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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지애] 20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3.03.13|조회수698 목록 댓글 0

[천년지애] 20











#1. 인철이네 집(밤)


타쓰지, 의자에 앉아 머리를 감싸쥐고 고민에 빠져있고

인철,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아 어둠 속에서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냉장고도 여닫고, 욕실도 들락거리고, 싱크대에서 물 마신 컵을 씻기도 하고.

인철과 타쓰지, 서로 한 마디도 안하지만 공기가 날카롭다.

이때 문이 벌컥 열리고 공주, 방에서 나온다.

인철과 타쓰지, 공주를 돌아본다. 숨막히는 침묵이 흐른다.


공주 : 아무래도 돌아가야 할 거 같다.


인철과 타쓰지, 기가 막힌 얼굴로 공주를 본다.


인철 : 말도 안돼.

공주 : 돌아가겠다.

인철 :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고 들어가서 자.

공주 : 왜 말이 안 된다는 거냐? 돌아갈 시간과 장소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뭐가 말이 안된다는 거냐?

인철 : 아무튼 말도 안돼.

공주 : ...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알겠다만 나는 돌아가야 한다. 자고 내일 다시 얘기하자.


공주, 문을 닫아버린다.

인철, 기가 막혀 픽픽거리고 있고 타쓰지는 닫힌 공주 방문을 말없이 보고 있다.


인철 : (갑자기 버럭) 너 정말 안 갈 거야?

타쓰지 : (낮게) 조용히 해.

인철 : 뭐? 조용히 해? 여기 내 집이야! 나가!

타쓰지 : (차갑게) 시끄러!

인철 : 시끄러? 이게 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인철, 타쓰지의 쌓인 트렁크를 막 현관 쪽으로 던진다.


인철 : 나가! 나가!


타쓰지, 벌떡 일어나 인철의 멱살을 움켜쥔다.


타쓰지 : 한 번만 더 소리 지르면 가만 안 둘 거야.

인철 : (같이 멱살을 잡으며) 가만 안 두면 어떡할 건데? (꽥) 어떡할 건데? 이 자식아!

타쓰지 : 돌아간다잖아! 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인철 : 내가 지금 가만있게 생겼어? 돌아간다는데, 자식아!!!


이때 문이 벌컥 열리고 공주, 방에서 나온다.


공주 : (버럭) 그만들 두지 못하겠느냐?


인철과 타쓰지, 서로 멱살을 잡고 있다가 공주를 돌아본다.


공주 :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지 않느냐?


공주, 다시 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

인철과 타쓰지, 서로를 확 밀친다.

시간 경과

공주는 자기 침대에서, 인철은 소파에서, 타쓰지는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워 각자 잠을 못 이루고 있다.



#2. 지에꼬 방


공주의 일기를 펼쳐보고 있는 지에꼬.


지에꼬 : (일어로) ...아리가 죽은 곳이라...


전화벨.


지에꼬 : (받는다) 여보세요...뭐? 타쓰지가 그 집엘 들어가? 생각이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그 잘난척 하는 집사놈은 뭐하고 있어? ....멍청한 놈들...알았어. 계속 감시해. (끊는다.)

            너희들이 안 움직인다면 내가 움직이는 수밖에...


지에꼬, 벌떡 일어난다.



#3. 인철이네 집 욕실


인철, 세수를 하다 말고 거울을 본다.


인철 : 가겠다고? 차!


인철, 수건걸이에서 수건을 꺼내는데 타쓰지가 안으로 들어온다.

타쓰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인철은 거울 앞으로 밀어버리고 면도를 시작한다.

인철, 욕조에 고꾸라질 뻔 하다가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선다.


인철 : 어으, 이걸 그냥!

타쓰지 : (면도를 하며) 문고리 고장났더라?

인철 : 차! ... 너, 정말 안 갈래?

타쓰지 : .....

인철 : 안 불편해?

타쓰지 : 별로.

인철 : 하!


인철, 기가 막혀하며 쨰려보고 밖으로 나간다.


타쓰지 : (인철이 나가자 허탈한 얼굴로 거울을 들여다본다) 간다고?



#4. 공주방


공주, 침대에 걸터앉아 창 밖을 보고 있는데 인철이 들어온다.

공주, 인철이 들어온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골똘히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다.

인철, 옷을 꺼내들고 공주에게 뭔가 말을 할 듯하다가 소리 나게 문을 탕 닫고 나간다.

공주, 인철이 나간 쪽을 돌아본다.



#5. 인철이네 거실


타쓰지, 트렁크를 열어 옷을 꺼내고 있다. 옷들이 구겨져 있다.


타쓰지 : 옷은 어디다 거냐?

인철 : (옷을 갈아입으며) 걸 데 없어.


타쓰지, 할 수 없이 입을 옷만 꺼내 소파에 던져놓고 옷을 벗는다.

인철과 타쓰지, 웃옷을 벗고 바지를 반쯤 내리는데 갑자기 공주방문이 벌컥 열린다.

인철과 타쓰지, 깜짝 놀라 바지를 다시 추켜올린다.

공주,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두 남자를 보다가 다시 문을 쾅 닫아버린다.

두 남자, 잠시 굳어 있다가 얼른 갈아입는다.

시간 경과

인철, 밥상을 공주와 타쓰지 앞에 내려놓는다.

밥을 먹기 시작하는 세 사람.

인철과 타쓰지, 행여 공주 입에서 또 간다는 소리라도 나올까봐

묵묵히 밥을 먹는 공주의 눈치를 보며 괜히 쓸데없는 얘기들을 지껄인다.


타쓰지 : 아무래도 여기보다는 우리 집에 있는 게 날 거 같다.

인철 : 왜 안 불편하다며?

타쓰지 : 나는 괜찮은데 공주가 불편할 것 같아서.

인철 : (타쓰지에게) 빨리 먹고 가라.

타쓰지 : 나, 뜨거운 거 잘 못 먹어.

인철 : 뜨거운 거 잘 먹어야 예쁜 마누라 얻는다던데?

타쓰지 : (인철을 째려보며 열심히 먹는다)

공주 : (인철을 보며) ...부탁이 있다.


인철과 타쓰지, 덜컹 내려앉는다.


인철 : ...무슨 부탁?

공주 : 옷을 한 벌 만들어 줄 수 있겠느냐?

인철 : (안도하며) 옷이야 얼마든지 만들어주지.

공주 : 여기서 입을 옷 말고, 돌아갈 때 입을 옷 말이다.

인철 : (숟가락을 탁 내려 놓는다) 너, 정말 왜 이래?

공주 : 싫으면 관둬라.

인철 : 너,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 그랬지? 돌아가긴 어딜 돌아가?

공주 : ..길이 있다는데 안 가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느냐?

인철 : (버럭) 길은 무슨 얼어 죽을 길이야?

타쓰지 : (공주에게) 돌아가는 게 꼭 답은 아니야.


공주, 두 남자를 빤히 보는데 이때 현관벨.


인철 : (공주를 째려보며 현관으로 간다. 버럭) 누구세요!


인철, 문을 열어주면 집사가 서 있다.


인철 : 어?

집사 : (인철을 지나쳐 들어가며) 안에 계신가?


공주와 타쓰지, 집사를 보고 놀란다.

집사, 인상을 쓰며 집 안을 둘러본다.


타쓰지 : 무슨 일이예요.

집사 : 어머님이 지금 당장 집으로 오시랍니다.


타쓰지, 굳는다.



#6. 호텔 현관 앞


타쓰지의 차가 선다.

타쓰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차에서 내린다.



#7. 호텔 복도


타쓰지, 집사와 함께 복도를 따라 걷는다.

입구에 지에꼬의 수행원들이 우르르 서 있다.



#8. 타쓰지 - 거실


타쓰지와 집사, 안으로 들어온다.

지에꼬,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하 일어로)


집사 : 도련님 모시고 왔습니다.

지에꼬 : (돌아본다) 나가있어.

집사 : (인사하고 나간다)


타쓰지, 굳은 얼굴로 서 있고

지에꼬, 돌아서서 타쓰지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타쓰지의 귀뺨을 후려갈긴다.


지에꼬 : 후지와라의 후계자? 처신을 그 따위로 하면서 후계자가 되길 바래? 내가 너한테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그렇게 못 알아 듣겠어? 이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야. 대 일본제국의 정통성과 자존심이 걸린 문제야.

타쓰지 : 공주를 공개하겠어요.

지에꼬 : 뭐야?

타쓰지 : 기자회견도 하고 심포지움도 열고 TV에도 출연시킬 거예요.

지에꼬 : (픽) 흥! 그게 될까? 뭘로 증명할 건데? 너도 내가 얘기하기 전엔 안 믿었잖아.

타쓰지 : .....

지에꼬 : 잔말 말고 일본으로 돌아갈 준비나 해.


지에꼬, 밖으로 나간다.

타쓰지, 소파에 풀썩 주저 앉는다.

타쓰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9. 마케팅 사무실


직원들, 술렁이고 있다.


직원1 : 어떻게 된거야? 실장님이 그만 두다니?

이대리 : 가문에서 데려간다나 봐?

직원1 : 경영수업은 어떡하고요?

이대리 : 그 공주라는 여자 때문에 그런 아닐까? 생각을 해 봐. 그런 가문에 그런 귀족이 그런 여자하고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데

            누가 눈 뜨고 봐주겠어? 저번 일본 출장도 인사시키러 간 거였대.

은비 : (머리에 쥐가 난다. 혼잣말로) 결혼했다는 게 정말인가 보네?

이대리 : 누가 결혼을 해?

은비 : 바보같은 놈! 그래서 쫓아간 거야?

이대리 : 응? 누가?

은비 : 있어요. 덜 떨어진 자식! 나같은 킹카를 마다하고 어이구, 속터져. 정말.

         (갑자기 핸드백을 집어든다.) 저 좀 나갔다 올게요.


은비, 홱 나가버린다.


이대리 : 고은비씨, 고은비씨! 사무실 분위기 왜 이래? 전부 다 실장 닮아가는 거야, 뭐야?


이때 준하가 은비가 나간 문으로 슥 들어온다.


준하 : 안녕하세요.

이대리 : (깜짝)


직원들 준하를 보자 반갑게 맞이한다.


직원들 : 어우, 안녕하세요.

준하 : (이대리에게 슥 다가오며) 안녕 이대리!

이대리 : (싫진 않다) 아, 네.



#10. 옷공장 (밤)


인철, 굳은 얼굴로 미싱을 하고 있고 혁이는 재단을 하고 있다.

공주, 반짝이를 열심히 붙이며 생각에 잠겨 있다.

혁, 두 사람의 살벌한 분위기에 번갈아보며 눈치를 살핀다.


혁 : (인철에게) 니네 싸웠냐?

인철 : ...

혁 : (공주에게) 왜 그러는데?

공주 : ...

혁 : (신경질) 아, 증말. 내가 왜 니네들 눈치를 보고 일을 해야 되는 거냐고!!! 말 안 해! 말 안 해?


이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은비가 들어온다.


은비 : 안녕!

혁 : (당황) 아니, 은비씨. 웬일이예요?


은비, 공주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은비 : 어머!

인철 : 어...왔어?

은비 : (공주에게) 왜 여기 와 있는 거야?

혁 : 좀 앉으세요.

인철 : 무슨 일이야?

은비 : (자존심 상하지만 꾹 참고) ...약속한 거 받으러 왔어. 옷 만들어 준다 그랬잖아? 공짜루.

인철 : 어..그래. (일어나 뭔가를 찾는다)

혁 : 뭐, 그런 걸 이 자식한테 부탁하고 그래요? 나한테 직접 얘기하시지.

은비 : ..근데 공주는 언제 왔어?

공주 : (싸늘하게) 알 거 없다.

은비 : (기가 차다) 하!

혁 :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은비 : (점점 화난다) 실장하곤 완전히 정리하고 온 거야?

인철 : (일부러) 고은비, 니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은비 : (눈물이 핑 맺혀 인철을 돌아본다) 뭐?

인철 : (디자인 북을 은비 앞에 내려놓으며) 디자인이나 골라. (다시 미싱으로 가 앉는다.)

은비 : (자존심이 너무너무 상해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고 벌떡 일어난다.) 됐어. 갈게.


은비, 밖으로 뛰쳐 나간다.

혁, 인철을 무섭게 노려보고 은비를 따라 밖으로 뛰어나간다.

인철, 속이 상한지 미싱을 힘차게 밟는다.

공주, 그런 인철을 바라본다.



#11. 인철이네 집 (밤)


집안에 불이 꺼져 있다.

인철, 잠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다. 가슴이 답답한지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피식피식 웃기도 하고

눈가에 눈물이 핑핑 돌기도 하는데 불꺼진 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인철, 방쪽을 돌아본다.



#12. 공주방 (밤)


인철, 문을 슬며시 열고 안을 들여다보면

공주,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다.

인철, 천천히 다가가 침대에 걸터앉는다.


인철 : 우냐?

공주 : (이불 속에서 울음을 뚝 그친다)


인철, 이불을 들추려는데 공주, 이불을 꼭 쥐고 놓지 않는다.


인철 : 봐봐. 울었어?

공주 : (안 운 척) ...울긴 누가 울었다 그러느냐?

인철 : (공주가 대답한 틈을 타 이불을 확 젖혀 버린다.)

공주 : (당황하여 몸을 일으킨다) 나가라. 혼자 있고 싶다.

인철 : 왜 울었어?

공주 : ..속상해서 울었다.

인철 : 뭐가?

공주 : 그냥 이거 저거.

인철 : ....너도 가기 싫지?

공주 : ......

인철 : 그럼 안 가면 되잖아.

공주 :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길 바라느냐?

인철 : 아무 것도 하지마. 그냥 내 곁에만 잇어.

공주 : 나도 그러고 싶다.

인철 : ...

공주 : 내가 누구인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여기 이렇게 네 곁에 있고 싶다.

인철 : 그럼 그렇게 하면 되잖아.

공주 : 하지만 너도 알지 않느냐? 나는 남부여의 공주다.

인철 : (버럭) 공주가 무슨 소용이야? 나라도 없는 공주가 무슨 소용이냐구?

공주 : ...나라가 망해도 백성들은 새로운 왕조의 신민이 되어 살아가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모름지기 한 나라의 공주라면

         나라와 운명을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느냐? 비록 내가 돌아가서 멸망의 끝을 보는 한이 있더라도,

         그 전까진 내가 어떻게라도 해봐야 되는 것이 아니냐. 그게 공주의 명예와 자존심이 아니겠느냐?

인철 : ...명예와 자존심이 밥 먹여줘? 그 뒤로 역사가 어떻게 됐는지 잘 알잖아? 그런데 거기로 돌아가겠다는 거야?

         그럼 나는 뭐야? 너한테 나는 뭐냐구?

공주 : ... 무슨 말을 해야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

인철 : ... 어떤 말을 해도 이해 못해.

공주 : 널 두고 돌아가겠다는 내 심정을 이해 못하겠느냐?

인철 : (공주가 떠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막막해지고 화가 치밀어오른다) ...그래! 가!

공주 : ...

인철 : 옷, 만들어 줄게. 가!


인철, 문을 꽝 닫으며 뒤도 안돌아보고 확 나가버린다.

공주, 그러는 인철 때문에 더 속이 상한다.



#12-1. 인철이네 거실 (밤)


자는 인철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공주.


공주 : (독백) 널 만난 이후 어쩌면 마음 한 켠에선 돌아갈 길이 영영 없었으면 하고 바랬는지도 모른다.

         너하고의 이별이 이렇게 가슴 아플 줄 알았다면 차라리 돌아갈 길을 몰랐다면 좋았을 것을..


공주, 인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며 눈물을 흘린다.



#13. 옷공장


인철, 공주옷을 옷걸이에 걸어놓고 디자인을 하고 있다.

시간경과

인철, 무표정한 얼굴로 옷감을 재단 다이에 펼친다.

혁, 이상한 눈으로 본다.



#14. 호텔


타쓰지, 무력한 자신에 대한 분노, 절망감으로 술을 마신다.



#15. 호텔 스위트룸 앞


경호원들, 타쓰지를 막아 선다.


타쓰지 : (일어로) 비켜.

경호원 : (일어로) 안됩니다.


타쓰지, 다짜고짜 경호원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고 카드키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16. 호텔 방 안


지에꼬,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다가 타쓰지가 느닷없이 나타나자 인상을 찌푸린다.


지에꼬 : (이하 일어로)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끊는다.) 뭐야? 예의없이.


타쓰지, 지에꼬 앞에 털썩 앉는다.


타쓰지 : 언제 가실 거예요?

지에꼬 : 왜?

타쓰지 : 내가 후지와라의 대를 잇는게 싫으시죠?

지에꼬 : ... 흥!

타쓰지 : 어떻게든 막고 싶죠?

지에꼬 : 술 마셨니?

타쓰지 : 내가 도와드릴까요?

지에꼬 : ...(심각하게 본다)

타쓰지 : 공주 그냥 두세요. 그럼, 후계자 자리 포기할게요. 아니, 하라는 대로 할게요.

지에꼬 : ...생각해 보자.


타쓰지와 지에꼬, 서로 탐색하듯 빤히 본다.



#16-1. 싸우나 (혹은 강남 컨설팅)


수증기가 앞이 안 보일만큼 뿌옇게 차 있다.

춘추와 부하들, 서열대로 앉아 눈을 감고 땀을 내고 있다.

춘추,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봐"를 허밍으로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준하와 부하들도 눈을 감은 채 후렴부분을 힘차게 허밍으로 따라 부른다.

준하, 언제부턴가 옆자리가 조용한 거 같아 눈을 뜨고 돌아보면 춘추, 울고 있다.


준하 : 공주 생각하십니까, 회장님?

춘추 : ...

준하 :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기획은 엄청난 대박이거든요?

춘추 : ...

준하 :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일거양득, 일석이조,

춘추 : ...

준하 : 그냥 뺏어 오는 게 양심에 찔리시면 정식으로 출연계약을 하는 겁니다. 그럼, 매일매일 공주 얼굴도 볼 수 있어서 좋고,

         클럽은 장사 잘 되서 좋고, 공주는 돈 벌어서 좋고, 강인철 그 자식한테 신세 진 것도 있는데 뭐,

         겸사겸사 이번 기회에 갚아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아닙니까?

춘추 : (흔들린다) ...오빠 원망 많이 하고 있을 텐데, 공주가 이 오빠를 용서할 수 있을까?

준하 : 이제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까 공주도 화가 많이 풀리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때 끝까지 안가겠다고 개기지 않았습니까?


춘추, 고민에 잠긴다.


준하 : (다시 한번 충동질) ...공주, 보고 싶으시죠?


춘추, 괴롭다.



#17. 마케팅 복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타쓰지. 타쓰지 뒤로 경호원들이 따라내린다.


타쓰지 : (가다가 선다. 일어로) 어디까지 따라올 거야? 사무실에는 혼자 갔다 올 테니까 차에 가서 기다려.


경호원들, 그냥 복도 끝에 선다.

타쓰지, 불쾌한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간다.



#18. 마케팅 사무실


직원들, 타쓰지가 들어서자 깜짝 놀란다.


은비 : 어머! 실장님!

이대리 : 그만두신다면서요? 섭섭해요.

타쓰지 : 작별인사 하러 왔어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대리 : 어머, 정말 그만두시나 보네? 어떡해?

타쓰지 : 고은비씨, 나 좀 잠깐 봐요.


타쓰지,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직원들, 술렁이고 은비, 따라 들어간다.



#19. 타쓰지 사무실


자리에 앉는 타쓰지 앞에 은비가 선다.


타쓰지 : 은비씨 부모님을 내가 한번 초대하고 싶은데. 언제가 좋을까?

은비 : 그러실 필요 없는데요.

타쓰지 : 내가 한 약속이니까 내가 지키고 싶어서 그래요.

은비 : 그러세요, 그럼.

타쓰지 : ..그럼, 날 잡아서 알려줘.

은비 : 그러죠. (돌아서다가 다시 돌아선다) 근데 말이에요, 공주가 왜 또 거기 가 있는 거예요?

타쓰지 : ..(빤히 본다) 공주 맘이야.


은비, 황당하여 돌아서 나간다.

타쓰지, 잠시 생각하다가 전화를 한다.



#20. 옷공장


인철, 공주옷을 만들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인철, 누구 전화지??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실밥을 뜯고 있던 공주가 전화를 받자 얼굴 굳는다.


공주 : 누구냐??

타쓰지 : 나야.

공주 : ...

타쓰지 : 나, 가.

공주 : 어딜 말이냐??

타쓰지 : 나 살던 데로.

공주 : ...

타쓰지 : ...너도 정말 갈 거야?

공주 : ...그래.

타쓰지 : (눈물이 맺힌다) 어떡하지? 지금도 보고 싶은데.

공주 : (인철을 슥 돌아본다)


인철, 뭔지 모르지만 기분 나쁘다.


타쓰지 : (목이 메인다) 며칠 안 남았네.

공주 : ...

타쓰지 : 너한테 줄 게 있는데.

공주 : ...

타쓰지 : 인철이 좀 바꿔줄래??


공주, 인철에게 전화를 건넨다.


인철 : (기분 나쁘게) 누군데??

공주 : 받아 보면 안 거 아니냐??

인철 : (받으며) 왜??

타쓰지 : 공주 별 일 없지??

인철 : 별 일 있었으면 좋겠냐??

타쓰지 : 나, 너하고 농담할 기분 아냐.

인철 : 나도 마찬가지야.

타쓰지 : 공주 데리고 이쪽으로 와라.

인철 : ... 왜??

타쓰지 : 나도 돌아가는데 밥이나 같이 먹자.

인철 : 뭐??

타쓰지 : 그럼 이따 보자. (끊는다)


인철, 전화 끊고 타쓰지가 이상하다.

인철, 전화를 공주에게 말없이 홱 건네고 다시 옷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혁이 사색이 되어 뛰어 들어온다.


혁 : 야!! 인철아!! 김춘추 온다, 김춘추!!


이어 춘추가 부하들을 거느리고 들이 닥친다.

혁, 얼른 구석으로 숨는다.

인철, 공주를 뒤에 감추고 선다.

춘추, 공장 안을 날카롭게 둘러보다가 자신을 노려보는 공주와 눈이 마주친다.

춘추, 어색하게 눈길을 피한다.


공주 : 네 놈이 무슨 낯으로 감히 내 앞에 나타나느냐!!

인철 : (당황스럽다)

춘추 : (공주에게) 아직도 나, 원망해??

인철 : 근데 무슨 일이세요??


춘추, 소파에 앉으며 준하에게 턱짓을 하면 준하, 계약서를 인철에게 건넨다.


인철 : 이게 뭐야??

준하 : 출연 계약서. 한 번 읽어봐. 칠대삼이야.

인철 : 뭐?? 출연 계약서??


인철, 들여다보는데 공주, 탁 빼앗아 쫙쫙 찢어 버린다.


공주 : 볼 것도 없다. 또 무슨 수작이냐?? 날 또 어디다 팔아 먹을라고??

인철 : 팔아먹다니?? 무슨 얘기야?? (준하에게) 너, 그때 나한테 뭐라 그랬어?? 지 발로 애인 찾아갔다 그랬지??

준하 : (당황한다) 어쨌든 지금 너한테 있잖아??

인철 : 이 자식들이 정말!! (멱살을 틀어 쥐는데)

공주 : 됐다. 지난 얘긴 그만해라. (춘추에게) 어쨌든 너희들 덕에 내가 돌아갈 날짜를 알게 됐으니 지난 일은 용서하겠다.

춘추 : 돌아가다니? 돌아갈 날짜를 알아?? 그게 무슨 말이야??

공주 : 니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일이 있다. 나를 니가 처음 발견한 그 곳으로 데려다다오.

인철 : 거긴 왜??

공주 : 그 곳이 아리가 죽은 곳이다.

인철 : 너, 정말, 끝까지.


인철, 확 밖으로 나간다.

혁과 춘추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공주, 슬픈 얼굴로 인철을 돌아보다가 다시 춘추를 바라본다.



#21. 거리 (밤)


달리는 인철의 차 안.

인철, 우울한 얼굴로 운전을 하고 있다.

공주, 가시방석이다.


공주 :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

인철 : 밥 먹으러.

공주 : ...

인철 : ...그러고 보니까 내가 너한테 뭘 제대로 해 준 적이 없네?? 맨날 옷공장에서 실밥이나 뜯게 하고,

         호텔방에나 처박아 두고, 술집 유리상자에나 가줘 두고.. 별도 못 보러 가고.. 극장 한 번 안 데려가고..

         맛있는 것도 한 번 제대로 안 사주고.. 옷도 제대로 못 해 입히고.. 홈웨어 한 벌 만들어 줄 생각도 안하고..

         소리나 지르고.. 구박이나 하고..

공주 : (돌아본다)

인철 : (멍하니 앞만 보고 운전만 하며) 내가 니 원수를 닮고, 타쓰지 그 자식이 아리를 닮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럼 니가 돌아간다는 생각, 안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인철, 눈물이 핑 돌아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22. 호텔 앞 (밤)


인철의 차가선다.

타쓰지, 기다리고 있다가 얼른 다가와 공주의 문을 열어준다.


인철 : (차에서 내려 문을 잡은 채 타쓰지에게) 데리러 올까, 데려다 줄래??

타쓰지 : 그냥 가게??

인철 : (공주에게) 이따 보자.

타쓰지 : 내가 데려다줄게.

인철 : 그래, 그럼.


인철, 다시 차에 타고 붕 떠난다.

공주, 불안한 얼굴로 가는 인철의 차를 본다.



#23. 식당 (밤) - 수정


공주와 타쓰지, 마주 앉아 있다.


공주 : 네 어머니는?

타쓰지 : 가셨어.

공주 : 목걸이를 손에 못 넣어서 섭섭해 했겠구나.

타쓰지 : ...미안해.

공주 : (잠시 보다가) ...왜 내 초상화와 일기가 너희 집에서 전해지고 있었을까...

타쓰지 : 글쎄, 우리 선조 중에 누군가 널 사랑했나 보지.

공주 : ...너하고 이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타쓰지 : (눈물이 핑 돈다) ...이렇게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지...

공주 : 이제 와서 얘기지만 그동안 고마웠다.

타쓰지 : (피식)

공주 : 갑자기 왜로 돌아간다니, 이유가 뭐냐?

타쓰지 : 너하고 마찬가지 이유야. 그냥 살던 데로 돌아가는 것뿐이야.

공주 : ...

타쓰지 : ...


타쓰지,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공주 앞에 내민다.

공주, 의아한 눈으로 본다.


타쓰지 : 마음을 얻을 수 없는 신부이긴 하지만 이 반지만큼은 받아줘.

공주 : ...

타쓰지 : 친엄마한테 드릴려고 샀던 건데, 전해드리기 전에 돌아가셨어.

공주 : ...


타쓰지, 케이스를 열어 반지를 꺼내 공주의 손에 끼워준다.

공주, 타쓰지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다.


타쓰지 : (반지를 끼워준 공주의 손을 꼭 쥔 채) 네가 돌아간다고 해도 내 마음은 변함없어. 죽는 날까지....


타쓰지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진다.

공주, 타쓰지의 얼굴을 감싸쥐며 눈물을 닦아준다.


공주 : (눈물이 핑 돌아) 니 마음을 받아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반지, 고맙다..


공주, 돌아선다.



#24. 인철이네 집 앞 (밤)


인철, 주머니에 손을 꾹 찔러 넣고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초조한 마음에 왔다 갔다 하며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칠 때마다 혹시나 싶어 돌아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만에 타쓰지의 차가 들어선다.

타쓰지의 차, 인철 앞에 선다.


인철 : (공주쪽 차문을 열어주며) 무슨 밥을 그렇게 오래 먹어??

타쓰지 : (차에서 내리며) 밥만 먹고 온 거야.

공주 :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느냐??

인철 : (공주에게 부드럽게) 뭐 먹었어??

공주 : 글쎄 이름은 잘 모르겠다만 이거 저거 먹었다.

인철 : 많이 먹었어??

공주 : 그래.

인철 : 잘 했어.

타쓰지 : 그럼, 가 볼께.

인철 : 너, 일본 가냐??

타쓰지 : 응.

인철 : 언제 가냐??

타쓰지 : 다음 주에.

인철 : 속, 시원하다. 야!!

타쓰지 : 나도 그래.

인철 : 그래, 그럼, 잘 가라.

타쓰지 : 너도, 잘 있어라. (공주에게) .. 잘 가 ..


타쓰지, 차에 타고 붕 떠난다.

공주와 인철, 가는 타쓰지의 차를 바라본다.



#25. 거리 (밤)


달리는 타쓰지의 차 타쓰지, 전속력을 다해 달린다.

타쓰지의 눈에 눈물이 흩날린다.

타쓰지, 한참을 달리다 끼익 선다.

타쓰지, 핸들에 얼굴을 묻는다.



#26. 몽타쥬


- 호텔

책을 잔뜩 쌓아 나르는 타쓰지, 책을 들춰 보며 한 권씩 박스에 담는 타쓰지. 그러다 문득 창가에 걸터앉아 상념에 잠긴다.

- 인철이네 집

별에 걸린 달력의 날짜를 지우는 공주. 내일이다.

5월 25일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 놓고 방으로 들어가는 공주.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달력을 떼어내 감추는 인철.



#27. 모처 (밤)


차 안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닌자들.


한갈 : 하이...하이...하이... 아직......알았습니다.


한갈과 우슈, 비장한 눈빛을 주고 받는다.



#28. 인철이네 집 (밤)


인철, 소파에 앉아 공주 옷을 손으로 바느질 하고 있다.

공주, 침대 끝에 앉아 있다.

두 사람, 아무 말도 없다.

인철, 마지막 땀을 떠 실밥을 이로 끊고 공주 앞에 툭 던진다.

공주, 옷을 착잡한 시정으로 내려다 본다.

두 사람, 옷을 가운데 두고 또 한동안 침묵.


인철 : (공주는 돌아보지 않고) 입어 봐라.

공주 : ...

인철 : 안 맞는데 있으면 얘기하고.


인철,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공주, 옷을 건드리지도 않고 가만히 내려다보고만 있다.



#29. 거실 (밤)


인철, 소파에 벌렁 눕는다.

인철, 팔등으로 눈을 가리고 누워 있다가 도저히 안되겠는지 다시 벌떡 일어나 안으로 들어간다.



#30. 다시 방


인철, 다시 들어온다.

공주, 미동도 앉고 앉아있다.


인철 : ...너, 정말 가야겠냐??

공주 : ...

인철 : 내가 어떻게 해야 니가 맘을 돌리겠냐??

공주 : ...

인철 : 너, 나 두고 가서 잘 살 수 있을 거 같애??


공주, 눈물이 핑 돌아 인철을 빤히 본다.


인철 :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네가 돌아간다는 생각만 하면 미쳐 버릴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널 보내??

         너 갈 수 있을 것 같애?? 나, 너 안 보내.


인철, 공주를 뼈가 으스러지게 앉는다.


인철 : ...나 어떡하냐.. 지금도 돌아서면 보고 싶은데..

공주 : ...(운다)


인철, 포옹을 풀고 공주의 얼굴을 빤히 본다.

공주, 눈물을 흘리며 인철의 목을 확 끌어 안는다.

인철, 참을 수 없는 격정에 사로 잡혀 공주와 입맞춤을 한다.

시간경과

인철, 공주를 침대에 눕힌다.

공주, 인철의 목을 감싼다.

공주, 인철을 빤히 올려다 본다.


공주 : 아리가 날 용서할 수 있을까?? 널 사랑하는 나를..

인철 : 사랑해..


인철, 부드럽게 목에 키스하다가 공주와 격정의 밤을 보낸다.

시간경과 - 아침

인철, 침대에서 부스스 눈을 뜬다.

인철, 꿈결처럼 지나간 간밤의 일을 떠올리며 행복해 하다가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깨닫고 집안을 둘러본다.

인철, 침대에서 일어나 웃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는데

공주, 어느새 인철이 만들어 준 새 한복을 입고 거실에 앉아 있다.

인철, 가슴이 쿵 내려 앉는다.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린다.


공주 : 어떠냐??


인철,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인철 : .. 예뻐.. 정말 남부여 공주같다, 야.

공주 : .. 고맙다.

인철 : 이리와 봐. 머리는 내가 빗겨 줄게.


인철, 머리를 빗겨 준다.

인철과 공주, 서로 한마디 말도 없다.

거울 속에 미친 두 사람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인철, 마지막으로 공주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준다.



#31. 엄박사네 집


공주,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엄박사네 식구들 앞에 앉아 있다.

인철, 괴로운 얼굴로 외면하고 앉아 있다.

엄박사네 식구들, 뭔 일인가 하여 한복을 입은 공주를 올려다 본다.


공주 : 그동안 신세가 많았습니다.

순자 : 아니, 어디 가?

공주 : 남부여로 돌아갑니다.

일동 : 뭐?

엄 : 아니, 그 날짜 쓰여진 것만 믿고 간단 말이야?

공주 : 어차피 제 의지로 여기에 온 것도 아니잖습니까? 운명에 맡겨야지요.

엄 : 돌아간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텐데...

공주 : 저를 공주라고 믿으신다면 과연 제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겠습니까?

엄 : ....

순자 : 아니, 그래도...

숙희 : 너, 무섭게 왜 그래?

공주 : (숙희에게) 좋은 친구가 될 뻔 했는데... 잘 있어라.

숙희 : 그럼 이제 영영 못 보는 거야? 어떡해..... (눈물이 핑 돈다) 공주야....

공주 : (눈물이 핑 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공주, 일어나 나가면 인철, 한숨을 푹 내쉬고 따라 나간다.

엄박사네 식구들, 어리둥절하다.



#32. 인철의 아파트 앞


인철이네 집 앞에 춘추네 차가 대기하고 서 있다.

춘추, 차 뒷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멍하니 앞을 응시하고 있다.

공주와 인철, 현관 밖으로 나온다.

춘추, 공주를 보자 더욱 슬프게 눈물을 흘린다.

인철, 공주의 손을 꼭 잡고 자기 차에 태운다.

멀리 닌자들의 차가 보인다.



#33. 식당


타쓰지, 은비, 채여사, 봉수, 밥을 먹고 있다.


채 : (시큰둥) 이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우리가 뭐 대접 받자고 초대했던 것도 아니고.

봉수 : 저희 식당으로도 한 번 모셨어야 되는 건데...

은비 : 언제 가세요?

타쓰지 : 내일이요.

은비 : 섭섭하네요.

채 : 결혼하셨다는 얘기가 있던데...

타쓰지 : (대꾸없이 웃는다)

채 : (정말인가 보네?) 아흐, 왜 이렇게 소화가 안되지? 끅.. (우아하게) 죄송합니다.

타쓰지 : 언제 시간 내셔서 일본으로 한 번 놀러 오세요.

채 : 네?

타쓰지 :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채 : (안면이 바뀐다) 어머, 어머, 그런 아우... 꼭 한 번 가야겠네요.

타쓰지 : (은비에게) 꼭 모시고 와요.

은비 : ....


이 때 타쓰지의 휴대 전화벨이 울린다.


타쓰지 : 죄송합니다. (받는다. 일어로) 무슨 일이야? 뭐?



#34. 고속도로


춘추네 차와 인철의 차, 닌자의 차가 달리고 있다.



#35. 춘추의 차 안


춘추, 자기 차 뒤를 따라오는 인철의 차를 슥 돌아본다. 착잡하다.



#36. 인철의 차 안


인철과 공주, 말 없이 앞만 보고 있다.

인철, 아무리 참으려 해도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공주의 얼굴이 오히려 평온해 보인다.



#37. 타쓰지의 차 안


타쓰지의 차, 한참을 떨어진 곳에서 인철 일행을 쫓아 달린다.


타쓰지 : (전화를 하고 있다. 일어로) 어디쯤 가고 있어? .... 알았어.


타쓰지, 불안하다.



#38. 강가


춘추가 처음 공주를 발견한 강가.

공주, 인철, 춘추네가 강가에 서 있다.


공주 : (고요한 사방을 말없이 둘러 보다가) 이 곳이 나를 처음 발견한 곳이냐??

춘추 : (눈물을 흘리느라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 응.. 그래..

공주 : (감회 어린 눈길로 보며) 여기는 그대로구나. 진작에 와 봤으면 좋았을 것을..


공주, 아리를 향해 칼을 들고 말을 달려오던 유석의 모습과 아리의 최후가 떠오른다.

공주, 눈물이 핑 돌아 인철을 돌아보다가 절벽을 올려다 본다.

공주를 사랑한 두 남자, 공주를 따라 절벽을 올려다 본다.



#39. 절벽 위


공주,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 아찔하다.

인철과 춘추도 조심스럽게 내려다 본다. 말도 안 된다.

절벽 아래에는 준하와 부하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웃옷과 바지를 벗고

금방이라도 물에 뛰어들 태세로 준비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조그맣게 보인다.


춘추 : (심각하게) 여기서 뛰어내리겠다고??

공주 : (춘추에게) 그동안 고마웠다. 혹시라도 내가 돌아가지 못한다면 시신이라도 거두어 강물에 뿌려주면 고맙겠다.


남자들, 미치겠다.

춘추,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차마 공주를 돌아볼 수 없다.


인철 : 너, 정말 왜 그래?? 그럴거면 여길 왜 와?? (손목을 잡으며) 집으로 가쟈!! 안 되겠어. 나, 너 못 보내. 안 보낼거야.

공주 : (목이 메인다) .. 널 두고 떠나는 내 심정은 어떻겠느냐??

인철 : (눈물이 핑 돌아) 이해해.. 그래서 더 미치겠어.


인철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인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눈물을 닦아주는 공주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공주 : ...널 만나서 행복했다. ...보고 싶을 거다.


인철, 공주를 와락 끌어 안는다.


인철 : ...(비장하게) 같이 가자. 거기 가면 너, 아무도 없잖아??

공주 : (안긴 채)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 듯, 너 또한 그 곳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인철 : 그래도 같이 가. 너 혼자는 못 보내. 나도 갈 거야. (목이 메어) .. 너, 나 안 보고 살 수 있어??


공주, 눈물만 뚝뚝 흘리며 인철을 바라본다.

이때 어디선가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고 이어 점점 바람이 거세진다.

두 사람 시간이 가까웠음을 느끼고 돌아보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일본 무사 복장에 일본도를 든 닌자들이 두 사람 앞에 선다.

공주와 인철, 깜짝 놀라고

인철, 얼른 공주를 등 뒤에 감추며 앞으로 나선다.

닌자들, 두 사람에게 칼을 겨누고 다가온다.


인철 : 뭐야!! 너희들 뭐야!!


두 사람의 가슴 아픈 이별 장면을 차마 보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던 춘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날카롭게 돌아본다.


춘추 : 이것들이!


춘추, 눈물을 슥 닦아내고 몸을 날려 공중에서 가위차기로 닌자들을 가격한다.

닌자들, 춘추의 발길에 맞아 옆으로 굴렀다가 다시 벌떡 일어난다.

인철과 춘추, 공주를 등 뒤에 가리고 맨 손으로 칼을 든 닌자들과 대치한다.


춘추 : 치사한 자식들!! 칼까지 들고 와??


닌자, 칼을 휘두르며 두 사람에게 돌진해 들어온다.

두 사람, 필사적으로 공주를 막아서며 칼을 든 닌자들과 맞선다.

인철, 공주를 온 몸으로 막아서며 닌자의 칼을 기다리는데

춘추, 옆에 떨어진 나무토막을 집어 들어 닌자의 칼을 쳐내 버리고 닌자의 뒤엉켜 구른다.

다른 닌자가 공주를 행해 칼을 휘두르려는 순간

인철, 공주를 옆으로 밀어내며 땅에 떨어진 닌자의 칼을 집어 들어 공주의 코 앞에 떨어지던 닌자의 칼을 막아낸다.

인철, 엉겁결에 막아내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하면서도

공격해오는 닌자의 칼을 제법 막아낸다. 마치 아리처럼. 스스로도 깜짝깜짝 놀라며.

하지만 닌자의 현란한 칼솜씨에 인철, 오래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팔에 상처를 입고 칼을 놓쳐 버리고 쓰러진다.

공주, 인철이 놓친 칼을 집어들려는 순간

닌자, 공주에게 칼을 휘두른다.

위기의 순간 타쓰지, 닌자를 이단 옆차기로 날려버리며 공주 대신 칼에 맞아 쓰러진다.

인철과 공주, 깜짝 놀라고 닌자도 당황한다.

공주, 타쓰지에게 달려가 부축한다.

춘추, 그 모습을 보고 몸을 날려 칼을 집어들고 닌자 앞에 선다.


춘추 :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덤벼, 자식들아!!


닌자들과 춘추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진다.

춘추, 닌자들의 날카로운 공격에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공주에게 다가가려는 닌자들을 필사적으로 막는다.


공주 : 후지와라.

타쓰지 : (눈물이 흐른다) 미안해.

공주 : (말을 못하고 오열한다)

타쓰지 : (인철에게) 공주 데리고 빨리 피해.


번개와 천둥이 오란하게 울리고 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인철 : (타쓰지에게 비장하게) 잘 있어.


인철, 울고 있는 공주의 손을 잡고 절벽 끝으로 달린다.

춘추, 마침내 바닥에 쓰러지고 닌자들, 쓰러진 춘추와 타쓰지를 너어 공주를 향해 무섭게 돌진한다.

공주의 손을 잡고 절벽 끝으로 몰리는 인철, 아래를 내려다보며 멈칫선다.


인철 : (공주를 보며) 사랑해.

공주 : (인철을 보며) 사랑해.


이때 머리 위에서 엄청난 섬광이 일고 귀청을 찢을 듯한 천둥소리가 울린다.

먹구름이 엄청나게 몰려오고 달이 해를 가린다.

닌자들이 두 사람의 등 뒤에 다다르려는 순간

인철, 공주의 손을 꼭 잡고 절벽 아래로 몸을 날린다.

닌자들 동시에 손을 뻗어 두 사람을 잡으려 하지만 인철의 뒷덜미만 잡히고 공주를 잡으려던 닌자는 허공을 움켜쥔다.

공주, 인철의 손을 놓치고 아래로 떨어지고

인철, 공주를 잡으려고 손을 뻗지만 공주의 목걸이만 잡힌다.

공주, 목걸이를 남긴 채 인철을 빤히 보며 절벽 아래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주변은 암흑이 된다.


인철 : (너무 놀라 허탈하게) 공주!!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자고 주변이 환해진다.

절벽 아래에서 허겁지겁 달려온 부하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춘추와 타쓰지를 보고 깜짝 놀라고

닌자들은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절벽 끝에 망연자실한 얼굴로 앉아 있는 인철의 손에는 목걸이만 반짝 거린다.


인철 : 공주야~~!!



#40. 강가


강 물 속과 수풀 속을 뒤지고 있는 병사들.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거센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병사들, 두려운 얼굴로 허둥대는데 하늘의 태양이 점차 구름에 사라지고 주위는 암흑으로 변한다.

다시 한번 내리 꽂히는 번개. 그리고 천둥.

병사들, 바람을 뚫고 말고삐를 잡으려고 애쓰고,

병사들,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을 모른다.

잠시 후 칠흑같은 어둠 속에 사위가 조용해졌다가 차츰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41. 횃불을 들고 말을 달리는 병사들



#42. 공주의 처소 (밤)


유석, 벽에 걸려 있는 미인도를 바라보며 술을 마시고 있다.

횃불에 비친 유석의 얼굴이 초췌하다.

방금 말을 타고 온 비장이 처소 안으로 급히 들어와 예를 갖춘다.

유석, 날카롭게 돌아본다.


비장 :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공주를 찾았습니다.

유석 : (멈칫) ...뭐?

비장 : ...그런데...살아 계십니다.


유석,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충격에 돌아본다.



#43. 침실 (밤)


공주, 떠나기 전 인철이가 만들어준 옷을 입고 침대 위에 누워 잠들어 있다.

유석, 그런 공주의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

상처 하나 없는 공주의 모습이 믿겨지지 않는다.

유석, 찬찬히 공주의 모습을 살핀다.

공주, 눈을 뜬다. 꿈인지, 생신지......

공주, 누운채로 두리번거리다가 횃불에 비쳐 일렁이는 유석의 얼굴을 발견하고 소스라쳐 놀라 일어나 두리번거린다.


유석 : 정신이 드시오.


공주, 유석의 얼굴을 보며 할 말을 잃고 막 생각을 한다. 내가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 꿈이란 말인가.

공주, 인철이가 만들어 준 옷을 보고 비로소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흐른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인철.....

공주의 머리 속에 인철과 행복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대성통곡을 하는 공주.

영문을 모르는 유석, 그런 공주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다.



#44. 바닷가 (밤)


배 선미에 올라 멀어져 가는 남부여를 바라보는 공주,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런 공주의 옆에서 공주가 바라보는 곳을 응시하는 유석.

공주의 독백이 흐른다.


공주 : (독백) 하늘이 별처럼 수없이 많은 왕조가 멸망하고 모래알처럼 헤아릴 수 없는 영웅호걸이 나타났다 사라지듯이

         남부여의 이름도, 아리의 이름도 그렇게 잊혀질 것이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토록 분노하고 그토록 기뻐하고,

         그토록 절망했을까. 한 조각 떠도는 구름같은 덧없고 부질없는 인생인데.. 지금 나는 원수와 같은 배를 타고 있다.

         남부여의 마지막 공주를 끝까지 제거하려는 당과 신라의 손길을 피해 원수의 도움으로 정처 없는 항해를 나선 것이다.

         (바닷바람에 머리를 휘달리며 서 있는 유석을 바라보며) 이 자는 왜 나를 돕는 것일까? 나는 어째서 원수의 도움을

         거절하지 못했을까? 어째서 이 자는 전쟁의 승리자로 승전국의 왕자로, 보장된 미래와 안락함을 버리고

         나를 따라 나선 것일까? 이 자는 후지와라처럼 단순하고 집요하고 일방적이다.

         후지와라의 운명적인 사랑이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로 하여금 원수를 용서하게 한 것일까?


유석, 망토를 벗어 공주의 어깨에 덮어 주려는데

공주, 손을 들어 유석의 손길을 거부한다.

유석, 쓸쓸한 얼굴로 외면하는 공주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어둠 속으로 배는 사라진다.



#45. 왜국에 있는 공주방


공주, 앉아서 집필을 하고 있다.


공주 : (독백) 아리.. 그리고 강인철, 내가 죽는 날까지 너를 다시 볼 수 없겠지만 천 사백년 뒤에 비록 잠깐일지라도

         너를 다시 만난다는 희망으로 이 글을 남긴다. 너는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천사백년 뒤에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먼 남부여에서 온 나를.


종이 위에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진다.



#46. 자막 1343년 뒤


인철, 차를 몰고 오다가 앞에서 달려오는 공주를 칠 뻔한다.

인철과 공주의 첫만남을 시작으로 하이라이트가 마치 슬라이드 쇼처럼 펼쳐진다.

절벽 위에서 공주를 외치는 인철의 얼굴을 끝으로.



#47. 인철이네 집


인철, 배낭을 꾸리고 있다. 비상식량, 옷, 칼, 버너, 코펠, 공구, 등등..

인철, 거울 앞에서 완벽하게 탐험가 스타일로 차려 입고 뽐내본다.

마지막으로 목걸이를 목에 걸고 옷 안에 집어 넣는다.



#48. 아파트 앞


인철, 아까 그 차림에 배낭을 메고 현관을 나서는데

타쓰지의 차가 인철의 앞에 스르르 선다.


인철 : 너, 아직도 안 갔냐??

타쓰지 : 오늘 간다. 그래서 작별 인사 하러 왔어.

인철 : 너, 사람됐다.

타쓰지 : 근데 넌 어디 가냐??

인철 : 공주 찾으러!!

타쓰지 : (놀라며) 어디로??

인철 : 남부여!!


놀라는 타쓰지를 뒤로 하고 인철, 홱 돌아선다.































첨부파일 천년지애 20.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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