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구두] 04 - 서로 다른 길 (下)
1. S# 회사로비.
김필중 : 멈춰!
일갈에 일순 모든 동작이 멈춰진 상태로 모두의 시선 김필중을 향한다.
재혁, 숨을 몰아쉬며 김필중을 돌아본다.
김필중, 천천히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서면 태희, 두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최대한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다 조용해지자 천천히 팔을 내리며 얼굴을 든다. 헝클어진 머리, 상처로 가득한 얼굴, 경계심으로 가득한 시선..
김필중,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본다.
태희, 천천히 일어서며 김필중을 보면.
김필중 : 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니가 태희냐?
태희 : (멍하니 보면)
재혁 태희 웃옷에서 현호의 지갑을 꺼내 사진을 펼쳐 김필중 앞에 내민다.
김필중, 받아서 보면 김필중과 현호가 같이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김필중, 그 사진을 내려다보더니 얼핏 눈가에 물기가 어린다. 다시 고개를 들어 손녀딸을 보면.
태희, 표정 없이 할아버지를 본다.
김필중, 천천히 다가가 태희를 보더니 손을 들어 태희를 꼭 끌어안는다.
재혁, 뒷쪽에 서서 바라보면.
김필중 : 잘 왔다. 잘..왔어.
태희 : (표정 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김필중 : 그래.
태희 : 동생을 잃어버렸어요.
김필중 : 그래 안다. 다 알아.
태희 : (천천히 몸을 뒤로 빼며 할아버지를 본다. 보며) 아빠하구 약속했어요. 아빠 대신 내가 윤희를 잘 보살피겠다구요.
근데 제가 손을 놔버렸어요. 여기저기 다 찾으러 다녔지만 아무데도 없었어요. 어디로 가버렸는 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김필중 : (어린것이 했을 고생을 생각하며 마음 아프게 보면)
태희 : 제 동생.. 찾아주세요. 찾아주실 수 있죠?
김필중 : 그래. 찾아주마. 할애비가 꼭 찾아주마. (그러면서 다시 꼭 안아주며) 이젠 됐어. 걱정할거 없어. 할애비한테 왔으니 됐다.
(천천히 다독이면)
그제야 표정 없는 얼굴에 툭.. 눈물이 떨어진다. 스르르 감기는 태희의 눈.. 순간 힘없이 쓰러진다.
김필중 : 태희야! (놀라서 보면)
2. S# 병원전경.
3. S# 병원복도.
창가에 서 있는 재혁, 고개를 돌려 보면 수행원들이 복도와 병실 주위를 지켜서고 있다.
재혁, 말없이 쳐다보는데서.
4. S# 병실 안.
깨끗하고 넓고 청결한 내부. 볕이 잘 드는 침대위엔 깨끗한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태희가 누워 링거를 꽂은 채 잠들어있다.
그 옆에 앉아 손녀딸을 바라보고 있는 김필중. 그 뒤에서.
서울의사 : 심한 과로에다 영양실좁니다. 거기다 군데군데 타박상의 흔적도 보이구요.
김필중 : ...
서울의사 : 당분간 충분한 휴식과 안정이 필요합니다.
진상만 :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서울의사 : (밖으로 나가면)
김필중 : (태희를 물끄러미 보며) 어린것이.. 고생이 너무 많았어.
진상만 : (누워있는 태희로 시선을 옮기면)
태희 : 아빠... (천천히 깨어난다)
김필중 : (얼른 쳐다보며) 얘야.
태희 : (눈을 뜨고 김필중을 본다. 잠시 상황파악이 안된 듯 보면)
김필중 : 할애비다. 정신이 좀 드니?
태희 : (그제야 모든 것을 기억해낸 듯. 이내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다)
진상만 : 같이 온 남자아일 찾나 봅니다.
김필중 : (잠시 태희를 보더니) 들여보내.
진상만 : 네 회장님. (밖으로 나가면)
태희 : (천천히 일어선다)
김필중 : 왜. 더 누워있지 않고.
태희 : 불편해요. 나가고 싶어요.
김필중 : 의사 말이 안정을 해야 된다 드라. 누워있어.
태희 : (본다. 보더니) 전 병원이 싫어요. 병원냄새에 나쁜 기억이 너무 많아요.
김필중 : (보면)
태희 : 아빠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걸 알았을 때두 그랬구, 아빠 돌아가셨다는 걸 확인하러 갔을 때두.. 이 냄새가 났어요.
이 냄새만 맡으면 자꾸 아빠 죽은 모습이 떠올라서 그래서 너무 싫어요.
김필중 : (그런 태희를 잠시 보더니) 알았다. 그럼 집으로 옮기도록 하자. (일어서는데)
태희 : 한 가지 물어볼게 있어요.
김필중 : (돌아보면)
태희 : 정말루 제하그룹 회장님이세요? 아까 큰 빌딩두 정말 할아버지 건가요? 그렇게 부자.. 맞아요?
김필중 : 그래. 맞다.
태희 : (본다. 잠시 표정 없이 보더니) 아니길 바랬어요.
김필중 : ?
태희 : 아빤.. 돈이 없어서 치료도 한번 제대로 못 받으셨어요. 그래서 더 많이 힘들고 아파하셨죠.
(김필중을 보며) 할아버지가 이렇게까지 부잔 줄.. 몰랐어요.
김필중 : ...! (말을 못한 채 그저 태희를 보는데)
그 때 안으로 들어오는 재혁,
재혁 : 태희야. (다가서며) 괜찮니?
태희 : (재혁을 본다. 그제야 처음으로 짐짓 미소를 짓는다)
재혁을 보고서야 안심하는 태희.
김필중, 그런 태희를 착찹한 기분으로 보더니 천천히 돌아서서 병실을 나온다.
재혁, 그런 김필중의 뒷모습으로 시선을 돌린다. 시선에서.
5. S# 평창동 집 전경.
6. S# 거실.
예산댁 : (현관문을 열어주며) 회장님 오셨습니까?
안으로 들어서는 김필중과 태희. 그 뒤로 진상만과 재혁.
김필중 : 예산댁. 현호 방 치워놨지?
예산댁 : 네 회장님.
김필중 : (태희를 보며) 니 방은 이층이다. 옛날 느이 아빠가 쓰던 방이지. 올라가 좀 쉬거라.
태희 : 네.
예산댁 : (앞장서서 이층으로 올라간다)
태희 : (따라 올라가면)
김필중 : (흘끗 재혁일 보더니) 진실장. 자넨 나 좀 잠깐 봐.
진상만 : 네 회장님. (따라 들어가면)
혼자 남겨진 재혁, 김필중이 들어간 쪽을 보면.
7. S# 김필중의 방안.
김필중 : (편안한 스웨터로 갈아입으며) 밖에 있는 아이 말야. 이름이..
진상만 : 장재혁입니다. 회장님.
김필중 : 얘기 좀 나눠봤나?
진상만 : 아뇨. 경황이 없어서.. 뭐 궁금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김필중 : (스웨터 단추를 다 채우더니) 내가 좀 보잔다구 해. 서재에서 기다리지. (먼저 밖으로 나간다)
진상만 : (보면)
8. S# 거실.
벌쭘히 선 채 집안을 둘러보고 있는 재혁. 한쪽에 그려져 있는 김필중의 초상화가 눈에 들어온다.
잠시 표정 없이 바라보는데.
진상만 : 어이. 얘야.
재혁 : (돌아보면)
진상만 : 회장님이 찾으신다.
재혁 : (본다)
9. S# 서재 안.
똑똑똑.
김필중 : (책상 앞에 앉으며) 들어와.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진상만. 그 뒤로 들어서는 재혁, 멈춰 서서 김필중을 보면.
김필중 : 자넨 됐어. 그만 회사에 나가봐.
진상만 : 네? (보더니)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재혁을 한번 본 뒤 문을 닫는다)
재혁, 문 앞에 선 채 김필중을 본다.
그러나 김필중 재혁에겐 시선한번 주지 않은 채 서류를 들춘다.
재혁 : ... (본다. 시선에서)
10. S# 거실.
밖으로 나오는 진상만, 왠지 궁금해서 서재 쪽을 돌아보는데
이층에서 내려오는 예산댁.
예산댁 : 가시게요?
진상만 : 네.
예산댁 : 그나저나 태희 양은 어쩜 저렇게 돌아가신 현호도련님을 쏙 빼닮았대요? 얼굴을 보니 고생이 많았던 모양인데..
이제라두 할아버지 찾아왔으니 너무 다행이예요. 그렇죠?
진상만 : 글쎄요.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두고 봐야 알겠죠. (그러면서 가면)
예산댁 : ? (본다)
11. S# 태희의 방.
방안을 둘러보는 태희. 그러다 아빠의 것으로 보이는 책상 앞에 앉아본다.
태희, 가방 안에서 지갑을 꺼내 그 안에 들어있는 가족사진을 꺼낸다.
윤희를 임신하고 있는 만삭인 엄마, 아빠.. 그리고 어린 태희.
태희, 그 사진을 책상 한쪽에 기대놓고 본다. 시선에서.
12. S# 서재.
벌을 서고 있는 듯 계속 그 자리에 서서 김필중을 보는 재혁.
김필중, 여전히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재혁 : (용기를 낸다) 장재혁 입니다.
김필중 : ...
재혁 : 올해 열여섯입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구.. 지금은 혼자 일하면서 공부하는 고학생입니다.
김필중 : (흘끗 본다. 천천히 돋보기를 벗으며 보더니) 가까이 와.
재혁 : (두어 걸음 다가선다. 보면)
김필중 : 잘 들어라 얘야. 난 니가 누구고 어떤 형편에 처했는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다.
내가 알고 싶은 건 한가지뿐이야. 왜 태희를 도와주게 됐느냐.
(보며) 혹시. 내가 누구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냐?
재혁 : (긴장한다. 짐짓 흔들리는 시선으로 보면)
김필중 : (꿰뚫는 시선으로 재혁을 응시한다)
수초의 침묵이 흐른 뒤 드디어.
재혁 : 알고 있었습니다. 태희가 찾는 할아버지가 회장님이라는 거.. 처음부터 알고 도와준겁니다.
김필중 : (생각보다 솔직하군.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렇다면 뭔가.. 댓가를 바라고 한 일이겠구나. 그렇지?
재혁 : (보면)
김필중 : 괜찮아. 말해봐. 손녀딸을 찾아줬으니 나도 응분의 보상을 해야지. 원하는 게 뭐냐?
재혁 : (본다.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저를 사주십쇼.
김필중 : (멈칫.. 의외의 대답에 재혁을 본다)
재혁 : 저를 사주십쇼. 회장님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필중 : (잠시 보더니 옅은 웃음) 재밌구나. 헌데 이를 어쩐다? 나는 물건을 살 땐 아주 까다로운 사람이야.
이윤이 나지 않는 곳엔 절대 돈을 쓰지 않지. 지난 35년간 사업을 해온 내 경영철학이다.
재혁 : 돈만 가졌다고 사업에 성공하는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결국 돈도 기업도 사람이 움직이는 거라구요.
김필중 : (보면)
재혁 : 회장님께서 저를 사신다면.. 저는 그 두 가지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이겠습니다.
김필중 : 담보는 무어냐.
재혁 : 네? (뜻밖에 질문에 보면)
김필중 : 그렇게 공수표를 날릴 적엔 적어도 담보 하나쯤은 걸어둬야지.
재혁 : (순간 당황하다가 본다. 보며) 저를.. 제 이름을 걸겠습니다.
김필중 : 니 이름을 걸겠다?
재혁 :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할아버지와 제 이름을 걸고 제가 한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김필중 : (본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잠시 바라보더니) 됐다. 그만 나가봐.
김필중, 돋보기를 도로 쓰며 서류를 들여다본다. 재혁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재혁, 그런 김필중을 보더니 천천히 돌아서서 밖으로 나간다.
문이 닫히면. 서류를 들여다보던 김필중, 입가에 엷게 번지는 웃음. 뜻밖에 재밌는 녀석을 만났다.
13. S# 거실.
밖으로 나온 재혁, 소리 나지 않게 큰 숨을 몰아쉰다. 역시 녹록치 않은 거물이라는 느낌.
이마에 난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아내 서재 쪽을 돌아본다. 그 위로.
양순경E : 그게 무슨 소리여?
14. S# 경찰서 안.
양순경, 고개를 돌려 본다.
양순경 : 다시 한 번 자세히 얘기해봐. 무슨 소린지?
경찰2 : 태희 양이 잃어버렸다는 아이 말입니다. 동생아이요.
양순경 : 김윤희. 그 아이가 왜?
경찰2 : 사오일쯤 전인가. 시장 통 근처에서 트럭하나가 여자애를 쳤답니다.
태희 양이 동생을 잃어버린 데서 얼마 안 떨어진 곳이었어요.
경찰1 : ? (업무를 보다가 이쪽을 쳐다보는 위로)
양순경 : 그런데 병원에는 그 날 교통사고로 들어온 여자앤 없었다?
경찰2 : 혹시나 싶어서 다른 인근 병원도 알아 봤는데 없었습니다.
나이나 인상착의로 봐서는 태희가 잃어버렸다는 동생하구 비슷한데 말이니다.
양순경 : 혹시 목격자 중에 트럭 남바 본 사람 있는지 확인 좀 해볼텨?
경찰2 : 알겠습니다. (일어서는데)
경찰1 : 어이. 이봐. 사고 낸 트럭 기종이 뭐라 그러든가?
경찰2 : (? 보면)
15. S# 국밥집 앞.
국밥집 앞에 다가와 멈춰서는 경트럭. 내려서는 황국도 바지춤을 올리다가 사이드 밀러에 자기 얼굴을 한번 비춰본다.
그러다 밀러에 뭔가 묻은 듯 하! 입김을 불어 소매 끝으로 닦아낸다.
16. S# 국밥집 안.
뽕짝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고. 오산댁, 파를 채 썰면서 콧소리로 따라 부르고 있다.
손님1 : 아줌마 여기 국밥 멀었어요?
오산댁 : 금방 가요! 금방! 쬠만 기다리세요! (그러더니 혼잣말로 중얼중얼) 즈이 집에 들어가면 찍소리도 못하는 것들이
남의 밥 사먹을 땐 꼭 티를 낸다니까는.
그 때 안으로 들어서는 황국도.
오산댁 : (반갑게) 왔어?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 공사 언제부터 다시 시작한대? 응?
황국도 : 공사는 개뿔 무신 놈에 공사. 부도나서 완전히 박살나 부렀다는디.
오산댁 : 그럼 우린? 단체 밥 손님 외상값은?
황국도 : 부도나서 공사 중단 됐는디 인부들이라고 남아 있겄어? 그 사람들도 두 달 치나 월급 못 받고 개털 되어 분졌다드만.
오산댁 : 그럼 우리 밥값 또 다 띵기는 거야? 어? 아이구 미쳐! 미쳐! 허구헌 날 장사두 공치구 앉았는데
외상값까지 다 날리면 우리 뭐 먹구 살라는 거야 대체?
황국도 : 그걸 왜 나한테 따지구 지랄여. 아이고 골치 아퍼. 말 시키지 마. 거 소주하고 국물이나 쬐까 들여오드라고.
(그러면서 안으로 들어가면)
오산댁 : (흘겨보더니) 베기 싫어. 베기 싫어. 그저 먹구 사는 얘기만 나오면 쏙 피해 갈라 그러지 맨날.
손님1 : 아줌마! 거 국밥 하나 마는데 왠 시간이 그렇게 걸려?
오산댁 : 가져가요! 가져가! (신경질적으로 내뱉더니 투가리에 국밥을 말며) 뱃속이 그지 새끼가 들었나 원..
그 때 뒷문에서 양동이를 힘겹게 들고 들어오는 윤희. 한쪽에 놓으면
오산댁, 알아채지 못한 채 국밥 그릇과 반찬을 텅텅 소리 나게 쟁반에 올려놓으며 계속,
오산댁 : 지지리 복두 없는 년. 하기사 부모 복 없는 년이 무슨 서방 복을 바라구 살어. 에이! 지지리 복두 없는 년.
(하면서 음식담긴 쟁반을 들고 돌아서는데)
그만 윤희가 갖다놓은 양동이에 걸려 넘어진다.
와장창!!!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는 국밥그릇들! 음식이며 그릇 파편들이 여기저기 튀고.
자리에서 일어나 쳐다보는 손님들. 놀라서 쳐다보는 윤희.
오산댁 : (까무라치듯) 엄마야! 아이구 나 죽네. 아이구 엉덩이야!!
황국도 : (방문 열고 내다보더니) 뭔 짓이랴? 왜 멀쩡한 맨땅이서 혼자 재주 넘구 난리냐고?
오산댁 : (아픈 표정으로 보다가 냅다) 야!
윤희 : (움찔! 잔뜩 놀래서 쳐다보면)
오산댁 : 너! 일부러 이런 거지?
윤희 : 네?
오산댁 : 너 물 양동이 일부러 여기가 갖다 논 거잖어! 나 걸려서 폭삭 넘어지라구! 아니야?
윤희 : 아까 아줌마가 여기다 갖다 노라 그랬는데요.
오산댁 : (본다. 벌떡 일어나더니 윤희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이놈에 기집애야! 내가 언제 여따 갖다 노랬어? 저따 갖다 노랬지!
(계속 쥐어 박어 가며) 맨날 공밥에 공잠 얻어 자면서, 그래 그깟 물 양동이 하나 떠오랬다구 금새 앙심품고 지랄이냐,
이 나쁜 기집애야?
윤희 :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꾹 참으면)
황국도 : (윤희를 흘끔 보더니 도로 방문 닫고 들어간다)
오산댁 : 어이구 징그러! 어이구우...! (하다가 이내 아픈 듯 찡그리며) 엉덩이야. 엉덩이뼈가 쪼개졌나 왜 이리 아퍼. 아이구우..
윤희 : 많이 아파요? 가서 파스 사올까요?
오산댁 : (내려다본다. 밉살스러워 죽겠는 표정으로 보더니)
17. S# 국밥집 앞.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내밀리는 윤희. 외투도 없이 내밀린 채 돌아보면.
오산댁 : 들어오랄 때까지 거깄어! (쿵! 문을 닫아버린다)
윤희 : (보면)
오산댁 : (다시 문 열고 보며) 딴 데 가지말구 이 앞에 있어! 알았어? (그러더니 다시 쿵! 닫아버린다)
윤희 : (닫힌 문을 빤히 보다가 순간 킥 터지는 웃음)
승희 : 야!
윤희 : (돌아보면)
승희 : (책가방 메고 오다가 보며) 너 미쳤냐? 거기서 왜 혼자 실실 웃구 난리야?
윤희 : 아줌마가 물 양동이에 걸려 넘어졌거든. 근데 빤스 보였다? 빨강색 빤스야. 빨강색. 되게 웃기지?
승희 : 뭐가 웃겨? 우리 엄마 빤스 원래 다 야해. (그러다가) 이게 근데.. 너 누가 함부로 우리 엄마 빤스 들여다보랬어? 어?
(하고 툭 밀치는데)
경찰1E : 어허!
승희 : (멈칫.. 돌아본다)
다가서는 경찰1.
승희 : (놀라서 얼른 주먹을 내리고 보면)
윤희 : (반갑게) 아저씨!
경찰1 : (승희 보며) 사이좋게 놀아야지. 친구 때리구 그러면 나쁜 사람이야. 알어?
승희 : (뾰로통해지더니 홱 국밥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리고 만다)
경찰1 : (픽 웃음. 윤희 키에 맞춰 구부려 앉으며) 잘 있었니?
윤희 : (밝게) 네.
경찰1 : 아까 그애가 너 많이 괴롭히니?
윤희 : 아니예요. 사실은 나한테 꼼짝두 못하면서 저래요. 내가 숙제 안 해준다 그러면 금방 벌벌 떨거든요.
불쌍해서 가끔 그냥 내버려두는 거예요.
경찰1 : 그래애? (본다.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근데 너. 이마에 상처 이거 언제 난 거야?
18. S# 국밥집 안.
오산댁 : (깨진 그릇과 음식파편들을 치우다 돌아본다) 뭐? 경찰?
홱! 방문 열리면서 황국도 얼굴을 내민다.
황국도 : 경찰? 경찰이 또 왔다구?
승희 : 응. 지금 밖에서 선우랑 얘기하구 있어.
오산댁 : (문 쪽을 본다. 보더니 들고 있던 빗자루를 내던지고 뛰어나간다)
황국도 : (긴장해서 보면)
19. S# 국밥집 앞.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오산댁. 경찰1을 보더니 몰랐다는 듯 과장되게.
오산댁 : 어머나! 안녕하세요? 또 오셨네요.
경찰1 : (본다. 일어서며) 안녕하십니다.
오산댁 : (어정쩡하게 인사 받더니 윤희 보며) 선우야! 얘가 또 외투도 없이 밖에 나왔네. 그러다 감기 들며 어쩔라구. 언능 들어가.
(하면서 억지로 집안으로 밀어 넣으면)
윤희 : (경찰1을 돌아보며)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
경찰1 : 그래.
오산댁 : (윤희를 밀어 넣고 문을 닫는다) 근데.. 어쩐 일이시래요?
경찰1 : 없어진 여자아이를 찾고 있습니다.
오산댁 : 없어진.. 아이요? 누가 실종됐나요? (시치미)
경찰1 : 길을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중입니다. 얼마 전 트럭에 치인 여자아이를 봤다는 신고가 접수 되서요.
근데 병원에 알아봤더니 교통사고로 들어온 여자아이가 없다는 겁니다.
오산댁 : (순간 핼쓱해져서 보더니 얼른 감정수습하며) 어머나 그러면.. 뺑소닌가 보죠?
경찰1 : 유기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산댁 : 유.. 유기요?
경찰1 : 다친 아이를 그대로 버렸거나 방치해두는 행위죠. 유기죄도 뺑소니만큼 무서운 죕니다.
오산댁 : (표정관리하느라 애쓴다)
경찰1 : 근데 이 트럭은 아주머니 댁 겁니까?
오산댁 : 네? 아뇨. 저기 그게.. 아는 사람이 잠깐 맡겨둔 건데요. (억지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으면)
경찰1 : 인심이 좋으신 모양입니다. 아이도 맡아 주시구 트럭도 맡아 주시구.
오산댁 : 아이구 뭐.. 타지에서 장사할라믄 별수 없죠. 인심하면 또 저거든요.
경찰1 : 네에. (그러더니 수첩을 꺼내 차량번호를 적는다)
오산댁 :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경찰1 : 사고 낸 것으로 추정되는 트럭기종의 차량번호는 일단 다 적어두는 겁니다.
오산댁 : (본다. 핏기가신 시선에서)
20. S# 오산댁의 방.
황국도, 입에 문 담배를 툭 떨어뜨린다.
황국도 : 뭐여. 그게 참말이여?
오산댁 : 참말이지 그럼. 이젠 참말루 꼼짝없이 걸렸들게 생겼단 말야. 이젠 어쩌지? 응?
황국도 : 워쩌긴 뭘 어쪄. 짭새들이 눈치까구 조사하러 왔다믄 얘긴 끝난 거지 뭐. 자네두 마음의 준비 단단히 혀.
오산댁 : 나.. 나두? (놀라서 보며) 내가 왜?
황국도 : 왜는. 범행현장에 같이 있었응께 자네두 공범 아닌감.
오산댁 : (핏기가 가셔서 보더니) 안 돼. 나까지 들어가면 우리 승희는? 안 돼, 안 돼.
(금방 경찰이 잡으러 오는 것처럼 안절부절 해서) 어떡하지? 자기야. 어떻게 좀 해봐. 응?
황국도 : 방법은 한 가지 뿐이여.
오산댁 : 뭔데?
황국도 : (심각하게) 삼십육계 줄행랑.
오산댁 : 도망치자구?
황국도 : 현재로선 그것 말고 이 위기를 피해갈 방법이 읎당께. 경찰들 들이닥치기 전에 아예 오늘밤 떠나자고.
오산댁 : 오늘밤? 그럼 가게 보증금은?
황국도 : 월세 못 내서 남은 보증금두 없으면서 뭘 그려.
오산댁 : (그건 그렇다) 선우 그 기집애는 어쩐대? 그냥 여기다 버리구 갈까?
황국도 : 미쳤어? 버리구 가믄 우리가 범인이요 하고 인정하는 거인디.
그렇게 되면 당장 수배당하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얼굴 실리구 그러는 겨. 뭘 알구나 그런 소리혀.
오산댁 : 데리구 가 그럼?
황국도 : 일단 데꾸 가자고. 어디든 아무도 모르는 디로 데꾸 가서 해결하자고.
오산댁 : (비장하게 본다. 시선에서)
21. S# 평창동 집전경.
22. S# 평창동 집.
예산댁, 문을 열어주면 안으로 들어서는 현자와 서준.
예산댁 : 시간 맞춰 오셨네요. 회장님 기다리고 계세요.
현자 : 오빠네 애가 왔다면서요.
예산댁 : 네. 이층에 있어요. 곧 내려올 거예요. (부엌으로 들어가면)
현자 : (이층을 올려다본다)
23. S# 태희의 방.
거울 앞으로 프레임-인 되는 태희. 깨끗하고 예쁜 옷을 입고 있다. 얼굴에 아직도 상처자국이 있지만 많이 좋아진 상태.
그러나 태희의 기분은 전혀 좋아지지 않은 듯 우울해 보인다. 표정에서.
24. S# 식당안.
푸짐하게 차려진 저녁식탁. 상석에 김필중이 앉고 현자와 서준은 나란히 앉아있다.
현자 :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요. 아버지랑 같이 앉아 저녁식사 하는 거.
김필중 : 예산댁. 태희는?
예산댁 : 곧 내려올 겁니다, 회장님.
현자 : 이름이 태희예요?
김필중 : 즈의 아빠 잃구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드라. 따뜻하게 대해줘.
현자 : (웃음) 하는 거 봐서요.
김필중 : (흘끗 보면)
그 때 계단에서 내려와 식당 쪽으로 들어서는 태희가 보인다.
김필중, 돌아본다. 현자와 서준도 태희를 본다.
태희, 들어서다가 현자와 서준을 보고 낯선 표정으로 멈춰서면.
김필중 : 고모다. 니 애비 누이동생이야.
태희 : (현자를 본다) 안녕하세요.
현자 : 반갑다 태희야. 이쪽은 내 아들 윤서준. 너한텐 이종사촌이 되나? 암튼 인사해.
태희 : 안녕.
서준 : (살짝 웃어준다)
김필중 : 앉거라.
태희 : (앉는다. 앉으면서 습관적으로 재혁의 모습을 찾으면)
김필중 : 그 아인 아랫 채에 있을 거다. 식사는 나중에 예산댁이랑 따로 하게 될 거야.
태희 : 네에...
김필중 : 자 들자.
식사를 시작하는 김필중 식구들. 태희도 수저를 들지만 그다지 입맛은 없는 듯.
현자, 태희를 관찰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현자 : 근데 넌 누굴 닮았니? 오빨 닮은 거 같진 않구.. 엄마 쪽이니?
태희 : (본다) 잘 모르겠어요.
현자 : 딸은 아버지 닮아야 잘 산다든데.
태희 : ...
현자 : 하여튼 오빤 대단해. 어쩜 그런 시골구석에 들어가 살 생각을 했을까?
하긴.. 어렸을 때부터 오빤 좀 괴짜였지. 그랬었죠, 아버지?
김필중 : ... (묵묵히 밥만)
태희 : 어떠셨는데요?
현자 : 가난하고 못사는 반 친구들, 툭하면 우르르 끌구 와 자기 옷 나워주구 먹을 거 죄다 퍼주구.
한 번은 지나가던 거지를 두 명이나 끌구 들어와 라면 끓여 준적도 있었어.
엄마하구 나, 백화점 갔다 오다가 단체루 기절할 뻔했지. 우리 식탁에서 글쎄 거지가 밥 먹구 있잖니. (웃음)
태희 : (보면)
현자 : 그런 사람이었어, 우리 현호오빠. 동정심 많구 마음이 여려서 불쌍한 사람들 보면 절대 그냥 못 지나쳤지.
(보며) 니 엄마두 그래서 못 떼버린 거야. 아니? 가난하구 불쌍해서.
김필중 : 식사중이다. 뭔 말이 그렇게 많아.
현자 : 반가워서 그래요 아버지. 조카하고 첫 대면이잖아요. 즈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해주고 싶어서요.
김필중 : 나중에 천천히 해도 늦지 않아.
현자 : 네. (그러다 이내) 근데 넌 얼굴이 어쩌다 그렇게 됐니? 많이 상했다?
태희 : 그냥.. 좀 다쳤어요.
현자 : 어디서?
김필중 : 어허.
현자 : (얼른 입을 다무는데)
태희 : 깡패들이 그랬어요.
그 말에 김필중, 현자, 멈칫해서 쳐다본다.
태희, 전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현자를 보며.
태희 : 깡패들한테 맞아서 이렇게 된 거예요.
현자 : 어머. 너 그런 애들하구두 어울리니?
태희 :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동생을 그 애들 때문에 잃어버렸어요. 복수해주고 싶었지만 잘 안됐어요.
현자 : (어이없이) 너.. 굉장히 무모한 아이구나. 어떻게 그런 위험한 생각을.. (하는데)
태희 : 아버지두 그 상황이었다면.. 저랑 똑같이 했을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깡패들보다 더한 사람이래두 맞서 싸웠을 분이니까. 아버진 그런 분이셨어요.
현자 : (? 보면)
태희 : 엄말 버리지 못한 것두.. 가난하고 불쌍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지켜주고 싶었던 거라구요. (똑바로 보며) 더.. 궁금한 게 있으세요?
김필중 : ...
현자 : (당돌함에 기가 막혀 보면)
25. S# 정원. (저녁)
밖으로 나오는 태희, 답답한 듯 크게 숨을 몰아쉬며 나온다.
그 때 저쪽으로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 재혁이 눈에 들어온다.
재혁이 앉아 있는 옆에 다가와 앉는 태희.
재혁 : (? 돌아보면)
태희 : 뭐해?
재혁 : 그냥 책 좀 보구 있었어. (보며) 넌 왜 나왔어?
태희 : 답답해서.
재혁 : 저녁은 먹었니?
태희 : 응. 근데 엉망이었어. 아빠 가족하고 처음 먹는 식사였는데..
재혁 : (보면)
태희 : (한숨) 우리 윤희.. 지금 어딨을까. 지금 날 원망하구 있으면 어쩌지? 어쩌면.. 내가 자길 버렸다구 생각할지도 몰라.
(순간 글썽해지는 눈물) 아빠가 보구 싶어. 아빠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재혁 : (본다. 보더니 태희 옆으로 옮겨 앉는다)
태희, 재혁을 본다. 그러더니 천천히 재혁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다. 소리 없이 주르르.. 흐르는 눈물.
재혁, 말없이 내려다본다.
26. S# 거실 안.
뒷짐을 진 채 밖의 두 아이를 내다보는 김필중, 뭔가 생각에 잠기는데.
그 때 전화벨이 울린다. 뒤로 예산댁 나와서 수화기를 집어 드는 게 보인다.
예산댁 : 네 평창동입니다. 아, 박기사님이세요?
김필중 : (돌아본다)
예산댁 : 네, 잠시 만요. (수화기를 막으며) 박기사님인데요, 회장님.
김필중 : (다가와 수화기 받는다) 그래 날세. 무슨 일이야. (듣다가) 그래?
27. S# 경찰서 안.
박귀중 : 네. 심증 가는 데가 있답니다. 그래서 태희 양이 직접 내려와 그 아이 얼굴을 확인할 순 없겠느냐구요.
(그러면서 경찰1을 보면)
경찰1 : 빠를수록 좋습니다.
박귀중 : 네 회장님. 빠를수록 좋을 것 같답니다.
28. S# 정원.
쪼르르 밖으로 뛰어나오는 서준.
서준 : 누나! 누나!
태희와 재혁 돌아본다.
서준 : 누나 동생 찾았나 봐요. 지금 박기사 아저씨한테 전화 왔어요.
태희 : ! (벌떡 일어나서 본다)
재혁 : (보면)
29. S# 거실.
뛰어 들어오는 태희와 그 뒤로 따라 들어오는 재혁과 서준.
김필중, 벌써 외투를 걸쳐 입으며 나오고 있는 중.
태희 : (김필중 앞으로 다가서며) 우리 윤희 찾았어요? 찾았대요?
김필중 : 아직 확실친 않댄다. 니가 가서 얼굴을 확인해줘야 할 거 같다.
서산댁 : (이층에서 태희 외투를 가지고 내려오면)
김필중 : 옷 입어라.
서산댁, 태희에게 외투를 입혀준다.
현자, 한쪽에 서서 삐딱한 기분으로 태희를 바라본다.
김필중 : 가자. (앞장선다)
태희 : (따라가는데)
재혁 : (같이 따라나선다)
김필중 : (보며) 넌 나설 거 없다.
재혁 : 태희랑 같이 가겠습니다.
김필중 : 집안일이야. 이제 넌 빠져두 돼.
재혁 : (그 말에 멈칫.. 보면)
김필중 : 서두르자 태희야. (밖으로 나간다)
태희 : (재혁을 본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따라 나간다)
남겨진 재혁, 닫혀진 현관문을 본다. 말없이 주먹을 꼭 쥐면..
30. S# 달리는 차 안. (밤)
진상만, 운전을 하고 있고. 그 뒤에 나란히 타고 있는 김필중과 태희.
태희, 불안한 듯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그 때 태희의 손을 꼭 잡아주는 할아버지의 큰 손.
태희, 멈칫.. 고개 돌려 보면 김필중 괜찮을 거라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여준다.
태희, 본다. 시선에서.
31. S# 방안. (밤)
윤희, 한쪽 벽에 붙어 서서 바라보면 정신없이 이불 보따리며 옷 보따리를 싸고 있는 오산댁.
오산댁 : 승희야. 너 학교 책 다 쌌어?
승희 : 싸구 있잖아! (신경질적으로 책을 책가방에 넣으며) 툭하면 짐싸구 툭하면 이사가구 툭하면 전학가구.
오산댁 : 시끄러 이년아. 주둥이 닥치구 다 쌌으면 엄마 이불 싸는 거나 와서 좀 붙잡어. (끙끙거리며 이불을 싸는데)
승희 : 이번엔 또 누구한테 빚진 거야?
오산댁 : 뭐?
승희 : 저번엔 아저씨가 노름하다 들어 먹구 저 저번 땐 엄마가 곗돈 날려서 도망치구. 이번엔 또 뭐냐구? (하는데)
오산댁 : (쥐어박는다)
승희 : 아야! 아 왜 때려!
오산댁 : 맞을 소리만 골라하니까 때리지 이년아! 터진 주둥아리라구 아무 말이나 막하구 있어 쪼그만 게.
(그러더니 다시 낑낑 이불을 싸는데)
윤희 : 제가 잡아 드릴께요. (하면서 잡아주려는데)
오산댁 : (홱 뿌리친다)
윤희 : (저만치 밀려난다. 보면)
오산댁 : 내가 너만 보면 열통 터져 죽어. 알어? 꼴 보기 싫으니까 걸리적거리지 말구 나가있어. (버럭) 나가 있어 언능!
윤희 : (서글픔.. 시무룩해져서 밖으로 나간다)
다시 이불을 싸는 오산댁, 순간 보자기가 풀러지면서 와르르 무너지는 이불.
어이구! 자기성질에 못 이겨 베개를 걷어차 버리는 오산댁.
승희, 흘끔 보더니 쥐죽은 듯 책을 싼다.
32. S# 국밥집 안.
밖으로 나온 윤희. 방 쪽을 한번 돌아보더니 한쪽 구석에 가 앉는다.
쓸쓸하게 한숨. 반지를 꺼내서 들여다본다.
윤희 : 아줌마가 나 땜에 화가 많이 났나봐. 근데 왜 그렇게 나한테 화가 났는지 잘 모르겠어.
(잠시 반지를 보며) 넌 내가 누군지 알지? 내가 누구니? 내가 누군지 알았으면 좋겠어. 기억나면 좋겠어.
다시 한숨 푹 쉬며 고개를 숙이면.
33. S# 경찰서 안. (밤)
도착하는 김필중의 차,
박귀중과 경찰1, 안에서 나와 마중 나오면.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태희.
태희 : (경찰1을 보며) 아저씨 우리 윤희는요? 네?
경찰1 : 지금 그렇지 않아두 그 쪽으로 갈참이다.
태희 : 거기가 어딘데요? 네?
김필중 : (태희를 보면)
34. S# 국밥집 안.
짐을 다 싸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 오산댁. 승희와 윤희, 한쪽에 앉아 있는데
그 때 문이 드륵 열리며 들어서는 황국도.
오산댁 : (화들짝 놀라며) 아이구 깜짝이야! 대체 어디 갔다 이제야 나타나? 금방 나갔다 온다는 사람이 지금 몇 신 줄이나 알어?
황국도 : (턱! 신문지에 둘둘만 돈 꾸러미를 꺼내놓는다)
오산댁 : 왠 돈이야?
황국도 : 경찰이 우리 트럭 번호 적어 갔대메? 차 판 사람한테 갖구 가 싸게 되 팔구 오는 길이여.
오산댁 : 트럭을 팔어? 아니 차도 없이 이 짐을 다 어떻게 실어 나를려구?
황국도 : 내가 그것까지 생각 못했을 감니? 걱정 말어. 서울 트럭하나 잡아 왔응께.
돈 쬐까 주면 우리가 가자는디까정 가준다는 구만. 뭐혀? 후딱 움직이자고. 후딱후딱.
윤희 : (분주한 황국도와 오산댁을 본다)
35. S# 국밥집 앞.
세워져 있는 흰색 트럭. 오산댁 마지막 이불까지 다 밀어 넣으면.
황국도 : 다 실었으면 언능 일루와 타.
윤희 : 아저씨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오산댁 : 니가 알아서 뭐하게?
윤희 : (보면)
오산댁 : 이게 다 너 때문인 줄이나 알어 기집애야. (그러더니 승희를 먼저 태우고 올라탄다)
윤희 : (본다. 따라 올라타려는데)
황국도 : 야. 넌 일루와.
윤희 : (? 황국도를 돌아본다)
36. S# 트럭 짐칸.
트럭 뒷 칸에 태워지는 윤희. 이사 짐들 사이로 난 작은 틈새에 윤희를 밀어 넣는 황국도.
황국도 : 여기 꼼짝 말구 낑겨 앉아 있어. 찍소리두 내면 안 된다. 알겄지?
윤희 : 가다가 오줌 마려우면요?
황국도 : 중간 휴게소에 들르면 내려줄 텐께 걱정 말고 앉아있으란 말여. 알었어? 어여 앉어.
윤희 : (앉으면)
황국도 : (그 뒤로 쿵! 문을 닫아버린다)
어둠속에 남겨지는 윤희.
37. S# 트럭 앞칸.
오산댁과 승희가 앉은 옆으로 올라타는 황국도.
황국도 : 아저씨 출발합시다, 이.
오산댁 : (승희를 꼭 안은 채 앞을 보면)
38. S# 트럭 뒷칸
부르릉.. 시동 걸리는 소리.
윤희, 돌아보는데 덜컹 움직이는 트럭. 그 바람에 쿵! 엉덩방아를 찧는 윤희, 차가 움직이자 짐들도 같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윤희, 옆에 있는 짐들이 쏟아질까봐 얼른 손을 들어 받친다.
39. S# 국밥집 앞.
불 꺼진 국밥집을 떠나가는 트럭에서.
40. S# 도로.
앞장서고 있는 경찰차. (경찰1은 운전하고, 양순경은 그 옆에)
그 뒤로 김필중의 차가 뒤따르고 있다.
41. S# 김필중의 차안.
운전하고 있는 박귀중과 그 옆에 탄 진상만.
태희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런 태희를 걱정스럽게 보는 김필중의 시선.
42. S# 트럭 안.
승희를 안은 오산댁과 그 옆의 황국도. 둘 다 착찹한 표정..
43. S# 사거리. (밤)
신호등의 불이 빨간불로 바뀐다.
운전사,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마침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려던 경찰차와 태희 일행의 차가 부딪힐 뻔한다.
끼-익! 급정거하며 멈춰서는 트럭.
44. S# 트럭 짐칸.
그 바람에 쿵! 한쪽에 굴러 넘어지는 윤희. 그 위로 작은 짐 몇 개가 우르르 쏟아진다.
윤희 : 아야!
45. S# 트럭안.
하필이면 경찰차와 충돌할 뻔하다니.
황국도와 오산댁, 긴장하면서 서로 눈을 마주친다.
경찰차에서 내려서는 양순경이 보인다. 경찰1, 운전석에 앉은 채 트럭 쪽을 돌아보면.
오산댁 : (얼른 승희 뒤로 얼굴을 숨기며) 어쩌지? 어쩌지?
황국도 : (괜히 손으로 머리 아픈 듯 이마에 갖다 대며 운전사에게) 이보쇼. 운전사양반.
돈은 얼마든지 얹어줄 텐께 빨리 처리하고 갑시다. 이?
운전사 : 걱정 마슈. 알아서 할 테니.
하는데 양순경, 운전석 쪽으로 간다.
양순경 : 신호위반입니다. 면허증 좀 봅시다.
운전사 : 아이구 죄송합니다. 초행길이라 길을 찾다가 신호를 못보고 말았네요. 선생님. 한번만 봐주십쇼 이.
양순경 : 면허증 주세요.
운전사 : 한번만 봐 달래니까요.
실랑이가 이어지자 황국도와 오산댁, 미치겠다. 얼굴을 최대한 안보이게 돌리고 숨기느라 쩔쩔매면.
46. S# 김필중의 차.
한시가 급한 태희, 경찰과 트럭의 실랑이를 답답한 듯 본다. 창문을 내린 뒤 얼굴을 내밀고 보면.
47. S# 트럭 뒷칸.
쏟아진 짐들 사이로 쓱 일어서는 윤희. 대체 무슨 일인가 돌아보면.
48. S# 트럭 앞 칸.
오산댁이 방패삼아 무릎에 앉혀놓은 승희. 문득 고개를 돌려 고급승용차 안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태희를 본다.
순간 저 고급차 안에 예쁜 옷을 입고 있는 태희의 모습에 부러움이 가득 찬 표정으로 보는 승희, 넋을 잃고 빤히 쳐다보면.
태희도 승희를 본다.
49. S# 김필중의 차.
태희, 승희와 시선이 마주치더니 다시 창문을 올린다. 조급한 마음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면.
김필중 : 박기사. 가서 서둘자고 좀 그래.
박귀중 :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차에서 내린다)
태희의 시선으로 양순경한테 다가서는 박귀중이 보인다.
50. S# 트럭안.
결국 면허증을 제시하는 운전사. 완전히 뭐 씹은 표정으로 시선 돌리면.
양순경 : (흘끗 운전사를 보더니) 어차피 띨 거 뭘 그렇게 안 내놓구 그래요.
(번호 적고 딱지 띤 다음 면허증 돌려주며) 사거리에서 신호무시하구 가는 건
사고내자고 작정하구 달려드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다음부턴 꼭 신호엄수 하십쇼. 아셨죠?
운전사 : (꼬여서) 알았다구요. 거 아저씨 되게 말 많네.
양순경 : 뭐요? (보면)
운전사가 자꾸 말꼬리 물자 안에 탄 오산댁과 황국도 죽겠는 표정이다.
그 때.
박귀중 : 저기 양순경님. 회장님께서 서둘자 그러십니다.
양순경 : (본다. 보더니 참아준다는 듯) 그럼 안전 운전하십쇼. (경례를 하더니 뒤로 물러선다)
운전사 : (퉤 침을 뱉으며 창문을 올린다)
황국도 : 빨리 갑시다. 빨리.
운전사 : 거 재촉 좀 하지 마쇼. 방금 딱지 끊은 거 보구두 그래요?
오산댁 : (애가 타 죽겠다)
51. S# 사거리.
양순경과 박귀중, 각자 차에 올라탄다.
경찰1, 흘끗 트럭 쪽을 보더니 차를 출발한다.
트럭 앞을 지나 좌회전을 하는 경찰차와 그 뒤를 따르는 김필중의 차.
황국도, 긴장해서 지나가는 그 차들을 본다.
insert> 스쳐지나가는 김필중의 차. 그 안의 단아한 모습의 태희
insert> 스쳐지나가는 트럭. 그 안의 엉클어진 머리의 윤희.
경찰차와 김필중의 차가 완전히 지나가자 황국도와 오산댁,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시선 마주친다. 살았다!
드디어 출발하는 트럭.
52. S# 트럭 뒷 칸.
떨어진 상자들을 위로 올려놓고 있던 윤희. 차가 움직이면서 덜컹거리자 균형을 잃고 비틀한다. 그 위로 또 떨어지는 상자들.
윤희 : 아우 왜 자꾸 떨어지구 그래. (한숨 푹 내쉬며 다시 상자들을 올려놓는다)
53. S# 횡단보도 길.
그렇게 서로 반대편으로 스쳐 지나가는 트럭과 태희의 차.
트럭.. 어둠속으로 멀어진다. 길게.
54. S# 국밥집 안.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경찰1E : 실례합니다. 아무도 안계십니까.
잠시 후 드륵 문이 열리면서 안으로 들어서는 경찰1과 양순경. 두 사람 시선 마주치더니 안으로 들어선다.
불을 찾아 켜면 어수선하게 어질러진 테이블과 나뒹구라진 의자들.
경찰1과 양순경 얼른 국밥 집안을 여기저기 살핀다.
그 뒤로 들어서는 태희와 박귀중. 김필중과 진상만도 뒤를 따라 들어오면.
경찰1 : (그들 앞으로 오며) 한발 늦었는데요.
양순경 : 급하게 야반도주를 한 것 같습니다.
태희 : (본다. 보더니 갑자기 방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55. S# 방안.
태희 : (문을 벌컥 열며) 윤희야! (둘러보다가 아무도 없자 도로 나간다)
56. S# 국밥집 안.
방에서 나와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며 윤희를 찾는 태희.
태희 : 윤희야! 어딨니? 언니 왔어! 언니 왔다구! 어서 나와 봐! 윤희야! 윤희야아아!!
정신 나간 듯 계속 왔다 갔다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데 그 때 태희의 어깨를 지긋이 누르는 김필중의 손.
태희, 돌아본다.
태희 :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윤희가 없어요. 할아버지. 우리 윤희가 아무데도 안보여요. 어떡해요?
김필중 : 걱정마라. 윤희는 괜찮을 게야.
태희 : (순간 또 눈물이 떨어진다)
멈칫해서 내려다보는 김필중. 흐느낌으로 흔들리는 손녀딸의 작은 어깨를 낯선 느낌으로 잠시 바라보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다독여준다.
안타까움으로 바라보는 박귀중과 경찰1, 그리고 양순경. 뒷쪽에 서 있는 진상만은 무표정으로 바라볼 뿐.
윤희를 찾지 못한 허탈감으로 서 있는 사람들.. 그 한가운데서 흐느끼는 태희와 다독이는 김필중의 모습에서. 천천히 fade-out.
57. S# 평창동 집전경.
58. S# 거실.
분주하게 들여오는 짐들.
현자, 쇼올을 두른 채 손가락만 까딱까딱 움직여.
현자 : 그건 일단 저쪽에다 두시구요. 그 그림은 내 방으루 가져다 두세요.
그리고 그 상자는 우리 아들 거니까 이층으로 올려가세요. 아뇨. 그거 말구.. 네 그거요. (돌아보면)
서준 : (한쪽에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
현자 : 윤서준. 넌 또 만화영화니?
서준 : (들은 척 만 척)
현자 : 윤서준! 빨리 꺼. 끄구 니 방에 올라가 방 정리 좀 해.
서준 : (여전히 반응 없자)
현자 : (그대로 가서 텔레비젼을 꺼버린다. 서준을 보면)
서준 : (흘끗 보더니 한숨. TV를 끄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59. S# 이층.
자기 방으로 가려던 서준, 문득 태희 방 쪽을 돌아본다.
60. S# 태희의 방.
창가에 멍하니 앉아 있는 태희. 창백한 얼굴위로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여다보는 서준. 태희가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조용히 도로 나간다.
태희, 서준이 들어왔다 나간 줄도 모르고 작게 한숨을 내쉬면.
61. S# 이층거실.
태희의 방에서 나오는 서준.
그 때 마침 이층으로 올라오던 현자, 서준을 본다.
현자 : 너 왜 그 방에서 나와?
서준 : 그냥 누나 뭐하나 볼려구요.
현자 : 뭐하는데? 자니?
서준 : 아니요. 그냥 앉아 있어요.
현자 : (일순 표정 싸늘하게 변하며 태희 방문 쪽에 대고) 그것 참 버르장머리 한번 대단하게 들었구나.
아침부터 이사하는 소리 뻔히 들렸을 텐데 깨있으면서 얼굴도 안내밀어?
62. S# 태희의 방안.
태희, 고개를 돌려 보는 위로.
현자E : 대체 오빠는 애를 어떻게 키운 거야? 어른한테 도무지 예의가 없잖아. 예의가.
태희 : (한숨을 내쉬며 옷장에서 외투를 꺼낸다)
63. S# 이층 거실.
현자 : 하루 이틀두 아니구 앞으로 아침저녁 얼굴 대하구 살 텐데 참, 앞날이 걱정이구나.
서준 : 엄마아. (짜증스러운데)
현자 : 조용히 해. 넌 가만히 있어.
하는데 방문이 열리면서 나오는 태희.
태희 : 오셨어요.
현자 : 엎드려야 인살 받는구나?
태희 : 죄송해요. 오신 거 몰랐어요.
현자 : 오빠는 널 어떻게 가르쳤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달라. 나는 아주 많이 까다로운 사람이야.
더군다나 느이 할아버지, 굉장히 엄격하고 무서우신 분이구.
태희 : (보면)
현자 : 앞으로 어른이 집에 들고 날 땐 어디에 있든 나와서 인사드리도록 해. 예의 있는 집에선 그렇게 하는 거야. 알겠니?
태희 : 앞으로 주의할께요.
현자 : 글쎄 주의한다구 못된 버릇이 하루아침에 금방 고쳐질까 모르겠구나.
태희 : (본다. 보더니) 말씀 다 끝나셨으면 그만 나가볼께요. (그러면서 지나쳐가는데)
현자 : 여자 발소리가 왜 그렇게 커. 쿵쿵 집안이 다 울리잖니. 뒷꿈치 들구 소리 안 나게 걸어.
잠시 멈춰서는 태희, 입을 꼭 다문 채 소리 안 나게 아랫층으로 내려간다.
서준 : 하여튼 엄만 알아줘야 해.
현자 : 엄마 알아주는 거 하나두 안 고마워. 어서 들어가 방 정리나 해.
서준 : (어이없는 한숨.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면)
64. S# 김필중의 서재.
책상위로 내밀어지는 비행기 표와 봉투.
재혁, 고개 들어 김필중을 보면.
김필중 : 니 제안을 받아들이기루 했다.
재혁 : (순간 스치는 기쁨)
김필중 : 단. 내가 널 인정하게 될 때까진 태희한테 다가서지 마라.
재혁 : (그 말에 멈칫.. 보면)
김필중 : 내가 니 제안을 받아들인 건 너란 녀석이 얼마나 쓸만한 놈인지 두고 보기 위해서다.
아직 태희 옆에 둘지 안 둘지에 대해선 결정내리지 않았어. 너에 대한 검토가 끝날 때 까진 태희한테 접근하지 말거라.
태희 쪽에서 연락을 해도 니가 차단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니?
재혁 : (본다. 보더니) 네. 알겠습니다.
김필중 : 그래. 넌.. 알아들었을 게야.
재혁 : (본다. 시선에서)
65. S# 정원.
밖으로 나오는 재혁, 아주 담담한 표정으로 손에 든 봉투를 내려다본다. 이제 됐다. 된 거야.
재혁, 흥분한 감정을 애써 숨기며 아래채 쪽으로 향하는데 그 때 기다리고 있는 태희.
태희 : (재혁을 보며 빙긋 웃는다) 할아버지하구 있었다며?
재혁 : 어. 날.. 유학 보내 주신대. 그래서 미국으로 가게 됐어.
태희 : (순간 표정 굳는다) 미국?
재혁 : 그래. 미국.
태희 : 그래서 간다 그랬니?
재혁 : 갈 거야. 나한텐 하늘이 만들어 준 기회니까. 가서 죽어라고 열심히 공부만 할 거야.
내가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회장님한테 똑똑히 보여드릴 생각이야.
태희 : 그렇구나. (쓸쓸한 표정으로 시선 돌리면)
재혁 : (그런 태희를 잠시 보더니) 우리 내기하자.
태희 : ?
재혁 : 내가 돌아왔을 때.. 우리 둘 중에 누가 더 대단한 사람이 되어있는지 내기하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사는 만큼 너두 열심히 살아줘. 알았지?
태희 : 다시.. 돌아올 거니?
재혁 : 돌아올 거야. (보며) 니가 기다린다면.. 언제고 다시 돌아올 거야.
태희 : (본다. 순간 뭉클해져서 보면)
66. S# 김필중의 서재.
뒷짐을 진 채 창밖으로 두 아이를 내다보고 있는 김필중, 조용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는데서.
67. S# 김포공항 전경.
그 앞으로 도착하는 박귀중의 차. 안에서 내려서는 재혁과 태희.
태희 : (박귀중에게) 아저씨. 금방 나올께요.
박귀중 : 천천히 나와두 돼.
재혁 :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박귀중 : 나야 뭘. 회장님께 감사해야지. 가서 공부 열심히 하구 오거라.
재혁 : (웃음)
돌아서서 태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면 박귀중, 재혁을 곰곰히 쳐다본다.
왠지 얼굴이 낯익은 듯.. 그러다가 이내 아니겠지. 차 안에 올라타면.
68. S# 출국게이트 앞.
나란히 그 앞까지 온 태희와 재혁.
재혁 : 됐어. 그만 가.
태희 : 음.
재혁 : 가라니까.
태희 : (본다. 잠시 재혁을 보더니) 그거 알아? 널..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 같애. 여러가지로 고마워. 안 잊을게.
재혁 : (웃음으로 답한다)
돌아서서 출국게이트로 들어간다. 여권을 보여주면서 안으로 들어서는 뒷모습.
태희, 왠지 자꾸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보내기 아쉬운데..
재혁, 한번 돌아보며 웃어준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들어가려는데.
태희 : 장재혁!
재혁 : (돌아보면)
태희 : (그대로 달려가 재혁을 와락 끌어안는다)
재혁 : !
태희 : (두 눈에 눈물 가득해서) 꼭 돌아와. 알았지? 나.. 기다릴 거니까. 그러니까 꼭 다시 돌아와야 해. 알았지?
재혁 : (잠시 있다가) 그래. 알았어.
태희 : (천천히 뒤로 물러서서 두 눈을 똑바로 보더니) 돌아오면 나.. 너하구 결혼할거야.
재혁 : ! (보면)
태희 : 잘 가.. 잘 갔다 와.
잠시 바라보더니 그대로 홱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한다.
재혁, 그런 태희의 모습을 바라본다.
끝까지 돌아보지 않은 채 걸어오는 태희.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더니 고개를 들어 당당하게 걷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재혁의 얼굴. 시선에서.
E 비행기 굉음.
69. S# 시장통. (서울)
비행기가 날아가는 하늘에서 틸-다운 하면. 사람들로 북적북적거리는 시장통.
자막> 15년 후.
오산네 국밥집 앞. 그 옆집은 길여옥 여사가 하는 손칼국수집이다.
좁디 좁은 칼국수집 앞으로 줄을 서 있는 사람들.
길여옥 가게 앞에 드럼통 위 올려놓은 국물을 휘휘 젓고 있는데.
오산댁E : 선우야! 선우야아!!!
드륵 문이 열리면서 국밥집에서 나오는 오산댁(50대 초반), 조금 더 아줌마 같아지고, 조금 더 촌스러워진 모습.
오산댁 : 이 놈에 기집애 배달 갔다 오랬더니 또 어디루 샜어 그새?
길여옥 : 새긴 얼루 새. 배날 나간 그릇 찾으러 갔구만. 그 새 무슨 큰일 났다구 그렇게 목 놓아 찾어 찾길.
오산댁 : 배달주문 들어왔으니까 그렇죠.
길여옥 : 오산댁이 가믄 되잖어.
오산댁 : 전 가게 지켜야죠.
길여옥 : 뭘 그렇게 할일이 많다구?
오산댁 : 주문 전화라도 받아얄 거 아니예요. 길여사님 가게야 손님들이 알아서 찾아와 줄 나래비 서지만
우리 집은요 전화통 붙잡고 하루 종일 기다려야 겨우 배달주문 몇 개 들어올까 말까예요. 아세요?
길여옥 : 그렇게 게을러 터졌으니 장사 잘 되두 큰일이지 뭐.
오산댁 : 뭐요?
길여옥 : 그 집이야 선우가 다 멕여 살리구 있잖어. 혼자서 새벽시장 봐다 음식 만들어, 장사해, 배달가.
거기다 공사장마다 찾아 댕기면서 단체 밥 손님 잡아와.
오산댁 : 길여사님!
길여옥 : (국물 올려놓은 가스 불 조절하며) 복뎅인 줄 알구 귀히 모셔. 선우 없으면 그 집 그나마 입에 풀칠도 못해.
오산댁 : 길할머니!!
길여옥 : 아이구 어서 오세요. 오랜만이네.
손님 : 국수 좀 말아주세요.
길여옥 : 네네. 안으로 들어가세요.
오산댁 : (째려보면)
길여옥 : (쳐다보지 않고도 아는 듯) 그만 째려봐 눈 찢어지겠다. 거기서 더 찢어지면 흉해. 못써.
(그러면서 후루룩 국물 맛을 보면)
오산댁 : 터가 안 좋아 터가. 가겔 옮기든지 해야지. 어이구 속 터져. 이놈에 기집애 들어오기만 해봐 그냥.
(안으로 들어가 탁! 문을 닫으면)
길여옥 : 마음보가 저리 못됐을까. 쯧쯧쯔.. (하다가) 아이구 어서 오세요. (인사하는 얼굴에서)
70. S# 상가건물.
관리인, 낡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그 때.
선우E : 잠깐만요! 잠깐만!
관리인 : (? 보면)
거의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턱! 쟁반이 꽂힌다.
관리인 놀라서 쳐다보면 틈새로 손을 넣고 힘껏 엘리베이터 문을 밀어 여는 젋은 여자. 고개 들어 씩 웃으면 선우(25세)다.
선우 : 안녕하세요. (환하게 웃으며 올라탄다)
관리인, 다시 버튼을 누르면 선우, 뛰어와서 더운 듯 쟁반으로 얼굴을 부채질 하며 올라가는 층수를 본다.
그 앞으로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71. S# 당구장 안.
수탁(25세), 한쪽에 앉아 국밥그릇의 밑바닥까지 긁어먹으려는 듯 닥닥 긁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셔버린다.
끅! 트름과 함께 만족한 표정.
그 앞으로 큣대를 조준하며 쓱 프레임-인 되는 철웅(27세)의 얼굴. 탁! 공을 치면 쓰리쿠션으로 돌아가 두개의 공을 때린다.
철웅, 큣대 끝을 쵸크로 문지르며 후! 부는데 그 때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대여섯 명의 장정들.
철웅 그 쪽을 본다. 수탁도 ?해서 보면.
장정들, 금방 행패라도 부릴 듯 무서운 느낌으로 당구장 주인을 에워싼다.
주인 : (절절매며) 미안해. 어쩌지? 이번 달 말까지만 좀 미루면 안 될까? 요즘은 정말 장사가 안 되서..
깡패1 : 장사가 안 되서 돈을 못 갚겠다? 정말루 장사 안되는 게 뭔지 보여줄까? 어?
주인 : 이것 봐.. 그러지 말구. (하는데)
깡패1 : (고개 짓을 하면)
같이 온 깡패들, 안에 있던 기자재들을 마구 부시며 안에 있던 손님들을 내쫒기 시작한다.
주인 : 아이구, 이러지 말구.. 말루 하자구. 말루.
깡패1 : (퍽! 의자를 차 부수며) 말루해선 안되니까 그렇지! 말루해선!
철웅, 흘끗 보더니 말없이 계속 당구를 친다.
그러자 깡패들, 철웅이 당구 치는 쪽으로 몰려선다.
깡패1 : 야! 거기 너! 그만치구 나가.
철웅 : (당구에 몰입, 친다)
수탁 : (공들이 맞는걸 보더니) 와..! 이제 한번만 더 맞추면 기록 깨겠는데요 형?
철웅 : 기록 깨면 설겆인 니가 해라.
수탁 : 못 깨면 형이 하는 겁니다. 나중에 딴소리 없기예요.
깡패1 : 야! 거기 내 말 안 들려?
철웅, 대답대신 공을 치면, 굴러가는 공. 그 때 턱! 당구를 잡는 깡패1의 손.
철웅, 어? 해서 보면
깡패1 : 늬들! 나가라는 말 안 들렸냐구? 어?
수탁 : (무시한 채) 안 됐네요, 형. 기록을 깰 수 있었는데.
철웅 : (허리를 펴고 보며) 이건 반칙이지. 저 자식이 공을 잡았잖아.
수탁 : 그래도 결과론적으로 볼 때 기록을 못 깬 건 사실이죠.
철웅 : 그러니까 설겆인 나더러 하란 말이지?
수탁 : 내기는 내기니까요.
깡패1 : (무시당하자 완전히 돌아) 이 새끼들이 근데! (하면서 뛰어드는데)
퍽! 들고 있던 큣대로 달려드는 깡패1의 복부를 찔러버리는 철웅.
동시에 우르르 몰려드는 깡패들. 수탁은 뒤로 한걸음 물러나 싸우는 걸 지켜본다.
철웅, 종횡무진 퍽퍽, 싸우고 때리다가 한대 퍽! 맞으며 수탁 바로 옆까지 밀려온다.
철웅 : 너 정말 보구만 있을 거야?
수탁 : 이제 넷밖에 안 남았어요, 형. 힘내세요.
동시에 날라 오는 깡패들의 주먹. 철웅, 피하며 그대로 깡패들을 쓰러뜨린다.
철웅한테 맞아 넘어지는 첫 번째 깡패.
그 때 그 아수라장에 빠꼼히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선우.
선우 : 저기요. 그릇 찾으러 왔는데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와 좀 더 크게) 빈 그릇 찾으러 왔는데요?
철웅한테 맞아 넘어지는 두 번째 깡패.
한 쪽에서 철웅을 응원하는 주인과 다른 손님들의 아우성으로 아무도 선우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선우, 기웃거리며 빈 그릇을 찾아 고개를 기웃거린다.
그러다 수탁 옆에 놓여있는 빈 그릇을 발견한다. 그 쪽으로 다가서는데.
철웅, 세 번째 녀석을 헤치운다. 순간 마지막 남은 깡패1에게 턱을 맞고 벽에 부딪히는 철웅.
빈 그릇을 향해 막 손을 뻗어 잡으려던 선우, 멈칫 물러서면
철웅, 손에 잡히는 대로 국밥그릇을 하나를 들어 깡패1을 향해 던진다. 퍽! 빚 맞아 깨져버리는 국밥그릇.
선우 : ! (놀라서 깨진 그릇을 본다. 철웅을 돌아보면)
철웅, 두 번째 국밥그릇을 집어 들어 달려오는 깡패1을 향해 날린다.
깡패1 피하면, 다시 바닥에 떨어져 산산 조각나는 국밥그릇.
선우 : !! (완전히 열 받았다. 다시 홱! 철웅을 돌아보면)
철웅,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깡패1의 턱을 퍽! 날려버린다. 이미 쓰러져 있는 다른 깡패들 위로 겹쳐지듯 넘어지는 깡패1.
철웅, 숨을 몰아쉬며 수탁을 향해 베식 웃는다.
철웅 : (승리의 브이자를 들어 보이며) 설겆이 끝!
동시에 뒤에서 퍽! 쟁반으로 철웅의 뒷통수를 날려버리는 선우.
수탁, 놀라서 본다.
철웅, 멈칫.. 해서 돌아보면 씩씩거리며 철웅을 노려보는 선우의 얼굴에서 스틸. <4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