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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지애] 15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3.03.13|조회수355 목록 댓글 0

[천년지애] 15











#1. 클럽 앞 (밤)


타쓰지, 클럽 안에서 굳은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나와 차문을 벌컥 열고 잠시 서 있다가

다시 부셔져라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간다.



#2. 클럽 안 (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음악소리가 흥겹게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다시 술을 마시고 있다.

웨이터 한두 명이 유리상자에 묻은 안주를 닦아내고 있고

난동을 부리던 취객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공주도 보이지 않는다.

타쓰지, 지나가는 웨이터를 손짓해서 부른다.



#3. 대기실 (밤)


공주, 자신을 바라보던 타쓰지의 눈빛이 지워지지 않는다.

공주, 안 울려고 애쓰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꼬리 : 미친놈들, 술 쳐먹었으면 곱게 쳐먹을 일이지. 꼭 그런 놈들이 있어요.

무용3 : 울지마. 뭘 그런 일 갖고 우냐?

무용1 : 그러게. 그런 꼴 한 두 번 봐?


이때 상무가 들어온다.


상무 : 야! 너, 이리 좀 와 봐!



#4. 룸 (밤)


타쓰지, 제일 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룸에 혼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잠시 후 상무가 공주를 데리고 들어온다.

공주, 안으로 들어오다가 타쓰지가 앉아 있자 흠칫 놀라 선다.


상무 : 그럼, 좋은 시간 되십시오.


상무, 깍듯이 인사하고 문가에 서있는 공주를 안으로 밀어 넣으며 문을 닫고 나간다.


타쓰지 : 앉아.


공주, 앉는다.

타쓰지,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연거푸 술만 들이켜고

공주도 우두커니 테이블만 내려다본다. 잠시 침묵.


타쓰지 : (차갑게) 기껏 여기 오려고 그렇게 가겠다 그런 거였어?

공주 : ...

타쓰지 : 그런 꼴이나 당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공주 : ...

타쓰지 : 한 잔 할래?

공주 : 아니다. 지금은 일하는 중이라 안 된다.

타쓰지 : (어처구니가 없어 비웃음이 나온다) 허!

공주 : ...

타쓰지 : 그래, 일 할만 해?

공주 : ... 그래, 할만 하다.

타쓰지 : ... 할만 해?


타쓰지, 공주의 대답에 갑자기 화가 치솟아 들고 있던 잔을 벽에 던져 박살을 내고 벌떡 일어나 나간다.

공주, 깜짝 놀란다.


타쓰지 :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일어로) 넌 싸구려야.


타쓰지, 나가버린다.

공주, 충격 받는다.



#5. 클럽 (밤)


공주, 다시 유리관 안에 들어있다. 자신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타쓰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이 나온다.

공주의 얼굴 위로 인철, 타쓰지, 춘추, 은비의 모습들이 교차된다.


공주 : (독백) 나는 박제가 되어 가고 있다. 한낱 모조품으로 만들어져,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박물관 한 귀퉁이의 유리관 속에 버려진, 백제의 칠백년 사직처럼, 나 또한 그렇게 박제가 되어 가고 있다.

         ... 남부여가 존재했었는지 조차 모르는 자들이 보내는 야유와 조롱 따위에는 더 이상 눈물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외면하고 돌아서는 그자의 눈빛에 왜 이렇게 마음이 아파지는 걸까?



#6. 지하창고 (밤)


춘추, 부하들을 시켜 취객들을 말없이 살벌하게 패고 있다.



#7. 인철이네 집 (밤)


은비, 인철을 부축하여 들어와 침대에 눕힌다.

인철, 침대에 눕자마자 정신을 잃는다.

은비, 그런 인철을 한참을 내려다보다가 인철의 이마에 키스하고 밖으로 소리없이 나간다.



#8. 거리 (밤)


타쓰지, 차를 미친 듯이 몰다가 길가에 끼익 세운다. 부들부들 떨려서 운전이 안된다.

타쓰지, 핸들을 꽉 쥔 채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앞만 바라본다.

시간경과

날이 훤하게 밝아온다.



#9. 호텔 - 거실


타쓰지, 문을 꽝 닫고 들어온다.

준꼬, 방에서 나온다.


준꼬 : 밤새 어디 갔다 온 거야?


타쓰지, 욕실로 들어가려다가 준꼬가 공주 옷을 입은 것을 보고 굳는다.


준꼬 : (일어로) 방에 여자 옷이 왜 이렇게 많아? 나 주려고 준비한 거야?

타쓰지 : ...

준꼬 : (반지 낀 손을 들어 보이며) 나, 어때?


타쓰지, 자기가 전에 사놓은 반지를 끼고 있자 굳은 얼굴로 준꼬의 손을 잡고 반지를 빼 내 자기 주머니에 넣는다.


타쓰지 : 벗어.


타쓰지, 한마디 내뱉고 욕실로 홱 들어가버린다.

준꼬, 기가 막힌 얼굴로 돌아보는데

언제 들어왔는지 집사가 입구에 서서 준꼬를 노려보고 있다가 타쓰지를 따라 욕실로 들어간다.

준꼬,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다.



#10. 욕실


타쓰지, 옷을 벗는데 집사가 안으로 들어오자 돌아보고 거울 앞으로 가 면도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면도를 시작한다.


집사 : (문을 닫으며)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타쓰지 : (일어로) 내가 뭐?

집사 : 서울에 왜 오게 됐는지 벌써 잊으셨습니까? 저 여자 때문에 이리로 쫓겨 오신 거 아닙니까?

타쓰지 : (일어로) 그래서?

집사 : 그런데 여기까지 데리고 오시면 어떡합니까? 그 동안에 저 여자가 도련님한테서 뜯어간 돈이 얼만 줄 아십니까?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타쓰지 : 정신 차려서 이러는 거야.

집사 : 예?

타쓰지 : 나, 샤워하게 좀 나가줄래?


타쓰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면도를 한다.

집사, 타쓰지를 잠시 보다가 나간다.



#11. 강남컨설팅


춘추네, 긴급회의를 하고 있다.


준하 : 어제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고,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공주, 걔가

         싸움실력이 거의 행동대장 수준인데 성질이라도 부리는 날에는 우리 클럽 문 닫아야 됩니다.


일동, 고민한다.


주윤발 : 유리상자에 자물통을 달면 어떨까요?

종성 : 그럼, 화장실은 어떻게 가?

쭈구리 : 갈 때마다 열어주면 되지.

주윤발 : 요강을 갖다 놓을까? 히히히.


준하, 부하들을 노려보면 부하들, 갑자기 적는 척한다.


준하 : 그래서 새로운 쇼를 개발하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춘추 : 어떻게?

준하 : 공주의 무공을 살려서 백제 공주 무술쇼를 하는 겁니다.


일동, 놀라운 눈으로 본다.

준하, 으쓱으쓱.



#12. 클럽 무대


클럽 종업원들, 언니들, 모여 앉아 있다.

준하와 부하들, 머리 위에 사과를 하나씩 올려놓고 사색이 되어 있다.

공주, 긴 칼을 들고 날을 살피며 흡족해하다가 옆에 놓인 탁자 위의 사과를 내리쳐본다.

사과는 물론이고 탁자까지 반으로 갈라진다.

부하들, 오줌을 쌀 지경이다.


공주 : 날이 제대로 섰구나.

춘추 : 정말 괜찮겠어?

공주 : 문제없다. 좀 넓은 터가 있다면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것도 괜찮을 텐데..

춘추 : ... (부하들을 미안한 얼굴로 돌아보며) 쏘지 뭐.


부하들, 준하를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본다.


춘추 : 자, 한 번 해 봐.


음악이 긴박하게 울리면 준하와 부하들, 비 오듯이 땀을 흘린다.

공주, 날카롭게 눈을 빛내더니 마치 춤을 추듯 우아한 동작으로 그러나 전광석화 같이 칼을 휘두르고 동작을 멈춘다.

잠시 후 부하들 머리 위의 사과들이 정확히 반토막이 나 무대 위로 떨어진다.

춘추, 놀라운 얼굴로 공주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친다.

구경하고 있던 종업원들도 입을 떡 벌린 채 박수를 치는데.

준하와 부하들의 바지가 서서히 젖는다.


춘추 : 포스터 바꿔!



#13. 마케팅 사무실


직원들, 누군가 들고 온 전단을 보며 웅성거리고 있다.


소리들 : 어머, 어머, 웬일이니? 뭔데? 어머, 어머! 이 여자 왜 이래? 말도 안돼. (웃는다)

직원1 : 내가 뭐라 그랬어요. 술집에서 봤다 그랬죠? 이대리님. 이거 보셨어요? (이대리에게 전단을 보여준다)

이대리 : 술집에 있었다는 게 이런 거였어? 건전한 거네.


은비, 술집이란 말에 이대리 옆으로 다가와 이대리의 손에 들려있는 전단을 빼앗아 들여다본다. 기가 막히다.


은비 : 백제 공주 무술쇼? 허! 정말 뭐하는 여자야? 우리 부서 회식한지도 오래 됐는데 여기 가서 회식이나 할까요?


이때 언제 들어왔는지 타쓰지가 은비의 손에서 전단을 탁 뺏어서 들여다본다.

직원들, 당황한다.


이대리 : (당황) 어머, 나오셨어요?

직원들 : (눈치를 보며) 안녕하세요.

타쓰지 : (전단을 보고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재밌겠네요. 한 번 갑시다.


타쓰지, 전단을 돌려주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대리, 직원들, 다시 웅성거린다.

은비, 전단을 든 채 따라 들어간다.



#14. 타쓰지 방


은비, 자리에 앉는 타쓰지 앞에 전단을 내려놓는다.


은비 : 어떻게 된 거예요?

타쓰지 : 뭐가요?

은비 : 아니, 이 아가씨가 여기 왜 이러고 있냐구요?

타쓰지 : 거기서 회식하자며? 가서 알아보면 될 거 아니야?

은비 : 그건, .... 농담이죠.

타쓰지 : 농담? (픽 웃으며) 고은비씨답지 않게 왜 그래? 술집여자라 궁금해하지 않았나?

은비 : ...

타쓰지 : 직접 가서 확인해 봐.

은비 : ... 그러죠.


은비, 홱 돌아서 밖으로 나간다.

타쓰지, 전단을 집어 들어 본다. 미인도 속의 옷차림이다.


타쓰지 : (일어로) 백제공주? 흥!


타쓰지, 전단을 구깃 구겨서 쓰레기통에 확 넣어버린다.



#15. 옷공장


인철, 소파에 누워 있고 혁이는 가방에 옷을 챙기며 전화를 받고 있다.


혁 : 언니가 와서 좀 가져가면 안 될까? (인철을 째려보며) 요새 우리가 좀 바빠서... 어우 그랬지?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 알았어. 인철이 오빠, 들어오는 대로 갖다 주라 그럴게. 그래. (전화 끊고) 야, 안 가?

인철 : 응.

혁 : 뭐?

인철 : 안 간다고.

혁 : 얘가 왜 이래? 오늘도 안가면 어떡하자는 거야? 애들 난리 났잖아, 지금.

인철 : 니가 가면 되잖아?

혁 : 영업은 너잖아?

인철 : 니가 좀 하면 안 되냐?

혁 : 난, 그 자식들하고 얼굴 마주치기 싫어.

인철 : (신경질) 나는 뭐 마주치기 좋은 줄 알아?

혁 : 나, 걔네들 무섭단 말이야.

인철 : 나는?

혁 : 너? 너도 무섭냐?

인철 : 난 인간도 아니냐?

혁 : 너, 공주 때문에 그러지? 공주 마주치기 싫어서 그러지?

인철 : 아, 증말! 너두 가지마! 우리 그냥 굶어 죽자! 됐지?


혁, 가방으로 인철의 머리를 후려치고

인철, 가방을 빼앗아 혁에게 집어던지는데 들어오던 은비가 맞는다.


은비 : 앗!

인, 혁 : 앗!

혁 : (무게 잡고) 아, 은비씨, 왔어요? 앉으세요.

인철 : (안 싸운 척 목소리 깔고) 이 밤에 무슨 일이야?

은비 : (앉으며) 옷 찾으러 왔어.

인철 : 아, 그래? (혁에게) 쟤 옷 다 됐지?

혁 : 하루 종일 소파 끼고 빈둥거리는데 옷이 될 턱이 있냐?

인철 : 누가?

혁 : 누군 누구야? 너지!

인철 : 우리 수석 디자이너가 아직 안됐다는데? 전화 하고 오지 그랬어?

은비 : 그러니까 가게가 맨날 이 모양 이 꼴이지.

인철 : 우리 가게가 어때서? 지금 다른 고객들한테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는데.

은비 : (귀엽다) 차! 세계적이면 뭐하냐? 게을러 터졌는데. 그나저나 이거 봤어?


은비, 백에서 전단을 꺼내 건넨다.

인철, 보고 얼굴 굳는다.


인철 : (가슴 아프지만) 차, 이젠 가지가지 하네.


인철, 전단을 홱 던지더니 다시 소파에 눕는다.

혁, 전단을 주워 본다.

인철, 갑자기 벌떡 일어나 가방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은비와 혁, 황당하다.



#16. 클럽 안 (밤)


빈자리가 거의 없다.

무대 옆에서 스모그가 피어오르고 사이키델릭한 조명이 긴장감 넘치는 음악과 함께 시작된다.


사회 :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쑈우오우오우! 상상을 초월하는 미모와 무예. 천년 세월을 넘어 환생한 백제 공주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환타스틱한 무예의 세계. 백제공주를 소개합니다.


공주,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무대 중앙에 선다.

스모그가 걷히면 머리 위헤 사과 하나씩 올려놓은 춘추의 부하들이 보인다.

공주, 이번에는 활을 겨누고 있다.

부하들, 눈을 감고 기도를 한다.

공주가 활을 쏘아 사과를 하나씩 맞출 때마다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이어, 사방에서 각종 무기를 든 시범단들이 나타나 공주를 공격해 들어온다.

공주, 등에 메고 있던 칼을 빼들어 놀라운 무공을 선보인다.

인철, 구석 빈 자리에 앉아 슬픈 얼굴로 공주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을 구해주던 공주의 모습.

백화점 앞에서 다시는 나를 버리지 말라던 공주의 얼굴.

나이트클럽에서 마주쳤을 때 슬픈 눈으로 보던 공주의 모습.

네가 어찌 나를 능멸하느냐고 외치던 공주의 모습이 무대 위에서 구경거리가 돼 있는 공주의 모습 위로 펼쳐진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온다. 휘파람 소리. 환호성 소리.

인철, 멍하니 앉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구석에서 보고 있던 타쓰지, 도저히 더 이상 못 보겠는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17. 대기실


준하와 부하들, 컵라면을 먹으며 공주를 째려보고 있다.


준하 :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기관총 구하러 간다 그러는 건데.

주윤발 : 부장님 땜에 정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입니다.

꼬리 : 부장님, 오늘은 오줌 안누셨어요?

준하 : 너, 죽을래?


무용들, 까르르 까르르 뒤집어진다.

춘추, 들어온다.


춘추 : 수고들 했다. 우리 공주가 드디어 밥값을 하는구나. 다음 스테이지가 몇 시지?

준하 : 한 시간 뒵니다.

춘추 : 그래, 많이들 먹고, 공주도 힘써야 되니까 많이 먹어.

준하 : 예, 회장님.


인철, 들어오다가 춘추가 나오자 입구에서 외면하며 선다.


춘추 : (기분 나쁜 얼굴로 보다가) 옷 많이 팔았냐?

인철 : ...

춘추 : (비웃으며) 공주 안 내보내면 죽어?


춘추, 우두커니 서 있는 인철을 한심하다는 듯 슥 보고 부하들과 함께 나간다.

공주, 인철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가슴이 뛰며 인철에게서 눈을 못떼는데

인철은 거울로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공주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테이블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옷을 꺼내기 시작한다.

언니들, 우르르 모여든다.


무용1 : 이게 얼마만이야? 그동안 왜 그렇게 안 왔어?

무용2 : 우린 뭐 입고 추라고?

인철 : (기계적으로 옷을 한 벌씩 꺼내 아가씨들의 이름을 부르며 나누어준다) 애리, 미자, 나미, 유미, 옥이...........


인철, 옷을 나누어주고는 가방지퍼를 찍 닫고 나가버린다.

공주, 그런 인철을 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18. 포장마차 (밤)


인철, 멍한 시선으로 바닥만 내려다보며 술을 마시고 있다.



#19. 인철의 아파트 앞 (밤)


인철, 가방을 둘러메고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오는데

닌자들, 인철의 뒤를 쫓다가 인적이 끊긴 틈을 타 인철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인철, 느낌이 이상해서 가다가 우뚝 서서 홱 돌아본다.

순간 인철을 가격하려던 닌자들과 눈이 딱 마주친다.

닌자들,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눈이 마주치자 공격자세를 풀고 지나가려는데.


인철 : 야! 니네 누가 보냈어?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낸다) 니네 이거 때문에 그러냐?


닌자들, 더욱 놀란다.


인철 : 야, 가져가라. 나 이거 때문에 인생 더럽게 꼬였다. 가져 가.


인철, 바닥에 홱 던진다.

닌자들, 마치 폭탄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춤주춤 물러난다.


인철 : 그만 쫓아다니고 가져 가! 자식들아!


인철, 홱 돌아서 다시 비틀거리며 아파트 쪽으로 걸어간다.

닌자들,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바닥에 떨어진 목걸이를 내려다본다. 헷갈린다.



#20. 호텔 - 타쓰지 거실 (밤)


집사, 술이 만취한 타쓰지를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온다.

준꼬, 토라진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다가 쏘아댄다.


준꼬 : (일어로)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이럴 거면 날 왜 데리고 왔어?

타쓰지 : (집사를 뿌리치고 준꼬 옆에 풀썩 앉으며, 일어로) 너, 아직 안 갔냐?

준꼬 : 뭐? 며칠씩 호텔 지키고 앉아 있었더니 아직 안 갔냐고?

타쓰지 : 아직 돈 못 받았어?


준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타쓰지의 귀뺨을 갈긴다.


준꼬 : 나쁜 자식! (문을 꽝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타쓰지 : (피식 웃고 집사에게) 쟤, 내일 공항까지 좀 태워다 줘.

집사 : 예, 알겠습니다.

타쓰지 :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데려와야지.


타쓰지, 옷을 입은 채 소파에 파고든다.

집사, 그런 타쓰지를 안쓰럽게 내려다보다가 나간다.

소파에 엎드린 타쓰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너에게 마음을 열 수 없다던 공주.

인철과 키스하는 공주.

공중 전화 박스에서 자신을 따라 나서던 공주.

가겠다고 끝까지 버티던 공주.

유리상자에서 끌려 나오는 공주.

구겨진 백제공주 무술쇼의 전단이 타쓰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21. 대기실 (밤)


공주, 대기실 한 켠에서 전화를 하고 있다.



#22. 인철이네 집 (밤)


인철, 온 몸이 펑 젖을 만큼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 앓고 있다.

가물가물한 의식 저편에서 '귀실아리를 나의 호위무사로 임명한다'는 공주의 목소리가 윙윙 울린다.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리지만 인철의 귀에는 아득하게 들리고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23. 인철이네 집 앞 (밤)


열쇠 수리공이 문을 열고 있고 그 뒤에 은비와 혁이 걱정스런 얼굴로 서 있다.



#24. 인철이네 집 (밤)


은비와 혁, 들어와 불을 켠다.

두 사람,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인철을 발견하고 놀라 달려간다.


혁 : 야! 강인철! 인철아! 정신 차려! 야!

인철 : 응... 응... 어.

혁 : 너, 왜 이래? 너, 왜 이러는 거야? (인철의 이마를 짚어본다. 불덩이다) 이 자식, 이거 불덩이네?


혁, 부리나케 욕실로 들어가 물수건을 만들어 와 이마에 올려놓는다.


혁 : 감기 한 번 안 걸리던 애가 무슨 일이야, 도대체?


은비, 잠든 인철의 얼굴을 내려다 본다. 속상하다.


혁 : (은비에게) 아무래도 안되겠는데요? 약 좀 먹여야지. 약국에 좀 갔다올게요. (나간다)


은비, 인철의 옆에 앉으며 인철의 이마를 짚어보고 손을 잡는다.

인철, 눈을 게슴츠레 뜬다. 인철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떠오른다.


은비 : (자기를 알아보고 웃는 줄 알고 기쁘다) 괜찮아? 정신이 들어? ... 얼마나 걱정했는데,

인철 : (은비가 공주로 보인다) 야, 이 바보야, 왜 이제 왔어?

은비 : (굳는다) ....

인철 : 이제 아무데도 가지 마... 아무 데도 안 보낼 거야...

은비 : ...

인철 : (피식 웃더니 다시 가물가물 잠이 든다) ..... 공주..


은비, 너무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질투의 감정이 불타오른다.

인철의 전화벨이 울린다.

은비, 전화기를 찾아 집어 든다. 화면에 공주라는 이름이 뜬다.

은비, 잠시 갈등하다가 전화를 받는다.


은비 : 여보세요.

공주 : ... 누구냐?

은비 : 그러는 넌?

공주 : 난 ... 부여주다.

은비 : 공주?

공주 : ...

은비 : 지금 인철씨 자는데?

공주 : ...

은비 : 할 말 있으면 해. 전해줄께.

공주 : ... 아니다. ... (끊는다)


은비, 전화를 끊고 착신번호 확인한다. 공주, 공주, 공주 줄줄이 찍혀 있다.

은비, 잠시 인철을 보다가 착신번호를 다 지워버린다.



#25. 대기실 (밤)


전화기를 꼭 쥔 공주, 입술을 꾹 깨물며 참아 보지만 눈물이 자꾸 쏟아진다.



#26. 인철이네 집 - 아침


인철, 눈을 뜬다.

은비, 물수건을 손에 쥔 채 침대에 엎드려 자고 있다.

인철, 일어나다가 은비를 보고 깜짝 놀란다.


인철 : 야! 고은비!

은비 : 응? (깬다)

인철 : 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은비 : 어우, 깜빡 잠들었네. 살아났어?

인철 : 너, 언제 왔어?

은비 : 어제.

인철 : 뭐? 어제?


인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집안을 살피고 휴대전화를 슥 열어본다. 전화 온 게 없다.


인철 : 너, 혼자 왔냐? 어떻게 들어왔어? 빨리 가!

은비 : 야, 너무 하는 거 아니냐? 밤새 간호해 준 사람한테?

인철 : (미안해진다) 그랬어? 아니,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은비 : (일어나며) 차, 나, 갈게.


은비, 백을 집어 들고 가려는데.


인철 : 밥이나 먹고 가라. 밥 해줄게.

은비 : (못이기는 척 서며) 너, 밥 할 줄 알아?

인철 : (부엌으로 가며) 그럼! 혼자 산 세월이 몇 년인데.


인철, 쌀을 씻으려고 바가지를 찾아드는데 현관벨.


인철 : 누구세요?


인철, 문을 열면 채여사가 서 있다.

인철, 문고리를 잡은 채 굳고 은비, 사색이 된다.


은비 : 엄마!


채여사, 설마가 현실로 나타나자 눈이 홱 뒤집힌다.


채 : 내 이럴 줄 알았어. 너.. 너.... 이리 안 나와!!!


채여사, 신발을 신은 채 뛰어 들어와 은비의 머리채를 끌고 나간다.


은비 : 악! 엄마, 왜 이래? 이거 놔!

인철 : 아, 저기요. 그런 게 아니라요.


채여사, 은비의 머리채를 잡은 채 인철의 손에서 바가지를 빼앗아 인철의 머리를 갈긴다.


채 : 너, 무슨 짓 한 거야? 내 딸한테 무슨 짓 한거야? 너! 이 사기꾼 같은 자식. 내가 경고했지? 완전히 매장 시켜버린다고.

은비 : (인철 앞에서 창피하다) 엄마, 이거 좀 놓고 얘기해.

채 : (은비에게) 입 안 닥쳐!

인철 : 어머니, 오해세요.

채 : 뭐? 어머니? (바가지로 다시 때린다) 내가 왜 니 어머니야. 내가 왜 니 어머니야?


어딘가에서 자고 있던 혁, 소란스런 소리에 기어 나온다.


혁 : 무슨 일이야?

채 : 저 자식은 또 뭐야?


이때 엄박사와 순자가 놀란 얼굴로 들어온다.


엄 : 아니, 무슨 일이십니까? 채여사님.


채여사, 엄을 돌아보고 바가지와 은비의 머리채를 동시에 놓는다.


채 : (엄에게) 안녕하세요.


일동, 어안이 벙벙하다.



#27. 엄박사네 집


엄박사네 식구들과 인철, 혁, 밥을 먹고 있다.

숙희, 그 때 인철이 준 반짝이를 입고 있다.


순자 : (지나가는 말처럼) 은비랑 사귀어?

인철 : (강한 부정) 아니에요. (혁을 슥 돌아본다)

혁 : (묵묵히 밥만 먹는다)

순자 : 만나지 마.

인철 : 안 만나요.

순자 : 우리랑은 다른 사람들이야.

인철 : 야, 넌 밥 먹을 때도 그 옷 입고 있냐?

숙희 : 입고 나갈 데가 없잖아. 아까우니까 집에서 입는 거지.

혁 : 예쁜데 뭐? 학생인데 되게 어울린다.

숙희 : (혁을 은근한 눈길로 본다)

혁 : (앗! 나의 실수)

순자 : (혁을 슥 째려보고 인철에게) 근데 많이 아팠어? 얼굴이 왜 그래?

인철 : 제 얼굴이 왜요?

엄 : (찬찬히 보다가) 곤고한 세월이 다가오고 있으나 앉아서 그 때를 당해야 하니 어허, 그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로다.

      앞날을 미리 알 수 없으니,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구나.

인철 : 예?

엄 : 오천원.

인철 : 됐어요. 안 물어볼게요.

엄 : 천기누설은 공짜로 하는 법이 아니야. 삼천원.

인철 : 아, 증말. (혁이에게) 야, 삼천원 있냐?


혁, 끽 소리도 못하고 주머니에서 삼천원을 꺼내 엄박사에게 준다.


엄 :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며) 얼굴에 근심이 서려 있구만.

인철 : 제가요?

엄 : 길흉이 교차하는 삶이 인생인 것을 누구를 탓할 것인가? 때가 이르러 음과 양이 화합을 하게 되니

      만물이 생성하는 때를 만나리라. 힘들고 어려운 나날을 보내더라도 후에는 길할 것이니

      기회가 오면 반드시 그 기회를 붙잡아 계획을 펼쳐야 할 것이다. 이 말씀이야.

인철 : 아니, 그런 얘긴 누군 못해요?

엄 : 음과 양이 화합을 한다니까, 조만간! (갸우뚱하며) 아닌가? (손에 든 삼천원을 보며) 어쨌거나 마수걸이는 했네?

      (혁에게) 자네 사주는 어떻게 돼?

혁 : 사주요?

순자 : 이이가 미쳤어. 미쳤어.

엄 : 아니, 그냥 궁합 좀 볼라고, 우리 숙희하고.

혁 : (긴장하며) 네?

인철 : 잘 먹었습니다. 가볼게요.

혁 :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인철과 혁, 부리나케 일어나 나가려는데.


엄 : 인철이! 인철이! 근데 그 아가씨, 어디 있는 거야? 내가 한 번 만나야 된다는 데 왜 안 가르쳐줘?

      어디 있는지만 가르쳐줘. 내가 찾아갈 테니까.

인철 : (잠깐 생각하다 가방을 뒤져 전단을 꺼내 내민다) 이리로 한 번 가 보세요.


인철, 혁이와 함께 나간다.

엄박사네 식구들, 머리를 모으며 전단을 들여다본다.


엄 : ... 아니, 공주가 이런 공주였어?

순자 : 아니, 언제 또 여기 가 있는 거야?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이 아가씨?

숙희 : 백제 공주래잖아?



#28. 인철의 차 안


혁, 운전을 하고 있고 인철, 옆자리에서 창 밖만 내다 보고 있다. 긴 침묵.


인철 : ... (침통하게) 나, 은비하고 한 번 사귀어 볼까?

혁 : 뭐, 이 자식아?

인철 : (계속 창 밖만 멍하니 보며) 아니, 너만 괜찮다면.

혁 : (아무데나 확 들이받고 싶다) 저 자식은 운전을 왜 저렇게 하는 거야?

인철 : ... 미스김한테 전화해볼까? ... 미자는 요새 뭐하나?


혁, 기가 막혀 돌아보는데 인철의 휴대전화벨이 울린다. 전화기를 보면 '나쁜 놈' 이라고 뜬다.

인철, 전화기의 밧데리를 확 뽑아버린다.



#29. 타쓰지 사무실


타쓰지, 전화를 끊고 피식 웃는데 이대리 들어온다.


이대리 : 실장님, 회의 준비 됐는데요.



#30. 마케팅 사무실


타쓰지, 은비, 이대리 등등 둘러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는 몇 장의 스토리 보드와 광고 시안, 기획안 등등이 널려 있다.

타쓰지, 오늘도 변함없이 딴 생각을 하고 있고 은비도 딴 생각을 하고 있다.


이대리 : 3개월 단발로 하는 게 효과적일 거 같은데. 고은비씨 생각은 어때?

은비 : (딴생각을 하고 있다가 무슨 얘긴지도 모르고) 좋아요.

이대리 : 근데 색다른 게 없어. 갖고 오는 게 맨날 그게 그거야. 어떻게 된 게? 광고 대행사를 바꿔야 되나?

            그래도 개중 이게 제일 낫네? 실장님, 보시기엔 어때요?

타쓰지 : (잠시 보다가) .. 음... 그러네요.

이대리 : (더 이상 물어 보기 싫다) 그렇죠? 고은비씨도 그래?

은비 : 네? 네.

이대리 : 모델이 관건인 거 같은데...

은비 : (갑자기 머리가 빠르게 돈다) 이대리님. 그 여자 어때요? 이대리님도 처음부터 눈여겨 보셨잖아요.

이대리 : 어떤 여자?

은비 : (타쓰지를 보며) 백제공주요.

이대리 : (기가 막혀서 타쓰지 눈치를 보며) 고은비씨, 왜 그래? 미쳤어? 어떻게 그런... 에이, 말도 안돼.

은비 : 뭐가 말이 안돼요? 컨셉도 백제공주, (혼자 손뼉을 치며) 어머, 진짜 굿 아이디어다.

         백제공주가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한다. 어디다 전화를 할까? 과거? 미래? 그런 영화도 있던데. 실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타쓰지, 갑자기 골똘히 생각을 한다.


이대리 : (생각해 보니까 괜찮은 것도 같다) 생각은 괜찮은데... (타쓰지를 슥 보며) 좀 그렇지 않나? 안 그래요, 실장님?

은비 : 새롭잖아요. 안그래요, 실장님?

이대리 : 그래도 이미지가 좀...

은비 : 뭐, 그렇게 나쁜 이미지도 아니던데.

이대리 : 그래도 실장님이랑....

타쓰지 : (은비와 이대리를 슥 보며) 그게 더 싸구려 아닌가?

은비 : ?

이대리 : ?


타쓰지,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31. 동경의 모처


지에꼬, 서 있는 닌자들의 귀뺨을 갈긴다.


지에꼬 : 바보 같은 놈들! 기껏 돌려보낸 목걸이를 다시 갖고 와? (자리에 앉으며 혼잣말처럼) 그 놈이 눈치를 챘나?


전화벨이 울린다. 지에꼬, 전화를 받는다.


지에꼬 : 여보세요. (사색이 된다) 네. ... 네.....네...... 죄송합니다........네. ....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하다가 닌자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공주든 목걸이든 빨리 진짜를 찾아 내.

닌자들 : 네.



#32. 대기실


공주, 소파에서 자고 있다.


준하 : 얘, 요새 왜 이래?

꼬리 : 공주야! 밥 먹어야지. 밥순이가 밥도 안 먹고 왜 그래?

무용3 : 밥도 안 먹고, 말도 안 하고, 너, 무슨 일 있냐?

준하 : 너, 밥 굶고 화살이라도 빗나가면 우리 어떡하라구?


이때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진다.

엄박사, 책가방을 들고 대기실 입구에서 춘추네 부하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엄 : 공주라는 아가씨, 잠깐만 보고 몇 가지만 물어 보면 된다니까.

부하 : 아, 글쎄 잡상인은 안 돼요! 나가!


공주, 어디서 많이 들은 목소리에 부스스 일어나 돌아보다가 엄박사와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란다.


공주 : 나를 찾아온 손님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아라.

엄 : (공주를 보자 반갑다) 어, 잘 있었어?


부하들, 공주가 이런 아저씨를? 하는 얼굴로 엄을 놓아준다.


공주 : (반갑게 다가오며) 오랜만입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엄, 살벌한 춘추 부하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는다.


준하 : 누구야?

엄 : (다시 엉거주춤 반쯤 일어나며) 아, 저요? 엄박사라고 합니다.

준하 : 뭐? 박사?

공주 : 이 자들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준하 : 뭐?

공주 : 앉으세요. 어쩐 일이십니까? 여기까지.

준하 : (끓어오르지만 머리 위의 사과를 생각하며 참는다) 으....

엄 : 아, 그게 말이야.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내가 몇 가지 좀 물어볼 게 있어서.

공주 :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엄 : 인철이한테 물어봤지. 같이 오자니까 자식이 빼드라구. 근데 어디 아파? 안색이 안좋네?

      요새 인철이도 아파서 빌빌하던데. 젊은 사람들이 왜들 그래?

공주 : ...

엄 : 근데 어떻게 된 일이야?

공주 : 그렇게 됐습니다.


엄, 더 이상 묻지 않고 공주의 관상을 다시 찬찬히 살핀다.


공주 : 제게 묻고 싶으시다는 게,

엄 : 아, 그래. 그게 말이야. (책을 펼치며) 이 책에 주석 달고 고쳐 쓴 거 있잖아.


부하들과 무용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다.

준하, 엄의 손에서 책을 탁 빼앗아 들여다본다. 한글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모두 한문이다.

부하들과 무용들, 이상하다는 얼굴로 책과 공주를 본다.


준하 : 뭐야, 이거?

공주 : (준하에게) 어른한테 무례하구나.


공주, 준하에게서 책을 탁 빼앗아 엄의 앞에 다시 놓는다.


엄 : 내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바쁜데 내가 방해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공주 :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떻단 말씀이십니까?

엄 : 아니, 왜 그렇게 했는지...

공주 : 분통이 터져서 그랬습니다. 제대로 알고 쓴 게 하나도 없더군요.

엄 : 그럼, 주석을 달아놓은 건 다 제대로란 말인가?

공주 : 백제가 비록 멸망하여 그 뿌리를 잃었고, 역사가 아무리 이긴 자의 뜻대로 쓰여진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얼토당토 않은 내용을 사실로 알고 있을 후손들에 대한 답답함 때문에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몇 자 적었습니다.


부하들과 무용들, 놀란 눈으로 공주와 엄박사를 본다.


공주 : 그나마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역사서들조차 이민족한테는 가혹하기 그지없는 화족들의 왜곡된 기록에만 의지할 뿐

         진정한 민족의 역사에는 관심도 없는 데다가, 그런 화족을 끌어들여 동족을 친 보잘 것 없는 신라만을

         정통으로 여기는 듯한 풍조에 젖어 있어, 보는 내내 울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동, 뭔지 몰라도 숙연해진다.

준하, 공주를 이상하게 본다.


엄 : (다른 책을 꺼내며) 그럼 이 일본서기에 써놓은 건 뭐야? 고모님, 보고 싶습니다? 천황이 고모란 말이야?

공주 : 네.


일동, 이상한 얼굴로 공주를 보는데.


춘추 : (꽥) 뭐야? 영업 준비 안하고 무슨 짓들이야?


부하들과 무용들, 후닥닥 흩어진다.



#33. 강남 컨설팅


춘추, 자리에 앉아 준하의 말을 듣고 있다.


춘추 :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겠지. 신경쓰지 마. 걔, 이상한 게 한 두가지야?

준하 : 그래도 정말 이상합니다. 강가에 쓰러져 있던 것도 그렇고, 회장님 이름이 김춘추라고 다짜고짜 두들겨 패고,

         공주라고 악악대고, 싸인도 한자로 휘갈겨 쓰고, 거기다 무공도 장난이 아니잖습니까?

         사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는데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것도 그렇구요, 밧데리가 뭔지도 모르고,

         차용증이 뭔지도 모르고. 그리고 무용수들이 그러는데요, 처음에 여기 왔을 때 주로 바가지를 사용했답니다.

춘추 : 뭐?

준하 : 그게 편하다구요. 그리고 새끼줄도 찾았답니다.

춘추 : 새끼줄은 왜?


전화벨.


준하 : 네, 강남컨설팅입니다.



#34. 밀실


춘추와 집사, 마주 앉아있다. 탁자 가운데는 봉투가 놓여 있다.

춘추, 집사를 잠시 보다가 봉투를 집어 안을 들여다본다. 백지수표다.

춘추, 속으로 흠칫 놀란다.


집사 :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공주의 값어치만큼 적어 넣으십시오.

춘추 :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집사 : 처음에 돈 때문이 아니라고 말씀하셔서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만 공주에게 그런 일을 시키는 걸 보니

         결국 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채업으로 일가를 이루신 분이라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시는 건지는 몰라도.

춘추 : (자존심 상한다) 뭐야?

집사 : 야마구치에서도 경고를 한번 했다고 들었습니다.

춘추 : 뭐?

집사 : 후지와라를 건드리지 말라고.

춘추 : ... 이것들이 정말!

집사 : 지금 우리 쪽 제안을 받아 들이시면 회장님은 실리를 챙기실 수 있습니다만 두번째 조치로 넘어가게 되면

         어떤 이익도 얻지 못하시게 되고 세번째 단계로 넘어가게 되면 회장님이 하시는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시게 될 겁니다.

         제 말이 빈 말이 아니라는 건 두고 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집사, 살벌하게 미소를 띤다.

춘추, 갑자기 자신이 초라해진다.

집사, 춘추가 전의를 잃자 자리에서 일어난다.


집사 : 돈 받고 팔았다고 너무 자책하진 마십시오. (나간다)


춘추, 자신이 왜 이렇게 초라해졌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춘추, 수표가 든 봉투를 집어 들어 찢으려다가 차마 찢지 못한다.



#35. 클럽 입구 (밤)


춘추, 입구로 들어서다가 벽에 붙은 공주의 포스터를 부욱 뜯어버린다.

춘추, 다시 한 걸음 앞으로 가 부욱 뜯어버리고 점점 미친듯이 찢어버린다.



#36. 강남 컨설팅 (밤) - 수정


춘추, 의자에 앉아 고뇌하고 있다.

잠시 후 공주, 부하들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온다.

춘추, 돌아보지도 않는다.


춘추 : 너희들은 나가 있어.


부하들, 우르르 나간다.


춘추 : 앉아.

공주 : (앉는다)


춘추, 공주를 잠시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는다.


춘추 : (보다가) 너, 왜 나한테 온 거냐?

공주 : ...

춘추 : 아니, 너, 어디서 왔냐?

공주 : ... 새삼스럽게 왜 그런 것을 묻느냐?

춘추 : ... 그래, 이제 와서 그런 걸 알아봐야 뭐하겠냐?

공주 : ...

춘추 : 너, 가라.

공주 : ... 가라니? 어딜 말이냐?

춘추 : 그것까지는 내 알 바 아니고 그냥 가.

공주 : 아직 빚도 다 안 갚았는데 무슨 소리냐? 난 못 간다.

춘추 : (픽 웃는다)

공주 : 갈 곳도 없고, 난 여기가 마음이 편하다.

춘추 : 여기는 니가 있을 데가 못돼. 안 어울려.

공주 : (피식 웃고) 아니다. 여기야말로 나한테 어울리는 곳이다. 나처럼 자기의 처지와 분수를 까맣게 잊은 자에게

         여기처럼 어울리는 곳이 또 어디 있겠느냐?

춘추 : (무슨 소리?) ... 그래서 안 가겠다고?

공주 : 그래, 안 간다. 아니, 못 간다.

춘추 : (빤히 보다가) 가.

공주 : 싫다.

춘추 : 정부장!


문이 열리고 준하와 부하들이 들어온다.


준하 :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춘추 : 내보내.

준하 : 예, 회장님.


준하, 대답은 크게 했지만 굳은 얼굴로 춘추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공주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한다.


공주 : (버럭 화를 내며)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 지금껏 너희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느냐?

춘추 : (꽥) 너야말로 갑자기 왜 이래? 오빠가 평생 걸려 일군 걸 너 때문에 잃으라는 거야?

         가방끈 짧고 집안도 보잘 것 없는 내가 여기까지 오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너는 모를 거다.

공주 :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춘추 : ... (외면하며) 오빠 원망해라. 오빠가 너 팔았다.

공주 : ... 뭐라구?

춘추 : (버럭) 정부장!

준하 : 예, 회장님!

춘추 : 내보내!

준하 : 예, 회장님!


준하와 부하들, 공주에게 우르르 달려드는데.


공주 : (부르르 떨며 벌떡 일어난다) 팔아? (기가 차다) 팔았다구? 니 까짓 게 감히 나를 팔았다구?

춘추 : 뭐?

공주 : 니가 뭔데 나를 팔아! 니 까짓 게 뭔데!!!


부하들, 공주의 위엄과 기세에 눌려 흠칫 서고

공주, 춘추를 잡아 먹을 듯이 춘추에게 다가간다.


공주 : 내 비록 몸 하나 의탁할 곳이 없고, 오갈 데조차 없는 처량한 신세이기는 해도

         지금껏 스스로 판단하고 내 의지대로 행하였거늘, 네 놈이 감히 나를 팔아?

춘추 : ....

공주 : (눈물이 맺혀 춘추를 빤히 들여다보며) 내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 않고 이 더러운 티끌 세상에서 치욕을 감내하며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아느냐?

춘추 : ....

공주 : (말을 하려다가) 네까짓 놈이 알 리가 없지.


공주, 춘추를 무섭게 노려보다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간다.

부하들, 공주의 기세에 눌려 길을 열어주고

춘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나가는 공주를 본다.



#37. 호텔 앞 (밤)


타쓰지의 세단이 서고 기사가 내려 창문을 열어준다.

공주, 다시 돌아온 타쓰지의 집을 싸늘한 얼굴로 올려다보는데 집사가 현관에서 나와 공주를 맞이한다.


집사 : 오랜만입니다. 들어가시지요. 도련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공주, 굳은 얼굴로 안으로 들어간다.



#38. 호텔 - 타쓰지 거실 (밤)


공주, 집사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온다.

타쓰지, 소파에 다리를 올려놓고 길게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집사, 공주의 가방을 방에 넣어두고 밖으로 나간다. 문 밖에는 경호원들이 서 있다.


타쓰지 : 어서 와.


공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책장을 넘기는 타쓰지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다가간다.


공주 : 네가 어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 네가 어찌 나의 명예와 절개를 더럽히려 하는 거냐?

타쓰지 : (피식 웃더니 책을 덮고 공주를 올려다본다) 명예? 절개? 그런 말이 너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해?

공주 : ... 자존심이 상했느냐?

타쓰지 : 내가 왜?

공주 : 그럼, 이유가 뭐냐?

타쓰지 : 무슨 이유?

공주 : (버럭) 내가 여기 왜 다시 오게 됐는지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타쓰지 : 내가 그렇게 쉽게 널 포기할 줄 알았어?

공주 : (빤히 보다가) 나는 너희들이 사고 팔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 말을 해주러 왔다. 가겠다.


타쓰지, 돌아서 가는 공주를 쫓아가 손목을 잡아 돌려 세운다.


타쓰지 : 넌 아무 데도 갈 수 없어. 넌 이제 내 꺼니까!!


공주, 타쓰지를 빤히 올려다보다가 귀뺨을 후려갈긴다.


공주 : 내 마음이 가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날 소유할 수 없다.

타쓰지 : (기분 더럽고 차마 말하기 싫지만)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인철이 인생이 달라져.


공주, 타쓰지의 말에 등골이 서늘해져 타쓰지를 돌아보는데

타쓰지, 유석의 얼굴로 변하며 유석이 했던 말이 공주의 머리에 떠오른다.


공주 : 아리장군은 어쩔 셈이냐?

유석 : 살리고 싶소? 그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시오?

공주 : ...

유석 : 그대가 내 여인이 되면 모를까.


공주,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타쓰지 : 잘 생각해.


타쓰지,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39. 호텔 방 (밤)


집사가 쓰던 방.

공주,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40. 옷공장 - 수정


공주에게 옷을 만들어 줬을 때처럼 고개를 돌리고 있는 인철과 혁.


인철 : 아직도 멀었냐?

은비 : (소리) 좀 만.

인철 :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은비 : 잠깐만..... 다 됐어.


은비, 쨘 나타나고 인철과 혁, 고개를 돌린다.

은비, 몸에 촥 달라붙는 야회복 스타일의 옷을 걸치고 팔 하나를 뻗어 기둥을 짚고 다리는 꼰 자세로 섹시한 포즈로 서 있다.

인철과 혁, 입이 떡 벌어진다.


은비 : (스스로 민망하여) 좀 야한 거 같지?

혁 : 이야, 사람이 달라보이네. 하긴 뭘 입어도 예쁘긴 하지만.

인철 :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동안 좀 촌스러웠잖냐. 진작 좀 그렇게 입고 다니지. 야, 정말 예술이다. 그 옷 누가 만들었냐?

은비 : 그래? 근데 회사에 입고 가기엔 좀 그렇지?

인철 : 무슨 얘기야. 고등학생도 입는데.

은비 : 정말?

인철 : 그럼.

혁 : 정말 모델이 좋으니까 옷이 산다.

인철 : 마, 옷이 좋으니까 모델이 사는 거지.

혁 : 오늘 착복식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은비 : 좋아요. 얼마야?

인철 : 좀 싸게 해 줄게.

은비 : 그러지 마, 받을 거 다 받아.

혁 : 에이, 어떻게 은비씨한테. 제가 그냥 선물할게요.

인철 : 이게 미쳤나? 선물은 무슨! 우린 뭐 먹고 살어?

은비 : 아, 돈 낼게.

혁 : 너 공주한테는 그냥 만들어 줬잖아.

은비 : (기분 나쁘다)

인철 : 야, 개한테 어떻게 돈을 받냐? 이거 바보 아니야?

혁 : 뭐? 바보? 이게, 확!

은비 : (꽥) 아, 낸다는데 왜 싸워!!!


이때 무용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무용들 : 오빠!

인철 : 어, 왔어?

꼬리 : (은비를 보고) 어머, 얘 또 있네?

은비 : (째려본다)

혁 : 앉아.

꼬리 : (질투 섞인) 오빠, 이 여자 입고 있는 옷 뭐야? 나는 왜 이런 옷 안 만들어 줘?

인철 : 왜 안 만들어 줘. 너도 저런 스타일로 하나 만들어 줬잖아.

꼬리 : 근데 얘는 왜 이렇게 이뻐?

인철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은비 : (인철과 혁에게) 옷 갈아입게 고개 좀 돌려.


인철과 혁, 고개를 다시 돌린다.

꼬리와 무용들, 씩씩대며 옷을 갈아입는 은비를 째려본다.


무용1 : (인철의 뒷통수에 대고) 근데 오빠, 공주 있잖아?

인철 : (무심코 돌아본다) 공주?

은비 : 고개 돌려!

인철 : (다시 고개를 돌리고) 공주가 왜?

꼬리 : 팔려갔다?

인철 : .... (고개를 돌리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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