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아침]
S#1. 인트로
장엄하게 펼쳐진 산자락. 신비로운 느낌으로 피어오르는 안개
운치를 더 해주며 희미하게 들려오는 쇠북 소리 울림의 횟수를 더하면서 점점 분명하게 들려오고 카메라 소리의 진원지를 찾기라도 하듯 산중을 파고든다.
S#2. 산중 밭
산! 멀리로 산을 일궈 만든 밭 보이고, 희미하게 밭에서 일하는 사람 보인다.
다가서면. 싸움이라도 하듯 빠르고 격하게 밭을 일구는 20후반의 승복차림의 사내.
아직 자르지 않은 긴 머리, 아물지 않은 상처 하나가 이마에 나 있는, 곤하고 지친 표정의 한수다.
한수 삽질을 하다 가만히 상처 난 이마를 만진다. 상처에 대한 기억.
도운E : (격노한) 이 놈이!
S#3. 암자-도운방 (한수의 회상) -밤
이마에 흐르는 피, 허나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계속 무언가를 노려보는 한수.
그 시선을 따라가 보면, 마주 앉아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씩씩대고 있는 50 중반의 승려도운! 그런 도운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한수..
짧은! 허나 그 팽팽함으로 인해 꽤나 길게 느껴지는 정적
도운 : 독한 놈! 니가 감히 큰스님 수행을 운운해?
한수 : (지지 않고 노려보며) 바둑이 대체 무슨 수행입니까? 낮잠을 와선이라 우긴다는건 복상뼈가 썩도록 정진하는 이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대체 어느 경전에 무위도식이 수행이라 나와 있습니까?
도운 : (죽이기라도 할 듯 씩씩대며) 무위도식? 이 이!
지지 않고 노려보는 한수... 계속되는 한수와 도운의 눈싸움.
S#4. 다시 밭
한수 도운의 말을 지워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다시 삽질을 계속한다. 격하게...
도운E : 큰스님께선 시래기 하나 마른 흙덩이 하나에서도 불심을 찾으라 하셨다.
한수 그 말에 반항이라도 하듯 흙덩이 하나에 대고 몇차례 격하게 삽을 내리 찍는다.
잘게 부숴지는 흙덩이. 삽질을 멈추고.. 숨이 찬 듯 씩씩대는 한수.
한수 산을 둘러 본다. 아무도 없다. 고적함.
E : 풍경소리
S#5. 암자 전경
처마에 매달린 풍경. 바람의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게 흔들리고.
암자 전경이 화면에 들어 온다.
절이라기 보단 모옥이란 말이 어울릴 작은 암자. 고적한 풍광. 제법 운치 있다.
S#6. 암자-석산 방
거의 다 두어진 듯한 바둑판 보이고 마주 앉은 석산(78)과 지산(77) 보인다.
도운 차를 내며 그들의 시중을 드는데... 차를 따라 올리는 도운!
그 공손함! 삼엄했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다.
석산과 지산 그런 도운은 안중에도 없는 듯 바둑판 들여다 보기에 열중하고.
지산 입맛을 다시며 아쉬운 표정으로 입을 연다.
지산 : 절간에 손주 놈 끼고 사는 재미가 어떤고?
석산 : 저런 심통이 나셨구만! (백돌 한 개를 집어내며) 음.. 이 한 수로는 안되겠는데.. (다시 백돌 너댓개를 들어내고) 이러면 될까?
지산 : (바둑돌 들을 흐뜨리며) 에라 이 무간지옥에 떨어질 놈! 던지구 나서 물러주면 재미가 더하냐?
도운 :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스님 언제 돌을 던지셨습니까?
지산 : 못 봤니? 이리와 봐라
도운 : (잔뜩 경계 긴장, 살짝 머리만 다가서는 듯 마는 듯)
지산 : (타이르듯) 에이. 쭈욱 지켜 봤는데두 모르겠다며 그렇게 해서 보이겠어? 가까이 와봐! 가까이
도운 : (안심한 듯 머리통 디밀면)
지산 : (힘껏 쥐어박으며) 에라이 미련한 놈! 30년 절밥이 아깝다 이놈아!
도운 : 어이쿠! (억울한 듯) 스님 저두 이제 오십줄입니다.
지산 : 어쭈? 지금 밥그릇 수 대보자 이거냐? 허 참! 말세야 말세!
도운 : (무게 잡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저는
지산 : 시끄러 이놈아! 가 한수나 찾아와!
도운 : (삐질삐질 일어나면)
석산 : (빙그레)
S#7. 암자부엌
곤한 표정으로 들어서며 지게를 내려 놓는 한수.
잠시 부엌을 둘러보면 선반 한 켠에 꼿혀 있는 육중한 책 두권 눈에 들어 온다.
한수 꼭 읽고 싶었던 책인 듯한 표정으로 보물처럼 책을 꺼내본다.
불교관련 서적이다. 도운에 대한 감사한 마음에 입가에 엷은 미소가 돈다..
도운E : (한층 부드러워진) 복상뼈가 썩도록 정진한다던 놈이 틈만 나면 농땡이냐?
한수 : (도운임을 확인하고 합장으로 인사하는데.) 스님.. (책 들어보이며) 이거..
도운 : 집어치우고 가 철환이나 찾아와! 지산 스님 오셨다.
S#8. 산중 냇가
잔잔한 물소리. 냇가 한쪽 바위에 개구리 한 마리 보이고
그 뒤로 올라오는 빡빡 깍은 머리통. 동자승 철환이다,
철환 조심스레 살금살금 다가가 번개같이 개구리를 덮친다.
철환의 손에 잡힌 개구리. 철환 자랑스레 돌아보면
철환 뒤에 아이들 셋. 철환을 시험하는 표정으로 서 있다.
민구 : 죽여! 이제!
철환 : (망설이고.)
민구 : 너 우리랑 놀구 싶다며? 빨랑 죽여!
철환 : (개구리 한번 보고.. 난감한 듯..)
아이들 : (박자 맞춰) 패대기! 패대기! 패대기!
철환 : (결심한 듯 눈을 질끈 감고 개구리 든 손을 들어 올리는데.)
철환의 볼을 잡아 당기는 손!
한수E : 가자!
놀란 철환 개구리 떨어 뜨리면 개구리 폴짝거리며 도망친다.
철환을 끌고 가다 시피 가는 한수.
철환 : 아 놔여! 늦께끼 주제에 맨날 망쳐 놓기만 하구 아 놔여!
한수 : 그래? 그럼 우리 장한 올께끼 동자승께서 개구리나 잡아 죽이고 있더라고 일러 바치랴?
철환 : ......
아이들 따라오며 ‘ 중중 까까중’ 놀려댄다
S#9. 석산방
석산, 지산, 도운, 앉아 있다.
지산 : 화운은 조카가 와서 데려 갔다는 구만
석산 : 다행이네..
지산 : 다행은 얼어 죽을 다행 노망난 중놈 족쇄나 안 채워 놓으면 다행이지. (도운에게) 한수는 요즘 어떤고?
도운 : 그만 그만합니다.
지산 : 상근기는 선이요 하근기는 염불 이랬는데 선공부 한번 시켜보지 그러냐?
도운 : 그저 염불이면 족한 아이입니다. 그나마 지가 하고 싶어 하는 경전공부라 막지는 않고 있습니다.
지산 : 그래 한수 계는 언제 줄 참인고?
석산 : 아직 일러! 버릴게 너무 많아!
도운 : 부처님도 그저 선배요. 먼저 간 도반 쯤으로 생각하는 아이입니다.
지산 : 그러니까 아직 어깨 힘이 덜 빠졌다 이말 아니냐
도운 : ......
지산 : 인석아 공부야 머리 깍고부터 시작이지! 넌 안 그랬냐?
도운 : (멀뚱멀뚱)
지산 : 너 첨에 천득이 졸졸 따라오면서 뭐랬냐? 삼년만에 견성하구 오년만에 득도한다매? 30년 지났는데? 뭐했냐?
도운 : 아 또 왜 철없을 때 얘긴 하구 그러세요..?
S#10. 산 아래로 나 있는 길
운치있는 멋들어진 소나무 숲 길 사이로 폼나게 걸어가는 한수와 지산! 한수의 자르지 않은 긴 머리가 왠지 운치를 더 해 준다.
지산 : 그래 요즘 살이는 어떤고?
한수 : 그럭저럭 견딜만 합니다.
지산 : (귀엽다는 듯) 그래? 내 살다보니 행자놈 입에서 살만하다 소릴 다 듣는구나! 요즘에도 강원에 보내 달라 떼쓰고 그러니?
한수 : 때 되면 보내주신다 하셨습니다.
지산 : 때? 무슨 때? 두 놈 장사 치르구 나서? 틀렸다 이놈아! (손 펴 보이며) 자 뭐가 보이누?
한수 : (한참을 보다) 세월이 보입니다.
지산 : (크게 웃는다) 손바닥에 손금이 보여야지! 세에월? 눈에 힘 빼 이 놈아!
한수 : (보면)
지산 : 너 도운이가 왜 그리 널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 줄 아니?
한수 : 그런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그저 절 공부시키시느라..
지산 : (크게 웃으며) 공부? 그 무식쟁이가 대학까지 나온 놈을 무슨 재주로? 그게 아니고! 그 놈이 널 시샘 하는 게야! (살핀다)
한수 : 설마 그러시기야..
지산 : 왜 아니겠냐? 석산 따라 다닌지 30년 배운거라군 염불뿐인데 늘그막에 사제라 들어온 놈이 경이면 경. 울력이면 울력! 지보다 못할게 없지 석산은 그저 젊은 놈만 싸고 돌지! 샘이 안나겠냐?
한수 : ......
S#11. 석산방
석산 정좌하고 앉아 있다. 나이답지 않은 꼿꼿함!
석산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도운.
석산 : 한수 행자는?
도운 : 아직 안 왔습니다.
석산 : 어딜 갔누?
도운 : (?) 지산스님 배웅하러 갔습니다.
석산 : 아 그랬지! 그나저나 한수 행자도 이젠 계를 받아야지!
도운 : 아직 좀 이르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버릴게 많은 아이라구..
석산 : 공부야 머리 깍고부터 시작이지!
도운 : (???)
석산 : 겨울안거 끝날려면 얼마나 남았누?
도운 : (황당) 아직 5월두 안지났습니다.
석산 : 음.. 이상하네 마당에 눈발 내리는 걸 봤는데.....
도운 : (죄지은 듯 부복하며) 제가 감히 건방을 떨었습니다.
S#12. 산아래 유원지(본사근처)
난리 버거지 풍경! 트롯트 음악에 춤추고 술 마시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한수와 지산 걷고 있다
지산 : 여기가 극락이냐? 지옥이냐?
한수 : (경멸스런 표정으로 보다 주저 없이) 지옥입니다
지산 : (사정없이 아줌마 댄스를 추고 있는 한 중년의 여자를 가리키며)저기 저 여편네 말이다. 남편에 볶이고 자식에 치이다 놀이라고 나온 모양인데 즐거워 뵈지 않니? 그럼 극락이지!
한수 : ......
어디선가 들려오는 크락션 소리.
한수 지산 보면 중형세단 눈에 들어오고 그안에 타고 있는 사내.. 승려. 범여다
범여. 사람들 때문에 차가 막히는게 짜증나는지 사정없이 크락션을 눌러대다 앞을 보면 떠억하니 차를 가로 막고 서 있는 지산 보인다.
기겁하는 범여
지산 나오라는 듯 손을 까딱거리면. 범여 고양이 앞의 쥐마냥 차에서 나온다.
지산 : 신수가 훤하구나!
범여 찍소리 못하고 처분만 바란다는 표정이다.
주위의 사람들 그런 범여와 지산을 재미 있다는 듯 보고.
범여 상당히 부끄러운 듯한 표정이다.
지산 : 가라 이놈아! (한수에게) 가자 (터벅터벅 앞서 간다)
범여 : (망신을 만회 하려는 듯) 오 한수! 그래 수행에 정진은 좀 있고?
지산 : (앞서가다 돌아와서) 수우행? 염병을 해라! 니놈이 아주 매를 버는 구나!
범여 : (멀뚱멀뚱 보면)
지산 : 한수가 석산의 직계니 니 사숙뻘 이야! 근데 하대를 해? 오랜만에 어른 뵜으니 큰절 올리거라!
범여 : (황당) 아 요즘 세상에. 배분 따지면. 그리구 한수는 도운스님제자니까.
지산 : 배분이 니놈 맘대루 정해지는 거면! 난 부처님 수제자다 이놈!
범여 : 아니 그래두.. 한수는 아직 수계도 못 받은
지산 : (말 자르며) 절간에 삼박사일 놀러온 어린애들한테도 내려주는 법명이고 너 같은 놈도 받은 수계다! 어여 절 올리지 못해 이놈!
범여 꼬물거리며 절하려는데.. 한수 황급히 제지한다.
S#13. 도운방 (밤)
정적! 벽보고 꼿꼿하게 앉아 있는 도운. 묵상중인 듯.
반대쪽 벽보고 역시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한수.
한수 발이 저린듯.. 몸이 이리저리 뒤틀린다. 코에 침도 바르고!
도운 : 겨우 세 시간도 못 참고 그 모양이냐? 내 니 나이땐 한번 그믐에 자리 틀고 앉으면 보름달 보고 일어났다!
한수 : (다시 자세 바로한다.)
도운 : 됐다! 너같은 하치리는 그저 선공부 해야한다구 그리 일렀건만! 주제도 모르고 경만 파대니 그 모양이지!
한수 : 스님..
도운 : (보면)
한수 : 이젠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도운 : 하려므나!
한수 : 계도 받고.. 강원에도 나가..
도운 : 누가 말렸니? 헌데 하나가 풀리면 만사가 풀리는 법인데.. 아직 하나두 못놓구 그러구 있는데 계를 받으면 뭐하구 강원엘 나가면 뭐하누?
한수 : (실망스런) 낮에 범여 스님을 뵈었습니다.
도운 : 범여도 범여대로 길이 있느니.. 니가 함부로 평할 인물이 아니야.
한수 : ......
S#14. 암자마당 (밤)
석산 마당에 나와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고있다.
석산 툇마루 한견에 있는 도끼를 발견하고는 다가가 집어든다.
도끼를 바라보는 석산의 총기 없는 눈빛! 회심의 미소.
무슨 일을 저지를 것처럼 도끼를 움켜쥐고는 살금살금 걸어간다.
S#15. 다시 도운방 (밤)
계속되는 도운과 한수의 논쟁
도운 : 그래? 그럼 니 도는 뭐냐? 손에서 바람이라도 일으키고 비라도 내리게 해야 도냐?
한수 : 제 도는 흔들림 없는 부동심과 변함없는 평상심입니다.
도운 : 그러냐? 어떻게 얻을 작정이냐?
한수 : 기존의 수행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운 : (흥미로운 듯) 어떻게?
한수 : (들떠서) 우선 선수행위주의 우리 수행관행을 좀 더 과학적으로 개혁하고, 경전공부의 성과를 논문으로 정리해내는 작업을
도운 : (말자르며) 삼년 동안 마음은 고사하고 입하나 죽이질 못했구나!
밖에서 들리는 ‘쿵’하는 소리
도운 : 나가 봐라
한수 나가고
한수E : (다급한) 스님! 스님!
S#16. 동 - 마당 (밤)
석산 기둥에 도끼질을 하고 있다.
제지하는, 그러나 워낙에 어른인지라 강하게는 못하고 그저 석산을 싸안고 있는 한수
석산 한수에게 안긴 채로 계속 도끼질을 하려 한다.
한수 : 스님 고정하세요 스님!
석산 : 놔 이놈이 니 놈이 누군데? 놔 이놈아!
도운 나와 보면! 허걱! 당혹스러운데..
도운 : 스님!
석산 : 넌 또 뭐야?
도운 : (몹시 당황한) 일찍이 단하 천연께선 목불을 쪼게 사리를 얻고자 하셨다! 오늘 스님께서 이리하신 이유를 알겠느냐?
한수 : (영문을 모르겠는데)
도운 : (왠지모를 다급함으로) 큰스님께서 무슨 가르침을 주시려 하셨는지 알겠느냔 말이다!
석산 : (총기없는 눈빛) 추워! 이 놈들이 날 얼려 죽일라 그래! 비켜 이놈아 장작 패야해!
도운, 한수 직감적으로 불길한 표정으로 서로를 본다.
S#17. 도운방 (밤)
철환과 한수 자고 있다.
한수 잠이 오질 앉는 듯 이리저리 뒤척이다 한숨.
S#18. 석산방 (밤)
석산 자고 있다. 모로 누워 새우 잠자는 모습.
도운 역시 무언가 불길한 예감에 잠이 오지 않는 듯.
S#19. 암자 전경.
비라도 내릴 것 같은 뿌연 하늘 그래서 왠지 더 어두운 듯한! 고요.
S#20. 석산방
아침 공양 중.
석산, 도운, 한수, 철환 앞에 놓여 있는 바리때.
석산 물끄러미 바리때를 본다. 다들 수저를 들지 못하고 그런 석산을 본다.
석산 : (뭔가 불만 스러운 듯 입맛을 다시다) 고기 반찬줘!
도운, 한수 직감한다!
석산 : 고기 줘!
도운 : 스님 육식 안하신지 반백년입니다.
도운의 얼굴위로 날아오는 바리때!
파편이되 날아드는 밥과 반찬!
석산 : 고기 줘! 이놈아!
도운 : (침착하게) 철환이 학교 데려다 줘라!
한수 : 가자 철환아! 아침대신 가다가 빵 먹자!
도운 : 땅은 다 갈았니?
한수 : 예
도운 : 그럼 들어오지 말고 가 감자 심어라!
한수 말없이 철환을 데리고 나간다.
S#21. 밭
꾸물꾸물한 하늘. 한수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감자를 심고 있다.
비가 온다. 갑자기 굵어지는 빗발. 한수 삽을 놓고 벌렁 드러 눕는다.
S#22. 암자마당(한수의 회상-3년전)
사복차림의 한수 마당으로 들어선다.
한수 : 계십니까?
도운 : (석산 방 문 열고 나오며) 뉘신지.
한수 : (반색으로) 아 스님 접니다. 설한수라고.. 안양에서..
도운 : (기억이 잘 안나는데) 누구신지..
S#23. 도운방
지산, 석산, 도운, 철환, 한수 둘러 앉아 있다.
지산 : 그래서? 여기 도운스님의 제자가 되겠다?
한수 : (밝다) 예! 도운스님께선 제게 새 삶을 열어주셨습니다.
지산 : 내 니놈 설법한답시구 깜빵 드나들때 내 알아봤다! 왜? 나잇살 차니 꼬랑지 달구 싶어진게냐?
도운 : 아니 그게 아니구요.. (난처한데) 전 누구를 제자로 받은 사람이 못됩니다.
지산 : (석산에게) 석산두 이제 한물 갔구만!
석산 : (빙그래)
지산 : 그래 깜빵엔 왜 갔는고?
한수 : 실수로 사람을 치었습니다.
지산 : 이 놈! 마음 공부하겠다고 절집 찾아든 놈이 첫날부터 뻥을 쳐?
석산 : 시주께선 세상이 어찌 보이시누?
한수 : 더럽고 추하고 고쳐야 할게 너무 많아 스님을 찾아 왔습니다. 깨닳음을 얻어 세상을 조금이나마 깨끗이 하고 싶습니다.
지산 : (깔깔 웃으며) 세상을 깨끗이 해? 그럼 출마를 해 이놈아!
석산 : 음.. 내 도는 모르겠고... 세상 깨끗해 보일때 까지만 머믈다 가시구려!
한수 희색이고. 도운 난감한 표정이다.
도운E : 내가 괜한 짓을 했구나!
S#24. 다시 밭
누워 비를 흠뻑 맞은 한수 황급히 일어난다.
도운 우산은 땅바닥에 꼿고는 돌아간다. 한수 우산을 빼들고는 도운을 따라간다.
말없이 걷고 있는 그들...계속 내리는 비
S#25. 석산방
도운 석산의 어께를 주무르고 있다.
꾸부정한 허리 초첨 없는 눈빛의 석산... 처연하다.
도운 : 한수 내려보낼 생각입니다. 철환이두 본사로 보낼 생각입니다.
석산 : 싫다. 아무데두 안가..
도운 : 스님 나으실 때 까지만이에요..
석산 : 고기두 먹구 싶구, 장가두 가야하는데.. 색시두 보구싶구..
도운 대꾸 없이 어깨를 주무르다 보면 석산 잠이 들었다.
도운 안타까운 듯.. 믿기지 않는 다는 듯 석산을 본다.
S#26. 암자마당(도운의 회상 20년전)
마당에 엎드려 있는 도운. 도운 얼굴로 날라오는 돈 뭉치
석산 : 가시오!
도운 : 치료를 받으셔야 한답니다.
석산 : 도적질한 돈으로? 분명히 그러지 않았소? 나랑 연을 끊고자 할때만 다시 노름에 손대겠다구!
도운 : ...... 돌아가실 수도 있답니다.
석산 : 이 껍데기가 그리도 중하답디까?
도운 : 스님..
석산 : 이생에선 끝난 연 같으니 다신 보지 맙시다.
도운 : (자르며) 못갑니다. 벌을 내려주십시오.(품에서 칼을 꺼내 손가락을 자를 기세다)
석산 : 들어가시오! 자식 허물은 부모가 받아내는 법! (거동이 몹시 불편한 몸으로 마당으로 나와 무릎을 꿇는다)
도운 석산의 위엄에 감히 말리지 못하고 그저 석산과 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
시간 경과...
해가 지고.. 해가 뜨고..
S#27. 다시 석산방.
석산 누워 자고 있다. 도운 가만히 석산을 본다.
S#28. 암자 마당
중천에 떠오른 해.
외출을 하려는 듯한 도운. 한수와 철환 도운을 배웅하고 있다.
한수 : 걱정 마시고 다녀 오세요.
도운 : 다녀오마.
한수 : 예.
도운 :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듯.. 한수가 미덥지 않는 듯 머뭇거리면)
한수 : 딱 스님 처럼만 하겠습니다.
도운 : 고맙다. 아 그리구 혹시라도 기자 나부랭이나 옛날 제자랍시구 큰스님 찾아 오거든 안계시다고 해라. 방송인지 뭔지 한번 나가구 나니 여간 귀찮은게 아니야!
한수 : 예.
길을 나서는 도운.
S#29. 본사-마당
아이들 십수명 팔굽혀펴기 자세로 엎드려 있고, 젊은 승려 지광 체육교사처럼 앞에 서있다.
지광 : (해병대 말투로) 절은 여러분 놀이터가 아닙니다. 여러 훌륭하신 스님들이 수도하는 곳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이들 : 예!
지광 : 대답이 작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이들 : 예!!
지광 : 그럼 그렇게 뛰고 떠들면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아이들 : 안됩니다.
지광 : 하나에 불국 둘에 정토 실시!
아이들 : 실시!
지광 : 하나!
아이들 : 불국
지광 : 둘
아이들 : 정토!
도운 : (실망스런 낯빛으로 나온다.)
범여 : (따라나오며) 스님!
도운 : (돌아보면)
범여 : (봉투 내밀며) 그만큼은 안되구요
도운 : 꼬불친 돈이 있긴 있는 모양이구만!
범여 : 아 정말 섭하네 아시잖아요. 여기 말사에 딸린 암자만 스므개가 넘습니다. 사찰 재산이 얼마니 문화재가 얼마니 해두 건들수나 있습니까? 막말루 젊은 학승들 공부 좀 시키게 보시 좀 하시오 하면 십원 하나 안 나옵니다. 그저 복이나 빌어주고 기와에 이름이나 새겨 준다고 해야 그나마 몇 푼 나오는 돈으로 그 큰살림 한번 해보세요.
도운 : 알아!
범여 : 저두 선방에 들어 앉아 선 공부 경 공부 하구 싶다 이 말입니다.
도운 : 사람마다 다 제 갈 길이 있는거지! (아이들과 지광 가리키며) 뭐야?
범여 : 아! 지광이라구 해병대 나온 스님인데.. 출가 체험 나온 녀석들이 너무 말을 안 들어서..
도운 : 재밌구만!
지광 멀리서 도운을 발견하고는 합장으로 인사한다.
S#30. 노름방 전경 (밤)
시골.. 마을 어딘가의 외딴 집.
S#31. 노름방 (밤)
시야가득 들어오는 화투를 든 손.
첫장 십 보이고 서서히 뒷장 밀려 보이면 역시 십자다.
화투를 쥔 손을 따라 올라가면 화투를 쥐고 있는 사내 사복차림의 도운이다.
도운 앞에 수북한 지폐들.. 판돈으로 걸린 듯한 엄청난 양의 지폐.
이어지는 면면들... 총 다섯명. 잘 안되는 듯 낭패감에 젖은 듯한 표정의 사내들
의심스런 눈빛으로 도운을 살피는 사내. 음습한 분위기의 방안.
칠성 : (패 엎으며)죽었어!
덕구 : 난 갑오로 죽는다(짓궂은 표정으로 도운 보며 패를 보이면 십자, 구자다)
도운 : 허 이거 또 내가 먹나 (하며 패 내려 놓으면 3자 두장이다)
죽지 않고 있던 사내 둘“이런 안되네 이거” 하며 패 내려 놓고
도운 돈 추스르는데
덕구 : (번개같이 도운 손 잡으며) 이 영감이 여가 워디라고 고리짝 기술을 쓴디야! (하고는 도운 팔 흔들면 소매에서 떨어지는 십자 두장)
마주치는 눈빛들! 순간의 정적! 억겁처럼 느껴지는 긴장감.
도운 : 이런 이런 소매가 화투를 먹어버렸네!
칠성 : 그려요? 그럼 그 싸가지 없는 손목하구 소매는 두고 가소! 어이 칼가져 와라!
도운 : 어허 실수 좀 한걸 가지구 야박하게들 이러시나.. 아우님들 혹시 불광동 흑싸리라고 들어봤나? 내 소시적 별명인데...
덕구 : 염병하네! 워째 만나는 놈들마다 왕년에 흑싸리래? 촌구석이라 우습게 보이남? 영감이 흑싸리믄 내는 정전자 주윤발이여! 잔말말고 손이내 내소 규칙은 규칙잉께!
덕구 담요 쪽으로 도운의 팔을 잡아 끌고는 소매를 쭈욱 걷어 올린다.
언 뜻 팔뚝의 문신이 보이는 듯하더니. 덕구 순간적으로 움찔! 놀라 도운을 본다.
도운 그 틈에 번개같이 덕구에게 주먹을 날리고 칠성을 들이 받고는. ‘어이쿠’ 하는 사이 돈을 움켜쥐고 뛰어 나간다.‘잡아!’하는 외침.
S#32. 시골길(밤)
도운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다. 양손에 움켜쥔 지폐뭉치.
도운 뒤를 쫓아 오는 사내들. 좁혀지는 그들 사이의 거리.
잡힐 듯 잡힐 듯, 급기야 칠성 손을 내밀어 도운의 뒷덜미를 움켜쥔다.
도운 그대로 넘어지면서 거북이 등 모양으로 몸을 움추린타.
칠성 : (숨을 몰아쉬며) 영감님 참 빠르요! 우덜이 김사장 호구 잡을라구 밑밥먹인 돈이 얼만줄 아요? 조용히 돈만 두고 가소!
도운 : (움추린 채로 말이 없다.)
덕구 : (도운을 본다)
칠성 도운의 뒷덜미를 잡고 일으켜 세우려는데, 그런 칠성의 손을 잡아채는 손!
칠성 일행 돌아보면 지광이다.
칠성 : 머시여? 한패여? 가드까정 있구 노인네 아주 꾼인갑네! 이러믄 야그가 달라지재!
덕구 말 끝남과 동시에 지광에게 주먹을 내지르고,
지광 가볍게 피하며 지광을 밀친다. 고수다!
엎드려 있던 도운 슬며시 고개를 돌려보고는 일어선다.
모두들 전투태세를 취하고 서로를 노려보는데
덕구 번개 같이 도운의 팔을 낚아 채 소매를 걷어 올린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문신.
덕구 : (희미하게 미소 짓고는 돌아서며) 가드라고,
칠성 : 뭐여? 우린 넷인디?
덕구 : (앞서 가며) 그럼 함 붙어 보든가! (돌아서며) 흑싸리 아즉 부처 안됬소잉
칠성 : (덕구 뒤를 따라 붙으며) 누구여? 아는 놈이여? 깡패여?
덕구 말 없이 걷고.. 일행들 덕구 뒤를 따른다.
계속되는 칠성의 아는 놈이냐는 물음들.
자광과 도운 말없이 서 있다.
지광의 시선 여전히 지폐를 움켜쥐고 있는 도운의 손으로 향하고..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운. 썰렁함.
지광 : 스님..
도운 : (예의 그 근엄함으로) 입이 무거워야 성불하느니...
도운 앞서가면 지광 합장으로 인사하고 반대 쪽으로 간다.
도운E : 혹시 주윤발이라구 들어 봤나? 별명이 정전자라던데...
지광 : (돌아서 합장하며) 영화배웁니다.
도운 : 음.. 보이는거라구 다 믿지 마시게! 허상이야!
S#33. 암자마당.
철환 손 들고 벌 서고 있다
한수 : 너! 큰스님 편찮으시다구 했어 안했어? 큰스님이 말이냐?
철환 : 큰스님이 타라구 했는데...
도운E : 뭐냐?
한수 철환 돌아보면, 도운 손에 들린 엄청난 양의 물건들. 손에 들린 한약재!
한수 달려가 도운의 물건들을 받아 내린다.
S#34. 도운방.
도운 사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다. 벽장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물건들.
초콜릿, 사탕, 과자들, 속옷 한약재 등등
철환 번뜩이는 눈빛으로 그런 도운을 바라보고 있다.
도운 : (커다란 헬리콥터 장난감 상자하나를 꺼내 철환에게 내민다) 자!
철환 : (의아한 눈빛으로 받아들며 도운 본다)
도운 : 아 니가 가지구 싶다구 한거잖아. 안 좋으냐?
철환 : (답답하다는 듯) 아휴! 헬리콥터가 아니구여 해리포터요!
도운 : 해리 뭐?
철환 : 해!리!포!터! 책이요 책!
도운 : 그래? 그럼 내 놔! 바꿔다 줄께!
철환 상자를 얼른 뒤로 숨긴다.
도운 “녀석”하며 빙긋 웃는다.
도운 품에서 보물처럼 책한권 꺼낸다. 치매의 원인과 치료에 관한 책이다.
벽장속 깊숙이 책을 숨겨 놓는 도운.
S#35. 석산방
오물오물 과자, 사탕 등을 먹고 있는 석산.
도운과 철환 그런 석산을 보고 있다. 철환 먹고 싶은 듯..
도운 : 드실만 하세요?
석산 : 달다! 너두 줄까?
도운 : (보면)
석산 : 싫다.
철환 : (간절하다 싶은 눈으로 석산을 보는데..)
석산 : 우리 손주 줄꺼야. (사탕한주먹을 집고는 철환준다) 자!
철환 : (도운의 눈치를 보며 머뭇대면)
석산 : 어여
도운 받으라는 눈짓.
철환 기쁘게 받아 든다.
한기자E : 계세요?
S#36. 암자마당
상당한 미모의 한기자 마당 한가운데 서서 암자를 둘러 본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 미니스커트 차림이다.
마당 쓸던 한수. 한기자와 눈이 마주친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 한기자 순식간의 표정 변화.
한수 : 어떻게 오셨습니까?
한기자 : 안녕하세요? 저 여성만세 한혜지 기자라고 하는데요.. 여기 석산 큰스님 기거하시는 암자 맞죠?
한수 : 예 그런..
도운 : (석산방에서 나오며, 한수 말을 자르 듯) 큰스님 안계십니다.
한기자 : 어디 가셨나요?
도운 : 예.
석산 : (방문 열고는) 이 놈아! 내가 가긴 어딜가?
S#37. 석산방
방안 가득 뽑혀 나뒹구는 티슈들...
무언가를 노려보는 듯한 석산의 눈! 석산 티슈를 한 장 뽑아 휙하고 날린다.
석산 재미있다는 듯.. 또 한 장 뽑아 휙 던진다.
긴장한 듯한 도운과 무표정한 한수... 무슨 의미일까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 한기자.
석산 : 봐라.. 이 놈들이 다 내 제자지... 안에 있는 놈.. 밖에 있는 놈...
한기자 : 아 그러니까 큰스님 문하에 다 출가하신 분들만 있는건 아니군요?
도운 : 그렇지요. 법관도 있고, 국회의원도 있고..
석산 : 이놈아! 절간에서 고시 공부하다 안면튼 놈들이 왜 내 제자냐? 내 제자가 될라믄! (좌중을 쭉 둘러본다)
좌중 바짝 긴장! 하고..
석산 : 빤스보인다 이년아!
순간 도운과 한수의 시선이 한기자 쪽으로 쏠리는데..
한기자의 자세! 겉옷으로 무릎쪽을 가린! 절대 속옷이 보일 수 없는 자세다.
한기자 : (나름대로 침착하게) 이렇게 가렸는데 보이세요? 안 보이실텐데...
석산 : 안 입었다구? 이년이 육보시를 하러왔나? 나 잘란다(드러 눕는다)
다들 할말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석산 : 고기 많이 사 오는게 내 제자야. 고기 사오는 놈들은 하나두 없어!
철환 다부진 표정으로 그런 석산을 본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철환의 눈빛!
도운 : (마무리 하려는 듯) 자! 더 궁금한 건 여기 한수행자한테 물어보시고 이만 일어나시지요.
한기자 : (도운 보면)
도운 : 여기 이 사람이 큰스님 수제자외다.
한수 도운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본다.
S#38. 산 아래로 나 있는 길.
한수와 한기자 걷고 있다.
한기자 : 역시 다르긴 다르네요. 이해는 잘 안되지만.. 정말 많이 배우고 가요...
한수 : ...... 어떻게 다르던가요?
한기자 : 천수보살의 인자함과 사천왕의 지엄함을 합쳐 놓은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한수 : (어이없다는 듯 한기자를 보며 엷은 미소)
한기자 : 만족하세요?
한수 : (보면)
한기자 : 재밌네요.. 하루에 수백억을 주무르던 악질 주식작전세력이 수도승이 됬다? 이거 기사감 아니에요?
한수 : (눈질끈 감았다 뜨고는 싸늘하게) 절 보러 오셨나요?
한기자 : 아니요... 우연이에요...근데.. 고승 이야긴 좀 식상하지 않아요? 그 쪽 얘기가 재미 있을거 같은데...
한수 : (노려보며) 재미? 나 때문에 한가족이 동반자살을 했어! 그게 재미야?
한기자 : 그럼 지금 그 모습이.. 참회인가요? 아님 도피?
한수 : ...... .
S#39. 암자 전경. (밤)
S#40. 도운방 (밤)
무언가를 써 내려가는 손. 수북한 책더미.
불경공부를 하고 있는 한수다. 예의 고뇌에 찬 무거운 표정.
방문 열리고 도운 들어오면 한수 하던 걸 멈추고 자세를 바로 해 도운을 맞는다.
도운 : 언제 갈 참이냐?
한수 : 왜 가라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운 : 뭘 보자고 여기 있겠다는게냐?
한수 : 무얼 보여주시기 싫으신 겁니가?
도운 : ......
한수 : 공부 제대로 하고 싶으면 더 있으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도운 : 내 뜻이 아니었다.
한수 : 지금은 스님 마음대로 하셔도 된다는 뜻입니까?
도운 : 너랑 말장난 하기도 지겹다.
한수 : 말장난이었습니까?
도운 : 적적하진 않더구나.
한수 : 큰스님 기침 한 자락도 다 공부거리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도운 : 그래 그럼 편찮으신 큰스님 보며 그게 도통이요하고 조롱이라도 하고 싶은게냐?
한수 : 큰스님께선 치매에 걸리신 겁니다. 그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세월이란 겁니다. 거기에 도대체 제가 봐선 안될게 뭐가 있습니까?
도운 : 내 그저 감기 같으거라 하지 않더냐?
한수 : 제가 훌쩍 가버리면 스님 혼자서 힘드실까봐 못가겠습니다!
도운 : 건방진 놈! 이마에 상처가 다 아물어 가는 모양이구나!
한수 :......
도운 : 가라! 스님 감기도 수발 못할 만큼 늙지 않았다
S#41. 석산방
어둠.
도운 일어나 보면 석산이 없다. 급히 일어나 나간다.
S#42. 암자마당.
아자 이리저리 석산을 찾아다닌 듯.
도운 : 한수야! 한수야!
한수 : (잠이 덜깬 채 방에서 나온다.)
도운 : 큰스님 안 보이신다 찾아라!
S#43. 산
미명. 다급히 석산을 찾아 뛰는 도운과 한수.
도운 : (숨을 몰아쉬며) 헤어져 찾자. 난 산위 암자랑 말사들 뒤져 보마. 찾는대로 바로 모시고 와라. (대답도 듣기전에 뛰어간다)
S#44. 산아래 유원지 일각
부산하게 영업준비를 하고 있는 식당들 늘어서 있고,
남루한 행색의 석산 어느 식당에선가 떠밀리 듯 음식을 받아 나와서는 구석 어딘가에 쪼그려 앉아 오물오물 먹는다.
식당가를 기웃거리던 한수 석산을 발견한다.
한수 : 스님! (달려와 보면... )
석산 아주 맛나게 무언가를 먹고 있다.
한수 그런 석산의 모습에 화가 치민다.
석산 먹던걸 한수에게 내민다.
한수 망연히 받아 들고 보면 이상한지 냄새를 맡아 본다.
걸리는 놈 누구든 죽여버리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식당가를 둘러본다.
한수 : 이거 어떤 놈한테 받으셨어요? 어떤 개자식이 이런 걸?
석산 : 맛있어! 그럼 된거지.. 돈두 안냈는데...
한수 : (망연히 석산을 본다)
석산 : 상한거 아니야 좀 쉬쉬한거지... 그거 먹구 죽지 않아! 나는 고마운데 넌 왜 이리 화를 내누?
S#45. 암자마당
도운 행장을 꾸려 침통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온다.
몹시 힘든 표정. 땀으로 범벅된 한수 석산을 업고 암자로 들어선다.
도운 : (그들을 발견하고는) 스님!
잠들어 있는 석산. 무척이나 힘들어 하는 한수
도운 : (통곡) 지금 스님 찾으러 갈라구 그랬습니다. 한달이구 두달이구 찾아다니다가 못 찾으면 거기서 팍 죽으라구 그랬습니다! 스님!
한수 : 스님 주무십니다.
도운 : (뻘쭘!)
S#46. 도운방
도운과 한수 앉아 있다.
도운 : 어디 계시더냐?
한수 : 산 아래 유원지에 계셨습니다.
도운 : 어찌하고 계시더냐?
한수 : 장사치들을 모아 놓고 법문을 열고 계셨습니다.
도운 : (몹시 씁쓸한) 그래? 애썼다. 고맙다.
한수 : 고맙다구 하셨습니까? 얼마나 더지나야 절
도운 : (말자르며) 됐다. 그만하자!
한수 : 노스님 뫼시고 오는 길에.. 혹시 스님께서 제게 무슨 가르침을 내려주시려고 이러시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도운 : (반색으로) 그렇지? 이제 너두 눈이 좀 틔는 구나! 그럴게야! 스님이 어떤분이신데.. 맞어! 그런거야! 니가 이제 제대로 보는 구나!
한수 : (오히려 그런 도운이 안타까운 듯 본다)
지광E : 스님.. 도운 스님..
S#47. 암자마당
지광과 한수, 도운 마당에 서 있다.
도운 : 아 글쎄 안된다니까! 큰스님 편찮으시다!
지광 : 저.. 큰스님 하산하신다구 기자들두 와 있구..
도운 : 가 안된다구 그러라니까 말귀를 못알어듣누!
석산방 문열리며 석산 나온다.
일행들 보면
석산 : (정신이 돌아온 듯) 약속한건 지켜야지! 갑시다.
도운 : (놀라 보면) 스님..
석산 : 왜 불안 하신가?
지광 반색이 되고, 한수 도운, 불안한 듯 보면
석산 :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앞서면)
도운 : 뫼셔라.
S#48. 본사 법당.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 사람들 틈에 아줌마 댄스를 사정없이 추던 중년여인 보인다.
기자인 듯 보이는 사람 두엇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고 그들 중 한기자도 보이고...
맨 앞줄에 다양한 연배의 승려들만이 꼿꼿이 좌정하고 있다.
한쪽에 도운 불안불안 조마조마 좌불안석이다.
범여 : 다음엔 석산 큰스님의 법문이 있겠습니다.
석산 한수와 도운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단으로 올라 와 마련된 금빛 방석위에 앉는다. 일순 고요....... 불안한 표정의 한수와 도운....
석산 자리에 앉아 앞에 있는 마이크를 툭툭 친다.
석산 : (깔려 있는 방석을 빼며) 이게 뭐요?
청중1 : 방석이요.
석산 : 방석? 그게 뭔고.. (머리에 올리며) 이럼 뭔고? 모자요?
청중들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는 듯...
석산 : 재미 없다. 나 모자 쓰고 집에 갈란다.
역시나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는 청중들...
도운과 한수만이 불안한 듯 보다 한수 석산 쪽으로 가려하면 도운 제지한다.
석산 단을 내려 간다. 기대에 찬 청중들....
석산 : 너! 새끼때매 머리 아프지? 바람 난 큰 새끼 대학 못간 작은 새끼!
여자 : (놀란) 나무관세음보살..
석산 : 내 부적하나 써 주랴? 법문 한 자락 해주랴?
여자 : 나무관세음보살!
석산 : 나와라! 춤추자!
여자 : (멀뚱멀뚱 보면)
석산 : 어여 나와!
석산 춤을 춘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아줌마 댄스..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이일을 어찌하누 하는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는다.
석산 신이 났다 ‘이히’하며 흔들어 대며 청중 속으로 들어 간다.
석산 들어가며 청중 몇을 일으켜 세운다.
어설프게 춤을 추는 청중들.. 하나둘 호응하는가 싶더니...
난데 없는 한판 춤판이 벌어진다. 야! 단! 법! 석! 연신 터지는 후레쉬
갑자기 울려 퍼지는 트롯트 음악. 음향기기 쪽에 도운 서 있다.
춤을 추던 석산 표정 굳어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굳는다.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한수 석산에게로 간다.
음악꺼지고... 다시 고요... 그대로 굳은 듯 멈춰 서 있는 석산.
석산 : (한수에게) 내가 나무야!
한수 : 예?
석산 : (빙그레) 나 잘란다!
도운 : (어느세 다가와서는) 뫼셔라!
석산 벌렁 드러눕는다. 이내 코를 골며 잠이 드는 석산.
어디선가 시작된 박수소리.. 우렁차게 커지고
석산을 업고 나가는 한수.
청중2 : 생불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청중3 : 무슨 뜻이야 근데? 내가 나무?
청중2 : 에이그 이 어리석은 중생아! 모르면 생각 좀 해봐라! 좋은 말씀 아니냐
S#49. 산전경
여전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광.
지산E : 한수야! 도운아! 천득아!
S#50. 암자마당
지산 꼿꼿하게 서 있다.
도운 급히 방에서 나온다.
지산 : 천득이 노망 났다매?
도운 : (헉! 분노) 한수야! 한수야!
지산 : 됐다 이놈아! 꽁꽁 싸매면 모를 줄 알았냐? 석산얘기가 요새 선방 화두다 이놈아!
S#51. 석산방
석산 오물오물 과자 먹고 있다. 마주 앉은 도운과 지산.
지산 잡지 한권을 도운에게 툭 던져준다.
도운 펴들면‘중생들을 향한 생불의 눈물’이란 제목의 특집 기사가 실려 있고, 석산의 눈물 흘리는 컷이 생생하게 실려 있다.
지산 : 이번엔 이렇게 넘어가고 다음엔 어쩔거냐?
도운 : .......
지산 : 지금 정신 말짱하지?
석산 : (보면)
지산 : 눈 빛만 보면 안다 이놈아!
도운 : 스님
지산 : 니가 더 나빠! 방법을 찾아야지 숨겨만 놓으면 수가 나냐?
석산 : 나 잘란다
지산 : 예끼 이놈 궁하니까 자빠지냐?
도운 : 한수를 보내야 겠습니다
지산 : 왜?
도운 : 이제 공부를 시켜야지요.
지산 : 그럼 보내려므나. 보내달랄 때 진작 보내지 그랬냐?
도운 : 후회하고 있습니다.
지산 : 정말 그것 뿐이냐?
도운 : ......
지산 : 공부시키겠다는 것뿐이냔 말이다!
도운 : ......
지산 : 미련한 놈! 비 오면 그냥 맞는게야 어차피 우산도 없는데 안 맞겠다구 발버둥 쳐봐야 속만 타지!
도운 : 전 그냥 배운대로만..
지산 : (말자르며) 시끄럽다! 두 놈이 똑같아! 서로 자기만 잘났대! 돌대가리들!
도운 : (보면)
지산 : 그리구 돈 필요하면 달라고 해라! 노름방 기웃거려 몇푼이나 번다구!
도운 : (허걱!) 그걸.. 어떻게?
지산 : 지광이 별명이 촉새란다!
도운 : 음...
지산 : 나 갈란다. 얼굴 봤으니 가야지.
도운 : 한수야 한수야!
지산 : 미련한 놈! 간다면 한번 잡는 법이 없어!
도운 : 주무시고.
지산 : 일 없다! 70년 살면서 하나 배운게 아쉬울 때 떠나는거다!
S#52. 산길
지산 한수 걷고 있다.
지산 : 실망스럽냐?
한수 : ...... 모르겠습니다.
지산 : 놀란걸루 치면 도운이 놈이 더 할게다. 석산 따라 30년이 공염불되게 생겼으니.. 겁도 날게야! 너 도운이 놈 뭐하든 놈인지 아냐?
한수 : ......
지산 : 유명한 타짜였어.. 석산이 소시적에 민중불교운동인지 뭔지 한다구 설래발치다가 깜빵엘 들어간적이 있지! 아 명색이 승련데.. 이 놈들이 사람 기 죽인다구 온갖 흉악범에 잡범들하구 한방에 가둬놓지 않았겠냐? 거기서 도운이 놈을 만났다! 그 고문에 모욕에.. 한달을 당하면서 비명한 번 안지르고 한 번 눕지도 않고 장좌불와! 깜빵에서 나올때 되니까 거기 같이 있던 놈들이 몽땅 무릎 꿇고 석산이 풀어대는 구라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더라는게야! 도운이 놈! 그길로 따라나서 30년이다!
한수 : ......
지산 : 그래.. 갈꺼냐?
한수 : ......
지산 : 뭐하나 얻어 보겠다구 몇 년을 아등바등 했는데 얻은건 없구.. 억울하냐?
한수 : ......
지산 : 도운인 아직 네가 한 식구란 생각이 안드는 모양이다. 그건 니 탓이야!
한수 : 알고 있습니다.
지산 : 머리로만? 느껴야지 마음으로! 가구 말구야 니 맘이지만 오기로 남겠다면 떠나고 얻을게 없어서 가겠다면 남아라!
한수 : 예.
지산 : 가자 갈 곳이 있다.
S#53. 험한 산길
지산과 한수 허위허위 험한 길을 오른다.
어느 부분에선가 멈춰서면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절경!
지산 : 뭐가 보이누?
한수 : ......
지산 : 이 놈아! 눈앞에 경치 하나도 감상 못하는 놈이 책을 만권을 읽으면 뭐하구 선을 백년을 하면 뭐하냐? 도를 통하면 뭐하고 깨닳음을 얻으면 뭐해? 이 미련한 놈아!
한수 : !!!
지산 : 여기가 어딘줄 아니?
한수 : .....
지산 : 오래전에.. 석산이 많이 아팟다! 도운이 놈이 석산을 업고 산을 내려가다 길을 잘 못 든게야... 그래서 온 데가 여기다.
한수 : (보면)
지산 : 사경을 헤메던 석산이 이 절경을 보고는 크게 깨닳음을 얻었다는데 그게 뭔진 모르겠고..
한수 : (눈빛 번뜩) 그래서요?
지산 : 그래서는 뭘 곧 죽을거 같던 석산이 내려라! 병마 따위가 부처를 어쩌 겠느냐 하구는 뚜벅뚜벅 걸어갔다는 구나!
한수 : 병은 낳으셨나요?
지산 : 낫긴? 한 열걸음 가다 쓰러져.. 병원가서 보름만에 퇴원했지! 한 반년 앓았을 걸?
한수 : ......
지산 : 특별한 거 찾지 마라! 그런 거 없다! 다만! 뒈져가면서도 경치를 즐길줄 아는 석산 마음이! 그게 부천 게야! 그걸 배우라는게지! 내가 부처님 다음으루 존경하는 게 석산이다!
한수 :......
지산 : (한수를 보더니) 됐다! 니놈 이제 한발 가겠구나!
S#54. 도운방.
자신이 썼던 글을 읽어 보는 한수.. 긴 한숨.
그렇게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도운E : 한수야!
S#55. 암자마당
도운 출타준비를 하고 철환과 서 있다.
한수 : (방에서 나오며) 어디 다녀오시게요?
도운 : 장에..
한수 :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도운 : 아니다. 부탁 좀 하마. 스님 기침하시면 아니다. 알아서 해라 다녀오마!
S#56. 석산방
석산 우두머니 앉아 있고 한수 방을 청소하고 있다.
한수 일어나 벽장문을 열려 한다.
석산 : (놀라) 안돼 이놈!
한수 : (놀란) 예? 아 청소 하려구요.
한수 벽장문 열면, 벽장 안에 먹다 남은 과자들, 벽장 바닥에 녹아 붙은 초콜릿 사탕 등등... 희끗희끗하게 피어난 곰팜이...
한수 : 아휴 이건 못 드시겠어요.
석산 : (벽장을 가로 막으며) 우리 철환이 줄라구 숨겨논 거여! 니놈들이 우리 철환이는 안 주잖아!
한수 : (처연히 석산 본다)
석산 : 배고프다.
한수 : 뭐 드시고 싶으세요?
석산 : 칼국수!
S#57. 암자마당
마당에 멍석 피고 칼국수 반죽하고 있는 한수
구경하는 석산.
한수 : 스님 저 떠나야 겠습니다. 마지막 공양입니다.
석산 : .....
한수 : 안돌아 올거에요...
석산 : 왜 가니?
한수 : 지산스님께서 오기로 있을거면 가라시네요..
석산 : 너 내가 중된 얘기 해주랴?
한수 : 예.
석산 : 음.. 배가 고파서 절간엔 먹을게 많은 줄 알구 찾아갔지. 아 그랬더니만 먹을 건 쥐 오줌 만큼 주면서 죽어라 일만 시키는게야! 툭하면 뭐가 보이누, 버려야 하느니! 해가면서 염장이나 지르구 음..
한수 : (재밌다는 듯) 근데요?
둘의 분위기.. 할아비와 손주 같다.
석산 : 한날은 큰스님이 날 부르는게야. 불러서는 니가 본 부처가 모두 몇이냐? 하길래 내 하나요! 그랬지! 그랬더니만 그 이름이 뭐냐? 하잖아! 아 내 그딴걸 알게 뭐야 오기가 나서 공천득이요! 했더니만.
한수 : 그랬더니 뭐라시든가요?
석산 : 이 놈 머리 깍아줘야겠다! 그러는게야 내 속으로 요 늙은이 나한데 속아 넘어갔구나! 그러구 있는데... 나중에 알구 보니까 그게 다 큰스님께서 (갑자기 말이 끊어진다)
한수 : (??)
석산 : 기억이 안나네..
S#58. @@신경정신과 의원 입구
간식 등등을 한짐 가득 짊어진 도운 그다지 밝지 않은 표정으로 나온다.
하늘을 우러르며 긴 한숨.
의사E : 말씀으로 봐선... 아직 초기고.. 초기라면 급격하게 기억력이 감퇴한다거나 약하게 퇴행현상이 일어나는 정돈데.. 깨있는 내내 그렇다는 건. 글쎄요...
S#59. 암자마당.
석산 여전히 멍석위에 앉아 있다.
도마와 칼, 국수가락 보이고. 한수 부엌에서 곤로를 들고 나온다.
한수 : (곤로에 불을 지피며) 적적하세요? 다 됐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석산 : 우리 도둑 잡기하자!
한수 : 예?
석산 : 니가 순사해라 내가 도둑할게
한수 : (보면)
석산 : 순사가 뭐해 인석아 묶어야지!
시간경과
석산 기둥에 묶여 있고, 한수 다시 반죽을 하고 있다.
석산 : 이제 니가 도둑해라!
한수 : 다 됐습니다. 점심공양 끝나면 제가 도둑할께요 스님.
도운 : (묶여있는 석산을 보고는 분노로 일그러진) 이놈!
한수 : 다녀오셨
도운 : (그대로 달려들어 한수를 향해 주먹을 날린다) 이 이!
한수 땅에 엎어지며 뭐라 말하려는데
도운 바닥에 있던 밀대를 집어 들고는 한수를 향해 걸어간다. 죽이기라도 할 듯이.
석산 : 뭐하냐?
도운 : (한수를 때리다 돌아보며) 스님..
석산 : 한참 재밌을라구 그러는데 또 훼방놓구 지랄이야!
도운 : 스님
석산 : 우리 지금 도둑 잡기 하는데 너두 할래?
도운 : 그러셨어요?
석산 : 한수 묶어라!
도운 : (미안한지 한수를 본다. 말을 못한다. 밀대를 내려 놓는다.)
S#60. 도운방 (밤)
한수 짐을 꾸리고 있다. 긴 한숨.
책과 원고 무더기로 시선이 향하고.. 무심하게.. 눈을 감는다.
그중 원고 몇 권을 바랑에 넣는다.
S#61. 법당 (밤)
도운 좌정하고 앉아 있다.
한수 들어선다.
도운 : (한수의 행색을 보고는) 가려느냐?
한수 : 예
도운 : 낮의 일이 서운 했더냐?
한수 : 몇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도운 : ......
한수 : 도란 무었입니까?
도운 : 내 조주선사 흉내라도 낼까? 차 한 잔 주랴? 아니면 바리떼를 닦으랴?
한수 : ......
도운 : 오늘은 이거다 싶다가 자고 일어나면 아닌게 도가 아니라는건 안다!
한수 : 깨닳음이란 순간입니까? 과정입니까?
도운 : 얻어 본 적이 없으니 할 말도 없다.
한수 : 스님께선 언제나 제가 보고 싶어 하는 책들을 얻어다 주셨습니다,
도운 : 본사에 학승 놈들이 베고 자는 걸 빼앗아왔을 뿐이다.
한수 : 제가 보고 싶어 한다는 건 어찌 아셨는지 궁금합니다.
도운 : 내 그걸 어떻게 알겠느냐? 베게로 쓰느니 그저 불 쏘시게로라도 쓰는게 낫겠다 싶었을 뿐이다.
한수 : ......
도운 : 인사는 올리고 가거라
한수 : (일어나 불상에 절하려는데)
도운 : 큰스님께 말이다. 스님께선 나한테 부처이셨고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경이었다.
한수 : 저한텐 스님이 그랬습니다.(나가는데)
도운E : 나두!
한수 : (움찔한다)
도운E : 힘들다!
한수 : (눈을 질끈 감는다. 악다문 입. 부르르 떨리는 턱선. 나간다)
S#62. 석산방 (밤)
어둠. 누워 자는 듯한 석산.
조용히 들어오는 한수. 석산에게 절하고는 그냥 나가려다 아쉬운 듯 돌아선다.
한수 : 건강하세요 스님..
한수 그렇게 한참을 석산을 본다. 돌아선다.
한수의 다리를 잡는 손. 한수 놀라 돌아보면 석산이다.
석산 : 가시게?
한수 : 스님...
석산 : 내 어쩌다 정신이 돌아와도 차마 부끄러워 말을 못했어..
한수 : 스님께선 욕심이 이는대로 몸을 움직이고 마을을 써도 양심과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에 오르셨다 들었습니다.
석산 : 아니야... 손주놈 한번 제대로 안아주지 못했는 걸.
한수 : 스님 도란 무엇입니까?
석산 : 틀렸어.. 그렇게 묻는 게 아니야... 말로해서 될거면 공부는 뭐하러하누? 하기야 오늘 아니면 영영 못 듣겠다 생각했을 테니... 일러줄까?
한수 : (대답에 대한 기대감으로 눈빛이 번득인다.)
석산 : 나도 몰라..
한수 : (실망스런 표정으로 석산 본다.)
석산 : 헌데 달라진게 없구만.. 올 때 랑 똑같아.. 그저 먹이나 쫓는 맹수같단 말이지.. 지금 이 마당에 내말 한마디를 어디다 쓰시게? 지난 몇 년 허비한 시간하고 바꾸시게?
한수 : ......
석산 : 내 그러지 않았나.. 그저 세상 깨끗하게 보일때 까지만 머믈다 가라고.. 처음 보던 날 내 알고 있는건 다 일러 줬는데...
한수 : 스님...
석산 : 조심해 가시게..
S#63. 암자마당 (밤)
닫힌 문에 비친 도운의 좌정한 모습.
한수 법당 쪽을 향해 합장으로 인사하고는 길을 떠난다.
S#64. 산중 (밤)
빠르게 걷는 한수. 걷다가 넘어져 비탈을 구른다.
절벽인 듯한 곳으로 굴러 떨어지는 한수 손을 뻗어 나뭇가지를 잡는다.
올라 오려 안간힘을 쓰는 한수. 허공에서 허우적 대는 한수 발을 디딜 공간이 없다.
처절하게 발버둥치는 한수. 올라오려 애쓰지만 발을 붙힐 공간이 없다.
움직일수록 붙잡은 나뭇가지가 꺽이며 부러질 듯 소리를 낸다.
난감한 한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매달려 있다. 어디선가 들려 오는 환청
석산E : 버려라!
한수 : (떨어질세라 악착 같이 잡는다)
석산E : 놓아라!
한수 : (더 악착 같이 나뭇가지를 움켜쥔다)
S#65. 도운방 (밤)
도운 그래도 아쉬운 듯 한수가 떠난 자리를 본다. 책들... 원고뭉치들..
도운 가만히 원고를 펴 든다. ‘한국 선사상에 관한 소고’ ‘화엄의 의미’ 따위의 제목이 붙은 원고들.. 도운 가만히 본다.
한수E : 바둑이 대체 무슨 수행입니까? 낮잠을 와선이라 우긴다는 건 복상뼈가 썩도록 정진하는 이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한수E : 제 도는 흔들림 없는 부동심과 변함없는 평상심입니다.
도운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한수가 나민 원고와 책들 사이에서 치매에 관련된 책을 발견하는 도운..
책을 들여다 보면.. 여기저기 줄친 흔적들... 생각에 잠기는 도운..
S#66. 다시 산중.(밤)
서서히 밝아 오는 하늘..
멀리서 잡힌 한수의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바둥대는 모습. 지면과는 겨우 1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바둥대고 있다.
한수 땀에 젖은 몸.. 얼굴.. 탈진한 모습으로 날이 밝아옴을 느끼며 무심결에 밑을 본다. 낮다!
한수 허탈해 스르륵 힘이 빠지는지 손을 놓는다. 툭하고 떨어지는 한수.
자신이 밤새 매달려 있던 나뭇가지를 본다. 어이 없는 듯...
한수 머리에 무언가 확 하고 떠오르는 듯...
전면에 펼쳐진 경관 아름답다.
한수가 떨어진 그곳 일전에 지산과 같이 왔던 곳이다.
지산E :눈앞에 경치 하나도 감상 못하는 놈이 책을 만권을 읽으면 뭐하구 선을 백년을 하면 뭐하냐?
석산E : 내 그러지 않았나.. 그저 세상 깨끗하게 보일때 까지만 머믈다 가라고.. 처음 보던 날 내 알고 있는건 다 일러 줬는데...
석산E : 내가 나무다!
석산E : 내가 나무다!
석산E : 내가 나무다!
한수 표정 점점 환희로 바뀌며 풍경 하나 하나가 눈에 박힌다.
한수 바랑에서 원고뭉치를 꺼낸다. 한장 한장 찢어 날린다. 바람에 흩어지는 원고들..
한수 자신을 본다. 찢기고 다치고 엉망이다.
한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일어나 기듯... 걷듯.. 어디론가 간다.
S#67. 암자부엌
가마솥을 여는 손. 끓고 있는 물.. 담궈지는 소꼬리 내지는 족!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 한수.. 예의 그 고뇌에 찬 표정이 아니다.
도운E : (아무일 없었다는 듯) 왔니?
한수 :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있다.) 증말 마음에 안든다니까!
도운 : (보면)
한수 : 반갑지요?
도운 : 뭐가?
한수 : 안 올까봐 걱정하셨잖아요.
도운 : (원고 내밀며) 이거 가지러 왔니? 제법 잘 썻더구나!
한수 : 보셨어요? 쪽팔리게..(아궁이에 처 넣는다)
도운 : (솥을 가리키며) 뭐냐?
한수 : 곰탕이요.
도운 : 뭐? 뭐? 이놈이 미쳤나?
한수 : 삼십년 헛공부하셨네.. 도통하신 양반 육식 좀 하시기로서니 깨우친 도가 어디 간답니까?
도운 : (보면) 자시구 싶으시다 잖아여! 기력 돋우는덴 이게 최고랍니다!
도운 : (한방 먹었다!) 그래 나가보니 어떻드냐? 좋드나?
한수 : 여기나 거기나지요 뭐 아 거기 갔었어요
도운 : 거기?
한수 : 거기요
도운 : 거기! 좋드나?
한수 : 좋긴? 폼 잡다 얼어 죽는 줄 알았구만! 폼 잡기는 쉬운데.. 폼 나기는 어렵더라구요..
도운 : (말없이 보다. 호탕하게 한바탕 웃고는) 자만하지 마세요.. 큰스님께선 이미 반백년 전에 보신거고 나 역시 십수년 전에 본 겁니다.. 도가 한치면 마는 한자라 했으니.. 거기서부터 시작이지요. 마구니가 오면 마구니를 베고 부처가 오면 부처를 베라 했습니다.
한수 : (돌변한 도운의 말투에 놀란)스님....?
도운 : 한수 행자도 이제 한걸음 내딛으셨으니 그에 맞는 예우를 해드려야 하지 않겠소?
한수 : (좋긴 하지만 무언가 찜찜한데...) 아! 그런건가요?
도운 : 그렇긴 뭐가 그래 이 놈아! 하룻밤 새 닭이 꿩 된다더냐?
한수 : (도운 보고는 씩 웃는다)
S#68. 암자마당-몇개월 혹은 몇 년 후
석산 툇마루에 앉아 있고 철환 석산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한수 장작을 나르고 있다. 평화로움..
한수 석산을 보고는 다정하게 미소 짓는다. 정감어린 눈빛으로..
사내E : 계십니까?
한수 : (장작을 나르다 보면 긴 머리 승복차림의 젊은 사내다) 누구신지..?
사내 : (무릎을 꿇며) 채광열이라구 합니다. 세상 막 살다 싹 정리하구 깨닳음을 얻을 공부를 하고자 찾아 왔습니다. 깨닳음을 얻어 세상을 깨끗이 하고 싶습니다.
한수 : (보다) 여기 그냥 막 사는덴데...
사내 : (이산이 아닌가?) 예? 여기가 석산 큰스님과 도운스님이 기거하시는 암자가 맞나요?
한수 : 맞는데.. 스님.. 스님..
도운 : (나오며) 왜 그러시오
한수 : 누가 찾아 오셨는데요..
사내 : (도운 보고는 그대로 엎드리며) 스님! 깨닳음을 얻고자 합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도운 : (엎드린 사내를 보다) 중되게?
사내 : (상체 일으키며) 예?
도운 : (사내를 살피며) 이 시주는 스님보다 더하네.. 미리 승복까지 입었어..허 참! 옌날 생각 안 나시나?
한수 : 아 참 왜 또 철없을 때 얘긴 하고 그러세요..
사내 영문 몰라 하며 도운과 한수를 본다.
도운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고 한수 장작을 나른다.
한수 : (장작을 나르다 장난끼가 발동해) 저.. 예불문 아세요?
사내 : (아 드디어 시험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느낌으로) 네!
한수 : 초발심자경문은?
사내 : 외우고 있습니다.
한수 : 반야심경.. 부모은중경두?
사내 : 네.
한수 : 반야심경 한번 외워 보시지요!
사내 : 네!
사내 반야 심경을 암송한다.
아랑곳 않고 분주히 장작을 나르는 한수,
[ 도운E : (부엌에서) 스님 청운스님! 곰탕에 인삼 좀 넣지 마세요! 큰스님은 쓴거 안 좋아 하세요!
한수 : (장작 나르며)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답니다! ]
사내 영 뭔가 이상한지, 적응 못하고 갸우뚱, 두리번! 그러다 한수와 눈 마주치고 다 시험이겠거니 마음 다잡고 진지하게 독경한다. 그런 사내의 모습 왠지 우스꽝스럽다. 그 평화로운 풍경속에서..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