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놈과 귀신과 나] 박연선
1. 프롤로그1(제목: 지상최악, 강두섭)
강두섭의 얼굴. 점점 클로즈업 된다. 가까이 보면 볼수록 더욱 무섭다. 충혈된 눈에서는 살기가 뻗쳐나오는 듯, 웃는다기보다는 뒤틀린 입술에선 욕이 터져나올 듯...
마치 초사아이어인이 됐을 때, 손오공처럼 분노의 에너지가 붉은 오오라가 되어 이글거리고, 그럴 리 없겠지만, 머리카락 한올 한올이 의지를 갖고 꿈틀거리는 것 같다.
(김용수); 의뢰 넘버 17.강두섭!
아마 당신은 그의 이름을 모를 것이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사실 아주 적은 수의 사람만이 그에 대해 알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 모두는, 적이든, 동료든...그의 이름을 공포와 같은 의미로 이해했다.
----타이틀----
2. 프롤로그 2(제목:강두섭을 말하다)
첫 번째 인터뷰
-사우나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30대중후반-*슬램덩크 중 능남과의 시합전 이정환이 그런 것처럼)
사우나실의 남자: 강두섭?
그가 고개를 든다. 수건 사이로 씨익 웃는데 금이빨이 번쩍한다. 민간인 같지 않은 포스에 카메라가 주춤 물러서면 가슴팍의 현란한 용문신.
사우나실의 남자 : 그 새낀 인간이 아니야. 악마야 악마.
(인서트)
어둠 속 다구리 현장. 퍽퍽 소리. 비명소리. 시야를 가리며 휙 날라 온 강두섭이 잠깐 자기를 인식시키듯 카메라를 스윽 노려보고, 먹이를 찾아 다시 붕 날라 간다.
(사우나실의 남자): 그 놈 얼굴을 본적이 있나?
악마의 얼굴을 한 진짜 악마. 겉과 속이 똑같은 악마.
(사우나실)
사우나실의남자:(절레 절레 고개를 흔든다.공포와 경탄을 섞어) 어얼...강두섭. 강두섭...
*두번째 인터뷰
-아파트 베란다. 분재중인 70대 할아버지. 분재가위로 필요 없는 부분을 똑똑 자르며 카메라를 신경쓰지 않은 채 혼잣말하듯 인터뷰한다.
분재 할아버지; 내가 그쪽에 있었던게 보자... 52년인가. 쟁쟁한 사람들도 직접 봤지.
김두환, 임화수, 이정재....근데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건 강두섭이야.
그 놈의 그 눈빛...
(인서트)
다시 다구리현장. 어둠속에서 빛나는 강두섭의 살벌한 눈빛. 강두섭이 움직일 때마다 마치 야생 다큐멘터리속의 고양이과 동물이 그러는 것처럼 안광이 흐른다.
(분재 할아버지): 지금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처음 봤을 때, 내가 먼저 눈 돌렸어.
나는 서른 여섯살. 놈은 열 일곱살...나는 그때 조직을 갖고 있었고,
놈은 자리에 앉지도 못하는 새까만 똘마니였는데...
(아파트 베란다)
분재 할아버지: (장갑을 벗으면서)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내가 먼저 외면했다니까. 그 눈빛을 다 못 받아서...
분재 할아버지. 옛날을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는데... 새끼손가락이 없다.
-세 번째 인터뷰.
경찰서. 강력계형사(20대후반.남)가 조서를 꾸미다가 잠깐 인터뷰하는 식이다.
중간 중간 앞에 앉은 양아 쪼무라기(10대후반, 남)에게 호통을 친다.
형사: 직접 본적은 없어요. 소문만 줄기차게 들었지.
(갑자기 호통치는) 똑바로 안 앉지? 무릎위에 손!!!
(다시 인터뷰하는) 직접 아는 선배는 아니고 건너 건너 아는 선밴데, 강두섭 체포영장 받고, 사표 냈대요. 체포하러 가기 무섭다구.
쪼무래기:(끼어든다) 전설이죠. 폭신 강두섭.
형사: (물병으로 툭 치며) 닥쳐!!
(인서트)
다구리 현장. 거칠 것 없는 강두섭의 무용. 그는 힘과 기술을 겸비했다. 두 놈을 한꺼번에 처리하면, 눈앞에 남은 적이 없다. 강두섭이 짐승처럼 포효한다. 승자의 울부짖음!!
그때. 강두섭의 뒷통수를 강타하고 부러지는 각목.
(인서트)
-그순간 주먹을 불끈 쥐는 사우나실 남자
-자기도 모르게 중심 줄기를 잘라버린 분재 할아버지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대는 형사와 양아 쪼무라기
(인서트)
강두섭의 이마에 피가 주룩 흘러내린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얼굴의 굴곡을 따라 천천히 흐른다. 돌아선 강두섭이 괴물처럼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다가온다. 한걸음 두걸음.... 쫄아 붙은 카메라, 주춤 물러서는데......... 강두섭이 푹 쓰러진다.
(암전)
3. 병실(안/낮)
침대위의 강두섭은 치료를 위해 머리가 빡빡 깍였다. 간호사가 주사 놓을 준비를 한다.
순간. 강두섭이 예고없이 눈을 번쩍 뜬다. 주사기 끝을 살짝 눌러 공기를 빼던 간호사가 자기도 모르게 꾹 눌러버리고, 주사액이 찌익 솟구친다.
4. 병실앞 복도(안/낮)
복도를 점령한 강두섭의 부하 10여명, 강두섭의 오른팔, 김일주(30초반)를 포함, 모두가 여기저기 깨지고, 다치고, 찢긴 채 그대로다. 어젯밤의 험난한 흔적들을 지닌 채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의사가 나오자 바짝 긴장한다. 김일주가 의사에게 마주 다가간다.
의사: (희소식을 전하게 되어 다행스럽다) 방금 깨나셨습니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눈치보듯, 한템포 늦게 터져 나오는 열의없는 함성. ‘와’라기 보다는 ‘우’에 가깝다.
5. 성인 나이트클럽(안/밤)
문이 양쪽으로 열리면, 머리를 빡빡 깍은 강두섭이 우뚝 서 있다.
지배인: (90도로 인사하며) 퇴원을 축하드립니다.
지배인 뒤, 양쪽으로 나열해 있는 웨이터, 종업원. 여자들이 지배인을 따라 90도로 인사하다. 그 사이를 폼 나게 걸어오는 강두섭과 그의 부하들, 오늘 이곳은 강두섭을 위해 완전 임대되었다. 이후 보여지는 저질스럽고 폭력적인 그들의 파티
-무대위. 봉춤을 추는 스트리퍼의 아찔한 춤동작
-조폭스럽게 만들어지는 폭탄주
-강두섭의 얼굴에 대고 격렬하게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스트리퍼,
-강두섭이 그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 크하핫. 웃는다.
-맥주잔안에서 돌아가는 양주잔. 술잔에 회오리가 인다.
-똘마니1. 가슴털에 양주를 붓고, 불을 당기자 화르르 타오른다. 감탄하는 강두섭.
-강두섭을 비롯 전원 볼에 양주잔을 붙이고 있다. 강두섭이 양주잔을 손바닥으로 빙글 돌려 원샷후 뒤로 던지면, 파도타듯 그대로 따라하는 똘마니들, 그들 뒤에서 연거푸 깨지는 유리잔. (*롱키스 굿나잇의 지나 데이비스처럼)
-똘마니 네다섯명이 카라의 엉덩이춤을 춘다. 강두섭이 술을 뿜어낼정도로 좋아한다.
모두들 만취했다. 어지간한 강두섭도 고개를 가누지 못한다.
‘오브리’들이 블루스 곡을 연주한다. 비틀거리면서도 여자들을 끼고 앞으로 나오는 똘마니들, 무대위, 마이크를 잡은 중간 똘마니. 티셔츠를 둘둘 말아 올려 배꼽을 내놓은채 허리를 살랑 살랑 흔든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슬픈 인연’
‘멀어져가는 그 슬픈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여자를 양옆에 끼고, 고개를 뒤로 꺽은채 쉬고 있던 강두섭. 노래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든다. 강두섭이 비틀거리면서 무대로 향한다. 잔뜩 취한 똘마니들, 아무도 강두섭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 그저 여자의 엉덩이를 더듬고, 춤이랍시고 비틀거릴뿐,
마이크를 쥔 똘마니.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하이라이트를 열창중이다. ‘....다시 돌아 올거야.....그러나!!!!’ 그순간 뭔가 붕 날라오더니 노래가 뚝 끊긴다.
빈화면, 마이크가 바닥에 떨어지며 내는 굉음.
화장실에서 나오던 김일주, 무슨 일인지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무대위. 조명속에서 강두섭이 노래하던 똘마니를 무지막지하게 패고 있다.
김일주:(정신을 차리며) 말려. 자식들앗!!
김일주의 일갈에 정신을 차린. 똘마니들, 떼로 달려들어 간신히 강두섭을 떼어놓는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노래하던 똘마니. 강두섭은 네 다섯명이 달라붙었는데도 꿈틀거린다. 강두섭의 눈, 이성을 잃었다.
김일주:(강두섭 시야에 얼굴을 들이대며) 형님!!
강두섭이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실내를 둘러본다. 김일주, 바닥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똘마니. 무대 밑의 부하들, 공포에 떠는 웨이터, 어떤 여자는 무서워서 울기도 한다. 그리고 자기 주먹에 묻은 피.
강두섭: (낮게 으르렁대는) 놔!
김일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부하들이 경계하면서 강두섭의 팔을 놓는다.
강두섭이 스윽 훑어보더니 ‘쯧’하고 혀를 차고, 돌아서면, 홍해가 갈라지듯 길이 생긴다.
강두섭이 실내를 빠져나간다.
김일주:(강두섭이 나가는 걸 지켜보다가 똘마니에게) 왜 맞았냐?
똘마니:(부축을 받으며 일어나며. 울먹울먹) 언젠 뭐 씨이...이유가 있었어요?
6. 강두섭의 집 근처 공터(밖/밤)
재계발을 앞둔 지역, 왕복 2차선의 도로 양쪽으로 잔풀이 무성하다. 팻말...‘이곳은 주택공사에 의한 건축지로서 개인의 출입 및, 작물재배를 금합니다’ 팻말 밑에 쓰레기가 수북하다.
길 하나 건너 고층빌딩이 우거진 곳은 불야성을 이루는데. 허허 벌판인 이곳은 드문드문 가로등이 서 있을 뿐. 인적 없다.
쓰레기를 뒤지던 들고양이가 후다닥 도망가면, 저 멀리 강두섭이 비틀대며 걸어온다. 강두섭은 훼미리 마트 봉지를 손목에 걸고 있다. 봉투안에 물과 우유 같은 게 들어있다.
강두섭: (술먹은 사람이 그렇듯 가끔 한숨을 쉰다)새끼가 말이야.....후우....하필이면....
나쁜 새끼...후우....죽을라고....하고 많은 노래중에...후우....
(뭔가를 발견하고 멈추선다)..........?
좀 떨어진 곳, 도로 한가운데, 교복을 입은 여자애가 물끄러미 서 있다. 갑작스런 바람에 소녀의 단발머리와 치마가 나풀대다가 가라앉는다.
강두섭:(큰소리로) 야!! 너 뭐하냐?
소녀가 빙글 돌아본다. 설마, 자기에게 말을 건걸까? 확인하듯 주위를 둘러본다.
강두섭; 죽고 싶냐? 후우... 저 쪽에 차 많이 다니는데 있거든, 걸루 가. 거기가 좋아.
후우.....(중얼대며 돌아선다) 아주...골고루 한다. 젠장할....
공터사이로 난 샛길. 길 끝에 거짓말처럼 단독주택이 외똑 서 있다.
멀어지는 강두섭을 보며 교복 소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소녀 머리의 빨간색 리본이 어둠 속에서 유난히 붉다.
7. 강두섭의 집 방(안/낮)
어둑 어둑한 실내. 트렁크팬티와 런닝셔츠만 입은 강두섭이 아기처럼 웅크린채 자고 있다. 잠든 모습 만큼은........아니다. 잠든 얼굴도 무섭다. 목이 말라 깬 강두섭, 밖으로 나간다.
8. 강두섭의 집 거실(안/낮)
현관에서부터 벗어던진 겉옷들을 밟으며 강두섭이 부엌으로 간다. 부엌에 냉장고 하나가 있을뿐, 살림의 흔적은 없다. 냉장고 안, 어젯밤 편의점 봉투째 집어넣은 듯, 그 안에서 물을 꺼내 병째로 들이키며 돌아서다가 강두섭이 ‘푸우’ 물을 뿜는다.
거실 소파, 어젯밤의 그 교복 소녀가 단정하게 앉아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채 강두섭을 빤히 쳐다본다.
역시 강두섭, 재빨리 경계태세를 갖추며 실내를 훑는다. 숙박업소에서나 쓸것같은 두꺼운 커텐 때문에 시간과 상관없이 어두운 실내. 소녀 이외에 다른 사람은 없다.
강두섭:(소녀를 경계하며 화장실을 확인한뒤) 너 뭐야? 어떻게 들어왔어?
소녀는 유리알같은 눈으로 강두섭을 볼뿐...
강두섭이 현관문을 바라본다. 함부로 벗어놓은 구두 때문에 현관문이 닫히다 말았다.
강두섭: 젠장할!!
(긴장을 풀며) 너 여기가 누구 집인지 알고 온거냐?
교복소녀:(빤히 쳐다 볼 뿐)....
강두섭: 뭘봐 지지배야? 웃긴 년이네. 문 열렸다고 아무 집에나 들어오냐?
너 도둑이야? 도둑이면 도둑답게 어. 아무거나 훔쳐갖고 나가던가.
교복소녀:(말이 길어지자 시선을 돌리는데)....
강두섭:(발로 소파를 퍽 걷어찬다)이게...
교복소녀: (소파에서 내려와 반대쪽으로 간다. 우아하고 가벼운 몸놀림)....
강두섭: (소녀를 째려보며 낮게 으르렁대듯) 상황파악이 안되지 지금?
교복소녀가 강두섭을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지능이 없어 보이는 눈동자!!
강두섭: (그제서야 눈치챈다) 아....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너...문제있냐?
교복소녀:.......
강두섭: 너 이름 뭐야?
교복소녀:(못들은 것처럼 외면한다)...
강두섭: 어이...
(교복소녀를 물끄러미 보다가 쯧쯧 혀를 찬다.소녀를 현관 쪽으로 몰아내며)
어쩌다 그렇게 됐냐...얼굴은 이쁘장한게...하긴 못생긴 애만 그렇게 되라는
법은 없다만...
(타이른다) 집에 가. 응...여긴 니네 집 아니야.
교복소녀: (뒷걸음질쳐 현관까지 밀려난다)...
강두섭: (현관문을 열어주며) 얼른 가. 니 엄마가 찾는다. 집에 가아....
소녀가 밖으로 나간다. 문에 걸려있던 구두를 툭 차서 안으로 밀어넣은 후 돌아서는 강두섭. 강두섭이 한쪽 벽면을 가린 커텐을 확 젖힌다. 한꺼번에 쏟아진 햇빛!! 강두섭이 순간적으로 눈을 가늘게 뜬다. 창밖은 공터다. 강두섭이 창문을 열고 ‘으드드드드’ 온몸이 늘어날것처럼 기지개를 켠다. 돌아서는 강두섭. 어이없다.
교복소녀는 어느새 거실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강두섭:(짜증난다) 어이!! 아무리 미쳤다고 그렇게 상황파악이 안 되냐? 어?
교복소녀:(쳐다볼뿐)...
강두섭: 쳐다보긴... 확 그냥, 눈구녕을...
(위협적으로 다가간다) 말로 해선 안 듣겠다 이거지? 난 애고 여자고 안가리거든.
(손을 치켜든다) 이걸 그냥...확
교복소녀를 후려칠 것 같던 강두섭이 멈춰선다. 살림살이 없는 거실 바닥은 도화지처럼 그림자를 선명하게 비춰내는데... 강두섭 발에서 뻗어나간 그림자가 소녀의 발밑에 닿았다. 그런데....강두섭이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그림자가 소녀의 발에서 떨어지는데. 소녀에겐 그림자가 없다. 엉거주춤 손을 든 자신의 그림자, 바람에 흔들리는 커텐 다른 그림자들은 선명한데 여학생에게만 그림자가 없다.
강두섭이 소녀를 쳐다본다. ‘그림자가 없는 소녀’ 강두섭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강두섭이 손가락으로 소녀를 찔러보려다가.... 생각을 바꾼다. 텔레비전 옆에 굴러다니는 볼펜을 집어든다. 그 사이에도 시선은 소녀에게 못박혀있다.
볼펜을 쥔손.소녀.볼펜, 소녀...... 강두섭이 볼펜으로 여학생의 팔뚝을 푹 찌른다. 볼펜은 허공을 찌른 듯 느낌없이 쑥 들어가고, 강두섭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는다.
그때 생각나는 어젯밤의 기억
(인서트)
도로 한복판에 서 있던 교복 소녀
강두섭이 밖으로 뛰쳐나간다.
9. 강두섭의 집 앞(밖/낮)
귀신이 나타나기엔 턱없이 좋은 날씨. 강두섭이 뛰쳐나오더니 도로쪽을 향해 뛴다.
10. 공터 도로(밖/낮)
강두섭이 뛰어와 도로 한가운데 선다. 어제 교복 소녀를 본 곳이다.
강두섭이 기대하는건 하얀 분필선.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
어느새 쫓아왔는지. 교복 소녀는 강두섭이 하는 꼴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강두섭: (살짝 패닉상태다.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왜 없지? 여기가 맞는데. 저쪽인가?
어제 여기 어디서 사고가 난 거야. 그 귀신이 나한테 붙은 거고
(길가의 소녀를 힐끔 쳐다본다) 근데 왜 나한테 붙은 거냐? 내가 널 죽였냐?
아니잖아. 원하는 게 뭔데? 시체를 잃어버렸어? 그거 찾아줘?
그때. 빵하는 경적음. 차안의 남녀가 ‘속옷차림의 강두섭’을 어이없이 쳐다본다.
차안의 여자,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분명히 ‘변탠가봐’라고 말하고 있다.
그제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강두섭, 쪽팔림을 감추기 위해 무섭게 인상쓴다. 차를 쫓아보낸 강두섭, 어쩔수 없이 집으로 향해간다. 교복 소녀가 체중이 느껴지지 않는 우아한 걸음걸이로 그 뒤를 쫓아간다.
강두섭:(홱 돌아보며) 왜 따라와?
교복소녀:(강두섭을 외면하며 손등으로 뺨을 닦아낸다)...
믿지 못할 상황앞에 선 강두섭.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다.
바람이 공터 잡풀들을 눕히고. 쓰레기를 날리고, 강두섭의 런닝셔츠를 흔든다.
11. 오래된 상가앞(밖/낮)
5층. 혹은 6층쯤. 간판이 두서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오래된 상가.
‘어디가서 살란 말이냐, 나쁜 놈들아’‘대책없는 재계발 결사 반대’같은 현수막이 붙어있다.
술 취한 손님들이 2차를 가려다가 술집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인상 사나운 조폭들을 보고, 그냥 돌아가 버린다.
킬킬대는 놈들 앞에 차가 멈춘다.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주는 부하들,
강두섭이 차에서 내려 쓰윽 훑어본다. 그 얼굴에다 대고.
(김용수): (중얼거리는)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런 놈 안잡아가고...
12. 4층 보습학원-일명, 재계발 반대 대책회의장(안/낮)
김용수가 창밖, 강두섭 일행을 보고 있다.
이곳은, 상가 재계발 반대 회의중이다. 20여명의 상가주민들이 모여있다.
정육점 주인인 위원장(40대.남)은 타고난 연설가다. 사자후를 내뿜는 중이다.
듣는둥 마는둥 김용수는 나눠준 A4용지의 글자 ‘O'마다 색칠하던 걸 계속한다.
(위원장): 말씀드렸다시피 우선 4개 시민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고,
언론사에도 이 상황을 제보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돕기 위해서는 우리가 뭔가 보여줘야 합니다. 누구는 이사간다 도장 찍고, 누구는 남의 일처럼 뒷짐
지고....그러면 될 것도 안됩니다.
젊은 남자 두명이 들어와 비닐봉지에서 우유와 빵을 꺼내 나눠준다.
(위원장):다같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가진게 없습니다. 더 잃을게
없습니다. 이 목숨, 이거 하납니다. 이거 아끼느라고 쫓겨나면 우리가 살수
있습니까?
박수가 터진다.
김용수;(작은 소리로) 저기요
청년:(박수치다가 돌아본다)....
김용수: 초코 우유는 없나요?
13. 3층 복도(안/낮)
철거위기에 놓인 상가답게 복도는 어둑침침하고 지저분하다. 문 앞에 내놓은 말라죽은 화분에 과자봉지가 버려져 있다. 김용수가 벽이나 전봇대에서 떼온 종이를 훑어 보며 들어온다.
김용수; (강아지를 찾습니다 맨끝을 보며) 강아지가 50만원.
(치매할머니를 찾습니다 맨끝에는) 할머니...후사...이건 안 찾겠다는 뜻인가요....
김용수가 흥신소 안으로 들어간다. 흥신소 창문에 ‘어떤 돈이든 받아드립니다’ ‘어떤 놈이든 찾아드립니다’ ‘어떤 일이든 해결해드립니다’라는 셀로판지를 오려붙인 광고문구가 보인다.
14. 흥신소 사무실(안/낮)
안으로 들어온 김용수가 곧바로 책상 쪽으로 간다. 수집해온 전단지를 파일에 정리하다가 문득 홱 돌아본다. 소파에 앉아있는 강두섭.
김용수;(간 떨어질뻔 했다) 아....아.....
강두섭:(지긋이 쳐다볼뿐).....
김용수:어쩐일루....?
(어느새 배꼽에 두 손을 모으며) 저는 때 되면 이사 갈거거든요
강두섭: 그래?
김용수;(고개를 끄덕인다)예....
강두섭: .......좀 앉지.
김용수:(자기 사무실인데도) 예. ...고맙습니다.
강두섭,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하나? 침묵이 계속된다. 이 상황이 못마땅한 강두섭이 ‘쯧’하고 혀를 차면 김용수가 움찔한다.
강두섭: (불쑥)... 종교 있나?
김용수:(고개를 흔든다)아니요
강두섭:귀신은.....
(눈만 치켜떠 슬쩍 눈치보며) 귀신은 있다고 믿나?
김용수; (침을 꿀꺽 삼킨다) ......예
(김용수):(강두섭을 보며) 악마가 있으니까요.
강두섭;(협박하듯 깊숙이 노려보며)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너하고 나만아는 얘기다.
김용수:......예? 예.....
강두섭: 만약 다른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너하고 나 둘중에
하나가 나불대고 다녔다는 뜻이지.
강두섭: 잘들어!
강두섭:....나한테
강두섭: 나한테 말이다.
강두섭: 귀신이 달라 붙었다.
김용수:(자기도 모르게) 예?
강두섭:(옆을 보며) 어딜 가나 쫄쫄 따라다니는데 아주 돌아버릴 지경이다.
강두섭의 시선 끝, 교복소녀가 어항속의 물고기에게 푹 빠져있다.
김용수가 강두섭을 따라 시선을 돌리지만 그냥 어항이 있을뿐이다.
김용수:(강두섭을 본다)....?
강두섭: 너 지금 ‘저게 미쳤나’라고 생각했지?
(김용수): (고개를 흔들지만)용하십니다.
강두섭:(위협적으로 혀를 쯧 찬다)...
김용수: 저기 그런거라면....집을 잘못 찾으신 것 같은데...그런건 저 앞집이 전문이거든요.
아란샤라고...
강두섭: 운명을 보는 자?
김용수: (고개를 끄덕인다)...
강두섭: 갔었어. 어저께....
15. 아란샤(안/밤 or 낮)
아란샤:(모호한 눈빛으로) 무거운걸 짋어지고 다니네
집시풍의 이국적인 공간.
초자연적인 포스를 풍기는 아란샤 앞. 강두섭이 앉아있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긴장했다.
강두섭;(‘요’자는 짧아서 묵음과 비슷하게) 뭐가...보여요?
아란샤;(같잖다는 듯 픽 웃으며) ...어디서 그런 걸 묻혀 온거야?
강두섭,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본다. 교복소녀가 강두섭의 등 뒤에서 서서 구슬주렴을 흔들어본다. 보이지 않는 사람 눈엔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다.
아란샤: (강두섭 뒤쪽을 보면서 혼잣말하듯) 아니지. 그쪽에서 찾아온 거네. 안그래?
강두섭:(점점 말린다)....
아란샤:쯧쯧....뭔 짓을 한건지...
(갑자기 강두섭 앞으로 쓱 얼굴을 들이밀면서) 자기가 죽였어?
강두섭:(움찔한다)...
아란샤: (다시 원 위치) 직접 손을 대지 않았을 뿐, 자기 땜에 죽은 건 맞아.
강두섭: (가오가 상하지 않는 선에서) 그럼...어떻게?
아란샤; 아주 독한 놈이야.
강두섭:(놈?)........?
아란샤: 살았을 때 독한 놈은 죽어서도 독하거든. 뭐 자기랑 똑같은 놈한테 걸렸다고
보면 돼.
강두섭: (의심이 싹튼다)....그놈이 어떻게 생겼...죠?
아란샤:(아무렇지도 않게) 알면서 왜 물어? 지금 떠오르는 얼굴 있지? 그 얼굴이야.
강두섭: 혹시...짧은 머리에 키는 180정도...어깨가.......
아란샤: (눈동자를 흐릿하게 해서 강두섭 뒤를 보면서) 어깨가 딱 벌어지고...
강두섭: (눈치 챘다) 굽었을 텐데에...?
아란샤: (자세히 보듯 몸을 내밀면서) 아아...그런가.
강두섭:(테이블을 뒤집어엎으며) 그렇긴 뭐가 그래?
이후 보여지는 강두섭의 난동컷
-천장에 걸린 것들을 확 뜯어내는 강두섭
-깨지는 거울.
-공중에 흩어지는 타로카드.
-책상위의 것들을 확 쓰러내면. 뚝 떨어지는 전화기...생뚱맞은 전화 연결음.
기계소리: 운명을 보는 자 아란샤...삐 소리가 나면....
16. 흥신소 사무실(안/낮)
강두섭:보긴 개뿔....
김용수:(회의 때의 일을 이해한다)아...
(인서트)
멍든 얼굴의 아란샤가 단상에 서 있다.
대책위원장:(아란샤의 얼굴을 가리키며) 보십시오. 놈들이 결국 폭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란샤:(슬픈 얼굴로 고개를 흔든다)...
대책위원장: (비분강개) 이런데도 놈들 말을 믿고 기다리잔 겁니까?
-다시흥신소 사무실
김용수: 그럼...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는데요?
강두섭: 누군지 알아내?
김용수: 예?
강두섭: 저 고삐리 년도 한때는 사람이었을 거 아냐?
(김용수): (강두섭이 가리키는 곳을 보며 일르듯) ‘년’이래요.
강두섭: (유리창의 문구 ‘어떤 놈이든 찾아드립니다’를 보며) 찾아낸다며. 찾아내.
김용수: 아니요 그게...저랑 형님은 일단 적대 관계인데다가...
강두섭: 이사간다며?
김용수: 예. 그건 그런데요....그게 그러니까...
(생각났다) 그런 거라면 밑에 말 잘 듣는 형님들 많잖아요.
강두섭: 지금 나보고 내가 귀신 쒸었다고 말하라구? 쫄따구들한테...이 새끼가...
그놈들이 날 존경해서 따르는 줄 아냐? 무서우니까 따라다니는거야.
적보다 더 조심해야할건 쫄따구들이라구...
김용수:(잠깐 놓았던 긴장을 되찾는다)...예
강두섭: (무섭게 노려보며) 강두섭이 귀신을 본다더라....그 비슷한 소문이라도 나는 순간, 너도 저년 옆에 서 있을 각오해.
(김용수):(강두섭의 손가락쪽을 보면서) 또 년이라는데요.
김용수:(수첩을 꺼내며) 그럼 그...귀신의 인상착의를 좀...전에 알던 사람이 아니예요?
강두섭: 알면 내가 여기까지 왜 왔냐? 내가 찾지 븅...
김용수: (기분상하지만) 특별한 행동이나, 저주의 말... 이런거는요?
강두섭:(보면서) 없어. 그냥 강아지처럼 쫄쫄 따라다니다기만 하는데...그게 아주
돌아버리신다.내가...
김용수:이상하네....전설의 고향에선 안그러던데...그냥 좀 있어 보는 건 어때요?
갑자기 왔으니까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르고.
강두섭; 너 누가 옆에 있는데 똥이 나오냐?
김용수:...?
강두섭: 아무리 귀신이래도 고삐리가 쳐다보는데 여자랑 할 수 있겠냐?
김용수:....
강두섭: 게다가 제일 열 받는 건....
17. 호텔 룸(안/낮)
긴 소파에 마주앉은 강두섭 패거리와 상대 조폭 패거리.
강두섭은 상대편 두목과, 그 옆 김일주는 상대쪽 넘버2와 넘버3까지....마주앉아 살벌하게 눈싸움중이다. 제일 안쪽, 양팀의 변호사가 계약서 상황을 체크한다.
그때. 심심해진 교복 소녀가 상대편 보스위에 앉는다. 강두섭 움찔하지만 참아낸다.
보스위에 앉은 교복 소녀...보스 몸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빨간 리본만 남아 마치 상대팀 보스가 빨간 리본을 한 것 같다. 강두섭,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외면한다.
빨간 리본을 단 상대팀 보스는 이겼다 싶은 득의 양양한 미소,
김일주를 비롯, 부하들이 실망스런 얼굴로 돌아본다.
19. 흥신소 사무실(안/낮)
강두섭: 조폭은 연예인이랑 비슷해. 이미지 장사거든. 한번 약점 잡히잖아.
한방에 훅 가는 거야. 알겠냐?
김용수: (일단 긍정해준다) 예......
강두섭:(핸드폰이 울린다. 받는다) 어...어...잠깐만...
(소파에서 일어나면서) 어떻게 찾을건지 생각해 놔.
(나가면서 핸드폰에 대고) 어...어디라구?
김용수, 허리꺽어 인사한다. 강두섭이 나가면 주섬 주섬 뭔가를 찾는다. 맛소금... 왕소금이 없어 아쉬운대로 맛소금을 문에다가 뿌리며 한숨을 푹 쉰다.
20. 김용수의 차(밖/낮)
내비 ‘좌회전하십시오’
훼미리마트를 보며 좌회전하면 공터 사이의 길이 나온다. 내비 ‘경로를 재 탐색합니다’
김용수: (내비에게) 왜에? 하라는 대로 했잖아....
내비는 자꾸 경로를 재탐색한다고 하고, 김용수는 표지판을 보기 위해 두리번대다가, 도로에 널브러진 강아진지. 고양인지 짐승의 시체를 발견한다. 가까스로 피하는 김용수.
김용수:(입모양만으로) 퉤퉤퉤! 나무아미타불....
(룸미러를 보다가) 몇마리째야....이런데서 사니까 귀신이 들러붙지...
하는데, 저앞에 집이 보인다.
21. 강두섭의 집 바깥마루(밖/낮)
햇빛 좋은 툇마루. 편한 옷차림의 강두섭이 앉아 있다. 김용수가 차에서 내린다.
강두섭: (못마땅하다) 몇시냐? 지금이
김용수;(툴툴) 아니...내비도 헷갈리는데를 당장 튀어 오라고 하면 저도...
강두섭:(쯧....혀를 찬다)...
김용수: (급 사과) 죄송합니다.
강두섭: ....
김용수:(조심스럽게 화제를 바꾼다)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귀신이 형님한테 나타났다는건,
둘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뜻이잖아요.
강두섭: 난 모르는 년이라니까
김용수: 형님은 몰라도 그 년은....(아차싶다, 허공을 향해 잠깐 합장한다)...
강두섭:(킬킬대며) 븅...이쪽이다.
김용수:(기분 상했다) 형님은 몰라도 그쪽은 형님을 아니까 나타났겠죠. 안그래요?
강두섭: 일일이 물어보지 말고, 쭉 씨부려봐,
김용수: 이제까지 만난 사람 중에 여고생을 기억해 보세요.
강두섭: 내 인생에 여고생이 어딨냐?
김용수: (툴툴댄다)왜 없어요? 원조 교제도 있고....
강두섭:(쳐다본다)...
김용수: (아차 싶지만 아무렇지도 않게)....제 농담이 좀 서툴죠?
강두섭:(지긋이 노려보며) 전에 내 똘마니 중에 너랑 똑같이 깐죽대던 놈이 있었는데.....
김용수: 어떻게 됐는데요. 그분은...
강두섭:(씨익 웃으며) 있.었.는.데....
명백한 과거형...김용수는 다음 말을 못 잊고. 아까부터 들리던 개짖는 소리만이 극악스러워진다. 마당에 선 교복 소녀가 개 짖는 쪽을 쳐다본다.
강두섭:(김용수를 노려본채로 일어나며) 잠깐 기다려라. 저놈의 개새끼부터 손봐주고...
강두섭은 공터쪽으로 걸어가고, 그 뒤 김용수는 혼이 반쯤 빠져나간 느낌이다.
22. 공터(밖/낮)
버려진 하수구 통 안을 향해 짖어대는 들개. 교복소녀가 먼저 온다.
들개가 돌아본다. 교복소녀 뒤에 강두섭이 성큼 섬큼 다가온다. 들개가 으르렁댄다.
강두섭:(열받았다) 어쭈...이런 개새끼가....
강두섭이 인상을 팍 쓰며 무기가 될만한 걸 집어들자, 들개가 슬금 슬금 물러난다.
강두섭이 ‘쯧’혀를 차고 돌아서려는데... 하수구 통 안에서 들리는 나약한 소리.
고개숙여 들여다보면 새끼고양이 세 마리가 복작거리고 있다. 새끼 고양이 따위에게 관심이 없다. 강두섭이 일어난다. 교복 소녀는 쭈그리고 앉아 새끼고양이를 본다.
강두섭;(교복소녀를 내려다보면서) 여자라....
(인서트)
한순간, 밤무대 여가수의 얼굴이 스친다.
강두섭:(그 기억을 부정하듯 집을 향해 걸으면서) 여자라...
23. 강두섭의 여자 몽타쥬
*공터 사잇길을 걷는 강두섭 눈앞을 지금까지 만난 여자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술집 여자. 술집여자. 거짓으로 웃으며 술 따르는 여자, 주저앉아 악을 쓰는 여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여자. 겁에 질린 여자. 경멸하며 몰래 돌아보는 여자. 멍든 얼굴을 가리고 우는 여자, 반항하는 여자, 여자.여자. 여자. 여자들 얼굴 점점 빨리 지나가는데...
(인서트)
강두섭이 멈춰선다.
-필름돌아가듯 스쳐가던 여자들의 영상이 멈춘다.
(인서트)
강두섭이 뒤를 돌아본다.
툇마루에 앉은 김용수가 ‘저 인간 또 왜 저러나’ 쳐다보는게 구석에 얼핏 보인다.
-필름이 뒤로 몇칸 돌아가다 멈춘다.
여고생이 있다. 단발머리 여고생.
24. 경찰서(안/낮)
자막 ‘1년 5개월 전’
강두섭과 김일주가 조사를 받고 있다. 형사(40대후반.남)앞에 앉은 김일주는 화를 내는 중이고, 그 뒤에 강두섭은 남의 일 구경하듯 느긋하게 앉아있다.
김일주: 그래서 우리 죄가 뭡니까? 돈 꿔주고 갚으라고 전화 몇통 한게 그게 죕니까?
뭘 잘못했다고 우리 회장님까지 오라 가라....
형사: (강두섭 때문에 참는다) 거참...사람이 몇 명이나 죽었는데 협조 좀 합시다.
김일주: 죽으면 다 착한 놈이구, 다 피해자요? 돈 빌려쓸땐 내 돈처럼 갔다 쓰다가 갚을 때되니까 이 핑계 저 핑계.돈 갚기 싫어서 죽어나빠진 놈이 왜 피해자냐구...?
진짜 피해자는 우리잖아요. 꿔준 돈 누가 갚을건데...
형사:(참다 참다) 그렇게 억울하면 살아남은 사람한테 받던가...
(슬쩍 강두섭 뒤쪽을 본다)
묘한 공기를 느끼고 강두섭이 돌아본다.
여고생...단정한 여고생이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눈은 뜨고 있지만 의식이 없는 듯. 여경이 끌면 끄는대로 움직인다. 여고생의 공허한 눈동자가 허공에서 흩어진다. 그 얼굴 스틸.
25. 자판기 앞(밖/밤)
여고생의 얼굴에서 디졸브 되면,
요란한 머리. 요란한 피어싱. 눈썹까지 염색한 여자아이...(전씬의 여고생과 같은 인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수 없지만, 한부분, 예를 들면 뒤집힌 입술이라든가, 덧니라든가,...한부분이 닮았다) 똑같이 불량한 남자애들 세 명과 함께 있다.
(김용수): 조영인. 1년 5개월 전 사채빚에 시달리던 부모가 동생을 데리고 동반 자살.
그 사고 후 보호자는 경기도 구리시에 사는 삼촌부부로 되어있는데.
집에 안들어온지 반년이 넘었답니다.
남자아이가 야구 방망이를 건네주자 조영인이 자판기 돈 나오는 곳을 향해 풀 스윙을 한다.
와르르 동전이 떨어진다.
(점프)
-돈을 쓸어 담는 조영인과 남자아이들.
-오토바이에 나눠타고 달아난다.
(*낄낄대고 장난치는 그들, 절박하다기보다는 놀이에 가깝다)
26. 한강 어느 다리밑(밖/밤)
불량청소년들의 아지트. 부탄가스통. 소주병, 맥주캔이 굴러다닌다.
강두섭은 벤치에 앉아있고, 김용수는 주위를 살펴본다.
김용수: 순식간에 가족을 잃고 혼자 남았다....
(강두섭 눈치를 슬쩍 보며)원한이라면 차고 넘치겠지만 일단 살아있는데 귀신이
될순 없잖아요?
강두섭: .....
김용수: 뭐 만화책에서 보면 생령이라는 게 있다지만 그건...
강두섭: (불쑥) 동생이 있잖아. 연년생 여동생...
김용수: (수첩을 확인한다) ...아.
강두섭: 순 날강도 같은 놈. 일은 그 따위로 하면서 남의 돈을 받아 쳐먹으니...
김용수:(입으로만 궁시렁거린다)...
강두섭: (위협적으로) 뭐어?
김용수:(공손하게) 저기 온다구요.
몇 대의 오토바이가 잇따라 들어온다. (조영은이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불가능하다면 뒤에 탈수도)
강탈한 돈으로 소주와 맥주, 안주거리를 사온 녀석들, 지들끼리 낄낄대며 들어오다가 강두섭과 김용수를 발견한다. 노골적으로 싫은 얼굴들,
놈1: (들으라는 듯) 뭐냐? 저 늙수구레들은?
강두섭이 버티고 선다. 김용수는 언제라도 도망가려고 무게중심을 뒤에 둔다.
조영은만이 ‘이 남자의 포스’를 느껴 주춤할 뿐, 남자아이들은 건들거리며 강두섭 앞으로 다가온다. 한놈이 가래침을 강두섭의 구두를 향해 뱉는 순간, 강두섭의 다리가 허공을 가른다.
(점프)
벤치위에 나란히 무릎 꿇고 앉아 손들고 있는 남자 아이들,
그들과 떨어진 곳, 조영은은 벤치다리에 기댄 채 땅바닥에 앉아있고. 김용수는 맞은편 벤치에 앉았다. 강두섭은 좀 떨어진 곳에 서 있다. (*조영은은 바지위에 치마를 입었고, 다리를 오므려 앉지는 않았다) 조영은은 김용수와 이야기를 하지만, 강두섭을 신경쓴다. 강두섭은 ‘교복소녀’를 지켜본다. 교복 소녀는 마치 냄새를 맡듯 조영은 가까이에 있다.
조영은:(틱틱대듯) 그런게 왜 궁금하실까?
김용수: 그냥 그런 쪽 일에 대해 책을 써볼까 하고....
조영은: 불행담 수집가?
(벌서는 아이중 하나를 가리키며) 그거라면 저기 가운데, 머리에 폭탄맞은 애가
최곤데...엄마는 다른 남자랑 야반도주, 아빠는 알콜릭. 폐지 모아 용돈주던
할머니는 교통사고로 반신불수...
김용수: 그쪽은 됐고...내가 관심있는 건 영은학생쪽이거든...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영은학생 그때 기분이라든가...
조영은이 고개를 푹 숙인다. 우는걸까?
김용수가 강두섭 눈치를 본다. 어떡하냐는 듯...강두섭은 못보척한다.
김용수:(할수없이 달래듯) 뭐. 기억하기 싫은 건 아는데... 그럴수록 자꾸 이야기하는게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하니까...
조영은:(고개를 번쩍 든다. 말짱한 얼굴로) 얼마 줄래요?
김용수:(듣긴 들었지만) 응...?
조영은: 내 불행에 얼마 줄 건데?
김용수:(당황스럽다. 지갑을 꺼내면서) 어...얼마면 될까?
조영은:(김용수 지갑을 낚아채 만원짜리를 모두 챙긴다)....
김용수:(강두섭을 보지만)....
강두섭;(괜히 남자아이들한테) 소온!!
남자아이들, 손을 번쩍 든다.
조영은: (시큰둥하게) 별거 없어요. 도서관에서 밤새고 있는데, 삼촌이 데릴러 왔더라구.
죽기전에 예약문자라는걸 보냈대. ‘영은이를 부탁한다’...글자 하나 찍는데 1분인
둔탱이가...
김용수: 학생한테는 뭐 남긴 말 같은거 없었어?
조영은: 유서? 있었죠. 구구절절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완전 신파.
‘못난 부모를 용서해라. 무슨 일이 있어도 넌 살아라...’ (비웃는다) 흥...
김용수: (진짜 궁금한건 이쪽이다) 동생은 뭐 남긴 말 없었어.
조영은: 하은이가...? (뭐가 우스운지 킥킥 웃는다)
김용수: 근데 말이야, 왜 부모님은 동생만 데리고...저기...그렇게 했을까?
조영은: 왜 동생만 데리고 죽었냐구? 나는 사는 게 낫고, 걔는 죽는게 낫다고 생각했나
부지 뭐. 자기들 멋대로...
김용수:(강두섭을 본다. 어떡하냐는 듯)...
강두섭: (팁을 주듯 툭)사진...
김용수: (그제서야) 혹시 가족 사진 있나?
조영은: (실실대던 태도 버리고 김용수를 깊숙이 보면서)....진짜 알고 싶은게 뭐야?
(강두섭을 보면서) 아저씨. 조폭이죠?
김용수:......
조영은: 우리집에 왔던 그 조폭?
강두섭:(생각하다가)... 내가 그 두목이야.
조영은:(순간 눈빛이 빛나지만 감추듯 고개를 돌린다) 어쩐지...
근데요? 빚 갚으라구요? 때려 죽어도 못갚아요.
강두섭: 동생 사진 있지. 그거 내놔 봐,
조영은: 없어요.
강두섭: (거짓말 말라는 듯 쳐다본다)....
조영은: 진짜예요. 없어요. 한 장도.
강두섭:(조영은이 진심을 말하는걸까)....?
조영은: (툭툭 털고 일어나더니 강두섭 앞에 선다) 근데 내 동생은 왜요?
조영은 뒤에서 교복소녀도 강두섭을 빤히 쳐다본다.
강두섭, 두 소녀를 번갈아보다가...
강두섭: 내가......아는 귀신이 하나 있는데 혹시 네 동생인가 확인 좀 할려고.
조영은:(강두섭을 깊숙이 쳐다본다)....
강두섭: 그러니까 네 동생이 어떻게 생겼는지 읊어봐.
조영은과 강두섭의 눈싸움. 그런데 갑자기 조영은이 온몸을 비비 튼다. 지체 장애자처럼....
김용수도 강두섭도 깜짝 놀란다.
조영은:(시작할 때처럼 갑자기 멈추더니) 그 귀신...이러고 있어요?
강두섭:뭐....?
조영은: 아니면 내 동생 아니예요.
강두섭:(조영은의 동생이 지체장애자였다는걸 알아챈다)....
조영은:가도 되죠?
(돌아서더니 남자아이들에게) 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건데...
남자아이들, 눈치보며 슬금 슬금 일어선다. 다리가 저려서 절뚝거리며 도망간다.
29. 공원(밖/밤)
강두섭과 김용수가 걸어온다. 둘다 말이 없다.
꼬마가 오줌싸는 동상 분수앞을 지난다. 김용수가 강두섭 뒤를 따라오며 나불거린다.
김용수: (혼잣말하듯) 그래서 ‘제약회사 연구원’이었구나.
강두섭:(무서운 얼굴로 걸을뿐)....
김용수: 학생기록부에 있더라구요... 장래희망, 제약회사 연구원!! 엄청 구체적이구나
싶었는데...
강두섭:........
김용수: 아까 걔들...본드도 부는 거 같죠? 아직도 본드 부는 애들이 있다니...복고풍인가.
강두섭:........
김용수:본드 많이 불면 뇌에 구멍이 뻥뻥 뚫린다는데... 인생 참 깝깝하죠...
강두섭:(홱 돌아서며 버럭) 그래서 뭐?
그 소리에 놀랐는지. 오줌싸는 동상이 오줌발이 뚝 끊긴다.
김용수...아차 싶다. 강두섭이 김용수를 노려보며 다가온다.
강두섭: (으르렁대듯)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죄책감 좀 느껴라 그거야? 그 지지배가 망가진게 내탓이냐? 동생이 병신으로 태어난게 내탓이야? 그 애비 회사가 망한게 내탓이야? 세계 경제가 나빠진게?.... 난 그냥 슬쩍 거들었을 뿐이야. 내가 안했다면
딴 놈이 그랫을 거고.
(김용수의 이마에 이마를 붙인채 노려보며)안그래?
김용수:(고개를 끄덕인다) 예...그렇습니다.
강두섭:(돌아선다) 까불고 있어. 병신 같은게...
강두섭이 김용수를 두고 가버린다. 혼자 남은 김용수 분수대 턱에 털썩 주저앉는다. 오줌싸던 동상도 찔끔 찔끔 다시 오줌을 싸기 시작한다.
30. 택시안(밖/밤)
창밖을 보는 강두섭...이 상황이 마땅치 않다. 딱히 누구 탓도 아니기에 더 짜증스럽다. ‘쯧’ 그가 혀를 찬다. 신호를 기다리는 택시. 앞에 훼미리 마트가 보인다.
31. 공터 (밖/밤)
훼미리마트 봉지를 든 강두섭이 터덜 터덜 걸어온다. 뒤따라 오던 교복소녀가 강두섭을 앞지르더니, 하수구쪽으로 뛰어간다. 강두섭이 멈춰선다. 인상을 쓰며 먼 곳을 본다.
32. 다리밑(밖/밤)
마치 강두섭의 시선으로 보는 것처럼, 교각에 기대앉은 조영은이 보인다. 그녀는 지금 본드에 취해있다. 남자아이들이 고래 고래 떠드는 소리가 화면 밖에서 어렴풋이 들린다. 그녀가미끄러지듯 옆으로 쓰러져 눕는다. 바람이 불면, 과자봉지가 날라 다닌다. 멀리서 보면 그녀 역시 버려진 쓰레기같다.
33. 공터(밖/밤)
역시 버려진 걸까? 새끼고양이 세 마리가 하수구통안에서 꼬물거린다. 강두섭이 쭈그리고 앉아 새끼고양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손가락을 내밀면 새끼고양이들이 부비적댄다.
강두섭: 니들도 참 질긴 목숨이다. 죽었을 줄 알았는데...
강두섭이 편의점 봉투를 뒤진다. 샌드위치를 담은 플라스틱상자를 그릇삼아 우유를 따라준다. 새끼고양이들이 허겁 지겁 먹는다. 교복 소녀는 하수구통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아서 구경한다.
강두섭:(누군가에게 변명하는 것처럼) 니들이 태어나자마자 이 지경이 된 것도.
그 지지배가 그렇게 된것도, 내가 이러고 사는 것도 다 정해진 거야.
(샌드위치안에 들어있는 참치를 손바닥에 얹어 내민다. 새끼고양이들이 먹는다)
이미 다 정해 놓은 거야. 저 위쪽에 어떤 빌어먹을 놈이...
그렇게 생각하는게 맘 편해. 안 그러냐?
(새끼고양이에게) 그저 먹고 살겠다고...
(툭 툭 밀면서) 엉겨 붙지 마. 짜식들이...저리 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굴러다니는 판자로 문을 만들어준다.
강두섭:(돌아서면서) 야. 지지배야. 빤스 보인다. 아무리 귀신이라도 창피한 걸 모르냐. 쯧
강두섭이 집 쪽으로 간다.
교복 소녀가 하수구 통에서 폴짝 내리더니. 고양이들을 흘깃 보고, 강두섭을 따라간다.
34. 강두섭의 집 마루(밖/낮)
여학생 교복 사진....강두섭이 서울시내 여학생 교복 사진을 보고 있다.
강두섭: (두께를 가늠하며) 뭐 이렇게 많어?
김용수: 일단 서울시내 것부터 확인하구요. 거기도 없으면 경기도. 그 다음엔 전국...
강두섭;(휙 휙 넘긴다)....
김용수: 잘 보세요. 비슷한게 있나...
강두섭. 간혹 비슷한게 있으면 허공에 대고 비교해본다.
김용수:(강두섭의 시선을 따라간다) 내 쪽에 있어요.
강두섭: 네 얼굴 바로 옆에 있다.
김용수:(움츠러든다)...
강두섭:(킬킬댄다) 쫄기는...
김용수: 웃음이 나와요? 원한에 사무쳐서 기껏 귀신까지 돼서 나타났는데, 누군지도
못알아보면서...그 귀신 진짜 속 좋아. 나 같으면 벌써 사단을 냈을텐데...
강두섭:(웃음을 뚝 멈추고, 김용수뒤를 본다)...
김용수: (강두섭이 정색하자) 농담한거예요. 농담. 삶의 윤활유.
강두섭: (허공을 응시한 채로) 원한이 아니야...그런 눈이 아니야.
김용수: 예?
강두섭은 교복 소녀를 보고 있다. 소녀 역시 강두섭을 빤히 마주본다.
강두섭:(교복 소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뭔가 할말이 있는 건 확실한데...
(시선은 교복소녀에게 둔채로 김용수에게) 뭐라고 지껄여봐,
김용수: 예?
강두섭: 외국영화 더빙하는 것처럼. 아무 말이나 지껄여봐.
김용수:(생각한다)......
강두섭: (재촉한다) 빨리
김용수: 죽고 싶냐?
교복소녀의 얼굴위로 들리는 김용수의 말. 점점 연기력이 는다.
강두섭:(고개를 흔든다) 아니야...
(김용수):그냥 확!
강두섭: 그거 말고.
(김용수): 이런 싸가지 없는...
강두섭:(김용수를 본다)....
김용수: 더빙 중인데요...
강두섭:(일단 봐준다) 그쪽이 아니구...좀 따땄한 쪽 말을 해보라구...
김용수:(입모양만으로 꿍시렁대다가 건성으로).... 사랑해.
강두섭;(갸우뚱한다)....
(김용수): 고마워
강두섭:...
(김용수): 부탁해
강두섭: (비슷하다)...
(김용수): ....도와줘.
강두섭:.(집중한다)...
(김용수):안아줘
강두섭:(들고있던 사진을 집어던진다) 지랄...
김용수: (항의한다) 연기잖아요...
강두섭; (벌렁 눕는다) 다 집어 쳐.
교복 소녀는 어느새 마당으로 나가 날라다니는 나비를 쫓는다. 나비가 날라다니는 마당. 마당가에 핀 들꽃. 봄날의 따뜻한 햇빛. 강두섭도 김용수도 나른하게 늘어졌다.
김용수: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교복 사진을 보며) 형님도 교복 입으셨어요?
강두섭: 내가 어쩌다가 네 형님이냐?
김용수: 그럼 뭐라 그래요? 두섭씨?
강두섭; (누은채 주먹 쥐며) 갖다 박어.
김용수:(나른하게) 나중에 박을게요.
강두섭: 빠져갖고는....
김용수;(교복 모델들을 보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혹시 첫사랑 아니예요?
강두섭: (잠깐 생각하지만).......아니야.
김용수: (자기 생각에 꽃혔다) 확실해요?
강두섭: 첫사랑도 못 알아 볼까봐.
김용수:(다시 눕는다) ‘첫사랑이 죽어 귀신 되어 나타났다’ 딱 좋은데...
강두섭: ....걔가 죽었다고 해도 내 앞엔 안 나타날 걸.
김용수:....?
강두섭:(회상한다) ...이쁘긴 겁나게 이뻤는데...
35. 첫사랑몽타쥬
-서점.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이는 유리창 너머 책을 고르는 소녀.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고, 옆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웃기도 하고, 책장을 넘긴다
(가능한 뽀얗고, 아름답고, 환상적인 첫사랑 소녀의 느낌이 나도록)
(강두섭): 옆 학교 애였는데...
시선의 주인공은, 불량 고등학생 강두섭(뺨에 점으로 알수 있다). 마치 자석에 끌리듯, 꼼짝않고 서서 서점 안 소녀를 바라본다. 강두섭과 소녀의 사이에는 유리창도 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있고. 이것 저것 많이 있지만...어느 순간, 모두 사라지고, 소녀와 강두섭만 남았다. 문득 소녀가 고개를 들어 강두섭을 본다.
(강두섭): 편지를 보냈어. 만나자고.
-공원
강두섭만 보이던 화면에 다시 배경이 생기면, 공원이다. 사복 차림의 강두섭이 여학생을 기다린다. 긴장을 풀기 위해 심호흡한다. 발 밑으로 그림자가 다가온다.
강두섭이 나름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든다. 그러나!!
(강두섭): 엉뚱한 놈들이 떼로 왔더라구,
체육복을 입은 머리 짧고 체격 좋은 남학생 다섯명이 서 있다.
(강두섭): 그 학교 유도부 놈들.
(점프)
곤죽이 되어 벤치에 널브러져 앉은 강두섭. 엉망이 된 얼굴로 히죽 웃는다.
36. 툇마루(밖/낮)
강두섭: (그 옛날처럼 히죽 웃으며) 그 학교 유도부가 쎘거든, 전국 4강에 들고 그랫는데...
근데 그 해에는 예선 탈락했어.
37. 체육관(안/낮-과거)
유도복을 입은 애들이 널브러져 있다. 다들 어딘가 부러진 듯,
각목, 야구방망이를 들고 서 있는 놈들, 그중 하나가 돌아보는데 강두섭이다.
38. 툇마루(밖/낮)
강두섭: 그게 내 첫사랑의 시작과 끝이다.
김용수: 아....내 첫사랑은 중 2때였어요. 조동수라구 내 친구 누나였는데요. 고2...
강두섭;(뭔가 기억이 났다. 일어나 앉는데)....
김용수:(자기 얘기에 빠졌다) 뭐 눈에 팍 뜨이는 미인은 아니었는데, 은근 매력있는 스타일
있죠. 중 2 여름방학때 내가 동수네 집에 놀러갔었거든요. 비오는날, 근데...
(하다가 강두섭의 분위기를 눈치챈다) 내 얘기 재미 없죠?
강두섭: 생각났다.
김용수: ....
강두섭: 날 좋아하던 여자애가 있었어.
김용수: (안 믿는다) 에...
강두섭: (어떻게 그런 사실을 잊고 있었을까 의아하다) .....
39. 제빵 학원 탈의실(안/낮-과거)
빵 만들때 입는 하얀 옷을 입은 강두섭이 들어온다. 며칠전, 유도부놈들에게 맞은 상처가 아직 남아있다. 옷을 벗으며 락커문을 여는데, 편지가 들어있다.
(김용수): 딴 사람 거 아니예요.
그 소리를 들은 것처럼 고교생 강두섭이 편지를 집어 뒤집으면 ‘강두섭에게’라는 글씨.
(김용수): 행운의 편지라든가?
강두섭이 편지봉투를 연다. ‘오랫동안 널 지켜봤다. 할말이 있어. 수업끝나고 교실에서 기다릴게’ 누굴까? 편지를 읽은 고교생 강두섭이 주변을 둘러본다.
40. 툇마루(밖/저녁)
강두섭:(이래도라는 듯 의기양양하게 김용수를 본다)....
김용수; (별로 믿기지 않지만) 그래서요? 누가 보낸 건데요?
강두섭: 나야 모르지. 그 바로 뒤에 애들이랑 유도부를 습격했거든.
김용수: 약속장소에 못나갔어요?
강두섭: 어떻게 나가냐? 유치장에 갇혔는데...
(마당의 교복 소녀를 보면서) ‘첫사랑을 고백 못한 소녀가 죽어서 나타났다’.....
말 되지 않냐?
김용수: 대낮에 귀신이 나타나는 마당에 뭔들 말이 안되겠습니까마는...
(김용수):(강두섭 얼굴을 보며)그 얼굴로요?
강두섭: (확신하듯) 자기를 기억 못하는 내가 야속한거야. 내가 기억해주기만
바라면서 날 쫒아다니는거지... 그런 거였어.
김용수: 저기요. 형님. 너무 멀리 가시는 거 아니예요.
강두섭이 갑자기 안으로 들어간다. 김용수 왜 저러나 쳐다보다가 흩어진 교복 모델 사진을 모은다. 김용수 시야로 사진이 불쑥 디밀어진다. 제빵학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강두섭: 이중에 있어. 날 사랑한 소녀가...
김용수: (사진을 받아든다) 귀신이랑 닮은 사람 있어요?
강두섭: 몰라.
김용수:...?
강두섭:(추억의 나라로 질주중이다) 누굴까? 날 좋아한 애가...
김용수, 이 아저씨가 왜 이러나 싶다. 20년도 더된 사진. 제빵학원 다닐때의 강두섭과 학원 동료들, 선생님(남.60대) 여덟명의 사진이다.
41. 제빵학원사람들의 인터뷰 몽타쥬
사진속 사람들, 사진과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자세로 정면을 향한채 인터뷰한다.
화면 하단 자막 ‘Q1-강두섭을 기억하나?’
여자1: 깡패 두섭!!
여자2: 기억하죠. 그런 사람을 어떻게 잊어요?
남자1: 처음 학원에서 봤을 때 관둘려고 했다니까요. 수업료 환불이 안돼서 할수 없이
다녔지
남자2: 강두섭 걔도 억지로 다녔을걸요. 고아원인가 경찰서에선가 다니라고 해서...
여자2: 꽤 길게 다녔지? 4개월인가...
남자1: 아니야. 거의 수료증 나올 때까지 다녔을걸. 금방 관둘줄 알았는데..
남자1: 아마. 공짜 빵 먹는 재미에 왔을걸.
여자3: 깡패 됐다면서요? 그럴 줄 알았어.
여자2: 국민학교땐 안그랫대요. 내 친구가 어렸을때 강두섭을 아는데...맨날 울고 다니고...
여자3: 암튼 난 싫었어요. 음침하고 무섭고.
남자2: (긍정한다) 무섭긴 무서웠어요
남자3의 말에 사진속 인물들(강두섭과 선생님을 제외한)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하단에 자막, 'Q2-강두섭을 좋아한 여학생이 있었나?‘
여자1: 말도 안돼
여자2: 설마...
남자1: 그래도 여자애들은 그런 나쁜 남자 좋아하지 않나?
여자3: 미쳤어!
여자4: 걔는 여자애도 때리는 놈이었어요.
남자1: 진짜? 누구?
여자4: 유도부 사건때 그 여자애.
남자1:그건 아니다. 내가 걔랑 같은 교회 다녔는데. 걔는 그냥 전학갔어
여자4: 그래?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휴학한줄 알앗는데...암튼 무서운 놈이었어요
‘그건 그래’ 사람들 모두 긍정한다.
하단 자막 ‘Q4-강두섭에게 편지를 쓴 사람은?’
여자1: 편지요?
여자2: 연애편지?
남자1: 강두섭이 편지를 받았대요?
남자2: 자작극 아니야?
여자3: 말도 안돼.
모두들 한마디씩 하느라 웅성거린다. 그때!
(선생님): 그 편지 내가 썼는데...
사진 속 인물들, 일제히 선생님을 바라본다. 선생님..현재의 모습으로 디졸브
42. 공원(안/낮)
공원 벤치. 80가까이 된 할아버지가 김용수와 나란히 앉아있다.
이곳은 게이트볼장. 멀리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게이트볼을 치고 있다.
김용수는 자기가 들은 말을 아직 이해 못했다.
원장 할아버지: 그 편지 내가 썻다구.
김용수;(빤히 쳐다보다가)...혹시 브로큰백 마운틴...좋아하세요?
벤치 뒷자리에 들리는 ‘스읍’하는 위협적인 소리.
뒷자리에 강두섭이 앉아있다.
(원장할아버지): 그게 뭔데?
김용수: 아뇨. 아닙니다....
(질문하기 상당히 곤란하다) 에....또....왜 그런 편지를 보내셨는지..,?
원장할아버지:(당연하다는 듯) 할말이 있었으니까 ...
김용수:(뒷자리 강두섭을 신경쓰며) 그 할말이란게...
원장 할아버지: 그 다음달엔가 제빵대회가 있었거든. 우리학원에서도 한사람 추천하라고
해서 나가보지 않겠냐고...
김용수: (놀랐다)강두섭한테요.
원장할아버지: 응.
강두섭도 뜻밖이다.
김용수: 그 깡패두섭말씀하시는거 맞죠?
원장할아버지: 그렇다니까...
김용수: 왜요? 강두섭이 빵을 잘 만들었어요?
강두섭,점점 진지해진다. 그 얼굴위로...
(원장할아버지): 실력으로만 보자면 두섭이는 그냥 그랬어. 같이 배우던 고미연이나 김승재
쪽이 실력은 훨씬 있었지. 아마 그때 두섭이가 별일없이 대회에 나갔다고 해도
난리가 났을거야.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나 들고 일어낫겠지.
그래도 그러고 싶었어. 뭐... 불쌍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내가 강두섭
을 추천하려고 한건 그놈이 빵 만드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야.
강두섭. 잊고 있었던걸 기억해낸다.
43. 제빵학원(과거)
고등학생 강두섭이 뚱한 얼굴로 혼자 빵을 만들고 있다. 거품을 내고, 반죽을 하고, 모양을 만들고, 장식을 하고, 오븐에 집어 넣는다.
(원장할아버지); 학원에 올 때마다 인상쓰고 툴툴대고...남들 보기엔 억지로 다니는 것 같았어도 아니야. 놈은 빵 만드는걸 좋아했어. 부끄러웠는지도 모르지. 뭘 좋아한다는
걸 들키는게...불행에 익숙한 놈들은 그렇거든.
선생으로서 나는 실격이네. 그런 걸로 학생들을 평가할려고 햇으니...그렇다고해도 한번쯤은 그놈편이 되주고 싶었어. 살다보면 불공평한 행운이 올때도 있다는걸,
알려주고 싶었네. 그래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 그때까지 그놈은 불공평할정도로
좋은일이라곤 한번도 없었으니까 자기편이라고는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
완성된 빵을 꺼내는 강두섭, 뚱한 얼굴이 어느새 풀어져 슬며시 웃는다. 그 얼굴위로
(강두섭): (위협하는) 웃지 마!!
44. 공원(밖/낮)
원장할아버지가 느닷없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을때는, 강두섭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가고 있다. 김용수가 멀어지는 강두섭을 바라본다.
원장할아버지:(끙하고 일어선다) 운명이든 사람이든 한번쯤은 그놈 편을 들어줘도
좋을텐데....(게이트볼장으로 간다)
김용수. 일어나 원장할아버지를 배웅하다가 돌아선다.
45. 길(밖/밤)
강두섭이 고개를 푹 숙인채 걸어온다. 무작정 걷다가 멈춰선다. 이곳이 어디일까? 두리번거린다. 흡사 길을 잃은 것 같은 얼굴이다.
46. 도로(밖/밤)
김용수가 운전중이다. 강두섭에게 전화를 건다. ‘전원이 꺼져있다’라는 기계음만 나온다.
차창 앞으로 길이 길고 복잡하게 뻗어있다.
47. 공터(밖/밤)
새끼고양이들이 우유를 먹는다. 그옆, 강두섭이 하수구통에 기대앉아 멀리까지 이어진 길을 본다.
48. 도로(밖/밤)
질주하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은 조영은이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 고함을 지른다. 그 함성이 비명같다. (f.o)
49. 흥신소 사무실(안/밤)
창밖. 상가철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데모중이다. 북소리. 구호소리...
김용수는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 버릴 건 버리고, 가져갈건 박스에 넣는다. 핸드폰이 울린다.
50.룸살롱 복도-룸(안/밤)
웨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오는 김용수, 이런 비싼곳은 처음이라 두리번거리게 된다. 웨이터가 문을 열어주면 넓은 룸에서 혼자 마시고 있는 강두섭. 외로운 그는 이미 취해 있다.
강두섭: 어이...김용수.
웨이터가 꾸벅 인사하면 마주 인사하고 자리에 앉는 김용수.
김용수: (자리에 앉으며) 혼자 계세요?
강두섭: (술을 따라주며 자조적으로) 그럼 누구하고 있냐...?
김용수: 아니 뭐.........메시지 남긴 건 들으셨어요?
강두섭: (혀 꼬부라진 소리) 뭐? 결국 날 짝사랑한 지지배가 없다는거?
(큭큭 웃으며) 엄청 실망해서 술 푸잖냐.
김용수: (술을 마시며 눈치를 본다)...
강두섭:(끊임없이 술을 따르고 마신다) 어이. 김용수, 쫑파티하자.
김용수: ...?
강두섭: 그 지지배 찾는거 관두라고. 익숙해지니까 뭐 놀랍지도 않고....
(허공을 보며 혼잣말처럼) 망할놈의 지지배, 지맘대로 나타나서 쓸데없는것만 들쑤
시고...
김용수가 강두섭의 시선을 따라 허공을 본다. 잠깐의 침묵....
김용수:...그 귀신 말이예요. 귀신이 아니라 천사같은거 아닐까요?
강두섭: 처언사? 네가 막 미쳐가는구나.
김용수: 귀신도 있는데 천사 좀 있으면 어때요?
(좀 작은소리로) 악마도 있고...골고루
강두섭:(못들었다) 뭐?
김용수: 그러니까...하늘에 계신 높은 분이 내려다보다가 ‘저 놈 안되겠다. 인생
좀 똑바로 살아라‘ 이런 뜻으로 내려 보낸 거죠. 당신의 사자를...
강두섭:(소녀를 보다가).....하고 많은 사람중에 왜 나한테만? 내가 뭐가 이쁘다고?
김용수:....복권같은 거죠. 복권이 인간성 보고 당첨되는 건 아니잖아요.
강두섭: 그딴 복권 맞아서 뭐에 쓰냐? 땡전 한푼 안떨어지는데...
김용수: 뭐...기회를 주는거죠. 인생 제대로 살 기회.
(인서트)
손을 내밀고 있는 여자. 언젠가 잠깐 강두섭의 회상에 나왔던 밤무대 가수다.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강두섭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강두섭: 복권.... 네가 그 복권 맞았다 치자. 넌 뭘 어떻게 할건데?
김용수: (술잔을 보며 생각한다)......................
둘다 말이 없다.
강두섭:(일어난다) 복권 좋아하네. 그렇게 고민스런 복권이 어딨냐?
김용수: (따라 일어난다) ...
51. 룸살롱 앞 골목(밖/밤)
김용수와 강두섭이 나온다.
강두섭: 이사 언제 가냐?
김용수: 뭐.....이번주 안엔 가야겠죠.
강두섭: 얼른 얼른 가. 쓸데없는 데 얼굴 들이밀다가 터지지 말고...
어차피 안되는 걸 왜들 그러는지...
강두섭이 비틀거리며 걷는데, 앞서걷던 교복 소녀가 뒤를 돌아본다.
교복 소녀를 따라 강두섭도 뒤를 돌아보는 순간, 누군가 돌진해 들어온다.
강두섭이 자기에게 붙어있던 ‘놈’을 밀어낸다. 벽에 부딪치며 쓰러지는 건 조영은.
강두섭 배에 송곳이 꽃혀있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조영은이 비명을 지른다.
문앞에 선 김용수....너무 놀라서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두 사람을 번갈아본다.
52. 병원 복도(안/밤)
의사나 간호사, 보호자들까지도 어딘가를 흘깃거리며 지나간다.
김용수와 조영은이 나란히 앉아 있다. 요란한 조영은은 눈만 뜨고 있을 뿐 혼이 느껴지지않는다. 응급실에서 강두섭이 나온다. 김용수가 일어나고, 조영은이 고개를 들지만 눈동자가 비어 있다.
강두섭: (걱정하는 김용수에게) 그런 무딘 송곳으로 내 강철 바디가 뚫리겠냐?
(조영은에게 위협적으로) 어?
강두섭이 앞서 걸어가면, 김용수가 어쩔까 허둥대다가 조영은의 팔을 잡아 끌고 따라간다.
53. 병원 현관앞(밖/밤)
강두섭 뒤를 따라 조영은의 손을 잡고 쫓아오는 김용수.강두섭은 택시를 잡으려 한다.
김용수: 가시게요? 그냥 가면 어떡해요?
강두섭: 뭘 어쩌라구?
김용수:(조영은을 눈짓하며) 얜 어쩌구요?
강두섭: (귀찮다)....
조영은: (불쑥) 죽여.
김용수:(말린다) 어이...어이...
조영은;(강두섭을 본다.텅빈 눈동자) 안 그러면 내가 죽일거야.
나한테는 그 길 밖에 없어. 죽이든가...죽든가.
강두섭이 조영은을 쳐다본다. 그것은 연민. 아마도 자기연민일 것이다.
조영은이 강두섭을 본다. 증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조폭 두목과 초 날라리 여고생의 조합을 공포와 호기심으로 구경하며 지나간다. 택시가 오는걸 보고 강두섭이 손을 번쩍 든다.
김용수: 형니임!!
강두섭:(택시에 타면서 내뱉는다) 갖다 버려
강두섭을 태운 택시가 멀어진다.
54. 택시(밖/밤)
뒷자리의 강두섭. 운전기사는 룸미러로 보이는 강두섭의 포스에 잔뜩 졸아있다.
라디오에서 ‘슬픈인연’....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강두섭이 한숨을 쉰다. 운전기사가 움찔한다. 노래소리 점점 커진다.
55. 강두섭의 연애 몽타쥬
-강두섭의 회상에 나왔던 스물 한두살 젊은 여가수가 앞씬에 이어 ‘슬픈 인연’을 부른다. 형님(중년 시절의 분재 노인)을 모시고 온 청년 강두섭은 밤무대 가수에게 첫눈에 반했다.
-다른날.
강두섭이 홀로 와서 여자의 노래를 듣고 있다. 취객이 여자의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강두섭이 눈알이 빠져라 그 장면을 노려본다.
-클럽뒷문.
노래를 끝내고 나온 여자...청년 강두섭이 기다리고 있지만 모르는 척 가버린다.
-뒷골목.
여자가 문득 뒤돌아본다. 여자가 멈춰서자 강두섭이 다가가지만, 여자가 뒷걸음질친다. 강두섭이 좀빨리 겆자. 여자의 걸음도 빨라진다. 여자가 깔갈 웃는다.
강두섭이 달린다. 여자가 달린다. 강두섭이 여자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다른곳. 강두섭에게 안긴 여자가 강두섭을 돌아보면서 웃는다. 둘이 마주보며 웃는다.
-침대위. 강두섭에게 안긴채 여자가 돌아눕는다. 여자의 얼굴이 슬퍼진다.
-기차역, 여행가방을 든 여자가 강두섭에게 손을 내민다. 같이 가자고. 청년 강두섭은 그 손을 바라볼뿐...움직이지 않는다. 강두섭을 바라보는 여자의 슬픈 얼굴에서,노래가 끝난다.
56. 미용실(안/밤)
여자의 얼굴이 미용사의 얼굴로 디졸브된다. 문소리에 청소하던 미용사가 돌아본다.
강두섭이 들어온다. 미용사가 순간 숨을 멈춘다.
미용사: (뜻밖의 상황이다)....아....
강두섭: (그로서도 쉽지 않은 만남이다) 오랜만이야.
미용사: (숨을 들이쉬고 냉정해진다)어쩐 일이야?
강두섭: 옛날 생각 좀 하다가...
미용사: (청소를 계속한다) 별일이네. 생각하고 그러는 거 싫어했잖아.
강두섭: 응.....복권 비슷한 게 맞았거든.
미용사:...?
강두섭:(실내를 둘러본다)....
미용사: (긴장을 풀기 위해 숨을 몰아쉰다)...여긴 어떻게 알았어?
강두섭: 사람 잘 찾는 애가 있거든.
미용사: 똘마니 중에?
강두섭: 아니...그런 건 아니고...
(둘러본다) 미용실이라...
특이할것없는 동네 미용실. 카운터 뒷쪽, 유리 진열장 위에 죽 걸려있는 사진이 눈에 띈다.
아기사진부터, 두세살 때 사진. 유치원 사진....
강두섭의 시선이 사진에 머물자. 미용사가 얼른 그 앞을 가로막는다.
미용사: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미안한데 시간이 너무 늦었어
강두섭:....누구야?
미용사: 너랑 상관없는 애야. 그만 가줘. 문닫을 시간이야
강두섭: ....누구야?
미용사:(강두섭 눈을 똑바로 본다) 내 애야.
강두섭:(교복 소녀를 본다. 설마....) 몇 살이야?
미용사: 알거 없잖아.
강두섭: (설마)...고등학생?
미용사: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강두섭:(교복소녀가 자기 아이였다니....).....!!!!
미용사: 너하고 만든 아이인진 몰라도 네 아인 아니야. 내 아이야.
그때 ‘내가 같이 가자’고 했을 때...그때 내손을 잡았어야지.
지금 이러는 건 경우가 아니지. 너무 뻔뻔스럽잖아. 너랑 상관없는 아이야.
강두섭:(울컥한다) 그럼 왜 내 앞에 나타난건데?
미용사: 뭐?
강두섭: (감정이 점점 격해진다. 그는 진심이다)
나도 이제 와서 부모자식 놀이 하겠다는 거 아냐. 하지만 어떡하냐? 날 찾아왔는데...모르면 몰랐지 알아버린 걸 어떡하냐? 내 앞에 나타나서 저런 슬픈 눈으로 보는데...무슨 일이야? 그애한테 무슨 일이 있는거야? 죽은거냐? 내 딸이....
그때...
(소리): 엄마!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등학생 교복을 입은...................................남자아이!
감정이 폭주하던 강두섭. ‘이건 뭐가’싶어 고등학생 남자아이와 교복소녀를 번갈아 본다.
교복 소녀. 마치 남의 일처럼. 두손으로 번갈아 머리를 앞으로 쓸어내린다.
강두섭: (폭주했던 감정이 수습이 되지 않는다) 아....아...
남자아이:(강두섭을 보다가)... 엄마?
미용사:(정신을 차린다. 강두섭에게 또박 또박) 죄송합니다만 저의 문 닫을 시간이 되서요.
강두섭이 남자아이를 본다. 남자아이 뺨에 점이 있다.
(인서트)
기차역. 여자가 청년 강두섭에게 손을 내민다. ‘제발 내손을 잡아달라’고....
강두섭은 그 손을 쳐다볼 뿐 잡지 않는다.
미용사: 손님. 정말입니다. 너무 늦었어요.
(강두섭을 똑바로 보며 아들의 손을 잡는다)
(인서트)
여자의 빈손. 여자를 태운 기차가 가버린다.
강두섭:(미용사와 남자아이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게...너무 늦은거
같네요....(밖으로 나간다)
57. 미용실 앞(밖/밤)
강두섭이 밖으로 나온다.
(남자아이): 누구야?
(미용사): 손님...
(남자아이):에...? 빡빡머리가....
한참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강두섭. 교복 소녀가 강두섭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58. 마지막 싸움 몽타쥬
-‘재계발 조합’이라는 머리띠를 한 강두섭의 부하들이 상가로 들어간다.
-문을 가로막은 바리게이트
-바리게이트를 뚫고 들어가는 강두섭의 부하들,
-상가철거 반대하는 주민들이 소화전의 물을 뿌린다. 그 중엔 김용수도 보인다. 처음으로 보이는 김용수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얼굴.
-싸움이 벌어진다.
-강두섭이 문앞에 선다. 그가 실내를 둘러본다.
-증오 어린 눈.눈.눈... 휘두루는 주먹. 내뱉는 욕설...나가떨어지는 육체... 깨어지는 유리창. 부서지는 의자...그가 평생을 빠져 살앗던 함정....그가 천천히 현장 안으로 들어선다. 주위를 둘러본다. 이제까지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듯.
순간. 강두섭의 뒷통수를 강타하는 각목. 철거대책 위원장이 각목을 들고 주춤 물러선다.
강두섭의 고개가 푹 꺽였다가 올라온다. 그가 폭발한다.
강두섭이 뒤로 홱 돌아보더니 자신을 때린 놈을 매다 꽃고, 괴성을 지른다.
-필사적인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강두섭도, 강두섭의 부하들도, 상가철거 반대하는 사람들도, 김용수도. 너무 필사적이어서 슬퍼보인다.
어쩌다보니 강두섭 앞을 막아선 김용수. 둘의 눈빛이 마주친다. 강두섭의 주먹이 김용수를향해 날라온다.
59. 상가 근처 공원(밖/밤)
멀리 경찰차들이 웰웰거린다. 나란히 앉은 김용수와 강두섭.
김용수 얼굴에 멍이 들어있다. 잔뜩 맞았다.
강두섭: 왜 안하던 짓을 하고 그러냐?
김용수: (쑥스럽다) 뭐....
강두섭: (비웃지만 어쩐지 친근하다) 흥... 인생 다시 살기로 한거냐?
(김용수의 터진 얼굴을 손으로 꾹 찌르며)어?
김용수:(아프다)....에이...진짜.. 아프다구요
강두섭: 아프고 힘들지 그럼. 쉬운게 어딨냐? 제대로 할려면....
김용수: (꿍시렁댄다)뭐...그렇게 거창한건 아닌데...
강두섭: 네 건 안 늦었나 보다.
김용수: 예?
강두섭: 네가 말한 거...그거 진짜 복권인지도 몰라.
김용수:...?
강두섭: (일어난다) 복권은 복권인데, 지난주 거 였나봐, 늦었더라구.
강두섭이 멀어진다. 김용수가 물끄러미 멀어지는 강두섭을 바라보다가 돌아선다.
60. 강두섭 집앞 공터(밖/밤)
편의점 봉투를 든 강두섭이 걸어온다. 당연하다는 듯 하수구통쪽으로 간다. 근데 통 안을 막아놓은 문이 쓰러져 있다. 강두섭의 마음이 급해진다. 안을 들여다본다. 아무것도 없다. 주위를 둘러본다. 바닥에 우유가 남아있는 접시만 보일뿐...반대쪽으로 가보는데. 다리에 뭐가 엉긴다. 새끼고양이들이다.
강두섭: 쪼그만 새끼들이 사람 놀리고 있어. 진짜...
강두섭이 옆에 있던 물병의 물로 접시를 닦아내고, 우유를 따라준다. 새끼고양이들을 하수구 안으로 밀어넣고, 문을 닫고 돌아서려다가 멈춘다. 잠깐 고민하다가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새끼고양이들이 강두섭에게 다가온다. 강두섭이 새끼고양이들을 무릎에 올려놓는다. 강두섭 코에서 코피가 주르륵 난다.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쓰윽 문지른다.
강두섭: (새끼 고양이들을 본다. 목소리가 부드러워진다)
니들 나랑 살래...? 우리끼리 살아볼까?
(코피가 주르륵 흐르고, 코피를 닦는다) 살지 뭐. 안될게 뭐야? 근데 니들 물렁하게 보이지 마라. 깡패 고양이답게 눈에 힘 팍 주고, 고양이지만 호랑이처럼 응?
(새끼 고양이를 보면서) 야옹이 아니라. 어흥...
혼자 낄낄 웃으며 강두섭이 세 마리 고양이를 안고 일어서려한다. 그러나 일어서지 못한다.
어? 이상하다...기우뚱하더니 강두섭이 그대로 쓰러진다. 강두섭이 몸을 움직이려고 꿈틀대지만 소용없다. 그때 강두섭 시야에 교복 소녀가 들어온다. 교복소녀와 새끼고양이들....
강두섭: (교복소녀와 새끼고양이들을 번갈아본다) 너...?
설마 너...
교복소녀가 새끼고양이들에게 뺨을 부빈다. 강두섭은 그제서야 깨닫는다. 어이없는 사실을. 강두섭의 시야가 어두워진다. 빛이 사라져가는 강두섭의 눈. 교복 소녀가 강두섭의 손에 뺨을 부빈다.
61. 장례식장(안/낮)
무섭게 웃고 있는 강두섭의 영정사진.... 첫씬의 그 사진이다. 김용수가 삐죽이 고개를 들이민다. 장례식장은 썰렁하다. 우는 사람 없다. 부하들 10여명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거나, 문자를 보내거나...김일주가 상주자리에 앉아있다. 김용수가 들어서자, 부하들, 경계태세가 된다. 어쨌거나 싸웠던 상대의 등장이다. 김용수 쭈빗거리며, 영정사진 앞에서 절을 하고, 김일주에게 절을 한다. 김일주도 이놈이 왜 왔나 싶지만, 어쩔수 없이 절을 한다.
김용수: (어색하다) 참. 뜻밖의 일을 당해. 뭐라...
김일주: (역시 어색하다) 예...뭐....
김용수: 공터에서 쓰러졌셨다구요?
김일주: 그러게 ...왜 집에 안들어 가고 거길 가셨는지...?
김용수: 어쩌다가 그렇게 갑자기....?
김일주: 그게... 한 보름 전에 형님이 뒤통수를 한대 맞았는데. 그때 정밀검사 하라는걸
부득 부득 우겨갖고는...안으로 피가 고여서 측두옆이래나 뭐래나...어느 구석인가를
눌르고 있었답니다.
김용수: 아...그게 겉으로 표가 안 났군요...
김일주: 그게 말이죠. 의사 말로는 표가 났을 거라던데...헛소리를 하거나, 헛것을 본다거나 ...근데 우리 형님은 전혀...
김용수: 아....(혼자 납득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62. 공터(밖/저녁)
시체를 그린 흰색선이 남아있다. 상복차림의 김용수가 소주를 군데 군데 뿌린다.
어쩐지 씁쓸하다. 돌아서려는데 발에 뭔가가 걸린다. 접시? 이게 왜? 뭔가 소리가 들린다.
김용수가 쭈그리고 앉아 배수구통 안을 본다. 그 안에 고양이 세 마리가 앉아 있다.
새끼고양이가 야옹하고 운다.
63. 흥신소 사무실(안/저녁)
테이블 위. 도넛 상자 안. 새끼고양이 세 마리가 오종종 앉아있다.
김용수가 파일을 뒤적인다. ‘강아지를 찾습니다’ ‘할머니를 찾습니다’....
찾았다....‘고양이를 찾습니다’전단지. ‘새끼를 가졌습니다’라는 부연 설명.
고양이 사진이 실려 있다. 김용수가 사진과 새끼고양이들을 비교한다. 같은 종이다.
사진속의 엄마 고양이 머리에 빨간 리본을 달고 있다. 김용수가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64. 고양이네 집(안/아침)
세라복 유니폼을 입은 유치원생(유령 여학생이 입고 있던것과 똑같은)이 새끼고양이에게 빨간 리본을 달아준다.
유치원생: 됐다...
(새끼고양이가 벗으려고 하자) 안돼.. 너네 엄마 거랑 똑같은 거야.
(소리): 지오야! 버스왔다.
유치원생: (고양이에게) 언니, 유치원 갔다올게...
세 마리 새끼고양이들이 자기들끼리 몸을 부비고 논다.
65. 흥신소 사무실(안/낮)
김용수:(강두섭 파일을 덮으며) 가까스로 세이픈...가?
66. 에필로그.
장례식장의 강두섭 사진.
앞에 사진과 똑같은 사진인데도, 조명탓인지. 각도탓인지. 혹은 심리적인 이유에서인지. 훨씬 부드럽고, 선한 얼굴처럼 보인다.
67. 스코롤 백
(*쓱쓱 쉽게 특징만 잡아 그린 그림이다)
-술취한 강두섭이 도로위의 고양이를 본다. 머리에 리본을 한 고양이
-소파에 앉은 고양이. 화면한쪽에서는 물마시던 강두섭이 너무 놀라 물을 뿜어낸다.
-흥신소...어항의 물고기를 보는 고양이.
-하수구앞. 새끼고양이들을 보는 고양이.
-마당에 서서 나비를 눈으로 쫓는 고양이.
-두팔로 머리를 쓸어내리는 고양이
-기지개 켜는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