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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대본

[나 엄마 아빠 할머니 안나] 현라회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4.01.12|조회수1,109 목록 댓글 1

[나 엄마 아빠 할머니 안나] 현라회

 

 

 

 

 

 

 

 

 

 


#1 절벽 - 밤
빛나는 달. 그 앞을 스쳐 천천히 나풀거리는 머리카락.
부유하듯 어디론가 천천히 떨어지고 있는 엄마(30대 초).
달빛을 응시하는 엄마의 눈.
FADE OUT
OPENING TITLE
#2 절벽 - 낮
나뭇가지 사이로 빛나는 태양
절벽의 끄트머리. 휠체어에 앉아 눈을 감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엄마. 얼굴에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휠체어를 잡고 있는 소년(7세) 엄마의 미소를 바라본다.
#3 정원 - 낮
날리는 비눗방울. 엄마 예쁜 유리병에 담긴 비눗물로 비눗방울을 만들고 있다. 활짝
웃으며 비눗방울을 쫓는 소년.
소년(VOICE OVER)
엄마는 빛을 사랑했어.
한쪽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안나(여, 20대 초).
비눗방울이 터지지 않게 두손으로 보호하며 따라가는 소년. 그러나 금세 터져버리는
소년의 비눗방울.
안타깝게 보는 엄마와 소년. 그리고 안나.
#4 거실 - 낮
하늘거리는 밝은 색 커튼
소년(V.O.)
3.
엄마는 구석구석에 닿는 빛의 아주 작은 움직임을
하나하나 지켜보곤 했어.
창가에 늘어놓은 유리 공예품들에 닿는 햇살. 바닥에 유리 그림자와 함께 닿는 희미
한 빛. 샹들리에에 반사되어 주방에 흩어지는 빛.
책을 보다가 손에 묻은 빛을 만지작 거리는 엄마.
소년(V.O.)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미소를 살짝 지으면서
엄마
(미소 지으며)
아. 좋다.
소년(V.O.)
하곤 했어.
#5 주방 - 밤
식탁에 어른 거리는 붉은 빛. 붉은 와인이 든 와인잔을 통과한 촛불의 빛이다. 엄
마 와인잔을 들고 천천히 촛불에 비추어 본다.
소년(V.O.)
햇빛이 없는 밤이면 엄마는 금방 슬퍼지는 것 같
았는데.
엄마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멀리서 잠옷입은 소년이 엄마를 지켜보고 있다.
소년(V.O.)
그러면 나도 금방 슬퍼졌어.
소년
(눈에 눈물이 고이며)
엄마.
눈물 가득한 눈으로 소년을 보는 엄마. 미안한 듯 두팔을 벌린다. 엄마 품으로 달
려가 안기는 소년.
엄마
(흐느끼며)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4.
아빠(OFF SCREEN)
여보.
아빠(30대 중반), 엄마와 소년에게 다가와,
아빠
(다소 신경질적으로)
또 왜 이러고 있어. 얼른 들어갑시다.
(소년을 떼어놓으며)
자.. 얼른 들어가서 자야지.
엄마를 끌고 주방을 나가는 아빠. 남겨진 소년.
소년(V.O.)
나는 그래도 그렇게 슬프진 않았다. 내일 해가 뜨
면 또 엄마의 미소를 볼 수 있으니까.
#6 정원 - 낮
햇살 받은 꽃들 위에 물이 뿌려진다.
엄마 미소 지으며 정성스레 물을 주고 있다. 옆에서 웃으며 지켜보는 소년.
소년(V.O.)
엄마는 꽃들도 사랑했어.
엄마
얘들은 햇빛을 너무 사랑해서, 늘 온몸으로 받아
들여, 그리고 이렇게 꽃을 피우는 거야.
엄마 근심스런 표정으로 꽃이 피지 못한 화분에게 다가가 이파리를 쓰다듬는다.
소년(V.O.)
엄마는 어느 화분 하나를 특히 사랑하는 것 같았
어. 왜냐하면 엄마는 늘..
엄마
얘는 정말 엄마랑 비슷하네. 꽃도 잘 못피우고..
소년(V.O.)
그러면서 다른 꽃보다 몇배 정성스럽게 가꿨거든.
5.
꽃이 피지 못한 화분. 아주 작은 푯말로 heaven's gate 라고 쓰여있다. 물을
주고, 이파리를 정성스레 닦아주는 엄마.
소년(V.O.)
엄마는 늘 물을 주고, 햇볕을 쐬어주고,
다른 날, 뒤쪽에 다른 꽃들은 이미 펴있고, 아직 꽃봉오리도 맺히지 않은 화분. 그
래도 물을 주고, 햇볕에 내놓는 엄마.
소년(V.O.)
또 물을 주고, 잎을 닦아, 해를 보게 하고,
또 다른 날, 뒤쪽에 또 다른 꽃들이 펴있는데, 그대로인 화분. 또 물을 주고, 이
파리를 닦아, 햇볕에 내놓는 엄마.
소년(V.O.)
가끔 약도 주고, 또 해도 보게 했는데,
또 다른 날, 뒤쪽에 피어있는 또 다른 꽃들. 그대로인 화분에 영양주사를 꽂고, 햇
볕에 내놓는 엄마.
소년(V.O.)
다른 꽃들이 계속 피고 지는 동안에도 결국 걔는
꽃을 피우지 못했어.
근심스레 화초를 바라보는 엄마. 엄마를 바라보는 소년.
소년(V.O.)
해가 뜨지 않고 흐린 어느 날,
#7 거실 - 낮
거실에 앉아 창가에 놓인 꽃이 없는 화분을 바라보는 엄마. 눈물이 그렁하다.
소년(V.O.)
엄마는 무척이나 슬퍼보였는데도.
엄마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리며)
아. 좋다.
소년(V.O.)
6.
라고 했어.
옆에서 엄마를 지켜보는 소년.
소년(V.O.)
그리고 내가 할머니댁에서 놀다온 어느날,
#8 집안 - 낮
할머니(60대 초)와 함께 텅빈 집에 들어서는 소년. 샹들리에, 유리병 등에 반사된
빛들.
소년(V.O.)
엄마는 나한테 말도 없이 미국으로 떠나버렸어.
창가에 놓인 화분.
소년(V.O.)
결국 꽃이 피는 것도 못보고.
소년을 꼭 안아주는 할머니. 눈에서 눈물이 그렁하다. 소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얼른 닦는.
소년(V.O.)
할머니는 미국엔 흐린 날이 없다 그랬어. 거기서
엄마가 좀 더 행복하게 공부하다 올 꺼라고.
창가에 놓여있는 화분. 눈물이 그렁한 소년.
소년(V.O.)
나도 데리고 가지. 화분도 함께. 우리도 햇빛이
좋은데...
눈물을 터트리는 소년.
소년(V.O.)
그때 처음으로 엄마가 밉다고 생각했어.
FADE OUT
#9 갤러리 - 낮
7.
할머니와 소년 갤러리를 천천히 둘러보고 있다. 직원들 지나갈 때마다 할머니에게
인사한다. 할머니 품위있게 받아주며, 천천히 거닌다.
흑백 사진 작품 앞에 멈춰선 소년. 작품을 멍하니 응시한다.
소년
쏴아아.. 휘이이.... 두둥실..
할머니
응?.. 뭐라고..?
소년
그냥 그림 감상 하는 거에요. 엄마가 가르쳐준 방
법이에요. 일단 그림을 보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천천히 말해보는 거에요. 그러면 그림을
더 잘 느낄 수 있대요.
쓸쓸하게 웃는 할머니
진동음. 할머니 전화를 꺼내 확인하고 잠시 망설이더니 받는다.
할머니
네.
(잠시 듣더니)
응. 지금 같이 있지.
(눈이 경직)
뭐?
툭 손을 떨구는 할머니, 손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핸드폰.
할머니(V.O.)
난 믿을 수 없었다. 그애가 자살했다는 걸.
손에서 떨어지려는 핸드폰을 다시 꽉 부여잡는.
#10 절벽 아래 - 밤
휠체어 바퀴가 힘없이 돌고 있다. 한켠으로 흐르는 핏줄기.
머리에 피를 흘리며 눈을 뜬 채 죽은 엄마.
카메라 절벽을 따라 올라가면,
8.
#11 절벽 - 낮
절벽 위에서 아래를 보고 있는 경찰 둘, 아빠 경찰에게 무어라 설명 중이고, 뒤쪽
에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할머니.
할머니(V.O.)
자주 산책 가던 곳. CCTV도 없는 곳이라 사건
당시 상황은 알 수 없었다.
#12 엄마의 아뜰리에 - 낮
일기장 인서트. 철학들. 아포리즘들. 전혜린의 글들에서처럼 우울한 삶이 보인다.
한장한장 넘겨보는 할머니.
할머니(V.O.)
유서는 없었지만, 아픔과 우울함이 고스란히 담긴
그 애의 일기장이 발견되었다. 게다가 지속적인
우울 증세를 보였다는 사위의 증언. 경찰은 정황
상 자살 내지는 실족사라며 수사를 순식간에 종결
해버렸다.
가슴 저미는 아픔을 느끼는 할머니.
바닥에 내팽개쳐진 붓, 덩그러니 놓인 캔버스를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엄마가 바닥
에 웅크려 있다. 그 옆에 뒤집혀 있는 휠체어.
할머니(V.O.)
화가로서 보인 우울, 사위와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눈치는 있었지만 자살이라니..장애아로서 힘
든 터널을 꿋꿋하게 버텨냈는데. 사랑도 찾고..
아이도 낳고..
웅크린 엄마를 보고 있는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13 호수 - 낮
햇빛이 수면 위에 눈부시게 빛나는 호수. 수면을 가르는 물수제비.
9.
소년 환한 얼굴로 돌을 던지고 있다. 그 옆에 환하고 고운 빛깔의 한복을 차려입고
양산을 쓴 채 앉아있는 할머니.
할머니(V.O.)
너무 미웠다. 내딸이.
(beat)
너무 분하고 미워서, 그날도 나는 일부러 밝은 옷
을 골라 입었다... 물론 아이에게 비밀로 해야하
기도 했지만.
저 멀리 떠 있는 조각배. 검은 옷을 입은 아빠와 안나(노골적인 상복은 아니고 어
두운 계열의 옷들) 유골을 뿌리는 듯 보인다. (희미하게만..)
소년
할머니! 왜 아빠랑 안나이모만 배타요? 우리도 타
면 안돼요?
할머니
(터지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 그래.. 둘이 다녀오면 할머니랑 같이 타자.
밝게 웃는 소년. 환호하며 다시 조약돌을 던지고.
할머니 참던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14 할머니의 정원 - 낮
즐비하게 줄을 선 장독들.
할머니(V.O.)
그래도 나는 이제 하나뿐인 내 핏줄을 위해 살기
로 했다.
메주를 으깨고, 보리쌀죽, 찹쌀죽, 고춧가루, 액젖, 간장등을 넣고 휘젓고,(고무
대야 말고 더 고급스러운 것에) 독에 천천히 붓는 할머니.
할머니(V.O.)
그래야 다음에 내 딸을 만나면 더 호되게 혼을 내
줄테니까. 니가 버린 자식까지 내가 다 키워줬다
고.
마지막으로 투명한 병에 담긴 노란 물 같은 것을 장에 넣는다. 비장한 표정.
10.
FADE OUT
#15 욕실 - 밤
샤워를 마치고 욕실 거울 앞에서 로션을 바르고 있는 아빠.
로션과 향수 옆에 아내의 향수가 보인다.
아빠(V.O.)
내가 좋아하던 아내의 향수..
아빠 향수를 들어 천천히 보다가 자신의 손목에 뿌려 향기를 맡는다.
FLASH BACK:
- 바닷가를 산책 중인 아빠와 엄마. 엄마 목덜미의 향기를 맡고.. 그곳에 키스 하
는 아빠.
아빠(V.O.)
그때 우리는 참 많이 사랑했는데... 선천적 소아
마비였던 그녀를 그때 나는 아무 조건 없이 사랑
했다.
- 거실, 낮. 쉬폰 커튼으로 옅은 빛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엄
마. 작은 손을 경이로운 듯 어루만지는 아빠.
아빠(V.O.)
아이도 태어나고, 세상의 모든 행복은 우리에게
오는 듯 했다.
- 정원, 낮. 아기를 안고 빙글빙글 도는 아빠. 까르르 웃는 아기. 옆에서 흐뭇하
게 지켜보는 엄마.
덜컹 대문이 열리는 소리.
대문 쪽을 보는 엄마와 아빠. 문 열어주는 기사. 주눅든 표정으로 대형 트렁크 하
나를 들고 들어오는 교복 차림의 안나.
아빠(V.O.)
그리고 언제부턴가 아내의 향수를 맡을 수가 없었
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의 외로움이 시작된 것
같다.
- 거실. 낮.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아빠 다가와서 엄마를 안으려 하자 아기가
잔다는 시늉을 하며 제재하는 엄마.
11.
- 정원. 낮. 비누방울 날리며 노는 엄마와 소년. 멀리서 바라보는 아빠.
- 안방. 밤. 아빠 엄마를 만지려 하자. 피곤하다며 돌아눕는 엄마.
아빠(V.O.)
자식에게 아내를 뺏긴 듯한 느낌.
BACK TO SCENE
거울을 물끄러미 보는 아빠
아빠(V.O.)
자식과 아내가 언제든지 나만 두고 멀리 떠나버릴
것 같은 기분.. 힘들게 인생의 동반자를 찾은 것
같은데, 결국 세상에 다시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
#16 절벽 - 밤
멀어지는 엄마의 손과 아빠의 손
아빠(V.O.)
그리고 결국 나는 그녀를 놓아버렸다.
아빠의 손만 남긴 채 화면 밖으로 사라져버리는 엄마의 손
#17 거실 - 낮
거실로 들어서는 양복 차림의 아빠. 텅빈 집.
아빠(V.O.)
그 때 내가 그녀를 놓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샹들리에, 유리잔을 보는 아빠. 아빠의 얼굴에 빛이 어른거린다.
아빠(V.O.)
그녀를 놓은 후 쳐다보기도 싫었던 것들이, 이제
는 자꾸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물뿌리개를 들고 뛰어들어와 창가에 놓인 화초에 물을 주는 소년.
12.
소년
아빠! 여기 꽃이 피면, 우리 이거 들고 엄마 만
나러 가요. 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빠. 소년 아빠에게 달려와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소년
정말이죠? 약속한 거에요?
아빠 마지못해 손가락을 건다.
소년
(활짝 웃으며)
와! 안나 이모한테 자랑해야지!
신나게 뛰어나가는 소년. 창가로 다가가 화초를 어루만지는 아빠.
아빠(V.O.)
아프다. 그때 한번 더 이렇게 어루만져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한번 더 따뜻하게 안아주었더라면..
아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아빠(V.O.)
왜 늘 추억이 되어서야 느낄 수 있을까
FADE OUT
#18 주방 - 아침
팔팔 끓는 된장찌개가 놓여진다. 앞치마를 두른 안나, 찌개를 놓고 기침을 쿨럭.
다시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 부산하게 주방으로 간다.
곧 출근하려는 듯 셔츠를 입고 식탁에 앉은 아빠, 맞은 편의 소년 된장 냄새가 싫
은 듯 얼굴을 찌푸리고 코를 막은 채 다시 책장을 넘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서 3권)
아빠
식탁에서 책 보는 거 아니랬지. 얼른 먹자.
소년 마지못해 책을 덮어 한쪽으로 치운다. 억지로 밥을 떠 먹고..
아빠
이제 된장찌개도 좀 먹어야지. 외할머니 된장이
얼마나 맛있는데..
13.
소년
(얼굴 찌푸리며)
아직은 싫어요. 할머니가 싫으면 억지로 먹지 않
아도 된대요. 나중에 자연히 알아서 먹게 된다구.
안나 들어와 앉으며,
안나
(분위기를 밝게 하려는 듯 웃으며)
그래. 다른 야채랑 두부랑 잘먹으면 되니까 괜찮
아. 얼른 먹자.
아빠 못마땅한 표정으로 식사를 하다가 쿨럭 기침을 한다.
안나
(눈을 못마주치며)
...날이 많이 쌀쌀해지긴 했나봐요. 저도 며칠
전부터 자꾸 기침을 해요.
아빠
(역시 눈을 보지 않고)
..응.. 처제는 작업 시작했어?
안나
..아직은요. 아이디어가 잘 안떠올라서.
아빠
(잠시 머뭇)
..고민.. 너무 많이 안했으면 좋겠어.
안나
(침울하지만 애써 미소를 지어보이려하며)
네...
어느 틈에 몰래 책을 보고 있는 소년. 아빠 소년을 무섭게 째려보자 소년 얼른 책
을 덮고 다시 밥을 먹는다.
안나 그런 둘의 모습을 지켜본다.
안나(V.O.)
처음엔 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14.
#19 정원 - 낮
갓난 아이와 재밌게 놀고 있는 아빠 엄마. 빨래를 널다 가족을 지켜보는 현재의 안
나.
안나(V.O.)
언니는 모든 걸 다 가졌었다. 진짜 아빠, 진짜
엄마, 성실하고 헌신적인 남편.
옆에서 날아오는 비눗방울. 현재의 소년 비눗방울을 불고 있다.
안나(V.O.)
그리고, 똑똑하고 착한 아들까지. 나는 영원히 가
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들을.
#20 창고 - 낮
안나 어두운 창고로 들어와 먼지가 수북히 쌓인 언니의 그림들옆에 잡동사니 박스를
구석에 놓는다. 그림들을 하나둘 들추어보는 안나.
안나(V.O.)
언니는 빛의 미세한 움직임을 화폭에 담으려 했
다. 그리고 언니는 분명 재능있는 화가였다.
한쪽 구석에 접혀져있는 언니의 휠체어를 보는 안나.
안나(V.O.)
하지만 어떤 그림도 빛 자체의 아름다움을 고스란
히 담을 수는 없다. 그리고 언니는 그 영원히 가
질 수 없는 것 때문에 스스로 상처받고 고통스러
워했다.
FLASH BACK:
- 아뜰리에, 낮.
화이트 와인이 담긴 와인잔을 투과한 빛의 움직임을 따라 그리는 엄마. 낙심한 듯
붓을 던지고..
BACK TO SCENE
미완의 그림을 보고 있는 안나
15.
안나(V.O.)
이미 많은 것을 가졌기에 가지지 못한 것이 더 눈
에 들어왔던 걸까. 아니면 절대 가질 수 없는 것
이기에 더 집착하게 됐을까. 나처럼.
#21 유리공예실 - 낮
안나 뜨거운 불에 유리병을 만들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
엄마
.. 멋지네..
안나
(미소 지으며 잠깐 돌아보며)
멋지긴 뭘..
(다시 작업에 집중)
언니 작업이 훨씬 멋있지.
엄마
나는 따라 그리지도 못하는 빛을 너는 어르고 달
래서 뭔갈 만들어내잖아.
안나 미소 짓는다. 엄마도 미소. 하지만 쓸쓸한.
안나(V.O.)
그렇게 언니가 숨겨놓은 상처에서 질투와 증오가
자라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시 작업에 열중하는 안나.
#22 주방 - 밤
엄마
하하..니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넌 결국 첩의
자식일 뿐이야.
늘어져있는 와인잔과 병들. 당황한 표정의 안나와 아빠.
아빠
16.
여보. 당신 취했어. 요새 많이 피곤했나봐. 얼른
들어갑시다.
아빠 엄마의 휠체어를 끌고 가려는데, 강하게 브레이크를 잡는 엄마.
엄마
내가 취하든 말든! 당신이 언제부터 나한테 그렇
게 관심을 가졌는데? 왜? 내가 그렇게 창피해?
젊고 예쁜 애 앞에 있으니, 늙은 병신은 아예 꼴
보기도 싫은 거야? 이까짓 술잔이나 만드는 애가
그렇게 좋아?
옆에 놓여있던 유리공예잔을 바닥에 던지는 엄마.
산산조각 나는 유리. 멍한 안나.
아빠
여보! 왜 이래!
아빠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려는데,
엄마
(부축하려는 아빠의 손을 뿌리치며)
그 더러운 손 치워!
아빠 당황하여 멈칫하는데,
엄마
당신 벌써 쟤랑 잤지?
아빠
(억울하게 소리치며)
여보!!
분노에 휩싸이는 안나. 깨진 유리잔들을 움켜 쥐다가 피가 난다.
안나(V.O.)
그리고 내가 숨겨왔던 상처에서도 질투와 증오가
싹트기 시작했다.
유리 조각을 타고 바닥으로 흐르는 피. 안나의 눈빛 처연하다.
안나(V.O.)
세상은 불공평하다.
17.
FLASH BACK:
어느 방, 밤.
목을 맨 안나 엄마의 실루엣.
고등학생 교복의 안나 정신이 나간 듯 멍하니 서있다.
BACK TO SCENE
어느새 혼자 남겨진 안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안나(V.O.)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다. 모든 걸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따뜻한 가족 하나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
도 있다.
거실로 찾아오는 아빠. 안나의 손에 난 상처를 감싸는 아빠.
안나(V.O.)
나는 정말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상처를 숨
기다가 결국 그 상처에 먹혀버린... 버림받은 첩
의 길을 밟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23 안나의 방 - 밤
아빠와 격렬히 키스 하는 안나.
안나(V.O.)
어느덧 나는,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엄마의 길로
들어서버렸다. 내 것도 아닌 것들을 가지려했다.
아빠를 꽉 움켜쥐듯 끌어안는 안나의 손
#24 정원 - 낮
하얀 이불 쉬트를 넓게 널고 있는 안나의 손.
뒤편에서 휠체어를 타고 빛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 엄마와 소년. (#39,52
상황)
18.
아빠 은밀히 다가와 안나의 손을 잡으려 하는데, 화들짝 놀라 손을 빼는 안나. 무
안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돌아서는 아빠.
안나(V.O.)
하지만, 나는 죽어도 엄마의 길을 따라가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발을 뺐다. 늦었더라도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25 절벽 - 밤
울먹이며 고백하려는 안나. 놀라는 엄마.
절벽으로 떨어지는 엄마. 크게 놀란 안나.
#26 정원 - 낮(현재)
멍하니 이불을 널고 있는 안나.
안나(V.O.)
나는 다시 모든 상처를 숨겨야했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조용히 입을 닫아야했다. 그리고 그건 결
국 우리 엄마가 걷던 그 길이었다.
다시 기침을 하는 안나, 고통스러워 하는데.
소년(O.S.)
이모! 이모!
소년, 안나에게 신이 나서 달려온다. 안나 무슨 일인가 소년을 보는데,
#27 거실 - 낮
엄마의 화초에 꽃봉오리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안나 신기하게 보는데,
소년
아까 보니까 이렇게 조금 자라났더라구! 그럼 이
제 꽃이 피면 우리 엄마 보러 가는 거지?
안나 당황스럽다.
19.
안나
(얼버무리며)
어.. 응..
근심스런 안나의 표정.
안나(V.O.)
내가 이 침묵의 길을 계속 걸어가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될까.
(beat)
이미 곪아가고 있는 이 상처가, 결국... 이 아이
마저 잡아먹게 된다면..
환하게 웃고 있는 소년.
#28 MONTAGE : MUSIC SEQUENCE
미니멀하고 소프트하지만 선을 유지하는 보컬곡.
- 나무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햇빛
- 날리는 비눗방울 하나둘 터져가고
- 또르르 굴러가는 유리 구슬 땅에 파놓은 구멍으로 들어간다.
- 유리병을 투과하는 빛들 커튼에 살짝씩 가린다.
- 꽃봉오리에 뿌려지는 물줄기
- 기대에 부풀어 화초를 가꾸는 소년
#29 거실 - 낮
책장에 닿는 햇살.
책을 읽고 있는 엄마(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권). 그 옆에서 엄마가 책을 보는
모습을 지긋이 보다가 역시 책을 펼치는 소년.
소년(V.O.)
엄마를 따라 읽기 시작한 책이 언제부턴가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었어.
20.
한쪽에 가지런히 놓인 책들 끄트머리로 갈수록 여기저기 널부러진 책들. (셜록홈즈
전집, 해저 2만리 등..너무 그림책들은 말고)
카메라 한바퀴 돌아오면 현재의 소년 홀로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소년(V.O.)
책은 다른 친구들과 다르거든. 보통의 친구들은
자기와 다른 친구를 이해하려들지 않아. 그리고
나도 걔들을 한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구. 시간을
좀 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전에 먼
저 따돌리거나 놀리거든..
책을 덮고 다른 책을 펼치는 소년
소년(V.O.)
하지만 책은, 내가 걔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
는 시간을 줘. 그러다 결국 이해할 수 없어도 덮
어버리면 그만이구. 그렇게 해도 책은 나를 놀리
거나, 장난감이나 간식을 던지지도 않거든.
#30 엄마의 서재 - 낮
책이 가득한 책장과 책상이 놓인 서재. 소년 천천히 책의 목록을 살핀다.
소년(V.O.)
엄마가 특히 좋아했던 책.
서재에서 책 하나를 꺼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서재에는 11권(국일미
디어판 기준)까지 다 있어야 함.) 책을 천천히 넘겨보는 소년.
소년(V.O.)
사실 처음엔 제목조차 이해할 수 없었어. 내용은
더 복잡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진도가 느리거든.
#31 엄마의 서재 - 밤
홍차에 담겨지는 마들렌. 마들렌이 천천히 홍차를 머금는다.
스탠드를 켜놓고 혼자 책을 읽는 소년.
21.
소년(V.O.)
침대에서 주인공 남자가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가
몸을 한번 뒤집을 때까지 열페이지가 걸려. 확실
히 해저 2만리나 셜록 홈즈같은 흥미진진한 소설
은 아니야.
눈을 감고 천천히 마들렌을 음미해보는 소년.
소년(V.O.)
그래도 난 이 소설이 좋았어. 상상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작가를 생각하면, 빛의 작
은 움직임까지 하나하나 지켜보던 엄마가 떠오르거
든.
손톱으로 그어진 밑줄 자국. "날마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을 받
을 수 있도록 해주리라." (펭귄클래식판 2권 277p.)
소년(V.O.)
그러다 엄마의 흔적을 발견했어. 엄마는 펜으로
밑줄을 긋는 걸 싫어했거든. 나중에 다시 볼 때
그것만 먼저 보여서 다른 것들을 놓친다구. 그래
서 엄마는 항상 보일 듯 말듯 손톱으로 밑줄을 그
었어.
FLASH BACK:
엄마.. 서재에 앉아 스탠드 아래에서 손톱으로 밑줄을 그으며 같은 구절을 되뇌인
다.
엄마
날마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
을..
BACK TO SCENE
다시 소년.. 책을 기울어 손톱 자국을 확인하며 천천히 책을 읽는다.
소년
(작게 소리내어)
가장 아름다운 꽃들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리라.
고개를 들고 살짝 웃는 소년. 밑줄 그어진 끝에 펜꼭지로 꽃모양을 덧붙여 그린다.
소년(V.O.)
22.
나는 그옆에 조그맣게 꽃을 그렸어. 아마도 내일
쯤이면 꽃이 활짝 필꺼야. 그리고 곧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받게 될 꺼야.
천천히 책을 덮는 소년. 희망의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소년(O.S.)
엄마! 이모! 엄마!!!!!
#32 소년의 방 - 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는 소년.
놀란 안나 문을 열고 뛰어들어온다.
안나
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안나 품에 와락 안기는 소년
소년
(울먹이며)
엄마랑.. 이모랑.. 가버렸어..
안나
(멈칫)
왜.. 어딜가.. 이모 여기 있잖아..
소년
내가 불러도 불러도 그냥 가버렸어. 깊은 굴 속에
들어가버렸어..거기 괴물이 있는데.. 내가 위험하
다고 소리쳐도.. 그냥 갔어..
안나 마음이 뜨끔하다.
소년
(더 품에 안기며)
그래서 나도 그냥 따라 들어갔어. 나 엄마랑 이모
없으면 못살아.. 나..
마음이 심란한 안나.
23.
#33 소년의 방 - 아침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 지지귀는 새소리. 침대에서 일어나는 소년. 일어나자 마
자 커튼을 연다.
소년(V.O.)
다음날 아침은 햇살이 정말 좋았어. 그래서 지난
밤 꿈에서 일어난 일은 금방 잊어버렸어.
환한 햇빛에 눈이 부신 소년.
소년
(엄마가 하듯이)
아. 좋다.
침대를 박차고 나오는 소년
#34 거실 계단 - 낮
아래층으로 후다닥 뛰어내려오는 소년.
소년(V.O.)
무언가 희망이 있을 때, 난 참 좋아.
FLASH BACK:
- 구슬들이 가득 땅에 파놓은 구멍에 들어있다. 소년 기도를 하듯 마지막 구슬에
입을 맞추고 멀리서 던진다.
- 별모양 뽑기를 거의 완성해나가는 소년.
BACK TO SCENE
커튼으로 가려진 화초 앞으로 다가가는 소년. 기대에 찬 얼굴로 커튼을 확 젖힌다.
그런데 환했던 소년의 얼굴이 확 일그러진다.
소년(V.O.)
하지만 희망은 늘 마지막 순간에 사라져버려.
FLASH BACK
- 구멍 입구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추는 구슬. 실망한 소년.
24.
- 별모양 뽑기 마지막 끄트머리 부분을 조심스레 떼어내는데, 힘없이 뚝 부러지는
뽑기.
BACK TO SCENE.
화초에 꽃봉오리가 없다. 부러진듯 잘라진 흔적.
울먹이기 시작하는 소년.
소년(V.O.)
나는 정말 슬펐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왜 항상
나를 떠나가는 것일까.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차오른다.
뒤에서 지켜보던 안나 조용히 다가온다.
안나
왜.. 무슨 일 있어..?
소년 울며 화분쪽을 가리킨다. 없어진 꽃봉오리를 보는 안나.
소년
(참고 있는데 눈물이 흐른다)
이모 나 정말 엄마 보고 싶어.. 나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아.
소년 결국 안나에게 파묻혀 엉엉 울기 시작한다.
소년
원래 꿈은 반대라고 했는데.. 그래서 더 기뻤는
데.. 나 갈꺼야. 나 엄마한테 갈꺼야!
안나, 소년을 안고 생각한다.
안나(V.O.)
나는 침묵을 깨고 우리 엄마의 길을 벗어나기로
했다. 나로 인해 빚어진 상처들.. 그 상처가 더
곪기 전에 왜 어떻게 생겼는지 밝히기로 했다. 그
게 이 아이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니까. 그게 내가
속죄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안나, 소년을 떼어 놓고 무릎 꿇고 앉아서는
안나
25.
이모랑 같이 꽃을 만들자. 영원히 지지 않는 꽃.
눈물 범벅인 소년 울음을 멈추고 안나를 보는데.
#35 유리 공예실 - 낮
작업 선반 한쪽에서 엄마의 화분을 놓고 그림을 그리는 소년.(크레파스? 색연필?)
소년(V.O.)
안나 이모와 나는 함께 엄마의 꽃을 만들기로 했
어. 이모는 꽃이 완성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
를 보게 해준다 그랬어.
(beat)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꽃.. 그 작고 여린 줄기에
어울리는 꽃은 어떤 걸까.. 나는 상상으로 이런
저런 꽃을 그려봤어.
하나둘 쌓여가는 스케치.
안나 늘어놓은 스케치를 보다가 서툴게 삐뚤빼뚤 그려진 꽃 그림 하나를 고른다.
소년(V.O.)
그런데 안나 이모는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못그렸
다고 생각하는 꽃 하나를 골랐어.
소년
정말? 이모? 이게 맘에 들어? 이렇게 못그렸는
데?
안나
응. 가장 솔직한 게 아름답거든. 엄마도 분명히
좋아할 꺼야.
안나 스케치를 한쪽 벽면에 붙이고 흐뭇하게 쳐다본다. 미소짓는 소년.
시간 경과.
작업 중인 안나. 옆에서 안나를 돕는 소년 작업을 하다가 불을 가만히 지켜보며,
소년
훠어억. 쉬익... 뜨거움. 강렬. 태양.
26.
소년(V.O.)
저 불은 정말 작은 태양 같아. 이모는 작은 태양
을 이리저리 다루어 꽃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야.
엄마도 좋아했겠지..? 엄마는 빛을 사랑했으니
까..
엄마(O.S.)
난 싫어.
CUT TO
#36 안방 - 밤 (#22 연결)
잔뜩 취해 베개가 하나 뿐인 침대에 누은 엄마. 문 앞에 서있는 아빠.
엄마
(눈 감은 채로)
안나는.. 내일 당장 내보내버릴 꺼야.
아빠
(황당하다)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당신
동생이잖아.
엄마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아니? 왜 자꾸 내 동생이라고 그러는 거지? 걔는
우리 아빠의 욕망이 저질러낸 찌꺼기일 뿐이야!
아빠
(너무 갑작스런 발언에 한대 맞은 듯)
당신.. 갑자기 왜 이렇게 변했어? 처제를 더 아
꼈던 건 당신이었잖아. 너무 큰 재능을 가졌는데
슬픈 운명을 타고 나서 안타깝다고.
엄마, 피식 웃으며
엄마
당신도 따라 나가줄래..? 난 내 아들만 있으면
돼. 어차피 나랑 한집에 사는 거 당신도 불편해하
잖아. 회사 경영권도 다시 내놓고. 그동안 소아
마비 병신 좋다고 연기했던 수고비정도는 줄테니
너무 억울해말고. 뭐 요새는 그나마도 안했지만..
27.
아빠
(멍...)
당신.. 정말 미쳤구나..
문을 박차고 나가는 아빠.
남겨진 엄마.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FLASH BACK:
-엄마의 작업실. 거대한 캔버스. 이리저리 헝클어진 붓 자국.
엄마(V.O.)
그것은 막다른 골목...
-어지러진 화구.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엄마.
엄마(V.O.)
작품으로도.. 내 삶에 있어서도 나는 막다른 골목
에 다다라있었다.
-아기의 발을 만지며 눈물 흘리는 엄마.
엄마(V.O.)
아이는 나의 새로운 희망이었지만, 동시에 내 삶
이 결국 피어보지도 못한 채 사그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엄마의 화분에 물을 주는 엄마. 멀리 뒤에서 보는 아빠.
엄마(V.O.)
남편은.. 글쎄.. 그는 나를 이해했을까. 나도 그
를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우린 그렇게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아갔다.
- 빨래를 안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안나. 하얀 이불보를 너는 안나.
엄마(V.O.)
그리고 어느샌가 내 삶에 들어온 안나.
-거실 창가에 놓인 유리병을 하나씩 들어보는 엄마
엄마(V.O.)
그 애는 정말 재능을 타고 났다.
28.
-유리공예실. 작업 중인 안나, 뒤에서 지켜보는 엄마.
엄마(V.O.)
이것이 살리에리가 느꼈던 질투였던 걸까. 내가
어쩌다 살리에리가 되어버린 걸까..?
-맛있는 음식을 식탁에 놓는 안나, 아빠와 소년 맛보더니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 세
운다. 씁쓸히 웃는 엄마.
-빨래를 너는 안나, 소년 빨래 사이를 뛰어다니며 즐겁게 뛰논다. 한켠에서 지켜보
는 엄마.
엄마(V.O.)
언제부턴가 그 애가 내 옆에 있던 남편과 아들 모
두를 다 빼앗아가는 것 같았다.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마지막 기운까지도.. 모조리.
BACK TO SCENE
울고 있는 엄마.
엄마(V.O.)
하지만 그래.. 안다.. 그들이 내게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 나의 열등감이 벽을 세웠기 때
문인 걸.. 내가 다시 스스로 그 벽을 허물면 될
일이다. 그래.. 그것 뿐인 것이다.
엄마 고개를 들고 눈물을 닦더니.
엄마
아.. 유치해..
너털웃음을 짓는 엄마.
FADE OUT
#37 주방 - 밤
깨진 유리 조각이 피범벅이 묻은 채로 한데 모아져 있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안나 많이 취한 듯 고개를 떨군다.
아빠 들어와 안나 옆에 앉다가 안나 손에 묻은 피를 본다. 안나의 상처난 손을 천
천히 어루만지는 아빠 교차하는 서로의 눈길.
아빠 안나에게 급하게 다가가 키스한다. 응하는 안나.
29.
아빠(V.O.)
그날 밤, 우리는 넘지말아야할 선을 넘었다.
#38 안나의 방 - 밤
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에 누워 애무하는..
아빠(V.O.)
다분히 충동적이었지만, 내 안에 쌓여왔던 외로움
과 연민.. 그리고 안나의 상처가 서로 부딪혀 폭
발했던 것이다.
#39 정원 - 낮
# 24,52 상황. 한쪽에서 빛과 그림자 사이로 왔다갔다 하는 엄마와 소년. 한켠에
서 이불을 너는 안나.
아빠 은밀히 다가와 안나의 손을 잡으려 하는데, 화들짝 놀라 손을 빼는 안나. 무
안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돌아서는 아빠.
아빠(V.O.)
그리고 나는 어느새 심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안나
를 갈망하게 되었다.
#40 소년의 방 - 밤
침대에서 잠든 소년. 안나 옆에서 소년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이불을 정리해주고 있
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빠.
아빠(V.O.)
나는 내 잘못에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었
다. 그래 이 정도는 괜찮아.. 나는 외로우니까.
잘못은 내 아내가 먼저했으니까. 안나는 어차피
남이니까.
30.
#41 복도 - 밤
소년의 방에서 나오는 안나. 아빠 안나를 잡아 끌어 벽에 밀치고 키스를 하려는데,
완강히 거부하고 급히 자리를 뜨는 안나
아빠(V.O.)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대, 거리감..
#42 유리공예실 밖 복도 - 낮
치킨, 피자, 음료수 등을 사들고 유리공예실을 찾아 두리번 거리는 아빠.
아빠(V.O.)
나는 욕망을 제어하려 노력했다. 나는 자상한 아
빠였으니까.. 그래.. 아들만 바라보는 거야..
#43 유리공예실 - 낮
문 밖에서 안쪽을 보는 아빠.
소년과 안나가 땀을 흘리며 유리 꽃을 작업해가고 있다. 중간 중간 기침을 하는 안
나.. 현기증도 느끼는 듯 의자에 잠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작업하는 안나.
아빠(V.O.)
하지만.. 어느덧 나는 아내와 아들에게 느꼈던 소
외감과 질투심을 또한번 느끼고 있었다.
밖에서 물끄러미 보는 아빠. 돌아서 가버린다.
#44 유리공예실 밖 복도 - 낮
화난 듯한 표정으로 걸어나와 휴지통에 사온 것들을 버리는 아빠. 겨우 마음을 진정
하곤,
아빠(V.O.)
그래 나는 미친 놈이다. 자기 자식에게 질투라
니.. 하지만...그게.. 솔직한 내 속마음이었다.
아빠, 유리공예실 쪽을 보다가, 하.. 한숨을 쉬고 다시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린다.
31.
FADE OUT
#45 갤러리 원장실 - 낮
원장실에서 집무를 보고 있는 할머니.
안나 다소 창백한 얼굴로 포트폴리오를 끼고 들어와 정중히 인사한다.
할머니
어.. 그래.. 앉아.
조심스레 앉는 안나.
할머니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혈색이 별로 안좋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니?
안나
아니에요.. 그냥.. 요새 좀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요.
안나 기침이 터지자 얼른 손수건으로 가리며 고개를 돌린다.
할머니
(모른 척 하며)
...그래.. 기획전 준비는..?
안나
그렇지 않아도 그것때문에 양팀장님이랑 상의차 왔
어요.
할머니
그게 포트폴리오니..?
안나
네..
할머니
잠깐 봐도 돼?
안나
그럼요.
안나 포트폴리오를 건넨다. 할머니 흝어보다 점점 표정이 굳어진다.
32.
할머니(V.O.)
아름답다... 당신.. 내 딸에게 주지 않은 재능을
이 아이에게 주셨군요.
할머니의 표정이 더 어두워진다. 안나, 더 소심하게 눈치본다. 기침이 터지자 조심
스레 고개를 돌리고 손수건으로 입을 막으며 기침하는.
할머니
그래.. 조금만 더 다듬으면 좋겠구나. 내가 양팀
장이랑 얘기해볼께 이건 여기 두고 가.
안나
(활짝 웃으며)
네..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할께요. 정말 감사
합니다. 큰어머님.
할머니
아.. 그리고 오늘 손주는 나랑 같이 잘꺼야.. 김
비서가 픽업 갔으니 걱정말구.
안나
(미소)
네.
고개를 꾸벅이며 조심스레 방을 나가는 안나.
할머니 잠시 머리가 아픈 듯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으며.
할머니(V.O.)
심성이 고운 아이다. 재능도 갖추었고..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면 더 멀리 뻗어나갈 수 있는 아이
야..하지만.. 왜..
갑자기 울컥.. 벌떡 일어나 창가로 가서 창틀에 머무른 빛을 본다.
할머니(V.O.)
내가 너를 더 넓게 품을 수 있을만큼 그릇이 넓은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세상을 아
무리 오래 경험하고 마음을 가다듬었어도 사람의
이기심이라는 것은 끝내 지울 수가 없더구나.
FLASH BACK:
-성당/기도방. 밤.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혼자 기도하는 할머니.
33.
할머니(V.O.)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봉사활동과 기부도 많이
하는 인자한 마나님에, 남편이 밖에서 낳아온 자
식까지 거두는 훌륭한 인품을 가진 어머니라고 불
리우고 싶었다.
-엄마 아뜰리에. 낮. 웅크린 엄마를 부축해 안으려는 할머니.
휠체어에 올라가려다 쓰러지는 엄마
엄마
(눈물 범벅으로)
엄마는 도대체 날 왜 이렇게 낳았어! 이런 병신
자식을 왜 낳았어!? 나한테 먼저 물어보지도 않고
왜 자기들 멋대로 낳았냐구! 왜!
가슴이 쓰려 할말을 잃은 할머니.
할머니(V.O.)
하지만 내 딸이 무너지는 것을 본 순간.. 그리고
그 딸이 왜 세상을 떠야했는지 알게 된 순간..
나 역시 너무나 쉽게 복수심과 이기심에 불타는,
작은 사람일 뿐이란 것을 깨달았다.
BACK TO SCENE
안나의 포트폴리오를 휴지통에 구겨넣는 할머니.
할머니(V.O.)
그래 그리고 고맙게도 너는 내가 속죄할 빌미를
주었잖니.
굳은 표정의 할머니.
FADE OUT
#46 유리 공예실 - 밤
창가로 들어오는 빛
혼자 작업 중인 안나
안나(V.O.)
34.
언니가 이걸로 나를 용서해줄까. 그래 아마도...
언니는 더이상 질투하지 않을테니까.. 그때 언니
는 우리 사이에 있던 벽을 먼저 허물었으니까..
꽃의 형태가 잡혀간다.
#47 절벽 - 밤
아빠, 엄마의 휠체어를 밀고, 안나 뒤따르며 천천히 산책 중이다.
엄마
아.. 아들 녀석 없으니까 조용해서 좋긴 한데,
또 허전하네.
아빠
내일이면 오는데 뭐. 그 녀석도 장모님이 맛있는
것 많이 해주셔서 좋아하고 있을 꺼야. 할머니 감
자전 노래를 했는데.
경치 좋은 절벽 끝에 다다르는 일행.
엄마
여보..
아빠
응..?
엄마
당신한테 요새 너무 날카로웠던 거 미안해..
아빠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엄마
알잖아 나 원래부터 열등감 덩어리였던 거..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될 껄.. 괜히 가까운 사람한테
다 풀었던 것 같아.. 미안해..
아빠
....
엄마
안나..
35.
안나
네? 언니..
엄마
그때 일은 천번만번 내가 잘못했어..정말 옹졸하
고 부족한 사람이야 나는..
안나
아니에요.. 언니..괜히 제가 짐이 되어서..
엄마
이제 그런 소리마.
(진심으로)
넌 내 동생이잖아. 그것도 아주 재능많은..
안나 뭉클하다.
엄마
남편이랑 너 사이 의심한 것도.. 미안해. 그냥..
괜히 질러본 거였어. 내 열등감 때문에..
안나 가슴이 덜컹 무너진다. 벌벌 떨리는 손. 흔들리는 눈. 이내 무너져 바닥에 무
릎 꿇는 안나. 놀라 보는 아빠. 엄마 눈이 휘둥그레진다.
엄마
안나야.. 왜 그래..?
안나
(부들부들 떨며)
언니.. 정말 죄송해요.. 언니는 이렇게 따뜻한
사람인데.. 사실.. 그날밤..
엄마
(설마하며..)
....
당황하여 안나를 얼른 일으켜 세우는 아빠.
아빠
처제.. 왜 그래.. 얼른 들어가자.
엄마
당신.. 뭐야..? 안나..그날 밤에 뭐?
36.
아빠
.. 아냐.. 그냥 그날 술을 많이 마셔서 손도 다
치고...
엄마
당신은 조용히 해.. 그래서 안나, 둘이 술이 취
해서 어쨌다구? 같이 잤다구?
다시 쓰러지며 눈물만 흘리는 안나.
아빠
(결심한 듯)
그래.. 여보.. 안나랑 잤어! 당신이 극도록 멀게
느껴진 날.. 그날밤 뿐이었어. 미안해. 내 실수
야.. 하지만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그런 일 없었
어. 누구보다 당신 아껴온 나야.
엄마 부들부들 떨며 천천히 휠체어를 뒤로 민다
엄마
.... 끝이야.. 다 가버려. 당신도 안나도.. 빨
리 가버려..
아빠, 엄마에게 다가오며
아빠
여보.. 미안해..
엄마
다가오지마!
아빠를 피해 휠체어를 더 뒤로 미는 엄마
엄마
(울먹이며)
다..얘기할 꺼야. 엄마한테.. 언론한테도.. 당
신.. 그건 아니야. 안나.... 너.. 역시 첩의
자식이었구나.
안나
(눈물 가득)
언니... 정말 ..죄송해요...
37.
엄마, 전화를 꺼내 번호를 누른다.
아빠
여보 일단 진정하고 그거 내려놔.. 차분히 다시
얘기해보자.
엄마 아랑곳 하지 않고 다이얼을 누른다. 얼굴색이 파랗게 질리는 아빠
아빠
당신 그거 내려놓으라고!
눈이 뒤집힌 채 엄마에게 달려드는 아빠.
놀라 눈을 크게 뜨는 엄마! 안나의 비명!
평지를 덜컹 벗어나는 바퀴. 중심을 잃고 떨어지는 엄마와 휠체어.
서로 멀어지는 손.
바닥에 떨어져 피흘리는 엄마.
위에서 허망하게 바라보는 아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말문이 막힌 안나.
FADE OUT
#48 유리공예실 - 밤
멍하니 불을 보고 있는 안나
안나(V.O.)
형부는 당분간 모든 걸 비밀에 부치자고 했다. 그
리고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얘기하면 된다고..
눈물이 흐른다..
안나(V.O.)
첩이었던 우리 엄마도 그런 마음으로 상처를 숨겨
왔던 거겠지...언젠간 그 남자가 원래의 가족을
버리고 엄마와 내게 올 꺼라 믿었겠지. 그러면 숨
겨졌던 상처도 자연히 치유될 꺼라 생각했겠지..
FLASH BACK
- 목을 매단 안나의 엄마
38.
안나(V.O.)
하지만, 숨겨진 상처는 곪아터질 수밖에 없는 것.
BACK TO SCENE
꽃을 보는 안나.. 여기저기 흠집들과 구부러진 곳들이 보인다.
안나(V.O.)
상처는.. 드러내놓아야 비로소 성장을 멈춘다. 그
리고..그렇게 성장을 멈춘 상처는 더 큰 상처를
견뎌낼 면역력을 준다.
결연한 표정의 안나.
안나(V.O.)
나는 이 꽃이 완성되면.. 조카에게 우리의 죄를
알리기로 마음 먹었다.
FLASH BACK:
- 주방 밤. 몇개의 촛불에 의지해서 정성스레 편지를 쓰는 안나.
안나(V.O.)
우리 엄마가 지은 죄.. 내가 지은 죄.. 모두 속
죄해야 한다.. 상처가 곪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BACK TO SCENE
유리꽃을 보는 안나.. 구부러진 상처에서 굴절되는 빛.
안나(V.O.)
처음엔 아프겠지만.. 상처를 받아들였을 때 그 아
이는 더 강해질 수 있겠지. 그 상처가 그 아이를
더 빛나고 아름답게 해줄지도..
갑자기 기침이 다시 터지고.. 가슴을 부여잡는 안나.. 극심한 고통으로 한참을 기
침하다가 겨우 진정이 되고..
FADE OUT.
#49 할머니의 서재 - 밤
벽에 걸린 십자가가 보이고, 소년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켜놓고 성경을 읽고 있다.
소년(V.O.)
3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
이 생겼다.
창세기 1장이 보인다.
소년(V.O.)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FLASH BACK:
#4 상황. 책을 보다가 손에 묻은 빛을 만지작 거리는 엄마.
엄마
(미소 지으며)
아. 좋다.
BACK TO SCENE
잠시 고개를 들어 생각하는 소년
소년(V.O.)
하느님도 그렇게 미소를 지으셨을까.
다시 성경을 보는 소년.
소년(V.O.)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1장 4절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가 눈에 들어온다.
소년(V.O.)
빛이 좋았는데.. 왜 가르신 걸까..?
엄마(O.S.)
조금 더 이쪽으로.. 좀만 더
FLASH BACK:
- 정원, 낮. 엄마 소년에게 손짓하며 소년의 위치를 잡아준다. 소년 의아한 표정으
로 엄마의 지시를 따른다.
엄마
그래.. 거기야.. 아.. 역시..
엄마 사진 앵글을 보듯 손으로 프레임을 잡으며 한눈을 감고 소년을 응시한다.
40.
소년
뭔데요 엄마? 왜요?
엄마
엄마 있는 데로 와봐. 신기한 거 보여줄께.
소년 엄마쪽으로 오고 엄마는 소년이 있던 자리보다 살짝 옆으로 간다.
엄마
자.. 엄마 봐봐..
엄마 해를 완전히 등지고 있다. 소년 뭘보라는 건지 갸웃.
엄마 살짝 움직여 어두운 배경 앞에 선다. 머리를 휘감는 역광이 확 살아나며 신비
롭게 보인다.
엄마 다시 움직여 밝은 곳으로 나간다. 잘보이지 않는 역광. 다시 그늘로 들어서면
확 살아나는 역광.
소년
와... 엄마.. 이쪽에선 무척 예쁘다.
엄마
(귀엽게 잘난 척)
그치? 엄마도 예쁘지? 이렇게 빛은 어두운 배경이
있어야 더 살아나는 거야. 전체적으로 다 환하면
아무도 그게 환한 건지 모른다구.
뒷편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안나, 스쳐 지나가는 아빠 (#24,39 상황)
BACK TO SCENE
소년 깨달은 느낌.
소년(V.O.)
그래서 어둠을 만드신 걸까.
똑똑 노크소리. 돌아보는 소년.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할머니.
할머니
미안.. 할머니가 늦었어.
할머니 소년에 다가와 번쩍 들어 안으며..
할머니
41.
아이구... 우리 손주. 성경책을 다 읽어? 기특하
기도 하지.. 하느님이 아주 이뻐하시겠네.. 아직
아무것도 안먹었지?
소년
네.. 할머니 나 할머니 감자전 먹고싶어요,
할머니
감자전? 이밤에? 에그 뭐 어때.. 그래그래.. 얼
른 내려가자.
#50 할머니의 주방 - 밤
할머니 분주히 재료들을 찾아 세팅하고, 소년 식탁에 앉아 할머니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할머니
어머! 이게 뭐야!
할머니 구석에서 감자가 담긴 바구니를 꺼낸다. 감자에 싹이 나있다.
할머니
아이구.. 이 아줌마.. 내 그렇게 그늘에다가 보
관하라고 했더니.. 그새 싹이 다 텄네.
(beat)
미안.. 감자전은 다음에 먹어야겠다. 그럼 뭘 멕
여야 우리 손주가 좋아서 팔짝 뛸까..
할머니 여기저기 뒤지며 먹을 거리들을 찾고,
소년
감자에 싹이 나면 아예 못먹는 거에요?
할머니
응. 감자 싹에는 독이 있어서 먹으면 큰일나요.
소년
그러면 싹만 잘라내고 먹어도 되지 않아요? 전에
안나 이모는 그렇게 해주던데. 나머지 부분은 다
괜찮은 거라고.
할머니
42.
(놀라며)
걔가 정말 큰일내려고! 그런 거 먹으면 안돼요.
독이 어디까지 퍼져있을지 어떻게 알아.
(다소 신경질적으로)
뭐든지 조금이라도 나쁘다 싶으면 바로 버리는 게
좋아! 알았어?
소년
..네
벌컥 쓰레기통을 열어 감자를 쏟아 버리는 할머니.
FADE OUT
#51 거실 - 밤
딸깍. 위스키의 얼음이 녹으며 떨어진다. 위스키를 마시며 창가에 놓인 엄마의 화분
을 지켜보고 있는 아빠.
FLASH BACK:
- 떨어지는 엄마, 놀란 아빠, 멀어지는 손,
BACK TO SCENE
손목의 향기를 맡고 있는 아빠.
아빠(V.O.)
나는 그녀를 밀지 않았다. 나의 두려움이, 그녀의
두려움이 우리를 밀어냈을 뿐이다.
FLASH BACK:
- #36 안방, 밤. 엄마, 피식 웃으며
엄마
당신도 따라 나가줄래..? 난 내 아들만 있으면
돼. 어차피 나랑 한집에 사는 거 당신도 불편해하
잖아. 회사 경영권도 다시 내놓고. 그동안 소아
마비 병신 좋다고 연기했던 수고비정도는 줄테니
너무 억울해말고. 뭐 요새는 그나마도 안했지만..
아빠
(멍...)
43.
아빠(V.O.)
아내를 통해 얻은 부. 내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
새 내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 #47 절벽, 밤. 흥분한 엄마, 전화를 꺼내 번호를 누른다.
아빠(V.O.)
아내 역시 가정의 파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 했던 그녀에게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테니까.
아빠
여보 일단 진정하고 그거 내려놔.. 차분히 다시
얘기해보자.
아빠(V.O.)
두려움.. 또 두려움..
엄마 아랑곳 하지 않고 다이얼을 누른다. 얼굴색이 파랗게 질리는 아빠
아빠
당신 그거 내려놓으라고!
눈이 뒤집힌 채 엄마에게 달려드는 아빠.
BACK TO SCENE
아빠 한숨을 내쉬고 위스키를 들이키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 안나 지친 얼굴로
들어온다.
아빠
늦었네
안나
네.. 막상 세세하게 할 게 많네요..
아빠
꽃..? 다른 전시도 해야하는데. 괜히 거기에 시
간뺐기지 마. 몸도 안좋다면서..
안나
(기침을 하며)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44.
아빠
꽃이 완성되면 어떻게 할 껀데.. 엄마 보러가겠다
면 어떻게 하려구..
안나
...사실대로 이야기 해야지요.
아빠
(당황하며)
뭐?
안나
엄마는 돌아가셨다고. 자세한 얘기는 당장은 못하
겠지만..
(beat)
우린 결국 죗값을 치러야하잖아요.
아빠
또 그 소리야?
FLASH BACK:
다른 날 밤. 안방 침대에 걸터 앉아 울고 있는 안나. 옆에서 다독이는 아빠.
아빠
입 다물고 있어. 어차피 수사는 그렇게 자살로 종
결된 거니까. 흔적이 있을 수도 없구.
안나
하지만, 모두 우리 잘못이잖아요! 우리가 그런 실
수만 하지 않았어도...
아빠
(답답하다.)
실수는 우리가 잔 게 아니고, 안나가 언니한테 솔
직하게 얘기한 게 실수야!
(냉정하게)
그리고 잘못은 언니가 먼저한 거야. 그냥 침착하
게만 넘어갔어도 그런 일까지 벌어질 필요는 없었
어.
문 밖에서 둘의 대화를 엿들은 할머니..
BACK TO SCENE
45.
다시 현재의 거실. 마주보고 서 있는 두사람.
안나
제가 책임을 다 질께요! 제가 밀었다고 할께요!
저는 그렇게 순수한 아이에게 차마 엄마가 자살로
돌아가셨다고 거짓말할 수는 없어요..
아빠
...
안나
차라리 제가 다 감당하게 해주세요. 어차피 제 책
임 맞잖아요..
아빠
(안나를 잡고 흔들며)
안나! 너 왜 그렇게 바보 같은 거야!
갑자기 쿨럭 기침을 하는 안나..
안나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며)
죄송해요..
안나 아빠를 뿌리치고 급히 2층으로 올라가버리고, 남겨진 아빠 참담한 표정. 달빛
이 닿은 엄마의 화분을 본다.
FADE OUT
#52 할머니의 안방 - 밤
할머니 침대에 기대어 스탠드 불빛에 책을 읽고 있다. 눈이 침침한지 책을 덮고 눈
을 비비다가 옆에서 자고 있는 소년의 얼굴을 보는 할머니..
할머니(V.O.)
이제 이 세상에 나의 피는 이 아이에게만 흐르고
있다.
#53 할머니의 주방 - 밤
주방으로 나와 차를 끓일 준비를 하는 할머니
할머니(V.O.)
46.
내게는 가족 뿐이다. 부와 명예.. 그것보다 소중
한 것은 내 핏줄이다.
식탁 앞에 걸려 있는 십자가가 눈에 들어온다.
할머니(V.O.)
신앙을 위해 자기 자식을 바친 아브라함의 이야기
도 있지만...나는 언제나 그 이야기가 나오면 귀
를 막았다.
고개를 저으며 외면하고 다시 차 끓일 준비를 한다.
할머니(V.O.)
그건 성경 속 성인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생의
후반부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내 피
를 이어받은 이들의 행복이다.
FLASH BACK:
- #51 상황
아빠
(답답하다.)
실수는 우리가 잔 게 아니고, 안나가 언니한테 솔
직하게 얘기한 게 실수야!
(냉정하게)
그리고 잘못은 언니가 먼저한 거야. 그냥 침착하
게만 넘어갔어도 그런 일까지 벌어질 필요는 없었
어.
문 밖에서 둘의 대화를 엿들은 할머니. 숨이 턱 막힌다.
할머니(V.O.)
내 피가 섞이지 않은 것들이.. 내 핏줄을 죽였다
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떨리는 다리.. 힘이 풀려 문 앞에 주저 앉는다.
할머니(V.O.)
참을 수 없는 분노.. 나를 그저 무기력하게 할
뿐이었다. 당장 뛰어들어가서 그들의 목이라도 조
를 힘조차 남겨주지 않았다.
47.
- 변호사 사무실. 스카프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변호사의 얘기를 듣고
있는 할머니.
할머니(V.O.)
나는 법적으로 그들을 처벌할 가능성을 찾아나섰
다. 하지만 이미 종료된 사건. 추가 물증이 나오
지 않는다면 승산은 없었다.
- 물 속에 천천히 그리고 아름답게 녹아드는 노란 웅황 가루
할머니(V.O.)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내 손으로라도 그
들을 벌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 #14 상황. 할머니 정원. 메주를 으깨고, 보리쌀죽, 찹쌀죽, 고춧가루, 액젖,
간장등을 넣고 휘저어 독에 천천히 붓는 할머니. 마지막으로 투명한 병에 담긴 노란
물 같은 것을 장에 넣는다. 서늘한 눈빛.
할머니(V.O.)
손자가 먹지 않는 된장에.. 최대한 증거를 남기지
않고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갈만큼의 웅황가루를
타기 시작했다. 세상을 오래 살며 얻은 지혜이다.
아니.. 이 경우는 교활함일까.
- #45 상황. 갤러리 원장실. 기침하는 안나를 담담히 보는 할머니
- 소년의 집 거실. 낮. 된장이 담긴 보따리를 들고 들어 오는 할머니. 얼른 뛰어
와 받아드는 아빠
아빠
기사님 시키시지 왜 이걸 직접 들고 오셨어요.
할머니
(환하게 웃으며)
그냥.. 손주도 좀 보고갈겸.
아빠
네.. 지금 방에서 책보고 있어요.
아빠 기침을 연거푸한다. 비장하게 보는 할머니.
BACK TO SCENE
48.
투명한 티포트 안에서 노랗게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루이보스티. (녹아드는 웅황가루
와 비슷하게)
할머니 차를 따라 천천히 마신다.
할머니(V.O.)
그런데.. 그 이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복
수의 끝.. 그때 나는 행복할까?
다시 시선에 들어오는 십자가.
FADE OUT
#54 캠퍼스 일각 #54 캠퍼스 일각 - 아침
이른 아침 햇살이 나뭇잎을 스친다.
유혹의 안나(V.O.)
행복하니..?
(beat)
행복하니..안나야..? 너.. 행복하니...?
#55 유리 공예실 - 아침
아침 광선이 강하게 공예실 안쪽 공예 작품들에 닿는다.
유혹의 안나(V.O.)
(유혹과 자조의 톤. 속삭이듯)
너는 왜 그렇게 사니..? 니 엄마의 죄는 너의 죄
가 아닌데..
안나(V.O.)
빛을 생각하려 한다.
작업대의 불이 피고, 이리저리 만들어지는 꽃대.
유혹의 안나(V.O.)
너는 정말 왜 그렇게 사니..? 하룻밤의 실수였고
네가 죽인 것도 아닌데 왜 스스로 죄인의 굴레에
빠져있니?
안나(V.O.)
49.
바람과 하늘을 생각하려 한다.
수척한 모습의 안나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큰 기침을 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유혹의 안나(V.O.)
아이의 상처를 왜 니가 걱정하니? 너도 겪어온 상
처 걔라고 못견디겠니? 넌 그냥 너의 행복을 위해
살아야하는 거 아니니..?
안나(V.O.)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생각하려 한다.
더 활활 타오는 불.. 더 능숙하게 작업되는 꽃.
안나(V.O.)
나.. 행복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행복은 남들
의 시선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빨리 용서
를 빌고 마음의 빚을 갚아야지..
땀을 흘리며 더욱 몰두하고 있는 안나.
안나(V.O.)
그리고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거
야. 그렇게 마음대로 무언가에 빠져들 자유가 주
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으니까..
마무리 작업.. 일부러 상처를 내는 듯 유리를 살짝 구부린다.
안나의 겨우 한숨 돌린다. 표정이 밝다.
꽃을 꺼내 소년에게 보여주는 안나
안나
이모는 이제 다 됐어. 어때 잘돼가?
소년 자신이 작업하던 꽃잎을 보여준다.
소년
우와 예뻐.. 이모.. 근데.. 내꺼는 여기 이거
상처가 났어.. 끝도 구부러지고..
안나
이쪽으로 와봐.
50.
안나 꽃을 들고 창가로 가서 소년의 꽃잎을 햇빛에 비춘다. 프리즘을 통과하듯 바닥
에 굴절된 빛 화려하게 부서진다. 신기하게 바라보는 소년
안나
이런 상처들이 더 빛을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거
야. 구부러지지도 않고 상처도 없이 매끈하면 빛
도 살아나질 못해..
소년
그림자가 있어야 빛이 더 잘 보이는 거랑 비슷하
네?
안나
와..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소년
엄마랑.. 어떤 책이 가르쳐줬어.
안나
역시.. 똑똑해.
안나 작업대로 가지고와서 마무리 작업을 한다. 완성된 꽃을 들어보이는 안나
안나
자! 완성!
소년 안나를. 와락 안으며..
소년
정말 고마워 이모.. 엄마도 분명 좋아할꺼야..
안나 슬프다..
소년
아..그리고..
소년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손을 내밀어 보면 유리로 만든 반지 두개가 반짝 빛
난다.
소년
자..이모 선물. 나랑 같이 나눠끼자. 어차피 이
모 남자도 없으니까.
안나 요게 하는 표정으로 꿀밤을 먹이려는 시늉. 소년 장난스럽게 막는 포즈. 안나
손에 끼어본다. 서로 반지 낀 손으로 악수하는.. 뭉클하는 안나.
51.
안나 눈물이 맺히자 소년 얼른 화제를 돌리며.
소년
나 이거 빨리 아빠 보여주고 엄마 보러가자고 할
래! 이모 빨리 정리하고 내려와!
안나
응.. 그래 알았어..
신나는 발걸음으로 작업실을 나가는 소년. 안나 소년의 뒷모습을 본다.
안나(V.O.)
언니.. 그 빛이 보였어..? 이제 언니 아이가 언
니를 위해 영원히 간직해줄꺼야.
안나 흐뭇한 표정으로 뒷정리를 하는데 격렬하게 찾아오는 기침과 가슴통증. 바닥에
쓰러진 안나. 피를 토하고 심장이 갑자기 정지하는 듯 숨이 끊어진다.
바닥에 흐르는 피.. 미처 감지 못한 눈에서 흐르는 눈물.
안나(V.O.)
(차분한 톤)
행복하니..?
(beat)
행복하니..안나야..? 너.. 행복하니...?
마지막 입술의 경련이 미소 짓는 모양을 만든다.
안나(V.O.)
응.. 행복해...
손에서 반짝이는 반지.
FADE OUT.
#56 MONTAGE : MUSIC SEQUENCE
#28 과 동일한 보컬곡.(느린 편곡)
- 맑은 하늘. 태양
- 나무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햇빛
- 나무 아래에서 빛을 바라보는 소년..
52.
- 엄마의 화초에 물이 뿌려지고, 그 옆 이름 모를 풀에도 뿌려진다.
- 안나가 완성한 작품 햇빛을 받고 있다. 산란된 빛.
- 열심히 작품을 닦는 아이.
- 창가에 힘없이 앉아 있는 아빠.
#57 거실 - 낮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초췌한 모습의 아빠. 깊은 기침을 반복한다.
아빠(V.O.)
안나마저 떠나가버리고. 이제 내가 기댈 곳은 이
세상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메이드(40대) 조심스레 보약을 들고 와선
메이드
사장님, 약 드실 시간입니다.
귀찮은 듯 고개를 젓는 아빠. 메이드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러난다.
아빠(V.O.)
자식? 자식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지 않냐고? 어
떻게 자기 자식이 있는데 외로울 수 있냐고?
FLASH BACK:
- #15 상황 (다른 컷들) 갓난쉬폰 커튼으로 옅은 빛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갓난아
기를 안고 있는 엄마.
작은 손을 경이로운 듯 어루만지는 아빠.
아빠(V.O.)
(점점 광기가 드러나며.)
그래.. 자식이 위로가 되는 순간도 있었지.. 세
상을 다 얻은 듯한..
- 귀가하자마자 양복을 입은 채 젖병을 물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아빠.
- 똥이 묻어도 흐뭇하게 웃으며 기저귀를 갈아끼는 아빠
53.
아빠(V.O.)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내 자식.. 그
에게 세상 모든 걸 주고 싶다고도 생각했었지만..
- #15 상황. 피곤하다며 돌아눕는 엄마.
아빠(V.O.)
동시에 내가 세상에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으로
부터 밀려나는 느낌.
- #15 상황. 정원. 낮. 비누방울을 날리며 노는 엄마와 소년. 멀리서 바라보는
아빠.
아빠(V.O.)
그리고 그것이 남긴 상처.
- 피 흘리며 죽은 엄마.
- 피 흘리며 죽은 안나.
BACK TO SCENE.
기침을 하는 아빠. 각혈이 묻어난다.
아빠(V.O.)
(광기와 아직 남아있는 진심이 섞인 듯)
나는 아프다...나는 외롭다...나는 더 사랑받고
싶다.
화분과 유리꽃을 닦고 있는 소년.
아빠(V.O.)
(광기의 영역에 완전 돌입)
하지만 저 녀석.. 가져가기만 할 뿐이다. 내 아
내에게서 기쁨을.. 안나에게서 목숨을..
유리꽃에 투과된 빛을 보고 있는 소년.
아빠(V.O.)
(점점 흥분하며)
저 놈이 없었어야했다. 상처만 남기고 모든 것을
앗아간 놈.
(폭발)
그리고 나를 외롭게 만든 놈.. 내 아들!
54.
소년 유리꽃을 들고 아빠에게 온다.
소년
아빠.. 우리 엄마 보러 언제 가요...? 안나 이
모도 이 꽃 엄마 너무 주고 싶어했는데..
아빠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
소년
아빠 편찮으셔서 힘드시면 저 혼자라도 다녀올께
요. 저 버스도 잘타고 지하철도 잘타요. 비행기도
혼자 탈 수 있을 꺼에요.
아빠
(외면하며 작게)
.. 니 엄마는 없어.
소년
네..?
아빠
...
소년
(설마.. 잘못 들었겠지..)
뭐라구 하셨어요 아빠? 엄마가 뭐요?
아빠
(폭발한다)
니 엄마는 없다구!
소년
(겁 먹어서 울먹)
아빠! 왜 그래요..?
아빠
(소년에게 눈을 부릅뜨고)
니 엄마는 죽었어!..절벽에서 떨어져 죽어버렸
어!. 이제 강바닥에 물고기밥이 됐다고! 다시는
내 앞에 이딴 거 갖고 오지마!
55.
소년이 든 유리꽃을 뺏어 던져버리는 아빠.. 엄마의 화분쪽에 가서 화분도 죄다
깨뜨려 버린다.
아빠
당장 사라져버려! 내 눈 앞에서 당장 꺼져버려!
소년 크게 충격 받은 듯. 그대로 눈을 감으며 바닥에 쓰러지는 소년.
놀란 아빠. 이제 정신이 돌아온 듯.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하는 표정..
FADE OUT
#58 BLACK - CG SEQUENCE
캄캄한 어둠.
소년(V.O.)
캄캄함... 슬픔.. 두려움..
(beat)
어두움.. 빛이 없는 어둠이 며칠동안 계속 된 건
지 모르겠어.
빛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소년(V.O.)
아니.. 잠깐은 빛이 들어왔었던 것 같아.
#59 병실 - ?
소년의 시선에서 눈이 떠지면,
눈동자에 비치는 울고 있는 할머니. 울고 있는 아빠.
소년(V.O.)
기억이 살아나는 순간.. 난 어느틈에 우리집에 와
있었어.
#60 거실 - 낮
거실에 서있는 소년, 창가에 아빠가 앉아있다. 죽 같은 것을 들고 아빠에게 가는
메이드. 아빠에게 한술씩 떠 먹이는데, 잘 받아먹지 못하는 아빠.
56.
소년(V.O.)
아빠는 이제 혼자 밥도 잘 못먹는 상태가 되었어.
#61 안나의 방 - 낮
텅빈 방에 들어서는 소년. 방은 아주 어둡다.
소년(V.O.)
안나 이모의 방은 그사이 깨끗하게 정리되어있어
어.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처
럼.
빛이 닿지 않는 구석에 큰 유리병 안에 유리꽃 조각들이 모여져있다. 그 옆에 단단
히 밀봉된 편지. 겉에 '나의 사랑하는 조카에게.'라고 쓰인.
소년(V.O.)
이모가 남긴 건.. 이제 다 깨져버린 유리꽃.. 그
리고 내 앞으로 남겨진 편지 한통이었어.
편지를 뜯어보는 소년.
엄마의 꽃에서 떨어져 나온 꽃봉오리가 잘 말린 채로 코팅되어 있다.
FLASH BACK:
- 촛불에서 편지를 쓰는 안나
소년(V.O.)
편지에는..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가득 적
혀 있었어. 프루스트의 소설보다도 더 읽기 힘들
었어.
-키스하는 아빠와 안나 그것을 보는 소년.
-절벽에서 떨어지는 엄마.
-호수에서 엄마의 재를 뿌리는 아빠
-꽃을 꺾어버리는 아빠. 그것을 몰래 줍는 안나.
-편지를 쓰는 안나.
모든 이미지가 점점 빠른 속도로 혼란스럽게 뒤섞인다.
57.
BACK TO SCENE
결국 편지에서 눈을 떼는 소년.
소년(V.O.)
...난 결국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어.
(beat)
...그랬던 거야. 이제 엄마는 없는 거야. 그럼
나는 이제 영원히 그 미소를 볼 수 없는 거야...
소리없이 흐르기 시작하는 눈물.
소년(V.O.)
나는.. 엄마를 따라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
#62 거실 - 낮
천천히 복도를 지나 거실쪽으로 나오는 소년.
소년(V.O.)
천국이 있다면 그곳에서 엄마를 만날 수 있을테니
까. 거기에서 빛과 어둠을 나눈 하느님과 이런저
런 얘기도 할 수 있을테니까... 그래 거기는 최
소한 괴물이 있는 동굴은 아니니까. 그래 쉽게 따
라갈 수 있을 꺼야.
멀리 멍하게 창을 보고 있는 아빠를 보는 소년.
소년(V.O.)
그리고.. 저 아빠도 데리고 가고 싶다고 생각했
어. 그래야 엄마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
있을테니까.
#63 할머니의 기도방 - 밤
십자가를 보고 있는 할머니
할머니(V.O.)
58.
내 인생은 더럽혀졌다. 내 인생은 추하게 망가져
버렸다.
#64 병실 - ?
병상에 누워 잠든 소년. 소년 곁에 앉은 할머니. 휠체어를 탄 채 한쪽 구석에서 울
고 있는 아빠.
할머니(V.O.)
늙은이의 추악한 탐욕이 만들어낸 복수는 결국 나
를 어디로도 데려다 주지 못했다.
소년.. 잠결에...엄마.. 안나 이모..라고 웅얼거리고.. 눈물 흘리는 할머니..
할머니(V.O.)
더 아름답게 피울 수 있던 꽃을 꺾어버리자, 그
아래에서 자라던 새싹까지 사그라들었다.
#65 할머니 집 정원 - 낮
장독대 근처 나무 옆에 홀로 앉은 할머니
할머니(V.O.)
나는 더러운 늙은 나무이다. 나는 더러운 해충이
다. 시들은 새싹이 다시 생기를 얻게 하기 위해서
도 나는 빨리 사라져야 한다.
#66 갤러리 원장실 - 낮
양도 증서 같은 곳에 사인하고 공증인에게 건네는 할머니
할머니(V.O.)
나는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없어도 아
이가 자라기에 경제적인 문제는 없을 것이다.
#67 할머니의 정원 - 낮
된장독을 부수는 할머니
할머니(V.O.)
워낙 똑똑한 아이니 혼자서도 강하게 클 것이다.
59.
바닥에 흩뿌려진 된장
할머니(V.O.)
마음을 밝혀 줄 어른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미 어른이 된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할 가능성
이 크겠지.
깨진 독에서 새어나온 간장이 검은 피처럼 흐른다.
할머니(V.O.)
다만 스스로 그 방법을 찾을 수 있길. 그리고 그
전에 마음이 허물어져버리지 않길.
눈부신 햇빛을 바라보는 할머니.
#68 절벽 가는 길 - 낮
천천히 아빠가 탄 휠체어를 밀고 언덕을 오르는 소년.
울퉁불퉁한 흙길을 지나는 휠체어. 바퀴가 돌을 밟을 때마다 아빠의 뒷통수가 흔들
린다.
소년(V.O.)
덜걱덜걱. 흔들흔들. 바퀴가 울퉁불퉁한 곳을 지
날 때마다 아빠의 머리도 이리저리 흔들렸어.
아빠의 흔들리는 머리를 보는 소년
소년(V.O.)
뒤에서는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
자고 있는 아빠.
소년(V.O.)
엄마를 절벽에 내동댕이치고 돌아오는 길은 어땠을
까?
휠체어를 잡은 소년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안나와의 커플링이 보인다.
소년(V.O.)
홀가분한 마음으로 저렇게 춤을 추듯 내려왔을까?
아니면 너무 무서워서 잔뜩 웅크리고 내려왔을까?
60.
소년의 입술 굳게 다물어 있다.
소년(V.O.)
1년 넘게 거짓말을 하는 기분은 어땠을까? 나를
위해서 하는 착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까? 하긴
자기를 위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나았을지
모르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너무나 끔찍했을
테니까..
절로 한숨이 나오는 소년.
#69 절벽 - 낮
절벽에 다다른 소년과 아빠. 소년 잠시 바닥을 내려다본다.
소년(V.O.)
엄마는 떨어질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소년 긴장한 표정. 손에 땀이 나는 듯 바지에 닦고 다시 휠체어를 잡는다.
소년(V.O.)
바닥에 부딪힐 때는 어땠을까? 걷다가 넘어지는
것도 너무 아픈데. 이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느낌은 어떤 걸까? 정말 죽을 정도로 아픈 걸까?
그렇게 너무 아파서 결국 죽는 걸까?
아빠는 아직도 자고 있다.
소년(V.O.)
아픈 건 싫은데.. 그냥 빛에 둘러싸인 엄마가 짠
하고 내앞에 나타나면 좋을텐데... 아빠도.. 이
미 아프지만 떨어지면 더 아플텐데. 정말 죽을만
큼 아파서 죽을텐데.
결심을 다잡는 듯한 소년.
소년(V.O.)
...하지만 나는 가야해... 엄마를 보러 가야
해... 아니. 내가 보고싶은 건 두번째 일이고,
아빠가 엄마에게 용서를 구해야만 해. 안나 이모
는 이미 가서 용서를 빌었을 꺼야.. 아빠도 빨리
가야해..
61.
휠체어를 절벽 쪽으로 다시 미는 소년. 점점 절벽 끝에 다다르는 휠체어. 결연한
표정의 소년.
휠체어의 흔들리는 진동에 눈을 뜬 아빠. 잠깐 둘러보곤 활짝 웃으며
아빠
아. 좋다.
멈칫. 휠체어를 멈추는 소년.
아빠
언제 여기까지 온 거니. 너무 좋다. 너무 아름답
네.
나뭇가지 사이로 빛나는 태양. 흔들리는 단풍. 아름다운 절벽의 풍광.
아빠
니 엄마가 참 좋아한 곳이었는데.
아빠, 엄마가 하듯 눈을 감으며 미소짓는다.
FLASH BACK:
- #47 상황 절벽. 밤.
아빠
당신 그거 내려놓으라고!
눈이 뒤집힌 채 엄마에게 달려드는 아빠. 놀라 눈을 크게 뜨는 엄마! 안나의 비명!
풀리는 브레이크 반사적으로 휠체어를 뒤로 미는 엄마. 평지를 덜컹 벗어나는 바퀴!
아빠, 엄마에게 손을 뻗고, 엄마 역시 아빠의 손을 잡으려는데,
이미 중심을 잃고 떨어지는 휠체어, 서로 멀어지는 손(#14와 동일).
BACK TO SCENE
아빠
....다 내 탓이야.. 미안하다 아들아.
소년
...
62.
어느새 아빠 대신 휠체어에 앉아있는 엄마. 미소 짓고 있다.
소년
(믿을 수 없다)
엄마..?
엄마 미소 짓는다.. 미소를 보는 소년 ... 눈물이 난다.
엄마
(미소 지으며)
나 좀 밀어줄래?
소년
(화들짝)
네..?
소년 다시 눈을 크게 떠 보니, 아빠다.
아빠
(엄마와 같은 미소로)
나 좀 밀어줘, 아들. 니 엄마 보러 가고 싶다.
소년의 가슴이 찡하다.
소년(V.O.)
쨍.. 반짝... 평안. 행복....
(beat)
나는 그 때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소년의 반지가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70 할머니 서재? 혹은 화장실? - 밤
문고리 혹은 책장의 고리에 걸리는 매듭 지어진 스카프. 할머니 스카프의 고리에 천
천히 얼굴을 넣는다.
할머니(V.O.)
상처난 것은 버려져야 한다. 더 큰 상처를 낳기
전에. 그래. 이것이 맞는 결정이야.
할머니 긴장한 듯 천천히 떨다가, 손을 놓으려는데,
63.
"할머니~ 할머니~ 전화받아용~!" 손자의 애교섞인 목소리로 녹음된 핸드폰 벨소리.
할머니 눈을 질끈 감으며 무시하고 손을 놓으려는데, 계속되는 벨소리. 할머니의 손
이 부들부들 떨린다.
결국 벨소리가 꺼지고. 할머니 한숨을 돌리고 다시 손을 놓으려는데,
띵동! 문자가 오는 소리. 할머니. 할 수 없이 목을 천천히 빼고 전화기로 다가간
다. 손자의 문자.
소년(V.O.)
할머니가 지난 번 버린 감자에서 꽃이 피었어요.
제가 전에 몰래 화분에 심었거든요. 내일 와서 보
세요. 거봐요. 나쁘다고 함부로 버리면 안돼요.
눈물이 왈칵 터지는 할머니. 눈물 범벅인 미소.
#71 정원 - 낮
날리는 비눗방울들. 소년 비눗방울들이 하나둘씩 터져가는 모습을 본다.
소년(V.O.)
나는 돌아와 다시 안나 이모의 편지를 읽었어.
#72 안나의 방 - 낮
안나의 편지를 읽는 소년. 편지의 끝에 쓰인 글이 보인다. "우리 똑똑한 조카는 어
떤 힘든 일이 있어도 강하고 멋지게 잘 견뎌낼 수 있을 꺼라고 믿어. 혹시 상처받
게 되더라도 언젠가 상처에서 피어나는 빛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테니까"
안나(V.O.)
우리 똑똑한 조카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강하
고 멋지게 잘 견뎌낼 수 있을 꺼라고 믿어. 혹시
상처받게 되더라도 언젠가 상처에서 피어나는 빛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테니까
소년(V.O.)
(안나의 대사와 오버랩되며)
상처에서 피어나는 빛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64.
손톱으로 밑줄을 긋는 소년. 엷은 미소.
#73 거실 - 낮
감자꽃이 피어난 화분에 물을 주는 소년. 뒷쪽으로 지나가는 아빠의 휠체어.(아빠가
직접 굴려서)
소년(V.O.)
내가 상처받은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나는 넘
어지지도 떨어지지도 않았으니까.
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년.
소년(V.O.)
하지만 꽃봉오리가 떨어졌을 때. 안나 이모가 세
상을 떠났을 때. 그리고 엄마가 세상에 없는 것을
알았을 때. 가슴 한쪽에 구멍이 나는 것 같았
어.. 지금도 그 순간들을 생각하면 그곳이 아픈
것 같아..
바닥에 화려하게 어른거리는 빛. 유리꽃 조각이 담긴 유리병이 창가에 놓여 있다.
소년(V.O.)
이것도 상처라 부를 수 있다면.. 언젠가 거기에서
도 환한 빛이 피어날까. 그러면 좋을텐데.
유리꽃 조각을 투과한 빛을 손으로 잡아보는 소년.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소년
아. 좋다.
THE END.

 

 

 

 

 

 

 

 

 

 

 

 

 

 

 

 

 

 

 

 

 

 

 

 

 

첨부파일 2013_MBC_드라마페스티벌10회[나엄마아빠할머니안나-현라회-최병길]_final_draft_13121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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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다반향초 | 작성시간 14.11.17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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