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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01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0.05.03|조회수2,037 목록 댓글 0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01

 

 

 

 

 

 

 

 

 

 

1. # 국도길 / 트럭 뒷자리 (경남 산청으로 향하는)

 

1998년. 이삿짐을 실은 트럭 한 대가 달리고 있다.

트럭 뒷자리에 강진(19세)이 타고 있다. 강진, 장롱에 등을 기댄 채 책을 보고 있다. (교과서나 참고서)
트럭이 덜컹거릴 때마다 강진의 몸도 흔들리지만, 강진, 책에 무섭게 집중해 있다.

 

 

2. # 트럭 앞자리 / 국도길

 

춘희(45세), 부산(17세)과 함께 앞 자리에 타고 있다.

부산은 입을 헤 벌리고 침을 뚝뚝 흘리며 춘희 어깨에 기대 잠들어 있다.
열린 차창으로 들어온 바람이 춘희의 머리카락을 날리고 지나간다.
저 앞으로 산청을 가리키는 표지판 보인다.
표지판을 본 춘희의 눈빛이 아련한 격정과 감회로 흔들린다.

 

 

3. # 마을 초입길 (둑방길)

 

이삿짐 트럭, 마을로 접어들고 있다.
강진, 잠깐 책을 접고 하늘을 본다. 청명한 햇살이 따갑게 눈에 와 박힌다.

 

 

4. # 마을 초입길

 

춘희, 감회에 젖어 고개를 돌려 창밖의 전경들을 보고 있는데.

 

기사 : 어? 저거 장롱에 걸리겠는데?

 

춘희, 운전기사 말에 앞을 본다. 길 앞으로 커다란 플래카드 한 장이 낮게 걸려있다.

(플래카드를 잡고 있던 끈과 철사가 떨어지고 느슨해진 까닭이다)
‘경축 [한 준수 원장과 서 영숙 여사의 장남 한 지용 서울대 장학생 됨], 마을 주민 일동’ 이라고 쓰여진 플래카드다.
그 뒤로도 플래카드가 또 걸려 있다.

(-‘한 준수 원장과 서 영숙 여사의 장남 한 지용 퀴즈 아카데미 장원’ 산청고 총동문회 일동-

앞의 플래카드보다는 시간이 좀 된 것으로 보이는)
춘희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어진다.

 

기사 : 장롱이 높아서 딱 걸리겠어요....... (난감하게) 내려서 걷어 올려야 되나? 다른 길은 없어요?
춘희 : .......(잠깐 생각하다가 옆에 있던 부산을 깨운다) 부산아! 일어나 봐!! 좀 일어나 봐아! 이 미련 곰탱아!!

         (부산의 코를 비틀어 버린다)

 

 

5. # 일각

 

기사, 트럭을 세우고 운전석에서 황당한 표정으로 보고 있고.
부산의 어깨위로 목말 탄 춘희, 가위를 들고 플래카드를 반으로 자르고 있다.
춘희, “좀 더 올려 봐, 좀 더... 사내새끼가 왜 이렇게 힘맥아리가 없어?!!” 부산을 다그친다.

“씨이... 이런 건 꼭 나만 시켜! 나만!! 형 시켜! 형!” 하며 부산은 툴툴거리고.

트럭 뒷자리의 강진은 얼굴에 책을 덮은 채 잠들어 있다.
결국 플래카드가 반으로 뚝 잘려서 떨어진다.

 

춘희 : (돌아서려다 약간 떨어져 걸려 있는 플래카드 발견하고는) 조기 앞으로 가봐.
부산 : 저건 높아서 안 걸려어.
춘희 : 가라면 가봐, 새끼야....
부산 : (하는 수 없이 춘희를 목말 태운 채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곳으로 넘어질 듯 휘청휘청 걸어간다)
춘희 : (몸을 있는 대로 빼고 플래카드에 거칠게 가위질을 해대기 시작하는데)
지완E : 야! 이 강도야아!!!
춘희 : (자기 보고 하는 소린지 모르고 열심히 가위질 해대는)
지완E : 야 이 나쁜 놈들아!!

 

춘희와 부산, 고개 돌려 보면,

지완(17세), 가방을 앞으로 매고 저 앞 논두렁 길로 자전거를 달려오고 있다.

 

지완 : (춘희 쪽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왜 짤라? 우리 오빠 플래카드 왜 짤라아!! 이 나뿐 강도들아!!
강진 : (지완의 고함 소리에 잠에서 깨어 책을 걷고 지완 쪽을 보는)
부산 : (맹하게) 엄마! 우리가 강도야?
춘희 : (한준수의 딸인가....잠깐 눈빛 흔들리지만 개의치 않고 플래카드에 계속 가위질을 해대는)
지완 : 야 이 강도들아!!! 니들 딱 걸렸어어!!!

 

지완, 춘희들이 있는 곳으로 미친 듯이 자전거 페달을 밟아 오는데,
이때, 논두렁 아래쪽에서 오리 떼들이 올라오고 있다.
오리 떼들을 피하려던 지완, 어어어하며 핸들을 꺾다가 자전거와 함께 길 옆 미나리 논으로 사정없이 굴러버린다.
강진, 놀라고.
춘희가 가위질을 해대던 플래카드는 결국 반으로 뚝 잘린다.

 

 

6. # 일각 미나리 논

 

지완, 미나리 논에 납작 처박혀 일어나지도 못하고 낑낑거리고 있다. 한쪽으로 자전거도 처박혀 있다.
강진, 달려 내려와 지완을 부축해서 일으켜 준다.
지완의 얼굴과 옷과 몸에 온통 진흙이 묻어 엉망이다.

 

강진 : (건조하게 내뱉는) 다쳤니?
지완 : (눈물이 그렁해 금방이라도 울듯이 식식거리는)
강진 : 걸을 수 있겠어? (지완을 부축하는)
지완 : 이이이이잉... 고맙습니다.
부산 : (미나리 논쪽으로 와서 엉망이 된(?) 지완을 보고는 곤혹스런 표정 되는....강진에게) 형! 엄마가 빨리 와서 타래!
지완 : (부산을 휙 보고....강진을 다시 보며) 너두 그럼 저 강도들이랑 한패...

         (자신의 옷에 묻은 뻘을 털어내주던 강진의 손을 거칠게 쳐내며) 이 나뿐 놈!!!
강진 : .....(보다가...미나리 논 한켠에 구르고 있는 지완의 자전거를 끌어낸다)
지완 : (소리 지르는) 강도야! 강도야!!
강진 : (들은 척도 않고 지완의 자전거를 둑방길 위로 올려 놓는다)
지완 : 강도야!! 강도야아아!!
부산 : (어쩔 줄 몰라 하며) 혀엉....뭐해애? 빨리 가아.
강진 : (부산의 말에 대꾸 않고 자전거를 안전하게 올려 놓고 다시 ‘강도야!“ 소리치는 지완쪽으로 내려간다)
부산 : (곤혹스럽게 보다가 어쩔 수 없이 “엄마!” 부르며 자기만 트럭 쪽으로 간다. 춘희는 트럭에 마악 올라 타고 있다)
강진 : (계속 강도야! 소리치는 지완쪽으로 다가오며, 건조하게) 아는 단어가 강도 밖에 없어?
지완 : (소리 지르다 말고 흠칫)
강진 : 아까부터 계속 강도 강도 그러는데, 강도의 뜻이 뭔지 국어 사전 다시 찾아 봐. 우리 강도 아냐.
지완 : (잠깐 당황한다....그렇구나...강도는 아니구나... 정신이 없었다. 우이씨..) 강..강도보다 더 나쁜 놈!!

         왜 짤러? 우리 오빠 플래카드 왜 짤러?!! 우리 오빠 플래카드가 니들한테 뭘 잘못했다구 짤러?!!
강진 : .......(그니까...자기도 답답하다)

 

 

7. # 일각 트럭 있는 곳

 

부산, 춘희 옆자리로 올라탄다.

 

부산 : 엄마! 형 안 온대.
춘희 : (미나리 논쪽을 돌아보고) 미친 놈.... (하고는 운전기사에게) 출발해 그냥.

 

춘희의 이삿짐 트럭, 흙먼지를 일으키며 그대로 출발해 간다.

 

 

8. # 일각 미나리 논

 

강진 : 다시 만들어 주께. (위로하는 게 아니고 사건이 공연히 커지는 게 귀찮다)
지완 : 뭐?
강진 : 우리 엄마가 자...(른) 그 플래카드, 다시 만들어 주께.
지완 : (O.L. 강진의 말을 믿지도 듣지도 않는다) 파출소다 신고해 버릴거야....

         니네들이 나 밀어 갖구 죽을 뻔 했다구 뻥두 확 치구 다 뒤집어 씌워 버릴거야.

         목말, 가위 아줌마, 너, 삼인조! 다 주죽었어어! (돌아서 가려다 옆구리에 통증을 느끼며 스텝이 꼬이며 주저 앉아 버린다)
강진 : (보다가... 지완 앞으로 가 등을 대준다. 절대로 지완이 걱정돼서가 아니다. 일이 커져 귀찮아질까봐)

         업혀. 혹시 모르니까 병원에 가 보자.
지완 : (식식거리며 노려 보다가 있는 힘껏 강진의 등을 논 쪽으로 밀어버린다)
강진 : (그 바람에 미나리 논에 사정없이 철퍼덕 엎어진다)
지완 : (저렇게 사정없이 철퍼덕! 엎어질 줄은 몰랐다. 당황한) 한번만 더 내 눈에 띔 죽을 줄 알어!!

         (아픈 허리 붙들고 얼른 도망간다)
강진 : (잠시 후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얼굴과 몸에 온통 진흙이 묻었다.

         부지런히 도망가는 지완을 보며 얼굴을 부비며 씁쓸한 표정 짓는....

         언제까지 개념없는 어미가 친 사고를 이렇게 뒷수습하며 지내야 하나....쓸쓸해진다)

 

하늘 저편에 걸린 해가 마지막 볕을 털고 있다.

 

 

9. # 마을 길 (며칠 후, 아침)

 

지완,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는 듯 표정 한 켠이 쓸쓸해 보인다.

 

 

10. # 마을 초입길 (지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던)

 

힘없이 축 쳐져 가던 지완, 뭔가를 발견하고 몹시 놀란다.
반으로 잘려졌던 지용의 플래카드가 새롭게 리모델링(?) 되어 걸려 있다.
떨어진 플래카드를 다시 기워서 만들었는데 기운 자리가 오히려 근사한 무늬 같다. 그림도 덧붙여졌다.
지완, 쓸쓸한 마음은 어느 새 잊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하는.

 

 

11. # 강진 마당 (새로 이사온)

 

마당 빨랫줄에 강진의 티셔츠가 널려 있다.

세탁을 해도 제대로 지워지지 않은 듯 알록달록한 페인트 자국이 흰 티셔츠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강진, 수돗가에서 세수하고 있다.

 

부산 : (까치집 머리로 대문 열고 들어오며) 형! 우리가 속았어! 엄마 또 뻥쳤다?!
강진 : (수건으로 얼굴 닦으며 보는)
 


12. # 춘희 다방 앞 (살림집 대문이 가게 뒤쪽으로 달려 있는 구조)

 

강진, 춘희가 세를 얻은 가게 앞으로 온다.

인부 둘, [‘못 잊어’ 다방] 이라고 쓰여진 간판을 달고 있다.
강진, 황당한 표정으로 간판을 보는데.
이때, 가게 문 열리며 한복을 입고 야하게 화장을 한 춘희, 나온다.

 

춘희 : (간판 다는 사람에게) 아저씨....오른 쪽이 좀 기울었잖아....그래, 조금만 쪼오끔만 더 올려봐.
강진 : (기가 막힌 표정으로 춘희를 보는데)
춘희 : 엄마 어때? 립스틱 색깔 죽이지? 섹시하지?
강진 : 순대국집 한다구 안 그랬어?
춘희 :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괜히 다른 거 잘못 줏어먹다 뒤져. (인부에게) 아이 참! 이번엔 왼쪽이 기울었다!
강진 : (약간 음성 높아져 O.L.) 여기 이사오면 제대루 살거라 안 그랬어?!!
춘희 : (시선은 간판에다 두고) 그럴라 그랬는데....제대로 살기가 싫어. 제대로 살고 싶지가 않어.....

         (간판 거는 사람들에게) 아, 저 오빠 진짜! 이번엔 오른 쪽이 기울었다! 그거 하나 딱딱 못 맞춰? 잘 생기면 다야?!!
강진 : (실망한 듯 보는데)
춘희 : (누군가를 발견하고) 어머, 작은 사장님!!!

 

강진, 고개 돌려 보면, 종규의 차, 다방 앞으로 와 멎는다.
운전석 문 열리고, 선글라스를 쓰고 졸부답게(?) 차려입은 종규, 내린다. 조수석에는 종석이 타고 있다.

 

종규 : (거들먹거리며) 개업 준비는 잘 되가나? 우리 영감이 잠깐 미쳐갖구 완전 똥 값에 세 준 거 알지?
춘희 : (종규쪽으로 가며 간드러지는) 알지이, 알죠오....우리 큰 사장님 작은 사장님한테

         진짜진짜 백골이 난망하게 땡큐 베리 감사하구 있대니까.... 어머, 멋진 선글라스에 기름 꼈다아.

         (종규의 선글라스 벗겨서 호호 불며 옷고름으로 열심히 닦아준다)
강진 : (굳어서 보는....조수석에 있는 종석과 시선을 마주친다)
종석 : (짜증난 표정 짓고 있다)
종규 : 닦는 김에 구두도 좀 닦아 줄래?....아 씨, 담배 산다구 잠깐 내렸는데 어떤 개새끼가 똥을 싸놨잖아..

         (개똥이 묻은 구두를 바닥에다 신경질적으로 비비며 춘희 앞으로 내미는데)
춘희 : (찌푸리다가 얼른 호호 웃으며) 세상에 어떤 싸가지 없는 개새끼가 그랬을까?......

         구두 멋지다아...소 가죽이야? (구두를 닦기 위해 무릎을 구부리고 앉으려는데)

 

누군가의 손이 춘희의 어깨 죽지를 양손으로 꽉 잡는다. 강진이다.

 

강진 : (춘희가 굽히지 못하게 꽉 잡고 다시 일으켜 세우고, 종규보며) 니 구두는 니가 닦어! 우리 엄마 구두 닦는 사람 아냐!!
춘희 : (당황) 강진아!
종규 : 자식이 엇다 대고 반말이야?! 이 새끼 뭐야? 마담 아들이야?!!
강진 : (종규를 매섭게 노려 보는....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지는)
춘희 : (강진이 주먹을 쥐자 긴장하는)
종석 : (차에서 내리며) 형! 나 빨리 학교 가야 돼.
종규 : 알았어....잠깐만...너 이 자식 일루 와봐....방금 뭐라 그랬어? 일루 와봐!! (하며 강진을 치기라도 할 모션 취하는데)
강진 : (송곳 같은 눈빛으로 종규를 노려 보고)
춘희 : (강진 앞을 얼른 가리며 분위기 돌리려) 아유.....우리 작은 사장님 동생 분이신가부네?......

         고등학생이예요? 산청 고등학교? 몇 학년 몇반? 우리 아들도...(하는데)
종석 :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무시하고 말 자르며) 혀엉....빨리 가아...
춘희 : (강진이 부딪힐까 강진의 앞을 자꾸 가리며, 종석에게 상냥하게) 식산 하셨어요? 우리 잘생긴 도련님 우유 한잔 하실래요?
종석 : (춘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무시하며 종규를 쿡쿡 찌르며 ‘혀엉’ 가자고 눈짓 주는)
종규 : 아, 그 자식! 되게 보채네....너 아침 안 먹었다며? 우유 한잔 하구 가.
종석 : 싫어. 드러어....
강진 : (욱 치밀어) 야!!! (춘희를 밀어내고 달려 들 듯 하는데)
춘희 : (있는 힘을 다해 강진을 꽉 붙들고 앞을 가로 막는) 우유가 싫으면 요구르트도 있는데....
종석 : (멸시 어린 표정으로 춘희와 강진을 번갈아 보다가) 아, 몰라. 나 먼저 갈래.

         (춘희를 아래 위로 훑어보며) 하여튼 취향 후진 거 하구는... (꿍얼거리며 휙 돌아서 간다)
종규 : 아, 짜식.....같이 가. 데려다 줄게....(차 쪽으로 가며 강진 보며) 쫌 있다 다시 온다! 너 이 새끼 죽을 줄 알어...

         (얼른 운전석에 올라 혼자 걸어가는 종석을 따라간다)
춘희 : 운전 조심해애, 작은 사장님...

         (종규들이 사라지자 강진을 노려 보며 말투도 싸늘해져) 주먹은 왜 져? 또 사고 치게? 또 사람 패게?
강진 : (입술을 깨물고 참는)
춘희 : 우리 또 해보까? 너 학교에서 짤리구, 동네에서 쫓겨나구, 그 지겨운 짓 또 해봐?!!
강진 : ........
춘희 : 여기가 마지막이랬지? 여기서도 안 되면 여기서도 못 살면 너, 나, 부산이 약 털어 먹고 죽는 수밖에 없다 그랬지?!!
강진 : (......어쩔 수 없이 불끈 쥐었던 주먹을 힘없이 풀고....돌아서 가려는데)
춘희 : (돌아서 가려는 강진 등에다 대고) 그래두 술 따르는 건 이제 안 해. 니가 죽어라 싫어해서 안한다구, 그건....

         엄마도 나름 살아 볼라구 죽을 똥 살 똥 생똥을 싸구 있다구, 자식아.
강진 : (계속 집 쪽으로 걸어가며 춘희 안 보고 말하는) .....립스틱 색깔 꽝이야. 술집 여자 같애.
춘희 : ...... (강진의 말에 손등을 입술에 대는)

 

 

13. # 운동장 한켠

 

지완, 참담한 표정으로 눈물이 그렁해 있다.

 

지완 : 오늘 아침엔 안 갔어요. 정신 차리구.
윤주 : (서늘한 표정으로 지완 앞에 서 있다) 어제 아침엔 갔었잖아. 종석이 집 앞에서 너 봤어, 나.
지완 : 잠깐 까먹어서 그랬어요. 종석이랑 헤어진 거 잠깐 까먹구 같이 학교 가자구...
윤주 : (한심하고 어이없는 O.L.) 까먹을 게 없어 그런 걸 까먹어?
지완 : 그게 아니구....헤어진 지 삼 주 밖에 안돼 가지구...실감이 안 나 가지구...
윤주 : (O.L.)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종석인 이제 나랑 사귀거든?....

         종석이 근처에서 구질구질하게 얼씬거리지 마. 같은 여자로써 내가 다 자존심이 상해. (돌아서려는데)
지완 : 선배는 종석이 아니래두 좋다는 남자들 널렸잖아요.
윤주 : (보는) 그래서?
지완 : 그 많은 남자들 다 두구 왜 하필 임자 있는 남잘 꼬셔요?
종석E : 누가 내 임자야?

 

지완, 흠칫 놀라서 돌아보면 종석이 와 서 있다.

 

종석 : 니가 내 임자야? 누구 맘대루?
지완 : (당황한, 울 것 같은) 사귀는 사람들끼린.... (설움이 복 받쳐 목이 메인다) 원래 그렇게 말을 하는 거야.
종석 : (윤주 눈치 보며) 우린 사귄 게 아니구 내가 잠깐 방황을 한거지. 윤주 선밸 만나기 위해서.
지완 : (면도날이 가슴을 찌른다. 허어....)
종석 : 다신 학교 같이 가자구 우리집 앞에 오지 마.....가요, 선배. (윤주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올린다)
윤주 : (지완을 향해 승자의 미소 지어주며 다정하게 간다)
지완 : (눈물을 참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눈을 크게 뜬다...불끈 깨문 입술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때, 어디선가 야구공 하나가 날아와 지완의 머리를 사정없이 강타한다.
지완, 아야! 하며 아파서 어쩔 줄 모르고.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고 있던 학생들, 미안하다고 고개를 주억이며 공을 던져 달라고 손짓한다.
지완, 앞에 떨어져 있는 야구공을 던져주려고 폼을 잡다가 갑자기 각도를 튼다.

조준 에어리어안에 윤주와 종석의 뒷모습이 들어온다.
지완의 눈빛이 매섭게 빛난다. 지완, 결심한 듯 투수처럼 폼을 잡고 윤주와 종석을 향해 던지던데

몸이 중심을 못 잡고 각도 어긋나며 교무실 유리창을 향해 날아가는 야구공.
와장창 깨지는 유리창. 하얗게 굳은 지완.
윤주와 종석도 무슨 일인가 돌아보고.
이때, 지완 뒤편으로 교문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강진의 모습이 보인다. (첫 전학을 온 날이다)

 

강진 : (뒤 쪽을 돌아보며) 차 부산! 안 따라오구 뭐해?!

 

 

14. # 교무실

 

지완, 교무실 문 바로 앞에서 두 손 번쩍 들고 무릎 꿇고 벌서고 있다.
교무실에 들어오는 선생들마다 지완의 머리에 꿀밤을 주며 “또 너냐? 한 며칠 잠잠하다 했다, 이놈.”

“너 진짜 한지용이 동생 맞냐? 어떻게 이렇게 유전자가 다르냐?” “니네 오빠 백분의 일만 좀 닮아봐라.” 하며 한마디씩 하고 간다.
윤주, 담임 옆에서 급식 상황 체크하며 곁눈질로 지완을 한심하게 본다.
차라리 죽고 싶은 지완, 고개 푹 떨구고 들어오는 선생들의 꿀밤을 맞고 있는데

선생들에 이어 교무실로 들어서는 누군가의 발....강진이다.
지완의 바로 옆에 서 있지만, 지완이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상태라 아직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강진 옆에 서 있던 교감, 윤주와 함께 있는 담임 쪽을 손짓으로 가리키면
강진, 서류 들고 담임 쪽으로 걸어가 꾸벅 인사한다.

 

담임 : (강진 흘깃 보고) ..?
강진 : (서류 내밀며) 차 강진입니다.
담임 : 아..아. 전학생 (서류 받아서 보는)
윤주 : (오호, 잘 생겼는데? 호기심 어린 표정.....애써 관심없는 척 표정 유지하는)
강진 :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는)
담임 : (서류 넘겨가며 서서히 곱지 않은 표정으로 변한다) 먼 전학을 이래 마이 다닛노? 일년 반 동안에.....네 번이나 다닛네?.....

         (뭔가 발견하고 표정 완전 찜찜해지며) 머꼬? 이거는?.......자태(자퇴)가 두 번에다.....일년을 꿇었네?
강진 : .........
담임 : 말이 자태(자퇴)지.....이거 자태의 탈을 쓴 태학(퇴학) 아이가?
강진 : ........(대답 못하는)
윤주 : (괜히 긴장했네.....완전 실망한 표정)
담임 : (환장하겠다....) 태학 및 유급의 이유?......일! 불량써클을 만들어 맨학 분위기 깨빡 놓는 데 일조를 했다!

         이! 사람을 팼다. 삼! 상습적으로 컨닝을 했다! 사! 고등학교 교육을 받기에는 학습 능력이 핸저히 딸린다.

         이중에 머꼬?
강진 : ..........
담임 : (인상 일그러지며) 사지 선다형이 힘들모 주관식으로 주까?!!
강진 : .........
담임 : 대답 안 해? 지금 동네 개가 짖나?!!!!
강진 : ..........2번....입니다.
담임 : 자랑이다! 사람 팬 기 자랑이다, 자슥아!! (서류 더 이상 보지 않고 탁 덮어버리고) 미치뿌겠네! 진짜!!......

         교감쌤은 내한테 무슨 유감이 있어서 이런 깡패 새끼로 우리 반에다 팬성해주노?

         아아, 돌아뿌겠다, 진짜! (머리를 싸매고 있는)
강진 : .........(예상했던 반응이라 표정은 담담하다)
선생1 : (교무실 문 열고 들어와 담임쪽으로 오며) 안 선생님(담임)!! 교장 선생님이 어제 교육청에서 보낸 팩스 자료

           빨리 정리해서 보내시라는데요? 한 시간 안으루.
담임 : (머릴 감싸 쥐고 있다가) 팩스? 먼 팩스? (아차! 뜨거운 불에 데인 듯한 표정으로 팩스 있는 쪽으로 급히 가는)
윤주 : (강진을 흘긋거리며 완전히 김새는 표정)
강진 : (표정 없이 담담하게 앞만 보며 서 있는)
지완 : (고개 푹 숙이고 다리에 쥐가 나는지 코에 침을 찍어 바른다)
담임 : (뭔가 잔뜩 쓰여진 팩스 들고 머리 쥐어뜯으며 오는) 아, 안 그래도 돌아뿌겠는 사람 완저히 돌아뿌라꼬

         전국 각지에서 도와주시네. (선생1 보며) 한 시간 안에 도저히 몬한다, 이거는..... (절망하며) 전부 영어다.
강진 : (담담한 표정으로.......)
담임 : (띄엄띄엄 경상도 발음으로 자신 없이 읽다가 책상에 툭 던지며) 미치뿌겠네, 진짜....사전 어데 갔노? 사전!......

         (하다가 강진이 앞에 있다는 걸 깨닫고 윤주에게) 반장! 임마 데꼬 일단 교실로 가고!!....

         이번에 모의고사 꼬래비반은 우리 차지네. 반 팽균 학실히 내리 주겠어. 이 자슥께서.
강진 : (인정(?)한다는 듯 아무 표정이 없자)
담임 : (한심하고 암담해서) 태학에다 유급 묵니라 바빠서 학교도 제대로 못 댕깃을낀데 한글은 제대로 배앗나? ABC는 뗐고?

         아이고, 골이야.....(강진 외면하고 윤주에게 데리고 가라고 손짓하고) 영어 사전 있는 샘 안 계십니꺼?

         최 샘! 영어 사전...(하는데)
강진 : (담임이 책상 위에 던졌던 팩스 종이를 들더니 스윽 눈으로 한번 훑어보고는 네이티브 발음으로 읽기 시작한다.

         담임의 무시에 대한 오기다) Despite a 46% jump in the average amount that local, state and federal governments

         spend per pupil, the percentage of high school students who graduate has actually dropped..

 

순간, 교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강진에게 집중된다.
윤주와 담임, 한 대 맞은 듯 한 표정이고, 다른 선생들과 학생들도 하던 일을 중단하고 감탄의 눈빛으로 강진을 본다.
지완만이 스윽 고개 들었다 강진의 뒷모습을 보고 별로 관심없다는 듯한 표정이다가

몸을 조금씩 뒤틀기 시작한다. 오줌이 마렵다.

 

담임 : (애써 놀란 표정 누르며) 해슥(해석)!
강진 : (담임 잠깐 보다가 팩스 용지 보며) 지역민....국가 연방 정부가.... 평균합계에서 46%.....증가에도 불구하고.....

         (잠깐 보며 문맥 맞추고)......졸업하는 고등학교 학생의 백분율은 ....실제로 73.3%에서.....71.1% 떨어졌다.

         (하고 담임 보면)
담임 : (자기도 모르게 놀라움으로 입을 벌리고 있다가...계속 하라고 손짓하고 강진의 서류를 다시 살피기 시작한다)
윤주 : (강진에 대해 호감도 급상승이다)
강진 : 교육부 장관은 공교육에 있어서의.....교육 개선효과를...... 제대로......도출하기 위해서는....무엇보다...
담임 : (강진 자료 보다가 흥분해서 O.L.) 1등이네......지난번 학교서 모의 고사 전교 1등했고, 전국에서 7등....

         (히익) 전국 7뜨응?!!
윤주 : (세상에.....)
담임 : (다시 앞 자료를 급하게 뒤지며) 1등...1등.....1등....댕깃는 학교마다 1등이네....(저도 모르게 묻는) 이기 말이 대나?!!
강진 : (표정 없이.....)

 

순간, 교무실에 사람들의 감탄사가 조용히 터지고,

남학생들 긴장한 듯 보고, 여학생들의 표정에(젊은 여선생도) 홍조가 어린다.

다들 한방에 꽂힌 표정들이다.

 

지완 : (몸을 고통스럽게 배배 꼰다. 오줌통이 터질 것 같다. 강진의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담임 : 말두 안대.....태학...아니 자태에다가 유급꺼지 당했으맨서...전교 1등, 전국 7등이 이기 말이 대나?
윤주 : (강진에게 호감 만 배다. 더 이상 표정 관리 못한다)
담임 : (강진에 대한 감정이 완전 호감으로 바뀌었다) 니......천재가?
강진 : ........
지완 : (결국 견디지 못하고) 선생님....저 잠깐 오줌 좀 싸구 올께요. (울 것 같은,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온다) 터질 거 같애요.

         (벌떡 일어나 옷 붙잡고 교무실 문 열고 나가려는데)

 

이때, 부산도 교무실 안으로 들어서다가 지완과 머리를 사정없이 꽝 부딪힌다.
부산, 아야! 소리지르며 아파서 어쩔 줄 몰라하고,
지완, 골이 흔들리는 통증에 머리를 잡고 인상 찌푸리다가 화장실이 급해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진다.
지완의 스타킹을 타고 소변이 흘러내리고 있다.
지완, 상황의 끔찍함에 사색이 되는데.
강진, 그제야 고개를 돌려 부산과 지완을 본다.

하얗게 안색이 굳어 어정쩡하게 서 있는 지완의 다리 아래로 흥건해진 액체(?)도 본다.
멍한 지완, 혹시 누가 본 사람 없나 고개를 돌리다 강진과 눈이 딱 마주친다.

 

지완 : !! (강진을 알아본다)
강진 : !! (긴가민가 하다가 플래카드 사건의 여학생임을 알아본다)
지완 : (허옇게 얼어 자신의 다리 아래쪽에 시선을 준다....지금 이 상황을 저 인간도 똑같이 보고 있다 이거지?......

         죽고 싶다.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다) 
 


15. # 강진 교실

 

점심시간인 듯 대부분 학생들이 엎드려 자거나 장난치거나 잡담하고 있는데, (3분의 1쯤은 자리가 비었고)

강진만 책 펴놓고 공부에 열중해 있다. (창가쪽 자리에 앉아 있다)
윤주를 비롯한 교실에 있는 여학생들의 은근한 시선과 질투어린 남학생들의 시선이 강진을 향하고 있지만,

강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윤주, 그런 강진을 보다가 책상 안에서 초콜릿 하나 꺼내서 수학 문제집과 함께 들고 강진 쪽으로 간다.
뿔테 안경의 한 여학생, 친구들의 응원을 받아 우유와 빵을 들고 강진에게 가려고 일어섰다가

윤주가 강진에게 가는 것을 보고는 털썩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린다.

 

윤주 : (강진의 책 위에 초콜릿을 놓아준다)
강진 : (고개 들어서 보는)
윤주 : 수학 문제 풀다가 모르는 게 있어서.....이런 문젠 첨 봐가지구...

         (수학 문제집 아무 장이나 펼쳐서 강진 앞으로 내밀며) 여기 이 문제 좀 가르쳐 줄래?
강진 : (문제 보다가 윤주를 빤히 보는)
윤주 : (강진이 빤히 보자 마음이 쿵 떨리는....머쓱해져...부끄럽게 웃는)
강진 :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윤주 : (순간 당황) 그...그럼....왜?
강진 : 이거 아까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풀어주신 문제거든?
윤주 : (당황) 어머, 이 문제가 아니다.....(허둥지둥 문제집의 다른 문제를 찾는다) 미안, 내가 잠깐 헷갈렸다.
강진 : (초콜릿을 윤주에게 다시 주며) 모르는 문젠 수학 선생님한테 물어봐....난 다른 사람 가르치는 거 잘 못해.

         (다시 자기 보던 책에 시선을 주는데)
윤주 : 몰라서 물은 거 아냐. 문제는 핑계구, 나 너한테 관심 있어.
강진 : (윤주 보다가 이내 무시하듯 대꾸 없이 시선을 돌리고 책만 보고 있다)
윤주 : (당황한다. 자존심 완전 상하는데)
종석E : 윤주 선배!

 

종석, 샌드위치 바구니 들고 윤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온다.
윤주, 종석을 보고 당황하고.
강진, 책에만 시선을 주고 있어 종석을 몰라본다.

 

윤주 : (당황해서 강진 눈치 살피며 종석쪽으로 가며) 왜..웬일이야? 우리 교실엔?
종석 : (강진을 아직은 몰라보고) 보구 싶어서 왔죠.....좀 전에 봤는데 또 보구 싶어서.

 

교실에 있던 학생들, 우우하며 환성 지르고,
종석, 머쓱하게 웃으며 브이자 그려 보여주고.
윤주, 강진이 신경 쓰여 당황하고.
강진, 주위 소리 들리지 않는다는 듯 책에만 시선 주고 있다.

 

종석 : (샌드위치 바구니 흔들어 보인다) 엄마가 샌드위치 해서 보냈어요. 같이 먹어요.
윤주 : ....점심....좀 전에 먹었는데.....
종석 : 또 먹으면 되지 뭐....나가요...선배 좋아하는 베이컨 샌드위치예요. (윤주의 손을 잡는데)
강진 : (책을 덮고 일어나다가 종석과 시선을 마주친다) !!
종석 : (강진을 알아본다) 어?.... 차마담 아들이네?
강진 : (건방지게 차마담? 얼핏 표정이 굳고)
윤주 : ....(여전히 당황한 채....강진과 종석 번갈아 보며) 아는...사람이야?
종석 : (강진을 무시하는 시선으로 보며) 으응....저 사람 엄마가 우리 아부지 건물에 세 얻어서 다방하잖아요.
강진 : ........(계속 보면 한 대 칠 거 같아 무시하고 일어나서 식수대로 가 물을 먹는다)
종석 : 가요, 선배... (윤주 손을 끌고 나가며 강진 들으라는 듯 윤주에게 말하는)

         난 늙은 여자들 꼬리치는 게 제일 역겨워. 주제두 모르구 천박하구 드럽게.
윤주 : (밖으로 나가며) 누가 꼬리를 치는데?
종석 : 있어요.......선배, 근데 나 진짜 선배한테 상사병 걸렸나 봐요. 하루 종일 선배 얼굴만 생각 나.
강진 : (서늘한 표정으로 물을 마시는)

 

 

16. # 지완 교실 / 운동장 벤치

 

지완,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지완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윤주와 종석이 있다.

윤주와 종석, 운동장 한 켠 벤치에 다정하게 앉아 있다.
종석, 윤주에게 샌드위치 먹여주고 장난치며 몹시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
지완의 볼을 타고 툭 한줄기 눈물이 흐른다.

 

 

17. # 강진 교실 / 운동장 벤치

 

강진, 지완이 보고 있는 행복한 윤주와 종석을 지켜보고 있다.
윤주, 종석이 뭔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찾는 동안 문득 교실 쪽을 올려다 보다가....

유리창 앞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강진과 시선을 마주친다.
윤주, 당황하고.....심장이 멎는 듯한 가슴 떨림을 느낀다.
강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치 빨아들일 듯 윤주를 보는데.
이때, 종석, 몸을 일으키며 윤주를 부르고.
윤주, 얼른 당황하며 강진에게서 시선을 거둔다.....그러다 다시 종석 몰래 흘끗 흘끗 자신을 바라보는 강진과 시선을 마주치고.
윤주에게 시선을 붙박은 채 움직이지 않는 강진.

 

 

18. # 강진 교실

 

국어 수업 중이다. 윤주, 책을 보고 있다가 등 뒤에서 따가운 시선 느끼고 돌아본다.
강진, 책은 보지 않고 윤주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
윤주, 당황하며 얼른 다시 책에 시선 주고....그러다, 다시 혹시나 돌아보면
강진, 여전히 책은 보지 않고 윤주에게만 시선을 붙박고 있다.
 


19. # 수돗가

 

체육 시간 후인 듯 윤주, 체육복 차림으로 수돗가에서 세수하고 있다.
세수하다 문득 돌아보면, 강진이 한쪽에서 윤주를 보고 서 있다.
윤주, 당황하며 다시 얼른 세수한다.....그러다 잠시 후 다시 돌아보면 강진의 모습이 없다.
윤주, 강진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강진E : 나 찾아?

 

윤주, 당황해서 보면 강진, 윤주 옆에서 푸파푸파 세수하고 있다.

 

윤주 :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철렁하는 표정이다가.....) 왜 그렇게 자꾸 쳐다봐?
강진 : (푸파푸파 세수하는)
윤주 : 왜 그렇게 사람을 계속 쳐다보냐구? 너, 나한테 관심없다며?
강진 : 관심은 없는데, 자꾸만 니가 눈에 들어오네....자꾸만 너만 쳐다 보게 돼. 이상하게. (수돗물을 끈다)
윤주 : (심장이 쿵쾅거린다)
강진 : 거슬리면 니가 알아서 피해. 난 잘 안되니까 니가 해. 니가 나 쳐다 보지 마.

         (윤주 목에 걸린 수건을 빼서 자기 얼굴을 닦는)
윤주 :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강진 : (윤주의 목에 다시 수건 걸어주며 뚫어질 듯 보는)

춘희E : (간드러지는) 잊을 수 없는 다방 차 마담입니다아~~

 

 

20. # 마을 정자 나무 아래 평상

 

60대 정도의 할아버지 대여섯 명, 장기판을 놓고 평상에 둘러 앉아 있다.
화려하게 한복을 입고 화장을 한 춘희, 홍보용 라이터를 노인들에게 나눠준다.

 

춘희 : **삼거리 못 잊어 다방, 한잔이라도 배달되거든요?......꼭 한번 들러 주세요오...진짜 서비스 잘해 드릴게.

 

노인들, “알았어. 가야지, 그럼.”“박가야. 낼 당장 가자, 낼 당장” 춘희의 애교와 미모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노인1만 춘희를 긴가민가 고개를 갸웃하며 살피고 있다.

 

춘희 : 진짜 꼭 와야 된다, 오빠들? 사기 치면 나 울거야아....(라이터 바구니 챙겨 일어나는데)
노인1 : ....춘희, 아니냐?
춘희 : (흠칫해서 보는)
노인1 : 니나노집 순심이 딸 춘희.....맞지?
춘희 : (O.L. 당혹스러워 하다가 웃음 띠며) 예, 맞아요. 춘희.
노인1 : (놀란 표정 되며) ..지 에미처럼 안 살겠다구 악착같이 여상두 다니구 우체국에 취직도 하고 그랬던 거 같은데.....
춘희 : (표정은 웃으며) 그 피가 어디 가나요?......어르신들 꼭 한번 놀러오세요. 기다려요, 저?

 

춘희,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돌아선다. 돌아서자 마자 표정에 어리는 쓸쓸함.

 

 

21. # 마을 거리

 

춘희, 사람들에게 홍보용 라이터 나눠 주며 오고 있다.

 

춘희 : **삼거리 못 잊어 다방입니다......한잔이라도 배달 되니까요, 많이 애용해 주세요.

 

춘희, 홍보하며 오다가 뭔가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다.
한 사진관 쇼윈도에 준수의 가족 사진이 커다랗게 진열되어 있다.
준수, 영숙, 지용, 지완이 함께 찍은...환한 웃음을 활짝 터뜨리고 있는 행복한 가족사진.
춘희의 눈빛이 흔들린다.....부인하고 싶었던 실체를 확인한 듯.

 

 

22. # 사진관 안

 

춘희, 굳은 듯 서서 준수의 가족사진(쇼윈도와 내부에 각각 하나씩 걸려 있다)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관 주인(50대 후반 정도), 테이블에 앉아 춘희가 준 라이터를 켰다 껐다하고 있다.

 

주인 : 에게? 개업 선물이 고작 이거 하나야? 용다방 개업할 땐 담배까지 끼워서 주던데?
춘희 : (O.L.) 사기 치시네. (가족사진을 뚫어져라 보며)
주인 : (흠칫) 사기 아냐...지...진짜 담배도 줬어. 두 개피.
춘희 : (사진을 뚫어지게 보며) 억지로 웃는 티 너무 확 난다.
주인 : (?해서 춘희가 보는 준수의 가족사진을 본다) 억지로 웃은 거 아닌데?
춘희 : (약간 날이 서서 보는)
주인 : 저거 내가 작업한 건데, 너무들 웃어서 오히려 내가 웃지 말라구 막 말렸는데? 가족사진 격 떨어진다구.
춘희 : (표정 얼핏 굳고)
주인 : 한의원도 잘 되구, 돈도 잘 벌구, 아들은 서울대 가구 장학생까지 되구 남매간 우애도 더할 수 없이 좋구

         세상 부러울 게 없이 사는 집이잖어, 저 집이.
춘희 : ........(다시 준수의 가족사진을 본다)
주인 : 마누랄 잘 만나 그래. 복덩이를 만나서.
춘희 : (주인 앞으로 오더니 주인 손에 들린 라이터를 홱 채서 뺏는다) 용다방이나 많이 가세요, 그럼....우리 다방 오지 말구.
주인 : (!!! 황당한데)
춘희 : (라이터들이 든 바구니 들다가 손에 힘이 빠져 와르르 쏟는다....표정.....다시 라이터 바구니에 주워 담는)
주인 : (별 꼴을 다 봤네 하는 표정으로 보다가 옆에서 용액 -갈색병에 든- 함부로 만지고 있는 여종업원에게 괜히 화풀이하는)

         야! 야! 그거 조심해서 만져! 사진에 튀면 끝장이라 그랬지!
춘희 : (맥이 탁 풀린 표정으로 라이터 하나하나 바구니에 주워 담으며)

 

 

23. # 사진관 앞길

 

춘희, 사진관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표정에 씁쓸함과 비참함이 교차한다.

 

 

24. # 사진관 안

 

주인, 뭔가를 보고 경악해서 입을 딱 벌린다.
걸려 있던 준수 가족사진, 흘러 내려 엉망이 되어 있다. (약 염산이 뿌려진)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빈 갈색병. (여 종업원이 만지고 있던)

 

 

25. # 파출소 앞

 

준수의 승용차 와서 멎는다. 운전석에서 준수 내리고, 조수석에서 영숙, 내린다.
어떤 여자가 준수의 가족사진에 염산을 뿌렸다는 파출소의 전화를 받고 오는 길이다.
준수와 영숙, 서로 마주 보며 이게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한 표정 짓는다.

 

 

26. # 파출소 안

 

춘희, 순경에게 항의하고 있다.
한쪽으로 사진관 주인과 종업원 앉아 있다. 그 옆으로 엉망이 된 준수의 가족사진, 증거품처럼 놓여 있다.

 

춘희 : 나 아냐....내가 한 거 아니라니까요, 순경님.......미치겠네, 진짜....
순경 : (종업원 가리키며) 저 아가씨가 봤대잖아요. 아줌마가 염산, 사진에다 뿌리는 거.
춘희 : (종업원을 노려보며) 언제 봤는데? 정말 내가 그러는 거 봤어?
종업원 : (잔뜩 겁먹은) ......봤어요.....주인 아저씨 화장실 가시구...
춘희 : (O.L.) 증거 있어? 내가 했다는 증거 있냐구?!!
주인 : (순경에게) 이 여자가 범인 맞어요....들어오면서부터 한원장네 사진 보구

         사기네 어쩌네 억지로 웃네 어쩌네 계속 시비 걸구....
춘희 : (O.L.) 나 아냐....아니라구......아니라는데 왜 못 믿어?!!

 

카메라 PAN하면 파출소 문 입구에 선 준수(48세)와 영숙(45세)의 모습 보인다.
준수와 영숙, 충격으로 하얗게 굳어 있다.

 

준수 : ..........(세월이 흘렀지만 춘희를 똑똑히 알아본다. 믿을 수가 없다. 춘희의 행색도 충격이고)
영숙 : ..........(준수와 마찬가지 심정이다.....충격으로 쓰러질 것 같다)
춘희 : (준수와 영숙이 뒤에 와 있는 지도 모르고) 사람 무시하는 거야, 지금?....다방 마담이나 한다구 사람 우습게 아는 거야?!!....

         순경 아저씨! 우리 강진이 불러줘요!....우리 아들이 앞으로 서울대 법대에 갈 앤데,

         우리 아들 오면 니들 싹 다 무고죄로 콩밥 먹일거니까.....우리 강진이 좀 불러줘요, 순경 아저씨!!

         산청고등학교 2학....몇학년 몇반인지는 모르겠구...학교에다 전화해서 차강진 좀 불러 줘요!!

         차 강진이 좀 불러달라구우!! (하는데)
영숙E : 춘희야.....
춘희 : (자기 이름 부르는 소리 못 알아듣고) 차 강진 좀 불러 달라니까!! 전화비 주께!!

         산청 고등학교에 전화 한통만 좀 넣어 달라니까!!
영숙E : 춘희야!!!
춘희 : (흠칫...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다가.......준수와 영숙을 발견하고 한 대 맞은 듯 창백해지는)
준수 : (굳어 있는)
영숙 : (충격 받은 표정 애써 누르며.....) 춘희야......차 춘희, 맞지?
춘희 : (멍해서.......)

 

사진관 주인과 순경, 일어서서 “한 원장님! 오셨습니까?” 정중하게 인사하고.

 

주인 : 한 원장님! 글쎄 이 여자가요....한 원장님 가족사진을.....이 미친 여자가요....
영숙 : (O.L. 단호하게) 말씀 함부로 하지 마세요.....증거도 없이 사람 모함하시면 안되죠, 박 사장님!
주인 : (당황하고) 사모님....
춘희 : (하얗게 굳어서)
준수 : (아무 말 없이.....감정을 드러내지 않고....무표정하게.....시선에 망가져 있는 가족사진이 들어온다)
영숙 : (춘희쪽으로 와 춘희의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올리며) 가자. 여기 니가 있을 데 아냐....

         (순경을 보며) 춘희, 제 친구예요.....그런 짓 할 사람 아니예요. 제가 알아요. (하는데)
준수 : (O.L.) 당신이 뭘 알아? 어떻게 알아?
춘희 : (흠칫)
영숙 : (당황)
준수 : 그 분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짓을 하고 살고 있는지 당신이 어떻게 아냐구?!!
춘희 : (충격 받는.....)
영숙 : (당황) 지용이 아버지!!
준수 : (춘희에겐 절대 눈길 주지 않고 주인 보며) 그깟 사진 한 장 간수 못해서 사람을 여기까지 오게 만듭니까?

         박사장님?!....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요?
주인 : (한번도 본 적 없는 준수의 화내는 모습에 어쩔 줄 몰라 쩔쩔 매고)
춘희 : (충격으로 하얗게 얼어서)
영숙 : (준수의 반응에 역시 충격 받고 있다)
준수 : (순경 보고) 그깟 사진 한 장, 있어도 없어도 상관 없으니까 저한텐 연락할 필요 없이 알아서 처리 하십시오.

         (영숙의 손목을 잡으며) 가지, 우리는.
영숙 : 지용이 아버지이.....(당황해 하는데)
준수 : (춘희에겐 등을 보인 채) 어서 가.
영숙 : 지용이 아버지.
춘희 : 그래! 내가 했다! 어쩔래?
준수 : (흠칫)
영숙 : (당황)
춘희 : (시선은 준수의 등 보며) 행복한 척 하는 게 하두 가증스럽고 꼴불견이라 그 사진 내가 그렇게 만들었어....

         그래서 어쩔 건데? 감방에라도 집어 넣을 거야?!! 집어 넣어봐아!! 집어 넣어보라구!!!
준수 : (춘희에게 등을 보인 자세 그대로 돌아보지 않고 영숙의 손목을 끌고 파출소를 나온다)
영숙 : (어쩔 수 없이 준수의 강압적인 힘에 끌려가며) 지용이 아버지....여보.....여보....지용이 아버지.....

         (춘희를 안타깝게 돌아보며 준수와 함께 파출소 밖으로 나간다)
춘희 : (심장을 난도질당하는 것 같다....)
순경 : (눈치 없이) 아드님 부를까요?
춘희 : (순경을 얄밉게 노려 노며) 그깟 사진 물어 주면 될 거 아냐? 얼마야? 얼마면 돼?!

 

 

27. # 준수 차안

 

준수, 운전하고 있고, 영숙, 조수석에 타고 있다.
 
준수 : (무서울 만큼 담담한 표정)
영숙 : 당신 왜 그래요?
준수 : .........
영숙 : 20년 만에 돌아온 앤데.......이럼 안돼요. 차 세워요.
준수 : (계속 운전해 가는)
영숙 : 차 좀 세워 봐요.
준수 : (갑자기 끼익 급브레이크 밟는다)
영숙 : (당황해서 보면)
준수 : 저녁 빨리 먹자. 점심두 못 먹었는데, 배 고파....(하더니 다시 차를 몰아간다)
영숙 :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만 준수 마음의 일렁임을 알고 있다...준수 보는)
준수 : .......(영숙의 한손을 꼬옥 잡아주며 표정 없이 앞을 보며 운전한다)......(마음을 누르고 누르고 또 누르며.........)

 

 

28. # 파출소 앞 길 (해질녘)

 

파출소에서 나온 춘희, 털레털레 걸어간다.
넋나간 듯 멍한.....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이 무표정한......

 

 

29. # 강진집 외경 (밤)

 

 

30. # 강진 방

 

강진, 스탠드 불 켜 놓고 공부하고 있고, 부산은 여전히 잠에 곯아 떨어져 있다.
이때, 노크도 없이 문 벌컥 열리며 춘희(곱게 차려 입은), 들어온다.

 

춘희 : 사진 찍자.
강진 : (의아한 표정으로 춘희 보는)
춘희 : 가족사진! 우리도 가족사진 찍자!
강진 : ?
춘희 : (잠자는 부산의 엉덩이를 철석 때리며) 차 부산! 인나!! 사진 찍자! 사진!!

         (부산의 뺨을 사정없이 잡아 당기며) 어서 인나아!!
강진 : (갑자기 한밤에 웬 가족사진인가?.....벽에 걸린 시계를 보면 12시가 넘어가고 있다)

 

 

31. # 강진 마당

 

춘희, 의자에 앉아 있고, 강진과 부산, 춘희 뒤로 서 있다. 부산은 아직 잠에서 덜 깨 간신히 실눈 뜨고 있다.

강진은 춘희에게 여전히 의아한 시선 두고 있다.
미스 신(다방 종업원, 잠옷 차림), 낡은 가정용 카메라를 들고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스신 : (하품하며) 달밤에 체조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자는 한밤중에 웬 사진을 찍는다구.....차 부산! 눈 좀 똑바로 떠 봐!
춘희 : 잠깐만.....(강진과 부산 돌아보며) 니들 아버지들도 같이 찍자. 명색이 가족사진인데. 남들처럼 갖출 건 다 갖추자 우리두.
미스신 : 얘들한테 아버지가 어딨어?
춘희 : 세상에 아부지 없는 자식이 어딨냐, 이년아.
강진 : .......(옷 안에 숨겨져 있던 집 모형의 펜던트를 밖으로 꺼내고,

         졸고 있는 부산의 옷 속에 숨겨진 담배 파이프 모양의 펜던트도 꺼내주고 일어나라고 부산을 툭툭 치는)
부산 : (졸다가...번쩍 눈을 뜨고)
미스신 : 에게? 그게 뭐야? 그게 얘네들 아버지야?
 
카메라 뷰파인더 안에 세 모자의 모습이 들어온다.
춘희, 눈물이 그렁해 있고, 강진, 춘희에게 신경의 끝이 걸려 있다.
부산, 자꾸만 감기는 눈을 애써 밀어올리고 있다.

 

미스신E : 진짜 찍는다? 여기를 보세요! 하나! 둘! 셋!!

 

카메라 후레쉬 불빛 펑 터지고. 세 사람의 모습, 한 장의 사진으로 찍힌다.
춘희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부산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강진의 펜던트와 숙연한 강진.

 

 

32. # 마을 길 (며칠 후, 아침)

 

지완, 힘이 쑥 빠져 자전거 타고 등교 하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를 발견하고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어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뜬다.
윤주, 강진에게 뭔가 재밌는 얘기해주며 까르르 웃고 있고,

강진도 윤주의 얘기에 가벼운 미소(입 꼬리만 살짝 올라가는)를 띠고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준다.
윤주, 연인처럼 강진의 머리에 붙은 보푸라기를 떼어 준다.
손바닥으로 눈을 문지르던 지완의 시선에 결정적인 한 컷이 들어온다.
강진과 윤주, 손을 꼭 잡고 있다.
지완, 순간 헉 숨이 막힌다.

 

 

33. # 학교 뒷켠 한적한 곳

 

지완, 숨이 턱에 차 달려와 멈춘다.
종석, 커다란 나무에 괴롭게 자신의 머리를 짓찧고 있다. 쿵!쿵!쿵!
지완, 말리러 가려 하는데, 종석, 갑자기 무너지듯 주저앉더니 엉엉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한다.

 

지완 : (안타깝고 속상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종석 : (계속 소리내 울며) 어어어엉....어어어엉....
지완 : (종석을 지켜보며....안타깝고 속상하고 비참해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해지는)

 

 

34. # 지완 교실

 

지완, 깊은 생각에 잠겨 있고, 그 옆으로 진경, 엎드려 훌쩍훌쩍 울고 있다.

 

진경 : 흐으응....강진 오빠.....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이렇게 사람 맘 흔들어 놓구 힘들게 해 놓구.....

         어떻게 최 여시의 남자가 돼 버릴 수가 있어요?!

         (벌떡 일어나 눈물 닦고 코를 휑 풀며) 3학년 언니들은 완전 집단 쇼크 상태래.
지완 : ........
진경 : (지완을 안쓰럽게 보며) 최 윤주 그 여시 같은 년! 겨우 한 달, 껌처럼 씹다가 버릴라구

         니 가슴에 그렇게 피멍을 들이고 박 종석 뺏어 간 거야?!!
지완 : ........(진경의 말에 서러움이 다시 되살아나 입술 비죽이다가 결연한 표정 짓고) ...복수 할거야!!!
진경 : 엉?
지완 : 그런 인간들은 그냥 냅두면 안돼.
진경 : ?
지완 : 남의 눈에 눈물 흐르게 하면 지들 눈에 피 눈물이 흐른다는 거 알아야지, 지들두.
진경 : 어떻게?
지완 : 최윤주한테서 차강진을 다시 뺏어 오는 거야.
진경 : 누가?
지완 : (손가락을 펴서 자신을 가리키는)
진경 : (황당하게 보는)
지완 : 그리구, 차강진이 나한테 넘어오는 순간 다시 차 버릴거야.

         저 좋다는 여자들 다 두구 하필이면 임자 있는 여잘 꼬시는 그딴 놈두 응징해줘야지.
진경 : (여전히 황당한 표정 풀지 못하고) 누가? 누가 감히 차강진을 차?
지완 : (다시 손가락을 펴서 자기를 가리키는)

 

 

35. # 운동장 (오후)

 

학생들, 교사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들의 몇 걸음 뒤로 강진, 책을 펴서 보며 교사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이때, 강진 머리 위로 종이비행기가 툭툭 떨어진다.
강진, 이게 뭔가 위를 올려다보는데.
지완, 옥상에 서서 강진을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강진 : (황당한 표정으로 보는데)
지완 : (강진이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아예 바께스에 가득 든 종이비행기를 바께스째 들이 붓는다)

 

강진의 머리위로 하얗게 떨어지는 종이비행기들의 행렬.
 
지완Na : 강진오빠! 안녕하세요! 저는 1학년 3반 한지완입니다.

 

강진, 종이비행기를 집어서....펴 본다. 종이비행기엔 지완이 쓴 편지가 있다.

(‘과거는 잊어주세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미나리 논의 아름다운 추억’

‘차강진♥한지완’ 등등의 유치찬란한 문구가 쓰여 있다)

 

지완Na : 얼굴은 여기저기서 많이 봤지만, 제 이름은 잘 모르셨죠?

강진 :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지완을 다시 올려다보는데)
지완 : (그림과 글씨가 쓰여진 커다란 전지를 두 손에 쥐고 강진이 잘 보이게 흔들어 댄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아. 나에게 오라’ 라는 성경 글귀를 써 놓았다)
강진 : (기가 막히다)

지완Na : 미나리 논에서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우리의 인연을 예감했답니다.

 

강진,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비행기를 와작와작 밟으며

들고 있던 종이비행기를 구겨서 한쪽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교사 안으로 들어간다.

 

지완Na : 드디어 내가 기다린 사람이 나타났다는 걸 알았어요.

 

 

36. # 학교 옥상

 

지완 : (표정이 일그러지며...우이 씨......)
지완Na : 오빠는 전생을 믿으세요?

 

 

37. # 마을 길 (아침)

 

학생들, 등교 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 다정해 보이는 강진과 윤주의 모습도 있다.
윤주, 강진의 팔짱을 끼고, 보란 듯이 간다. 여학생들의 시샘 어린 시선이 여기 저기에 있다.
이때, 찌릉찌릉하는 자전거 벨 소리 들린다.
강진과 윤주, 돌아보면 지완, 자전거 벨을 울리며 두 사람 사이로 무서운 속도로 오고 있다.
윤주, 엄마야 하며 강진에게서 떨어진다.
지완, 강진과 윤주 사이를 유유히 자전거로 달려 가다가 다시 휙 유턴해 강진쪽으로 오더니

강진의 가방을 휙 채서 들더니 어설프게 윙크하고 가방을 갖고 휙 자전거를 타고 가버린다.
강진과 윤주, 황당하고 어이없어 야!! 부르지만, 지완, 결연한 표정으로 자전거 몰아가는.

 

지완Na : 사랑했지만 어떤 오해 때문에 헤어진 안타까운 연인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38. # 강진 교실

 

강진, 자리로 오면, 책상 위에 가방 올려져 있다.
뒤따라오던 윤주, 강진의 가방 보며 어처구니 없는 표정 짓고.
강진, 가방을 놓고 자리에 앉으며 책을 꺼내려 책상 안에 손을 집어넣는데....뭔가가 잡힌다.
강진, 꺼내서 보면 날달걀 두 개와 우유가 나온다.
메모에 ‘갓 낳은 달걀과 제가 좋아하는 우유예요. 맛있게 드세요. 한지완 드림’ 이라고 쓰여있다.
강진, 황당한 표정 짓다가 달걀과 우유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윤주, 그 모습에 안심하고. 강진,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책을 펴고 보는.
교실 밖에서 강진의 모습을 지켜보던 지완, 우이씨 하는 표정 짓고.

 

지완Na : 부모님과 세상의 반대로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던 비운의 커플이었던 것 같기도 하구....

 

 

39. # 학교 담벼락 (밤)

 

어슴푸레한 가로등 불빛 아래 더러운 담벼락. 그 위로 매직으로 조잡하게 쓰여지는 글씨. (옆으로 그림도 난잡하게 그려져 있고)
‘3-2반 차강진이랑 1-3반 한지완이랑 어제 밤에 둘이 만나 XX했대요. XX=키스’‘차강진♥한지완 얼레리 꼴레리’ 등등.
카메라 빠지면, 학교 담벼락에 열심히 낙서를 하고 있는 지완의 모습 보인다.
그 옆으로 진경, 지완이 낙서하는데 후레쉬를 비춰주며 쪼그리고 앉아 있다.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사람을 보듯 지완을 보며 지완의 머리에 열이 있는지(?) 짚어도 보며.

 

지완Na : 오빠도 어쩌면 느끼고 계시죠?

 

 

40. # 준수 한의원 약재실

 

지완, 상자에다 한약 봉지를 잡히는 대로 쑤셔 넣고 있다.
문 밖으로 간호사에게 뭔가 지시하고 있는 준수의 모습 보인다.

 

지완Na : 오빠도 저를 알아볼 날을 기다리고 있을께요.

 

 

41. # 춘희 다방 앞 (밤)

 

지완, 한약을 넣은 상자를 들고 와 서성거리고 있다. 열심히 머리 굴리고 있는 표정.

 

지완Na : 절대로 지치지 않을 거예요. 1학년 3반 한지완 올림.

 

지완, 유리창 코팅지 사이로 다방 안을 들여다본다.

 

 

42. # 춘희 다방 안

 

강진, 굳은 표정으로 형광등을 고치고 있다. 옆에서 미스 신 잡아 주고 있고...곤혹스런 표정으로 어딘가를 보는데.
취기가 오른 종규, 맥주 계속 꿀꺽꿀꺽 마시며 한쪽 테이블에 다리 올리고 앉아서 강진을 노려 보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먹다 둔 양주병과 맥주병, 탕수육 등이 널려 있다.
이때, 춘희, 다방 문 열고 들어온다.

 

춘희 : 어머, 작은 사장니임.....이게 웬 알코올이야?
미스신 : 아까부터 와 가지구 자꾸 술 가져오라구 땡깡 부리셔갖구.....
강진 : (참고 있다...형광등 달고 있는)
종규 : 차 마담! 일루 와서 한잔 따라 봐.
강진 : (그 말에 멈칫하지만....계속 형광등 달며)
춘희 : (강진 눈치 슬쩍 살피며 종규쪽으로 가며) 표정이 안 좋네, 우리 작은 사장님? 뭐 안 좋은 일 있었어?
종규 : (따르라고 술잔 딱 내밀고 눈빛은 강진을 노려보며) 어떤 거지같은 새끼 때문에 우리 막내가 밥도 안 먹고 학교도 안 가고

         찔찔거리는 거 보니까 내가 속이 상해 갖구 술을 안 마실 수가 없어서....(이를 갈 듯)
강진 : (다 듣고 있지만.....형광등만 갈고 있는)
춘희 : 그랬구나아아.....그럼 한잔 해야지 뭐.....오늘 하루만이다?

         (술잔에 술 따라 주며) 담번부턴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술은 술집에 가서 마셔어.
강진 : .............
춘희 : (술 따르다 강진 의식하고) 형광등은 나중에 고치구 들어 가.
종규 : (춘희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왜? 들어가지 말구 이리 와서 같이 한잔 해....요즘 고등학생들 술 다 먹잖아.

         (하면서 춘희의 옷고름을 푼다) 이 옷고름.....몇 놈 앞에서 풀어 봤어?
강진 : (흠칫하며 돌아본다....종규가 춘희의 옷고름을 풀자 눈빛이 파르르 떨린다)
춘희 :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하려 하며...종규의 손을 쳐내며) 아우, 왜 이래? 진짜 술 취했나부다, 우리 작은 사장님.
종규 : (더 과감하게 춘희의 저고리 안으로 손을 넣으며) 에이, 좋으면서 왜 그래?....

         어이, 차마담! 40대 몸이 아닌데? 20댄데 이건?

 

이때, 강진이 들고 있던 형광등,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 난다.
강진의 표정 분노로 굳었다.
 
춘희 : (종규의 손을 있는 힘을 다해 걷어내며, 강진 눈치 보며) 작은 사장님! 장난이 심하다, 진짜...
종규 : (강진을 서늘하게 보며) 뭘 그렇게 꼬나봐? 짜식아!! 하루 이틀 본 장면도 아닐 텐데, 새삼스럽게.

 

 

43. # 춘희 다방앞

 

지완, 눈이 동그래져서....자기가 더 충격 받아서....저...저 자식이...하는 표정.

 

 

44. # 춘희 다방안

 

춘희 : (얼른) 만진 거 아냐.....그냥 손끝만 살짝...
강진 : (춘희 말과 동시에 그대로 달려들어 종규의 멱살을 잡더니 한 쪽 벽으로 밀어붙이고 멱살을 조르기 시작한다)
종규 : 이..이 자식이...(하다가 강진의 위압적인 힘에 숨이 넘어갈 듯 색색거리는) 마다암....차 마다암......
춘희 : (강진의 팔을 붙잡고 떼어내려 하며) 참어, 참어, 강진아!.....내가 괜찮다는데, 내가 아무 상관없다는 데

         니가 왜 지랄이야? 지랄이이?!! (강진의 힘이 완강하자 강진의 등을 때리는)
강진 : (그래도 놓지 않고 손아귀 힘을 더 세게 주며 정말로 죽이기라도 할 듯 하는데)
종규 : (정말 숨이 끊어질 듯한 표정 짓는)
춘희 : (이러다 큰일 낼 것 같다) 니 에미 술집 작부야!!
강진 : !
춘희 : 양가집 규수 아니라구, 니 에미! 이 놈이 주물러도 상관없고, 저 놈이 주물러도 상관없는 천하디 천한...
강진 : (기가 막히다....두 눈이 시뻘개 춘희를 원망스럽게 보는)
춘희 : 구를만큼 굴렀구, 닳을만큼 닳았어! 작은 사장님이 만졌다구 더 아까울 것도 더 닳을 것도 없어!!

         (강진의 등을 때리며) 어서 이거 놔!! 이거 좀 놔아, 어서!!....이러다 사람 죽어, 이 새끼야....놓으라구, 조옴!!!

         (그래도 강진이 원망스럽게 볼 뿐 놓지 않자 강진의 팔을 사정없이 물어 버린다)
강진 : (아픔에 인상을 찌푸리다가.....온 몸에 힘이 빠져 나가는 허탈감에 천천히 멱살을 놓는다)
종규 : (겨우 안색 돌아오며.....거친 숨을 몰아 쉬는)
춘희 : 괜찮아? 작은 사장님?....괜찮아? 괜찮아? (가슴 쓸어주며) 물 좀 가져오까?
강진 : (참담하다....팔목에 춘희가 문 이빨 자국 아프게 남아 있다)
종규 : (거친 숨 몰아쉬며 기침하고)
춘희 : 괜찮지? 괜찮은 거지?....미안해요....진짜 미안해....
강진 : (털레털레 힘없이 돌아서 나온다)
종규 : (강진의 등 뒤에 대고) 너 이 새끼, 니 인생은 지금 이 시간부터 끝장난 줄 알어!!
춘희 : 용서해 줘, 작은 사장님....철없는 애잖어...내가 이렇게 빌게.....진짜 미안해애......

         내가 어떻게 하까? 무릎이라도 꿇을까요? 무릎 꿇으면 용서해 줄래요?
강진 : ..........(걸어 나오며....참담하다)

 

 

45. # 춘희 다방앞

 

강진, 참담한 표정으로 다방 문 열고 나오다가 당혹스런 표정 된다.
눈앞에 지완이 있다. 지완, 두 눈에 눈물이 그렁해 있다.
강진, 당혹스럽고, 참담하다.

 

지완 : .........(지완의 볼을 타고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강진 : .........(울지는 않고 두 눈은 벌게진 채 지완을 보는)

 

 

46. # 마을 길

 

강진 : (굳은 표정으로 정처 없이 걸어가고 있다)
지완 : (졸래졸래 뒤따라오며) 우리 집에 야구 방망이 있어요.
강진 : (그대로 걸어가는)
지완 : 우리 오빠가 쓰던 거 있어요....저런 자식은 야구 방망이로 마빡을 그냥 확.....
강진 : (계속 들은 척 않고 걸어가는)
지완 : 죽을래나 그럼?.....그럼 딱 죽기 직전까지 피똥 열라 싸게 하는 방법도 있는데.....백굴채나 천남성을.....

         그게 그러니까 일종의 약잰데요....그걸 우리 한의원에서 좀 훔쳐 갖구 커피에다가 조금만 타서 주면....
강진 : (무시하고 앞만 보고 가는)
지완 : 아니면요, 미친놈처럼 웃다가 쓰러지는 약초도 있는데......그게 이름이 뭐더라?....아, 낭탕근! 그래, 낭탕근, 좋다!
강진 : ........(계속 무시하고)
지완 : (그래도 좌절 않고(?) 졸졸 따라가며) 그냥 가요? 저런 자식을 그냥 냅두구 가요?

         다신 그런 짓 못하게 손모가지라도 분질러 놔야지! 다리 몽뎅이라도 분질러 놔야지!
강진 : (그대로 가는)
지완 : 안되면 이단 옆차기라두.....
강진 : .........
지완 : 무슨 아들이 이러냐? 혹시 진짜 엄마 아니예요?
강진 : (갑자기 발걸음을 뚝 멈추고 지완을 노려보는)
지완 : (갑자기 강진이 돌아보자 흠칫 당황하는) ...아니....그러니까....내 말은.....너무 많이 참는 거 같애서......

         저런 자식들은 참아주면 계속 그래도 되는구나 생각하구 잘못한 것도 모르구....
강진 : (지완 앞으로 가까이 다가 와 선다) 너, 나 알어?
지완 : (당황했다) 네?.......네.
강진 : 너하구 내가 전생에 연인이었다구?
지완 : (당황) ....아...그건.......그러니까 그건....
강진 : 넌 진작 알아봤는데, 내가 너 못 알아보구 있는 거야?
지완 : (당황) ...아니....뭐.....그렇...그렇....죠..
강진 : (지완을 뚫어지게 본다)
지완 : (강진의 시선에 당황하는)
강진 : (갑자기 지완의 얼굴을 잡더니 지완에게 입맞춤을 하려다가 입술 가까이서 딱 멈춘다)
지완 : !!!!! (갑작스레 당한 일에 놀라고 기겁하는)
강진 : (천천히 지완의 얼굴을 놓아준다)
지완 : (충격으로 하얗게 얼었다)
강진 : 아무 느낌이 없는데?.......전생의 연인이라면 어떤 느낌이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냐?
지완 : (멍해서....아무 대꾸도 못한다....숨도 못 쉰다)
강진 : (싸늘하게) 너하구 난 전생의 연인도 뭣도 아니구, 지금도! 앞으로도! 어떤 관계로도 연관 될 일 없을 거야. 절대루!!
지완 : ........
강진 : (차갑고 냉정한) 남의 인생에 상관 말구 꺼지란 소리야!
지완 : (그대로 멍해서.....할 말을 잊은 채)
강진 : (서늘하게 보다가 차갑게 돌아서 간다)
지완 : ............

 

 

47. # 강진집 외경 (밤)

 

 

48. # 강진방

 

불도 켜지 않은 방. 강진, 팔베개를 하고 천장을 보고 누워 있다. 춘희에게 물렸던 곳, 아직 흔적이 남아 있다.
부산, 스탠드 불하나 켜 놓고 낄낄거리며 성인 잡지보고 있다.
 


49. # 지완방

 

불도 켜지 않은 방. 창문 틈으로 달빛만 교교히 스며든다.
지완,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방 한쪽에 가족사진과 지용과 다정하게 장난치며 찍은 사진 걸려 있다.

 

지완 : 내가 차 시동이냐? 꺼지게?.......난 그래두 마음이 너무 아파서.....진짜 마음이 너무 아파서......

         (벌렁거리는 심장을 지그시 누른다) 나아뿐 놈.....와, 못 참겠다. 도저히 못 참겠다.

         (마치 따지러 갈 것처럼 굳은 표정으로 벌떡 일어선다. 방문 쪽으로 가며) 엄마! 나 청심환!!
 


50. # 강진 방

 

시계 12시를 넘어서고 있다.
강진, 여전히 천장을 뚫어져라 보고 있고. 부산,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다.
이때, 밖에서 춘희가 들어왔는지 시끄러운 신발 소리, 문 여닫는 소리 들린다.
강진, 눈을 감아버린다.
잠시 후, 문 벌컥 열리고, 춘희, 들어온다.

 

춘희 : 넌 니가 많이 참았다구 생각하지, 짜식아? 
강진 : ........
춘희 : 나 참은 거에 비하면 너 참은 건 새발에 피도 아냐, 새끼야.....

         (털썩 주저앉더니 버선을 벗으며) 니네들 고아원에 주구 살림 합치자구 그렇게 숱한 남자들이 꼬시는 것도 다 참구,

         커피 파는 거보다 술파는 게 훨씬 돈이 남는 장산대두 니놈에 새끼가 싫어한다구 참구,

         누구 보라구, 보구서 평생 미안해하라구 확 망가져 주구 싶은데....것도 참구.....

         (버선 들어서 먼지 탈탈 털며) 가게세 몇푼 아껴 볼라구 간 쓸개 다 빼 놓구 애교 떨구 굽신거리구 치사해도 참구

         더러워두 참구 아니꼬워도 참구.....근데 넌 욱 하는 성질 하나 못 참아? 너만 자존심 있구 너만 성질 있어?
강진 : ........
춘희 : (강진의 배 위에 머리를 두고 턱 누우며) 그때 그냥 간장 한 바가지 원샷하구 끝장을 냈어야 했는데...

         술집 작부년 주제에 새끼는 무슨 새끼야....평생을 걸거치기나 하지......

         (강진의 가슴팍에 뒷머리를 쿵쿵 박으며) 미친 년....정신 빠진 년.....미친 년...에라이, 미친 년.....
강진 : (쿵쿵.....춘희의 머리를 가슴으로 받으며...천천히 눈을 뜬다)

 

 

51. # 강진집 외경 (새벽)

 

푸르스름한 새벽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52. # 강진 방

 

새벽의 여명이 비춰드는 방.
강진, 그렇게 밤을 완전히 지샌 듯 눈 뜨고 천장을 보고 있고.
춘희, 잠결에 몸을 뒤척인 듯 강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 있다.
부산은 춘희의 등에 한 발 올린 채 아무렇게나 뒹굴어져 자고 있다.

 

강진 : ...........(쓸쓸하고 아프다.....)

 

 

53. # 모텔 앞 (마을 근처에 있는, 아침)

 

종규의 차에 하얀 페인트로 쓰여지는 글씨. ‘개새끼 차’
얼굴에 온통 페인트를 묻힌 지완, 여느 때와는 다르게 표정에 진지함이 서려 있다.
차를 온통 페인트로 엉망을 만들어 놓는다.

시간 경과.
잠시 후, 종규, 모텔에서 한 젊은 아가씨를 끼고 나온다.

 

종규 : 시내 영화나 보러 나가까? 일요일이라 사람이 많을래나?

         (하다가 자신의 차에 쓰여진 낙서를 보고 기겁을 한다) 누구야!!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내 차에 낙서 했어!! 나와아아아!! 어떤 새끼야!!!
지완E : 우리 아부지 새끼다, 왜?!!

 

지완, 한쪽에 숨어 있다 자전거를 끌고 나타난다. (종규와 30-40M정도 떨어진 지점)

 

종규 :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지완이 누군지는 안다) 야, 너....
지완 : 아저씨, 개새끼 맞잖아!!
종규 : 뭐어?!! 이 기집애가... (지완을 한 대 치기라도 할 듯 오는데)
지완 :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있던 소똥 뭉치와 오리 알과 계란을 종규에게 사정없이 던지기 시작한다)

         돈 좀 있다구 약한 사람이나 괴롭히구....아들 앞에서 어떻게 엄마한테......

         내가 강진 오빠였다면 아저씬 내 손에 주욱었어어.....

 

 

54. # 강진 방

 

강진,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부산, 만화책 보며 낄낄대고 있다.
이때, 밖에서 대문 걷어차는 소리와 함께 종규의 목소리 들린다.

 

종규E : 마담이 시켰지? 그 깡패 기집애보구 나한테 소똥 던지라고 시켰지? 내 차에 개새끼라고 낙서하라 시켰지?
강진 : (흠칫)
부산 : (밖에서 나는 소리에 벌써 두려운 표정되고) 혀엉, 작은 사장 왔나봐, 또.

 

 

55. # 춘희 마당

 

춘희, 머리를 감고 있던 중이었던 듯 온통 샴푸를 묻히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종규를 보고 있다.
종규, 온 몸에 소똥과 계란을 묻히고 식식거리며 서 있다.

 

춘희 : 엉? 어느 집 개새끼가 소똥을 쌌다구? 난데없이 무슨 말이야, 그게?
종규 : (춘희가 머리를 감고 있던 세수 대야를 거칠게 걷어차 버리며) 까구 있네....마담이 시킨 거 맞잖아!!

         그 기집애 마담이 시킨 거 맞잖아!!!
 


56. # 강진방

 

강진 : (바깥의 소리, 고스란히 듣지만....표정 없이 시선은 책에 두고.....)
춘희E : 시키긴 누가 뭘 시켜?.....그 기집애가 누군데?
종규E : (다시 뭔가 사정없이 걷어차는 소리 들리고) 확 다 엎어버린다 진짜!! 다방이구 뭐구 싹 다 엎어버린다!!
춘희E : 정말 나 아니라니까!!.....내가 왜 시켜? 왜?!! 그 기집애가 진짜 누군데에?

           (하다가 종규가 다시 뭔가를 걷어차고 춘희 아악! 비명 지르고)
강진 : (책을 탁 덮는다...마치 나가서 싸우기라도 할듯)

 

 

57. # 춘희 마당

 

강진, 가방 들고 마당으로 나온다.
머리에 샴푸를 바른 채 감지도 못하고 있는 춘희, 억울하고 황당한 표정으로 수돗가에 주저 앉아

“미치고 팔딱 뛰겠네....진짜 내가 안 시켰다니까아..” 하며 종규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종규, 분을 못 참고 식식거리고 있다.
여기저기 걷어찬 양동이며 화분이며 세숫대야로 마당은 엉망이 되어 있다.
강진, 못 본척하고 신발을 신는다.

 

종규 : (강진을 노려 보며) 그 기집애 니가 시켰냐? ......니가 시켰지?!!!
강진 : (대꾸 않고 대문 쪽으로 가는데)
종규 : 저 자식이 인제 사람을 무시까?!! (옆에 있는 화분 하나를 거칠게 차 버려 산산 조각이 난다)

         이것들이 지금 해보자는 거야!!!
강진 : (상관 않고 그대로 나가 버리는)
종규 : (분을 참지 못하는) 저...저 새끼가.....
춘희 : ........(강진의 심정을 안다. 세숫대야 물을 다시 뜨며) 해보자는 거 아냐, 작은 사장님....우리 강진이 앞으루 그런 거 안해.

 

 

58. # 춘희 다방앞

 

강진, 걸어 나오는데, 지완이 엉망으로 낙서 해 놓은 종규의 차가 서 있다.

‘개새끼 차’라 써놓은 글귀를 보며 종규의 말을 떠올리는.

 

종규E : 마담이 시켰지? 그 깡패 기집애보구 나한테 소똥 던지라고 시켰지? 내 차에 개새끼라고 낙서하라 시켰지?
강진 :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59. # 마을 길

 

강진, 가방을 메고 굳은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러다, 뭔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다.
저 앞으로 지완이 오고 있다. 고개를 푹 떨구고.
지완, 고개를 떨구고 오느라 강진을 보지 못하다가......

강진 가까이로 와 인기척을 느끼고 문득 고개를 드는데......얼굴이 엉망이다.
여기저기 묻은 페인트에, 입술과 한 쪽 눈가가 터져 피딱지가 앉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다.

 

지완 : (강진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헉!)
강진 : (당황한다)
지완 :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얼른 손바닥으로 얼굴을 주섬주섬 가리고 강진의 시선을 외면하며

         강진의 곁을 빠르게 스쳐 가려는데)
강진 : (지완의 팔목을 탁 잡아 돌려 세운다)
지완 : (히익 하며 놀라는)
강진 : 니가 그랬니?
지완 : (당황) ...네?
강진 : 니가 그랬어?
지완 : (당황하며) 뭐.....뭘요?
강진 : 그 자식, 그 자식 차.
지완 : ......(대답 못하는)
강진 : 왜?
지완 : ........
강진 : 왜?
지완 : ........
강진 : (버럭) 니가 왜애!!!!
지완 : (강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다가.....주눅 들어서, 눈치보며 간신히) ....오빠는 못하니까...
강진 : 뭐?
지완 : 그 자식 나쁜 놈이예요. 진짜 진짜 나쁜 놈이예요. 동네 사람들 다 알아요.

         내가 틀린 말 한 거 아녜요. 개자식도 맞구, 그러니까 개자식 차두 맞구.
강진 : ........(지완이 대답이 약간.....어이가 없다)
지완 : 오빠두 다 알면서 참구 있는 거잖아요. 다 알면서. 다 알지만 어쩔 수가 없어서.
강진 : (흠칫)
지완 : 나 모른다 그래요. 혹시 모르니까 모르는 애라 그래요...

         오빠하군 아무 상관두 없는 첨 보는 애라 그래요. (돌아서서 가려는데)

 

이때, 모퉁이를 돌아 종규의 차, 나타난다.
지완 앞으로 끼익 멈추는.

 

종규 : (차에서 내리며 표정 확 구겨지며 강진과 지완을 번갈아 본다. 강진에게) 그럴 줄 알았다. 이 기집애, 니가 시킨 거 맞지?
지완 : 아니예요!! 강진 오빤 상관 없는 일이예요! 진짜예요!! (강진에게 가라고 눈짓하는)
강진 : ..........(입 꾹 다물고 서늘하게 보는)
지완 : 내가, 나 혼자서, 나 혼자 생각해갖구 했어요! (계속 가라고 눈짓과 손짓 주며)

         아저씨 패죽이고 싶어하는 사람 우리 동네 디따 많아요. 강진 오빤 모르는 일이예...(요 하려는데) 
종규 : (지완의 멱살을 와락 잡으며) 이 기집애가 아직 정신을 못차리구.....
강진 : ..........
지완 : (꿋꿋하게) 정신은 아저씨가 차려요!!
종규 : 이게 진짜....(하며 지완을 후려 칠 듯 손을 쳐드는데)
강진 : (보다가....말리지 않고 돌아서서 간다)
종규 : (가는 강진 뒤에다) 저 새끼가 혼자 도망 가? 야!! 거기 안 서?!!
강진 : (대답 않고 가는)
지완 : (종규가 강진을 쫓아가려 하자) 쪽제비같이 생겨갖구!!
종규 : 뭐?!!! 이 기집애 이게 진짜....(지완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때리는)
강진 : (지완이 비명을 지르지만 못 들은 척 그런 지완을 뒤로 두고 가는...)
지완 : 씨이....하나두 안 아퍼! 또 때려 봐요! 또!!! (강진이 도망가길 바라는 맘 반, 가는 강진이 서운한 맘 반으로 더 크게 말하는)

         때려봐요!! 어서 때려 봐아!! .....죽여봐아!!씨이!!!
종규 : 이게 진짜 죽을라구.....(다시 지완의 머리를 사정없이 때리는)
강진 : .........(아무것도 못 들은 척 멀어져 가다....지완의 비명 소리 듣고 차갑게 굳어 걸음을 멈추고 휙 지완 쪽을 돌아보는....

         불끈 쥔 주먹, 뭔가 단단히 사고라도 칠 듯한 싸늘한 표정에서)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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