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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지애] 14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3.03.13|조회수488 목록 댓글 0

[천년지애] 14











#1. 인철이네 집 앞 (밤)


나무 뒤에 숨어 울던 공주, 다시 가방을 끌고 오던 길을 돌아간다.

공주,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다. 인철과 은비의 다정함이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닌자의 차, 멀리서 공주의 뒤를 쫓는다.



#2. 호텔 - 타쓰지 거실 (밤)


타쓰지, 술을 마시며 계속 전화를 하고 있다.

공주 휴대전화의 여분의 배터리와 충전기가 테이블 위에 그대로 놓여 있다.


소리 : 전원이 꺼져 있어,....


타쓰지, 전화를 탁 끊고 술을 마시고 다시 전화를 든다. 다시 같은 소리가 반복된다.

타쓰지, 다시 전화를 끊고 피식 웃음을 날리며 술을 죽 들이킨다.

타쓰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도로록 도로록 두드리는데 집사가 들어온다.


집사 :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를 타고 갔답니다.

타쓰지 : ... (일어로) 기다려?

집사 : 그 아가씨가 갈 데라야 강인철이네 밖에 더 있겠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주무십시오.

타쓰지 : ...

집사 : 제가 한 번 확인해볼까요?

타쓰지 : ... 됐어요. 혼자 있고 싶어.


집사, 밖으로 나간다.


타쓰지 : (일어로) 기다려?


타쓰지, 피식 웃더니 점점 얼굴이 싸늘하게 굳는다.


타쓰지 :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기다렸다구?


타쓰지, 차가운 얼굴로 들고 있던 술잔을 들이킨다.



#3. 거리 (밤)


발 닿는 대로 걷던 공주,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공주,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든다.



#4. 택시 안 (밤)


공주, 뒷자리에 앉아 멍하니 밖을 보고 있다.


기사 : 어디로 모실까요?

공주 : (힘없이) 김춘추네로 가자.

기사 : 네?

공주 : 김춘추한테 가자니까.


기사, 갑자기 차를 끼익 세운다.



#5. 거리 (밤)


공주, 택시에서 내리면 택시, 쏜살같이 가버린다.

공주,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가는 택시를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보다가 주위를 둘러보는데

저만치 닌자의 차가 보이자 다시 손을 든다.

닌자들, 망설이다가 할 수 없이 공주의 앞에 차를 세운다.



#6. 강남 컨설팅 (밤)


춘추,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며 장부를 맞춰보고 있다.


준하 : (문이 부서져라 뛰어 들어오며) 회장님! 회장님! 고고공주가 왔습니다.

춘추 : (심장이 멎는다) ....뭐?


공주, 부하들이 열어주는 길로 당당하게 들어서며 안을 싸늘하게 둘러본다.


공주 : 잘들 있었느냐?


춘추, 믿기지 않는 얼굴로 자리에 앉은 채 공주를 쏘아본다.

시간경과

부하들, 병풍처럼 서 있다.

부하들, 전 같지 않게 공주를 증오하는 눈빛이다.

공주, 테이블 위에 잔뜩 차려진 음식을 아구아구 먹고 있다. 접시가 거의 다 비었다.

춘추, 말없이 밤의 황제답게 다리를 꼬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로 그런 공주를 빤히 보고 있다.

공주 물까지 죽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춘추, 부하들에게 손가락을 튕겨 싸인을 하면 부하들, 빈 접시를 착착 치운다.


공주 : 내 오늘 너에게 긴히 의논 할 일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 왔다.

춘추 : ....

공주 :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내 힘으로 밥값을 할 수 있는 일이, 그 일 뿐이더구나.

춘추 : ....

공주 : 네가 나를 얼마나 괘씸하게 여기는 줄 안다만 나를 다시 거두어 줄 수 있겠느냐?


춘추, 속으로 흠칫 놀라고 부하들, 서로 돌아본다.


준하 : (공주에게) 그러니까 취직자리를 부탁하러 온 거네.

춘추 : (공주의 속마음을 꿰뚫어보려는 듯 한참을 빤히 보다가, 공주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 정부장.

준하 : 예, 회장님.

춘추 : 그거 갖고 와.

준하 : 예? (잠시 눈알을 굴리며 생각하다가 활기차게) 예, 회장님!


준하, 책상서랍에서 결재판을 들고 와 춘추 앞에 내려놓으려는데.


춘추 : 읽어봐.

준하 : (펼치며) 차용증, 치료비 이백만원, 의상비 오백만원, 유리상자 제작비 오백만원, 포스터 인쇄비 삼백만원,

         홍보차량비 이백만원, 숙식비 삼십사만 칠천원, 해서 원금만 천칠백삼십사만 칠천원 거기에 지연이자와 영업피해,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합해서 삼천만원이 조금 넘습니다만 우수리 떼고 삼천만원으로 퉁 쳤습니다.


준하, 서류를 공주 앞에 내려놓는다.


춘추 : (차갑게) 여기다 싸인 해.

공주 : 싸인이 뭐냐?

준하 : (싸인 하는 시늉을 하며) 싸인... 이름 쓰라구.

공주 : 붓을 가져오너라.


준하, 싸인펜을 건네준다.

공주, 춘추가 가리킨 곳에 능숙한 필체로 夫餘珠 라고 흘려쓴다.


공주 : 그런데 이게 뭐냐?

춘추 : 니가 나한테 진 빚이야. 벌어서 갚아.

공주 : (얼만지도 모르고) 알았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 그리고 ... 강인철, 그 사람이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해줘라.

춘추 : (질투의 눈빛으로 본다) ... 그러지.


준하, 공주를 차갑게 대하는 춘추의 행동이 의아하다.


춘추 : (준하에게) 정부장.

준하 : 예, 회장님.

춘추 : 새로 접수한 업장으로 보내.

준하 : 예, 회장님.


춘추, 벌떡 일어나 옆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7. 옆방 (밤)


문을 등지고 서서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는 춘추의 눈에 만감이 교차한다.

공주를 다시 찾은 반가움과, 그리움, 배신감, 복수심, 그리고 두 젊은 놈들에 대한 질투와 분노 등등...



#8. 대기실 (밤)


준하, 대기실로 공주를 데리고 들어온다.

바쁘게 화장을 하며 드나들던 아가씨들, 깜짝 놀라지만 준하가 옆에 있어 말을 못한다.


준하 : (아가씨들에게) 야, 니들. 얘, 내일부터 스테이지 뛸 거니까 일 끝나면 숙소로 데리고 가.

         (공주에게) 우리 형님이 마음이 약해서 너, 그냥 받아주는 거야. 너 때문에 고생한 생각하면.. 아흐...

         그만두자. 열심히 해 봐라. (나간다)

공주 : (아가씨들에게 반갑게)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아가씨들,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얼굴로 공주를 돌아본다.



#8-1. 엄박사네 집 (밤)


방에서 순자의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엄박사, 거실에서 상기된 얼굴로 인철에게 책을 펴 보여주고 있다.

한문으로 된 책의 여기저기에 줄이 찍찍 그어져 있고 그 옆에 달필로 흘려 쓴 한문들이 보인다.


엄 : 내가 처음부터 이상하다 그랬지? 관상이 남다르다 그랬지? 응?

인철 : 누가 이렇게 해놨어요?

엄 : 내가 전에 그 공주라는 아가씨한테 빌려줬던 책이야.

인철 : 아,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죠? 걘, 왜 책만 보면 이상한 짓을 하지? 죄송해요.

엄 : 이 책뿐만이 아니야.


엄, 갑자기 서고에서 이 책, 저 책을 꺼내 펼쳐 보여준다. 한결같이 낙서가 되어 있다.

인철, 난감하다.


인철 : 정말 죄송해요. 제가 아저씨 옷도 한 벌 해 드릴께요.

엄 : 내 말은 그게 아니야, 여기를 봐봐.

인철 : (봐도 모르겠다)

엄 : 내가 오늘 낮에 보고 깜짝 놀랐어. 나름대로 주석도 달아놓고 여기저기 고쳐놓기도 했는데 기가 막힐 지경이야.

      요새 그 아가씨 어딨어? 내가 좀 만나봐야 될 거 같은데.

인철 : 만나서 뭐하시게요?

엄 : 물어봐야지. 왜 이렇게 고쳐놨는지. (책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이런 건 지금 고대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이거든. 그런데 말이야, 서슴없이 써놨어. 그것도 아주 명쾌하게. 정말 이상해. 정말 이상해.

      이건 그냥 미친 사람 취급하기에는 너무 이상한 거야. 지금 당장 좀 만나야겠어. 그 아가씨 어딨어?


순자, 문을 벌컥 열고 나온다.


순자 : 이 밤중에 누굴 만나? 빨리 안 들어와? 빨리 안 들어와? (엄의 귀를 잡아당겨 끌고 들어간다)

엄 : 어허! 어허! 옆 집 총각 앞에서 왜 이러시오, 부인!

순자 : 인철이도 빨리 가. 나, 피곤한 사람이야. 제발 잠 좀 자게 해줘.


순자, 엄을 끌고 들어가 문을 꽝 닫는다.

인철, 엄박사가 보여준 책을 다시 들여다본다.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다.


순자 : (문을 벌컥 열고) 빨리 안 가!!!

인철 : 아, 예. 안녕히 주무세요.


인철, 일어나 나간다.



#9. 인철이네 집 욕실


인철, 세수를 하는데 목걸이가 걸리적거리자 세수를 하다말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목걸이를 들여다본다.

음성사서함에 녹음된 공주의 목소리가 귀에 울린다.


공주 : (소리) 그 목걸이, 내놓지 못해! 내 초상화를 가져간 것도 모자라서 이제 내 목걸이까지 탐을 내? 이 신라의 도적놈들아!

인철 : (얼굴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곰곰이 생각한다) ... 신라의 도적놈?, ... 왕족? ... 남부여 공주 ...계룡산 ... 청학동 ...

         화전민... 술집.. 어쨌거나 내가 갖고 있었던 게 다행이네. (거울 속 자기에게) 그지? 아님 말고.


인철, 목걸이를 다시 안에 갈무리하고 셔츠의 단추를 끝까지 꼭 채운 다음 막 세수를 하는데 전화벨 울린다.

인철, 대충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전화를 받는다.


인철 : 여보세요.



#10. 강남컨설팅


춘추, 창 밖을 보고 있는데 인철이 준하를 따라 들어온다.


준하 : 회장님. 강인철이 왔습니다.


준하, 나가며 인철을 무섭게 노려보는데 인철도 지지 않고 노려본다.


춘추 : (등을 돌린 채로) 니가 부탁했냐?

인철 : 네? 뭘요?

춘추 : 사내새끼가 쪽팔리게.

인철 : 네?

춘추 : (싸늘하게 돌아본다) 장사해라.

인철 : 예?

춘추 : 우리 구역에서 장사하라고.

인철 : 아, 정말이세요?

춘추 : 정말이 아니면?

인철 : 예?

춘추 : 내가 너 같은 애들 데리고 장난하겠냐?

인철 :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춘추 : 나한테 감사할 거 없어.

인철 : 예?

춘추 : 가! (다시 창을 향해 돌아선다)

인철 : (좀 이상하지만) 예,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인철, 나간다.



#11. 컨설팅 문 앞


인철, 뭔가 이상하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다.



#12. 마케팅 사무실


타쓰지, 굳은 얼굴로 들어와 직원들의 인사도 받지 않고 문을 꽝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직원들,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면 타쓰지, 버티칼을 확 쳐버린다.

직원들 쑤군쑤군 대기 시작한다.


이대리 : 오늘은 왜 혼자 왔대? 어떻게 된 거야?

은비 : 내 충고가 먹혔나?

이대리 : 그게 무슨 얘기야?


노크소리와 함께 꽃배달이 들어온다.


배달 : 이영옥씨가 어느 분이세요?

이대리 : 전데요?

배달 : 여기 싸인해주세요.

이대리 : (싸인을 하며) 어머, 이게 뭐야? 꽃인가 보네? 누가 보낸 거예요?

배달 : 모르겠는데요. 수고하세요.


배달, 꽃을 전해주고 돌아간다.


은비 : 어머, 웬일이야? 이대리님 좋으시겠어요.

이대리 : (풀어보며) 누굴까? 누구지?

은비 : 여기 카드 있네요.

이대리 : (설레는 마음으로 카드를 열며) 누구지? 누구지?


‘첫눈에 반했습니다. - H'


이대리 : 어머!

은비 : H? H가 누구예요?

이대리 : 글쎄... (혹시) 혁? (말해놓고 좋아한다)

은비 : 이혁씨요?



#13. 옷공장


인철과 혁, 그동안 처박아 놨던 의상들을 꺼내 착착 접어 가방에 담고 일 나갈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혁 : 이야, 이제 안팎으로 번다 이 말이지? 나가서도 뛰고 여기서도 벌고. 내가 고은비가 왔다간 이후로 뭔가 일이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더라니까. 걔 싸이즈를 재는데 딱 그 뭐냐? 얘가 입으면 우리 옷이 뭔가 잘 될 거 같은 거. 응?

      그동안 모델들이 이상해서 그렇지, 사실 우리 옷 정말 예술 아니냐? 고은비 같은 애가 입어주면 우리 옷이 살지.

      이야, 아무튼 고은비, 진짜 예술이드라. 니 말대로 제대로야, 제대로. 일 잘해, 얼굴 이뻐. 똑똑해. 몸매 완벽해.

인철 : 싸가지라 싫다며?

혁 : 내가?

인철 : 그래.

혁 : 싸가지라 귀엽다 그러지 않았나?

인철 : 그래?

혁 : 근데 김춘추가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

인철 : 글쎄, ....


인철, 김춘추의 태도를 떠올리며 뭔가 석연치 않은 얼굴로 가방을 마저 꾸리는데 전화벨.


인철 : (받는다) 세계적인 브랜드 강남어패럴입니다. ... 안녕하세요? ... 예? .... 아, 예. 잠시만요. (혁에게 수화기를 넘긴다)

혁 : (인철에게) 누구? (받으며) 네, 전화 바꿨습니다.

인철 : 나, 갔다 올게. (나간다)

혁 : 아, 이대리님. 어쩐 일이세요? ... 네? 꽃이요?



#14. 대기실


준하 : (거울을 들여다보며) 첫눈에 반했습니다. 에이치 흐흐.


공주, 구석에서 언니들한테 춤을 배우고 있다.

가르치는 언니들, 미칠라 그런다.


꼬리 : (짜증난다) 그게 왜 안 되는 거니? (몸을 마구 비틀며) 이게 왜 안돼? 이게? 자, 음악에 맞춰서 다시 해보자.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하나 둘!


공주, 어정쩡하게 따라한다.


공주 : 그것 참, 보기보다 어렵구나.


거울 속으로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준하, 못 참고 나선다.


준하 : 넌 춤도 안 춰 봤냐? (막 해 보이며) 이게 안돼, 이게? 팔을 이렇게 굴리란 말이야.

         (밤무대 무용수처럼 춰 보이며) 이렇게, 이렇게 굴리는 척만 하란 말이야. 굴리는 척만. 발도 스텝을 밟는 척만,

         이렇게, 밟는 척만! 그래야 몇 시간 씩 버티지. 알았지? 자, 오빠, 잘 따라 해 봐.


무용들, 나서는 준하 때문에 더 미치겠다.


꼬리 : 부장님. 그냥 그 때처럼 상자 안에 가만 있으라 그러면 안돼요?

여1 : 안되는 애 꼭 시켜야 돼요?

준하 : 변화를 주자 이 말이지. 변화를. 상자 안에 가만히 서 있는 거 보단 (춤을 춰 보이며) 이렇게, 이렇게 춰주면

         손님들도 즐겁고 본인도 안 지루할 거 아냐. (공주에게) 안 그래?


준하, 공주를 홱 돌아보면 공주, 심각하게 팔과 다리를 휘저어 보고 있다.

준하와 무용수들, 미치겠다.


준하 : 야, 야, 관 둬, 관 둬. 회장님은 어떻게 이런 애를!


이 때 춘추, 부하들과 함께 들어온다.

준하, 화들짝 놀라고 무용들, 자기 자리로 흩어진다.


준하 : 나오셨습니까, 회장님!


춘추, 말없이 공주를 본다.


준하 : 지금 댄스교습 중,,

춘추 : 옷이 너무 야한 거 아니냐?


춘추, 한 마디 내뱉고 다시 돌아서 나간다.



#15. 클럽 (밤)


인철, 웨이터들에게 박카스 한 병씩을 안기며 안으로 들어오다가

무대 위에 설치된 유리상자와 그 안에 들어 있는 공주를 보고 그 자리에 굳는다.

공주, 뭔가 골똘히 생각하듯 유리에 등을 기대고 서서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인철, 믿을 수 없지만 아무리 봐도 공주다.

인철, 가까운 자리로 가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공주를 올려다본다.

어떻게 된 일이지? 쟤가 여기 왜 있지? 김춘추한테 잡혀왔나? 그럼, 타쓰지는?

순간, 니가 부탁했냐던 김춘추의 말이 머리를 스친다. 그럼, 공주가? ...

인철, 무대 위로 성큼 올라가 유리상자의 문을 벌컥 연다.

공주, 고개를 들다가 인철이 서있자 얼굴이 싸늘하게 굳는다.


인철 : 너, 여기서 뭐하는 거야?

공주 : (차갑게) 일한다.

인철 : 나와.


인철, 손목을 잡고 끌어내려는데 공주, 인철의 손을 탁 뿌리친다.


공주 : 일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어서 물러가라.

인철 : 뭐?


인철, 안되겠는지 자신도 유리상자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는

공주의 옆 벽에 손을 짚고 코앞에서 공주의 눈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인철 : 너, 어떻게 된 거야?

공주 : 니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인철 : (버럭) 어떻게 된 거 냐니까!!!

공주 : (눈물이 핑 돌지만 꾹 참고 쏘아본다)

인철 : 너, 공주래매? 니 입으로 공주라고 그랬으면 적어도 공주인 척은 해야 될 거 아냐!

         공주라는 애가 여기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공주 : ...

인철 : 그 자식이 이리로 보낸 거야?

공주 : 그런 거 아니다.

인철 : 그럼, 김춘추한테 잡혀 온 거야?

공주 : (무섭게 버럭) 그런 거 아니라니까!

인철 : (다시 손목을 잡고 끌어내며) 그런 거 아니면 나와.

공주 : (손을 확 뿌리치며 정색을 하고) 이 손 놓고 네 할 일이나 해라!

인철 : ...너, 나 때문에 이러는 거 같은데 나 하나도 안 고마워. 그러니까 나와 좀!

공주 : 내가 너 따위 때문에 이런 다고 생각하느냐?

인철 : (충격 받는다) 뭐?...너 따위?


인철과 공주, 서로 화난 얼굴로 상대방을 보는데

춘추의 부하들, 유리문을 열고 인철의 뒷덜미를 잡아 밖으로 끌어낸다.

인철, 힘없이 끌려 나가지만 공주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공주, 인철이 끌려 나가면 스스로 유리문을 닫고 다시 아까처럼 유리벽에 기대서서 바닥을 내려다본다.

눈물이 발등에 뚝뚝 떨어진다.

인철이 맥없이 무대에서 끌어내려지는 모습을 입구에서 싸늘하게 지켜보던 춘추, 부하들과 밖으로 나가버린다.


공주 : (독백) 그래...나는 공주다....아니, 공주였다.... 이제는 그 이름마저 아스라해진 한 나라의 공주였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먼 옛 적의 공주라는 것이 이제 와 너와 나 사이에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끌려 나가는 인철을 그제야 돌아보며) 나는 이제 공주도 무엇도 아니다. 네 말대로 모름지기 공주라면

         장작더미에 누워 쓸개를 핥고 있어야 했다. 나라와 백성을 잃은 아픔을 단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그 아픔을 잊으려 너를 아리라 부르고 매달린 것도 모자라 원수의 얼굴을 한 후지와라의 덫에

         기꺼이 빠져 들었다. 그 자의 달콤한 말과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그가 주는 안락함에 빠져

         내 처지를 까맣게 잊고 싶었다. 그런 나를 나 자신이 용서할 수 있을까?....



#16. 클럽 룸 (밤)


춘추,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 춘추의 앞에는 공주가 싸인한 차용증이 놓여 있다.

춘추, 공주를 저대로 둬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문 밖이 소란스러워진다.


인철 : (소리) 아, 좀 비켜!

준하 : (소리) 이 자식이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개겨?

인철 : (소리) 안 비켜!


문이 벌컥 열리고 인철, 준하와 부하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들어온다.

인철, 춘추네 부하들에게 양 팔이 잡혀 있다.


춘추 : 뭐야?

인철 : 니들 쟤한테 무슨 짓 한거야?

춘추 : 뭐, 이 자식아?

준하 : (인철의 뒷통수를 뻑 갈긴다) 이게 미쳤나!

인철 : 아! (날카롭게 돌아본다)

준하 : (손을 쳐 들며) 아? 아? 아흐, 이걸 그냥.

춘추 : 시끄러!

준하 : 죄송합니다, 회장님.

춘추 : 내가 묻고 싶은 얘기야. 너희들이야말로 쟤한테 무슨 짓 한 거야?

인철 : 나, 장사 안 해도 돼. 쟤 당장 내 보내.

춘추 : 너같은 자식, 장사 하든 말든 나, 관심 없다.

인철 : (이성을 잃고 꽥) 당장 내 보내. 안 내보내면 너 나한테 죽어!

춘추 : (피식) 니가 데리고 나갈 수 있으면 데리고 나가 봐. 나 안 말려.

인철 : 뭐?

춘추 : 덜 떨어진 놈. 끌고 나가!


준하와 부하들, 버티는 인철을 두들겨 패며 나간다.


인철 : 놔! 이거 안 놔!



#17. 클럽 앞 (밤)


두들겨 맞은 인철, 춘추 부하들에게 끌려 나온다.

부하들, 인철을 길 쪽으로 확 밀어버린다.


준하 : 장사 다시 하게 해 줬으면 고맙게 생각하고 옷이나 팔러 다닐 일이지, 어디 와서 개겨?

         너 오늘 첫 날이라 봐 주는 거야. 한번만 더 우리 회장님한테 개기면 죽는다.


준하와 부하들, 안으로 들어가고 인철, 팽개쳐진 가방을 깔고 쪼그려 앉아 고민에 휩싸인다.

공주의 태도가 이해가 안 간다.



#18. 마케팅 사무실


인철,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이대리 : 어머, 강인철씨!

인철 : 안녕하세요.

은비 : (반갑게 일어나며) 안녕.

인철 : 어. 안에 있어?

은비 : 일본에 출장 가셨는데?

인철 : 일본? ... 언제 오는데?

은비 : 한 이삼일쯤?

인철 : 알았어.


인철, 홱 돌아서 그냥 나가버린다.


은비 : 어머, 인철씨! 인철씨!


은비, 직원들이 궁금한 얼굴로 쳐다보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앉아서 일하는 척 한다.



#19. 타쓰지네 서재


타쓰지, 지에꼬와 마주 앉아 있다.


지에꼬 : 니가 생각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내보낸 기집애를 다시 데려다가 사무실까지 끌고 다녀?

            그리고 그까짓 걸 찾으러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지에꼬, 서랍에서 공주의 목걸이를 꺼내 타쓰지 앞에 던진다.

타쓰지, 지에꼬가 목걸이를 너무 쉽게 내주자 오히려 당황한다.


지에꼬 : (일어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감정이나 한 번 받아보려고 가져왔다.

            돌려 달라 그러디? 정말 뻔뻔한 애구나. 그건 가짜야.

타쓰지 : ... 그렇다면, 돌아갈 수 없다는 얘긴 뭐죠?

지에꼬 : (흠칫 놀라지만 태연하게) 그게 무슨 말이냐?

타쓰지 : 기억 안 나세요? 공주한테 목걸이를 빼앗을 때 하신 말씀이잖아요?

지에꼬 : (웃는다) 그 방에 도청장치라도 해놨니?

타쓰지 : 그 말이 무슨 뜻이냐구요.

지에꼬 : 별 뜻 아니다. 나한테 정체가 들통 났으니 아무데도 갈 수가 없을 거란 얘길 한 거야.

            너 때문에 하마터면 그 기집애한테 가문이 농락당할 뻔 했어.

타쓰지 : ... (뭔가 석연치 않다)

지에꼬 : 어쨌거나 자기발로 걸어 나갔다며?

타쓰지 : ...

지에꼬 : 망신당하긴 싫었나 보지. 다시는 그 여자애 얘기 입에 올리고 싶지 않으니까 알아서 처신해.


지에꼬,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타쓰지, 바닥에 버려진 목걸이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집어 들고 허탈하게 피식 웃는다.



#20. 동경 - 술집 (밤)


술에 떡이 된 타쓰지와 친구들, 여자들과 어울려 깔깔거리며 신나게 놀고 있다.


친구1 : (이하 전부 일어) 그때 그 여자애랑은 잘 돼 가냐?

친구2 : 우리 서울에서 한번 놀자. 왜 안 불러?

타쓰지 : 나, 서울, 안 가. 갈래믄 니들이나 가.

친구1 : 저번엔 서울이 좋다며?


이때 준꼬가 타쓰지 앞에 선다.

타쓰지와 친구들, 준꼬를 올려다본다.


준꼬 : 왜 나오라 그런 거야?


타쓰지, 풀린 눈으로 준꼬를 올려다보더니 준꼬의 손목을 잡아끌어 자기 무릎에 앉히며 여자의 몸을 뒤로 젖혀 키스를 한다.

친구들, 재밌다는 듯이 낄낄거린다.

타쓰지, 오랜 키스 끝에 얼굴을 뗀다.

준꼬, 숨을 몰아쉬며 타쓰지를 이글이글 바라본다.


준꼬 : 보고 싶었어.

타쓰지 : ...

준꼬 : 나 용서해줄 수 있어?


타쓰지, 피식 웃더니 준꼬를 무릎에 앉힌 채 다시 술을 쫙 들이킨다.



#21. 옷공장


인철,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소파에 찌그러져 누워 있다.


혁 : (다가오며) 얘가 요새 일 좀 하는 거 같더니 또 왜 이래? 공주 걔는 왜 맘 좀 잡을 만하면 흔들어 놓냐?


혁, 인철을 발로 뻥 걷어찬다.

인철,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통화버튼을 누른다. 타쓰지의 번호가 뜬다.


안내 :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중입니다. ....

인철 : 너, 도착하면 바로 전화해!


인철, 전화를 확 끊고 다시 아까처럼 누워버린다.


혁 : (어처구니가 없다) 야. ... 얌마! ... 이게 미쳤나... 야!


혁, 다시 발로 뻥 걷어차면 인철, 벌떡 일어나 앉는다.

혁, 깜짝 놀란다.


인철 : 내, 이 기집애를 그냥!


인철, 다시 통화버튼을 누르고 전화기를 귀에 댄다.


인철 : 타쓰지, 너! 도착하면 바로 전화해야 된다, 응?


인철, 전화를 끊고 다시 누우려는데 은비가 들어온다.


은비 : 안녕!

혁 : (너무 반갑다) 안녕!

인철 : 너, 잘 왔다. 그 자식 아직도 안 왔냐?

은비 : (자기 집처럼 소파에 앉으며) 글쎄, 늦어지네. 공주란 여자애도 데리고 간 거야?

혁 : 공주는요,

인철 : (말 끊으며) 넌 근무 시간에 왜 밖에 돌아다니고 그러냐?

         아무리 바지저고리 실장이지만 실장 없다고 그래도 되는 거냐?

은비 : 점심시간이잖아. 밥 먹으러 가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혁 : 어, 잘됐네요. 우리도 지금 막 뭐 시키려던 참이었는데.

은비 : 그래요?

혁 : (겉옷을 챙겨 입으며) 뭐 사주실 건데요?

인철 : 둘이 나가서 먹고 와. 난 밥 맛 없으니까.


인철, 다시 돌아눕는다.


혁 : (신난다) 그럴래? 그럼 우리 둘이 나갈까요? 오늘 날씨도 좋던데 좀 멀리 나갈까요?

은비 : 야! 강인철! 너, 안 일어나!

인철 : (귀를 막으며) 아, 시끄러. 니들끼리 나가서 먹어.

은비 : 야, 쫌팽아. 너 정말 너무한다. 뽀뽀까지 한 사이에 이래도 되는 거야?


인철, 당황하여 혁이를 보고 혁, 인철을 째려본다.


인철 : 그런 거 아니야. 아, 증말. 아... (은비에게) 얘는 정말!


인철, 가방 하나를 둘러메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은비, 뭐야? 하는 얼굴로 보고

혁, 우울한 얼굴로 다시 겉옷을 벗는다.



#22. 숙소


무용들, 화장을 하면서 비디오를 보고 있다.

공주, 휴대 전화를 손에 꼭 쥐고 TV 안에 빨려 들어갈 듯이 고개를 제일 앞으로 빼고 보고 있다.


무용1 : (공주의 짐에서 인철이 만들어 준 옷을 꺼내며) 어머, 이거 이쁘다. 야, 나 이거 오늘 빌려 주라.

공주 : (비디오에 빠져 있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린다. 깜짝 놀라 옷을 확 뺏는다) 손대지 마라! 이건 안 된다.


공주, 다시 자기 트렁크에 인철의 옷을 곱게 개서 집어 넣고 트렁크를 자기 옆으로 바짝 끌어 당겨

다시 비디오 삼매경에 빠진다.


무용1 : 차, 드럽게 치사하게 구네.

꼬리 : (신경질) 누가 전쟁 영화 빌려 왔어. 멜로 빌려 오라니까.

무용2 : 명작이라고 비디오 아저씨가 추천해 준건데?

꼬리 : 그 아저씨가 추천 한 거치고 재밌는 거 봤어?

무용2 : 그럼, 다음부터 니가 빌려.


무용들, 그제야 넋을 놓고 보고 있는 공주를 본다.


꼬리 : (공주에게) 야, 넌 재밌냐?

공주 : (기관총을 가리키며) 이게 뭐냐?

꼬리 : 기관총.

공주 : 이런 건 어딜 가야 구할 수 있느냐?

일동 : 뭐?

공주 : (혼잣말로) 이런 거 하나만 있다면 당나라, 신라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을 텐데...

         그래, 그렇게 되면 역사가 바뀔 거야. (다시 다급하게)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


언니들, 무섭다.



#23. 강남컨설팅


공주, 춘추와 마주 앉아 있다.


춘추 : (흠칫) 뭐? 기관총?

공주 : 전에 얘기하지 않았느냐? 김춘추가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춘추 : (준하와 부하들을 슬쩍 돌아보고 진지한 얼굴로 잠시 고민한다) ... 어따 쓰게?

공주 : 혹시라도 돌아가게 된다면 하나 가져가려고 그런다.

춘추 : 돌아가다니? 어디로?

공주 : ... 그건 알 거 없다.


춘추와 부하들, 공주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춘추 : (자존심 때문에) 음.... 까짓 거, 러시아 애들 통하면 못 구할 거는 없지만 왜 그러는지 이유는 알아야 할 거 아냐?

공주 : 간을 꺼내 씹어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 있다.

춘추 : (흠칫, 하지만 인철과 타쓰지 얘기일 거라고 생각하고) 한 번 알아보지.

공주 : 고맙다.


공주, 일어나 나간다.


춘추 : ... 나쁜 자식들. 도대체 공주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춘추, 가슴 아픈 얼굴로 공주가 나간 쪽을 돌아본다.



#24. 클럽 (밤)


인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유리 상자부터 확인한다. 유리 상자가 비어있다.

인철, 갑갑한 얼굴로 돌아서는데 공주, 안에서 나오다가 인철과 마주친다.

인철, 공주를 보자 멈칫하는데 공주, 안타깝지만 시선을 피하고 인철을 지나쳐 대기실쪽으로 들어가 버린다.

인철, 공주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하다.



#25. 대기실


인철, 언니들에게 둘러 싸여 옷을 나눠 주며 구석에 앉아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공주를 째려보고 있다.


무용1 : 역시 오빠가 만들어준 옷을 입어야 섹시하게 옷태가 난다니까.

무용2 : 오빠도 이제 이런데 돌면서 옷 팔기는 좀 그렇겠다. 내가 볼 땐 세계적인 디자이넌데.

꼬리 : 오빠도 빨리 샵을 내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영세하게 보따리장사만 할 거야?


인철, 아가씨들 떠드는 소리에는 관심없다.

인철, 도저히 못 참겠는지 공주에게 다가간다.


인철 : (공주를 잠시 보다가) 기관총은 뭐하게?


공주, 인철이 다가오자 먹는 것을 잠시 멈추지만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막 먹는다.


꼬리 : (옷을 고르다가) 당나라놈들하고 신라놈들 쓸어버린대. 걔네들 땜에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인철 : (심각하게) 너, 도대체 왜 그래? 그 자식하고 무슨 일 있었어?

공주 : .....

인철 : 야! 너,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사람이 말하면 쳐다는 봐야될 거 아냐!

공주 : (빤히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린다)

인철 : 하, 차! (공주 앞에 얌전히 놓인 핸드폰을 발견하고 집어 들며) 그 자식 전화 기다리냐?

         이거 왜 들고 다니냐? 밧데리도 없는 거.


공주, 확 빼앗고 인철의 귀뺨을 후려 갈긴다.

언니들, 깜짝 놀라고 인철, 어처구니가 없다.

공주, 다시 라면을 먹는다.

인철, 공주를 잠시 노려 보더니 옷가방을 확 챙겨 밖으로 나간다.


인철 : 오빠, 간다. 내일 다시 올께.


공주, 속상하다.



#26. 인철이네 집 (밤)


인철, TV를 켜 놓고 라면을 먹고 있다.

인철, 공주를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다.

인철, 다시 미친 듯이 라면을 먹는데 전화벨 울린다.


인철 : 여보세요.



#27. 은비네 집 (밤)


은비, 불을 다 꺼놓고 소파에 누워 TV를 보며 전화를 하고 있다.


은비 : 아직 안 잤어?

인철 : ... 안 자니까 전화 받지.

은비 : 지금 뭐해?

인철 : 라면 먹는다, 왜?

은비 : 밥 없어? 속 버리게 왜 라면 먹어?

인철 : ...

은비 : 우리 중간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만나서 소주 한잔 할까?

인철 : 야, 지금 몇 시냐? 너, 내일 출근 안 해?

은비 : 잠이 안 와서 그래.

인철 : 난 졸려. 라면 먹고 잘 거야.

은비 : 야, 강인철. 나 미쳤나봐. 너 보고 싶어.

인철 : 너, 왜 그래, 정말?

채 : (불을 확 켜고 다가와 은비의 손에서 전화기를 확 뺏는다) 너, 뭐하는 자식이야? 끊어!!!


채여사, 전화를 끊어버린다.


은비 : 엄마, 왜 이래?


은비, 채여사의 손에서 전화기를 뺏으려는데.

채여사, 너무나 화가 나 다짜고짜 은비의 뒤통수를 뻑 갈긴다.


은비 : 아! 진짜, 왜 이래?

채 : 뭐? 나 미쳤나 봐? 보고 싶다, 강인철? 너, 정말 미쳤니? 니가 제 정신이야?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봉수 : (잠옷바람으로 안에서 후닥닥 달려 나오며) 뭐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응?

채 : 너, 정말 왜 그래? 너, 엄마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은비 : 엄마야말로 왜 그래? 나,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가 원하는 대로만 하고 살았어.

         먹으라는 거 먹고, 입으라는 거 입고, 하지 말라면 안 하고, 친구도 엄마가 골라주는 대로 사귀고.

         대학교도 엄마가 원하는 학교 들어갔어. 그 정도 했으면 된 거 아니야?

채 : (억울해하며) 내가 나 좋으라고 그런 거냐? 다 너 잘 되라고 그런 거지!

은비 : 알아. 아는데, 이제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게 놔둘 때도 됐잖아?

채 : 놔둬? 잘못된 길로 가는 게 뻔히 보이는데 놔둬? 왜 하필 그런 놈이야?

      어느 정도라야지. 걔가 너하고 수준이 맞는다고 생각해? 너한텐 그 후지와라가 딱이야. 그걸 왜 몰라?

은비 : 나도 애써 봤잖아? 나도 노력했어. 근데 마음이 안 가는데 어쩌란 말이야?

채 : 너, 자꾸 이러면 진짜 그 자식 가만 안 둔다?

은비 : 엄마가 뭔데? 엄마가 무슨 권리로?

채 : 엄마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엄마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으면 니 마음대로 해.

      (봉수에게) 당신도 조심해. 내가 몰라서 가만있는 줄 알아?

봉수 :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채여사, 무섭게 말하고 확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은비, 울면서 방으로 들어가고

혼자 남은 봉수, 무서워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소파에 앉아 TV를 본다.



#28. 거리 (밤)


타쓰지, 준꼬와 함께 차를 타고 호텔로 향하고 있다.


준꼬 : (일어로) 서울도 복잡하네. (타쓰지에게 매달리며) 고마워. 덕분에 한국 구경도 해 보네.


타쓰지, 전처럼 공주의 홍보차와 나란히 신호대기에 걸려선다..

타쓰지,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다가 얼굴 굳는다. 기분이 더럽다.

타쓰지, 신호가 바뀌자 홍보차가 떠나기 전에 부앙 출발한다.



#29. 호텔 - 타쓰지 거실 (밤)


타쓰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면 준꼬, 따라 들어와 이 방 저 방 구경을 하고 돌아다닌다.

타쓰지, 준꼬가 그러거나 말거나 술부터 따라 들고 소파에 앉는다.


준꼬 : (돌아다니며, 일어로) 아, 좋다. 정말 좋다. 후지와라 대단해. 우와, 욕실 끝내주네. (욕실로 들어간다)


타쓰지, 소파 옆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본다. 부재중 수신이 수십건이 찍혀 있다.

확인해보면 모두 강인철이다.

타쓰지, 전화기를 든 채 전화를 할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통화버튼을 누른다.


인철 : (다급하게) 여보세요!

타쓰지 : 왜 전화했어?

인철 : (소리) 너 지금 어디야!

타쓰지 : 용건이 뭐야?

인철 : 너, 지금 서울이지. 당장 나와!

타쓰지 : 왜?

인철 : 왜에??

타쓰지 : 공주 얘기라면 나 할 얘기 없는데?

인철 : 할 얘기가 없어? 너 거기 꼼짝 말고 있어!


인철, 전화를 확 끊는다.

타쓰지, 차갑고 냉정하게 전화를 끊는데.


준꼬 : (욕실에서 고개만 내밀고) 우리 같이 목욕부터 할까?



#30. 호텔 앞 (밤)


인철의 차가 무섭게 서고 인철이 차에서 내려 문을 부숴버릴 듯이 닫는다.



#31. 호텔 욕실 (밤)


타쓰지, 욕조에 앉은 채 전화를 받고 있다.


타쓰지 : (일어로) 올려 보내.


타쓰지, 무표정한 얼굴로 전화를 끊는다.



#32. 타쓰지 거실 (밤)


타쓰지, 문을 열면 인철이 서 있다.

타쓰지, 아랫도리에만 수건을 두르고 있다.


타쓰지 : 들어와.


타쓰지, 씩씩거리는 인철을 무시하듯 문을 열어놓은 채 돌아서서 홈바로 가고

인철, 기가 막힌 얼굴로 보다가 문을 거칠게 닫고 따라 들어간다.


타쓰지 : (술을 따르며) 앉아라.


인철, 노려보다가 앉으면 타쓰지, 술을 들고 와 건네고 맞은편에 앉는다.


인철 : (초인적인 인내로 꾹 참으며) 어떻게 된 거야?

타쓰지 : 뭐가?

인철 : 뭐가?

타쓰지 : 그래.

인철 : 그래?


인철, 더 이상 못 참고 주먹을 날리려는데.


준꼬 : 타쓰지!


인철, 돌아보면 준꼬가 속옷바람으로 나오다가 인철을 보고 깜짝 놀란다.


준꼬 : (일어) 누구야?

타쓰지 : (일어) 들어가 있어.


준꼬,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간다.


인철 : (웃음 밖에 안나온다) 허, 허, 허. 정말 싫증나서 그런 거냐?

타쓰지 :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거야?

인철 : 그래서 보낸 거야?

타쓰지 : 난 보낸 적 없어. 제 발로 나갔지.

인철 : 너, 지금 걔가 어디 있는지 알아?

타쓰지 : 알아.

인철 : 알아?

타쓰지 : 원래 거기 있던 여자 아니야?

인철 : ...

타쓰지 : 뭐, 어쨌든 상관없어. 이제 끝났으니까. 그러니까 앞으로 너도, 그 여자 일로 나 찾아오지 마.

인철 : ...

타쓰지 : 아, 그리고, (벗어놓은 웃옷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낸다) 이거, 그 여자한테 좀 돌려줘라.


인철, 타쓰지의 눈을 무섭게 노려보다가 피식 웃으며 낚아채듯 목걸이를 잡는다.

타쓰지, 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연다.


타쓰지 : 잘 가라.

인철 : (나가다가 타쓰지 앞에 선다) 너, 정말 대단하다.

타쓰지 : 고맙다.


인철, 느닷없이 회심의 일격을 날리는데 타쓰지, 고개만 픽 돌아갔다 다시 돌아온다.

인철, 흠칫 놀라 문을 꽝 닫고 나간다.



#33. 문 앞 (밤)


인철, 주먹이 너무 아파 손을 털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는데 방 안에서 여인의 비명이 들린다.


준꼬 : (소리, 일어) 타쓰지! 괜찮아! 타쓰지! 정신 차려! 타쓰지!


인철, 고개를 갸우뚱하며 간다.



#34. 대기실


인철, 화 난 얼굴로 안으로 성큼 성큼 들어와 거울 앞에 앉아있는 공주의 손목을 홱 잡아 일으켜 밖으로 끌고 나간다.


인철 : 나와!



#35. 복도


인철, 공주의 손목을 잡아 끌고 빈 방을 찾아 룸마다 문을 열어본다.

드디어 빈 방을 발견한 인철, 공주를 안으로 확 밀어 넣고 들어간다.



#36. 룸


인철, 공주를 벽에 세우고 한 팔로 벽을 짚고 공주를 무섭게 내려다본다.


인철 : (화를 꾹 참으며) 너, 지금 별들의 고향 찍냐?

공주 : 뭐라구?

인철 : 그 자식한테 버림받았다구 지금 자학하는 거야?

공주 : ...

인철 : (버럭) 아무리 그래도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런 데 와 있어!

공주 : ....

인철 : 아니면 너, 나한테 미안해서 이러는 거야? 내 앞에서 그 자식 따라 간 게 그렇게 맘에 걸렸어?

공주 : (차갑게 보며) 나한테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거냐?

인철 : (너무 안타깝다) 너, 내가 지금 무슨 얘기하고 있는지도 몰라? 너, 바보야? 공주라고 잘난 척 할 땐 언제고,

         이젠 말귀도 못 알아 들어? 초상화가 어쩌구 저째? 신라의 도적놈이 어째? 뭐? 아리가 어떻구, 김유석이 어떻구,

         호위무사가 어때? 너, 그 얄미운 집사 말대로 사기꾼이냐? 아니면 타쓰지 그 자식 말대로 정말 여기 출신이냐?


공주, 도저히 못참고 인철의 귀뺨을 주먹으로 갈긴다.


공주 : 너는 그 자를 욕할 자격이 없다.

인철 : (피식 웃는다) 너 그 자식, 정말 좋아하는구나?


공주,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하자 꾹 참고 인철을 지나 나가려는데.


인철 : (진짜 목걸이를 목에서 빼주며) 야, 이거 그 자식이 너 갖다 주랜다.


공주, 목걸이를 홱 낚아채고 밖으로 나간다.

인철, 괴롭다.



#37. 클럽 어느 구석


공주, 혼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38. 바 (밤) - 또는 포장마차


인철, 술을 마시고 있는데 은비, 들어온다.


인철 : (은비를 발견하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은비야! 고은비! 여기!

은비 :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어?

인철 : 그래, 나 오늘 술 좀 마셨다. 왜 그러면 안 되냐?

은비 : 무슨 일 있었어? 혹시 우리 엄마 만난 거야?

인철 : 니네 엄마를 내가 왜 만나?

은비 : 그럼, 뭐야? 왜 이래?

인철 : 살다 보면 취하고 싶은 날도 있잖냐?

은비 : 그 기분이야 나도 알지.

인철 : 알면 됐다. 우리 오늘 먹고 죽자.

은비 : ... (조심스럽게) 무슨 일인데 그래?

인철 : (피식 웃는다) 무슨 일인진 내가 너한테 미안해서 말 못하겠다.

은비 : (짐작하고) 공주 얘기야?

인철 : (피식)

은비 : (마음은 아프지만) 괜찮아. 너, 나, 안 좋아하는 거 알아.


인철, 보일 듯 말 듯 눈물이 맺히는 은비의 눈을 빤히 들여다본다.



#39. 타쓰지 방 (밤)


준꼬는 침대 위에 엎어져 잠이 들었고 타쓰지는 그 옆에 앉아 멍하니 TV를 보고 있다.

클럽 홍보차에 있던 공주의 모습이 지워지질 않는다.

타쓰지, 아무래도 안되겠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40. 클럽 앞 (밤)


타쓰지, 차를 미끄러지듯 세우고 입구를 본다. 입간판에 공주의 홍보포스터가 붙어 있다.

타쓰지, 차에서 내려 클럽으로 들어간다.



#41. 클럽 입구 계단 (밤)


타쓰지, 웨이터와 기도들의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간다.

계단 벽을 따라 공주의 포스터가 주르륵 붙어 있다. 점점점 기분이 더러워진다.



#42. 클럽 안 (밤)


타쓰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유리상자에 손님들이 술을 뿌리고 안주를 집어던지는 것을 본다.


소리 : 집어쳐!

소리 : 옷은 또 그게 뭐야?

소리 : 이게 무슨 쇼야? 이따위 쇼 보려고 돈 내고 들어온 줄 알아?

소리 : 야, 좀 화끈하게 벗어봐!!


공주, 상자 안에서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타쓰지, 충격이다.

취객들, 유리상자를 에워싸고 웨이터들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급기야 웨이터들을 물리치고 유리상자 안에 들어가 공주 몸에 손을 댄다.

공주, 주먹을 뻗으려다가 타쓰지와 눈이 마주친다.

공주, 수치심에 고개를 돌려 타쓰지의 시선을 피하고 그 순간 취객들에게 옷이 찢겨지지만.

뒤늦게 나타난 춘추의 부하들이 취객들을 쫓아내는 동안

타쓰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굳은 듯 서서 보다가 돌아선다.

공주, 나가는 타쓰지를 보며 모멸감과 자괴감에 눈물을 흘린다.
































첨부파일 천년지애 14.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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