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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지애] 17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3.03.13|조회수261 목록 댓글 0

[천년지애] 17











#1. 거리 (밤)


인철의 차가 닌자의 차를 바짝 쫓고 있다.



#2. 인철의 차 안 (밤)


인철, 행여 앞차를 놓칠까봐 긴장하여 운전을 하며 급하게 전화를 한다.



#3. 닌자들의 차 안 (밤)


닌자들, 룸미러로 공주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본다.

공주, 뒤를 돌아본다.


공주 : (다급하게) 멈춰라.


닌자들, 공주의 눈길을 피하는데 공주의 핸드폰이 울린다.

닌자들, 긴장한다.

공주, 깜짝 놀라 전화를 받는다.


인철 : (소리) 너, 지금 어디 가는 거야?

공주 : 너한테 가는 길이다.

인철 : 뭐?

공주 : (닌자들에게) 멈춰라!

인철 : (소리) 차 세워! 세우라 그래.

공주 : 멈추라잖느냐!


인철의 차, 닌자의 차 옆에 바짝 붙는다.


인철 : (소리) 공주야! 옆에 봐봐! (차창을 내린다)


공주, 차 옆을 돌아보다가 깜짝 놀란다. 인철의 차가 나란히 달리고 있다.


인철 : 야! 차 세워! 야!

공주 : (닌자들에게) 멈추라니까! 강인철의 집까지 갈 필요가 없다. 멈춰라.


닌자들, 갑자기 속력을 내며 인철의 차를 따돌린다.


공주 : 왜 이러느냐! 멈추란 말이 안 들리느냐! 멈춰라!!!


공주, 그래도 닌자들이 차를 안 세우자 운전하는 닌자의 눈을 가리고 조수석의 닌자가 말리자 두들겨팬다.

당황하는 닌자들.



#4. 인철의 차 안 (밤)


인철, 공주가 탄 닌자의 차가 갑자기 차선을 넘나들며 왔다갔다 하자 불안한 얼굴로 속도를 줄인다.



#5. 닌자의 차 안 (밤)


운전하던 닌자, 자신의 눈을 가린 공주의 손가락을 떼어내려 애쓰고

조수석에 앉아있던 닌자, 눈을 가린 공주의 손을 떼어내는 한편 공주의 목걸이를 뺏으려고 다른 손을 뻗는다.

공주, 목걸이를 빼앗기지 않으려 뒤로 바짝 물러앉으며 발을 뻗어 닌자의 얼굴을 강타한다.

닌자, 앞유리창에 머리를 세게 부닥친다.



#6. 달리는 타쓰지의 차 안 (밤)


타쓰지, 아주 불쾌한 표정으로 멀리 앞서가는 인철의 차를 쫓고 있다.



#7. 인철의 차 안 (밤)


인철의 눈에 공주의 발길에 맞아 앞유리창에 머리를 부닥치는 닌자가 보인다.

인철, 점점 마음이 급하다.


인철 : 야! 차 세워, 이 자식들아! 공주야! 공주야!


인철, 안되겠는지 속력을 높여 닌자들의 차를 앞지르려 애쓰는데

방향을 잃고 비틀거리던 닌자의 차가 마침내 길가에 급하게 선다.

인철, 닌자들의 차 앞에 자기 차를 세우고 차에서 뛰어내려 닌자의 차로 달려간다.

닌자의 차 안에서는 차에서 내리려는 공주와 공주에게서 목걸이를 빼앗으려는 닌자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인철, 닌자들이 문을 잠그려는 순간 차문을 벌컥 열고

공주를 잡으려는 닌자들을 때려주고 공주를 끌어내려 공주의 손을 잡고 인파 속으로 뛰어든다.

닌자들도 부리나케 차에서 내려 두 사람의 뒤를 쫓는다.

인철과 공주, 닌자들이 사라지자마자 타쓰지의 차가 쏜살같이 달려오다가 인철의 차를 발견하고 끼익 선다.

타쓰지, 차에서 내려 두리번거리지만 이미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8. 다른 거리 (밤)


인철과 공주, 닌자들이 쫓아오는지 확인하느라 뒤를 돌아보며 사람들을 뚫고 달린다.

닌자들, 두 사람을 쫓는다.



#9. 지하철 입구 (밤)


인철과 공주, 계단을 달려 내려간다.

닌자들, 쫓아 내려간다.



#10. 개찰구 (밤)


인철과 공주, 개찰구를 훌쩍 뛰어넘어 승강장 쪽으로 뛰어간다.

닌자들도 뛰어넘는다.



#11. 승강장 (밤)


마침 문이 열려 있는 열차 안으로 뛰어드는 인철과 공주.

두 사람이 타자마자 문이 닫히고 닌자들, 간발의 차이로 두 사람을 놓치고 아쉬워한다.



#12. 지하철 안 (밤)


인철과 공주, 구석자리에 서서 숨을 몰아쉰다.

공주의 헝클어진 머리와 찢겨진 옷이 그제야 인철의 눈에 들어온다.

인철, 여전히 공주의 한 손을 꼭 잡은 채 무의식중에 엉망으로 헝클어진 공주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 넘겨준다.


인철 : (숨을 몰아쉬며) 도대체 뭐하는 자식들이야? 괜찮아?

공주 : ... (목에 건 목걸이를 손에 꼭 쥔 채) 괜찮다. (날카롭게 주위를 살피며) 근데 여기는 어디냐? 왜 바깥이 안 보이느냐?

인철 : (공주에게) 아는 놈들이야?

공주 : 모른다.

인철 : 모르는 놈들 차를 왜 타고 다녀?

공주 : 전에 몇 번 데려다준 적이 있다.

인철 : 어딜?

공주 : (쏘아보다가) ... 내가 이 세상 천지에 아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인철 : ... 우리 집에 왔었어?

공주 : ... 그래.

인철 : 언제?

공주 : (말하기 싫다) 까먹었다.

인철 : 그 얘길 왜 지금 해!

공주 : 지금 그 얘기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느냐? 그 자들이 내 목걸이를 빼앗으려 했단 말이다!

인철 : ... 목걸이?

공주 : 도대체 뭐하는 자들일까..


인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전철 안에 있던 사람들, 두 사람을 유심히 바라본다.


인철 : 근데, 너, 어디 가는 길이었어?

공주 : 너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는 거기 왜 온 거냐?

인철 :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두 사람, 동시에 서로를 보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갑자기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 채 서로를 빤히 본다.


인철 : ..... 미안해.

공주 : ..... 뭐가 말이냐?

인철 : ..... 그냥.....다!

공주 : ... 아니다. 내가 미안하다.


이때 공주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두 사람, 벨이 울리는 공주의 휴대폰을 바라본다.

공주, 전화를 받으려는데 인철이 탁 빼앗아 받는다.


타쓰지 : (소리) 어디야?

인철 : 너야말로 어디야? ... 알았어. 가서 얘기하자.


인철, 전화를 확 끊는다.



#13. 거리 (밤)


인철의 차와 닌자들의 차가 이상한 모습으로 서 있고 닌자들의 차는 뒷문까지 열려 있다.

타쓰지, 초조한 얼굴로 차에 기대 기다리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인철이 화난 얼굴로 공주의 손을 꼭 잡고 오자 기분 나쁜 얼굴로 노려본다.


인철 : (다짜고짜) 너, 니네 엄마, 니네 집사, 얘한테 지금 무슨 수작하고 있는 거야?

타쓰지 : (인철의 손에 잡힌 공주의 팔목을 탁 떼어내고 공주의 손을 잡으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다친 데 없어?

인철 : (기분 나쁘다. 타쓰지의 어깨를 확 밀어 공주에게서 떨어뜨린다) 니네 엄마가 보낸 놈들이지?

타쓰지 : 뭐야, 임마?

공주 : (이상하다)

인철 : (버럭) 전에도 얘 목걸이 뺏어갔잖아!!

타쓰지 : (공주의 손목을 다시 잡으며) 누가 목걸이 뺏을라 그럤어?

인철 : (타쓰지의 손을 다시 탁 쳐내며) 얘,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타쓰지 : (공주의 양팔을 잡으며) 그러게 내가 데려다 준다 그랬잖아! 왜 말 안 듣고 멋대로 돌아다녀! 엉?

인철 : (타쓰지를 치우고 공주의 손을 잡으며) 야! 니네 엄마한테 가보자.

타쓰지 : 억지부리지마. 돌려줬잖아!

인철 : 가짜니까 돌려줬지! (앗! 실수다)

타쓰지 : 가짜?

인철 : 가짜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타쓰지 : 그럼, 이게...

인철 : ...

타쓰지 : (피식 웃으며) 이번엔 진짜를 준 건가?

공주 : 무슨 얘기냐?

타쓰지 : (인철의 손을 치우고 공주의 손목을 잡으며) 가자!

공주 : (타쓰지의 손을 탁 뿌리치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본다. 타쓰지에게) 진짜라니?

타쓰지 : 이 자식이 이제야 너한테 진짜를 돌려준 거야.

인철 : 내가 그럴라 그런 건 아닌데, 아, 됐다. 아, 증말 더럽게 꼬이네. 미안하다.


인철,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돌아서서 차에 올라 떠나버린다.

공주, 그게 아닌데 싶어 안타깝다.

타쓰지, 세워진 닌자의 차와 떠나는 인철, 공주를 돌아본다.

닌자들, 멀리서 차로 오지도 못하고 지켜보고 있다.



#14. 호텔 - 타쓰지 거실 (밤)


집사, 문을 열어주면 타쓰지가 먼저 성큼 안으로 들어오고 이어 공주가 들어온다.


타쓰지 : (집사에게 일어로) 목욕물 좀 받아줘. (공주에게) 씻어.


타쓰지, 굳은 얼굴로 자기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고

공주도 굳은 얼굴로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집사, 두 사람을 번갈아 본다.



#15. 작은 방 (밤)


타쓰지, 선 채 창 밖을 보고 있는데 집사가 들어온다.


집사 : (심각하게) 그 차는 가문에서 보낸 닌자들이 쓰는 차 같습니다.

타쓰지 : (돌아보지도 않는다) ...

집사 : 어쨌든 공주님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만 닌자들이 왜 공주님한테 그런 짓을 했을까요?

타쓰지 : ...

집사 : 미인도, 목걸이, 공주의 일기, 가문에서 보낸 닌자, 그리고 어머님의 등장까지. 아무래도 ... 저 공주님이 ...

         혹시 어머님이 말씀하신 진짜라는 의미가... 설마...


집사,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는데

타쓰지, 집사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굳은 얼굴로 창 밖만 보고 있다.


타쓰지 : (혼잣말로 일어로) 돌아갈 수 없다....돌아갈 수 없다....


이때 노크 소리와 함께 공주가 들어온다.

타쓰지와 집사, 흠칫 놀란다.


공주 : 나하고 얘기 좀 하자. (돌아서 나간다)



#16. 거실 (밤)


공주, 앉아있고 타쓰지, 공주 앞에 앉는다.


공주 : 아까 강인철이 한 말이 무슨 뜻이냐? 나를 공격한 그 자들이 너와 관련이 있는 자들이냐?

타쓰지 :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야.

공주 : 그럼, 너의 어머니하고 상관 있는 일이냐?

타쓰지 : ... 솔직히... 나도 몰라.

공주 : 처음부터 이걸 가져갔다면 강인철이 말대로 과연 돌려줬겠느냐? 너의 어머니를 한 번 만나 봐야겠다.

타쓰지 : ...

공주 : 어째서 내 목걸이를 탐내는지 직접 물어봐야겠다. 지금 어디 있느냐?

타쓰지 : ... 일본.

공주 : 일본이라면 왜를 말하는 거냐?

타쓰지 : 응.

공주 : 잘 됐구나. 이 참에 왜로 건너가 천황도 한 번 만나 봐야겠다.

타쓰지 : (피식)

공주 : 왜 웃느냐?

타쓰지 : ... 나도 궁금해. 너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나한테 중요하진 않지만 도대체 너를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나도 알고 싶어. (잠시 공주를 빤히 보다가 집사에게) 주말에 비행기 좀 예약해줘.

공주 : 비행기가 뭐냐?

타쓰지 : 공주꺼도 같이.

집사 : 예. ... 아! 저, 공주님은 곤란합니다. 서류상으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분이라.

타쓰지 : 서류야 만들면 되는 거고.

집사 : 그래도 신분을 증명하려면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가...

타쓰지 : 나하고 결혼하면 되잖아?

집사 : 예?

공주 : (결혼?) 무슨 수작이냐?

집사 : 도련님! 그건!

타쓰지 : (공주 말은 계속 무시하고) 후지와라의 여자라는 것만큼 확실한 신분이 있겠어? 오늘 같은 일도 안 당할거고.

공주 : 너의 어머니를 만나겠다는데 결혼은 무슨 결혼이냐?

타쓰지 : 내 말대로 해. 요즘 세상엔 그래야 왜로 건너갈 수 있어. (집사에게) 서류준비해서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해 줘.

집사 : 도련님!

타쓰지 : (일어로) 어머니를 만나겠다잖아! 천황을 만나겠다잖아!

집사 : 알겠습니다만...


집사, 말끝을 흐리며 돌아가고.


공주 : 어째서 결혼을 해야만 갈 수 있다는 거냐?

타쓰지 : 서류상으로만 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

공주 : ...

타쓰지 : (자리에서 일어나며) 앞으로 내 허락 없이 함부로 다니지 마. (안으로 들어간다)


공주, 머리 속이 복잡하다.



#17. 작은 방 (밤)


타쓰지, 침대에 누워 잠을 못이룬다. 생각 끝에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18. 타쓰지 방 (밤)


공주도 잠 못 이루고.



#19. 인철이네 집 (밤)


인철 역시 잠을 못 이룬다. 생각할수록 찜찜하다.

인철, 이불을 확 뒤집어쓴다.



#20. 닌자들의 차 (밤)


닌자, 난처한 얼굴로 전화를 받고 있다.


우슈 : 하이! .... 하이... 하이. (끊는다)


두 사람, 고민에 빠진다.


한갈 : (일어로 비장하게) 더 이상 주인을 속일 순 없다. 일본으로 돌아가 책을 잃어버린 잘못을 고하고 무사답게 할복하겠다.

우슈 : 그럼, 나는?

한갈 : 내 목을 쳐 다오.

우슈 : (역시 비장하게) 그러지 말고 하루 빨리 목걸이와 책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두 사람, 심각하게 갈등한다.



#21. 강남컨설팅


춘추와 부하들, 사무실로 들어오다가 깜짝 놀란다.

사무실 안이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져 있다.

책들이 다 꺼내져 있고 서랍은 전부 빼내져 뒤집어져 있는데 라면 냄비가 놓여 있는 테이블 위만 깨끗하다.


춘추 : 뭐야? 어떤 자식들이야? 엉?


시간경과

춘추와 부하들, 어질러진 채로 폐쇄회로 카메라에 찍힌 화면을 보고 있다.

닌자들이 사무실 안을 날렵하게 뒤지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준하 : 아니, 저 자식들!!!

춘추 : 뭘 찾는 거야? 없어진 거 뭐 없어?

준하 : 없어진 건 없는 거 같은 데요.

춘추 : 그럼, 뭘 찾는 거야, 도대체.

준하 : (화면을 뚫어지게 보다가) ... 혹시... 그 책을 찾는 게 아닐까요?

춘추 : 책?


일동, 테이블 위를 돌아본다. 누군가 먹다 남긴 라면 냄비 밑에 책이 깔려 있다.

쭈구리, 얼른 라면 냄비를 치우고 책을 집어든다.


쭈구리 : 이거요?


춘추, 쭈구리의 손에서 책을 탁 뺏는다.

준하, 날카롭게 눈을 빛낸다.


춘추 : (심각하게 책을 보며) 강인철이네 집 앞에도 나타나고.... 호텔에서도 마주치고... 거기다 우리 클럽까지...

         다 공주가 있던 데야.... 우리 공주를 노리는 놈들인가?

준하 : 공주 오빠들 아닐까요?

춘추 : 뭐?

준하 : 무술 실력도 만만치 않고 한문책도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아무래도 가족 같습니다.

춘추 : 가족?



#22. 인철이네 집


인철, 라면을 먹으면서도 어제의 일이 계속 찜찜하다.

공주 생각을 머리 속에서 지우려는 듯 라면을 아구아구 먹는데 현관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인철 : 아침부터 누구야?


인철, 젓가락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으며 현관으로 간다.


인철 : 누구세요?


인철, 문을 열면 춘추와 부하들이 살벌하게 서 있다.



#23. 엄박사네 집


순자, 화장을 하고 있고 숙희, 왔다 갔다 하며 부산스럽게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엄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다.


순자 : (틈틈이 남편을 기특하다는 듯 돌아보며 신나서) 세상에, 한두시간 가서 같이 얘기만 해주는데

         그렇게 돈을 많이 준단 말이야? 도대체 뭐하는 남자야?

엄 : 일본에서 잘 나가는 귀족 가문의 재벌 아들이래.

숙희 : 하여간 여자는 이쁘고 볼 일이라니까.


이때, 현관벨.


숙희 : 누구세요?


문을 열면 인철을 앞세우고 춘추네 일당들이 살벌하게 와르르 쏟아져 들어온다.

엄박사네 식구들, 놀라 돌아본다.

시간경과

부하들, 현관 쪽에 한 줄로 서서 벽에 붙은 그림과 책장 가득 꽂힌 책들을 이상하다는 듯 보고 있다.

춘추, 책꽂이 앞에 서서 책들을 훑어보고 있다.

엄박사와 인철, 춘추의 눈치를 보며 가운데 앉아 있다. 이상한 침묵이 흐른다.


숙희 : (방에서 눈치를 보며 나온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숙희, 부하들 사이를 뚫고 밖으로 나간다.

순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쟁반에 커피를 사람 수대로 타 들고 온다.

모양이 제각각인 커피잔들이 쟁반 위에서 달달달 떨린다.


순자 : 차라도 드시면서 말씀들 나누세요.


순자, 방으로 들어가 문틈으로 내다본다.


춘추 : (책꽂이를 보며) 정무장.

준하 : 예, 회장님.

춘추 : 집에 책이 이렇게 많으니까 폼 난다.

준하 : 그런 거 같습니다, 회장님.

춘추 : 너, 말이야. 내일 청계천 가서 벽 하나 채울 만큼 사다가 사무실 인테리어 좀 바꿔라.

준하 :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춘추 : (엄박사 자리에 앉으며) 공주하고 친하시다고?

엄 : (무섭다) 그런데요.

춘추 : 공주가 유일하게 어른 대접을 해 주는 분이시라고?

엄 : 그런가요?

춘추 : (의심하며) 정말 한문을 다 읽을 줄 아시나?

엄 : 그래, 무슨 일로 새벽부터 이런 누추한 곳까지 찾아오셨습니까?

춘추 : 정부장.

준하 : 예, 회장님.


준하, 닌자들에게서 입수한 책을 내놓는다.


엄 : 이게 뭡니까?


엄, 잠시 춘추를 보다가 책장을 열어본다. 책을 읽는 엄박사의 얼굴이 점점 심각해진다.

일동, 엄박사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엄 : 이거 어디서 났습니까?

춘추 : 아, 그건 알 거 없고. 뭐라고 써 있어?

엄 : 연구를 좀 해 봐야할 거 같은데요... 그냥 한문으로만 기록된 게 아니라서.


일동, 의아한 얼굴로 본다.


엄 : 향찰로 기록이 돼 있어서 해독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립니다.

춘추 : 얼마나?

엄 : 글쎄요...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제가 요새 아르바이트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적어도 한 달? 두 달?

춘추 : 일주일 시간을 드리지. 그 안에 끝내.

엄 : 그건 좀.

춘추 : 나, 성질 급한 사람이야.

엄 : 아, 예.


춘추, 벌떡 일어난다.


춘추 : 가자.


춘추네 우르르 나간다.

인철, 책을 스르륵 들춰본다.

순자도 방에서 뛰어 나와 책을 들여다본다.


순자 : 이게 뭐야.

엄 : (책을 빼앗아 다시 들여다보고)

인철 : 아르바이트 다니세요?

순자 : 요새 이 사람, 공주 가정교사 다니잖아.

인철 : 공주 가정교사요?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24. 옷공장


장사장, 좁은 공장 안을 둘러보고 있다.


혁 : (장사장과 단 둘이 있다는 사실이 불안하다) 전화라도 좀 하고 오시지 그러셨어요?

장 : 난 번거로운 거 딱 질색이에요. 괜히 긴장하고, 청소하고, 불편하잖아요?

혁 : 좀 앉으세요.

장 : (앉는다)

혁 : 차라도,

장 : 차는 됐고, 앉아요.

혁 : 아, 예. (멀리 떨어져 앉는다)

장 : (혁을 찬찬히 보며) 디자이너 리도 오늘 보니까 매력적이네?

혁 : 네?

장 : 근데, 디자이너 강은?


이때, 인철, 들어오다가 장사장이 있자 흠칫 놀라고

혁, 인철이 이렇게 반가운 적이 없다.


인철 : 오셨어요?

혁 : (벌떡 일어나며) 왜 이렇게 늦었어?

장 : 안녕. 앉아요.


인철과 혁, 서로 멀리 앉으려고 암투를 벌이며 의자에 앉는다.


장 : 잘 돼가요?

인철 : 아, 예.

장 : (다시 둘러보며) 근데 디자이너들이 있기에는 스페이스가 영 아니다.

      이런 데서 크리에이티브 한 인스프레이션이 떠오르겠어?

인, 혁 : ...

장 : 우리 회사에 두 디자이너를 위한 스페이스를 한 번 마련해볼 테니까 그 쪽으로 와서 일해 볼래요?

인철 : 말씀은 고마운데요. 저희는 여기가 편합니다.

장 : (약간 살벌하게) 그러지 말고 옮기지?

혁 : (식은땀) 생각해 보겠습니다.

장 : 그럼, 옮기는 걸로 알고 준비시킬게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공장 안에 걸려 있는 옷들을 둘러보며)

      빤짝이, 매력적인 소재지. 그럼, 다음 조찬회의 때 봅시다.

      (나가며) 나올 거 없어요. 난 번거로운 거 딱 질색이니까. (나간다)

인, 혁 : 안녕히 가세요.


장사장이 완전히 사라지자 인철은 소파에 벌렁 드러눕고 혁은 그 앞에 풀썩 주저앉는다.

두 사람, 각자 다른 생각에 빠진다.


인철 : (누운 채 심각하게) 야, 혁아.

혁 : (본다)

인철 : 우리 돈, 많이 벌자!

혁 : 그래, 그래야지. 지금까지 고생한 세월이 얼만데.

인철 : 많이 벌어서 폼나게 한 번 살아보자.

혁 : 그래, 임마. 그러니까 열심히 일해.

인철 : 농담 아니야, 임마! 너, 내 말이 농담으로 들려?

혁 : 누가 뭐래, 임마? 많이 벌자니까? 많이 벌어야지.

인철 : 장사장 하라는 대로 사무실도 옮기고 니 말대로 고급스럽게 한 번 일해보자.

혁 : 꼭 옮겨야 되냐?

인철 : 옮기지, 뭐. 성공가도로 진입한다는데 그 정도 쯤이야. 장사장도 나름대로 귀엽잖아.

혁 : (몸서리를 치며) 아으, 귀여워? 그 자식은 연결을 해줘도 어떻게 저런 사람하고 연결을 해주냐?

인철 : 뭐?

혁 : 어? 아니야.

인철 : 누가 뭘 연결을 해줘?

혁 : (얼버무리며) 아니, ... 패션쇼 땜에 연결이 됐잖아?

인철 : ... (무섭게) 너, 똑바로 얘기 안 해?


혁, 난감하다.



#25. 마케팅 사무실


타쓰지,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타쓰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의욕이 넘쳐보인다.

은비, 이대리, 직원들, 그런 타쓰지를 이상하게 본다.


타쓰지 : (광고시안을 들여다보다가 탁 내려놓으며) 이번 광고 기획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죠.

직원들 : ???

타쓰지 : 대행사를 한 번 바꿔 봅시다. 다들 너무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거 같애요.

            이대리님. 오늘 중으로 대행사 리스트 업 해주세요.

이대리 : 아, 예.

타쓰지 :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따 점심 다들 같이 할까요? 고은비씨, 식당 예약 해놔요.


타쓰지, 씩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간다.

직원들, 의아한 얼굴로 서로 돌아본다.


이대리 : (작게) 웬일이야? 우리 실장 미쳤나 봐.


이때 인철,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은비, 이대리, 직원들, 놀란 얼굴로 돌아보는데

인철, 다짜고짜 타쓰지 방으로 들어간다.

은비,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인철이 섭섭하다.



#26. 타쓰지 사무실


인철, 문을 꽝 닫고 들어 와 전화하고 있는 타쓰지를 노려보고 있다.


타쓰지 : (전화를 하며 시선은 인철을 보며) 지금 뭐해? 선생님 오셨어? 그래, 공부 열심히 하고,

            어? 인철이가 왔네? 그래, 이따 봐.


타쓰지, 전화를 끊고 인철을 꼬나본다.

인철, 전화 내용을 들으며 어처구니가 없다.


타쓰지 : 너 정말 예의가 없구나. 남의 사무실에 이렇게 막 드나들어도 되는 거야?

인철 : (피식피식 웃으며 다가와 타쓰지 책상에 양 팔을 짚는다) 너, 왜 시키지 않은 짓 해?

타쓰지 : ...

인철 : 누가 널더러 내 뒤 좀 봐 달라고 부탁하디?

타쓰지 : (피식) 아니.

인철 : 근데 너 왜 그래?

타쓰지 : 그냥 도와주고 싶어서.

인철 : 그냥 왜?

타쓰지 : 불쌍해서.

인철 : 뭐? 불쌍해?


인철, 갑자기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온 몸에 힘들 실어 주먹을 날리는데

타쓰지, 준비하고 있다가 슥 피한다.

인철, 책상을 넘어 꼬꾸라졌다가 벌떡 일어나 타쓰지의 배로 돌진한다.

인철, 타쓰지의 허리를 끌어안고 넘어뜨리려는데

타쓰지, 팔꿈치로 인철의 등을 내리찍고 무릎으로 배를 올려 찬다.

인철, 제대로 한 대 때리지도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다.

직원들, 바깥에서 버티칼 사이로 일렬로 서서 구경한다.


타쓰지 : (승리자처럼 위에서 보며) 죽었다 깨도 그런 기회는 없어.

            그러니까 공주 주변에 얼쩡대지 말고 기회줄 때 잔말 말고 해.


인철, 배를 움켜쥐며 일어나 타쓰지를 노려보다가 피식 웃더니 있는 힘껏 주먹을 날린다.

타쓰지, 나가떨어진다.


인철 : 너라면 하겠지. 근데 내가 너냐?


인철, 성큼성큼 나가버린다.

타쓰지, 피식 웃는다.



#27. 마케팅 사무실


직원들, 인철이 나오자 아무도 안 본 척 한다.

인철, 또 말없이 은비조차 보이지 않는 듯 밖으로 나간다.

은비, 무슨 일인가 싶다.



#28. 복도


인철, 문을 벌컥 열고 나오다가 꽃을 들고 벽에 붙어 서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준하를 본다.


인철 : (놀란다) 정부장, 여기서 뭐해?

준하 : (흠칫 놀라 꽃을 뒤로 감추며) 응? 너! 너, 내가 정부장이라 그러지 말라 그랬지? 근데 너 여기, 여기 왜 왔냐?

인철 : 너야말로 여기 웬일이냐?

준하 : 뭐? 너? 이걸 확!

인철 : 누구 만날 사람 있어?

준하 : 아니, 뭐...

인철 : 내가 불러 줘?

준하 : .... 그럴래?

인철 : 누구?



#29. 다시 마케팅 사무실


인철, 다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은비, 자신을 향해 오는 인철을 보며 가슴이 뛴다.


인철 : 이대리님 나 좀 봐요. (홱 돌아선다)

이대리 : (흥분해서) 저, 저요?

은비 : (열받는다)

인철 : (나가다가 은비를 홱 돌아본다) 고은비.

은비 : (주변의 눈치를 보며) 응?

인철 : 미안하다.

은비 : 응? 뭐가?

인철 : 이따 공장으로 와라. 내가 커리어우먼 스타일로 제대로 만들어줄게. ....공짜루.


인철, 돌아서다가 자기 사무실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타쓰지와 눈이 살벌하게 마주친다.

인철, 잠시 맞받아 보다가 홱 돌아서 성큼성큼 나간다.

이대리, 인철을 급히 따라 나간다.

은비, 나가는 인철, 이대리와 타쓰지를 돌아본다.



#30. 다시 복도


인철, 사무실에서 나와 준하의 어깨를 툭 친다.


인철 : 너, 의외로 눈 높다. (간다)

준하 : 강인철, 고맙다. 넌 싸나이야.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인철, 성큼성큼 복도를 따라 가는데

인철의 뒤로 곤란해 하는 이대리와 수줍어하는 준하의 모습이 점점 멀어진다.



#31. 호텔 - 거실


공주와 엄박사, 마주 앉아 있다.


엄 :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지? 오늘은 좀 일찍 가야겠는데. 숙제가 생겨서 말이야. 내가 다음엔 시간을 좀 넉넉하게 낼게.

공주 : 괜찮습니다.

엄 : 근데 이 집 주인하고는 ... 어떻게 아는 사이야?

공주 : ....

엄 : 아, 뭐 대답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돼.

공주 : 그 놈의 조상이 제 원숩니다.

엄 : (황당하지만) 아, 그래? 근데 왜 여기 와 있는 거야?

공주 : (머뭇머뭇) 제 입으로 말씀드리긴 뭣하지만 제게 빚도 조금 있는데다가, 뭐 이런저런 문제가 얽혀서 그만...

엄 : 음...

공주 : 하시라도 떨치고 나서면 어떻게 되기야 하겠지만 오갈데가 없는 관계로...

엄 : ... 근데 나는 돈을 벌어서 좋긴 한데 아가씨한테 공부를 가르쳐서 뭘 어떡하겠다는 거야?

공주 : 저를 이곳에 적응시켜 보겠다는 얄팍한 수작인 거 같습니다만 저는 이곳에 적응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엄 : 아니, 왜?

공주 : 한편으로 편리하긴 합니다만 제겐 번잡스럽고 시끄러울 뿐입니다.

엄 : 근데 내가 돈 받기가 미안해. 가르치는 거보다 배우는 게 더 많아서...

공주 : 어차피 제가 드리는 돈도 아닌데요, 뭐. 부담 갖지 마십시오.

엄 : 허허허.... 그래, 그럼 다음 시간에 봐.


엄, 책들을 가방에 주섬주섬 챙기는데.


공주 : (엄과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계속 뭔가를 생각하며 망설이다가 다급하게) 저, 박사님.

         박사님 댁에 놀러가도 되겠습니까?

엄 : 우리 집에?

공주 : 예.

엄 : 안 될 게 뭐 있어?

공주 : 지금 갔으면 합니다.

엄 : 지금? 그러지, 뭐.

공주 :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공주, 부리나케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엄박사, 다시 가방을 꾸리는데

집사, 다과상을 들고 들어와 엄박사 앞에 앉는다.


집사 : 벌써 가시게요?

엄 : 오늘은 제가 좀 급한 일이 있어서...

집사 : 공부는 잘 되십니까?

엄 : 아, 예.

집사 : 어디 무슨 공부를 하시는지 좀 볼까요?


집사, 엄박사가 가방을 다시 꾸리느라 꺼내놓은 공주의 일기 사본을 무심코 집어 들어 펴 보다가 흠칫 놀라는데

엄박사, 기분 나쁜 얼굴로 집사의 손에서 책을 탁 빼앗아 가방에 넣어버린다.


집사 : 아니, 그 책이 무슨 책이죠?

엄 : 제 숙젭니다.


엄, 가방을 끌어안는다.

집사, 째려본다.



#32. 타쓰지 방


공주, 거울로 바쁘게 자기 모습을 살피고 어딘가 깊숙이 숨겨 놓은 목걸이를 꺼내 내려다보고 핸드백 안에 잘 갈무리 한다.



#33. 타쓰지 - 거실


이때, 화사하게 차려입은 공주가 들뜬 얼굴로 방에서 나온다.


공주 : 가십시다.

엄 : (집사에게) 그럼, 다음에.

집사 : (깜짝 놀라) 아니, 어디 가십니까?

공주 : 박사님 댁에 놀러 갔다 오겠다.

집사 : 안 됩니다. 저번에 그런 일도 있었는데. 도련님께서 아시면.

공주 : (말 자르며) 걱정하지 마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엄, 집사를 째려보고 공주와 함께 밖으로 나간다.

집사, 난감하다.



#34. 옷공장 (밤)


인철, 다시 쪼그려 누워 있고 혁, 망연자실 앉아있다.


혁 : (안타깝다) 폼 나게 살아보자며?

인철 : ...

혁 : 잘 생각해 보면 기분 나쁠 일도 아니야. 친구가 아무 조건 없이 도와준다는데 뭐 그렇게 기분 나뻐.

      ... 너 사실 불쌍하잖아. 자존심을 세울 데서 세워야지. 그리고 우리가 실력도 없이 순전히 연줄로만 비비자는 거 아니잖아.

      디자이너 장도 그랬어. 정말 보물을 소개시켜줘서 고맙다고. 그러니까 하자. 그냥 눈 딱 감고 하자, 응?

인철 : ...

혁 :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너 안 한다 그래도 난 할거야. 그러니까 내 인생까지 막지 마.

      괜히 전화해서 한다 안 한다 소리하면 나도 이제 더 이상 안 참을 거야.


혁, 밖으로 뛰쳐나간다.

인철, 괴롭다. 인철의 머리 속에 미심쩍은 부분들이 지나간다.

사내새끼가 쪽팔리게, 나한테 고마워할 거 없다던 춘추의 말.

팔려갔다던 꼬리의 말, 애인 찾아 갔다던 준하의 말,

내 여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타쓰지. 자기를 만나러 나왔노라던 공주.

공주 주변에 얼쩡대지 말라던 타쓰지. 자기가 미안하다던 공주.

인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 휴대전화 1변을 길게 누르는데 은비가 들어온다.

인철, 전화를 끊는다.


인철 : 어? 웬일이냐?

은비 : (기가 차다) 오라며? 공짜로 옷 해 준다구?

인철 : 아, 그랬지? 앉아라.

은비 : (앉는다)


인철, 자기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준다.


은비 : 실장하곤 왜 그래?

인철 : 아무 것도 아니야. 골라봐. 마음에 드는 디자인으로.

은비 : 나, 배고파.

인철 : 그래서?

은비 : 저번에 나 밥해준다 그랬잖아.

인철 : 얘는 언제적 얘길 하고 있어?

은비 : 니가 해주는 밥 먹어보고 싶어.

인철 : 이야... 옷 만들어주니까 이제 밥까지 해달라 그러냐?

은비 : 그래서 싫어?

인철 : 아, 귀찮아.

은비 : 그럼, 내가 해줄께. 가자.

인철 : 어딜?

은비 : 니네 집. (나가버린다)

인철 : 얘가 정말! 야! 고은비! 고은비!


인철, 부리나케 옷을 들고 불을 끄며 뒷정리를 하고 나간다.



#35. 호텔 - 타쓰지 거실 (밤)


집사, 문을 열어주면 타쓰지, 즐거운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온다.

타쓰지,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넘기고 겉옷을 벗기 시작한다.


집사 : (가방을 받아들며) 잘 댕겨 오셨습니까?

타쓰지 : 공주는?

집사 : (곤란하다) 저.. 놀러 나가셨습니다.

타쓰지 : (굳는다) 뭐?

집사 : 엄박사하고 같이 나갔으니까 별 일은 없을 겁니다.

타쓰지 : (싸늘하게 집사를 본다)

집사 : 제가 말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타쓰지, 겉옷을 마저 벗어 거칠게 팽개치고 소파에 앉으며 1번을 길게 눌러 귀에 댄다.


타쓰지 : (집사에게) 서류는?

집사 : 서류가 문제가 아니라 어머니께서 아시게 되는 날에는,

타쓰지 : 나야. 거기 어디야?



#36. 엄박사네 집 (밤) - 수정


공주, 전화를 받고 있다.

공주, 숙희의 반짝이 드레스를 입고 있고

숙희는 공주 옷을 입고 핸드백을 들고 거울 앞에 서서 돌고 있다.

공주, 모처럼 환한 얼굴이다.


공주 : 숙희네 집이다.

타쓰지 : 숙희? 숙희가 누구야?

공주 : 엄박사님 딸이다.

타쓰지 : 데리러 갈게.

공주 : 아니다. 내가 알아서 가겠다. (끊고 전원을 꺼버린다)

숙희 : 이 옷 정말 이쁘다. 빽도 너무 이쁘고. 되게 비싸보이네.

         (밥을 하고 있는 순자에게) 엄마, 엄마. 이거 나한테 너무 어울리지?

순자 : 왜 남의 옷 갖고 그래? 궁상맞게.

공주 : 아니다. 정말 어울린다. 바꿔 입자꾸나.

숙희 : 정말? 어머! 어머, 공주야. 너무 고마워.

순자 : 어허, 빨리 벗어.

숙희 : 왜에? 공주가 바꿔 입자는데?

공주 : 괜찮습니다.

순자 : 아유, 그래도 미안해서 그러지. 진짜 비싸 보인다. 이런 건 얼마나 해? (목 뒤의 상표를 까 본다)

엄 :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공주의 일기를 연구하며) 밥 안 줘?

순자 : 아, 좀만 기다려. 모처럼 돈 좀 벌어온다고 되게 위세하네.


순자, 부엌으로 나간다.


숙희 : 야, 근데 너, 정말 백제공주 무술쇼도 하고 나이트클럽에서 춤도 추고 그랬어?

공주 : 그래.

숙희 : 근데 어떻게 그 부잣집 남자하고 같이 살아? 이게 다 그 남자가 사준 거야?

공주 : ... 그래...



#37. 인철이네 집 (밤) - 수정


은비, 냉장고를 열고 난감한 얼굴로 들여다보고 있다.


인철 : 거 봐, 없다 그랬잖아.

은비 : 아무리 없다 그래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냐? 너, 뭐 먹고 사냐?

인철 : 대충 나가서 먹든지, 자장면이나 시켜 먹자.

은비 : 기다려. 내가 장 좀 봐올게.

인철 : 같이 갈까?

은비 : 넌, 설거지하고 청소나 좀 하고 있어. (가방을 둘러메고 나간다)

인철 : 하, 차.


인철, 기가 막혀하며 나가는 은비를 보다가 설거지를 시작한다.



#38. 호텔 - 타쓰지 거실 (밤)


타쓰지, 전화기를 손에 쥐고 창가에 앉아 곰곰 생각을 하고 있다.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집사 : (소리) 주소를 확인해보니까 강인철이네 옆 집입니다.


타쓰지, 피식피식 웃다가 싸늘한 얼굴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39. 엄박사네 집 (밤)


엄박사네 식구들과 공주,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다.

공주와 숙희, 여전히 옷을 바꿔 입은 채다.


순자 : 아유, 잘 먹네? 그 동안 굶었어?

공주 : 너무너무 맛있습니다.

엄 : 많이 먹어.

숙희 : 자주 좀 놀러와. 좋다, 얘.


옆집에서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숙희 : 어? 인철이 오빠 들어왔나 보네?

공주 : (벌렁벌렁)

순자 : 오늘은 일찍 들어왔네?

엄 : 와서 밥 먹으라 그러지?

숙희 : 내가 데려올게. (벌떡 일어나려는데)

순자 : 가만 있어봐.

숙희 : 왜?

순자 : (공주에게) 인철이 보러온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해. 우리 집에 놀러 온 게 아니라 인철이 보러 왔지?

공주 : ....

엄 : 그럼 가서 데리고 와.

순자 : 데리고 오긴 뭘 데리고 와. (의미심장하게) 가 봐.

공주 :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공주, 숙희의 옷을 입은 채 빽을 들고 부리나케 뛰어나간다.

엄박사네 식구들, 서로 돌아보며 웃는다.


엄 : 아이구, 참. (뒤늦게 사본을 돌아보며) 이거 좀 물어볼라 그랬는데.



#40. 인철이네 집 앞 (밤)


공주,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벨을 누른다.



#41. 인철이네 집 안 (밤)


인철, 현관벨소리에 청소기를 끄고 당연히 은비일 것이라 생각하고 문을 열다가 공주가 서 있자 굳는다.


인철 : 너....



#42. 문 앞 (밤)


인철, 문을 연 채 굳은 듯 서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공주를 보고 있다.


인철 : 혼자 온 거야?

공주 : 그래.

인철 : ... 들어와.


인철, 걱정스러운 얼굴로 재빨리 엘리베이터 쪽을 돌아보고 문을 닫는다.

은비, 양 손에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엘리베이터 쪽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서서 한숨을 내쉰다. 눈물이 핑 돈다.



#43. 인철이네 집 (밤) - 수정


인철, 현관문을 닫고 공주를 따라 안으로 들어온다.

공주, 마치 낯선 곳에 온 것처럼 새삼스럽게 안을 둘러보고 인철도 전과 달리 괜히 쑥스럽다.


인철 : (의자 위를 치우고 커버를 털어내며) 앉아. 근데 그거 어디서 많이 보던 옷이다?

공주 : 숙희 옷하고 바꿔 입었다.

인철 : 아, 엄박사님하고 같이 왔구나?

공주 : 그래.

인철 : 앉아라.


인철, 공주가 옆에 없는 것처럼 부엌도 왔다 갔다 하고 방도 들락날락거리며 청소기도 치우고 어질어진 것들을 정리한다.

언제 은비가 들이닥칠지 불안하다.


인철 : 뭐 줄까? 마실 거, 줄까? (밥솥을 열며) 밥은 먹었어? 아, 참, 밥이 없지. 라면 끓여 줄까? 너 라면 좋아하잖아.

공주 : 밥은 됐다.


전화벨. 인철, 보면 은비다.


인철 : (은비한테 미안하다. 조심스럽게) 어. 왜?

은비 : 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집에 가봐야 될 거 같거든? 어떡하지?

인철 : (안도하며) 어, 그래?

은비 : 미안해.

인철 : 아, 아니야. 괜찮아.

은비 : 그래, 그럼 또 전화할게. (끊는다)



#44. 인철의 아파트 앞 (밤)


은비의 차 안.

은비, 시동을 켜고 씩씩하게 눈물을 훔치며 출발한다.



#45. 다시 인철이네 집 (밤)


인철,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한 심정으로 전화를 끊는다.


공주 : 누구 전화냐?

인철 : 어, 아니야.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인철 : 차 한 잔 줄까?


인철, 대답도 듣지 않고 부엌으로 가 물을 올려놓고 끓기를 기다리며 잔에 커피와 프림, 설탕을 떠 넣는다.

공주, 우두커니 앉은 채 인철의 뒷모습만 보고 있다.


인철 : 아, 참. 니 옷 고쳐놨는데...


인철, 방으로 가 옷을 갖고 나와 공주에게 준다.


인철 : 갈아입어라.

공주 : (옷을 받아들고 눈물이 핑 돈다) 알았다.


공주,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인철의 뇌리에 공주가 왜 왔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 못 가게 잡아야 하나? 온갖 생각이 스친다.

인철, 공주가 들어간 방을 돌아본다.



#46. 인철이네 집 앞 (밤)


타쓰지, 차를 세우고 굳은 얼굴로 인철이네 집을 올려다본다. 불이 켜 있다.

타쓰지, 다시 전화를 해본다.


소리 : 전화기가 꺼져 있어...


타쓰지, 전화를 탁 끊고 인철이네 집을 올려다본다.

타쓰지의 얼굴이 더욱 싸늘하게 굳는다.



#47. 인철이네 집 (밤)


인철, 물이 끓자 잔에 물을 따라 들고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데

공주,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다가 인철이 자기를 보자 쑥스럽게 웃으며 의자에 앉는다.


인철 : 마셔.


긴 침묵.


인철 : (공주가 만지작거리는 핸드백을 보다가) 웃긴다. 너, 이제 백도 갖고 다니냐?

공주 : 그래.

인철 : (퉁명스럽게) 왜 왔냐?


공주, 말없이 백에서 목걸이를 꺼낸다.


공주 : 너한테 이걸 주려고 왔다.

인철 : ... 왜?

공주 : 그냥 그러고 싶어서.


인철, 자신이 목걸이를 훔쳤다는 자격지심과 미안함 때문에 오히려 더 퉁퉁거린다.


인철 : 나, 그거 필요 없으니까 가져가.

공주 : ...

인철 : (솟구치는 화를 꾹 참으며) 니가 그 자식한테 부탁했냐?

공주 : 무슨 얘기냐?

인철 : 그 자식한테 내 일 도와주라고 부탁했어?

공주 : ...

인철 : 너, 왜 그러고 다니냐? 내가 언제 너한테 그런 쓸데 없는 짓하고 다니라 그랬어?

공주 : (눈물이 핑 돈다)

인철 : 너도 내가 불쌍해 보이냐?

공주 : ...

인철 : 내가 보기엔 니가 더 불쌍해.

공주 : ...

인철 : 너, 왜 거기 있는 거야?

공주 : ...

인철 : 너, 정말 니 발로 그 자식한테 간 거야?

공주 : ...

인철 : 너, 정말 그 자식 여자야?

공주 : ...

인철 : 너, 그 자식 사랑해?

공주 : ...


공주, 인철을 쏘아보다가 백에 목걸이를 집어넣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인철, 스스로에 대해 너무너무 화가 난다. 한동안 꼼짝도 않고 앉아 괴로워 한다.



#48. 인철이네 집 앞 복도 (밤)


공주, 집에서 나오자마자 참았던 울음이 터져나온다.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엉엉 울며 엘리베이터로 가는 공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공주, 계속 대성통곡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탄다.



#49. 엘리베이터 안 (밤)


공주, 입 다물고 눈물만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입을 크게 벌리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다.

억지로 소리를 삼키려 해도 그럴수록 꺽꺽 오열이 터지고

아무리 눈물을 닦으려 참으려 해도 나오는 울음과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눈물을 훔치며 내리려는데 인철이 숨을 헐떡이며 엘리베이터 벽을 짚고 서 있자

공주, 깜짝 놀라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인철을 올려다본다.


인철 :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닫히려는 엘리베이터 문을 막아선다) 헉... 헉... 너, 이렇게 가면 어떡해?

         (버럭)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이래?


공주, 갑자기 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린다.


인철 : 너, 못 가! ... 나, 너, 사랑해.

공주 : (인철을 빤히 보며 운다)


인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공주를 거칠게 안더니 키스를 퍼붓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첨부파일 천년지애 17.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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