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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70s] 27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5.07.24|조회수728 목록 댓글 0

[패션 70s] 27

 

 

 

 

 

 

 

 

 

 

 

 

 

 

씬1 고창회의 집, 거실

 더미, 고창회를 끌어안고 울고 있다.

더미: 아빠!! 아빠! 정신 차리세요!!
창회: ..
최비서: (그 모습을 보다, 황급히 테이블로 뛰어가서, 수화기를 든다)
더미: 아빠! 눈 좀 떠 봐요! 아빠!

 더미, 창회를 안고 울부짖는데, 이층에 선 준희, 멍한..시선으로, 무의식적으로 계단을..한 걸음, 한 걸음 내려온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병원과 통화하는 최비서.

최비서: 박사님! 저, 최비섭니다! (사이) 회장님이 자택 이층 계단에서 떨어지셨어요! (사이) 서두르세요!!!
창회: ..(눈을 뜬다)
더미: 아빠!!

 준희, 계단을 다 내려와 창회를 내려다본다.

창회: 준..희야..(두 손을 내민다)
더미: 아빠...(눈물을 흘리면서, 아빠의 한 손을 양손으로 꼭 부여잡는다) 돌아가시면 안 돼요....기운을 내세요...
준희: ..(손을 늘어트리고, 그냥 서 있다)
창회: (준희를 만져보려고 남은 한 손을 뻗으며..떨리는 목소리로) 가..엾..은..것... 아빠를..용서해라..

 고창회, 의식을 놓는다. 준희, 아무런 인지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고창회를
 내려다본다.
 고창회의 눈에 눈물이 고여 흐른다. 준희, 멍한 표정으로 본다.

씬2 고창회의 집, 마당

 앰뷸런스가 도착해 있다.
 고창회, 들것에 실려 급히 앰뷸런스로 옮겨지고 있다. 양박사, 직접 고창회를 체크하면서 앰뷸런스로 인도한다. 아버지의 들것을 따라가는 더미. 그 옆에 최비서.
 앰뷸런스 뒤에, 고창회의 차가 대기해 있다, 운전기사 시동 걸어 놓고 있는.
 고창회, 앰뷸런스로 들어갔다.

최비서: ..(더미에게, 고창회의 차를 가리키며) 타세요! 아가씨!
더미: 아빠랑 같이 가겠어요.
양박사: (더미를 의아하게 본다)
최비서: 회장님, 친 따님입니다. 아가씨하고 먼저 떠나세요!

씬3 달리는 앰뷸런스 안

 양박사, 고창회의 상태를 체크한다. 마음 졸이며 바라보는 더미.
 양박사, 고창회의 동공을 살펴보고, 심장 박동을 체크한다.

양박사: 무슨 약 같은 것 드셨습니까?
더미: ..모르겠어요...선생님. 전..아무 것도 몰라요..(아버지 손을 잡는)

씬4 병원, 수술실 앞

 이동침상에 실려 수술실로 급히 옮겨지는 고창회.
 양박사, 레지던트에게 지시하는.
 더미와 최비서, 같이 달려가는데.

창회: ...준희야..
더미: 아빠, 병원이야. 이제 괜찮아. 말씀은..나중에 하세요.
창회: 준..희..(더미의 손을 잡고 안 놔준다) 준..희야..
양박사: 회장님! (손놓으라는)
창회: (더 꼭 손을 움켜쥐고) 준..희야..아빠가..옆에 오래 있어주지..못해..미안하다
더미: 응. 아빠... 그러니까 지금부터 오래오래 있어줘...얼른 수술 받아야 해요..아빠..
창회: 강희를..언니를...부탁한다. 전부 다..아빠..잘못이다. (숨을 헐떡인다)
더미: 싫어!! 강희 언닌..아빠가 책임져! 아빠가, 사랑해주면 되잖아요.
창회: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더미를 본다)

 (인서트) 창회, 더미를 바라본다. 어린시절 딸의 모습이 흘러간다.

창회: (더미의 손을 꽉, 움켜진다) 충분히..안아주지두..못했는데.. 이제야..찾았는데.. 아빠를..용서해...사랑한다...우리 준희..

 고창회의 손이 툭, 떨어진다. 더미, ‘아빠!!! 아빠!!!’ 외치는 소리가
 병원 복도에 가득 울린다. (Dis)

씬5 김홍석의 집, 앞(저녁)

 동영, 외출하려는 길이다. 동영, 사무실에 가는 복장으로 집에서 나오는데,
 다리 위를 휘청휘청 걸어오는 준희가 보인다.

동영: (뛰어와 준희 앞에 선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준희: ..(무표정하게 본다)
동영: (준희를 바라보는데, 한눈에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 강희야?
준희: 배가...고파..
동영: (뜬금없는 말에 놀라서 본다)
준희: 배가...너무 고파. 나, 밥 좀 사줘요..

씬6 음식점(저녁)

(노래)  라디오에서 자그맣게 흘러나오는 당시 유행곡.

 준희의 앞에만, 국밥이 놓여 있다. 동영, 마주 앉아 준희를 보고 있다.
 준희, 예전의 강희처럼..게걸스럽게 국밥을 푹푹 퍼먹는다.

동영: (걱정스러운) 천천히 먹어..물도 마셔가면서 (컵을 준희 앞에 놓아주는)

(라디오, 소리)  일곱 시 뉴스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속봅니다.
주인: (라디오 볼륨을 높인다)
(라디오, 소리) 우리나라 섬유산업을 이끌던 태을방직 고창회 회장이, 오늘 저녁
 여섯시 삼십분 경 서울 대학병원에서 별세했습니다.

동영: !!
준희: (숟가락질이 허공에서 뚝, 멈춘다)

(라디오, 소리) 향년 57세인 고회장은 개성 출생으로 53년 태을방직 설립 후, 우리
 나라 수출 산업에 이바지했습니다. 태을방직은 이천만불 수출 대업을 달성,
 지난 67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한 바 있는 섬유업계 굴지의 기업입니다.

 라디오의 소리는 배경처럼 낮게, 깔리고

동영: 강희야!! 회장님이, (하는데)
준희: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내가..죽였어.
동영: (불길한) 그게...무슨 말이야...
준희: (눈물을 솟구치는) 내가... 아빠를...죽였어..

씬7 종로경찰서, 복도

 준희, 덜덜- 떨며 동영의 팔에 매달려 있다.
 자신을 구원해 줄..유일한 끈처럼, 동영의 팔을 아프도록 꽉, 쥐고 있다.
 그 뒤로 오경사를 비롯한 형사들이 따르는 기자 두어 명을 막아서고.
 경찰 간부, 준희를 동영에게서 떼어내려 하고.

동영: (떨고 있는 준희를 본다).. 괜찮아..내가 여기 있을께..아무 데도 안가고, 꼭..
 지키고 있을 테니까 두려워하지 마.. 그냥..사실 그대로만 말해..
준희: ..
동영: (준희의 손을 한 손으로 잡아 준다)
준희: ..(그제야 체념하고 천천히 손을 푼다)

 준희, 마지막이라는 느낌으로 동영의 팔에서 손을 떼지 못하다가 결국 떨어
 지고...문으로 간다. 문 앞에서 돌아본다.
 동영, 눈시울이 붉어진 채 그런 준희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다. (Dis)

씬8 장봉실의 방

 장봉실, 문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문 열리고, 검은 옷차림의 방육성과 차연,
 들어온다.

방육성: 여사님..차, 준비 됐습니다.
장봉실: ..(고개 끄덕이고, 가방을 든다)
차연: 선생님..신문에 난 게 정말 사실일까요? 더미가 고회장님 친 딸, 옛날에 우리 트럭에 탔던 애구, 준희가..태을방직 뺏기기 싫어서, 고회장님을 죽였다는 게 사실일까요?
방육성: 차연아!
장봉실: 차연인..그 기사를 믿어?
차연: 믿고 싶진 않지만..준희, 독한 데두 있고, 신문서 거짓말 하진 않잖아요..

 장봉실, 자신의 방에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준희의 작품을 본다.

장봉실: 예술가는 그 작품을 보면 알아. 준흰, 프라이드가 강하지..탐욕스러운 애가 아냐.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절망에 빠졌을 때, 자신을 파괴하긴 해도, 타인을 해치진 않아.

씬9 고창회의 집, 마당(저녁)

 장례가 준비되어 있다. 집 앞에, 커다란 조문 화환들이 즐비하다.
 ‘謹弔, 國防部 長官 金洪錫’을 비롯해 상공회의소, 기타 기업의 총수들,
 각계 인사들의 화환들이 놓여 있다.
 양쪽으로 흰 차일이 쳐져 있고. 차를 마시는 사람들, 조문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호상이 아니라, 음식접대는 않는)
 태을방직 남?여 직원들, 검은 양복, 검은 원피스를 입고 조문객들을 접대하고 있다.
 김홍석의 차가, 들어온다. 비서, 문 열어주면 검은 양복차림의 김홍석, 내린다.

씬10 고창회의 집, 거실(저녁)

 소파와 집기들을 모두 들어내고 빈소를 꾸며 놓았다.
 관은 보이지 않게, 병풍으로 가려져 있고, 흰 국화로 뒤덮인 단에 고창회의 영정과 향로가 놓여 있다.
 최비서, 거실에 들어온 조문객들의 사인을 방명록에 받고, 빈소로 안내한다.
 대자리 위, 상주석에 달랑 소복차림의 더미만이 있다.
 장봉실과 방육성, 차연, 향을 피우고, 국화를 헌화한다.

장봉실: ..(고창회의 영정을 보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는다)
차연/방육성: (침통한)

 장봉실, 맞절은 하지 않고, 서양식으로 인사하고 더미를 바라본다.

방육성: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더미: 이렇게..와주셔서..고맙습니다..
차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정말 모르겠다만..어쨌든..정말 안 됐다..더미야..
더미: ..
장봉실: ..(뭐라 할 말이 없는) 너라도 의연해야 한다..회장님을 생각해서, 준희를 생각해서..네가..정신을 차려야해.
더미: ...예...선생님..

 장봉실, 더미의 손을 살짝 잡아주고 돌아서 나간다.
 기다리고 있던 김홍석과 장봉실, 목례하고 장봉실 일행, 나간다.
 김홍석, 고창회의 영정 앞에 두 번 절하고, 더미와 맞절 한다.

김홍석: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더미: 이렇게 아버질 찾아와주셔서..고맙습니다.
김홍석: 뭐라 위로할 말이 없구나...이런 널..남기시고..안쓰러워 어찌 눈을 감으셨는지...
더미: ...(눈물을 쏟는)
김홍석: 이럴 때...동영이라도, 네 옆을 지켜줘야 하는데..
더미: ...

 더미, 김홍석에게 안긴다. 김홍석, 더미를 안고 어깨를 토닥여 준다.

씬11 종로경찰서, 한 방(밤)

 동영, 초췌한 얼굴로 앉아 있다.
 문 열리고, 검은 양복차림의 빈 들어온다.
 동영, 올려다본다.

빈: 강희는..?
동영: ..조사 받고 있다.
빈: 여전히 자신이 회장님을 죽였다고 우기고 있어?
동영: 그래. 변호사 접견조차..거부하고 있어.
빈: ..(착잡한) 어제, 회장님..부검 끝나고..가회동으로 모셔왔어.
동영: 들었다..오경사한테.
빈: 회장님한테..가봐야지..준희가 형을 많이 기다리고 있어.
동영: 회장님은 나중에.. 따로 찾아뵐께..
빈: (발끈하는) 준희 생각은 안하는 거야! 그래, 강희 딱하지! 얼마나 무섭고 힘들겠어! 그렇다고 잠시도 준희 옆에 있어줄 수 없는 건가!
동영: ..지금은, 강희를 떠날 수가 없다.. 여기서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강희한테..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다면..그렇게 해야지.
빈: (화난 얼굴로 동영을 본다)
 
씬12 고창회의 집, 마당(새벽)

 고창회의 운구 행렬이 시작된다. 장례차에 고창회의 관이 실린다.
 상복차림의 최비서와 직원들, 관을 들고 걸어가는.
 더미, 관 뒤에서 고창회의 영정사진을 들고 따라간다. 그 옆에, 빈 묵묵히
 더미와 함께 걸어간다.
 
씬13 임진강(오후)

 더미, 아버지의 유골을 강에 뿌린다.
 더미의 옆을 빈이 지키고 있고, 그 뒤로 최비서, 오변호사를 비롯한 이사급의 회사 임원들이 지키고 있다.

더미: (의연하게) 아빠, 엄마한테 갈 수 있어서 행복하세요?
빈: ..
더미: 이렇게....빨리 아빨, 엄마한테 보내드리게 될 줄은 몰랐어요.
빈: ..
더미: (한줌 뿌리고) 아빠랑..나, 헤어져 있던 날들이, 이십년이니까...앞으루, 이십년은 더 같이 있어 주셔야 하잖아요.
빈: ..
더미: 아빠하고 하고 싶은 게..너무 많았어요. 하루 쯤..어린시절로 돌아가, 아빠 손잡고, 솜사탕 사들고 창경원도 가고 싶었구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고) 아빠한테 더 안기구 싶었고..아빠한테..옷도 지어 드리고 싶었는데..
빈: ..
더미: 아빠. 우리 다시 만나려면..얼마나 또 긴 세월이 흘러야 하는 거예요..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아빠...아빠..
빈: 준희야...아프고..고통스럽겠지만, 나중에 울자. 회장님이 편한 마음으로, 어머니께 가시도록..해드려.
더미: (눈물을 훔친다)

씬14 동 장소(밤)

 비가 내린다.
 더미, 물가에 하염없이 앉아 있다. 빈, 더미에게 한 팔로,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
 (인서트) 더미,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전을 생각한다.
창회: 강희를...언니를...부탁한다. 전부 다..아빠..잘못이다.

빈: 이제 그만 가야지...
더미: 아빠한테..물어볼 게 있어서..대답을 듣기 전엔...나 여기서 못 일어나..
빈: (본다)
더미: 그 날..언니하고 아빠, 무슨 일이 있었는지..진실을 알고 싶어.
빈: 그래.. 회장님이 뭐라 대답하시든?
더미: (애매하게 웃는) 언니를..사랑하신데..강희언니를 나한테, 부탁하신데..
빈: ..
더미: (빈을 보고 쓸쓸히 미소 짓는다)

씬15 종로경찰서, 한 방

 더미, 들어온다. 의자에 깊이 몸을 묻고 고개 젖힌 자세로 쉬고 있던 동영.
 문 열리는 소리에 돌아본다. 동영, 더미를 보다 천천히 일어난다.
 두 사람,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더미의 시선에, 노여움이 담긴다.

더미: (울컥하는, 노엽다) 한 번은 날 만나러 와줄 꺼라 생각했어. 병원에서도..나 혼자 아빠를 지키는 빈소에서도..오늘도.. 오빠가 와주겠지..내 옆을 지켜주겠지..기다렸어.
동영: ..
더미: 오빠한테는 강희 언니의 아픔만 보이는 거야?
동영: ...
더미: 나도 아파. 심장이 쪼개질 것 같아. 이십년 만에 만난 아빠를 단 몇 일만에 잃어버렸어. (파르르 화를 내는) 내 기억을 돌려주려 애쓰지 말지! 아빠를 찾아주지 말지! 맹골도에 다시 오지 말지!
동영: ..
더미: 난 순교자처럼 죽으려고 하는 언니, 용서할 수가 없어. 이해할 수도 없어. 언니가 아빠를 죽였다고 자백했다는 건...도망치려는 핑계일 뿐이야.
동영: 차마...너한테..갈 수 없었다.. 회장님을..볼 면목이 없었어.
더미: (본다)
동영: 강희 어머님을 찾아가지 말았어야 했는데..너에 대한 내, 마음이..강희를 베고, 이제, 준희 널 베고.. 회장님까지..돌아가시게 했구나..그 생각을 하면...차마..네 얼굴을 볼 수가 없어...
더미: ..
동영: 미안하다..준희야...하지만...지금은, 강희를...떠날 수가 없다...
더미: 그래..언니를 지켜줘...
동영: 준희야..
더미: 아빤...언니를..나한테 부탁했지만..나, 지금은 자신이 없어. 그러니, 언니 옆은...오빠가 지켜야겠지.. 언니를...구해줘.

 더미, 돌아선다. 동영, ‘준희야!’ 하면서 잡는다. 더미, 돌아보는데..서러움과
 슬픔이 가득한 시선으로 본다. 동영, 힘없이 손을 놓는다.
 더미, 돌아서서...밖으로 나간다.

씬16 재판정 몽타주

(자막) 그로부터 두 달 뒤

 방청석에 더미와 동영, 빈이 앉아 있다. 더미, 상복은 아니지만..머리에 흰
 핀을 꽂고 있다. (가을 옷을 입은 방청객들)
 수인복을 입은 준희, 피고인석, 변호사(오변호사 아님) 옆에 앉아 있다.
 사건 증인들, 진술을 하는데. 증인석에 양박사, 오변호사, 최비서 차례로 증언한다.

양박사: 그 날 밤, 고준희양이 세코날을 처방해 달라고 찾아왔습니다. 고회장님의 부검결과 몸속에서 치명적인 양의 세코날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Dis)
오변호사: 돌아가시기 전 날 회장님께서 고준희양을 원래 이름인 강희라는 이름으로, 입적해달라고 요청 하셨습니다. 그 경우, 한강희씨는 회장님의 유산 상속을 받을 수 없습니다. (Dis)
최비서: 자택 거실에 막 도착했을 때, 이층에서 회장님과 한강희씨가 격앙된 모습으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준희를 차가운 눈으로 보고) 한강희씨가 회장님을 밀어 버렸습니다.

 방청석에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준희, 창백하지만.. 담담한 얼굴로 앉아 있다. 검사, 준희 앞으로 온다.

검사: 편의 상 호적상의 이름인 고준희로 부르겠습니다. 고준희씨.
준희: ..네.
검사: 피고 고준희씨가 양문호 박사에게 세코날을 달라고 했을 때, 이미 아버지를 살해할 범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죠?
준희: ..(흔들리는 표정으로, 고개 돌려 더미를 본다)
더미: ..(눈물이 고인 눈으로, 고개를 젓는다)
준희: (죽기로 결심했다, 검사를 보고. 냉정한 목소리로) 네.
더미/동영: !

 검사를 비롯한 판사, 변호사들 놀라고. 방청객들 술렁인다.

검사: 범행 목적이 유산 상속이었습니까?
준희: 네. 제가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고회장님을 고아원에서 만났을 때..준희가 죽었다고 거짓말 하고 어머니와 함께, 준희를 유기했습니다.
더미: (터져 나오는 비명을 손으로 막는다)
동영: (차마, 준희를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는다)
준희: 아버지가 준희를 다시 찾는 바람에, 제가 태을방직을 상속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습니다. 무엇보다..제 친어머니를 죽게 만든, 그 복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더미: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아니에요!!!
판사: 조용하세요!
더미: (눈물이 쏟아지는) 언니가.. 한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어머니가..아버지가..돌아가신 게..언니 탓이라 생각하고..죽기로 결심한 겁니다..판사님..제발..진실을 봐주세요.. 언니의 말은 거짓입니다..
판사: 앉으세요! 정숙하지 않으면, 퇴장시키겠어요!!

 방청객들, 술렁술렁 거리고...준희, 얼음 같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

씬17 재판정 안(다른 날, 낮)
 
 판결일이다.
 더미와 동영, 빈을 비롯한 방청객들이 앉은 자리도, 의상도 달라졌다.
 
판사: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피고 고준희씨 일어나 주세요.

 준희, 일어난다.

판사: 피고 고준희는, 비록 양녀였으나 누구보다 딸에게 최선을 다했던 고, 고창회씨의 깊은 사랑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모녀가 공모해, 친딸을 유기했었다는 혐의가 인정되고..

 더미와 준희, 동영, 빈의 표정 위로 판사의 말이 이어진다.

판사: 유산 상속을 목적으로 한 계획범죄 또한 인정됩니다. 비록 친어머니의 자살이라는 피고의 정신적인 충격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우발적 살인이 아닌 치밀하게 사전 계획된 범죄라는 점. 수면제만이 아니라, 계단에서 밀어버리는 범행의 잔혹성으로 볼 때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습니다. 비록 피고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지 않고, 본 재판정에서 그 죄를 순순히 시인했다 하나, 법률 상 친부에 해당하는 피해자를 계획 살해한 데는 법정최고형이 마땅할 것입니다.
더미: ..
판사: 이에 본 법정은, 형법 제 250조 2항,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조문에 의거해, 검사의 구형과 같이 피고 고준희에게 사형을 언도합니다.
준희: ..(올 것이 왔구나..담담하게 서 있다)

 판사, 판결봉을 두드린다.

씬18 재판정 앞

 더미, 비틀거리며 걸어 나온다. 동영과 빈, 따라 나온다.

빈: 준희야.. (잡지만)
더미: ...(빈의 손을 뿌리치고, 휘청휘청..걸어간다)
빈: 준희야! (따라가려면)
동영: (빈을 잡는다) 그냥..둬.. 빈아, 넌...준희와 강희를..잘 모르겠지만...저, 두 사람 사이에는...우리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애정의 세월이 있어... 준흴..잠시 혼자 두자...
빈: 이런 빌어먹을 일이 생기다니...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동영: 자신의 목숨마저..놓아버리려 하는 강희를 우리 곁으로 데려와야지..그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야.

씬19 동영의 집무실

 동영, 혼자 쓰는 비서관실이다. 책상에, ‘대북담당 비서관 김동영’ 문진이 놓여 있다. 김홍석, 들어온다. 기다리고 있던 동영, 아버지를 본다.

김홍석: 법무부에서 오는 길이다. 강희 판결얘기는 들었다.
동영: 살려주세요, 아버지..
김홍석: ..
동영: 각하께..무릎 꿇고 탄원이라도 하겠습니다. 사면은 바라지도 않습니다..그저 평생, 갇혀 있어도..살려만 주세요...
김홍석: 동영아..
동영; 강희를..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법은 자살하고 싶은..사람을 죽게 하는 장치는 아니잖습니까...

 동영, 소파에 무너지듯 내려앉는다.

김홍석: 강희가..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게..배려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동영: ...
김홍석: 모두가 우리 같이 생각할 순 없다. 고의는 아니었으나..강희로 인해 고회장이 죽은 것 또한 사실이니까.
동영: 강희가..가엾어서..강희도..준희도..볼 자신이 없어요...저대로 강희가 잘못된다면..견딜 자신이 없습니다...

씬20 준희의 독방

 준희, 사형을 언도받은 죄수들이 그렇듯이 손에 수갑을 차고 혁수정을 걸고..창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본다.

씬21 동춘섬유공업사, 공장 앞

 더미, 힘없이 비틀비틀 걸어오고 있다.
 동춘섬유 공장 앞에 서서 ‘동춘 섬유 공업사(東春纖維工業社)’라는 로고를 바라보다, 벽에 등을 기대는 더미. 박사장, 떡 시루를 이고 오다 본다.

박사장: 와 이라고 있노?
더미: ..(돌아본다)
박사장: 오늘, 편직기계 들왔다 아이가. 고사는 아니래도, 공장식구들한테, 떡이라도 한 쪼가리씩 멕이야 안 되겠나.
더미: ..
박사장: (떡시루를 바닥에 놓고) 와? 재판이 잘 안됐나? 그 언니라는 사람..뭐시 엄청시리 잘 못됐나?
더미: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생각해요. 이 모든 게 꿈이었음 좋겠다. 꿈이겠지.. 제 앞에는 여전히 아빠가 웃고 계시고..언니하고 난, 같이 옷을 만들고 있겠지..
박사장: (혀 차고) 우예 됐든, 그 언니 땜에 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데 쓰다, 달다 원망한 번 몬해 보고..이기 뭔 일이고..
더미: 이런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다면..그냥, 맹골도에서, 엄마하고 살았을 텐데.. 다, 저 때문 같아서 (눈물이 왈칵 솟는)
박사장: 더미야..일이 힘인 거라..내도, 남편 먼저 보내 보고, 자식도 먼저 보내보고..고마 죽어야지 했어도..살다보이 살아지더라.
더미: ...
박사장: 지금은 일에다 니 신경 다 쏟아 부라. 안 그럼 니 참말로 미치겠다. 정신없이 일하다 고마 쓰러지 자고..그렇게 세월 지나가믄..차차로 잊어진다. 드가자.

씬22 동춘섬유공업사, 공장 안

 벽면에 ‘나는 나의 제품에 혼을 싣는다’ 붓글씨 액자가 걸려있고
 동춘섬유공업사 (東春纖維工業社) 로고가 붙어 있다.
 편직기계와 미싱 서너 대가 놓여 있다. 공장직원 남?여 모여 있고.
 박사장, 편직기계 앞에 떡시루를 내려놓고, 축원을 하고 있다.
 더미, 그 모습을 보고 있다.

박사장: 모쪼록 사고 없고, 고장 없게 해주시고..동춘 섬유 오늘은 이래, 작게 시작해도..불 같이 일어나고, 물같이 불어나서. 곰방 섬유업계 일등 되게 해주시고..(더미를 보다) 우리..더미, 일에 맘 붙여...아픈 맘, 쓰린 맘..모두 잊게 해주십시오..
더미: ..
박사장: 아나, (막걸리를 한 사발 준다) 한 잔 먹구..식구들한테도 한 잔씩 줘라..아픈 건 난중에 니 혼자 삭히고..니가 사장인데, 직원 앞에서는 힘든 모습 보이지 마라.
더미: (한 잔 마시고)

 아무 것도 모르는 공장직원들에게 막걸리를 따라준다. ‘사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잘 부탁드려요(더미)’ 이야기 한다..
 더미, 직원들이 막걸리는 마시는데, 눈물이 핑- 돌아 시선을 멀리 돌린다.

씬23 준희의 독방

 교도관, 들어와 준희에게 동영의 면회를 알린다.

교도관: 257번, 면회!
준희: ..(본다)
교도관: 특별접견실에서 김동영 비서관님이 기다리신다..
준희: 만나지 않겠어요..

씬24 서대문형무소 내, 특별접견실

 교도관, 동영에게 보고 한다. 더미,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교도관: 면회를 거절한답니다. 비서관님..
더미: (동영을 본다) 오빠..
동영: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오지 않겠다면, 제가..가겠다고 전해주십시오.

씬25 서대문 형무소, 복도

 준희, 교도관과 함께 걸어온다.

씬26 서대문 형무소 내, 특별접견실

 더미와 동영, 준희를 기다리고 있다. 문 열리고, 준희 손에 수갑을 찬 채..
 혁수정을 하고 교도관을 따라 들어온다. 준희, 더미를 보고 놀란다.

더미: !
동영: ! (그 모습에 충격 받는다, 교도관에게) 풀어주십시오!
교도관: 자해할 우려가 있어서..형무소 규정입니다..
동영: 이미 상부 지시 받았을 텐데요! 당장 푸세요! 내가 책임집니다!

 교도관, 잠시 망설이다 어쩔 수 없다. 준희의 혁수정과 수갑을 푼다.
 준희, 손목이 아픈 듯..빨갛게 된 손목을 문지른다.

더미: 언니.
준희: ..(본다)
더미: 아직, 늦지 않았어...우리, 항소하자.
준희: ..(동영을 원망스레 쳐다본다) 준흰, 왜 데려온 거예요? 이런 내 모습, 보여주고 싶었나요?
동영: 항소장, 항소이유서 다 준비됐다. 준희가 설득해서, 최비서님도 항소 재판에서는 다시 증언하시기로 했다.
준희: ..(더미를 보다, 동영에게) 나, 준희하고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자리..좀 비켜줘요..

씬27 서대문 형무소 내, 복도

 동영, 특별접견실에서 나와 복도에 등을 기댄다.

동영: ...

 동영, 괴로운 듯 손바닥으로 이마를 가리고..

씬28 서대문 형무소, 특별접견실

 더미와 준희, 의자에 앉아 있다.

더미: 마지막 기회야..언니, 변호사까지 해임해 버리구, 내일이면 항소제기 기한이 끝나. 항소만 해줘.
준희: 항소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운 좋으면 십오 년 쯤..선고 받고.. 여기서, 네
 가 넣어주는 사식 먹고 지내다, 나가는 건가?
더미: (충격 받는)
준희: 너는 죽는 게 두려운지 모르겠지만.. 난, 내가 살아날까봐..무서워. 아빠가 그렇게 되셨을 때... 난, 이미 죽은 거야..
더미: 그래서 끝까지 이렇게...도망치겠다구?
준희: (본다)
더미: 사람은 누구나 다, 죽어. 마음먹기 따라선 어쩌면 그건 그닥 두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어. 그것보다 더..걱정되는 건...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모습으로 죽는가야..
준희: ..
더미: 언닌, 정말 아빠를, 동영 오빠를...사랑하기는 했을까...
준희: 그래...내가 할 수 있는...모든 걸..다 걸고..사랑했어.
더미: 사랑했으면 살아! 죽는 순간까지 언닐 걱정한 아빠를 생각해서 살아! 사는 게, 혹 죽는 것보다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워도, 도망치지 마! 엄마한테 아빠한테 죄짓지 마. 동영오빠 가슴에, 내 가슴에, 언니를 사랑한 모든 사람들 가슴에 비수를 꽂지 마!
준희: 날...그냥 보내줘... 이미, 난...이 사회에서..죽은 사람이야. 살아 있다 한들..
 산 목숨은..아닌 거야..
더미: 외국에 가자.. 내가 기다릴께.. 언니가 나오면, 아빠도, 언니도 모르는 데 가서, 같이 살아.
준희: ..너무 늦었어..(일어난다)
더미: (일어난다) 언니..
준희: 다신..찾아오지 마.. 널, 보는 게 나한텐..너무 힘들어..

 준희, 교도관에게 ‘그만, 내 방에 가겠어요.’ 하면서 돌아선다.

더미: 안되는 거잖아..언니만 그렇게..가는 건...안되는 거잖아.
준희: ..(돌아본다)
더미: ...제발..부탁할께...(눈물이 고인다) 이렇게...떠나지 마..
준희: (더미의 손을 잡아준다) 엄마가 말하는 다음 생이 있다면...우리 그 땐 친 자매로 태어나서.. 엄마, 아빠 모시고...다정하게 살자.. 나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구..넌, 니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
더미: 언니...
준희: 미안하다..준희야..

 준희, 더미의 손을 놓고 돌아서서 문 쪽으로 간다.
 더미, ‘언니!!!’ 외치다 준희가 교도관과 함께 문을 나가면, 소파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씬29 고창회의 집, 거실(다른 날, 밤)

 더미, 빈과 함께 최비서, 오변호사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다.

변호사: 항소장이..접수되지 않았습니다.
더미: ..(각오하고 있었다)
빈: 다른 사람이 대신 항소할 수 없는 겁니까!
변호사: 가족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혹시, 가족이 있어, 항소를 한다 해도..한강희씨가..살 의지가 없는데...판결이 뒤집혀질 여지가 없지요.
더미: ..
최비서: 오늘은..아가씨 거취문제를 의논드리러 왔습니다.. 회장님의 뜻도 그렇고..유언장도 그렇고..아가씨, 원래 호적을 살려야지요..태을방직도 언제까지 이대로 둘 수 없습니다.
더미: 저는 고준희가 될 수 없어요.
최비서: 저도 그렇고, 오비서님, 여기 장빈씨도 있고..증인이 있기 때문에, 아가씨가 원 호적을 되찾는 데는..문제가 없습니다.
더미: 고준희라는 이름은...세상에서, 오직 단 한 사람만이..쓸 수가 있어요...강희언니만이..아버지도 이해하실 거예요. 전...한더밉니다. 태을방직은 전문 경영인이 맡아주세요. (일어난다) 전, 그만..가보겠습니다.

씬30 서대문형무소, 앞

 더미와 빈, 면회를 온다.

씬31 서대문형무소 내, 특별접견실

 더미와 빈, 교도관을 조르고 있다.

빈: 꼭...강희를, (하다가) 준희를 한 번은 봐야겠습니다.
교도관: 면회 하지 않겠다는 사람을..억지로 데려올 순 없습니다.
더미: ..(테이블에 둔, 상자를 준다) 이걸 언니한테 전해주시면 안될까요? 언니한테..편지를 쓸 테니까 같이 좀 전해주세요.
교도관: (열어본다, 가위와 실패에 꽂힌 바늘을 꺼낸다) 이거는 반입할 수 없습니다.
 
씬32 서대문형무소, 준희의 독방

 수갑을 푼, 자유로운 준희. 더미가 보낸 편지를 읽는다.
 그 옆에, 스케치 노트, 색펜, 옷감이 한 벌, 실이 놓여 있다.
 (인서트) 더미의 편지.

(더미의 소리) 언니.. 나, 언니한테 부탁이 있어.. 나한테 옷을 한 벌 만들어 줘요..
 예전처럼..언니가 만들어 준 옷을 입고 싶어. 가위하고..바늘을..넣을 수가 없네.. 그래두, 언니..내..옷을 만들어 줘..

준희: ..(더미가 보낸 물건들을 본다)

 문 열리고, 교도관 식사를 날라다 준다.

준희: 교도관님...저, 부탁이 있어요.
교도관: (본다)
준희: 동생한테..마지막으로 옷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가위하고, 바늘을..좀 주세요.
교도관: ..
준희: 걱정 말아요..자해 같은 거 안 해요..제가 자해하려구 마음먹었다면..벌써 어떤 방법으로든 끝냈어요.

씬33 동춘 외부(다른 날, 새벽)

 26부에 나왔던 것과는 다른..서울총판 개념. 간판도 ‘인디오스’(한글, 영어)로 쓰고.. 간판하단에 ‘동춘 섬유 공업사’적혀 있다.
 택시, 멈추고 빈..내린다.

씬34 인디오스 안(새벽)

 앙상블 수준은 아니라도, 제법 깔끔하고 규모 있게(28부에 내부만 조금 바꿔서 서울 총판대리점이 된다)
 동춘섬유공업사에서 만든..옷들이 디스플레이 되어있다.
 역시 벽면에 ‘나는 나의 제품에 혼을 싣는다’ 붓글씨 액자가 걸려있다.
 테이블 위에, 더미가 직접 손바느질로 만들던 솜 넣은 누비 수인복이 있다.
 더미, 바느질 하는.
 문 열리고, 빈 들어온다. 빈, 그 모습을 가만 보다..

빈: 준희 꺼니..?
더미: 새벽으루, 밤으룬 이제 쌀쌀해서..얼른..언니한테 넣어줘야지...거긴, 밖보다 더 춥잖아.
빈: ..힘들게 왜..손으루..
더미: 한 땀, 한 땀 뜨다보면....희망이 생겨..언니가 다시 우리 곁에 올 꺼라는..
빈: ..(딱하게 보다) 차 대기시켜 놨다.
더미: (놓고, 일어난다) 고마워요..오빠, 아니었으면..나, 어떻게 견뎠을까 싶어..
빈: 형은...아직, 한 번도 안온 거니?
더미: ...(고개 끄덕이고) 지금은..언니가 더 오빠를..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 걸꺼야. 날 잊은 건 아니라는 걸 알아..

씬35 사찰, 대웅전(아침)

 한 쪽에 고창회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더미..열심히 절을 하며 기도한다.
 사찰 밖, 한 쪽에 서서 더미를 보고 있는 빈.

씬36 동영의 집무실(오후)

 동영, 서류를 들고 나가려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김홍석, 들어온다.

김홍석: 동영아!
동영: 예.
김홍석: 강희가...(차마 말을 못 잇는다)
동영: (본다) 강희한테..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김홍석: 강희가...
동영: ! (들고 있던 대북관계 서류를 떨어트린다) 설마...형 집행일이 정해진 건 아니죠!
김홍석: ...내일...이다.
동영: ! 벌써, 형 집행이라뇨! 언도 받고도, 몇 년씩 집행이 안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럴 순 없습니다!
김홍석: ...워낙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라...서둘러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구나. 법무부에서도 고심 끝에 결정한 일이다.
동영: 아버지...

 김홍석, 그런 동영을 안고...어깨를 토닥여 준다.

씬37 서대문형무소, 마당(저녁)

 동영, 준희를 기다리고 있다. 준희, 교도관과 함께 나온다.

준희: 난 또. 준희 옷도 다 안 끝났는데..벌써, 때가 된 줄 알구 놀랐어요..
동영: (준희를 보며, 애써 미소 짓는데, 벌써 눈시울이 붉어진다) ..

씬38 서대문형무소 내, 교도관들 숙직실(저녁)
 
 동영, 음식을 만들어 준희에게 준다. 토스트, 스크램블, 커피를 차려내는.

동영: 미안..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이 이거 밖에 없어서.
준희: 비서관이 대단한가 봐요. 아님, 장군님..배련가? 사형수를 교도관들 숙소까지 데려오고.
동영: 더 할 수만 있다면..단 하루라도 집에 데려가고 싶었는데..안 되는구나...
준희: (웃으며, 포크를 든다) 맛있겠다. 참..이상하죠..죽는 날을 기다리면서도..먹는 거에 집중하게 돼. 오늘 반찬은 뭘까? 준희가 넣어준, 사식은 뭘까?
동영: 강희야..(눈물을 흘린다)
준희: 내 계란에 눈물 떨어져..이대로두..짜요.

 동영, 옆으로 가서 준희를 꽉, 끌어안는다.
 드디어..내일이면, 준희가 세상과 작별하는구나..
 동영, 그 슬픔을 참을 수가 없다.
 동영의 목에서 비명 같은 울음이 터져 나온다.

준희: ..왜...이래요..동영씨..?
동영: ..
준희: 혹시..나..그런 건가요..(불안한)
동영: (준희를 놓는다) 아니야..너한테..왜..잘해 주지 못했을까..해줄 수 있을 때..마음껏..널 행복하게 해줘야 했는데..그게..안타까워서..
준희: ...

씬39 사찰, 대웅전(밤)

 더미, 온몸이 땀에 흥건해서 절을 하고 있다. 빈, 그 옆에서 더미를 말리고 있다.

빈: (잡고) 이만하면 됐다..그만해.
더미: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내가 못 견뎌서 그래...절..한 번에 언니가 한 시간만이라도..아니, 일분만이라도 더 오래..우리 곁에 머물 수 있다면...나,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어.
빈: ..
더미: 이렇게 신께 의지해서라도..난, 언니를...하루라도 더 붙들고 싶어...
빈: 같이 하자. 넌..조금 쉬어..내가 할께.
더미: ...
빈: 나한테도...강희는..소중하니까..

 빈과 더미, 함께 절을 한다.
 빈, 한 손으로 절하기가 힘겹다.

씬40 서대문형무소 내, 교도관들 숙직실(밤)

 밤이 이슥하다. 창으로 달빛이 스며든다.
 부분조명으로 바꿔 놓고 나란히 앉아 있는 동영과 준희.
 준희, 창을 바라보고 있다.
 
동영: 무슨..생각해.
준희: 학교 때 배운..시조 생각.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 베혀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너었다가, 어룬님 오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웃고) 이 밤이 영원히 세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영: ..
준희: 나 행복해요.. 당신을 만나서..그 긴 세월 같이 보냈지만.. 단, 한 번도 온전히..당신 마음속에 나만 있다는 생각 못했는데.. 오늘은 느껴지네. 지금 이 순간만은..(동영의 가슴에 손을 대고) 여기..오직, 한강희만이 있다는 게..
동영: 그래..
준희: 날..사랑해요..?
동영: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한다)
준희: 나..사랑해요..?
동영: 널, 영원히 잊지 않을께..내, 평생...널 내 마음에 안고.. 살아가마.
준희: ..(실망하는 표정으로 본다)
동영: ..(말 돌리는) 좀 잘래?
준희: (고개 흔든다) 이제 방에 돌아갈 시간 얼마 안 남았잖아..잠은 방에 가서 지겹도록 잘 텐데 뭐. 잘 시간이 있으면..당신..얼굴 좀 더 오래 볼래요..

 준희, 동영의 어깨에 기댄다. 동영, 그런 준희의 어깨를 감싸 안아준다.

씬41 사찰, 일각(새벽)

 절을 마친 더미를 부축해, 빈 내려온다. 다리를 후들거리던 더미, 주르륵..주저앉는다. 빈, 그런 더미를 안쓰럽게 본다.

씬42 서대문형무소, 독방(새벽)

 준희, 밤새 더미의 옷을 만들고 있었다. 아직도 미완성인 옷을 손바느질 하는데..문이 덜컥, 열리면서 교도관 들어온다.

교도관: 고준희..면회다..
준희: (불안한) 이렇게..일찍요?

씬43 서대문형무소, 복도(새벽)

 준희, T자에서 다른 방향으로 교도관들이 꺾어지면 발걸음을 멈춘다.

준희: !!
교도관: (보면)
준희: 면회가..아니군요.. 그렇죠..?..(두렵다)

씬44 달리는 택시 안(새벽)

 더미와 빈, 뒷좌석에 앉아 있다. 더미, 곤한 듯 쓰러져 잔다.
 (인서트) 준희와의 장면들이 지나간다. 어린시절, 총을 맞던 강희의 모습이 지나간다.

더미: 언니!!! (하면서 깨어난다)
빈: 꿈꿨구나..
더미: 언니한테 가!
빈: 샵에 가서, 좀 쉬었다가 오후에 가자.
더미: 아니! 지금 가야해. (기사에게) 서대문형무소로 가주세요! 빨리요!! 빨리 가주세요!!

씬45 서대문형무소, 마당(새벽)
 
 준희, 교도관들과 함께 별채 사형 집행장으로 걸어간다.
 준희, 걸음 한 번 멈추고 마지막으로 보는 하늘을 보고..한 걸음 걷고.
 걸음 멈추고, 마당을 둘러보고..한 걸음 걷고..

씬46 서대문형무소, 형 집행장(새벽)

 준희, 들어온다. 사형집행관들과 그 옆에 동영이 서 있다.
 
준희: ! (동영을 본다)
동영: ..(준희를 본다)

 집행관, 준희의 신원을 확인한다. 들고 있는 서류를 보면서.
 준희를 데려 온 교도관, 교수형 의자가 놓여 있는 단으로 준희를 데려간다.
 준희, 끌려가면서도 시선은 동영에게 두고 있다.
 교수대 의자 옆에 서는 준희.

집행관: 성명을 말해보세요.
준희: 고준희...입니다..
집행관: 주소는?
준희: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7번지..
집행관: 생년월일은?
준희: ...1943년 3월 17일 입니다.
집행관: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습니까?
준희: ...(동영을 본다)
동영: (집행관을 본다)
집행관: (고개 끄덕인다)
동영: ..(준희에게로 간다)
준희: (목이 메인다. 조용히 나지막하게) 사..랑해요..
동영: ...
준희:  지금까지..그래 왔듯이..앞으로도..내, 영혼이..존재한다면...영원히 당신을..사랑해요.
동영: ..
준희: (대답을 기다리는 시선으로, 동영을 본다)
동영: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그래..사랑한다..강희야..

 동영, 주머니에서 어머니의 진주를 꺼내, 준희의 손을 펴서, 진주알을 놓아준다. 준희, 손바닥에 놓인 진주를 보고, 동영의 얼굴을 보며..희미하게 미소 짓는다. 동영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준희, 진주알을 쥔 손을..천천히..그러나 두 번 다시 놓지 않겠다는 듯이 꽉, 움켜쥔다. (Dis)

씬47 서대문형무소 내, 특별접견실(새벽)

 교도관, 더미와 빈에게 준희의 소식을 전한다. 더미와 빈, 거의 망연자실해
 두 사람 다 쓰러질 것 같다.

교도관: 유감입니다..
더미: ...(그 자리에서 푹- 주저앉는다)
빈: ..
교도관: (들고 있던, 종이상자를 준다) 이건...고준희씨가 한더미양에게 남긴..유품입니다...
빈: ..(멍한 시선으로 상자를 받는)

씬48 앙상블, 장봉실의 방(아침)

 장봉실, 왠지 모를 초조함으로 술을 한잔 마시며, 가슴을 누르고 있다.
 장봉실, 준희의 의상을 만져보다가 실수로, 그만 마네킹을 쓰러트린다.
 그 바람에 의상 위에 장봉실이 들고 있던 컵이 떨어져 깨진다.
 붉은 세리주가 의상에 얼룩을 만든다.

장봉실: ..(불길한)

 문이 열리고, 초췌한 표정의 빈이 들어온다.

장봉실: 빈아..
빈: ...
장봉실: 무슨..일이니? 왜 그래!
빈: 강희가...준희가, 새벽에 떠났어요.
장봉실: !!
빈: (눈물이 떨어진다)
장봉실: ..(아들을 와락- 끌어안는다)

 빈, 장봉실에게 안긴 채로 눈물을 흘린다. 장봉실, 함께 눈물을 흘린다.

씬49 동춘섬유공업사, 공장 안(밤)

 더미, 들어와 불을 켠다. 텅 빈, 공장안의 모습이 보여 진다.
 더미, 쓰러지듯 야전 침대에 앉아 자신에게 남긴 준희의 유품 상자를 열어본다.
 준희가 만들다 만, 의상이 나온다.
 더미, 가만히 만져보다 그 밑에 것을 본다. 더미에게 남긴 준희의 편지다.
 (인서트) 준희의 편지.

(준희의 소리) 내가..이 세상을 떠나고서야, 준희가, 이 편지를 받겠지..

더미: ..

씬50 준희의 독방(밤)

 준희, 더미의 옷을 바느질하고 있다. 그 위로, 준희의 소리.

(준희의 소리) 이렇게 가는..나를 용서해. 준희야..나, 너한테...꼭, 두 가지만을..가져 갈께..

씬51 동춘섬유공업사, 공장 안(밤)

 더미, 편지를 보고 있다.

(준희의 소리) 이 세상을 떠나면서 고준희라는..이름하고... 동영씨 마음만은..가져갈께. 모든 걸 다 포기했지만 이 두 가지만은.. 포기할 수가 없네. 미안해.

더미: (편지를 가슴에 쓸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언니.. 언니......

 텅 빈 공장에서, 홀로 눈물 흘리는 더미의 모습이, 외롭다. (Dis)

씬52 공항, 일각

 동영, 탑승수속을 밟고 있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모습이다.

씬53 공항, 입구

 빈, 더미와 함께 뛰어온다.

씬54 공항, 일각

 동영, 탑승수속을 확인하려는데, 빈과 더미, 발견한다.

빈: 형!!!!
동영: (돌아본다)
빈: (뛰어온다) 이러구 도망치겠다구!! 또, 준희를 버리겠다구!!!
동영: 그래..
빈: 강희가 떠난 게, 형만 아픈 줄 알아!! 준희가 형보다 더 아프고, 힘들다는 걸 왜 몰라!!!
동영: (멀리서 서 있는 더미를 한번 보고, 빈에게) 준흴..부탁할께..
빈: 잘 들어, 형. (자기 아픈 팔을 보이며) 나..이 팔, 나을 꺼야.
동영: (본다)
빈: 이 팔이 낫는 날, 이 손으로 준희 손에 반지를 끼워줄 수 있는 날..준희에게 청혼할 꺼야! 떠나든 도망치든 그것만 기억해!
동영: ..(빈의 어깨를 짚어주고, 출국장으로 가려한다)

 더미, 그 모습을 지켜보다 뛰어온다.
 더미, 뛰어와 동영을 잡는다.

더미: ..
동영: ..
더미: 기다릴께요...

 더미, 눈물이 가득 담긴..그러나 강한 의지를 담은 시선으로 동영을 보는 모습에서.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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