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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지애] 12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3.03.13|조회수278 목록 댓글 0

[천년지애] 12











#1. 패션쇼장


어둠속에서 음악과 조명이 시작된다.

인철의 옷을 입은 모델들, 휴대폰을 이용하여 다양하게 연출을 하고 등장한다. 한 마디로 환타스틱하다.



#2. 무대 뒤


인철과 혁, 급히 들어서고 나가는 모델들의 옷을 벗기고 입히며 정신없이 바쁘다.


혁 : (바쁜 와중에) 히야.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예술이다. 예술이야.


다른쪽에선 헤어, 메이크업, 코디들도 정신없이 고치고, 달고 칠하고...

은비, 무전으로 조명실과 교신을 하며 들어선다.


은비 : C에어리어에 불루 조명 나갔어요.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출입문 쪽에 연락해서 출입자 통제 좀 하라 그러세요.

인철 : (은비에게 꽥) 은비씨!

은비 : 왜!

인철 : 이것 좀 달아 줘. (은비에게 장식, 또는 휴대폰을 홱 던진다)


인철과 은비, 모델을 가운데 두고 장식을 단다.

은비, 무심코 인철을 도와주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인철을 대하는 자신이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진다.



#3. 패션쇼장


쇼가 진행되고 있다.


친구1 : (친구들에게) 야, 옷빨 죽이는 오빠, 저깄다.

친구2 : 어디, 어디?


타쓰지를 보다가 옆 자리의 공주를 보고 일동, 깜짝 놀란다.


숙희 : (깜짝) 쟤, 공주 아냐? ( 순자를 옆구리로 치며) 엄마, 쟤, 쟤,

순자 : (돌아본다) 왜?

숙희 : 공주.

순자 : 오잉? 그러네? 여보. (엄을 툭 친다)

엄 : (모델들을 침을 흘리며 보고 있다가) 응 왜?

순자 : 저기, 좀 봐.

엄 : (보면 공주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다른자리 채, 타쓰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채 : 실장은 어디 앉아 있는 거야?


채여사, 타쓰지를 발견하고 눈을 마주치려고 애쓰다가 옆에 앉아있는 공주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채 : 어머, 어머, 쟤 웃기는 애네. 어머, 어머, 말도 안돼. 어머. 여보, 말도 안돼. 여보, 우리 은비 어떡해. (혈압이 오른다)

봉수 : (역시 침을 흘리며 무대 위를 보고 있다가) 왜? 무슨 일이야?

채 : (가슴이 답답하다) 어머, 세상에, 어떻게 우리집에 온 손님을,

봉수 : (바르르 떨리는 채여사의 손 끝을 보며) 오잉? 파출부 보조 아니야?


다른 뒷자리 춘추, 모델과클럽 아가씨들을 비교하며 인상을 찌푸린다.


춘추 : (준하에게) 강인철이란 놈 다시 봐야겠어. 제법이야.

         근데 이쁜 아가씨들도 저렇게 많은데 우리 애들은 왜 다 저 모양이냐?

준하 : 그래서 장사가 안 되는 거 아닐까요?

춘추 : 그래서 공주가 꼭 필요한데....


꼬리, 어찌하다 타쓰지와 공주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춘추의 눈치를 슥 보고 아가씨들에게 귓속말로 전달, 전달하는데

준하, 아가씨들 옆에 앉아 있다가 맨끝에 있는 아가씨에게 무심코 전달을 받는다.


여1 : (무심코 준하에게 귓속말로) 공주가 그때 그 남자하고 저기 와 있대. 전달.

준하 : 뭐? (춘추에게 귓속말로) 공주가 저기 와 있답니다. 전달.

춘추 : (눈이 확 뒤집히더니 벌떡 일어난다) 공주가 와 있다구? 어디? 공주 어딨어?


주변 사람들, 깜짝 놀라고 점차로 술렁임이 패션쇼장 전체로 퍼져 나간다.,

쇼는 계속 진행된다.

쇼장의 술렁임에 돌아보던 공주와 타쓰지, 고개를 휙휙 돌려가며 공주를 찾던 춘추와 눈이 마주친다.

타쓰지, 춘추를 보고 무시하듯 고개를 돌려버리고 공주도 별 관심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버리는데

춘추, 성큼 성큼 다가와 공주와 타쓰지 앞에 선다.


춘추 : (타쓰지에게) 정말 뺑끼였네? (공주에게 화난 목소리로) 너, 여기 있었냐?

공주 : (위엄있게) 오랜만이구나.

춘추 : 오랜만이구나?

공주 : 여기는 웬일이냐?

춘추 : 웬일이냐? 우리도 강인철이 패션쇼 축하해주러 왔지.

공주 : (흠칫 놀라 타쓰지를 돌아본다) 강인철?

타쓰지 : (춘추에게) 끝나고 얘기합시다.

춘추 : (타쓰지를 무섭게 보며) 얘기 합시다?

타쓰지 : 안 보이니까 좀 비켜줄래요?

춘추 : 비켜 줄래요?


춘추,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터뜨리며 앉아있는 타쓰지를 발로 짓밟듯이 차버린다.

타쓰지, 의자와 함께 나동그라지고 사람들, 놀라 비명을 지르며 자리를 피한다.

춘추, 이성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타쓰지를 마구 짓밟는다.



#4. 무대 뒤


모델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 들어온다.


모델 : (큰소리로) 으아아아! 어떡해? 밖에 싸움 났어. 어떡해?.


인철, 번개 같이 몸을 날려 밖으로 튀어나간다.

은비, 혁도 놀라 하던 일을 멈추고 서로 돌아본다.



#5. 다시 쇼장 - 수정


음악이 꺼진다.

무대 위에 있던 모델들, 비명을 지르며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모델들과 엇갈려 인철이 튀어나온다.


공주 : (춘추에게 일격을 가하며 버럭) 그만 두지 못하겠느냐?


춘추, 주춤 뒤로 물러난 사이에 타쓰지, 벌떡 일어나 춘추에게 달려들려는데

공주, 춘추를 노려보며 타쓰지를 제지한다.

어느새 달려온 타쓰지의 경호원들과 춘추의 부하들이 공주, 타쓰지, 춘추를 에워싸며 날카롭게 대치한다.

엄박사네, 은비네, 숙희 친구등등 주변에 있던 사람들, 무슨 일인가 모여들어 구경을 한다.

인철, 사람들을 뚫고 나와 공주에게 다가온다.


인철 : 무슨 일이야?


공주, 인철을 보는 순간 그리움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지만 부러 싸늘하게 외면하며 춘추를 노려본다.


춘추 : (공주를 노려본다) 너, 너 말이야. 생명의 은인한테, 이러면 안 되지!

공주 : 생명의 은인?

춘추 : 벌써 잊었나 보네?

공주 : 네가 어째서 내 생명의 은인이라는 거냐?

춘추 : (배신감) 뭐?

공주 : 난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인데, 너는 그런 나를 데려다가 구경거리로 삼지 않았느냐?

         더 이상 허튼 수작하지 말고 썩 물러가라.

춘추 : (가슴이 너무 아프다) 뭐라구? 니가 어떻게 나한테. 내가 너를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데.

공주 : 더 이상 애꿎은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 다시는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마라.

춘추 : 너, 말 다했냐?

공주 : 다 했다.

춘추 : ... 다 죽여 버리겠어. 강인철이, 너, 쪽바리새끼, 다 죽여 버리겠어!!!


장내에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데.


공주 : 나하고 붙자.

춘추 : 뭐?

공주 : 오늘 결판을 내자. 다른 사람들은 끼어들지 마라. (돌아서 나가면)

준하 : (말리며) 회장님!

춘추 : 됐다.


춘추, 준하의 만류를 뿌리치고 공주를 따라 가는데

인철, 기가 막힌 얼굴로 나가는 공주와 춘추를 보며 꾹 참고 있다가

도저히 못 참겠는지 무서운 기세로 춘추를 따라가 어깨를 잡아 세우더니 돌아보는 춘추를 그대로 갈겨버린다.

춘추, 한 방에 큰 대자로 뻗어버린다.

부하들, 놀라 춘추에게 달려들어 부축해본다.


부하들 : 회장님! 회장님!


춘추, 눈동자가 풀어지고 의식을 잃었다.

부하들, 두려운 눈으로 인철을 올려다본다.

공주와 타쓰지, 깜짝 놀라 돌아보는데.


인철 : (공주와 타쓰지를 빤히 보며) 니들은 좋겠다. 공주, 왕자라서. 그렇게 철딱서니 없이 살아도 되니까.


인철, 밖으로 성큼성큼 나가버린다.

뒤따라 나오던 혁, 쓰러진 춘추와 공주, 타쓰지를 번갈아 보다가.


혁 : (공주에게, 너무 화가 나 울먹이며) 너! 왜 인철이 인생에 끼어든 거냐? 인철이하고 내 인생을 얼마나 더 망가뜨려야

      니 직성이 풀리겠냐? 뭐 좀 될만하면 왜 꼭 이런 일이 생기는 거냐고? 도대체 누구한테 얘길 해야 되는 거냐?

      누구한테 하소연을 해야 되냐고? 내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오늘 다들 축하해 주러 왔는데.... 우리 식구들도 다 보러 왔는데. 에이, 씨...


혁, 울면서 인철을 따라 나가고 공주, 가슴이 아프다.



#6. 행사장 근처 (밤)


인철과 혁, 경계석에 걸터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혁 : 차, 웃긴다, 응? 우리 이제 어떡해야 되는 거냐?

인철 : ... 어떻게 되겠지, 뭐.

혁 : 그래, 어떻게 되겠지. (갑자기)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되냐? 우린 망했지.

      근데 고은비는 괜찮을까? 회사에서 짤리는 거 아니냐, 걔? 걔가 담당자잖아. 어떡하지? 짤리면 우리 회사에 취직 시켜줄까?


이때 두 사람의 눈앞에 늘씬한 다리가 선다.


은비 : 월급 줄 돈이나 있냐?


두 사람, 아래에서부터 위로 쭈욱 훑어 올라가면 은비가 화난 얼굴로 노려보고 서 있다.



#7. 바 (밤)


공주와 타쓰지, 마주 앉아 있다.

공주, 술잔을 내려다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공주, 이미 약간 취해 있다.


타쓰지 : ... (한참 보다가) 인철이 때문에 그래?

공주 : ... (자조적으로)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타쓰지 : ... 아까 일은 잊어버려.


공주, 앞에 있는 술을 확 마셔버린다. 목에서 불이 난다.

공주, 죽을 것 같은데 타쓰지, 아무 것도 모르고 술을 다시 따른다..


공주 : 이건 도대체 무슨 술이냐? 지난번에 보내준 술은 맛있었는데 이건 맛이 왜 이 모양이냐?

타쓰지 : 독한 술이야. 천천히 마셔.

공주 : ... 나하고의 약속은 어찌 되었느냐?

타쓰지 : 무슨 약속?

공주 : 돌아갈 길을 같이 찾아보기로 하지 않았느냐?

타쓰지 : (참으며 짧게 한숨을 내뱉고) 돌아간다고 달라지는 거 있어? 어차피 나라도 잃고, 아리도 죽었다며?


공주, 아리라는 말에 갑자기 가슴이 무너진다. 눈물이 핑 도는데.


타쓰지 : 가 봤자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을 텐데..


공주,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 참으며 다시 술을 확 털어놓는다. 여전히 죽을 것 같다.

타쓰지, 다시 술을 따른다.


공주 : ... 그럼 내게 한 말은 모두 빈말이었느냐?

타쓰지 : ... (술을 마시고) 돌아갈 길은 없어.

공주 : (노려보며) ... 생긴 것뿐만 아니라 하는 짓까지 꼭 닮았구나.

타쓰지 : (본다)

공주 : 이 신라의 도적놈! 김유석, 이 나쁜 놈.


공주, 이를 부드득 갈더니 다시 고개를 뒤로 홱 젖히고 술을 마시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간다.

타쓰지, ???

공주, 주섬주섬 일어나 다시 자리에 앉는다.


공주 : ... 아무래도 내가 오늘 강인철, 그 자에게 뭔가 큰 잘못을 한 거 같다.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어찌하면 되겠느냐?

타쓰지 : 안해도 돼.

공주 : 아니다, 그건 경우가 아니다. 그 자에게 전화를 해라. 아니다. 전화번호를 알려다오. 내가 한 번 해보겠다. 불러라.


공주, 핸드폰을 꺼내든다.

타쓰지, 점점 신경질난다.



#8. 나이트클럽 (밤)


은비, 혼자 거울 앞에 서서 머리채를 흔들어가며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다.

인철과 혁, 술을 마시며 은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테이블에 꺼내놓은 인철의 휴대전화에서 착신을 알리는 불빛이 깜빡이지만

소리는 음악에 묻히고 시선은 은비를 보느라 알아차리지 못한다.


혁 : (완전히 반했다) 귀여운 줄만 알았더니 섹시하기까지 하네?

인철 : 차! ...

혁 : 근데 쟤 보기보다 착한 거 같다. 술도 사주고, 쇼도 보여주고.

인철 : (대꾸 없이 술을 비운다)

혁 : 숙녀 혼자 저렇게 추게 둘 수야 없지.


혁, 벌떡 일어나 자기도 열정적으로 머리를 흔들어가며 은비에게 다가간다.

두 사람, 서로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머리를 흔들어댄다.

인철, 두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타쓰지와 머리를 맞대고 핸드폰으로 장난하던 공주의 얼굴만 떠오른다.

음악이 바뀌고 은비와 혁, 자리로 돌아와 앉아 땀을 식힌다.


인철 : (은비에게 슥) 너, 블루스 춰 봤냐?

은비 : (자존심 상하지만) 안 춰봤어. 왜?

인철 : 이리 나와. 가르쳐줄께.


인철, 은비의 손목의 홱 잡아끌고 플로어로 나간다.


은비 : 어머....

혁 : 에이, 저이!


혁, 인철을 째려보며 혼자 남은 여자가 없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인철, 몇 번 발을 맞춰 하다가 은비의 팔을 자기 목에 올려놓고 은비의 허리를 바짝 당겨 안는다.

은비, 흠칫 놀라지만 싫지 않다.


인철 : 내가 하는대로만 따라 움직이면 돼. 하나, 둘, 하나, 둘.


은비, 따라한다.


인철 : (귀에 대고) 잘하네. 하나, 둘. 하나, 둘.


은비, 얼굴이 붉어지고 혁, 속이 탄다.

인철, 문득 자기가 이 여자와 왜 이러고 있나 싶다.

인철의 전화벨이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혁 : (받는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 뭐야? (탁 끊어버린다)



#9. 바 (밤)


공주, 전화기를 든 채 테이블에 엎어져 잠이 들었다.

타쓰지, 그런 공주를 내려다보며 술만 마신다.



#10. 공주방 욕실 (밤)


공주, 변기를 부여안고 토하고 있다.

타쓰지, 아무렇지도 않게 공주의 등을 두들겨준다,


공주 : (민망하다) 됐다. 됐으니 나가 보거라.


타쓰지, 치약을 칫솔에 묻혀 내민다.

공주, 눈을 못 마주치며 민망하게 받아든다.


공주 : 고맙다.


타쓰지, 밖으로 나간다.

공주, 이를 닦으며 칫솔질을 가르쳐주던 인철이 생각난다. 왜 이렇게 눈물이 흐르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이러고 있는 자신이 너무 싫다.



#11. 욕실 문 앞 (밤)


공주, 안에서 나오다가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서 있는 타쓰지를 보고 깜짝 놀란다.

공주, 샤워를 한 듯 젖은 머리에 목욕가운을 입었다.


공주 : 아직도 안 가고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

타쓰지 : (뚫어지게 보다가) 혹시 돌아갈 길이 있다고 해도 난 너, 안 보내.

공주 : (당황하는데)

타쓰지 : 잘 자.


타쓰지, 쓸쓸히 돌아서 밖으로 나간다.

공주, 기분이 이상하다.



#12. 인철이네 집


거실에 술병이 가득 널려 있다.

혁, 다리를 의자에 올려놓은 채 배를 내놓고 거실에서 잠을 자고 있고 방 안 침대에는 은비가 자고 있다.

은비, 부스스 눈을 뜨다가 낯선 방안 풍경에 술이 확 깨 벌떡 일어난다.


은비 : 여기가 어디야? (둘러보다가 벽에 붙은 여자 사진을 보고 경악한다) 내가 미쳤어. 어머, 어떡해....


은비, 핸드백을 찾아들고 머리를 대충 매만지며 밖으로 나가다가

잠들어 있는 혁과 거실의 술병들을 보고 지난밤을 생각해본다. 아무 생각이 안난다.

은비, 절망적인 얼굴로 살금살금 현관 쪽으로 가는데 욕실문이 벌컥 열리고 인철이 나온다.


인철 : 일어났냐? 그냥 가게?

은비 :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인철 : 아무 짓도 안 했어. 가라 그래도 안가더라고.

은비 : 내가? 내가 왜? 이 사기꾼! 악마! 날강도!


은비, 갑자기 핸드백으로 인철을 갈기고 후닥닥 밖으로 나간다.

인철, 어처구니가 없다.



#13. 인철이네 집 앞 복도


은비, 문을 꽝 닫고 나오는데 마침 학교 가려고 집을 나서던 숙희가 본다.


숙희 : 어머, 안녕하세요?

은비 : (깜짝 놀란다) 너, 누구니?

숙희 : 저, 공주 매니저요.

은비 : 아아아악!


은비,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엘리베이터 반대쪽으로 막 간다.


숙희 : 그쪽 아니에요.


은비, 가다가 바쁘게 다시 되돌아오는데 인철이 문을 벌컥 열고 나온다.

은비, 문에 부닥쳐 나가떨어진다.


인철 : (숙희가 서 있자) 방금 우리 집에서 나온 여자 못 봤냐?



#14. 은비네 집


봉수와 채여사, 밥을 먹고 있다.


채 : 아줌마. 어떻게? 세상에 내가,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와. 아줌마! 어디서 그딴 애를 데려와서, 그것도 딱 한 번 보고.

      어떻게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냐고?

순자 : 글쎄 말이에요.

채 : 도대체 뭐하는 여자야? 내가 볼 땐 정신이 이상한 애 같던데?

순자 : 좀 이상해요.

채 : 어머, 세상에. 어머, 세상에. 내가 아줌마네 집에 갔을 때 어쩐지 좀 이상하다 했어. 아니, 근데 뭐하는 애야?

순자 : 그냥 집에서 놀던 앤데 어느날 갑자기 없어져 가지구 어디 갔나 했더니 글쎄 거기 가 있지 뭐예요? 우리도 깜짝 놀랐어요.

채 : 아니, 어떻게 경쟁상대가 그런 이상한 애야?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우리 은비가 오죽 속이 상했으면 집엘 다 안 들어와?

봉수 : (놀라며) 뭐? 은비가 외박했어?

채 : (앗!) 아니, 어제 같이 작업하던 팀하고 같이 술한잔 했다 그러더라구 그래서 내가 밤길 위험하니까 그냥 자고 오라 그랬지.

봉수 : 아무리 그렇다고 다 큰 딸네미를 아무데서나 자고 오라 그래?

채 : 다 컸으니까 그렇지. 이제 지 앞가림 지가 할 나이야.

봉수 : (흥분해서 더듬는다) 세, 세, 세상 남자놈들이 어, 얼마나 도, 도, 도둑놈들인데!!!

순자 : (무심코) 그 총각은 착해요.

채 : 뭐?

봉수 : 그 총각?!

순자 : 네?

채 : 그게 무슨 얘기야?

순자 : (당황) 아니, 우리 옆집 총각이랑 같이 출근하던데....

채 : 뭐? 은비가 얘기하던 그 유부남 말이야?

봉수 : 뭐? 유부남이라구!!!


봉수, 눈이 홱 뒤집히고 채여사, 거품 물고 넘어간다.



#15. 마케팅 사무실 - 수정


직원들, 회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고 신문을 들여다보며 수군거리고 있다.

은비, 책상에 앉아 어제밤 일을 생각하고 있다. 인철과 블루스 추던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게다가 인철이네 집에서 잠까지... 근데 싫지 않은 이 감정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왜 이러지?

은비, 고개를 가로저었다가, 미소를 지었다가, 입술을 깨물었다가, 급기야 책상에 머리를 찧는다.

이대리, 급한 걸음으로 신문을 들고 들어와 은비 앞에 신문을 내민다.


이대리 : 고은비씨. 이거 봤어?

은비 : 뭐요?

이대리 : 뭐긴 뭐야? 신문에 났잖아. 담당자가 그것도 모르면 어떡해?

은비 : 어머, 정말요?


은비, 신문을 확 빼앗아 자세히 들여다본다.


은비 : 어머, 어머. 정말이네. 아니, 뭐 이런 걸 신문에 내고 그래?

이대리 : 지금 난리 났어, 위에서.

은비 : ...

이대리 : 아무래도 강남어패럴이 책임을 져야 될 거 같은 분위기던데?

은비 : 강인철씨가요?

이대리 : 회사입장에선 당연한 거 아냐? 누군간 총대를 메야 되는데. 만만한 게 하청업체지.

은비 : (갑자기 걱정스럽다) 실장님은 뭐래요?

이대리 : 원인제공이야 실장이 했지만 회사에서 실장한테 책임을 물을 거 같애? 실장이 어떤 사람인데?

은비 : 그런 법이 어딨어요?

이대리 : 그게 조직이야. 근데 (날카롭게) 어제 집에 안 들어갔지?

은비 : 아뇨? 들어갔는데요?

이대리 : 근데 왜 옷이 그대로야?

은비 : 그럴 수도 있죠.

이대리 : 어으, 술냄새.


은비, 깜짝 놀라 입을 탁 막는데 타쓰지가 들어온다.

직원들, 삼삼오오 떠들다가 타쓰지가 들어오자 샤샥 흩어진다.

타쓰지, 굳은 얼굴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은비, 벌떡 일어나 따라 들어가려다가 노크를 똑똑 하고 들어간다.



#16. 타쓰지 사무실 - 수정


타쓰지, 들고 온 신문을 책상 위에 팽개치고 의자에 앉는다.

은비, 타쓰지에게 다가온다.


은비 : 강남어패럴에 책임을 묻는다면서요?

타쓰지 : ...

은비 : 실장님이 데리고 온 그 술집여자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거 아닌가요?

타쓰지 : (기분 더럽다. 무섭게 올려다본다) 나가!

은비 : 허!


은비, 노려보다가 홱 돌아서 문을 꽝 닫고 나간다.



#17. 옷공장


인철과 혁, 머리를 맞대고 신문을 보고 있다.


인철 : 에개... 정말 코딱지 만하게도 났네. 이걸 누가 알아보냐?

혁 : 그거 너, 아니냐? 잘 봐봐.

인철 : 은비, 걔, 사기도 칠 줄 아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다더니 요게 뭐냐?

혁 : 그래도 회사에선 난리났대잖아. 우리보고 책임지래잖아.

인철 : 우리가 어떻게?

혁 : 모르지.


인철과 혁, 서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돌아보더니

신문을 홱 던져버리고 한숨을 동시에 내쉰다. 갑자기 갑갑해진다.


혁 : ... 빚은 뭘로 갚냐?

인철 : ...

혁 : (쌓여 있는 옷을 돌아보며) 저것들은 다 어떡하냐?

인철 : ...

혁 : 우리, 뭐 먹고 사냐?

인철 : ...


두사람 다시 한숨을 내쉬는데 노크소리가 들린다.


혁 : 누구세요.

꼬리 : 여기가 강인철씨, 강남어패럴, 어머, 오빠! (돌아보며) 들어와. 여기 맞아.


꼬리를 따라 언니들이 주르르 들어온다.

언니들이 들어오자 안 그래도 복잡한 공장안이 더 복잡해진다.

혁, 여자들이 우르르 들어오자 인철의 옆에 숨어서 여자들을 살핀다.


인철 : 니들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무용1 : 여기가 공장이구나?

무용3 : 제법 크네.

무용1 : (혁에게) 어머, 오빠 안녕?

혁 : 안녕하세요? 저는 디자이너 이혁이라고 합니다.

무용들 : 어머! 디자이너래! 이 오빠가 진짜 디자이넌가 봐!

인철 : 니들 왜 왔어? 시끄러 죽겠네.

꼬리 : 우리가 김춘추 회장님 눈 피해서 목숨 걸고 왔는데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무용3 : 우리 오빠들 패션쇼, 감명 깊게 봤잖아.

무용1 : 우리는 그냥 반짝이나 들고 다니길래 그냥 그런 반짝이 아줌만줄 알았는데,

인철 : 아줌마?

꼬리 :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

인철 : 그래? 고맙다.

무용1 : 차라도 줘야 되는 거 아냐?

인철 : 차는 무슨?

꼬리 : 어머, 여깄다. 이 옷이야. 이 옷!

무용들 : 어디, 어디.


언니들, 우르르 달려들어 쌓여 있던 옷들을 헤집기 시작한다.


소리 : 이건 내꺼. 안돼. 내가 먼저 봤어. 그럼, 이거 내꺼. 안놔? 찢어지잖아!!


혁, 무섭다.

인철, 안되겠는지 언니들 틈에 끼어든다.


인철 : (버럭) 얘들이 왜 이래? 이거 안놔! 뭐하는 짓들이야!

꼬리 : 우리 근무복 말고 평상복도 오빠들한테 맞춰 입을까 생각중인데, 어떻게 생각해?


인철과 혁, 서로 돌아본다.


꼬리 : 우리가 동네 업소 언니들한테 쫙 소문냈거든. 예쁜 옷 입고 싶으면 이리로 와서 직접 맞춰 입으라구.

인철 : ... (목소리 깔고) 차 뭐 줄까? 커피? 녹차?

혁 : (갑자기 소파 위를 치우며) 자, 우선 여기 좀 앉으세요. (인철에게) 야, 뭐하냐? 책! 책!

인철 : 어, 그래. 책!


인철, 잡지를 쌓아둔 곳에서 잡지책들을 꺼낸다. 책들이 군데군데 찢어져 있다.

인철, 휴지가 떨어졌다며 잡지를 던지던 공주가 생각난다.

인철, 공주 생각을 애써 지우며 언니들한테 잡지를 나눠주고 구석으로 가 커피를 탄다.

언니들, 소란스럽게 떠들어대며 디자인을 고르고

혁은 언니들 틈에서 아는 척하며 설명을 하고

인철, 커피를 타며 다시 공주를 생각한다. 마음이 착잡하다.

인철, 양심에 찔리는 얼굴로 가슴을 만져본다.



#18. 인철이네 집 (밤)


인철, 썰렁한 집안으로 들어와 불을 켠다. 집안 어디에선가 공주가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인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벌렁 드러눕다가 구석에 처박혀 있는 공주의 보따리를 발견한다.

인철, 보따리를 풀어본다. 자기가 사준 속옷과 다른 옷가지들이 들어 있다.

인철, 씁쓸한 얼굴로 보따리를 내려다보다가 서랍에 속옷을 챙겨 넣는다.

현관벨이 울린다.

인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으로 뛰어 나간다.


인철 : 누구세요.


인철, 대답이 없자 문을 여는데 채여사가 눈에 불을 켜고 들이 닥친다.


채 : 나, 누군지 모르죠?

인철 : 안녕하세요.

채 : 어, 아나 보네?

인철 : 예. 은비 어머니 되시죠?

채 : 은비 어머니?

인철 : 아니, 근데 무슨 일로. 잠깐 들어오시죠.

채 : 들어갈 꺼 까진 없고. 들어가고 싶지도 않아.

인철 :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럼 말씀하시죠.

채 : (집안을 둘러보며) 정말 형편없네..... (타쓰지를 대하는 태도와는 너무나 다르게) 무슨 생각으로 내 딸한테 접근하는 거야?

인철 : 그런 적 없는데요?

채 : 근데 걔가 여기서 왜 자?

인철 : 너무 취해서.

채 : (귀뺨을 사정없이 갈겨버린다) 너, 상습범이지?

인철 : (기가 막혀 웃는다)

채 : 웃어? 너 내 바로 밑에 남동생이 의정부 형사 반장이고, 내 장조카가 사범 연수원에 있어!

      한 번만 더 은비한테 찝쩍대면 너,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 시켜버릴 꺼야. 명심해!


채, 확 돌아서 나간다.

인철, 착잡하다.



#19. 강남컨설팅 (밤)


춘추, 창 밖을 보고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준하와 부하들, 침통한 얼굴로 춘추의 눈치를 살핀다.


춘추 : 정부장.

준하 : 예, 회장님.

춘추 : 하이에나 애들하고 붙을 때 기억나냐?

준하 : 예, 회장님.

춘추 : 그땐 나, 정말 열심히 싸웠다. 하루에도 네 탕 다섯 탕씩 뛰었지. 막판 뛸 때는 발이 안 올라가니까

         쪼인타만 까는 거야. 쪼인타만. 그러니 맞기는 오죽 맞았겠어? 근데 그렇게 막 깨지면서 말이야

         내 자신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더라고. 밤새 깨지던 어느날 가슴 한 쪽이 뿌듯해지면서 뜨거운 눈물이 막 쏟아지는데...

         최선을 다해 사는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건지... 가슴으로, 배로, 등짝으로 느낌이 팍팍 왔었는데...

         그런데 이제 은퇴할 때가 된 것 같아.

준하 : 아닙니다, 회장님. 강인철이 그놈한텐 방심하셔서 그런 겁니다.

춘추 : 아니야. 하이에나도, 땅꼬마도 아니고, 한낱 옷장사한테 그런 수모를 당하고 내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

준하 : 회장님이 공주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약해지셔서 그렇습니다. 공주 걔가 회장님의 순정을 짓밟고

         한 판 붙자고 하는 순간부터 이미 회장님께선 제 정신이 아니셨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치사하게 그 놈이

         뒤에서 공격했기 때문에 이건 회장님 잘못이 아닙니다.

춘추 : (조금 위신이 선다) 그래?

준하 : 그렇습니다. 강인철 그 놈이 치사한 놈입니다.

춘추 : (생각하다가 약간 치사하지만) 그렇지?

준하 : 그리고 이거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 가셔야 될 거 같습니다. 강인철, 그 놈이 그런 실력을 갖고도

         지금껏 우리를 감쪽같이 속여 왔다는 게 너무너무 괘씸하지 않으십니까?

춘추 : 괘씸하지.

준하 : 두고 보십시오. 그 놈이 이자를 하루라도 밀리는 날에는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춘추, 못 믿겠다는 얼굴로 준하를 슥 돌아본다.


준하 : (화제를 돌리며) 근데 정말 공주가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가 자기한테 맞아가면서도

         맛있는 거 사 먹이고, 옷도 해 입히고, 일자리까지 마련해 줬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춘추 : 공주 욕하지 마라. 난 오직 공주가 잘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부하들, 아직도 정신 못차리는 춘추가 불안하다.



#20. 공주방


테이블 위에 목걸이가 놓여 있다.

공주, 창가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펴 놓고 전화기만 만지작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자 화들짝 놀라 떨어뜨린다.

공주, 얼른 집어 들고 귀에 갖다 댄다.


공주 : 누구냐?

타쓰지 : (소리) 뭐해?

공주 : 아무 것도 안 한다.

타쓰지 : 별 일 없지?

공주 : 없다.

타쓰지 : 지금 가고 있는 중이야. 금방 갈게.

공주 : ... 알았다.

타쓰지 : 심심해?

공주 : ... 아니다.

타쓰지 : 혼자 두기 싫은데, 오늘 일이 있어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공주 : ... 없다.

타쓰지 : 그럼, 좀 있다 봐.

공주 : ... 알았다. (끊는다)


공주, 전화를 끊고 한참을 만지작거리고 몇 번을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누른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더니 여인의 안내멘트가 나온다.


안내 :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공주 : (깜짝 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네 년은 또 누구냐!!!


공주, 뭐가 뭔지 몰라 막 누르는데 문이 갑자기 벌컥 열리면서 지에꼬와 집사와 경호원들이 들어온다.


공주 : (휴대폰을 끄지도 않고 그대로 놓고 벌떡 일어나며) 뭐냐?

집사 : 이 분은 후지와라상 어머님이시다. 무례하게 굴지 마.


공주, 지에꼬를 뚫어지게 보고 지에꼬도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서서 공주를 뚫어져라 보다가 소파에 가 앉는다.

집사, 벽장문을 열어 작은 트렁크에 대충 짐을 쑤셔 넣는 동안

지에꼬, 테이블 위에 있는 목걸이를 들어서 들여다본다.


공주 : 그 목걸이 내려놓지 못하겠느냐?


공주, 다가가려는데 경호원들이 가로막는다.


지에꼬 : (공주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집사에게, 이하 일어로) 정말 비슷하게 만들었군. 이런 걸로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공주 : 뭐라구?

지에꼬 : 끌어내!


경호원들, 공주의 양 옆에서 단단히 잡고 끌고 나가려는데.


공주 : (반항하며) 그 목걸이, 내놓지 못해! 내 초상화를 가져간 것도 모자라서 이제 내 목걸이까지 탐을 내?

         이 신라의 도적놈들아!


공주, 경호원들을 뿌리치며 지에꼬에게 달려드는데

집사, 뒤에서 공주의 혈을 짚어 기절시켜버린다.

공주, 힘없이 축 늘어지고 경호원들, 공주를 양 옆에서 부축하여 짐을 든 집사와 함께 밖으로 나간다.

지에꼬, 흡족한 얼굴로 목걸이를 들여다보다가 콱 움켜쥔다.


지에꼬 : (혼잣말) 이 목걸이가 내 손에 들어온 이상, 넌 이제 돌아갈 수 없어.



#21. 복도


집사와 공주일행,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문이 닫힌다.

잠시후 옆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타쓰지가 내린다.



#22. 공주방


타쓰지, 초인종을 누르는데 지에꼬가 문을 열고 나오자 깜짝 놀란다.


타쓰지 : (일어로)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지에꼬 : (일어로) 덜 떨어진 놈. 기껏 한국에 와서 한다는 짓이 신문 가십거리나 되는 거냐?

            네 거취문제는 아버님하고 상의해서 연락해 주마.


지에꼬, 타쓰지를 지나쳐 가버리면 타쓰지, 불안한 얼굴로 방으로 뛰어든다. 아무도 없다.

바닥에 핸드폰이 버려져 있다.

타쓰지, 전화를 집어 들고 다시 뛰어나온다. 지에꼬도 보이지 않는다.



#23. 차 안 뒷자리


경호원들 틈에 끼여 앉은 공주, 가까스로 정신이 돌아오고 있다.

집사, 조수석에 앉아 그런 공주를 싸늘하게 돌아본다.


공주 : (집사에게 힘없이) 이게 무슨 짓이냐?

집사 : 도련님을 생각하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지만 니가 한 짓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약과야.

         도련님이 몸담고 있는 회사 행사에 참석했으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지. 너하고 강인철이란 놈, 거기다 깡패들까지.

         후지와라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였나? 얼마나 더 큰 돈을 원하는지 모르지만 이쯤에서 조용히 떠나는 게

         니 신상에 좋을 거야. 다시는 도련님 주변에서 얼쩡거리지 마.


차가 끼익 선다.



#24. 거리


차에서 버려진 공주의 위로 트렁크가 날아온다.

차, 부웅 떠난다.

공주,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다.



#25. 인철이네집 근처 굴다리


공주, 트렁크를 깔고 앉아 울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힐끗힐끗 본다.

공주의 옆에 남루한 옷차림의 거지가 앉아 우는 공주를 보며 씩 웃는다.

공주, 일어나 가방을 끌고 자리를 뜬다.



#26. 호텔 로비


타쓰지, 불안한 얼굴로 로비를 서성대고 있는데 집사가 들어온다.


타쓰지 : (너무 화가 나 말이 안나온다) 어떻게 된 거야?

집사 : 죄송합니다. 어머님께서,

타쓰지 : 어디야?

집사 : ... 이제 싫증내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이쯤에서 정리하십시오.

타쓰지 : (일어로, 꽥) 어디야!!!

집사 : (흠칫 놀란다)



#27. 거리 (밤)


포장마차에서 사람들이 오뎅, 떡복기, 순대 등등을 먹고 있다.

트렁크를 끌고 지나가다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보고 서 있는 공주, 침이 꼴깍 넘어간다.

공주, 그 앞에 선다.


포장 : 어서오세요.

공주 : 참으로 먹음직스럽구나.

포장 : 네?

공주 : 내가 밥값은 할 터이니 한 번 먹어 봐도 되겠느냐?

포장 : 너, 저리 안 가? 어디서 미친년이! 손님 떨어지게. 가! 가! (손짓으로 휘휘 내쫓는데)

공주 : (무섭게 노려보며) 다시 한 번 얘기해 보아라. 지금 뭐라 그랬느냐?


포장, 공주의 눈빛에 질려 오뎅 꼬치를 하나 집어준다.


포장 : 자! 이거 먹고 가!


공주, 번개같이 낚아채 입에 물고 포장을 째려보며 트렁크를 끌고 돌아서 간다.



#28. 거리 (밤)


공주를 찾아 헤매는 타쓰지.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 가게에도 들어갔다 나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하고 뒤로 걷기도 하면서 공주를 찾아다닌다.

타쓰지, 핸드폰을 꺼내 인철의 번호를 누르다 말고 차에 탄다.



#29. 옷공장 (밤)


아가씨들, 몇은 서 있고 몇은 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

인철과 혁, 사이즈도 재고 샘플도 아가씨들에게 보여주느라 바쁘다.

이때 타쓰지가 들어온다.

아가씨들, 타쓰지를 보자 눈이 똥그래진다.


꼬리 : 어머, 안녕하세요?

타쓰지 : 네?


인철과 혁, 하던 일을 멈춘다.


인철 : (전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웬일이냐?

혁 : 어, 오셨어요?

타쓰지 : 바쁘시네요?

혁 : 아, 예, 좀. (앉을 자리가 없자 난처해하며) 어디 좀 앉으셔야 되는데. 앉을 데가 없네.


아가씨들 막 당겨 앉아 자리를 만든다.


여1 : 이리 앉으세요.

타쓰지 : 괜찮습니다.

꼬리 : 저, 오빠 차 죽여. 뚜껑도 막 열리는 차야. (인철에게) 오빠, 나, 왜 드라이브 안 시켜주는 거야?

혁 : 근데 무슨 일이세요? 돈 나온대요? 그리고 우리한테 다 덮어씌운 건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타쓰지 : 지금 얘기중이구요. 다는 안돼도 우선 일부라도 지급이 될 겁니다.

인철 : 그래? 나머진 언제 줄 건데?

타쓰지 : 그 얘기하러 온 건 아니고, ...

인철 : ... (불안해진다)

타쓰지 : (굉장히 어렵게 말을 꺼낸다) 혹시 공주한테 연락 오면 나한테 연락 좀 해 줘.

인철 : (갑자기 머리 속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다) 내가 왜?

타쓰지 : 변명 같지만 오해가 좀 있었어. 그러니까 꼭 좀 연락해 줘.


타쓰지, 돌아서 나가려는데.


인철 : 니네 집사가 갖다 버리기라도 했냐?

타쓰지 : (선다)

인철 : 니네는 그러고도 남겠더라.

타쓰지 : ... (꾹 참으며) 부탁한다. (나간다)


인철, 너무 걱정이 돼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무용1 : 공주가 어떻게 됐다구?

무용2 : 공주가 왜?

인철 : 야, 니네 춤추러 갈 시간 다 됐다. 나머진 내일 하자. 응? 빨리 가.


인철, 아가씨들을 갑자기 몰아낸다.

아가씨들 투덜대면서도 차구경한다고 우르르 나간다.


혁 : 뭐야? 저 자식? 공주 어따 팔아먹은 거야?

인철 : (부러 모른 척) 야, 정리나 하고 들어가자.


인철, 바쁘게 치우기 시작하는데 전화벨 울린다.


인철 : (신경질적으로) 여보세요 ... 누구? 고은비?

혁 : (본다)

인철 : 나, 너 볼 일 없는데? (끊고 불안한 마음에 미친 듯이 치운다)


혁, 인철이 얄밉다.



#30. 고수부지 또는 양재천, 또는 시내 한복판 (밤)


공주,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린다. 갈 데도 없고 배는 고프고 정말이지 울고 싶다.

공주, 트렁크를 깔고 앉아 허기를 달래고 있는데

아까부터 공주를 보고 있던 동네 양아치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공주 쪽으로 다가와 공주를 에워싼다.

공주, 슥 올려다보고 다시 배를 움켜쥔다.


양1 : 야! 너, 뭐냐?

공주 : 배고프다. 말 시키지 마라.

양2 : 오!! 쎈데?

양3 : 야, 너, 이쁘다? 우리랑 같이 갈래?

공주 : 됐다. 다치기 전에 가라.

양1 : 어쭈? 제법인데?

양2 : 오빠가 재미있게 해줄께.

양3 : 가자! (손목을 잡는데)

공주 : (무섭게 올려다본다) 이 손 놓지 못하겠느냐?

양1 : 얘, 좀 맛이 간 애 같다?

양2 : 더 잘 됐지, 뭐. 야, 일어나.

양3 : 말 안 들으면 너 혼난다.

공주 : (손목을 확 뿌리치며 벌떡 일어난다) 어린 것들이,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마지막으로 경고 한다. 목숨을 부지하고 싶으면 내 눈 앞에서 썩 꺼져라.

양1 : (양2,3에게 눈짓, 다가서며) 아우, 귀여워. 난 왜 이런 애들만 보면 못 참겠지?

       오빠가, 오늘 어떻게 해 주까? 뽀뽀 한 번 해주까?


양아치들, 공주를 잡아먹을 듯이 다가서는데.

시간경과

양아치들, 모두 바닥에 널부러져 쌍코피를 흘리며 울고 있다.

공주, 치마를 휘날리며 두려움에 떠는 양아치들을 내려다본다.


공주 : 오늘은 배가 고파서 이쯤에서 끝내겠다.


공주, 트렁크를 집어 들고 유유히 사라진다.

공주, 한참을 걷는데 저만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아파트가 보인다. 은비의 아파트다.

공주, 일단 아파트를 향해 걷기 시작하는데 걸어도 걸어도 아파트는 그 자리다.



#31. 인철이네 집 (밤)


스탠드 하나만 켜 있다.

인철, TV를 이리저리 돌려보는데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초조해진다.

인철, 휴대폰을 꺼내들고 전화를 하려다가 음성사서함에 메모가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확인해 본다.


집사 : 이 분은 후지와라상 어머님이시다. 무례하게 굴지 마. ...

공주 : 그 목걸이 내려놓지 못하겠느냐?

지에꼬 : (일어로) 정말 비슷하게 만들었군. 이런 걸로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공주 : 뭐라구?

지에꼬 : (일어로) 끌어내!

공주 : 그 목걸이, 내놓지 못해! 내 초상화를 가져간 것도 모자라서 이제 내 목걸이까지 탐을 내? 이 신라의 도적놈들아! ...

지에꼬 : (일어로) 이 목걸이가 내 손에 들어온 이상, 넌 이제 돌아갈 수 없어.


인철, 녹음된 내용을 들으며 점점 충격을 받는다.

인철, 전화를 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녹음된 내용을 반추해보다가 벌떡 일어나는데 현관벨이 울린다.

인철, 누구지? 후닥닥 뛰어나가 문을 열면 술이 취한 은비가 쓰러지듯 들어온다.


인철 : (얼른 받아 안으며) 어어어어, 왜 이래?

은비 : (인철을 밀어내며 똑바로 선다) 잠깐 얘기 좀 할까?

인철 : 해.

은비 : 숙녀를 현관에 세워놓고 무슨 얘기를 하라는 거야?

인철 : (할 수 없이) 들어와.


은비, 서슴없이 들어와 바닥에 앉는다.


인철 : 물 줘?

은비 : 너, 왜 내 전화 그렇게 받아?

인철 : 내가 뭐? 할 얘기 있으면 빨리 하고 가.

은비 : 내가 우리 엄마 땜에 너한테 사과 전화할라 그런 거야. 근데 왜 그렇게 끊어?

인철 : 야, 야. 사과는 무슨? 부모 마음이 다 그렇지. 내가 니네 엄마라도 그랬겠다.

         그러니까 니네 엄마 또 오해하시기전에 빨리 가라.

은비 : 하, 차. 물 안줘?


인철,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물을 따라준다.


은비 : (받아 마시고) .... 잠깐 앉아봐.

인철 : (짧게 한숨을 내쉬고 앉는다)

은비 : (픽 웃더니) 나, 정말 우습지?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나 같은 애가 왜 너 같은 애한테 끌리는 거니?

인철 : (갑자기 심각해진다) 뭐?

은비 : 너, 내 꿈이 뭔지 알아?

인철 : ... 뭔데?

은비 : 선수.

인철 : 뭐?

은비 : 선수 몰라? 나, 정말 지금까지 공부하느라고 연애 한 번 안 해봤거든? 그래서 더 선수가 되고 싶었는지도 몰라.

인철 : (진지하게)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냐.

은비 : 나도 알아. 그러니까 꿈이지.

인철 : ...

은비 : 나, 정말 이런 감정 처음이야. 그래서 더 신경질 나.

인철 : 일어나. 데려다 줄게.

은비 : 아, 여자가 이러면 안되는데. 나도 이론적으론 다 알고 있는데, 왜 안 되는 거야? 자존심 상해서 미치겠어.


은비, 갑자기 막 운다.

인철, 난감하다.


인철 : (은비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이며) 울지 마. 울지 말고 다음에 술 깨고 얘기하자, 응?


은비, 그 틈을 이용해 갑자기 인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운다.

인철, 공주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괴롭다.



#32. 거리 (밤)


공주, 가방을 끌고 정처 없이 한참을 가다가 예쁜 공중전화부스를 본다.

공주, 자기가 유리상자 안에 갇혔던 기억이 떠오른다.

공주, 다가가보면 부스 안에서 누군가 전화를 하고 있다.

공주, 그 앞에 멍하니 서서 보는데 안에서 전화하던 사람이 나온다.

공주, 안으로 들어가 본다.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 본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공주, 무조건 1번을 누르고 기다려보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공주, 다시 1번을 눌러본다.

공주의 뒤로 은비를 태운 인철의 차가 쌩 지나간다.



#33. 은비네 집 앞 (밤)


인철의 차가 서고 은비, 차에서 내린다. 인철도 따라 내린다.


은비 : (민망하다) 그 여자 왜 우리 실장한테 간 거야? 돈 때문이야?

인철 : 잘 자라.

은비 : 야, 강인철!

인철 : ...

은비 : 나, 너 좋아해도 되냐?

인철 : ...

은비 : 내 맘이니까 내 맘대로 해도 되지? 잘 가.


은비,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간다.

인철, 은비의 말을 애써 무시하고 싶다.

인철, 퍼뜩 공주가 떠올라 다시 차에 타고 떠난다.



#34. 공주방 (밤)


타쓰지, 불을 거의 다 끄고 소파에 등을 돌린 채 웅크리고 있다.

집사, 방으로 들어와 타쓰지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럽게 흔든다.


집사 : 도련님, 여기서 왜 이러십니까? 도련님 방으로 가서 주무세요.

타쓰지 : (등 돌린 채 일어로) 내 몸에 손대지 마.

집사 : (한숨) 이렇게까지 상심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타쓰지 : (그 자세 그대로 일어로) 나가.

집사 : .....

타쓰지 : (일어로) 나가!


집사, 잠시 보다가 돌아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타쓰지, 총알처럼 튀어 일어나 전화를 받는다.


타쓰지 : 여보세요....거기 어디야?


타쓰지, 벌떡 일어나 나간다.



#35. 공원 벤치 (밤)


인철과 타쓰지의 차가 길 가에 나란히 서 있고 두 사람,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다.

타쓰지, 인철의 전화를 귀에 대고 듣고 있다.

타쓰지, 얼굴이 점차 창백해지며 그대로 굳는다.


인철 : 니네 엄마가 일본말로 뭐라 그러는 거야? 공주 목걸이는 왜 뺏고?


타쓰지, 기분이 너무너무 이상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에꼬의 꼭두각시가 되어 놀아난 느낌이다.


인철 : (버럭) 야!

타쓰지 : ... (혼란스럽다) 돌아갈 수 없다구?

인철 : (멱살을 콱 잡는다) 뭐가, 이 자식아! 뭐가 돌아갈 수 없어? 도대체 공주를 어떻게 한 거야?

타쓰지 : (같이 소리를 꽥 지르며) 이거 좀 놔 봐! 집중을 할 수가 없잖아!!!

인철 : 뭐? 집중을 해?

타쓰지 : 그래. 이거 놔. 생각 좀 하게.

인철 :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어? 니네 엄마하고 그 집산가 뭔가 하는 놈하고 짜고 공주 갖다 버린 거잖아?

         어디야, 어따 갖다 버렸어?


인철, 타쓰지의 멱살을 끌어당겨 무섭게 노려보는데 전화벨.

인철, 타쓰지의 멱살을 탁 놓아버린다.


타쓰지 : (받는다. 일어로) 찾았어? ... 공주가 확실해? ... 어디서 봤대? ... 알았어. 계속 찾아봐. ... 찾을 때까지!


타쓰지, 전화를 끊고 인철을 무시하고 홱 돌아서 자기 차에 훌쩍 뛰어 올라타고 붕 떠난다.


인철 : 저이, 씨! 야! 너, 거기 안 서?


인철, 후닥닥 뛰어가 자기도 자기 차에 타고 타쓰지를 따라간다.



#36. 거리 (밤)


타쓰지의 차가 지나가고 인철의 차가 그 뒤를 쫓는다.



#37. 공중전화 부스 앞 (새벽)


두 대의 차가 공중전화 앞을 휙 지나쳐 프레임 아웃된다.

잠시후, 인철의 차가 요란하게 후진을 해 전화 부스 앞에 서고 타쓰지의 차도 후진을 해 인철의 차 앞에 선다.

두 사람, 거의 동시에 차에서 내려 부스 앞으로 다가간다.

두 사람, 놀란 얼굴로 부스 앞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공주, 가방에서 꺼낸 옷을 겹겹이 껴입고 신문지까지 덮고 전화박스 안에서 천사처럼 쪼그려 잠들어 있다.

얼굴은 시커멓게 먼지가 덮이고 눈물자국이 얼룩져 있다.

인철과 타쓰지, 눈물이 핑 맺힌다.

12부 끝.

































첨부파일 천년지애 1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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