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천하] 058
S#1. 당추 암자 법당 앞 마당 (밤)
난정과 길상, 모린을 놀란 표정으로 보고 섰는데
모린, 난정과 길상에게 미소를 흘리며 돌아서서 객사쪽으로 가버린다.
난정, 길상을 휙-돌아보며 쏘아보다가 암자방쪽으로 가는데.
길상 : (난정의 등뒤에다) 난정아, 내가 조정암 나으리를 뫼실 때 니가 했던 말 기억하니?
난정 : (멈춰선채 돌아보지 않는)..
길상 : 목숨은 하나뿐이야. 소중히 여겨..
난정 : ...!
길상 :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도 살 까닭이 없으니까.
난정 : (무시하듯 그대로 방쪽으로 걸어가 방안으로 들어간다)..
길상 : (난정의 뒷모습을 보다가 하늘을 올려다 본다)...
S#2. 하늘에 떠 있는 달(INSERTR)
S#3. 경빈 처소 마당 (밤)
대전내관과 김상궁이 시립해 서있다.
금이, 한편에 서서 방쪽을 힐끔거린다.
중종(E) : (방안에서) 허허허, 복성군이 참으로 총명하구먼.
S#4. 동 경빈 처소 방 안 (밤)
중종, 보료위에 앉아서 앞에 꿇어앉은 복성군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경빈, 중종 옆에 앉아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다.
중종 : 복성군.
복성군 : 예, 아바마마.
중종 : 내 복성군 만했을 때 아버님이셨던 강정대왕(成宗)께오서 항상 백성을 갓난아기(赤子)라 칭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복성군은 그 뜻을 짐작하겠느냐?
복성군 : 소자, 용열하여 어찌 성군으로 칭송되시는 할바마마의 뜻을 깊이 헤아릴수가 있겠사옵니까?
단지 짧은 소견으로 짐작을 할 뿐이옵니다.
중종 : 그래? 허면 말해보아라.
복성군 : (초롱한 눈빛으로 또박또박) 만물을 생육하는 하늘의 덕은 생명을 사랑하는데 있사오니
백성을 생육하는 군주의 덕 역시 하늘을 본받아 백성들의 생명을 사랑하는데 있을 것이옵니다.
이런 뜻을 살펴 군주는 백성들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자애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뜻으로
백성들을 갓난아이로 칭하신 것이라 짐작하옵니다.
중종 : (흐뭇하게 끄덕이는)...
경빈(E) : (복성군이 자랑스러운 듯) 복성군, 참으로 장하시옵니다.
총명함이나 의젓하심이 전하의 장자로써 손색이 없으시옵니다.
중종 : 허허, 복성군의 명철한 자질이 빛나는구먼.
복성군 : 과찬이시옵니다, 아바마마.
경빈 : 전하, 밤이 깊었사옵니다. 곤하실터이니 이만 침수 드시옵소서.
중종 : (끄덕이며) 그럽시다. 복성군, 이만 물러가도록 하라.
복성군 : 예. (일어서서 조아리며) 아바마마, 편히 침수드시옵소서. (방밖으로 조심스럽게 나간다)
중종 : (경빈의 손을 쥐며) 경빈, 복성군 훈육을 참으로 잘 시키셨구려.
경빈 : (부끄러운 듯 고개를 꼬며) 복성군께오서 전하의 혈통을 이어받아 타고난 자질이 탁월하신 탓이옵니다.
중종 : (끄덕이며) 그래요, 참으로 타고난 왕재요..
경빈 : 마마, 침수드시기전에 주안상을 들일까요?
중종 : 그럽시다, 오랜만에 경빈이 따라주는 천일주를 마시고 싶구려.
경빈 : (미소)...
S#5. 희빈 처소 방 안
희빈, 앞에 앉아있는 향이를 놀란 눈으로 본다.
희빈 : 뭐라? 전하께오서 복성군의 학문을 물으신 연후에 경빈처소에서 침수까지 드셨단 말이냐?
향이 : (송구한) 예, 마마.
희빈 : (분기에 찬) 여우같은 경빈에게 선수를 빼앗기다니.. 향아, 당장 가서 금원군과 봉성군께 기침하시라 여쭈어라.
향이 : 예에? 하오나 벌써 깊이 침수를 드셨사온데..
희빈 : (버럭) 어서 시키는대로 하거라!
향이 : 예, 마마. (방밖으로 급히 나간다)
희빈 : 전하께오서 언제 불시에 납시어 왕재를 살피실지 모르는 판에 침수라니 당치도 않음이야!
S#6. 중궁전 방 안 (밤)
윤비, 요위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황촛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윤비(E) : 전하께오서 경빈처소에 드셨다면 왕세자책봉을 위해 왕자들의 왕재를 직접 살피려고 하심이야..
S#7. 동 중궁전 방 밖 복도 (밤)
엄상궁, 방문앞에 앉아서 걱정스럽게 불켜진 방문쪽을 보다가..
엄상궁 : (방문쪽에다) 중전마마, 밤이 깊었사옵니다. 마마, 존체와 복중 아기씨를 생각하시어 이만 침수드시옵소서.
윤비(E) : (방안에서)...
엄상궁 : 중전마마..
윤비(E) : (방안에서) 알았네..
곧이어 방안의 불빛이 꺼지고 어둠에 잠긴다.
엄상궁 : (조금은 안심되는 듯 방문쪽을 보다가 다시 충직한 충견같은 모습)...
S#8. 동 중궁전 방 안 (밤)
윤비, 요위에서 한쪽 무릎을 세운 같은 자세로 앉아있다.
윤비(E) : 전하, 야속하옵니다.. 어찌 신첩의 복중 대군을 기다려주시지 않으시는 것이옵니까? 야속하옵니다, 야속하옵니다..
윤비의 눈에서 글썽 맺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S#9. 당추 암자 마당 (새벽)
당추, 난정과 윤원형을 배웅하듯 서있다.
당추 : 난정아, 무슨 일이길래 불공기일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는게냐?
난정 : 화급한 일이옵니다. 부처님께오서도 제 마음을 헤아려주시리라 믿사옵니다.
당추 : 난정아, 부처님은 네 마음속에 계시느니라. 네가 먼저 남을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부처님께오서도 네게 자비를 베푸실것이야.
난정 : 명심하겠사옵니다. 허면 나중에 또 뵙지요. (합장인사를 한다)
윤원형 : 선사, 나중에 다시 들러 곡차라도 거나하게 나누십시다.
당추 : 소승, 곡차는 사양치 않사오니 기다리고 있겠사옵니다. 살펴가시옵소서.
난정, 법당쪽을 보면 신비가 난정을 미소로 보고섰다.
난정, 신비에게 합장인사를 하면 신비도 합장인사로 배웅한다.
난정과 윤원형, 계단쪽으로 걸어간다.
S#10. 당추 암자 계단 위
난정과 윤원형,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윤원형 : 부인, 법당 앞에 소복차림의 아낙은 누구시요?
난정 : 주상전하의 첫 번째 조강지처이신 신비마마시옵니다.
윤원형 : (놀라) 뭐,뭐요? 허면 병인년에 사가로 내쳐지신..?
난정 : 예, 서방님. 남의 일이 아니옵니다!
윤원형 : 남의 일이 아니라니요?
난정 : 중전마마께오서 해산하시기 전에 왕세자 책봉이 먼저 이루어 진다면
중전마마께오서도 신비마마처럼 언제 사가로 내쳐지실지 모르는 처지가 되옵니다.
윤원형 : (심각한) 음! 딴은...
난정 : (어떤 느낌에 문득 암자쪽을 돌아보면)...
모린 : (계단 위쪽에서 슬픈눈으로 난정을 보고 서있다)
난정 : (윤원형을 보며) 서방님, 서두시지요.
난정과 윤원형, 급하게 계단을 내려온다.
S#11. 대비전 마당
윤비, 엄상궁과 오상궁을 거느리고 걸어와서 대비전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위로.
조상궁 : (E) 대비마마, 중전마마 드셨사옵니다.
자순대비 : (E) 오, 어서 뫼시어라.
S#12. 동 대비전 방 안(52회 편집된 S#22의 변형)
자순대비, 앞에 앉아있는 윤비를 보고 말한다.
자순대비 : 중전, 이 늙은이가 정업원에 도력 높은 비구니스님을 궐내로 불러
중전의 무탈하신 출산과 대군아기씨를 생산하시라는 축수발원을 드리고자 합니다.
윤비 : 대비마마께오서 신첩을 염려해주시는 마음에 감동이 지극해지옵니다.
하오나 신첩을 위해 왕실의 재정을 소모하시면서까지 불사를 열어주시오면 조정신료들의 눈총을 받을까 저어되옵니다.
자순대비 : 중전, 대군아기씨를 얻을 수 있다면 왕실재정이 바닥난들 무슨 대수겠으며
조정신료들의 눈총 따위가 무에 두렵겠소? 허니..
윤비 : 마마, 백성들은 삼년째 내리가뭄으로 굶주리고 있사온데 궐내에서 성대한 불사를 여시오면
신첩의 마음이 편치가 않을 듯 싶사옵니다. 그리되면 복중의 태아에게도 좋지 못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하오니 불사를 여시겠다는 말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자순대비 : 중전의 뜻이 정 그러하시다니 할수없지요. 대신 이 늙은이가 팔도의 명산대찰에 사람을 보내
불공을 드리도록 하리다. 중전께서도 태교에 더더욱 정성을 다하셔주세요.
윤비 : 깊이 명심하겠사옵니다.
자순대비 : (방밖을 보며) 조상궁, 다과상을 들이게.
조상궁(E) : (방밖에서) 예, 마마.
자순대비 : 중전, 지금부터 이 늙은이가 하는 말을 곡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윤비 : ..말씀하시옵소서.
자순대비 : 이 늙은이가 듣자니 주상께서 명년 봄에 왕세자 책봉식을 거행하시리라 용단을 내리신 듯 싶은데
중전께서도 아시고 계십니까?
윤비 :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
자순대비 : 주상의 보령이 불혹을 바라보시니 이 늙은이도 왕세자책봉을 서둘러
종사를 굳건히 하는게 옳을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윤비 : ...
자순대비 : 이 늙은이가 중전의 마음을 잘 압니다.. 허나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마세요.
윤비 : ...
자순대비 : 중전께서 원자를 괴이시는 마음이 생모 못지 않으시고, 또한 원자 역시 중전을 생모처럼 여기고 있으니
이 늙은이 중전께서 원자의 왕세자책봉에 힘을 써주실것이라 믿습니다.
윤비 : ...
S#13. 동 대비전 마당
윤비, 대비전을 나온다.
윤비 : (대비전을 싸늘한 무표정으로 돌아보는)...!
엄,오상궁 : (윤비의 안색을 살핀다)..
윤비 : (돌아서며) 가세.
윤비, 앞장서면 엄, 오상궁 및 상궁나인들이 그 뒤를 따른다.
S#14. 윤임 사랑채 마당
댓돌위에 남자 갓신 여섯켤레가 놓여있다.
박서방과 황서방이 한편에 서있는데.
윤임처 : (다가오며) 박서방.
박서방 : (다가와 조아리며) 예, 마님.
윤임처 : 사랑채 근처로 잡인들 출입을 엄히 막도록 하게.
박서방 : 예,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요. (황서방과 함께 어디론가 간다)
정광필 : (E) (방안에서) 명년 봄에 왕세자책봉례가 있는 것이 분명하외까?
윤임처 : (방쪽을 돌아보는)...!
S#15. 동 윤임 사랑채 방 안
윤임과 김안로, 김전과 정광필, 안당, 김승지가 모여 앉아있다.
김전 : 전하께오서 그리 심중을 굳히신 듯 하오이다.
안당 : 허허, 적통대군께오서 버젓히 계시온데 왕세자책봉에 이리 마음을 쓰시는 연유가 무엇이오이까?
김안로 : 전하께오서 원자아기씨뿐만이 아니오라 후궁 소생 왕자들의 왕재를 살피신 연후에 낙점을 하신다 하시었소.
안당 : 아니, 후궁소생 왕자들까지요?!
정광필 : 전하께오서 조정의 권세를 쥐고 있는 신료들중 대부분이 후궁들과 결탁하고 있음을 아시고 계시오니
그들의 반발을 무마시키시려는게지요.
윤임 : 허나 어젯밤, 전하께오서 경빈처소에 납시어 복성군의 왕재에 크게 흡족해 하셨다고 하오이다.
안당 : 허나, 설마하니 전하께오서 적통대군을 젖히고 후궁소생으로 대통을 이으려 하시지는 않을겠지요.
김전 : 이 사람은 조정신료들이 똘똘뭉쳐 후궁소생 왕자로 대통을 잇자고 전하께 주청을 드린다면
마음을 놓을수는 없을것이라 생각하오이다.
김승지 : 예, 원자아기씨께오서 총명하심이 다른 왕자들에 비해 출중하시다고는 하오나
연치가 어리신 것이 험절이 될 수도 있음이옵니다.
일동 : (위기감에)..음!
윤임 : 더구나 저들은 후궁소생 왕자가 왕세자로 책봉된 연후에 대국에서 승인을 받기위해
대국 조정과 깊숙하게 줄을 대고 있는 거상과도 접촉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옵니다.
정광필 : 허어, 참으로 주도면밀하구먼..
김안로 : 분명 전하께오선 왕세자를 낙점을 하시기 전에 두분대감을 비롯한 원임대신들의 의견을 하문하실 것이옵니다.
이 사람은 두분대감께오서 원자아기씨만이 이나라 대통을 이으실 유일한 적통대군이라는 명분을
강력하게 주청 드려주시오면 원자께오서 왕세자책봉을 받으시는데 큰 힘이 될 것이옵니다.
정광필,안당 : ...음!
S#16. 경빈 처소 방 안
경빈, 발너머에 앉은 남곤과 심정을 본다.
남곤,심정 : 마마, 감축드리옵니다.
경빈 : (싫지 않은) 호호, 감축은 무슨요?
남곤 : 어젯밤 복성군께오서 전하의 면전에서 왕재의 자질을 활짝 펼치시어 전하께오서 크게 만족하셨다고 들었사옵니다.
심정 : 어제 일로 조정에서는 전하의 장자이신 복성군께오서 보위에 한걸음 다가 서시었다는 소문이 파다하옵니다.
경빈 : 이 사람과 복성군은 할 소임을 다 하였습니다. 이제는 두분대감께서 힘을 쓰실 차례입니다.
남곤 : 조정의 공론이 복성군께 기울고 있사오니 견마지로를 다 받치겠사옵니다.
경빈 : 예, 재물은 이사람이 댈 것입니다. 두분대감께서 재물로 매수할 자들은 매수하시고, 벼슬을 줄자에게는 벼슬을 내리시고
위협할 자들은 위협을 하셔서라도 조정의 공론을 틀어쥐셔야 할 것입니다.
남곤,심정 : 예, 깊이 명심하겠사옵니다.
남곤 : 하온데 장대인이란 대국 상인은 어찌 하실 작정이시옵니까?
경빈 : 장대인이 달포 후면 대국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사람이 서찰을 한 장 써주었습니다.
남곤 : 서찰을요?!
경빈 : 이사람에게 대국조정에 뒷배가 생겼으니 이젠 복성군께오서 왕세자책봉을 받으시는 일만 남은셈입니다. 호호호.
남곤,심정 : ..음!!
S#17. 백치수 사랑채 방 안
장씨, 서찰(*경빈이 능금에게 준)을 읽고 있고 그 앞에 백치수가 앉아있다.
장씨 : (서찰을 접으며) 하하, 역시 경빈마마께오서 야심이 큰 여자요.
백치수 : 뭐라고 쓰여있는가?
장씨 : (서찰을 건네며) 백도주께서 직접 읽어보시구려.
백치수 : (손사래치며) 나야 이두나 볼줄 알지.. 진서는 영 까막눈이라..
장씨 : (서찰을 품에 넣으며) 자기 소생인 복성군이 왕세자 책봉을 받은 연후에
대국 조정의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힘을 써 달랍니다.
백치수 : 허허, 그럴만 하신 분이지요.
장씨 :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새 중전이 될 것임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소이다.
백치수 : 새 중전이라?.. 복성군께서 왕세자에 책봉되시면 그럴 수도 있을테지.
장씨 : 헌데 지금 교태전에 앉아계신 중전마마께선 어떤 분이시오?
십수년 동안 궐내에서 살아온 후궁들을 쥐락펴락 하시는 무서운 분이라지요?
백치수 : 그리 궁금하시면 직접 알현해 보시게나.
장씨 : 후궁처소라면 모를까, 장사치가 어찌 지엄한 교태전에 들어갈 수가 있겠소이까?
백치수 : 장대인이 산 길상이가 지금 모시는 나으리가 중전마마의 둘째 오라버니 되시는 분일세.
허니 내 다리를 놓아줄 수도 있지?
장씨 : (반가운) 그래요?.. (끄덕이며 뭔가를 생각하는)..
S#18. 동 백치수 사랑채 방 밖
능금, 진지한 표정으로 방문 앞으로 걸어온다.
곽서방 : (능금을 보고 방쪽에다 고하는데) 어르신..
능금 : (마루위로 올라서며) 나 능금이요! 좀 들어가겠소.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S#19. 동 백치수 사랑채 방 안
장씨와 백치수 앉아있는데 능금,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능금 : (걸어와 장씨 앞에 버티고 서며) 장대인께 물어볼 말이 있소!
장씨 : 해보거라.
능금 : 장대인 어른과 둘이서만 나눌 얘기요.
백치수 : 허허, 허면 내 승후관께 그리 전함세.. (일어서서 방밖으로 나간다)
장씨 : 그래, 할 말이 무어냐?
능금 : (앞에 털썩 앉으며) 앞으로 나를 어쩌실 셈이요?!
장씨 : (의아) 너를 어쩌다니?
능금 : (비장하게) 나하고 한베개를 베었으니 날 첩실로 들일건지 종년으로 부릴건지 말해달라 이 말이오!
장씨 : 뭐라?! 하하하.
능금 : 웃지 마시오, 난 지금 억장이 무너져 내린단 말이오!
장씨 : 길상이란 총각놈은 어쩌고?
능금 : (눈물 글썽하며 목이 메이는) 허니 날 좀 놔주시오!.. 만약 어른께서 날 놓아주지 않는다면
내 손으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르오..
장씨 : 하하하-
능금 : (눈물 주르륵)...
장씨 : 내 너를 제자로 받아들인 연유를 아느냐?
능금 : (손등으로 눈물 쓱 훔치며).. 한베개를 벤 것 때문아니오?
장씨 : (웃음기 그치며) 니가 길상이를 살리기 위해 좌의정에게 몸뚱이를 바치려고 했다는 얘길 들었다. 내게도 그렇고.
능금 : ...
장씨 : 사내를 위해서가 아니라 돈 한푼을 위해서 니 몸뚱이를 바칠수 있을 각오라면 넌 큰 거상이 될 수 있을게다.
난 네게서 그 싹을 본게야.
능금 : 허면 기생년들처럼 재물을 위해 몸뚱이를 함부로 굴리란게요?
장씨 : 네 일은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자구나. 하하하. (일어나서 방밖으로 나간다)
능금 : ...
S#20. 중궁전 앞 마당
경빈, 금이를 거느리고 걸어온다.
금이 : 마마, 중궁전에는 어찌 문후를 드시옵니까?
경빈 : 어찌 문후를 들다니?
금이 : 중전마마께오서 대군아기씨를 생산하신다 한들 어차피 이번 왕세자 책봉에 참여하실 수도 없지 않사옵니까?
경빈 : 금아, 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금이 : 예에?
경빈 : 중전마마께오서 생산하시는 대군아기씨는 왕세자가 될 수 없지만,
중전마마께오서 밀어주시는 왕자가 왕세자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음을 네 어찌 모르느냐?
금이 : ...?
경빈, 중궁전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위로.
엄상궁 : (E) 중전마마, 경빈 문후들었사옵니다.
S#21. 동 중궁전 방 안
경빈, 방안으로 들어와 윤비 앞에 선다.
경빈 : 중전마마, 심기는 좀 어떠시온지요?
윤비 : 경빈, 왕실과 조정이 명년 봄에 있을 왕세자 책봉 때문에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던데
경빈께서 어찌 중궁전까지 발걸음을 하시었소?
경빈 : 마마, 신첩이 약조드리지 않았사옵니까? 신첩은 중전마마께오서 대군아기씨를 무탈하게 순산하실때까지
거르지 않고 중궁전에 문후를 들것이옵니다.
윤비 : (미소)..그래요? 듣자하니 경빈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싶은데 어디 말해보시게.
경빈 : (보다가) 중전마마께오선 이번 왕세자 책봉에 어느 왕자를 밀어 주실 것이옵니까?
윤비 : 경빈, 해는 동편에서 떠서 서편으로 지는 것이 당연지사고 어미된 자가 자식이 잘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경빈 : 예에?
윤비 : 이나라 왕실에 대통을 이을 적통대군이 원자말고 또 누가 있을까?
경빈 : (미소) 마마, 정녕 토사구팽이라도 당하고 싶으신 것이옵니까?
윤비 : 토사구팽?
경빈 : 원자께오서 중전마마의 후광을 입고 왕세자에 책봉되시옵고 장차 보위에 오르신다 한들
원자마마의 지근에는 판부사대감과 희락당대감이 있으시지요!
윤비 : ...
경빈 : 그 두분 대감께오서 이번에 왕세자책봉을 서두르신 까닭은 모두
중전마마께오서 대군아기씨를 생산하실까 저어하셨기 때문 아니겠사옵니까?
윤비 : ...
경빈 : 장차 그 두분께오서 원자아기씨를 등에 업고 조정의 권세를 틀어쥐신다면
가장 먼저 경계하실 분은 신첩이나 후궁들이 아니라 중전마마이심을 마마께오서 잘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윤비 : ...!
경빈 : 하온데도 중전마마께오선 원자아기씨를 왕세자로 밀어주시려 하시옵니까?
윤비 : 경빈, 이사람은 때가 되면 소임을 다하고 교태전에서 조용히 물러날 작정일세.
허니 내가 복성군을 밀어줄 것이란 기대는 추호도 말게.
경빈 : 마마께오선 충분히 그리 하시겠지만 승후관형제분들의 전정은 어찌 하시렵니까?
또 중전마마를 하늘과 같이 받드는 난정이는 또 어쩌구요?
윤비 : ...
경빈 : 중전마마께 충직하다는 창빈 역시도 오늘 중궁전 문후를 들지 않았다고 들었사옵니다.
지금쯤 영양군과 덕흥군에게 전하께오서 하문하실 물음에 답을 찾고 있을것이옵니다.
윤비 : 경빈,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겐가?!
경빈 : 신첩은 중전마마께오서 신첩의 진언을 깊이 헤아려주시길 바랄뿐이옵니다. 하오면 신첩 물러가옵니다.
(일어서서 조아리고 방밖으로 나간다)
윤비 : (일그러지는)...!
S#22. 홍경주 사랑채 외경
홍경주집사가 시립해 있는 모습 위로.
윤원로 : (E) 예에, 금원군을 왕세자로 밀어달라니요?!
S#23. 동 홍경주 사랑채 방 안
윤원로, 앞에 앉은 홍경주를 놀란 눈으로 본다.
홍경주 : 허허, 무얼 그리 놀라시는가?
윤원로 : 하,하오면 이번에 중전마마께오서 대군아기씨를 생산하시오면 어쩌구요?
홍경주 : 어차피 중전마마의 산달은 왕세자책봉례가 끝난 연후가 아니신가?
윤원로 : 그거야 그렇지요만..
홍경주 : 만에 하나 복성군이 왕세자의 자리에 오르면 그동안 경빈을 핍박했던 중전마마는 물론이고
자네 형제들 전정 역시 순탄치 못할 것이야.
윤원로 : (침을 꿀꺽)...
홍경주 : 허니 자네 형제들이 힘을 합쳐 중전마마를 설득해 주시게. 중전마마께오서 희빈마마의 소생이신 금원군을
왕세자로 밀어주신다면 자네 형제들에겐 당장 당상관자리가 돌아갈걸세.
윤원로 : (생각하는)...
홍경주 : (힐끔보며) 어떤가? 이 늙은이 말대로 해주시겠는가?
S#24. 남곤 사랑채 방 안
남곤, 박희량 앞에 묵직한 염낭과 문서봉투를 밀어놓는다.
박희량 : (남곤을 보며)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남곤 : 지난번 조정암을 찍어낼 때처럼 이번에도 자네 힘이 크게 필요하네.
박희량 : 예에? 시생은 도통 무슨 말씀이온지...?
남곤 : 이 재물로 유생과 선비들을 주변에 모아두라 이 말일세.
박희량 : ...
남곤 : 얼마뒤 전하께오서 왕세자를 낙점하실 때 만에 하나 복성군께오서 그 자질때문이 아니라
후궁소생 왕자라는 신분 때문에 밀려나시는 일이 생기신다면 그 부당함에 대해 자네가 유생들과 함께
전하께 상소를 올려 달라 이 말씀일세. 내 말뜻을 아시겠는가?
박희량 : (망설이는)...
남곤 : 어허, 자네 꿀먹은 벙어리가 됐는가?
박희량 : (결심한 듯) 예, 시생 그리 하겠사옵니다!
남곤 : 암, 그래야지..(미소)..
S#25. 남곤 집 근처 길
박희량, 손에 쥔 염낭을 보며 걸어오는데.
정렴 : (박희량쪽으로 달려오며) 이보게 희량이.
박희량 : (염낭을 감추며 쌀쌀한) 자네가 웬일인가?
정렴 : 자네 정녕 옥련이를 버릴 작정이신가?
박희량 : 자네 아버님께서 날 받아들이시기는커녕 참기 힘든 모욕까지 주시는데 나보고 더 어쩌란 말인가?
난 할만큼 했으니 내 탓은 말게. (돌아서는데)
정렴 : 희량이. 자네 진정 옥련이가 집을 나가는 꼴을 보려 함인가?
박희량 : (돌아보며) ..옥련 낭자가 집을 나가다니?
정렴 : (침통하게 고개를 돌리는)...
S#26. 정윤겸 사랑채 방 안
정윤겸, 앞에 앉아있는 옥련을 엄한 눈길로 본다.
정윤겸 : 옥련아, 네 정녕 아비뜻을 따르지 못하겠다는 말이냐?
옥련 : (결연한) 아버님, 소녀 씻어내지 못할 불효를 저지르는줄은 아옵니다. 하오나 아버님께오서 희량도련님에 대한
오해를 거두실때까지는 소녀 아버님곁을 떠나 어머니께서 계신 외가에 머물고자 하옵니다.
정윤겸 : 옥련아!
옥련 : ...
배서방 : (E) 대감마님, 궐에서 대전별감께서 나오셨사옵니다.
정윤겸 : 뭐라? 대전별감이? (정윤겸 일어나 방밖으로 나간다)
S#27. 동 정윤겸 사랑채 방 밖 마당
정윤겸, 방밖으로 나오면 배서방 앞에 대전별감이 서있다.
정윤겸 : 이 사람을 어인 연유로 찾아오신게요?
대전별감 : 전하께오서 대감을 급히 들라 명하셨사옵니다.
정윤겸 : 전하께오서?
S#28. 갖바치 마당
방백인, 툇마루에 앉아 중얼중얼 육갑을 짚고 있다가 붓을 들어 한지에 일필휘지로 뭔가를 써갈긴다.
당골네, 방백인 옆에 다소곳하게 앉아 갸웃거리며 글씨를 본다.
방백인, 붓을 놓고 종이를 들어 펼쳐본다. <鼠兮鼠兮 子母受害> 라고 알아볼 수 없게 쓰여진 여덟자.
방백인 : (음미하듯 가늘게 보며 끄덕이는) 역시 내 생각이 옳았어..
당골네 : (힐끔보며) 임자, 뭐라 쓴거요?
방백인 : 아, 보면 몰러?
당골네 : 그걸 까막눈인 내가 어찌 알겠소? 꼭 비온 뒷날 지렁이 꿈틀대는 것 같이 그려놓구서는?
갖바치 : (지게에 쇠가죽을 지고 대문 안으로 들어오며) 왜 또 투닥거리는가?
방백인 : 형님, 염복더위에 털가죽 짊어지고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소.
갖바치 : (땀 뻘뻘 흘리며 지게를 내려놓는)
방백인 : 여편네야 뭐해? 얼른 뒷곁에 가서 시원한 우물물 한바가지 퍼와!
당골네 : (궁시렁거리며 뒷곁으로 가는)
갖바치 : (툇마루쪽으로 다가와 앉으며) 자넨 뭘하고 있었는가?
방백인 : 아무래도 어제 경빈마마를 속인 일이 께름직해서 경빈마마의 사주를 풀어보고 있었소.
갖바치 : (종이를 들어보며) 쥐 때문에 어미와 아들이 해를 당한다?
방백인 : 예, 중전마마의 사주는 나중에 천하를 도리질 치실 왕후의 기상이시고 경빈마마께선 해를 당한다니..
내 어제일은 잘한 듯 싶소.
갖바치 : ...
방백인 : 헌데 쥐 때문에 해를 당한다니 그게 무슨 뜻인줄 모르겠단 말씀이요?
당골네 : (물바가지 들고 뒷곁에서 오며) 무슨 뜻이긴? 누가 쥐새끼로 방자를 해서 화를 당한다는게지.
(갖바치에게 바가지를 건네는)
갖바치 : (바가지 받아들고 꿀꺽 꿀꺽 마신다)
방백인 : 시끄러, 까막눈 여편네가 뭘 안다고 끼어들어?
당골네 : 모르긴 왜 몰라요? 내 당골밥만 이십년이우!
갖바치 : 크으-속까지 시원하구나! (바가지를 건네는데)
당골네 : (바가지를 건네 받는데)
방백인 : 여편네야, 내 물도 한바가지 퍼와.
당골네 : 아주 종년 다루듯 하시는구려.
방백인 : 시키면 시키는대로 냉큼 할 일이지 뭔 말이 그리 많아?
당골네 : (못마땅하게 보다가 뒷곁으로 간다)
방백인 : (낮고 진지하게) 형님, 헌데 지난번 난정이한테 중전마마께오서 아들을 낳으실 거라고 하라고 시키신 연유가 대체 뭐요?
갖바치 : 허허, 그리도 알고 싶은가?
방백인 : 예. (바짝 앉는데)
갖바치 : 내 난정이한테 경륜이 없는 총기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가르쳐 주려 함이었네.
방백인 : 예에? 그건 또 무슨 말씀이요?
갖바치 : 난정이한테 세상을 보는 경륜이 있었다면 이번에 중전마마께오서 아들을 낳으시던 따님을 낳으시던
대세를 바꾸지 못함을 단박에 꿰뚫어 봤을테지. (허공을 보며 긴 한숨) 어쨌든 이번 일이 난정이한테는 큰 약이 될게야.
S#29. 어느길
도포차림의 윤원형과 쓰개치마를 쓴 난정, 걸어 오고 있다.
윤원형 : 부인, 내 잠시 집에 들러 관복으로 갈아입어야 할터이니 장모집에서 기다리시게나.
난정 : 서방님, 소첩 장통교 기방에 들러 매향이를 만나볼것이니 두식경 후엔 궐문 앞에서 만나시지요.
윤원형 : 그럼 그리 하세나. (뒤 돌아서 휘적휘적 간다)
난정 : (길상을 찾듯 주변을 보다가 어디론가 간다)
길상 : (한편에서 몸을 드러내며)...
S#30. 자운아 기방 안채 마당
옥매향, 아랫방 툇마루에 걸터앉아 대야물에 발을 담근채 부채질을 하고 있다.
심퉁, 동이를 들고와 대야에 부어준다.
옥매향 : 심퉁아, 너도 이렇게 발둄 담가보라우. 아듀 시원해.
심퉁 : 지는 됐구먼유.
자운아 : (안방쪽에서 나오며) 매향아, 에미나이래 너 디금 뭐하는거이네?
옥매향 : (쌩끗 미소) 오마니, 내레 탁됵(濯足)하는거야요. 양반님네들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피한다고 해서리
내레 흉내한번 내본긴데 무텩 시원하구만요.
자운아 : (다가오며) 매향아, 아예 뎌고리 고름까디 싹 다 풀러버리라우.
옥매향 : 뎡말 기럴까요?
자운아 : 뭐이 어드레? 매향아, 기생이란거이 혼자 닜을때도 남보기 우세스럽디 않아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갔네?!
날래 일어서디 못하간?!
옥매향 : 오마닌..(삐죽대며 일어서는데)
난정 : (중문 안으로 들어서며) 매향아.
옥매향 : (반갑다) 난뎡아.
자운아 : 난뎡이 왔네?
난정 : 예, 아주머니, 그간 무고 하셨지요?
자운아 : 기래, 난뎡이 너 시딥가더니 아듀 어른스러워뎠구나.
난정 : (미소)..
옥매향 : 어른스러워딘게 뭐야요? 시딥갔으면 어른이디요. (난정의 손을 잡아 끌며) 난뎡아 방으로 들어가자우.
심퉁아, 시원한 화태 둄 내 오라우.
심퉁 : 야.
난정, 옥매향의 손에 끌려 아랫방으로 들어간다.
S#31. 동 자운아 아랫방 안
난정과 옥매향이 화채그릇이 놓인 소반을 앞에 놓고 앉아있다.
옥매향 : 기방문 다시 열고난 후론 판부사대감하고 희락당대감이 댜듀 튤입을 하셔.
난정 : 판부사와 희락당 대감이?
옥매향 : 기래. 어뎨도 점댢으신 정승대감하고 술을 드셨는걸?
난정 : 무슨 말씀들을 나누셨는데?
옥매향 : 댜세한 건 모르갔는데 술손님들 마다 왕세댜 택봉에 대해서 말씀들을 많이 하시던걸?
난정 : 왕세자 책봉...?!
S#32. 윤원형 집 대문 안 마당
윤원형 : (대문안으로 들어오며) 나 없는 사이 집안에 별고 없었는가?
임서방 : 예, 나으리.
윤원형 : (박서방과 황서방이 지키고 선 두 대의 사인교를 보면)..?
박,황서방 : (조아리며 인사를 한다) 나으리, 평안하셨습죠?
윤원형 : 오, 그래.. 숙부님과 처숙어른이 오셨구먼?
임서방 : 예, 지금 큰 사랑에 들어계시옵니다.
윤원형 : ....
윤원형, 잠시 생각하다가 안채 큰 사랑채 쪽으로 걸어간다.
S#33. 동 윤원형 안채 큰 사랑채 방 안
윤지임 앞에 윤임과 김안로가 앉아있는데.
윤원형 : (방안으로 들어와 윤지임 옆에 앉으며) 두분 대감께오서어인 발걸음이시옵니까?
윤지임 : 판부사대감과 희락당대감께오서 우리 삼부자가 원자아기씨를 위해서 힘을 보태주실 일이 있다고 하시는구나.
윤원형 : 원자 아기씨를 위해서 힘을 보태라니요? 그 무슨..?
윤임 : 조카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것이라 생각하네. 이번 전하께오서 왕세자를 낙점 하시는데
파산부원군대감과 자네 형제가 힘이 되어주게나.
윤원형 : (짐짓) 예에? 시생은 두분 대감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통..
김안로 : 이미 중전마마께오서도 그리하시겠다고 약조를 하셨네.
윤지임 : 중전마마께오서 약조를 아니하셨더라도 우리 삼부자가 대감들을 도야드려야지요.
윤임 : 고맙습니다, 대감. 중전마마의 사가에서 원자아기씨를 왕세자로 책봉시키라고 전하께 주청을 드리면
큰 힘이 될 것이옵니다.
윤원형 : ...!
S#34. 동 윤원형 대문 마당(사인교가 있는곳)
윤원형이 윤임과 김안로를 배웅하듯 걸어온다.
김안로 : 조카사위께서는 소실을 들이더니 신수가 훤해지셨구먼?
윤원형 : 처숙어른,그,그게 저..
윤임 : 허허, 이사람 괜찮네. 대장부가 소실 들인 일이 흉될게 무에 있겠나? 아니 그렇소이까, 희락당 대감?
김안로 : 헌데 조카사위께서 처첩간에 줄타기를 잘해야 할것이야. 그래야 집안이 평안한 법일세.
윤원형 : 명심하겠사옵니다...
김안로,윤임 : (사인교에 올라타는데)
윤원형 : ..하온데 대감, 정말 중전마마께오서 원자아기씨께오서 왕세자 책봉을 받으시는데 힘을 보태시기로
약조를 하였사옵니까?
김안로 : (뼈있는)..중전마마께오서도 달리 방도가 없으셨을걸세. 허니 자네도 다른 생각 말게나.
윤원형 : 다른 생각이라니요? 시생은 다른 생각을 먹을 마음도 없고 또한 그럴만한 머리도 못되옵니다.
윤임 : 내 조만간 전하를 알현할 자리를 마련할테니 아버님과 형을 뫼시고 입궐하게나.
윤원형 : 예, 그리하겠사옵니다. 허면 살펴들 가시옵소서.
윤원형, 김안로와 윤임의 사인교가 대문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심기불편한 듯한 눈길로 보는데.
탄실 : (다가오며) 나으리.
윤원형 : (돌아보며) 왜 그러느냐?
탄실 : 초당아씨께오서 잠시 드시랍니다요.
윤원형 : 그래, 오냐. 알았느니. (초당쪽으로 걸어간다)
S#35 동 윤원형 초당 방 안
윤원형, 보료위에 앉으면 따라 앉는 김씨.
윤원형 : (심기가 편치 않은) 부인, 이사람을 어찌 보자고 하시었소?
김씨 : 서방님, 어제는 기별도 없이 어디서 유하셨는지요?
윤원형 : 부인, 지금 나를 추궁하시는게요?
김씨 : 추궁하다니요? 소첩은 서방님이 걱정이 되어 여쭙는 말씀이옵니다.
윤원형 : 이사람, 조용한 산중 암자를 돌아보고 왔소이다.
김씨 : 산중 암자라니요?
윤원형 : 부인, 내 언제까지 중전마마의 뒷배만 믿고 백두로 지낼수는 없는 노릇아니겠소?
내 당분간 산사에 들어가 잡념을 잊고 과거공부에 정진할 요량으로 공부에 적합한 암자를 물색중이요.
김씨 : 서방님이 그리 작심을 하셨다면 소첩 따를 수 밖에요..
윤원형 : 허고, 부인! 어찌 지아비 말을 허투루 들으시는게요?
김씨 : 허투루 듣다니요?!
윤원형 : 내 일전에 분명 이르지 않았소이까? 한치 건너 두치, 두치 건너 세치라고요.
김씨 : 예에? 소첩 무슨 말씀이온지...?
윤원형 : 부인께서 숙모님께 말을 전하지 않았다면 숙부님이나 처숙어른께서 이 사람이 난정이를 소실로 맞아들인 일을
어찌 아시고 계신게요?
김씨 : (고개 숙이며)..송구하옵니다..
윤원형 : (안스러운지 누그러지며) 내 부인을 탓하려는게 아니오.. 숙부님이나 처숙어른을 못믿어서가 아니라
중전마마께오서 회임을 하신 참에 조정일이 하수상하다 보니 내 잠시 역증이 났나보오.
(김씨의 손을 쥐며) 미안하오 부인.
김씨 : 아니옵니다, 모두가 소첩의 불찰이옵니다. 소첩 다시는 이런 일로 서방님의 심기를 어지럽혀 드리지 않겠사옵니다.
윤원형 : (문득 생각난 듯) 아참, 이 정신머리좀 보게. 부인 내 입궐을 해야 하니 나중에 얘기 하십시다.
(벌떡 일어나 방밖으로 나간다)
S#36. 동 윤원형 작은 사랑채 마당
윤원형, 급하게 걸어오다가 마주오는 임서방을 보고..
윤원형 : 임서방, 얼른 입궐채비를 하게.
임서방 : 저, 나으리 작은 사랑에 남소문 백도주가 와있습니다요.
윤원형 : 백도주?! 허어 참, 갈길은 바쁜데 도포자락을 잡는 손은 왜 이리 많누?
임서방 : 어쩔깝쇼?
윤원형 : 어쩌긴, 내 집을 찾아온 손님을 박대할 수야 있나? 내 만나봄세.
윤원형, 작은 사랑채쪽으로 들어간다.
S#37. 동 윤원형 작은 사랑채 방 안
윤원형, 백치수를 놀란 눈으로 본다.
윤원형 : 대국에서 온 거상이요?
백치수 : 예, 나으리께서 그자와 안면을 틔워두신다면 전정에 득이 됐으면 됐지,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윤원형 : 대국..대국이라...?
백치수 : 쇠뿔도 당장 빼랬다고 오늘 만나보시겠사옵니까?
윤원형 : (E) 난정이는 어쩐다?
윤원형 : 좋소, 자빠진 김에 쉬어간다고 만나보십시다.
백치수 : (미소)..
S#38. 중궁전 외경
난정, 중궁전 계단을 오르는 모습위로.
윤비 : (E) 오, 난정이 왔느냐?
S#39. 동 중궁전 방 안
난정, 윤비앞에 흐느낌을 참으며 서있다.
윤비 : (보며) 난정아, 앉거라.
난정, 윤비앞에 앉아 머리를 바닥에 닿도록 조아린다.
난정 : 중전마마, 이년을 죽여주시옵소서!
윤비 : ...
난정 :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이년의 아둔함 때문에 중전마마께 큰 누를 끼치게 되었사오니
이년 중전마마의 손에 죽은들 무슨 한이 있겠사옵니까? 흐흑.
윤비 : 난정아, 그게 어찌 네 잘못이겠느냐? 나 역시도 아녀자의 좁은 소견에 사로잡혀
왕실과 조정의 큰 흐름을 깊이 살피지 못했던게야..
난정 : 마마..
윤비 : 오늘 일을 경계로 삼아 차후로는 두 번 다시 이런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으면 될 것이니라..
난정 : 하오면 이번 왕세자 책봉을 두고만 보시려 하시옵니까?
윤비 : 허면 어쩌겠느냐? (씁쓸한 미소)..어미가 마음을 비워야 복중의 태아에게도 좋을 것이니 그리 할 수 밖에..
난정 : 마마, 이년이 무슨 비책을 강구해서라도 이번 왕세자 책봉을 막도록 하겠사옵니다.
윤비 : 아니다, 아니야, 난정아, 그리해서는 아니될 것이야..
난정 : ...?!
윤비 : 서둘러서는 아니될 것이야.. 경빈을 비롯한 후궁들은 병인년에 궁에 들어와 벌써 십수년을 기다려온 사람들이야..
그들을 단박에 꺽어보려 했던 것이 불찰이었느니라.
난정 : 하오시면..
윤비 : (결연함속에서 섬뜩함이 느껴지는) 내 때를 기다릴 것이야, 때를!
난정 : ...!
S#40. 편전 복도
정윤겸, 대전내관과 김상궁이 있는 방문쪽으로 다가와 선다.
정윤겸 : 여쭈어 주시오.
대전내관 : 주상전하, 정윤겸 들었사옵니다.
중종(E) : (방안에서 반가운) 오, 들라해라.
대전내관 : 예. (정윤겸에게) 드시지요.
정윤겸 : (방문쪽으로 한걸음 다가선다)
S#41. 동 편전 방 안
정윤겸, 방안으로 들어오면 박승지가 일어나며 맞이한다.
중종 : (반가움) 오, 어서오세요.
정윤겸 : (곡배를 한 연후에) 전하, 찾아계시옵니까?
중종 : 과인이 경에게 긴한 청이 있어 불렀소.
정윤겸 : (보며) 청이라니요? 전하.
중종 : 경은 병인년 반정 당시 과인이 사저에서 입궐할 때 과인을 보위한 이후로 지금까지 과인의 충성스런 신하였소.
정윤겸 : 망극하옵니다.
중종 : 과인은 경에 대한 신망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어요.
정윤겸 : ..전하..
중종 : (다가와 정윤겸의 손을 쥐며) 과인은 경의 충정이 과인뿐 아니라 과인의 대통을 이을 세자에게까지 이어지기를 바라오.
정윤겸 : ...
중종 : 과인은 경에게 왕세자의 보위를 맡기고자 하오. 과인은 경에게 명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청을 하는 것이오.
허니 부디 과인의 청을 거절하지는 말아주시구려.
정윤겸 : ...!
S#42. 중궁전 방 안
윤비와 난정 앞에 각기 찻상이 놓여있다.
윤비 : 난정아, 내 복중의 태아를 위해 누가 왕세자가 되어야 한다고 보느냐?
난정 : 마마, 소첩은 복중 아기씨께오서 대통을 이으셔야 할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옵니다.
윤비 : (미소로 젓는) 사람이 순리를 거스르면 화를 자초하는 법이니라.
난정 : 하오면 중전마마께오선 누구를 마음에 두고 계시온지요?
윤비 : 그거야 당연히 원자이지 누구겠느냐? 내 돌아가신 장경왕후의 유지를 받들어 원자를 보호할 것이라 약조를 했으니
원자를 왕세자로 밀어 올릴 것이니라.
난정 : 마마, 아니되옵니다! 원자아기씨만은 왕세자로 책봉되시어서는 아니되옵니다!
윤비 : 아니되다니?
난정 : 원자아기씨께오서 장차 대통을 이으신다면 앞으로 중전마마께오서 생산하실 대군들께오선
안위를 보장 받으실수가 없사옵니다.
윤비 : 안위를 보장 받을수 없다니?
난정 : 마마, 폐주 연산때 지금의 전하께오서 적통대군이시라는 이유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으셨사옵니까?
마마께오서 원자아기씨를 왕세자로 밀어 올리신다면 연산주때의 전철을 밟는 일이 되심을 어찌 모르시옵니까?
윤비 : ...음!
난정 : (눈을 반짝이며) 마마, 소첩 생각엔 중전마마께오서 복성군을 밀어주심이 좋을 듯 싶사옵니다.
윤비 : 뭐라? 네 지금 경빈의 소생인 복성군을 왕세자로 책봉시켜주라고 말하는 것이더냐?
난정 : 예, 마마! 이 모두가 중전마마의 복중 대군아기씨로 하여금 대통을 잇게하는 일이옵니다.
윤비 : 내 복중 태아로 대통을 잇게 한다니 네 그 무슨 궤변이더냐?
난정 : 이번에 복성군이 왕세자로 책봉을 받는다 한들 그리 쉽게 보위에 오르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윤비 : 쉽게 보위에 오르지는 못한다?
난정 : 예, 적통대군을 젖히고 책봉된 왕세자를 명분을 중시하는 대국에서 쉽게 승인해 줄 리가 없을 것이옵니다.
대국의 승인을 받지 못한 왕세자가 어찌 보위에 오를 수 있겠사옵니까?
윤비 : ...!
난정 : 그 사이에 중전마마께오서 이번에 대군아기씨를 생산하신다면...
윤비 : 복성군을 폐세자하고 내 소생의 대군으로 왕세자로 삼을 수 있다?
난정 : 예, 마마!
윤비 : (씁쓸한 미소) 난정아, 경빈이 네가 생각하듯 그리 호락호락한 위인은 아닌 듯 싶구나.
난정 : 예에?
윤비 : 경빈이 네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대국 조정과 깊숙이 연줄을 닿는 대국의 거상을 곁에 두고 있음이야.
난정 : (움찔) 거, 거상이라니요?
S#43. 어느 정자 위
장씨, 등을 보인채 여유롭게 부채질을 하고 있다.
백치수, 윤원형을 데리고 정자위로 걸어온다.
백치수 : 장대인, 내 승후관 나으리를 뫼시고 왔네.
장씨 : (돌아보는)..
윤원형 : (야릇한 외모에 흠짓 놀라는)...
장씨 : 승후관 나으리께 인사여쭈옵니다. 시생, 장아무개라 하옵니다.
윤원형 : 바,반갑소이다. 윤원형이라고 하오.
S#44. 대궐 일각
난정, 생각에 잠겨 걸어오고 있다.
난정 : (E) 대국서 건너온 거상?.. 거상이라...?
저 앞에서 정윤겸이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난정, 정윤겸을 보고 깜짝 놀라 몸을 숨기려다가 어느 중문 안으로 뛰어들어가서 숨는다.
정윤겸이 지나가 버리면 난정, 중문뒤에서 정윤겸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박상궁 : (E) 원자아기씨, 서두시옵소서. 보양관들께오서 기다리시옵니다.
난정 : (움찔 놀라)...!
난정, 돌아보면 박상궁과 원자가 상궁나인들을 거느리고 지나간다.
난정, 원자에게 깊숙하게 머리를 숙인다.
원자, 난정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힐끗 보고는 지나간다.
원자가 지나가면 난정, 서서히 고개를 든다.
난정, 원자의 뒷모습을 독기서린 눈빛으로 쏘아보는 얼굴에서 스톱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