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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지애] 19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3.03.13|조회수376 목록 댓글 0

[천년지애] 19











#1. 식당 (밤)


인철 : 돌아가?

타쓰지 :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공주 : 나도 모른다.

타쓰지 : 정말 그런 얘길 했단 말이야?

공주 : ... 그렇다. ... 그리고... 목걸이를 주면 돌아갈 길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타쓰지, 혼란스럽다.



#2. 호텔 (밤)


공주와 타쓰지, 심각하고 인철, 그 앞에서 거품 물고 있다.


인철 : 공주 사기꾼이라고 몰아붙이면서 목걸이 뺏고 길바닥에 갖다 버리고, 닌잔지 하는 놈들이 납치까지 하고.

         근데 이제 와서 돌아간다 어쩐다 하면서 목걸이 내놓으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앞뒤가 안 맞잖아.

         니네 엄마가 얘에 대해서 도대체 뭘, 얼마나 안다는 거야? 뭔데 목걸이를 달라 마라야? 돌아간다는 건 또 무슨 얘기야?

         다 얘 목걸이 뺏으려는 수작 아니야? (걱정스럽게 공주를 잡으며) 너도 속으면 안돼. 행여 목걸이 갖다줄 생각하지 마.

타쓰지 : (아무렇지도 않게 공주에게) 피곤하지? 오늘은 일단 쉬어. (일어나며 인철에게) 가자.

인철 : 공주 혼자 두고 어딜 가. 공주 지켜야지.

타쓰지 : 여기 우리 호텔이야. 걱정 안 해도 돼.

인철 : (픽) 그러니까 더 지켜야지.

타쓰지 : 그래? 그럼 나도 여기 있지 뭐.

공주 : 됐다. 물러들 가라!


인철과 타쓰지, 멀멀해진다.


타쓰지 : 거 봐.

인철 : 너 때문이잖아.

타쓰지 : (자리에서 일어나며 공주에게) 그래, 쉬어.

인철 : (아쉽지만 씩 웃으며) 잘자.

공주 : (씩 웃으며) 그래.

인철 : (나가다말고) 근데 나 안 보고 싶었어?

공주 : 너는 내가 보고 싶었느냐?

인철 : 여기까지 왔잖아.

공주 : (미소가 떠오른다) ... 보고 싶었다.

인철 : 정말 내가 안 지켜줘도 되겠어?

공주 : 괜찮다.


타쓰지, 질투로 부들부들 떨다가 인철을 확 잡아끌고 나간다.

공주, 씩 웃다가 한숨을 푹 내쉰다.



#3. 다른 방


인철과 타쓰지, 침대에 누워 등을 맞대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타쓰지 : (속으로) 분명히 돌아갈 수 없다고 했는데... 목걸이를 주면 돌아갈 길을 가르쳐 주겠다고? 왜 거짓말을 하는 걸까?

            노리는 게 뭘까? 목걸이일까, 아니면 공주일까? 정말 백제에서 왔다구? 의심한 적은 없지만 믿은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정말 공주라고 해도 돌아가게 할 수는 없어.

인철 : (속으로) 돌아가? 돌아간다고? 어딜? 말도 안돼! 며칠만 떨어져 있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목걸이를 주면 길을 알려준다고? 그렇다면 절대로 목걸이를 뺏기면 안 될 텐데... 근데 공주가 다시 돌려 달라 그러면

         어떡하지? (머리를 쥐어 뜯으며) 몰라! 배 째라 그래야지. 팔아버렸다고 할까? 잃어버렸다고 그럴까?

         (공주를 이상한 눈으로 본다) 근데.... 정말 공주면... 난 어떡하지?

타쓰지 : (불쑥) ... 공주를 어디서 처음 봤다 그랬지?

인철 : 부여.

타쓰지 : 부여? 사비성?

인철 : 응.


인철과 타쓰지, 이상하다.


타쓰지 : 처음 봤을 때 무슨 옷을 입고 있었어?

인철 : 이상한 한복.

타쓰지 : 무술쇼할때 입던 거?

인철 : 응.

타쓰지 : 집사가 비단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던데...


두 남자, 또 이상하다.


인철 : 공주가 얘기하던 미인도, 정말 공주하고 닮았어?

타쓰지 : 똑같애.

인철 : ....

타쓰지 : ... 목걸이는 공주 처음 봤을 때 훔친 거야?

인철 : (짜증난다) 아흐 증말.


인철, 홱 돌아눕는다. 다시 침묵.


타쓰지 : ... 넌 어떻게 생각해?

인철 : (퉁명스럽게) 뭘?

타쓰지 : .... 공주 말이야.

인철 : ..... 너는?

타쓰지 : .... 정말인 거 같애.

인철 : ..... 나도.


인철과 타쓰지, 다시 심각하게 생각에 잠긴다.


타쓰지 : 근데 정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인철 : .... 아니.

타쓰지 : 그지?

인철 : 근데.. 정말이면 어떡하지?

타쓰지 : 그러게...

인철 : ... 그래도.... 난 상관없어.

타쓰지 : 나도 상관없어. 그러니까 결혼도 했지.

인철 : (벌떡 일어나 앉는다) 너 정말 끝까지 사기 칠래? 끝까지 한 번 해 보자는 거야?

타쓰지 : 자자!


타쓰지, 얄밉게 시트를 덮어 쓰고 잠을 청한다.

인철, 베개를 집어 후려치려다가 참는다.



#4. 비행기 일반석


인철, 일반석 자리에 좁게 앉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픽픽 웃고 있다.


인철 : 차! 퍼스트 클래스? 아, 차, 야, 정말, 으아!!!


옆좌석 사람, 인철을 이상한 눈으로 본다.


인철 : 내 이 자식을!!!



#5. 비행기 일등석


공주와 타쓰지, 나란히 앉아있다.

공주,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타쓰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공주를 보며 지에꼬와 만난 일을 떠올린다.



#6. 타쓰지의 회상 - 지에꼬방


타쓰지와 지에꼬, 마주 앉아 있다.

지에꼬, 노려보는 타쓰지의 눈길을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있게 책만 넘기고 있다.


타쓰지 : (일어로) 도대체 공주는 누구예요? 공주에 대해서 뭘 알고 있는 거예요? 목걸이는 왜 뺏으려는 거예요?

지에꼬 : (책을 보는 채로) 황실의 보물을 되찾으려는 것 뿐이야.

타쓰지 : 뭐라구요?

지에꼬 : 결혼? 흥! (타쓰지를 무섭게 노려보며) 모르면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어. 네가 후지와라의 후계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네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이니까.

타쓰지 : (심각해진다) .... 무슨 말이에요?

지에꼬 : (비웃음을 머금고) 네가 순수한 혈통이 아니라 혈통을 우습게 아는가 본데,

타쓰지 : (기분 더럽다)

지에꼬 : (광기어린 혼잣말) 만세일계의 순수한 황통을 더럽히려는 수작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타쓰지 : (무섭다)

지에꼬 : 아마떼라스 오오미까미의 적손에게 멸망한 나라의 공주가 가당키나 해?

타쓰지 : ....

지에꼬 : 공주가 황실에 시집가는 걸 막아야 돼.


지에꼬, 벌떡 일어나 나가려는데.


타쓰지 : 그럼, 공주가 정말 백제에서 온 공주란 말이예요?

지에꼬 : (씩 웃으며) 목걸이나 갖고 와. (나간다)


타쓰지, 혼란스럽다.



#7. 다시 일등석


공주 : 근데 강인철이는 어디로 갔느냐?

타쓰지 : (회상에서 깨어난다) 응? 어. 뒤에 있어.

공주 : 왜 같이 앉지 않고 뒤로 갔느냐?

타쓰지 : 그냥 그런 게 있어.


타쓰지, 갑자기 공주의 손을 꽉 움켜쥔다.

흠칫 놀란 공주, 손을 빼려 하지만 타쓰지, 공주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는다.


공주 : 왜 이러느냐?

타쓰지 : 미안해. 널 괜히 데려온 거 같다.

공주 : 느닷없이 그게 무슨 말이냐?

타쓰지 : 하지만 반드시 내가 지켜 줄거야.

공주 : ??


이때 인철이 다가와 손을 탁 떼어낸다.

공주와 타쓰지, 흠칫 놀라 올려다본다.


인철 : (비굴하게 꾹 참으며 타쓰지의 손을 꼭 잡은 채) 잠깐 자리 좀 바꿀래?

타쓰지 : 왜?

인철 : 할 얘기가 있어서.


타쓰지, 잠시 째려보다가 할 수 없이 뒤에 있는 빈자리로 가 앉는다.

인철, 타쓰지 자리에 앉는다.

공주, 반갑다.


공주 :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냐?

인철 : ..... (말없이 공주를 빤히 본다)

공주 : ..... 뭘 그리 보느냐?

인철 : ....너, 서울에 가면 또 저 자식 집에 갈 거야?

공주 : 아니다. 집으로 갈 거다.

인철 : (씩 웃으며) 이제 제발 어디 다른 데 좀 가지 마.

공주 : (웃으며) 그래.

인철 : ... 돌아갈 길이 있다면 ... 갈 거야?

공주 : ....

인철 : ....가지 마.

공주 : ....

인철 : 그 목걸이 너한테 절대로 안 돌려 줄 거야. 내 꺼니까.


인철, 공주의 손가락에 까지 낀다.

공주, 대답없이 인철이 낀 손가락을 꽉 잡아주는데 착륙 안내멘트가 나온다.

타쓰지, 어느새 다가와 인철 앞에 선다. 깍지 낀 두 사람의 손을 보며 부글부글 끓는다.


타쓰지 : 이제 니 자리로 가.

인철 : 그냥 니가 내 자리에 앉으면 안되냐?

타쓰지 : 싫어!

인철 : (더럽고 치사하다) 아흐, 정말.


인철,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인철 : (공주에게) 좀 있다 봐.


인철, 가고 타쓰지, 자리에 앉는다.

공주, 괜히 미안하다.



#8. 옷공장 앞


타쓰지의 세단이 스르르 선다.

타쓰지의 차 안

인철, 조수석에 거의 몸을 뒤로 돌려 앉아 있고 뒷자리에 타쓰지와 공주가 앉아 있다.

인철과 공주, 의외다.


인철 : 니가 웬일이냐? 순순히 데려다 주게?

타쓰지 : (공주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어떻게 할래?


인철과 타쓰지, 공주의 대답을 숨막히게 기다린다.


공주 : ... 여기서 내리겠다.

인철 : (안도하며 멋적게 웃고)

타쓰지 : (슬프지만 공주에게) 그래, 그럼. 차 안에서 잠깐만 기다려 줄래? 인철이하고 할 얘기가 있어.

공주 : 그래라.


타쓰지, 차에서 내리고 인철도 내린다.

공주, 차 안에서 두 남자를 올려다본다.


타쓰지 : (잠시 인철을 보다가) 목걸이 잘 간수해라. 불안하면 나한테 맡기던지.

인철 : 하!!

타쓰지 : 내가 공주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마.

인철 : 포기 해.

타쓰지 :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어.


타쓰지, 공주의 차문을 열어주고 공주가 내리는 동안 빤히 보다가.


타쓰지 : 전화할게.

공주 : 고맙다. 나중에라도 빚은 꼭 갚겠다.


타쓰지, 잠시 보다가 차에 타고 떠난다.



#9. 옷공장


혁, 미싱 박고 원단도 정리하고 있다가 갑자기 팽개친다.


혁 : 책임감도 없고, 의욕도 없고, 성실하지도 않고 성질만 드러운 자식하고 내가 미쳤지. 이 자식 나타나기만 해 봐.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이때 인철, 안으로 들어온다.


혁 : (버럭) 너 어디 갔다 온 거야!


하는데 인철의 손을 꼭 잡고 공주가 따라 들어온다.


공주 : 잘 있었느냐?

혁 : (뭐야?) 아, 안녕.

인철 : 앉아.


인철, 공주의 손을 꼭 쥐고 앉는다.

혁, 재수 없다.


인철 : (여유 있게) 별 일 없었냐?


시간 경과

인철, 행거에 걸려 있는 옷들 중에서 공주가 입을 만한 옷을 골라 대보고 있다.


인철 : 이거 괜찮다. 이걸로 갈아입어.


공주, 신나서 옷을 받아들고 갈아입으러 들어간다.


혁 :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그거 장사장한테 보낼 샘플이야.

인철 : (흐뭇해하며) 쟤 좀 이상하지 않냐? 그 비싼 옷 다 놔두고 왜 저 옷만 그렇게 죽어라고 입는 거냐?

         아무리 내가 만들어 준 옷이라 그래도 그렇지.

혁 : (조용히) 어떻게 된 거야?

인철 :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보시는 바와 같이 예전으로 돌아간 거 뿐이지.

혁 : 다시 데리고 살려구?

인철 : 모시고 살아야지. 공주님인데.

혁 : (걱정스럽게) 괜히 후지와라 열 받아서 장사장한테 우리 일 못하게 압력 넣는 거 아니냐?

인철 : 맘대로 하라 그래.


혁, 우울한 얼굴로 인철을 노려보는데 공주가 뒤에서 나온다.


공주 : 어떠냐? 예쁘냐?


인철과 혁, 다가온다.


인철 : 이야, 우리가 만든 옷은 정말 언제 봐도 예술이다. 안그냐?


혁, 흐뭇하게 공주를 바라보는 인철을 째려본다.



#10. 거리


달리는 타쓰지의 차 안.

타쓰지, 뒷자리에 앉아 창 밖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머리는 터질 것 같고 가슴은 너무 아프다.



#11. 타쓰지 욕실


거품이 가득 찬 욕조, 타쓰지는 보이지 않는다.

집사, 옷들을 챙겨 들고 들어와 깜짝 놀란다.


집사 : (두리번거리며) 도련님, 도련님!


타쓰지, 갑자기 물 속에서 튀어 올라와 앉는다.

집사, 더 깜짝 놀란다.


집사 : (흠칫) 은신술을 연마하고 계셨군요. (옷을 내려 놓으며) 근데 공주님은 어떻게 하고 혼자 돌아오셨습니까?

         어머님꼐 꾸중이라도,

타쓰지 : (다시 예전처럼 싸늘한 눈빛으로) 어떻게 됐어요?

집사 : 참고가 될만한 자료들은 전부 보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백제공주 일기는 아무리 도련님 지시라고 해도

         열람조차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타쓰지 : (혼잣말처럼) 아마떼라스 오오미까미(천조대신)의 적손에게 멸망한 나라의 공주가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집사 : 아니, 누가 황실로 시집이라도 간단 말입니까?

타쓰지 : 공주가 황실로 시집가는 걸 막아야 한다 그랬어.

집사 : 어떤 공주 말씀이십니까?

타쓰지 : 남부여의 마지막 공주, 부여주!

집사 : (헷갈린다) 예?

타쓰지 : (혼잣말로 중얼중얼)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다고?.... 그럼 공주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돌려보내야 하나...

집사 : 도련님, 어디 아프십니까?


타쓰지, 다시 물 속으로 푹 들어가버린다.

집사, 왜 저러나 싶다.



#12. 모처 (밤)


닌자들의 차가 서 있다.

한갈, 전화를 받고 있다.


한갈 : (일어로)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한갈, 침통한 얼굴로 전화를 끊는다.


우슈 : (일어로) 뭐라셔?

한갈 : (비통하게) 공주가 직접 왔다 갔다고...

우슈 : (역시 비통하게) 이건 우리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지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한갈 : 어떻게?

우슈 : 하루 빨리 일기와 목걸이를 찾아야지.

한갈 : 어디서?


한갈과 우슈, 눈빛을 빛낸다.



#13. 강남컨설팅 대기실 (밤)


준하, 부하들과 고민하고 있다.


윤발 : 괜히 돈 쓰고 마음도 못 얻고 헛고생만 하신 것 같습니다.

쭈구 : 그동안 꽃 배달이며 인형값이 만만치 않았는데....

종성 : 아무래도 형수님이 그 뺀질뺀질한 놈을 마음에 두고 계신 것 같습니다.

준하 : (날카롭게) 뭐?

종성 :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뺀질이가 형수님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거 같습니다.

준하 : (부글부글)

윤발 : 그 날 부루스 출 때도 형수님이 그 놈 목을 막 끌어안고,

준하 : 뭐?

윤발 : 아니, 그 놈이 형수님을 막 끌어안고,

쭈구 : 제 생각엔 형수님이 형님하고 라벨이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준하 : 라벨?

쭈구 : (내가 뭐 잘못했나? 당황) ... 벨란가?


하는데 문이 벌컥 열린다.

일동, 돌아보는데 닌자들, 역광을 받고 서서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날린다.

준하와 부하들, 흠칫 놀라 일어난다.

부하들, 서로 눈치를 보는데 준하, 반갑게 다가간다.


준하 : 아우, 안녕하세요. 그렇잖아도 저희 회장님꼐서 다시 들르시면 꼭 섭섭지 않게 모시라 그랬습니다.

         진작 공주 오빠라고 말씀 하셨으면 그런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을텐데요. 아, 옷 드라이 해 놨습니다. (부하에게) 야! 옷!


쭈구리, 걸려 있던 양복 웃옷을 들고 오는데

한갈, 옷을 탁 낚아채 주머니를 뒤져 본다.

닌자들, 책이 없자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준하의 목을 콱 조르더니

반항할 틈도 없이 문 밖으로 홱 끌고 나가버린다.

부하들, 당황하여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뒤늦게 쫓아 나간다.


부하들 : 부장님! 부장님!


부하들, 우르르 나간다.

잠시 후, 화장실 문이 열리고 춘추가 나와 텅 빈 대기실을 둘러본다.


춘추 : 이 자식들, 자리 비우고 다 어디 갔어?



#14. 모처 (밤)


준하, 엉망으로 터진 채 왜 맞았는지 모르고 무릎 끓고 앉아 울고 있다.


준하 : 저하고 공주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 손을 봐주실 거면 우리 회장님이나, 강인철이나 후지와라 같은 애를

         손 봐주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전 정말 억울하답니다.

한갈 : (일어로) 책 어딨어?

준하 : (일본말로 떠드는 게 이상하다) 네?

우슈 : (일어로) 어디다 감췄어!

준하 : 네?


한갈, 못 알아듣는 준하를 향해 다시 무술 폼을 잡는다.

준하, 공포에 사로잡힌다.


준하 : 잠깐 잠깐! (손으로 네모를 그려가며) 혹시 책 말씀하시나요?


한갈과 우슈, 서로 돌아보고 준하를 보고 끄덕인다.


준하 : (얘기가 통한 것 같아 너무 반갑다) 진작 말씀 하시죠.

한갈 : (일어로) 어딨어?

준하 : (울먹이며 대충 눈치로) 엄박사.

한갈 : ?

준하 : 엄! 엄! 엄! 박! 사!


한갈과 우슈, 준하를 다시 차에 태우고 붕 떠난다.



#15. 엄박사네 집 (밤)


순자와 숙희, 밥을 먹고 있는데

엄박사, 밥 먹을 생각도 않고 일기를 해독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오리무중이다.


순자 : 밥 먹어!

엄 : 아, 좀 조용히 해 봐.

순자 : 지금 안 먹으면 저녁 없어!

엄 : (노트에 옮겨 적으며 혼잣말로 중얼중얼 거린다) 癸未(계미), 丁巳(정사), 戊戌(무술), 庚申(경신)이라...

      사주는 아닌 거 같고... 태양이 사라지는 날, 아리가 죽은 곳에서 구름 속으로? ...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순자 : 으이구, 으이구, 깡패들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네. 그 좋아하는 밥도 안 먹고.


엄박사, 갑자기 다른 책을 펼쳐 여기저기 뒤져보다가 다시 일기를 들여다본다.


엄 : 부흥운동. 고모를 만나서 구원군을 요청해?... 고모?.....


엄박사, 순간 클럽 대기실에서 공주와 주고받던 대화가 떠오른다.


엄 : 그럼 이 일본서기에 써놓은 건 뭐야? 고모님, 보고 싶습니다? 천황이 고모란 말이야?

공주 : 네.

엄 : 네?

공주 : 보황녀께서는 왜로 출가하여 두 번이나 천황위에 오르신 분입니다.

엄 : 그러니까 사이메이 천황을 얘기하는 건가?

공주 : 예.

엄 : (긴가?) 공주? ... (민가?) 에이 설마... (긴가?) 아니야. 뭔가 이상해...

순자 : 이이가 미쳤나? 밥은 안 먹고 뭘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려?


엄박사, 다시 이 책, 저 책 비교해가며 정신없이 본다.



#16. 인철이네 집 (밤) - 수정


인철, 분주하게 밥을 하고 있다. 찌게도 끓이고, 반찬도 만들며 괜히 히죽히죽 웃음이 나온다.

인철, 문득 방으로 들어가 옷장에서 자신의 티셔츠와 헐렁한 고무줄 반바지를 들고 욕실 앞으로 간다.


인철 : (새삼 민망하다) 저기... 다 씻고 이걸로 갈아입어. 문 앞에 놓을께.

공주 : (소리) 알았다.


인철, 다시 히죽거리며 부엌으로 사라지면

문이 빼꼼 열리고 손만 나와 옷을 홱 집어들고 문이 닫힌다.

시간경과

인철, 냄비 뚜껑을 열면 먹음직스러운 찌게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반찬도 많다.

공주, 입이 찢어진다.

공주, 인철의 헐렁한 티셔츠와 커다란 반바지를 입고 있다.


공주 : 이걸 혼자 다 했느냐?

인철 : 그럼, 내가 하지 누가 하냐?

공주 : (흡족하다) 정말 못하는 게 없구나. 바느질도 잘하고, 음식도 잘하고. 장하다.

인철 :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공주 : (맛있게 먹는다)

인철 : (슥) 맛있어?

공주 : 맛은 별로다.

인철 : ...

공주 : 음식은 숙희 어머니 솜씨가 제일인 거 같다.

인철 : ... 그렇게 입으니까 편하지?

공주 : 그래, 편하다.

인철 : 진작, 홈웨어 몇 벌 만들어줄 걸. 그동안 자나깨나 짝 달라붙는 원피스 입고 있느라 얼마나 불편했겠냐?

공주 : 늦게라도 알아주니 고맙다.

인철 : (잠시 보다가) ... 너, 오늘부터 문 꼭 잠그고 자.

공주 : 새삼스레 왜 그러느냐?

인철 : (민망하다) 어,... 그런 게 있어.

공주 : 뒷간 문고리나 고쳐 놔라.

인철 : 어, 그래. 알았어. (문득) 근데 김춘추가 어디서 이상한 책을 구해왔는데 거기에 아리, 김유석, 김춘추, 타쓰지 그 자식,

         강인철, 이란 이름들이 계속 나온대. 그 중에서 내 이름이 제일 많이 나오고.. (좋아한다)

공주 : (깜짝 놀란다) 뭐라구?

인철 : 이상하지? 다른 거 보다 아리하고 김유석은 정말 이상하지 않냐? 너, 나 말고 누구한테 얘기한 적 있냐?

공주 : 그 책이 지금 어디 있느냐?



#17. 엄박사네 집 (밤) - 수정


숙희 : 누구세요?


숙희, 문을 여는데 닌자들, 준하를 안으로 확 밀어 던지며 살벌하게 들어온다.

준하, 바닥에 나뒹굴고 숙희, 비명을 지르며 설거지하는 순자 뒤에 숨는다.


숙희 : (엄마 뒤에 숨으며) 엄마!!!

순자 : 에그머니나! 누구야? 요새 우리집 왜 이래?

엄 : 당신들 뭐야?

준하 : (기어서 안으로 피하며) 박사님! 무서운 놈들이에요.


한갈, 엄박사 앞에 펼쳐져 있는 책을 보더니 다짜고짜 탁 집어 들고 본다.

닌자들, 서로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현관벨이 울린다.

일동, 긴장

닌자들, 문쪽을 슥 돌아보더니 열린 창 밖으로 몸을 날려버린다.

남은 사람들, 깜짝 놀라 우르르 창 쪽으로 달려가 내려다본다.

닌자들, 어느새 다리를 절룩이며 달려가고 있다.

감탄하는 엄, 순자, 숙희, 정부장.

곧이어 문이 열리고 인철과 공주가 뛰어 들어온다.


인철 : 무슨 일이예요?


돌아보는 일동, 공주가 서 있자 다시 한 번 놀란다.

시간경과

인철과 공주, 엄박사 앞에 앉아 있다.

엄박사, 공주의 얼굴을 새삼 찬찬히 뜯어보고 있고 준하는 한 옆에서 전화를 하고 있다.


준하 : 예, 회장님. 별 일 없습니다, 회장님. ... 죄송합니다, 회장님. ... 아닙니다. 저는 끄떡 없습니다, 회장님.

         ... 그럼, 이따가 자세히 보고드리겠습니다.


준하, 전화 끊고 숙연한 분위기에 자기도 괜히 주눅이 들어, 조심스럽게 앉는다.


인철 : 아프냐?

정부장 : (창피하다) 아니, 뭐..

인철 : 아프지?

정부장 : 아흐, 증말...

공주 : 책의 내용은 살펴보셨습니까?

엄 : 아니, 근데 언제 온 거야?

순자 : 자주 오네?

인철 : 이제 여기서 살 거예요.

엄 : 아, 그래?

숙희 : 그럼, 그 옷이랑 백들이랑 다 갖고 왔어?

공주 : 안 갖고 왔다.

숙희 : (안타깝다) 그냥 거기서 살지. 구질구질한 집에 뭐하러 다시 왔어?

인철 : 뭐?

준하 : 저는 가봐도 되겠죠? 회장님께서 기다리셔서.

순자 : 그럼, 둘이 결혼이라도 하는 거야?

숙희 : 그냥 거기 살면서 왔다 갔다 하지. 나도 한 번 구경 가볼라 그랬는데.

인철 : 야!

준하 :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못 일어난다)

공주 : 그 책 안에 무엇이 쓰여 있던 가요?

엄 : (공주를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보다가) 그게 그냥 일반 복사지에 복사가 돼 있어서 말이야,

      처음에는 나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보기 시작했는데 아니, 글쎄, 그게 그동안 공주가 나한테 해줬던 얘기나,

      뭐, 거기 나오는 이름이나 이런 걸 볼 때 여러 정황들이 들어맞는단 말이야.

순자 : 무슨 얘기야?

엄 : (아쉽다) 지금 한참 해독하고 있는 중인데 그 놈들이 가져가 버려서...

공주 : 그 책에 이름들이 쓰여 있다고 하던데... 정말로 아리와 김유석이란 이름도 쓰여 있었습니까?

엄 : 공주가 아는 사람들이야?

공주 : ... 예.

엄 : 어떻게?

공주 : (인철을 슥 돌아보며) 아리는 저의 호위무사였고, 김유석은 아리를 죽인 저의 원수입니다.

엄 : (점점 소름이 돋는다) 오호.. 전에 나한테 벼랑 위에서 몸을 던졌는데 눈을 떠보니 이 곳이라 그랬지?

공주 : 예.

엄 : 그 때 뭐 다른 이상한 일은 없었나?

공주 : ... 바람이 몹시 불고,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쳤습니다.


인철의 뇌리에 순간적으로 공주를 처음 만나던 날, 바람에 날아갈 뻔했던 기억이 스치고

준하의 뇌리에도 강가의 텐트가 바람에 날아갈 뻔하던 기억이 스친다.


엄 : 그리고, 또.

공주 : 그리고 태양이 사라지고, 저는 구름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엄 : (흠칫 놀란다)

공주 :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엄 : 그럼 이곳에 오게 된 날짜를 기억하나?

공주 :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현경 오년 기묘월 갑진일 입니다.

엄 : ... 혹시 그 곳이 어딘지 기억해?

공주 : ... 아리가 죽은 자리였습니다.

엄 : (허걱) ... 그럼, 정말 과거에서 왔단 말이야?

공주 : 몇 번을 말씀드려야 믿으시겠습니까?

엄 : ... 그, 그럼, 그 책은 다시 돌아가서 남겼단 얘기야?

공주 : 예?


엄박사, 엄청난 충격에 혼절해버린다.


순자 : 여보!

숙희 : 아빠!

인철 : 박사님!


준하, 공주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공주, 심각해진다.



#18. 인철이네 집 (밤)


공주와 인철, 각자 잠자리에 누워 잠 못 이루고 있다.


인철 : 그 자식들은 그딴 걸 왜 들고 다니는 거야? 돌아가서 남기다니 그게 대체 무슨 얘기야?

공주 : (심란하다)

인철 : 그럼 그게 네가 쓴 일기란 말이야?

공주 : 그건 나도 모른다.

인철 : (기분 나쁘게 픽 웃는다) 걔네 집은 웃긴다. 별 게 다 전해져 내려오네?

공주 : ... 정말로 내가 돌아가서 남긴 일기라면... 그 안에 돌아갈 길이 분명히 있을 텐데...

         (긴 한숨) ...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인철,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주 방으로 들어간다.

공주, 몸을 일으켜 돌아본다.


인철 : (화난 얼굴로) 돌아가겠단 얘기네?

공주 : 돌아갈 길이 있다면 알아는 봐야하지 않겠느냐? ... 돌아가고 안 돌아가고는 그 다음 얘기다.

인철 : 목걸이를 갖다 주고라도 알아 보겠단 얘기야?

공주 : ... 그 목걸이, 어디 있느냐?

인철 : (화난다) 몰라!


인철, 문을 탁 닫고 나간다.

인철, 공주 방쪽을 등지고 자기 자리에 누워 속상해 하는데

공주가 따라 나와 인철의 등 뒤에 서서 잠시 내려다보다가 앞에 앉아 부드럽게 인철의 등에 손을 올려 놓는다.

인철, 긴장한다.


공주 : 화났느냐?

인철 : (화난 목소리로) 아니.

공주 : (인철의 등에 머리를 기댄다) 화내지 마라.

인철 : (한숨을 내쉰다)

공주 : ... 나도 두렵다...


인철, 돌아눕는다.

공주, 인철을 보며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인철, 착잡한 심정으로 공주를 가슴에 안아준다.


인철 : 그래, 알아는 보자.

공주 : ...

인철 : 하지만 널 보내진 않을 꺼야.



#19. 마케팅 사무실


타쓰지, 은비, 이대리, 직원들, 회의를 하고 있다.

타쓰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의욕도 없이 수첩 위에 긁적이고 있다.


이대리 : 대행사 바꾸기로 하시고 일본 출장 가시는 바람에 지금 엉망진창이거든요?

타쓰지 : ... 아, 그래요?

은비 : 우리가 실장님을 믿고 일을 한 게 잘못이죠, 누굴 탓하겠어요?

타쓰지 : (픽 웃는다)

이대리 : 대행사별로 담당자들이 실장님 돌아오시기만 학수고대하고 있거든요? 오후부터라도 들어오라 그럴까요?

타쓰지 : (시큰둥) 그러시든가.

은비 :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세요?

타쓰지 : 뭐가요?

은비 : 아니, 뭐, 그냥.

타쓰지 : (문득) 고은비씨가 가르쳐줬어요?

은비 : 네? 뭘요?

타쓰지 : 인철이한테, 내 일본 연락처.

은비 : 네, 왜요?

타쓰지 : (픽)

은비 : ... (놀라서) 찾아 갔어요?


타쓰지의 휴대전화벨이 울린다. 강인철이다.

전화할 놈이 아닌데. 갑자기 불안해진다.


타쓰지 : (얼른 받는다) 왜, 공주한테 무슨 일 생겼어?...


이대리와 은비, 서로 눈을 마주치는데.


타쓰지 : 알았어. (전화를 끊고 일어서며) 나 좀 나갔다 올게요. (후닥닥 나간다)

이대리 : 오후부터 미팅... 실장님! 실장님!


은비, 뭔가 이상하다.



#20. 커피숍


인철, 심란하게 앉아있고 타쓰지, 뛰어 들어온다.


타쓰지 : 공주는?

인철 : 잘 있어.

타쓰지 : 무슨 일이냐?

인철 : (목에서 목걸이를 풀어 타쓰지에게 내민다) 이거 갖고 가서 니네 엄마가 알고 있다는 그 방법이나 알아와.

         (일어나 나가려는데)

타쓰지 : 그럴 필요 없어. 다 거짓말이야.

인철 : 뭐?

타쓰지 :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게 우리 엄마의 목적이니까.

인철 : (다시 앉는다) 무슨 얘기야?

타쓰지 : 공주한테는 당분간 비밀로 해줘.

인철 : (차라리 잘 됐다. 목걸이를 얼른 다시 채우며) 그것도 사기였어? 근데 도대체 공주한테 왜 그러는 거냐?

타쓰지 : 그건 알 거 없고.

인철 : 알 거 없어? 그럼 다른 이유가 있긴 있는 모양이네? 이유가 뭐야?

타쓰지 : (빤히 보며) 공주가 돌아가면 일본 황실로 시집을 가게 돼. 그걸 막으려는 게 이유야!

인철 : ... 무슨 헷소리야?

타쓰지 : 어쨌든 여기 있으면 공주가 위험해져.

인철 : 그럼 돌려보내야 된다는 얘기야?

타쓰지 : 나도 모르겠어.


인철과 타쓰지, 심란하다.



#21. 옷공장


공주,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반짝이를 붙이고 있고

혁, 공주와 단 둘이 있는 게 숨 막힌다.


혁: ... 밥 먹고 할래?

공주 : ....

혁 : ... 배 안 고파?

공주 : (대답 없다)


이때 장사장,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장 : 잘들 있었어?

혁 : 오셨어요?


장사장, 들어서다가 실밥을 뜯고 있던 공주와 눈이 마주친다.


장 : 누구?

혁 : 아, 예. 직원이에요.

장 : 그래? (질투어린) 남자깨나 홀리게 생겼네.


혁, 당황한다.

공주, 째려보지만 참는다.


장 : 디자이너 강은?

혁 : 예, 잠깐.

장 : 샘플은?

혁 : 여기 (행거에 죽 걸린 옷을 가리킨다)

장 : (옷들을 살피며 공주를 히끗거린다)

혁 : 저희가 갖고 들어갈려 그랬는데... 여기까지 직접 오시고,

장 : 번거롭잖아. (공주가 입고 있는 옷을 보며) 근데 저 옷은 뭐야? 지난번 포트폴리오에서 본건데?

혁 : 샘플로 만든 옷인데요, 한 번 입혀봤어요.

장 : (열 받는다) 아아악! 누가 내 허락 없이 샘플 옷을 아무한테나 입히라 그랬어? 디자인이 밖으로 새나가면 누가 책임질 거야?

      그러니까 내가 사무실 옮기라 그랬잖아! 갑자기 쓸데없이 여직원은 왜 뽑았어?


혁, 무섭다.


장 : 아, 미안. 내가 잠시 이성을 잃었어. 이 동네가 어떤 동넨데. 이 동네는 전쟁터야. 오늘 여기서 뜨는 디자인은

      내일이면 지구 반대편에서 카피가 나와. 브랜드 런칭도 하기 전에 김샐 일 있어? 여기 있는 샘플들 당장 매장으로 옮기고

      저 아가씨 옷 벗겨. (공주에게) 얘! 너, 당장 그 옷 벗어.


공주, 참다 참다 벌떡 일어난다.


공주 : 네 이 놈!

장 : 뭐?

공주 : 강인철이 해준 옷을 네가 뭔데 벗으라 마라냐?

장 : 어머!


혁, 난감한데 인철, 들어온다.


인철 : 오셨어요?

장 : (인철을 홱 째려보며) 어디서 저런 무서운 여자애를! 조찬회의 때 봅시다. (후닥닥 나간다)

인철 : ?

공주 : (인철에게 버럭) 도대체 어딜 갔다 이제야 오는 거냐?

인철 : (기분 나쁘게) 방법을 알아 보자며!!!


인철, 미싱에 앉아 드르륵 박는다.

공주, 우울하다.



#22. 강남 컨설팅


춘추, 준하의 보고에 충격을 받아 심각한 얼굴로 앉아있다.

준하와 부하들도 충격에 휩싸여 있다.


춘추 :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준하 : 처음엔 저도 긴가민가 했습니다만 엄박사님꼐서 졸도하시는 순간

         뭔지 모르게 소름이 쫙 돋는 게 기분이 이상해지더라구요.

춘추 : ...

준하 : 전에도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천황이 고모라 그러고, 새끼줄, 바가지, 무술, 한문실력 등등,

         거기다가 거기 나오는 이름들, 천둥, 번개, 바람, 태양, ... 정말 공주가 과거에서 왔다면... 이건... 대박 아닙니까?

춘추 : 대박?

준하 : 무술쇼만 해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는데 정말 과거에서 온 백제공주가 무술도 보여주고,

         옛날 얘기도 해준다고 하면 세상이 발칵 뒤집히지 않겠습니까? 연일 매스컴에서 때려주고 사람들은 구경하려고

         개떼처럼 몰려오고 으아... 우리 클럽은 노 나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인철이 손에 있으니까,

춘추 : 강인철, 그 자식한테 가 있어?

준하 : 예.

춘추 : 재주도 좋아, 그 자식. 그 놈들 손에서 어떻게 빼왔지?

준하 : 걔는 더 이상 망가질 게 없잖습니까? 잃을 것도 없구요. 이 참에 돈 안들이고 그냥 뺏어오면 어떨까요?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정 미안하면 쪼금 주더라도...

춘추 : 정부장.

준하 : 예, 회장님.

춘추 : 너, 내가 그렇게 살라고 가르쳤냐?

준하 : ... 예?

춘추 : 너, 그, 내 이름 들어있는 그 귀한 책 뺏긴 거 무마할라고 이상한 소리 지껄이는 거지?

준하 : 아닙니다, 회장님!

춘추 : 내가 신문에는 이름이 가끔 났어도 책에는 처음이야. 그것도 한문책에.

준하 : 죄송합니다, 회장님!

춘추 : 죄송합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회장님?


춘추, 준하를 두들겨패기 시작한다.


춘추 : 당장 가서 책 찾아와. 책 못 찾으면 러시아에서 기관총 오는 대로 너네들한테 시험사격해볼 거야. 알았어!

부하들 : 예, 회장님!!!

춘추 : 뭐해? 빨리 안 나가고!!!


부하들, 후닥닥 사라진다.


춘추 : 그나저나 우리 공주가 정말 과거에서 왔다면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



#23. 은비네 집


순자, 바닥을 닦으며 소파에 앉아 있는 봉수를 힐끗거린다.

봉수, 얼굴이 말이 아니다. 손톱자국이 여기저기 나 있다.


순자 : 다리 좀 드세요.

봉수 : (말없이 멍하니 창밖을 보며 다리를 든다)


순자, 봉수가 발을 뗀 자리를 닦는다.


순자 : (한숨을 쉬며) 사장님이 무슨 띠시죠?

봉수 : 토끼띠요, 왜요?

순자 : 나가는 삼재를 톡톡히 치루시네요.

봉수 : 아줌마도 그런 거 볼 줄 알아?

순자 : 식당 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데, 옆에서 보고 배운 세월이 몇 년인데요. 부적을 한 번 써보시는 게 어때요?

봉수 : 부적을 쓴다고 마누라가 바뀌겠어? 내 운명이 바뀌겠어? 직업이 바뀌겠어? 그저 죽으나 사나 숯불이나 피우면서

         마누라, 딸네미 뒤치다꺼리나 하다가 가는 거지, 뭐.


채여사, 방에서 나온다.


채 : 여보! 당신 카드 어딨어?

봉수 : (흠칫 놀라며) 카드는 왜?

채 : 내 카드가 한도초과래. 사보잘 게 없어. 뭐 좀 살라고 하면 맨날 한도초과야. 플래티넘으로 바꿔달라 그래야지. 어딨어?

봉수 : 내 양복 안주머니.

채 : 안주머니?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봉수 :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 잠깐, 잠깐잠깐잠깐! (언제 맥없이 앉아 있었나 싶게 벌떡 일어나 채여사의 어깨를 잡아 젖히며

         방으로 뛰어간다) 내가 갖다 줄께.


봉수, 들어가고 채여사, 기가 막힌데

은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은비 : 다녀왔습니다.

순자 : 일찍 오네?

은비 : 아줌마, 나, 밥.


은비, 백을 소파에 홱 던져 놓고 식탁에 앉아 괴로워하는데

채여사, 은비 앞에 앉는다.


채 :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은비 : 내가 뭘?

채 : 아줌마, 내 것도.

순자 : 예.

은비 : (곰곰 생각하다가) 아줌마, 인철씨 일본 갔다 왔어요?

순자 : 그랬다데? 공주하고 같이 갔다 왔다던데?

은비 : 네? 공주하구요?

채 : 그게 무슨 얘기야? 아니, 그 놈이 그 미친 여자하고 일본에를 갔다 와?

      그 여자애 주민등록번호도 없고, 아무 것도 모른다며? 어떻게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만들었대?

순자 : 그 후지와라 타쓰지란 사람이 다 해줘서 갔다 왔다 그러던데요?

채 : 뭐? 후지와라상이?

순자 : 말로는 결혼을 했다는 거 같던데?

채 : (거품을 문다) 뭐? 겨겨결혼?

은비 : 결혼이요?

순자 : (문득 엄청난 얘기를 전한다는 듯) 근데 그게 말이에요. 우리도 공주가 미쳤다고 생각했는데요,

         알고 보니까 미친게 아니래요.

채 : (쓰러질 것 같다) 미친 게 아니면?

순자 : 진짜 백제 공주래요. 글쎄.

채 : (깔깔 웃다가 다시 쓰러질 것 같다) 아줌마, 미쳤어?

순자 : 그게 아니라 진짜라니까요! 요새 우리 집에 닌자들, 조폭들 난리 났어요.

채 : 닌자들? 조폭들? 무슨 얘기야?


봉수, 카드를 들고 와 한 자리 낀다.


순자 : 어쨌든 진짜 백제에서 온 마지막 공주래요.


은비, 채, 서로 돌아보며 어처구니없어하는데.


봉수 : 부적은 얼마나 해요?



#24. 호텔 - 타쓰지 방 (밤)


타쓰지, 공주가 쓰던 상태 그대로 놓여 있는 화장품, 구두, 옷들을 훑어 보다가 벽장에 걸린 공주의 한복을 만져 본다.

문득, 뭔가 떠오른다. 급히 밖으로 나간다.



#25. 집사방 (밤)


타쓰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집사, 자다가 안잔 척 벌떡 일어나 주위를 경계한다.


집사 : 무슨 일입니까?

타쓰지 : 공주 짐, 싸주세요. (밖으로 나가다가) 그리고 내 짐도.


타쓰지, 밖으로 나간다.

집사, 영문을 모르겠다.



#26. 인철이네 집 (밤)


인철과 공주,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있다.

공주, 가요 프로그램을 보며 가수들의 현란한 춤을 신기한 얼굴로 보고 있다.

인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 그런 공주를 슥 돌아본다.

TV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공주가 신기하다.


인철 : (피식)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냐?

공주 : (앉아서 손동작을 따라해본다) 나는 왜 저렇게 안 되는지 모르겠다.

인철 : 안 되도 돼. 되는 게 이상한 거야.


두 사람, 다시 TV를 바라본다.


인철 : (한참을 멍하니 생각하다가) 공주야...

공주 : (돌아본다)

인철 :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힘빼고) .. 넌 나 사랑 안하지?

공주 : ....

인철 : ... 니 마음 속엔 아직도 아리 밖에 없지?

공주 : ....

인철 : ... 내가 아리였으면 좋겠지.

공주 : ....

인철 : ... 난 니가 공주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공주, 슬픈 눈으로 텔레비젼을 바라보는 인철을 슬픈 눈으로 돌아본다.


공주 : 나도 공주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인철, 그제야 공주의 눈을 바라본다.

인철, 자신의 바보 같은 말에 행여 상처라도 받았을까봐 픽 웃고 공주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탁 끌어 묻어주는데

현관벨이 울린다.

인철, 혹시? 하는 얼굴로 경계하며 문으로 간다.


인철 : (조심스럽게) 누구세요?

타쓰지 : (소리) 나야.

인철 : (흠칫) ... 나야 라니.

타쓰지 : (소리) 문이나 열어.


공주, 방에서 나오고 인철, 문을 열면 타쓰지가 서 있다.


타쓰지 : 뭐 했어?

인철 : 너 이 밤에 무슨 일이야?


타쓰지, 인철의 얼굴을 홱 밀고 안으로 들어가 공주 앞에 선다.


타쓰지 : (공주에게) 잘 있었어?


인철,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타쓰지를 보는데

인부들이 줄줄이 트렁크를 들고 들어온다.

인철, 기가 막히다.

거실에 꽉 차는 짐. 인부들, 나간다.


인철 : (어처구니가 없다) 너, 뭐야?

타쓰지 : (공주가 자던 방을 들여다보며) 여기가 우리 공주방이야?

인철 : 우리 공주?

타쓰지 : 넌 여기서 자냐?

인철 : 그래, 왜?

타쓰지 : 난 어디서 자냐?

인철 : 뭐? 임마? 니가 왜 여기서 자?

타쓰지 : 얘기했잖아. 포기하지 않는다고.

인철 : 너, 정말.

타쓰지 : 내가 와 있는 게 불편하면 니네가 호텔로 들어오던가?

인철 : 뭐, 임마?

타쓰지 : 아무래도 너한테 맡기는 건 불안해서.


타쓰지, 바닥에 앉는다.

공주, 피식 웃음이 나오고 인철, 돌아버리겠다.


인철 : (타쓰지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너, 나가. 안 나가!

타쓰지 : (버티며) 싫어!

인철 : (힘으로 안된다) 너, 정말 이럴래?

타쓰지 : 다 너한테 배운 거야.

인철 : (끓어오른다) 그래? 너 끝까지 해 보자는 거야?


이때 숙희가 뛰어들어온다.


숙희 : 오빠! (타쓰지와 짐을 보고 깜짝 놀란다) 어머, 이게 다 뭐야?

타쓰지 : 안녕.

인철 : 근데 왜?

숙희 : 할 얘기 있다고 잠깐 오래. (타쓰지에게) 같이 오세요.



#27. 엄박사네 집 (밤)


엄박사네 식구들, 공주, 인철, 타쓰지, 둘러 앉아 있다.

엄박사네 식구들, 타쓰지가 어렵다.


엄 : 전에도 멀리서 관상을 보고 참 보기 드문 관상이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오늘 가까이서 보니 정말 귀한 상이시군요.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십니까?

타쓰지 : 네?

순자 : (엄박사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엄 : 아, 아닙니다. 버릇이 되서 그만.

숙희 : 그런데 정말 그렇게 부자세요?

순자 : 그런데 여긴 어떻게...

인철 : (말 끊으며) 하실 말씀이 뭐예요?

엄 : 아, 차.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이걸 깜빡했는데 말이야.


엄박사, 메모를 찾아 들여다보며 공주를 이상한 눈으로 다시 찬찬히 본다.


엄 : (공주에게) 혹시 올해 간지를 아나?

공주 : 현재의 간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제가 살던 곳의 간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엄 : 지금, 여기 간지 말이야.

공주 : 계미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엄 : (심장이 쿵쿵 뛴다) 그럼, 이게...... 그 책에 시간이 기록이 돼 있는데 아직 오지 않은 날짜야.

      계미년 정사월, 무술일. 5월 25일. 아마 공주가 돌아가는 날이 아닐까?

일동 : (다시 놀라며)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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