거리 나가실 때를 봐야헌다.

최영 : 어딜 나가신다고?

최상궁 : 왕비마마하구 두분이 아니 가시는 데가 없다. 

          우달치 애들이고 우리 무각시 애들이고 아주 죽을 맛이야.

          어제는 밤을 주우시겠다고 뒷산을 헤메시는데 어이구.

최영 : 마음에 안 들어.

최상궁 : 그나저나.. 의선은.

최영 : (보는)

최상궁 : 어째 같이 안 왔어. 같이 있다더니.

 

최영이 보다가 그냥 몸을 돌려 간다. 몇걸음 걷다가 선다. 머뭇거리더니 방향을 돌려서 걷다가 또 선다.

 

최상궁 : (보다가) 너 뭐하냐.

최영 : (새삼스레 최상궁을 돌아보더니 어쩐지 멍한 얼굴) 그게.. 어.. 이 다음에 뭘해야 될지... 잘 모르겠네.

 

 

#30. 현고촌 원탁 홀

 

들어서던 익재네가 놀라서 선다.

거기 원탁 주변으로는 멍석이 깔리고 여러 학자들과 도치를 비롯한 환관들이

각자 작은 상을 앞에 놓고 수많은 문서들과 두루마리에 파묻혀 있다.

더러는 문서를 뒤지고. 더러는 필기 중이고.

원탁에는 공민과 노국이 나란히 앉아 역시 문서들에 파묻혀 있고.

공민이 문서를 살피는 옆에서 노국은 뭔가를 종이에 적고 있다.

공민이 고개를 들어보더니.

 

공민 : 오시느라 수고들 하셨습니다. 앉으세요. (하며 앞을 가리킨다)

 

익재 등이 당황하여.

 

익재 : 어찌 감히 주상전하와 한 탁자에..

공민 : (노국에게) 보세요. 배운 게 많은 분들은 당황하실 거라 했잖아요.

노국 : (익재에게) 그 자리는 이 동네의 남녀노소. 심지어 노비들도 함께 앉았던 자리이니 사양치 마시오.

 

익재 등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앉는다.

 

공민 : 온 김에 좀 도와주시든가.

익재 : 도우라 하시면...

공민 : 지난 십년 간 만들어진 노비 명부를 뽑아내는 중입니다.

익재 : 노비입니까.

공민 : 우선 지난 십년 내에 양민에서 노비가 된 자들은 노비문서를 폐지할겁니다. 

        거기 그 문서들부터 찾아보시면 되겠네.

        

하며 한뭉치 밀어주는..

 

익재 : 전하. 저희는 고려국새를 전하러 왔습니다.

공민 : 아. 들었습니다.

목은 : (소중히 들고 있던 옥새함을 공민의 앞에 놓아주는) 중신들이 뜻을 모아 제작한 고려국새이옵니다.

공민 : 이 국새를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살피러 오셨겠지요.

        과연 궁을 나간 왕은 소문대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가. 

        제 손으로 숙부에게 왕의 대리권을 내줄만큼 그리 심약한가. (노국을 보며) 또 무엇이 있을까요.

노국 : (도도하게) 이제 곧 원의 황제에게 진정서를 보낼 것인데 어느 왕을 밀어야할지 판단도 하여야겠지요.

공민 : 그렇게 중간에서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알려질까 두려워 

        저희들 손으로 내친 자를 불러들여 호위까지 시키셨고.

노국 : (공민에게 은근히) 그 호위자는 배알도 없습니다.

공민 : 내 말이 그 말이요. (상자를 열어 옥새를 꺼내어 아래를 보더니) 고려국왕신보. 좋습니다. 좋아요. 도치야.

도치 : 예 전하.

공민 : 나에게 옥새가 생겼다. 이 옥새로 첫 번째 교지를 내리겠다.

        최영. 그 자를 복권시킬 것인데. (익재들을 보며) 사유는 다음과 같다.

        최영은 이번 조일신의 난 와중에 왕비의 목숨을 구하고 왕과 그 호위대를 무사히 지키는데 

        큰 공을 세웠으므로 그 이전의 모든 과를 사하고 서용한다.

- 자막 서용(敍用) : 죄를 지어 파직되었던 사람을 다시 등용함.


익재 등이 본다. 공민이 똑바로 마주보며.

 

공민 : 잘들 살펴보고 계십니까?

 

 

#31. 현고촌 일각

 

최영이 편한 자세로 앉아있다가 돌아보고 일어선다.

공민이 혼자 오고 있다.

최영이 재빨리 공민의 주위를 살펴보며.

 

최영 : 혼자 오십니까? 호위는.

공민 : 내가 혼자 오겠다 했습니다. (대충 걸터앉으며) 앉아요.

최영 : (영 못마땅해서) 이런 식으로는 전하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안도 밖도 없이, 아무나 드나들게 하시고. 기분 내키는대로 호위를 물리시고.

공민 : 그럼 슬슬 궁으로 돌아갈까요?

최영 : 덕흥군을 내보낼 때까지는 안됩니다. 금군 이천이 아직 덕흥의 손에 있고. 

        더구나 그자는 독을 씁니다. 독을 쓰는 자에게서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하다 보면)

공민 : (웃음을 참으며 보고 있다)

최영 : 재미있으십니까?

공민 : 우달치였을 때나. 억울하게 쫓겨나 죄인이 되었을 때나. 

        내가 믿을 때나 믿지 않을 때나.. 어찌 그리 변함이 없어요?

최영 : .... 그러게 말입니다. (하며 앉는)

공민 : 아직도 어부가 되는 것이 꿈인가요.

최영 : 그게.. (생각해보는..)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공민 : 좀 전에 대장이 호위해온 옥새로. 대장을 사면, 서용했습니다.

최영 : (보는)

공민 : 그리고 종4품에서 정4품으로 승급시켜서 이제 그대의 직급은 호군입니다.

최영 : 중신들이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공민 : 이러다가 또 그대를 파직시키고. 심지어 유배시키게 될지도 몰라요. 왜냐면 .. 내가 왕이라서요.

최영 : .. 예.

공민 : 그래도.. 옆에 있어주었으면 해요.

최영 : ...

공민 : 미안해요. 또 벼슬을 줘서.

 

최영, 대답을 못하고 한숨을 쉬다가 문득 시선이 가는 곳.

저쪽 길 끝에 더기가 총총 지나가고 있다.

 

 

#32. 현고촌 다른 방

 

더기가 품에서 편지를 내놓는다.

최상궁이 받는다. 옆에서 노국이 보며.

 

노국 : 장어의가 보낸 서찰이라 했는가.

더기 : (끄덕끄덕)

노국 : 어서 읽어보게. 무어라 하는가.

최상궁 : (그 말에 펼쳐서 읽기 시작하는데 안색이 좋지 않다) 그것이..

노국 : 이리 주게. (받아서 읽다가) 이게 뭐라는 건가. 어찌 이런..

최상궁 : (당황하고 있다)

노국 : 알려주지 않아도 되겠는가.

최상궁 : 예?

노국 : 대장에게 알려주어야 하지 않는가.

최상궁 : (언뜻 결정을 못하겠다)

 

 

#33. 현고촌 일각

 

더기가 안에서 나오다가 멈칫 선다. 그 앞에 버티고 서서 보고 있는 최영.

더기가 당황해서 손짓을 좀 하다가 그냥 가버린다.

더기 뒤에서 나오던 최상궁도 깜짝.

 

최영 : 뭡니까.

 

최상궁이 말이 막혀서 본다.

 

최상궁 : 뭐가.. 뭐긴.. (슬쩍 피해서 가려는데)

최영 : (막으며) 무슨 일인데.

최상궁 : ..

최영 : 나한테 숨겨야 되는 일.

최상궁 : 의선이...

최영 : (긴장)

최상궁 : (똑바로 보며) 혼인하기로 하셨단다.

최영 : ... (무표정으로 보는. 입력이 안되고 있다)

최상궁 : 덕흥군하고 혼인하기로. 아직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는데 

           장어의가 보낸 서찰에 따르면 의선이 승낙을 한 모양이다.

최영 : (무표정) 장난치지 말고.

최상궁 : 장어의도 걱정하고 있구나. 의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최영 : (이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분이 혼인을 한다고? 그 놈하고?

최상궁 : 그렇다는구나.

최영 : .. 고모.

최상궁 : 그래.

최영 : 내가 방금 벼슬을 하나 받았는데. 그래서 자리를 뜨려면 절차가 필요한데. 그거 좀 해줘.

최상궁 : 내가 가보마. 놈들이 니 목숨을 노렸다면서. 그럼 니가 가면 위험할 수 있으니 ..

최영 : 내가 가요.

 

최영이 돌아서 걷다가 멈춘다. 멈춘 채로 가만 있다.

그런 최영을 불안해서 보는 최상궁.

최영은 생각하고 있다. 문득 고개를 들더니 걸어간다. 점점 더 빨리.

 

 

#34. 약초원 은수의 방

 

아까 궁녀들이 들고온 상자들이 열린 채 놓여있고.

거울 앞에 앉은 은수. 뒤에서 궁녀들이 은수의 머리를 만져주고 있다. (예쁜 고려식 올림머리 추천합니다)

옆에서 다른 궁녀가 새 옷을 좌르륵 펼친다. (고려식 예복입니다)

 

 

#35. 전의시

 

장빈이 돌아보다가 움찔.

안에서 나오고 있는 은수. 궁녀들이 호위를 하고 있는데. 

보지 못했던 올림머리에 고려식 예복을 입은 은수.

 

장빈 : 혼자 괜찮겠습니까.

은수 : 다녀올게요.

 

씩씩하게 웃어 보이긴 하는데 아무래도 겁이 좀 난다.

장빈이 걱정 되어서 나가는 은수를 보고 있다.

 

 

#36. 궁 내 길

 

/ 궁녀들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가는 은수. 문득 멈춘다. 뒤를 돌아본다.

거기 뒤쪽에 기대 서있던 최영이 돌아본다. 그러나 다시 보았을 때 그 공간은 비어있다.

// 다른 길.

걸어가던 은수가 멈칫해서 앞을 본다. 

거기 최영과 우달치의 주석, 덕만. 돌배. 대만이 함께 걸어온다.

덕만이 대만의 목을 끼어 잡고 장난을 치고. 돌배는 주석에게 뭔가 떠들며 웃고.

그 가운데서 최영이 싱긋 웃고 있다.

// 은수가 다시 본다. 거기 금군의 복장을 한 병사들이 걸어오고 있다.

은수를 힐끔거리며 보면서 지나쳐 간다.

은수.. 계속 걷는다. 어쩐지 외로움에 무너지는 마음의 느낌.

 

 

#37. 편전

 

들어서는 은수. 궁녀 둘은 입구에 머물고.

거기 옥좌 앞에 혼자 서있던 덕흥이 돌아본다.

 

덕흥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은수 중앙까지 걸어간다. 둘러본다. 비어있는 중신들 자리 그리고 사방을 지키고 있는 금군들.

 

덕흥 : 저게 옥좌. 왕의 자리. (하며 옥좌를 가리키는)

은수 : ....

덕흥 : 앉아보겠습니까?

은수 : (고개를 젓는다)

덕흥 : 이렇게 합시다. 이제 난 그대를 하늘에서 오신. 왕비가 되실 분으로 예를 갖춰 대할 것이니.

         그대는 나를 지아비가 되고 왕이 될 자로 대해주는 것으로.

은수 : ..(보기만)

덕흥 : (옥좌로 가서 앉아본다) 거기서 나를 보면 어찌 보이오? 여기에 용포를 입었다 생각하고 잘 봐요.

은수 : ..

덕흥 : 얘기해봐요.

은수 : 내가 보기엔 자기애성 인격장애로 보이네요. 성공에 대한 욕심. 그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은 부족하고. 이 환자 중엔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덕흥 : (웃더니 일어나 다시 은수에게 오며) 그리고 또 이렇게 합시다.

         이 순간 이전의 만남은 다 지우고 지금 처음 만나서 시작하는 것으로. 의선하고 나.

은수 : (조용히) 나에게 독을 먹인 것은 잊을 수 있어요. 이젠 아프지 않으니까.

        근데.. 그 사람 죽이려 했던 건 용서가 안되요. 

        볼 때마다 생각할 거에요. 이 자가 그 사람을 죽이려 했다.

덕흥 : (순한 얼굴) 그런 감정은 숨기는 게 좋습니다. 아주 큰 약점이 되니까. 

        (선뜻 돌아서 먼저 가며) 갑시다.

 

 

#38. 전의시 / 밤

 

장빈이 본다. 최영이 들어서고 있다. 어두운 얼굴.

 

최영 : 어디 있습니까. 그 분.

장빈 : 대장.

최영 : 안에 있습니까? (무작정 들어가려는데)

장빈 : 나가셨습니다.

최영 : 어디루.

장빈 : 덕흥군에게..

최영 : (바로 나가려는데)

장빈 : (막는다)

최영 : (거칠게 장빈을 밀어제치며 나가려고)

장빈 : (간신이 다시 막아 세우며) 덕흥군은 밤낮으로 금군의 호위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앉아서 얘기부터 하지요. 앉으십시오.

 

장빈이 옆의 의자를 가리킨다.

최영이 그 의자를 내려다본다. 그러다가.

 

최영 : 그게.. 안됩니다. (장빈을 보는) 앉아지지가 않아요.

 

 

#39. 궁 내 누각 / 밤

 

덕흥과 은수가 앉아 있다.

그 앞에는 화려한 꽃장식과 음식이 몇접시 차려진 탁자. 누각의 주변도 꽃이나 등으로 장식이 되어있다.

덕흥이 은수의 술잔에 술을 따라준다. 은수가 빤히 덕흥을 보다가.

 

은수 : 원래 그렇게 얍삽해요?

덕흥 : 얍..삽? (모르는 단어)

은수 : 사흘에 한번. 일곱 번 먹어야 되는 해독제? 그때부터 알아봤네요.

         내 수첩의 나머지. 줄려면 그냥 다 줄 것이지 반을 또 남겨놔?

덕흥 : 그거였군. 그 수첩의 나머지.

은수 : 그래요. 그거. 내꺼 나머지. 언제 줄 거에요.

덕흥 : (흥미) 사실대로 말해봐요. 거기 뭐라 적혀 있는 겁니까.

은수 : ... 덕흥군이란 자는 어떻게 해도 왕이 되지 못한다.

덕흥 : (웃는)

은수 : (웃지 않는) 그러니 헛꿈 꾸지 말고.. 고려를 떠나라.

덕흥 : 어떻게 하면 제대로 알려줄 겁니까.

은수 : 나머지 다 받으면 알려드릴 수 있는데.

덕흥 : 이런 건 어떻습니까. 우리의 혼인식이 있는 날 밤. 내가 혼인의 증표로 드리는 거.

 

은수가 노려보는데.

덕흥이 먼저 몸을 일으키며 보는 곳. 은수도 돌아보다가 놀란다.

거기 최영이 오고 있다. 곳곳을 지키던 금군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막는다.

최영이 은수를 발견했다. 은수가 벌떡 일어난다.

최영이 더 생각할 거 없이 앞을 막는 금군을 처리하면서 거리를 좁혀온다.

아직은 검을 칼집에서 빼지 않은 상태로 칼집을 이용해 싸우고 있다.

은수가 그쪽으로 달려가려고 하는데. 덕흥이 은수의 팔목을 잡아당기더니.

 

덕흥 : 위험합니다.

은수 : 멈추게 해요. 사람들 다치잖아.

 

최영이 또 하나의 금군을 처리하면서 똑바로 은수를 본다. 

은수의 팔목을 잡은 덕흥의 손을 보았다.

최영이 순식간에 앞의 금군들을 한꺼번에 쳐내고 누각 위로 올라선다. 덕흥에게.

 

최영 : 그 손 치우시죠.

덕흥 : (은수의 팔목을 놓은 손을 들어 보이더니 물러서며 웃는다) 이자는 호군이다. 놔둬라.

 

덕흥이 따라 올라오는 금군들을 멈추게 한다.

최영이 은수의 앞에 서더니.

 

최영 : 묻겠습니다.

은수 : (반가움과 어쩐지 울컥하는 마음)

최영 : 저 자와 혼인을 한다 했습니까?

은수 : (멈칫했다가 덕흥을 본다)

덕흥 : (빤히 보고 있다)

은수 : (최영을 보며) 그래요.

최영 : 왜요.

은수 : 그게..

덕흥 : 니놈이 아무리 간이 크다하나. 여기는 궁이고 나는 왕의 대리인이야. 여기 보는 눈들을 봐라.

 

순간. 최영이 뻗은 검집이 덕흥의 목을 겨누며.

 

최영 : 조용히 하시죠. 내가 지금 이분하고 얘기하고 있으니까.

덕흥 : 그 검을 뽑는 순간. 너는 반역이다.

 

금군들이 와르르 좀 더 가까이 압박한다.

 

은수 : 그냥. 오늘은 돌아가요.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까.

최영 : (검을 거두며 은수에게) 그 사정이란 거. 내 목숨값이었습니까?

은수 : (놀라서)

최영 : 사흘 전 아침. 나, 죽을 뻔 하다 살았습니다. 저 자가 그것을 거래 조건으로 걸었습니까?

         (울컥) 그렇지 않다면 임자.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은수. 말을 못하는데.

최영이 덕흥을 향해 돌아선다.

 

최영 : 그러십니까.

덕흥 : 그렇다면?

최영 : 다시는 저분 겁박하지 못하게...

 

검을 빼들려는 순간. 그 뒤에서 달려든 은수가 최영의 검 든 팔을 감싸 안는다.

최영이 멈칫 선다.

덕흥 저도 모르게 두어발자국 물러선다.

 

은수 : 하지 마요.

최영 : (멈췄다)

은수 : 그러지 마요.

 

그 사이 덕흥이 재빨리 누각에서 내려간다. 금군들이 우루루 호위해서 멀어져간다.

최영이 은수의 돌아본다. 겨우 진정해서.

 

최영 : 갑시다.

 

그 말에 은수가 손을 풀고 뒤로 물러선다. 최영에게서 멀어진다.

최영이 검을 검집에 넣고 돌아서 은수를 본다.

 

최영 : (손을 내민다) 가요. 같이.

 

은수 그저 서있기만 하자, 최영이 은수의 손을 잡아채 잡더니 끌어간다.

 

 

#40. 궁의 다른 곳 / 밤

 

은수가 최영에게 끌려오며 열심히 말하고 있다.

 

은수 : 어차피 혼인은 한달 넘어서 할 거고 그 전에 하늘문이 열릴 거니까. 난 떠나면 끝. 

        나두 다 생각이 있다니깐요.

최영 : 그걸 지금 생각이라고 한겁니까?

 

은수가 간신이 손을 잡아 빼며 멈춘다.

최영이 다시 손을 내민다. 잡으라고. 은수가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선다.

 

은수 : 여기서 할 게 있어서 그래요.

최영 : 말해요. 같이 하게.

은수 : (고개를 젓는)

최영 : (답답해서) 처음부터 도망가고 싶어 한 거 압니다.

은수 : ?

최영 :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임자, 몇 번이나 죽을 뻔 한 거. 하루도 편히 못 잔 거. 여러 번 울게 한 거.

         다 나 때문인 거 압니다. 아는데.. 그래도 저런 놈 옆에 둘 수는 없습니다.

은수 : (그런 말을 하는 최영을 보는데 웬지 목이 메이는 기분)

최영 : 임자 돌아갈 날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 남은 날들. 저런 놈 옆에 둘 수가 없다구.

         그러니까. ..내 옆은 안되겠냐구.

은수 : (물끄러미 보기만 한다)

최영 : .. 대답 안합니까?

은수 : ... 나 하늘에서 온 거 알죠. 그니까 내가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해도 대충 믿어줄 수 있죠?

최영 : 말해봐요.

은수 :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수첩 뒷부분, 거기요. 

        어떤 사람이 죽을만큼 위험해지는 날에 대해 적혀있었어요.

최영 : 그런데요.

은수 : 그거 보고 며칠 전에 당신 살릴 수 있었어요. 그 어떤 사람. 당신이었거든요.

최영 : 무슨 소립니까. 왜 내가..

은수 : 말했잖아요. (미소) 당신 하늘에서 엄청 유명하다구.

최영 : (이해가 안되는데)

은수 : 근데 내가 본건 반밖에 안되요. 덕흥군 이 나쁜 놈이 나머지 반을 안 줘요.

         거기 또 당신이 위험한 날이 적혀있을 거 같아서. 나.. 그게 필요해요.

최영 : 그래서 여기 남겠다는 겁니까?

은수 : (끄덕인다)

최영 : (가까이 다가서며) 내가 언제 죽을지 알고 싶어서.

은수 : (뒤로 밀리는) 그래야 막을 수 있으니까..

최영 : (더 가까이) 그놈하고 혼인도 하겠다고 했구요?

은수 : (밀리며 끄덕)

최영 : 왕족하고 혼약을 하는 게 어떤 의민지 압니까?

은수 : (밀리다 벽에 등이 막히는) 일단 급해서..

최영 : (바싹 가까이 서서 내려다보는) 그래서 나머지 언제 준답니까.

은수 : (불퉁) 혼인날 밤에 주겠다구...

최영 : 그래서 그날 밤까지 기다리실라고?

은수 : (우물쭈물) 그 전에.. 어떻게든..

최영 : 어떻게요.

은수 : (대답하려는데 최영의 얼굴이 너무 가깝다)

최영 : 그 놈은 임자한테 독을 먹였던 놈이야. 그런 놈한테 붙어서 겁도 없이. 혼인?

은수 : 말했잖아요. 내가 급해 가지구 우선..

최영 : 나를 살리겠다고?

은수 : 살릴 수 있다는데 그럼 모른 척 해요? 그냥 냅둬?

         아니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봐요. 죽기 직전에 나를 살릴 수 있는데 당신 같으면..

 

최영이 한숨을 쉬어 보다가 떠들어대는 은수를 당겨 안는다. 놀라서 안긴 은수.

최영이 말한다.

 

최영 : 이 한심한 분을 .. 어뜩하냐.

 

최영, 놓아줄 수 없어 더 깊이 안고. 은수는 고개를 기대어 묻는다.

요 며칠 둘 다 마음고생이 심했고, 그리웠었다.

 

 

#41. 궁의 회랑

 

덕흥이 금군들의 호위를 받으며 급히 오고 있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중.

멈춰서더니 한 방향으로 달린다.

 

 

#42. 공민 집무실

 

급히 들어서는 덕흥. 따라 들어오는 금군들에게 다 나가라고 손짓을 한다.

다들 나가는 걸 확인하더니 구석에 쌓여있는 문서들 가운데서 두루마리 족자를 하나 꺼낸다.

족자를 펼치자 그 안에서 나오는 일기의 속지 뒷부분.

들고 잠시 생각한다. 안절부절.. 할까말까 하다가 결단을 내리고 옆에 있는 화로로 간다.

일기를 하나씩 화로불에 집어넣는다. 타오르는 일기 한 장. 또 한 장.

덕흥이 불안해서 문쪽을 돌아본다.

(누구에게 뺏기거나 훔쳐지기 전에 아예 없애버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계속 딜할 생각입니다)

 

 

#43. 현고촌 앞 / 낮

 

우달치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막아서는데.

그 앞에 금군의 복장을 한 병사 몇이 환관인 정배를 호위해서 온다.

정배는 문서가 담긴 함을 두 손으로 받들고 있다.

 

 

#44. 현고촌 원탁 홀

 

그 탁자 위에 놓여지는 문서함. 공민과 노국이 나란히.

공민이 놀라서.

 

공민 : 숙부께서 의선과 혼약을.. (노국에게) 알고 있었습니까.

노국 : 어제 들었습니다. 차마 믿어지지가 않아서..

정배 : 전하께서 외궁에 계신지라 조촐한 혼약절차를 치루셨습니다.

         또한 주상전하께 주혼자가 되어주시옵기를 청하오니 부디 승낙하여 주십사 원하셨습니다.

 

공민이 문서함을 보다가 최상궁을 돌아본다. 최상궁도 굳어서 보고 있다.

 

 

#45. 전의시

 

은수가 장빈의 감독하에 자기 손 끝에 침을 놓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우루루 들어서는 궁녀들.

 

궁녀 : (은수에게 절을 하며) 궁 안으로 모시러 왔습니다.

은수 : 궁 안은 왜. 아니 괜찮아요. 전 그냥 여기 있을 거니까..

 

하는데 궁녀들이 벌써 은수의 양쪽으로 붙어서 일으켜준다.

 

은수 : 엄마야. 이봐요. 언니들..

궁녀 : 쓰시던 집기들은 저희들이 알아서 옮기겠습니다.

 

은수가 밀려가면서 애처롭게 장빈을 보지만 장빈도 달리 할 게 없다.

 

 

#46. 현고촌 원탁홀

 

공민이 최영과 둘이 마주 앉은 자리.

 

최영 : 환궁이요?

공민 : 돌아가고 싶다면 갈 수 있겠어요?

최영 : 단지 환궁이신건지 아니면..

공민 : 숙부인 덕흥군이 내 옥좌에 함부로 앉았다하니 끌어내리고 싶은데.

최영 : 알겠습니다.

공민 : 아직도 조정중신들의 태반은 나를 심약해서 도망친 왕으로 생각할 것이고.

최영 : 한번 더 걸러내야 할 겁니다. 그 조정 중신들.

공민 : 금군 이천명은 덕흥군을 지지하고 있다 하고.

최영 : 금군.. 가져오도록 해보겠습니다.

공민 : 부원군이 아직 덕흥군과 연합하고 있으니 그 사병들 또한 위협일텐데.

최영 :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공민 : 우달치 오십명으로 금군 이천에 부원군집 사병들까지 상대하겠다는 겁니까?

최영 : 상대를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아봐야지요.

공민 : 그리고 이거.. (하며 몇 개의 문서 봉투를 건넨다) 몇 개의 벼슬자리입니다. 

        대장이 움직이는데 필요할 거 같아서.

최영 : (보는..)

공민 : 의선 얘기 들었습니다. 대장이 또 의선 데리고 도망칠까봐 

        내가 지금 노심초사하고 있는 겁니다. 알고나 있으시라고..

 

 

#47. 궁 내부 회랑

 

최상궁이 두명의 무각시와 각각 망토를 두른 차림으로 걸어온다. 먼길을 달려온 뒤다.

 

 

#48. 곤성전 내 침실

 

침상에 아예 책상다리로 불퉁하게 앉아있던 은수가 문 열리는 소리에 돌아본다.

거기 들어서는 최상궁.

 

은수 : (너무 반가워서) 최상궁..

 

침상에서 내려오며 포옹이라도 하려는데. 최상궁이 슬쩍 피하며.

 

최상궁 :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신 겁니까.

은수 : 그니까요. 내가 무슨 짓을 한건지..

최상궁 : 좀 앉아보세요.

은수 : (울상이 돼서 앉는)

최상궁 : 날은 정해진 겁니까.

은수 : 아니 날이구 뭐고 전 혼인 같은 거 할 생각이 없어요. 

        일단 약혼하고 그 담에 대충 봐서 파혼하고. 그 담에..

최상궁 : 전하를 제하고는 유일한 왕족이신 덕흥군마마와의 혼약입니다. 파혼이라니..

은수 : 안되요?

최상궁 : 간밤에 최영대장이 다녀갔습니까.

은수 : 말두 마요. 보자마자 드럽게 성질내면서 무조건 같이 가자구.

최상궁 : 가긴 어딜 갑니까.

은수 : 그니까 도망을..

최상궁 : 왕족의 정혼자와 도망을 가면 바로 능지처참에 해당되겠지요.

은수 : .. (그제야 좀 현실감이 드는)

최상궁 : 왕비마마께서 저를 보내셨습니다. 정신을 좀 챙겨드리라구요.

은수 : 아니 잠깐. 난 그냥 그러겠다. 말로 대답한 거 뿐이거든요. 

        무슨 약혼식을 따로 한 것두 아니구요. 그리고..

최상궁 : (탁자 위에 놓인 함을 열어 혼서를 보더니) 혼서를 받으시고.

은수 : 제가 한자에 약해서 읽어볼 생각도 안했는데.

최상궁 : (한쪽에 늘어지고 쌓여져 있는 옷상자 예물상자를 가리키며) 납채예물도 받으시고.

은수 : 그냥 무조건 갖다 주길래.. 지금이라도 돌려줄까요?

최상궁 : (길게 한숨이 나오는데)

은수 : 근데.. 그 사람. 원래 그렇게 겁이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최상궁 : .. 영이요?

은수 : 아니 병사들이 쫙 둘러싸구 있는데 어뜩게 그렇게 눈에 뵈는 것도 없구.

         그니까 그때 나 델구 도망쳤으면 그냥 대역죄인인거네요..

최상궁 : 그렇지요.

은수 : (화내며 저리 가며) 이건 뭐 부탁을 해도 안되고. 울어도 안되고. 

        맨날 말로만 조심한대. 으이그..

 

최상궁이 이와 비슷한 모습을 언젠가 본 거 같아서 보고 있다.

 


#49. 편전

 

화려한 옷의 권문세족들과 관복 차림의 익재를 비롯한 중신들이 양쪽으로 갈려서서 말싸움을 벌이고 있다.


목은 :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양민이었던 사람들입니다.

세도가1 : 노비는 공신들의 재산입니다. 아무리 주상이라고 해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남의 재산을 강탈해갈 수는 없어요.

이색 : 고려의 땅이 모두 주상의 것이요, 고려의 사람들이 모두 주상의 백성입니다.

세도가2 : 주상은 무슨. 전쟁이 나게 생겼는데. 

            이건 아닙니다. 내 판도사 총랑으로서 이 정책은 반드시 막을 것입니다.

- 자막 판도사 [ 版圖司 ] 조세 및 나라 살림을 맡던 관청


옥좌에는 덕흥이 앉아있는데. 턱을 괴고 싸우는 이들을 무료하게 구경 중이다가 

어. 자세를 바로 하여 보는 곳.

최영과 도치, 또 하나의 내관. 돌배 대만 점오 등 우달치 몇이 들어서고 있다.

떠들던 중신들이 조용해져서 돌아본다.

최영 등은 멈추고 도치가 좀 더 나서.

 

도치 : 주상전하의 교지를 전하겠습니다. 

        (옆의 내관이 받쳐 들고 있는 몇 개의 두루마리 중의 하나를 펼치는데)

세도1 : 이게 무슨 얘깁니까. 여기 계신 덕흥군마마께서 대리청정을 하고 계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익재 : 전하의 교지를 받들겠습니다.

덕흥 : (차가운 얼굴로 보고 있는)

도치 : 주상전하께서 하명하셨습니다. 차후로 내려지는 어지는 고려국왕신보에 의해 증거될 것입니다.

        한나라의 옥새는 하나 뿐이니 행여 이를 어지럽히는 일이 없게 하라 이르셨습니다. 

        (다른 두루마리를 펼치는)

 

중신들이 눈치를 보는 덕흥. 덕흥이 미소를 띄고 있다.

 

도치 : 주상전하께서 하명하셨습니다. 차후로는 전하께오서 정무를 재개하실 것이며,

        그간 섭정의 임무를 수행해온 덕흥군의 노고에 치하하노라 하셨습니다.

       (중신들을 둘러보며) 중신들께서는 전하께서 거하시는 외궁으로 가셔서 

        조회에 참여하시면 되겠습니다.

덕흥 : (못 참고 웃는다. 웃으며 최영을 본다)

최영 : (마주 웃어준다)

도치 : 또한 주상전하께서는 호군, 최영에게 새로운 임무를 명하셨습니다.

        최영은 병마부사의 직을 받들어 전하께서 환궁하시는 날까지 궁에 거하며 

        궁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시라.

최영 : (시선은 덕흥을 향한 채) 명 받들겠습니다. 바로 그 첫 번째 업무를 행하겠습니다. 덕흥군 나리.

덕흥 : ..

최영 : 앉아계신 그곳은 주상전하만 앉으실 수 있는 옥좌입니다. 그만.. 일어나시지요.

 

 

#50. 궁 회랑

 

기철이 오고 있다. 귀찮아하고 있다.

 

 

#51. 공민의 집무실

 

기철이 들어서며.

 

기철 : 아시겠지만.. 제가 몹시 바쁩니다. 우리 의선께서 알려주시는 하늘의 지식이 

        말그대로 하늘만큼 광대한지라 이건 뭐 받아 적기만 하는 것도..

덕흥 : 주상께서 방법을 바꾸셨네. 궁으로 들어오지 않는 대신에 궁 안의 것들을 하나하나 빼갈 생각이야.

         그것을 지휘할 놈으로 누굴 보냈는지 아는가.

기철 : (짜증) 그 놈이 또 왔습니까.

덕흥 : 그 놈이 가장 먼저 빼갈 사람은 그대의 의선일 것인데.

기철 : 어찌할까요.

덕흥 : 별수 없지 않은가.

기철 : 주상을 치겠습니다. 허나 명분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래도 일국의 왕이신데. 명분이 너무 허약하면 제가 곤란하니까요.

덕흥 : 명분은 내가 만들어보지.

기철 : 그리고.. 마마의 혼례식. 한달 반 뒤로 길일을 잡으셨다 했습니까.

덕흥 : 그런데?

기철 : 의선께서는 하늘의 문이 열리는 시각이 두달 뒤라 하셨습니다. 

        헌데 아무래도 좀.. 속이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 태연하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계시거든요.

덕흥 : 그렇다면 그 하늘문이란 게 열리는 시각이..

기철 : 아주 빠를 수 있습니다.

 

 

#52. 궁 일각 서원 앞 복도

 

걸어오던 최영이 고개를 들어 보는 곳. 거기 현판이 달려 있는데. 天明書院

 

 

#53. 서원 내부

 

학자풍의 사람 몇이 필기도구들을 앞에 놓고 열심히 받아 적는 중.

그 중앙에는 양사가 있다. 누구보다 열심.

그 사이를 누비며 강의를 하고 있는 은수. 마치 세미나실에서 세미나를 하던 때의 표정으로.

 

은수 : 하늘세상에서 이동을 하시려면 먼저 탈것에 대해서 아셔야 됩니다. 

        이 땅에서 탈 것이라고 하면 뭐뭐가 있죠.

양사 : 말. 마차. 배. 이런 것들 말씀이십니까.

은수 : 그렇죠. 정확한 답변이셨습니다.

양사 : (뿌듯)

은수 : 하늘 세상엔 좀 종류가 많습니다. 우선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

 

학자들.. 놀라서 우오..

은수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으면서 양사는 옆에 사람 것을 컨닝도 하고.

 

은수 : 비행기도 엄청 많은 종류가 있지만 일단 넘기고.

      물에서도 물 위를 떠다니는 배가 있고. 물 속을 다니는 잠수함이 있구요.

      땅에서도 땅 속을 달리는 지하철이란 게 있어요. 

       그리고 땅 위를 달리는 탈것은 종류가 너무 많은데.. (하다가 멈칫)

 

저 뒤쪽 뒷문으로 들어오는 최영. 뒤에 기대 서더니 구경한다.

은수.. 머뭇거리다가 강의 계속.

 

은수 : 사람들 수백명을 한꺼번에 태울 수 있는 기차에서부터. 수십명을 태우는 버스.

       그리고. (최영을 보며) 오토바이라는 게 있는데요. 이곳의 말처럼 혼자 타는 거에요.

 

최영보고 있다.

 

은수 : (웃는 눈으로) 가끔은 한사람을 더 태우기도 하죠. 정인들끼리 둘이 타기도 해요.

         그건 여기 말처럼 허약하지가 않아서 둘이 타고 아주 멀리 달려도 괜찮거든요.

양사 : 저.. 의선. 의선님.

은수 : (보면)

양사 : 그게 어찌 적습니까. 오도..토..

은수 : 오토바이요? 음.. 어찌 적어야 하나.. (다가가서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최영이 문으로 나가고 있다. 문을 닫기 전에 슬쩍 돌아본다. 은수와 눈이 마주친다.

 

 

#54. 회랑

 

최영이 걸어가며 지시 중. 그 옆을 돌배와 대만. 점오 등 다른 우달치들이 따라 걷는다.

 

최영 : 호군 이상. 금군의 지휘부를 조사해봐. 덕흥군에 붙은 것들이 누군지.

돌배 : 예.

최영 : 분명 그에 반발하는 무리들도 있을 것이니 그쪽도 조사하고.

돌배 : 알겠습니다.

최영 : 대만이는 덕흥군의 이동반경을 철저히 훑어봐. 그 자가 감추는 것이 있는데 그 장소를 알아야겠다.

대만 : 예 대장.

최영 : 점오는 덕성부원군의 사병을 맡아야겠는데.

점오 : 예.

 

그렇게 바쁘게 가는 이들.

 

 

#55. 현고촌

 

우루루 달려나오는 주석과 덕만 등 우달치. 그들이 맞이하는 곳에 화수인이 서있다.

 

화수인 : 수고들 많으시네.

주석 : 요물.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다.

화수인 : 그럴 리가. 여기 사시는 임금님은 아무도 막지 않으신다던데? 노비도 백정도 거지도..

 

하며 거리낌없이 안으로 들어간다.

덕만이 칼을 뽑아 그 앞을 가로막으며.

 

덕만 : 전하께선 안 막으시는데. 나는 좀 막아야겠네.

화수인 : (웃으며) 나랑 놀면 여기 사람들 많이 다치는데?

 

화수인이 턱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일반 백성들이 오가고 있다.

덕만과 주석이 시선을 마주친다. 어쩌지.

그 가운데로 유유히 들어가는 화수인.

 

 

#56. 현고촌 내부

 

들어선 화수인이 내부를 둘러본다. 백성들은 별 신경 안쓰고 오가는데.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우달치들이 화수인을 경계한다.

뒤따라 들어온 덕만네가 긴장해서 보는 곳. 다른 쪽에서 (혹은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천음자.

 

화수인 : 어때?

천음자 : 우달치 내부 외부 이십여명씩. 정찰조는 따로 있는 거 같고.

화수인 : 그거 뿐이야?

천음자 : 지금은 그거 뿐.

화수인 : 뭐야. 그럼 우리만 있어도 되잖아.

천음자 : 내 말이. (하면서 시선은 대만을 찾고 있는)

 

안에서 튀어나오는 충석.

 

충석 : 이것들 여기서 뭐하냐.

주석 : 염탐을 온 거 같습니다.

충석 : (둘 앞에 버티어 선다) 뭐야.

화수인 : 주상께 인사나 드릴까 해서 왔는데.

충석 : 불가하다.

화수인 : 왜요?

충석 : 내가 불가하다고 했으니까. (하며 검을 빼든다)

 

주위의 우달치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든다.

 

화수인 : 나 진짜 한판 하구 싶은데. 요즘 기분도 별로고.

천음자 : 가지.

 

화수인을 끌고 나간다. 그 뒤를 엄중하게 몰 듯이 따르는 우달치들.

화수인이 등 뒤로 뭔가를 던진다.

 

주석 : 폭탄이다.

 

일제히 놀라 흩어지는 우달치들.

그러나 그것은 작은 목각인형. 화수인이 웃으며 멀어진다.

 

 

#57. 궁 전경 / 밤

 

 

#58. 회랑

 

은수가 조심조심 이동하고 있다.

저만치 순찰을 도는 금군이 지나가자 영화에서 본 포즈로 숨었다가 다시 몰래 움직인다.

그런데 이만치에서 그 모습을 발견한 금군이 뒤를 따른다.

 

 

#59. 공민 집무실

 

어두운 집무실로 몰래 들어오는 은수. 한쪽으로 살금살금 가는데.

그 뒤에서 따라 들어온 금군이 칼을 뺄 포즈를 잡으며 다가선다.

그런데 이쪽에서 나온 팔이 그를 조용히 기절시키고 질질 끌어 치운다.

앞에서 은수는 굉장히 열심히 까치발을 해가며 서가 쪽으로 간다. 

서가를 뒤지기 시작하는 은수.

그 모습을 이만치에 기대서 구경하고 있는 최영.

또 하나의 금군이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역시 재빨리 기절시켜서 치운다.

돌아보니 은수가 안보인다. 기웃해서 책상 뒤쪽을 보니 

엉금엉금 기어가며 혹시 바닥에 비밀금고는 없는지 뒤지는 중이다.

최영, 표정관리 좀 하고.

은수가 에잇. 일어서더니 이제 은수는 높은 데에 뭔가 없는지 까치발을 하고 손으로 쓸어보고 있다.

그 손이 높은 곳에 올려놓았던 자기제품을 건드린다.

떨어져 내리는 자기를 받아드는 손. 최영이다.

은수 깜짝 놀았다가 떨어지는 것이 없어 멈췄다가 슬그머니 반만 돌아보는데.

자기 뒤에 보이는 다른 사람 옷자락.

무작정 도망치려는데 그 등덜미가 잡혔다.

은수의 귓가에 대고 최영이 묻는다.

 

최영 : 뭐 찾으십니까?

 

그제야 최영을 돌아본 은수. 놀란 마음에 가슴 한 대 쳐주고.

 

은수 : (속삭여서) 여기서 뭐해요.

최영 : 찾으시는 수첩. 이 방엔 없습니다.

은수 : (여전히 속삭이며) 그래요? 그럼 저쪽 방. 

        거기서 그 나쁜 놈이 혼자 바둑을 많이 둔대요. 거기 숨겨놨을지 몰라요.

 

은수가 까치발로 입구 쪽으로 간다.

최영이 그런 그녀를 구경하다가 할 수 없이 따라간다.

가는 길에 치워놓은 금군이 꿈틀거리며 깨려는 것을 가볍게 한 대 더 쳐서 기절시킨다.

 

 

#60. 궁 회랑

 

/ 은수와 함께 걷던 최영이 문득 은수를 잡아서 옆의 방으로 넣어버린다.

따라 들어가고 문이 닫기자마자 간발의 차로 오는 금군 순찰조. 그 방 앞을 지나간다.

 

 

#61. 궁의 방 내부

 

그리 크지 않은 방. 한쪽 벽의 병풍.

방문 앞에 붙어서 밖의 동정을 살피던 최영이 돌아본다.

안쪽에서 최영을 보고 있던 은수가 얼른 시선을 피한다. 딴 데를 보는 척.

최영 다시 문쪽을 본다. 문을 향해 말한다.

 

최영 : 그 수첩에 내가 죽는 날 말고 또 뭐가 있습니까.

은수 : (그런 최영의 옆모습을 보며) 하늘문 열리는 날짜하구..

최영 : 임자에 대한 건. 임자가 위험하게 되는 날이라든가.

은수 : 그런 건 없는데요.

최영 : 그렇다면 (돌아보는) 포기하죠. 그 수첩.

은수 : 하지만..

최영 : 임자가 앞날을 안다는 거 알지만, 한번도 탐내본 적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도 포기하죠.

은수 : 이건 당신이..

최영 : 알고 싶지 않습니다.

은수 : (시무룩)

최영 : 상관없습니다. 죽는 날 같은 건.

은수 : ..그럼... 내가 당신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최영 : .. (의외의 답변이라서)

은수 : 우리 이제 헤어져야 되는데. (애써 웃어 보이는) 이건 뭐 남들처럼 싸우고 헤어진 거라 

        술 마시고 다시 찾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짜.. 그냥 헤어지는 건데.

최영 :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보는)

은수 : 그래도 문 너머 저쪽에 당신이 살고 있다. 잘 살고 있다... 그런 생각은 해야 되잖아요. 

        근데 어떻게 포기해.

 

최영, 저도 모르게 은수 쪽으로 움직이려는데 방 밖에 어지럽게 달려지나가는 발소리.

침입자가 있다. 습격당한 놈이 있어.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데.

최영과 은수는 그대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가 간신이 고개를 돌린 최영이 문을 벌컥 열더니 밖을 향해.

 

최영 : 뭐야. 이 밤중에.

 

하며 나가더니 뒤로 문을 닫아준다.

방안에 남은 은수, 마음이 힘겹다.

 

 

#62. 궁 내부 일각 야외

 

금군의 장교 세명이 이야기를 하며 가고 있다. 나이들이 지긋한 호군(대령?) 이상급들.

이만치 옆에서 돌배가 다른 짓을 하는 척 하면서 보고 있다.

 

돌배 : 호군 이상급 열한명이 정기적으로 회동합니다.

 

 

#63. 궁 일각

 

최영과 돌배. 대만 우달치 몇이 걸어오고 있다.

 

돌배 : 하나같이 최근에 가세가 풍족해졌습니다. 조일신의 난에 참여했으나 이후 문책을 받지도 않았구요.

         그놈들이 덕흥군과 손 잡은 핵심 같습니다.

대만 : 그 불쟁이하고 피리쟁이가 현고촌에 왔었답니다.

최영 : (멈춰서 보는) 그래서.

대만 : 우리 몇 명 있나 세보구 갔대는데요.

 

최영 생각해보며 걷기 시작한다. (기철의 정찰에 대한)

저 앞에서 점오가 기다리다가 안내를 한다.

 

 

#64. 금군 병영 밀실

 

들어서는 최영의 무리.

안에 기다리던 젊은 금군 다섯명 정도가 긴장하여 일어선다. 양쪽이 대치하여 선다.

잠깐 긴장이 흐르다가.

 

최영 : 오랜만이다. 안재.

 

그제야 웃으며 최영과 안재가 서로 팔을 걸어 잡고 서로의 어깨를 쳐준다.

 

안재 : 최영. 자네야말로 파란만장하더군. 그래서. 뭔데 이렇게 비밀스레 만나재.

최영 : (안재 옆의 동료들을 훑어 보는)

안재 : 내 전우며 벗들이다.

 

최영이 자리에 앉는다. 우달치들이 양옆으로 주루루 앉고 

탁자의 반대편에서 안재와 그 무리들이 주루루 앉는다.

최영과 안재는 각자 가운데 자리에서 서로 마주한 채.

 

최영 :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느들. 

        (그냥 편하게 한마디씩) 주상전하께 검을 겨누고 궁에서 몰아낸 천하에 반역도들.

 

최영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점점 분위기가 험상궂어지더니.

누군가 하나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최영과 안재를 제외한 모두가 벌떡벌떡 일어나 서로를 노려본다.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듯.

최영은 그 자세 그대로.

 

최영 : 맞지?

안재 : ... 맞아.

최영 : 느들하고 싸우다가 내 부하 아홉이 죽었다.

안재 : 우린 좀 빠지는 서른이다.

최영 : 느들 상관들이 돈을 얼마나 쳐먹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안재 : 좀 많다.

최영 : 돌아올래? 전하께서 기다리시는데.

안재 : 우리 몇 명이 가고 싶다고 가지냐?

최영 : 올 수 있게 만들어주면. 올 거냐고.

안재 : 가면.. 볼 수 있냐?

최영 : 뭘.

안재 : 너하구 정분난 하늘 여인.

 

최영, 잠시 보고 있더니 그대로 탁자 건너 안재의 머리통을 패려고 하고, 안재가 맞서 싸운다.

살벌하게 주먹을 주고받고 막는데 친구 간에 많이 그래본 솜씨.

나머지.. 피해주면서 구경.

마지막으로 엉겨서 서로 바싹 붙은 채로 안재가 묻는다.

 

안재 : 거사 날짜는 언제로 잡고 있냐?

최영 : 하루라도 빨리.

 

 

#65. 현고촌 앞 골목

 

대만이 빠르게 달려온다. 사람들 사이를 피해가며.

 

 

#66. 현고촌 홀

 

대만이 내주는 편지를 받아드는 도치. 공민이 보면.

 

도치 : 금군에서 새로 포섭된 명단입니다. 중랑장급 둘. 랑장급 다섯입니다.

공민 : 미리 영진명단을 만들어두지. 적절한 때에 사용할 수 있게.

도치 : 예 전하.

대만 : 아 참.

 

하더니 품에서 뒤적뒤적 또 하나의 서찰을 꺼내 도치에게 건넨다.

 

 

#67. 궁의 누각

 

바둑판 앞의 덕흥. 기철이 앞에 앉으며.

 

기철 : 금군이 움직일 것이라구요.

덕흥 : 내가 최영이라면 지금 그 일을 하고 있을 것이야. 금군을 움직이는 일.

기철 : 금군이 주상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현고촌을 치면 되겠습니까?

덕흥 : 가능하겠나.

기철 : 헌데 명분은?

덕흥 : 그날 그대는 나의 혼례식에 참석할 것이네. 보제사에서 열리는 조촐한 식이 되겠지.

기철 : 아하.

덕흥 : 혼례가 끝나면 나와 내 부인은 궁으로 돌아올 것인데. 그때쯤에 주상께서는

기철 : 화적떼의 손에 서거하셨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 아이들이 화적떼 복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덕흥 : 국상을 치루고 나서 내 왕비는 짧은 여행을 떠날 것이네. 그때 데려가시게. 하늘문으로.

 

따악 바둑알을 놓더니 가운데 잡힌 돌들을 빼낸다.

 

기철 : 알겠습니다. 그럼 혼례 날짜는?

덕흥 : 내일 모레.

 

 

#68. 궁 일각

 

/ 최영과 최상궁이 접선 중이다.

 

최상궁 :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니냐.

최영 : 하루라도 빨리.

최상궁 : 아직 혼례날짜는 멀었구만. 그 전에만 의선을 찾아오면 되는 거 아냐.

최영 : 시간이 없어.

최상궁 : 조심해라.

최영 : (울컥) 하구 있잖아요. 여기서 어떻게 더 조심해. 같은 궁 안에 있으면서, 그런 놈이 옆에 붙어있는데. 

        찾아가 보지도 않잖우. 내가 지금.

최상궁 : 버럭질하지 말구 이눔아. 확실하게 덕흥이 그 놈을 역적으로 만들어서 끌어내리고. 

          그 담에 모셔오라고. 다음 보름까지만 일을 성사시키면..

최영 : 다음 보름이... 날짜요. 그분 돌아가시는.

최상궁 : (놀라 보다가) 그러냐.

최영 : ..

최상궁 : 한번 물어봤냐? 남을 마음은 없으신지?

최영 : (웃더니) 마음이 없으셔. 남을 마음 같은 건 한 조각도.

최상궁 : 하긴 여기 와서 당한 꼴을 생각하면..

최영 : 금군의 호군놈들이 모일 장소. 그것만 알아봐줘요. 

        하나씩 잡으면 그 부하들이 끼어들고 복잡해져. 우두머리들 한자리에 모아서 한번에 처리해야지.

최상궁 : 그런데 말이다. 그 의선이 말하는 걸 가만 들어보면 말이야.

 

말하다 보면 최영이 저리 가고 있다.

 

 

#69. 은수의 방 / 낮

 

은수. 방 가운데 멍하니 서있다. 생각 중이다. 

두리번거리더니 커튼 혹은 이불을 휙 뜯어내서 바닥에 펼친다.

그 위에 옷상자 예물상자 혼서 등을 주루루 다 집어던져 넣는다. 둘둘 말아 쥐고는 질질 끌고 나간다.

 

 

#70. 궁 회랑

 

무각시들이 놀라 따라붙는데 은수는 그냥 질질 끌고 이동.

 

 

#71. 공민 집무실

 

덕흥이 책을 읽고 있다가 본다. 

은수가 질질 보따리를 끌고 와서 앞에 던지듯 놓고는.

 

은수 : 여기까지 하죠.

덕흥 : 무슨 얘깁니까?

은수 : 어차피 그쪽도 나하고 혼인하고 싶었던 거 아니잖아요. 

        그 부원군 아저씨하고 거래하는데 내가 필요했던 거고.

덕흥 : 왕비 자리가 싫습니까?

은수 : 말했잖아요. 댁은 왕이 되지 못한다구.

덕흥 : 그 수첩은 이제 필요없단 얘깁니까?

은수 : ... 네.

덕흥 : (책을 내려놓으며 웃는다) 이거 큰일일세.

은수 : 포기했어요.

덕흥 : 그 수첩이란 게 뭔지 가르쳐주겠습니까? 혹시 내 맘이 동해서 그저 내줄지도 모르니.

은수 : .. 내 숙제요.

덕흥 : 숙제.

은수 : 누군가 나한테 숙제를 남겼어요. 나라면 어떻게든 그 숙제를 풀 거라고 생각했나봐요.

덕흥 : 그런데 포기해도 된다?

은수 : 남은 시간 옆에 딱 붙어있으려구요. 그럼 숙제의 문제는 모르지만. 답을 풀게 될 수 있으니까.

덕흥 : 그래서 혼약을 파하겠다.

은수 : 미안해요. 그럼.. (돌아서려는데)

덕흥 : 이렇게 됩니다. 파혼을 하게 되면 의선과 우달치 대장의 부정한 행위 때문이 될겁니다.

         그리 되었을 경우. 둘의 처분은 가벼우면 관노비 정도? 유배? 그 전에 태형.

은수 : 덕성부원군께서 좋아하지 않을텐데.

덕흥 : 그 덕성부원군에게 노비로 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둘 다.

은수 : (애써 여유있게 웃더니) 그 사람이 퍽이나 얌전하게 노비로 잡혀주겠네.

덕흥 : 현고촌에 있는 주상전하. 지키는 자는 기껏 오십명. 내가 가진 금군은 이천명.

        전하의 목숨을 걸면 무릎을 꿇겠지요. 최영이란 자는. 전에도 보니 정인보다는 주상이 먼저던데.

 

은수, 더 반박을 못하고 본다.

덕흥은 돌아 앉더니 보던 책을 계속 읽는다.

 

 

#72. 부원군 집 대문 앞 / 아침

 

커다란 짐수레(옷을 넣은 자루를 잔뜩 실은)가 도착하고 있다.

닫혀있는 대문이 열리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 수레들. 갑자기 저만치에서 날아온 화살이 수레에 박힌다.

놀란 수레꾼이 도망을 치고 대문 앞에서 보초를 서던 사병들이 무기를 빼드는데.

달려온 지호가 수레에 자루 하나를 창끝으로 찍어내더니 멀리 던지고 도망간다.

시울이 화살을 쏘아대어 사병들이 쫓지 못하게 한다.

// 먼 쪽에서 자루를 받아낸 거사가 한칼에 자루를 베고 안의 것을 본다. 

도적떼로 위장할 옷이 잔뜩 들어있다.

 

 

#73. 궁의 야외

 

/ 최영이 급히 달려온다. 옆을 따르는 우달치들. 기다리던 시호와 지울이 따라 붙으며.

 

시울 : 도적떼 옷이었어.

지호 : 수백벌은 넘던데.

최영 : 대만아.

대만 : 예.

최영 : 지금부터 네 평생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줘야겠다. 전하께 가서 시작하시라 전해.

 

대만. 대답도 하지 않고 달려간다.

 

최영 : 돌배. 안재한테 가서 모든 작전을 앞당긴다고..

 

하다가 멈춰 본다. 거기 무각시 둘이 달려온다.

 

무각시 : 최상궁께서 전하라 하셨습니다.

 

 

#74. 궁 내부 은수의 방 앞

 

최상궁이 어쩌지 못하고 보는 앞에서 은수가 궁녀 둘에게 끌려나온다.

이쪽에서는 대기하고 있는 정배.

 

은수 : 아니 잠깐만. 잠깐 서보라구. (뿌리쳐 서더니) 다시 말해봐요. 뭐라구요?

정배 : 오늘 보제사에서 혼례식이 있을 것입니다. 허니..

은수 : (최상궁을 보는) 이거 지금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거에요.

최상궁 : (궁녀들에게 나서며) 의선은 내가 모시겠네. 어디로 모시면 되겠는가.

정배 : 편전에서 덕흥군마마와 중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제사까지 함께 이동하실 것입니다.

최상궁 : 알겠네. 허나 이대로는 못 가시네. 

           명색이 군마마의 혼례라면서 이런 복색으로 가시게 할 수는 없지. 허니..

정배 : 모든 준비는 보제사 쪽에 이미 마련되어있습니다. 먼저 이동하시고 거기서.

은수 : (최상궁에게) 어뜩해요.

 

최상궁이 저 뒤쪽을 본다.

호위할 금군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앞에는 여러명의 궁녀들이 기다린다.

 

 

#75. 편전

 

중신들이 기다리고 있다. 익재나 목은은 빠진. 세도가들 중심으로.

가운데에는 가사 장삼을 두른 고승 둘이 기다리고 있다.

뒤쪽에서 덕흥이 나오고 있다. 내관들이 여럿 덕흥을 모시고 나온다.

덕흥이 고승들과 합장 절을 나누는 사이. 양사가 기철의 뒤로 슬그머니 다가들어 보고한다.

 

양사 : 우리 군사 사백명. 도원교를 넘었다 합니다. 

        벌교에 도착하면 즉시 위장복으로 갈아입고 바로 습격에 들어갈 것입니다.

 

기철이 끄덕인다. 저쪽의 덕흥과 시선을 마주친다

 

 

#76. 궁의 회랑

 

정배가 앞서고. 그 뒤를 따르는 궁녀들 가운데 은수와 최상궁.

은수는 거의 최상궁의 팔에 매달려 있다.

문득 보이는 편전 입구. 은수가 저도 모르게 멈추더니 뒷걸음질친다.

최상궁의 팔도 놓고 막 돌아서는데 거기 선 기철과 양사.

 

기철 : 안에서 기다리실텐데. 어디 가시려구요.

 

최상궁이 슬쩍 은수의 옆으로 와 선다.

 

은수 : 난 못가요. 안가요. (가려는데)

기철 : (막아서며) 지금쯤 주상께서 거하시는 현고촌. 내 군사들이 포위하고 있을 겁니다.

         거기 계시는 주상전하. 되도록 살려 모시고 오라 일렀는데. 오늘 혼례에 주혼자시거든요.

         혼례가 없다면 주혼자도 필요없지요.

은수 : (미치겠다)

기철 : 그냥 후딱 가서 치루십시오.

 

 

#77. 편전

 

모두 돌아본다. 거기 들어오고 있는 은수.

궁녀 둘이 은수를 양쪽에서 부축하듯이 데려 올라가고 최상궁과는 떨어진다.

애타서 최상궁을 돌아보는 은수.

덕흥군의 옆에 세워지는 은수.

 

덕흥 : (부드럽게) 놀라셨지요.

 

은수가 사람들을 둘러본다. 모두가 자기에게 깊이 허리 굽혀 절을 하고 있다.

기철도 절을 하며 흐믓해서 본다.

 

덕흥 : 보제사까지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우리 중신들과 함께 가을바람을 느끼며 걸어봅시다.

 

은수.. 점점 공포에 젖으며 돌아본다. 거기 최상궁이 안타까워 본다.

고승 하나가 목탁을 두들기고.. 앞장을 선다.

덕흥이 먼저 단을 내려가 돌아본다.

은수.. 막막한 마음으로 보다가 따라 내려선다. 덕흥군과 나란히 선다.

그러다 보면. 거기 최영이 다른 우달치들과 들어서고 있다.

똑바로 은수를 보더니 직진하여 다가온다.

중간에 기철이 나서서 막는다. 막힌 채로 최영이 은수에게 묻는다.

 

최영 : 거기서 뭐하십니까.

은수 : (울컥하는)

기철 : 이 경사스러운 날에 난동을 부릴 셈인가.

 

최영이 뒤를 돌아본다. 어느새 밀고 들어온 금군들.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돌배를 비롯한 우달치 몇 명.

중신들이 놀라 양쪽으로 물러서고 있다.

최영이 아랑곳없이 앞으로 나서려는데.

기철이 최영의 어깨를 짚는다. 언젠가와 거의 같은 포즈.

최영이 그 손목을 잡는다.

여유있는 표정의 기철이 최영을 밀어내려는데.

순간. 분노한 최영이 그 손을 밀어떼버린다. 

비틀 한걸음 물러난 기철이 놀라 돌아보는데.

그대로 은수의 앞에 가 서는 최영. 그때까지 덕흥은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은수 : 현고촌이 습격당한대요.

최영 : 압니다. 그래서 시간이 없습니다.

은수 : 어서 가봐요.

최영 : (내려다보는)

은수 : (보는)

최영 : 달리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서요.

 

하더니. 은수를 안아 잡아 입맞춘다. 처음엔 다급함으로 그리고 오랜 갈급함으로.

 

 

 

 

 

 

 

 

 

 

 

 

 

 

 

 

 

 

첨부파일 신의17.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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