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을에 무슨 일이 생겼나] 박진우
1. 마을길, 낮
서너 마리의 닭들 한가롭게 모이 먹고 있다.
(E) 스쿠터 소리.
갑용 스쿠터 몰고 달려오자, 놀란 닭들 푸드덕거리며 달아난다.
2. 장례식장
(E) 나직한 곡소리.
상주들 장의차에 관 싣고 있다.
3. 장례식장 근처 길
(E) 요란한 경적 소리
횡단보도 건너던 사람들 달려오는 갑용의 스쿠터 보고 화들짝 놀라며 피한다.
4. 장례식장 마당
천천히 장례식장 빠져나가려는 장의차 앞으로 갑용의 스쿠터 달려든다.
놀란 운전사 차 급정거시킨다.
갑용 스쿠터에서 내려 차 앞에 털썩 주저앉는다.
상주1 눈 부릅뜨고 차에서 내린다.
갑 용 : 차라리 날 밟구 가아!
상 주1 : 정말 엄니 장사도 못 치르게 하겠다 이겁니까?
갑 용 : 인두겁을 쓰구 으띃게 그럴 수가 있것나. 내말은 사망신고만 한 달 정도 연기해 달라 이 말 아닌가, 잉?
상 주2 : 사망신고를 해야 선산에 모실 것 아니에요.
갑 용 : 무덤을 아니 뫼시자는 게 아니잖는가? 한 달까진 읍사무소두 봐준다니께, 딱 그 동안만 엿다 모셔두자는 말이여. 보관허는 비용은 내 알아서 헐 테니께, 잉?
상 주2 : 저희들 대전 나가 사는 동안, 아침 저녁으로 모셔준 은혜야 모르면 짐승이지요. 하지만 돌아가신 분을 어떻게 보관을 한단 말이에요.
상 주1 : 여러 말 할 거 없어. (갑용 노려보며) 벌써 했으니까, 얼른 일어나세요.
갑 용 : 잉? 사망신골 혔다구? 그람, 즌기는? 우리 즌기는 어쩌구?
망연자실, 벌어진 입 다물지 못하고 상주1 보다가 길바닥에 큰 대자로 눕는다.
갑 용 : 그려, 직이구 가. 차라리 날 직이구 가란 말이여.
여 자1 : 잘하면 초상 한 번 더 치르것네, 그려.
여 자2 : 고만하면 됐응께. 어거지 고만 부리고 싸게 일어나시유.
갑 용 : 못 햐. 정 갈티면, 날 직이구 가란 말이여.
상 주1 : 뭣들 해? 엄니 안 모실 거야?
사람들 우르르 달려들어 갑용 팔다리 잡는다.
갑 용 : (발버둥치며) 이대룬 절대 안 디야. 어떻게 맞차논 후구 수인디. 안 디야...
5. 학성리
산을 등지고 있는 마을 풍경, 십 여 채의 집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6. 말자 집
대문 부서져라 밀어 젖히고 갑용 들어온다.
갑 용 : (두리번거리며) 말자야!
허둥지둥 마당 가로질러, 방문 확 연다.
가지런히 정돈 된 방안 보고는 눈 똥그래진다.
7. 점순 집 앞
근택 대문 앞 서성인다.
집안 힐끔힐끔 들여다보면, 점순이 반찬을 싸고 있다.
8. 마루
점순 장아찌, 나물 등 반찬 통에 정성껏 담는다. 옆에는 이미 보자기에 싸인 것들도 있다.
뚜껑 꾹꾹 놀러 닫고 차곡차곡 포개놓고 일어서는데, 근택 서있다.
근 택 : 말자두 보따리 들구 나스던디, 자네두 갈 채비를 허는가벼...
점 순 : 작은 애 주려고 좀 쌌어요.
근택 연신 한숨 내 쉬며 시계추처럼 점순 앞을 오간다.
점 순 : 말자나 저나 전기 합동조사반 오기 전에 세대 수 맞춘다고 오빠가 불러서 온 거잖 아요. 이제 철용 아줌니도 돌아가시고 다섯 가구 맞추는 건 들렸으니까, 더 있을 이유도 없잖아요.
근 택 : (버럭 성내며) 이유가 웂다니?
점순 깜짝 놀라서 본다.
근택 답답하다는 듯 가슴 쳐댄다.
점 순 : (엷게 미소 지으며) 저 없더라도 끼니 잘 챙겨 드시고요.
근 택 : (점순 손 덥석 잡고는) 임자, 이릏게 다시 고향으로 온 것두 다 하늘의 뜻 아니것 는가. 내 성님한테 말씸 드릴 테니께 이 참이 우리 말여...
하는데 갑용 달려온다.
근택 화들짝 놀라서 일어선다.
갑 용 : 점순아, 말자 여 안 왔냐?
9. 시골길
말자 여행용 가방 끌고 간다.
(E) 스쿠터 소리.
돌아보면 갑용이다.
말자 어금니 꼭 물고 잰걸음으로 간다.
갑용 스쿠터 속력 낮추고 옆으로 붙는다.
갑 용 : 낼 모레면 조사반이 올 건디 어딜 가는 겨, 시방.
말 자 : 그 사람들 와도 어차피 틀렸잖아요.
갑 용 : 한 가구야 으띃게 못 마추것냐. 즌기만 오면 잡으라고 혀도 안 잡을 테니께, 잉?
말자 우뚝 서서 쏘아본다.
갑 용 : 그러니께, 그 때는 니가 가고 싶으면 안 잡것다 그 말이지...
말 자 : 그 놈에 전기. 앞장서서 반대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이 난리를 피우시는 거예요?
갑 용 : 내가 은제 앞장을 섰다구 허는 거여, 시방.
말 자 : 분담금 아깝다고 온 동네가 들썩들썩하게 반대하셨다면서요.
갑 용 : ... 황가 이 촉새 겉은 눔.
말 자 : 미용실 하는 친구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서울 오빠보고 내려오라고 하세요.
갑 용 : 즌기두 없는디 손주들 공부를 으띃게 시킨다구 오라구햐? 것다가 며느린 번듯한 직장까정 다니는디.
말 자 : 아버지. 오빠네 생각하시는 거 반 만큼이라도 제 생각하신 적 있어요?
갑 용 : ... 갸가 너하고 같어? 니 오빠야 조씨 가문에 대를 이어서...
말 자 : 그래요? 그럼 여기 와서 대 이으라고 하세요.
갑 용 : 싹박아지 웂는 년. 그러니께 서방한티 소박이나 맞지.
말자 발끈해서 돌아본다.
갑 용 : 이혼허구 쩔쩔 매는 년 데려다 멕여주고 재워주구 혔더니, 이제 갈 디 생겼다 이거 지? 그려, 가 이 년아. 을매나 잘 사나 한번 보자.
말자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서러운지 눈물 핑 돈다.
(E) 갑용 비명소리.
돌아보면 갑용 스쿠터 밑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10. 갑용 방
갑용 나직이 신음 흘리며 누워있다.
말자 근심스러운 얼굴로 보다가 나간다.
갑용 신음소리 크게 내며 방문에 귀 갖다 댄다.
11. 마루
근 택 : 성님 좀 으떠시냐?
말자 대꾸 않고 힘없이 걸터앉는데,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갑용의 신발 눈에 들어온다.
지저분하고 낡은 신발, 공연히 화가 난다.
말 자 : 죽은 사람 분담금까지 다 낸다는 데, 꼭 다섯 가구를 채워야 돼요?
근 택 : 그게 농촌즌화촉진뱁이잖여. (손가락 펴 보이며) 다슷 가구. 이거 안 맞추면 돈을 보따리두 싸 줘두 소용웂지.
말자 벌떡 일어나 가방 집어 든다.
근 택 : 다시 가는 겨?
말 자 : 어차피 합동조사반 왔다 가면 더 있을 이유도 없어요.
가방 끌고 간다.
근 택 : 그나저나 우리 점순씨는 어떡헌댜...
갑 용 : 촉새 겉은 눔.
근 택 : (벌떡 일어나며) 스쿠터에 깔리셨다더니 멀쩡허시네유.
갑 용 : 사내 눔 주딩이가 싸면 좆때감지를 짤라버려야 허는겨. 것다가 우리 점순씨?
근택 슬금슬금 뒷걸음치자, 갑용 낫 집어 든다.
갑 용 : 이리 와. 오늘 학성리에 고자 한 눔 나는 거여. 어여 안 와?
낫 흔들며 쫓아가면, 근택 바지 앞자락 쥐고 허둥지둥 달아난다.
12. 점순 집
점순 휴대폰 통화하는데 표정이 좋지 않다.
남 자1 : (F) 벌써 올라오신다고요? 형한테 가 계시지 그래요. 거기가 평수도 넓어서 계시 긴 편할 건데.
점 순 : 오기 전까지 있었잖니. 내 손주놈 주려고 장조림도 해놨다.
남 자1 : (F) 요즘 고기 안 먹여요. 형한테 전화 한번 더 해보세요. 우린 집도 좁은데...
점 순 : ... 그래 알았다. 그리고 너희들하고 상의할 일이 있는데...
남 자1 : (F) 지금 바쁘거든요. 나중에 제가 전화 드릴게요.
전화 끊기자 허탈한 얼굴로 휴대폰 본다.
(E) 스쿠터 소리
점순 얼른 눈가 훔치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갑용 마루에 놓인 반찬 통들 보자 심각해진다.
점 순 : 다친 덴 괜찮으세요?
갑 용 : 고 년 때문에 황천객 될 뻔혔다.
흘끔흘끔 반찬 통 보자, 점순 힘없이 미소 짓는다.
점 순 : 애들 줄려고 해봤는데... 말자한테 가져가라고 일러 놓을게요.
갑용 안도의 한숨 내쉬고 일어선다.
갑 용 : 요새 귀농허는 사람두 많다는디 왜 우리만 소식이 웂는 줄 아냐? 다 즌기 때문이 다. 그 거 웂다는 소리만 들으면 죄 고갤 절레절레 흔든다는 거 아니냐. 즌기만 들이면 우리 학성리두 예전처럼 될 거다. 집집이 사람소리 넘쳐나구 놀리는 땅두 쥔을 찾아 갈 거다.
점순 말없이 갑용 본다.
갑 용 : 정 안 되면 땅을 팔어서라두 사올테니께 두구봐라. 조사반 오기 전까지 딱 한 눔 만 들이면 되는 거 아녀, 딱 한 눔.
13. 농업기술 센타 마당
대식 선글라스 쓰고 돌아선다.
영 미 : 멋지다, 오빠. 고향사람들 알아보면 귀찮으니까 땅 찾기 전까지 그 거 쓰고 있자.
대 식 : 이십 년두 넘게 내깔려 뒀는디 갠찮을까?
영 미 : (서류 보이며) 오빠네 땅 맞잖아.
대 식 : 그 동안 코빼기두 안 비쳤는디, 땅 찾는다구 떡하니 나서면 경우가 그렇잖어.
영 미 : 그러니까 귀농신청까지 하고 가는 거잖아. 들어가서 모르는 척 농사짓고 사는 거 야. 그러다 내 땅이다 우기면 만사 오케이지 뭐.
대식 영 내키지 않는 듯 선글라스 썼다 벗었다한다.
영 미 : (답답하다는 듯) 오빠네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왜 알려주셨을 것 같아? 그 거 찾아 서 열심히 살라고 그런 거 아냐.
대 식 : 그건 그렇지만...
영 미 : 평생 웨이터나 하면서 살 거야? 맥주병이나 나르고, 술 취한 놈 뒤치다꺼리나 하 는 게 좋아?
대식 고개 푹 숙이고 땅바닥만 벅벅 문지르고, 영미 답답한 듯 담배 꺼내 문다.
직 원1 : (헐레벌떡 뛰어나오며) 거기 학성리루 귀농 신청하신 분들 맞쥬?
대식 얼른 선글라스 낀다.
영 미 : 대출은 바로 되요?
직 원1 : 당장은 보증인 웂인 곤란허구유.
영미 실망한 기색 역력하다.
직 원1 : 근디 언제쯤 들어가실 건가유?
영 미 : 그런 거까지 일일이 알려줘야 돼요? 때 되면 가는 거지.
직 원1 : 거시기 뭐냐... 그짝 사정이 하두 급허다구 혀서, 빨리 좀 들어왔으면 허던디...
영 미 : (콧방귀 끼며) 이사비라도 줘봐요, 내일이라도 갈테니까.
직원1 눈 껌뻑이며 영미 본다.
14. 갑용 밭
갑용 잡풀 무성한 밭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있다.
멀지 않은 곳 빈 집, 한쪽이 무너져 내린 담벼락에 낡은 대문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다.
풀죽은 얼굴로 돌아서는데 반쯤 땅에 묻힌 낡은 호미 발에 걸린다.
호미를 파내 묻은 흙 떨어내고 이리저리 본다.
갑 용 : (호미질 하며) 땅뎅이 웂는 농사꾼보다 처량한 게, 쥔 웂는 땅이여. 지난 정을 생 각혀서 씨만 뿌리면 알아서 키워줄틴가? 대답 즘 혀봐라, 이 목깡이 겉은 놈아.
하는데 녹슨 호미 목 부러진다.
멍한 얼굴로 낡은 나무자루 보다가 울상이 된다.
갑 용 : 살 날두 울매 안 남았는디, 죽어서 조상님들 낯을 으띃게 본디야? 고향 말아묵은 놈이라구 독짝 세례를 면치 못할 거여. 조상님 이번 한번만 봐 주시유. 즌기 줌 들어오게 지발 굽어살펴주시유, 조상님네.
(E) 휴대폰 소리.
갑 용 : 조갑용이오. 뭐여? (벌떡 일어서며) 거시기가 온다고? 그깐녀리거 이사비용이 문제여? 그려, 알았어. (휴대폰 끄고 한바탕 크게 웃고는) 어이구 조상님, 증말루 고맙습니다.
15. 고추밭
근 택 : (쓰러진 고춧대 세우며) 잘 영글면 뭐할겨, 사방천지가 죄 고추밭이든디... 지술센 타 시키는대루 혔다가 농사 말아먹은 게 한 두 해가 아닌디 어쩌다가 또 그 말을 들었을까...
잡초 뽑아 던지는데, 스쿠터 소리 난다.
갑 용 : 영근 거 봉께 헛지랄허구 다닌 것만은 아닌가벼?
근 택 : 성님네 배 농사는 지절루 되는 가 벼유? 으딜 그렇게 쏘다닌데유?
갑 용 : 참새새끼 배아지 부르면 잡아서 막걸리 안주나 허까?
근 택 : 별일이구만유. 성님이 술 산단 소릴 다 허시구.
갑 용 : 술이야 자네가 사구, 우리 배 처 묵은 참새 안주만 낸다 그 말이지. (껄껄 웃다가) 내일 즘심 먹구 정자나무 아래루 와. 이삿짐 부려야 허니께.
근 택 : (놀라서) 내일 간데유?
갑 용 : 가다니?
근 택 : 점순, 아니 말자 고모 말여유.
갑 용 : 즌기가 낼 모레면 들어올 건디 가긴 어딜 간다구 그려.
근택 얼굴 순간 환해진다.
갑 용 : 니 눔 좋자구 잡아둔 거 아닝께, 쓸데웂는 맘 품지 말어.
16. 점순 집
점순 힘겹게 펌프질 하는데 헛바람만 나온다.
근택 쭈르르 달려와 펌프 아가리에 물 붇는다.
근 택 : 이리 내봐. 안즉 질이 안 들어서 그럴 거여.
점순의 뒤로 가서 펌프 손잡이 같이 잡는다.
근 택 : 츰엔 츤츤히 혀야지. 대처 나가 살었다구 발쌔 잊어 먹응겨?
점순과 함께 오르락내리락 펌프질하다가 묘한 표정 짓는다.
점순 당황해서 얼른 빠져나오자, 근택 아쉬운 표정 짓는다.
점 순 : 저녁때도 안 됐는데 어쩐 일이세요?
근 택 : 자네 보구 싶어서 왔지.
점순 실소한다.
근 택 : 성님한테 다 들었구만. 잘혔어. 여우새끼두 뒈질땐 고향으루 대가릴 둔다잖어. 여가 어디여? 자네가 나고 자란 학성리 아녀. 자식들 키워 놔 봐야 소용웂는 거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고...
점순 쓸쓸히 웃는다.
근 택 : 고향땅이서 남은 여생 보내는 것두 복받은 거 아니것어.
점 순 : 있다가 식사나 하러 오세요.
부엌으로 들어간다.
근택 흐뭇한 얼굴로 본다.
17. 영미 집 앞, 밤
택시 간다.
영 미 : 꼭 내리기 전에 메타가 올라가더라.
대 식 : 이사비두 보내준디야?
영 미 : 우리가 가야 전기가 들어온다잖아. 잘됐어. 오빠 짐은 별로 없으니까 가서 들고 와. 이사 비 내준다고 했으니까 포장이사로 하자.
대 식 : 넘의 돈이라구 그럼 못써.
영 미 : 오빠 웃긴다. 고향 사람이라고 편드는 거야?
대 식 : 그냥 그렇다는 거지...
영 미 : 알았어. 얼른 갔다 오기나 해. 보령에서의 마지막 밤인데 분위기나 좀 내보자.
대 식 : (얼굴 환해지면서) 그려, 얼른 갔다 올게.
영미 멀어지는 대식 보다가 돌아던다.
강 두 : 진짜 신혼부부 같은데?
영미 얼른 골목으로 강두 잡아끈다.
강 두 : 돈은?
영 미 : 떼먹고 도망갈 거 아니니까 자꾸 얼쩡거리지 마.
강 두 : 지 애비 수술비 없다고 사정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배짱 튕기는 거야 뭐야?
영미 어금니 꼭 물고 강두 쏘아본다.
강 두 : 이 달 안으로 천만 원 못 채우면 섬으로 팔려갈 준비나 하는 게 좋을 걸?
영 미 : 대출 받고 땅 팔면 그까짓 거 금방이니까 그 상판때기나 치워.
밀치고 가려는데,
강 두 : (팔 낚아채며) 도망갈 생각은 말어. 내 별명이 사냥개인 거 알지?
영미 신경질적으로 팔 뿌리치고 간다.
18. 정자나무 아래, 낮
갑용 손목시계 보며 초초한 듯 오가고, 말자 못마땅한 얼굴로 그 모습 본다.
근 택 : (갑용 눈치 살피며) 그이들 참 마침맞게 오네. (말자 보고) 근디 고몬 안 온다냐?
말 자 : 홍씨 아저씨 살던 집 청소하고 있어요.
근 택 : 거길 왜?
말 자 : 지금 오는 사람들, 거기다 짐 풀게 한데요.
근 택 : 이사 오는 눔이 치워야지 그걸 왜 점순씨가 햐? 요새 허리두 안 존디.
갑 용 : 갸가 허리가 안 존지 으띃게 아는겨?
근 택 : 아니 그거야... 아유, 성님두. 마을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런 걸 모르것슈.
갑 용 : 내 동상한티 수작부리면 알지? 괜히 찝쩍댔다간 사단나는 겨.
근 택 : 성님두 참, 점순씨가 무신 간장두 아니구... (낮은 소리로) 어떤 후레자식들이 우리 점순씰 부려먹는 거여, 시방.
19. 달리는 자동차
영 미 : 아직 멀었어요?
기 사 : 다 왔습니다.
영 미 : (대식 보고) 잘해 오빠. 땅 찾아서 땅땅거리면서 살아보는 거야, 알았지?
대식 못내 불안한 얼굴로 선글라스 만지작거린다.
20. 정자나무 아래
귀에 거슬리는 브레이크 소리 내며 트럭 선다.
근 택 : (이기죽거리며) 만세라두 혀야 되는 거 아녀?
트럭 문 열리고 대식, 영미 내린다.
근택과 말자 황당한 얼굴로 둘 본다.
영미 가슴이 훤히 보이는 블라우스에 미니스커트 하이힐하고 있고, 대식 선글라스에 번쩍이는 부츠 신고 있다.
근 택 : 어서 저런 쌩양아치들이 온겨.
갑 용 : (헛기침 하고) 어서들 오시게...
영미 활짝 웃으며 걸어오다가 힐이 땅에 박혀 꼬꾸라진다.
근 택 : 지랄하구 자빠졌네...
21. 대식 집
마을 사람 모두 이삿짐을 나르느라 분주하다.
대식 선글라스 낀 채 가구들 번쩍번쩍 들어 나르고, 갑용 그 모습 흐뭇하게 본다.
땀 훔치던 말자, 나무그늘 아래서 발목 만지며 쉬고 있는 영미 흘긴다.
근택 점순이 들고 있던 걸래 빼앗아 들며, 이삿짐 나르는 대식 노려본다.
갑용 대식에게 막걸리 따라주며 기분 좋게 웃는다.
22. 갑용 집, 밤
호롱불 아래, 대형건전지 매달은 라디오에서 오래된 가요 흘러나온다.
갑 용 : (휴대폰) 우리는 다 준비 됐응께. 암, 다슷 가구지. 그려, 고생햐.
콧노래 흥얼거리는데 말자 저녁 상 들고 들어온다.
갑 용 : 다음주 반 굉일에 조사반 온다고 허드라. 내가 니보고 고모처럼 여 눌러 살라고는 안 혀도, 즌기 놓을 때까진 헛생각허면 안된다. 알것냐?
말자 못들은 척 국에 밥 뚝뚝 만다.
23. 점순 집
점순 빨래 걷는다.
근 택 : 삽짝이 헐렁헐렁헌 게 손 좀 봐야것구만. (봉지 내밀며) 풋고추 줌 따왔어. 된장 에 푹 찍어서 먹으면 그만일 거여.
점 순 : 번번이 고마워서 어떡해요.
받아 들려는데, 근택 봉지 잡고 놔주지 않는다.
근 택 : 자네한테 읊어 주려구 한 구절 지었어. 들어봐. 이런들 어쩌허리 저런들 어쩌허 리, 짝 잃은 외기러기들 찌리 엉켜본들 어쩌허리.
점순 입 가리고 웃는다.
근 택 : (고추 하나 꺼내들며) 임자. 내 나이 육십이어두 이 눔들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허 진 않을 거여.
점 순 : (눈 흘기며) 망측해라.
봉지 잡아채서 얼른 부엌으로 들어간다.
근택 고추 베어 물고 무안한 얼굴로 보다가, 눈에 힘 딱 주고 성큼성큼 부엌으로 간다.
24. 개울 가, 낮
영미 지적도 들고 주변 살피고 있다.
대 식 : 이사 오자마자 그럴 거 있어?
영 미 : 오빤 궁금하지도 않아? 어디보자, 여기가 또랑이니까 저쪽 산인가?
대 식 : 저긴 북쪽이고 반대쪽 아녀?
영 미 : 또랑이 이렇게 꾸부러지니까 저쪽 아니야?
근 택 : 뭣들 허는 겨?
대식 얼른 선글라스 끼고 보면, 근택 농기구 실은 자전거 세워 놓고 있다.
영미 잘 됐다는 얼굴로 쪼르르 달려간다.
근택 출렁이는 영미 가슴에 흠칫한다.
영 미 : 여기서 오래 사셨어요?
근 택 : (젖가슴 훔쳐보며) 그거야...
영미 근택 시선의 느끼고 빙긋 웃더니, 바짝 기댄다.
근 택 : 초여름인디 왜 이릏게 더운겨...
영 미 : (지적도 보이며) 여기 산 19번지가 어디예요, 오빠?
근 택 : 오빠?
영미 쌩긋 웃어보이자, 근택 해발쪽 웃는다.
25. 배 밭
조막만한 배들이 달려있고, 갑용 그 아래서 쇠스랑 들고 흙 고른다.
땅콩을 콕콕 눌러 심으며 따라오는 말자도 보인다.
갑 용 : 너무 짚숙허게 늫으면 안댜. 손가락 한 마디만큼만 살살 찔러 늫는 겨.
말자 갑용 힐끔 보더니 손가락 다 묻히도록 푹푹 찔러 넣는다.
갑 용 : 파종두 늦었는디 내년이 캐먹을 겨?
말자 벌떡 일어나 오두막으로 간다.
갑 용 : 해가 중천인디 은제 다 심을라구 또 쉬는 거여?
말 자 : 오늘 비료도 준다면서요.
삽 들고 비료 섞는다.
갑 용 : 땅콩헌 디는 내일 뿌려라, 잉.
말자 대꾸하지 않고 불룩하게 비료 실은 외바퀴 카트에 삽 찔러 넣고 간다.
갑 용 : 그년 승질머리하고는. (혀 차며) 즌기 들이면 저것두 재갈 들여야허는디. 누가 데 려 간다고 헐 거 같지두 않구, 걱정이여.
영 미 : 어머 정말 밭이 있네.
갑 용 : (반갑게) 샥시가 여기까지 으쩐 일여? (대식 보고) 자네두 왔는가?
대 식 : 그게... 하두 가보자고 혀서유...
갑 용 : 배꽃두 다 떨어졌는디 뭐 볼 거 있다구...
영 미 : 여기가 몇 평이에요?
갑 용 : 댓 마지기 되려나.. 근디 왜?
영미 고개 끄덕이며 둘러보는데, 힐이 땅에 박혀 걷는 모양이 삐뚝삐뚝하다.
갑 용 : 샥시가 야들야들헌 게 능수버들 겉구만. (웃다가) 그려, 지낼만 헌가?
대 식 : 그냥 저냥유...
갑 용 : 밭이 한번 가볼텨?
대 식 : 무신 밭이유?
갑 용 : 그거야 내 밭이지. 일손이 웂어서 놀리는 디가 있는디 말여. 지술센타에서 말 안 혀주던가? 소작, 아니지 임대농으루 안내허라구 일렀는디.
대식 근심스러운 얼굴로 영미 본다.
갑 용 : 여긴 잡어갈 눔두 웂어. 걱정허지말구.
대식의 등 떠민다.
26. 배 밭 다른 곳
말자 비료 주고 있는데 영미 못 본 척 지나간다.
말 자 : 땅콩 씨 다 쪼개지겠네. 가운데로 좀 걸어가시지?
영 미 : 배나무 밭에 땅콩 씨가 어디 있어요?
말자 영미의 힐에 패여 나온 땅콩 씨 집어 던진다.
영미 둘러보면 그제야 나무 밑으로 곱게 갈린 땅 눈에 들어온다.
말 자 : 굽을 떼고 다니든가, 아니면 맨발로 다니던가.
영 미 : 이런 거 신어보기나 했겠어?
힐 벗어들고 간다.
말 자 : 뭐 먹을 게 있다고 와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어, 재수 없게.
영미 팩 돌아서 쏘아본다.
말자 코웃음 치고는 하던 일 한다.
영 미 : (다가서며) 여기가 산19번지인줄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
말자 비료 떠서 영미 쪽으로 뿌린다.
영미 피하다 넘어진다.
말 자 : (비웃으며) 넘어지는 게 특기야?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
영미 발딱 일어나서 삽 잡고 노려본다.
말 자 : (소매 걷어 부치며) 이게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지랄이야?
영 미 : (삽 집어 던지고) 당신은 언제 봤다고 말끝마다 반말이야?
말자 어금니 꼭 물고 달려든다.
27. 갑용 밭
갑용 허리춤에 손 얹고 밭 보는데 뿌듯하다.
갑 용 : 여가 말하자면 문전옥토여. 집 가찹구, 또랑 옆이구 말여.
대식 선글라스 벗고 땀 닦다가 갑용 돌아보자 얼른 다시 쓴다.
갑 용 : (가만히 살피며) 자네 춘부장 함자가 으띃게 된다구 혔드라?
대 식 : (당황해서) 근디 엿다가 뭘 심는데유?
갑 용 : 잉? 여기? 가만있자... 그려, 파종이 좀 늦긴 혔어두 참깨가 좋겠구만. 다들 고 추 허느라구 올핸 참깨금이 금값일거구만. 우신 삽 들구 조금씩 갈구 있으면 황가 헌티 경운기루 한 바퀴 싸악 돌라구 헐 테니께.
신나게 설명하지만 대식 듣는 둥 마는 둥이다.
28. 점순 집
근택 넋 나간 얼굴로 마루에 앉아 있다.
근 택 : 그거 참 몽실몽실헌게 아직두 심장이 벌렁거리네...
점 순 : (상 놓으며) 뭐가요?
근 택 : 그 샥시 말여. 미끈허게 빠진게 말이지...
하는데 점순 곱지 않은 시선에 움찔한다.
근 택 : (크게 헛웃음 웃으며) 아닐세. 그려, 자네가 있는데 그럼 쓰나.
점 순 : 식사나 하세요.
근 택 : 자네 시방 질투하는겨?
점 순 : 제가 아저씨 안사람이라도 되요? 무슨 질투를 한다고 그러세요.
근 택 : 안사람?
껄껄 웃다가 점순 손 잡는다.
근 택 : 성님헌티 허락을 받어야것어. 은제까지 이릏게 있을 수만은 웂구만.
점순 피식 웃는다.
근 택 : 왜? 못 헐까봐? 육십 평생 까짓 즌기 웂이 잘만 살었어. 즌기보다 중한게 있다 는 걸 성님두 알어야지.
주먹 불끈 쥐고 일어선다.
29. 대식 집
대식 넋 놓고 마루에 앉아 있다.
대 식 : ... 이건 아닌디...
흙투성이의 영미 화난 얼굴로 들어오다가 힐 때문에 넘어진다.
대식 얼른 가서 일으킨다.
영미 대식 손 뿌리치고 신발 벗어들어 신 돌에 쳐댄다.
대 식 : 뭐 하는겨?
영 미 : 넘어지는 게 특기라고? 힐이나 신어봤어?
대 식 : 옷을 또 왜 그랴?
영 미 : (헐렁해진 뒤꿈치 떼어 던지고) 가자 오빠. 내가 누군지나 알고나 푼수를 떠는 거 야? 남의 땅이나 부처 먹는 촌년이 어디서.
30. 갑용 집 앞, 밤
근 택 : 지가 점순씨를 평생의 반려자루 삼으려구 하는디 성님 의향은 어쩌신가유? 아녀... 점순씰 저헌티 주시쥬. 행복허게 해주것습니다, 성님.
불만족스러운 듯 머리 긁적인다.
근 택 : 그려. 점순씨를 사랑헙니다. 그려, 사랑. 말 참 좋으네, 동글동글헌 게.
심호흡하고 들어간다.
31. 마당
갑 용 : 너 이노옴.
근택 화들짝 놀라서 주저앉는다.
갑 용 : 뭐가 어짜고 저쨔?
근 택 : 아니, 성님 지 말을 끝꺼지 듣구서...
하다가 대식과 영미 보고는 엉거주춤 일어선다.
갑 용 : 땅을 내 놓으라구?
영 미 : 거기 토지대장하고 지적도 보세요, 분명히 우리 땅이라고요.
말자 얼른 서류 본다.
근 택 : 아니 이게 무신 자다가 봉창 두디리는 소리여.
갑용 말자 보는 서류 뺏어든다.
갑 용 : (눈 휘둥그레지며) 심봉달이?
근 택 : 봉달 성님? (무릎 탁 치며) 허이구 그려, 봉달 성님 땅이 있었지. 맞어.
갑용 서류 든 손 부들부들 떨린다.
근 택 : 근디, 그 성님이 자식이 있긴 있었는디 지집은 아니었는디...
영 미 : 제가 아니고 우리 오빠요.
다들 대식을 보자, 대식 움찔하며 뒷걸음친다.
근택 재빨리 달려들어 대식의 선글라스 냉큼 벗긴다.
근 택 : (두 손으로 얼굴 잡고 이리저리 보더니) 허이구 맞네. (웃으며) 봉달성님 자식이 맞어. 성님, 봉달성님 아들내미가 맞구만유. 이 눔, 속이 시커멓구만. 그려서 봉 사앤경을 쓰구 다녔구만, 그려.
하다가 갑용 보고는 정색하고 물러난다.
영 미 : (말자 쏘아보며) 웬만하면 좋게 해결을 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요.
말 자 : 안 되면 어쩔 건데?
영 미 : 남의 땅에서 허락도 없이 농사를 지어 먹었으니까 사용료도 내.
말 자 : 저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소매 걷어 올리며 가려는데,
갑 용 : 시끄러. (대식 노려보며) 잡목만 우거진 산자락, 삽 한 자루 들구 개간헌 게 이십 년 전이여. 가물면 물 져 나르구, 장마 지문 물질내느라 몇날며칠을 지샌 게 바루 나여. 영글만허면 달라드는 산짐승들허구 목숨 걸구 싸운 것두 나여. 언감생심 어서 히히닥거리다 온 것들이, 감히 내 땅을 내 놓으라구?
대 식 : 으르신 그게 아니구...
갑 용 : 너 이 노옴.
대 식 : 지 말은 그게 아니구유...
영 미 : 아니긴 뭐가 아니야, 오빠. 누가 남의 땅 쓰라고나 했나? (갑용 보고) 여러 말 할 것 없고, 내일 당장 군청에 가요. 가서 결판을 내자고요.
갑 용 : 그래 좋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대 식 : 으르신, 고만 고정허시고유...
영 미 : 가 오빠. 여차하면 전기고 뭐고 없어.
갑용 움찔한다.
영미 말자 쏘아보고는 대식 떠밀며 나간다.
근 택 : (몸서리 치며) 고년 백년묵은 여시였구만 그려.
갑용 두 눈 질끈 감더니 주먹으로 마루 힘껏 내려친다.
32. 대식 집
대식 벽 보고 누워있다.
영 미 : 뭐야 오빠? 그렇게 넋 놓고 있으면 땅이 저절로 굴러와?
대 식 : 우리 말여. 그냥 뜰까?
영 미 : 미쳤어? 우리 땅이 코 앞에 있는데 어딜 간단 말이야?
대식 고통스럽게 신음 토한다.
영 미 : 고향 사람이라고 미안해서 그래?
대식 방바닥 꺼져라 한숨 내쉰다.
영 미 : 알았어. 원래 중이 자기 머린 못 깎는 다니까, 오빠는 가만히 있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대식 두 눈 껌벅이며 물끄러미 벽만 본다.
33. 점순 집
점 순 : 그 이가요?
근 택 : 그 눔 의뭉스럽기두 허지. 그러니께 혹시나 알아볼까봐 봉사앤경을 쓰구 지랄혔던 거 아녀.
점순 심란한 얼굴로 빨래 개킨다.
근 택 : 앤경 벳기니께 딱 봉달성님이드라구. 거참...
점 순 : 그 이 아줌니는 잘 계신데요?
근 택 : 잉?
점 순 : 아무리 이유가 불손해도, 이십 년 만에 고향사람이 찾아왔으면 그 정도 문안은 나 누는 것이 도리잖아요.
근 택 : 그것두 그렇긴 헌데, 워낙이 경황이 웂어서 말여...
34. 달리는 경운기, 낮
근택 경운기 몰고, 짐칸에 갑용과 영미 타고 있다.
둘 서로 노려보다가 고개 돌려 외면한다.
35. 구청
직 원2 : (토지대장 보며) 심봉달씨 소유가 맞네요.
영미 득의만면이다.
갑 용 : 내가 수십 년을 부쳐 먹은 땅이여. 이 그 깟 서류 하나루 넘의 게 되버리는 게 될 법이나 허는 소리여?
영 미 : 왜 말이 안 돼요?
직원2 뒤에 서있던 직원3 갑용을 알아본다.
직 원3 : 학성리 어르신이죠? 이번 주에 합동조사반 간다고 하던데 좋으시겠습니다.
갑 용 : 좋기는 개뿔이나...
직 원3 : (토지대장 힐끔 보고는) 땅 주인과 소작인 사이의 분쟁은 종종 있는 일이죠.
영 미 : 결과가 뻔한데 분쟁이랄 거 있어요?
직 원3 : (갑용 보고) 법무사 사무실 한 번 찾아가 보세요. 분쟁이 있다는 건 서류처럼 확 실하지 않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까요.
순간 갑용 얼굴 환해진다.
36. 갑용 밭
대식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삽질한다. 삽 대가리를 밟아 누를 때마다 땀이 땅 위로 뚝뚝 떨어진다.
점 순 : 이거라도 끼고 해.
대식 돌아보면 점순 장갑 들고 있다.
점 순 : 고향사람도 못 알아보고 미안하네.
대식 고개 숙이고 장갑 만지작거린다.
점 순 : 엄니는?
대 식 : 올 봄이 돌아가셨시유...
땀인지 눈물인지 장갑으로 얼굴 쓱쓱 문지른다.
점 순 : (혀 차며) 대처 나가 살면서 소식 한번 없더니...
대식 장갑 끼고 삽 든다.
점 순 : 아버지 산소는 가봤어?
37. 무덤
대식 참담한 표정이다.
한쪽이 쓸려 곧 무너질 것 같은 무덤,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점 순 : 작년 장마 때 이랬다는구나. 자리가 나쁜 건 아닌데 돌보는 사람이 없으니...
대 식 : 엄니가 월남에 묻히셨다구 혔었지유. 여 기신줄 꿈에도 몰랐구만유.
점 순 : 그 이 대처 나가던 해 사망통지서가 왔어. 연락도 안 돼서 같이 온 유품하고 여기 모셨네.
봉분 주변 서성이며 잡풀 잡아 뜯는데, 풀뿌리에 딸려 흙덩이가 우수수 떨어진다.
대식 눈물 핑 돈다.
38. 법무사 사무실
법무사 : 평온 공연허게 선의이고 무과실루 이십 년 동안 자신의 소유라는 걸 넘헌티 보이 는 경우,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구 민법에 써있쥬.
영 미 : 그게 무슨 소리에요?
법무사 : 이십 년 동안 내버려두면 소유가 넘어갈 수두 있다 그 말이쥬.
갑용 얼굴 환해지고, 영미 당황한다.
법무사 : 꼭 그렇다는 건 아니구유. 소송 가문 모르쥬. 판결이야 판사가 내리는 거니께.
영 미 : 그럼 소송비용은요?
법무사 : 대개 이런 건 재판 한번으루 끝나기 어렵쥬. 어느 한쪽이 쉬 포기허면 모르까...
갑용, 영미 : 누가 포기를 한다고...
동시에 묻다가 서로 외면한다.
법무사 : 그러니께 공판이 팔 차 구 차에 십 차 넘어가는 건 유두 아니쥬.
근 택 : 거참 답답허네. 도대체 을매나 드는겨.
법무사 : 양 짝이 박터지게 붙으면 기천가지구두 어렵쥬.
갑용, 영미 입 딱 벌린다.
법무사 : 그러니께 좋게 합의 보는 게 좋지 않것슈?
39. 달리는 경운기
근 택 : 결국 변호사눔들 존 일만 시키는 거구만, 그려.
갑용과 영미 답답한 얼굴로 서로 외면한 채 앉아있다.
40. 무덤, 밤
대식 멍하니 지는 해 바라본다.
41. 대식 집
영미 마루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다.
42. 갑용 방
호롱불 흔들리는 아래, 갑용 머리에 수건 동여매고 누워있다.
43. 대식 집, 낮
대식 삽 든다.
영 미 : 아침부터 어딜 가?
대식 대꾸 않고 나가려는데,
영 미 : 어떻게 되가는 지 궁금하지도 않아?
대 식 : 공연히 심쓸 거 웂어.
영 미 : 오빠?
대 식 : 이제와서 으르신헌티 잘못혔다구 혀봐야 소용웂는 일이구. 니두 분란 일으키지 말 구 엉댕이 붙이구 살 궁리나 혀.
나간다.
영미 대문 나서는 대식 보다가 어금니 꼭 문다.
44. 갑용 집 앞
말 자 : 식사하고 나가세요.
갑 용 : 일 웂다.
결연한 얼굴로 간다.
45. 정자나무 아래
갑용 영미 서로 응시한 채 서있다.
갑 용 : 소송헐 돈은 준비 됐어?
영미 표정 굳는다.
갑 용 : 꼴을 보아허니 기생으루 나서두 모지랄 것 같은디 애진즉이 포기허지.
영 미 : 그까짓 거 급하면 몸이라도 못 팔까봐요?
갑용 피식 웃는다.
영 미 : 전기 조사반 오는 날이 이번 주 토요일인가요?
갑용 미간 꿈틀한다.
영 미 : 괜히 전기 들인다고 용쓰지 마시고 양로원 같은 데나 알아보세요.
갑 용 : 터진 주딩이라구 어디서 함부로...
영 미 : 누가 할 소린데요?
둘 서로 노려본다.
영 미 : 좋아요. 제가 양보하죠. 대신 조건이 있어요.
갑용 미심쩍은 얼굴로 본다.
46. 갑용 밭
근 택 : (혀 차며) 삽질허는 꼴허구는...
보면 대식 밭 갈아엎는다.
근 택 : 이눔아, 니가 시방 삽질이나 허구 있을 계제여?
대식 근택 보고 꾸벅 인사하고 다시 삽질한다.
근 택 : 등신같은 눔. (돌아서려다가) 그 눔 삽질허는 품은 딱 봉달성님이네.
47. 농협 앞
영미 상기된 얼굴로 통장 본다.
천만 원 찍혀있다.
갑용 고개 끄덕이며 보는 서류에는 ‘권리포기각서’ 써있다.
갑 용 : 돈만 들구 내빼는 거 아녀?
영 미 : 공증까지 받은 각서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갑 용 : 그건 그 거구 그 돈은 내가 보증 스구 대출받은 거니께 이자 따박따박 내야 댜.
영 미 : 걱정도 팔자시네.
갑 용 : 대식이허구두 이야기가 끝난 거지?
영 미 : 인감은 괜히 건네준 줄 알아요?
갑 용 : (혼잣말로) 허우대 멀쩡헌 눔이 지집 손이 놀아나는 꼴이라니.
경운기에 타서 영미 본다.
갑 용 : 삼십 리 길 걸어가라고 할 정도는 아니니께.
영미 순간 망설인다.
48. 갑용 집
말 자 : (휴대폰) 실장을 구한다고?
여 자3 : (F) 주말에 개업하는 미용실인데 급한가봐. 니 이야기 해뒀으니까. 얼른 와.
말 자 : 언제까지 가면 되는데?
여 자3 : (F) 그런 게 어디 있어. 내일이라도 당장 와야지.
말 자 : 토요일에 가면 안 될까? 그때면 대충 끝나는데.
여 자3 : (F) 한가한 소리하고 있네. 주말 전에 소식 없으면 못 오는 줄 알 테니까 섭섭하 게 생각하지 마.
말 자 : 전기 가설하려면 토요일까진 있어야 되는데...
여 자3 : (F) 너 어디 아프리카 같은 데 있니? 요즘 같은 세상에 전기 안 들어오는 데가 어 디 있어? 아무튼 알아서 해. 지난번에도 온다고 했다가 안 왔었잖아.
말자 힘없이 휴대폰 내려놓는다.
갑 용 : 전화 애껴 햐. 약 닳문 충전하기도 용찮으니께.
말 자 : 조사반 언제 온데요?
갑 용 : 알면서 뭐하러 물어? 밭이 비료는 다 줬냐?
말 자 : (벌떡 일어서며) 몰라요.
49. 대식 방
바닥에 ‘대식 오빠 보세요’ 라고 써있는 편지 놓여있다.
영미 손에 쥐고 있는 통장과 편지 번갈아 보더니 문득 편지 꼬긴다.
편지 두 손으로 꼭 쥐고 가만히 가슴에 댄다.
(E) 휴대폰 소리
강 두 : (F) 나야.
영미 바닥에 떨어져있는 통장 본다.
강 두 : (F) 거기가 학성리라는 데지? 지금 갈 테니까 짐 싸들고 섬에 갈 준비나 해.
영 미 : ... 돈 있으니까 오지 마.
강 두 : (F) 정말이야?
영 미 : 지금 갈 거니까 전화 끊어. 여기 오면 돈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거야.
휴대폰 집어 던진다.
50. 갑용 밭 근처
영미 빈 집에 몸 숨기고 밭 쪽 본다.
대식 나무 그늘 아래서 참 먹고, 점순은 그 옆에서 물 따라서 건네준다.
영미 어금니 꼭 물고 조심스럽게 자리를 뜬다.
51. 점순 집, 밤
점순 상 위에 찌게 올려놓는다.
근 택 : (못마땅한 얼굴로) 그런 눔 밥은 뭐하러 챙겨줬댜.
점 순 : 밥도 안 먹고 일하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래도 고향사람인데.
근 택 : 그 여시같은 년은 지 서방 밥두 안 챙겨주구 뭐하고 싸돌아 다니는겨.
점 순 : 미끈하니 보기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요?
근 택 : 내가 은제? 하여간 그것들 때문이 헐 말두 못 허구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녀.
점 순 : (새침하게 보고는) 변변한 찬도 없을 건데 저녁은 제대로 하나 모르겠네.
근심스러운 얼굴로 상 위에 반찬들 본다.
52. 대식 집
카바이드 불빛 하얗게 타고 있는 마루, 대식 편지 들고 앉아 있다.
대문 근처에 불빛 어른거리자 벌떡 일어난다.
점순 집 안으로 들어서다가 화닥닥 달려드는 대식에 놀라 가슴 쓸어내린다.
대식 장승처럼 서서 점순 보다가 힘없이 돌아선다.
점 순 : (마루에 반찬 통 놓으며) 색시 입맛에 맞을까 모르겠네. 쉬기 전에 얼른 먹고.. ?
대식 두 손으로 머리 감싸고 신음 토한다.
점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본다.
53. 갑용 집
갑용 코끝에 안경 걸고 호롱불에 각서 비춰 본다.
갑 용 : 어채피 소송가두 들어갈 돈, 밑진 장사는 아니지? 보증은 섰다마는 돈이야 봉달이 자식 눔이 갚을 것이구. 이만하면 됐어.
조심스럽게 각서 접어서 문갑에 넣는다.
말자 저녁상 들고 들어오는데 얼굴이 시무룩하다.
갑 용 : 대식이허구 일은 마무리 됐으니께 너무 걱정헐 거 웂다.
말 자 : ...내일 대전에 잠깐 갔다 와야겠어요.
갑 용 : 며칠 잘 붙어 있다혔더니, 그새 엉덩이가 근질근질 허냐?
말 자 : 이번에 안가면 평생 여기에 있어야 할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갑 용 : 잘 됐네. 지집들 머리카락 꼬부리는 것보다는 농사 짓는 게 백 배 낫다.
말 자 : (벌떡 일어서며) 아버지.
갑 용 : 왜 또 지랄이여. 니가 기어이 애비 뒈지는 꼴을 보려구 그러는 거여 시방?
말 자 : 이번엔 경운기를 안고 쓰러져도 모르니까, 맘대로 하세요.
근 택 : (E) 성님!
문 확 열고 숨 헐떡인다.
근 택 : 성님, 큰 일 났슈.
54. 정자나무
점 순 : 한밤중에 어딜 간다는 게야. 날 새고 어른들한테 말씀은 드리고 가야지.
대 식 : 그간 신세 많이 졌구만유.
점순의 손 뿌리친다.
갑 용 : (E) 이 눔 어디 있어?
허겁지겁 근택을 앞세우고 달려온다.
대식 고개 푹 숙이고, 갑용 대식 보고는 한걸음에 달려든다.
갑 용 : (멱살 잡으며) 이것들이 작당을 혔구만. 보증꺼지 세우구 야반도주를 혀?
대 식 : 으르신 그게 무신 말씀이레유?
갑 용 : (각서 꺼내며) 이걸 보구두 시치밀 뗄 참여?
근택 손전등 비춰 보면 ‘권리포기각서’ 이다.
대식 맥이 탁 풀린다.
갑 용 : 이 비얌같은 지집 어디 있어? 혓바닥을 뽑아서 돼지헌티나 줘버릴 테니께.
대식의 멱살 쥐고 흔들며 미친 듯이 영미 찾는다.
점순 한숨 푹 내쉰다.
55. 갑용 집
대식 마당에 무릎 꿇고 있다.
갑용 수건으로 머리 싸매고 마루에 앉아 있고, 그 옆에 말자 기가 막히다 듯 서있다.
근 택 : (편지 들고) 오빠, 미안해요. 미안 헐 짓을 왜햐? 이 돈은 제가 급한 곳이 있어서 먼저 쓸게요. 나중에 돈 벌어서 꼭 갚을게요. 갚기는 염병. 오빠, 사랑해요.
사랑? (점순 보며) 사랑이라는디?
갑 용 : (힘없이) 황가야, 그 옆이 대둣 병 줌 갖다다고.
근 택 : (병 흔들어 보며) 이게 뭐여, 술은 아닌디?
갑 용 : 싸게 안 갖구 와?
근택 냉큼 갖다 준다.
갑 용 : 다 부질웂다. 즌기불 아래서 제삿밥 받아보나 혔더니... 이제 무신 면목으루 조상 님을 뵌다냐. 그려, 말자 닌 대전이 가서 미용실인가 허는데 다니구 새서방 읃어 서 잘 살어라. 대식이 니 눔두 배밭이 잘 돌보고. 원래 니 눔 땅 아니냐, 거가.
근 택 : 성님두 참, 곧 돌아가실 양반 모냥...
갑 용 : 황가 니눔은 나 뒈지면 원웂이 주딩이 놀려대서 좋것구나.
점순 불안한 얼굴로 갑용 본다.
갑용 땅이 꺼져라 한숨 내쉬더니 돌연 대두 병 들어 입에 붓는다.
근 택 : 성님. (허겁지겁 달려와 병 빼앗고는) 이거 농약아녀. 소금물! 어여.
말 자 : 아빠!
대 식 : 으르신!
근택 수건으로 갑용 얼굴 훔치는데, 꽉 다물고 있는 갑용 입 본다.
56. 방
근택 갑용 조심스럽게 눕힌다.
점순 소금물 담은 바가지 들고 급히 들어온다.
근택 옳거니 바가지 받아든다.
점 순 : 병원에 전화 할까요?
근 택 : 전화는 무신. (실실 웃으며) 이거 드시구 좀 게워내야쥬.
무릎에 갑용 머리 괴고 입가에 소금물 흘린다.
점 순 : (정색하며) 아저씨?
근 택 : (눈 찡긋하며) 코루 쬐끔 들어갔을지두 모르니께 것다가 늫구 게우시라구 허까?
코에 흘리자 갑용 기침 연신 해대며 벌떡 일어난다.
점순 깜짝 놀란다
말 자 : (E) 아빠.
갑용 근택 내리칠 듯 주먹 치켜들었다가 냉큼 눕는다.
57. 마당
말자 문 열고 들어가려는데 근택 가로막는다.
말 자 : 아빠는요?
근 택 : (근엄한 얼굴로) 별루 안 드신 거 같긴허지만, 혹시 모르니께 날 새면 병원이 한번 가봐야허지 않것냐. 일단은 좀 쉬시라고 허고...
말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방 보다가 획 돌아선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있는 대식에게 득달같이 달려든다.
말 자 : (마구 쳐대며)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우리 아빠 살려내. 살려내란 말이야.
근 택 : 저 승질허구는... 고만혀.
뜯어 말리자, 말자 털썩 주저앉는다.
말 자 : (울음 터트리며) 제가 잘못했어요, 아빠.
대식 멀거니 말자 쳐다보고, 근택 피식피식 웃는다.
58. 갑용 집, 낮
갑용 집 외경.
59. 방
갑 용 : 빌어먹을 눔, 코에다 소금물을 부어? 아직두 얼얼허네.
말 자 : (E) 죽 가져 왔어요.
얼른 돌아눕는다.
말자 죽 그릇 들고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갑 용 : (힘겹게) 대전 간다더니 안즉 안 갔냐?
말자 뭔가 말을 꺼내려다 일어선다.
갑용 슬며시 웃는다.
대 식 : (E) 으르신.
말자 문 확 열면 대식 눈 내리깔고 서있다.
말 자 : 여긴 뭐 하러 왔어요?
갑 용 : 들어오라고 혀.
대식 조심스럽게 들어와 앉는데, 바라보는 말자 시선이 따갑다.
갑 용 : 뒈졌나 안 뒈졌나 확인하러 온 겨?
대 식 : 지가 밤새 생각을 혀 봤구만유.
말 자 : 짐 싸들고 떠나면 되지, 뭘 생각해봐요?
대 식 : ... 으째든 지 도장으루 맨든 각서, 지가 포기허것습니다.
말자 콧방귀 뀐다.
대 식 : 그러구 허락만 혀주신다면 으르신 밭을 지가 써 보것습니다. 참깨라도 심으면. 보 증슨 돈 갚을 방법두 되구 즌기 놀 때까지 세대수두 맞출 수 있지 않것습니까.
말 자 : 다 필요없으니까 당장 떠나요.
갑 용 : 아니여. 우쨌든 고향사람, 내 그 정도두 못 허것어? 데간허네. 나 좀 눕자.
힘겹게 눕자, 말자 조심스럽게 이불 덮어준다.
말 자 : (대식 보고) 뭐해요? 얼른 안 나가요?
대식의 등 떠밀며 나간다.
갑 용 : 근본이 틀려먹은 놈은 아니구만. (빙그레 웃다가) 아니지. 내가 누구 때문이 이 지랄을 허는디. 봉달이 헌티는 미안허지만 오래 데리구 있을 눔은 아녀.
60. 학성리
마을 전경.
갑용 활짝 웃으며 합동조사반 맞이한다.
조사반 세대수와 실제 거주자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을 돌아다닌다.
갑용과 조사반 대식 집에서 이야기 하고, 갑용 삽질하는 시늉하며 웃는다.
조사반 갑용 밭에서 대식과 이야기 한다.
근택 풀이 무성한 갑용 밭 보며 점순에게 귓속말 한다.
마을 사람들 떠나는 조사반 차에 허리 숙여 인사한다.
61. 배 밭
갑용 분무기 노즐 쥐고 약 뿌린다.
호스 따라가면 오두막 옆으로 경운기 엔진에 펌프 달려 돌아가고, 그 옆에 말자 물에 농약 섞느라 여념이 없다.
근 택 : 배가 제법 영글었네.
말 자 : 오셨어요?
근 택 : 닌 눌러 앉기루 결심 헌거여?
말자 시무룩해진다.
근 택 : 약발 하나는 기가막히는구만. 허긴 농약이 씨긴 씨지.
갑 용 : 여서 해찰허는 거 봉께 고추밭이 타들어가두 먹구 살 일이 있나벼?
근 택 : 새복이 멱감을 정도루 찰랑찰랑허게 댔응께 걱정붙들어 매셔유.
갑 용 : (말자 힐끔 보고는) 씰데 웂는 소리나 지껄일려구 끄질러 온겨?
근 택 : (못들은 척 갑용 밭 내려다보며) 허이구 저눔 삽질만 하다 날 새것구만. (갑용 보 며) 어채피 소작주기루 허신 거 경운기루 한바퀴 돌라구 허까유?
갑용 근택의 소매 잡고 다른 쪽으로 간다.
갑 용 : 있어봐야 득될 거 웂는 놈여. 씰데 웂는 짓 허지 말어.
근 택 : 공증헌 각서까지 있는디 뭐가 걱정인디유.
갑 용 : 하여간.
근 택 : 저러다 심들다구 뜨면 즌기는 어쩌려구유. 조사반 댕겨갔어두 놓기 전이 또 조사 헌다는디.
갑 용 : 니 눔이 은제부터 즌기 걱정을 그릏게 했댜?
근택 입맛 다시며 머리 긁적인다.
갑 용 : 좌우당간 가만이 있어. 괜히 나섰다가는 사단나는 중 알어.
62. 갑용 밭
대식 삽 짚고 돌아보면, 채 몇 미터 갈아엎지도 못한 밭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마에 땀 훔치고 다시 삽질하다가 삽 대가리 누르던 발 미끄러져 볼썽사납게 넘어진다.
벌떡 일어나 냅다 삽 걷어차지만, 오히려 발 잡고 고통스럽게 뒹군다.
근 택 : 둔너서 농사짓는 사람은 평생 처음 보는구만?
대식 엉거주춤 인사하고 다시 삽 쥔다.
근 택 : 경운기 몰아본 즉 있어?
대 식 : ... 오토바이는 좀 몰아봤는디유.
근택 한심스럽다는 듯 본다.
63. 점순 집, 밤
근 택 : 글렀어.
점 순 : (바늘귀에 실 꿰며) 어두워서 그런지 영 안 되네.
근 택 : 이리 내봐. 낮이 혀야지. 어둔 디서 허다가 손이라두 찔리면 어쩌려구 그려.
점 순 : 오빠가 못하게 해요?
근 택 : 성님 몰래 경운기 끌어다 주는 거야 어려운 일두 아니지. 근디 그눔 경운긴 귀경 두 못혔다는 구만. (실 끝에 연신 침 바르며) 영 용찮네. 앤경이라두 써야허나...
점순 실 꿰려고 애쓰는 근택 보며 빙긋이 웃는다.
근 택 : 됐다. 이래뵈두 아직은 쓸만허지?
바늘 건네는데, 점순 받을 생각은 않고 소리 내서 웃는다.
근택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점순 본다.
점 순 : 아저씬 경운기 잘 모시죠?
근 택 : 나야 발가락으루두 몰지.
점순 웃음 가득한 얼굴로 근택 바라본다.
근 택 : 임자 설마?
64. 갑용 집 앞, 낮
갑용 스쿠터 끌고 나온다.
근 택 : 새복부터 어디 가셔유?
갑 용 : 알 거 웂어.
근 택 : (헛기침 하다가) 오늘 경운기 줌 써두 되쥬?
갑 용 : 쓰구 지름이나 채워둬.
서둘러 간다.
근 택 : 허이구 이게 뭔 짓이여...
65. 농업기술센타 앞
갑용 나오자 직원1 따라 나온다.
갑 용 : 딴 사람 생기면 바루 연락 줘야여.
직 원1 : 요새 귀농 문의허는 사람들이 심심치않게 있응께유. 너무 걱정허지 마세유.
갑 용 : (주머니에서 봉투 꺼내주며) 애들 핵용품이나 사줘.
직 원1 : (손사래 치며) 지 할일 허는디 이러시문 곤란허쥬.
갑 용 : 몇 푼이나 된다구. (억지로 쥐어주며) 그럼 자네만 믿고 가네.
직원1 연신 허리 숙인다.
66. 달리는 스쿠터
갑 용 : 고향사람이 별거여? 들어와 정 붙이구 살면 고향사람 아녀. 그 깐 눔헌티, 미안 헐 것두 아쉬울 것두 웂어. 그려 즌기만 들이면 끝이여.
뽀얀 먼지 일으키며 간다.
67. 갑용 밭
갑용 눈 휘둥그레져 있다.
잡풀 무성하던 밭 어느새 말끔하게 갈아엎어졌다.
대 식 : (달려오며) 으르신.
갑 용 : 이게 으띃게 된 거여?
대 식 : (넙죽 인사하고는) 아저씨가 술이라두 한병 들구 찾아가 뵈라는디, 집이 뭐가 있 어야쥬. 대신 지가 열심히 혀서 이 은혜에 보답허것구만유.
갑 용 : (억지로 웃으며) 이웃찌리 돕구 사는 거야 당연허지. 그게 시골 인심 아녀...
68. 고추밭
갑용 눈 희번덕거리며 주위 둘러본다.
69. 근택 집
방문 열어본 갑용 체념한 듯 한숨 내쉬며 돌아서다가 문득 눈 번쩍 뜬다.
70. 점순 집
점순 근택 등에 물 끼얹고 있다.
갑용 대문 부서져라 연다.
갑 용 : 황가, 이 노옴.
근 택 : 성님?
갑용 한걸음에 달려와 근택의 바지춤 잡아 올린다.
갑 용 : 좋아. 니가 봉달이 자식눔 밭떼기 갈아 엎어준 건 좋다 이거여. 근디 왜 여서 웃 통을 벗구 지랄을 허구 있는겨? 낼 모레면 환갑인 눔이 꼬추가 근질근질 허더냐?
근 택 : (정색하며) 성님.
점 순 : (갑용 잡으며) 그만 하세요.
갑 용 : (뿌리치며) 니 년두 가만있어. (근택 끌며) 나가자. 나가서 결판을 보자구, 이런 가이만두 못헌 쉐키.
근 택 : 가이유? 성님 말 다허셨슈?
갑 용 : 그려, 이 가이쉐키야.
근 택 : 그려유. 한판 헙시다. 지가 웬만허면 참것는디 점순씨 앞에서 가이 대접 받구는 그냥은 도저히 못 넘어가것슈. 갑시다.
갑용 근택 엉겨서 나가려는데,
점순 바가지로 둘한테 물 껴얹는다.
71. 갑용 집
말 자 : (휴대폰) 다른데 자리 난 데 없니?
여 자3 : (F) 너 염치도 좋다. 그렇게 번번이 펑크를 내면서 또 부탁하는 거야?
말 자 : 이제 자리만 나면 어떻게 해 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여 자3 : (F) 됐어, 얘. 너 때문에 나까지 이상한 사람 됐어.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말 자 : 여보세요? 재수 없는 계집 같으니라고. 내가 거기 계속 있었으면 넌 아직도 바닥 이나 쓸고 있을 군번이야, 알아?
신경질적으로 휴대폰 폴더 닫는다.
대 식 : 으르신 안 오셨어?
말 자 : (쏘아보다가) 여기가 오빠 집이에요? 뭐 하러 허구한 날 들락거리고 그래요?
72. 점순 집
빨랫줄에 갑용 근택의 옷 걸려있다.
둘 팬티 차림으로 마루에 앉아 있다.
갑 용 : 은제부터 그릏게 선행을 베풀구 다닝겨?
점순 나서려고 하자,
근 택 : (단호한 얼굴로 점순 보며) 보기 하두 딱해서 그랬슈.
갑 용 : 그 눔허구 나의 문제여. 왜 남의 일에 껴드는겨?
근 택 : 은제부터 시골인심이 그릏게 각박해 졌데유? 동니 몇이나 산다구 니일 내일허는 거유, 시방.
갑 용 : 아니 이 눔이 그래두 뭘 잘혔다구...
근 택 : 아니헐말루, 즌긴가 뭔가 때문에 이게 뭐데유. 동니에 사는 사람이라구 혀봐야 다 식구들이나 마찬가진디, 한사람은 여기, 또 한사람은 저기, 사방팔방 웬수들처럼 떨 어져 살구 있잖여유.
갑용 벌떡 일어나 잡아먹을 듯 노려본다.
근 택 : 왜유? 지가 틀린말 혔슈?
갑 용 : ... 야이 미친눔아, 니 눔허구 내가 무신 한 식구여? 그리구 즌기 놓는 게 나 혼자 만 잘 살자구 그러는 겨?
근 택 : 이릏게 살 바엔 차라리 즌기 읎이 사는 게 나아유. 그 거 읎이 오순도순 모여 사 는 게 훨씬 낫구만유.
갑 용 : 그려, 즌기 들어오면 니네는 놓지 말라구 헐텡께. 나중에 후회하지 말어.
씩씩거리며 마당으로 내려선다.
점 순 : 그 차림으로 어딜 간다고 그러세요.
갑 용 : (젖은 옷 걷어내며) 볼 눔두 읎어. (나가려다 돌아서서) 그리구 니들 둘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어림 반푼어치두 웂는 중 알어.
73. 갑용 집, 밤
말자 혼자 밥 먹고 있다.
말 자 : 저녁 안 드세요?
갑 용 : (E) 일 웂다.
말 자 : (빨래 줄 보고) 어디서 물벼락이라도 맞고 오셨나...
갑 용 : (문 확 열며) 가서 고모 줌 오라구 혀.
말 자 : 고몬 왜요?
갑 용 : 갔다 오라면 냉큼 갈 것이지 뭔 말이 그릏게 많어.
74. 갑용 밭
경운기 엔진 푸르륵 소리 내며 정지한다.
근 택 : 어두워두 어쩔 수 웂어. 낮에 혔다가 성님한테 뵈서 좋을 거 웂응께. 자 혀봐.
대식 감압레버 잡고 돌리는데 힘겹다.
근 택 : 죽만 처먹었냐? 두 손으로 잡구 말여. 그릏지.
규칙적인 소리 내며 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대식의 얼굴 환해진다.
근 택 : 올라타.
대 식 : 시방유?
근 택 : 타야 운전헐 거 아녀. 깔려 직일 사람두 웂응께 맘대루 혀봐. 아까 설명헌대루 초록색 라바가 기어 넣는 거니께. 일 단으루 늫구 츤츤히 몰아봐.
대식 경운기에 올라타자, 근택 후다닥 뒤로 물러난다.
대식 불안한 얼굴로 근택을 힐끔 보고는 조심스럽게 기어 넣는다.
경운기 천천히 움직인다.
대 식 : 간다, 가.
근 택 : 완전 쑥맥은 아니구만. 이 단으루 올려봐.
대식 레버 조작하자 경운기 빨라진다.
대 식 : 너무 빠른거 아녀유?
근 택 : 궁뱅이두 그것보단 빠르것다. (큰 소리로) 손잡이에 클라치 꽉 붙들구 찬찬히 옆 으루 틀어. 확 틀면 쓰러지니께 살살.
대식 핸들 움직이려는데 잘 안된다.
경운기 천천히 밭 가장자리로 간다.
대 식 : (다급해져서) 아저씨. 이거 으띃게 세워유?
근 택 : 등신 같은 눔. 부레끼 잡아 댕겨.
대식 겁에 질려 보지만 어떤 것이 브레이크 레버인지 얼른 구분하지 못한다.
근 택 : (달려오며) 가운데 뻘건 라바 있잖여. (말자 발견하고) 잉?
대 식 : 뻘건 거, 뻘건 거... 으뜬게 부레끼여.
손에 잡히는 것 잡아 당기자, 경운기 한층 빨라진다.
근 택 : 말자야.
대식 고개 번쩍 들면, 말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있다.
75. 병실, 낮
말자 잠들어있고, 대식 침대 옆에 앉아있다.
병실 문 벌컥 열리면 갑용 황망한 얼굴로 들어오고, 점순 뒤따라온다.
갑 용 : 말자야.
대식 고개 푹 숙이고 병실 구석으로 간다.
갑용 이불 들추고 다친 곳 없나 확인하는데, 말자 달게 입맛 다시며 돌아눕는다.
안도의 한숨 내쉬다가 대식 보고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76. 병원 앞
갑용 냅다 대식 뺨 친다.
갑 용 : 짐 싸. 즌기구 뭐구 다 필요 웂응게, 당장 꺼지란 말여.
대식 뺨 만지며 말이 없다.
갑 용 : 왜 말을 못햐?
대 식 : 디릴 말씀이 웂구만유.
갑 용 : 그려, 주딩이 닥치구 이 길루 사라져.
대 식 : 으르신...
갑 용 : 못 꺼지것다 이 말이여? 좋다, 오늘 너 죽구 나 죽구 한번 혀보자.
손 번쩍 치켜드는데 점순 달려든다.
갑 용 : 저리 안 비켜? 하나 밖이 웂는 내 딸 깔아 직일려구 했든 눔이여, 이 눔이.
점 순 :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고만하세요.
갑 용 : 니들이 아주 작정을 했구나. 날 말려 직일려구 작정들을 혔어. 오냐, 좋다. 내 이놈이랑 같이 콱 뒤져버릴테니께, 어디 잘들 혀봐. (둘러보며) 이 눔 어디갔어?
주위 둘러보지만, 대식은 보이지 않는다.
점 순 : 집이서 여까지 삼십 리 넘는 거 알죠?
갑 용 : 왜? 그 눔이 말자를 업구오기라두 혔다 그 말이여?
77. 읍내 가는 길, 밤 - 회상
고요한 시골길, 대식의 거친 숨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려온다.
땀으로 상의가 축축하게 젖은 대식 말자를 업고 정신없이 뛴다.
78. 병실
근 택 : 경운긴 수챗구녁에 처박혔구, 정신두 웂는 닐 스쿠터루 실어 날를 수두 웂었응께.
말 자 : (다소 누그러진 투로) 운전도 못하는 사람이 뭐한다고 거기에 올라타요?
근 택 : 말 한번 뽄데웂이 허네. 근디 그 시간이 넌 뭐하러 싸돌아다닌겨?
말 자 : 고모네 가는 길이었어요.
근 택 : 오밤중이 뭐하러?
말 자 : 아빠가 보자고 하셨으니까 그렇죠.
근택 갑자기 심각해진다.
병실 문 열리고 대식 들어온다.
말 자 : (외면하고는) 꼴도 보기 싫으니까 얼른 나가요.
대식 힘없이 나간다.
근 택 : 좀 심헌 거 아녀?
말 자 : 제가 틀린 말 했어요? 가라고 할 때 갔으면 이런 일이 왜 있어요? 그 사람 때문 에 하마터면 아빠도 돌아가실 뻔했잖아요.
근택 피식 웃는다.
말 자 : 지금 웃음이 나오세요?
근 택 : 안 나오문? 너야 그렇다 치드라두 성님 일이야 백 번 천 번 나오지.
말자 무슨 뜻이냐는 듯 본다.
근 택 : 농약이 만병통치약 아녀. 그 거 한번 쓰구 너두 잡아두구, 대식이 눔두 어쨌든 조 사반 오는 날까지 붙들어 뒀잖여. 약을 쓰려면 그릏게 써야 댜, 암.
말자 뻥한 얼굴 된다.
근 택 : 입 꽉 다물구 아무리 들이 부은들 뱃속이 회충 하나 잡것냐? (웃다가) 성님?
갑용 잡아먹을 듯 노려본다.
말 자 : 아빠, 이게 다 사실이에요?
갑용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말 자 : 아빠!
79. 병원 앞
근택 병원 나와서 둘러본다.
점순 대식 등 토닥이고 있다.
근 택 : 사내 눔이 그런 일루 이릏게 맥이 빠져서야 엇따 써먹어?
대 식 : 면목 웂구만유.
근 택 : 질 건너 수리센타에 경운기 맽겨 놨으니께, 거서 지다려.
점순의 손목 잡아 일으킨다.
점 순 : 어디 가시게요?
근 택 : 가보면 알어. 어여.
80. 학성리
비 내리는 마을 풍경.
81. 배 밭
갑용 우비 입고 부지런히 삽질한다.
물길을 내자 고였던 물이 시원스럽게 흘러 내려간다.
허리를 토닥이던 갑용, 얼굴에 묻은 빗물 씻어내며 밭쪽 내려본다.
배수로 정비하고 있는 대식 보인다.
갑 용 : 파종헌 지가 얼매나 됐다구 이릏게 비가 쏟아진디야. 습해라두 입으면 큰일인디.
근심어린 얼굴로 밭을 보던 갑용,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가득해진다.
갑 용 : 미우나 고우나 사람 손이 가니께 지대루 된 땅뎅이 같구만. 인자 참깨나무가 쑥쑥 자라는 일만 남았는가벼.
골을 따라 검은 비닐이 길게 줄을 내고 있는 넓은 밭이 두 눈에 한가득 들어온다.
82. 개울가, 밤
비 그친 개울가, 대식 삽 씻는다.
(E) 스쿠터 소리
고개 들어 보면, 말자 오고 있다.
말자 얼굴 외면한 채 봉지 내민다.
대식 열어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다.
말 자 : (밭 보며) 좀 있으면 싹이 올라오겠네요.
대 식 : 발쌔 올라온 디두 있어. 한번 볼텨?
83. 갑용 밭
검은 비닐 위로 솟아난 새싹, 작은 이파리에 맺힌 물방울이 손전등 빛을 받아 반짝인다.
말 자 : (얼굴 바짝 들이대며) 정말 예쁘다.
대 식 : 씨 뿌리구 이릏게 파란 싹이 올라오는 걸 보니께 증말루 신기햐.
신기한 듯 새싹 보다가 말자와 시선 부딪힌다.
말 자 : (얼른 일어서며) 고생 많으셨네요.
대식 서운한 얼굴로 바지에 묻은 흙 떨어내며 일어난다.
말 자 : (대식 보다가) 그렇게 비가 오더니... 하늘 좀 봐요.
대식 올려다보면 많은 별들 보인다.
말 자 : 여기 오고 가끔 이런 생각했어요. 전기 없으니까 밤하늘이 참 밝구나하고 말이에 요.
대 식 : 허긴, 도시서는 못 보는 하늘이지.
말 자 : 참깨는 떨어서 주머니에 넣을 때까진 아무도 모른데요. 힘내요.
빙긋 웃어보이고는 스쿠터로 달려간다.
대식 물끄러미 멀어지는 스쿠터 본다.
근 택 : 방금 간 아가 말자여?
대 식 : (머리 긁적이며) 저녁 허셨슈? 찬밥허구 겉저리줌 있는디, 아저씨 드실 양은 충분 헐건디유.
근 택 : 저녁일랑 나중에 허구 나랑 성님네 줌 가세.
대 식 : 뭔 일 있으세유?
84. 갑용 집
갑 용 : 그게 참말이여?
넋 나간 표정으로 근택과 점순 본다.
근택 무릎 꿇고 않아 있고 점순 그 뒤에 다소곳하게 서있다.
근 택 : 성님이 반대혀두 소용읎슈.
갑 용 : (애원하듯이) 점순아...
근 택 : 말자 병원이 있을 때 면사무소에 들렀었구만유. 아예 혼인신골 혔다 이 말이에유.
갑용 마루에 털썩 주저앉는다.
말 자 : 아빠.
갑 용 : 둘다 닐모리면 환갑이여. 시방 정신이 있는 겨 읎는 겨.
근 택 : 사랑허는디 나이가 문제것슈. 집두 몸두 떨어져 있었지만 맴만은 오래전부터 하나 였구만유.
갑 용 : 그람, 즌기는, 이제 와서 합치면 즌긴 어쩌구?
근 택 : 그 눔의 즌기 들어오는 거 지달리다간 평생가두 못 합칠 거구만유.
갑 용 : (점순 보고) 이게 다 참말이냔말여?
점순 가만히 고개 끄덕인다.
갑용 둘 보다가 허정허정 방으로 들어간다.
근 택 : 성님.
말 자 : 오늘은 이만 하세요.
대 식 : 축하드려유.
근 택 : (멋쩍게 웃으며) 축하는 무신...
점 순 : (말자 보고) 좀 들어가 봐라.
근 택 : (대식 보고) 가세, 이런 날 한 잔 혀야지.
대 식 : 예...
말자 방으로 들어가고 대식 아쉬운 듯 본다.
85. 갑용 방
갑용 벽보고 누워있다.
말 자 : 괜찮으세요?
갑 용 : ... 시방 필요한 게 즌기 말구 또 있냐? (방바닥 쳐대며) 그거말구 필요한 게 또 있냔 말여?
말자 측은한 얼굴로 갑용 본다.
갑 용 : (힘없이 일어나 앉으며) 우리 학성리에 즌기보다 중한 게 있냔 말이여...
말 자 : 아빠...
갑 용 : (구들이 꺼져라 한숨 내쉬더니) 내일 시내 나가서 예식허는 디 줌 알아봐라. 신식 말구 전통혼례루 말여.
말자 얼굴 환해진다.
갑 용 : 내가 아무리 되먹지 못 혔어두, 하나 밖이 읎는 동상이 시집간다는 디,
그냥 보낼 수는 읎는 거 아니것냐.
말자 갑용을 끌어안는다.
갑 용 : 저리 가, 더워.
86. 학성리, 낮
전통혼례장면.
연지 곤지 찍은 점순 나타나면 근택 헤벌쭉 웃는다.
점순 맞절하고 일어서다 넘어지고, 근택 상에 머릴 부딪히기도 한다.
사람들 둘의 어설픈 행동에 박장대소 한다.
대식, 말자 나란히 서서 구경하는데 하객을 따라온 아이 하나 아장아장 앞으로 지나간다.
말 자 : (안아 올리며) 몇 살?
대식 은근한 얼굴로 그 모습 본다.
말 자 : (새침하게) 뭘 그렇게 징그럽게 봐요?
입술 삐죽이며 가는데 얼굴에 미소 번진다.
대식 배시시 웃으며 따라간다.
갑용 쓸쓸히 웃으며 둘 본다.
87. 갑용 밭
골 따라 줄지어 서있는 참깨에 하얀 꽃이 피어있다.
갑용 쪼그리고 앉아 참깨 꽃 본다.
갑 용 : 인자 젊은 것들까지 합치것다구 나스면 즌기는 아예 물 건너 간 거구만.
멀리 정자나무 아래 놀이꾼이 꽹과리 소리에 맞춰 상모 돌리는 모습 보인다.
갑용 참깨 밭 골 따라 걷는다.
갑 용 : (참깨 이파리 손으로 훑어가며) 그 눔들 영글기는 참 잘 영글것다.
껄껄 웃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