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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10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0.06.21|조회수694 목록 댓글 0

[가문의 영광] 10

 

 

 

 

 

 

 

 

 

 

#.1 씬. 희원 앞 길.(낮)

 

호수를 옆으로 끼고 있는 나무가 쭉 늘어서 있는 길. 

단아, 무심한 듯 생각에 잠겨 걸어가고 있다.

뒤에서 다가오는 강석의 차. 

단아, 강석의 차를 의식하지 못하고 걸으면서 호수를 바라본다.

 

강석 : (단아의 옆을 스치며 백미러로 단아를 보면서, 잠시 차를 세울까 망설이는 느낌으로.

       저 뒤에서 단아의 뒤로 뛰어오는 현규의 모습이 백미러로 보인다)

 

현규, 뛰어와서 단아의 옆에 서서 나란히 걷는다. 

강석, 엑셀을 밟아 차의 속도를 높이며 달려 나간다.

 

 

#.2 씬. 강석의 집 거실.(낮)

 

최선생, 흥분해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다.

 

최선생 : 이건 테러예요, 테러. 9.11만 테러가 아니라구요, 사모님.

영자 : (두 손을 비비며 어쩔 줄 모르는) 아니, 걔가 아침을 덜 먹고 나가 속이 허해 그랬나 왜 그랬대. 정말.

최선생 : 속이 허하면 사람이 돕니까?

영자 : 아이고, 최선생님도, 말씀이 너무 심하시다. 우리 애도 뭔가 꼬인 게 있으니까 그런 거겠죠.

최선생 : 아니, 꼬이면 꼬였지 왜 그 댁 아가씨한테 테러를 하냐구요?

영자 : 우리 애가 좀 까칠한 구석은 있어도 막가는 애는 아니거든요. 뭔가 사정이.....

최선생 : 사정은 옘병할.... (내가 어쩌다 이런 말을 찔끔하고)

영자 : 어머, 어머, 최선생님도 그런 말씀 하실 줄 아세요? 너무 인간적이시다.

최선생 : 지금 저 인간적인거 논하실 계젭니까? 지금 이 사태의 심각성을 너무 인식 못하시는거 같은데요. 

         사모님? 저 이 바닥에서 신용 하나로 버텨온 사람입니다. 

         오늘 같은 이 중차대한 사건은 제 신용에 어마 어마한 타격을 입히신 거거든요.

 

초인종 울리고, 아줌마 얼른 부엌에서 나와 인터폰 받는.

 

아줌마 : 아드님이세요.

영자 : 우리 애 들어오나 보네요. 우리 애 들어오면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시고.

최선생 : 듣긴 뭘 듣습니까? 이건 누구 사정을 듣고 말고 해서 해결 될 일이 아니라구요.

          그 댁 사모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가 그동안 얼마나 귀가 닳도록 말씀 드렸어요? 

          그 사모님 입 한번 뻥끗하신 걸로 노블레스 클럽에서 제외되신 사모님들이 어디 한 두 분인 줄 아세요?

영자 : 그러니까 방법을 찾아봐야죠? 제가 뭘로 사죄 인사를 드리면 될까요? 

       그 사모님 청자 좋아하신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강석, 들어오는.

 

최선생 : (강석을 노려보는)

영자 : (얼른 일어나서 강석 앞으로 달려가는, 강석의 어깨를 때리는 시늉하면서) 

       아니, 어쩌자고, 그 귀한 댁 따님한테 그런 실례를 했어? 

       왜 점심 먹은 게 안 좋았어? 속이 안 좋아서 그랬던 거야?

강석 : (최선생에게 인사하며) 오셨습니까?

최선생 : (팩 토라지는 느낌으로 외면하는)

영자 : 지금 최선생님, 심정이 심정이 아니셔. 그 댁 사모님께서 얼마나 역정을 내시던지....

최선생 : (O.L) 이사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이 너무 없으신 거 같아요.

강석 : (다가와 서는) 저는 생각이 없고, 그 아가씬 머리가 없더군요.

최선생 : (기가 막혀 올려다보는) 무, 무슨 그런. 오늘 이사장님이 한 짓 그 댁으로 봐선 테러 수준이에요. 

         감히 어떻게 그 댁 따님께.

강석 : 최선생님?

최선생 : (삐쳐서 곱지 않게) 네?

강석 : 대한민국 안에서 저희 어머니만큼 최선생님께 후한 사례비 드리는 분 있으십니까?

최선생 : 아니, 품위 없이 무슨 돈 얘길 하고 그러십니까? 지금 제가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게.....

강석 : (O.L) 그런 감히라는 말 같은 건 자제하셔야죠.

최선생 : 네? 지금 무슨 말을?

강석 : 그 아가씨도 품위 어쩌고 떠들어대는 통에 오늘 같은 테러를 당한 거거든요. 

       돈이 힘인 세상에서 난 돈 우습게 본다, 그러는 거 눈 가리고 아옹하는 짓거리 아닙니까?

최선생 : (헉 숨이 막히며) 짓, 짓거리. 이사장, 말씀 너무 험하게 하시는 거.....

강석 : 밀림에선 딱 한 놈이 왕이죠. 힘 센 놈.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딱 하나만 하면 되는 거구요. 무조건 힘 센 놈한테 복종하는 거.

최선생 : (눈만 꿈뻑이며) 무, 무슨 말씀이신지.....

강석 : 잘 생각해보세요. (영자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아 최선생 앞 쪽으로 세우며) 

       최선생님이 복종해야 되는 대상이 누군지. 그럼 감히니 어쩌니 하는 말씀 삼가시게 될 겁니다. 

       제 말씀 알아들으셨습니까?

최선생 : (강석의 기에 눌리는) 감히라고 했던 건 제가 실수로.....

강석 : (싸늘하게 미소 지으며) 앞으론 오늘 같은 규격 미달의 아가씨 갖다 붙이시는 일은 없으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그럼 말씀 나누다 가십시오. (돌아서서 올라가는)

최선생 : (물만 벌컥 벌컥 마시는)

영자 : (앉으며) 속 타세요? 왜 그렇게 물만 드세요?

 

 

#.3 씬. 강석의 방.(낮)

 

강석, 들어와서 웃옷을 벗어 던지고, 침대에 눕는. 두 팔로 머리를 괴는.

희원에서 마주 서있던 단아와 현규의 모습이 떠오르는.

 

강석 : (옆으로 얼굴을 돌려버리는)

 

 

#.4 씬. 커피숍.(낮)

 

혜주, 여종업원에게 계산하고 있는. 

현규, 들어오는.

 

혜주 : (현규를 보고 얼른 자리로 가서 앉는)

여종업원 : (의아하게) 안 가세요?

혜주 : 네? 네.

여종업원 : (혼잣말로) 뭐야? 무슨 찻값을 중간 계산까지 해. (현규에게) 1시간 늦었다.

현규 : 내일 1시간 내가 대신 해줄게. 데이트 좀 하느라 늦었다.

혜주 : (그런 현규를 물끄러미 보는)

현규 : 손님 너무 없다. 이러다 우리 알바 짤리는 거 아니냐?

여종업원 : (책 들고 나가면서) 저기 (눈으로 혜주 가리키며) 지금까지 마신 건 냈어.

현규 : (혜주 보고) 자주 오네요?

혜주 : .....

현규 : 오늘은 도서관 자리 좀 있을 텐데.

혜주 : 없어요, 자리.

현규 : 뭐 드려요?

혜주 : 치즈 케잌, 오렌지 쥬스하고, 과일 파르페 하고....

현규 : 굶었어요?

혜주 : 네?

현규 : 뭘 그렇게 잔뜩 시키냐구요?

혜주 : 알바 짤린다고 해서.....

현규 : (의아하게 보는) 지금 나 알바 짤릴까봐 매상 올려주는 거예요?

혜주 : 아니요. 굶었어요.

현규 : (혼잣말로, 케잌 챙기면서) 요즘 4차원 애들 너무 많아.

 

 

#.5 씬. 만기의 방.(낮)

 

만기, 혼자 바둑 두고 있으면, 동동 방 안을 떼굴떼굴 굴러다니고 있다.

 

만기 : (안경 너머로 동동을 보는) 뭐하는 게냐?

동동 : 심심해서요.

만기 : 심심하면 책을 좀 보던가.

동동 : 책 보면 졸려요. (떼굴떼굴)

만기 : 제 에비 아들 놈 아니랄까봐.

동동 : 할아버지?

만기 : 왜?

동동 : 그런 말씀은 마음속으로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만기 : 들렸냐?

동동 : 네.

만기 : 미안하다. 난 안 들리는 줄 알았다.

동동 : 할아버지? 큰 아버지 방에 가서 컴퓨터 게임 좀 하고 오면 안돼요?

만기 : 그냥 떼굴떼굴 굴러 다니거라. 컴퓨터 게임보단 그게 건강에 좋다.

동동 : (더 심하게 굴러다니는)

만기 : 그러는 건 반항처럼 보인다.

단아E : 할아버지?

만기 : 오냐.

 

단아, 방문을 여는. 굴러다니는 동동 보는.

 

단아 : 다녀왔습니다. 동동이 뭐 하니?

만기 : 그 놈 체력 단련하고 있는 거다.

단아 : (미소 지으며 들어와 천 가방에 든 책 꺼내는) 동동아, 고모가 선물 사왔는데.

동동 : (얼른 일어나서 무릎걸음으로 다가오는) 선물요?

단아 : 동동이 심심할까봐 고모가 만화책 사왔는데.

동동 : 와. 역시 고모 밖에 없어요. (만화책 들어보면서 신났다) 저는요, 고모.

단아 : 응?

동동 : 이 담에 장가 갈 때요, 꼭 고모처럼 착하고 이쁜 여자한테 장가 갈 거예요.

단아 : (웃으며) 너무 고마워서 눈물나려고 한다, 고모.

 

 

#.6 씬. 석호의 사무실.(낮)

 

석호, 수영, 태영, 서류 보고 있는.

 

석호 : (서류 수영에게 주면서) 이천갑 회장한테 브리핑 할 자료는 이 정도면 될 거 같다.

태영 : 이천갑 회장은 뒷방 늙은이라니까요, 아버지. 문제는 이강석 그 인간 마음에 드느냐가 문제지.

석호 : 늙은 에비 앞에서 뒷방 늙은이 자꾸 찾는 거 아니다.

태영 : 아버지한테 드린 말씀도 아닌데요 뭐. 

       (그러다 갑자기 목이 콱 메는 느낌으로) 아버지, 정말 왜 그러세요?

석호 : (의아하게 보는) 내가 뭘?

수영 : 너 왜 그래?

태영 : 아버지, 별 것도 아닌 말씀에 걸려하시는 게 너무 가슴이 메어 와서 그렇잖아. 아버지?

석호 : 왜?

태영 : 전 알아요. 아버지 마음.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다 서럽고, 고깝고 그러시죠? 

       그게 다 마음이 허해서 그러신 거예요. (눈물까지 글썽이며) 그러지 마세요, 아버지. 

       이럴 때일수록 마음 굳게 잡수셔야지. 그렇게 약해지시면 안돼요. 

       에이, 왜 이렇게 눈물이 나냐. (뛰쳐나가는)

석호 : (어이가 없고) 쟤가 대학 때 연극 서클에 좀 있었지?

수영 : (보고, 미소 지으며) 대사 있는 역은 맡은 적 없는 걸로 아는데요.

석호 : 그 한을 풀려나보다.

 

 

#.7 씬. 회사 로비.(낮)

 

석호, 수영, 태영, 걸어오는.

 

석호 : 수고들 했다, 먼저 들어들 가거라.

수영 : 약속 있으세요?

석호 : 그래.

태영 : 아버지?

석호 : 왜 또?

태영 : 좋은 시간 보내시라구요.

석호 : (걸어가는)

 

 

#.8 씬. 종가집 마당.(낮)

 

수영, 태영 들어오는.

 

태영 : 우리 모른 척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수영 : 또 무슨 소리냐?

태영 : 이영인 실장님 편찮으신 거 알면서 아무것도 안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말이야. 

       아는 척 하는 것도 그렇긴 하지만.

수영 : 이영인 실장님이 진짜 편찮으신 게 확실한 것도 아니잖냐?

태영 : 형은, 아버지 아까 하시는 거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수영 : 아까 뭐?

태영 : 뒷방 늙은이란 말에 울컥 하시는 거 봤잖아?

수영 : 언제 울컥 하셨는데? 네가 말끝마다 이천갑 회장 핑계로 뒷방 늙은이 늙은이 하니까

       듣기 거북해서 한 말씀 하신 게 전부잖아?

태영 : 바로 그거라구. 다른 때 같으면 아버지가 그러셨어? 

       내가 뭐라고 하든 너는 지껄여라, 나는 내 볼 일 본다, 그러신 분 아니냐구? 

       오늘따라 그러신 거 보면 심경에 변화가 있으신 거야. 

       사랑했던 여자가 죽고 나면 나는 팍 늙어버리겠구나. 인생 진짜 무지하게 허망하구나, 

       그런 생각 때문에 울컥 하신 거라니까.

수영 : 소설을 써라.

태영 : 형은 인생의 디테일을 너무 몰라. 내가 형보다 공부는 못했지만, 감성은 형보다 깊고 섬세하잖아?

       아버지의 슬픔을 이해하는 것도 감성이 살아있어야 느낄 수 있는 거거든.

 

 

#.9 씬. 만기의 방.(낮)

 

만기, 동동 삼국지 만화 보고 있는.

 

동동 : (만기 흘겨보는) 할아버지?

만기 : (만화만 보면서) 왜?

동동 : 아직 2권 다 안보셨어요?

만기 : 반도 못 봤다.

동동 : 무슨 만화를 그렇게 천천히 보세요?

만기 : 난 그렇게 본다.

동동 : 할아버지?

만기 : 왜?

동동 : 어른이 만화 보는 건 나쁜 거 아니에요?

만기 : 나쁜 거 아니다.

동동 : 저 2권 봐야 하는데요.

만기 : 3권부터 봐라. 나도 너한테 1권 양보하고 2권부터 보잖냐?

동동 : 3권부터 보면 얘기가 이어지지 않잖아요?

만기 : 그럼 기다려라.

동동 : 2권이 궁금하잖아요?

만기 : 아, 그 놈 참 시끄럽네. 독서에 방해 되니까.

 

태영, 문 여는.

 

태영 : 할아버지? 저희 다녀왔습니다.

수영 : 다녀왔습니다.

만기 : 그래.

태영 : (들어와서 만기와 동동을 번갈아보며) 할아버지 뭐하시니?

동동 : (팩하니) 아빤, 눈 없어?

만기 : 에비한테 그렇게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태영 : 것봐라, 넌 아빠한테 말 너무 함부로 하는 경향 있다고 했지?

동동 : 아빤, 눈 없으세요?

태영 : 할아버지? 만화책 보세요?

만기 : 본다.

태영 : 아니, 무슨 동동이 놈이 보는 만화책을 다 보세요?

만기 : 읽을만 하니 읽는다.

동동 : 나 2권 읽어야 하는데, 할아버지 반도 못 읽으셨대.

 

수영, 웃으면서 자기 방 쪽으로 움직이고.

 

태영 : (만기 앞에 턱 받치면서) 할아버지? 동동이가 2권 달라는데요.

만기 : 기다리라고 해라.

태영 : 기다리라신다.

동동 : 할아버지? 치사해요.

만기 : 어른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동동 : 할아버지, 치사하세요.

 

 

#.10 씬. 마루.(낮)

 

마당 장독대에서 장 퍼서 마루로 올라오는 삼월. 

태영, 히죽이면서 만기의 방에서 나오는.

 

삼월 : 뭐가 그렇게 재밌어?

태영 : 우리 할아버지요. 동동이 자식 때문에 카리스마에 영향 좀 받으시겠어요.

삼월 : 아직도 만화 가지고 동동이랑 티격이고 계셔?

태영 : 한치의 양보도 없는 명승분데요.

삼월 : (미소 지으며) 하과장 동동이 엄마하고 갈라선 건 안됐지만, 

       회장님 적적하신데 동동이가 말벗 돼 드리고 있는 건 다행이야.

태영 : 제가요, 할머니. 인생 허랑방탕하게 사는 거 같지만, 실속은 있는 놈이에요. 

       누가 우리 할아버지 노후에 저런 즐거움을 드리겠어요. 

       제가 그래도 동동이 자식을 낳아왔으니까 오늘 같은 재미가 있으신 거라니까요.

삼월 : 참 장한 일 했어.

태영 : 단아는요?

삼월 : 지 방에 있을 걸.

 

 

#.11 씬. 단아의 방.(낮)

 

단아, 바느질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 입으실 겨울 조끼를 누비고 있다. 

태영, 문 열고 들어오는.

 

태영 : 뭐하냐?

단아 : 바느질하잖아.

태영 : 넌 오빠가 왔는데, 내다보지도 않냐?

단아 : 들어오는 소리 들었어.

태영 : 오빠가 들어오면 버선발로 뛰어나와서 맞지는 못할망정.

단아 : 내가 오빠 마누라야?

태영 : (킥 웃고) 하긴, 버선발은 좀 그렇다. 야, 이거 누구 거냐?

단아 : 할아버지 겨울에 입으실 옷이야.

태영 : 난?

단아 : (보고)

태영 : 너 너무 하는 경향이 있드라. 할아버지 옷은 철철이 해 올리면서

       마누라도 없이 추운 겨울 맞을 오라비 생각은 눈꼽만치도 안하지?

단아 : 점점 더 왜 그래?

태영 : 나, 마누라 없이 맞을 겨울이 너무 무섭거든. 

       단아야? 응? 단아야? 오빠도 꽉 꽉 누빈 옷 한 벌 해주라.

단아 : 두루마기 입고 출근 할래?

태영 : 네가 해주면 못할 것도 없지. 야, 그것도 근사하겠다. 

       나같이 모던하게 생긴 인물이 한복 쫙 빼입고 출근하면 근사하겠지? 퓨전이 다른 게 아니잖냐?

단아 : 갖다 붙이기도 잘 한다.

태영 : 응? 응? 단아야? 나도 해줘, 나도 해줘, 잉?

단아 : 아, 징그러. 저리 못가.

태영 : 싫어, 싫어, 해준다고 할 때까지 안나갈 거야.

수영E : 단아야?

단아 : 네, 큰 오빠.

 

수영, 문 열고.

 

수영 : 한글 설치 CD 있니?

단아 : 네, 있어요. 왜요? 날아갔어요?

수영 : 오래된 컴퓨터라 그런지 자꾸 다운이 된다.

단아 : (얼른 책상 서랍 열고 CD 찾는데)

태영 : 해줘라, 응? 응?

수영 : 쟤 왜 또 저러고 있냐?

단아 : 몰라요. 병인가 봐요.

태영 : 해준다고 하라니까.

수영 : 뭘 저렇게 해달라는 거냐?

단아 : 자기 옷 해내라고 이 성화예요.

수영 : 옷?

단아 : 꽉 꽉 누빈 옷 한 벌 해내라구요.

수영 : (장난스럽게) 그래? 단아야?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나 먼저 해주면 안 되겠니?

단아 : (장난스럽게) 해드려요? 그럼 할아버지 옷 짓고 해드릴게요.

태영 : 뭐야? 형 왜 이래? 내가 먼저 손들었는데, 어디서 쌥치기를 하고 난리야?

 

단아가 CD 건네주면.

 

수영 : (웃으면서) 부탁한다, 단아야. (나가고)

태영 : (벌렁 드러누워서 발버둥치며) 나 밥 안 먹어. 안 먹어.

단아 : 잘됐네, 우리 쌀값 굳겠다.

 

 

#.12 씬. 강석의 집 전경.(밤)

 

 

#.13 씬. 천갑의 방.(밤)

 

천갑 옷 갈아입고 있는.

 

천갑 : (버럭) 그러니까 잘 골라서 가져다 대라니까. 괜히 왜 애 성질은 건드려?

영자 : (옷 받아들면서) 그래도 실속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야.

천갑 : 강석이 놈이 깽판 놨다면서 실속은 무슨 실속이야?

영자 : 최선생이 오늘 아주 찔끔해서 갔다니까. 

       감히 그런 집안에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냐 어쩌냐 최선생이 그러니까,

       강석이가 내 어깨를 잡아서 최선생 앞에 턱 내세우면서 그러는 거야. 복종을 하세요.

천갑 :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영자 : 그니까 그게 뭐라고 말이 더 긴데 내가 다 옮길 수가 없어.

       밀림 얘기도 하고, 힘센 놈 얘기도 하고, 복종 뭐라고 얘기도 하긴 했는데....

천갑 : 뭐라는 거야. 지금?

 

 

#.14 씬. 강석의 집 거실.(밤)

 

천갑, 런닝셔츠 바람으로 방에서 나오는, 영자 따라 나오면서.

 

영자 : 여보, 여보, 옷, 옷.

 

강석, 2층에서 내려오고 있는.

 

강석 : 다녀오셨어요? 공은 잘 맞으셨어요?

천갑 : 지금 공이 문제가 아니라. 너 깽판 쳤다면서?

강석 : (씩 웃고) 여자 애가 수준 미달이드라구요.

천갑 : 얌마, 세상에 네 눈에 차는 여자 없어. 적당히 좀 넘기지 성질은 왜 있는 대로 부려?

영자 : 그거 아니라까. 복종, 복종.

천갑 : 이 여자가 계속 왜 종치는 소리야?

영자 : 최선생이 강석이 쟤한테 당하고 갔다니까 그런다, 당신은.

       최선생 물만 연거푸 들이키고, 이사장 눈에 드는 아가씨 찾으려면 꽤 힘들겠네요, 그러면서 갔다니까.

천갑 : 그럼 이제 중매 안서겠다는 거 아냐? 그럼 제대로 깽판 친 거잖아?

영자 : 그게 아니라니까. 그래도 사모님하고 저하고 연이 있는데, 

       이사장 마음에 들 만한 아가씨를 알아봐드려야죠, 하고 갔다니까.

천갑 : 그래? (강석에게) 최선생한테 뭐라고 겁 준 거냐? 네 엄마는 연신 종치는 소리만 하고 있다.

강석 : 저 딴 소리 안했어요. 댁한테 누가 제일 큰 고객인지 잘 알아서 처신해라.

영자 : 어머, 얘 너 그런 말은 안했잖아? 밀림 얘기하고, 힘센 놈 얘기하고.

강석 : 그 말이 그 말인 거예요.

영자 : (천갑에게) 그 말이 그 말이래.

천갑 : 사오정이냐? 그거 유행 지난지가 언젠데.

영자 : 근데, 너 밥값까지 안낸 건 좀 너무 한 거야. 

       그 아가씨가 그것 때문에 집에 와서 울고불고 굉장치도 않았다드라.

       밥 값 얼마나 된다구 그걸 아껴? 사람 스케일이 있는 거지.

천갑 : 야, 그건 좀 그렇다. 밥값까지 안내준 건 치사하지 않냐?

강석 : 쓰레기로 모은 돈 어쩌고 하길래, 돈 쓰레기처럼 쓰기 싫다고 한 거예요.

천갑 : 뭐야? 뭐 그런 지지배가 다 있어.

강석 : (웃으며) 그런 지지배가 다 있드라구요.

천갑 : (강석 어깨 두드리며) 그런 지지배 만나고 다니느라 욕 봤다.

강석 : 네, 저 욕 봤어요.

영자 : 그나저나 난 걱정이야, 얘. 네 눈에 차는 여자가 있기나 할지 걱정이란 말이야.

강석 : 없으면 혼자 살죠 뭐.

영자 : 어머, 얘, 미쳤어, 미쳤어. (강석 때리면서) 너 그건 죄악이야, 죄악.

       너 같은 인물이 혼자 살면 상사병으로 죽을 여자 애가 한 둘이겠니? 그런 건 하지 말아야 해, 너.

강석 : (웃으면서) 아무래도 그렇겠죠?

천갑 : 그래, 그건 하지 말아야 해. 나도 젊었을 때, 마음에 차는 여자가 없어서 아예 혼자 살아볼까 그랬는데

       여자들이 가만 놔두질 않는 거야.

영자 : 맞다. 당신 그랬어. 우리 옆집에 식모 살던 걔 누구야. 

       은자, 걔 당신한테 목매고 매일 주인 몰래 양주병 챙겨주다가 잘렸잖아.

       은자만 그랬나, 그 옆집에 숙자, 채소 가게 애 봐주던 경자.

강석 : 아버지 좋아하시던 여자분들은 다 자 자 돌림인가봐요. 어머닌 영자.

천갑 : 듣고 보니 그렇다, 야.

영자 : 원래 식모들 이름에 자자가 좀 많아.

천갑 : 왜 자자만 있었나. 그 빨간 대문집 미숙이, 그 아랫집엔 영숙이였잖아.

강석 : 이젠 숙자 돌림 시작이세요?

천갑 : 내가 그만큼 여난이 심했다는 거야.

영자 : 내가 그 지지배들 다 물리치고 네 아버지 꿰차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넌 모를거다.

천갑 : 당신이 영숙이 머리채 다 뜯어놓은 적도 있었잖아?

영자 : 그것만, 미장원 시다바리하던 미자년은 팔목을 분질러놨잖아? 

       당신이 넝마 리어카 끌고 동네에 턱하니 나타나면 다들 고개를 요렇게 요렇게 빼고 침들을 잴잴 흘리면서. 

       당신이 리어카 끌고 언덕 올라오면 팔뚝에 알통이 울툴불퉁하니....

강석 : 미성년자 관람 불가로 넘어가시는 건 아니시죠?

천갑 : (의미심장한 미소로 강석 툭 치면서) 자식 눈치는. 

       에로 버전은 따로 있는데, 그건 사우나 가서 조용히 들려줄게.

영자 : (천갑 애교스럽게 때리면서) 미쳤어? 미쳤어? 

       (콧소리 심하게 넣으면서) 광에서 있었던 일 얘기해주면 안돼, 다앙신.

 

 

#.15 씬. 커피숍.(밤)

 

현규, 손님 없는 커피숍 지키고 앉아 책을 손에 들고 있다. 회상으로 이어지는.

 

희원에서의.

단아 : 난 그냥.....시간이 흘러가 주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현규 : .....

단아 :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게..... 볼 수 없는데도 잊혀지지 않고....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게.... 

       가끔은 서글프고....아파.

 

현규 : (회상에서 깨어나며, 고개를 돌리면)

혜주 : (현규를 보고 있다가 놀라서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책으로 고개를 숙이는)

현규 : (저 아이가 좀 의아하다) 또 뭐 줘요?

혜주 : 치즈 케잌.

현규 : 아니 무슨 치즈 케잌 네 개나 시켜요. 거의 먹지도 않으면서.

혜주 : 죄송해요.

현규 : (다가오는, 물 컵에 물 따라주는) 죄송할 건 없는데. 좀 그렇네요.

혜주 : 네?

현규 : 매일 누구 기다리고 있는 거 같긴 한데, 포기 할 땐 포기하는 게 좋아요.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는 사람은 있는 거잖아요?

혜주 : 네. (그러는데, 핸드폰 울리는) 응. 오빠? 학교. ...도서관. 공부해. 

       아직 공부 할 거 많이 남았어. 늦을 거야.

현규 : (돌아서서 자리로 돌아가는)

혜주 : 알았어, 너무 늦지 않을게. (눈은 끊임없이 현규를 따라가는)

 

 

#.16 씬. 영인의 아파트 거실.(밤)

 

영인, 석호 차를 마시고 있는.

 

영인 : 밥도 먹고, 차도 마셨으면 그만 가요.

석호 : 내일 현장 내려가서 이틀 정도 있다가 올 거야.

영인 : 잘 됐네.

석호 : (보면)

영인 : 그동안 일 처리해놓을게.

석호 : 몸도 안 좋은데 너무 과로 하지 말구.

영인 : 회사 일 말구.

석호 : (굳어져서 보는)

영인 : 선배 서울에 없을 때, 해치우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선배 나 수술 하는 거 보면 마음 그럴 거 아냐?

석호 : 영인아?

영인 : 선배,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질리는 표정 하지 마. 

       은주 기집애는 위험하다고 죽어도 지 병원에서 수술 안 시켜줄테니까 다른 병원에 갈 거야.

석호 : 서둘지 말자, 영인아.

영인 : (일어나며) 싫어. 더는 안 되겠어. 하루하루 시간 흘러가는 거 더는 못 견디겠다구.

       이렇게 미적이고 있는 거 내 성격에 안 맞아.

석호 : (일어나서, 영인의 손을 잡으며) 조금만 조금만 더.....

영인 : (와락 끌어안는) 미안해, 정말 많이 미안해. 선배, 좋아하니까, 아니 사랑하니까 해달라는 거 해주고 싶어.

       그런 마음 아주 없는 거 아니야. 그런데, 그것만은 못하겠어. 

       내가 이렇게 겁 많은 인간이라는 거, 나도 몰랐어. 근데, 나 정말 겁나서 그건, 그것만은 못하겠다, 선배. 

       그래서 선배가.....날 떠나겠다면....보내줄게. 이해해.

       이렇게 결정해버린 나, 용서하기 힘들 거야. 그래도 할 수 없어.

석호 : (망연히 서있는)

 

 

#.17 씬. 포장마차.(밤)

 

주정, 병도 떠들면서 들어오는.

 

병도 : 제발 여자답게 여자답게만 입어달라는 거지.

주정 : 알았다니까. 내가 아주 결심하고 입어본다니까 정말 말 많네.

 

그러다 구석에 앉아있는 석호를 발견한다. 

석호, 소주를 마시며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주정 : (병도 밀어내면서) 너 가라.

병도 : 왜? 한잔 더 하면서 내일 입을 의상에 대해 연구해봐야지?

주정 : 연구는 나 혼자 해볼 테니까 그만 가라.

병도 : 그래도 머리 하나보단 두 개가 났잖아?

주정 : 너랑 머리 대고 의논해봐야 불꽃 밖에 안 튀거든. 

       (발로 차서 내보내는) 내일 보자. (석호의 앞으로 와서 앉는)

석호 : (고개 드는) 고모?

주정 : 조카가 이런데도 와?

석호 : 집에 들어가려다 술 생각이 나서요.

주정 : (한 숨 쉬고) 아줌마, 여기 잔 하나 더 주세요.

 

주인 여자, 소주 잔 가져다 놓으면.

 

주정 : (자기 잔에 술 따르려고 하면)

석호 : (얼른 병 뺏어서 술 따라주는)

주정 : (물끄러미 보는) 조카는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석호 : 네?

주정 : 열 살도 한참 더 밑인 고모 자작 하는 것도 못 보는 거. 그 죽일 놈의 예의.

석호 : (쓰게 웃는) 그래도 어떻게 손 위 어른이 직접 술 따르시는 걸 봐요.

주정 : 그래서 도망도 못가는 거구?

석호 : (쓰게 웃는) 생겨 먹은 걸 그렇게 생겨 먹었는데 어쩌겠어요.

주정 : 고까운 적 없었어?

석호 : 네?

주정 : 막내 동생도 한참 막내 동생 뻘인 고모가 조카 조카하면서 강짜 놓을 때, 

       확 한번 때려줘 그런 적 없었냐구?

석호 : (쓸쓸하게 미소 지으며) 고모님한테 그런 맘을 왜 먹어요?

주정 : 나 진짜 신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조카가 고모님, 고모님 하면서 깍듯하게 존댓말 하는 거. 

       친구애들이 웃긴다고 비웃을 때, 나 창피한 것보단 신기한 게 더 많았어. 

       우리 조카는 정말 이상하다, 나 속으로 맨날 그랬다.

석호 : 그러셨어요. 신기할 것도 많네요. 항렬이 그런 걸.

주정 : 그거 신기하게 생각할 줄 알았으면, 오늘처럼 이렇게 혼자 술 마시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석호 :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주정 : (술병을 들어 석호의 잔을 채우려 하면)

석호 : (얼른 두 손으로 잔을 받쳐 드는)

주정 : (그런 석호를 애잔하게 보는) 어쩌니? 조카?

석호 : 네?

주정 : 예전엔 그냥 신기하기만 했는데, 지금은.....좀 슬프다.

석호 : (쓸쓸하게 미소 짓는)

 

 

#.18 씬. 마루.(밤)

 

석호, 주정, 올라오는.

삼월, 단아 방에서 나오는.

 

삼월 : 술들 했어?

주정 : 응. 할멈. 조카하고 정담 좀 나누면서 한잔 했어.

삼월 : 하사장이 고주망태 고모 만나서 고생 하셨겠구만.

주정 : 오빠. 저희 들어왔어요. 조카랑 같이 들어왔어요.

단아 : 늦었어요, 할머니. 들어가서 쉬세요.

석호 : (삼월에게) 주무세요. (자기 방으로 움직이는)

주정 : (단아에게) 네 아버지, 꿀 물 좀 타다 드려. 술 많이 했어.

단아 : 네.

 

 

#.19 씬. 삼월의 방.(밤)

 

삼월, 들어오면서.

 

삼월 : 요즘 하사장이 술이 늘었어.

 

조만, 베갯잇 꿰매면서 연신 바늘에 손을 찔리는.

 

조만 : 아야, (손가락 입에 물고)

삼월 : (앉으며) 무슨 베갯잇 하나 시치는데 밤을 새우누?

조만 : 난 왜 이렇게 바느질이 안 늘까요?

삼월 : 다른 건 늘구?

조만 : 할머닌.

삼월 : 참 희한한 종자다, 너두. 살림 귀신은 붙었는데, 손이 여물지 못하니.

조만 : 할머닌. (흑하고 손으로 얼굴 가리면서 흑흑거리며 우는)

삼월 : 밤에 청승스럽게 왜 울고 그래?

조만 : 할머닌 제 마음 모르세요? 세상에 제가 제일 부러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삼월 : 단아겠지 뭐.

조만 : 아시면서 제 아픈 데를 그렇게 찌르셔야겠어요? 

       단아는 공부만 했는데도, 바느질이며 음식이며 그냥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 났잖아요? 

       전 뭐냐구요? 제가 세상에 딴 욕심 있는 거 보셨어요? 오직 하나, 살림 잘하는 거, 

       그거 하나가 소원이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타고 났냐구요?

삼월 : 태생이 그런 걸 어쩌니?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사는 거지.

조만 : 할머닌 절대 제 마음 모르세요. (그러면서 이빨로 실 끓고 배게 삼월에게 건네는데, 

       베갯잇과 속이 연결 되지 않아서 쑥하고 빠진다)

삼월 : (딱하게 보고) 몇 땀은 속하고 연결을 해주라니까.

조만 : 하려고 했단 말이에요. (흑하고 울면서) 저는 저주 받은 운명이에요.

삼월 : 참 무슨 저주도 저런 놈의 저주가 다 있나.

 

 

#.20 씬. 석호의 방.(밤)

 

석호, 술에 취해 앉아 있다가. 핸드폰 들고 버튼 누르는.

 

석호 : 영인아? .....정 해야겠으면.....영인아? 아무 병원이나 가지 말고. 믿을만한 곳으로 가. 

       부탁할게, 영인아. 그것만.....내 말 좀 들어주라.

 

 

#.21 씬. 마루.(밤)

 

석호의 방 앞. 단아, 꿀물 그릇, 자리끼 들고 서있는.

 

단아 : (어두워지는) 아버지?

석호E : 그래.

 

 

#.22 씬. 석호의 방.(밤)

 

석호, 핸드폰 끄며 앉아있는. 단아 쟁반 받쳐 들고 들어오는.

 

단아 : (앉으며, 물그릇 들어 건네면서) 꿀물이에요.

석호 : 고맙구나. (받아 조금 마시는)

단아 : 죄송해요.

석호 : (보는)

단아 : 밖에서 전화 하시는 거 들었어요.

석호 : ......

단아 : 다...해보신 거예요? 하실 수 있는 거.....모두 해보신 거예요?

석호 : 그런 거 같구나. 그런데도 안 되겠다는구나.

단아 : .....

석호 : 내일 수술 할 모양이다.

단아 : .....

 

 

#.23 씬. 만기의 방.(밤)

 

만기, 안경 너머로 동동을 흘겨보고 있는.

 

동동 : (엎뎌서 만화책만 넘기고 있는)

만기 : 3권 안주냐?

동동 : 아직 안 읽었는데요.

만기 : 내일 학교 가야 하잖냐? 빨리 자야 일찍 일어나지.

동동 : 일찍 일어날 수 있어요.

만기 : 늦게 자는데 어떻게 일찍 일어나냐?

동동 : 할 수 있어요.

만기 : 자거라.

동동 : 이것만 다 읽구요.

만기 : 내가 아까부터 봤는데, 너 읽었던 데 또 읽고 또 읽고 그러잖냐?

동동 : 제 맘이예요.

만기 : 복수하는 게냐?

동동 : 아닌데요. 아, 관우가 진짜 멋있다.

만기 : 관우가 무슨 멋있는 일 했냐?

동동 : 나중에 보세요.

만기 : (동동 비유 맞추려고) 나도 유비, 장비, 관우 중에 관우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한다.

동동 : (건성으로) 네.

만기 : 할애비도 관우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한다니까.

동동 : 네.

만기 : 동동아?

동동 : 네.

만기 : 할애비도 너랑 같은 생각이라구?

동동 : 그런데요?

만기 : 할애비한테 빨리 3권주고 싶다는 생각 안 드냐?

동동 : 안 드는데요.

만기 : 지 에비는 저렇게 독한 구석이 없구만.

 

 

#.24 씬. 마루.(새벽)

 

태영, 세수하고 나오는. 

삼월 조전 의례 상 들고 하옹의 방 쪽으로 움직이면서.

 

삼월 : 이상하시네. 오늘은 기침이 왜 이리 늦으시나.

태영 : 할아버지, 아직 기침 안하셨어요?

삼월 : 어디가 편찮으신가.....(걱정스럽고)

 

 

#.25 씬. 만기의 방.(새벽)

 

태영, 조심스럽게 문 열면서.

 

태영 : 할아버지? 동동아? 

       (보면, 만기, 동동 만화책 3권을 둘이 잡고 잠들어 있다. 서로 뺏기지 않으려는 자세로)

       아니, 이게 무슨 야릇한 시추에이션인가.

단아 : (태영 뒤로 다가서면서) 할아버지?

태영 : 야, 단아야?

단아 : .....

태영 : 우리 할아버지 카리스마 물 건너가신 거 같지 않냐?

 

 

#.26 씬. 하옹의 방.(새벽)

 

만기, 석호, 수영, 태영, 동동, 주정. 단아. 삼월, 조만 조전 의례 올리고 있는.

 

만기 : (참으려고 하지만 하품이 나오고)

동동 :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는)

태영 : (옆으로 발길질 하는) 정중하게, 정중하게.

동동 : (큰 소리로) 할아버지 때문에 잠 못 잤단 말이야.

만기 : (헛기침 하는)

주정 : 오빠? 밤에 동동이 안 재우고 뭐 하셨대요?

 

 

#.27 씬. 만기의 방.(아침)

 

만기, 석호, 수영, 태영, 동동 각자 상 앞에 놓고 식사하고 있는.

 

동동 : (꾸벅꾸벅 졸고 있는)

태영 : (동동 쥐어박으며) 아예, 자라, 자.

동동 : 왜 때려? 할아버지가 3권 뺐으실까 봐....

석호 : (O.L 느낌으로, 만기 무안함 피하게 해주려고) 

       오늘 애들하고 이천갑회장하고 그 아들하고 같이 리조트 현장에 내려갈 계획입니다.

만기 : (끄덕이고) 있는 그대로만 보여주도록 하게.

태영 : 할아버지는. 물건을 팔 땐 포장을 해야죠. 없는 것도 있다고 덧붙일 마당에....

만기 : (보면)

태영 : 후려치자고 덤벼드는 인간들을 너무 순진하게 대하면 저희만 손해다, 

       제 말씀은 그거예요, 할아버지.

만기 : 이강석이라는 그 젊은 친구. 저는 천성이 야박한 장사칩니다, 그러더구나.

태영 : 언제요? 설마? 할아버지? 그 인간 따로 만나셨어요?

만기 : 천성이 장사치라고 말하는 친구한테 같이 셈을 하자고 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저 있는 그대로, 우리는 집을 짓는 사람들이다, 그것만 보여주도록 하거라.

석호 : 알겠습니다.

 

 

#.28 씬. 종가집 마당.(아침)

 

석호, 수영, 태영, 단아, 동동 걸어 나오는.

 

태영 : 이강석 걔 웃기네.

단아 : (강석이라는 말에 시선을 주는)

태영 : 형이 그렇게 만나자고 사정을 할 때는 개무시하드만.

석호 : 넌 동동이 앞에서 그게 무슨.

태영 : 따돌리드만. 할아버지가 만나자고 하니까 만나긴 했나보지. 

       자식 그래도 어른 어려운 건 아는 건가.

석호 : 어른 어려운 거 아는 친구가 천성 운운했겠냐?

태영 : 그렇죠 아버지? 그 자식 할아버지 앞에서 지 할 말 다 한거죠.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당신들이 별 수 있겠냐, 그랬던 거죠?

단아 : (표정 어둡고)

 

 

#.29 씬. 길.(아침)

 

단아 : (걸어다가다 동동을 보는) 뭐? 가출?

동동 : 네. 엄마 이사 간 데 찾아가려고 했어요.

단아 : 동동아?

동동 : 근데 안 되겠어요.

단아 : .....

동동 : 제가 가출하면 할아버지가 삼국지 차지하실 거잖아요.

단아 : (미소 지으며)

동동 : 고모 모르죠?

단아 : 뭘?

동동 : 우리 할아버지, 진짜 치사하세요.

단아 :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동동 : 저 잘 때, 몰래 불 켜고 3권 읽으시려고 하는 거 있죠. 그래서 저도 안잔 거예요.

단아 : (웃고) 어쨌든 다행이다, 우리 동동이 가출 안하게 되서.

 

 

#.30 씬. 길.(아침)

 

장기, 교통정리하고 있는데, 태영 차 그 옆에 서게 된다.

 

장기 : (안면이 있다고 경례 하면서)

태영 : (차창 내리는) 그 불독은 오늘 쉬는 날인가 봐요?

장기 : 오늘 집에 일이 있어서 못나왔는데요.

태영 : 집에? 무슨?

장기 : 글쎄요. 거기까진 제가 모르는데.

태영 : 아주 큰 일 있었으면 좋겠네. 쭉 못나오게. (신호 바뀌고 차 출발하는)

장기 : 저 양반도 정신이 아주 온전하다곤 볼 수 없지.

태영 : (운전하면서) 아. 그 불독 안보고 출근하니까 몇 년 묵은 체증이 다 뚫리네. 

       (그래도 조금 심심하긴 하다) 집에 무슨 일이야. 누가 돌아가셨나.....

 

 

#.31 씬. 길.(아침)

 

진아, 길 쪽으로 나와서 주유소 쪽으로 들어오라고 손 흔들고 있는. 

그러다 운전하는 수영의 차를 본다.

 

진아 : (반색하고, 손 흔드는데)

수영 : (운전하면서, 진아를 보는. 뒷자리에 눈을 감고 앉아있는 석호)

진아 : (손 흔드는데)

수영 : (그냥 운전해서 가버리는)

진아 : (서운한 표정으로 서 있는)

 

 

#.32 씬. 태백 길.(낮)

 

태영, 운전하고 그 옆에 수영 앉아있고. 

뒷좌석에 앉아있는 석호, 눈을 감고 있다.

 

태영 : (룸미러 보면서) 잘 쫓아오고 있는 건가?

수영 : (백미러 보면서) 쫓아오고 있어.

 

뒤에 천갑의 차 따라오고 있다.

 

태영 : (룸미러로 눈 감고 있는 석호 보면서. 작은 소리로) 아버지, 기분 영 아니시지?

수영 : 좋으실 일이 뭐가 있겠냐?

태영 : 회사 일 때문만은 아니라니까.

수영 : 조용히 운전이나 해라.

 

 

#.33 씬. 천갑의 차.(낮)

 

기사 운전하고 있고. 뒤에 천갑, 강석 나란히 앉아있는.

 

천갑 : (창 밖을 보면서) 경관이 아주 수려하다.

강석 : 네.

천갑 : 하회장님이 터는 제대로 잡으신 거 같다. 

       그 양반이 골수 선비처럼 그러시지만 장삿속은 타고나신 양반인 게야.

       우리나라에서 리조트, 그게 돈만 퍼먹는 애꿎은 사업이잖냐? 

       그런데도 이 큰 일을 벌인 거 보면, 돈이 어떻게 굴러다니는지 

       그 길목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거야, 그 노친네가. 

       리조트. 그게 땅 장사거든. 우선은 터를 널찍하게 잡아놓고 땅값이 오를 땔 기다리는 거.

강석 : 아마 그런 생각 못하고 시작하셨을 걸요.

천갑 : 왜? 뭐라고 그러디?

강석 : 고향 주민들의 혈세가 들어간 사업이 아니었으면 우리 힘 빌리자고 하진 않았을 거다 그러시던데요.

천갑 : 폼이지 뭐. 대기업 회장들 사업 잘못해서 검찰에 출두할 때 하는 레파토리 똑같잖냐?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그래서 공적자금으로 회사 살려주면, 뒤에서 뭐라는데. 

       지들이 나 없이 안 돼지. 그런단 말이다.

       국민 세금으로 지가 망쳐놓은 사업은 살려놓으면서 지들 돈은 절대 안 내놔. 때놈 심보가 따로 없는 거야.

       그런 면에선 우린 얼마나 쿨하냐? 돈 놓고 돈 먹겠다, 그거잖아? 사람이 솔직해야지 말이야.

 

 

#.34 씬. 공사 현장.(낮)

 

수영, 천갑과 강석에게 현장 설명하고 있는.

 

천갑 : 참 대단한 사업이긴 합니다 그려.

 

석호, 태영, 직원들과 같이 걸어가는.

 

천갑 : 건설로 명함을 찍었으면 이 정도는 벌여놔야 하는 거죠. 

       (석호에게) 선친께서 사업가적인 안목이 정말 뛰어나신거 같습니다.

석호 : (어색한 표정으로) 자식인 제가 보필을 잘못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천갑 : 아니, 무슨 그런 겸손의 말씀을. 사업 하다 보면, 해 뜨는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명성이 쓰러진 뒤에도 이만큼이라도 이끌어 오신 거 보면 대성의 뒷심도 어지간한 거 아니겠습니까?

태영 : (수영에게 들리게) 어르고 뺨치네, 아주.

수영 : (차갑게 보는)

태영 : 안 들리게 하잖아?

 

공사 현장의 인서트 씬들. 강석, 수영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모습들.

천갑, 강석, 석호, 앞서 걸어가면.

 

태영 : (수영에게) 쟤 알고 싶은 게 왜 저리 많아?

수영 : 만만한 친구가 아니다.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어.

태영 : 달리 이천갑 아들이겠어.

 

 

#.35 씬. 골프장.

 

천갑, 강석, 석호, 수영, 태영, 현장 직원 1,2,3 둘러보고 있는.

 

천갑 : 아, 이런 데가 서울 근방에만 있었어도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산데.

강석 : (수영에게) 회원권 판매는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수영 : 부도설이 난 뒤부턴 진척이 없는 상탭니다.

천갑 : 아, 그래요? 그건 염려 안하셔도 되는데. 저희가 참여를 했다는 소문만 돌면 너도 나도 덤벼들 겁니다.

       제가 아는 인맥만 동원해도 그쯤이야 뭐.

강석 : (싸늘하게 미소 지으며) 아버지? 그건 제휴가 결정 됐을 때 일이죠.

태영 : (수영의 귀에 대고) 저 자식 계속 저런 식으로 딴지 거는데, 진짜 새끼. 얄밉지?

수영 :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 나가는)

강석 : 오픈은 곧 가능한 건가요?

수영 : 네. 골프장 쪽엔 차질 사항이 없습니다.

태영 : 뭐 다른 쪽에도 큰 차질 사항이 있는 건 아니구요.

강석 : 그랬다면, 저희가 내려오는 일도 없었겠죠?

태영 : (찔끔하고)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이사장님.

강석 : (보면)

태영 : 아쉬운 쪽은 저희고, 그 쪽은 칼자루를 쥐고 계시니 저희가 큰 소리를 칠 입장은 아닙니다만.

       공사 자체엔 하늘을 우러러 정말 부끄럽지 않게 현재까지 진행 시켜왔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강석 : (싸늘하게 미소 짓는)

태영 : 물론 자금에 문제가 생겨서 오늘에 이르긴 했지만, 너무 후려 치시려고는 하지 마시라 제 말은.....

 

태영의 말에 천갑, 석호, 수영 긴장해서 돌아보는.

 

태영 : 탁 까놓고 말해서. 저희한테 큰 문제가 있었으면 같이 하자고 하지 않으셨을 거 아닙니까?

강석 : 그런데요?

태영 : 현장 보시면서 계속 뭔가 하자를 잡으시려고 하시는 거 같은데....

강석 : 당연한 거 아닙니까? 물건의 값을 정하려면 이리 저리 훑어봐야 하는 건.

태영 : 진짜 톡 까놓고 말해서 작정하고 포장 좀 하자고 들면 못했겠습니까? 아니, 그런 맘 없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님께서 장사치처럼 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와라, 하셔서 

       저희는 정말 있는 그대로 우리가 가진 거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있는 겁니다.

강석 : 그럼, 하회장님 말씀대로 하시면 되겠군요. 저희가 원하는 것도 그겁니다. (앞으로 걸어 나가는)

수영 : (태영 옆으로 다가와) 뭐하러 쓸데없는 말을 하냐?

태영 : 장사치라는 말로 기 좀 죽이려 했어, 됐어?

수영 : 스스로 한 말에 기 죽을 친구처럼 보이냐? (앞으로 걸어가는)

태영 : (혼잣말로) 그래, 난 아이큐 100도 안되는 천치다, 천치.

 

 

#.36 씬. 만기의 방.(낮)

 

만기, 병도 앉아있으면, 삼월, 조만, 찻상 들고 들어와서 각자 앞에 놓아주는.

 

만기 : 드시게.

병도 : 네.

만기 : 얘는 아직 준비가 안 된 거요?

삼월 : 금방 끝난다고 했습니다.

 

들어서는 주정. 꽃분홍 치마저고리에 머리에 꽃핀까지 꽂고 있다. 

모두 기겁을 하는 느낌으로.

 

병도 : 선, 선배.

주정 : 왜? 여자답게 해달라며?

조만 : 머리에 꽃 꽂는 건 맛 간 거잖아요? 고모 할머니?

주정 : 여성스럽잖아?

만기 : 이 놈의 자식.

주정 : 왜요? 오빠? 저는 일껏 생각하고 의상팀에서 제일로 화려한 옷까지 빌려왔는데.

병도 : 선배, 우리 어머니랑 할머니는 결혼할 여자 데려오는지 알고 계시거든.

주정 : 근데?

병도 : 지금 그건 춘심이잖아?

주정 : 나 이름도 바꿔야 하니? 하긴 주정이란 이름은 좀 그렇지? 

       그래, 뭐. 이왕 도와주는 거, 춘심이로 하자.

만기 : 장난 할 일이 따로 있지. 후배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제대로 해야지. 무슨 짓이냐?

주정 : 시골에 계신 어른들한테 눈높이 맞춘 건데요 뭐.

병도 : 우리 할머니, 엄마 그렇게 촌스럽지 않으시다 뭐.

만기 : (톤 높여서) 얼른 가서 제대로 하고 오지 못하냐?

주정 : (입 삐죽이며) 오빤. 왜 역정은 내고 그러신대요. (나가는, 삼월, 조만 쫓아나가고)

만기 : 면목이 없네.

병도 : 놀라긴 했지만, 저게 주정 선배 매력인 걸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 웃길 수 있는 재주 아무나 있나요.

       선배는 P.D로 들어올 게 아니라, 개그맨 시험 봤어야 하는 건데.

만기 : 그런데, 도움이 되긴 하겠나? 저런 물건을 데려가 봐야?

병도 : 아니, 선배가 어때서요? 어르신 그건 어르신이 선배의 진가를 잘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만기 :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닐세.

 

 

#.37 씬. 마루.(낮)

 

주정, 원피스 입고 치마 잡아당기며 나오는. 삼월, 조만 서있는.

 

삼월 : 그래, 보기 좋구만, 진작 좀 그렇게 입지. 왜 회장님 역정 나시겐 하누.

주정 : 나 이거 입사 면접 볼 때 입고 처음 입는 거란 말야. 그때 내가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알아.

조만 : 똑바로 걸으시면 되지, 넘어지긴 왜 넘어지세요?

주정 : 치마 입고 운동화 신니? 야, 병도야? 가자.

 

 

#.38 씬. 마당.(낮)

 

주정, 하이힐 신고 비틀비틀 하면서 걷는. 병도 얼른 부축하는.

 

병도 : 좀 낮은 거 없어?

주정 : 속이 시원하냐? 나한테 이 짓까지 시키니까 속이 시원하냐구?

병도 : 아니, 시원하진 않고, 눈물이 나려고 해.

주정 : 왜? 그동안 얻어터진 원수를 이렇게 갚으니까 여한이 없냐?

병도 : 선배가 날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 보니까. (손으로 입 가리면서) 눈물이 앞을 가려서.

주정 : 꼴값을 하시와요.

 

 

#.39 씬. 만기의 방.(낮)

 

만기, 앉아있으면, 삼월 상을 들고 일어서는.

 

만기 : 떠났나?

삼월 : 네. 회장님. 주정이한텐 저만한 벗이 없다 싶네요.

만기 : 그렇게 보이시는가?

삼월 : 회장님도 그리 보셨으니 이런 일을 허락하신 거 아닌가요?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곤 하지만, 혼인할 사이란 거짓말을 하라고 허락하셨을 때는.....

만기 : 무슨 깊은 생각이 있어 그런 건 아니오. 

       그저, 속이 많이 허한 아이니 저런 벗이라도 옆에서 위안이 됐으면 싶어서지.

삼월 : 네. (미소 짓고 나가는)

 

 

#.40 씬. 마루.(낮)

 

삼월, 찻상 들고 나오면서.

 

삼월 : 회장님 그 깊으신 속내를 그 누가 다 알겠습니까. 제 얕은 속으론 저래라도 인연이 있었으면 싶네요.

 

 

#.41 씬. 남교수 사무실.(낮)

 

단아, 창 앞에 서있는, 남교수 들어오는.

 

남교수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단아 : (돌아보는)

남교수 :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단아 : ....

남교수 : (다가와 서는) 진하 생일 다가와서 그러는 거야?

단아 : ......한 1년만 살았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 가끔 해요.

남교수 : (보면)

단아 : 딱 1년만. 그럼 아이도 생겼을지 모르는데. 그럼 참 많이 의지가 됐을 텐데.

남교수 : 그런 생각 하지 마. 진하 그 녀석, 단아 너 정말 많이 생각해준 거야. 

          끝까지 같이 살아줄 수 없으니까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거라구. 그 녀석, 너 진짜 많이 사랑한 거야.

단아 : 조금만 덜 사랑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남교수 : 진하....아쉬울 거 없을 거야. 다 사랑하고 갔으니까. 

          네가 자꾸 진하 생각하는 거, 그 녀석 지 갈 길 못 가게 막고 있는 건지도 몰라.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간 사람 너무 많이 생각하는 거 저 세상 사람한테는 무거운 짐이다.

단아 : 생각이라는 게 생기기도 전에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가는 생명은 어떨까요?

남교수 : 무슨 말이니?

단아 : 생각이라는 게 없어도 슬프기야 하겠죠?

남교수 : (의아하게 보는)

단아 : (슬프게 창 밖을 바라보는)

 

 

#.42 씬. 골프장 일각.(낮)

 

석호, 핸드폰을 꺼내드는.

 

 

#.43 씬. 길.(낮)

 

산부인과 앞에 차를 세우는 영인, 울리는 핸드폰을 받는.

 

영인 : (번호 보고 망설이다가 전화 받는) 응.

 

 

#.44 씬. 골프장.(낮)

 

석호 : 어디야?

영인E : 병원.

석호 : (잠시 막막한 느낌으로) 미안하다. 영인아.

 

 

#.45 씬. 차 안.(낮)

 

영인 : (되려 화가 나는) 선배가 뭐가 미안해?

 

 

#.46 씬. 골프장.(낮)

 

석호 : 그날.....네 말대로 그냥 술만 마셨어야 했어. 그랬으면 너한테 그런 일 하지 않게 할 수 있었는데. 

       그냥....마음속으로만.... 옛날 대학 때, 그랬던 것처럼. 

       저기 나하곤 참 다르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 저 여자가.....참 눈부시구나. 그것만 했어야 했는데. 

       내가 욕심이 사나웠다, 영인아. 그래서 미안하다.

 

 

#.47 씬. 차 안.(낮)

 

영인 : (핸드폰 내려놓는. 뒤로 머리를 기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48 씬. 산부인과 수술실. (낮)

 

영인,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수술실 천정이 보이고, 수술 도구들이 보이고. 링거 병이 보이고.

 

여의사 : 준비 되셨어요?

영인 : 네.

여의사 : 그럼 마취 하겠습니다. (주사기에 약을 넣는. 링거 병 옆으로 다가서고. 

          영인의 심장 박동 소리 크게 들리는. 링거 줄에 주사를 꽂으려고 하면서) 열부터 거꾸로 세시면 됩니다.

 

링거 줄에 주사를 꽂으려고 하는데. 영인의 심장 박동 소리 더욱 크게 들리고.

 

영인 : (벌떡 일어나는)

여의사 : (보고)

영인 : (입술을 떨면서 고개를 숙이는)

 

 

#.49 씬. 말순의 집.(밤)

 

진아, 컵 라면 먹고 있는. 들어오는 말순.

 

진아 : (일어나며) 어? 내일 온다면서요?

말순 : (들어와 식탁 앞에 앉아 물을 들이키며) 열불이 나서 그냥 올라왔어. (컵라면 보면서) 왜 라면을 먹어?

진아 : 언니도 없는데 밥 해먹기 그래서요.

말순 : 나 없어도 밥은 해먹어.

진아 : 쌀 아껴야죠.

말순 : (자조적으로 웃으며) 그렇게 아껴서 뭐하게? 또 언놈 좋은 일만 시키려구?

진아 : (기색 살피며) 안 좋은 일 있었어요?

말순 : 그렇게 악착같이 아끼면서 살 거 없어. 다 버는 놈 따로고 쓰는 놈 따로니까.

진아 : 왜 그래요? 언니? 어머니가 급하다고 내려오라고 하신 일이 뭐였어요?

말순 : 밑에 동생 애.

진아 : 동생이 왜요?

말순 : 다단계가 뭔가 하다가 빚만 나자빠졌단다.

진아 : .....

말순 : 지 남편 월급에 차압 들어오고, 동생 남편 애는 창피하다고 그길로 사표 내고. 

       둘이 이혼 하네, 뭐네 쌈박질이고.

진아 : 다단계는 뭐하러 했대요? 뉴스에서 그거 때문에 피해보는 사람들 맨날 나오는데.

말순 : 말을 들어보면 눈물겹지. 이혼 하네 뭐네 하고 살면서도 애는 셋씩이나 낳아났거든.

       그 애들 지들처럼 별 볼 일 없는 인생으론 키우고 싶지 않다고 이 악물고 돈 좀 벌어보려고 했단다.

       배운 게 있나, 재주가 있나, 그래서 동네 아줌마 쫓아가서 금방 부자 된다는 소리에 뺑 돈 거지 뭐.

진아 : 너무 순진하시다.

말순 : 세상 다 그런 거 아니니? 잘나고 똑똑한 인간들은 절대 그 짓 안 해. 

       없는 인간들이 서로 뜯어먹자고 그 짓 하는 거지.

진아 : 그래서요? 언니더러 어떡하라구요?

말순 : 울엄마 울며불며 나한테 사정하드라. 동생 이혼녀는 만들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냐구.

       나더러 대출 받아서 우선 급한 불부터 꺼주자고 애원하드라.

진아 : (막막하고)

말순 : 난 모른다고 하고 올라왔어.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이제 나이도 그만큼들 먹었으면 지들이 알아서 살라고 하라구. 소리 팩 지르고 뛰어나왔어. 근데....

진아 : .....

말순 : 미치겠다. 정말. 울엄마 관절염 있는 다리 질질 끌며 따라 나오면서 매달리드라. 

       그래도 넌 맏이 아니냐구. 맏이는 못난 부모 대신 아니냐구?

진아 : ......

말순 : 진아야?

진아 : 네.

말순 : 나 정말 네가 무지 무지 부럽다.

 

 

#.50 씬. 영인의 아파트 앞.(밤)

 

영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놀라고. 

단아, 작은 종이백 들고 서있는.

 

영인 : 무, 무슨 일이예요?

단아 : 아버지께 여쭤봤어요. 어디 사시는지.

영인 : 왜요?

단아 : ......

 

 

#.51 씬. 영인의 아파트 거실.(밤)

 

영인, 들어서는.

 

영인 : 들어와요.

단아 : (들어오는)

영인 : 집에 물 밖에 없는데.

단아 : 아니요. 저....

영인 : (보면)

단아 : 쉬세요.

영인 : ......

단아 : (부엌 쪽으로 움직이는) 저녁 해드릴게요.

영인 : ......

단아 : (작은 종이백에서 미역을 꺼내는)

영인 : (다가가는, 단아의 팔을 잡고) 뭐하는 거예요? 지금?

단아 : 아이 낳은 거랑 다름 없다구 해서. 아버지도 안계신데, 저라도....

영인 : 정말 왜 이래요? 왜 이렇게 사람을 질리게 해요?

단아 : 죄송해요. 하지만 하게 해주세요.

영인 : 나 어른이예요. 나이 50이나 먹은 늙은 여자라구요. 

       이만 일 나 혼자 해결 못할까봐서 이 수선이에요?

단아 : 수선 떠는 걸로 보셨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영인 : 하지만 뭐요?

단아 : 귀한 생명이었으니까......그냥 가버린 그 아기.....제 동생이니까.....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영인 : .....

단아 : 이렇게라도 해야 덜 미안할 거 같아서. 왔다 간 거 안다구.

영인 : (보다가, 주저앉으며, 손으로 얼굴 가리고 눈물을 터뜨리는)

단아 : (놀라서 보다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영인의 등을 쓸어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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