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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대본

[일지매] 01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0.10.25|조회수1,369 목록 댓글 2

[일지매] 01











#1. 그들만의 아지트 / 이하 밤


쿵~ 좌르르- 선반 위에 펼쳐지는 가죽 두루마리. 어른거리는 불빛. 펼쳐진 피지. 미로처럼 복잡하게 그려진 설계도다.

설계도 한 지점에 척 꽂히는 매화 모양의 쇠침. 눈 동그래지는 대식 얼굴부터 보인다. (한 명씩 타이트, 스피드하게)


대식 : 똥 싸고 앉았네.

희봉 : 이 쉐끼! 완전 겁 대가릴 삶아 묵었구만. 거긴 철옹성이야. 철옹성!

흥견 : 그래, 거긴 불가능 해. 포기해라!


나란히 앉아 있는 대식, 희봉, 흥견.

그들 맞은편에 앉은 사내의 뒷모습. 머리 뒤로 질끈 (흑두건) 끈을 조이는 사내의 손.


사내e : (자신만만한) 세상천지, 털지 못할 곳은 없어.


카메라 시선이 대식, 희봉, 흥견과 등을 맞댄 남자의 얼굴을 향해 다가서면 흑두건을 쓴 일지매다.

두건 속으로 씨익~ 웃는 일지매의 미소.


일지매 : 난, 일지매니까!



#2. 육중한 철문 앞


중무장한 수문병들 비상경계 태세다.

그들 앞에는 난감한 표정의 사람들 있고, 옆에는 사옹원에 댈 야채, 주류, 육류 등 실은 수레들 있다.


얼음꾼e : 비켜요! 비켜!


차붓소 끌고 사람들 사이 뚫고 달려 나오는 얼음꾼, 수문병들 막아선다.


수문장 : (퉁명스럽게) 뭐야?

얼음꾼 : (넉살스런 표정) 연회 때 쓸 얼음 대~령이오!

            (품에서 궁궐 출입패[標信] 꺼내 보여주며) 내빙고가 비어 후딱 채워두란 기별이 와서요.

수문장 : 오늘밤엔 외부인은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란 명령이다. 동 틀 때 까지 기다리거라!

얼음꾼 : 예? 동틀? 아니, 딴 건 몰라도 얼음은 다 녹죠. 니미럴 서빙고서 예까지 뽕~ 빠지게 달려왔구먼.


수문장 보면 수레 밑으로 이미 얼음 녹은 물 뚝뚝 떨어지고 있다.

난감한 표정의 수문장. 눈짓 보내면, 수문병1, 수레에 드리워진 차양 걷어 수레 안 살피고, 수문병2는 얼음꾼 몸수색한다.


얼음꾼 : (수색 당하며) 뭔 일 있소?

수문병2 : (나지막하게) 비상이요! 오늘 밤에 일지매가 여길 턴대잖수.

수문병1 : (맨 밑 붉은 얼음 보고) 이 얼음덩이인 왜 이리 시뻘개?

얼음꾼 : (몸수색 당하며) 아, 그거요. 대동강서 겨우 내 얼린 복분자주라요. 낼 연회 때 청 사신 나리들 접대할 특제 얼음 주랍디다.

수문병1 : (손에 묻은 얼음물 쪽쪽 팔며) 복분자주 맞는데요.

수문병2 : (몸수색 끝내며) 아무 것도 없습니다.

수문장 : (잠시 고민하다) 들여보내!


육중한 철문 열리면, 얼음꾼 수레 끌고 안으로 들어간다. 부러운 듯 보는 다른 상인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3. 내빙고 안 (이하 경쾌한 음악과 함께, 스피드하게)


산산조각 튀어나가는 얼음 파편들. 박살난 얼음 안에서는 가죽에 둘둘 만 흑두건복과 검, 통 나온다.

어느새 흑두건복으로 갈아입은 얼음꾼, 일지매다.

검과 통 등에 매고, 얼음들 딛고 천장 환기구멍으로 올라가는 일지매.



#4. 땅 위


금위병들 무리 지어 걸어가고, 금위병들 발 밑 아래로 카메라 시선 쑤욱~ 들어가면,



#5. 땅 밑 / 환풍기 통로


금위병들 발아래는 바로 환기 통로. 빠르게 기어가고 있는 일지매.



#6. 땅 위 / 환풍기 밖


병사들 환기 구멍 막 지나가면 뚜껑 열리며 고개 쑥 내미는 일지매. 눈앞에 화려하고 웅장한 전각들 드넓게 펼쳐져 있다.



#7. 전각들 지붕 위


달빛 아래 전각 지붕 위를 거침없이 내달리는, 혹은 훌쩍 훌쩍 뛰어 넘는 일지매.

드디어 내수사 전각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등에서 기다란 통 꺼내 쏘는 일지매. 통 속의 줄 달린 화살 류 (마치 로켓처럼 치솟는) 내수사 지붕에 휙- 박힌다.



#8. 내수각 전각 밑


전각을 주변으로 횃불 들고 둘러싼 금위병들. 삼엄한 경비 서고 있다.


금위대장 : 이상 없나?

금위병 : 예. 쥐새끼 한 마리 얼씬 못하도록 철통 수비 중입니다.


대화중인 그들 머리 위로 카메라 시선, 높이 드리워진 줄 위에 매달려 목표 전각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가는 일지매.



#9. 내수각 전각 위


내수각 지붕 위로 올라온 일지매. 용마루 끝 까치구멍을 헐고 안으로 쏙 들어간다.



#10. 전각 안


기둥을 타고 내려오는 일지매 재빠른 동작으로 병사들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숨기며, 내수고 문 연다.



#11. 내수고 안


내수고 안은 온갖 보물들로 가득하다.

주위를 둘러보던 일지매, 격자문을 향해 다가서고, 조심스레 문 열면 잠복해 있던 정예무사들 튀어나와 일지매 공격한다.

등에서 무날 검 꺼내 들어 맞싸우는 일지매. 격자문들 줄줄이 열리며 계속해서 쏟아지는 엄청난 수의 병사들.

병수들 수에 밀려 계속 후퇴하며 내수고 창고까지 돌아오는 일지매.

비단 두루마리를 풀어내, 장식용 꽃 대형화병 속, 물을 천에 끼얹는다.

병사들을 헤치며 젖은 천을 휘날리며 횃불들을 휙-휙 끄기 시작하는 일지매. 주위는 순식간에 암흑천지가 되고

어둠 속 검, 창 등 챙챙- 부딪히는 소리.


금위대장e : (다급한 목소리) 입구를 봉쇄 해! 불을 밝혀라. 불!


금위병 급하게 부싯돌을 부딪치면, 불꽃이 파팍~ 일었다 꺼졌다 하는데,

불꽃이 일 때마다 검, 창 부딪히는 상황이 순간순간 불빛에 비친다.

횃불 밝혀지면, 금위병들 서로가 서로에게 검, 창 겨누고 있는 황당한 풍경. 어디에도 일지매는 없다.


금위대장 : 쫓아가! 멀리 못 갔을 것이다!


입구 쪽을 향해 달려 나가려던 금위병들. 맨 안쪽 격자문 방에서 검 날 챙챙- 부딪히는 소리에 발을 멈춘다.

모두 숨 죽여 검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격자문 앞으로 숨죽여 다가서고

금위대장 신호 보내면, 격자문 뚫고 방 안으로 뛰어드는 금위병들.



#12. 격자문 방 안


방안에는 일지매와 금위병1이 서로 검, 창 휘두르며 싸우는 중이다.

상대가 안 되는 듯, 일지매가 휘두르는 검을 막아내기에 급급한 금위병1.

격자문 뚫고 들어온 금위병들의 출현에 놀라 문 쪽 돌아보는 일지매.

순간 창으로 일지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금위병. 고꾸라지는 일지매.

금위병들 일제히 달려들어, 온 힘을 다해 저항하는 일지매를 제압, 포박한다.


금위대장 : (금위병1의 어깨를 툭툭 치며) 수고했다.


금위대장, 포박된 일지매에게 다가서고 금위병1은 뒤로 물러난다.


금위대장 : 일지매! 넌 이제 끝장이다. 천하의 일지매가 대체 어떤 놈인지 그 잘난 낯짝 한번 보자꾸나.


금위대장 일지매의 복면 벗기면 흑두건 속의 사내 얼굴이 드러나고, 두건 속으로 재갈 물려 있다.

놀란 금위대장, 재갈 풀어주면


사내 : (큰소리로 외친다) 그 놈이에요. 그 놈이 일지매라고요.


금위대장, 후다닥 금고가 있는 방으로 뛰어가 격자문 확 열면 이미 금고 문은 활짝 열린 채, 비어 있고,

벽에는 호방한 홍매 한 가지 그려져 있다.



#13. 내수사 일각


걸어가는 금위병의 발. 카메라 시선 가슴으로 옮기면 품에서 칠보도(혹은 보물)를 꺼내는 손,

칠보도 보는 예사롭지 않은 눈빛, 금위관모를 벗고 휙- 뒤돌아 보며(카메라를 향해) 씨익 웃는 얼굴. 용이다.


일지매 : 봐! 세상천지 못 털 게 없다니까.


저 놈 잡아라. 소리와 함께 쫓아오는 금위병들.

통 속의 활촉 쏘고, 줄을 타고 금위병들 머리 위를 쑥 지나가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일지매.

담장 너머 새 하얀 매화가 피어 있다. 문득 매화 꽃잎에 손을 뻗는 용이의 아련한 시선.

매화를 만지는 용이의 손, 어느새 아홉 살배기 겸이의 조막만한 손으로 변한다.



#14. 이원호의 집 사랑채 마당 / (해질녘)


나무 등걸을 딛고서 매화를 만지작거리는 어린 겸이. 평상에 앉아 매화도 치고 있는 이원호의 모습도 보인다.

평상 밑에는 큰 육백이(토종 견) 늘어지게 엎드려 자는 여유로운 풍경.


이원호 : 겸아, 다른 예쁜 꽃들도 지천인데, 어이 그리 매화만 좋아하느냐?

겸이 : (야무지고 또랑또랑한 말투) 벚꽃을 닮았으나 벚꽃처럼 야단스럽지 않고,

         배꽃과 비슷해도 배꽃처럼 청승스럽지 않아 좋습니다.

이원호 : (흐뭇한)

겸이 : 군자의 그윽한 격조가 느껴져, 소자 눈에 매화만큼 어여쁜 꽃은 없사옵니다.


기특한 듯 보는 이원호. 고개 끄덕이더니 다시 매화도 치기 시작한다.

등걸에서 내려와 평상에 앉는 겸이. 아버지가 그리는 매화도를 구경한다.

너울너울 마치 나비가 춤을 추듯 이원호 부자의 머리 위로 흩날리는 매화 꽃잎들. 그 풍경위로 사내들의 대화가 흐른다.


사천E : 정녕, 그것이 보이느냐?

촌부E : 예. 강렬한 붉은 빛에, 그 기운은 매우 호방해 보입니다.



#15. 언덕 위 / (해질녘)


언덕 끝,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흰 도포, 이원호의 집 사랑채를 내려다보는 중이다.

그 뒤에는 검은 도포 차림의 사천과 추레한 차림의 촌부가 한 손에 지팡이를 쥔 채 서 있는데 맹인이다.


사천 : (낮고 건조한) 어찌 그것이 보인단 말이냐?

촌부 : (시선 고정한 채) 갓난쟁이 때 심한 열병을 앓고, 두 눈을 잃었습죠. 그 후로 다른 눈이 생겼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정녕, 소인의 눈에는 만백성의 추앙을 받을 뜨겁고 강렬한 해의 기운이 보입니다.


주먹 꽈악~ 쥐는 흰 도포. 얼굴 근육에 작은 경련이 있다.

<점핑>

어느새 지팡이를 의지하며 언덕을 내려가던 촌부 저만치 보이고.

흰도포의 뒤에 사천 서 있다.


흰도포 : (시선 앞, 무심한 목소리) 저 놈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구나. 하여, 나 또한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어 버렸어...


내려가다 문득 서는 촌부. 이상한 느낌에 돌아보면 어느새 눈 앞에 서 있는 사천의 기운.


사천 : 또 누가 알고 있느냐?

촌부 : 예? (순간 당황하는데 사천 그 낯빛 놓치지 않는다) 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휙- 검 내긋는 사천. 뚝 떨어지는 지팡이, 피...

휘잉- 불어대는 매서운 겨울바람. 도포자락 휘날리며 이원호의 집 노려보고 있는 흰 도포의 얼굴.



#16. 이원호의 집 사랑채 마당 / (해질 녘)


평상에서 일어나는 이원호. 매화나무 앞으로 가, 매화 바라본다.

평상에 남아 있는 겸이 이원호가 놓은 붓을 들고 뭔가 그린다.

연이 손잡고 사랑채 마당에 들어서는 한씨부인. 상념에 잠겨있는 이원호 본다.


한씨부인 : 답답하시면 바람이나 좀 쐬고 오시지요.

이원호 : (돌아보고) 그렇지 않아도 근간 한양 나들일 다녀오려 하오. 심기원 대감이 좀 보자는 구려.

연이E : 아버님. 이것 좀 보시어요.


이원호 부부 돌아보면 연이, 겸이가 그린 매화도를 활짝 들어 보인다.


이원호 : 겸아, 네가 그렸느냐?

겸이 : 예.

이원호 : 어허, 이거 내가 부끄러워지는구나. 부인, 내 솜씨보다 낫질 않소?

한씨부인 : (기특한) 우리 겸이 상 줘야겠구나. 무얼 줄까? 겸이가 좋아하는 육포 주련?

겸이 ; (고개 절레절레 흔든다)

한씨부인 : 그럼 무얼 줄까?

겸이 : 소자도 아버님 따라 한양 구경 하게 해 주십시오.

이원호 : (빙그레 웃으며) 무에 어렵니. 그러자꾸나.

한씨부인 : (걱정스러운) 허나, 아직 담장 밖조차 나가보지 않은 아이라..

이원호 : 괜찮습니다. 부인. 이제 우리 겸이도 슬슬 세상 구경 나서야지요.

연이 : 우와~ 겸인 좋겠다. 다녀와서 나한테 다 얘기해 줘야 한다?

겸이 : (좋아라) 응. 누이. 어? (반가운) 휘파람새다.


푸드득 날아오르는 휘파람새... 매화나무에 앉아 우는...

겸이, 휘파람새 따라 휘휙 휘파람 소리 내고...


이원호 :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휘파람새가 찾아 든 걸 보니... 이제, 완연한 봄이구나...



#17. 한양 인근 한 촌락 / 밤


불길에 휩싸이는 촌락. 불길 속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는 촌락 사람들의 시신들(칼 맞고 피 흘려 처참한..)

불길 사이 시신들 사이 다니며 누군가 열심히 찾고 있는 무이.

마을 앞에는 사천과 용제 불타는 촌락 보고 서 있다. 사천의 서늘한 시선과 대조적으로, 용제 표정은 착잡하다.


무이 : (뛰어와) 그 맹인 놈의 처가 안보입니다. 미리 빠져나간 듯 싶습니다.

사천 : 그 자의 처라면...



#18. 산길 / 밤


봉순 등에 업고 수막 손을 잡고 뛰는 맹인 처.

돌멩이 파편들 튀며 달려오는 말발굽.

헉헉대며 뛰는 여인, 갈림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등에 업힌 봉순 내려놓고 수막과 봉순 손을 꼭 잡는다.

봉순 계속 으앙~으앙~ 울고...


맹인처 : (봉순 무섭게 보며) 뚝!

봉순 : (뚝! 그러나 끅끅 울음 멈추지 않는-)

맹인처 : (수막 손에 봉순 손 꼭 쥐어 쥐며 급박하게) 수막아. 저 길로 뛰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계속 뛰어야 해.

수막 : (잔뜩 겁에 질린) 엄니...

맹인처 : 누구한테도 아버지가 맹인 점술가였다 말 하면 안 된다. 알았지!

수막 : (잔뜩 겁에 질린) 엄니…….

맹인처 : (수막과 봉순 손 꼭 잡으며) 수막아. 넌 오라비잖니. 하니, 봉순이 잘 챙겨야 한다.


고개 끄덕이는 수막.

아이들을 한번 꽉 껴안는 맹인처. 아이들 확 밀어내며.


맹인처 : 뛰어! 어서!


잠시 주춤하던 수막, 봉순 손잡고 뛰기 시작한다. 봉순 안 가려고 떼쓰며 울지만, 수막 억지로 끌고 간다.

뛰는 아이들 모습 잠시 바라보는 맹인처의 눈에서 눈물 쏟아진다.

이윽고 쫓아오는 3인의 말. 사천 무리가 그녀를 보자 비로소 다른 쪽 길로 뛰는 맹인처.

쫓아오는 말발굽. 3인의 무사 금세 맹인 처를 둘러싼다.


사천 : (낮고 건조한) 들었더냐?

맹인처 : (악에 바친) 그래. 이 천 벌 받을 놈들! 우리 입을 막는다고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


하는데 사천 검, 맹인처의 가슴을 확- 긋는다. 착잡한 용제의 표정.



#19. 한양, 도성 안 거리 / 낮


거리에는 거지들이 들끓고, 거적때기 씌운 시신 수레에 끌고 가며 통곡하며 따르는 여인 보인다.

다른 쪽에서는 날치기패들 물건 훔쳐 도망가고, 저 놈 잡아라. 길길이 뛰는 상인의 모습.

시비 붙어 싸움질하는 풍경. 거지한테 함지박물 끼얹어 쫓아내는 주모 풍경.

이원호, 겸이 손잡고 걸어가고 행랑아범 그 뒤를 따른다.


겸이 : (쀼루퉁해서) 왜들 저럽니까?

원호 : 응?

겸이 : 실망스럽습니다. 소자가 상상했던 한양의 모습이 아닌걸요.

원호 :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 내쉬며) 그러게 말이다. 나라가 어찌 이리 됐누?


원호, 겸이 손잡고 가는데 반대편 쪽에서, 단이 한손에는 보따리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시후 손을 잡고 바지런히 걸어오고 있다.

행인들 사이로 서로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이원호와 단이.

이원호 걸어가다 문득 놀라 멈춰 서서 갑자기 뒤 돌아본다.


이원호 : 자, 잠시만... 아범, 겸이 좀...


원호, 급히 인파 속으로 달려간다.

이리 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이원호. 낙심한 듯, 우두커니 멈춰 선다.


이원호 : 단아... 너니? 정녕, 너였던 거니?



#20. 저자거리 포전 앞 / 낮


누비저고리 바느질 꼼꼼히 살피고 있는 포전 여주인. 그 앞에 단이와 시후 있다.


포전주 : 어쩜 이리 자로 잰 듯 꼼꼼히 누볐을꼬.. 참, 포청 마님이 들르래. 지난번 자네 바느질 솜씨가 꽤 맘에 드신 눈치야.

단이 : 그래요? (잠시 망설이다) 차돌아. 예서 잠깐만 놀고 있으련? 내 금시 포청 좀 댕겨 올 테니.

시후 : 예. 엄니.



#21. 저자거리 / 낮


겸이 신기한 듯 물건 구경하고 있는데, 누군가 겸이 소매 쓱 잡는다.

코 찍찍 흘리며 땟물 찍찍 흐르는 영락없는 비렁뱅이 계집아이, 봉순이다.


겸이 : (코부터 막는다.) 어후- 냄새.

봉순 : (땡깡 부리듯) 배고파. 돈 줘! 돈!

겸이 : (인상 찌푸리며) 돈 없어. 저리 가~


봉순이 잡고 있는 소매 뿌리치자 벌러덩 넘어지는 봉순. 으앙- 울음 터트린다.

당황해 얼른 봉순 일으키려 하는데 누군가 겸이 손을 확 뿌리친다.


수막 : (봉순 일으키며) 괜찮아? 봉순아. (겸이 멱살 확 잡으며) 씨~ 양반집 도령이면 다야?

겸이 : (놀래) 미, 미안하구나. 일부러 민 게 아니라...

행랑 : (뛰어오며) 야, 이놈들. 썩 꺼지지 못해!


행랑아범 쫓아오면, 수막 얼른 봉순 손잡고 후다닥 도망친다.

그때 뒤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이원호. 표정 시무룩하다.


이원호 : 그만 가자. 겸아.



#22. 포전 인근 / 낮


어슬렁거리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는 시후, 저쪽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징, 꽹과리 소리에 사람들 우르르 구경하러 간다.

시후도 사람들 따라 달려가다, 곶감을 질겅질겅 씹고 걸어가고 있는 시완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시완 : (확 꼬나보며) 뭐야? 저 새끼.


인근에 있던 겸이도 사당패 놀이를 보고, 이원호의 손 잡아끈다.



#23. 저잣거리 광장 혹은 공터 / 낮


이원호와 겸이 사람들 뚫고 앞쪽으로 가면, 사당패 난장이 한창이다.

높은 장대에 올라 거꾸로 매달려 손을 한들한들 거리며 춤추고 때로는 공 몇 개를 던졌다 받았다 하는 솟대장이 죽방울 놀이에

이원호와 겸이 정신없이 구경한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시후 역시, 넋이 빠져 보고 있다.

건너편에 서 있는 시완과 한수. 시완, 문득 시후 발견한다.


시완 : (곶감을 질겅질겅 씹어 먹으며 시후 본다) 저 건방진 새끼!

한수 : 엉? 누구? 아, 쟤.

시완 : 아는 놈이야?

한수 : 애비가 옥살이도 여러 번 한 알아주는 좀도둑놈이래. 애민 도망친 종년이란 소문도 있어.

시완 : (껄렁한 눈빛) 천한 피가 아주, 쌍으로 흐르는 구나. 저런 천것이 감히 날치고 그냥 갔단 말이지?

한수 : 꼴에 어찌나 고개가 빳빳한 지, 벼르는 얘들이 많아.

시완 : 그럼 깨닫게 해줘야지. 지 몸에 얼마나 더러운 피가 흐르는지.


시완 먹던 곶감 휙- 내 던지고, 주변 둘러본다.

이원호를 발견하는 시완. 한수에게 귓속말 하고, 이원호 옆으로 슬쩍 다가간다.

이원호 허리춤에 달린 범발톱노리개를 슬쩍 잡아당기는 시완. 시후 옆으로 다가가,

시후 저고리 주머니에 훔친 노리개 슬쩍 집어넣는다. 아무것도 모르고 사당패들의 묘기에 푹 빠져 있는 시후.

시완, 한수에게 수신호 보내면, 한수 소리친다.


한수 : 도둑이야! 도둑!


순간 사당놀이 멈춰지고, 구경꾼들 시선 일제히 한수 쪽으로 몰린다.

마침 순찰 중이던 기찰포교들 급히 뛰어온다. 그 중 한 명이 장포교(장만동)이다.


장포교 : 무슨 일이옵니까? 도련님.

한수 : 웬 놈이 저 나리의 물건을 훔쳤느니라.


자신을 가리키자 놀래는 이원호.


장포교 : (다가와) 나리, 혹여 없어진 물건이 있사옵니까?

이원호 : (허리춤에 범발톱 노리개가 없는 걸 발견한다) 그, 그러네만..

장포교 : (한수에게) 그 놈 얼굴을 보셨습니까?

시완 : (슬쩍 한수 옆으로 다가오며) 내가 봤네.

장포교 : 도련님이요? 누굽니까?


시완, 손가락 들어 시후를 가리킨다. 그 상황 구경하다 자신이 지목되자,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는 시후.


시후 : 저, 전 안 훔쳤어요. 쇤넨 정말 모르는 일이예요.


포교1, 시후를 붙잡고 몸을 뒤지면 주머니에서 이원호의 노리개가 나온다.

포교1, 시후 이원호 앞으로 끌고 오고, 이원호에게 노리개 건네준다. 얼결에 노리개 받는 이원호.

시후 억울한 눈빛이다.


시완 : (시후 보며) 이 아이, 애비도 좀도적놈이라 들었네. 천한 피는 어쩔 수 없나 보네.

시후 : (야무지게) 아녜요. 울 아부지 도적놈 아니란 말예요.



#24. 포구에 정박해있는 배 위 / 낮


선원들 한창 물건들 하역중이다.

기찰포교 차림의 쇠돌, 거드름 피우며 배 위에 오른다.


쇠돌 : 아따들, 고상들 많여 잉~ (건들거리며 궤짝 열어 보면 우황청심환 가득 들어있다)

         흐메, 이것이 말로만 듣던 명국제 우황청심환인갑네?

선원 : (못마땅한 듯 보며) 무슨 일 이슈?

쇠돌 : (거들먹) 어, 가짜 청심환을 밀수해온단 고변이 들와 잠시 기찰 나왔네.

선원 : 참내, 우린 그런 짓 안하우. 맘대로 뒤져 보슈.

쇠돌 : (바짝 엎드려 괜히 배 밑바닥 두들겨 보며 귀 기울이는 척) 보통들 밀수품은 배 밑바닥에 감춰 들온 담서?

선원 : 뜯어보든가.

쇠돌 : (일어나며) 쩌그 궤짝들 쫙~ 좀 열어봐.

선원 : (짜증나는 듯 열어 보이며) 실컷 보슈. 다 나라에서 허가 받아 들어온 것 들 뿐이니.

쇠돌 : 음마, 이 희컨 건 뭐시여?

선원 : (귀찮다는 듯) 가루 사당(설탕)이오.


* 사당 : 오늘날의 설탕


쇠돌 : 사당? (슬쩍 집어 먹어보며) 흐미...달달 흔 것이 살살 녹아불구만 잉.

         니미럴 양반님 네들 주둥이는 좋겄어. 조석으로다가 이런 거 묵고 상께.

선원 : 아, 참 말 많네.

쇠돌 : 궤짝 속 좀 뜯어봐야겄응께 가, 뜯을 것 좀 갖고 와 봐. 거그다들 많이 숨킨담서?


선원, 열 받지만 참고 가면, 쇠돌, 허겁지겁 주머니에 청심환 가득 집어넣는다.


쇠돌 : 오늘 완전 봉 잡아부렀네. 대체 이것이 한 알에 얼마여? (다른 주머니에는 가루사당 쑤셔 넣는) 요건, 우리 차돌이 묵여야지.


양 주머니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쇠돌, 눈치 살피며 후다닥 배에서 내리려는데, 진짜 포교들이 배 위로 올라오는 모습 보인다.

헉 놀라는 쇠돌, 다시 배 위로 올라가다 선원과 툭 부딪힌다.


선원 : (단도 건네주며) 여기요! 맘대로 뜯어보슈.

쇠돌 : (겁에 질린) 과, 관군!

선원 : 예? (쇠돌 불룩 나온 주머니 보고) 뭐, 뭐야? 당신!


선원 밀치고 배 뒤 쪽으로 도망치는 쇠돌,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난감하다.

선원 포교들과 배 뒤쪽으로 쫓아 오는데 쇠돌 보이지 않는다.

선원과 포교들 배 밑 내려다보는데, 바닷물은 그저 고요, 잠잠하다.


선원 : 이 도적놈!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하늘로 솟았나?


카메라 시선 배 아래로 내려가면, 배에 버둥버둥 매달려 있는 쇠돌.

선원과 관군 가면, 휴- 하고 한숨 내쉬는 찰나, 순간 손이 미끄러지고.


쇠돌 : 아, 아아아, 안 되야~~~~~~


필사적으로 버둥거리지만 결국 바다로 풍덩~ 빠지고 마는 쇠돌. 허푸거리는데... 그 위로 시후 목소리.


시후e : (분한 듯) 참말이요, 울 아부지 도적 아니란 말이요.



#25. 저자거리 / 낮


시후, 오랏줄에 포박된 채 씩씩거리며 서있다.


장포교 : 주뎅이 닥치고 어여 가!


억울한 눈빛의 시후, 장포교에게 끌려간다.

겸이 그런 시후 바라보다, 문득 이원호의 손에 들린 범발톱노리개 내려다본다.



#26. 좌포청 문 앞 / 낮


바느질감 잔뜩 챙겨 가지고 나오는 단이. 지나가던 아낙, 단이 보고 후다닥 달려온다.


아낙 : 여깄었네? 저자에서 차돌이 봉변당하고 있든디...

단이 : 봉변이라니요?



#27. 저잣거리 공터 일각 / 낮


시후 팔을 결박한 채, 끌고 가고 있는 포교들. 그 뒤를 시완과 한수가 킥킥 거리며 따라간다.


겸이e : 잠깐!

장포교 : (돌아보면 겸이 뛰어와 선다.) 왜 그러십니까? 도련님.

겸이 : 그 아이 손 좀 보여주게.

장포교 : 손은 어찌? (하다가 결박된 시후 손을 내민다.)

겸이 : (시후 손을 찬찬히 살핀 후 흐뭇한 미소 지으며 장포교에게 노리개 보여준다)

         이 노리게 좀 보게. 여기 흰 가루가 묻어 있질 않는가? 이게 뭘까?

장포교 : 그, 글쎄요.

겸이 : 한 번 맛을 보게.

장포교 : 예? (무슨 말인가 싶지만 시키는 대로 흰 가루의 맛을 보면) 좀...달짝지근한뎁쇼.

겸이 : 그건 곶감에 묻어있는 시상이네. 감을 말릴 때 속에서 당분이 나와 흰 가루가 되는 것이지.

장포교 : (알겠다는 듯) 아, 그래서 맛이 단 거였군요.

이원호 : (다가와 선다)

겸이 : 아버님 손을 좀...

이원호 : (손 내밀면 깨끗하다)

겸이 : 자, 보게. 내 아버님 손에도 시상은 묻어있질 않네. 허면, 이 아이 손에도, 내 아버님 손에도 묻어있지 않은 곶감가루가

         어찌 이 노리개에 묻어 있겠는가?

장포교 : 그, 글쎄요...

겸이 : (시완 가리키며) 저 도령, 손 좀 보여 달라게.

장포교 : 예?


시완 놀래 스스로 자신의 손을 보면 곶감의 흰 가루가 묻어 있다.

시완, 슬근슬근 뒷걸음치다 후다닥 도망친다. 어느새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 기막힌 듯 웅성거린다.


이원호 : (기특한 듯) 겸아. 네 어찌...

겸이 : 별 거 아닙니다. 아까 그 도령이 곶감을 먹고 있던 걸 봤습니다.

이원호 : (고개 끄덕이며) 어서 이 죄 없는 아이를 풀어주게.

장포교 : (뻘쭘해져 결박 풀어준다)

시후 : 고맙습니다. 도련님...저... 존함이...

겸이 : (거침없이) 난 겸이라고 해. 이 겸!

시후 : 나리의 존함은?

이원호 : 나? (허허 웃으며) 이원호라 한다.

장포교 : (옆에 서서 듣고 있다)

시후 : 두 분의 은혜, 반드시 갚겠습니다.

원호 : 은혜는 무슨. 그저 바르고 귀하게 자라거라. 그럼 되었느니라. 그렇지 겸아?

겸이 : 네, 아버님.

시후 : (감격한 듯) 아닙니다. 이 은혜 꼭 갚을 것 입니다.

단이e : 차돌아.

시후 : (마주 서 있는 이원호 뒤쪽 보며) 어머니.

단이 : (이원호 지나쳐 시후에게 간다) 무슨 일이야? 엉?


놀라는 원호. 입가가 스르르 떨리고 눈가가 촉촉해온다.


단이 : 괜찮은 거야?

시후 : 네, 저 나리와 도련님께서 구해주셨어요.


단이 무심코 돌아보다, 이원호와 시선 마주친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단이.


원호 : (슬픈 눈, 떨리는 목소리) 자네 ... 아들인가?

단이 : (갑자기 독기 어린 눈빛으로 변하며) 가자 차돌아.


시후 손을 휙 잡고 가는 단이. 시후가 끌려가 듯..

이원호 아무 말 못하고 그저 단이 가는 모습 본다.


겸이 : 아버님. 우리도 그만 가요.

원호 : 응? 으응.. 그러자.


이원호도 겸이 손잡고 간다. 서로 반대쪽으로 걸어가는 이원호와 단이.

발걸음 멈추고 뒤돌아보는 이원호. 단이 손에 끌려가듯 가던 시후도 문득 뒤돌아본다.

눈이 마주치는 이원호와 시후. 묘한 시선 교차하는... 이원호, 시후를 향해 미소 짓는다.

단이, 뒤돌아보고 있는 시후 손을 확 끌고 간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하는 단이.


시후 : 엄니, 왜 그래요?

단이 : (식은 땀 흘리며) 아니다. 그저, 좀 어지러워서...

시후 : (걱정스레 단이 본다)



#28. 저잣거리 내 국밥집 / 낮


시끌벅적한 분위기. 평상위에 앉아 국밥 먹고 있는 겸이.

이원호 넋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겸이 입가 닦아준다.


원호 : 먹을 만하니?

겸이 : 예, 아주 맛있습니다.

원호 : 기특하구나. 입맛이 까다로운 줄 알았더니, 이런 음식도 다 맞고...

시완E : 나리!

원호 : (돌아보면 시완 씩씩거리며 서 있다)

시완 : (따지 듯) 어찌 그 따위, 천한 도적놈 자식을 감싸십니까?

원호 : (기막히다) 그게 분해서 예까지 따라온 게냐?

시완 : 나리 같은 분 때문에 반상의 기강이 흐트러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원호 : 반상의 기강? 도령! 양반이면 양반답게 처신을 하는 것이 진정한 반이고, 그것이 진정한 기강인 게야.

시완 : 아드님께선 천한 놈 앞에서 양반인 저를 망신 시키셨습니다.

원호 : 네 이놈! 참으로 맹랑하구나. 스스로 한 짓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시완 : 이놈이라니요? 양반이면 다 같은 양반인 줄 아십니까? 제가 누군 줄 아십니까? 한성판윤, 변식 어른의 자식입니다.

이원호 : 뭐라? 변식? 그래, 당장 가 아버님께 이원호를 만났다 전하거라.

시완 : 예. 그리 이릅지요. 각오하고 계셔야 할 겁니다.


순간, 원호 옆에 있던 겸이 참지 못하고 머리로 시완을 들이받고, 얼굴을 할퀸다.

울음보 터트리는 시완. 반면 겸이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씩씩거린다.


이원호 : (아들의 의외의 모습에 놀라운) 겸아...



#29. 심기원 대감 집 후원 정자 위 / 낮


다과상을 마주 한 채 앉아있는 이원호와 심기원.

심기원 정자 아래서 투호놀이 하고 있는 겸이 뿌듯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심기원 : 겸이가 저리 컸는가? 갓난쟁이 때 보았는데...


* 심기원: 인조반정 일등공신. 청원부원군.


이원호 : 그러고 보니, 뵌 지가 그새 8년이나 되었군요.

심기원 : 그래, 이 무심한 사람아. 그리 숨어 살 듯 허니 좋은가?

이원호 : 무위도식하며 한량으로 지내는 재미도 쏠쏠하옵니다.

심기원 : 그래..정말 요즘 같아서야, 자네 같은 은둔 생활이 부럽네.

이원호 : 어디 위정자의 길이 만만하겠습니까? (한숨 내쉬며) 오다보니 민심이 이만저만 흉흉한 게 아니더군요.

심기원 : 정묘년 난리(자막: 정묘호란)가 끝난 지가 벌써 몇 해인데, 전쟁의 상흔이 이리 크게 남을 줄 몰랐네.


* 정묘년 난리: 정묘호란(丁卯胡亂)


이원호 : 명국만 떠받들다 나라꼴이 이게 뭐랍니까?

            그리 보면 광해야말로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줄타기외교를 잘 했었던 게 아닙니까?

심기원 : 어허, 지금은 말조심할 때야!

부하 : (기둥 뒤에서 엿 듣는다.)

심기원 : 그나저나 내 전하 때문에 걱정이 많아 상의할 겸 보자 했네.

이원호 : 무슨 일입니까?

심기원 : 이괄이 역모를 일으킨 후로 매해 반정공신들이 전하를 배신하고 역모를 일으키질 않았는가?


* 이괄: 인조반정 공신


이원호 : 예, (질책하듯) 이게 다.. 서인들의 자리다툼 때문이 아닙니까?

심기원 : 그러게 말일세..하여 전하께서 그 헛헛한 마음을 채우느라 자꾸 윤길중, 변식 같은 놈들을 곁에 두고 있다네.

            어지고 심약하신 전하가 그 간신배 놈들한테 휘둘려 정사를 그르칠까, 걱정이야...

이원호 : (불쾌한 듯) 변식이라...



#30. 변식의 집 / 후원 뜰 / 낮


뜰에 있는 구멍. 채를 잡는 손. 탐욕스러워 보이는 인상의 변식이다.

그 뒤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채 들고 서 있는 양반들(정랑, 별감 등)과 악녀(장구 등 악기 맨)들 뒤에 서 있다.

변식, 장대로 공을 치면 또르르 구르는 공. 그러나 구멍을 비켜간다.


변식 : (장대 바닥에 패대기치며) 에이 씨. 누가 구멍을 여기다 파놨어? 너냐?

         (뒤에 서 있는 막쇠 뺨을 쫙 때린다.) 이짝에다 다 파놔야지. 이짝에다.


사람들 당황스럽지만, 서로 눈치만 살피는...

그때 시완 씩씩 거리며 걸어온다.


시완 : 아버님!

변식 : (인상 쓰며 돌아보다 시완 얼굴에 난 생채기를 보고 놀라) 누, 누가 이랬어? 내 새끼. 내 금싸래기 같은 새끼를 누가?

시완 : (씩씩거리며) 이원호라는 작자의 아들이요. 혼쭐을 내 주십시오.

변식 : (얼굴이 사색이 되며) 누구? 이, 이원호?



#31. 변식의 집. 안채 / 낮


화려한 가구들로 가득한 방안.

변식처, 쌓여있는 선물 보따리들 풀어 보며 좋아라. 하고 있다.


변식처 : (비단 대보며) 이건 송 장령이 가져 온 거고. (장부에 적는다) 이건 황 좌랑이.. (열어보며) 호박이네?

            영감 안에 벌레가 있우. 엄청 귀한 건가보네. (대보며) 내 노리개나 만들까?

변식 : (안절부절 서성이고 있다.)

변식처 : 정신 사납게... 좀 앉으시구려. 천정 안 무너집니다.

변식 : (버럭) 시방 진정하게 생겼어? 당장 모가지가 날라 갈 판인데.

변식처 : 아, 글쎄 그 이원호란 작자가 뉘 길래 그리 안절부절 이랍니까? 듣자하니 사대부도 아닌 모양인데..

변식 : 으이그 이 여편네야. 모르면 주뎅이 닥치고 있어. 그 작자 상감의...

변식처 : 상감의?

변식 : (뭔가 말하려다 참고) 상감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작자라구! 어쨌든 전하가 그 작잘 물고 빨아.

변식처 : 은인인가?

변식 : 뭐, 그런 셈이지. 상감이 광해 몰아내고 왕 될 때도 그 자가 지대한 공을 세웠거든.

변식처 : 그런 작잘 우리 시완이가 건드렸단 말이예요? 그럼 이제 우리 어찌 되는 거유?

변식 : 이대로 죽을 순 없지. 아암. (돌아보며) 그 호박이나 챙겨.



#32. 변식의 집 / 솟을 대문 앞 / 낮


징징거리며 버티는 시완, 손을 끌고 가려는 변식. 부자간에 실랑이 중이다.

그 앞에 변식처와 은채, 막쇠를 비롯한 하인들 서 있다.


변식 : 이놈아, 니가 가서 잘못했다 빌어야 이 아부지도 살아.

시완 : 싫어요. 천한 도적놈 자식, 좀 골려준 게 뭐가 죄예요?

변식 : 죄가 아니지. 잘했다, 그건 잘 했는데.. 하필 이원호를 건드린 게 화근이지.

시완 : (주저앉아 땡강 부리며) 싫어요. 안 갈래요. 난 안가.

변식처 : 그냥 영감 혼자 다녀오시구려.

변식 : (난감해하다 문득 은채 본다.) 은채야. 니가 가련? 니가 오라버니 대신 사과드리면 그 분 마음이 좀 풀리지 않을까?

변식처 : (기가 막힌 듯) 영감!

은채 : 아니에요 어머니. 괜찮다면 저라도 가서 잘못을 빌어 볼게요.

변식 : (좋아라. 웃으며 얼굴 부빈다.) 아이구, 이쁜 내 딸내미.



#33. 쇠돌네 초옥 마당 / 낮


대야 안에 김이 모락모락 나고, 단이 시후 발 씻기는 중이다.


시후 :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엄니...

단이 : (올려다보며) 응?

시후 : (잠시 망설이다) 아부지 정말 도적놈이야?

단이 : 누가 그따위 쉰 소릴 해. (시선 피하며) 아버진 훌륭한 분이셔.

시후 : 그치? 아까 만난 그 어르신도 참 훌륭하신 분 같았어. 그 도련님도....

단이 : (고개 숙인 채, 눈에 눈물 글썽인다)

시후 : (잠시 생각하다) 그 도련님. 참 귀해 보였어...


그 말에 단이 물끄러미 시후 올려다본다. 대야에 담긴 시후의 발.



#34. 회상 - 이원호의 집 / 사랑채 마당 / 낮


놋대야에 담긴 발. 단이의 발이다. 그 발을 어루만지듯 씻기는 손. 이원호다.


단이 : (어쩔 줄 몰라 하며) 도련님. 어찌 천한 종년의 발을...

원호 : 어허, 다시 한 번 내 앞에서 천하다 말거라. 내게는 귀하다. 세상에 없는 귀하디 귀한 아이야...


원호, 단이의 발을 가만가만 씻겨준다.

단이 그런 이원호를 연모의 눈빛으로 그윽하게 내려다본다. 이원호 고개 들어 단이에게 입 맞춘다.

대야 안, 단이 발에 나풀거리며 매화 꽃잎 살포시 내려앉는다.



#35. 쇠돌네 초옥 / 마당 / 낮


단이 : (시후 올려다보며) 차돌아. 넌 귀한 아이야...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아이란다.

시후 : (기분 좋아져 빙긋 웃으며 고개 끄덕인다.)



#36. 이원호의 집 / 사랑채 마당 / 낮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매화. 아련한 눈빛으로 매화 바라보고 서 있는 이원호.


이원호 : 그예 십년의 세월이 지났구나..널 꼭 빼 닮은 아이도 낳고... 잘 살고 있었구나. 그래, 그래야지.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한씨부인e :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원호, 화들짝 놀라 돌아보면 한씨부인 서 있다.


한씨부인 : (빙그레 웃으며) 후원에 손님이 와 계십니다.



#37. 이원호의 집 / 후원 정자 / 낮


이원호 앉아 있고 그 앞에 변식 앉아 있다.

변식 옆에 앉은 은채 머리 조아리며.


은채 : 부디 제 오라비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원호 : 아니, 왜 니가 와 비는 게냐?

은채 : (변식 한번 보더니 이윽고) 아버님께서 오라버니의 잘못을 듣고서 회초리를 드셨습니다.

변식 : (무슨 말인가 눈 껌뻑이는)

은채 : 오라버니는 지금 다리가 퉁퉁 부어, 찾아뵙고 사죄할 상황이 못 되옵니다. 하여 제게 대신 사죄를 드려 달라 부탁하였기에,

         소녀가 오라비를 대신해 용서를 빌러 온 것이옵니다.

이원호 : (그 속 다 안다는 표정으로) 어린 게 참으로 영특하구나. 참으로 기특한 따님을 두셨습니다.

은채 : (보면)

이원호 : 우리 아이도 잘한 게 없다. 그나저나 아드님 얼굴에 생채기를 내서...

변식 : (오버스레 굽실거리며) 아휴 괜찮습니다. 다 싸우며 크는 거지요. 넌 그만 나가 있거라.

은채 : 예, 아버님. (은채 일어나 인사하고 나가면)

변식 : (품에서 슬쩍 비단 주머니 꺼내 책상위에 올려놓는다) 이거...

이원호 : (보면)

변식 : 잘 좀 봐 주십시오. 제가 또 전하를 가까이서 모시는 분이라.. 혹여. 전하께는..

이원호 : (기막힌 듯 보면)

변식 : 자세히 보시면 안에 벌레가 들어있습니다. 원래 호박이란 게 벌레가 들어있냐 없냐에 따라 그 값이...

이원호 : (버럭)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38. 이원호의 집 / 사랑채 마당 / 낮


은채, 두리번거리다 사랑채 마루에 걸터앉는다.

은채 치마에 날아와 앉는 휘파람새. 살며시 손을 대는데.. 휘리릭 날아 가버린다.

은채, 휘파람새에 홀린 듯 따라 가면 매화나무 가지에 앉는 휘파람새.

은채 올려다 보다, 매화 등걸을 밟고 막 오르는데.


겸이e : 너, 뭐야?

은채 : (놀라, 몸의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야~


은채, 주저앉은 채, 올려다보면, 봄 햇살에 유난히 눈부셔 보이는 겸이 얼굴.


은채 : (일어나며) 새 소리가 너무 좋아서...그냥 가까이서 들어볼려구...


겸이, 잠시 은채 보다 평상을 딛고 등걸에 올라 은채에게 손을 내민다.

은채 잠시 망설이다, 겸이 손잡는다. 얼굴 발개지는 은채.

은채를 데리고 등걸에 오르는 겸이, 담장 위에 나란히 올라앉는다.


겸이 : 어때? 잘 들리지?

은채 : 응. 근데 저 새 이름이 뭐야?

겸이 : 휘파람새.

은채 : 휘파람새? (신기한 듯) 우와 정말... 새 노래 소리가 휘파람 소리 같아.

겸이 : 근데 저 새... 참 가엾은 새다.

은채 : 가엾어? 왜?

겸이 : 휘파람새는 말야, 매화가 필 때만 나타나 밤낮 매화주위를 맴돌며 떠나질 못 해.

은채 :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겸이를 본다) 왜?

겸이 : 왜냐면... 아주 슬픈 사연이 있는데... (하며 은채 바라본다)


은채와 겸이 사이에 묘한 설렘 흐르고...

그때, 변식 잔뜩 불쾌한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걸어온다.

놀라 후다닥 내려오는 겸이. 은채 내려준다.


변식 : (은채 손을 확 붙잡고) 가자. 은채야.


변식 손에 끌려가는 은채. 아쉬운 듯 한 표정으로 겸이 돌아본다. 겸이도 아쉬운 듯 은채 본다.

그들 시선 위로... 휘익~ 휘파람새 소리 들린다.



#39. 메주 가마골 (오늘날의 세검정) 홍제천 / 밤


홍제천 냇물이 흐르고... 냇물에 비치는 달빛 냇가를 보며 서 있는 흰 도포, 검 집에서 검을 꺼내 든다.

달빛에 반짝이는 칼 날.. 문양이 보인다. 그 뒤에 이원호가 서 있다.

검을 물에 담그는 흰 도포.

* 세검정(洗劒亭) : 1623년 인조반정 성공 후, 반정세력이 칼을 씻었던 자리


흰도포 : (검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기억나니? 반정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모두 모여 이 물에 검을 씻었잖니.

이원호 : 예. 그러고 보니 벌써 십 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흰도포 : 그때 우리가 반정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광해가 계속 왕이였다면... 이 나라가 이리 되진 않았을 터인데...(긴 한숨)

이원호 : (놀라 보는)

흰도포 : 돌이켜 보면... 광해의 선택이 옳았던 것 같아. 그렇지 않니?

이원호 : (결심한 듯) 사실...백성들을 위한 외교 노선을 선택 했어야 옳았습니다. 그랬다면 난리가 일어나지 않았고,

            백성들이 이리 도탄에 빠져있진 않을 것입니다.

흰도포 : 그래...니 말이 맞다.

이원호 : 이제라도 백성을 위한 조선을 이루자했던 그 날의 맹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초심을 지켜 주십시오.

흰도포 : (강물 쪽으로 시선 옮기는 말투는 부드러우나 무심한) 그래. 역시 바른 말을 해 주는 이는 내 아우 밖에 없구나.

            해서 핏줄은 중요한 것이지...


이원호, 흰도포의 뒷모습 바라보고...

저만치 사천, 심기원의 집에서 대화 엿듣던 심기원의 부하 서 있다.



#40. 변식의 집 사랑채 마루 / 밤


불안한 표정으로 서성거리는 변식.


변식 : 이원호 이 자식! 그래 봤자 숨어 사는 천한 쌍놈의 시끼 주제에...

사천e : 나리.

변식 : (버선발로 뛰어내려 맞으며) 어서 오시게. 여까진 어인 일로?

사천 : 은밀히 뵙자 하십니다.

변식 : 은밀히?



#41. 밀실 / 밤


차양 드리워져 있고 차양 안에 흰 도포의 사내 정좌한 채, 앉아 있다.

그 앞에 변식 잔뜩 머리 조아리고 앉아 있다.


흰도포 : 사흘 후, 자시에 광해를 복권시키려는 역당들을 소탕할 작정이네.

변식 : 아, 예.

흰도포 : 그 무리에 이원호를 넣게.

변식 : (헉 놀라는) 예? 이, 이원호를요?

흰도포 : 그래. 이원호를 역당의 주동 인물로 만들어 놓으란 말일세.

변식 : 어, 어떻게...아, 알겠사옵니다. 소인이 알아서 처리 하겠사옵니다.



#42. 주막 / 밤


홀딱 젖은 채, 터벅터벅 들어오는 쇠돌. 걱두 탁주 마시고 있는 자리 가 앉는다.

앉자마자 걱두 탁주 사발 뺏어 신경질적으로 마시는 쇠돌.


걱두 : 웬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여?

쇠돌 : (호주머니에서 문드러진 청심환 덩어리 꺼내며) 니미럴. 물에 빠지는 바람에 청심환도 못 팔게 돼 부렀고,

         차돌이 줄라고 챙긴 가루사당도 다 녹아 없어져 부렀당께.

걱두 : (주변 눈치 살피며) 또 도둑질 하러 갔다 온 거여? 이 눔아,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여. 오늘 차돌이 일 당했다드라.

쇠돌 : 일? 뭔 일?



#43. 쇠돌네 초옥 외경 / 단이 방 / 밤


단이, 침침한 호롱불 아래서 삯바느질 하고 있다.

방문 빠끔히 열리고, 코 빨개진 쇠돌, 마루에 걸터앉아 방 들여다본다.


쇠돌 : 저자에서 차돌이 싸개통 당했담시롱? 대체 뭔일이랑가?

단이 : 별 일 아니에요. 그저 양반집 도령이 장난을 좀 쳤나봐요.

쇠돌 : (흥분해서) 어떤 눔의 시끼가 내 귀한 자슥한테 행짜를 부려.

단이 : (무시하며) 포청 마나님이 제 바느질 솜씨가 맘에 드나봐요. 포청 일감만 맡아도, 우리 세 식구 입에 풀칠은 할 것 같아요.

         그러니 이제 그 일 그만 두세요. 차돌이가 알기라도 해 봐요.


쇠돌,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 끄덕인다.

쇠돌 문 닫으면, 단이 바느질하던 손 멈추고 길게 한숨 내쉰다.



#44. 거리 / 낮


쇠돌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몇몇 양인 아이들이 길고 뾰족한 작대기로 쭈그리고 앉아있는 시후 꾹꾹 찌르고 있다.


아이들 : 애비도 도적놈, 새끼도 도적놈.. 알나리깔나리~ 도적놈 부자~

시후 : (야무지게) 저리 꺼져! 울 아부지 도적놈 아니란 말야.

쇠돌 : (돌멩이 들고 달려오는) 이눔의 시끼들 확 대꾸빡을 쪼사분다. 잉.


도망가는 아이들. 쇠돌 씩씩거리다 시후 돌아본다.


시후 : (울먹이며 쇠돌 올려다보는) 아부지, 아부지 도둑 아니지?

쇠돌 : 아, 아녀. 어떤 시러베 잡놈들이 그딴 불알 떨어질 소릴 혀.



#45. 논길 / 낮


시후 업고 가는 쇠돌. 정겨운 부자 풍경이다.


쇠돌 : 차돌아.

시후 : 응?

쇠돌 : 아부지가 미안혀.

시후 : 뭐가?

쇠돌 : 그냥 다... 다 미안혀. 아부지가 무식헌 것도 미안허고. (울컥한다) 돈 많이 못 버는 것도 미안허고...

         우리 차돌이 만난 것도, 못 사멕이는 것도 미안허고. 그냥 다... 다 미안혀불구만...

시후 : 아냐. 그래도 난 울 아부지가 세상에서 젤로 좋아.

쇠돌 : 그려, 그려. 내 똥강아지. (소매로 눈가 쓱 훔친다)

시후 : 아부지, 나 나중에 귀한 사람 돼서 아부지 호강시켜 줄 거야.

쇠돌 : 뭐? 귀헌 사람?

시후 : 응. 어제 어떤 나리가 그랬어. 귀한 사람이 되라고. 근데 아부지 귀한 사람이 되려면 어떡해야 해?

쇠돌 : 음. 일단... 그랴, 글굉부를 허벌나게 혀 부러야 써...

시후 : 글공부하면 귀한 사람 되는 거야?

쇠돌 : 그람. 글굉부혀서 과거에 떡 허니 합격흐믄 바로 귀현 사람이 되는 거시여. 그랑께, 딴 말로다, 양반이 되는 거시다 이거제.

         가만, 우리 차돌이 서당 다닐래?

시후 : 서당? 우와.. 참말?

쇠돌 : 그려 그러자...아부지가 당장 보내주께. 아조, 물 좋은 데로다. 그려, 내 똥 강아지.

         이 못난 애비처럼은 질대 안 키울 거구만. 몸땡이를 폴아서라도 니 시끼 귀허게 키울 거구만. 암만...암만...



#46. 변식 집 / 사랑채 마당 / 낮


사랑채 방문 열린 채 방 안에 앉아있는 변식. 마당에 서 있는 종복에게 명한다.


변식 : (은밀하게) 담장 잘 넘는 날랜 놈을 한 명 구해 오거라.

종복 : 예. 대감마님.


마당 쓸고 있던 막쇠 듣는다.



#47. 저잣거리 / 미전 앞 / 낮


점포에서 쌀가마니 등에 지고 나오는 쇠돌. 땀 삐질 거리며 휘청거린다.

그 뒤를 쫓아 나오는 주인. 쇠돌 등에서 쌀가마니를 뺏어 내린다.


쇠돌 : 할 수 있당께라. 농땡이 안 부리고 몸이 뽀사지게 해 불라요 함, 보실라요. (쌀가마니 번쩍 들려하지만 잘 안 된다)

미전장 : 아이고, 오랑캐 놈들이 난장 깐 뒤부턴 시전 상황이 말이 아니잖어.

            요새 같음 울 식구 입에 풀칠도 힘들다니께. 어여 가. 어여.


미전장 결국 가마니 뺏어 내리고 쇠돌, 하는 수 없다는 듯 인사하고 쇠돌 어깨 축 늘어뜨린 채, 힘없이 걸어간다.

가는 쇠돌 보며.


손님 : 자네, 일꾼 필요 하댔잖어?

미전장 : 차라리 쥐새끼 헌테 쌀독을 맡기제.



#48. 걱두 작업장 앞 / 낮


작업장, 앞 평상 위 잔뜩 상심한 표정의 쇠돌과 걱두 술판 벌리고 있다.


쇠돌 : 흥견애비야, 나 다신 도적질 안하기로 결심 혀부렀다. 한번만 더 하면 이 손모가지를 확 쪼사불기로 했시야.

걱두 : 그려, 잘했다. 잘했어. 그래야지.

쇠돌 : 근디야, 손을 터니께 막상 할 것이 없시야. 암도 나를 안 써줘야. 울 차돌이 서당 보내주기로 약조혔는디...

         니미럴, 뭘로 핵빌 벌어야 쓰냐?

걱두 : 친자식도 아니면서 뭐 그리 정성이여. 적당히 혀. 적당히.

쇠돌 : 음마.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은 아니여도 우리 차돌이 이 두 손으로 직접 받았시야. 그랑께 내 새끼나 진배 읍제.

걱두 : 붕신시끼! 근다고 차돌 에미가 니 맘 알아 준다드냐? 맘속에 딴 남자 품고, 딴 남자 애 낳고 사는 여자가 뭐 그리 좋다고.

         다 니 눔 이용해 먹는 거여. 갈 데 없어 얹혀사는 거라고.

쇠돌 : (술잔 확 내려 놓으며) 주뎅이 닥쳐라. 잉?

걱두 : 그려. 미안혀.

막쇠 : (쪼르르 와 한 잔 후다닥 걸친다)

걱두 : 이 시각에 웬일이여? 종놈이 팔자가 늘어졌구먼.

막쇠 : (캬 -) 팔자가 늘어지긴. 울 주인 어르신 땜에 요 피부 늙는 거 안 보이냐?

         그나저나 쇠돌아. 너 기술 살려서 돈 좀 벌어 볼텨?

쇠돌 : (순간 술이 확 깨며) 돈? 뭔 일 인디야? 도적질 말곤 다 헐 참이여.



#49. 변식 집. 사랑채 마루 / 낮


사랑채 문 열려있고 그 앞에 발 쳐져 있다. 마루에 무릎 꿇고 앉아있는 쇠돌.


변식 : 장 안에서 네놈 담타기를 따를 자가 없다고?

종복 : (엽전꾸러미를 툭 던져준다)

쇠돌 : (액수에 놀라 보면)

종복 : (문서를 내민다)

변식 : 내가 일러주는 집 사랑채 대들보 밑에 그걸 파묻기만 하면 된다. 묻고 돌아오면 그 돈의 배를 더 주마.

쇠돌 : 차, 참말 묻고만 오믄 되는 거시여라?



#50. 쇠돌네 초옥 / 쇠돌 방 / 밤


쇠돌과 시후 나란히 자고 있다. 쇠돌 일어나 슬쩍 밖으로 나간다.

시후, 문득 눈을 뜨고 일어나 앉는다. 뭔가 생각하는 시후.


플레쉬 컷 - 거리

시완 : (시후 노려보며) 이 아이, 아버지도 도둑놈이라 들었네.

아이들 : (노래하듯 놀린다) 애비도 도적놈, 새끼도 도적놈.. 알나리깔나리~


시후, 잠시 망설이다 결심 한 듯 일어나 따라 나간다.



#51. 이원호의 집 / 담장 아래 / 밤


쇠돌이 양손에 침을 퉤퉤- 뱉고 막 담을 기어올라 담장을 넘는다.

시후 담장을 돌아 뛰어 오는데, 어느새 쇠돌 사라지고 없다. 두리번거리는 시후.



#52. 이원호의 집 / 사랑채 마당 / 밤


쇠돌 대들보 밑 파고, 품에서 문서를 빼 묻으려다 문득 문서를 꺼내 본다.

호기심에 조족등을 슬쩍 비춰보는데, 피로 쓴 이름들이 줄줄이 적혀 있다.


쇠돌 : (헉~) 이, 이거 피 아니여? (뭔가 이상한 육감이 드는) 음마, 뭐신디 이것을? 암만 혀도 수상혀. 보통 일이 아녀.



#53. 이원호의 집 담장 밖 / 밤


쭈그리고 앉아있던 시후. 담 넘어 나오는 쇠돌 보고 후다닥 숨는다.



#54. 변식 집 사랑채 / 마당 / 밤


마당에 쇠돌 서 있다. 마당으로 향해있는 사랑채 문 열리고 발 뒤로 변식 보인다.


변식 : (기대에 찬) 그래, 잘 묻고 왔느냐?

쇠돌 : (품에서 문서 꺼낸다. 엽전꾸러미도 꺼내 마당에 놓는다)

변식 : (놀란 표정) 드, 들켰드냐?

쇠돌 : 쇤네가 일자무식이라 글자나부랭이는 몰러두라, 그 글자가 꺼먼 먹으로 쓴 건지, 삘건 피로 쓴 건지 정돈 알구만요.

         쇤넨 기양, 빠질텡게 딴 사람 시키셔라.


쇠돌 돌아가려는데, 순간 변식의 종복들 쇠돌 에워싼다.


쇠돌 : (놀라) 음마마, 왜, 왜들 이런 당가요. 비켜라우. 어여.

변식 : (발을 확 쳐들며) 네 이놈! 니가 정녕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게로구나. 내 니 눔을 곱게 보낼 듯 싶었드냐.

         여봐라! 저 놈이 정신 번쩍 들게 하거라.

쇠돌 : (종복들한테 잡힌 채) 놔요. 놓으랑께라. 왜 이래 싸요...



#55. 변식 집 / 솟을대문 앞 / 밤


두리번거리며 대문 앞에 서는 시후. 대문에 바짝 붙어 문 틈 사이로 안쪽 들여다본다.

누군가 시후 뒷덜미를 확 붙잡는 손.



#56. 변식 집 / 뒤채 마당 / 밤


시후, 덩치 큰 종복에게 뒷덜미를 잡힌 채 버둥거리며 뒤채 마당으로 들어서면, 쇠돌이 하인들에게 멍석말이 당하고 있다.

막쇠, 숨어서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고, 변식, 쇠돌 보고 서 있다.


시후 : (놀래) 아부지! 아부지 놔! 놔 이거!

쇠돌 : (비명 지르다가, 헉 놀래는) 차, 차돌아.

종복 : (변식에게) 대문 밖에 서성거리고 있어 잡아 왔습니다.

쇠돌 : 니가 여긴 우짠 일이여... 아이고, 대감마님, 제발 지 아들 놈일랑 풀어 주셔라. 아이고메 나으리~

변식 : (귀찮다는 듯 눈짓하며) 광에 가둬 놔!



#57. 뒤채에 딸린 헛간 안 / 밤


어둠 속 애타는 시후의 눈빛. 눈에 눈물 그렁인 채... 틈(헛간 나무살) 밖 주시하고 있는데

그 틈 사이로 종복들에 의해, 몰매 맞는 쇠돌 모습 보인다.


쇠돌 : 나리, 쇤네가 잘못했구만이라. 기양 묻고 오께라.. 아이고메, 묻응당께요.

변식 : (사악하게 웃으며) 그래? (눈짓주면 종복들 매질 멈춘다.)

쇠돌 : (일어나다 악- 하고 팔 잡는다. 덜렁거리는)

종복 : (쇠돌 팔 살피더니 헉 놀래며) 파, 팔 한쪽이 빠졌습니다.

변식 : (혀 끌끌 차며) 이런, 그럼 담을 못 넘을 거 아니냐.

쇠돌 : 아이고.. 내 팔.. 이제 병신 되부렀네 아이고...아이고.. (주섬주섬 일어나며) 그, 그럼 쇤네는 이만... 제 아들네미도 좀...

변식 : (어림없다는) 그냥 돌려보낼 순 없지. 이미 그 문서내용을 봐 버렸는데, 딴 데 가 불면 내가 곤란해질 거 아니냐.

쇠돌 : 아, 아니여라. 말 안하께라. 기양 주둥일 확 꿰매고 다니께라.


변식, 눈짓하면 종복들 쇠돌이를 다시 붙잡고, 그중 종복 한 명이 몽둥이를 높이 쳐든다.

헉 놀라는 쇠돌 부들부들 떨고.

그때 헛간 안에서 시후 소리 지른다.


시후 : 안돼요. 주, 죽이지 마세요.. 제, 제가 할게요...



#58. 변식 집 / 사랑채 안 / 밤


변식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시후. 애절한 눈빛으로 주절주절 떠든다.


시후 : 도둑질 다닐 때 늘 쇤넬..데리고 다녔어요. 쇤네가 담을 타고 들어가 그 집 문을 따주곤 하거든요. 그럼 아부지가 털구요.

         제 별명이 남문 날다람쥐라니까요.

변식 : (혹해서) 그래? 네 눔이 그리 담을 잘 탄단 말이지?

시후 : 그, 그러믄요. 쇤네가 묻고 오겠습니다. 허니 제발 울 아부지만 살려주십쇼. 예?



#59. 이원호의 집 앞 / 담장 / 밤


종복과 함께 담 앞에 서있는 시후. 두리번거리며 종복 품에서 서찰을 꺼내 시후에게 건넨다.

서찰을 받아 품에 넣고 담장 바라보는 시후. 까마득히 높아 보이는 담장. 시후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 내쉰다.


종복 : 뭐해? 얼른 넘지 않고! (두리번거리며) 시간 없어.

시후 : (어쩌지 하고 눈치 살피다 얼굴이 환해진다) 저기로 들어가는 게 더 빠르겠어요.


담장 끝 쪽 어린아이 한명 겨우 들어 갈만한 개구멍 보인다.



#60. 이원호의 집. 사랑채 마당 / 밤


대들보 밑, 흙을 긁어 퍼내는 손. 얼굴과 몸이 땀으로 흥건한 채 두려움 가득한 표정의 시후다.


변식e : 혹여 들키면, 그 즉시, 네 애비는 죽은 목숨이다. 네 손에 네 애비 목숨이 달려있음을 명심 커라. 알겠느냐?


시후, 품에서 문서 꺼내 본다. 피로 쓰여진 글씨.

시후, 문서를 묻은 후 흙을 후다닥 덮고, 잠들어 있는 개 옆을 살금살금 지난다.

담장 아래, 개구멍에 막 몸을 넣는 시후, 그때 누군가 시후의 등을 톡톡 두드린다.

놀라, 고개 드는 시후, 순간 연이와 눈 딱 마주친다.


연이 : 너 누구야? 여기서 뭐해?


당황한 시후, 개구멍으로 후다닥- 빠져 나가고, 놀래 보는 연이.



#61. 변식 집 사랑채 마당 / 밤


변식 마당에 서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종복e : (급히 들어오며) 대감마님!

변식 : 어찌 됐느냐?

종복 : 성공했사옵니다.

변식 : (안도의 한숨) 아이는?

종복 : 헛간에, 지 애비에게 두었습니다.

변식 : (잠시 생각하다) 모두 잠들면 두 놈 다 처치하거라.

종복 : 예?

변식 : 어린 아이 아니냐. 입막음이 된다 생각하느냐? 떠들고 다니면 일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걸 모르겠느냐?


엿듣는 막쇠, 놀란 얼굴.



#62. 쇠돌네 초옥 마당 / 밤


막쇠 미친 듯이 뛰어 들어온다. 헉헉 거리며.


막쇠 : 제수씨! 제수씨!

단이 : (잠이 덜 깬 듯... 문 열면) 아니, 이 밤중에 어쩐 일이세요.

막쇠 : 일났수! 일! 쇠돌이랑 차돌이가 죽게 생겼소.



#63. 거리 / 밤


미친 듯 뛰어가는 단이.



#64. 변식 집 / 헛간 / 밤


쇠돌 품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시후. 그런 시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쇠돌. 가슴 아픈...



#65. 변식 사랑채 마당 / 밤


횃불 든 막쇠 안절부절 서 있고, 단이 사랑채 마당에 무릎 꿇고 앉아있다.

변식 사랑채 문 열고 앉아있다. 사랑채 방문에 발이 쳐져있고.


단이 :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엎드려) 살려주십시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변식 : (짜증스런 얼굴로) 뭐냐? 그 도둑놈 여편네냐?

단이 : (고개 들면 어찌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있다.)

변식 : 가만... (헉 놀랜다) 너, 너는? (발 올리는)

단이 : (보고 놀라는) 대, 대감마님...

변식 : (기막힌) 그 아이가 네 아들이었더냐?

단이 : (부복한다) 대감마님. 제발 제 서방과 자식 놈을...

변식 : (혀 끌끌 찬다) 어쩌다 도둑놈 마누라가 됐다더냐? 박복한 년!

         (짐짓 헛기침하며) 니 서방이 우리 집 담을 넘다 들켰느니라. 허니 소란 피우지 말고 돌아가거라.

단이 : 대감마님, 대감마님...

변식 : (혀 끌끌 차며 사랑채 문 막 닫으려는데)

단이 : 나리, 나리... (당황해하다) 그 아이!

변식 : (보면)

단이 : (이 악물며) 정녕 누군지 모르시겠습니까?



#66. 변식 집 / 헛간 / 밤


문이 삐걱 열리는 소리. 설핏 잠이 들었다 깨는 쇠돌.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인영. 몽둥이를 확 쳐든다.

몽둥이를 든 인영 쇠돌 눈에 비치고, 쇠돌 본능적으로 잠들어 있는 시후를 끌어안고 몸을 홱- 돌린다.



#67. 변식 집 / 큰 사랑채 마당 / 밤


변식 : 뭐, 뭐라? 다시 말해 보거라.

단이 : 잊으셨습니까? 10 년 전, 그 날 밤 일...

변식 : (놀라며) 그, 그럼... 그때?

단이 : (노려본다) 자식을 죽이시겠습니까?

변식 :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68. 회상 - 변식의 집 큰 사랑채 / 밤


단이 큰 절 올린다. 비에 젖은 지라, 젖은 치마저고리 사이로 몸 실루엣이 비치고 침 꼴깍 삼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는 변식.

단이, 갑자기 저고리 벗는다.


변식 : (놀라며) 뭐, 뭐하는 게냐?

단이 : 제 주인 댁에 오셨을 때, 쇤네를 탐하지 않으셨습니까?

변식 : 뭐?

단이 : 저희 도련님께 쇤네를 첩으로 달라셨지않습니까?

변식 : (당황하며) 그, 그게...

단이 : 허면, 쇤네를 첩으로 삼아주십시오. 쇤네의 살꽃을 바치겠습니다.


단이, 일어나더니 이번엔 치마를 벗는다. 망설이던 변식 에라 모르겠다 싶어, 단이를 바닥에 눕힌다.

바닥에 누워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단이. 단이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단이e : 도련님, 보이십니까? 당신의 아이를 뱃속에 품고, 제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지...



#69. 쇠돌네 초옥 방 안 / 낮


단이, 시후에게 새 옷을 입힌다. 옷고름까지 세심하게 매주는 단이. 눈빛은 냉정하다.

시후 잔뜩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다.


시후 : 안 갈래요. 나 안 갈 거요. 엄니랑 아부지랑 여기서 살래요.


갑자기 시후 뺨을 쫙 갈기는 단이.

시후 그 충격에 뒤로 쿵 떨어지고 놀라는 시후의 표정.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른다.

시후 놀래 일어나면 단이 시후 붙잡고 독기어린 눈빛.


단이 : 내 말 명심 커라. 너는 양반의 피를 이어 받았어.

시후 : (잔뜩 겁먹은) 정말 제가 그 어르신의 아들이예요?

단이 : (눈물 그렁이며) 그래, 넌 변식 대감의 아들이다. 허니 앞으로 천한 것은 보지도 말고, 상대도 말거라.

         길거리에서 이 애미와 마주치더라도 절대 아는 척 말거라.

시후 : 어머니...

단이 : 귀하게 자라라. 꼭 귀히 자라야 한다. 알겠느냐?

시후 : (눈물 그렁이는)



#70. 쇠돌네 집 인근 길가 / 낮


단이, 시후 손 걷고 걸어간다. 걸어가는 시후 자꾸 뒤돌아본다. 쇠돌을 찾는 눈빛이다.


단이 : (싸늘하게) 네가 친 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다신 보고 싶지 않다는 구나.


실망하는 시후. 그래도 자꾸만 자꾸만 뒤돌아본다.



#71. 마을 입구 / 낮


나무 뒤에 숨어 단이와 시후 가는 뒷모습 보고있는 쇠돌.


쇠돌 : (한 손으로 입 틀어막고 끅끅거리며) 그려, 잘된 겨. 도적놈 애비랑 사느니, 그 집서 귀혀니 자라야제. 아암~



#72. 저자거리 약전


의원 쇠돌 팔 끼우고. 인상 팍- 쓰는 쇠돌.


의원 : 됐네. 끼였어. 함 흔들어 보게.

쇠돌 : (힘없이 팔 덜렁덜렁 흔들어본다)

의원 : 어떤가?

쇠돌 : 암시랑도 안구만이라. 인자 담 타는 데 암 문제 없겠어라.

의원 : 담? 무슨 담?



#73. 이원호의 집 외경 / 안채 / 낮


한씨부인과 이원호, 연이, 겸이 다과상 앞에 앉아있다.


한씨부인 : (연이 머리 쓰다듬으며) 연이가 많이 놀랐겠구나.

연이 : 아닙니다. 어머니.

한씨부인 : 헌데 집안에 없어진 물건도 없고...대체 왜 들어왔을까요?

이원호 : 요즘 길거리에 비럭질하는 아이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더이다. 주린 배를 채우려, 들어오지 않았나 싶소.

한씨부인 : 예. 아범에게 일단 구멍은 메우라 일러뒀습니다.

이원호 : 잘 하셨습니다.

겸이 : 한번만 더 들어오면 그 도적놈 소자가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아버님. 소자 검술 좀 가르쳐 주십시오.

이원호 : 검술?

겸이 : 예. 그래야 도적놈에게서 내 가족을 지킬 수 있지요.



#74. 이원호의 집 사랑채 마당 / 낮


매화나무 아래, 이원호와 겸이 목검을 들고 마주 보고 서 있다.

마루에는 한씨부인과 연이 나란히 앉아 부자의 대련 구경 중이다.

겸이, 목검을 바짝 잡으며 이얏~ 하고 이원호에게 덤벼든다. 그러나 이원호 손쉽게 피하며 목검으로 겸이 머리를 툭 친다.

아파서 울먹거리는 겸이.


이원호 : 뚝! 그래 가지고서야 어찌 도적놈을 잡겠다는 것이야.. 어찌 가족을 지키겠다는 것이야...


겸이, 눈빛에 금세 오기가 서리고. 다시 이얏 - 기압 소리와 함께 이원호에게 덤벼드는데,

다시 슬쩍 피하며 겸이의 머리, 배, 다리. 여기저기를 계속 공격하는 이원호.

계속 목검에 얻어맞는 겸이. 순간 겸이 손에서 목검 툭 떨어지고.


이원호 : 검 앞에서 방심은 곧 죽음이니라.

겸이:  (목검 집어 들다 한씨부인 쪽 보며 놀란 듯) 어머니?


이원호, 한씨부인 쪽 돌아보면, 순간 이원호의 목에 목검을 들이대는 겸이. 


겸이 : (씩 웃으며) 진검이었다면 이미 벤 것입니다.

이원호 : (기막히다) 이런 비겁한 놈!

겸이 : 검 앞에서 방심은 곧 죽음이니라. 좀 전에 그리 배웠습니다.

이원호 : 그래. 인정하마. 애비가 졌다.


이원호, 항복 선언처럼 두 손 들면, 겸이 좋아라 팔짝 거린다.


이원호 : (진지하게) 겸아, 너는 검이 무어라 생각하느냐?

겸이 : 예?

이원호 : 검에는 두 가지 검이 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살인검, 반대로 사람을 살리기 위한 활인검이 그것이다.

겸이 : (고개 끄덕인다)

이원호 : 나는 겸이 네가 평생, 검을 잡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허나 만에 하나 검을 잡을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세상을 위한 검, 사람을 살리기 위한 활인검이어야만 한다. 알겠느냐?

겸이 : 예, 아버님.

한씨부인 : (일어나 다가오며) 어느새 우리 아들이 다 컸네. 이제 우리 겸이 믿고 발 쭉 뻗고 잘 수 있겠는 걸.


한씨부인, 겸일 꼭 안아준다.

그런 겸이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원호. 연이 머리 쓰다듬으며 문득 매화 올려다본다.


이원호 : 부인, 오늘따라 유난히 매화가 아름다워 보이지 않소? 내 평생 다시 못 볼 장관인 듯싶은 묘한 기분이 드는구려.


원호의 말에, 한씨부인과 겸이, 연이도 매화 본다. 눈부시게 흰 매화꽃들, 처연하리만큼 아름답다.

<시간경과>

어느새 달빛 아래 흐드러진 매화풍경.. 적막함이 흐르고...

휙- 담장을 날아오르듯 넘어오는 3인의 검객들.



#75. 이원호의 집 / 사랑채 방 안 / 밤


피곤한 지,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는 겸이.

겸이를 안아들고 나가려고 막 문 앞에 서는 이원호. 그때 육백이 마당에서 컹컹- 짖기 시작한다.

겸이를 안은 채, 문틈 사이로 마당을 내다보는데 문 밖에서는 육백이에게 검을 휘두르는 검객의 모습 보인다.

놀래는 이원호. 이윽고 주위가 다시 고요해진다.

방 안을 둘러보던 이원호, 궤짝에 시선 멈춘다. 급히 궤짝 뚜껑 열어 겸이를 안아 넣는 이원호.


겸이 : (눈 부비며 일어난다) 아버님.

이원호 : (겸이 어깨 꽉 붙잡으며) 겸아. 이 안에 꼼짝 말고 있어야 한다. 숨소리도 내지 말거라.

겸이 :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아버님...

이원호 : (옷에 달려있는 범발톱 노리개 고리 툭 떼어 내주며) 이건 악귀를 쫓는 부적과 같은 거다. 널 지켜 줄 것이야.

            (다급하게) 겸아,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넌 꼭 살아야 한다.

겸이 : (잔뜩 겁먹은) 아버님.

이원호 : 약조해. 어서! 꼭 살아 준다고..!

겸이 : 예..아버님.


이원호 겸이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윽고 궤짝 문을 닫고, 자물쇠로 잠근다.

겸이 아버지, 아버지... 부르지만... 이원호 벽에 걸려있는 검 집는다.



#76. 사랑채 마당 / 밤


사랑채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검객들.

벌컥 열리는 사랑채 문. 이원호가 선다.

일제히 검을 뽑아드는 3인의 검객들. 이원호를 향해 달려든다.

유난히 흰 달빛... 새하얀 매화꽃잎들.. 격렬하게 부딪히는 금속 소리.

허공에서 검들이 맞부딪히며, 매화 꽃잎들이 다시 눈처럼 흩날린다.

순간 매서운 봄바람이 휘잉 몰아치더니 이윽고 사랑채 문이 활짝 열리고 만다. 그 문 사이로 보이는 궤짝.



#77. 궤짝 안 / 밤


공포 서린 겸이의 눈빛. 궤짝 구멍 사이로 검객들과 싸우는 이원호의 모습 보인다.

- 제 1부 끝 -

























첨부파일 일지매1회.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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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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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황예미 | 작성시간 16.01.22 다운로드가 안되네..ㅠㅠ
  • 답댓글 작성자수다쟁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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