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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70s] 03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5.07.24|조회수366 목록 댓글 0

[패션 70s] 03

 

 

 

 

 

 

 

 

 

 

씬63. 대구역, 앞 (다른 날)

 

준희, 목에 빈이 만들어준 나무판을 걸고 엄마 아빠를 찾고 있다.

쏟아져 나오는 피난민들.

사람들한테 ‘이거 쫌 봐주세요. 이거 쫌’ 하면서 자기 목에 걸린 나무판을 가리킨다.

준희, 두리번 거리면서 화장실로 뛰어간다.

 

 

씬64. 대구역, 야외 변소

 

준희의 판때기 놓여 있다.

강희, 뛰어들어온다. 그새 머리는 까치집을 짓고, 남루한 입성에 영락없는 거지꼴이다.

강희, 무심히 목에 건 판때기를 준희의 판때기에 같이 걸쳐 세워 놓고 변소로 들어간다.

준희, 나와서 강희의 판때기를 들고 나간다.

 

 

씬65. 대구역, 앞

 

준희, 강희의 판데기를 목에 걸고 사람들한테 ‘이거 쫌 봐주세요. 이거쫌’ 하면서 손가락으로 자기 목에 걸린 나무판을 가르킨다.

 

학생 : 니네 엄마 이름이 이양자야?

준희 : (눈을 굴리면서 생각한다) 으음.. 잘 몰라요.

학생 : 엄마가 사리원서 미제물건 파셨어?

준희 : 으음.. 건 맞는데.. 그런것두 여기 써있어요? 이상하다. 빈이 오빠가.. 읽어줄 땐 안그랬는데.. (갸웃갸웃)

 

 

씬66. 대구역, 변소

 

강희, 옷을 추키면서 나와 나무판을 무심코 집어 들고 목에 걸려다 보면 아니다.

 

강희 : 어. 내꺼 아니잖아. 우씨! 누가 내꺼 가져간거야!

 

강희, 똑바로 나무판을 세워 읽어보기 시작한다.

 

강희 : 우리 엄마 아빠를 찾아주세요. 내 이름은 준희구요.. 사리원서 살았어요? 가만, 내 이름은 준희구요.. 사리원서..!! (놀라고)

 

강희, 판때기를 들고 뛰기 시작한다. ‘준희야!! 준희야!!!’

 

 

씬67. 대구역, 일각

 

준희, 걸터앉아 나무판때기를 요리조리 들고 고민하고 있다.

강희, 사람들을 헤치고 뛰어다니며 준희를 부른다.

 

강희 : 준희야!! 준희야!!

 

준희, 무심히 보면 왠 거지소녀 하나가 뛰어오며 자신을 부르는 모습이 보인다.

눈을 갸름하게 뜨고 바라보는 준희.

 

강희 : 준희야!! 고준희!!!

준희 : ! (그제서야 강희를 알아본다) 언니!! (나무판데기를 버리고 뛰어간다)

 

준희, ‘언니!!’ 부르며 뛰어가고 강희, ‘준희야!!’ 부르면서 뛰어온다.

강희, 나무판을 내려 놓고 준희를 덥썩- 안는다.

아이들, 껴 앉은 채 깡충깡충 뛰면서 어쩔줄을 모른다.

 

강희 : (놓고) 어떻게 왔어! 누구랑 왔어! 너 우리 엄마 봤니! 우리엄마랑 같이 왔니!

준희 : 아냐. 언니 엄마 못 봤어. 난, 빈이 오빠랑 빈이 오빠 엄마랑 같이 왔어. 그때 부대서 빙글빙글 돌던 이쁜 언니들하고 왔어.

         우리 엄만? 우리 엄마랑 아빤 어딨어?

강희 : ! (깜짝 놀라는)

준희 : 우리 엄마, 아빠랑 같이 왔지? 그렇지?

 

강희, 순간 터널이 폭발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인서트) 창회의 트럭이 갇힌 터널이 폭파하던 장면.

강희 : 아줌마가 운전하는 지스트럭은 아니죠? 예? 아저씨!

대위 : ! ....미안하다.

강희 : !

 

강희 : ..

준희 : 언니. 우리 엄마, 아빠 어딨어? 응? 어딨어?

강희 : 저기 준희야..니네..아빠..엄마..

준희 : 응? (기대에 차서, 말똥한 눈으로 강희를 본다)

강희 : 후우.. (한숨쉬더니) 몰라. 나 못 봤어..

준희 : 으으...우리 엄마, 아빤 어디 간 거야! 왜 못 봤어!

강희 : 몰르지.. 건 나두...

 

 

씬68. 봉화여인숙, 앞

 

준희, 강희를 데리고 걸어온다.

 

강희 : 진짜 그 여사란 사람이 여기 살라 그랬단 말야?

준희 : 응. 앞으루 한달동안. 가만.. 어제 하루 있었으니까 앞으루 스물아홉 날 동안 밥두 먹구, 잠두 자라 그랬단 말야.

강희 : 와~ 잘 됐다. 물두 데워주나? 빨래두 하구, 목욕두 하게?

준희 : 몰라 그건. 근데 언닌 왜 그지가 됐어? 왜 그렇게 냄새나는 그지가 됐어?

강희 : 나 그지 아냐. 진짜는 부잔데. 어떡하다 보니깐 잠깐만 거진 거야.

준희 : 에에..거짓말. 무슨 부자가 그래.

강희 : 진짜라니깐.. 나, 사정 있어서 잠깐 거지하는 거야. 언니, 부자야..

 

강희, 저도 모르게 치마 위로 진주가 들어있는 곳을 만지작거린다.

 

 

씬69. 봉화 여인숙, 마당

 

강희와 준희, 심통 사납게 생긴 여인숙 주인여자(여,50대)와 싸우고 있다.

강희, 자신의 옷을 빨래하던 중이라 물에다 담궈 놓고 있다.

 

강희 : 그런 게 어딨어요!! (준희 가리키며) 얘네 아줌마가 한달동안 밥 먹여 주구, 재워 주라구 돈 맡겼다면서요!!

여자 : 니가 봤어! 니가 봤어!

강희 : 그럼 준희가 없는 소리 꾸며요! 그 아줌마 데려와요? 데려와서 진짠지, 거짓말인지, 물어 볼래요!!

여자 : 오냐! 이 년아! 가 데려와! 부산으루 간 여잘 뭔 수루 찾는지 몰라두! 가 데려와!! 이년아!!

준희 : 아줌마..욕하지..마요..

여자 : 시끄러! 어서, 그지 새끼 하날 달구 와갖구! (강희한테) 어서 어른한테 눈깔 뗑그랗게 뜨구 빠다닥, 빠다닥 대들어!

         가 데려와, 이년아! 당장 데려와!

강희 : (잠깐 생각하다) 그럼, 경찰서 가요! 경찰서 가서 아줌마, 장부 확인해봐요!

여자 : (어이가 없다) 뭐어? 자앙부?

강희 : 나두 장사 줌 해봐서 아는데요! 아줌마두 장사하니깐 장부 쓸 꺼 아녜요!

         경찰서 가서 장부 보자니깐요! 진짜루 돈 받았나 안받았나 보자니깐요!

여자 : 에라, 이 되바라진 년!!!

 

여자, 강희의 옷이 담겨져 있는 대야를 그대로 강희한테 들이붓는다.

 

준희 : 으아!!! 언니!!!

 

 

씬70. 봉화 여인숙, 대문 앞

 

강희와 준희, 쫓겨났다.

주인여자, 강희의 옷과 아이들의 나무판을 집어 던진다.

 

여자 : 에이! 아귀똥한 년! 다신 오지 마라!! (들어가려는데)

준희 : 아줌마..진짜루..빈이 오빠 엄마가..돈 줬잖아요..언니랑.. 나랑 갈 데 없단 말에요.. 언니..춥단 말에요..감기 들린단 말에요..

여자 : 어디 딴데 가서 알어 봐!! (문 쾅- 닫고 들어간다)

 

준희, 아줌마! 아줌마!! 하고 대문을 두드리는데, 대문 빗장 지르는 소리가 난다.

 

 

씬71. 부서진 건물, 한 구석 (밤)

 

강희와 준희, 부서진 건물 안에서 오돌오돌 떨구 있다.

그래도 어디서 주워 왔는지, 작은 도라무통에 나무 넣어 불 떼고 있다.

불을 쬐면서 꼭, 끌어안고 떨고 있는 두 아이들.

나무를 구하기 어려워, 어느새 손바닥만한 나무부스러기도 다 떨어져가고, 불도 가물가물 꺼져간다.

강희, 빈이 준희에게 만들어 준 나무판을 도라무통에 던져 넣으려고 한다.

 

준희 : 뭐하는 거야!

강희 : 춥대며? 추워 죽겠다며.

준희 : 추워 죽어두 이건 안 되지! 이거 불 떼믄 우리 엄마, 아빤 어떻게 찾어.

강희 : 이딴 거 다 필요 없어. (왜? 니네 부몬 죽었으니까) 불 꺼질라 그런다. (판을 다시 집어넣으려고 한다)

준희 : 왜 그래, 진짜! (강희꺼 집어던지면서) 언니꺼 때! 언니꺼 때면 되지! 왜 내껄 갖구 야단이야!

         아까두 언니 땜에 쫓겨났잖어! 언니가 주인아줌마랑 싸워서 쫓겨났잖아! 왜 자꾸 나만 못살게 굴어!

강희 : 필요없는거 들구 있는 거보단 지금 당장 얼어 죽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니깐!

준희 : 왜 필요 없는데! 왜! 왜! 왜!

강희 : 그야 니네 엄마, 아빤, (죽었으니까.. 하려다가 입을 멈춘다)

준희 : 우리 엄마, 아빠 뭐?

강희 : ..

준희 : 우리 아빠, 엄마 뭐어?

강희 : 니네..엄마 아빠두... 너, 감기 걸리는 거보다 낫다구 생각할 꺼라구.

준희 : 그래두 싫어! 절대 안돼!!

 

준희, 강희의 판때기를 불에 넣는다.

강희, ‘이게 진짜!’ 화가 나서 준희의 머리통을 때려준다.

준희, 강희를 째려보며 빈의 나무판때기를 꼭 끌어안는다.

 

 

씬72. 대구, 시장통 (아침)

 

나름대로 활기찬 아침이다.

준희, 목에 예의 판때기를 걸고 있다.

강희, 준희에게 구걸의 노하우를 전수하려는데 도대체 준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미 藥房 앞에 종이가 깔려있고, 이 빠진 사발도 놓여 있다.

 

강희 : 쉬워. 이거 무지 쉬워. 그냥 눈감고 있다가, 요기서 손님 나오믄 옷 잡고 손만 이렇게 (시범 보이며) 내밀믄 돼.

         약 사루 오는 사람들은 그래두 부자니깐 돈 잘 준단 말야.

준희 : 싫어, 싫다니까. 안한다니까!

강희 : 아우, 그래. 부잣집 공주님이라 거지는 안 한다구? 굶어죽는 거보다 챙피한게 더 싫다구? 나보구, 너까지 먹여 살리라구?

준희 : 그래서 그런 거 아니구. 역에 나가야 된단 말야.

강희 : 돈 주는 사람두 없는데 역엔 왜 가!

준희 : 엄마, 아빠 찾으루 가!

강희 : 웃기구 있어! 니네 엄마, 아빠 죽었어! 기집애야!

준희 : !!

강희 : ! (말해 놓고 자기가 더 놀라서 손바닥으로 입을 막는다)

 

준희, 강희를 무섭게 노려보다 확- 밀어버린다.

그 바람에 강희, 벌렁 뒤로 자빠진다.

 

강희 : 뭐하는 거야! (일어난다)

준희 : 거짓말쟁이! 도둑! 맨날 거짓말 시키구, 도둑질만 하구. 왜 또 거짓말시켜!

         우리 엄마, 아빠가 왜 죽어!! 왜 죽어! 안 죽었어! 안 죽어!!

 

준희, 강희의 가슴을 두 주먹으로 아프게 때린다.

강희, 준희를 와락 민다. 그 바람에 이제 준희가 벌렁 뒤로 넘어진다.

 

강희 : 그래 나 도둑이구, 거짓말쟁이구 다 맞는데! 니네 엄마, 아빤 죽었어, 이 기집애야!

         내가 봤는데! 굴 무너져서 니네 엄마, 아빠 깔려죽었어 기집애야!

준희 : (일어나면서) 으아아아!!! 엄마!!! 아빠!!!!

 

준희, 벌떡 일어나 뛰어간다.

강희, 그 모습을 반쯤 미운 듯, 반쯤 착잡해서 본다.

 

 

씬73. 대구역 앞 (낮)

 

준희, 목판을 걸고 우두커니 서 있다.

준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준희, 꺽꺽- 소리를 내며 울고 있다.

 

 

씬74. 대구역, 기차객실 (밤)

 

텅빈 객차에 덩그러니 놓인 그림자 하나가 보인다.

역장이 뒷정리를 하고는 저벅저벅 걸어가는 모습이 얼핏 보인다.

한쪽에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나무판을 목에 걸고 앉아 있는 준희...

강희, 들어온다.

준희, 강희를 본다.

강희, 가만히 다가와 준희 앞에 선다.

강희, 따뜻한 찐빵을 준희에게 내민다.

준희, 고개를 흔든다.

강희, 준희 손에 찐빵을 억지로 쥐어준다.

 

준희 : 진짜...우리..엄마..아빠..죽었어..? 언니가 봤어..?

강희 : (고개 끄덕인다)

준희 : 그럼..나..이제 엄마...아빠..죽을 때까지 못 봐..?

강희 : (고개 끄덕인다)

준희 : 어딘데...? 울 엄마..아빠..어서 죽었는데...?

강희 : 지금은 못 가.. 나중에..전쟁 끝나믄 데려가주께..지금은 못가..

준희 : ..(눈물을 떨군다) 보구..싶어...너무 너무..보구 싶어.. (소리 내서 운다) 엄마...엄마...너무..너무..보구 싶어...

         너무 보구 싶어서..빨랑 죽어버릴까 봐..엄마..

강희 : ..

준희 : 엄마... (운다)

강희 : 바보야..그래두..니가 죽는 거 보단 나은 거야..니네 엄마.아빠가 죽는 게..니가 죽는 거 보다 안무서운거야..

준희 : 엄마..엄마.. (운다)

강희 : 미안...해.. 미안해..고준희.. (자신 때문에 준희 엄마, 아빠가 죽은 것 같다)

준희 : 언니가...왜 미안해?

강희 : 그냥..그냥 미안해.. 울지 마. 이제 내가 너, 먹여 주구. 재워 주구. 나중에 학교두 보내주구 다 하께. 울지마..울지마..준희야.

 

강희, 키를 낮춰 준희를 꼭 끌어안고.

준희, 한 손에 찐빵을 들고 한 손으로 강희 목을 끌어안고 운다.

 

 

씬75. 대구, 미8군 사령부 마당

 

(소리) 헬기 착륙하는 소리

김홍석이 탄 헬기가 도착한다.

수하들, 양 옆으로 도열해 김홍석을 기다리고 있다.

미군 장교도 상당수 보이고...

맨 끝에 동영이 서서 아버지를 기다린다.

헬기 문 열리고, 김홍석과 부관 내린다.

김홍석은 다친 한팔을 삼각끈으로 고정하고 있다. 부관도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다.

장교들, 김홍석에게 경례를 한다.

김홍석, 인사 받으면서 걸어오다 맨 끝에 있는 아들을 본다.

동영, 반가운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본다.

김홍석, 짧게 동영을 일별하고 감정 드러내지 않고 지나쳐 하상사의 어깨를 두드린다.

 

 

씬76. 김홍석의 집무실

 

김홍석, 옷을 갈아 입고 입고 단추 채운다.

문 열리고 동영, 들어온다.

 

동영 : ..(눈물이 그렁해서 사지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본다)

김홍석 : (한손으로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동영, 김홍석에게 다가간다.

김홍석, 한손으로 아들을 꽉- 끌어안는다.

 

동영 : 못 오시면 어쩌나..보고 싶었어요..아버지..

김홍석 : 그래.. 아버지도 보고 싶었다.

 

김홍석, 동영을 꼭 끌어안아 준다.

 

 

씬77. 미8군 부대, 일각

 

령관 장교 두 세명 김홍석에게 경례하고, 돌아선다.

하상사 김홍석에게 부대 내부를 안내하는 듯... 부관 뒤에 수행하고...

 

김홍석 : (안내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떼며) 워커장군님이 언제 오신다 그랬지?

하상사 : 글쎄요?

김홍석 : 글쎄요라니?

 하상사 : 아, 그게.. 인제, 가실 때는 삼일 예정으로 가셨는데... 장군님도 아시다시피 맥아더총사령관님과 거시기.....

             아무튼 오키나와 사정이 심각한 모양입니다.

김홍석 : 그래서, 언제 오실 예정이냐구?

하상사 : 아니 그러니까... 제 말씀은

김홍석 : (O/L) 이대위! 언제 오실 거 같나.

부관 : 내주초에 오실 예정입니다. 오실 때까지 장군님께서 부대를 지휘하셔야 합니다.

하상사 : (돌아보며 살짝 째리고는) 인제 말들은 저렇게 하는데, 절대 못 올 겁니다.

김홍석 : 자네가 어떻게 알아?

하상사 :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아, 그야 짠밥이죠. (말 해 놓고도 멋쩍다) 아구~ 죄송합니다. 장군님.

김홍석 : (피식 웃고는) 하긴 짠밥이 좋긴 좋아. 사리원 빠져나올 때, 총탄이 빗발치고 중대원 절반이 쓰러지는데도!

            하상사, 털끗하나 안 다친 걸 보면 말야.

부관 : (웃음을 참지만... 샌다)

하상사 : (머쓱하기 그지 없다)

김홍석 : 하상사...

하상사 : (기어들어간다) ...예.

김홍석 : 부대 안에 당면한 문제가 뭔지 파악해서 보고하게.

하상사 : (또 나선다) 파악이나 마나 장군님, 피난민들 때문에 문제가 심각합니다.

김홍석 : (본다)

하상사 : 배고픈 피난민들이 부대안으로 몰래 넘어와 물자를 훔쳐내고 있습니다.

김홍석 : (선다) 물자? 뭘 훔치는데?

하상사 : 식자재, 씨레숑, 탄피 뭐 많습니다만... 주로 이게.. 군복이 문젭니다.

부관 : 워커장군께서 구호품 지급을 늘리돼, 무단 침입자는 사살하라고까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하상사 : 아주 조마조마해 죽겠습니다. 팔순 노인네부터 쥐방울만한 놈들까지 밤낮으로 넘나드는 통에...

 

 

씬78. 대구, 시장통 한 거리

 

강희와 준희, 걸어가고 있다.

두 아이들, 유난히 배가 튀어나온 임신부들을 본다. 늙은 여자, 젊은 여자, 할 것 없이 배가 튀어나와있다.

 

준희 : 뭐 먹구 살어? 이제 우리 계속 그지 해?

강희 : 그지해선 못 먹구 살어. 잘 방두 있어야 되구.. 또 나중에 학교두 가야 되구.

준희 : 그럼 뭐 먹구 살어?

강희 : 그니깐 보잖아. 시장에서 사람들이 뭐하나 보면 뭐 먹구 사는지 알 수 있단 말야.

 

강희와 준희, 사람들을 둘러본다. 아이들의 시선에 긴 치마를 입은 임신부 들이 보인다.

남자 하나, 중늙은 임산부의 어깨를 툭툭 치면 임산부 바로 치마를 걷어 올린다.

 

준희 : 으아아! 저 할머니 왜 저래! 자기 밸 왜 보여줘!!

 

중늙은 여자, 실은 임산부가 아니다. 치마 아래 허리에 굵은 고무끈을 차고거기에 군복바지 염색한 것을 겹겹이 차고 있다.

남자, 돈을 내밀면 여자, 얼른 바지 하나를 빼서 내밀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치마를 내린다.

 

강희 : 와아..

 

강희, 감탄하고 돌아보면 온통 임산부들이다.

다른 여자, 하나가 치마 들추고 군복을 파는 모습이 보인다.

 

 

씬79. 부서진 건물, 한쪽 (밤)

 

준희, 웅크리고 누워 자고 있다.

강희, 준희에게 거적데기 같은 것을 잔뜩 덮어 놓았다.

강희, 도라무통의 사위져 가는 불을 본다. 준희의 옆에 놓인 빈의 판때기를 본다.

잠시 보던 강희, 도라무통에 던져 넣는다. 타들어가는 나무판.

 

준희 : ..

강희 : (몽당연필로, 손바닥만한 종이에 필요한 것을 적는다) 함지두 있어야 되구. 염색약두 있어야 되구. 군복두 있어야 되구..

 

강희, 고민스러운 얼굴로 생각하다 속곳 주머니에서 진주알을 꺼낸다.

강희, 진주알을 보다, 잠시 동영을 생각한다.

 

(인서트) 1부 씬23

동영, 강희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 주던.

 

강희 : .. (자신의 머리를 한번 만져보고, 진주알을 다시 한 번 보고)

 

 

씬80. 전당포 안

 

강희, 전당포 주인에게 진주알을 내민다.

 

강희 : 많인 안 주셔두 되요. 전쟁 중엔 이런 거 많이 안 주는 거 아니까요.

전당포 : 그래서? 쩍게 뭘 얼마나 주랴?

강희 : 방 하나 하구요. 군복 염색할 큰 함지 하나하구요. 염색약 하나하구요.

         요기 밖에, 시장서 장사할 수 있게 허락해 주는 거하구요. 군복요.

전당포 : 그게 짝냐? 그게 짝아?

강희 : (고개 끄덕인다) 아저씨한텐 많은지 모르겠는데요. 전.. 진짜 (진주알 보며) 이것 땜에 죽을 뻔했거든요.

         그니까 그 정돈 주셔야 되요.

전당포 : 하하... 나 참... 야, 이놈아 딴건 몰라두 군복은 니들이 구해야지. 내가 어떻게 구해주냐!

 

 

씬81. 아이들의 몽타쥬 (밤)

 

강희와 준희, 부대 뒤를 서성거리다가 낑낑-거리며 쌓아놓은 괘짝더미를 넘어 담을 탄다.

부대 뒤편에 널려 있는 군복을 걷어온다.

강희, 준희 군복을 들고 죽어라 달린다.

어디 하꼬방 같은 곳에 방을 얻었다. 마당서 함지에 염색약을 풀어 군복을 넣고 염색을 하기 시작한다.

다 마른 군복을 인두다리미로 다림질 하는 강희, 개키는 준희.

강희, 준희의 배에 군복을 채워준다.

 

 

씬82. 대구, 시장통

 

강희와 준희, 임산부 같이 해서 뒤뚱거리고 걷는다.

 

준희 : 무거워..언니..힘들어.

강희 : 참어 봐. 너 잘 하잖어. 너, 이런 거 전에 많이 했잖어.

준희 : 건 그런데..그래두 힘들어.

강희 : 원래 밥 먹구 사는건 다 힘든거야, 바보야.

준희 : 응.. 진짜 그런가 봐...

강희 : 넌 저 쪽 가서 팔어. 난 여기서 팔테니깐 둘이 같이 있음 별루 많이 못 팔잖어. 알았지?

준희 : 응. (뒤뚱거리면서 걸어간다)

 

 

씬83. 동, 일각

 

준희, 임산부인척 군복 파는 여자 옆에 선다.

지게꾼 한명, 군복장사꾼에게 군복을 사려고 하면.

 

준희 : 아저씨. 나두 있는데요.

지게꾼 : ? (보면)

준희 : (자기 배를 훌렁 까 보인다. 그 밑에 채워져 있는 군복) 이거 사세요~ 헤헤~ (순진하게 웃는다)

 

 

씬84. 동, 강희 있는 곳

 

준희, 뛰어온다.

 

준희 : 언니!! 나 팔었다! 팔었어!

강희 : 잘했다! 잘했어! 어디 줘봐.

준희 : 자- (돈 내민다) 이제 팥죽사줘~ 배고파~

강희 : (세려보고, 얼굴이 싹- 변하는) 근데 왜 이거밖에 없어?

준희 : 응~ 내가 (손으로 가르키며) 저기 저 아줌마보다 싸게 팔았거든~ 그래서 아저씨가 내꺼 사줬다~

강희 : (준희 군밤을 아프게 때린다)

준희 : 왜 때려!

 

강희, 흘겨보고 ‘군복 있어요. 군복바지 있어요’ 조용조용 외치면서 걸어간다.

준희, ‘어쨌든 팔았으니깐 팥죽 사달란말야’ 쫄쫄 쫓아간다.

정자와 챠리, 시장을 보러 온다.

 

챠리 : 누나, 나두 바지 하나 더 있어야 되겠어.

정자 : 아주 돈 줌 생겼다구 팔자가 늘어졌구나. 빨아 입음 돼지!

챠리 : 아..그러지 마라, 진짜. 두갠 있어야지. 밤에 빤다구 아침에 잘 마르냐!

 

챠리, 강희의 뒤쪽으로 간다.

강희, ‘군복바지 싸게 드려요’ 하면서 걸어간다.

챠리, ‘야! 바지 하나 줘’ 강희의 어깨를 툭툭 친다.

강희, 돌아본다. 챠리와 강희, 눈이 딱 마주친다.

그 뒤에 서 있던 정자, 놀라서 기절할 것 같다.

 

챠리 : 어어..너너..

정자 : 너... 강희..잖어.

강희 : 으아!! 아줌마, 오빠!! 언제 사리원서 왔어요! 우리 엄마, 어딨어요! 우리 엄마 봤죠!!

정자 : ..

챠리 : ..

강희 : (챠리를 잡고 흔들다, 정자에게 가서 붙잡고) 아줌마, 우리 엄마요! 우리 엄마 어딨어요?

정자 : 니네..엄말..왜 나한테서 찾어...

챠리 : (정자의 말 끝나기 전에) 니네 엄마, 죽었어.

준희 : 언니네..엄마가 죽었어요..?

강희 : ..(핏기가 싹- 가시는) 뭐라구요...?

챠리 : 니네 엄마 죽었다구!

 

대구, 시장통 강희, 챠리를 붙잡고 묻고 있다.

그 옆에 난처한 정자. 준희.

 

강희 : 뭐라구요...? 울 엄마가...뭐 어떻다구요..?

챠리 : 니네 엄마 죽었다구!

 

강희, 갑자기 챠리의 배를 두 손바닥으로 치며.

 

강희 : 오빠 미쳤어!? 우리 엄마가 죽긴 왜 죽어요! 여기서 만나기루 했는데, 울 엄마가 왜 죽어요!

챠리 : (강희의 손목을 잡아서 뿌리치며) 아씨! 내가 봤다! 니네 엄마 죽었다니까!

 

강희, 멍하니 보다 돌아서 뛰어간다.

 

준희 : 진짜 언니 엄마 죽었어요? 진짜에요?

챠리 : 몰라, 몰라! 너까지 왜 그러냐!

 

준희, 챠리 한 번 보다 뛰어가는 강희를 본다.

 

준희 : 언니! (뒤뚱거리며 따라서 뛰어간다)

 

강희, 배에 찬 군복 때문에 뛰기가 여의치 않자, 군복을 빼서 던지고 뛰어 간다.

준희, ‘언니!!’ 하면서 따라가다, 강희가 버린 군복을 본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강희의 뒷모습 한 번 보고, 군복 한 번 보고. 군복을 줍는다.

정자와 챠리,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이야기 하는.

 

정자 : (그 모습 보다, 화가 난) 야, 이 자식아! 넌 애들한테 그런 말이 하구 싶어!

챠리 : (짜증) 아, 몰라! 진짜 찝찝하네. 재수 드럽네..

정자 : 그러게 양자 언니 얘긴 왜 꺼내!

챠리 : 아, 씨. 그게 내 탓이야! 아줌마 운수가 사난거지!

정자 :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어차피 죽을 운이믄 총 맞아 죽고, 폭탄 맞아 죽고, 얼어죽고, 굶어 죽고. 쯧! (혀 차고, 돌아선다) 가자!

챠리 : 어딜?

정자 : 미제 물건이라두 뗘다 팔 자리 알아봐야지. 손에 든 몇 푼, 곶감 빼듯 다 빼 먹구 깡통 찰래?

 

 

씬2. 대구역 앞

 

쏟아져 나온 피난민들을 붙잡고 격앙된 강희, 엄마에 대해 묻고 있다.

'사리원서 오셨어요? 우리 엄마 몰라요? 이양자에요. 이양자? 못보셨어요?’

군복바지를 들고 쌕쌕- 거리며 쫓아온 준희, 강희를 본다.

 

강희 : 우리 엄마 사리원서 미제 물건 팔았거든요. 이름이 이양자거든요. 아세요?

 

피난민, 고개 흔들고 지나가면 강희, 다른 사람에게로 간다.

 

준희 : (강희 다가가 옷을 잡는) 언니..그지마..

강희 : ...

준희 : 아줌마 죽었잖아. 이제 여기 못 오잖아. 언니가 암만 기다려두 아줌만 절대 못 오는 거잖아.

강희 : 놔! 이 기집애야! 노래니깐! 놔! 놔! ...우리 엄마랑 여기서 만나기루 했다니까.. 대구역 앞서 기다리구 있음..온다 그랬단 말야..

 

강희, 땅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강희, ‘엄마... 엄마..’ 부르며 울기 시작한다.

준희, 그런 강희를 보다 군복을 떨어뜨리고, 강희의 목을 꼭 끌어안아 준다.

 

 

씬3. 하꼬방, 안

 

반 평이나 될까 말까 한 방. 방에 군복 바지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고.

강희, 방바닥에 대짜로 누워 챠리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챠리의 소리) : 니네 엄마 죽었어.

 

강희, 어쩔 줄을 모르고 자반뒤집기해서 엎드린다.

 

(챠리의 소리) : 니네 엄마 죽었다니까. 내가 봤어.

 

강희, 속에서 화닥증이 나는지 다시 몸을 휙 뒤집어 똑바로 눕는다.

 

 

씬4. 하꼬방, 앞

 

빨랫줄에 세탁한 군복 바지들이 걸려 있다.

준희, 낑낑거리며 군복 바지를 걷는다.

준희, 군복 바지들을 툇마루에 놓는데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난다.

준희, 배를 한 번 쓰다듬고, 툇마루에 놓인 다 찌그러진 찬장을 연다.

난전에서 사온 편지봉투 쌀. 편지봉투를 작은 솥에 털면 한 숟가락이나 될 만큼의 쌀이 투둑 떨어진다.

준희, 편지봉투를 후후- 불어 털어본다.

 

 

씬5. 하꼬방 안

 

강희, 벽에 기대 쭈그리고 앉아 있다.

문 삐죽이 열리고 미안해서 쭈빗 거리며 얼굴을 들이미는 준희.

 

준희 : 언니두..배고프지?

강희 : (팔에 얼굴 묻고 쳐다도 안 본다)

준희 : 아침두 안 먹구, 점심두 안 먹구.. 우리 저녁두 안 먹어?

강희 : 문 닫어.

준희 : 저번에 우리..엄마,아빠 죽었을 때 무지무지 슬펐는데..슬퍼서 나두 죽을뻔 했는데..배고팠단 말야..

         언니가 준 찐빵두 먹었잖아.

강희 : 문 닫으라니까! (옆에 있는 군복 바지를 집어 준희에게 던진다)

준희 : (겁이나 얼른 문을 닫는다)

 

 

씬6. 동, 툇마루

 

준희, 툇마루에 앉아 한숨을 폭 쉬다가 주머니를 뒤진다. 돈이 없다.

 

 

씬7. 하꼬방, 안

 

강희, 무릎에 얼굴 묻은 자세로 앉아 있다.

준희, 살금살금 들어와 한 쪽 벽에 시멘트 블록을 빼고 그 안에서 깡통을 꺼낸다.

깡통 안에 수첩과 몽당 연필.

준희, 강희의 눈치를 보며 수첩 안에 들어있는 돈을 꺼낸다.

(인서트) 수첩에 군복 판 수입, 지출이 꼼꼼히 써 있다.

 

준희 : 언니가 그랬잖아. 엄마,아빠가 죽는 게 덜 무서운 거라구. 언니가 죽는 거 보담 아줌마가 죽는 게 안무선거잖아.

강희 : ..

준희 : (지전을 꺼낸다) 쌀 사오께.

강희 : (다가가 준희 손에 지전을 뺏어서 두 장만 준다) 봉투 하나만 사.

 

 

씬8. 대구역전

 

거지꼴이 된 양자, 다리를 줄줄 끌며 걸어온다. 기차를 타고 온 게 아니라, 먼 길을 걸어와 엉망이다.

양자, 신발이 훌떡 벗겨지면서 비틀한다.

양자, 쭈그리고 앉아서 보면 신발 밑창이 다 나갔다.

 

양자 : 그래, 너두 주인 잘 못 만나 고생했다. 이천리 길을 아흐레 만에 걸었으니.. 체! 발바닥에 빵구 안난게 다행이지..

 

양자, 골판지 굴러 다니는 것을 주워 대충 찢어 신발 밑창에 깔고 끙- 일어나서 둘러본다.

‘大邱驛’이라고 쓰인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양자 : (눈물이 핑-돈다) 강희야.. 엄마 왔다. 엄마가.. 고생, 고생 죽을 똥을 싸면서 너 찾으루 왔다. 강희야..

         (자기 감정에 복받쳐 치마에 코를 팽- 푼다)

 

 

씬9. 대구시장, 제수가게 앞

 

아낙, 함지에 편지봉투 쌀을 한 봉투씩 팔고 있다.

준희, 쌀을 사려고 하다, 흰 상복을 입은 여자 제수가게로 들어가면 그 모습을 보는 준희.

 

 

씬10. 부산항

 

배에서 내린 짐들을 트럭에 싣는 인부들.

그 뒤로 대형 물품 창고가 보인다. 물품 창고에 ‘동춘상회’ 현판이 붙어 있다.

창회, 같이 짐을 옮기며 인부들에게 지시내리고 있는데 문득 들려오는 아내의 소리.

 

(영수의 목소리) : 여보.. 우리 준흰요..? 우리 준희.. 찾아야죠..?

창회 : .. (힘이 빠져, 어깨에 얹은 짐이 툭- 떨어진다)

직원들 : 사장님!

창회 : (멀리 바다로 시선을 돌린다)

 

 

씬11. 동, 동춘상회 안

 

창가에 서서 트럭에 짐 싣는 모습을 보고 있는 창회.

그 뒤로, 큰 테이블 위에 현금이 쌓여 있고, 현금을 세어 묶고 있는 직원들.

종이박스에 현금을 담는 간부들도 보인다.

창고 안으로 최비서, 뛰어 들어온다.

 

최비서 : 사장님!! 사장님!! 장봉실 찾았습니다!

창회 : (황급히 돌아본다) 그 여자 지금 어딨어!

최비서 : 대청동요. 도떼기시장 바로 뒤에 있던데요.

 

 

씬12. 장봉실의 의상실 안

 

자그마한 양장점이다. ‘앙상블’ 이라는 간판을 달고, 오픈을 위해 준비 중이었다.

가게를 꾸미던 차연과 화연, 집달리들과 대치 중이다.

방육성, 계약서를 내밀며, 원색 자켓에 백구두를 신은 봉탁(50대)과 실랑이를 벌인다.

장봉실, 그러거나 말거나 의자에 앉아서 마네킹에게 입힐 드레스를 손보고 있다.

 

방육성 : 여기, 여기. 임대 계약서! 당신 까막눈야!

오봉탁 : (드센 경사도 말) 당신이야말로 까막누이가! 요봐라 요! 오,봉,탁이 이름 빡 찍힌 덩끼 증명! 낼로 오봉탁이야!

            내가 세 논 적이 없는데 누구 맘대루 옷 가겔 여노!

차연 : 옷가게 아니구 의상실요! 장봉실 선생님 의상실 앙상블! 우리 선생님 이름두 못 들어 봤어요!

오봉탁 : 몬 들어 봤는데.

차연 : 부산 촌구석서 우리 선생님을 어떻게 알겠어!

오봉탁 : 뭐라카노, 이 가시나!

장봉실 : 조용히들 좀 해라. 머리 아파.

 

차연과 화연, 찔끔해서 조용해진다.

봉실, 손 보던 드레스를 테이블에 내려 놓고 일어서며.

 

장봉실 : 대체 왜, 이 야단들이지? (방육성을 보며) 제대루 계약하구 들어온거 아네요? 뭐가 문제죠?

방육성 : 어제까진 아무 문제 없었죠. 아- 참.. 그게... (미안한) 죄송합니다..여사님..좀 더 잘알아 봤어야되는데, (하는데)

장봉실 : (말 안듣고, 오봉탁에게) 오봉닥씨라구 했나요?

오봉탁 : (아랫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달기 아이라 탁이다. 탁!

장봉실 : 그래요. 오봉탁씨. 당신이 주인이라 해요. 그치만 이 가겔 우리한테 세 놓은 사람하구 당신이 같이 사기 친 게 아니란 걸

            증명할 수 있나요?

오봉탁 : 이기, 뭔소리고? 와, 돌아뿌겠네. 와 내가 그걸 증명해야 되는데? 밝히고 싶으면, 당신이 그 마노무자식을 찾아내야지.

            (비꼬는) 안그렇노? 미세쓰 장.

장봉실 : .. (생각하다) 한 달만 쓸께요, 여기. 월센 후불로 드리죠.

오봉탁 : 오십 만원 있나? 보증금.

 

 

씬13. 여관 앞

 

앙상블이 빤히 보이는 여관이다.

빈, 담에 석필로 낙서를 하고 있다. 나쁜 놈. 사기꾼. 장봉실 바보. 앙상블 다 망했다 이런 낙서를 하는 빈.

창회의 차 들어와 선다.

창회 급히 내리고, 조수석에서 뒤따라 내리는 최비서. 기사, 운전석에 있고.

 

창회 : (장봉실 바보라는 낙서를 보고 빈에게) 너 그 여잘 아니?

빈 : (본다)

창회 : 옷 만드는 여잔데. 거기 니가 쓴 바보 장봉실 하고 같은 사람이니?

빈 : 원래 바본 아니에요. 훌륭한 디자이너에요.

창회 : 그럼 너 혹시 준희도 아니?

빈 : (반가운) 준희? 고준희? 꼬맹이 준희요?

창회 : 그래! 우리 준희가 (여관을 보고) 여기 있니?

빈 : (고개 흔든다)

 

 

씬14. 장봉실의 의상실 앞

 

오봉탁와 집달리들 나온다. 오봉탁 따라 나오는 방육성.

창회와 빈, 걸어 나오다 그 모습을 본다.

 

방육성 : 한 달만 여유 줘봐요. 우리 여사님 옷 한 벌이 얼만데.

오봉탁 : 낼 식전에 사람 보낼끼라. 오십 만원 주든지, 비우든지. (돌아서서는) 아따, 열 받아서... 목깐이나 하러 갈란다.

            (헛기침하고 가는)

 

창회와 빈, 잠시 오봉탁를 본다.

 

 

씬15. 장봉실의 의상실

 

창회, 장봉실과 방육성에게 이야기를 다 들었다.

세 사람,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 차연, 화연 물건 정리하고.

빈,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창회 : 대구 어디요? 거기 내 딸이 정말 있나요?

방육성 : 그럼요. 여사님이 한 달 치 밥 값, 방 값 다 줬는데.

창회 : (벌떡 일어선다) 갑시다.

장봉실 : 양키시장 근처에요. 교동 봉화 여관. 대구 가면 찾을 수 있을꺼에요.

창회 : 못 찾으면 당신이 책임질꺼요? 지금 떠나면 (손목시계를 본다) 새벽엔 돌아올 수 있어요.

장봉실 : 그 아일 찾든, 못 찾든 그건 당신 일이죠. (일어나 마네킹 쪽으로)

창회 : 이봐요! 장봉실씨!

빈 : 나 그 여관 찾을 수 있어요. 준희한테 내가 데려다 드릴께요.

창회 : (빈을 본다)

 

 

씬16. 여관 앞

 

최비서, 뒷문 열어주면 창회 탄다.

최비서 조수석으로 가는데 달려 나오는 빈.

‘빈아! 빈아!’ 부르며 그 뒤를 따라오는 방육성과 장봉실.

 

빈 : (못 들은 척 뒷좌석에 올라타며) 내가 가야 준흴 빨리 찾아요. 아저씬 어딘지 모르잖아요.

창회 : 그래. 고맙다. (최비서에게) 야간통행증은?

최비서 : 챙겼습니다. 사장님.

 

장봉실과 방육성, 따라와서 문을 잡는다.

 

방육성 : 장빈, 너 뭐 하냐, 지금?

빈 : 낼 일찍 데려다주신다잖아요. 준희만 보구 오께요.

장봉실 : (창회에게)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앨 데려가겠다구요?

창회 : 애보다도 인정머리가 없군.

장봉실 : 처음부터 잘 보살피지 그랬어요? 딸을 잃어버린 건 당신이지, 내가 아니잖아요? 내가 할 도린 다 한 것 같은데.

            (빈을 보고) 내려. 얼른.

창회 : ..

방육성 : (창회에게 미안한) 너무 섭섭해 마세요. 나라두 따라 가주면 좋겠는데. 가게 일이 골 아프게 되서요..

창회 : (명함을 내민다) 오십만원은 사무실 가서 달라해요. 돈이라면..얼마든 주죠.

         아니, 아니 그럴 것 없지. 최군아. 자네가 모시고 가서 해결해드려.

최비서 : 예, 사장님.

장봉실 : 이보세요!

창회 : (장봉실의 손을 잡는다) 부탁합니다... 장봉실씨. 제발 좀 도와주시오..

장봉실 : ..(난처해서 보는)

 

 

씬17. 달리는 차 안 (저녁)

 

기사 운전하고 있고. 창회, 조수석에 타고 있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장봉실과 빈.

창회,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보다, 거울 속에서 장봉실과 시선이 부딪친다.

창회, 창밖으로 시선 돌린다.

 

 

씬18. 하꼬방, 앞 (저녁)

 

준희, 강희에게 야단을 맞고 있다.

쌀 대신 사온 사과 한 알, 배 한 알, 작은 북어 한 마리, 막걸리 한 주전자.

 

강희 : 누가 너더러 이거 사오래? 배고프다 그래서 쌀 사오라 그랬지! 내가 너더러 우리 엄마 제사 지내 달랬어!

준희 : 가게 아줌마가 그랬단 말야. 제사 안지내면 귀신 된다구. 언닌, 언니 엄마가 귀신 돼서 밤마다 왔다 갔다 하면 좋겠어?

         하늘나라두 못 가구 밤마다 추운데 귀신 되서 다님 좋겠어?

강희 : 우리 엄마 죽은 거 니가 봤어! 기집애야! (준희의 머리를 한 대 친다)

 

 

씬19. 하꼬방 안 (저녁)

 

나무궤짝 위에 접시 대신 밥그릇에 사과 한 알, 배 한 알이 담겨 있고, 종이 위에 북어가 놓여 있다.

강희와 준희, 제상을 차렸다.

강희, 지방을 쓰느라 종이 위에 몽당연필 침 묻혀서 꼭꼭 눌러가며 ‘이양자’ 라고 이름을 쓰고 있다.

부러운 듯 보는 준희.

 

준희 : 언니..우리 엄마랑 우리 아빠도..귀신이 되까..

강희 : 너두 그럼 같이 해. (수첩 뜯은 것 두 장을 밀어 놓는다) 자- (하다가) 아.. 너, 글씨 모르지?

준희 : 몰라.

강희 : 불러. 니네 엄마, 아빠 이름.

준희 : (곰곰히 생각해 본다. 인상 찌푸리고)

강희 : 몰라?

준희 : (고개 끄덕인다)

강희 : 으이그. 한심해. 넌 어떻게 엄마, 아빠 이름두 모르니?

준희 : 엄마 아빠 이렇게 부르지 이름 부르나, 모. 그럼 언닌 엄마 이렇게 안 부르구 이양자씨 부르냐?

 

 

씬20. 동 방 (시간경과)

 

벽에 밥풀로 붙여 놓은 지방. 이양자. 준희 엄마. 준희 아빠. 라고 따로따로 써 붙여져 있다.

강희, 제법 의젓하게 막걸리를 대접에 따라 올린다.

준희도 눈치 보며 그대로 따라하고.

강희, 대충 절한다. 준희도 눈치 보며 따라하고.

강희, 자리에 앉는다. 준희, 따라 앉는다.

그렇게 처량하게 앉아 있으니 엄마, 아빠 생각이 더 난다.

 

(인서트) 1부 씬78

'아구. 이 년이. 얼른가라니까. 니 에미 안 죽어. 안 죽구 대구역까지 갈테니까 거기서 보자니까. 얼른 타.'

 

강희 : (눈물이 핑- 돈다) 이러니까. 울 엄마 진짜 죽은 거 같잖아.

준희 : ..(지방을 시무룩하게 보다가 눈물이 핑돈다) 엄마.. 아빠.. 왜 죽고 그랬어...죽지 말지.

 

준희, 소리 내서 운다.

강희, 그런 준희를 보다 얼싸 안고 같이 운다.

 

 

씬21. 대구역 앞 (저녁)

 

양자, 밀가루 술 떡 하나를 산다. 술떡을 들고 자리에 앉아선, 한 입 베어 먹으려다가.

 

양자 : 우리 강희년은 어서 굶는지. 먹는 지두 모르면서. 에미라는 게 지 뱃구레부터 채울라구.. 에라 이 나쁜 년아. 너두 에미냐.

         (지 머리통 한 대 쥐어박고)

 

양자, 종이에 술떡을 싸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양자 : 미안하다. 강희야. 한 입만 먹으께. 엄마가 힘내야 돈 벌어, 우리 모녀 먹구 살지. 근데 뭔수루 돈을 버나 그래..

 

양자, 떡을 우물거리다 양담배 피우는 남자를 본다.

양자, 눈이 휘둥그레져서 꽁초를 주워서 본다.

 

양자 : 응. 맞네. 맞어. 카멜. (꽁초를 남자한테 들이민다) 아저씨, 돈 많네요. 이 난리통에 양담배두 피구 이거 어서 샀어요?

남자 : ..(멀거니 본다)

양자 : 이거 어서 떼다 파는지 알아요? 누구한테 샀나 좀 알켜 줄 수 있어요?

 

 

씬22. 하꼬방, 마당 (밤)

 

준희와 강희, 성냥으로 지방에 불붙여 손바닥에 놓고 위로 올리면서 태운다.

‘아 뜨거, 아 뜨거(준희)/ 잘해 디지 말구(강희)’

문 열리고. 전당포 주인, 사슬로 손목에 가방을 묶고 들어오다 그 모습을 본다.

 

전당포 : 모하냐? 우리 집 다 꿔 먹을라구 불 장난 하냐?

준희 : 아녜요. 우리 엄마 아빠랑 언니네 엄마랑 제사 지냈어요.

전당포 : 단디 꺼라. 단디. (들어가려 하면)

강희 : 아저씨.

전당포 : (안채 툇마루에 앉으며) 말해.

강희 : 사과 하나, 배 하나, 북어 한 마리하고 쌀 한 봉투 하구 안 바꾸실래요?

준희 : 막걸리두.

강희 : 막걸리두 있는데요.

전당포 : 일 ?졍?. 귀신이 먹구 간걸 누가 사 먹냐. 건 니들 먹구. 어디 니들 안 먹는 막걸리나 가져와봐라.

            니네 부모덕에 한잔 ?봅? 먹어보자.

강희 : 됐어요! 귀신이 먹던 거 먹지 말구요, 아저씨 돈으루 받아다 먹어요!

 

 

씬23. 하꼬방, 안 (밤)

 

강희, 깡통에 조금 있는 설탕을 반 스푼 넣고 휘휘 저어 준희에게 준다.

준희, 조금 마신다.

 

강희 : 맛있니?

준희 : 응, 디게 맛있어.

강희 : (마시고) 진짜네. 아저씨 줬음 클날 뻔 했다. 배고픈데 많이 먹어.

준희 : 응. 언니두 많이 먹어. 나보다 더 배고프잖아.

 

강희와 준희, 신나게 막걸리를 마신다.

(시간경과) 강희와 준희, 취했다.

준희, 방육성이 잘 부르던 ‘서울야곡’을 부르고 있다.

강희, 딸꾹질을 하면서도 박수치고 웃는다.

볼이 빨갛게 된 두 아이, 밥 대신 막걸리를 먹고 논다.

 

강희 : 누구한테 배웠어? 디게 잘 한다.

준희 : 빈이 오빠랑 같이 다니던 아저씨.

강희 : 따라가지 그랬어. 그 사람들 따라 갔음 좋았잖아.

준희 : (벌렁 눕는다)

강희 : (벌렁 눕는다)

준희 : 언니, 우리 부산 가까?

강희 : 가구 싶어?

준희 : 이젠 여??어두 언니네 엄마두 못 오구, 우리 엄마 아빠두 못 오잖아. 빈이 오빠 보구 싶어. 씬24 창회의 차 안(밤) 봉화 여인숙의 ‘旅館’ 등이 켜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빈:(창에 달라붙어 보고 있다가...) 저기요! 아저씨! 준희 저??어요! 차서고. 창회, 뛰어내린다. 따라 내리는 빈과 장봉실. 씬28 대구역, 앞(새벽) 노숙하는 피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드럼통에 사그라드는 모닥불이 피워져 있고, 피난민들 아이를 꼭 껴안고 앉아서 졸거나, 나무판자를 깔고 웅크린 채 신문지를 덮고 누워 잔다. 누군가 양자가 덮고 있는 신문지를 살며시 걷어가려고 하면 양자, 눈을 뜨고 무섭게 노려보다 신문지를 휙- 뺏어 얼굴에 덮는다. 씬29 하꼬방, 안(새벽) 취해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강희와 준희. 막걸리 주전자 대충 놓여 있고 방안은 엉망이다. (소리) 통금해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강희,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씬30 대구역, 앞(새벽) 강희와 준희, 뜀박질 하듯이 걸어온다. 강희, 문득 발을 멈추고 피난민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준희, 강희가 왜 그러는지를 안다. 준희:(강희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 약속했잖오. 우리 부자 될 때까지 언니 엄마랑 우리 엄마랑 우리 아빠 생각안하기루. 강희, 준희의 손을 꼭 잡고 뛰기 시작한다. 아이들 사라지고 난 후, 양자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난다. 덜덜 떨면서. 양자:어 춰. 어 춰. 디게 춥네. 남쪽이라구 뜨신 줄 알았더니. 얼어 죽는 사람 한둘이 아니겠네, 진짜. 양자, 드럼통에 손을 뻗어 언 손을 녹이다가 신문 뺏어가려던 남자를 본다. 양자:이봐요. 양키시장이라구 여기서 젤루다 큰 시장이라는데 어딘지 알아요? 씬31 대구, 미 8군 몽타쥬(새벽) (소리) 연합군의 기상나팔곡인 리벨리가 들려온다. 강희와 준희, 담 근처 외진 곳에 숨겨둔 드럼통을 찾는다. 드럼통 위에 짚단을 얹어 나름대로 위장해 놓았다. 두 아이, 풀을 치우면 드럼통이 나타난다. 강희, 준희 끙끙- 거리며 드럼통을 굴려온다 준희, 강희의 도움을 얻어 드럼통 위로 올라가 담을 넘는다. 씬32 미8군 뒷마당(새벽) 빨랫줄에 군복과 속옷, 양말 등이 잔뜩 널려 있다. 강희와 준희, 얼른 군복 바지들을 걷는다. 준희, 양말을 한 켤레 든다. 강희:뭐하니! 준희:(양말 한 짝을 손에 끼우고) 이거 가져가서 장갑 하까? 손 시련데. 강희:어유! (준희의 손에서 양말 뺏어서 바닥에 던지고 빨리빨리 군복바지를 걷는데) (미군의 소리) what the hell are you doing? (이하 자막: 니들 뭐야!) 준희와 강희, 그대로 몸이 굳는다. (미군의 소리) Damm it, rats! (이런 쥐새끼 같은 것들!) 준희와 강희, 돌아보면 위압적인 미군 1,2 M1 소총을 겨누고 있다. 강희와 준희, 겁이 나서 눈이 똥그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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