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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대본

[2000][당신의 둥지는 어디 있을까? ①] 소현경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1.06.28|조회수1,031 목록 댓글 1

[당신의 둥지는 어디 있을까? ①] 소현경

 

 

 

 

 

 

 

 

 

 

S#1. 혜정 집 전경

 

낮은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고급스럽고 중후한 붉은색 벽돌 이층집. 저무는 햇빛이 마당 곳곳에 스며드는 오후.

혜정(37세), 빨래 건조대에 널어놓은 이불 걷고 있다. 막 들어가려는데

 

동희(off) : 언니!

 

혜정, 돌아보면 시어머니 정여사(60세)와 동희(30세), 들어오고 있다. 동희, 배가 상당히 부른 임산부다.

 

혜정 : 어떻게 같이 오세요?

동희 : 시장에 나간 김에 엄마 가게 들렀죠.

혜정 : 시장엔 왜요, 뭐 샀어요?

동희 : 아유, 시장 물건 살게 뭐 있다구. 그냥 운동 삼아 돌아다녔어요.

시모 : 니들 다 그 시장 물건 팔아 키웠다.

동희 : (웃는) 언니, 근데 이불은 왜 들고 섰어요?

혜정 : 볕이 좋아서 좀 말렸어요.

동희 : 어머, 그래야 되는 거예요?

시모 : (혀차는) 살림 자알 살겠다.

혜정 : (웃고)

동희 : 뭘 배웠어야 하지. 엄마 이불 말리는 거 한번두 못 봤수.

시모 : (혜정 의식하는) 얘가?

혜정 : (웃으며) 들어가세요, 어머니. 아가씨, 들어가요.

 

 

S#2. 거실

 

동희, 탁자 위에 두 다리 올려놓고 전화하고 있다.

 

동희 : 자기두 이따 일루 오라구. (사이) 몸보신? 누가 들으면 굶기는줄 알겠다.... 응, 그래, 이따 봐. (끊고)

시모 : (안방 쪽에서 나오며) 둘째한테두 전화 좀 해라. 너 온김에 부르게.

동희 : 암튼 작은 올켄 초대받아야 오는 비싼 손님이야. (다시 수화기 드는)

 

 

S#3. 주방

 

시아버지, 시어머니, 동규(39세), 동희, 동희남편, 영은, 진수(10세), 명희(26세), 식탁에 둘러앉아 있고

혜정, 막 찌개냄비 식탁에 놓는데 동서(31세),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며 문 열어준 영은과 들어온다.

동희, 동희남편, 명희, 동규, ‘어서오세요’ ‘오셨어요’ 등 애드립으로 인사하고

혜정, 동서 밥푸러 싱크대로 가는데 동서, 다가오며

 

동서 : (혜정에게) 늦어서 죄송해요, 형님. 차가 많이 막혀서요.

시모 : 늦긴, 이제 막 먹으려던 참이다. 어서 앉거라.

혜정 : (밥그릇 들고 돌아서며) 앉어, 동서. 다 됐어.

시모 : 그래, 하루종일 회사에서 고생했을 텐데 어서 앉어.

혜정 : (동서에게 너그러운 시모 한번 힐긋 보고)

동서 : (앉고)

혜정 : (앉는다)

시부 : (아쉬운) 우리 동수만 있었으면 온 식구가 다 모이는건데.

시모 : 의사가 그렇게 한가한가요? 사람 목숨 좌지우지하는 일인데 소소한 자리 다 못 챙기죠.

진수 : 지금두 열명이나 돼요.

시모 : 그래, 그래... (흐뭇하게 둘러보는)

명희 : 울 엄마 입 찢어지겠네.

동희 : 아님 콧대 올라가다가 아예 들창코 되던가.

시모 : 누가 아니래니? 교수 큰아들에 의사 둘째 아들에, 부러울 것두 무서울 것두 없다.

진수 : 어? 울 아빠 아직 교수 아닌데요?

모두 : (멈칫하고)

동희남편 : (얼른) 금방 되실 거야.

명희 : (화제 돌리는) 그럼 난 뭐 돼줄까, 엄마?

시부 : 뭐가 되든 상관없다. 딸년은 그저 남편만 잘 만나면 제일이지.

명희 : 아버지!

시모 : 남편 잘 만나두 자식 농사 안되면 다 소용없어요. 아, 우리 언니 봐요. 이 자식 저 자식 번갈아 속썩이는 바람에

         어디 하루 편할 날이 있습디까?

혜정 : (식탁 둘러보고 일어나 접시에 반찬 한그릇 다시 담는데)

동규 : 나 물 좀줘.

혜정 : (접시 놓고 다시 물 따라주고)

동서 : 가겐 어떠세요, 어머니.

시모 : 소일 삼아 하는거지 돈벌이론 끝났다. 천쪼가리 끊으면서도 다들 젊은 사람들 찾아가지,

         우리 같은 중늙은이 있는 데론 안 와.

혜정 : (반찬 접시 놓고 앉고)

동희 : 그럼 이제 관두지 그래 엄마. 평생 지겹지두 안우?

시부 : 니 엄마가 답답해서 집엔 못 있겠단다.

시모 : (흘기는) 당신 나이에 일 놔봐요, 당장 북망산천이 코앞에 오죠.

동서 : (얼른) 그럼요, 어머니. 연세 드셨다고 집에만 계시면 우울증 온다잖아요.

 

 

S#4. 서재

 

컴퓨터 치고있는 있는 동규. 혜정, 들어와 소파에 털썩 앉는다. 동규, 돌아보면

 

혜정 : 여보야, 나 발 좀 주물러주라.

동규 : 다 끝났어? (옆에 와 앉는) 제수씨 좀 시키지 그랬어.

혜정 : 혼자서 설거지 한번만 하면 다음날 앓아눕는 앤데, 앓느니 내가 죽지.

동규 : (혜정 발 주무르고)

혜정 : 아으 시원하다...

동규 : 내일은 돈암동에 가봐, 당신두.

혜정 : ...

동규 : 처제한테 안 미안해?

혜정 : 가봤자 또 왜 왔냐는 잔소리만 들을텐데, 뭐. 담에 갈래.

동규 : 가 뵌지 꽤 됐잖아.

혜정 : (일어나며) 됐네요. 꼭 자기집 일로 허리 휘고 나면 그말 하드라.

 

 

S#5. 아버지 집 앞

 

돈암동 허름한 단독주택. 담 너머로 커다란 대추나무가 보인다.

걸어오는 혜정, 집 앞에 서서 오래돼서 낡은 집을 둘러본다. 벨 누르려던 혜정, 대문 열려있는 것 보고 그냥 들어간다.

 

 

S#6. 아버지 집, 마당

 

들어오는 혜정. 크지 않은 마당 한쪽에 오래된 대추나무 있고 평상 놓여있다.

아버지, 잘 안보이는 듯 돋보기 쓰고 담벼락 끼고 만들어진 텃밭에서 김매고 있다.

 

혜정 : (타박하듯) 문은 왜 열어노셨어요?

아버지 : (쳐다보지 않고 대뜸) 뭐하러 와!

혜정 : 노인 혼자 사는 집이라구 넘보면 어쩌실려구요?

아버지 : 지 집 비워두고 와선 무슨 여기 걱정이야.

혜정 : (역시... 뿌한) 은정이 볼겸해서 왔어요. 별일 없으셨죠.

아버지 : (일 계속하며) 시어른 허락은 받고 온게냐?

혜정 : (누르듯) 네!

아버지 : 들어가 은정이 얼른 보고 가.

은정 : (마루에서 나오며 반갑게) 언니!

 

 

S#7. 아버지 집, 주방

 

식탁 위 불판에서 구워지는 삼겹살. 혜정, 말없이 삼겹살 뒤적이고 있고 은정(33세), 상추쌈 싸고 있다.

 

은정 : (쌍추쌈 내미는) 아부지.

아버지 : 어.

은정 : 아- 해요.

아버지 : 됐다.

은정 : 아- 하라니까?

아버지 : (웃는) 자식...

 

혜정, 웃는 얼굴로 쌈을 받아먹는 아버지를 본다. 자기를 대할 때와는 다른 표정.

 

은정 : 맛있어? 딸이 싸주니까 맛있죠?

아버지 : 그래. 난 됐으니까 천천히들 먹어라. (일어나고)

혜정 : (놀라 보는데)

은정 : 아부지, 요새 왜 통 식살 못해?

아버지 : 많이 먹었다. (나가고)

은정 : 늙으시나봐, 울 아부지. 요즘은 내가 만들어드리는 반찬도 잘 안드셔.

혜정 : 좀 마르신거 같애... (밥 그릇 보며) 콩밥 싫어하시잖아.

은정 : 아부지가 하신거야.

혜정 : ?

은정 : 늙으면 입맛두 변한다드니, 담엔 아부지 좋아하시는 더덕구이 좀 해와야겠다.

 

 

S#8. 마루

 

열린 미닫이 유리문 밖으로 마당이 보이는 마루. 주방에서 찻잔 쟁반 들고 나오는 은정과 혜정, 상 앞에 앉는다.

 

은정 : 공장하구 사택까지 홀라당 다 탄건 둘째구 죽은 사람은 어떡하냐구. 애두 둘이나 있다는데... (앉고)

혜정 : (앉으며 아버지 찾아 둘러보는)

은정 : 어디 가셨지? (다시 혜정에게) 아무튼 고서방 회사가 다 홀딱 뒤집어져서 이 사람 요즘 지정신이 아니야.

 

아버지, 욕실에서 속옷 빨아들고 나온다.

 

혜정 : (얼른 일어나) 제가 널께요.

아버지 : 냅둬라. (나가고)

혜정 : (몇 걸음 따라가는)

은정 : 앉아, 언니. 저건 절대루 나한테두 안 맡기셔.

혜정 : (앉는)

은정 : 빨구 삶구 엄마 흉내 그대로 내시는 거 보면 안돼 죽겠어.

         금실 좋았던 부부, 한쪽이 먼저 가면 그래서 혼자 오래 못산대든대, 외로워서.

혜정 : ...여기다 너시지...

은정 : 엄마, 비오는 날 아님 집안에 빨래 안 널었잖아. 청소구 뭐구 하다못해 설거지까지 엄마하는 순서 그대로 하셔.

         가끔 웃음 난다니까, 아부지 보면.

 

둘, 열린 문 밖으로 시선 향하고... 아버지, 들어와 앉는다.

 

은정 : 차 드세요, 아부지.

아버지 : 그래.

은정 : (아버지 얼굴 살피며) 울 아부지 다이어트 하시나? 정말 말랐네.

아버지 : 김서방은 언제쯤이나 자리가 생긴대냐.

혜정 : (할말없고) ...

아버지 : 요즘 교수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데, 돈도 수월찮게 들고.

혜정 : (듣기 싫은) ...

은정 : 자리만 있으면야, 형부네 부자잖아요.

아버지 : 시어른들... 잘 모셔라.

혜정 : (약간 짜증나는데) ...

아버지 : 얼른 먹구 일어나. 가 저녁준비 해야지.

은정 : 아부진? 아직 멀었어요.

아버지 : 지 설자리 지가 소홀하면 자리잡기 힘든게 시집살이다.

혜정 : (짜증 누르는) 제가 알아서 해요.

아버지 : 당연히 알아서 해야지. 니가 택한 길인데.

 

혜정, 표정 굳어지며 고개 숙이고 은정, 차 마시다말고 분위기 살핀다.

 

 

S#9. 아버지 동네 골목길

 

걸어오는 혜정과 은정.

 

은정 : 언니랑 같이 오면 꼭 나까지 일찍 나오게 되네.

혜정 : (자조적인) 우기고 시집갔으니까 충성하고 살으란 얘기시지 뭐.

은정 : 그때 아부지 말 좀 듣지 그랬어. 아님 공부나 잘하지 말든가.

혜정 : (맞지만) 늙으면 기운 떨어진다는 말, 다 거짓말이야. 아직도 볼 때마다 내 속 긁는거 보면.

은정 : ...오빤 통 안와.

혜정 : 어떻게 오겠어, 사업 잘 되냐고 물으실 게 뻔한데...

은정 : 말은 안해도 속으론 서운할거 아냐, 울 아부지.

혜정 : 서운하신 게 낫지, 걱정하시는 거 보다. 모르시는게 약이야.

은정 : (걱정스런) 엄마 돌아가시구 3년 동안 그래두 크게 맘쓰시게 하는 거 없어 다행이다 했는데...

 

 

S#10. 혜정집 거실 (저녁)

 

둘러앉아 과일 먹는 시부, 시모, 영은, 진수, 혜정.

 

시모 : (혜정에게) 낮에 아줌마가 전화받드라.

혜정 : 예?... 아 예, 좀 나갔다 왔어요.

시모 : (싫은) 남한테 집 맡겨두는 게 안심이 되야 말이지.

혜정 : 네...

시모 : 그나저나 요새 동희가 뜸하네?

영은 : (싫은) 고모 저번에 왔잖아요.

시모 : 한번 불러야겠다. 배 불러갖구 밥이나 제대로 해 먹겠니?

혜정 : 그러세요...

시모 : 황태구이 좀 할래? 동희가 제일 좋아하잖아, 에미 니가 만든 황태구이.

(E) 2층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전화벨

시부 : 니들 전화왔나부다.

혜정 : (서둘러 일어나는)

 

 

S#11. 2층 거실 (저녁)

 

뛰어올라와 전화 받는 혜정.

 

혜정 : (숨찬) 여보세요?

은정(F) : 언니 어떡해.

혜정 : 은정이니? 왜, 왜 그래?

은정(F) : 고서방 중국 발령났어.

혜정 : 뭐?

 

 

S#12. 서재 (밤)

 

컴퓨터 치고 있는 동규. 혜정, 힘없이 문에 기대 선다.

일에 빠져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동규. 혜정, 심란하게 서 있는데

 

동규 : (힐긋 보는) 왜 그러구 있어? (다시 컴퓨터 치고)

혜정 : ...은정이네... 고서방이 중국으로 발령났대.

동규 : (건성으로) 그래? 잘됐네.

혜정 : (물끄러미 쳐다보는) ...

동규 : 젊어서 외국생활 해보는 것도 괜찮잖아.

혜정 : ...삼년이래는데. (어두워지고)

동규 : (그제야 돌아보는) ...당신이 더 바빠지겠구만, 처제 대신할려면.

 

 

S#13. 중부시장

 

건어물 가게들 즐비한 시장 골목.

혜정, 황태 한축 든 비닐봉지 들고 걸어오다가 한 가게 앞에서 멈춰 선다. 수북히 쌓인 더덕들.

 

 

S#14. 아버지 집 앞

 

장 본 비닐봉지 들고 초인종 계속 누르던 혜정, 아무런 기척이 없자 백에서 열쇠 꺼낸다.

 

 

S#15. 아버지 집, 거실

 

들어서던 혜정, 기겁한다. 욕실에서 끙끙거리며 기어나오고 있는 아버지.

 

혜정 : 아버지! (달려가는)

 

혜정, 아버지 부축하려하면 아버지, 숨도 제대로 못 내쉬고 끙끙거린다.

 

혜정 : 왜 이러세요? 넘어지셨어요? (부축하려는데)

아버지 : (겨우) ...부엌...

 

혜정, 주방 쳐다보곤 얼른 일어난다.

 

 

S#16. 동 주방

 

가스렌지 위에 놓인 냄비. 퉁퉁 불어서 다 졸아버린 라면 냄비다.

혜정, 얼른 가스렌지 불끈다.

 

 

S#17. 아버지 방

 

아버지, 자리 깔고 누워있고 혜정, 화난 얼굴로 앉아있다.

 

 혜정 : 왜 이렇게 고집이세요? 가서 엑스레이 찍어 보시자구요.

아버지 : 파스 붙였으니까 됐어. 내 몸 내가 안다. 어디 금간데도 없어.

혜정 : 아버지가 어떻게 아세요, 그걸?

아버지 : 알어.

혜정 : (답답하고)

아버지 : 어서 가거라. 저녁 할 시간이야.

혜정 : 저 시집에서 밥하는 사람 아니예요.

아버지 : 어여 가서 니 할 일 해.

혜정 : 정말 저한테 어지간 하시네요.

아버지 : 너 좋아서 들어간 집이야. 김서방, 김서방 식구들 뒷바라지 할 생각으로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너 아니냐.

            어서 가. 너 자주 오는거 안 반갑다.

혜정 : (화난) 은정이 가면 저 더 자주 보셔야 돼요.

아버지 : ?

혜정 : (아차) ...

아버지 : 은정이가... 어딜 가는데?...

혜정 : (내친김에) 중국 간대요. 고서방이 중국발령났다구요. 아버지 이제 은정이 믿구 그러셔도 소용없어요.

아버지 : (충격! 얼른 감정 감추며) ...누가 니 도움 받는대냐? (끙 돌아눕고)

혜정 : (울고 싶은 기분이다)

 

 

S#18. 거리 (석양)

 

터덜터덜 걸어오는 혜정, 놀이터 앞 지나다가 놀이터 벤치로 가 앉는다. 속상함과 안타까움으로 울음 참다가 기어이 흑 운다.

 

 

S#19. 혜정집, 주방 (저녁)

 

불린 황태 손질하는 혜정, 자꾸 눈물이 난다. 일손 멈추고 그대로 서서 눈물 닦는데

들어오던 동희, 그 모습 보고 놀라서 얼른 나간다.

 

 

S#20. 혜정집, 안방 (저녁)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둘이서 화투 치고 있다. 부어서 들어오는 동희.

 

시모 : 저녁 멀었다니?

동희 : 나 그냥 갈래, 엄마. (가방 들고)

시모 : 응? (쳐다보고)

시부 : 아니, 왜?

동희 : 아까 늦었다구 엄마한테 한소리 들어서 그런지 언니 우나봐. 나 갈래요.

 

 

S#21. 주방 (저녁)

 

고개 푹 숙이고 있는 혜정, 그 위로

 

시모(off) : 너 지금 뭐하는 거냐?

혜정 : ...

시모 : 그냥 가는 시누, 잘 간다, 그러구 섰어?

혜정 : ...

시모 : (더 화난) 그래, 배부른 시누한테 그깟 저녁 한끼 먹이는게 그렇게 억울하디?

 

 

S#22. 혜정 침실 (밤)

 

혜정, 복잡한 표정으로 화장대 의자에 앉아있고 동규, 들어온다.

 

동규 : (보다가) 장인 어른이 다쳐서 그렇게 된 거라구 얘길하지 왜?

혜정 : 그런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어.

동규 : 분위기가 어딨어, 분위기가.

혜정 : (쳐다보는)

동규 : 좀 잡지 그랬어?

혜정 : 그럴 기분도 아니었어.

동규 : (타박하는) 동희 그대로 가게만 안 했어도 어머니 저러시진 않을거 아냐!

 

혜정, 타박하는 남편을 멍하니 쳐다본다. 낯선 느낌.

 

 

S#23. 혜정집 주방 (다른 날)

 

혜정, 식탁에 앉아있는 은정 앞에 커피잔 놓아주고 앉는다.

 

은정 : (둘러보며) 몇 달만에 와봐도 여전히 반질반질하네. 안 지겨워?

혜정 : 지겨워. 지겨워 죽겠다. 해두해두 끝없는 집안 일...

은정 : 우리, 전세 나갔어.

혜정 : 빠르네?

은정 : 싸게 내놓은 데다가 마침 급하게 들어올 집 찾는 사람이 있어서.

혜정 : 그래... 제부 먼저 가더라도 너두 빨리 들어가야지...

은정 : (위로하는) 너무 걱정하지마, 언니. 아버지 아직 건강하시잖아.

혜정 : (심란하고) ...

은정 : 나야 아버지 근처에 살았으니까 자주 가 볼수 있었던 거지만, 언닌 그럴 수도 없구...

         자주 가진 않더라도 이젠 언니가 아버지 속 좀 풀어드려라.

혜정 : 아버지 나한테 어떻게 하는지 알면서 그래.

은정 : 정말 어지간해, 아부지나 언니나. 솔직히 아부지가 언닐 좀 이뻐했니? 혜정아, 혜정아, 입에 달고 사셨잖아.

         난 어렸을 때 아부지가 내 이름은 모르는줄 알았어.

혜정 : 얜...

은정 : 아부지 고지식한거 언니가 그대로 닮았겠지만, 생각해 봐. 세무공무원 30년에 그집 하나 남은거 보면 아부질 그렇게 몰라?

         아부지 먼저 언니 보구 웃겠니?

(E) 전화벨

혜정 : (무선 수화기 드는) 여보세요?... 어머니.... 네? 병원요? (은정보고)

 

 

S#24. 원단 가게

 

원단 가게들 모여있는 도매시장. 시어머니 전화하고 있다.

 

시모 : 그래, 지금. 언니가 어제밤에 응급실로 실려갔댄다. 그러니까 너 지금 바루 좀 나와라, 같이 가게... 그래, 그래... (끊고)

 

 

S#25. 혜정집, 주방

 

은정 : (일어서며) 언니 사는 건 여전하구나.

혜정 : (미안한) 오자마자 가서 어떡하니? 커피래두 마시구 가. 그 정돈 시간있어.

은정 : 물 마시다 체하면 약두 없네요. (나가고)

혜정 : (속상한 얼굴로 따라나간다)

 

 

S#26. 병원 앞

 

와서 멎는 택시. 시어머니와 혜정 내린다.

 

시모 : (병원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래서 자식이 웬수라는 말이 있나부다. 어떻게 지 엄마 속하날 편하게 못해주니?

         지들을 다 어떻게 키웠는데.

 

들어가는 두 사람.

 

 

S#27. 병원 로비

 

환자와 환자 가족들로 북적이는 로비. 시어머니와 혜정, 두리번거리며 걸어온다.

시모 엘리베이터가 어디야, 어느 쪽이니? 두리번거리던 혜정, 놀라서 돌아본다.

투약 대기실에서 막 일어서는 아버지. 아버지, 투약구 앞으로 간다.

혜정, 이상해서 쳐다보는데

 

시모 : 저 쪽이네. (가고)

혜정 : (아버지에게 갈까 어쩔까 망설이는데)

시모 : (가다가) 얘, 어서 와! 뭐하니?

혜정 : 네.

 

혜정, 할수 없이 시어머니를 따라 가면서 다시 돌아본다. 커다란 약봉지 받고 돌아서는 아버지, 수심이 가득하다.

 

 

S#28. 입원실

 

1인실 병실. 시어머니, 눈물 흘리는 시이모 손잡고 있고 혜정, 그 옆에 서 있다.

 

시모 : (혀차는) 쯧쯧... 그러게 애들 너무 애지중지 키우지 말라니까. 내가 그랬잖우? 애들도 독립심이 있어야 한다구.

혜정 : (심란한 표정으로 딴생각에 빠져있고)

시모(off) : 자식도 다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라구 크면 다 떠나보내야지.

혜정 : (황당한 표정으로 시모 흘깃 본다)

시이모 : 너두 스트레스 안 받게 조심해. 위장병 대부분이 신경성이랜다.

시모 : (뿌듯한) 나야 뭐 크게 신경 쓰게 하는 일이 있나.

혜정 : (다시 아버지 생각에 팔리고)

 

 

S#29. 거리 + 공중전화 부스

 

혜정, 전화하고 있다.

 

혜정 : 아버지... 요즘 병원 다니시니?

은정(F) : 병원? 병원이라니?

혜정 : 아니, 병원에서 아버질 봤거든.

은정(F) : (놀란) 병원? 어디, 어느 병원?

혜정 : (수습하는) 아니, 아버지랑 비슷한 사람을 본 거 같애서...

은정(F) : 언니! 왜 이렇게 사람 놀래키니?

혜정 : 그래, 아버지가 병원 갈 일이 뭐 있으시겠니? 걱정 마, 너 정신없을 텐데 놀랬겠다.... 그래, 응.

 

전화 끊고 부스에서 나온 혜정, 심상찮은 표정으로 망설이다 택시 잡아탄다.

 

 

S#30. 아버지 집, 마루

 

혜정, 문 열고 들어서면 아버지, 속옷 들고 욕실로 들어가려다 돌아본다.

 

아버지 : (보면서도 잘 안보이는 듯) 누구... 냐?

혜정 : 저 왔어요.

아버지 : 왜 또 왔어?

혜정 : (살피는) 별일 없으시죠?

아버지 : 친정 출입이 왜 이리 잦어? 가깝지도 않은데.

혜정 : ...

아버지 : (말없이 욕실로)

 

 

S#31. 아버지 방

 

혜정, 문 밖 기척 살피며 조심스레 들어온다. 방안 둘러보며 망설이다가 문갑 열어 뒤진다.

문갑 차례로 열어 살피던 혜정, 깊숙한 곳에서 상자 꺼낸다. 열어보면 병원 비닐 약봉지와 주사기 가득 들어있다.

놀라서 굳어지는 혜정.

 

 

S#32. 진찰실 (다음날)

 

혜정, 들어와서 의사 책상 앞에 가 앉는다.

 

의사 : (의아) 오덕재씨...

혜정 : 오덕재씨가 제 아버지 되세요.

의사 : 아, 그래요?

혜정 : (가방에서 약봉지와 주사기 꺼내놓으며) 이게... 뭔가 해서요. 저희 아버지 어디가, 어떻게...

의사 : (컴퓨터 보며) 당뇨가 심하신데 모르셨어요?

혜정 : (깜짝 놀라는) 당뇨요?

 

 

S#33. 병원 앞

 

기운 없이 나오는 혜정.

 

의사(E) : 아시겠지만 당뇨는 합병증이 무서운 겁니다. 시력이 아주 안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또 신부전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요.

혜정 : (근심 가득한 얼굴로 걷고)

의사(E) : 당뇨 치료에서 가장 절실한 건 식이요법입니다.

 

 

S#34. 까페

 

은정, 놀란 눈으로 혜정 쳐다보다가 비죽비죽 울기 시작한다. 참담한 마음으로 그런 은정 바라보는 혜정.

 

은정 :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거의 매일 아부지한테 가면서 인슐린 주살 맞으시는데두 몰랐어...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 언니...

혜정 : ...

은정 : 아부지 어떡해... 울 아부지 불쌍해서 어떡해... 대체 언제부터 당뇬거야?

         아부진 대체 왜 말을 안한거야? 혼자서 어쩔려구...

혜정 : ...

은정 : (울음 삼키며) 당뇨면 아부지 혼자서 못 살아. 지금도 점심때마다 라면 끓여 드시는데...

         오빠네랑 같이 살아야 되는 거 아냐?

혜정 : 이론적으로야 그렇지... 아들이래야 오빠 하나 있는데 오빠랑 사는게 원칙이겠지...

은정 : 언니!

혜정 : 근데, 내가 올케 언니래두

은정 : (O.L) 무슨 말야, 그게? 아부지 식이요법 필요한 환자면 당장 오빠네랑 합쳐야지. 안 된다는 말이잖아, 지금?

혜정 : 알면서 왜 그래. 오빠 하던 사업 안되서 놀고 있는데, 지금 새언니 혼자 벌어 살구 있는데 아버질 어떻게 모셔?

         거기다 사둔어른까지.

은정 : (맞지만) 그럼 어떡해? 아부지도 쥐꼬리만한 연금으로 근근히 사시는데!

         퇴직금은 엄마 병원비루 다 쓰시구, 집두 오빠가 사업시작할 때 은행에 잡혔잖아...

 

 

S#35. 혜정집 주방 (저녁)

 

혜정, 쌀씻다 말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데 큰 비닐봉투 든 시모, ‘에미야’ 하며 들어온다.

 

혜정 : (기척에 돌아서며) 다녀오셨어요?

시모 : (봉투 식탁에 놓으며) 녹즙이 건강엔 제일이래더라. 우리두 내일 아침부터 온 식구가 이거 한컵씩 짜 먹자.

혜정 : 네... (심란한데)

시모 : (뒤적이며) 언니 보니까 나두 인제 몸 관리해야지, 보자... 케일, 신선초...

혜정 : (우울한 얼굴로 보다가 싱크대로 돌아서는데)

시모 : (눈치 채고) 왜, 귀찮냐?

혜정 : (돌아서는) 네?

시모 : 나나 니 시아버지 앓아 누워봐라, 너만 손해지. (나가고)

혜정 : (멀거니 바라보고 섰고)

 

 

S#36. 거리+쌀가게 앞 (다음날)

 

가게 안에서 주인과 얘기하고 있는 혜정 보인다. 주인, 보리, 현미 등 각종 잡곡 자루 들고 나온다. 혜정 따라나오며

 

혜정 : 예, 맞아요, 아저씨. 잘 아시네요?

주인 : 몇번 배달 가서 점심두 얻어먹었는걸요?

혜정 : 네?

주인 : (오토바이에 싣는) 거 노인분이라 적적하셨던지 마침 드시려던 참이라구 하두 잡으셔서

         염치불구하구 한 두어번 얻어먹었죠.

혜정 : (짠한) 네...

주인 : 근데 쌀밥 좋아하시던데 이렇게 온통 잡곡밥 드실라구 그러겠어요?

아버지(E) : 이게 다 뭐야!

 

 

S#37. 아버지 집, 거실

 

마루 미닫이 문 앞에 놓여진 잡곡자루와 혜정 번갈아 보는 아버지.

 

혜정 : 쌀밥 보다 잡곡밥이 건강에 좋다길래요.

아버지 : 필요없다. 애비 아직 니들 걱정시킬 만큼 안늙었어.

혜정 : (애써 부드럽게) 건강한 사람도 잡곡밥 먹어요.

아버지 : 여기 드나들지 말랬더니 너 왜 자꾸 쓸데없는 짓을 해! 이런거 다 싫어.

혜정 : 이런 거 싫으신 분이 인슐린 주산 왜 맞으세요?

아버지 : (놀란)

혜정 : 주사보다 드시는 거부터 바꾸셔야 한다잖아요.

아버지 : (당황하고) ...

혜정 : 왜 무조건 싫다 그러세요? 아프신 분이...

아버지 : 이런 게 싫다는 게 아니다.

혜정 : ?

아버지 : 니가 이러는 게 싫어.

혜정 : 아버지!

아버지 : 시집살이하는 처지... 친정에 자꾸 신경쓰면 너만 곤란해져.

혜정 : ...곤란해질 만큼 비참하게 안 살아요, 저.

아버지 : 그저, 다 그런 게다. 시집살이란 게 다 그런 거지.

혜정 : (속상한) ...

아버지 : 오래비한텐 암말 말거라, 가뜩이나 심란할텐데...

혜정 : (알고 계셨구나, 놀란) 아버지...

아버지 : (마당으로 내려서며) 애비까지 보태줄 거 뭐 있어. 암말 마.

 

 

S#38. 마당

 

아버지 따라 마당으로 내려선 혜정, 약간 부자연스럽게 걸어나가는 아버지 뒷모습 보고 서있다.

막 대문 나가는 아버지와 맞물려 들어오던 은정, 뭔가 이상한 아버지 와 혜정 기색 느끼며 멈칫 선다.

<시간경과>

평상에 걸터앉아있는 혜정과 은정. 은정, 땅만 내려다보고 있다.

 

혜정 : (은정 기색 살피며) 왜, 아버지 땜에 영 맘이 안좋니?

은정 : (이윽고 고개 들며) 언니.

혜정 : 그래.

은정 : 나, 이대론 도저히 그냥 못 가겠어.

혜정 : (무슨 소린가) ?

은정 : 언니가... 언니가 3년만, 나 갔다올 동안 3년만 아부지 모시고 살면 안돼?

혜정 : (놀라고)

은정 : 아부지... 혼자선 안돼, 언니두 그거 알잖아.

혜정 : (난감하고)

은정 : (야무지게) 나, 할만큼 했어. 엄마 돌아가시고 3년 동안 고서방은 아부지 뒷전이었어.

         오빠넨 오빠 사정 그렇구, 언닌 또 언니 사정이 이렇구, 그런거 다 아니까...

혜정 : ...

은정 : 안돼?

혜정 : 내 사정두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아버지하구... 알잖아, 아버지 얼마나 날 튕겨내시는데... 자신 없어.

은정 : 언니하구 아버지 사이 안 좋은거 알아. 아는데... 울 아부지 이제 겨우 예순 일곱이야.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다른 병두 아니구 당뇬데, 당뇨라는데... 약보다 먹는 치료가 먼저라는데...

혜정 : (할말 없고)

은정 : 고서방 혼자 보낼까 생각도 했었어. 근데, 그 회사, 중국 그 공장에 목맨 상태야.

         사택까지 다 불타서 거기 수습하고 다시 자리잡는 동안 나, 가서 공장 식구들 밥이래두 해줘야 한대.

혜정 : (또 놀라고) !

 

 

S#39. 혜정집 앞

 

착잡한 마음으로 걸어오는 혜정, 저만치 자기집 보이자 멈춰선다. 속상하고 짜증도 나는 복잡한 혜정의 얼굴.

 

은정(E) : 삼년이야. 삼년이면 돼. 형부한테 삼년만 아들 노릇 중단하구 언니 딸 노릇 좀 하게 해 달라고 해.

              삼년 뒤엔 아버지 평생 내가 모실게.

 

혜정, 아득한 눈으로 하늘을 본다.

 

 

S#40. 동규 서재 (저녁)

 

혜정, 벽 쪽에 놓인 소파에 앉아있고 동규, 책상 의자 돌려서 마주보고 있다.

 

혜정 : 은정이 말, 틀린 거 없어. 당신 생각은 어때, 걔가 틀렸어?

동규 : ...틀린 거야 없지. 처제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만 해... (심란하고)

혜정 : (부탁하는) 삼년만... 영은 아빠, 삼년이라는데... 안되겠어?

동규 : 장인어른, 나 껄끄러워 하시는 것도 그렇지만... 처가살이하면서... 어떻게 부모님 신셀지니?

혜정 : (얼른) 내가 아껴서 살께. 당신 강의료 갖구 살수 있게 내가 아껴서 살면 돼.

동규 : (걱정스런) ...어머니 아버지가 허락하실지 모르겠다.

혜정 : 부모님이 허락하시면 당신은 괜찮은 거지?

동규 : 허락만 하시면야...

혜정 : 그러니까 당신이 잘 말씀드려줘. 다른 것도 아니고 아버지 편찮으셔서 이러는 건데.

 

 

S#41. 혜정집, 안방 (저녁)

 

심각한 얼굴로 시부모 앞에 앉아있는 혜정과 동규. 동규, 어렵게 얘기하고 있다.

 

시모 : (믿을 수 없다는) 그래서 지금 친정살이를 하겠다는 거니, 니들? (얼른 시부 돌아보면)

시부 : (크게 헛기침) 큼, 큼...

혜정 : (동규 보고)

동규 : 아뇨 하겠다는게 아니구요, 그러면 어떨까... 어머니 아버지 생각은 어떠신지...

혜정 : (절절매는 동규에게 못마땅한 시선 가고)

시모 : 동규 니 생각은 어떠냐.

동규 : ...이 사람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봐 주세요...

 

시모, 안색이 변해 굳어지고 시부, 역시 불안한 얼굴로 혜정과 동규, 시모를 번갈아 본다.

혜정, 애가 타서 초조하게 시부모 기색 살피는데

 

시모 : 우선, 생각 좀 해 보자.

 

 

S#42. 아버지 집, 안방 (저녁)

 

아버지, 작은 밥상(찻상 정도 되는 작고 초라한) 앞에 놓고 밥 먹고 있다.

문갑에 놓인 카세트 라디오에서 들리는 라디오 소리.

젊은이들 위주의 프로로 진행자와 게스트 간에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요란하다.

아버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소음처럼 느껴지는 공간에서 억지로 밥을 먹는 아버지.

 

 

S#43. 혜정집, 침실 (밤)

 

불꺼진 침실. 혜정, 돌아누워 잠 못자고 있는데 동규, 들어와 혜정 옆에 눕는다.

 

혜정 : (등돌린채) 어머니... 허락하실까.

동규 : 안 잤어?

혜정 : (불안한) 허락하시겠지?...

동규 : 기다려 봐.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

혜정 : (섭섭함 감춘) ...당신은 말을 꼭 그렇게 밖에 못해?

동규 : 무슨 소리야.

혜정 : 당신 생각은 없어? 집사람 생각이, 어머니 생각은 어떠신지... 당신은 왜 당신 의견은 얘기 안해?

동규 : 어머니 앞에서 어떻게 당신 편을 들어?

혜정 : (돌아본다) 이게 내 편 들어 달란 얘기야?

동규 : 장남, 부모님한테 처가살이 얘기 꺼내기 쉬운거 아냐. 자자, 피곤해. (등 돌리고)

혜정 : (섭섭한 눈길로 동규 등 보다가 자기도 돌아눕는다)

 

 

S#44. 혜정집 주방 (다음날, 이른 아침)

 

식사하는 시부모와 동규, 명희. 혜정, 괜히 행주로 싱크대 닦으면서 시모 기색 살피고 있다.

말없이 식사만 하는 식구들 이상한 듯 쳐다보는 명희.

 

시모 : (수저 놓고 일어선다)

동규 : 왜 그거밖에 안 드세요.

시모 : 어제 잠을 설쳤더니 입안이 깔깔해서 못 먹겠다.

혜정 : (얼른) 누른밥 해드릴까요?

시모 : 됐다. (나가고)

혜정 : (불안하고)

 

 

S#45. 원단 가게

 

시모, 원단 끊으러 온 손님 상대로 천 펼쳐서 보여주는 종업원 옆에서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있다.

시부, 돌아앉아 신문보고 있다가

 

시부 : (시계 보며) 다섯시 반이야.

시모 : 예?

시부 : 오늘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있다면서.

시모 : (그제야) 아참! (시계 보고 서둘러 백들고 일어서면)

시부 : 어떡할 거요?

시모 : 뭐가요?

시부 : 영은에미한테 생각해 본다 그랬잖아.

시모 : 그래서 생각중이네요. (나가고)

 

 

S#46. 음식점 방 안

 

깨끗한 음식점. 시모와 친구 서넛 둘러앉아 식사하고 있다.

 

시모 : 정란인 어디가 어떻게 아프길래 못나오는 거니?

친2 : 왜, 정란이 어디 아프대?

친1 : 아프댄다. 며느리 때문에.

시모 : 며느리? 며느리 때문에 왜 아퍼? 걔, 며느리하구 사이 좋든데.

친1 : (웃는) 얘, 정란이 걔가 맨날 그랬잖아. 자기는 며느리한테 하두 잘해서 맨날 ‘너 하구 싶은 말 있으면 다 해라’ 그런다구.

시모 : 그랬지.

친1 : 지가 말로는 며느리하구 사이에 거릴 두고싶지 않아서 그런 다지만,

        사실 며느리가 지한테 불만이 없을 거다, 자신 있으니까 그런 거 아냐?

친2 : 그렇지.

친1 : (갑자기 막 웃는다)

 

모두, ‘얘, 왜 그래?’ 등등 한마디씩 하는데 친1, 겨우 웃음 멈춘다.

 

친1 : 근데 하루는 정란이가 ‘얘, 너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음 뭐든 말해라, 담아두지 말고 말해라’ 그러니까

친2 : 그러니까?

친1 : 걔 며느리가 갑자기 정색을 하구 묻더랜다. 정말 하고 싶은 말 해두 되냐고. 그래서 그래라 그랬더니,

        ‘어머니 저희 집에 아무 때나 오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더래.

모두 : 뭐어?

친1 : 아무 때나 불쑥불쑥 오는 거, 불편하고 부담스럽다구, 차라리 자기가 알아서 시댁으로 오겠다구.

        정란이, 그 길로 집에 와서 쓰러졌댄다.

시모 : (황당한) 맹랑하네?

친2 : 솔직한 거지.

시모 : 그게 솔직한 거야? 어디 감히 시어머니한테 그런 말을 해?

친1 : 해라 해라 하는데 안 하겠니? 요즘 며느리들이 어떤데?

시모 : (갑자기 뭔가 느낀 듯 굳어지고)

친2 : 처음부터 좋은 시어머니 콤플렉스 있는 거 같드라, 정란이. 그래서 며느린 초장에 잡아야 한다는 거야.

친1 : 하긴 좀 어렵게 대하는 게 낫지. 봐주면 끝없이 기어오른다?

시모 : (심각하고)

친1 : 난 그래서 아예 거리 두고 살잖아. 그게 제일 좋아.

시모 : (괜히 화난다) 어떻게 거릴 두고 살아? 내가 내 아들들 어떻게 키웠는데! 장가 보내 며느리 줄려구 아들 키웠니?

 

 

S#47. 안방 (밤)

 

시부모 앞에 무릎 꿇고 앉아있는 혜정, 초조한 기색이다. 동규는 없다.

 

시모 : (다정한) 에미야.

혜정 : 네.

시모 : 저, 우리가 생각을 신중하게 해 봤는데...

혜정 : (긴장하고)

시모 : 사람이 사는데, 다 사람 사는 법도가 있다. (시부 보는) 그렇죠?

시부 : 그, 그렇지.

시모 : 예부터 출가외인이란 말이 내려오는데

혜정 : (덜컥하고)

시모 : 그렇다고 우리가 친정부모 나 몰라라 할만큼 몰염치한 사람들은 아니다.

혜정 : (기대하고)

시모 : 그래서... (부드럽게) 우리가, 아니 우리 집안에 니가 없으면 되겠니?

혜정 : 네? (고개 들어 쳐다보는)

시모 : 일주일에 한 두어번 파출부를 들여주마.

혜정 : (굳어지고) !

시모 : 병원 처방대로 반찬 만들어 놓으면, 여태도 혼자 잘 챙겨드셨다니까 드시는 거야 별 무리 없겠다, 싶은데.

혜정 : (무너지는) 어머니...

시모 : (얼른) 네가 우리 집에서 어떤 위친지, 누구 보다 니가 잘 알 거다.

         우선 우리 두 늙은이부터 철없는 동생들까지 다 너 의지하고 사는데, 너 없이 안 돼요.

혜정 : (더 이상 말못하고)

 

 

S#48. 한강 철교 (다른 날)

 

철교를 달리는 전철.

 

 

S#48. 전철 안

 

유리문에 머리 기대고 서 있는 혜정, 복잡하고 심란한 표정이다.

 

 

S#49. 오빠 집 주방+거실

 

만사가 귀찮은 표정으로 물 주전자 가스렌지에 올리는 새 언니. 혜정, 식탁에 앉아서 불안하게 새 언니 기색 살피고 있다.

새언니, 혜정 맞은 편에 와 앉다가 돌아보면 거실로 나오고 있는 안사돈과 조카(6세 가량).

 

안사돈 : (주방으로 다가와) 민이 데리고 놀이터 좀 다녀오마.

새언니 : 다 저녁에 어딜 나가게?

안사돈 : 애들이야 콧바람이 제일 아니냐. (혜정에게) 놀고 있어요.

혜정 : 네...

 

두 사람 나가고 다시 마주보는 혜정과 새언니.

 

혜정 : 민이 외할머니, 많이 마르셨네요.

새언니 : 열살 여섯 살, 사내 애 둘 키우고 살림하긴 버거운 나이잖아요.

혜정 : (괜히 미안해지는) 그렇죠... 오빠는요?

새언니 : 어디 취직자리라도 알아본다고 나갔어요. 아가씨 온다구 일찍 온다 그랬는데...

혜정 : 잘 됐으면 좋겠다. 어디래요?

새언니 : 저렇게 알아보러 나가는 게 여섯달 째예요. (일어나며) 나이 사십에 어디 취직할 데가 있겠어요?

혜정 : ...

새언니 : (커피 잔에 물 따르며 내뱉듯) 어디다 하소연 할 데도 없고, 엄마 보기도 민망하고 미안하고...

혜정 : (죽을 맛이다)

새언니 : (커피잔 놓아주며) 콱 죽어버렸으면...

혜정 : (놀라 보면)

새언니 : 오빠 말구 나요...

혜정 : (본론은 꺼내지도 못한다)

 

 

S#50. 아버지 집 앞

 

혜정, 앞 씬과 같은 옷차림으로 기운 없이 걸어온다. 활짝 열려있는 대문 보고 놀라서 달려오는 혜정.

 

 

S#51. 아버지집, 마루

 

역시 열려있는 마루 미닫이문으로 들어오는 혜정.

 

혜정 : (안방으로 가며 짜증스럽게) 왜 온 집안 문을 다 열어놔요?

 

대꾸가 없다. 안방 문도 활짝 열려있다.

 

 

S#52. 안방

 

혜정의 시선으로 보이는 안방, 빈방에 황급히 사람이 빠져나간 듯한 이부자리만 펼쳐져 있다.

혜정, 갑자기 더럭 겁나는 얼굴로 얼른 전화 건다.

 

혜정 : (잠시) 은정이니? 아버지 어디 가셨니?... 몰라? 대문, 현관문 있는 대로 활짝 열려있던데?... 그래, 얼른 와봐.

 

혜정, 전화 끊고 일어서다가 한쪽 상위에 펼쳐진 아버지의 일기 본다. 망설이다 아버지 일기를 읽는 혜정.

 

아버지(E) : ‘어쩐지 내 갈 길이 오래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꿈에 죽은 내자가 자꾸 보인다.’

 

혜정, 앞으로 넘긴다.

 

아버지(E) : ‘영은 에미가 요새 부쩍 출입이 잦다. 보면 반가운데 말은 곱게 받아주질 못한다. 혹여 마음이 흐트러져 지 생활을

                 제대로 꾸리지 못할까 항시 걱정이다. 뻗대기만 하는 성격이 영판 나를 닮았다... 내가 아무리 강한 척을 해도

                 눈치 빠르게 마음을 졸이고 있는 혜정이, 내 큰딸만 보면 마음이 아프다’

 

혜정, 몰랐던 아버지 마음 느낀다. 더 읽기 두려운 듯 일기장을 덮고 일어선다.

 

 

S#53. 아버지 집 앞

 

달려와서 집으로 들어가는 은정.

 

 

S#54. 아버지 집, 마당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는 혜정. 은정, 헐레벌떡 들어온다.

 

은정 : (숨 헐떡이는) 어떻게, 어떻게 된 거야?

혜정 : 모르겠어. 문 죄 열려있는데... (두려운) 은정아, 혹시 아버지... 어디 응급실에라도 실려 가신 거 아닐까?

은정 : 건 아냐. 오다가 앞 가게에서 물어봤어.

혜정 : (안도하는) 그럼 대체 어디 가신거지?... 전에도 이러신 적 있니?

은정 : 없어. 얼마나 꼼꼼한데 아부지가. 언니도 잘 알잖아... 어디 전화해 봤어?

혜정 : 전화? 어디?

은정 : 어디든 좀 해봐. 난 이 근처 찾아볼게, 아버지 갈만한데. (다시 나가고)

 

 

S#55. 동 마루

 

아버지 수첩 들고 전화하는 혜정.

 

혜정 : 예, 예, 알겠습니다. (끊고 다시 수첩에 있는 번호 돌린다. 잠시)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 혜정인데요...

 

 

S#56. 혜정집 거실 (저녁)

 

시모, 기막히다는 얼굴로 서서 동규 바라보고 섰고 동규, 난처한 얼굴이다.

 

 

S#57. 아버지 집 마당 (늦은 저녁)

 

캄캄해진 마당에서 초조하게 서성이는 혜정과 은정. 둘 다 걱정으로 터질 듯한 얼굴이다.

삐걱- 대문 소리와 함께 힘없이 들어오는 아버지.

 

둘 : 아버지! (달려가고)

아버지 : (놀라 쳐다보는)

은정 : 아부지 어디 갔었어요?

아버지 : 둘 다 웬일들이야? (혜정에게 버럭) 넌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여기 있어!

혜정 : (같이) 어디 가셨던 거예요?

은정 : (퍼붓는) 대문, 현관문 죄다 열려있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어요? 아부지 실종신고할려구 그랬단 말야!

아버지 : (그제야) 내가 그랬었냐?

혜정 : 어떻게 된 거냐구요?

아버지 : 거... 박가 말이다... 낮잠 자다 잠결에 박가가 위독하단 연락을 받구는 내, 정신이 반 나갔었나부다.

은정 : 사진관 박씨 아저씨요?

아버지 : (끄덕이고 안으로 가고)

은정 : (따라가며) 갑자기 왜요? 지난주까지 괜찮으셨는데.

아버지 : 뇌출혈로...

혜정 : 그래 괜찮으세요? 어떠세요, 지금은?

아버지 : 옷 갈아입으러 왔다. 은정아, 내 검정 양복 어딨냐? (들어가고)

 

자매, 놀라서 서로 쳐다보다가 따라 들어간다.

 

은정 : (들어가며) 그럼 도, 돌아가셨어요?

 

 

S#58. 혜정 집 거실 (밤)

 

눈치 살피며 조심스레 들어오는 혜정, 깜짝 놀란다.

잔뜩 화난 얼굴로 기다리고 섰던 동규, 대뜸 혜정 끌고 2층으로 올라간다.

 

 

S#59. 혜정 침실 (밤)

 

혜정 끌고 들어오는 동규, 거칠게 혜정 팔 놓는다. 놀란 혜정의 얼굴.

 

동규 : 왜 이렇게 늦었어!

혜정 : 영은 아빠...

동규 : 당신 친정 갔었지! (버럭) 늦으면 늦는다구 전활 해야 될 거 아냐!

혜정 : 사정이, 그럴 사정이 있었어.

동규 : 사정? 같은 서울 시내에서 전화 못할 사정이 뭐야? 말해 봐! 갑자기 장인어른이래두 돌아가셨어? 전화 못할 일이 뭐야!

혜정 : (기막힌) 당신... 너무 하는 거 아냐?

동규 : (그제야 주춤)

혜정 : 그래, 나 친정 갔었어. 그거 아는 당신은 왜 전화 안 했어?

동규 : (그제야)...무슨 일 있었어?

혜정 : 왜 안 했어!

동규 : ...갑자기 전화번호 생각이 안 나잖아.

혜정 : (기막힌) 뭐? 처갓집 전화번호 생각이 안 났어? 전화번홀 잊어버렸어?

동규 : 당황하니까, 당황하면 그렇잖아.

혜정 : ...전활 하두 안 하니까 잊어버렸겠지.

동규 : 얘기 딴데루 돌리지 마. 오늘따라 어머닌 감기 몸살로 일찍 들어오셨는데 당신은 없지, 때 되두 안 들어오지,

         어머닌 끙끙 앓구 누워 계시는데... (버럭) 아픈 어머니 짜장면 시켜 드시게 해야겠어?

혜정 : (큰소리) 당신 부모는 뭐가 그렇게 귀한 몸이야!

 

 

S#60. 1층 거실 (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 서서 귀 기울이던 시모, 혜정의 고함소리에 기겁한다.

 

동규(off) : (화난) 너 지금 뭐라 그랬어?

 

 

S#61. 혜정 침실

 

화나고 놀란 동규의 얼굴.

 

혜정 : (폭발하는) 울 아버진 맨날 라면 끓여 드셔! 식이요법이 필요한 환잔데도 혼자서 아무거나, 있는 데로 차려 드신다구!

         당신 부모 한끼 짜장면 드신 게 그렇게 속상해? 며느리가 저녁 안 해주면 아무 것도 못해 드시는 분들이야?

동규 : (의외 반응에 놀라) 여보, 혜정아. 당신 왜 이래?

혜정 : 왜 이래? 왜, 잘못했습니다, 엎드리기라도 할까? 친정아버지 때문에 당신 부모 저녁상 못 차린 죄로

         그럼 뭘 어떡해야 하는 건데?

 

 

S#62. 혜정집 안방 (밤)

 

시모, 하얗게 질린 얼굴로 들어온다. 방에서 귀 기울이며 서성이던

 

시부 : 쟤, 쟤들 왜 저래요?

시모 : (입 꾹 다물고 화 누르는)

시부 : 저런 일이 한번도 없던 애들이 왜 저러나, 그래... (하다가 시모 보고 신기한 듯) 근데 당신이 웬일이요?

시모 : (화 누르며 앉는다)

시부 : 가만두는 게 신기해서 그러지.

시모 : 가만 좀 계세요. 내가 나설 때가 아니니까.

 

 

S#63. 동규 서재 (밤)

 

동규, 책상에 앉아 담배 뻑뻑 피고 있다. 혜정, 이부자리 갖고 들어와 방 가운데 쏟아놓듯 내려놓는다.

 

동규 : (얼른 일어나) 어머니 기분 좀 풀어드릴려구 그런 거야.

         편찮으셔서 들어오셨는데, 당신 연락 없이 늦는 거 하두 서운해하셔서...

혜정 : 당신 효잔 거는 알겠는데 남자들, 혼자 효자노릇 못해, 알아?

동규 : ?

혜정 : 효자, 그런 거 없어. 효부 아낼 둔 남편이 있을 뿐이야. (나가고)

동규 : (난감하게 보기만)

 

 

S#64. 혜정집 안방 (다른 날)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잘 차려진 교자상에 온 식구 둘러앉아 식사하고 있다.

시부모, 흐뭇한 얼굴로 자식들 둘러보고 시모 옆에 선물 꾸러미 여러 개 놓여있다. 시어머니의 생일 상이다.

 

동희 : 그렇게 좋우? 해마다 받는 생일 상인데.

혜정 : (막 물 컵 든 쟁반 놓고 자리에 앉는데)

시모 : 좋다. 받을 때마다 든든하구. 이게 다 영은 에미 덕분이다.

모두 : (시선 혜정에게 향하고)

혜정 : (민망한데)

동서 : (얼른) 그럼요, 어머니. 큰며느린 그래서 하늘이 낸 사람 이래잖아요.

시부 : 넌 참 아는 것도 많다.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들었냐?

동서 : 어디서 들었는진 기억 안 나는데요 아버님,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혜정 : (부담스럽고)

시모 : 틀린 말 아니지. 한 집안이 잘될려면 며느리, 그것도 큰며느리 역할이 제일이거든.

혜정 : (왜 저러시나) ...

동규 : (어색하게 혜정 보는)

명희 : (그런 동규와 혜정을 유심히 본다)

시모 : 니들 다 잊지 마라. 우리 다음엔 영은 에미다. 다들 영은에미한테 잘해.

혜정 : (일그러지는 얼굴 펴려 애쓰고)

 

 

S#65. 주방

 

식사 마친 교자상 주방 한쪽에 놓여있고 혜정, 빈 그릇들 개수대에 담고 있다.

명희, 상위에 남은 음식 그릇들 정리하고 있고 동희, 식탁에 앉아있다.

 

동서 : (들어오며) 직장 때문에 음식 준비도 못 거들었는데, 설거진 제가 할께요.

명희 : 둘째 언닌 그것두 재주야.

동서 : 네?

명희 : 당연한 얘길 꼭 생색내서 하는 거요.

동서 : 어머, 아가씨.

명희 : (천연덕) 미안한 건 저두 마찬가지니까, 설거진 그럼 작은 언니하구 저하구 둘이서 해요.

동희 : 난 빠져도 되겠지?

명희 : 새삼스럽게.

동희 : 너두 배불러 봐라. (혜정에게) 언니, 설거지 다하구 오랜만에 노래방에 갈래요?

동서 : 어머, 저흰 바로 가야 돼요.

동희 : 가다뇨?

동서 : 아버지 몸이 좀 안 좋으셔서요.

동희 : (놀라) 입원하셨어요?

동서 : 아뇨, 입원할 정돈 아니구요. 집에 계신데 작은오빠가 오늘밖에 시간이 없다구, 오늘 가자구 그러네요.

동희 : 그래두 엄마 생신인데 밥만 먹구 일어나요?

동서 : 가라 그러셨어요.

혜정 : (안색 변하고)

 

 

S#66. 혜정집 마당 (늦은 저녁)

 

둘째 부부 나오고 시모, 동희, 명희, 배웅하러 우루루 나온다.

 

동수 : 가보겠습니다.

동서 : 일찍 가서 죄송해요. 어머님, 아버님.

시모 : 됐다. 어서들 가. 사장어른 몸조리 잘 하시라구 전해라.

동서 : 그럼 안녕히 계세요.

 

잘 가라, 안녕히 가세요, 등등의 인사말과 함께 둘째 부부 아웃되고 모두 들어가려는데 음식 보따리 든 혜정 나온다.

 

혜정 : 어머니. 저 잠깐 다녀올께요.

시모 : (보따리 힐긋 보는) 너무 늦지 않았니?

명희 : (얼른) 지금 가는 게 낫지. 아직 아홉시두 안됐는데. 음식은 하루 지나면 맛없잖아.

시모 : (싫지만) 그래, 조심해서 얼른 갔다 와라.

혜정 : 네. (서둘러 나가고)

 

 

S#67. 혜정집 거실 (밤)

 

시모, 동희, 명희, 얘기하면서 들어와서 소파로 가 앉는다.

 

동희 : 울 엄마, 큰올케한테 꽤 관대하네? 아래층까지 다 들릴 정도로 악을 썼다면서.

명희 : 며칠 남지 않은 엄마 생일상 차리는데 새언니가 꼭 필요하니까.

시모 : 이 기집애.

동희 : 와- 새언닌 죽어도 울 엄마 못 당하겠다.

명희 : 엄마.

시모 : 왜.

명희 : (장난처럼) 나두 맏며느리 되면 새언니처럼 잘 할 수 있을까?

시모 : (기겁) 뭐야?

동희 : 너 연애한대더니 장남이야?

시모 : 연애라니? 그냥 친구라며!

명희 : (얼른) 무슨 말을 못하겠네. 아니 나라구 맏며느리 되지 말란 법 있나?

시모 : 얘가 미쳤나?

명희 : (기막힌) 엄마. 장남 없는 차남 있어요? 엄만 어쩜 아들 딸 다 있는 사람이 이렇게 며느리하구 딸 차별이 심해?

시모 : 인지상정이야. 옛말에도 며느린 봄에 밭일시키고, 딸은 가을 밭에 내보낸다구 했다.

명희 : 그게 무슨 말인데.

시모 : 다 같은 밭일이지만, 딸은 따가운 봄볕에는 안 내보낸다는 거지 뭐냐.

명희 : (기막힌 웃음)

시모 : 사람들, 말로는 이러구 저러구들 하지만, 어차피 자기 입장되면 다 똑같지. 편애? 그거 당연한 거다.

 

 

S#68. 아버지 집 주방+거실 (밤)

 

혜정, 냉장고에 음식 그릇 넣으며

 

혜정 : 잡채라두 조금 드릴까요?

아버지 : (off) 됐다. 내일 먹지.

혜정 : 그럼 내일이래도 꼭 드세요. 설탕 소금 거의 안 넣고 따로 한 거예요.

 

혜정, 힐끗 돌아보면 거실에서 TV 보고있는 아버지 보인다.

혜정, 그릇 다 넣고 일어나서 가스렌지 위에 놓인 국냄비 열어본다. 국 색깔이 시커멓다.

갸웃하며 국 떠 먹어보는 혜정, 얼굴 찡그린다. 싱크대 위에 놓여있는 양념그릇들 본다.

커피병과 고춧가루 담긴 커피병이 나란히 놓여있다.

물 마시려고 식기 건조기에서 컵 꺼내다가 반찬그릇 하나 들어본다. 고춧가루가 덕지덕지 묻어있다.

설거지 한 다른 그릇들 집어보다가 놀라서 아버지 돌아보는 혜정. 아버지, 계속 TV 보고 있다.

 

혜정 : (거실 입구로 나와서) 국, 아버지가 끓이셨어요?

아버지 : 은정이가 끓여놓고 갔다.

혜정 : 그래요?... (이상한 듯) 근데, 국에 왜 커(피가, 하려는데)

아버지 : 너무 멀겋게 끓여놔서 내 고춧가루 한 숟가락 넣었는데 왜, 너무 많이 들어갔냐?

혜정 : (굳어지며) ...설거진요. 아버지가 하셨어요?

아버지 : 그래.

 

혜정, 천천히 거실로 나가서 아버지를 본다.

 

의사(E) : 당뇨는 합병증이 무서운 겁니다. 시력이 아주 안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또 신부전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요.

 

 

S#69. 동 거실

 

혜정, 천천히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혜정 의식해서 TV에 몰두하는 척하는 아버지, 초점이 흐리다.

혜정, 망연히 서서 그런 아버지를 본다. 잘못 끼워진 셔츠 단추.

혜정, 아버지 시력이 안 좋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갑자기 눈물 솟아오르고.

 

혜정 : (도망치듯) 저 가요. (나간다)

 

 

S#70. 혜정집 앞 (밤)

 

걸어오는 혜정, 충격으로 반쯤 넋 나간 얼굴.

 

 

S#71. 혜정집, 현관 (밤)

 

‘찰칵’ 하며 열쇠로 문열고 들어오던 혜정, 캄캄한 현관으로 조용히 들어서다가 시누이 목소리 듣고 멈칫 선다.

 

시모(off) : 이것아, 영은 에미 없으면 니 해산바라진 누가 하니? 내가 하랴?

 

 

S#72. 동 주방 (밤)

 

시모와 동희, 식탁에 앉아 얘기하고 있다. 동희, 뭔가 연신 집어먹고 있다.

 

동희 : (먹으며) 엄마가 집에서 좀 해주면 안돼? 요샌 가게도 안 바쁘면서.

시모 : 내가?

동희 : 하긴, 언제 일을 해본 엄마라야지.

시모 : 그 뿐이 아냐, 이것아. 니 아버지가 이젠, 영은 에미가 만든 음식 아니면 손도 안 대신다.

동희 : 그럼 파출분 와서 뭐해?

시모 : 그리구 요새 파출부들은, 우리 같이 식구 많은 집일은 아예 할려고도 안 해요. 지금 아줌마도 와서 청소밖에 더 하니?

         반찬은 영은 에미가 다 하지. 영은에미 없으면 큰일난다.

 

 

S#73. 동 거실 (밤)

 

질려서 듣고 있는 혜정의 얼굴, 그 위로

 

동희(off) : 그래서 어떡할 건데?

시모(off) : 어쩌긴, 살살 구슬러야지. 그러니까 너두 영은에미한테 잘해. 맘 약한 애니까 딴 생각 못하게.

 

혜정, 더 못 듣고 휙 돌아 나오는데서.

 

 

 

 

 

 

 

 

 

 

 

 

 

 

 

 

 

 

 

 

 

 

 

 

 

 

 

 

 

 

 

 

 

 

 

첨부파일 당신의_둥지는_어디였을까_1부[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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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다반향초 | 작성시간 14.11.14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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