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단막극대본

[1999][슬픈 유혹] 노희경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06.05.19|조회수2,775 목록 댓글 0

[슬픈 유혹] 노희경

 

 

 

 

 

 

 

 

 

 

씬1. 침실, 밤.

 

불꺼진, 침대맡의 어두운 스탠드불빛만이 실내를 비추고 있다.

잠자리를 하는 문기의 숨소리와 정혜의 숨소리 들리는 가운데, 카메라 돌아가면, 침대밑에 두사람의 옷가지들 가지런히 놓여있다.

카메라, 서로 안고 있는 두사람 스치듯 비추고, 창가쪽(방의 한면은 전부, 문과 같은 창이다)으로 가면,

창의 작은 틈새로 바람이 일어 커튼이 펄럭이는 모습보이고, 겨울 찬바람의 스산한 소리 들려온다. F. O.

시간경과.

문기(웃옷 벗은 상태로), 침대에 엎어진 채 깊은 잠에 빠져있다.

카메라, 그런 문기 보여주고, 이내 침실안에 있는 화장실(문이 열려있는)로 옮겨가면,

정혜 잠옷차림으로 무표정하게 앞만 보며 변기에 앉아있다.

 

 

씬2. 화장실.

 

정혜, 무표정한 얼굴로 세면대에 서서 손을 씻는다.

 

 

씬3. 침실.

 

정혜, 화장대(침대머리맡과 정면에 놓인)에 앉아 손에 로션을 바르다가 문득 고개들어 거울에 비친 문기의 자는 모습 본다.

자는 문기를 보는 건조한 정혜의 얼굴위로 나레이션 들리는.

 

정혜 : (N) 한달만의 잠자리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느끼지 못했는데, 남편이 느꼈을거라 생각치 않는다.

         오늘밤 우리의 흥분은 모두 거짓이다.

 

정혜, 거울 속의 문기를 보던 시선 거두어 로션을 보며, 그 뚜껑을 돌려 닫고, 몸을 반쯤만 돌리는.

각자인 것 같은 문기와 정혜의 그림위로.

 

정혜 : (N) 이제, 우리는 사랑이 귀찮아질 만큼, 사는게 버겁다.

 

 

씬4. 준영의 방.

 

준영, 웃통 벗고 의자에 앉아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보며, 흐뭇한 모양이다.

사진, 인써트

진우와 같은 양복을 입고 어깨동무를 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

준영, 진우의 얼굴에 입맞추고, 웃는. F. O.

 

 

씬5.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가는 전철, 새벽.

 

효과음 (E) 전철의 굉음소리.

 

 

씬6. 전철안.

 

그닥 복잡하지 않은 전철 안.

한쪽에 말끔한 양복차림의 문기, 눈을 바로 뜨고 이를 앙다문, 생각많아 경직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있다.

카메라, 문기의 얼굴로 가면, 단호한 문기의 얼굴 위로 이펙트.

 

문기 : (E, 모멸감에 사로잡힌, 그러나 단호한) 나는 그 자식을, 죽이고 싶다.

 

F. O. 배경음악 깔리다, 잦아드는.

자 막 우리는 사랑이라 했는데, 사람들은 반역이라 했다.

자막 사라지면서, 제목 뜨는. 슬픈 유혹 제목, 사라지고 어두운 화면위로 퍽하는 주먹소리 들리는.

 

 

씬7. 비상구.

 

준영(O, L) 휘청하고, 고개를 드는데 입가가 터져 피가 흐른다, 문기를 쏘아보듯 보고, 준영, 눈도 꿈쩍않고 그런 문기를 본다.

 

문기 : (그런 준영의 눈을 뚫어져라보며, 차갑게 가라앉은) 아주 재밋는 기획안을 썼더구나.

준영 : (지지 않고, 강한 눈빛으로 문기 보는, 차갑게 가라앉은) ......

문기 : (준영의 눈빛을 뚫어지게 보며, 또박또박 말하는) 니가 뉴욕에서 갑작스레 온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너 날 치러 그 먼길을 온거냐? 창업멤버들을 몰아내겠다구?! (소리치는) 이 회사를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

         니가 몸담고 있는 뉴욕지사, 그리고 니 자리 역시도 뉴욕 현지근무때 내가 만든 자리였다.

         그런데 감히 니가 날 몰아낼 기획안을 짜!

준영 : (문기보며, 지지 않고, 힘주어 말하는) 정실장님이 창업당시 유능한 분이었다는건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문기 : ?!

준영 : 지난 삼년간 실장님의 경영프로젝튼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로인해 회사가 당한 불이익은 막대합니다.

문기 : 내 프로젝튼 아직 진행중이다, 끝나지도 않은 프로젝틀 함부로,

준영 : (말꼬리자르며) 회사에선 실장님의 프로젝틀 12월말로 종료시키기로 했습니다.

문기 : ?!

준영 : 하실 얘기없으면, 가보겠습니다. (하고, 문기를 스쳐 지나 계단을 오르다, 뒤돌아 문기보며) 회사의 창업멤버를 경계하라.

문기 : (보면)

준영 : 감원은 언제나 위에서부터 아래로 시작하라. 그래야 노조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다.

         모두 십년전 실장님의 사업진흥기획안에 쓰여진 골자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제 기획안의 토대가 된 것이기도 합니다.

문기 : (자괴감드는) ?!.....

준영 : 그때 정실장님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지금 제 판단도 그때처럼 옳을 겁니다.

         (하고 성큼성큼 계단 올라가, 문 열고 비상구 나가는)

문기 : (굳은 듯, 멍하니 있는) .......

 

 

씬8. 비상구문밖.

 

준영, 비상구에서 나와 몇걸음 걸어가다 고개돌려 문기가 있는 비상구 안쪽 한 번 보는.

 

 

씬9. 회사 작은 회의실.

 

문기, 김실장외 일곱명의 직장 동료들과 앉아있다.

 

문기 : 이번엔 나랑 여깃는 김부장만 타겟으로 잡았지만, 나중엔 자네들도 당하게 될거야. 창업멤버 전부를 몰아낼 생각이라구.

         우릴 철저히 견제하겠단 얘기야. 이 회사가 누구건가? 이 회사가 사장 개인 건가? 우리가 처음 회사를 세울 때,

         어떻게 일했나? 매일밤 철야에, 주말엔 특근, 아내두 아이두, 언제나 회사 뒷전이었어. 여기에 청춘을 바쳤다구.

         그런데 이제와서 이럴 순 없는거야. 힘을 모으자구, 우리가 다함께 힘을 모으면 사장도 우릴

         호락호락 함부로 할 순 없을 거야.

동료1 : (미안한) 미안하지만, 난 안되겠어. 간부들이 데모하는 법도 없고, 솔직히 아직 애들도 어리고..

          보고서 쓸게 있어서 그만 일어나 보겠네. (하고, 나가고)

문기 : 임실장..

동료2 : (문기에게) 자네들이 억울하게 당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세상이 그런 걸 어쩌겠어.

           다른 생각하지말고, 사장한테 다시 신임 얻을 생각이나 해.

문기 : (멍하고)

 

동료2, 다른 동료들에게 일어나지? 하며 나가고, 이어 동료들 따라 일어나 나가고.

 

김부장 : (넋이 나간듯한 문기에게) 대세를 따르고 싶어하는게 보통 사람들 심리야, 난 기대도 안했어. (사이) 정실장.

문기 : (보면)

김부장 : (포기하듯한) 나 오늘 사표냈어.

문기 : (암담하게 고개 돌리는)

 

 

씬10. 식당앞 거리, 저녁.

 

준영, 대표를 포함한 간부들(문기와 있던)과 식당에서 나온다.

 

대표 : (부드러운 웃음띤) 신준영씬, 이차 안가나?

준영 : 사양하겠습니다, 밤샘 작업을 하느라 피곤해서요..

대표 : 그래, 그럼 가서 쉬고.. 차는?

준영 : 회사 주차장에 있습니다.

대표 : (고개 끄덕이고) 낼 보세. (간부들 보며) 우리 끼리 가지.

준영 : 조심해 가십시오. (하고, 인사하는)

 

간부들, 낼 회사에서 봅시다 하며 식당앞에 세워진 차에 모두들 타고, 이내 가는.

준영, 그들을 보고.

 

 

씬11. 일식집 근처.

 

준영, 그 앞을 걸어가다가 뭔가 이상해 고개돌려보면, 창안쪽으로 문기의 모습 보인다.

 

 

씬12. 일식집안.

 

문기, 술을 마시고 있는데, 준영 그 옆에 앉아 테이블 안쪽의 주방장에게.

 

준영 : 잔하나만 주세요?

문기 : (보며) 나가.

준영 : (잔 받아서 술 따르며) 새로운 프로젝틀 준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문기보며) 실장님이 어떤 프로젝틀 내더라도,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문기 : (차갑게 가라앉은) 그건 니가 상관할게 아니야.

준영 : 창원으로 내려가십시오.

문기 : 창원에서 서울로 올라오는데 7년이 걸렸다.

준영 : 그럼 7년후에 다시 올라오시면 되지 않습니까.

문기 : (자조적인) 자신없다.

준영 : .....

문기 : (준영보며) 넌 그렇게 사는게 자신이 있냐? 니 눈엔 세상 모든게 만만하지?

준영 : .....

문기 :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니 나이에 그럴 수도 있어. 나도 한때는 지금의 너만한 패기와 정열과, 야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게, 그 모든게 사라지는데는 (강조) 십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준영 : ......

문기 : 신준영, 너두 조심해. 내 이 모습, 십년, 이십년후엔 니 모습일 수도 있다.

준영 : (담담하게, 안보고) 십년, 이십년후는 아직은 먼 얘깁니다. 지금부터 걱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기 : (착찹한, 보며) 그럴까.

준영 : (보는)

문기 : (지갑꺼내 돈을 계산서에 놓고 일어나 문열고 나간다)

준영 : (그런 문기보는)

 

 

씬13. 일식집앞.

 

준영, 문을 열고 길가를 보면, 문기, 택시를 기다리는지 가로수에 서서 굳은 얼굴로 멍하니 서 있다.

준영, 그런 문기를 보다 뒤돌아서서 가는.

 

 

씬14. 건물 뒷편 주차장 전경, 저녁.

 

준영, 차에 타려는.

 

 

씬15. 준영의 차안.

 

준영, 좌석에 앉으려는데 핸드폰 오고, 가방에서 핸드폰 꺼내 받는.

 

준영 : 여보세요? (혹시나 싶은, 어두운) 형? (사이, 환한 얼굴) 어, 진우구나.

 

 

씬16. 도로, 달리는 준영의 차 전경 + 차안.

 

준영, 차몰아가다 무심히 백밀러를 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다시 유심히 보면,

백밀러에 고개조금 숙이고 생각많은 얼굴로 걸어가는 문기가 보인다.

준영, 그런 문기 조금은 미안한 듯 보다가 기어 옮기며 이내 감정정리하고 빠르게 차 몰아가는.

 

 

씬17. 거리.

 

문기, 걸어가는.

 

 

씬18. 까페안.

 

진우(조금 어두운, 사진(씬 5의) 보고 있는), 준영(밝은) 맞은편 자리에서 진우를 보고 앉아있다.

 

준영 : 호주 출장 잘 다녀왔어? 서울와서 너 바로 보고 싶었는데, 참느라 혼났다.

진우 : (사진만 보는) .....

준영 : (사진 건너다보며) 우리 결혼사진 잘나왔지? 56번가 쟈니샵에서 인화했어. 거기 정말 사진 잘 뽑지 않냐? 색 좋지?

진우 : (사진, 다탁에 내려놓고, 준영 보고, 굳어있는)

준영 : 왜 그래?

진우 : (머뭇대다, 작심하고, 준영보며) 나, 선봤다.

준영 : ?

진우 : (미안한) 곧 결혼할 거 같애. 사실, 뉴욕에서 나온거 그때문이었다. (맘은 안좋지만, 단호한) 우리 헤어지자.

준영 : (멍한) 무슨 말..이야. 헤.. 어져?

 

 

씬19. 게이바.

 

준영, 스탠드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술잔 들고 있다.

그때, 남자1 걸어와 준영옆에 앉아 말거는.

 

남자1 : 얘기좀 할까요.

준영 : (고개 저으면)

남자1 : (서운하지만 알았다는 듯 고개 끄덕이고 일어나 간다)

준영 : (잠시 그대로 앉아있다가, 주머니에서 돈꺼내 탁자에 놓고 나가는)

 

 

씬20. 번화한 거리.

 

준영, 장사하는 상가건물앞 계단에 앉아 핸드폰을 걸고 있다. 버튼 누르고.

 

메시지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메시지로 넘어갑니다.

준영 : (핸드폰의 1번을 누른다) .....

메시지 「삐소리가 나면 말씀을 남겨주십시오.」 효과음 삐-

준영 : (슬픈) 형 나야, 준영이. 도대체 왜 이렇게 연락이 안돼. 공항에서 보고, 벌써 한달째 아무 소식도 없이..

         (사이, 심란한) 형수도 민석이도 형 걱정 많이해. 보고싶다. 메시지 받는대로 연락줘.

         (무거운 마음으로 버튼 눌러 끄고, 힘든지 손으로 머리 쓸어올리고, 멍하니 주변보는)

 

 

씬20-1. 정혜의 문화강좌실 안

 

정혜, 은숙, 친구2 그림그리는.

 

 

씬21. 정혜의 문화강좌실앞.

 

은숙, 친구2와 정혜, 문기 서 있다.

 

은숙 : 정말 그 집은 잉꼬부부네.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신랑이 마중나오고.. 우리 그인, 저녁수업 받는 거 갖고도 난린데,

         정실장님, 회사에서 우리 그이 보면 뭐라고 말씀 좀,

정혜 : (듣기 싫다, 말꼬리자르며) 낼보자. (하고, 문기에게) 타요.

문기 (친구들에게 어색하게 인사하고, 한쪽에 서있는 차로 가고)

 

정혜, 차로 가서 이내 출발해 가고.

 

은숙 : (보며, 샘나는) 부럽다.

친구2 : 그러게.

 

 

씬22. 꽉막힌 도로.

 

 

씬23. 차안.

 

문기, 제 생각에 빠져 있고, 정혜, 앞보며 말하고 있다.

 

정혜 : 다음주부턴 오지말아요.

문기 : (창쪽만 보며, 건조한) 왜 언제는 오라며.

정혜 : 마음에 내키지도 않는 일, 억지로 하는 거 싫어요.

문기 : (보면)

정혜 : (혼잣말하듯) 시간이 몇신데, 이렇게 막혀. (보며) 차 당신이 몰고 다닐래요.

문기 : (창가보며) 피곤해서 싫어.

정혜 : (앞만 보며) 재영이 이번주에 집에 안온데요. 엠티가 있대요. 기숙사생활이 이젠 어지간히 적응이 되는 모양이예요.

         다음주엔 식구들끼리 야외로 나갔으면 하던데, 당신 시간 어때요?

문기 : 없어. 둘이 다녀와.

정혜 : (서운한, 들키지 않으려 담담하게 말하는) 둘이서 무슨 재미로.. 됐어요.

문기 : (잠시 그렇게 있다가, 창밖만 보며, 혼잣말처럼) 여보.

정혜 : (앞만 보며) 네.

문기 : (창밖만 보며, 골똘히 제 생각에 빠져, 혼잣말처럼) 나 젊었을때, 어땠어?

정혜 : (곁눈질로 문기 잠시보다, 다시 앞쪽보고 운전해가는)

문기 : (정혜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제 생각에 빠져, 천천히) 그땐 참 괜찮았는데, 젊다는 건 좋은 일이야, 그지.

         두려움이 없지, 무서운게 없어. 바보 같은 소리지만, 그때로 다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면...

         (서글프지만, 씁쓸한 웃음)

정혜 : (건조한 느낌) .....

 

문기, 제 생각에 서글프게 빠져 있는, 그런 문기의 얼굴위로.

 

정혜 : (N) 말도 안되는 소리다.

 

정혜와 문기(혼자 생각하는) 한화면에. 그 그림위로.

 

정혜 : (N) 나는 다시 젊은 그와 이십년을 살라면, 살지 않겠다.

 

 

씬24. 문기의 집 전경, 밤.

 

정혜 : (N) 결혼생활 이십년, 그는 혼자 일하고, 혼자 집을 마련하고, (뒤와 연결하는 느낌)

 

 

씬25. 거실.

 

문기, 눈은 뉴스를 보지만 멍하니 딴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정혜, 그 옆에서 과일을 깎으며 그런 문기를 물끄러미보면서.

 

정혜 : (N) 혼자서 지쳐갔다. 내가 원한 결혼 생활은 이런게 아니었다. 삼분을 넘기지 못하는 대화, 우리는 이제

         이야기하는 방법마저 잊어버렸다. 우리는 부부로 하나가 된게 아니라, 남편으로 아내로 단절되어 있는 건 아닐까.

 

정혜, 문기 앞으로 과일 밀어놓고.

 

정혜 : 과일드세요.

문기 : (과일 하나 집고, 다시 뉴스보는)

정혜 : (한쪽에 놓여진 동양화첩을 보다, 문기보며, N) 그와 나는 왜 이렇게 각자인가. (다시 화첩으로 눈 옮기는)

 

그렇게 따로따로 있는 문기와 정혜 한화면에 보이면서 F. O.

 

 

씬26. 번화한 도로, 낮.

 

준영의 차, 급하게 달려가는.

 

 

씬27. 준영의 차안.

 

급하게 기어 옮기는 준영의 손.

 

 

씬28. 준수의 집, 거실.

 

준영, 집을 둘러보면, 온통 난장판이다. 문짝이 뜯기고, 화분은 깨지고, 탁자는 엎어져 있다.

준영, 그런 집안 둘러보다 착잡한 마음으로 담배 피워 물고 밖으로 나간다.

 

 

씬29. 정원.

 

형수(몹시 지친 표정), 난간에 앉아있고, 준영 안에서 내던져진 물건들을 보며 서있다, 준영의 시각으로.

 

형수 : (어렵게 말꺼내는) 삼촌한테 이런 모습 보여서 죄송해요.

준영 : (밖으로 내던져진 집기들을 보며, 막막하다)

 

인써트 - 깨진 집기들. 그 위로 형수의 대사 들리는.

 

형수 : 사업이란게 하구싶어서해두 안되는 건데, 직장에서 등떠밀려나와 억지로 하니, 그게 될리 만무죠.

준영 : .......

형수 : 두달전에 친정집에 보증 서달라고 할 때까진, 일이 잘되는 줄 알았어요.

준영 : (보는) ........

형수 : (못보고) 형님, 저한텐 몰라도 삼촌한텐 연락할거예요. 그럼 잘 좀 얘기해서 집에 오라고..

         (눈가 붉어져, 더는 말못잇고, 외면하는)

준영 : (그런 형수 안쓰럽게 보는)

 

 

씬30. 준영의 방, 밤.

 

준영, 준수와 찍은 사진보며(침대 사이드테이블에 있는) 어렵게 전화하고 있다.

 

준영 : 형.. 나야. (가만있는) 여기 일은 변호사랑 대충 처리했어. 건강은..괜찮은 거지?, 밥은 잘 챙겨먹어?

         (사이, 어렵게, 맘아프게) 형, 나한테 형밖에 없는 거 알지? 어디 다치면 안돼. (맘아픈, 침묵, 사이) 연락줘.

         (하고, 전화 끊고, 손으로 얼굴 쓸어내리고, 다시 전화하는)

진우 : (E) 여보세요?

준영 : (지친) 만나고 싶다, 시간되니?

 

 

씬31. 한강변, 계단.

 

진우(정장차림)와 준영(캐주얼차림) 나란히 앉아있다.

 

진우 : (앞만 보며, 굳은) 이제 나한테 다신 연락하지마.

준영 : (강보고 있다 진우보는) ?

진우 : 너랑 만나고 싶지 않다. 이제 곧 결혼도 할텐데, 만약 여자가 알기라도 하면 ..

준영 : (모멸감 느끼는, 가라앉은) 다른 뜻없어. 너한테 여자가 있는 줄 알았으면, 여기와서 널 찾지도 않았을거야.

         오늘은 그냥 힘들어서 친구로.. 만나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 뿐이야.

진우 : (냉정한, 앞만 보며) 우리가 친구는 아니지.

준영 : (보면) ?

진우 : (강만 보며) 널 사랑했다는 걸 부정은 안한다. 하지만 난 이제 더는 세상 사람들과 싸우기 싫다. 타협하구 싶어.

         친구가 가족이, 직장동료가 알까봐 너한테 전화 한통하는 것도 전전긍긍하면서, 피말리고 사는거 더는 싫어.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고 떠들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아. 쉽게 그냥 놀아난다고 밖엔 생각하지 않는다구.

         자기들과 다르면, 무조건 미친 놈 취급이지. 내가 왜 그런 취급을 받아해. (준영보며, 미안하고, 안스런) 너두 여자 만나.

         그래야, 안외롭다. 이렇게 맨날 남자들한테 채이면서.. 친구 하나없이 언제까지 살 수 있을 것 같애.

준영 : (맘아픈, 진우보며) 세상사람들의 말, 시선, 그게 그렇게 중요했니? 우리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떠날 땐 모두 다 똑같은

         말들을 하는구나. 내가 남자라서 떠난다구? 사랑할땐 내가 남잔게 문제가 안되더니, 떠날땐 내가 남잔게 문제가 되는구나.

진우 : (미안한, 외면하는)

준영 : (일어서며) 여자 부모님 만나기로 약속 되있다며. 가라, 잘 살구. (하고, 돌아서서 가는데, 눈가 그렁한)

 

 

씬32. 거리.

 

준영, 서글픈 얼굴로 넋놓고 걸어가는.

 

 

씬33. 문기의 서재, 밤.

 

스탠드불빛만 켜있는. 문기(안경낀) 컴퓨터치고 있는데, 피곤한지 안경을 벗고, 눈을 부비고 어깨를 주무른다,

이때 전화오고 전화받는.

 

문기 : 여보세요.

준영 : (E, 어렵게) 신준영입니다.

문기 : ?!

 

 

씬34. 편의점 전경.

 

 

씬35. 편의점 안.

 

유리창 바로 앞의 테이블에 준영 앉아 맥주를 병째마시며 핸드폰하고 있다.

 

준영 : (어렵게) 주무셨어요?

문기 : (E) 용건이 뭐야?

준영 : (어렵게) 혼자 술을 마시다가, 영 재미가 없어서.. 같이 술이나 한잔 했으면 해서요. (어렵게) 한국엔 아는 친구가 없어서.

 

 

씬36. 문기의 서재.

 

문기 : (차가운) 내가 니 친구냐?

 

 

씬37. 편의점안.

 

준영 : (답답한) 그런 뜻이 아니라, 지난번 제가 너무 무례한 것 같아서, 사과도 드릴겸...

 

그때, 전화 끊기는 소리나고, 뚜하는 부저음 들리는.

준영, 씁쓸하고 외로운, 힘없이 핸드폰 끄고, 술 마시는.

 

 

씬38. 문기의 서재.

 

문기, 자판을 두드리다가, 전화기 보는. 왜 그렇게 가시돋히게 말했나싶다. 이내, 생각을 접고 다시 자판 두드리는, DIS.

 

 

씬39. 회사전경, 낮.

 

대표 : (E)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야?!

 

 

씬40. 대표실

 

복도. 준영, 걸어가다 멈춰서는.

 

대표 : (E) 이따위걸 프로젝트라고 세워!

 

 

씬41. 대표실.

 

대표 : (보고서를 북북 찢는)

문기 : (고개숙이고, 모멸감에 이를 앙다물고)

대표 : 다른 기업에서 벌써 써먹은 프로젝틀 들고와서 뭘 어쩌란거야!

         사내 간부들 모아 선동할 시간에 머릴 더 쓸 생각을 해! 나가봐.

 

 

씬42. 대표실 문 앞.

 

문기, 나와 복도쪽으로 가다 서있는 준영을 보고 문득 멈춰선다, 기분 안좋은, 그러다, 이내 다시 복도를 걸어가는.

준영, 앞만보고 서있다 고개돌려 가는 문기의 뒷모습 보는. 안된 마음드는, 이내 돌아서서 대표실로 들어가는.

 

 

씬43. 다방.

 

형의 친구와 준영 차를 마시고 있다.

 

친구 : (걱정스런) 나한테도 아무 연락이 없다. 한달전쯤인가, 만나서 술 한잔 했는데, 별말 없드라구..

         준영아, 부도내곤 피하는게 상책이다, 그러니까 너두 니 형 찾을 생각말고 기다려. 별일이야 있겠니.

준영 : .....(어두운 얼굴로 차마시는)

친구 : 어디가 숨고 싶겠지. 나같아도 그러겠다. (제 생각에 빠져) 무슨 덕을 볼 거라고 젊어선 회사에서 죽도록 일만하고,

         이제 나이 좀 드니까, 쓸모없다고 나가라니.. 나와서 뭐라도 해볼려고하면 그것도 만만치가 않고. (한숨) 아휴..

준영 : ........

 

 

씬44. 사무실, 점심시간이라 텅빈.

 

문기, 생각많은 얼굴로 앉아 창가를 보고있다. 준영, 문기를 본다.

 

친구 : (E) 젊어선 회사에서 죽도록 일만하고, 이제 나이 좀 드니까, 쓸모없다고 나가라니..

         나와서 뭐라도 해볼려고하면 그것도 만만치가 않고, 사는 게 무섭다, 무서워.

형수 : (E) 그 사람은 회사가 전부였어요. 회사에서 내몰리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 지경까지 되진 않았을 거예요.

 

준영, 나가는.

 

 

씬45. 옥상.

 

준영, 담배 피우며 생각이 많다.

 

문기 : (E) 넌 언제까지 잘나갈 줄 아냐. 너두 언제간 나처럼 될거다.

 

 

씬46. 문기의 사무실.

 

직원들 모두 열심히 일하는

- 시간경과, 퇴근한, 텅빈 사무실에 문기와 준영만 있다.

준영, 자리에 앉아 서류 하나 들고 문기쪽을 본다. 뭔가 망설이는 얼굴이다.

문기, 자리에 앉아 골똘하게 생각하는 얼굴이다, 어둡다.

<인써트>

- 문기의 책상앞의 흰지면.

내용- 사직서. 본인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더 이상 업무 진행을 할 수 없어 1999년 12월 30일자로,

준영, 그런 문기를 보다, 맘다잡고 서류들고 일어나 문기의 책상앞에 가서 선다. 그리고는 문기의 책상앞에 서류를 밀어놓는다.

 

문기 : (그제서야 준영을 의식했는지, 고개들어 준영보는)

준영 : 경영 아이디업니다. 사장님이 만족하실 겁니다.

문기 : (준영보다, 서류본다. 아이디어로 보이는 문안이 몇가지 작성되어있는 서류 20여장. 몇장 넘겨보다, 서류 바닥에 던지며,

         준영보며 가라앉은) 꺼져. 나한테 이런 호의를 베푸는 저의가 뭐냐? 불쌍해보였냐?

준영 : (문기보며, 담담한) 아니라고 말 못합니다.

문기 : (준영보다, 일어나, 웃옷 입으며 자조적으로 말하는) 필요없다. (마음 다스리다가, 다시 준영보며, 힘주어 말하는,

         모멸감 느끼는) 치사해서 싫다. 더는 구차하고 치사해서 싫어. 그만 두겠다.

준영 : (그런 문기보며, 힘주어 말하는) 자녀분이 아직 학생이라고 들었습니다.

문기 : ?!

준영 : 실장님의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가족의 생계를 포기하실 겁니까? 부인한테 뭐라고 말씀하실겁니까?

         (하고, 서류집어, 문기 책상앞에 놓고) 자존심도 세울 때 세우십시오. (하고, 나간다)

문기 : (나가는 준영을 보는) ?!

 

 

씬47. 레스토랑, 그날 저녁

 

문기와 정혜, 재영과 남자친구 모여 저녁을 먹고 있다. 문기의 시각으로.

 

재영 : (웃으며) 아빠, 윤철이 어때요? 괜찮죠? 멋있죠? 얘 우리 학교에서 인기 너무 좋아요.

문기 : (작게 웃으며, 술 한모금 마시는)

윤철 : (재영에게) 그만해. (하며, 어려운 듯 문기 눈치(?)보는)

정혜 : (그런 윤철보며, 귀여운 듯 웃다가, 문기에게 편하게) 뭐라고 말씀 좀 하세요.

문기 : (술잔 내려놓고) 화장실 좀 다녀올게. (하고, 일어나 화장실쪽으로 가는)

재영 : (정혜에게, 웃으며) 아빠가 샘나시나보다, 그지 엄마?

정혜 : (웃으며) 그러신가 보다. (윤철에게) 많이 들어요.

 

 

씬48. 화장실.

 

문기, 손을 씻고 있다가, 문득 고개 들어 거울을 본다. 착찹한 마음이다.

 

 

씬49. 회의실, 다른날, 낮

 

회사간부들(앞씬에 나왔던)과 기분좋게 박수를 치고. 문기, 서서 박수를 받는다. 굳은 얼굴이다.

준영, 한쪽자리에 앉아 그런 문기를 보고있다.

 

대표 : (기분좋게, 박수를 치며) 오랜만에 아주 썩맘에 드는 기획안입니다. 수고 했습니다. 정문기실장.

문기 : (여전히 굳은 얼굴)

준영 : (문기 안보고, 착잡하다)

 

 

씬50. 주차장, 저녁.

 

준영과 몇몇 사람들 주차장에서 각자의 차로 간다.

준영, 한쪽 구석에 세워진 자신의 차로 가서 키로 문 열려고 하는데, 문기 한쪽에 서서 준영 부르는.

 

문기 : (E) 신준영.

준영 : (돌아보면) ?

문기 : (보는) ......

 

 

씬51. 포장마차 전경, 저녁

 

 

씬52. 포장마차안.

 

준영과 문기 테이블에 마주 앉아있다. 문기, 술을 마시고, 준영보며,

 

문기 : (서글픈, 안보고) 오늘 일은 고마웠다.

준영 : (술 따르며) 그러실 필요없습니다. (보며) 제가 기획안을 올리든, 실장님이 기획안을 올리든

         회사에 득이 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마시고)

문기 : (보고, 자괴감 드는) 넌 내가 비굴해보이지.

준영 : (보면)

문기 :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고 남의 기획안을 제 기획안처럼 버젓이 올리고.. (준영보며) 많이 비굴해보일거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난 상관없다. (모멸감에 눈가 붉어진, 가라앉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이까짓 굴욕쯤 참을 수 있다.

준영 : (보는)

문기 : (제 생각에 빠져, 서글픈, 그러나 너무 쳐지지 않게)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내 이런 모습 안보고 일찍 돌아가신게

         오늘따라 큰 위안이 된다. 우리 어머니, 아버진 내가 무쇠처럼 강하다고 생각 하셨다. 물론 내 아내도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난 강한게 아니라 다만 강해지고 싶었다. (제 생각에 빠져, 서글픈) 무지랭이 농사꾼 아버지가 무허가 밭뙈기 한쪽

         얻으려고 몇날 며칠 새벽부터 밤까지 읍내에 나가 젊은 면서기 술대접하면서 연신 굽신거리는 모습을 봤을 때,

         까막눈인 어머니가 시장에 채소거릴 팔면서 돈 몇 천원 셈을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봤을 때,

         잘나가는 집안 모진 반대 무릅쓰고 나하나 좋다고 시집 온 여자앞에서.. 약해질 수가 없었다. 아니 강해져만 했다.

준영 : (그런 문기 안스럽게 보는).....

문기 : (쓰게 웃으며, 말꼬리 돌리는 준영 안보고) 내가 술을 많이 마신 것 같다, 괜한 소릴 자꾸하는 거 보니까.

         (준영보며) 여기 생활은 어떠냐?

준영 : (제 생각에 빠져, 서글픈) 재미없습니다.

문기 : ?

준영 : (서글픈, 물잔(맥주잔)의 물 버리고, 거기에 소주를 따르며)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다음달이면 떠날건데.

         (쓴웃음 작게 지으며) 뉴욕에 있을땐 여기가 참 그리웠는데..

문기 : (그런 준영 보는)

준영 : (문기보고, 짐짓 밝게) 술은 재밋게 마셔야 독이 안된대요. 저, 취해도 되죠? (하고, 술을 단숨에 벌컥벌컥 마신다)

문기 : (그런 준영 보는)

 

 

씬53. 거리.

 

준영, 허리를 굽히고 '악!'하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른다. 많이 취한 모습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그런 준영을 뭐하는 짓인가 싶게 보고 가고.

문기, 그런 준영을 조금은 귀엽다는 듯 보고 웃고 서있다.

준영, 소리를 양껏 다 질렀는지 시원한 얼굴로 문기 보고, 웃는.

 

준영 : (취한) 한 번 해보실래요. 아주 시원한데..

문기 : 사람들 본다, 그만가자.

준영 : 사람들이 무슨 상관이예요? (지나가는 사람들 보며) 남이 무슨 상관이냐구요? (문기보며) 우리가 누군지 아무도 몰라요.

         (하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다, 그리고 다시 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문기에게 소리치는) 해보라니까요!

         가슴이 얼마나 시원하다구요! 어서요!

문기 : (그래볼까 싶다, 주변 사람들 눈치보며, 넥타이 느슨하게 풀고, 조금 작게 악!하고 소리지르는)

준영 : (웃음띤) 더 크게!

문기 : 악!

준영 : 더 크게!

문기 : 악! (하고, 크게 소리치는)

준영 : (자기도 악!하고 더 크게 소리치는)

 

그렇게 각자 소리치는 문기와 준영의 모습 보이면서, 소리 잦아들고.

 

문기 : (N) 난 그 아이를 닮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그 아이와 같이 젊어 질 수만 있다면..

         소리를 치면서, 왜였을까, 자꾸 눈물이 나는 것만 같았다.

 

 

씬54. 달리는 택시.

 

 

씬55. 택시안.

 

준영, 구토가 이는지, 왝왝거리고 문기, 기사의 눈치보며 준영에게 말거는.

 

문기 : (따뜻하게) 괜찮아?

준영 : (구토 참으며) 괜찮습니다.

문기 : (제 서류가방 열어주며) 토하고 싶으면 여기다 해라.

준영 : (그말에 문기 보는, 따뜻한 느낌 받는)

문기 : (그런 느낌 못받고) 왜?

준영 : (고개 저으며) 아닙니다. 참을만 합니다. (하고, 창가로 고개돌린다)

문기 : 아무래도 내가 너 먼저 바래다 주고 가야겠다. (기사에게) 아저씨, 방향좀 바꿉시다. 삼성동으로 갑시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준영 : (창가보던 시선돌려, 기사와 얘기하는 문기보며, 따뜻한 느낌받는)

 

그렇게 가는 두 사람 보여지고.

 

 

씬56. 엘리베이터 앞.

 

문기, 한손으로 준영을 부축하고 한손으로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고, '조금만 참아라, 다왔다' 하고,

엘리베이터 문 열리면 두사람 들어가고.

 

 

씬57. 엘리베이터 안.

 

문기, 엘리베이터 층수를 누르고, 문닫고 한쪽 구석을 보면, 준영, 구석에 주저 앉은 채 고개숙이고 있다.

문기, 피곤한 듯 작게 한숨쉬고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 한숨쉬고.

 

 

씬58. 준영의 화장실.

 

준영, 주저앉아 변기를 잡고 구토를 하고, 문기 등을 쳐준다.

 

문기 : 다 토해라, 그래야 편하다.

준영 : (구토 다했는지, 입가 닦고, 주저앉아 벽에 등기대고, 문기보며, 작게 웃는다)

문기 : 왜 더하지.

준영 : 실장님, 꼭 우리 형 같애요.

문기 : ?.. 형이 있었냐?

준영 : (편하게) 네.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형만 하나 있어요.

문기 : 서울에 있냐?

준영 : 모르겠어요.

문기 : ?

준영 : (안보고, 서글프게 말하는) 사업을 했는데 부도가 났어요. 그리고, 어디로 갔는지 연락이 안되요.

문기 : (안스러운)

준영 : (고개숙이고, 혼잣말처럼) 난 친구도 없고.. 형이 내 전분데..

문기 : (준영 보는)

준영 : (어렵게 일어나며) 저 좀 씻을게요. (하고, 욕실로 들어가는)

문기 : (그런 준영보다, 방으로 나가는)

 

 

씬59. 준영의 방.

 

문기, 화장실에서 나와 주변 보면, 집안이 온통 다 어수선하다. 여기저기 준영의 옷가지들이 널려있고, 정리되지 않은 분위기다.

문기, 널려진 옷가지들을 대충 들어 한쪽 옷걸이에 걸고, 나가려다 뭔가 눈에 띄어 멈춰선다.

침대맡 사이드 테이블위에 사진액자 두 개.

문기, 그리로 걸어가 첫 번째 액자(부모님과 어린 형, 어린 준영의 흑백사진)를 본다,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얇은 미소가 번진다.

그것 놓고, 다시 두 번째 사진을 든다.

 

 

씬60. 샤워 커튼 안.

 

준영, 벗은채 샤워기를 틀어놓고 벽을 두손으로 잡고 고개숙인채 서있다가 세수를 하고.

샤워기 끄고 샤워커튼 봉에 걸린 수건을 내려 얼굴이며 몸을 닦는다.

 

 

씬61. 준영의 집안.

 

문기, 침대맡에 앉아 사진을 보고 있다. 준영과 형이 밝게 웃으며 어깨 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다.

그런 문기의 모습 위로 준영의 목소리 들리는.

 

준영 : 아직 안가셨어요?

문기 : (보면) ?

준영 : (문기 아랑곳 없이 아랫도리만 수건으로 여민 채, 아직 술이 덜 깬 모습으로 걸어와 침대에 등을 보이며 엎어지면서,

         무심히) 조심해 가세요.

 

문기, 그런 준영 보다가, 사진 침대맡 사이드 테이블위에 놓고, 책상쪽에 있는 자신의 웃옷 들어 나가려다가

문득 준영의 발을 본다, 슬리퍼가 신겨져 있다,

문기, 작게 한숨 쉬고, 준영의 슬리퍼를 벗겨 침대밑에 놔두고, 무심히 이불을 준영의 몸에 덮어주다가

순간 가슴이 퉁 떨어지면서 얼어붙는 듯하다.

카메라, 등을 보이고 누워 있는 건장한 준영의 몸 보여주고, 문기의 슬프고 멍한 듯한(?) 표정으로 옮겨가는.

문기, 준영의 몸에서 시선을 떼고, 이불을 그냥 놔둔 채, 조금은 어쩔 줄 몰라하며 황망히 방을 나간다,

방문 닫는 소리 쾅하고 나고.

준영, 그 소리에 무심히 잠결에 눈 뜨는,

 

 

씬62. 준영의 오피스텔 로비 + 거리.

 

엘리베이터 문 열리고, 문기 나와 로비를 지나쳐 거리로 간다.

문기, 정신이 멍하다. 자신이 뭘 본건지,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이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거리를 따라 무작정 걷는.

카메라, 그런 문기를 보여주다, 위로 올라가면 준영의 오피스텔 창문 보이고,

그 창문 틈 사이로 준영이 가는 문기를 보며 서 있는게 보인다. 준영, 문기를 보는, 서글픈.

 

 

씬63. 준영의 집안.

 

준영, 책상에 걸터 앉아, 멍한 느낌으로 담배 피우다, 한쪽에 놓인 기타를 들어 뜯으며 문기를 생각하는.

 

인써트 - 회상. 1, 12씬.

문기 : (준영보며) 넌 그렇게 사는게 자신이 있냐? 니 눈엔 세상 모든게 만만하지?

준영 : .....

문기 :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니 나이에 그럴 수도 있어. 나도 한때는 지금의 너만한 패기와 정열과, 야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게, 그 모든 게 사라지는데는 (강조) 십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2, 16씬. 백미러로 봤을 때, 걸어가던 문기.

3, 55씬(씬에없음 삽입요) 뒷좌석에 술취해 고개 떨구고 있는 준영을 따뜻하게 제쪽으로 기대게하고

준영의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넘겨 주던 문기의 모습.

 

현실. 준영, 생각에 빠져 있다가 창가로 고개 돌리는.

 

 

씬64. 문기의 서재.

 

어두운 스탠드불빛만 켜져 있는.

문기, 넥타이 풀은 차림으로 책상에 팔을 올리고 머리를 쓸어올리며 생각 많은 얼굴로 앉아있다.

 

인써트 - 회상. 1, 7씬(문기의 시선 뺀, 준영의 모습만).

준영 : (문기보며, 지지 않고, 힘주어 말하는) 정실장님이 창업당시 유능한 분이었다는건 익히 들어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2, 46씬.

준영 : 실장님의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가족의 생계를 포기하실 겁니까? 부인한테 뭐라고 말씀하실겁니까?

         (하고, 서류집어, 문기 책상앞에 놓고) 자존심도 세울 때 세우십시오.

 

3, 53씬. 거리에서 소리지르고, 문기쪽보고 웃던 준영의 모습.

4, 61씬. 침대에 누워있던 건장한 준영의 모습.

 

현실. 문기, 멍한, 제 생각에 빠져있는 모습.

카메라, 문쪽으로 옮겨가면 정혜 자다가 나온 듯 잠옷차림으로 문 열고 서 있다.

 

정혜 : (걱정스러운) 여보?

문기 : (제 생각에 빠져있는) ......

정혜 : 여보?

문기 : (그제야 정혜의 소릴 들었는지, 문쪽보며) 어?

정혜 : 왜 이 방에 있어요, 씻지 않구.

문기 : (차마 못보고, 괜히 책상앞 서류 뒤적이며) 어, 뭐 보던게 있어서 .. 당신 먼저 자.

정혜 : (문기, 걱정스럽게 보다, 문닫고, 가고)

문기 : (정혜 나가는 것 느끼고, 의자에 몸기대고 다시 준영을 생각하는, 서글픈 느낌의)

 

그런 문기의 모습으로, 문기의 나레이션.

 

문기 : (가라앉은, N) 그때 왜였을까, 난 침대위에 누워있는 그 아일 보면서,

         결코 낯설지만은 않은 못내 그리운 내청춘을 보는 것만 같았다.

 

F. O.

 

 

씬65. 회사전경.

 

문기, 안으로 걸어들어 가는.

 

 

씬66. 회사로비.

 

문기, 정문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려는데, 그때, 친구1 현관문에서 들어오며 문기 부르는.

 

친구1 : 정실장!

문기 : (뒤돌아보고)

친구1 : (웃으며, 그 앞에 서며) 야, 한 회사 안에 있으면서, 어쩜 이렇게 보기가 힘드냐? (하고, 손내밀고)

문기 : (웃으며, 악수하는)

친구1 : 우리 집사람 통해서 가끔 소식은 들었다. 느이 와이프랑 동양화강좌 다니잖냐.

문기 : 아, 그래.

친구1 : 요즘 힘들지?

문기 : (쓰다) 그렇지.

친구1 : 뉴욕지사 온 신준영에 대해서 이상한 소문이 돌더라? 너 들었냐?

문기 : 뭐?

친구1 : 걔 (기분 나쁘다는 듯) 호모라드라?

문기 : ?!

친구1 : 미국에 있으면서 바이어들 상대로 웃음꽤나 판 모양이더라, 미국 바이어들이 걔 아니면 상댈 안해.

           내가 지난번 뉴욕출장 가서 들은 얘기 아니냐?

문기 : (무슨 소린가 싶다, 맘다잡고, 기분 나쁘게 말하는) 쓸데없는 소리들 하지 말어, 일은 능력으로 하는거야.

         괜히 잘나가니까 시샘들 하나 본데, 그러지 말라 그래.

친구1 : (인정하는, 혼잣말처럼) 하긴... (문기보며) 언제, 밥이나 먹자.

문기 : 그래.

친구1 : 간다. (하고, 손흔들고 다른 쪽으로 가고)

문기 : (가는 친구1보고, 어두운 얼굴로 돌아서서 간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씬67. 엘리베이터안.

 

문기, 층수를 누르는데, 그때, 준영 잠깐만요, 잠깐만 하며 뛰어들어온다.

 

문기 : (준영 보는, 건조한)

준영 : (순간 문기 보고, 조금 굳은 듯한) ......

문기 : (무시하고, 앞만 보는)

준영 : (눈치 살피며, 어렵게) 어젯밤, 죄송했습니다.

문기 : (여전히, 무시하고 앞만 보는)

 

그때, 사람들 한떼 들어오고. 준영, 문기 보고, 문기는 층수 자판만 보는.

 

 

씬68. 문기의 사무실 엘리베이터앞.

 

엘리베이터 열리고, 문기와 준영, 두사람 정도 더 내리는.

문기, 맨먼저 내려 성큼성큼 사무실쪽으로 가고.

 

준영 : (그런 문기를 따라가며) 실장님.

문기 : (굳은 얼굴로 돌아보고, 그냥 가는)

준영 : ......

 

 

씬69. 사무실.

 

문기(남직원의 얘기를 듣는듯하지만, 신경은 온통 준영에게 가있는), 남직원(편한)과 함께 서서 컴퓨터를 보며 얘기하고 있다.

 

남직원1 : (편하게 말하는)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시장은 자체유지비용 마련하기도 급급한 지경이고...

문기 : (컴퓨터키 한 번 치고, 화면에서 눈떼지 않고)

남직원1 : 그나저나 실장님, 중국이 정말 위안화절하를 안할까요, 혹시 말로만 안 한다 그러는거 아니예요... (이어지는 느낌)

 

카메라, 두사람에게서 준영쪽으로 옮겨가면,

준영, 컴퓨터화면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문기를 보는, 그러다 컴퓨터 끄고 옷들고 나가는.

준영, 문열고 밖으로 나가면, 문기 자리에서 가는 준영 놓치지 않고 보는.

남직원1, 그런 문기에게 무심히 말거는.

 

남직원1 : 실장님, 여깃는 자료 모두 카피해서, 전무님 책상위에 올려 놀까요?

문기 : (그제야 정신든 듯) 어, 그래.

 

그때, 여직원1 문 열고 들어와 소리치듯 말하는.

 

여직원1 : (기쁜 듯) 실장님, 게시판 보셨어요? 실장님 승진 하셨어요, 상무대우로!

문기 : ?!

 

 

씬70. 회사앞.

 

형수, 현관문 열고 나와 길가로 가는. 카메라, 돌아가면 회사현관 유리문안에서 준영, 가는 형수를 보고 있다.

 

형수 : (E) 그사람한테 가족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한달째, 자기 아내가 애가 어떤 지경인지 상관도 없는 사람,

         저두 그만 기다릴래요. 민식이 데리고 대구 친정집에 내려갈려고해요. 삼촌한텐 죄송해요.

준영 : (형수 보다, 담담하게 돌아서서 가는)...

 

 

씬71. 고급 술집안, 밤.

 

문기, 술을 마시고 있다. 그 옆에 어두운 표정이다.

 

인써트 - 회상 (한낮의 사장실, 대표와 문기 쇼파에 앉아있는)

대표 : (밝은) 그 동안 자네 실력을 과소평가한 거 같군.

문기 : (조금 고개숙인, 생각많은) ......

대표 : (웃음기 가신) 정실장, 창원 공장을 맡아주게.

문기 : (보면) ?

대표 : 자네밖엔 그 공장을 살릴 사람이 없어. 지금이야, 그 공장이 하위공장으로 전락했지만,

         창업당시만해도 그 공장은 우리 회사의 본령이었네. 거기로 내려가 주게.

 

현실. 문기, 슬프고, 모멸감 느끼는, 술을 마시고 내려놓는.

 

문기 : (혼잣말처럼, 천천히 자조적으로 내뱉는) 그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 그래, 그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창원으로 가라. 가지 않으려면, 떠나라. 떠, 나, 라. (쓴웃음, 눈가가 붉다, 막막하다)

 

 

씬72. 준영의 오피스텔앞 + 준영의 차안.

 

문기, 가로수에 기대 준영의 불꺼진 오피스텔을 올려다보고 있다. 조금은 취한 서글픈 표정이다.

그렇게 한참을 올려다보다가 돌아서가는데, 한쪽에서 준영의 차 오는.

준영, 차안에서 무심히 룸밀러 보다가 가는 문기보고 순간 멈춰서지만,

문기, 어느새 한쪽에 세워진 택시를 타고 준영의 옆을 스쳐 지나간다.

준영, 차안에서 가는 문기의 택시 보고, 생각이 많다.

 

 

씬73. 침실.

 

정혜, 자고 있다. 문기, 방에 있는 화장실에서 나와(세수한듯한) 자는 정혜를 보다가, 전화기에 시선가는.

문기, 가만 전화기보다 나간다.

 

 

씬74. 거실.

 

문기, 앉아 거실 전화기를 보고있다가 조심스레 버튼 누르고, 신호음 가고.

 

준영 : (E) 네, 여보세요.

문기 : (가만 준영의 목소리만 듣는) ...

준영 : (E)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문기 : (가만있다가, 전화기 끄고, 굳은 듯 앉아있는, N) 누군가와 얘길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왜 준영이였을까. (고개떨구는)

 

F. O.

 

 

씬75. 문기의 집, 전경 + 거실, 저녁.

 

정혜, 마루 앉아서 걸레질하다, 초인종소리에 무심히 일어나 '네, 나가요' 하며 나가, 문 연다.

 

준영 : (어색하게 인사하는) 안녕하세요.

정혜 : ?

 

시간경과.

 

준영 : (앉아서 둘레의 그림 구경을 하는듯하다)

 

정혜 차가지고 오며 말하는.

 

정혜 : 애아빠랑 왜 같이 안오셨어요?

준영 : 곧 오실겁니다. 전 외근나왔다가 이리로 곧장 온거예요. 실장님께 드릴 말씀도 있고, 댁도 구경하고 싶어서.

정혜 : (어색한 웃음) 네. (하며, 차를 준영 앞에 놔주고, 맞은편자리에 앉는다)

준영 : (둘레 구경하며) 동양화가 많네요, (정혜보며) 혹시 그림그리세요?

정혜 : 대학때 동양활 전공했어요, 지금은 그냥 취미로...

준영 : (구경하며) 너무 좋네요.

정혜 : (너그러운 웃음) 그렇잖아도 저 신준영씨 많이 보고 싶었어요.

준영 : ?

정혜 : 두달쯤됐나 애아빠가 뉴욕에서 온 젊은 친구가 자기 신경을 건드린다고, 생전 하지도 않던 회사 얘길하더라구요,

         말은 그게 전부였지만, 이 사람이 내심 긴장하는구나 싶더라구요.

준영 : (어색한 웃음) ... (분위기 바꾸려는) 참, 미인이세요.

정혜 : (웃으며) 고마워요. (농처럼) 옛날에 간혹 들어봤는데 요즘은 통 못들어봤어요.

준영 : (어렵게 묻는) 연애 결혼하셨어요?

정혜 : (찻잔 보며, 서글퍼지는, 애써 숨기고) 네, 제가 좋아서 쫓아다녔어요.

준영 : (서글픈) 실장님 어디가 그렇게 좋으셨어요?

정혜 : (생각하는 듯한) 글세요. 그 사람은 자기가 강해서 내가 자길 좋아했다고 아직도 생각하는거 같은데..

         (준영보며) 실은 나는 그 사람이 약해보여서 좋았어요. (고개갸웃하며, 생각하는 듯한) 아니다, 약한 사람이

         강해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좋았다고 해야 옳겠다.

준영 : (어렵게 묻는) 많이 사랑하시나봐요.

정혜 : (서글프게 웃으며) 사랑은 무슨... (창가쪽으로 고개돌리며) ..습관처럼 그냥 살아요.

준영 : (정혜가 안스러운) ......

정혜 : (미안한) 내가 괜한 말을 하나보다. 하루 이십사시간 맨날 입을 꽉닫고 있다가,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니까,

         수다를 떨고 싶었나봐요. 미안해요.

준영 : 아닙니다. (하고, 차마시는)

정혜 : (그런 준영보며, 너그러운 웃음지으며) 신준영씨, 젊었을 때 우리 그이랑 많이 닮았어요.

준영 : (보면) ?......

정혜 : 자신만만해보이고, 패기 넘쳐보이고.. 뭐그런거...

준영 : (어색한 웃음)

정혜 : (서글픈 웃음지으며, 차시며) 차 식겠다, 들어요.

준영 : (정혜 보며, 찻잔 드는데) .....

 

그때, 문 열리며 왜 문기 '왜 문을 열어놓고 있어' 하면서 들어서다 준영보고 굳고.

 

준영 : (문기 보고, 일어나고) ..

 

 

씬76. 문기의 집앞, 거리.

 

문기가 앞서서, 준영이 뒤에 서서 걸어나오고 있다.

 

문기 : (걷다가, 멈춰서서 뒤돌아 준영보며, 건조한) 뭐하러 집까지 찾아와?

준영 : 창원 가실겁니까?

문기 : (어떻게 아나 싶다, 준영보는) ? .......

준영 : 부서사람들도 사모님도 모르는 거 같던데, 왜 말씀 안하셨습니까?

문기 : 어차피 알텐데, 미리 말해서 뭐해.

준영 : 그래도 가족한텐,

문기 : (말꼬리 자르며) 말하기 싫다. 가. (하고, 집쪽으로 돌아서서 가려는데)

준영 : (가는 문기의 등에 대고) 그런데, 절 왜 찾아오셨습니까?

문기 : (굳은 듯 멈춰선다, 앞만 보며) 그런 적 없다.

준영 : (문기 쪽보며, 가라앉은) 왜 절 피하십니까? 전 실장님하고 친구가 된 줄 알았는데, 아닙니까?

문기 : (준영보며, 단호한) 난 너 같은 친구 둔 적 없다.

준영 : ?!.....

문기 : 니가 남잘 만난다는 얘길 들었다. 나한테 호의를 베푼 것도 그 때문이냐?

준영 : (맘아프고, 모멸감 느끼는, 문기 보는)

문기 :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런 너랑 얘기하고 싶지 않다. (답답한, 손으로 얼굴 쓸어내리고) 그래, 널 찾아갔었다.

         (자신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준영 : (고통스러운, 눈가 붉어진, 힘주어 말하는) 제가 남잘 사랑해서 그게 싫은 겁니까?

         그래서 저하곤 친구도 될 수 없단 얘깁니까?

문기 : (준영보는, 착찹한 느낌)

준영 : 그렇습니다, 난 동성애잡니다, 그게 어쨌단 겁니까? 제가 실장님을 잘못 본 모양입니다.

         전 실장님하고 저하고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린 세상에서 철저히 따돌림을 받는 사람들이니까.

문기 : (보면)...

준영 : 전 동성애자라고, 실장님은 무능하다고.

문기 : 그건 다른 문제다.

준영 : 글쎄요. 전 같은 문제같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둘다 외로우니까. (하고, 돌아서서 가고)

문기 : (굳은 듯, 멍하게 서 있는)

 

 

씬77. 거리.

 

외롭게 걸어가는 준영.

 

 

씬78. 문기의 거실.

 

문기, 베란다 창문을 열어 놓고 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서있다. 어두운 지친 표정이다.

 

문기 : (N) 준영에 대한 내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씬79. 동양화 전시장, 낮.

 

정혜, 은숙, 친구2과 그림을 보고 있다. 친구2, 3은 앞서 가고.

 

정혜 : (O. L, 어두운 조금은 놀란) ?

은숙 : (되려 놀랐다는 듯) 너 정말 니 남편한테 아무소리도 못들었어?

정혜 : 창원발령? 창원에 지사가 어딧어?

은숙 : (속상한) 상무자리 명패만 주고, 일개 공장장 발령이라니... 싫음 나가라 소리까지 벌써 했나보더라.

정혜 : (말꼬리자르며) 우리 남편이 회사에 뭘 잘못했는데 그런 대접을 받어?

은숙 : (생각없이) 그동안 프로젝트 올린게 전부, 성과가 없었..

정혜 : (말꼬리 자르며, 반박하는) 프로젝트는 그 사람 혼자 세운다든? 그 회산 결재라인이 우리 남편 뿐이래? 윗사람들은 뭐했대?

         나쁜 프로젝트였으면 싸인하지 말았어야지. 일은 같이 저질러놓고, 덤태긴 혼자쓰라구, 그게 말이 돼.

은숙 : (아차싶다, 얼버무리는) 쓰면 삼키고 달면 뱉는게 조직..

정혜 : (깊게 숨몰아쉬고 돌아서서 가고)

은숙 : (속상한) 정혜야.

 

 

씬80. 전시실앞.

 

정혜, 걸어가, 차타고 떠나는.

 

 

씬81. 회사복도.

 

준영, 서류를 들고 사무실쪽으로 가는. 문기, 사무실에서 나오다 준영과 마주치고, 그냥 스쳐지나가려는.

 

준영 : (등뒤에서 문기에게) 결재서류 있는데요.

문기 : (안돌아보고) 책상에 갖다놔. (가고)

준영 : (가는 문기보고, 서류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는)

 

 

씬82. 길건너 회사앞

 

가로수밑, 혹은 회사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가로수밑.

정혜, 가로수밑에 차 세워두고 나와 생각많은 얼굴로 서있다가, 현관쪽 보면, 문기 나와 두리번거리며 정혜를 찾는다.

정혜 그런 문기를 보며 서글픈.

 

 

씬83. 문기의 사무실.

 

모두들, 점심 먹으러 가고 없는. 준영, 사무실 창가에서 아래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는,

인써트 - 위에서 내려다 보는 회사주변 풍경. 문기와 정혜가 서서 얘기하다 차로 가는 모습.

준영, 그런 두사람을 서글프게 보고 있다.

 

 

씬84. 정혜의 정지된 차안.+차밖

 

문기, 정혜 타고 있다.

 

정혜 : (어렵게) 은숙이 한테, 회사 얘기 들었어요.

문기 : (말꼬리 자르며, 앞만 보며, 냉정하게) 무슨 얘길 들었는지 모르지만 신경 쓰지마.

         문부장 그 자식은 도대체 뭐한다고 지 부인한테 회사얘길 그렇게 해. 등신 같은 자식.

정혜 : (보면)

문기 : 회사일은 당신이 신경 쓸 일 아니야. 내가 알아서해.

정혜 : (서운하고, 속상한) 당신이 뭘 알아서 하는데?

문기 : (보면)

정혜 : (문기가 안타깝다) 당신은 왜 언제나 당신 생각밖엔 안해? 당신한테 나는 뭐예요? 당신이 힘들어 뒤로 나자빠지든 말든,

         그저 당신이 타오는 월급이나 쓰면서 그렇게 살아야 되는거야? 내가 남이예요? 왜 나한테 아무런 상의도 안해?

         당신 힘들잖아.

문기 : (맘아픈, 안보고, 이 앙다물고)

정혜 : 결혼전에도, 신혼때두, 지금두, 내가 바라는 건 당신이 행복한 거에요. 그런데 당신 행복해요?

         날, 재영일 행복하게 해준다고 밤 열두시까지 일하고, 잠도 못자고 설치고, 당신 부모님 살아계실 때 성공해보겠다고

         명절 때도 시골 한 번 못가고, 그렇게 회사에 몸바쳤죠? 그런데, 미안하지만, 그런 당신보면서 나도 재영이도,

         당신 부모님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힘들어하는데, 당신이 지쳐가고, 죽어가는데 우리가 어떻게 행복해?!

문기 : (외면하며, 눈가 붉어진채, 이앙다물고, 가만있다가 정혜보며, 말꼬리 돌리려는) 오랜만에 나왔는데, 쇼핑이나 하자.

         (하고, 밖으로 나가 운전석 문열고) 나와, 운전 내가 할께.

정혜 : (문기 보는데, 막막하다. 왜 이러나 싶다) 여보...

문기 : 날 도와주고 싶어? 그럼 옷이나 사가지고 집에 가. 비참하게 긴말말고.

정혜 : ...

 

 

씬85. 고급 의상실

 

정혜, 티테이블에 앉아 가라앉은 표정으로 문기를 보고 있다.

문기, 한켠의 옷 걸려있는 곳에서 매장의 직원과 옷을 고르며 말하고 있다.

 

직원 : (옷 보여주며, 웃음) 이 색상이 올 겨울 유행하는 색상인데, 어떠세요?

문기 : (직원보며) 우리 아내한테 어울릴까요?

직원 : 제 생각엔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

문기 : 비싼 거예요?

직원 : (웃음) 네.

문기 : 몇 벌 다른 걸로 더 보여줄 수 있어요?

직원 : 물론이죠.

 

그렇게 얘기하는 두사람 소리 찾아들고 카메라, 정혜로 옮겨가면.

 

정혜 : (N) 나는 남편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에게 가족은 반드시 짊어져야할 짐일뿐이다.

         부부가 삶의 동반자라고 믿은건, 나 뿐이었다. 아이와 나를 책임지는 것, 그것이 그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라면,

         지켜주고 싶었다. (차마시고)

 

그때, 직원 옷가지를 들고 와 정혜에게.

 

직원 : 사모님, 옷 입어보시겠어요?

정혜 : (일어나면)

직원 : (탈의실로 정혜 안내해 가고)

문기 : (한쪽에서 옷을 보다, 정혜 가는 모습 서글프게 보는)

 

 

씬85-1. 탈의실안.

 

정혜,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오는데, 밖에서 직원 '천천히 입으세요' 하는 소리 들리는.

정혜 문 닫고, 한쪽에 옷 놓고 옷을 벗으려다가 그냥 주저앉듯 옆 의자에 앉는.

 

정혜 : (N) 울고 싶었다. 누가 우리를 이렇게 단절시켰는지 묻고 싶었다. 가족 조차 위로할 수 없는 세상,

         정말 그와 난, 그런 삭막한 세상에 살고있는가. 처음으로 사는게 무서웠다. (눈물 한줄기 흐르는)

 

 

씬86. 주차장 차안 + 차밖.

 

준영 : (O. L, 핸드폰 받고 있는) 형이야? 형이지? (사이, 조심스레) 형.. 어딧어? 말해. 어딧는 거야? (답답한, 큰소리) 어딧냐구?!

         (찰칵하는 소리, 준영 다급하게) 형, 형..... (핸드폰 끄고, 답답하게 있다가, 차 시동 거는데,

         푸드득푸드득 거리며 시동 걸리지 않는, 화가나 나가서 차문을 쾅 닫는)

 

 

씬87. 전철, 승강장.

 

문기, 막막한 얼굴로 서있다. 그때, 전철오고 문기 전철 서기를 기다렸다가 타는.

카메라, 한쪽으로 가면 준영 전철 타는.

 

 

씬88. 전철안.

 

문기, 자리에 앉아 제 생각에 빠져있고, 카메라 한쪽으로 돌아가면, 준영 둘레를 무심히 두리번거리다 문기보는.

시간경과 -

한산한 전철안. 문기, 여전히 제 생각에 빠져있고, 그 옆에 준영 앉아있다.

 

준영 : (문기를 보고있다가, 말거는) 어디가세요?

문기 : (그 소리에 고개돌려 준영보는) ?

준영 : 댁에 가실려면 압구정동에서 내리셨어야 하는거 아니예요?

문기 : (두리번거리다, 역을 놓친 걸 알고, 작게 한숨쉬고, 준영보며) 너두 지나친 거 아니야?

준영 : (앞만 보며) 그랬나보네요.

문기 : (할 말 없어 외면하고, 창가쪽 보는)

준영 : (앞만 보며) 바람쐬고 싶지 않으세요.

문기 : (준영 보는)

 

 

씬89. 달리는 기차.

 

 

씬90. 허름한 역사.

 

준영과 문기, 역사에서 나오는,

문기 주위둘러보고, 출입구쪽으로 가고, 준영, 그런 문기를 따라가고.

 

 

씬91. 가로수길 혹은 갈대 밭길.

 

낙엽 흩어지는. 문기가 앞서고, 준영이 뒤쳐진채 걸어가고 있다. 그 그림위로 준영과 문기의 대화 흐르는.

 

준영 : (E, 담담한) 그래서 부인은 혼자 가신거예요?

문기 : ......

준영 : (E, 담담한) 부인이 많이 외로워보였어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그렇게하는 건 아닌거 같아요.

문기 : (E, 말꼬리 돌리려는) 니 얘기하자. 이민은 언제간거야?

준영 : (E, 담담한) 중학교 이학년때요. 형은 그때 대학교 졸업하고 여기 남구요.

문기 : (E, 담담한) 부모님은 언제 돌아가셨어?

준영 : (E, 담담한) 고등학교 이학년때, 교통사고로요.

문기 : (E, 담담한) 그 나이면 아직 어린나인데, 힘들었겠다.

준영 : (E, 담담한) 형이 있어서.. 많이 힘들진 않았어요.

문기 : (E) 형하고 무척 친한가보구나.

준영 : (E) 가족이라곤 형밖에 없으니까... 형은 저한텐 부모같기도 하고, 또 유일한 친구기도 해요.

         이 세상에서 날 이해하는 사람은 형 뿐이예요. 내가 동성애자든, 어떻든, 그냥 날 있는그대로 봐주는 사람이거든요.

문기 : (E, 담담한) 형은, 아직도 연락이 없어?

준영 : (E, 담담한) 오겠죠.

문기 : (E, 담담한) 바람이 차다, 옷 단단히 여며라.

 

준영, 깃세우는 것 보이고, 그렇게 걸어가는 두사람.

 

 

씬92. 해수욕장, 저녁무렵.

 

문기, 준영 바다를 보고 있다.

 

준영 : (가만 바다를 보다, 문기보면)

문기 : (앞만 보는)

준영 : (문기보던 시선 거두어, 주머니에서 담배 찾아 피운다)

문기 : 나두 한 대 줄래.

 

준영, 문기에게 담배 한대 주고, 라이터불 켜려하지만 잘 안되고, 자기의 옷으로 바람막아 어렵게 불붙여준다.

 

 

씬93. 허름한 민박집, 전경.

 

 

씬94. 민박집 방안.

 

문기와 준영, 벽에 기대 나란히 앉아있다. 문기, 준영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문기, 고개 돌려 준영을 본다. 준영, 문기 보는.

문기, 준영에게 손을 내밀고, 준영 문기의 손을 보다 잡는다. 문기, 준영의 손을 잡고 더욱 막막해지는, 앞만 보는.

 

문기 : (막막한) 난 이런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겠다.

준영 : (가만 있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천히) 전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문기 : (가만 굳은 듯 있다가, 준영의 손 놓고, 일어나 나간다)

준영 : (그런 문기를 막막하게 보는)

 

 

씬95. 바닷가.

 

문기, 막막한 표정으로 바닷가 본다, 카메라 돌아가면 뒤에 준영이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문기, 돌아서서 준영보며 말하는.

 

문기 : (가라앉은) 넌.. 왜 동성애자가 됐냐?

준영 : 당신은 왜 이성애자가 됐습니까?

문기 : (준영보는) ? ......

준영 : (바다 보며) 당신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또한 대답할 수 없는 질문 입니다. 내뜻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늙어가고, 회사에서 밀려나는게 당신 뜻이 아니었던 것처럼.

문기 : (바다보며) 여잘 사랑한 경험이 있냐?

준영 : (앞만 보며, 혼잣말처럼) 그전에도 남자라서 사랑한 경험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진우란 남잘 만나고,

         경민이란 남잘 만났지만, 그사람들이 남자라서 만난 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부인을 여자라서 만났습니까?

문기 : (멍하게 생각많은) ......

준영 : 나는 남자를 사랑하는게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였을 뿐입니다.

문기 : (앞만 보며, 맘아프지만 단호한) ..우리 다신 보지말자, 회사에서 부딪히면 모른 척하자.

         너를 몰랐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남자를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준영 : (문기의 눈 보며, 단호한) 당신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건 아닙니까?

문기 : (준영보는, 눈가 붉어진) ...

준영 : 당신은 당신 아내도, 아이도, 당신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사랑을 하고있지만,

         그래도 당신 보단 낫단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알고 있으니까요.

문기 : (피하고 싶은) 난 아래 여인숙에서 묵겠다. 낼 보자. (가고)

준영 : (그런 문기보다, 착찹하게 바닷가로 가서 걷는)

 

각자, 제 갈길 가는 두사람 보여주고.

시간경과 - 새벽, 동틀즈음.

카메라, 동트는 바다쪽에서 한쪽으로 옮겨가면, 문기, 사그라드는 모닥불을 옆에 피워놓고 멍하니, 바다만 보고 있다.

 

 

씬96. 민박집.

 

문기, 방문을 여는데, 뒤에서 주인집여자 말하는.

 

여자 : 아침일찍 서울 올라간다고 갔어요.

문기 : (문닫는)

 

 

씬97. 몽타쥬.

 

1,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표를 사가지고, 승강장앞으로 가서 시계보고 버스를 기다리는 준영.

2, 국도길, 생각많은 얼굴로 걸어가는 문기.

3, 달리는 버스 안의 준영.

4, 기차 역사 벤치에 앉아 생각하는 문기, 그때 기차오고, 문기 그 기차보고 일어나고.

효과음 (전화벨 소리)

 

 

씬98. 준영의 집안.

 

준영, 여행에서 돌아와 옷 벗던 중이었는지, 넥타이를 푸는데, 전화기 울리는 준영, 전화받고 무심히 말하는.

 

준영 : 네, 신준영입니다. (사이, 어두운) 형수님? 왜 그러세요? (사이) 지금 뭐라 그러셨어요?....

         (하고, 멍하고 놀라 전화기 떨어뜨리고, 의자에 풀썩 앉는)

 

 

씬99. 문기의 사무실안.

 

문기, 컴퓨터 자판을 치다가 문득 인터폰하는.

 

문기 : 신준영씨, 아직 출근전인가?

여직원 : (E) 좀전에 전화왔는데, 오늘 못오신다고 하시던데요.

문기 : 이유가 뭐야?

여직원 : (E) 나중에 말씀드린다고.

문기 : (인터폰 끊는)

 

시간경과 - 다른 날.

모두 퇴근한, 사무실. 문기, 준영의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다가, 전화기 보는.

그러다, 일어나 웃옷 들고 불끄고 사무실 나가는.

 

 

씬100. 문기의 집 거실, 밤.

 

정혜, 동양화를 그리다가 주방쪽 식탁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는 문기 보는. 정혜의 시각으로.

 

친구1 : (E, 걱정스런) 다음달 15일까지, 발령지로 안가면 사표내랬데. 우리 남편이 걱정많이 하드라,

          도대체 니남편은 무슨 생각을 하길래, 너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는 거니?

정혜 : (문기보다가 일어나, 용기내 말거는) 여보..

문기 : (여전히 생각에 잠겨있다)

정혜 : 우리, 얘기 좀 할래요?

문기 : (정혜의 말을 못들은 거 같다, 일어나) 나 신준영 좀 만나고 올게. (하고, 웃옷가지러 방으로 들어가고)

정혜 : 이 시간에 그사람을 왜 봐요?

문기 : (방에서 나와 현관문 나가며) 곧 올게.

정혜 : (나가는 문기보며) 여보?

 

 

씬101. 준영의 집 전경, 밤.

 

 

씬102. 준영의 집안.

 

준영, 침대맡에 굳은 듯 앉아있다. 이틀내 그렇게 앉아있었던 듯하다. 얼굴이 피폐하다.

문기 책상의자를 준영의 앞에 놓고 앉아 준영을 살피며 몹시 걱정스럽게 보며 말거는.

 

문기 : 무슨 일이야?

준영 : (안보고, 조금 고개숙인채) 가세요.

문기 : (조심스레, 손으로 준영의 턱을 올리는) .....

준영 : (문기를 보는, 눈가 붉어진, 노여운, 자기 턱을 올리고 있는 문기의 손을 잡아 천천히 치우고, 문기를 뚫어지게 보며,

         가라앉은) 나한테 무슨 일이 있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문기 : ?

준영 : (힘들게 일어나, 문기 보며, 고통스럽게 소리치는) 가!

문기 : (일어나, 준영 보며, 걱정스러운) 무슨 일이 있는 거냐?

준영 : (원망스런, 고통스런) 형이 죽었습니다. (눈가에 물기 가득한) 자살했습니다.

문기 : !......

준영 : (눈물나는, 고통스러운) 난 이세상이 싫어. 아무리 각박하고, 힘들어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난 이 세상이 조금은 따뜻할거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나봅니다. 당신도, 내가 사랑한 사람도,

         나를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도 모두, 날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난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형이 있으니까,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데, 그것 역시 내 착각이었나봅니다.

         (격양된, 소리치는) 형은, 형의 죽음으로 가족이,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진 생각하지 않았어요! 자기자신만 생각한 거야!

         그러니까 죽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한거야! (가라앉은) 내 형두 당신도, 두사람 다 이기적인 사람들이야, 다 필요없어.

문기 : (안스러운) 준영아.

준영 : (아랑곳없이) 당신은 당신 혼자 모든 걸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러다 견뎌지지 않으면,

         내 형처럼 죽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해! 당신 아낸 당신이 회사에서 짤려나갈 걸 알고 있어요?!

         당신이 매일,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어요?! 모르죠? 왜? 당신이 말하지 않았으니까! 왜 말하지 않아요! 챙피해?!

문기 : (준영을 보며, 눈가 붉어지는) .......

준영 : (소리치는) 당신은 당신 아내앞에서 아이앞에서 작아지는게 겁날 뿐이야!

문기 : .......

준영 : 비겁해! 사랑할 자격두, 위로받을 자격두 없는 사람들이야! 사랑이 뭔줄 알아? 외로우면 외롭다고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는거야! 그래서 서로 의지하고, 보듬어 주는게 사랑이야!

         당신처럼, 내 형처럼, 혼자서만 끙끙 앓으면서 말하지않고, 모든 것과 단절하는 게 사랑이 아니야!

         (문기 의 멱살을 잡으며, 그의 눈을 보며, 고통스레 말하는) 난 당신을 만지고 싶었던 게 아니야! 

         잠자릴 하자고 한게 아니야! 사랑하자고 한거야! 외로우니까, 위로하자고 했던 것 뿐이야! (눈물 흐르는)

문기 : (고통스럽게, 준영을 안으며, 눈물흐르는) 미안하다, 나는, 아마도 니 형도 혼자 참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준영 : (고개들어 문기 가슴에서 조금 떼어내고, 문기보며) 당신은 혼자 견딜 수 없어요.

문기 : (맘아프게 준영의 머릿카락을 넘겨주는) .....

준영 : (문기 안스럽게 보며) 난 당신을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할 수 있다면 도와주고 싶었어.

         난 당신을 내 형처럼 버려두고 싶지 않아.

문기 : (준영의 볼의 눈물을 닦아주는)......

준영 : 사람이 사람을 위로할 수 없다면, 이 힘든 세상 어떻게 살아. (눈물 한줄기 흐르는)

문기 : (맘아픈, 준영의 얼굴을 만지다가 그의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대고 가만 있다,

         아주 천천히, 준영의 입에 고통스레 입맞추며 눈물흐르는)

 

카메라, 두사람 모습에서 보여주고 한쪽으로 흘러가면, 화면 어두워지는.

 

문기 : (N, 가라앉은) 그 밤, 그 포옹을 누구는 욕정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그러나 터진 그 아이의 입술에서 내가 받은 건, 위로였다. 가엾은 서로에 대한, 안스러운 위로.

 

 

씬103. 병원 영안실, 다른 날, 낮.

 

분향소에서 조문객들 분향하는, 준영, 상복입고 형수와 조카(초등학교 남자아이)와 함께 서있다.

카메라, 한쪽으로 돌아가면 문기, 멀찍이 서서 그런 준영을 보고있다가, 돌아서서 나간다.

준영, 가는 문기를 보는.

 

 

씬104. 벤치.

 

문기, 생각많은 얼굴로 앉아있다.

 

문기 : (E) 여보, 말할이 있어.

 

 

씬105. 주방, 식탁.

 

문기, 정혜 마주 앉아있다. 두사람 앞에 와인잔 놓여있다.

 

정혜 : (문기 보는)

문기 : (차마 정혜 못보고, 어렵게 더듬거리듯 말하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군.

정혜 : (문기 보는, 무슨 말을 하려하나 싶은) ......

문기 : (차마 못보고) 잘난, 남편이고.. 싶었어.

정혜 : .......

문기 : 노력은 했는데, 잘되지 않았어. 창원으로 가면, 글세 당신이 많이 힘들지도 몰라. 스물세살에 당신 나랑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한테 서운한 것도 많고, 그랬겠지만 난 나름대론 최선을 다한다고 한거야...

 

문기, 뭐라 말하지만, 들리지 않는, 정혜, 그런 문기를 안스럽고 서글프게 보고 있다.

그 그림위로 정혜의 나레이션. 정혜의 시각으로.

 

정혜 : (N) 남편은 내앞에서 작아지기가 힘들었는지, 그날 내내 내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다.

         (포도주 마시는) 그런데 왜였을까, (문기 보며)

 

F. O. 검은 화면위로 정혜의 나레이션 이어지는.

 

정혜 : (N) 나는 고마웠다. 적어도 그날이 내겐 20년 넘게 남편과 아내로 단절된 우리가

         친구로, 삶의 동반자로 화합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오랜 단절을 풀고, 그렇게 소통을 시작했다.

 

 

씬106. 침실.

 

불꺼진, 침대맡의 어두운 스탠드불빛만이 실내를 비추고 있다. 잠자리를 한 듯한 분위기.

문기, 침대맡에 앉아 서글픈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있고, 정혜 자는. 그런 그림위로.

 

정혜 : (N) 그 밤 잠자리에서 남편은 울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불쑥 준영이 떠난다했다.

         나는 그때까지 남편에게 있어 준영이 어떤 의민지 알지 못했다.

 

카메라, 두사람 모습 보여주고, 창가로 가면 시원한 바람 불어 커튼 펄럭이는, DIS.

 

 

씬107. 문기의 서재, 낮.

 

정혜, 문기의 책장, 책상을 총채질하는데, 무언가 툭 떨어져 보면, 문기의 다이어리(펼쳐진채 떨어진)다.

정혜, 무심히 그 다이어리를 들어 한쪽에 놓으려다 무심히 펴보면, 메모같은 일기보이는.

 

인써트 - 일기.

준영이 떠난다. 가지말라고 잡고도 싶지만, 잡을 수 없다. 준영은 내가 그를 사랑했던 것을 알까. 그가 떠나는 날, 힘들 것 같다.

 

정혜, 문득 드는 생각있는.

 

 

씬108. 가로수길.

 

문기와 준영, 편안한 느낌으로 나란히 서서 걸어가고 있다. 따뜻한 느낌이 드는 풍경.

 

문기 : 티켓 끊었니?

준영 : 네. 다음주 목요일이에요.

문기 : 그래. 공항엔 못나가겠구나. 나 그날 창원간다.

준영 : 부인한텐 말씀하셨어요?

문기 : 어.. 힘들겠지만 다시 시작해봐야지.

준영 : 미국 가서 전화해두 되요?

문기 : 물론.

 

문기와 준영이 걷는 걸음 위로.

 

문기 : (N) 준영은 다시 연락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가 연락하지 않을 것을 안다. 그 역시, 내가 기다리지 않을 것을 알 것이다.

         우리가 다시 보지 못 한다고해도, 무슨 상관이 있으랴. 서로의 가슴에 서로가 남겨져있는데.

 

준영, 감기 기운이 있는지 콜록하고 잔기침을 하고, 문기, 그런 준영을 보며.

 

문기 : 감기 걸렸니?

준영 : (손이 찬지 두손을 부비며)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문기 : (주머니에서 손을 빼 준영의 손을 잡는다)

준영 : (문기를 보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따뜻하네요.

 

손잡고 걸어가는 두사람, 그 그림위로 정혜의 나레이션.

 

정혜 : (N) 준영을 떠나보내고 남편은 오래 말이 없었다. 준영도 힘들었을까. 밤이면 벨이 울리다 말없이 끊어지는 전화가

         오래도록 계속됐다. 나는 두 남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시간, 그 누구보다 남편에겐 준영이, 준영에겐 남편이 절실하진 않았을까, 서툰 짐작만 해볼 뿐.

 

스크롤 흐르면서, 엔딩.

 

 

 

 

 

 

 

 

 

 

 

 

 

 

 

 

 

 

 

 

 

 

 

 

 

 

 

 

 

 

 

 

 

 

 

첨부파일 슬픈_유혹 대본.hwp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