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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70s] 18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5.07.24|조회수814 목록 댓글 0

[패션 70s] 18

 

 

 

 

 

 

 

 

 

 

 

씬2 김홍석의 집, 마루(저녁)

김홍석,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티 테이블 위에
조촐한 술상을 봤다. 정종과 과일 정도의 간단한. 술잔은 김홍석
앞에 하나만 놓여 있다. 더미, 긴장된표정으로 김홍석의
잔에 술을 따른다.

김홍석: ..(술잔을 본다)
더미: (어색하다, 이 분위기가. 어떡해서라도 풀어보고 싶다)
      저희 어머니두 종종 약주 하시는데. 과일 안준 속
      버리실 꺼 같아요~ 저, 매운탕 잘 끓이는데~ (동영에게)
      찌개라두, 끓여 올까요?
동영: (더미의 마음을 알고) 그럴래?
더미: 네~ 잠시만요. (일어서려는데)
김홍석: 됐소. 지금은 더미양이 끓여 주는 찌개를 먹고
       싶은 생각이 없군.
더미: .. (앉는)
김홍석: (더미가 따라 준 술을 한 잔 마시고, 내려놓는다)
        내가 더미양한테 오늘 해 줄 수 있는 건 다한 것 같군.
        이만 돌아가 주면 좋겠소.
더미: (내가 마음에 안 드나보다, 술을 한잔 더 따르고)
      제가 마음에 안 드시죠..? 죄송해요. 제가..좀 더 장관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좋았을 텐데..(미소) 공부두 좀 더
      많이 하구 그랬음 좋았는데..
동영: 더미야, 그런 거 아냐.
김홍석: (보고)
더미: 근데요..쫌만 기다려 주세요. 공부두 열심히 하고 유명한
      디자이너두 되구, 장관님께 부끄러운 사람이 안 되도록
      노력하려구요.
김홍석: 오해한 것 같군. 그런 건 아니지만, 더미양은
      그만 돌아가 주면 좋겠는데?
더미: ..(난처해서, 동영을 본다)
동영:(입술을 꾹, 다물고 화를 참고 있다)
김홍석: (무시하고, 더미에게) 그만 가 봐요.
더미: 예..알겠습니다. (가방을 들고 일어난다)
동영: 앉아.
더미: 그만 가보겠습니다..
동영: (김홍석의 태도에 화가 났다) 앉으라니까!
      (더미의 손목을 잡아 당겨, 주저  앉힌다) 이렇게 보낼 것
      같으면 데려오지도 않았어.
김홍석: 그만 돌려보내라고 했다.
동영: 저한테 소중한 사람입니다! 제게 대한 실망은 실망이고,
      더미한텐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김홍석: 그만 보내라니까!
동영: 아버지!
김홍석: 자네! 그만 가보란 소리 못 들었나!
더미: ..죄송합니다.. 나중에 다시..찾아뵐께요.

더미, 가방을 들고 일어나 고개 숙여, 김홍석에게 인사하고 문
쪽으로. 동영, ‘더미야!’하고 일어선다.

김홍석: 거기 서지 못해!

동영,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원망이 담긴 눈으로
김홍석을 보다, 돌아선다. 

씬3 버스 정류장(저녁)

울 것 같은 표정의 더미, 차를 기다리고 있다. 동영, 따라 나왔다.

동영: 더미야!
더미: (돌아본다. 표정 웃으며) 왜 나와요~ 나두 이젠 서울지리
      잘 아는데~ 빨랑 들어가요~ 장관님 더 화나시겠다~
동영: 미안하다.
더미: 그러게, 쫌 더 있다 오자니깐~
동영: 내.. 마음이 바빠서.. 속상하지?
더미: (애써 웃고)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앞으루 웃을 일 보다,
     울 날이 많을 거라구. 아직 시작두 안한 걸~ 울구 짜증내는 건
     좀 더 있다 할께요~ 지금부터 그러면 지쳐~
동영: ..
더미: 그래두 아저씬 아빠가 있어서 좋겠다. 때려주기두 하구,
      야단두 치구. 쬐끔 부럽단 생각두 했는데.
      날 좋아하셨음 많이 좋았겠지만, 지금은 나, 장관님 쬐끔만
      좋아해야지. 장관님, 디게 멋있어요~
동영: ..(더미의 손을 잡는다)
더미: 그만 들어가요. 장관님, 더 화나시겠다~

더미, 동영을 보고 명랑하게 웃어준다.

씬4 달리는 버스 안(저녁)

더미, 창가에 앉아 있다. 더미,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이 상한다.

(김홍석의 소리)  자네! 그만 가보란 소리 못 들었나!!

더미: ..아저씨 거짓말쟁이. 내가 딴 사람들 웃게 하는
     사람이라면서..그래두..쬐끔 기대했었는데..장관님이
     좋아해줬음 좋겠다 했었는데..

더미, 좀 서글퍼진다. 눈물이 똑- 떨어진다.

씬5 김홍석의 집, 마루(저녁)

동영, 아버지에 대한 실망으로 굳은 표정으로 들어온다.
김홍석,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아들을 돌아본다. 몹시 격앙되어 있다.

김홍석: 일찍이 내 아들이 이렇게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동영: 저도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실망스러운
      적은 없었습니다.
김홍석: ! (노엽게 쳐다보고, 술잔 들어 마저 마신다)
동영: 제가 처음으로 이 집에 데려온 여잡니다!
      제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아버지께서 그 아일 그렇게 무참하게 만드세요?
김홍석: ...
동영: 아유마테이로 떠나기 전에, 더미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제일 슬퍼할 두 사람이,
      서로 위로하고..희망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김홍석: (잔을 놓고, 벌떡 일어나면서) 그런 썩어빠진 정신으루 니 놈이
       무슨 아유마테이를 가!
동영: (주체하지 못할 화가 난다) 저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김홍석 장군이 아니라구요! 제게도 감정이 있습니다!
      저도, 한 여자를 보며 웃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은, 감정이 있는 인간이란 말입니다!
김홍석: 그런 인생을 살고 싶었으면! 군인이 되지 말았어야지!
동영: 아버지!
김홍석: 전쟁터에 나갈 놈이 여자에 대한 감정 하나두 못
       추슬러서야 널 어떻게 군인이라고 하겠어!
동영: (발끈하는) 그래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희생시켰습니까!
김홍석: ! (아들한테 이런 말을 들을지는 몰랐다)
동영: 부상당한 병사들부터 후송시키고! 부하들 식솔부터 피난시키고!
      그 맨 마지막이 장군의 가족이다! 네, 훌륭하셨지요!
      그 어떤 지휘관이 김홍석 장군처럼 했겠습니까!
      훌륭한 군인이십니다!
김홍석: 그만하지 못해!
동영: 어머니 마지막 모습이 제 뇌리에서 사라지지가 않습니다!
      숨을 거두시기 전 저를 바라보던 그 눈에 고인 눈물이,
      훌륭한 남편에 대한 감사의 눈물은 아니었을 껍니다!
      아버진, 어머니께 훈장을 바쳤지만, 어머니는
      목숨을 바쳤습니다!
김홍석: (너무도 아프다)...그만해..라..
동영: 이십년을 꾹꾹 눌러왔습니다. 어머니가 그리울 때,
      꼭 그러셔야 했을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제 안에서
      터져 나올까봐, 누르고 눌렀습니다!
김홍석: 김동영!!
동영: 김홍석 장군의 아들이라는 게, 자랑스러운 훈장인 동시에,
      저를 칭칭 동여매고, 숨 막히게 하는 밧줄이었습니다!
김홍석: !
동영: 아버지 반만이라도 닮아 보려고, 혀를 깨물고 살았습니다!
      그런 저한테 단 한 번, 사랑 때문에 웃을 수 있는 기쁨도
      허락되지 않습니까!
김홍석: 너한테 나 같은 삶을 살라고 강요한 적 없다!
       모두가 니 자의였고, 니 선택이었어! 이제와 핑계 대지 마!
        난, 내 자식이 이렇게 비겁한 놈인 줄은 몰랐다.
동영: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버지 반만이라도 닮고 싶었습니다!!
김홍석: ..(본다)

동영, 자신이 아버지께 지나침을 안다. 아버지를 보며 무릎을 꿇는다.

동영: ...(목이 멘다) 어머니를..잃었다고..원망해선..안된다..그건..
     전쟁..때문이지..아버지..때문이 아니었다..내..아버지는..훌륭한
     분이다..나는, 김홍석..장군의 명예에..흠을 내는 자식이
     되면..안 된다.. 그렇게..살았습니다.
김홍석: 이 놈이! 어디서, 이만한 일로 눈물을 보여!
동영: (눈물이 흐른다) 제 그릇이 이거 밖에 못됩니다.
     아버질 수치스럽게 하는. 김홍석 장군의 반에 반도 못되는
      그릇입니다. 국가보다, 한 여자의 행복이 더 중요한 한심한
      놈입니다.

동영, 무릎을 꿇은 채 고개 숙이고 눈물 떨구고 있다.
김홍석,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씬6 김홍석의 방(저녁)

김홍석, 굳은 표정으로 들어온다. 마음이 아프다.
김홍석, 문갑위에 소중하게 놓인 서류봉투(각하에게서 받은 거라,
일반 서류 봉투 말고, 좀 고급스러운 것으로. 실로 양쪽을
돌려 밀봉하는 스타일)를 보다 마루 쪽을 돌아본다.

씬7 김홍석의 집, 마루(저녁)

동영, 여전히 무릎 꿇고 미동 없이 앉아있다.
안방 문이 열리고, 김홍석 장군 단단히 밀봉된 서류봉투를 들고 나온다.
김홍석, 마루문을 닫는다. 그 모습을 보는 동영.

김홍석: (손에 든 서류봉투를 본다)
        김중린 대남총책에게 보내는 각하의 밀서다.
동영: ..
김홍석: 나는 이걸, 내일 각하께 돌려드릴 생각이다.
       내, 아들은 국가대업에 목숨을 바칠 놈은 못 된다
       사죄하고, 돌려 드리겠다.
동영: (일어난다)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십니까?
      단 한 번 여자한테 흔들린, 썩어빠진 정신을 재무장하며,
      더미와 헤어지기를 바라십니까?
김홍석: ...
동영: 이제까지 저는 제 목숨보다 국가를 우선하며 살았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두렵습니다.
김홍석: 각하께 돌려드린다고 했다.
동영: 아버지...전, 더미가 나 때문에 울지 않도록,
      내 어머니처럼 아프게 살지 않도록, 반드시, 임무를 마치고,
      살아 돌아올 껍니다.
김홍석: ..
동영: 주십시오.

동영, 강렬한 눈빛으로 김홍석을 본다.
김홍석, 동영에게 서류봉투를 건네준다.

씬8 앙상블, 주방(저녁)

더미, 저녁밥을 먹고 있다. 그 옆에, 연경 쨍알-거리고 있다.
연경, 파티 때문에 좀 취했다.

연경: 넌 뭐니? 파티 하다 말구, 쓰윽~ 사라져선,
     데이또 한다구 나갔으면서 저녁두 안 먹었어?
더미: 어. 먹을 줄 알았는데, 못 먹었어.
연경: 니가 잡으루 왔단 남잔, 참 치사하다, 얘.
      뭔 여자 밥두 안사주구 보내니? 내가 볼 땐 싹수가 없는 거 같어~
      돈 쓰는 거 쪼질한 사람이랑 결혼하믄 평생, 시달린다.
더미: 아는 것두 많아요, 언닌.
연경: 얘..넌, 어떻게 그렇게 잘 먹는데 살이 안 붙니?
      아까 밥은 안 먹었어두 너, 닭다리 뜯었잖어?
더미: 밥은 안 먹었잖어. (웃고)
연경: 아우. 선생님이 사 주신다구, 맥줄 넘 많이 마셨나..아우..배 아포라..

연경, 밖으로 나가는데 준희, 들어온다.

연경: 어~ 짝꿍이라구, 준희씨두 왔네요? 파티 때 같이 안보이더니요~
      더미는 데이또 하루 갔구, 준희씬 어디 갔었어요?
준희: ..(미소) 좀 잤어요. 머리가 아파서.

연경, 나가고. 더미와 일상복 입은 준희, 서로를 바라본다.
더미, 머쓱해서 웃는다.

준희: 생각보다 일찍 왔네? (냉랭하게 보다, 밥솥 쪽으로 몸 돌린다)

씬9 동 장소(시간경과)

준희, 밥그릇을 들고 더미의 맞은편에 앉는다.
준희와 더미, 말없이 숟가락질만 한다. (두 사람의 대화에 악의는 없다)

더미: (어색해서, 오이지를 밀어 주면서) 오이지두..맛있는데..
준희: ..
더미: 우리 시골선 이런 거 안 해 먹는데, 서울 음식인가 봐.
준희: (아무렇지 않게) 동영씨 아버님. 식사 때 맞춰간 사람,
      밥두 안 먹이구 보내실 분 아닌데, 자기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들었나보네?
더미: 그러게...(웃고 만다)
준희: 상처 받았겠네? 더미씨두 그렇구, 동영씨도 그렇구.
더미: 음.. 난 그냥 그러실 수두 있다. 쪼끔 각오했는데.
      아저씬..(생각하다) 글쎄? 잘 모르겠다..
      내가 아저씨가 아니니까..(웃는)
준희: (심상하게) 내가 아는 동영씬, 이제껏 아버질 실망시켜
      드린 일 없는 사람 인데. 자기 때문에 무척 괴롭겠네.
      그렇게 사이좋은 아버지, 아들이었는데..
더미: 내가 노력할려구. (웃고) 준희씨두, 빈씨두 많이 아프게 하구.
      그거 알면서두 포기 못하는 거니까. 장군님 마음에 들게,
      노력하려구 그래.
준희: ..(심정이 상한다) 사람 싫은 건 노력 한다구 좋아지는 건
       아니거든. (자신의 태도에 화난다) 아! 진짜, 내가 왜 이러지!
       (숟가락을 탁 놓고 일어선다)

씬10 더미, 준희의 방(저녁)

준희,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설거지 끝내고 손에 물기 있는 채로
들어온 더미, 수건에 손을 닦는다.

준희: 방 바꾸자.
더미: (본다)
준희: 자꾸 내가 맘에 안 드네. 한더미 옆에 있는 고준희,
      안 그러고 싶은데 자꾸만 심사가 꼬여. 거칠어져.
      말도 곱게 안 나가구. 자꾸 화가 나.
      선생님한테 말씀 드려서 룸메이트 바꿔 줄께.
더미: 난, 준희씨가 좀 많이 화내면..좋겠다. 속 풀릴 때까지,
      아저씨한테..말구. 나한테 많이 화내면 좋겠다.
준희: (예상 밖의 대응이다) 뭐?
더미: 이 도둑괭이 같은 기집애야, 화를 내두 좋구.
      나쁜 기집애야! 해두 좋구..그럼..내가 외려 편해질 것 같아.
준희: ..
더미: 준희씨가 너무 불편한 게 아니믄. 나, 그냥 방
      같이 쓰고 싶어. 나..동영씨하고 상관없이..준희씨가..좋아.
준희: 하하- (웃고) 그런 걸 보구 말이지. 사자의 눈물이라고 하는 거야.
     (더미를 보다) 착하면 불편하다구 말했는대두. 한더민,
      착한 건 그만둘 생각이 없나보네?
더미: ..
준희: (고개를 휙- 돌려 스케치를 시작한다)
더미: ..(보다, 자신의 책상 위에 공책과 스케치 도구를 챙긴다)

씬11 앙상블, 실습실(저녁)

더미, 공책을 펴 놓고 앉아 있다. 그 옆에 크레파스도 몇 개 있다.
더미, 마음이 산란하고..잡히지를 않는다.
더미,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정신을 차린다.

더미: 머리 아픈 건 낼 생각할 꺼야. 낼두 아프면 모레 생각해야지!
     자, 한더미. 네 스타일은 뭐지? 뭐야?

더미, 연필을 입에 몰고 열심히 자신의 스타일을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씬12 국립묘지, 일각(저녁)

동영, 국립묘지를 걸어간다.

씬13 국립묘지, 일각(저녁)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특별묘소. 동영의 어머니가 안장되어 있는 곳이다.
김홍석이 죽으면 오게 될 곳으로, 어머니 옆에 그의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동영, 어머니에게 절을 하고 일어난다.
동영, 무덤 위의 풀을 집어낸다.

동영: 어머니, 서운하셨죠? 칠곡서 이리로 모셔오고 자주
     올려구 했는데, 뜸했죠?

동영, 어머니 묘소의 비석을 읽는다.
故 李仁鈺 至妙
동영, 비석을 쓸어보고 뒷면을 읽는다.
(인서트) 김홍석 장군의 아내. 낙동강 전선에서 부상병들을 돌보다
폭격으로 사망. 1963년 3월 1일 2등 근로공로훈장 추서.

동영: 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한더미. 이름도 귀엽죠? (미소)
     오늘 같은 날 어머니가 있었으면...좋았을 텐데..
     (무덤을 보다) 저...좀 먼 데 가야해요... 갔다 오면
      더미하고 같이 인사올께요.
 
동영, 울컥- 가슴이 메어진다. 동영, 하늘을 쳐다본다(Dis)

씬14 빈의 방(아침)

빈, 동영과 통화하면서 옷을 갈아입고 있다.
 
빈: 알았어, 형. 지금 나가. (사이) 출장 얘길 꼭 여사님한테
    해야 되나? (귀찮다는 듯) 됐어. 됐어. 아침부터 웬 잔소리.
    여사님하고 내 문젠 내가 알아 해. (사이) 사무실에서 봐.

씬15 앙상블, 실습실(아침)

빈, 지나가다 열린 문으로 더미를 본다.
밤새 스케치를 하던 더미, 작업대에 엎드려 정신없이 자고 있다.
빈, 들어와서 더미 앞에 선다. 물끄러미 더미를 바라보는 빈.
빈, 둘러보다 다른 작업대 위에 덮인 천을 걷어서 더미에게 덮어준다.
더미, 세상모르고 잔다.
빈, 사랑스럽게 더미를 바라보다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칼을 살짝
쓰다듬는다.

빈: 잘도 잔다. 그래 푹 자라. 이 장빈이 꿈이나 실컷 꿔라.

씬16 앙상블, 실습실 앞(아침)

빈, 나온다. 준희,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빈: 굿모닝~
준희: 한심해서 못 봐주겠네. 출근하는 길이면, 출근이나 해. 

빈, ‘피식’ 웃고 계단 쪽으로 가고.
준희, 그런 빈과 더미를 번갈아본다. 난감하고, 복잡한 표정이다.

씬17 태을방직, 고창회 회장실(아침)

최비서, 고창회에게 양자에 대해서 보고하고 있다. 고창회,
최비서가 가져온 서류를 보고 있다.

창회: 살인죄!!
최비서: 과실치사로, 8년형을 선고 받고 대구 교도소에서 형을 살다,
       휴전특사로 53년 7월에 가석방됐습니다.
창회: 어떻게..그런 일이..(서류를 본다) 그래,
      이 분이 지금 어디 계시단건가?
최비서: 출소한 이후 기록이 남아 있질 않습니다. 각 지방 경찰서에,
       협조를 부탁해 놓긴 했습니다만.. 행방을 찾을 수 있을지는.
창회: 못 찾는다는 말은 하지 말게. 이..분만이..지금..내겐 희망이네.
최비서: 아가씨한테 여쭤보시는 게 빠를 수도 있습니다.
창회: 말 안 되는 소리! 생모가 살인죄로 수감됐다,
      나왔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나! 그 말을 듣고, 우리 준희가
      얼마나 충격을 받겠어!
최비서: 사리원에서, 죽었다는 생모를 이제와 찾으려 하셨다는 게
       저는 마음에 걸립니다. 혹시, 아가씨가..알고 계시는 건,
창회: 우리 준희가, 그걸 알고도 나한테 숨길 아이인가!
      왜 자꾸, 억지를 써!
최비서: 숨겼다기보다..뭔가,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돌아가신..
       사모님을 생각해보세요..어떡하든, 친 따님을 찾으셔야지요.
창회: ..

씬18 고창회의 차 안(아침)

고창회, 뒷좌석에 탔다. 최비서는 조수석에.

최비서: (운전사에게) 조선호텔로 가지. 조찬모임이 있으시네.
운전사: 예.
고창회: ..(생각하다) 앙상블로..가세. 준희한테..잠시 들렀다 가지.

씬19 명동거리, 국립극장 앞(아침)

양자, 약도를 펴 들고 두리번거리고 있다.

양자: 앙쌍...블...? 이름은 왜 이렇게 어려워.
      앙쌍블...? (하면서 둘러본다)

씬20 앙상블, 실습실(아침)

더미, 그대로 엎어져 잠이 들어있다. 더미의 어깨에
얇은 덮개가 덮여 있다. 장봉실, 더미의 공책에 그려진 여러 가지
스케치를 보고 있다. 입가에는 미소가 머금어져 있다.
장봉실, 한 스케치를 보며 웃음을 터트린다.
그 웃음소리에 깨어나는 더미.

더미: (장봉실을 봤다) 어! 원장님! (입가에 침 묻었을까,
      손으로 닦고 일어난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장봉실: (붉은 크레파스로 칠해진 것을 보고) 이젠, 색두 입혔구나.
더미: 방선생님이 천 골라 주시기 너무 힘들어하셔서. (웃고)
장봉실: 지난 번 건 물미역이고, 이건 뭐지?
       (붉은색 칠해진 것을 보고) 진달래? 철쭉?
더미: 동백요.
장봉실: 동백?
더미: 우리 집 뒷마당에 엄마가 동백을 심었는데~ 동백이
      필 때 됨, 바람두 달라지구, 물질하루 바다에
      들어가두 덜 춥구요. 그때부터 봄이에요. 겨울에 맨날
      동백나무 보면서 그랬거든요.
장봉실: (보는)
더미: (행복한 표정으로 모션을 취하며) 빨랑 펴라~ 빨랑 펴라~
      얼른 봄 되라~ 전요, 원장님, 봄 같은 사람이 되구 싶어요.
장봉실: 이미지는 되고 싶은 사람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이미 네 안에 있는, 발견 못한 특징을 잡아서 드러내는 거야.
더미: ..(귀를 쫑긋하고 듣는다)
장봉실: (더미의 위아래를 보고) 동백은 너한테 너무 요염한 것
        같지 않니?
더미: 네..
장봉실: 준희를 데려 와. 둘 다 내방으로 와.

씬21 장봉실의 방(아침)

더미와 준희, 장봉실 앞에 서 있다. 그 옆에 못마땅한 표정의 차연.
흐뭇한 표정으로 보는 방육성서 있다.

장봉실: 너희 둘 작품은 실습실에 표본으루 전시할 꺼야.
더미: 와!
준희: 고맙습니다, 선생님.
장봉실: 전시품을 내놨으니까, 보상을 해야겠지. (준희에게 옆에
       책상 위에 놓인 화집을 들어준다) 자.
준희: 아! (보고, 놀라고) 마티스네요. 일본에 갈 기회가 있음
      사고 싶었어요.
장봉실: 마티스를 안 좋아할 텐데?
준희: 어떻게 아셨어요?
장봉실: 넌, 나랑 비슷하니까. 싫은 걸, 좋아할 순 없지만.
      싫은 거에 장점을 발견하려고 해봐. 고준희한테,
      지금 해줄 말은 이것 밖에 없네?
준희: 명심하겠습니다.
장봉실: ..(더미를 보다, 당신이 쓰던 스케치 노트와
       컬러펜 세트를 준다) 자.
더미: 우와! 저 주시는 거예요! 고맙습니다! (받고)
장봉실: 스케치 연습 열심히 해. (방육성을 보고) 방선생님
       애 먹이지 말구. 다들, 네 재봉사가 되는 거 머리
       아파하지 않을 정도로.
더미: (헤헤 웃고) 그럴께요~ 열심히 할께요~

씬22 앙상블, 복도(아침)
 
준희와 더미, 걸어온다. 더미, 한껏 기분이 좋다.
 
더미: 준희씨, 진짜 고마워. 내꺼 완성해줘서.
      (장봉실의 선물을 흔들며) 안 그랬음 내가 이런 걸
      어떻게 받았겠어~
준희:  자긴 참 무신경하다 그래야 하는 건지,
      성격 좋다 그래야 하는 건지. 나보구, 아무 감정 없이
      그렇게 웃을 수 있다니, 놀라워.
더미: 감정 있을 게 없잖아.
준희: 그럼 방에 들어와서 자. 그러구 실습실서 쭈그리구 자는 거
      나, 맘 불편해. 괜히 착한 사람 구박하고,
      쫓아낸 거 같아서 기분 더러워.
더미: 나..이불 덮어준 거..준희씨가 그런 거구나.
준희: ...아니.
더미: 아니구나..(보다) 나, 결심했어. 준희씨한테 어울리는 룸메이트가
      되기루.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경쟁자가 될께.
준희: 호호호- (웃는다)
더미; 준희씨..(의아하다. 왜 웃지?)
준희: (표정 바뀌고) 내가, 사랑에 밀린다구, 일에서도 밀릴
      꺼라 생각하니? 착각하지 마. 난, 널 인정하지 않아.
      내가 경쟁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장봉실 선생님.
      단 한 분뿐이야. (계단을 내려간다)
더미: 지금..당장 경쟁자 된단 건..아닌데..열심히 해서,
      나중에 할라 그랬는데.

더미, 무안해서 입을 빼물고 머리를 만지작거린다.

씬23 장봉실의 방(아침)

장봉실과 차연, 방육성 이야기 하고 있다.

차연: 아니. 선생님. 준희껀 몰라두, 더미껀 아니죠. 뭐 그딴
      애한테 선생님 쓰시던 스케치북이랑, 색펜을 주세요!
장봉실: 방선생도 그렇게 생각해?
방육성: 뭔진 모르겠지만, 뭐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하다)
       예, 뭐가 있습니다. 재능이 있습니다.
장봉실: (고개 끄덕이고) 준희와 더미, 사이는 어때?
차연: 철썩 들러 붙어 다니는 거 보믄, 좋겠죠. 뭐.
장봉실: 난, 그 애들이 서로 미워했음 좋겠어. 서로 할퀴고,
       못 견디게 미워하구, 불꽃이 튀었음 좋겠어.
차연: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방육성: 서로, 격려하면서 경쟁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장봉실: 아니! 격려가 서로의 재능을 끌어내는 게 팔십이라면,
       서로를 미워하면서 자극하면서 끌어내는 힘은 이백이야.
차연: 선생님..
장봉실: (열정에 들뜨는) 준희, 더미가 열심히 미워하고, 상처 내고.
        서로의 재능을 질투하면서..저어 밑바닥에 숨겨진 있는
        그 애들의 재능 전부를 꺼내 놓길 바래. 그 애들이 다
        꺼내 놓으면 어떤 모양일까, 난 그걸 보고 싶어.
 
씬24 앙상블, 의상실 앞(아침)

더미와 준희, 앞치마 차림으로 비질을 하고 있다.
앙상블 유리창 청소를 하는 연경과 상희, 피에르.
쓰레기통 비우거나, 운반하는 다른 원생들.

씬25 앙상블, 조금 떨어진 곳(아침)

양자, 드디어 앙상블을 찾았다. 멀리 간판을 보는 양자.

양자: 응! 저??네!!

 양자, 앙상블 쪽으로 가는데 고창회의 차가 지나간다.

씬26 앙상블 의상실 앞, 창회 있는 곳/ 양자 있는 곳(아침)

 양자, 걸어오다 차에서 내리는 고창회를 본다.

양자: ! (놀라서 몸을 숨긴다)

고창회, 준희를 발견하고 부르지 못하고 잠시 보고만 있다.
더미, 비질을 하고 있다. 연경, 물 양동이를 집어 들고 학원으로
가려다가 고창회를 본다.

연경: 어. 준희씨. 아버지 오셨네.

그 소리에, 준희와 더미, 고창회를 본다.
양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더미를 본 것 같다. 더미, 몸을 돌리고 있어,
양자에게 정면으로 아직 보이지 않는다.

양자: (설마..싶어 눈 부비며 본다)
준희: 아빠, 언제 왔어요?
고창회: (웃으며) 방금.
준희: 오셨음 부르시죠~ 왜 가만 계셨어요?
고창회: 응. 우리 딸 청소 잘 하나 보려구.
더미: (고창회에게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고창회: 오, 더미양. 오랜만이네.
양자: !! (틀림없이 더미다) 더...미...야..(입술이 달싹인다, 정신이 없다)
고창회: 우리 준희랑 잘 지내줘서 고마워요.
       계속 좋은 친구가 돼주면 좋겠어.
더미: 준희씨가 저한테 잘해줘요. 저한텐 선생님인걸요.
준희: ..(씁쓸한 미소)
고창회: 그래요. 서로가 서로의 선생님인 거지.
        같이 도와가면서 열심히 해요.

고창회, 사랑스러운 듯 더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 모습을 보고 양자,
기함을 한다. 양자, 돌아서서 비틀거리고 걸어간다.

씬27 남성의원 골목(아침)

양자, 몸을 피했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양자: 안돼...이건..안되는 거야...우리..더미..뺏어갈라구...아냐.
     아냐..우리 강흰..어떻게 되는 거야..우리..더민..어떻게..할라구..

양자, 가슴을 부여잡는다. 연경과 상희, 피에르 방, 골목 청소를
하려고 들어오다 양자를 본다.

상희: 어! (놀라고)
피에르: 아줌마? 어디..아프세요?
양자: ..(멍하니 본다)
연경: 아프시니깐 저러시지! 뭘 보구 있니.
      얼른 업구, 병원 모시구 가야지!
상희: 그래, 너가 업어 드려.
피에르: (다가가) 업히세요.
양자: (손을 휘휘- 내저으며 일어난다) 됐어. 귀찮게..하지 말구.
      절루들..가
상희: 괜찮으세요?

양자, 비척비척 걸어가다 비틀한다. 연경, 부축을 한다.

연경: 어머, 어머! 어떡해! 안 괜찮으시잖어. (양자를 잡는다)
양자: ..(연경을 보다) 저기..옷 만드는 데서 일하나?
연경: 네..앙상블요..
양자: 더미..우리..더미..좀 불러줘...

씬28 빵집 안(아침)

고창회, 준희와 마주 앉아 있다.
앞에 빵과 우유가 놓여 있다.

준희: (맛있게 우유를 마신다) 고소하다~ 집에서는 맨날 마시는데,
     여기 오니까 학생들이 많아서, 못 먹잖아요.
     별별 게 다 먹구 싶은 거 있죠?
고창회: ..(생각에 잠긴. 어떻게 딸애한테 말을 꺼내야 하나)
준희: 하긴, 선생님이 자선사업가두 아닌데. 애들,
      그냥 먹여 주구. 공부시키구 우유까지 바람 안 되겠죠?
      아빠가..선생님한테 기부 좀 하실래요?
고창회: ..
준희: 알믄 애들이 날 미워할라나? (창회를 보다) 아빠?
고창회: ..
준희: 아빠,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고창회: 어? 어..응.
준희: 정말 무슨..일 있으세요..?
고창회: ..(준희를 본다)
(최비서의 말) 아가씨한테 여쭤보시는 게 빠를 수도 있습니다.
고창회: 준희야, 아빠가..지금부터 하는 말 이상하게 듣지 마라.
       오해도..하면 안 된다.
준희: 네..(불안하게 본다)

씬29 커피숍 안(아침)

양자, 찬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다. 그 앞에,
계란 노른자와 파 송송 띄운 모닝커피가 놓여 있다.
더미, 둘래둘래 들어오다 양자를 본다.

더미: !
양자: ..(찬물 마시는)
더미: 엄마!!!!

양자, 더미를 본다. 더미, 환하게 웃으면서 양자에게 뛰어온다.
양자, 일어난다.

양자: ..
더미: 엄마! 언제 왔어!! 엄마, 어떻게 왔어!! 엄마! 엄마!!
     엄마!! 넘, 넘, 넘 보구 싶었어!!! (양자를 안고 폴짝폴짝
     뛰다, 보면 양자가 이상하다)..엄마?
양자: ..
더미: 어디 아파? 왜 그래? 내가 암말 없이 서울루 도망
     와서 화났어? 연경언니가..엄마 아픈 거 같다
     그랬는데..어디가 아픈 거야? (보고) 왜..그래...
양자: (와락- 끌어안는다) 더미야..

양자, 더미를 누구한테도 안 뺏기겠다는 듯 힘을 줘서 와락 끌어안는다.

양자: 내..딸..더미..엄마 딸..더미.. 아무두 안줘..
      누구한테두..안 뺏겨..

씬30 빵집 안(아침)

고창회, 차마 말을 못 떼고 고민한다.
아빠가 왜 저러실까? 긴장한 준희.

준희: 왜 말씀을 안 하세요..?
창회: ..
준희: (혹시, 엄마의 일을 아는 걸까?)..
      아빠, 불안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창회: (자신을 초조하게 바라보는 딸의 눈을 본다.
       차마, 말이 안 떨어지지만)...가끔은 너도 돌아가신..
      어머니가..옆에..계셨으면...좋겠다...그런..생각하지..?
준희: ! (누구를 말하는 걸까? 친엄마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준희의 엄마?) 아빠..그 날, 그러니까요.
       제가 집에 갔다 온 날, 혹시..아줌마한테..
       무슨 말씀..들으셨어요...?
창회: 그 날..무슨 일이 있었니?
준희: 그게요..(입을 달싹-거리는데)

(양자의 소리) 행여, 고사장한테 내 얘긴 입두 뻥긋 말어!
 그딴 짓 하믄 엄마, 진짜 꽁꽁, 숨어 버릴 꺼야!

창회: 준희야..?
준희: 아무 것도 아니에요. (마음 다잡고, 고창회를 본다)
     난, 어려서 엄마에 대한 기억이 그렇게 많진 않아.
     나보다는..아빠가 많이 보고 싶구, 그립구 하시겠죠.
     아빤, 엄마..마지막두..옆에서 지켜보시구 그랬으니까..
창회: ..
준희: 엄마..생각나서..오신 거예요? 엄마, 생신
      다가오니까, 그리우셔서?
창회: ..(더 이상 아무 말이 안나온다) 그래..
준희: (그제야 안심이 돼서 웃는) 난..또.
창회: (일어난다) 일어나자. 조선호텔서 조찬모임이 있어.
준희: 응. (일어난다)

준희, 가기 위해 고창회 쪽으로 걸어온다. 고창회,
준희를 바라본다. 고창회의 눈길에 멈춰 서서 아빠를
올려다본다. 고창회, 준희를 꼭 안아준다.

창회: 사랑한다..우리 준희..
준희: ..(아무래도 이상하다? 표정이 불안해지는)

씬31 앙상블, 의상실 앞

준희, 고창회에게 손 흔들고 학원 쪽으로 뛰어간다.
고창회 그 모습을 빵집 앞에서 지켜보며 서 있다. 그 옆에, 최비서.

최비서: 아가씨께 말씀 하셨습니까?
고창회: (자신에게 다짐하듯) 만에 하나..만에 하나..내..딸을 못 찾는다
       해도..준희한테..상처를 줄 수가 없어...친모가..살아있다
       해도..우리 준흰...내..딸일세..이 고창회의 딸이야..

씬32 을지 여인숙, 한 방

더미, 양자를 부축해서 들어온다.

더미: 이렇게 가까운 데 있었네. 길만 건너면 되는 데
      몰랐잖아. 고생했지? 나 찾느라구?
양자: ..
더미: (이불 펴면서, 빈 술병 치우고) 쫌 눠있어. 밥두 안먹구,
      술만 마시니깐 어지럽지. 있다 수업 끝나구,
      엄마랑 같이 살 방 찾아보자.
양자: ..가자..우리..
더미: 어딜? (장난처럼) 또~ 맹골도 가자구?
양자: 아니..그거보다 더 멀리..독일 많이 간대더라, 거기루 가자.
      우리 딸 옷 만드는 게 좋음, 엄마가 식모해서 거기서 공부
      시켜줄 꺼야. 더미야..엄마랑 가자. 지금 가자, 지금.
       (제 정신이 아닌)
더미: ..(어이가 없어 본다)
양자: 그래. 얼러 가, 짐 챙기자.
더미: 아우! 참! 왜 이래, 진짜! 걱정되게!
      왜 그렇게 엉뚱한 소리만 해?
양자: ...우리..더미..누가...뺏어가믄..어떡하지..
더미: (웃고) 미안해. 엄마한테 말 안하구, 서울 와서.
     이젠 됐잖아. 같이 살 껀데. 나중에 내가 시집가두 엄마,
      우리 옆집에서 살어~ 뺏어가긴 누가 뺏어 간다구.
양자: ..
더미: 쉬구 있어, 엄마. 밥두 사 먹구. 수업 끝나구 올께.

더미, 양자를 웃으며 보다 볼에 뽀뽀를 쪽- 해준다.

씬33 대한상사, 해외영업2부 회의실

문 잠겨 있고. 동영과 빈, 허진기에게 비행기 티켓과 여권을 받는다.
빈, 여권을 넘겨본다. 동영, 비행기 티켓을 확인한다.

허진기: 오래 기다렸다. 드디어 내일 오전 10시에 홍콩으로 출발한다.
동영/빈: ..
허진기: 계덕공항에 도착하면, 우리 측 요원이 한성관광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서 있을 거다. 그 친구와 접선하면,
       김중린의 홍콩 체류 일정과 유사시를 대비한 무기를
       제공해 줄 꺼다. 그때부터 현지 상황은 오직 너희들의
       판단으로 이뤄진다. 알겠나?
동영: 알겠습니다.
빈: (동시에) 예.

동영, 빈 자리에서 일어난다.

허진기: (동영과 악수한다) 그동안 고생했다. 살아서 다시보자.
동영: (악수한다)
허진기: (빈과 악수하고) 훈련기간이 너무 짧아서 걱정이다.
빈: (웃는) 걱정 마세요. 제가 원래 임기응변에 강한 놈이거든요.
허진기: 아무도 믿지 말고, 너희 둘만 믿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김동영, 장빈 너희 둘은 비익조다. 한 쪽 날개가 부러지면,
       같이 침몰한다. 부디 조심해라.

씬34 대한상사, 해외영업2부 사무실

허진기, 문 닫고 나간다. 동영과 빈, 각자의 자리로 가 티켓과
여권을 책상 위에 놓는다. 빈의 표정이 굳어 있다.

동영: 긴장되니?
빈: 글쎄 뭐. 아직 실감도 안 되고...
동영: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빈: 나 죽으면, 그 애가 울어 줄까.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해 줄까.
    뭐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아..참. 이거 괜히 센치해 지네.
동영: 그런 일은 없다. 내가 있는 한..널 그렇게 만들진 않아.
빈: 나두 알지~ 설마, 형이 나 죽이구, 혼자 살겠어~
    믿는 건 오직 형이지. (낄낄- 웃는다)

동영, 미소 짓다가 책상 서랍 하단에서 상자 하나를 꺼낸다.

빈: 뭐야? 홍콩 가서 말썽피지 말라고 주는 선물인가?
동영: 만약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이걸 대신 좀 전해줄래?
빈: 누구한테?
동영: 내가 사랑하는 사람.
빈: 흠..준흰 아닌 것 같고. 준희한테 상처 준 여자 말하는 건가?
동영:..부탁한다.
빈:아, 참 이거 너무 비장하네. 알았어. (상자를 자신의
    책상 서랍에 넣고) 그런 불상사가 생기면, 나중에
    형 묻어 놓고 와서 전해 줄께. 근데 누구한테 전해야 되나?
동영: 열어봐. 그 때가 혹시 오면. (빈을 보고) 나한테 부탁할 꺼 없어?
빈: 아, 싫어. 싫어. 형은 죽더라도 나는 기 쓰구, 살아올 꺼니까.
    나,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나 잊고, 딴 놈이랑 아들 딸 놓고
    사는 꼴 죽어도 못 봐.
동영: 하하- 녀석.
빈: 근데, 그럴 린 없지만 만약에 아주 재수 더러워서.
    내가 죽으면 나, 대신 꽉! 한 번 안아줘. 잘 살라구.
    나 같은 건 깡끄리 잊구, 잘 살라구.
동영: 누군지 알아야, 안아주지.
빈: 그렇지, 형한테 보여줘야지. 저녁에 뭉치자, 형. 준희 부르고,
동영: 그래야겠지.
빈: 저녁에 그 애 데려 갈께.
동영: 대체 어떤 아가씨길래, 니가 이러는지 정말 궁금하다. (웃는)
빈: 한 눈에 뻑 가지만 마.

씬35 앙상블, 실습실

원생들, 더미와 준희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본다.

연경: 아우~ 진짜. 준희씨랑 더미 넘 잘 만들지 않았니?
     숍에 전시해두 좋겠다~
상희: (벨이 좀 꼴린다) 우리 앙상블 수준 떨어져.
피에르: 에유..또 벨이 꼴렸구만. 오상희.
       인정할 건 깨끗하게 인정해.

더미, 들어온다. 연경, 더미를 보고 좋아한다.

연경: 자기 축하해~ 진짜, 출세 한다~ 맹골도 섬 샥시가.
더미: 헤헤~ 고마워. 언니.
연경: 근데, 있잖아. 더미야. 난 여기다 소품을 쫌 했음 좋겠더라.
     뭐, 물미역이랑 같은 천으루다. (자신이 하고 있는 긴 스카프를
     벗어 마네킹의 목에 건다) 스카플 한다던지. 쇼올을 두른다던지?
더미: 에..그런가? 듣고 보니깐 그런 것 같기도 하구.

(차연의 소리) 소품의 여왕답네. 하연경.

차연, 들어와서 보고 있다. 원생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인사하고.

차연: 넌, 참. 속두 좋다. 시작한지 얼마 되두 않는 애한테
      밀리면서, 질투두 안나?
연경: 음...전요. 이쁜 거 보믄요. 더 이쁘게 할 수 있을 텐데.
     소품 같은 거 달아주구 싶어요~ 질투가 왜 나요?
차연: 내가 알어! (머리를 꽁- 때리고) 원장님이 중대 발표
      하실 꺼야! 다들 강의실로 가봐!!

씬36 앙상블, 강의실

장봉실, 칠판 위에 서 있다. 더미와 준희를 비롯한 학생들, 앉아 있다.
차연, 뒤에서 마음 아픈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장봉실: 너희들 중 한명을 선발해, 내 파트너로 오사카 엑스포 패션쇼에
       데뷔 시킬 생각이다.

준희, 놀란다. 오사카 엑스포에 대한 개념도 없는 더미,
그냥 눈만 깜빡이며 듣고.
연경과 상희, ‘꺄아!!!’ 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두드리고 환호한다.

상희: 정말요? 원장님!
피에르: 언제 원장님이 정말 아닌 말씀 하시는 거 봤어?
장봉실: (미소) 너희들은 심사가 끝날 때까지,
       세 번, 작품을 제출해야 해.
준희: ..(눈을 빛내며 듣는)
장봉실: 우선 첫 번째 과제를 주겠어. 자유 작품 두개, 지정작품 하나.
       지정 작품은 겨울 정장이야.
준희: 디자인으로 제출하면 되나요?
장봉실: 예전 같으면 그랬겠지만.. (더미를 본다) 불공정할
       수도 있으니까, 완성품으로 받겠다.
준희: ..(더미를 본다)
더미: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노트에 자유 작품? 2개.
       지정작품 1개 메모한다)
장봉실: 기한은 삼주야. 다소 힘들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많다고 잘 하는 건 아니니까. 이상이야.

씬37 앙상블, 의상실 안
 
준희, 장봉실과 독대하고 있다.

장봉실: 그래, 정말 궁금한 게 뭐지?
준희: 미숙한 원생들에게, 국제무대 데뷔라는 기횔 주시는 이유요.
장봉실: ..(본다)
준희: 말씀..해 주시면 안 되는 건가요?
장봉실: 아니. 준희한테 자극이 된다면 말해 줄께.
       오사카 무대를 끝으로 난 은퇴해. 내 파트너로 뽑힌
       제자한테 앙상블을 물려 줄 꺼야.
준희: !
장봉실: 자극이 됐으면, 나가봐.
준희: 하나만 더요!
장봉실: 응.
준희: 선생님은 제 작품을 쓰레기라고 하셨어요.
      저한테도 공정한 기회가 있는 건가요?
장봉실: 태을방직에..뷰티에, 앙상블까지? 욕심이 많구나.
       좋아, 마음에 들어.
준희: 기회가..있는 건가요?
장봉실: (준희를 빤히 보다, 일어선다. 한 두어 걸음 서성이다)
       내가 분카 복장학원에서 공부할 때. 내 첫 작품을 보고..
       내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 장봉실양.
       자네 작품은 쓰레기야. 독창성이 없는 건 뭐든 무의미해.
준희: !
장봉실: 나가봐.
준희: (흥분하는) 고맙습니다!! 선생님!! 정말...고맙습니다.
      (눈물까지 글썽인다)

씬38 앙상블, 창고

연경과 상희, 더미 천을 정리하고 있다. 흐트러진 것들 말아서,
제 자리에 챙겨 넣는.

연경: 쎄쌍에~ 쎄쌍에~ 일본에서 데뷔라니. 아우..미치겠다.
      일본말두 못하는데. 무대인사 할라믄 지금부터 배워야 되나?
상희: 정신 차려. 기집애야. 너, 어디 아픈 거 아니니?
연경: (무시하고) 아..복잡해..머리가 터질 것 같아..나의 머릿속엔..온통..
상희: 너의 우상 빈씨와
연경: (무시하고) 나의 우상 빈씨와 오사카 엑스포밖에 없어!!
더미: 오사카 엑스포가 뭐예요?
연경: (어이가 없다. 표정 바꿔) 뭐?
상희: 어머, 어머. 더미씨..진짜...뭐랄까..넘, 심하다..
더미: (시무룩) 현수막 걸려 있어서..대충은 아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무대에요?
연경: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치고, 뒤로 넘어간다)

문 열리고, 피에르 얼굴을 들이민다.

피에르: 더미씨! 전화!!! 남자던데!!

씬39 남산 일각

더미와 동영, 데이트를 하고 있다.

(음악) 경쾌한 음악.

불량 아이스크림(놀이공원에 가면, 집게로 떠서 퍼주는)을 야금야금 먹는
더미, 아이스크림 받침과자만 조금 남았다. 동영, 웃으며 본다.
더미,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 모습 보는 동영, 푹- 웃는다.

동영: 더미가 엑스포에서 데뷔한다? 멋지겠는데?
      날 위해서, 열심히 해줄 꺼지?
더미: 아저씨가 원하면 꼭 그렇게 할께요.
동영: 응.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 내가 더미 옆에 있든 없든,
      언제나 씩씩하게 우리나라 최고의 디자이너가 됐음 좋겠다.
더미: 싫어. (장난친다) 아저씨가 내 옆에 있으면 최고가 돼볼께.
      근데, 없으면 최악이 될 꺼야.
동영: (자기도 모르게) 이런..녀석을 두고 내가 어떻게 가지..
더미: 아까부터 아저씨 진짜 이상해. 며칠 출장 간다면서,
      왜 이렇게 이상하게 굴어? 영영 못 만날 사람처럼..
      나, 또 가슴 뛰구, 불안하구 그렇단 말에요.
동영: 나 없는 동안에도 잘 하라구 하는 소리지.

씬40 남산 일각(휴식 공간)

더미: (보고, 민망한) 준희씨한테 옮았나봐. 준희씬,
      디자인할 때요. 음악 틀어 놓고, 춤추면서 해요. 디게 멋지거든요~
동영: (웃고) 준희하고 다정하게 지내라. 많이 외로운 아이야.
더미: 응. (웃고, 또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 모습 보던 동영, 더미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 과자를 뺏어
자신의 입에 넣고, 손을 잡아끌어 품에 안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더미: 어어. 왜 그래요.
동영: 그러고 싶어서.
더미: 아저씨, 진짜 이상하다. (주위 두리번거린다) 사람들 보는데.
동영: 볼 테면 보라고 해. 오늘은 누구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음악 소리, 커지고.
동영, 더미를 안고 따뜻하게 밝은 분위기로 춤을 춘다. (짧게)
한 순간, 동영 멈춘다. 더미 멈춘다.
 
동영: 사랑한다..더미야..
더미: (목이 메인다. 고개를 끄덕인다) 나두..아저씨보다..내가 더 많이..

사지로 떠나는 동영, 아무것도 모르는 더미, 뜨겁게 서로를 바라본다.

씬41 빈의 방(저녁)

장봉실, 빈에게 자신이 만든 여름옷을 선물하고 있다.

장봉실: 맘에 들면 좋겠다. 너한테..어울릴 것 같은데.
빈: 여자 옷만 잘 만드시는 줄 알았더니, 남성복
    도전해두 되겠어요, 여사님.
장봉실: 칭찬해줘서 고맙다.
빈: ..(잠시 망설이다) 나, 내일 홍콩으로 출장가요.
장봉실: ..(불안한. 또 밀수를)
빈: (그래도 엄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자기 식의 애정표현) 며칠 걸려요. 안 들어와두 걱정 말구요.
    잘 주무시구, 식사 잘 하세요.
장봉실: 또, 시작이니?
빈: (본다)
장봉실: 언제쯤이면 정신 차릴래! 장군님이 꺼내주신 게 얼마나
       됐다구! 너 대체 언제까지 이럴 꺼야!!
빈: 하...(기가 막힌다) 그렇지, 뭐. 여사님하고, 나 끝까지
    이 정도밖에 안 돼지.
장봉실: 빈아.
빈: (장봉실이 선물한 옷 말고, 다른 윗옷을 들고 나가면서)
    나, 혹시 출장 갔다 안 오면 거기서 짱 박혀 사는 줄 아세요.

빈, 나가버린다. 장봉실, 속상해서 그 모습을 본다.

씬42 앙상블, 앞(저녁)

행복한 더미, 돌아온다. 빈, 윌리스 지프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빈: 왔니?
더미: (보고. 어색한) 빈씨..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빈: 그러게. 한 집에 살면서도, 눈 뜨고 보는 건 오랜만이지?
    즐거워 보이는데? 데이트 하고 와?
더미: 응. (웃고)
빈: ...타.
더미: (보고) 나, 차선생님한테 말씀 드리구. 엄마한테 가야 해요.
빈: 알아. 연경누나한테 들었어. 엄마한텐 나중에 가고, 일단 타.
    내가 더 급해. (더미의 손목을 잡고 차로 끄는)
더미: (벗어나려고 하며) 나, 자기 감정만 소중하구. 남의 감정
     마구 휘두르고, 무시하는 사람 싫어. 이거 놔! 빈씨!
빈: 니가 싫어두, 오늘은 좀 참어. 오늘은 나한테 양보 좀
    해야겠어. (조수석에 태운다)

씬43 클럽, 포엠 안(저녁)

동영과 준희, 앉아 있다. (예전 빈의 생일 때, 셋이서 만났던 곳)

동영: 와 줘서 고맙다.
준희: 늘 하던 일이잖아. 당신, 외국 가기 전에 우리
      여기서 한잔씩 하는 거.
      한더미가 있다구. 그것까지 변할 필욘 없잖아?
동영: 그래. 여전히 준희답다. 안심된다.
준희: 물어봐도 대답 안 해줄 꺼지? 동영씨에, 빈이까지.
      어디로 출장 가는 건지? 왜 가는 건지?
동영: 응, 묻지 마. (문 쪽을 본다) 올 때가..됐는데..
준희: 오겠지.
동영: 빈이가, 오늘 안기고 싶은 아가씨 데려 오겠다고 했거든.
      궁금하네. 빨리 보고 싶은데.
준희: !! 뭐어..?

씬44 클럽 포엠 앞(저녁)

윌리스 지프에서 내리는 빈과 더미.

빈: 들어가자.
더미: 싫어. 엄마한테 가야 한다니까.
빈: (버럭) 엄마는 내일도 볼 수 있고, 모레도 볼 수 있잖아!
    (더미의 어깨를 잡고) 난..그래... 이번에 가면 오래 못 올지도 몰라.
더미: ..
빈: 니가 원한다면 영영 안 나타날 수도 있어!

빈, 더미의 등을 떠밀 듯 하고 클럽으로 들어간다.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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