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고] 09
씬1. 낙랑국, 왕검성 진양궁 일각
호동, 라희를 뜯어본다.
호동 : 너.. 참 못생겼구나. 뚱뚱한게.
라희 : !! 이런 무례한!! (손을 올린다)
호동 : (라희의 손목을 잡고 뺨에 입 맞춘다)
라희 : 너.. 너.. 지금 뭐하는 거야!
호동 : 커서는 좀 예뻐지면 내가 덜 괴롭겠는데.
호동, 라희의 손목을 놓아준다.
라희, 허리에 찬 연검을 뽑아 호동의 뺨을 긋는다.
호동 : (뺨을 만져본다. 손가락에 피가 배어난다) 오호~ 제법 한 성깔 하는데?
호동, 라희를 보며 싱긋-웃는데. 라희, 그 모습에 더 화가 난다.
라희 : 가만 두지 않을 테야!!
라희, 호동에게 이리저리 연검을 휘두른다.
호동, 여유 있게 몸을 피한다. (호동, 칼이 없다)
호동 : 실수·실수 내가 잘못했다. 그만하자. (웃는)
라희 : 필요 없어, 그 따위 사과!!
라희, 바닥에서 솟구쳐 호동을 향해 있는 힘껏 칼을 휘두른다.
호동의 머리가 서늘하다. 보면, 머리카락 묶은 것이 잘려 바닥에 떨어진.
호동 : !! 이런 막돼먹은 기집애!
호동, 화가 끓어오른다. 호동, 나무 위로 뛰어올라가 나뭇가지를 꺾어들고 내려선다.
호동, 라희의 뺨을 호되게 가지로 친다. 라희의 뺨에 새빨간 선이 그어지며, 피가 밴다.
라희 : (뺨을 만져보고) !! 야아아아!!
열받은 라희, 소리 지르며 호동에게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른다.
씬2. 낙랑국, 진양궁 한 방안
모하소, 동고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모하소 : 사신들은 어디서 묵게 한다더냐?
동고비 : 객관사(客官舍) 청솔 하고 있던데요.
모하소 : 그냥 사신도 아니고, 고구려 왕자인데. 궁 밖서 재우긴 너무 소홀하지 않니? 궁 안에 마련하렴.
동고비 : 눈치가 보여서요. 고구려서 면복을 우리 장군님께 보낸 일로, 왕굉대장군 심기가 가뜩이나 불편하실텐데..
모양혜 마님 지시도 달리 없었고..
모하소 : 면복은 면복이고. 손님 접대하는 일에 감정 섞을 필욘 없다.
“마님!! 대부인 마님!!” 소리치며 문 열리고, 시비1(4부,씬5/앞으로 시비2와 함께 궁녀가 된다) 황급히 뛰어 들어온다.
동고비 : 넌 들고나는 게 왜 이리 요란해!
시비1 : 그게 문제가 아니구요!! 라희 아가씨가.. (숨이 턱에 차서) 호동왕자한테 맞아 죽게 생겼다구요, 지금!!
씬3. 낙랑국, 진양궁 다른 방 안
왕자실, 류지, 하호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지 : (눈을 가늘게 뜨며) 대무신왕이 면복을 우리 주군께 보낸 의도가 수상쩍습니다.
왕자실 : (본다)
류지 : 그간 영호장원에 엿가락처럼 들러붙어 뇌물을 퍼 앵기던 자들이, 왜 하루아침에 욍굉 대장군에게 등을 돌리는지..
하호개 : 대세를 읽은 거죠, 민심을. 신생 낙랑국 왕은 최리 대장군이 돼야 한다. 엄한데 헛돈 퍼대 쓴거죠~ 흐흐~
류지 : 대무신왕이 과연 그리 단순한 사람인가? 주군께서 그토록 경계하는 자인데?
왕자실 : 이러거나, 저러거나 결과는 다르지 않네.
류지 : (항의하는) 마님.
왕자실 : 어차피 대무신왕과 상관없이 오라버니와 사생결단은 내게 돼있는 거고.
고구려가 최리대장군을 신생 낙랑국의 왕으로 여긴다, 그것만 받아챙기면 되는 거야. 백성들에게는 그게 중요하니까..
문 열리고 치소, 새파랗게 질려서 들어온다.
치소 : 마님·마님!!
왕자실 : 무슨 일이냐?
치소 : 라희 애기씨가 피투성이에요!! 고구려 왕자놈 칼에 찔려서 다 죽어간대요!
씬4. 낙랑국, 진양궁 일각
모하소, 동고비를 앞세우고 뛰어가고 있다. 가다 신발이 벗겨진다.
모하소, 그것도 모르고 한쪽 신발 벗겨진 채로 달려간다.
동고비, 모하소의 신발을 주워 “마님!! 신발요!! 마님!!” 불러보지만 모하소 그대로 뛰어간다.
씬5. 낙랑국, 동 다른 곳
왕자실, 치소를 앞세우고 걸어온다.
치소 : (저만치 앞서가다 돌아보며 손짓한다) 빨리 좀 오세요!! 빨리요, 빨리!!
왕자실 : 난삽하게 굴지 좀 마라.
치소 : 애기씨가 죽어간다니까요!! 피 철철 흘리면서요!
왕자실 : 미치지 않고서야, 남에 나라 와서 왜 그런 짓을 하겠어.
치소 : 미친놈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요. 사람 도는게 별건가요. 눈깔 휙- 뒤집혀, 똥·오줌 못가리믄 미친 거죠.
씬6. 낙랑국, 왕검성 진양궁 일각/왕자실 있는 곳
호동, 라희를 호되게 다루고 있다. 라희의 얼굴, 손목, 팔등에 붉은 줄이 쭉쭉-가있고, 풀어헤쳐진 머리카락.
왕자실, 걸어오다 그 모습을 본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
치소 : 세상에! 봐요, 봐! 우리 애기씨 다 죽게 생긴 거 맞잖아요!
왕자실 : 내 눈에는 라희가 칼 들고 설치는 걸로 보이는데.
모하소, 동고비와 함께 달려온다.
호동, 라희의 검을 막고 나뭇가지로 옆구리를 후려친다. 라희, 넘어진다.
씬7. 동, 왕자실 있는 곳
모하소 : 라희야!! (하며, 앞으로 가려는)
왕자실 : 가만 계세요, 형님.
모하소 : (보면, 왕자실이다) 자넨 여기 있었으면서 애가 저 꼴이 되는 걸 보고만 있었는가!
왕자실 : (냉정한) 상대는 고구려 왕잡니다. 우리가 나서면 일이 커진다구요. 애들 장난으로 넘겨야지.
모하소 : (라희가 다시 나뭇가지에 맞는걸 보고) 자넨 그리 하게. 난 그리 못 넘기겠으니.
왕자실 : 저 애 엄만 납니다. 라희가 다치든·죽든 형님이 상관할게 없어요.
모하소 : 그걸 말이라 하나, 지금!
왕자실 : 흥.. 그리 라흴 아끼는 분이 앨 죽이려고, 연못에 집어 던졌습니까?
모하소 : .. (기가 막히는) 자실아우..
동고비 : 중부인 마님!
왕자실 : 건방진 것. 니가 지금 눈 치켜뜨고, 날 불렀느냐?
동고비 : 말씀이.. 과하셔서..
왕자실 : 상전 믿고 너무 나대지 마라.
동고비 : ... (입술을 깨문다) 송구하옵니다...
동고비, 붉어진 눈시울로 무릎 꿇고 앉아 품에서 모하소의 신발 한 짝을 꺼내 발에 신겨준다.
동고비의 눈에서 서러운 눈물이 툭, 떨어진다.
왕자실 : (모하소에게) 그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이는, 고구려 왕 무휼이에요.
아녀자에 좁은 소견으로 그이한테 짐을 안기지 마세요.
모하소 : ..
왕자실 : 나라고 내 딸이 피투성이 되는 게 좋아 이러고 있는 게 아닙니다.
(못마땅한 시선으로 모하소를 보다가 라희 쪽으로 시선 돌린다)
씬8. 동, 호동·라희 있는 곳/왕자실 있는 곳
라희, 지겨울 정도로 호동에게 달라붙는다.
호동, 라희의 다리를 세게 친다. 그 힘에 라희의 비단치마가 찢겨 나간다.
라희 : !! 이 자식, 죽여버리고 말테야!!! 죽어, 죽어!!
라희, 동귀어진의 자세로 두 손으로 칼을 모아 쥐고 호동의 가슴으로 뛰어든다.
호동, 가슴을 찔릴 뻔 한다. 호동, 공중제비로 돌아 간신히 피한다.
라희, 호동이 비키자 자신의 힘을 못 이기고 땅바닥에 쓰러진다.
호동 : 독한 기집애!! 난 말이다, 칼 들고 설치는 계집이 제일 싫거든!
라희 : (노려본다) 그래서!
호동 : 더 싫은 건, 칼 들고 설치는데 독하기까지 한 계집이야!
라희 : 니가 싫건·좋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라희, 주저앉은 채로 연검으로 호동의 발목을 친다.
이야기하느라 방심하고 있던 호동, 급히 피하다가 발목부분 옷자락을 베인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호동, 나뭇가지로 라희를 연타한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모하소.
모하소 : 라희야!!!
모하소, 왕자실이 말릴 틈을 주지 않고 라희에게로 뛰어간다.
왕자실, 모하소를 바라보는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모하소, 주저앉아 라희를 안는다.
라희 : 엄마, 놔줘! 놔줘!! 나 저 새끼 죽여버릴꺼야!! 놔줘!!
모하소 : 이제 됐다. 그만했음 됐어.
라희 : 놔아! 놔아아아!!!
모하소 : 한번만 더 요란 떨면 엄마 화 낼꺼야.
라희 : ..
모하소 : (일어나서, 화를 애써 누르며 호동을 본다) 고구려선 그렇게 가르칩니까?
남의 나라 사신으로 가서. 여자아이나 두드려 패라구요?
호동 :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바닥에 던지고) 제가 잘한 것은 없지만, 딱히 잘못했다는 생각도 안드는군요.
모하소 : 뭐라구요?
라희 : 봐봐, 엄마! 저 자식 말하는 거!! 입을 짤라 버려야 해!!
호동 : (차갑게 라희를 보며) 니 입 짜르는게 더 빠르지 않을까?
라희 : 야 이 자식아!!
호동 : (무시하고, 모하소에게) 사과는 드리지 않겠습니다, 대부인.
모하소 : 왕자님!
호동,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던 자신의 잘린 머리채를 꺼내 모하소 발치에 던진다.
모하소 : ! (머리채를 보고, 호동의 머리를 한번 보고, 라희를 보고)
라희 : .. (모하소의 눈길 피하고)
호동 : 이걸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공식적으로 고구려에 항의 하십시오.
왕자실, “후우..” 한숨을 내쉬고 앞으로 나온다.
왕자실 : (만면에 웃음을 띠고, 호동에게) 놀라우신 실력입니다, 왕자님.
호동 : (본다)
왕자실 : 고구려 검이 강하다 듣긴 했지만, 오늘 보니, 과연! 싶습니다.
호동 : 과찬의 말씀.
라희 : 어머니,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왕자실 : (웃으며, 라희를 본다) 쥐뿔두 아닌 실력으로 까불더니, 왕자님께 한 수 제대로 배웠구나~
머무시는 동안, 라희한테 검을 좀 더 가르쳐주세요.
호동 : 그것만은 사양하죠. (왕자실과 모하소에게 읍하며) 요란을 떨어 송구합니다.
왕자실과 모하소, 답례로 같이 읍하는데 라희, 그 틈을 타서.
라희 : 호동!!!
라희, 호동에게 검을 휘두른다. 호동, 미처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팔을 베인다. 피가 배어나는.
모하소 : !!
왕자실 : !! (간이 덜컹 내려앉아, 라희의 뺨을 호되게 친다) 장난이 지나치구나!!
라희 : !! (뺨을 만진다)
모하소 : 괜찮으십니까, 왕자님? 어디 봐요. (호동의 팔을 만지려는)
호동 : (모하소의 손길, 몸 비켜 피한다) 이만 숙소로 가보겠습니다.
호동, 돌아선다. 라희, 그 모습을 보며 소리 지른다.
라희 : 언젠가 죽여버리고 말꺼야!!
호동 : (돌아본다) 그 실력으로? 못생긴게 성깔만 사나워선.
호동, 라희를 같잖게 쳐다보고 돌아선다.
씬9. 낙랑국, 왕검성 진양궁 한 방안
모하소, 라희의 상처에 도약(塗藥,연고)을 발라주고 있다.
왕자실, 화가 나서 라희를 바라보고 있는.
라희 : 못생겨서 괴롭다잖아. 엄마 같음 참을 수 있겠어?
모하소 : 마음하고 반대루 말한 거겠지. 남자들은 가끔 그러기도 해.
왕자실 : 그 말 틀린거 없다. 못생긴 것도 맞고. 뚱뚱한 것도 맞고.
모하소 : 아우님.
왕자실 : 여자가 그냥 예뻐져? 내가 예쁘게 타고나서 낙랑 최고 미녀 소릴 들어? 먹고 싶은 거 다 먹구 어떻게 예뻐져!
독하게·피눈물나게 참구·참구. 가꾸구·가꿔야 예뻐지는 거지.
라희 : 어머니!!
왕자실 : 그런 소리 들었으면 부끄러운 줄 알고, 이 악물고 예뻐질 생각해야지.
남의 나라 왕자 머리카락이나 짜르고, 찌르고. 죽었으면 어쩔 뻔했어! 전쟁이야, 전쟁!
모하소 : 그만 하게. 이미 끝난 일 아닌가.
라희 : 나라고... 그러고 싶어 그런 건 아냐.
왕자실 : (놀리는) 그럼 누가 시켰어? 너더러 호동왕잘 찌르라고?
라희 : 잘 생겨서.. 잘 생겨서 좋았는데. 진짜론 친하게 지내구 싶었는데.. (눈물이 삐죽삐죽- 난다) 잘생긴 왕자님한테..
예쁘단 말은 못들어두.. 못생겼다구.. 뚱뚱하다구... 그런 말 듣긴 싫었는데...
모하소 : 괜찮아·괜찮아, 아가. 나중에 친하게 되믄 되잖아. 다음엔 예쁘단 말 들을 수 있게, 예뻐지면 되지.. 울지마라..
라희 : 넘 늦었어. 독하구, 칼 쓰는 여잔 싫다잖아.
모하소, 라희를 안아준다. 라희, “엄마..” 부르며 “와왕!!”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린다.
왕자실, 그런 라희를 한심해서 “쯧쯧.. 한심해빠진 것..” 하면서 보고.
모하소 : 우리 라희 애긴 줄 알았더니 다 컸구나. 어느새 사내가 눈에 들어오고..
씬10. 낙랑국, 회정관(懷情館) 숙소
추발소, 호동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있다.
추발소 : (호동의 팔을 묶어 주면서) 잘하셨습니다. 사신으로 오자마자, 사고부터 치구요.
호동 : 귀가 빠르시군요.
추발소 : 안들을래도, 벌써 궁 안에 소문이 파다-해서요. 나중에 최리의 딸이 공주가 되면 어쩌렵니까?
호동 : 최리는 왕굉 손에 죽을테니 그럴 일은 없겠죠.
추발소 : 세상일이란 언제나 변수가 있지요. 변수에 발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호동 : ..
씬11. 낙랑국, 왕검성 진양궁 왕굉 있는 방
왕굉, 최리의 등에 새겨진 ‘樂浪’ 두 글자를 바라보고 있다.
(인서트) 3부 씬41, 5부 씬32
왕굉, 최리의 옆에 무릎 꿇고 최리에게 단검을 넘겨받아 자신의 손바닥을 긋는다.
왕굉의 피가 사발에 담긴 최리의 피에 뚝,뚝.. 섞여든다.
최리와 왕굉의 등에 칼로 낙랑을 문신하던 모습.
최리 : 욕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백성들을 위해 피 흘리던 그 날을 정녕 잊으셨습니까?
왕굉 : (마음 흔들리지만) 상황이 변하면 사람도 변하지. 그게 인간에 본성이니.
최리 : 사람이 변하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왕굉 : 자네도 왕이 되고 싶은 건 마찬가지 아닌가?
최리 : 낙랑을 떠나죠, 제 식솔들 다 데리고. 영원히 이 땅을 떠나 매시달로 가겠습니다.
왕굉 : ..
최리 : 유헌을 베던 그 칼끝을, 이제 형님과 내가 서로 겨눈다면 너무 슬프지 않습니까?
이놈이나·저놈이나, 칼 쥔 놈들은 다 똑같다.. 백성들에게 실망을 줘서야 되겠습니까.
왕굉 : ..
최리 : 정리 되는대로 떠나겠습니다.
최리, 문쪽으로 가려면, 왕굉,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왕굉 : 입게. (옷을 던진다)
최리 : (받는다)
왕굉 : 남들이 보면 뭐라겠나. 자네하고 나하고, 둘이 계집들처럼 옷 뜯고 싸웠다 하질 않겠어~ (웃는)
최리 : (왕굉의 농담에 안심이 된다. 웃는) 하긴요~ 몰골이 좀 그렇긴 하죠~
왕굉 : 자넨 아직 몸이 좋아서, 그러고 배 내놓고·등 내놓고 다니면, 궁안 시비들이 눈에 불 켜고 달려들어서 안돼. 하하-
최리 : 하하- 형님도 참.
씬12. 동, 방 앞
모양혜, 도찰과 부달, 안에서 들리는 왕굉과 최리의 웃음소리에 인상쓴다.
문 열리고, 욍굉의 옷 입은 최리 나온다.
최리 : (모양혜를 보며) 밖에 오래 서 계시게 했습니다.
모양혜 : 매시달에 숨어 살겠다구요?
최리 : 숨어 산다기 보다는.. 고향이니까요. 내 아버지·할아버지가 그러셨듯 넓은 바다로 나가 고래잡이나 하려구요.
모양혜 : .. (탐색하는 시선)
최리 : 형수님 의상이 멋지십니다. 진양궁 안주인의 위엄이 느껴지는데요. (미소)
모양혜 : 뭐.. 옷이라는게 주인 따라 가는 거라... 하하. (어색한 웃음)
씬13. 낙랑국, 왕검성 진양궁 왕굉 있는 방
모양혜, 왕굉을 닦달하고 있다.
모양혜 : 고래잡이 좋아한다!
왕굉 : 최리는 약속을 지키는 놈이야. 사내라구, 사내대장부.
모양혜 :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님이, 당신이랑, 나랑, 자실이랑 앉혀놓고 뭐라셨어?
왕굉 : 시대가 어수선하니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해라.
모양혜 : 그 앞에 말씀이 있었잖아! 나무가 가만있고자 하나, 바람이 가질 흔들고.
바다가 잠자코 있고자 해도 파도가 그냥 두질 않으니 조심해라.
왕굉 : 맞다! 으이구~ 이 똑똑한 귀염둥이~
왕굉, 엄지·검지로 모양혜의 볼을 잡고 흔든다.
모양혜 : (몸 빼고, 살벌하게) 매시달에 내려보내는 건, 다 잡은 고기를 강에 풀어놓는 거야.
월해청원서 고래 잡는다는 구실로, 군사 일으켜 언제고 이 궁으로 다시 돌아온다구.
왕굉 : (자신이 없어지는) 그런.. 사내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모양혜 : 백 번 최리 말대로 믿어주자. 고래 잡아, 기름 짜 팔고 산다고. 류지·하호개 같은 놈들이 가만있을 것 같아?
왕 해라, 왕 돼야한다. 죽 쒀서 개주냐. 월해청원 떨거지들이 최리를 들쑤시는 바람이구, 파도야.
왕굉 : ..
모양혜 : 나, 자실이 손에 죽기 싫거든!!
씬14. 낙랑국, 청해헌 마당
(자막) 청해헌, 최리의 저택
최리, 류지와 하호개, 마조를 비롯해 가신들, 종복, 시비들 다 모아놓고 월해청원으로 간다는 이야기하는.
한쪽에 모하소와 왕자실, 서있다.
최리 : 짐 꾸리는 대로 매시달로 떠난다.
류지 : !
하호개 : 말도 안됩니다!
최리 : 나를 권력에 눈 먼 추잡한 놈으로 만들지 마라.
마조 : 이미 고구려에서도 장군님을 낙랑국 왕으로 알고 있는데. 백성들도 그리 아는데. 이리 매시달로 떠나실 순 없습니다.
최리 : 왕굉 대장군과 내가 싸운다면.. 낙랑국을 내가 가질 수 있겠나?
하호개 : 당연하죠!
류지 : 힘든 싸움이기는 해도.. 그러실 수 있습니다.
최리 : 아니. 나도, 욍굉 대장군도 낙랑국을 갖지 못한다.
마조 : 그럼 누가 갖는단 말입니까!
최리 : 고구려 왕 무휼. 대무신왕이 내게 면복을 주었을 때.. 이미 나는 그자에 속마음을 읽었다.
욍굉 대장군과 내가 서로 싸우게 하고.. 낙랑국을 갖겠다고 치는, 무휼의 장단에 놀아나서는 안된다.
하호개 : 장군!
최리 : 나와 함께 고래를 잡기 싫다면 떠나라. 누구든 말리지 않겠다.
왕자실 : .. (남편을 바라본다)
씬15. 청해헌, 최리의 서재
최리, 의자에 앉아있다.
모하소, 화로에서 차주전자를 집어 들고 가져온다.
모하소 : (선 자세로 차 따라주며) 잘 생각하셨어요. (주전자 내려놓고)
최리 : 고래기름 끓이는 냄새가 고약한데.. 그 냄샐 다시 맞게 해 미안하네.
모하소 : 그 냄새가 아무리 역한들, 피냄새만 할까요. 더 이상, 전쟁은..
최리 : (본다)
모하소 : 당신이 왕이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치만 같은 이유로.. 왕위를 왕굉 대장군에게 넘길 줄 아는 당신이 내겐 더 근사해보여요.
모하소, 최리의 뒤로 돌아가 어깨에 살며시 손을 내려놓는다.
최리 : (모하소의 손을 잡는다) 고맙다.. 모하소야.
최리, 모하소의 손바닥에 입 맞춘다.
씬16. 청해헌, 왕자실의 침소
왕자실과 류지, 하호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호개 : 매시달로 내려가면 만사 꽝입니다. 오늘밤이라도 왕굉을 덮치죠.
류지 : 무슨 수로? 우리 군사들은 고구려 국경에 나가 있는데.
딸딸 긁어 간신히 오백, 진양궁 안팎에 진치고 있는 영호장원 군사 삼천을 칠 수 있겠나?
하호개 : 한 놈이 여섯 놈만 재껴주면 되네요. 죽기·살기로 붙어보는 거죠, 제길.
류지 : (답답한) 명분이 뭐냔 말이지! 한 놈이 죽기·살기루 여섯을 재끼려면 군사들에게 목숨 받칠 명분을 줘야지!
고작, 왕위를 뺏자! 이런 걸로 누가 자기 목숨을 걸어!
왕자실 : ..
류지 : (왕자실을 본다) 마님께서 나서주셔야 합니다.
왕자실 : 내 손에 오라비의 피를 묻히라?
류지 : 마님이 계신 자리가 그렇습니다. 친정 오라버니의 피를 보시든, 주군의 피를 보시든.
왕자실 : 호호호- 호호호-
류지와 하호개, 웃음을 터트리는 왕자실을 뜨악하게 본다.
왕자실 : (멈추고, 비웃는 듯한) 듣고 보니, 참 더러운 자릴세. 할 수 없지. 자네들이 손에 코 묻히기 싫다니 내 손으로 해 줄 밖에.
씬17. 낙랑국, 왕검성 진양궁 대위전(大爲殿) (밤)
칠지등이 여기저기 밝혀져 있다. 유헌의 시절과는 다르게 꾸며진 색조.
왕굉과 모양혜, 왕좌를 보고 있다.
왕굉, 단 위를 올라가 왕좌에 앉는다.
모양혜 : 기분이 어때?
왕굉 : 좋네. 모든게 발 아래로 보이고. 이게 권력의 맛인가.. 양혜야, 너도 올라와봐라.
모양혜 : 됐어.
왕굉 : 둘이 앉아도 충분한데.
모양혜 : 그 자리는 아무도 앉을 수 없습니다. 모양혜도·최리도, 감히 그 단 조차 밟을 수 없는.
오직 왕굉 대왕의 자리옵니다. (읍한다)
왕굉 : 왜 그러나.. 갑자기.
모양혜 : 마음을 굳히십시오. 폐하의 발아래서, 그 자리를 위협하는 최리를 그냥 둬서는 안됩니다.
왕굉 : ..
모양혜 : .. (왕굉을 본다)
왕굉 : 죽이자.
모양혜 : 어디서? 매시달 가는 길? 건 안돼. 싸움에 능한 자들이라, 도망갈 길 있는 곳에서는..
씬18. 왕자실의 침소/진양궁 대위전
류지 : 언제 하시겠습니까?
왕자실 : 나라 밖에서.
모양혜 : (OL) 광무제를 만나러 가는 배 안에서.
왕자실 : 동모현으로 가는 배 안에서.
모양혜 : 이목을 피해야 하니까.
왕자실 : (OL) 백성들이 우리 장군을 의심하게 해서는 안되니까.
모양혜 : 배에서 갑자기 죽은 걸로. 아님 실족해서 바다에 빠졌든. 풍랑이 일어 큰 파도에 쓸렸든.
왕자실 : (OL) 칼을 써서는 안되네, 흔적이 남을 테니. 배안에서 진심통(眞心痛)이 일어나 죽은 걸로.
왕굉 : 배에 어떻게 태우지? 매시달로 간다는 인간을?
모양혜 : .. (생각하는)
류지 : 배에 무슨 명목으로 타시겠습니까?
왕자실 : .. (생각하는)
씬19. 낙랑국, 단군사당 안 (다음날/낮)
모하소, 석조화(石棗花)와 공양물을 단군 진영 앞에 바친다.
모하소 : 오다보니, 개울가에 석조화가 예쁘더라구요. (웃으며) 그이하고, 라희하고 다 같이 매시달로 가게 됐어요.
모하소, 석조화를 예쁘게 다시 꽃병에 꽂으며.
모하소 : 자명일.. 제 딸 자명일 잘 돌봐주세요.
동고비, 들어온다.
동고비 : 마님!!
모하소 : 왜? 짐 다 꾸렸다고, 오라 부르시더냐?
동고비 : 물길이 어디로 흐르는지 알아냈어요.
모하소 : 그래! 어디로!! 우리 자명이가 어디로 간거냐!
동고비 : 썰물·밀물 따라, 바람 따라 다르긴 해도. 겨울에 작은바우섬을 지나갔음 동모현이나 요동군.
아님 신소도국(臣蘇塗國)에 닿았을 거라고..
모하소 : 요동.. 신소도국.. 동모현..
동고비 : 예.
모하소 : 사람을 놓아봐라! 억만금이 들어도 좋으니, 사람을 풀어 그 세 곳에 삿갓배가 닿았는지.
자명이·일품이가 어디로 갔는지 찾아다오!
씬20. 낙랑국, 왕검성 일각
왕굉, 도찰과 부달을 데리고 말을 달린다. 청해헌으로 가는 길이다.
씬21. 낙랑국, 청해헌 마당
청해헌 식솔들, 짐을 꾸리고 있다.
소와 말에 수레와 마차를 연결하고. 짐을 싣는 종복, 시비들. 류지, 식솔들을 감독하고 있다.
왕굉과 도찰, 부달, 들어온다.
류지 : (왕굉을 본다, 반기며) 어쩐 일이십니까!
왕굉 : (꾸리는 짐들을 한번 보고) 만만치가 않군. 육백리 길인데 더 따뜻해지고 가도 될텐데 말야.
류지 : 주군께서 서두르라 하셔서요. (종복들에게) 왕굉 대장군님이시다!
낙랑국에 왕이 되실 분인데 예를 올리지 않고 뭣들 하느냐!
종복, 시비들 자리에 부복한다.
최리와 모하소, 왕자실, 안에서 서둘러 나온다. 모하소, 읍하고..
도찰과 부달, 최리와 부인들에게 읍하며 인사하고.
왕자실 : 오라버니 오셨습니까? (미소)
왕굉 : 응. 그래, 자실아. 짐 꾸린다 번잡하겠구나.
왕자실 : 맘 같아선 오라버니 대관식이라도 보고 가고 싶은데. 이이가.. (웃는)
최리 : 대낮이라 좀 그렇긴 한데. 형님하고 술 한잔 하고 갈 순 있겠군요. (사심없이 선하게 웃는다)
씬22. 청해헌, 최리의 서재
최리와 왕굉, 술을 마시고 있다.
직접 술을 따르는 모하소. 왕자실, 안주를 들고 들어온다.
최리 : (보는) 낙양에 같이 가자구요?
왕자실 : ! (올게 왔구나, 눈이 반짝 빛난다)
왕자실, 안주접시를 놓고 의자에 앉는다.
왕굉 : 외교 이런 거에 내가 약하잖은가. 광무제 만날 때, 자네가 있어 주는게 좋을 것 같아.
최리 : 광무제가 할 이야기라는 것이, 결국은 포로로 잡은 한족들 교환. 한족·조선족 사이에 태어난 혼혈2·3·4세 처리문제일텐데..
도찰이 함께 가면 큰 어려움은 없을 껍니다.
왕굉 : 그러지말고 함께 가자구.
왕자실 : 오라버니가 유헌을 죽인 일로, 광무제 만나기 껄끄러울 수밖에 없어요.
어찌됐건 광무제 유수와 유헌은 한 집안이니까요.
왕굉 : 그렇지! 자실이 말이 맞네. 나하고 광무제가 만나면 큰소리 난다니까.
최리 : .. (모하소를 본다)
모하소 : 낙양으로 가자면.. 배가 동모현에 닿나요?
최리 : 응.
모하소 : 가요. 가보고 싶어요. 당신을 따라 저도.. 그곳에 가보고 싶네요.
최리 : .. (모하소를 보는)
씬23. 청해헌, 왕자실의 침소
왕자실, 다탁 위에 손톱만한 금덩이 하나를 던진다. 치소, 서있고.
왕자실 : 백두옹하고 몽정차를 구해와라.
치소 : 차는 그렇다치고.. 백두옹은 왜요?
왕자실 : 내가 일일이 그것까지 설명해야 하느냐!
치소 : .. 죄송합니다.. 마님. (금덩이를 집는다)
왕자실 : 서둘러라. 배가 출발하기 전까지 반드시 구해야 하느니.
왕자실, 독한 눈빛으로 생각에 잠긴다.
씬24. 고구려, 국내성 대무신왕 집무실
대무신왕, 사신으로 갔다 온 호동, 추발소. 우나루, 을두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무신왕 : (호동에게) 그래, 낙랑국은 어떻더냐?
호동 : 벌써 농부들이 웃통을 열고 가래질에 논갈이를 하더군요. 달려도·달려도 끝없이 펼쳐진 논이 부러워서..
대무신왕 : ..
호동 : 아바마마께 그 땅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나루 : 좋겠다. 낙랑국 놈들. 뜨뜻한 남쪽에 태어난 덕에 배터지게 처먹겠구나. (호동에게) 그게 답니까?
호동 : 국경이 삼엄했고. 군사들 눈빛이 살아있었습니다.
을두지 : (본다)
호동 : 아바마마께 낙랑국을 드리기 쉽지 않을 듯 했습니다.
대무신왕 : ..
을두지 : 듣자니, 최리 대장군 딸에게 손을 대셨다구요?
호동 : 사신으로 간 소임을 잊고.. (대무신왕에게) 죄송합니다..
추발소 : 송구하옵니다, 폐하. 이 모두가 사신감독관인 소신의 불찰이옵니다.
우나루 : 최리 놈 딸이면.. 왕자실이 딸인데. 이쁩디까?
을두지 : 대장군.
우나루 : 왜 될성 싶은 나무 떡잎부터 푸르다구. 크면 지 에미 명성답게 미녀가 될지 궁금하잖아요.
아무리 화나도, 여자한테 손 올리면 안되죠. 더더군다나 예쁜 여자한테는. 흐흐~
을두지 : 대장군!!
호동 : 천하박색이었습니다. 국내성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못난이.
우나루 : 그럴 리가! 혹시 왕자실 딸 아니구, 딴 앨 본게 아닙니까?
호동 : 스승님!
대무신왕 : 하하하- (웃고) 내가 호동에게 상을 잘못 줬구나.
호동 : 예. 아바마마께서 상을 거둬주시면 좋겠습니다.
대무신왕 : (농담) 왕에게 여자란 말이다. 나라에 도움이 될 여자, 남자인 나를 즐겁게 할 여자. 둘 중 하나다.
도움이 된다면, 천하박색 아니라 쉰 떡이라도 달게 삼켜야 하는 법.
호동 : 비류나부의 송수지련은 아바마마께 쉰 떡입니까? 즐거움입니까?
을두지 : 왕자마마! 어찌 폐하께 그리 무례한 말씀을!
대무신왕 : (손 들어, 을두지를 저지시키고)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호동 : 수지련을 제2왕후로 들이는 혼례식을 취소해 주십시오.
대무신왕 : (본다)
호동 : (이미 뱉어낸 말이다. 내친걸음이라 밀어 붙이는) 그녀에게서.. 동생을 보지 않겠다 약조해주십시오.
대무신왕 : 언제 내가, 너더러 내 잠자리 간섭까지 하라했느냐?
호동 : (자리에 부복하고) 소자, 정적을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동생과 피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덮어둔다 해서 일어날 일이 비켜가는 것은 아니질 않습니까.
대무신왕 : ..
호동 : 송수지련으로 하여, 비류나부에 힘을 실어주지 마십시오.
대무신왕 : (추발소를 보고) 이제야 호동이 현실정치에 눈을 떴군. 잘 가르쳤네.
추발소 :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몰라 어정쩡하게) 황공하옵니다.. 폐하..
대무신왕 : (호동을 차갑게 본다) 나, 대무신왕 무휼은 네 아비이기 전에 고구려에 왕이다.
내가 누구를 취하든, 누구를 버리든 그 모든 건 고구려를 위해서다.
대무신왕,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씬25. 고구려, 국내성 수양전 후원
호동, 근심에 겨운 표정으로 걸어온다.
(을두지의 소리) : 왕자마마.
호동 : (돌아본다)
을두지 : 폐하 앞에서 그리 속마음을 보이는게 아닙니다.
호동 : 그대가 나를 버렸으니, 더는 날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을두지 : 스승은 아니나, 이 나라에 좌보로. 왕위 계승권을 두고, 고구려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아야하니까요.
호동 : (본다)
을두지 :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우십시오.
호동 : ..
을두지 : 어디까지 말하고, 어디까지 감출 것인지. 마음 가리는 법을 배우세요.
호동 : ..
을두지 : 세상에서 가장 힘 있는 말은 침묵입니다. 폐하께 배우십시오. 왕은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다스립니다.
호동 : ..
씬26. 고구려, 국내성 오선전 몽타주 (다른날/오후)
아미, 기왓장에 널어 말린 감꼭지를 거둔다.
술이, “으.. 시어” 코를 막고 작은 항아리에 든 식초를 커다란 청자 함지에 붓는다.
식초물에 황백, 사향, 푸른 감꼭지를(열매없이 꼭지만) 담근다.
시녀장, 한쪽에서 숯불 화로에 얹힌 약탕기에 박화중(흰꽃 등나무) 뿌리 달이는 것을 살피면서,
자기로 만든 절구에 견우자(牽牛子/나팔꽃씨)를 콩콩- 찧어 빻는다.
송매설수, 서서 그 모습을 무표정하게 보고 있다.
씬27. 고구려, 우나루의 저택 마당
우나루, 정복으로 차려입고 여랑을 기다리고 있다.
우나루 : 아직 다 안됐소? 이봐요, 공주!! 혼례식에 늦겠소!!
(여랑의 소리) : 가요, 가!!
한껏 화려하게 치장한 여랑 나온다.
여랑 : 여자랑, 남자가 치장하는 시간이 같아요. 보채긴 뭘 그리 보채요.
우나루 : 가 갈아입어요.
여랑 : 왜요?
우나루 : 공주가 새로 시집가오? 그게 뭐요, 요란하게. 좌우간 여자들은 누가 주인공인질 못가려.
언제고·어디서고 지가 주인공 안되믄 못참지.
여랑 : 이렇게라두 안하믄 나일 어떻게 숨겨요! 그대가 좋아하는 수지련처럼 탱탱한 열여덟두 아니구, 스물여덟두 아니구.
우나루 : 사람이 말이오. 남자나 여자나 수더분하게 세월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추해지질 않아요.
여랑 : 이봐요!
우나루 : (OL) 분칠하고, 옷 칠한다고 가는 시간을 잡아맬 수 있나? 느는 주름을 막을 수가 있나. 아니거덩. 못하는거거덩.
여랑 : 가기 싫음 말어!! 나 혼자 갈테니까!!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우나루 : 공주!! 공주마마! 같이 가요, 같이~
씬28. 고구려, 국내성 송수지련 침소
송수지련, 궁녀들의 도움을 얻어 혼례 예복 단장을 하고 있다.
문 열리고, 송매설수와 소반을 든 시녀장 들어온다.
소반 위에, 박화중뿌리 달인 약사발과 작은 종지 세 개에, 각각 식초에 절인 황백·사향·푸른 감꼭지 갈은 분말,
견우자 빻은 분말, 목단 뿌리 분말이 놓여 있다.
송매설수 : 예쁘구나. 혼례식이라 그런가, 눈이 부신걸.
수지련 : 여자는 평생 세 번 이쁘다지요. 혼인하는 날. 합방 끝내고 님에 품에 안겨 잠들었다 눈을 뜰 때.
아들을 낳아 처음 젖을 물릴 때.
송매설수 : 어려서도 야무지더니.. 아바님이 너를 여기 보내신 까닭이 있구나.
수지련 : 과찬이세요, 형님.
송매설수 : 형님? 하하하- 하하- (웃고)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래, 즐기렴. 오늘은 수지련 너의 날이니.
한껏 즐거운 것도 좋겠지. (시녀장에게) 올려라.
시녀장 : 예, 마마. (다탁에 소반 놓는)
수지련 : (본다) 무엇입니까?
송매설수 : 너한테 필요한 것들이다.
수지련 : (얼굴을 가져가다 코끝을 찡그린다) 이.. 시큼한 냄샌?
시녀장 : (수지련에게) 탕약은 박화중 뿌리옵고, (종지를 보며) 식초에 절인 황백·사향·푸른 감꼭지. 견우자 가루.
목단 뿌리 말려 간 것이옵니다.
송매설수 : 어렵게 구한 것들이다. 먹어라.
수지련 : 저를 죽이려구요!
송매설수 : 널 살리려는게다.
수지련 : (소반을 들어 시녀장에게 끼얹는다) 네 년이나 처먹거라!
시녀장 : 왕후마마께오서 명하시면.. 비상인들 못먹겠사옵니까. 다만 이 년, 남자를 모르는데 피임약은 먹어 뭣하겠사옵니까.
수지련 : (송매설수에게) 치졸합니다!
송매설수 : 아둔한 것. 널 살리려 한단 내 말뜻을 못 알아듣는구나. (시녀장에게) 다시 가져오라.
시녀장 : 예, 마마 (읍하고, 몸단장 시키던 궁녀들에게) 썩- 물러가 있어라.
궁녀 : 예..
시녀장과 궁녀들 뒷걸음질 쳐서 물러난다.
씬29. 고구려, 국내성 수양전 호동의 침소
호동, 매고의 도움을 얻어 예복으로 입는다.
씬30. 고구려, 국내성 편수전 대무신왕의 침소
대무신왕, 내시장과 내시들의 도움을 얻어 예복을 갈아입는다.
씬31. 고구려, 국내성 송수지련 침소
송매설수, 다탁 앞에 앉아 있고. 수지련, 침상에 걸터앉아 있다.
수지련 : 그렇게 내가 겁납니까? 언니가 뒷방 늙은이로 밀려날까봐.
송매설수 : 넌, 남자를 믿니?
수지련 : 네. 그이를 믿어요.
송매설수 : 아니지. 넌, 너를 믿겠지. 아직 시들지 않은 미모와 네 젊음을. 누구도 네 품에서 녹일 수 있다, 믿는 거겠지.
수지련 : 그럼 안됩니까?
송매설수 : (회한에 잠겨) 안될껀 없지. 나도 그랬으니.. (냉정하게) 왕을 믿지 마라. 대무신왕 무휼은 더더욱 믿어선 안된다.
수지련 : 언니가 실패했다고, 나까지 그러란 법은 없어요.
송매설수 : 왕이란 자기 자식도 죽일 수 있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족속이지. 그런 인간이 나나, 너 하나 못 죽일까?
수지련 : 그이의 마음을 얻어 내죠, 반드시.
송매설수 : .. 부럽긴 하구나. 그리 팔팔한 자신감이..
수지련 : .. (본다)
송매설수 : 너도 곧 알게 되겠지. 벽 같고, 얼음 같은 사내를 마음에 품고. 한 해, 두 해. 십년.. 이리 세월을 보내다 보면...
남는 건, 세상을 다 태울 것 같은 증오심뿐임을..
수지련 : 그만하세요. 오늘이 내 혼례날이지, 장례날인가요? 너무 우중충하잖아요.
문 열리고, 시녀장 “마마..” 하면서 다시 소반을 들고 온다.
송매설수, 일어나 수지련의 침상으로 간다. 시녀장, 침상 옆 탁자에 소반 올려놓는다.
송매설수 : 먹어라.
수지련 : 싫습니다!
송매설수 : 만에 하나, 폐하가 욕정에 잠시 눈이 멀어 네 몸에 아이를 심는다면, 넌 그날로 죽은 목숨이다.
수지련 : 언니 손에 죽진 않겠습니다.
송매설수 : (피식- 웃고) 너 하나 죽이는게 뭐 그리 어려우랴. 한데 말이다, 내 손에 죽기 전에, 그이 손에 죽게 될께다.
수지련 : (본다)
송매설수 : 호동이 살아 있는 한, 네 몸에 심은 아이는 결코 세상 빛을 볼 수 없어.
(탕약 사발을 집어 든다) 내가 먹여주랴, 네 손으로 먹겠느냐?
수지련 : ..
수지련, 송매설수를 쏘아보지만 단호한 눈빛에 압도되는.
수지련, 작은 종지에 든 가루를 입에 털어 넣고 송매설수에게 약사발을 받아 마신다. (Dis)
씬32. 고구려, 국내성 주몽사당 앞/사당 안 (저녁)
동명성왕의 진영 걸려 있고. 깨끗하게 청소되어, 꽃과 술, 향 등이 바쳐져 있다.
예복을 입은 대무신왕과 수지련 서있다.
안팎으로 성장한 송매설수, 호동, 우나루, 여랑, 을두지, 추발소.. 등과 내시장과 시녀장, 시비들만 조촐하게 참석한.
각각, 혼례를 보는 심정이 다르다. 우나루를 빼고는 모두 심각한.
대무신왕 : 할아버지 동명성왕이시여. 할아버님에 손주, 무휼. 이 나이에 차비를 맞게 되어 고하러 왔습니다.
송매설수 : .. (서럽다. 눈치 채지 못하게 입술을 깨무는)
송매설수의 마음을 눈치 챈 시녀장, 걱정스럽게 송매설수를 본다.
대무신왕 : 할아버님에 또 다른 손주 며느리는 비류나부 출신에 수지련입니다. (수지련에게) 인사 드리라.
수지련 : (향로에 향을 한줌 넣고) 할아바님, 수지련이옵니다. 고구려에 정통 후계자가 없어, 나라 안이 시끄럽사옵니다.
부디, 이 몸에게 아들을 주시어... 고구려에 시름을 덜게 하소소.
대무신왕 : .. (눈썹이 꿈틀한다)
호동 : ..
대무신왕 : 가져오라.
내시장, 비단방석에 수지련이 쓸 작은 금관모(金冠帽)를 가져온다.
수지련, 무릎으로 땅을 짚고 몸을 낮춘다.
대무신왕, 수지련의 머리에 관모를 얹어준다.
내시장을 비롯한, 하객들 부복하고 만세를 외친다.
“만세!! 만세!! 만만세!! 위대하신 대무신왕 만세!! 천세, 천세, 천천세!! 차비마마 천천세!!”
송매설수와 여랑을 제외한 모두가 부복해 외친다. (호동까지)
내시장 : (일어나) 예식이 끝났으니 차비마마께 하례를 올리십시오.
수지련과 대무신왕, 마련된 의자에 앉는다.
송매설수, 앞으로 나온다.
송매설수 : (대무신왕에게) 하례 드리옵니다.
대무신왕 : 고맙군.
송매설수 : (자신의 손에 끼고 있던, 쌍가락지를 뽑아서 수지련에게 내민다) 축하하네, 아우님.
수지련 : 잘 간직하겠사옵니다, 마마. (일어나 받고, 읍한 후 다시 앉는다)
여랑, 앞으로 나온다. (서열대로 인사하는)
여랑 : (수지련에게) 감축드려요, 차비마마. (시큰둥하게 읍한다)
수지련 : 고맙소, 공주.
여랑 : .. (인상 구겨지고)
내시장 : 왕자마마, 하례이옵니다.
호동, 앞으로 나간다. 호동, 수지련 앞에 선다.
호동 : ..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대무신왕 : .. (호동을 본다)
을두지 : (조용히) 왕자마마..
호동 : (을두지를 한번 보고, 수지련에게) 하례 드리옵니다.. 어마마마.. (읍한다)
수지련 : 고맙구나, 호동아. 이 어미, 그 누구보다도 호동왕자에 축하가 고맙고 기쁘구나.
수지련, 방긋 웃으며 일어나 호동의 손을 잡는다. (Dis)
씬33. 고구려, 국내성 일각 (밤)
우나루와 여랑, 걸어오고 있다.
여랑 : 흥! 고맙소, 공주. 웃겨. 이마에 피두 안마른게.
우나루 : 어쩌거나 저쩌거나 이젠 언니 아니요. 나이가 중요한가? 서열이 중요하지.
군대생활을 안해 봐서, 선착순이 뭔지 여자들은 이핼 못한다니.
여랑 : 왜 자꾸 수지련을 싸구 돌아요? 반했어요?
우나루 : 남자야. 젊고 예쁜 여자 보면 좋지~
여랑 : (걸음 멈추고, 정원석에 앉는다)
우나루 : 화났소?
여랑 : 당신.. 제2부인 안 들여요? 내가 공주라서?
우나루 : (농담) 왜 화살을 나한테 돌리시나~ 무섭습니다요, 공주마마.
여랑 : 더 늦기 전에 아들을 낳아야죠. 난..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요.
우나루 : (여랑의 옆에 앉는다)
여랑 : 내일부터 젊고·튼튼한 여잘 찾아볼께요. 응, 물론 예쁜 여자로.
우나루 : 이대로가 좋아.
여랑 : (본다)
우나루 : 뭐든 말이오. 반대급부가 있는 거요. 하날 얻게 되면, 하날 잃게 되는 거.
다른 여자에게서 아일 얻으면.. 공줄 잃게 되겠지.
여랑 : 질투 안할께요.
우나루 : 허이구. 거짓말은. (진지하게) 전쟁터 누비면서 사람 모가지 졸라리 베고 다니다 보면 말이오.
산다는 게 뭔가. 죽는다는 게 뭔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게 뭔가.. 뭐, 그런 생각 들거든. 아인 없어도 좋질 않소?
여랑 : (짐짓) 헛소리 말구 딴 여자 얻어! 당신 지위에, 당신 재산에. 뭐가 부족해서 자식 하나 없이 살아!
우나루 : 여자가 재산하고 지위로 얻는 건가.
여랑 : 그럼?
우나루 : 긴 밤을 책임져 줄, 야력(夜力)이 있어야지. 공주 하나 건사하는데도 절절 매는데, 뭔 정력으로 딴 여잘 보나.
됐네, 이 사람아. (일어나서, 여랑에게 손 내민다) 갑시다, 그만.
여랑 : 싫어요...
씬34. 동, 다른 곳 (밤)
우나루, 여랑을 업고 간다. 여랑, 훌쩍- 거리며 눈물을 흘린다.
우나루 : 우는 거요?
여랑 : 춰서 콧물 나는 거예요.
우나루 : 난 괜찮다니까. 이대로가 좋아요, 이대로가.
여랑 : (조그맣게)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우나루의 등에 얼굴을 묻고, 목을 꽉- 껴안는다)
우나루 : 나한테 새삼 반했구만~ 흐흐~ 집에 얼른 갑시다! 내, 찐하게 안아줄테니!
우나루, 여랑을 잘 추슬러 업고 걸어간다.
씬35. 고구려, 국내성 오선전 송매설수의 침소 (밤)
송매설수, 잠자리 차림으로 누워있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여도 잠이 오질 않는다.
송매설수,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씬36. 고구려, 국내성 주몽사당 앞/사당 안 (밤)
송매설수, 걸어온다. 사당의 문이 열려져 있고, 불빛이 새어나온다.
송매설수 : ?
송매설수, 문 앞에 서서 보면 호동, 돗자리에 꿇어 앉아 있다.
송매설수 : (돌아서려다 마음 바꿔) 심란하냐?
호동 : (돌아보면 송매설수다) 마마보다야 덜 하겠지요.
송매설수 : 흐흥.. (웃는다)
호동 : 지난날은 절 죽여달라 비시더니, 오늘은 할아버지께 뭘 빌로 오셨습니까? 차비마말 죽여달라고?
송매설수 : .. (생각하는)
(인서트) 5부 씬21
송매설수 : 할아버지, 이 매설수에게 고구려에 정통성을 잇는 왕잘 주소소. 부여 첩년 아란에 자식 호동을 죽여주소소....
송매설수 : 별 걸 다 기억하고 있구나..
호동 : 워낙 충격이라 잊혀지지가 않는군요. (일어나서) 비켜드릴까요?
송매설수 : 그러든지.
호동, 일어나 문쪽으로.
송매설수 : 나하고 한 잔 하겠니?
호동 : (본다)
송매설수 : 나이는 좀 그렇다만. 너도 인생에 쓴맛, 단맛 다 봤으니. 술 맛 알 때도 되었지.
송매설수, 사당에 진설되어 있는 잔을 들어 한 잔 마신다.
그 잔에 자기병에 든 술을 따라, 호동에게 준다.
호동, 가만히 보다가 받아들고 술을 쭈욱- 마신다.
송매설수 : 오호~ 풍류남아가 될 자질이 보이는구나. 맛있냐?
호동 : 씁니다.
송매설수 : 그만 가봐라. 내 너하고 술 한잔 마셨다고, 친구가 되고픈 건 아니니.
호동 : 저 역시. 마마가 준 술 한잔 얻어 마셨다고. 지난날을 잊지 않습니다.
송매설수 : 흐흥.. (웃고)
호동 : (읍하고, 돌아선다)
송매설수 : (그 모습에 잠시 시선 두다, 다시 한잔을 단숨에 들이킨다)
씬37. 고구려, 국내성 송수지련의 침소 (밤)
탈의한 대무신왕과 수지련, 침상에 앉아 있다.
대무신왕, 수지련이 건네는 합환주를 한 잔 마시고, 잔을 침대 옆 탁자에 놓고 자리에 눕는다.
대무신왕 : 불꺼라.
수지련 : (밀촛불을 종모양의 촛불끄개로 끄고, 대무신왕 옆에 눕는다)
대무신왕 : (옆으로 돌아누워 자려고 하면)
수지련 : (대무신왕의 어깨를 만진다)
대무신왕 : 앞으로 혼자 밤 보내는 법을 배워라.
수지련 : 오늘은.. 혼인날이옵니다.
대무신왕 : (일어나 앉고) 너, 나를 즐겁게 해주고. 내 마음을 쉬게 해주겠다 했지?
수지련 : 예.. 마마.
대무신왕 : 즐겁기도 전에, 귀찮구나. (베개 하나를 바닥에 던진다) 거기서 자든지. 다른 방에 가 자든지.
수지련 : ..
씬38. 동, 수지련의 침소 (시간경과)
수지련, 바닥에 누워 있다가 살그머니 침상으로 올라온다.
대무신왕, 눈을 번쩍 뜨고 차갑게 본다.
수지련 : 새벽공기가 아직 찹니다. 화로도 꺼졌고, 폐하 추우실까봐요~
대무신왕 : .. (본다)
수지련 : 팔만 하나 빌려주소소~ 팔베개만 하고 얌전히 자오리다~ (방긋-웃는다)
대무신왕 : (피식- 웃고, 똑바로 누워 팔을 벌린다)
수지련 : (얼른 팔을 베고 달라붙어 눕는다) 따뜻하고, 행복하옵니다~
대무신왕 : .. (수지련이 벤 팔로 어깨를 안아준다)
수지련 : .. (미소 짓는)
씬39. 차차숭의 천막극장 안 (다른날/아침)
차차숭과 미추, 아이들에게 내빈관 공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차차숭 : 내빈관 공연이 이제 내일 밤이다.
미추 : 이제까지 여기에 쌀·보리 됫박 들고 오던 인간들이랑은 수준이 다르거든.
바다건너, 낙랑국 왕이 되실 분이라니까 실수하믄 죽는거 알지?
소소 : 낙랑국 왕이든, 황제폐하든, 됫박 들구 오는 사람 앞이든, 저 위에서 천 타다 떨어지믄 죽는 건 매한가진데요, 뭐.
미추 : 그러니 실수 말라구!
자명 : 매한가진 아니지~ 돈이 다르잖애~ (미추에게) 이번에 공연대금 많이 챙김 우리두 맛있는거 줌 사줄 꺼예요?
옷두 좀 사주구~
차차숭 : 난 말이다, 뿌쿠야. 니가 제일 걱정이거든. 제발 차차숭 희희낙락 기예단 이름에 먹칠만 마라. 어?
자명 : 누가 알아요~ 내가 내일 공연서 젤 잘할지.
차차숭 : 쯧쯧.. (혀 차고) 다들, 옷갈아 입고 준비해. 내빈관에 무대 세우고, 오늘 한번, 낼 아침에 한번 맞춰봐야 하니까.
(입구쪽으로)
일품 : .. (그 모습을 보다, 따라 나간다)
씬40. 차차숭의 천막극장, 식당
차차숭과 미추, 물건을 챙기고 있다가, 일품의 얘기에 깜짝 놀란다.
미추 : 행카이, 너너!! 그게 다 뭔 소리야! 공연 끝나고 낙랑으로 가보겠다니!
일품 : 말 그대로에요. 손님들한테 부탁해서, 그분들 돌아갈 때.. 저도 낙랑으로 따라가보려구요.
차차숭 : .. 이유가 뭐냐?
일품 : 알아봤어요, 뱃사람들한테, 한겨울에 여기 앞바다로 떠내려올라믄. 요동이나.. 낙랑, 직고에 물길 따라 온다고 했거든요.
미추 : 근데, 왜 하필 낙랑이야?
일품 : 그냥.. 낙랑이란 얘길 듣는 순간.. 가봐야겠다, 싶고. 나랑 뿌쿠가 회족이나 만주족 사람 같진 않아서.
차차숭 : 버린 부모 찾아서 뭘해. 귀찮아서 버리고. 짐 돼서 버리고. 버린 이유야 백가지·천가지겠지만. 뒤집어 보면 다 하나다.
니들 죽이려고 버린 거야.
일품 : 우리 뿌쿠가 만나고 싶대요.
미추 : 횡재야. 행카이야. 부모라고 다 부모 아니거든.
차차숭 : 맞아. 남보다 못한 것들. 인간에 탈 쓴 짐승 같은 것들도 많아. 여기 모여 있는 애들 보믄 몰라?
쌀 한 바가지에 지 자식 바꾼 거야. 우선 당장 자기 창자에 죽 한그릇 넣어보자구.
일품 : 어쨌든 공연만 끝나면.. 전, 가요. 제가 올 때까지 우리 뿌쿠 부탁드려요.
차차숭 : 모르겠다, 이 자식아! 니 동생 니가 돌보지. 왜 우리한테 귀찮은 혹을 떠 앵겨!
차차숭, 심통스럽게 짐을 꾸린다.
씬41. 목지둔, 내빈관/호곡의 상상 몽타주
(자막) 목지둔, 내빈관(來賓館)
공사가 한창이다. 땅바닥에 석탄가루를 파묻고 있다. 석탄가루, 고래기름을 촘촘히 묻는.
의자에 앉은 호곡, 진두지휘 하고. 대홍려 유릉, 다가온다.
유릉 : 이게 네가 말한 불바단가?
호곡 : 산시성서 가져온 매탄(煤炭) 삼백근(斤), 고래기름 사백곡(斛)을 파 묻었습니다.
유릉 : 그래서?
호곡 : 이 위에다 최리·욍굉 그 수하.. 조선족 놈들을 앉히고.
(무대가 설치될 중앙을 가리키며) 저기서 기예단 놈들이 공중곡예를 할껍니다.
최리와 왕굉, 류지, 하호개, 도찰과 부달, 마조 등의 장수 휘황하게 밝혀진 불빛 속에 앉아 공연을 본다.
차차숭을 비롯한 기예단, 공연을 한다.
일품과 자명, 천상지희를 하는 모습.
유릉 : .. (듣는)
호곡 : 기예단에 쪼그맣고 멍청한 계집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 애가 천을 타고 올라가 있을 때,
제가 그 계집애한테 불화살을 쏠 껍니다.
호곡, 자명을 향해 기름 먹인 불화살을 쏜다.
자명, 불화살을 맞고 땅으로 떨어진다. 동시에, 휘황하게 밝혀진 등불들이 일제히 화살을 맞고 땅바닥에 넘어진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유릉 : 흐흥.. 그럴 듯하군.
호곡 : 반드시.. 왕굉·최리 두 놈은 이 호곡의 손으로 끝냅니다. (살벌한 눈빛)
씬42. 낙랑국, 양포나루 앞 (아침)
배가 대기하고 있다. 왕굉의 휘하군사들 삼엄한 경계 속에 배에 물품들이 실린다.
최리와 모하소, 왕자실, 욍굉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동고비, 치소 등이 함께 가고. 류지와 하호개, 마조 서있다.
모하소 : 라희는?
왕자실 : 따라간다고 악을, 악을 쓰더니. 삐졌는지 나와 보지도 않네요.
왕굉의 군사들, 쌀섬을 싣는다.
카메라 쌀섬 안으로 들어가면 단도 한 자루를 들고 숨어 있는 라희.
씬43. 낙랑국, 진양궁 일각 (아침)
말이 대기하고 있다.
왕굉과 모양혜, 도찰과 부달 이야기 나누는.
왕굉 : (모양혜에게) 같이 안가겠소?
모양혜 : 집을 지켜야죠. 홀이 하고 (도찰을 보며) 우리 셋이, 월해청원 것들이 난동이라도 일으키면 박살을 내야하니까.
왕굉 : 보고 싶을 꺼요. 빨리 돌아오리다.
모양혜 : 반드시 최리를.. 아시죠? 여의치 않으면, 자실이.. 모하소도 함께요.
왕굉 : (고개 끄떡이고, 도찰을 보고) 왕후마마를 잘 보필하게.
도찰 : 이곳은 심려치 마시고 소기의 목적을 이루소소, 폐하.
부달 : 다녀오겠습니다.
도찰 : 한시도 폐하 옆을 비우지 마라. 일각도 폐하 옆을 떠서는 안되네.
부달 : 염려 놓고. 여기나 잘 지키십시오.
왕굉, 내시가 등을 꿇으면 밟고 말에 오른다.
부달과 휘하 장수들 말에 오른다.
달려가는 왕굉과 그 일행들.
씬44. 낙랑국, 양포나루 앞
왕굉과 일행들, 도착했다.
최리와 모하소, 왕자실, 인사하고.
왕굉 : 타지.
최리 : 예, 형님. (배 계단으로 가려는)
류지와 하호개, 마조, 최리를 호위하려는.
부달 : 자네들은 여기 남게.
최리 : .. (미간이 잠시 찌푸려진다)
왕자실 : ..
류지 :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 주군이 가시는데, 어찌 가노들이 모시지 않을 수가 있소.
욍굉 : 너희 주군은 걱정말고. 혹 있을지도 모르는 요동, 고구려에 도발이나 막아라.
류지 : 대장군!!
최리 : 그 말씀이 옳다. 대장군께서 왕궁을 떠나시니.. 고구려 무휼이 걱정된다.
군사들을 국경으로 이동시켜, 철저히 고구려를 경계토록 하라.
류지/하호개 : ..
최리 : (왕굉에게) 가시지요.
최리와 왕굉, 모하소 배 쪽으로 간다.
왕자실, 잠시 쳐져서 류지와 하호개와 이야기 나누는.
류지 : 마님!
왕자실 : 어쩔 수 없는 일. 모든 건 내 의지에. 하늘의 의지에 맡기고.
자네들은 모양혜와 영호장원을 지켜보게. 라희를 잘 돌보고.
류지 : 알겠습니다..
하호개 : 마님만 믿겠사옵니다.
씬45. 배, 왕자실의 방 안
왕자실, 몽정차를 주전자째 마시고 있다.
숯불화로가 들어와 있고. 그 위에 계속해서 찻주전자가 끓는다.
왕자실 : (한 주전자를 전부 큰 사발에 따라 마시고) 더.
치소 : 물고기두 아니고, 배 터져요, 마님! 벌써 세 주전자 쨉니다.
왕자실 : 내가 죽고 사는게, 몽정차에 달렸다. 더 가져와.
치소 : .. (찻주전자를 가져온다)
씬46. 배, 왕굉의 방 (밤)
왕굉과 부달 앉아 있다.
부달 : 최리를 부를까요?
왕굉 : .. (눈 감고 생각한다)
부달 : 폐하!
왕굉 : (눈 뜨고) 데려오라.
씬47. 바다에 떠가는 배 한 척 (밤)
어두운 밤바다에 최리와 왕굉을 실은 배 한척이 지나간다.
씬48. 배, 식품 저장고 (밤)
쌓아놓은 쌀가마니 중 하나에서 단도가 삐죽-나오고, 가마니가 찢어진다.
라희, 툭- 굴러 나온다.
라희 : 아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자기들끼리만 낙양 구경 할려구. 흥! (헤쭉- 웃는다)
씬49. 배, 복도 (밤)
최리와 모하소, 부달을 따라 걸어온다.
씬50. 배, 왕자실의 선실 (밤)
왕자실, 옷을 갈아입고 있다. 다탁 위에 술주전자가 놓여있다.
치소, 문 열고 들어온다.
치소 : 주인 나으리를 왕굉 대장군께서 부르셨습니다.
왕자실 : !! 이리 빨리!!
왕자실, 품에서 백두옹이 담긴 주머니를 꺼내 술 주전자 뚜껑을 열고 약을 붓는다.
치소 : 마님!! 백두옹을!! 독약을 왜 거따가!
왕자실 : 지금부터는 너에게 달렸다. 치소야, 네가 정신을 못 차리면.. 나도.. 내 남편도.. 월해청원 식구들 모두가 죽는다.
치소 : 마님.. 이 년, 무섭습니다..
왕자실 : 나도 무섭다.
왕자실, 은저를 집어 술을 휘젓는다. 은저의 색이 새까맣게 변한다.
왕자실, 비장하고 독기 어린 표정으로 은저를 보는 모습에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