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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대본

[그 집엔 누가 사나요] 손민지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3.11.18|조회수1,055 목록 댓글 1

[그 집엔 누가 사나요] 손민지

 

 

 

 

 

 

 

 

 

 

*인트로
1. 태영, 놀이터 근처에서 애들 노는 모습 지켜보다 걸어가는
2. 민아, 태영방에서 애기침대 보는

1.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 오후

3동 708호라고 써진 종이를 구겨버리며 남자,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간다.
이를 악문 성우, 커다란 sack을 고쳐 메더니 긴 호흡과 함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땡!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성우, 올라탄다.
문 닫히려는데 ‘잠깐만요!’ 소리와 함께 태영이 뛰어오는데 성우, 태영을 힐끗
보더니 그냥 무시하고 문 닫히길 기다린다. 문 닫히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태영         (헤드폰 빼며) 아, 싸가지.

7층 향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숫자.

2. 아파트 복도 / 오후

708호 문 앞에 서 있는 성우, 결심한 듯 벨에 손을 가져가다가 멈칫한다.
성우, 스스로의 감정을 누르며 벽에 기대 눈을 감는다.
성우가 들고 있는 케익 상자에서 초콜릿이 녹아서 삐져나와 있다.
감은 성우의 눈꺼풀이 여리게 떨린다.
태영, 복도로 들어서다가 그러고 있는 성우를 힐끔 보더니 걸어온다.
성우를 의식하면서 708호 앞으로 온 태영, 성우를 빤히 쳐다본다.
그제야 눈을 뜨고 태영을 바라보는 성우.

태영         누구 찾아왔어요?
성우         (벽에 어깨 떼고 태영을 쏘아보고)
태영         여기 우리 집이거든요.
성우         (여기 산다고? 째려본다)
태영         무섭네.

재밌다는 듯 피식하더니 태영, 문 가리고 서 있는 성우를 머리로 밀쳐내듯 가볍게
저지한다. 순간 움찔하는 성우.
태영, 성우를 의식하며 비밀번호 손으로 가리고 누른다. 들어가려는데,

성우         (낮은).....박민아, 여기 살지?
태여         (보고) 민아 찾아왔어요?

3. 현관, 거실 / 오후

태영         (신 벗고, 들어서며) 나 왔다! 박민아!
민아         (E) 잠깐만!
태영         뭐하냐? 야 나와 봐. 밖에 누가....
민아         (방에서 나오더니) 잠깐 눈 감아봐! 보여줄 거 있어.
             눈 감아보라니까, 빨리 빨리! (태영 손을 끌고 방으로 데려가고)

4. 태영 방 / 오후

민아, 태영의 눈 가렸다가 떼어주며 짠!
태영, 눈뜨고 보면 꽤 고급스러운 아기침대가 놓여져 있다.

태영         (버럭 소리치며, 좋아하는) 이거 어서 났어? (하다 누르고)
             너 진짜 사온 거야?
민아         새 거 아니야. 아는 선배한테 얻어온 거야. (눈치 살피는) 그래도
             제법 쓸만하지?
태영         (할 수 없다. 침대 만지며 좋아하는) 그래 좋다. 때깔난다.
민아         아직 멀었는데....침대 오버지 나?
태영         오버가 어딨어, 좋은데. (머리 만져주며) 잘했어.

민아와 태영, 침대 살피고 만지며 좋아라 하는데 쾅! 쾅! 무섭게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태영         ! (민아 보는데)
민아         누구야!(나가려는데)
태영         (얼른 뛰어나가며) 죽었다. 안 그래도 살벌했는데.

5. 현관 / 오후 - 석양 빛

태영, 문 열어주면 성우, 굳은 얼굴로 서 있다.
어이없고 화난 성우, 태영을 노려보다가 태영을 밀치고 들어온다.
민아, 성우를 보고 놀란다.

6. 타이틀

민아와 태영, 그리고 성우, 다정히 거실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에서 타이틀 뜬다.

7. 거실 / 밤

TV엔 오락게임 연결되어 있고, 태영 편한 차림으로 열중해 있다.
그 뒤로 대치중인 민아와 성우.

민아         나가.
성우         (허, 기막히고 원망스러운 눈빛)
민아         나가라고. 우리 헤어진 거 몰라?
성우         (눈물 맺힌) 헤어져? 누구 맘대로? 나 군대간 사이에 너 혼자서?
민아         억지 쓰지 마. 그 전부터 말했었어. 내 사랑 끝났다고.
             들은 체도 안 하고 군대로 토끼듯 도망간 건 너야.
성우         말 함부로 할래? 비겁하게 군대가기 직전에 헤어지자고 뒤통수친 게
             누군데?
민아         덮어씌우지 마! 일방적인 거 말 안돼서 우리 사이, 다시 얘기해보자고
             할 때마다 피했던 건 너였어.
성우         말은 진지하게 얘기해 보자는 거였지만 니 맘은 이미
             일방적이었으니까! 목소리 깔고 분위기 잡으면서 진지한 척,
             빤지르르하게 포장하면서 끝내려는 교묘한 술수에 그냥 넘어가
             주기엔, 당시 내 사랑이 너무 뜨거웠으니까.
민아         정말 구질구질하게 이럴래? 나 마음 한번 돌아서면 그걸로 끝인 거
             몰라서 그래?
성우         (버럭) 알아! 지 기분 내키는 대로 그저 툭 툭, 그래서 말했었어.
             시간 두고 생각해 보자고. 너란 기집애, 니 마음, 원래 미친년
             널뛰듯 종잡을 수 없으니까.
태영         (게임하다가) 풋!
민아         너 진짜! (마음 진정시키고) 2년 지났어. 그럼 충분히 생각할 시간
             되지? 너랑 헤어질래. 너 싫어졌어. 이런 꼴 보니까 더 지긋지긋해.
             그러니까 나가.
성우         내내 편지 보냈었어! 내 편지에 너 답장 한 장 없었어.
             끝낼 생각이었으면 좀 더 확실했어야 되는 거 아니야?
             너 아직도 생각중인 거야. 우리 사이 끝내는 거에 너조차도 확신이
             없었던 거라고.
민아         정말 멋대로군. 편지 한 장 없었던 게 무슨 뜻인지 몰라?
             너 바보야?
성우         난 아직도 너 사랑해. 너도 그렇다고 생각해.
민아         (듣기도 싫은) 말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나가. 우리들 쉬어야 돼.
             순 억지에 가까운 니 소리, 그리고 너! 단 1분도 참아주고 싶지 않아.
             나가. 나가달라고 제발.
성우         아니, 못 나가! 나갈 이유도 없고.
민아         왜 이유가 없다는 거야?
성우         (신경질로 버럭) 여기 내 집이기도 하니까!
민아         그게 무슨 소리야?
성우         (멈칫) 알잖아 너도 무슨 소린지.
민아         몰라, 말해.
성우         너 정말. 내 입에서 치사한 소리까지 나오게 만들어야 되겠어?
민아          (차가운) 지금 니 꼴, 충분히 치사해. 말해.
성우         (경멸의 눈빛으로 보다가, 빈정거림) 잊었냐? 우리 같이 돈 모아서
             동거했잖아. 말해봐. 여기 이 집으로 이사할 때 거기 내 돈도
             들어간 거 아냐?

태영, 민아를 쳐다본다. 민아, 기막혀서 잠시 말 잃고 있으면 전자렌지 다 돌아간
알림소리 들린다. 후다닥 뛰어가서 태영, 만두 꺼내가지고 제자리로 가 앉는다.

민아         (피곤한) 돈 갚아줄 테니까 나가.
성우         (배째라는 식으로 소파에 앉아서) 그럼 지금 당장 내 놔.
             나갈 데 없어.
민아          말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지금 당장 돈을 어디서 구해?
              (부러 째리는) 우선 니 엄마 집으로 들어가면 되겠네.
성우          (노려보고)
민아          (뜨끔하다. 하다가 애원조) 갚을 게. 초대한 빨리 구해서 갚아줄게.
              (짜증) 여기 나 혼자 사는 거 아니잖아! 친구 앞에서 이게 뭐야.
             쪽팔려 죽겠어, 정말.

성우, 태영의 뒤통수를 째려보는데 태영, 호호 만두 불러 먹으며 게임에만 열중.

성우         야! 만두! 너 지금 돈 있어? 없지?
태영         (만두 입에 넣다가 뻥한 표정)

<시간경과>

비어있는 만두봉지, 태영의 자리도 역시 텅 비어있다. 버려진 듯 내팽겨쳐져 있는
게임기. 소파에 앉아서 축 늘어진 채로 소강 상태에 빠진 민아와 성우.

성우         (흐린) .....너 정말 나뻐. 나쁜 년이야.
민아         (대꾸 없고)
성우         니가 나한테 어떤 존재인지 빤히 알면서, 집까지 가지고 사라졌어.
             넌 나한테서 다 뺏어간 거야. 이 우주에 날 고아로 만들었어. 니가.
민아         (완전 신파다. 돌겠는) 아......

<시간경과>
피곤한지 소파에 매미처럼 딱 붙어 엎드려 누워있는 성우.
역시 피곤한 얼굴로 바닥에 앉아서 머리 붙잡고 있는 민아.
서로 괴로움에 한숨만 내쉬고 있으면 태영, 방에서 나온다.

태영         와, 여태 그러고들 있냐?
민아         아직 안 잤어? 피곤할 텐데....(몸 일으키며) 왜 뭐 챙겨줄까?
성우         (기막힌)
태영         (냉장고로 가며) 됐어. (느슨한) 나 신경쓰지 말고 계속 해.
             (아이스크림 가지고 오며) 왜 에너지 바닥났냐?
성우         (허, 아니꼽고 기분 나쁜)
민아         나 한심하지?
태영         (고개 젓고, 아이스크림 먹다가) 살어. 살게 해.
             (쳐다보는 눈길 자르듯) 대신 조건을 걸자. 돈 갚을 때까지만 여기
             살기로. 그럼 피차 손해 안 보는 거지?
성우         (내심 반가운데 버럭) 왜 갚을 때까지만이야?
민아         (성우와 동시에) 말도 안 돼.
태영         (무시하고 민아에게) 갈 데가 없다잖아. 죽어도 같이 살기 싫으면
             민아는 빨리 돈 만들어서 갚아주면 되는 거고 (비웃는 성우에게)
             그쪽은 돈 갚기 전에 옛사랑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되겠네.
민아         (비명 지르더니, 획 들어가 버린다)
성우         (민아 쪽 태영 쪽 번갈아 보다가 무슨 말 하려는데)
태영         걱정 마. 우리 이 집 얻는데 이미 무리했으니까
민아         (문 열고)사채라도 갖다 써서 당장 갚아줄 거야.
성우         암만 갖고 와 봐라.
태영         (정리하듯 크게) 끝! 자자! (아이스크림 가지고 방으로 향하는데)
성우         (버럭) 야!
태영         (보면)
성우         뭐 먹을 거 없어? 배고파서 잠 안 올 것 같애.

8. 주방. 식탁 - 거실 / 아침

제대로 군식구처럼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는 성우.
민아, 태영과 함께 식탁에서 빵 먹으면서 간간히 소파에서 자고 있는 성우를
노려본다.

태영         (민아 보다가 피식, 졸린 목소리로) 근데, 너 진짜 제 돈 그냥
             떼먹을 심산이었냐? 내 친구지만 완전 도둑인데 그건? 안 찝찝했어?
민아         그야 뭐.....사실 떼먹어도 할 말 없어. 그때 준다는 거 안 받았으니까
             (빵 먹으려다 빵에 숨어있는 건포도 발견하고 빼내며, 시비조로)
             근데 쟤 제대 제대로 한 거 맞아? 벌써 나올 때 아닌 것 같은데 말야
성우         (눈은 꼭 감고 있으면서 소리를 듣고 있었는지 치- 입을 삐죽인다)
민아         (진짜 궁금한 듯) 군대도 생활 잘하면 조기 ㅈ대 같은 거 시켜주니?
태영         군대가 뭐 감옥이냐, 모범수처럼? 아닐 걸.

성우는 부글부글 하는데, 태영과 민아, 꼭 성우가 없는 것처럼 시큰둥하게 그래?
왜 그러지? 그냥 느낌인가? 언제 들어갔는지 기억은 나고? 등등 주절거리듯
말하면서 빵 먹는다. 성우, 입가에 작은 미소가 스치듯 보인다.

민아         에이, 뭐야. (건포도 빼내며) 무슨 밤 빵에 건포도가 이렇게 많이
             들어있어.
태영         (빼낸 건포도 입에 넣으며) 모르고 샀어?
민아         밤빵이라고 샀는데 건포도가 숨어 있잖아. (건포도 빼내며) 꼭 누구
             같다.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 하는 게.
태영         (쿡 웃더니, 계속 킬킬대는)
성우         (졸다가 바짝 정신 드는데 웃음소리가 거슬린다)
민아         (안 되겠는지 태영에게 빵 건네고 손 턴다)
태영         왜 더 먹지?

민아, 고개 젓고 일어나는데 성우가 또 다시 거슬린다.
성우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 마임 비슷하게 쫓아내달라는 부탁한다.
태영, 피식 웃고.
신발 신는 민아. 성우의 워커가 보인다.
가지런한 여자 구두들 사이에 끼어있는 성우의 워커를 민아 발로 차고 나간다.

9. 대형마트

물건을 꼼곰히 보고 고르며 카트 밀면서 가는 태영, 시큰둥한 얼굴로 따라다니는
성우.

성우         그냥 대충 좀 사지?
태영         안돼. 이런 게 얼마나 재밌는데.
성우         그럼 우리 민아가 좋아하는 걸로 좀 사던가. 순 지 좋아하는 걸로만.
태영         민아는 내가 좋아하는 건 다 좋아해. 지금 고르는 게 다 민아 거라고.
성우         (미워서 깐죽이는) 너 백수지? 우리 민아는 커리어우먼인데.
태영         니가 백수지. 난 웨이트리스. 오늘 쉬는 날이라서.
             (고르다) 너 반찬 뭐 잘하냐?
성우         왜?
태영         잘하는 거 있음 그거에 맞춰 사려고.
성우         신경 꺼라. 내가 군대에서 2년 내내 밥만 하다 왔는데 (들켰다)
태영         오 취사병!
성우         꿈 깨! 내가 너한테 반찬 해서 바치게 생겼냐, 지금!
태영         (빙긋) 너 나한테 라이벌 의식 느끼지?
성우         뭔 소리야?
태영         (물건 골라서 넣으며 여유만만) 나도 인내심 많지 않어.
             나한테 엿같이 반응하는 사람한테 끝까지 비위 못 맞춰 줘.
             성질이 그지 같아서. 너 한테 이렇게 계속 적대적으로 굴면 내가 돈
             구해다 민아 줄지도 모른다?
성우         (약간 겁먹고) 협박하냐?
태영         너 충분히 재수 없어. 니 꼬라지 아주 죽여줘. 헤어진 여자한테
             블러붙는 거 보면.
성우         (기막힌)
태영         그럼에도 난 니가 싫지 않어. (씩) 재밌어. 그러니까 나 자극하지 마.
             (당면 발견하고 호들갑) 너 잡채 만들 수 있어? 나 먹고 싶은데.
성우         (그대로 입 딱 벌리면)
태영         난 또 맛있는 거 좀 해주면 민아랑 어떻게 잘 되게 도와줄까 했는데..
             거 아쉽네. (만지작대다 내려놓으려는데)
성우         (거칠게 뺏어 카트에 당면 넣고 가면서) 민아도 잡채 좋아해.
태영         야~~ 같이 가자~~

태영, 성우를 툭 치며 함께 가는데 태영의 휴대폰 울린다.

태영         (받고) 어, 민아야.
성우         (민아 소리에 휙 돌아보고, 통화내용에 관심 있게 귀 기울인다)
태영         나 지금 마트. (사이) 야 괜찮아. 운동 삼아서 뭐, 넌 맨날 바쁘잖아.
             (사이) 뭐 성우?
성우         (그럼 그렇지, 자연스레 전화기에 손 뻗는데)
태영         (내치고) 아니, 나갈 생각 전혀 없는 모양이던데? 야 그만 포기하고
             말어. (웃는다. 사이) 그래, 빨리 들어와. 맛있는 거 해놓고 기다릴게.
             (끊는다)
성우         (위안하듯) 일부러 그러는 거야. 사실은 나 궁금해서, 나 걱정돼서
             전화한 건데. 니 전화로 나 찾기 뭐해서. 내 맘이 얼마나 아팠을지
             잘 아니까.
태영         너 있으면 오늘부터 안 들어온다던데?
성우         !

태영, 떨고 있는 성우를 툭 치며 웃는다. 성우, 그제야 알아차리고.

10. 회사, 휴게실

민아,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병수를 바라본다.
시선 외면하고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뽑아 민아에게 건네주는 병수.

병수         (옆에 앉으며, 미안한) 그럼 어떡하냐. 너 없으면 죽겠다는데.
             하도 부탁하길래 내 딴엔 안 됐어서 가르쳐줬는데 그렇게 무대뽀로
             눌러앉을 줄은 나도 몰랐다.
민아         (답답함에 한숨과 함께 얼굴을 가리고)
병수         (생각할수록 기찬) 자식 거 진짜. (눈치 보며) 어떻게 할래?
민아         내가 묻고 싫어. 나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11. 청과물 가게 진열대 앞. 거리.

태영, 가다가 서며 파인애플을 들었다 놨다한다. 다시 오는 성우, 짐꾼이다.

태영         (파인애플 만지작거림) 먹고는 싶은데....니가 좀 깎아 줄래?
성우         그만 해라..... 난, 파인애플 싫어해.
태영         난 좋은데. 아, 먹고 싶은데...넌 왜 이렇게 귀찮게 생겼냐?
성우         (버럭) 그럼 아까 마트에서 사지. 거긴 자동으로 다 깎아주는구만.
태영         아깐 안 먹고 싶었단 말야. (그러면서 애틋하게 파인애플을 놓았다
             들었다 반복)

성우, 질렸다. 가게에 들어가더니 파인애플 통조림을 두세 개 들고 와서 시장가방에
우르르 던져 넣고 먼저 가버린다.

12. 주방. 식탁 / 저녁

민아, 어이없다는 얼굴로 서서 너무도 풍성한 식탁을 내려다보더니 성우를 본다.
마치 익숙한 안주인처럼 앞치마까지 하고 가스렌즈 위에서 끓고 있는 찌개 맛을 보는 성우. 민아, 그냥 들어가려는데, 파인애플 통조림을 따던 태영이 억지로 붙잡아 앉힌다.

민아         (불쾌한 기분 가시지 않는) 이런다고 내가 넘어갈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성우         (찌개 가지고 오며 밝은) 내가 끓였지만 진짜 죽여. 민아야.
태영         와, 진짜 맛있겠다. (시선은 찌개에 고정하고, 손으로는 통조림을
             따는)

성우, 제일 열심히 먹고, 민아도 먹는다고 먹다가 태영을 본다.
파인애플만 먹는 태영.

민아         정말 밥 안 먹어? 잘 먹어야지. 그걸로 돼? 잡채 맛있는데.
태영         괜찮아. 이것도 맛있어.
성우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해달래서 기껏 했더니 아까부터 그거만
             붙들고 먹고. 그딴 깡통으로 내 반찬을 밀어내? 참 나.
태영         (웃는) 그러게. 근데 어쩌냐. 지금 내 몸이 이걸 달라고 아우성치는데
             (하나 크게 먹으며) 아 넘 달아. 좀 시었으면 좋았을 걸.
민아         깡통은 달지. 그냥 파인애플로 사오지 그랫어.
태영         깎기가 귀찮잖아.
민아         내가 깎아주면 되지.
성우         (약간 질리는) 그만 하지? 두 사람의 우정에 하마터면 눈물 쏟겠네.
태영         너무 질투하지 마. 원래 학교 다린 때부터 민아가 내 꼬붕이었거든.
민아         (수긍하는지 실실 웃으며 밥 먹고)
성우         (얼굴 구겨지며) 꼬붕은 꼬붕이었나 보다. 박민아가 이렇게 고분고분
             한 거 보면.
민아         그냥 밥이나 먹지?
태영         아저씨 보기보다 예민하네. 너무 질투하진 마.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성우         무슨 이유?
태영         (민아 보며 웃다가, 다시 파인애플 먹으며 담담히)
             내가 임신 중이니까.
성우         (열심히 먹다가, 나중에서야) 뭐?

13. 욕실 / 밤

세수하다가 중얼거리는 성우.

성우         그래 어째 우리 고운 민아랑 같이 살기엔 좀 그렇다 했다.
             처녀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냐...
민아         (E. 쿵쿵 거칠게 문 두드리며) 뭐해! 들어간 지가 언젠데, 빨리 안
             나올래?
성우         걔한테 우리 민아 물드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헉!) 아니 벌써
             물 든 거 아냐?
민아         (쾅쾅, 불 꺼버린다)

순간 조용하다.

성우         (문 벌컥 열더니, 히죽) 자식 뭐 그렇게 급하다고....
민아         (밀쳐내며) 비켜 빨리.
성우         (밀리다가 얼른 팔로 문 가로막고, 작게) 씻고 나가자.
             밑에서 기다릴게.
민아         (헛웃음)
성우         왜, 너무 늦었나? 그럼 뭐 다음 기회에... (가려다가 슬쩍 민아
             껴안으려한다)
민아         (기겁해 밀쳐내고, 소리치는) 뭐해 지금!
성우         아니 나는....잘, 자라고. 우리 원래 이렇게 했었잖아.
민아         (기막혀 하다가 머리로 성우 이마 쿵 박고) 죽을래?
             (밀치고 들어가고)

성우, 닫힌 문 앞에서 씁쓸히 이마를 만지막거리는데,

민아         (E) 너 욕실 이렇게 지저분하게 쓸래!

14. 주방 / 아침

성우, 콧노래 부르며 익숙한 솜씨로 도마에 야치를 썰어댄다.
그런 성우를 보고 서 있는 잠옷 바람의 민아와 태영(졸음 남아 있는).

태영         아름다워. 저런 남자랑 살면 평생 행복할 것 같애. 그치 민아야?
민아         (대꾸 없이 욕실로 가버리고)
태영         (식탁에 턱 괴고 앉아 눈 감는다. 소리에 취한) 너무 좋다.
             엄마랑 사는 거 같애.

다른 날. 다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성우.

태영         (와서 보고) 참, 퍽 애쓴다. 애써. 그렇게 좋아서 어떡하냐?
             (성우 얼굴 톡톡) 어이, 민아 없거든? 아침에 회의 있다고 새벽에
             나가더라.
성우         (꼬꾸라지듯 식탁에 엎드려 잔다)
조교         (E) 애인 있습니까? 애인 있습니까?

15. 군대, 유격 훈련장

성우         (우렁찬) 있습니다!!
조교         이름이 뭡니까?
성우         박민아입니다!
조교         애인 이름 부르며 뛰어내린다. 실시!!
성우         실시!! (줄 붙잡고 뛰어내리며) 태영아~~~

16. 주방 / 식탁 / 아침

엎드려 졸고 있던 성우,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다. 눈 앞에 있는 태영을 보고
화들짝. 민아 덕에 차려진 밥 먹고 있던 태영, 뜨아한 눈길로 성오를 바라본다.

17. 커피숍 앞 / 밤

성우, 꽤 고급스러운 커피숍 앞에서 누군가가 나오길 기다리는 모습이다.
지루한 모습으로 성우, 서성거리다가 커피숍을 바라본다.
통 유리창 너머로 손님들에게 차를 서빙하는 정갈한 차림의 태영이 보인다.
집에서와는 다른 깔끔하고 정돈 된 모습인 태영.
그런 태영에게서 시선 돌리는 성우.

성우         (E) 박민아가 니 흉내를 내더라.

18. 거실 / 회상 / 낮

햇빛이 들어오는 거실바닥에 누워있는 성우, 햇살에 졸리운 듯 눈을 감는다.
그러다 베란다에서 빨래 걷어와 개고 있는 태영을 바라본다.
태영을 탐구하듯 골똘히 바라보던 성우, 씁쓸히 웃으며 몸 반대편으로 돌리고
눕는다.

태영         (E) 근데 너 계속 이렇게 집에 있을 거야? 앞으로 뭐 할 건지
             계획 없어?
성우         (언뜻 비웃고, 눈감으면)
태영         (픽) 너 지금 비웃었지? 알았다. 넌 무슨 계획 있어서 덜컥 애까지
             가졌냐, 이거지? 등이 다 말을 한다 야.
성우         (찔려 눈 뜨고)
태영         너 그렇게 핑핑 놀면서 생활비 한 푼 안 내면 아마 민아 신나서 니
             돈에서 야금야금 다 깔걸? 민아 머리 대빵 좋은데 그 중에 돈 계산이
             제일인거라~~~ 클났다, 이제.
성우         (몸 일으키고 버럭) 생활비 낼 거야!
태영         무슨 수로?
성우         뭐, 암튼! (옷 개면서) 우선 당장은 이 수로.
태영         (보고 피식 웃다가) 너 같이 귀여운 애를 민아는 왜 싫다고
             버렸을까?
성우         (뚱하면서도 기분 좋은)
태영         야 너 나랑 사귈래?
성우         민아 니 친구야. 말 안 돼는 소리 좀 하지 마.
태영         그럼 안 되는 거야? 난 잘 모르겠는데.
성우         그럼 애까지 가진 여자가 그러는 건? 거 무진장 뻔뻔한 거잖아.
태영         (훗!) 맞다 그래. 근데 문제는 내가 그걸 자주 헷갈리는 거라.
             덤으로 애까지 생기는 거니까 좋은 거 아닌가 그러거든?
             난 내가 애를 가진 게 참 좋아서.
성우         참 과하게 좋아라 한다.
태영         (과하게?) 난 내가 이 세상에 혼자 붕 떠있는 느낌이었거든.
             근데 애를 갖게 되니까 나한테도 뿌리가 생긴 느낌이란 말이야.
             없었던 중력이 생겨버렸어. 난 내가 그런 힘을 느낀다는 게 너무
             좋아. (보고) 너도 민아한테 그런 거 느끼는 거 아냐?
성우         아는 척 하지 마. 뻔뻔한 임산부 말에 동조하기 싫으니까.
             (옷 개키다가) 근데 애....애 아빠 말야. 애 아빠는 아냐?
             근데 암말 안 해?
태영         무슨 말? 뭐 결혼해서 같이 키우자는 말?
성우         음....뭐 일종의 그런.
태영         (가벼운) 완전 끝난 사인데 애 갸졌다고 결혼하자는 건 말 안 되지.
성우         (열 뻗치는) 왜 그게 말이 안 돼?
태영         사랑하지 않는데 애 때문에 결혼하는 건 말 안 된다고 우리 둘 다
             똑같이 동의하는 바니까. 그럼 결혼 말 안 되는 거 아냐?
성우         그래서? 그걸로 끝이야? 그렇게 쉽게 편리하게?
태영         그렇지 않으면? (하다 차분한) 내 마음 심란하게 만들지 마.,
             나도 머리 있어. 그래도, 그래야니까 그래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들로
             시간 허비하기 싫어. 결국 그래서는 달라질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마음만 무겁지. 난 이미 애를 가졌어. 남들이 말하는 정석 아니니까
             내가 니 앞에서 쭈뼛대지 않는다고 너, 상당히 웃기게 생각하지?
             어이, 탁 까놓고 니가 뭐라서? 니가 무든 날 비난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성우         (가만히 생각하다가) 아니.
태영         (도리어 멈칫)
성우         니 생각은 뭔가 많이 궁금하면서도 넌 진짜 생각없구나 완전
             무시해주고 싶었나봐. 너 내 라이벌이니까.
태영         이게 귀여운데다 담백하기까지 하네. (은근슬쩍 손까지 잡으려는)
성우         무슨 기집애가 치근대기까지 하고. 진짜 내가 사귀자고 들면
             빠짝 겁먹을 거면서. (고개 젓는) 너 같은 애를 박민아는 왜 그렇게
             꺼뻑 죽는지.
태영         걔도 적잖게 웃기는 애니까 그렇지.
성우         어이, 너만 하겠냐?

서로 보다가 웃음이 터진다.

19. 커피숍 앞 / 밤

커피숍에서 나오는 태영, 성우, 고개 숙이고 있다가 돌아보고.

태영         어떡하지? 난 교대하는 친구가 못 나와서 마무리까지 하고 가야 될
             것 같은데. (쪽지 건네며) 내가 미리 전화는 해뒀으니까 너 혼자
             가도 될 거야.
성우         (받아들고 약간의 미소)
태영         직장 구하기 전에 잠깐 하는 일이라도 너무 건방떨면서
             대답하면 안 된다.
성우         (싱긋) 걱정하지 마. 고맙다.
태영         오~ 너 웃는다? 어어 단 몇 시간이지만 둘만 있게 된다 이거지?
성우         (걸음 욺기며) 간다~
태영         잘해 봐! 들어갈 때 민아 좋아하는 거라도 사갖고 들어가던지.
성우         (뒤로 안 돌아보고 손 인사 하고 간다)

20. 칵테일 바 / 밤

바텐더들이 화려한 칵테일 쇼가 한창이다. 덕분에 가게 안 분위기가 후근거린다
그 한편에 서서 사장과 얘기하는 성우의 표정도 밝다.

21. 제과점 앞 거리 / 밤

통유리 너머로 작은 조각 케익을 골라 담는 성우의 모습이 보인다.
들뜬 표정으로 제과점을 나와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성우.
제과점 앞 용달차 위에 싱싱한 파인애들을 진열해 놓고 팔고 있다.
무심히 보고 가다 되돌아 오는 성우.

성우         (파인애플 집어서 보더니 싱긋) 얼마씩 해요, 파인애플?

22. 커피숍

서빙하던 태영, 힐끔 돌아보면
민아, 한쪽에서 책 읽으며 여유롭게 차 마시고 있다.

태영         (오며) 나 많이 늦을 거라니까. 먼저 들어가. 안 피곤해?
민아         (미소) 내일 쉬는 날인데 뭐. 같이 들어가. 그러려고 왔는데 왜.
태영         (작은 한숨 내쉬고 그냥 가는)
민아         (차 마시며 책장 넘긴다)

23. 거실 / 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거실, 불을 켜면 환하게 드러난다.
민아 방문 노크해 보지만 대답 없고 문 열어 본다. 애기침대만 보인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거실에 우두커니 홀로 서 있는 성우.
성우 손에 들린 파인애들과 케익 상자가 처량하다. F.O

24. 거실

꼼꼼하게 이리저리 다니며 걸레질에 여념 없는 성우.
민아, 일어난지 얼마 안 된 모습으로 잡지 들고 방에서 나온다.
본 듯 마는 듯 성우에게는 관심 안 두는 민아. 나른한 햇빛 속에서 잡지책만
뒤적인다.

성우         (좋은 기분 못 감추고 걸레 쭉 밀어, 옆에 붙으며) 와, 햇빛 진짜
             좋다~~ 뭐 읽어?
민아         (옮겨 앉으며) 패션잡지.
성우         (물끄러미 민아 바라보다가) 너 세수도 안 했지. 그래도 넌 참 이뻐.
             보통 여자들 자고 일어나면 다 별론데.
민아         (작게 피식)
성우         너 이쁘다고. 너 이쁘다는 말 되게 좋아했잖아. 지금은 아니야?
민아         지금도 좋아해.
성우         그래? (아이처럼) 이뻐. (주문처럼) 이뻐, 이뻐.
민아         기분 좋은데., 다시 사랑할 정돈 아니니까 그만 할래?
성우         (소파에 눕더니) 휴일인데, 우리 데이트 하러 안 나갈래?
민아         (대꾸 없고)
성우         (강아지처럼 소파에서 뒹굴다가) 이 소파 기억나? 누가 갖다버린 거
             어떤 아줌마랑 서로 갖겠다고 싯대 세우다가 결국 우리가 뺏어왔었
             잖아. (감상에 젖은) 리폼 한 번 했더니 완전 새 거처럼 돼서
             너랑 나 맨날 여기에 드러누워서 살다시피 했었는데....
             침대 놔두고 담요 가져다가 늘 여기서 웅크리고 자고 그랬었는데....
             너 그때 되게 예뻤었다? 꼭 새끼 고양이처럼. (바라보고)
민아         그랬어?
성우         (슬픈) 응.
민아         그래, 그때 우리 재밌었다.
성우         (뜻밖인, 몸까지 일으키며) 정말 그렇게 생각해?
민아         (무덤덤한) 어, 추억만큼 예쁘게 각색되는 건 없으니까.
성우         (순간 머릿속에 바람이 분다)
민아         (하품하고)졸려. (들어가려다가 보고 피식) 애쓰지 말고 들어가서
             잠이나 자. 추억만 갖고 다시 시작할 바보 아냐 나는. (들어가고)
성우         (가만있다가 걸레 던지며) 잘났다 기집애야.

25. 멀티플랙스 극장

민아, 앞서가면(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와 매표소 앞으로) 그런 민아를 따라오는
성우.

민아         가라. 가, 응? 니 자리 없거든?
성우         혼자가 좋다는 게 뭔데. 언제든 한자리는 남아 있는 법이거든.
민아         지겹게 번번이 꼭 따라붙고. 진드기야? 넌 친구도 없어?
성우         (기다렸다는 듯 싱긋) 너는? 너는 애인 없어? 데이트도 전혀 안 하는
             거 같더라? (슬쩍) 만나는 사람 없어? 그동안 한 명도 없었어?
민아         (피곤한) 모처럼 머리 식히는데 꼭 이래야겠니?
성우         (가만있다가) 애인 없지? 아니, 쭉 없었지? 나 기다렸냐, 혹시?

민아, 확 돌아보고 내지르려는데 성우, 먼저 기다리고 있는 태영을 발견하고 반갑게
손들어 아는 척 하더니 민아 보다도 먼저 그쪽으로 간다.

성우         (마치 자기 약속인 것처럼) 야, 좀 늦었지 우리가?

<시간경과>

성우, 김새는 표정으로 팝콘과 음료수 나오기 기다렸다가 받아든다.
민아와 태영 보는데,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는지 속닥거리며 웃는 두 사람.

성우         뭔 얘기를 저렇게 하는 거야 허구한 날. 맨날 보면서.
             (이해불가) 하여간 여자애들. (웃는 낯으로 와서 팝콘과 음료수
             건네주고 엉덩이 좀 붙이고 앉으려는데)
민아         영화 시간 다 됐다. (태영에게) 들어가자.
성우         (뒤에서 쥐어박는 시늉)
태영         (보고 피식 웃으며 팝콘 입에 넣고 간다)

세 사람, 상영관을 향해 가는데, 초등학생 아이들 몇 명이 달려와 장난치며 태영을
둘러싸고 서로를 잡으려 난리다. 민아, 작은 배려와 같은 동작으로 장난꾸러지 아이들로부터 떨어뜨려 놓으며 태영을 데려간다.

성우         (무심히 보다가) 아예 보디가드로 나서라 그냥.

쩝! 성우, 새삼 극장을 둘러보며 간다. 극장은 꿈과 행복의 공간으로 빛날 뿐이다.

26. 베란다 / 야외 / 저녁

앞치마 차림으로 분주하게 파무침 만들고 있는 성우, 취사병 출신답다.

성우         무슨 애기가 맨날 고기만 먹재. 그러다 걔 어쩌려고 그러냐.
             너무 먹어 너무.
민아         (쌈 야채 가지고 나오며) 툴툴댈래? 사먹자니까 기어이 끌고
             들어온 건 너다.
성우         그야 집에서 먹는 게 훨씬 싸니까.....
             (하다 일부러) 너 돈 모아야 될 거 아냐. 그래야 나 쫓아내잖아.
민아         (쳐다보면)
성우         (눈치보고) 지금도 넌 내가 빨리 이 집에서 사라져 줬으면 좋겠지?
민아         (빙긋) 어.
성우         (억울한) 내가 이렇게 고기까지 구워 받치는데도?
민아         고기야 사먹으면 되니까.
성우         아냐. 눈빛 살짝 흔들렸어. 난 봤어. 나랑 있으니까 재밌는 거야 너도
             그치?
민아         너는 나랑 사는 게 재밌어? 박민아, 나여서?
성우         당근.
민아         그럼 넌 착각하는 거야. 넌 나랑 사는 게 재밌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집에서 사는 게 재밌는 거야. 가족처럼 뭉쳐서 사는 게.
             너 원래 가족 되게 좋아하잖아.
성우         (무슨 소린지 않다. 내색 않고)
민아         너 아직도 나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것도 착각이야.
             (안에 대고/전화로) 빨리 나와. 고기 다 탄다. 쌀쌀하니까 뭐 하나
             걸치고.
태영         (E)알아쓰~~
성우         내 마음까지 넘겨짚으려고 하지 마. 내 마음 내가 더 잘 알아.
민아         그래? (성우 눈 똑바로 쳐다보고) 내 눈 똑바로 봐. 떨려? 설레어?
성우         (멈칫) 그래.
민아         거짓말.
성우         (버럭) 내 맘이야! 내가 그렇다는데 뭐! (하다) 너 보면 마음 저 밑에
             서부터 뭔가가 아리고 슬프고 그렇단 말야, 건 진짜야.
민아         (고기 하나 먹는) 그거 사랑 아니다. 지나간 사랑이나 추억에 마음
             아픈 거지.
성우         (신경질) 너 쟤랑 놀지 마. 물들었어. 아주 입만 살았어 너!
민아         니가 니 맘 모르고 괜한 데 헛 힘 쓰는 거 같아서 안쓰러워서 하는
             소리야. 너 너희 가족 끔찍이 싫어했지만 그래서 니가 더 꿈꿨던 게
             뭐였는데. 넌 날 사랑해서가 아니라 같이 있을 사람이 그리웠던 거야.
             가족.
성우         (거칠게 고기 뒤집으며) 니 멋대로 해석해서 주문 걸지 마.
             최면 사양한다고.
민아         너야 말로 주문 걸지 마. 스스로한테. 최면요법으로 사랑이 돼?
성우         (기막혀서 말 잃고)
민아         (장난스레 손 모으고 기도하며) 제발 주성우가 자기 마음을 똑바로
             볼 수 있는 맑은 눈을 내려주세요. (킥킥) 태영이가 기도 잘하는데,
성우         (헛웃음도 안 나고)
민아         (장난기 사라진다) 최대한 빨리 돈 구해볼게. 그렇게 해 줘 너도.
성우         (!! 굳어지는데....태영이 나오자 보고 버럭 신경질) 왜 이제 나와?
             니가 공주야?
태영         (공주라고 하기엔 너무한 자신의 행색을 내려다보고 뻥한)

27. 칵테일 바

주스 시켜놓고 칵테일 바를 둘러보는 병수와 그 앞 스탠드에서 유리잔 닦고 있는
성우.

병수         (주스 마시다, 보고 웃음) 너도 칵테일 쇼 하는데 끼워주냐?
성우         내가 짠밥이 되냐?
병수         그럼 넌 계속 닦기만 하는 거야?
성우         청소도 해.
병수         자랑이다 자식아. 그래 거기서 끼여 사는 소감이 어때?
             뭉개는 보람은 있어?
성우         (닦기만 하며) 접어라, 나도 내 꼴 우습다는 거 아니까.
병수         알면 그쯤 해두고 나오고 말지 무슨 미련이 그렇게 길어?
             너희 끝났어. 그거 알면...
성우         (화 치미는) 끝나긴 뭘 끝나. 내가 끝난 적이 없는데.
             아무나 한 사람이 이젠 끝이다 그럼 끝인 거야? 뭐가 그렇게 쉬워?
병수         누가 쉽대? 자식 거 승질은. (답답한) 어쩌냐. 한쪽이 싫다면 그걸로
             끝인 게 사랑인 걸. 너 입으로만 사랑사랑 하면서 정작 민아 생각은
             안 하지?
성우         (말 잃고)
병수         사랑에 눈 멀었답시고 너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것도 좀 보란 말야.
             반성해 임마. (안쓰러워 투정하듯) 그리고, 뭐냐 이게 나는.
             둘 사이에 낑겨서.
성우         너 안 바쁘냐?

28. 거실 / 밤

성우, 피곤한 모습으로 털석 소파에 앉는다. 소파에서 자고 있었던 듯 보이는 태영.

성우         (얼굴 쓸어내리며) 왜 들어가서 자지?
태영         (일어나고) 사람이 안 들어왔잖아, 너.
성우         (민아 방 쪽 보면)
태영         또 야근. 걔 요즘 죽어난다, 죽어나. (눈 비비며 밝게)
             우리 케익 먹자. 먹고 싫어서 사왔는데 너 올 때까지 기다렸대.
             내가 너 땜에 케익에 꽃였잖아 요즘.

<시간경과> 케익 위에 촛불이 아른거린다. 그 촛불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성우.

성우         니 눈에도 내가 그래? 나 혼자 애쓰는 거처럼 보여 안쓰러워?
태영         (가만 보고)
성우         (촛불만 응시하며) 민아랑 살 때가 제일 행복했어.
             제일 행복했으니까 계속 그러고 싶었나봐. 나만 행복하고 싶어서
             나만. 엄청 구리지?
태영         (고개 젓고)
성우         .....같이 지내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그게 아닌 것 같애..
             나 좀 많이 힘들다....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태영, 성우의 모습을 말갛게 바라보다가 조용히 눈을 감는다.

태영         (장난스러운 듯 가볍지만 진실한) 주성우, 박민아, 두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똑바로 볼 수 있는 맑은 눈과 힘을 주세요.
             그래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그래서 행복할 수 있도록.
             아, 그리고 더불어 저한테도 좀. (히죽) 아시죠?

태영, 눈감고 성호를 긋는다. 태영, 눈 뜨면 쑥스러움에 웃음 터뜨리고,

성우         (눈 감으며) 엄마는 좀 이상해도 애기는 이쁘고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 주세요.

창 너머로 보면 성우와 태영, 훅! 촛불을 끈다.

30. 사무실 / 밤

민아, 뭔가를 찾는지 분주히 서랍을 뒤지고 있다.

병수         (E)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프리젠테이션 기대 되는데.

손을 씻었는지 말아 올려진 와이셔츠 소매를 내리며 병수, 책상으로 온다.

민아         자료 좀 정리하느라, 아, 이게 어디 갔지? (다른 서랍 뒤지다가)
             아, 여깄다.

민아가 집어든 자료 속에서 떨어지는 사진.
병수, 사진 주워서 보다가 민아한테 주면,
그 속엔 민아와 성우가 너무도 행복한 미소로 웃고 있다.

병수         (모른 체 가며) 마누라가 도시락 싸줬는데 같이 먹을래?

사무실, 유리창으로 보면 병수와 민아 도시락 먹는 모습 보인다.
성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31. 택시 안 / 밤

이어폰 끼고 음악 들으며 가는 민아, 쓸쓸히 창밖을 바라본다.

32. 인서트 (회상)

편한 모습으로 소파에 누워서 비디오 보는 성우와 민아.
성우, 더듬더듬 팝콘 집어먹는 민아를 귀여운 듯 쳐다보다가 쪽~ 볼에 뽀뽀를 한다
그러더니 장난치듯 볼이고 어디고를 막론하고 뽀뽀세례를 퍼붓는 성우.

민아         너 이러려고 병수형 가라고 했지?
성우         눈치도 없이 계속 죽치려들잖아. 그러면서 어딜 또 마시러 나가재.
민아         난 나가서 같이 놀고 싶었거든요, 아저씨?
성우         난 싫거든요? 우리 둘이 노는 게 더 재밌는데 어딜 나가냐?
민아         그러다 얼마 없는 니 친구 다 떨어져 나간다.
성우         (민아 더 껴안으며 졸린 듯) 상관없어. 난 너만 있으면 돼.
             아 졸려~

디졸브.

소파에서 태영 머리에 롤 세팅을 말아주는 민아. 미심쩍은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보는 태영. 그만하고 싶은 태영을 기어이 붙잡아서 롤 세팅 풀어보면 가관이다.
풋 웃음 터뜨리더리 깔깔 웃어대기 시작하는 민아와 태영. 약 오른 태영, 쿠션으로
민아를 때려댄다. 민아도 쿠션 집어 때리고, 서로 베개 싸움을 하듯 때리고 도망친
다.

33. 거실 / 밤

영화를 틀어놓은 채 소파에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성우.
민아, 보다가 성우가 내친 담요를 덮어준다.

민아         이제....니가 내 행복을 방해한다, 성우야.

민아, 작은 가방 정도 들고 다시 나가고, 문 잠기는 소리 들린다.
성우, 듣고 있었던 듯 감고 있던 눈꺼풀이 약하게 떨린다.
태영, 잠깬 얼굴로 나와서 보면 잠든 성우만 있다.
성우, 이불을 깊숙이 덮어주고.

34. 뒷 베란다 / 낮

성우, 쓱 보고 기계적으로 두 개의 박스에 물건을 구분해 던져 넣는다.
그러다 깊숙한 곳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있는 편지구러미를 발견하고
잔뜩 먼지가 쌇여 색깔마저 변질된 편지꾸러미 앞엔 **사단 이병 주성우라고
써있다. 봉투째 그대로인 편지꾸러미들을 바라보던 성우, 그 속에서 한 통의
편지 꺼내든다.‘수신 주성우’ 편지를 꺼내 읽어보는 성우.
‘사랑이 뭔데? 나는 잘 모르겠어. 너와 내가 했던 게 사랑이었는지.... 난 확신이
없어‘ 그러다 성우, 태영이 오는 기척을 느낀다.

성우         (편지 접고 다시 정리하며) 뭐래?
태영         어, 그게...출장. 간 게 아닌 모양이더라구. 당분간 집에 안 들어올
             생각이었나봐.
성우         (쓰게 웃어버리는)
태영         (분위기 바꾸듯) 뭐하고 있어?
성우         버릴 것 정리하는 거야. 그때 제대로 못하고 가서.

성우, 들고 있던 편지꾸러미를 버릴 상자에 던져 넣는다. 태영, 편지들 보는데,

성우         너, 나 부탁하나 들어줄래? 좀 큰 건데.

35. 커피숍 / 낮

성우 발치에 놓여져 있는 작은 가방.
조금 긴장했는지 성우, 주스를 마시며 영숙과 얘기하고 있는 태영 쪽을 바라본다.
영숙, 성우를 바라보면, 성우, 촌스럽게 꾸벅 인사까지 하며 잘 보이고 싶어
웃기까지 한다.

36. 거실 / 성우방 / 석양

민아, 아무도 없이 텅 빈 거실을 둘러본다.
가라앉은 눈으로 쓸쓸히 거실을 바라보던 민아, 그러다 성우 방을 문 열고
바라본다. 성우의 물건이 거의 정리가 되어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왠지 쓸쓸해 보이는 성우의 흔적들.
민아, 미안함과 씁쓸함을 지우듯 방문을 닫는다.

37. 커피숍 / 밤

CLOSE 팻말 내려와 있고.
성우 (태영과 똑같은 옷차림), 열심히 청소중인데 반면 태영, 의자에 발 올리고
앉아 만화책 읽으며 키득거린다.

성우         너 가라 좀, 어? 나도 문 닫고 좀 쉬자.
태영         배고파. 라면 끓여먹자.
성우         왜 자꾸 나랑 놀재. 라면은 들어가서 먹어. 그만 뭉개고, 아 빨랑!
태영         (피식) 왜 너 나 볼 때마다 민아 얼굴이 왔다 갔다 하지?
성우         (눈썹 올라가고)
태영         집에 들어가면 니가 없잖아. 너랑 노는 게 재밌는데.
성우         같은 얘기 반복할래? 질린다 질려. 아주.
태영         셋이 사는 게 재밌었다고~ 한참 익숙해지고 좋아지는데 이렇게
             찢어진 거 김샌다고~ 난 니가 여기서 지내는게 꼴 보기가 싫다고
             됐냐? 반복 싫으면 라면 끓여줘. 배고파.
성우         (내지르려다) 커피숍에 다른 음식 냄새 배면 손님들이 좋아하시겠니?
태영         와, 성우, 너 사장님한테 이쁨 받으려고 되게 애쓰는 구나?
             아부쟁이 같으니라고. 그럼 사장님한테는 내 핑계 대.
             크게 도와줬는데 나한테 그 정도는 해줘야지.
성우         그 유세 언제 끝나나 내가 두고 본다. (포기하고) 근데 라면
             먹어도 돼? (배 턱짓)
태영         (빙긋) 그럼 밥 해줘. 나 사실 니가 해준 밥 무지 먹고 싶었어.

38. 주방 식탁 / 밤

홀로 식탁에 앉아 초밥(도시락)을 바라보다가 안 되겠는지 냉장고에 갖다 넣는
민아. 옅은 한숨을 쉬며 시계를 쳐다본다.

39. 커피숍 앞 거리 / 밤

태영을 마중하러 나온 가벼운 차림의 민아, 커피숍 문 열려다가 우연히 안을
바라본다. 가벼운 이야기들로 웃으며 밥을 먹는 성우와 태영의 모습을 보게 되는
민아. 몬에서 손을 떨어뜨리는 민아의 얼굴이 굳는다.

40. 놀이터 / 밤
민아 그네 타고 바라보면 멀리 성우가 태영을 바래다주는 모습 보인다.
태영, 집으로 가다가 놀이터에 있는 민아를 보고 그쪽으로 온다.

태영         (옆 그네에 앉으며) 와~ 기다리는 사람까지 있고, 기분 근사한데?
민아         (가라앉은 얼굴로 대꾸 없고)
태영         (보다가 일어선다) 안 들어갈래? (대답 없자) 민아야? 야~~
민아         (내뱉는) 나 니 성우하고 친해지는 거 불편해.
태영         (결국 그 얘기군, 무덤덤한) .....왜? 성우랑 니가 과거에 얽혔던
             사람이라서?
민아         .....
태영         난 그런 거 잘 몰라. 민아야. 두 사람이 과거에 어쨌든 그건 두
             사람의 문제고, 현재의 나하곤 상관없다고 생각해.
             성우, 나한테 친구가 됐어. 너랑 똑같은 친구.
             나, 성우 친구로서 도와주고 싶어.
민아         !! (눈빛이 흔들리고)
태영         성우한테 너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어? 꼭 그런 식으로 끝을
             봤어야 해?
민아         넌 내가 아니니까 몰라! 그러니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라고.
태영         (....쓰게 피식 웃어버리는데)
민아         !!
태영         (일어선다) 너 신경 쓰이는 거 전혀 이해 못한다는 거 아니지만,
             너 걸려서 내 맘이 하고 싶은 거 안 하고, 못하는 거, 나 안 해.
             할 생각 없어. 미안하지만 솔직한 맘이야. 늦었어. 그만 들어가자.
             (가는데)
민아         (참았다가 끝내 터져버리는) 너 정말.....
태영         (서고)
민아         (떨림, 손 잡으려) 성우랑 나, 하나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친구니?
             정말 그래?
태영         (피하듯 놓으며) 나 니가 이러는 거 정말 불편해. 무슨 질문이 그래.
             애도 아니고.
민아         (입술이 떨려버린다)
태영         나 힘들 때 니가 도와줬듯이 성우 자리 잡을 때까지 좀 도와주자.
             그거 꼭 사랑만이 할 수 있는 거 아니잖아. 출근해야지. (먼저 가고)
민아         (눈물이 날 것 같다)

41. 욕실

세수를 하는 민아.
민아, 숨을 고르며 거울을 본다. 주저하다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는 민아.

42. 커피숍

성우, 손님들께 서빙하고 돌아서다가 멈칫 선다. 민아가 서 있다.

<시간 경과>

차악 테이블에 마주 앉아있는 성우와 민아.
긴 침묵만이 흐른다.

성우         (순하다) 나.....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어. 종업원이잖아.
민아         .......
성우         민아야.
민아         (나지막한) 다시 들어와. 거기 니 집이기도 하잖아.
성우         (보면)
민아         서로 합의했었어. 돈 갚을 때까지 같이 지내기로. 나 아직 돈 못
             갚았어. 우리 문제는, 글쎄....들어와서 해결보자. 부딪치면서.
성우         갑자기 왜 그래? 나 이제 편해. 제법 익숙해졌어. 여기에.
민아         (끝내고 일어서는) 너 그리고 나.....제대로 자리 잡을 때까지 있어줘
             그럼. 부탁해. (가려다가 내뱉는) 내가 보이는, 내 눈앞에 있으란
             말이야, 모두.
성우         (??)
민아         그렇게 알고 기다릴게. (나간다)

43. 야구 배팅 연습장 / 밤

날아오는 볼 때려대는 성우.
성우 찾아 연습장으로 온 태영, 성우를 보고 그쪽으로 온다.

태영         와, 재밌겠다 그거!
성우         (공만 쳐낸다)
태영         (구경만 하면서 무심히) 잘된 일에 왜 고민하는 척을 하고 그럴까?
성우         약 올리지 마라. 나 뺑 돌 수 있어. 여기 위험한 곳이야.
             (계속 때리다가 멈추고) 진짜 나 어떻게 해야 되냐?
태영         니들 일, 니들이 잘~ 알아서 하는 거지 뭐. 나처럼.
성우         (얄밉다. 다시 공 쳐내고)
태영         (옆자리에 들어서 동전 놓고, 어색하게 공 때린다) 민아랑 괜히
             어색해졌어. 그냥 못 이기는 척 들어와. 우리 모두를 위해서.
성우         (쳐다보면)
태영         (한 걸음 성우에게로 오며) 나 잘하지. 우리 애도 야구나 시켜볼까?
             이승엽 되게.

순간 공 날아오는 거 못 본 태영. 성우, 뛰어들어 감싸 안는다.

성우         (풀며) 딱 너 닮은 여자앨 거다!

44. 몽타쥬

아무도 없이 홀로 소파에 누워 무료하게 텔레비전을 보는 성우.
TV 볼륨까지도 줄여놓아 어쩐지 적막감까지 흐르는데 성우, 다른 생각에 빠진
얼굴이다. 그렇게 시간과 빈 거실에 묻혀있던 성우의 모습, 점점 어둠에 묻혀
사라진다.

‘젱가’ 같은 게임하는 세 사람, 성우가 막대 하나 빼대가 와르르 무너진다.
민아, 유난히 크게 웃으며 재미있어라 하고, 태영과 성우 그런 민아가 낯설다.
아랑곳하지 않고 깔깔 웃어대는 민아.
성우 자다 깨서 나오면 울고 있는 소리 들린다. 태영 방쪽 다가가면 민아가 태영
감싸주며 달래고 있다. 민아에게 태영으로 시선 옮겨가는 성우, 문이 닫힌다.

45. 회의실

민아, 프리젠테이션에 열중이다. 마치면 박수 받고 병수, 민아에게 잘 되었다고
싸인해 준다. 끝내고 자료 정리해 나오는 민아에게 기분 좋은 얼굴로 후다닥 오는
병수.

병수         이대로 절대 집에 못 들어가는 거 알지? 한 잔 꺾어야지.
민아         (쓰게 웃으며) 글쎄.
병수         무슨 글쎄요는 글쎄요야. 당연히 한잔 하는 거지.
민아         (놀림) 형 마나님께 결재 떨어지면.
병수         (무서움 떠오른, 따라가며) 야, 그 결재 니가 좀 받아주면 안 되냐?

46. 거실 / 저녁

석양 속에서 아기 천 기저귀를 정성스럽게 개고 있는 태영.
배가 좀 나와 보인다. 성우, 그 모습 보다가 와서 같이 개준다.

성우         정말 천 기저귀 쓴다고? 야 이게 얼마나 힘든 건데.
             큰 거라도 싸봐라.
태영         괜찮아, 이쁘다, 이쁘다 그럴 거야 나는.
             이렇게라도 해주고 싶어, 안 그럼....많이 미안 할 거 같애.
             우리 애기한테.
성우         (보고)
태영         (웃는) 우리 애기 이거 하면 웃기겠다. 되게 작을 텐데, 그치?
성우         (보다가) 너는.....좋은 엄마가 될 거야, 내가 알아.
태영         (보면)
성우         우리 엄마....나는 사실 우리 엄마 많이 미워했었다.
             (피식) 우리 엄마 무지 재밌는 사람이다. 엄마 하기 죽기보다
             싫었는데.....어쩌다 엄마가 된 거라고. 필요이상 솔직하게 굴었었어.
             불안한 사람이라 제 몸 하나 세상에 붙들고 서 있는 것도 힘들어 해.
             지금까지 너는......그거만 안 하면 돼. 누군가가 엄마라고 부르는 게
             최소한 미안하지 않게 해주면 되는 거야.
             (가벼이) 하긴 뭐 큰 거 싸도 이쁘다, 이쁘다 한다는데, 이미
             충분히 과하지 뭐. 잘 할 거야. 좋은 엄마 될 거니까.
             자꾸 울지 좀 마. 안 어울려!
태영         (젖은)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성우         나니까 알지. 여태 뭐 들었냐? (하다 얼굴 보고) 이거 봐.
             또 또, 또 울려고 해.
태영         (고개 젓는데, 눈물이 금방 고인다)
성우         에이, 바보. (태영의 눈물을 닦아주는데 조금은 다른 느낌)

47. 아파트 현관 앞 / 늦은 밤

택시 한 대 와서 선다.
벌컥 흔들리는 손길로 택시 문을 열고 내리는 민아.

기사         (E, 걱정어린) 아가씨? 여기 확실히 맞아?
민아         (취한 듯 밝게) 네! (내리고 문 닫으며) 안녕히 가세요!

취한 민아, 현관 계단을 오르며 실실 웃어댄다.
그러다 끄트머리 계단에 걸터앉는 민아, 자꾸 자꾸 쓸쓸한 헛웃음을 짓더니 눈을
감는다. 그러더니 거의 잘 듯한 분위기로 돌아서는 민아.
밤참 사가지고 오는지 떡볶이 봉지를 들고 뛰어오던 성우, 민아를 본다.

48. 아파트 거실 / 아침

두통으로 잔뜩 인상을 쓰는 민아.
태영, 민아 앞에 콩나물국을 놓아주고 빙긋 웃으며 앞에 앉는다.

민아         (환한 웃음) 땡큐. (먹는다)
태영         어제 너 기억나?
민아         필름이 좀 날아가긴 했는데, 왜 나 웃기는 짓 했어?
태영         살짝 웃기긴 했는데, 배 잡을 정도는 아니었고. 암튼 성우 아니었으면
             너 저 아래 계단에서 잤을 거라는 것만 말할 게. 거기가 침댄 줄
             알았다더라?
민아         뭐?
태영         아무래도 우리 애기가 니들 사랑 이어주려는 천산가봐.
             갑자기 떡볶이가 먹고 싶다 잖아. (부러) 걔 있으니까 진짜 좋다니까.
             그 콩나물국도 걔가 끓여놓은 거야. 새벽부터 일어나서.
             자식 거 기특하지 않냐?
민아         (자르듯) 어디 갔어?
태영         (피식) 목욕. 오늘 소개팅 있거든.
민아         (멈칫하다 별 내색 없이 국만 먹고)

49. 아파트 복도 / 아침

출근할 모습으로 난간에 엎드려 답답한 듯 아침공기를 쐬고 있는 민아.
들어오던 성우, 민아를 보고 멈칫 선다.
잠시 고민하던 성우, 민아의 가라앉은 모습에 그만 관두고 집으로 들어가려 한다.

민아         잠깐 얘기 좀 해도 돼?
성우         (보고)
민아         고마워. 어제 일. 그리고...다시 집에 들어와 줘서....
성우         니가 고마워할 일 아니야. 제대했으면서 변변히 자리도 못 잡고 있는
             내가 한심한 거지 뭐. 내가 고마워 할 일이야. 맘 쓸 거 없어.
             (먼저 들어간다)
민아         (작은 한숨)

50. 산부인과 대기실

성우, 잔뜩 약 오른 모습으로 산모수첩 들고 대기실로 들어온다.
만화책 읽으면서 깔깔대고 있는 태영을 발견하고 열 뻗친 걸음으로 가는 성우.

성우         (태영 옆에 털썩 앉음녀, 산모수첩 던져주고) 너 이거 별로
             필요하지도 않는데, 나 종처럼 부려먹으려고 갖고 오란 거지?
태영         (만화책만 보며) 아니야. 그거 필요할 걸? 학교에 책 안 갖고 가는
             거랑 똑같잖아.
성우         (눈 올라가고) 껄? 여기에 오늘 볼펜 자국 안 나면 이거 다
             찢어버릴 줄 알아.
태영         그 여자랑 잘 안 된 게 내 탓이냐? 나한테 계속 화풀이네.
             (애 달래듯) 아 그래, 소개팅 한 번 더 해줄게.
성우         (웃기게도 조금 순해지고)

<시간경과>

화장실에 갔다가 오는 성우, 태영에게로 가면서 문득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남편이 따라온 산모, 친정엄마가 따라온 산모 등, 오직 홀로 앉아
있는 건 태영 뿐이다. 만화책 보고 낄낄대느라 여념 없는 태영이건만 성우 눈에
어딘가 측은해 보이고,

성우         (털썩 앉으며, 혼잣말) 씩씩해서 좋다.
태영         (실컷 킬킬대다 갑자기 인상, 배 붙잡고) 이 놈의 방광의 압박.
             화장실 좀. (가고)

성우, 심란한 기분 드는지, 고개 돌리고 외면하는데 옆에 앉아있던 할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할머니       언제 태어나?
성우         네? (당황, 머리 안 굴러가는) 그게.....곧 태어나긴 할 모양인데.
할머니       (바로 정색) 뭔 서방이 그리 무심허당가. 애 은제 나오는지도 모르고.
             글믄 써?
성우         (매 맞는 기분으로)....저 서방 아니거든요.

할머니, 진료실에서 딸이 나오자 성우 말은 귓등으로 안 듣고 가버린다.

성우         (억울한) 나 서방 아닌다. 나 총각인데,
태영         (앉으며) 아, 시원하다.

51. 산부인과 진료실

조금은 민망한 모양의 검사의자 앞에 서 있는 태영과 그 곁에 서서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는 성우. 그러다 성우, 안 되겠는지 몰래 도망가려고 하면,
태영, 못 가게 성우를 잡는다. 진료 준비하는 의사를 의식하며 실랑이 하는
태영과 성우.

<시간경과>

초음파로 보이는 태영의 아이의 모습. 모니터로 보이는 애기를 성우, 태영의 손까지
잡아주며 엄청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52. 동네 약수터, 산책길

약수통을 곁에 두고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을 배경삼아 벤치에 앉아 있는 태영과
민아.

민아         아~ 좋다~ 모처럼 쉬니까 살 거 같애.
태영         성우 만나는 여자 어떤 여잔지 안 궁금해? 물어도 안 본다?
민아         별로. 근데 너 이제 커피숍 일 그만둬야 되는 거 아냐?
태영         그런 말 하지 마. 안 그래도 관두라고 할까봐 무섭구만.
             애 키우려면 조금이라도 더 벌어놔야 한단 말야.
민아         우선 니 몸부터 챙기고 보자. 부족한 건 내가 도울게.
             (하다) 왜......또 거슬리니?
태영         (피식 웃고 일어나려다가 배가 걸리자 앗!) 나 배 많이 나온 거 같지?
민아         모르겠는데?
태영         모르긴, 둔하냐? (민아 손 확 끌어다가 배에 갖다대며) 만져봐.
             많이 나왔지?
민아         (언뜻 얼굴 붉어지고) 그, 그러네. (손 떼려는데)
태영         (놓아주지 않고 붙잡으며) 그대로 있어봐. 운 좋게 태동 느낄 수도
             있어.
민아         (놀란) 애, 애가 움직인다고? 6개월인데?
태영         (미소로 고개 끄덕이고) 저번에 느낀 적 있는데 정말 신기해.
             정말, 정말 신기해. 넌 애 아빠 노릇해준다면서 너무 무심한 거
             아냐? 우리 애기 삐지겠다.
민아         (미소) 미안해. 미안하다 아가야. (태영의 배가 마냥 신기한)
태영         (보다가) 너도 남자 소개시켜줄까? 이 화창한 날 집구석에서
             해방 좀 하게.
민아         (고개 젓고) 싫어.
태영         참 이해가 안 간다. 너처럼 이쁜 애가 나갔다하면 남자들이 줄을
             서는 애가 왜 우울하게 집에만 있으려고 하는지. 게다가 식욕만
             왕성한 임산부만 있는 집에.
민아         너랑 있는 게 제일 재밌어.
태영         (물끄러미 민아 바라보다가) 너, 나한테 과잉친절이야.
             나눌 수 있는 것만 나눠. 그게 좋아. (일어서며) 나랑은 어쩌다
             한 번씩만 있어줘. 데이트 펑크 났을 때나, 몸 안 좋아서 집에서
             쉬고 싶을 때. (가며 밝게) 데이트 해. 간접적으로 나도 좀
             즐겨보자. 난 남자 냄새 맡아본지가 언젠가 싶다. 할 거지?
민아         (옅은 웃음으로 약수통 들고 따라가고)

53. 칵테일 바

병수, 성우에게 명함을 건네준다. 성우, 컵 닦다가 내려놓고 받아들고,

병수         완전 바닥부터 시작하는 거야. 면접 통과 돼도 첩첩산중이라는
             것만 알아둬. 수습 기간 있는 인턴이라 언제 잘린지 몰라. 거기서
             살아남는 거야 니 재주자 운이겠고. 그래도 여기서 시간 죽이고 있는
             것보단 나을 거야. 기회니까 우선 잡고 보자고.
성우         고맙다.
병수         입에 발린 소리 집어치우고, 준비 잘해. (보기 싫은)
             그 컵 좀 웬만큼 닦아라.
54. 성우 방 / 이른 아침

성우,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빗고, 옷가지들을 몸에 대보는 등 분주하다.

성우         (긴장되는 듯, 주문 거는) 주성우, 떨 거 없어. 떨 거 없어.
             잘할 거야. (답답한) 근데 뭐 입고 가냐. 뭐 하나 걸치고 나갈 게
             없네. 이게 좀 낫나...

태영, 빙긋 웃는 얼굴로 들어와 성우 눈앞에 몇 벌의 양복과 몇 개의 넥타이를
흔들거린다.

성우         뭐야?
태영         세탁소 아저씨한테 사정사정해서 뽑아왔지.
성우         (은근히 감동받다가, 양복 잡아채며 되려 버럭) 야, 내놓으려면 진작
             좀 내놓지. (이것저것 대보며 뻔뻔한) 봐. 어떤 게 잘 아울려?
태영         주성우, 잘 해. 우리 아기랑 응원할게.

55. 아파트 앞. 거리

자신감 넘치는 활기찬 걸음으로 아파트를 나가는 성우의 모습 위로 목청이
터질 듯 ‘주성우 파이팅’을 외치는 태영의 목소리가 들린다.
성우, 기분 좋게 손 흔들어주고 가는데도, 태영의 파이팅 소리 그칠 줄 모른다.
손 제 기분에 취했는지 걸걸한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쳐대는 태영 때문에 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러운 성우, 급하게 몸 움직이면서도 싫음 기색은 아니다.

56.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 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민아.
민아의 손에 파인애플이 들려있다.
성우, 가벼운 발걸음으로 케익 들고 오다가 민아를 보고 멈칫 한다. 어색한 미소.

민아         (케익 상자를 보는)
성우         (파인애플을 보다가 케익 들어 보이며) 아, 태영이 주려고,
             요즘엔 케익에 꽂혔다. 그래서....

민아, 작게 고개 끄덕이더니 엘리베이터만 바라본다. 민아의 파인애플이 초라하다.
성우, 무슨 생각이 스치는지 씁쓸한 얼굴로 역시 엘리베이터만 바라본다.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두 사람. 어색한 그들의 모습 후에 문이
닫힌다.

57. 아기용품 매장 / 낮

민아, 묘한 슬픔 묻어나는 옅은 미소로 아기용품들을 구경한다.
그러다 민아, 무언가 기운 차리고 전화기 꺼내드는데, 보면, 배터리가 나가있다.

58. 아파트 거실 / 저녁

민아, 사가지고 온 아기용품 테이블에 내려놓으면 메모 남겨져 있다.
‘전화기 꺼져 있네. 주성우 취직기념으로 한 번 지른다! 연락해. 민아 짱’
민아, 옅은 한숨 쉬며 시계 쳐다본다.

59. 아기용품 매장 / 저녁

마치 부부처럼 조금은 다정스레 아기용품을 구경하는 태영과 성우.

태영         민아 늦나 연락이 없네. (하다) 근데 너 정식사원도 아니면서
             이런 거 사줘도 돼?
성우         (피식) 맘에 드는 걸로 잘 골라봐. 사실 맘 같아서는 더 좋은 거
             사주고 싶어.
태영         웬일이래?
성우         (담백하게) 고마워서.
태영         (뜻밖인)
성우         나한테 니가 좀 잘해줬냐? 면접 땐 양복도 빌려오고, 취직했다고
             같이 쇼핑도 해주고, 첫 출근 땐 마누라처럼 먼지도 털어주고....
             (쑥스러운) 나도 그만큼 니 애기한테 해주고 싶어.
             너한테도 해주고 싶어.
태영         (물끄러미 보다가 픽) 그런다고 내가 싼 거 고를 거 같지?
             (쯧쯧) 아니야 나는.

60. 아파트 복도 / 밤

태영과 성우, 아기용품 들고서 즐겁게 떠들면서 온다.

태영         그래도 많이 봐줬네. 나 같으면 진작 차버렸겠구만.
             어떻게 연애를 그 따위로 하냐. 그따위로 열정 없이.
             나 같으면 어유.
성우         니 배를 봐라. 니가 남 연애에 몸 달아할 때냐?
태영         야, 내 몸이 이러니까 남 연애에 몸 달아하지. 안 그랬음...
성우         나 언제 또 소개팅 시켜줄 거야? 이번에는 좀 묘한 여자로....
태영         (헛꿈 꾸고 있네. 성우 입 틀어막아 버린다)

어딘가 조금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복도에 나와 서 있던 민아.
민아, 두 사람이 함께 오는 모습을 보고 아이용품에 시선 뺏기며 얼굴이 굳는다.

태영         어? 빨리 왔네? 연락 없길래. 우리끼리 저녁까지 먹고 들어오는데
             어쩌냐.
민아         (애써 웃으며) 괜찮아. 나도 방금 먹었어.
태영         그래? 다행이다. 아이스크림 사왔어. (먼저 들어가고)
민아         (들어가려는 성우에게) 주성우.
성우         (보고)
민아         (냉랭한) 너 요새 뭐하고 다니는 거야? 왜 이렇게 내 신경을 거슬려?
성우         그게 무슨 소리야?
민아         (감정 누르고) 내가 태영이랑 약속한 게 있거든? 좋은 친구, 좋은
             엄마, 좋은 아 돼주기로. 건 약속이기 이전에 그건 내가 굉장히
             바라던 일이기도 했어. 근데 내가 손꼽아 기다리던 일들을 왜 자꾸
             니가 하고 다니는지 난 이해할 수가 없어.
성우         (기분 상한) 지금 내가 니 친구를 뺏기라고 했다는 거야 뭐야?
민아         어, 뺏어가지 말아줘.
성우         너 술 마셨냐? 진짜 유치해서 눈 뜨고 못 보겠다.
민아         내영이랑은 그쯤에서 스톱해. 안 그랬다간 내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들어가고)
성우         (어이없는)

61. 거실 / 밤

민아와 성우, 거실로 들어서다가 또 저런다! 표정으로 걱정스럽게 본다.
태영, 소파에 앉아서 아이스크림 먹다가 던져놓고 울고 있다.

성우         (같이 울상인) 또 저런다.
민아         (걱정스러운 얼굴로 들어가서) 왜 그래 또? 아이스크림이 뭘 또
             슬프게 했어?
태영         (울면서 고개 젓고)
민아         (태영 감싸 안으며) 뭔데 그럼?
태영         내 손 꼭 솥뚜껑같이 생겼지? 꼭 발같이 생겼잖아. 발만 네 개 같애.
민아         (쿡 웃음 터지는 거 누르며) 아닌데 왜 그래. (성우에게) 태영이
             손 이쁘지? 그치?
성우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어, 그럼 이뻐. (손 잡아주며) 부드럽고
             좋은데 왜 그래.
태영         꼭 붙은 두부처럼?
성우         어. 붙은 두부처럼.

얼결에 걸려든 성우 때문에 그만 세 사람 웃어 버린다. 울다가 웃어 버리는 태영.

민아         (태영 안아 다독여 주며) 멋있어....용감해....니 애기도 너한테는
             반할 걸?
태영         아니면? 뒤에서 밀면 데굴데굴 굴러가게 생겼다고 미워하면?

그런 태영을 상상하듯 조금은 음흉한 웃음을 짓던 성우, 민아의 시선에 찔끔하며
얼른 태영을 안는다. 마치 끈끈한 우정으로 안고 있는 형국인데.

성우         그럼 우리가 혼 내줄게.

그 앞에 비슷하게 생긴 아기용품 두 개 놓여있다.

62. 샌드위치 가게

통유리 창가에 앉아 앞 건물을 응시하고 있는 태영.
태영의 존재가 익숙한지 종업원, 잔을 리필해 주고는 가벼운 목례를 한다.
태영, 잔을 들다 앞을 보는데, 흐리게 웃는 눈이 된다.
흰머리가 많지만 꽤 강단 있어 보이는 60의 남자, 차가 오길 기다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뭔가 생각이 많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던 남자, 기사가 내려 차문을
열어주자 차에 타고 태영의 시야에서 점점 사라진다.

태영         할아버지야. 잘 봐둬. 또 언제 볼지 모르니까. (눈가 촉촉한)
             근데 안 본 사이에 왜 저렇게 늙었냐? 기분 꿀꿀하게.
             (그래도 봐서 좋은지 미소)

테이블에 올려둔 태영의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태영, 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듯 핸드폰을 들지 않고....거리만 바라본다.

63. 회사 흡연실 / 옥상

제법 익숙한 회사원의 모습(편안한 와이셔츠 차림) 으로 전화하 있는 성우.

성우         (전화 끊고)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사람 신경 쓰이게.
             (가며) 또 어디 숨어서 울고 있는 거 아냐 얘?

성우, 옥상 문을 향해 가는데 마침 핸드폰 울린다. 성우, 반색하며 재빨리 전화를
받고.

성우         야, 걱정했잖아 임마! 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데 이제야....
             (멈칫) 어 그래 민아야. (사이) 아니 몇 번 전화해 봤는데 안 받아서..
             어, 나하고도 연락이 안 돼.

64. 회사 사무실

전화를 들고 있는 민아. 누구라도 와서 툭 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65. 회사 흡연실 / 옥상

성우         (굳는) 결국 그 얘기가 또 나오는구나. 여기서 그래.
             돈 만들어와. 언제든 나가줄게. 무슨 맘인지 보이지도 않게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니 장단에 이 이상 춤추는 것도 지겨운 판이야!

성우, 거칠게 전화 끊는다. 담배라도 찾는지 몸을 뒤적이던 성우,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는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손 떨어뜨린다.

* 민아 회사 - 민아 울고 있다.
* 샌드위치 가게 - 태영, 추스르며, 성우에게 문자 보내고, 일어선다.

66. 야외 카페 / 오후

누군가의 시선 따라 가보면 자유분방하고 멋지고 섹시해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다.
그 시선 성우다. 멋진 그림을 보면서도 무언가 망설이는 성우. 문자가 들어온다.

‘홍대 6시 알지? 특급 로맨스 기대할 게 - 애엄마’

성우         (다시 한 번 여자 보며) 참 섹시하시다 정말. 애도 없고.

67. 현관 앞 / 저녁

태영, 현관 문 열면 태영의 눈앞으로 커다란 꽃다발이 들어온다.

태영         (의아한)
성우         (E) 제발 웃지 마라. 내 딴엔 무지 용기 낸 거니까.
             (꽃다발 내리고 옅은) 우리.....오늘은 다른 사람들인 것처럼 해볼래?

68. 태영 방 / 저녁

조금은 들뜬 얼굴로 아주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태영.
그때 전화벨 울린다. 무심히 발신자 확인하던 태영, 순간 얼굴에 있던 미소가
사라진다.

태영         (망설이다가 받는) 어, 민아야. (사이 두고) 어쩌지..?
             약, 속이 있어. 기분 전환 시켜준대 누가. (사이, 미안한)
             그건....나중에, 나중에 얘기해 줄게. 그래, 미안해.

전화를 끊은 태영.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빗을 들다가 도로 힘없이 내려놓는다.

68. 몽타주 / 밤

민아, 휴대폰 든 손에 극장 티켓 두 장이 보이고 어디론가 발길 옮긴다.
태영과 성우, 극장가를 걷다가 표를 사고, 특별한 날을 맞은 연인들처럼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작은 소극장으로 공연을 보러 가는 두 사람.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수다가 유쾌하다.
같은 공연을 보러왔는지 혼자 표 받아서 들어가려던 민아, 두 사람을 보고 만다.
쿵하고 쓸쓸히 떨어져 버리는 민아의 눈빛.
재밌게 공연을 보는 성우와 태영. 그 뒤로 민아의 자리였던 듯 비어있는 두 자리가
보인다. 공원에 앉아있던 민아, 티켓 넣으려던 가방 속 보면 성우와 찍은 사진이
보인다. 공연장을 나오는 성우, 태영의 손을 잡아준다.
민아, 타고 있던 택시 창문을 내리고 손바닥을 펴면 사진 조각 같은 것이 바람에
날린다. 성우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태영, 그런 성우를 바라보는 눈이 아련하게
가라앉는다.

70. 주방 / 식탁

식탁 화병에 담겨있는 성우가 사준 꽃.
침묵 속에서 식사를 하는 민아와 태영.,
태영, 버거운 듯 밥을 먹다가 결국 숟가락 내려놓고 일어서려한다.

민아         .....태영아.
태영         (보고)
민아         (시선 없이, 낮은) 성우....성우 언제쯤 나가면 될까?
태영         어?
민아         아니 내가.....성우를 내보낼 수 있을까? 이제 와서, 그게......
             가능할까 싶어서.
태영         .......

71. 거실
눈을 감아버리는 민아, 눈물이 차오르는 듯 감은 눈꺼품이 떨린다.
자신의 마음을 가려버린 듯 민아, 한쪽 팔을 이마에 올려 얼굴을 가린다.
그렇게 거실에 누워있는 민아, 그런 민아 곁에 태영이 눕는다.
태영, 슬픈 눈으로 민아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민아의 떨어뜨려진 손을 잡는다.
그 손만 꼭 잡고 한동안 누워있기만 하는 태영.

태영         ....민아야....
민아         .......
태영         난 내가 누구보다도 잘 해낼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럴 자신도 있었고
             또 그렇게 믿었었어. 근데........나 사실 요즘 많이 흔들린다.
             누군가에게...자꾸 기대고 싶어져.
민아         (감은 눈꺼풀 아래로 눈물이 흐른다)
태영         그러니까....지금처럼 니가 이렇게 내 손 좀 꼭 잡아줄래?
             내가 흔들리지 않게....더이상 약해지지 않게...그래서 지금까지처럼
             내가 똑바로 설 수 있게.

약하게 눈물이 고이는 태영, 눈을 감는다. 꼭 잡고 있는 민아와 태영의 손.

72. 버스 정류장 / 밤

비가 내리는 거리. 도로의 가로등불,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들과 와이퍼의
움직임. 한 대의 버스가 와서 서면 성우가 내린다.
가방으로 비를 가리고 집으로 가려는 성우 앞에 노란색 우산을 쓰고 서 있는 민아.
성우, 민아를 본다.

73. 놀이터 / 밤

비는 거의 그쳤다. 똑똑, 고였던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린다.
민아, 그네에 앉아 우산을 바닥에 대고 톡톡 찍는다.
성우, 엉거주춤 그만하고 그네에서 일어나려는데.....

민아         (낮은) 그대로 안장 있어, 주성우.
성우         (얼결에 주저앉고)
민아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지? 태영이하고 너....
성우         (가로막고 실토하듯) 그게....나도 사실 잘 모르겠어.
             내 마음이 왜 이러는지. 이게 대체 뭔지...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어.
             미안한데, 정말 미안한데....그러니까 지금은 날 좀 내버려둘래?
             부탁이야.
민아         태영이 너랑 안돼. 태영인 친구인 나 버리고 너랑 어떻게 할 애
             아니란 말이야. 고백해 봤자 괜히 태영이 머리만 아프게 할 뿐이라고.
성우         그러니까 당장 내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너~
민아         (터뜨림) 끔찍하게 싫으니까! 스물 스물 벌레 올라오는 것 같단 말야.
성우         ! ...그래도 어떻게....그렇게 말을 하냐. 내가 꼭 엄청난 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그리고 너 나 싫다며. 나랑 다시 어떻게 안 할 거라며
민아         (눈물 닦으며) 그건 태영이도 마찮가질 거야.
성우         (중얼) 그건 모르지.
민아         (노려보는데, 자신 없다)
성우         니 말대로 너 걸려서 나랑 엮이는 거 애초부터 생각 안 할지도 몰라.
             그치만 태영이가 조금이라도 날 좋아하는 맘 있다면 나는..
민아         (아아아~ 소리치고, 엉엉 우는)
성우         와 돌겠다. 그만하자 그만해 어? (가려다가 답답함에)
             야, 사시 ㄹ너, 나 도와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차라리 그냥 도와주라
             민아야. 니 친구,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니 친구, 내가 정말 잘해줄게
             뱃속의 애도 내 애처럼....
민아         (소리치는) 나도 태영이 사랑한단 말이야. 너만큼. 아니 너보다 더!
성우         (짜증내는) 알어!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거 알아. 아주 유별나게.
             애 가진 친구 외롭다고 데이트도 안 하는 앤 너밖에 없을 거야.
             입버릇처럼 천년만년 친구랑 살 거라고 말하는 애는 너밖에 없어.
             나 아니라 누구든 태영이랑 만난다는 사람은 다 싫을 걸?
             나 아니라 누구든 쌍지팡이 들고 반대..... (그제야 이상한, 말을
             잃고) !!
민아         (외면하고)
성우         너.....
민아         (가려는데)
성우         (붙잡고) 너....(떨리는) 아, 아니었잖아?

말을 잃어버린 성우, 민아의 팔을 놓아준다.
민아, 들어가려다가....멈칫 굳어버린 듯 제자리에 서 버린다.
성우의 우산을 들고 나왔던 듯, 여분의 우산을 들고 태영이 서 있다.
시간이 정지한 듯 굳은 듯 멈춰 서 있는 세 사람의 모습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들린다. 세 사람, 서로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마는데....
태영, 먼저 돌아선다. F.O

74. 카페

F.I. 모빌 돌아가는 음악소리 흘러나오다 점점 사라진다.
태영, 아이의 손을 꼭 깨물며 어르는 모습이 제법 애 엄마 같기도 한데.
그때 밝은 모습으로 민아가 카페로 들어온다.

민아         (자리로 와 앉으며) 미안, 빨리 온다고 왔는데 그렇게 됐어.
             아직 안 왔어?
태영         (언제는 안 그랬나....고개 끄덕이며 미소)

민아, 아이에게 얼굴 묻으며 웃는다.
태영, 그 모습 아름다운 풍경처럼 바라보는데...누가 통유리를 똑똑 두드린다.
소리에 민아와 태영 보면, 성우가 손을 흔든다.
제법 양복 차림이 익숙해진 성우, 가방을 벤 모습으로 아이를 향해 괴물 같은
표정들을 연속해서 지어 보인다. 그러더니 싱긋 웃으며 카페로 들어가고.,
통유리 너머로 밝게 인사를 주고받는 세 사람의 모습이 너무도 밝고 행복해 보인다

75. 거실 ~ 그들 각자의 방 (몽타주)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처럼 텅 비어 있는 거실.
그리고 역시 텅 비어있는 그들 각자의 방.
창틀, 베란다, 그들의 손이 탄 문, 식탁이 있던 자리, 소파가 있던 자리 등등...
겨울 햇살과 같은 따뜻한 빛이 거실로 들어오고, 먼지가 쌓인 곳곳의 풍경이
보인다. 햇살만이 남아있는 텅 빈 거실에 민아, 태영, 성우, 세 사람이 행복한
모습으로 나란히 마룻바닥에 누워 있던 모습 겹치듯 나왔다가 이내 사라진다.
어쩐지 그 모든 게 꿈만 같다.

 

 

 

 

 

 

 

 

 

 

 

 

 

 

 

 

 

 

 

 

 

 

 

 

첨부파일 그집엔누가사나요 - 손민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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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다반향초 | 작성시간 14.11.17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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