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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대본

[전등사] 이한호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1.11.30|조회수449 목록 댓글 1

▶ 제  목 : 제 300회 특집 "전등사"

S#1. 홍목의 작업실
  - 사방 벽의 사진, 줄에 걸려 있는 사진들...책상위에 불켜진 뷰-박스와 그 위에 필림 보이고, 홍목, 침대 위에 앉아서 책상 위를 보고 있다. 책상 위에 있는 잡지 책. 페이지. 잡지책 - 전등사 대웅전의 인물상. 그 위로,
(홍목의 소리) 내 몸으로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느낌. 이 사진을 처음 본 순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알 수 없다. 왜 이렇게 불안하고 또 왜 이렇게 설레이는지를....

S#2. 전등사, 경내
  - 세월이 정지된 듯한 고즈녁한 경내.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층으로 된 누각 아래, 세월의 풍상을 겪어 고사한 나무가 인상적이다. 어느 순간 홍목, 화면안으로 들어선다. 전문가용 카메라를 들고 매점쪽으로 다가가는 홍목. 매점 안쪽에는 단금, 다시용 찾잔을 앞에 두고 다소곳이 책을 읽고 있다. 홍목을 의식하지 못하고 책장을 넘기다 문득 눈을 뜨는 단금. 단금 앞에 잡지를 내미는 홍목, 대웅전 인물상 사진이 보인다.

S#3. 대웅전 앞
단금      (인물상 가리키며) 저거예요. 볼거 없죠?
홍목      !
단금      원래 그래요. 와서 보면 다 시시하죠 뭐.
  - 홍목, 단금이 가르킨 대로 인물상의 시선으로 홍목의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풍경 소리에 돌아보면 대웅전 열린 문 안으로 한복차림의 여인, 단아한 자세로 앉아있는 뒷모습이 보인다. 홍목, 카메라로 대웅전 인물상을 찍는다. 화면 가득히 잡히는 인물상. (DIS)

S#4. 정참판댁 행랑채 안(과거, 밤)
  - 달빛을 받고 있는 나무토막을 조각하는 손. 홍목, 열정적인 얼굴로 나무를 다듬고 있다. 나무토막이 점점 한 여인의 형상을 띤다.

S#5. 정참판 댁, 별당 (낮)
  - 다 고친 미닫이문을 들고 효임의 열려진 방에 단다. 홍목, 몇번 문을 밀어보다 문득, 애틋하게 방안을 둘러본다. 이때, 점순을 앞세우고 효임 별당으로 들어선다.
점순      에그머니. 아직 다 안 된 모양입니다. 아가씨.
  - 흥목, 그 소리에 놀라 얼른 문을 닫고 마루에서 내려선다.
효임      그래? 사랑채로 가자꾸나.
흥목      아닙니다요. 다 고쳤습니다, 아씨.
효임      (마루쪽으로 간다)
  - 흥목, 고개 약간 들어 다가오는 효임을 훔쳐본다. 흥목의 앞을 지나치는 효임의 옆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단정하고 곱다.
효임      (흥목에게 눈길 주지 않은채) 점순아, 다 고쳤으면 그만 나가보라 일러라.
홍목      (여전히 효임을 바라보다)
점순      아씨 말씀이 안들려요?
홍목      예에.
  - 홍목, 허둥지둥 마루 끝에 펴둔 연장통을 챙겨 중문쪽으로. 마루 끝에 나비 문양의 작은 나무 토막 하나가 떨여져 있다. 점순, 효임의 신발을 정리하다 그것을 집어들어 보고.
점순      에그. 잘 두 만들었네.. 이것좀 보셔요.
효임      (본다)
점순      금방이라두 살아서 팔팔- 날 것 같네요.
효임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있게 본다) 그래.
점순     아씨, 수실 감는 실패로 쓰면 딱 좋겠어요. (홍목에게) 이 봐요. 이거 우리 아씨 드려              도 되요?

S#6. 별당문 앞
  - 홍목, 조금 열린 문 안으로 안을 들여다 본다. 점순, 뭐라 이야기를 하고 효임, 나비 문양을 만져 보는 모습 보인다. 홍목, 흐뭇한 얼굴이다.

S#7. 정참판댁 사당
  - 공사중인 사당. 목재와 기와 등의 자재가 쌓여있고, 모래체, 가래 등의 연장들이 널려있다. 배근을 비롯한 일꿀들의 일하는 모습이 보이고. 지붕 공사를 하고 있는 홍목, 문득 별당 쪽으로 시선이 간다. 그 눈빛이 아련하다.

S#8. 동, 별당 안 (밤)
  - 열린 장지문 안으로 효임이 보인다. 막 머리를 감은 듯, 동경 앞에서 참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고 있다. 동경에 비친 효임의 단정한 얼굴이 차가운 기품이 느껴진다.

S#9. 동, 행랑채 안(새벽)
  - 밤새 목각상을 완성시킨 기쁨이 얼굴에 가득한 홍목. 문을 열면 눈부신 아침 햇살이 쏟아진다.

S#10. 사당 앞(다른 날)
  - 사당의 공사가 끝난 듯 어지럽던 마당이 깨끗하다. 일생, 정참판에게 설명하는 모습이다. 그 뒤로 청지기 따르고. 마당 하편에 홍목, 배근 등이 연장을 정리하고.
정참판   (흡족해서) 애들 썼구나.. 대궐 일만으로도 황망한 터에... 애초에 도편수가 지었던 거              라 내 염치없이 청을 넣었는데, 이리 빨리 마무릴 지어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일생      송구하옵나이다. 영감마님께 입은 후의가 태산과 같사온데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정참판    (뒤에 선 홍목을 보고) 저 아이가 도편수 뒤를 이을 아인가?
일생      (보고는) 아직 부족하지만 나무 새기는 솜씨는 이미 저를 넘어섰사옵니다.
정참판    호오, 그래? 여봐라!
청지기    (얼른 나오며) 예에.
정참판    다들 노고가 컸으니 소홀치 않게 대접하여라.
청지기    예에 마님...
  - 홍목, 심란하게 정참판과 사당을 본다.

S#11. 행랑채 마당 (저녁)
  - 홍목, 툇마루 끝에 생각에 잠겨 앉아있다. 불켜진 방에서는 왁자한 웃음소리 들려오고. 홍목, 일어나서 초조한 듯  마당을 오락가락 하다, 품안에서 목각을 꺼내본다. 나즉하니 한숨을 내쉬고, 소중한 듯 꼭 쥐어보는 홍목.

S#12. 별채 뜰 (밤)
  - 수면 위로 달이 떠 있다. 효임, 뜰을 거닐고 있다. 효임의 뒤에서 인기척 나면,
효임      (돌아보며) 점순이냐?
홍목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효임      (깜짝 놀라) 뉘냐?
홍목      아씨!
효임      누구냐!
홍목      소인 홍목이라 합니다. 도편수 어른을 따라온...
효임      허면 네 무리와 함게 있을게지 여긴 어찌 들어왔느냐!
홍목      ...
효임      (문쪽을 한 번 보고) 월장을 했단 말이냐?
홍목      아씨!
효임      얼른 물러 가거라! 누가 볼까 두렵구나.
홍목      (품에서 목각을 꺼내 효임에게 내민다)
효임      (흘깃 보고) 흉하구나.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홍목      이것만, 이것만 받아주십시오.
효임      당장 물러가지 않으면 사람을 부르겠다!
  - 홍목, 말문이 막힌 듯 섰다가, 불현  듯 효임의 손을 끌어 목각을 쥐어준다. 효임, 화들짝 놀라 목각을 털어내고 뒤로 물러선다.
효임      점순아! 점순아! 게 아무도 없느냐!
  - 중문이 열리고, 점순 자리끼를 소반에 받쳐 들고 오다 그 광경을 보고 소반을 떨어트린다.
점순      (비명에 가깝게) 아씨!

S#13. 정참판댁 사랑채 앞(밤)
  - 횃불이 대낮처럼 밝혀진 사랑채. 홍목, 이미 매타작을 당한 듯한 몰골로 꿇어엎드려 있고, 양옆으로 건장한 하인들 몽둥이를 들고 서있다. 정참판, 대청에 서있고 일새와 청지기, 댓돌 아래 서있다.
정참판    (손에 든 목각을 보며) 대체 이 흉칙하 것이 무엇이냐!
홍목      ...
정참판    고얀 놈. 하루 이틀에 만들진 않았을 터. 네 무슨 마음으로 이걸 새겼더냐!
홍목      ...
청지기    바른대로 대지 못하겠느냐!
  - 홍목, 고개를 들어 정참판을 본다.
홍목      소인도 모르옵니다. 그저 제 손이 가는대로 깎았을 뿐이옵니다.
정참판   너도 모른다. 허 - 왜구가 이땅을 유린한 후, 삼강이 무너지고 오륜이 땅에 떨어져 반상           의 법도를 문란케 하는 해괴한 일들이 많다 하나, 어찌 내 집에서 이런 일이 생긴단 말           이냐! 내, 오늘 너를 죽여 일벌백계의 징치로 삼으리라.
  - 청지기의 신호로 하인들 몽둥이로 홍목에게 뭇매를 가한다. 일생, 그 광경을 처연하게 보는데, 살이 터지고, 피가 흐르는데, 홍목,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를 삼키고 있다. 일생, 홍목의 매를 막아서다 그 바람에 몽둥이 하나가 일생을 후려친다.
홍목      어르신!
일생      (땅바닥에 부복하며) 영감마님. 제가 잘 가르치지 못해 이런 일을 만들었으니, 이 아이            대신 저를 죽여 주소서.
정참판    스승이 제자의 죄를 쓰고, 아비가  그 자식의 죄를 쓴다면 이 땅에 살아있을 목숨이             몇이겠나. 도편수는 일어서라.
일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사람이 죽고 남은 하늘의 뜻이겠으나 인정의 배품은 사람의 뜻            이 아니오니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정참판    ...
일생      (홍목을 돌아보고) 네 이놈, 어서 영감마님께 죄를 빌어라.
홍목      (천천히 고개를 든다) 죽여 주십시오, 마님. 결코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마음만으로도             죄가 된다면, 이 자리에서 저를 죽여 주십시오.
  - 하인, 홍목을 후려치다. 홍목을 지그시 쏘아보는 정참판.
정참판    (자탄하듯) 허어! 그 마음이 생사를 가른다.

S#14. 아궁이 (밤)
  -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던져지는 효이므이 목각인형. 서서히 불길에 싸여 타오른다.

S#15. 일생의 집, 홍목의 방(다른 날)
  - 홍목, 장독이 풀리지 않아 운신이 어려운 듯 요 위에 엎드려 있고, 일생, 그 옆에 앉아 손으로 약을 부비고 있다.
단근E    아버지.
  - 문 열리고, 단금, 놋대야에 수건을 들고 들어온다. 단금, 대야를 내려놓고 수건을 짜 일생에게
일생      (수건으로 등을 닦는다)
단금      (상처를 보고 눈쌀을 찌푸리며) 모진 사람이네요. 공사하다 보면 실수도 하고 하는거지            어쩌자고 사람을 저리 만드나...
일생      (약을 붙인다)
홍목      (신음) 끙.
단금      조금만 참아요, 오라버니.
일생      강화로 가게 됐다. 전등사 중축을 하라시는 어명이 계셨다.
단금      아버님 건강도 좋지 않으신데...
일생      큰 공사라, 한두해 걸릴 일도 아니고... 가기 전에 너희 두 사람 혼례를 서둘러야 겠다.
홍목      !
단금      (살짝 홍목의 눈치를 본다)
일생      너희 두 사람 예만 치루자 나면, 나는 배근이 데리고 강화로 갈 것인 즉 그리 알아라.

S#16. 정참판 댁 사랑채 안
  - 정참판과 이판서, 서로 맞은 편에 앉아있고. 윤증, 정참판에게 절을 올리고 앉는다.
정참판    오랜만에 보는구나..
윤중      자주 문안 드리지 못해 죄송스럽습니다.
정참판    그래, 글은 열심히 읽고 있겠지? 세자 저하께옵서 보위에 오르시면 곧 별시가 있을 것            이다.
윤중      유념하고 있습니다.
이판서    너는 좀 나가있거라. 내 강암과 긴히 의논할 것이
윤중      예에. (일어나서 문쪽으로)
정참판    (흐뭇한 표정으로 윤중을 본다)

S#17. 동, 별채 일각
  - 마당으로 들어노는 윤중, 방문이 열리고 효임이 보인다. 애정 가득한 눈으로 효임을 보는 윤중. 효임, 얼굴을 붉히고. 잠시 외면하다 이윽고 마주치는 시선.

S#18. 동, 사랑채 안
  - 정참판, 이판서 찻상을 마주하고 앉아있다.
이판서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으이.
정참판    죽고 사는거야 하늘에 매였으니 두려울것도 연연할 것 없네. 단지 효임이가 걱정일세.
이판서    그런 걱정은 말게나. 국상중이라 혼례가 미루어져 그렇지. 이미 우리집 아이가 아니던            가.
정참판    고맙네.
이판서    부디, 자중하시게. 자네에게 화가 미친다면 일신에 그치는 것도 아니요. 일 문에 그치            는 것도 아니요. 그 불똥이 사방팔방으로 튈터이니.
정참판          음...

S#19. 별채 뜰
  - 효임과 윤중, 뜰을 거닐고 있다. 그 뒤를 점순이 실실 웃으며 따르고.
윤중      (불쑥) 내 얼굴이 전보다 여윈 것 같지 않소?
효임      (고개 들어 보고) 글 읽기가 고되십니까?
윤중      불충한 생각이오만, 왜 하필 이 때 국상이 난단 말이요. 보름만 더 살아계셨더라도 낭            잔 벌써 내 사람이 되었을텐데...
효임      (미소 짓는다) 도련님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변하셨군요. 여전히 짖궂으십니다.

S#20. 장목전 (다른날, 낮)
  - 나무 치목소로 목재들 쌓여있다. 한쪽에서는 산판에서 떼로 매어 온 나무들을 풀고, 늘어세워 말리고 있다. 일생, 홍목과 배근을 앞세우고 나무를 고르고 있다.
일생      이번 교동대감댁 사랑 추녀를 세우는데 어떤게 좋겠느냐?
배근      (하나를 짚으며) 이 정도면 딱 아귀가 맞을 성 싶은데요.
일생      (나무를 흘깃 보고, 홍목에게) 네 생각은 어떠냐?
홍목      (꼼꼼히 살펴 보다 다른 하나를 가르키며) 저 쪽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배근     추녀 기둥은 오푼이 더 길어야 하는데, 아우가 고른건 여느 기둥과 같은 여덟치 아닌             가?
홍목     그렇지요 형님.. 귀솟음을 주려면 오푼이 더 있어야 하나 춘양목 상태가 고르고 잘 말라           서,  처마 무게에 눌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중 수장 파는 일도 생각해야지요.
배근     그렇구나.
일생     (만족해서 고개를 주억거린다) 허허... 홍목아! 동자주에 쓸 나무와 종보에 쓸 나무가 다           르고,  종보에 쓰는 나무를 감히 충량에 올리지 못하는 법이다. 사람도 이와 하나 다르           지 않다.
배근      (홍목을 본다)...
홍목      (불쑥) 나무는 토양과 종자가 달라 그리 된다 하나 어찌 사람을 거기에 견주겠습니까?
일생      허- 큰일이로다. 네 안에 있는 화기를 어쩐단 말이냐!
홍목      (시선을 돌리는데, 격정에 차있다)

S#21. 정참판 댁, 사랑채 안
  - 정참판, 의관을 정제하고 단정히 앉아 서찰을 쓰고 있다. 효임, 눈물을 머금고 앉아있다.
정참판    세월이 하 수상해 그런 것이니  너무 섭섭해 하지 말아라. 어짜피 너야 이씨 문중 사            람이 아니더냐?
  - 정참판, 서탁 위에 놓인 함을 공손하게 들고 일어서서 효임앞으로 와 바닥에 내려놓고 앉는다.
정참판    사당에 모셨던 위패니라.
효임      (무슨 듯인지 의아한 눈빛으로 정참판을 본다)
정참판    때가 도면 양자를 세워 이것을 꼭 전해야한다.
효임      아버님!
정참판    지금 당장은 어려울게다. 세상이 좀 가라앉거던 먼 일가 중에 심성 맑은 아이를 찾아            제사를 받들게 해야 할 것이다.
효임      어찌,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정참판    출가외인인 네게 이런 부탁을 하게 되어 마음이 무겁구나... 어쩌겠느냐. 우리 가문의              운명이 네게 달렸으니.
효임      아버님!
정참판    어서 떠나거라. 한시가 바쁘구나.
효임      이대로는 못 가옵니다. 아버님을 두고 어디를 가라 하십니까? (정참판의 무릎에 쓰러            져 어깨를 떨며 운다)
정참판    (효임의 등을 쓸어준다)

S#22. 가마 안
  - 흔들리는 가마 안. 효임, 보자기에 싼 위패함을 꼭 안고 있다. 효임,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S#23. 정참판 댁 사랑(밤)
  - 의연한 자세로 앉아있는 정참판. 방안 분위기가 긴장되어 있다. 이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와, 계집종들의 비명소리 들려온다. 창호지에 일렁이는 바깥의 횟불들이 대낮처럼 밝다.
사령E    대역죄인 정수겸은 어명을 받들라!

S#24. 이판서 집, 사랑
  - 이판서, 정참판이 보낸 서찰을 읽고 있다. 김시부인, 효임, 윤중, 앉아있다. 효임 고개를 숙이고 있고, 방안 분위기 사뭇 침통하다.
이판서    부인. 그걸 이리 주시오.
  - 김씨부인, 머뭇거리며 붉은 비단 보자기를 내민다. 이판서 보자기를 풀면, 효임의 사주단자다. 이판서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잠시 보다 촛불에 가져간다. 타들어가는 사주단자.
윤중      아버님!
효임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러나 슬프고 처량해서가 아닌 이롱의 노여움으로)
이판서    효임아.
효임      ...
이판서    (불 붙은 단자를 타구에 내려놓고) 강암이 내겐 한 스승 밑에서 글을 배운 죽마고우라            하나 그건 사사로운 정이다. 이제 그는 대역죄인이니라.
윤중      강암어른의 억울하심은 아버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판서    무릇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건너지 못할 거친 여울을 만났을땐 돌아가야 하는게            또한 난세를 만난 사대부의 몸가짐이다. 효임이 듣거라. 너로 하여금 가문을 위태롭게            할 수는 없는 일. (이제 다 탄 사주단자, 꺼져간다. 연기와 함께 가는 재가 흩어진다)             이로써 이 혼담을 파할 것이다.
윤중      아버님!
이판서    ...
김씨부인  (효임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고)
효임     (눈물을 거두고, 고개를 들고 기개있게) 외람되오나 감히 한 말씀만 여쭙겠사옵니다. 제            아버지와 백곡어른의 관포지교가 이런 것이었습니까?
이판서    음...
효임     아버지와 저를 내침이 사대부의 몸가짐이고, 그로써 살 길을 도모하신다면.. 따르는 것            이 제 도리일 것입니다.
  - 안타까운 시선으로 효임을 바라보는 윤중. 고개를 숙인 효임의 위로
E        형장의 긴박한 북소리

S#25. 형장
  - 넓은 공터에 여러명의 죄수들 포박당한채 무릎 꿇려있다. 그 중 정참판의 모습 보인다. 형장 한가운데서 금부도사 결안을 낭독하는 모습 보인다. 정참판, 허허로운 시선을 던지다 일생과 홍목을 발견한다. 일생과 홍목, 고개를 숙여 하직인사를 올리고, 정참판 서글픈 미소로 인사를 받고 곧 눈을 감는다. 금부도사, 판결문을 다 읽었느지 천천히 뒤로 빠지고, "정법!-" 긴 목소리 울려퍼지고, 북소리 고조되면, 망나니  둘, 큰 칼을 휘두르며 춤을 춘다. 망나니 정참판 쪽으로 간다. 고조되는 북소리. 정참판/일생/홍목/순간 칼날 번쩍인다.

S#26. 이판서의 집, 사랑채 앞
  -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다. 사령들 도열해 있다. 효임, 위패함을 들고 사랑채로 통하는 쪽문으로 들어오고, 그 뒤를 작은 옷 보따리를 안고 울며 따르는 점순.
효임      (점순에게) 고하거라.
점순      (비통하다) 대감마님. 아씨께서  하직인사를 올리시겠답니다요.
  - 사랑채 문 열리지 않고, 효임 잠시 기다렸다, 위패함을 점순에게 맡기고, 비가 투덕이는 바닥에서 큰 절을 올린다.

S#27. 사랑 안
  - 윤중, 효임의 뒷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본다.

S#28. 이판서댁 집 앞
  - 구경꾼들 서넛 모여있고, 홍목 서성인다. 이윽고 우두머리를 앞세우고, 사령들에게 둘러 쌓여 나오는 효임과 점순. 홍목, 효임을 보고 어찌할 줄을 모른다. 효임, 빗길에 발이 미끄러져 걸음이 멈칫하면, 뒤에 선 사령 등을 민다. 효임, 그 마람에 휘청하며, 가슴에 안아 든 위패함을 떨어뜨린다. 효임, 줏으려 하면 사령, 얼른 배앗아 풀어본다. 함에 들어있는 위패들.
효임      돌려 주오.
사령      (마땅잖은 표정으로 효임을 보다 함을 휙 던진다)
  - 흐트러져 함에서 쏟아지는 위패들. 효임,  자지러질 듯 놀라 달려가려면, 사령 휙 잡아 채어 끌고 간다. 안타까이 뒤돌아 보며 끌려가는 효임.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위패들.

S#29. 광안
  - 어두운 광 속, 양반집 여인들과 노비등 이십여명이 갇혀있다. 그 한 구석에 효임과 점순 앉아있고.

S#30. 일생의 방 (밤)
  - 일생과 홍목, 단금 앉아있다.
홍목      해주 관아에 관비로 박힌다 합니다.
일생      (생각이 많다)...
홍목      어르신!
단금      (두 사람을 본다) 오라버니...
홍목      (보면)
단금      저는 잘 모릅니다만 참판 영감의 시신을 거둔 것도 위태한 일 아닌가요? 게다 관비로            가는 이를 무슨수로 모셔온다구요.
홍목      (일생을 재촉한다) 어르신께서 영감마님과 인연이 깊다 하지 않았습니까!
일생      음... (복잡한 표정으로 단금을 본다)

S#31. 다른 광 안(낮)
  -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어두운 실내. 효임, 긴장한 얼굴로 구석에 앉아있고, 그 앞에 사내1, 2 비열한 얼굴로 낄낄 거리고 있다.
사내1     예다 견주니 우리 예펜넨 삶은 호박일세.
사내2     어차피 관비로 막히면 이 놈, 저 놈, 먼저 건드리는 놈이 임자 아닌가.
효임      (눈을 질끈 감는다)
사내1     (저고릴 벗으며) 가기 전에 육덕이나 한 번 베풀어 주게.
효임      (은장도를 빼어든다)
사내2     (박장 대소 하며) 여기 거쳐간 계집치고 저거 안 빼드는 년이 없구먼.
사내1     (배를 쑥 내밀고 다가가면서, 배를 손바닥으로 툭툭치며) 여기 좀 찔러 봐, 안 그래도            스물스물 근지러운데.
  - 효임, 죽기를 결심한 듯 은장도로 자신의 목을 찌르려는데, 광문이 삐걱 열린다. 빛을 등지고 선 사내들.

S#32. 으슥한 숲길
  - 다급히 걸어가는 발걸음 들, 양반과 사령 복장을 한 남자 셋과 효임이다. 효임, 숨이 차지만 열심히 쫓아 걷는다. 이윽고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피는 남자들. 저만치 나무 뒤에서 누군가 나온다. 효임에게는 있으라 하고 다가가는 남자들. 효임, 쳐다보지만 윤곽만 보인다. 남자들, 갓을 벗어던지고는 돈을 받아들고 자리를 뜬다. 나무뒤에서 기다리던 사람, 다가온다. 고개를 숙이는 효임. 그러나 얼굴은 고마움과 반가움에 가득한데
홍목      아씨.
효임      (홍목의 얼굴을 보고는 놀란다)

S#33. 산 초입
  - 한족에 붉은 흙을 얹은 엉성한 무덤 하나 보인다. 애기 무덤처럼 봉분만 아주 조금 되어있댜. 효임, 무덤 앞에서  흐느낀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홍목.
효임      아버님... 아버님(흐느낀다)
홍목      (다가간다) 그만 가시지요. 사람들 눈에라도 띄면 좋지 않습니다.
효임      ...
홍목      (먼저 앞선다)
효임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고)

S#34. 눈밭(저녁)
  - 발이 푹푹 바지는 눈밭. 효임과 홍목 조금 떨어져 걷고 있다. 효임, 눈 밭에 미투리가 벗겨진다. 효임, 신발을 줏으려 하면. 홍목 얼른 신발을 집어든다. 홍목, 그대로 꿇어앉아 효임의 발을 잡는다. 젖은 버선에 흙탕물로 얼룩이져 있다.
효임      (놀란다)
  - 홍목,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양 효임의 발을 두손으로 소중하게 감싼다.
효임      (발을 빼려한다)
홍목      (바닥에 신발을 내려놓는다)

S#35. 언 강 (저녁)
  - 뚝 떨어져서 홍목을 따라가는 효임

S#36. 다른 눈밭
  - 홍목을 따라가는 효임, 지친 표정이다. 문득 멈춰선다. 앞서가다 뒤돌아보는 홍목. 효임쪽으로 다가온다.
효임      도편수댁 가는 길이 맞는가요?
홍목      (효임이 팔을 콱 잡는다)
효임      (놀란다)
홍목      (격정에 찬 시선으로) 이대로 떠납시다. 제주도 좋고, 여진이 산다는 함길도 좋습니다.
효임      (바르르 떤다)
홍목      이 홍목이만이 아씨를 끝까지 모실 수 있습니다.
효임      (가쁜 숨을 내쉰다)
홍목      ...
효임      저는 이씨문중 사람입니다.
홍목      아씬 버림받은 겝니다. 그 사람들은 절대로 아씰 찾지 않을겝니다. 그걸 모르십니까?
효임      (고개 저으며) 이 손 놓으십시오.
홍목      저와 함께 가십시다.
효임      (뿌리치고 돌아선다)
  - 효임, 오던 길을 돌아서 꼿꼿하게 걸어가고, 홍목, 따를 생각도 못하고 허탈하게 섰다.

S#37. 일생의 집 마당(밤)
  - 단금, 대문을 열면 홍목과 효임, 지친 얼굴이다. 마당을 서성이던 일생.
일생      왜 이리 늦었느냐?
홍목      ...죄송합니다.
일생      무슨 일이 있었느냐?
홍목      ...
일생      (홍목을 한 번 보고, 문을 닫는다.) 아씨! 고초가 크셨습니다. 말씀은 밝은 날 드리기로            하고, 들어가 쉬시지요.
효임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일생      단금아, 어서 아씰 모셔라.
단금      예. 아버지. 아씨 이리 주세요. (효임의 보퉁이 받아 들고)
  - 일생, 효임의 뒷모습과 묵묵히 서 있는 홍목을 한 번 바라본다.

S#38. 효임의 방 (밤)
  - 효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벽에 등을 기대고 마냥 앉아있다. (홍목의 소리) 험험! (마루에 뭔가 올려놓는 소리) 효임, 긴장한 채 있다가 잠시 후 문을 연다.

S#39. 방 앞 마루(밤)
  - 마루에 놓인 보자기로 쌓인 물건. 효임, 문 쪽을 보면 홍목, 이쪽을 한 번 돌아보고 나가버린다. 효임, 보자기를 풀어보면 위패함이다.
효임      ! (소중한 듯 함을  쓸어안는다) 아버님! 아버님! (눈물을 흘린다)

S#40. 동, 우물가 (이른 아침)
  - 푸르스름한 기운 가시지 않은 미명이다. 두레박으로 물 긷는 소리 들리고, 효임, 소복 대신 아랫것들이 입는 허름한  복색으로 갈아 입고 물을 긷는데 서툴다. 이때 홍목 다가와 두레박을 빼앗아 힘차게 물을 긷는다. 홍목, 물지게를 지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효임, 홍목 뒷모습을 보면서 곤혹스런 얼굴이다.

S#41. 빨래터 (다른 날, 낮)
  - 단금과 효임 빨래를 하고 있다. 효임, 불안스레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단금      마음 놓으세요. 아씨.
효임      ...
단금      여긴 도성하구 달라 아씰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겁니다. 주위 사람들은 다 아씨가 제             언닌 줄 압니다.
효임      ?
단금      저기 은율사는 고모님의 딸이라구 말을 했지요.
효임      네에... (빨래를 헹구려 하면)
단금      그냥 두세요. 제가 할게요. 그냥 바람이나 쐬시라구요. 그래 아씰 모시고 나온겁니다.
효임      괜찮습니다.
단금      제가 할께요. 이런 일 생전 해 보시지도 않으셨을텐데 그냥 두세요.
효임      어서 배워야지요.
  - 효임, 빨래를 헹구다 생각에 잠긴다. 단금, 방망이질을 하다 그런 효임을 가여운 듯 보다
단금      (효임에게 손으로 물방울 조금 튀긴다)
효임      (깜짝 놀라 단금을 본다)
단금      (배시시 웃으며) 물이 차지요? 어렸을 때 이런 짓 하다 동네 아주머니들 한테 야단 꽤            나 들었어요.
  - 효임, 단금의 마음씀이 고마워서 가만 보다, 자기도 단금에게 조금 물을 튀긴다.
단금      어! 아씨!
효임      못할 줄 알았지요?
단금      (효임에게 물을 조금 튀긴다)
  - 두 사람, 장난을 친다. 효임의 얼굴에 모처럼 미소가 떠오르고.

S#42. 주막 (낮)
  - 홍목과 배근, 평상 위에 앉아 탁주를 들고 있다. 개다리 소반엔 국밥 정도 놓여있고.
홍목      (말없이 잔을 들이킨다)
배근      단금이는 어떡하구?
홍목      단금인 누이나 다름 없어요.
배근      네가 데릴사위가 되리란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홍목      어쨌든 형님. 전 마음을 정했습니다.
배근      쯧쯧. 어르신의 바람을 저버리려고?
홍목      (술을 들이킨다)

S#43. 일생의 집 마당(다른날, 저녁)
  - 효임, 대바구니에 채소를 담아 다듬는 등 집안 일을 하고 있다. 마루에 앉아 연장의 날을 세우는 홍목. 이때 문 열리고 일생, 들어온다.
일생      (뒤를 보며) 어서 들어오시지요.
  - 일생의 뒤로 윤중, 들어온다.
윤중      효임낭자!!
효임      (당황하고 반갑고)!
홍목      !
일생      (홍목에게) 호판대감의 자제 분이시다. 인사 여쭙거라.
  - 홍목, 위풍당당한 선비 차림으로 선 윤중을 보고,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홍목, 옆으로 비켜서 윤중을 노려본다.

S#44. 일생의 방 안 (저녁)
  - 효임과 윤중, 마주 앉아있다. 윤중, 효임의 초라한 행색을 보니 새삼 가슴이 아프다.
윤중      여기 계셨구려. 내 그런 줄도 모르고, 해서로 강경으로 사람을 놓아 백방으로 찾았소.
효임      ...
윤중      조금만 참으시오. 강암 어른의 억울하심을 천하가 다 아는 바이니.
효임      압니다. 도련님. 저는 희망으로 사옵니다. 때가 되면 아버님의 억울함이 풀어지고, 언젠            가는  도련님의 아내로써 살 수 있다는... 그 희망이 저를 살아가게 합니다.
윤중      (효임의 손을 잡는다)

S#45. 일생의 집 마당
  - 홍목, 우두커니 서서, 일생의 방을 노려본다. 장지문에 윤중과 효임의 그림자 길게 드리운다. (DIS) 일생, 마당에 서 있고, 윤중, 문 앞에서 나설 채비를 하고 있고. 효임, 방문 앞에 서서 눈으로 윤중을 배웅한다.
윤중      (일생에게 머리를 숙이며) 폐를 끼쳤네.
일생      (가볍게  목례하고) 밤길 가시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홍목아..
홍목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네.
일생      등을 잡아 드려라.

S#46. 효임의 방
  - 효임, 동경을 세우고 결연한 얼굴로 쪽을 짓는다.

S#47. 길 (밤)
  - 홍목, 윤중 앞에서서 등을 들고 걷는다. 달빛 하나 없는 칠흑같은 밤.
윤중      (멈추어 서며) 고맙구나. 그만 돌아 가거라. 예서부터 혼자 갈 수 있으니..
홍목      (혼잣말 처럼) 사내 대장부라면 은애하는 이를 그리 둘 순 없지요..
윤중      ! 뭐라 했느냐?
홍목      책임도 못질 거라면 뭐하러 찾아든단 말입니까?
윤중      허! 그래 니 말대로 난 못난 사내지. 너라면 어찌 하겠느냐?
홍목      (뜻밖의 반격에 당황한다)
윤중      제일 하책이 도망가는 것이다. 그겨야 언제든지 할 수 있지 않느냐. 하지만 진짜 사내            라면 때를 기다리고 힘을 기를 줄 알아야겠지. 너희같은 인생이 뭘 알겠느냐...
  - 윤중, 돌아서 가고. 홍목, 뒷모습을 노려보다 고개 떨군다.

S#48. 마당
  - 단금, 문 열면 홍목 들어 온다. 효임, 자리끼를 들고 부엌쪽에서 나오다 홍목과 정면으로 마주친다. 홍목, 효임을 보다 쪽진 머리에 시선이 가고 놀란다.
홍목      ...(기가 차고 낙망해서)

S#49. 일생의 방 (밤)
  - 일생, 앉아서 연장을 정성드려 닦고 있다. 이때, 홍목 들어온다.
일생      대웅전을 짓자면 일이 크겠다.
홍목      (선채로) 강화에 보내주십시오. 어르신 대신 제가 가겠습니다.
일생      ...(잠시 홍목을 올려다 보다) 그것도 좋겠구나.

S#50. 배 안 (낮)
  - 홍목, 뱃전에 앉아서 상념에 잠겨있다. 문득 육지쪽을 돌아다 보면, 멀어지는 나루터에 일생과 단금 등이 배웅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홍목의 시선은 더 먼곳을 향해있다. (DIS)

S#51. 강화, 홍목의 거처(밤)
  - 호롱불, 촛불 가득한 방에서 설계도면을 그리는 홍목.

S#52. 작업장 (낮)
  - 일꾼들 일을 하고 있다. 홍목, 일을 하다, 한순간 일손을 놓고 상념에 잠긴다. 일꾼 하나, 다가온다.
일군      편수어른. 다 됐습니다.
홍목      (정신을 차리고 본다)
  - (시간경과, 다른 곳) 홍목, 다듬어진 목재 앞에 서 있다. 그 옆의 일꾼 몇 명.
홍목      다시 하게.
일꾼들    (어리둥절하다)
홍목      ...이걸 일이라 했는가!
  - 홍목, 돌연 옆에 놓인 도끼를 집어 나무에 도끼질을 한다. 마치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는 듯 격정에 찬 얼굴이다.

S#53. 기방
  - 홍목, 창기와 술을 마시고 있다. 낮부터 취해 있는 홍목, 술상을 마주하고 앉은 기생의 용모가 언뜻 효임과 닮아 있다.
홍목      (술잔 들고) 자- 소인에게 한 잔 따라주시지요.
기생      이놈! 네가 나를 어찌 알고 이러느냐? 이토록 나를 업수히 여기고도 성할 성 싶으냐?
홍목      금지옥엽 양반님네 무남독녀인 줄 압니다요.
기생      그걸 안다면, 네 죽을 줄도 알겠구나!
홍목      귀하신 몸이 따르면 이 술이 독주나 된답니까? (술을 따라 한잔 들이키고) 웬 걸입쇼?            맛만 좋습니다.
  - 기생, 갑자기 까르르 웃는다. 홍목, 얼굴이 굳어지며.
홍목      (버럭) 어느 양반댁 아씨가 그리 방자하게 웃는다더냐!
기생      아이 - 더는 못하겠어요.
홍목      (노려본다)...
  - 기생, 옆으로 다가온다. 홍목, 기생의 비녀를 뺀다. 흘러내리는 머리. 홍목, 거칠게 기생을 끌어당겨 기생의 저고리를 벗겨낸다. 앙탈하는 기생. 홍목 문득 고개 들면, 앞에 효임이 있다. 홍목, 놀라서 뒤로 물러 앉는다.
기생      왜 그러세요?
  - 홍목, 잠에서 깨어난 듯 부르르 머리를 턴다. 기생을 가만히 바라보다 치마 폭에 얼굴을 묻는다. 기생, 익숙하게 홍목의 머리를 안아준다. 흐느낌과 함께 홍목의 어깨가 격하게 흔들린다.

S#54. 집, 마당(밤)
  - 효임, 정성스레 약을 달이고 있다. 그 뒤, 열린 방문 안으로 일생과 단금이 보인다.

S#55. 일생의 방(밤)
  - 자리 보전하고 있는 일생. 초췌한 모습이 꽤 오랫동안 앓았음을 보여준다. 일생의 입에 미음을 흘려주고 있는 단금, 침통하다. 약사발을 들고 들어오는 효임, 일생의 옆에 앉는다.
일생      (단금에게) 날 좀 일으키거라.
  - 일생, 단금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는다. 효임과 단금을 번갈아 보는 모습이 애처롭다.
효임      ...
단금      ...
일생      홍목이를 ...불러라...

S#56. 기방(낮)
  - 홍목, 자신의 잔에 술을따르고 있고, 기생, 술상 위에 놓인 주머니를 들여다 보고 있다.
기생      이게 무엇이오니까?
홍목      (한 잔 들이키고) 풀어보면 알 일이지.
기생      (주머니를 풀고 쌍가락지를 꺼낸다) 가락지 아니오니까?
홍목      ...
기생      (생글거리며) 가락지 선물은 예사로 하는게 아니어요.
홍목      예사로라니? 이건 네게 주는 예물이다. 우린 어울리는 짝이 될게야.
기생      하면 쇤네하고 혼인이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홍목      (잔을 들며) 따로 필요하겠는가? 자- 합환주를 따르게.
  - 기생, 홍목의 옆에 바짝 붙어앉아 술을 따른다. 홍목, 한 손으로 기생의 허리를 두르고 술을 받는다. 이때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면서 벌컥 문이 열린다. 들어서는 배근, 홍목을 노려본다. 홍목, 그 자세대로 고개만 들어 배근을 쳐다본다.
홍목      형님이 왠일이요? 오라- 내 혼인날을 어떻게 알고 오셨구라. (기생에게) 어떠냐? 하객             까지 오셨다. 이만하면 족하지 않느냐?
  - 배근, 성큼 걸어와 술병을 들어 홍목의 머리에 주르르 쏟아 붓는다. 기생, 에그머니- 비명을 지르며 일어서고, 홍목, 꼼짝도 않고 술세례를 받는다.

S#57. 대문 밖 (밤)
  - 대문 열려있고, 마당에 홧톳불이 대낯처럼 밝혀져 있다. 제자들 분주하게 오간다.

S#58. 방 안 (밤)
  -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 들리고, 홍목, 방으로 들어선다. 홍목, 방안의 풍경에 잠시 머뭇거리고 서있다. 한쪽에 앉아있는 효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일생      (홍목을 알아본다) ...왔느냐?
홍목      (일생의 옆에 꿇어앉는다) ...
일생      (홍목의 손을 잡는다)
홍목      (야윈 스승의 손을 보자 울컥, 울음이 올라온다) 어르신!
일생      됐다... 내, 다 안다. (홍목의 손 등을 토닥거려준다. 배근에게 연장통을 가져오라는 고            개짓)
배근      (연장통을 일생 앞에 놓는다. 긴장된 얼굴)
일생      배근아.
배근      예. 도편수 어른.
일생      홍목일 잘 도와라.
배근      (눈을 질끈 감고 고개 떨군다.)
일생      (홍목에게) 잘 간수하거라. (힘없이 손을 들어 만감 어리게 연장통을 만져보고) (효임            을 본다)...
효임      ...
  - 일생, 홍목과 단금을 손짓한다. 홍목과 단금, 일생의 곁으로 나란히 다가와 앉는다. 일생, 단금을 바라본다. 혼자 남은 딸을 두고 가는 아픔이 베어난다.
단금      (울음을 터뜨린다) 아버지-
일생      ...(홍목에게) 단금이,...우리 단금이를 부탁한다.
홍목      (할말을 잃고, 고개만 끄덕인다)
일생      ...약조할 수 있느냐?
홍목      ...예.
일생      (가까이 오라는 입 모양)
홍목      (스승에게 바짝 다가간다)
일생      (홍목에게, 쥐어짜듯) 홍목아- 너를 위해서니라... 널-

S#59. 마당(밤)
  - 방안에서 터져 나오는 단금의 울음 소리, 홍목과 배근의 마지막 가는 스승을 잡아두기 위한 외침이 터져 나온다. 마당에 서 있던 편수 등 사람들, "도편수 어른"을 외치며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그대로 주저앉아 곡성을 터뜨리고.(F.O)

S#60. 거리
  - 윤중, 사모관대를 갖추고 말을 타고 간다. 그 뒤로 신부를 태운 꽃가마가 따르고, 성대한 혼례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다. 많은 사람들, 저마다 "신랑 인물 한 번 좋네" 등등 떠들어대면서 구경하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 나무 뒤에서 윤중을 보고 있는 효임, 쓰개치마를 쓰고 지켜보고 있다. 윤중의 모습, 사람들과 함께 멀어진다.
점순E     아씨! 효임 아씨!
효임      (돌아본다) 점순아! (점순의 손을 잡는다)
점순      맞네요-- 아구 효임아씨가 맞아요.. (울음  터뜨린다) 아씨! 세상에 이게 어쩐 일이예            요.. 아씨!

S#61. 일생의 집, 효임의 방
  - 효임과 점순, 마주앉아 있다.
점순      (연신 훌쩍인다) 장안에 짜하게 소문이 나도, 쇤네는 설마 설마 했더랬어요. 근데, 세상            에 도련님이, 어찌 이러실 수가 있어요.
효임      그만 그쳐라.
점순      세상에 이럴 수는 없습니다요.
효임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 듯) 도련님도 어찌할 수가 없으셨던게지...
점순      좌찬성 대감댁 규수랍니다요. 아씬 분하지도 않습니까요? (치마에 코를 팽 풀고)
효임      ...그만 들어가 봐라. 매인 몸으로 괜히 눈 밖에 날라.
점순      (점순이 여전히 쿨쩍대고)
효임      (먼 눈으로 앉아있다)

S#62. 효임의 방
  - 효임, 누워 있는데, 홍목, 기침소리 내며 들어온다. 효임, 앞에 홍목이 있음을 알고 몸을 일으키는데, 그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그러나 법도를 지켜 몸을 틀고 꼿꼿하게 앉는다.
홍목      (옆에 놓인 밥상에 보자기를 벗긴다) 또 식사를 거르셨습니까?
효임      ...
홍목      어서 기운을 차리셔야죠?
효임      ...
홍목      (효임의 묵묵부답에 슬며시 화가 난다) 이판서 댁 도련님께서 혼사를 치르셨다구요.
효임      좀 누워야 겠습니다.
홍목      아씨는 언제나 꿋꿋했지요. 멸문지화를 겪고도, 흐트러지는 법 없이... (내뱉듯이) 그런            데, 그런 아씨의 기개가 한낱 사내 때문이었단 말입니까!
효임      (홍목을 노려본다)

S#63. 그 방 앞
  - 단금, 소반에 죽사발을 받쳐들고 오다, 말 소리에 멈칫 선다.

S#64. 방 안
  - 홍목과 효임의 시선이 부딪치고 있다.
홍목      아씨! 소인과 혼인 해 주시오.
효임      !
홍목      (강경하게) 아씨!
효임      나는 이미 혼인 한 몸입니다.
홍목      누구와 혼인을 했단 말이요? 그는 이미 재상댁 사위가 되질 않았소?
효임      그건 나와 관계 없는 일이지요.. 편수께선 단금 낭자와 혼인을 언약하지 않았던가요?
홍목      ...난...이미 아씨 없인 살 수 없는 몸이요.
효임      그만 나가 보시지요.
홍목      (효임의 양 어깨를 잡는다. 흥분한 듯) 아직도 참판 댁 아씬줄 아는가!
효임      (충격을 받고)
홍목      (거칠게 효임의 저고리를 잡아 당긴다) 당신은 도망친 일개 관비일 뿐이야!
효임      (싸늘하게 홍목을 노려보며) 하면 지금 어른께선 종년을 탐하고자 하시는 겁니까?
홍목      (멈칫한다)
효임      계집종의 운명이니 어쩔 수는 없겠으나, 나는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홍목      ! (허탈해져서 손을 거둔다) 내가 아씨를 떠날 수 없듯이 아씨도 나를 떠날 수 없소!             내, 반드시 마음으로 아씨의 마음을 얻겠소! 아씨에게 부족함이 없는 사내가 될 것이             요!
  - 홍목, 방문을 박차고 나간다. 효임, 열림 방문 밖을 본다.

S#65. 방 앞
  - 툇마루에 죽사발을 놓고 주저앉아 있는 담금. 홍목, 단금을 흠칫 보다 그대로 거칠게 밖으로 나가고. 단금, 원망스레 홍목을 보다 방을 본다.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효임과 단금의 시선이 마주친다.(F.O)

S#66. 강화도 전경(낮) (F.I)

S#67. 전등사 경내
  - 보수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전등사 대웅전이 보인다. 목수들과 일꾼들,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만, 모두 지쳐보인다. 현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사내. 홍목이다. 그의 얼굴을 보기 좋게  덮고 있는 수염으로 지나간 5, 6 년 정도의 세월을 알 수 있다.

S#68. 홍목의 집, 효임 방
  - 효임, 홍목의 옷을 정성드려 다리고 있다.

S#69. 홍목의 집, 마당
  - 마루에 술상 깔끔하게 차려 있다. 홍목, 술 따르며 시선 돌리면 부엌에서 전을 붙이는 효임.

S#70. 동, 언덕
  - 대웅전을 내려다 보고 서 있는 단금과 지경대사. 단금, 승복을 입고 있다.
단금      (지경에게)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경      그렇구나- 거진 칠년만에 옛모습을 찾는구나.
단금      저는 제 탁발식을 말씀 드리는 겁니다. 공사가 끝나면 계를 내리신다 하셨지요?
지경      단금아.. 네가 여기 온지 얼마나 됐지?
단금      다섯해를 넘겼습니다.
지경      지금도 마음이 매양 한가지냐?
단금      (쓸쓸하게 웃고)...
지경      조금 더 기다리거라. 네 말대로 이제 다 끝나가질 않느냐?

S#71. 홍목의 집, 마당(저녁)
  - 기와집 마당. 홍목, 점순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선다.
홍목      아씨는?
점순      별채에 계십니다.
홍목      긴히 상의할 일이 있으니 사랑으로 건너 오시라 전해라.
점순      예.
홍목      (안으로 들어간다)

S#72. 동, 홍목의 방(밤)
  - 홍목과 효임, 마주 앉아있고, 점순, 찻상을 들고 들어온다. 찻상을 놓고 일어서는 점순.
홍목      점순아.
점순      예.
홍목      내일 정 참판님 묘소에 갈 것이다.
효임      (놀라) 무어라 하셨습니까?
홍목      아씨 함부로 발설할 일이 아니라, 이제야 말을 합니다. 대감마님 묘소를 이장했습니다.
효임      ...
홍목      신원이 되면야 바랄게 없겠지만.. 평토장에 가매장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어서요.
효임      ...
홍목      (점순에게) 채비를 차리거라.
점순      예- 도편수 나리.
  - 점순, 밖으로 나간다. 홍목, 차를 한 모급 마신다.
효임      ...고맙습니다.
홍목      (따뜻하게 웃는다)

S#73. 산, 묘지(낮)
  - 양지 바른 곳에 아담하게 꾸며진 묘소. 비석은 없다. 홍목, 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고. 효임, 묘소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다. 아래쪽에서는 점순과 오서방이 붙어앉아 장난을 걸고 있다. 홍목과 효임, 말없이 앉아 각기 상념에 젖어있다. 산새 소리만 요란하고.

S#74. 산, 다른 곳
  - 풀밭 위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홍목과 효임.
효임      이 은혜를 어찌 갚습니까?
홍목      대감마님께서 빨리 신원이 되셔야 할텐데요.
효임      ....
홍목      사실, 나는 참판 어른의 신원을 원치 않습니다.
효임      ?
홍목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두렵습니다. 아씨 곁에서 이렇게 사는             것도 내게는 넘치는 복입니다.
효임      ...
홍목      (먼 곳을 보다) 어느 세월에야 아씨 마음을 얻을 수 있을런지요.
효임      ...
홍목      아닙니다. 아씨가 원치 않는다면 지금으로도 좋습니다.
효임      도편수 어른,
  - 홍목을 바라보는 효임, 효임의 표정이 흔들린다.

S#75. 강화, 나루터
  - 사령들, 나루터를 에워싸고 도강하는 이들을 조사하고 있다. 한손엔 용모파기를 그린 종이를 들고 일일이 한 사람씩 얼굴을 대조하는데, 그 분위기가 사뭇 위압적이다.

S#76. 홍목의 집 대문 앞(이른 새벽)
  -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첫새벽이다. 오서방, 비질을 하고 있고, 윤중, 쫓기듯 주위를 돌아보고 오서방 옆으로 다가와 살펴본다.
윤중      예가 도편수 박홍목의 집이 맞느냐?

S#77. 효임의 방
  - 효임과 윤중, 마주 앉아있다. 두 사람, 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윤중, 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중후하기는 하나 초췌하고..
효임      많이 변하셨습니다.
윤중      ...
효임      (조롱하듯) 예까진 어쩐 걸음이십니까? 당상관의 반열에는 오르신 줄 알았는데요.
윤중      미안하오. ... 이 말이 하고 싶어서 왔소. (두 사람의 시선이 얽힌다.)
효임      (격정에 못이겨)왜...왜, 이제서야..기다렸습니다. 한 번은 오시리라 믿고 또 믿었습니다.            왜 이제서야...(흐느낀다)
윤중      미안하오. 죽기 전에 꼭 낭자를 만나 용서를 빌고 싶었소이다.
효임      (고개를 들고) 죽다니요?
윤중      그렇게 됐소. 내 주상전하의 패륜을 더 두고 볼 수가 없었기에...
효임      !

S#78. 효임의 방 안
  - 효임, 점순, 오서방 앉아있다.
효임      할 수 있겠는가?
오서방    염려 마십시다요. (자신만만해서) 쓸만한 배 가진 놈치고, 세 집 건너 한 놈이 밀꾼 아            닙니까요.
효임      (보자기에 쌓인 노리개와 패물 등을 풀어 오서방에게 밀어 놓으며) 한 치의 실수도 있            어서는 아니되네..
오서방    글쎄, 소인만 믿으십시오.
효임      고맙구나.
  - 효임, 점순을 보면, 점순의 낯빛이 어둡다.
효임      걱정 말아라. 만약이라두 두 사람한테는 화가 미치지 않토록 할터이니.
점순      ...저희 때문이 아닙니다요. 저희 같은 것들이야 다시 팔려 가면 그 뿐이나, 아씨께서             지난번 같은 고초를 어찌 또 겪으실지...
효임      (점순의 손을 잡으며) 점순아!

S#79. 홍목의 집, 마당
  - 효임, 오서방을 기다리며 서성인다. 오서방, 문 열고 들어온다.
효임      (대문의 빗장을 지르며) 어찌 됐는가?
오서방   (코가 쭉 빠져서) 어렵습니다요. 어찌나 감시가 심한지 밀꾼들까지 죄다 숨었다는 뎁쇼.
효임      (실망해서) 은자를 더 준다고 해 보았는가?
오서방    어림없습니다요. 수배죄인이 잡히기 전까지는 사람은 과두구 쥐새끼 한 마리 섬을 못            빠져 나간답니다요.
효임      (낭패한 얼굴)

S#80. 광안
  - 환기구멍으로 새어들어오는 햇살 아래 윤중, 태연하게 가부좌 자세로 앉아있다. 삐거덕 광문 열리며, 효임 들어와 윤중의 맞은 편에 앉는다. 윤중, 효임의 얼굴을 보고, 일이 잘 안됐음을 느낀다.
윤중      너무 실망 마시오. 내 이길로 관아에 들 것이오.
효임      도련님!
윤중      그저 죽기 전에 한 번 보고 가려했었소. 글 읽는 선비로서 내 어찌 구차히 목숨을 구            하러 왔겠소.
효임      죽다니오. 왜 그런 말씀을 자구 하시니이까?
윤중      (한탄하듯) 내 그때 아버님을 거역하고라도 낭자와 함께 떠나야 했는데... 초야에 묻혀            밭이라도 일구며 그렇게 늙어갈 것을... 오직 그게 한이 될 뿐이요..
효임      나약하십니다. (기개 있게) 스스로 살 길을 도모하고 때를 기다리셔야지요.
윤중      ...
효임      기필코 도련님을 명나라로 보내드릴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꼭 그리 할 것입니            다.
윤중      낭자를 위험에 빠뜨릴순 없소!
효임      떠날 차비를 차리겠습니다.
윤중      낭자!
효임      (보면)
윤중      혼자서는 안 가오. 가더라도 낭자와 함께라야 떠날 것이오.
효임      (웃으며) 먼저 가십시오. 저도 곧 도련님 뒤를 따를 것입니다.
윤중      (효임의 손을 잡으며) 부인!
효임      (그 소리에 감격해서) 뭐라 하셨습니까?
윤중      부인! 약조를 잊지 마시오. 내 부인이 오는 날을 언제까지나 기다릴터이니.
효임      ...

S#81. 대문 앞(밤)
  - 점순, 불안한 얼굴로 광쪽을 보며 문을 연다. 들어오는 홍목, 자신의 방으로 간다. 그 뒤로 광이 보인다.

S#82. 효임의 방(밤)
  -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효임. 뚫어져라 촛불을 응시하고 있다. 고개 숙이는 효임. 이윽고 결심한 듯 고개를 든다. 파르르 떨리는 촛불.

S#83. 홍목의 방(밤)
  - 홍목, 이부자리에 들 차비를 차린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눕는데, 사르륵- 방문 열린다.
홍목      누구냐? (DIS)
  - 불, 밝혀져 있고 효임 서있다. 홍목, 효임을 보면 명주옷으로 갈아입고, 쪽진 머리를 풀어 곱게 댕기를 드리웠다.
홍목      아씨!
효임      (다소곳이 앉는다)
홍목      (넋이 나간 듯) 제가 지금 꿈을꾸고 있는 것입니까?
효임      아버님께서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씨 문중의 도련님과 정혼을 하셨더랍니다.
홍목      ...
효임      제 나이 열 두 살이 되자마자 사주단자를 보냈습니다. 변란만 아니었던 들 이씨 문중            사람이 되었겠지요.
홍목      ?
효임      그렇게 저는 지금가지 오직 윤중 도련님 한 사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홍목      그래서요?
효임      제가 편수의 어른의 여인이 되는 길은, 당신께서 그가 되어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            로서 사시겠습니까?
홍목      ...
효임      그로서 사시겠습니까?
홍목      그러시오.
효임      그것이 설령 죽는 길이라 해도 그리 하시렵니까?
홍목      그러지요. 아씨를 얻는 길이 그뿐이라면 그러겠습니다.
효임      하오면 이제부터 편수 어른은 윤중 도련님 이십니다.
  - 효임, 천천히 웃저고리를 벗고, 치마 말기를 푼다. 홍목, 효임의 벗은 양 어깨에 떨리는 손을 올린다. 너무도 소중히 효임을 안는다.

S#84. 홍목의 집, 마당(밤)
  - 칠흑같은 밤. 깊은 어둠만이 온 집에 가득하고

S#85. 홍목의 방(밤)
  - 홍목, 자다가 문득, 손으로 옆자리를 더듬어 본다. 효임이 없자 벌떡 일어난다.
홍목      아씨!
  - 효임, 어느새 곱게 옷을 입고 쪽진 머리로 단장을 끝낸채 홍목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홍목      꿈이면 어쩌나 두려웠소.
효임      (미소 짓는다)
홍목      (감격해서) 진정 꿈은 아니겠지요. 이런 날을 살아있을 때 맞을 줄은 몰랏소.
  - 홍목, 효임의 손을 잡고 살며시 잡아 당기면, 안겨오는 효임. 갑자기 대문을 박차는 듯한 요란한 소리 들리고.
사령      죄인 이윤중은 냉큼 오랏줄을 받아라.
홍목      (이게 무슨 소린가)?
효임      !
  - 방문에 횃불 그림자 일렁인다.

S#86. 홍목의 집, 마루 (밤)
  - 창검으로 무장한 사령들로 가득 찼다. 홍목, 흐트러진 매무새로 나오고, 효임도 나온다.
홍목      그게 무슨 소리요? 어디서 뉠 찾는게요?
사령      허 허! 지금 나를 우롱하려는거냐?
홍목      사람들 잘못 알았소.
사령      고변이 있었는데두 시침을 떼려는가?
홍목      고변이라니..
사령      (효임에게) 네가, 전 참판 정수겸의 여식 효임이 맞으렸다.
효임      그렇습니다.
사령      저녁녘 관아로 사람을 놓아 고변했겠다.
효임      그렇습니다.
홍목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효임을 돌아본다) !
효임      (사령에게) 나으리, 아무리 죄인이라 하나 명색이 사대부이오니 의관을 정제토록 잠시            말미를 주십시오.

S#87. 홍목의 방 안
  - 홍목, 노여움으로 효임을 쏘아본다. 홍목, 효임의 어깨를 잡고 우악스럽게 흔들며
홍목      이럴수가.. 어찌 내게 이럴수가 있단 말이오.
효임      (침착하게) 약조하신 일입니다.
홍목      !
효임E    그로서 사시겠습니까?
홍목      (허탈해 털석 주저앉는다) 이럴수가...
효임      ...
사령E    죄인은 어서 서두르지 못할까!
홍목      (허허롭게) 좋소이다. 아씨를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하겠소. 한가지만 약조해 주오.
효임      ?
홍목      내, 혹여라도 목숨을 부지하게 되면, 이, 홍목의 아내로서 살겠다고.
사령E    안에서 뭣들하는게야? 끌어내기 전에 냉큼 나오지 못할까?
홍목      (효임을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효임      ...그러겠습니다.

S#88. 관아(밤)
  - 여기저기 홧톳불이 대낮처럼 밝혀져 있고 홍목, 엉망으로 상한채 형틀에 묶여있다. 그 옆에 다금과 배근, 꿇어엎드려 있다. 부사, 초조한 듯 서있고,
단금      아니옵니다. 나으리. 이 분은 제가 어려서부터 오라버니로 지낸 도편수 어른입니다. 믿            어주십시오. (배근을  보고) 오라버니!
배근      맞습니다. 저 사람은 도편수 박홍목입니다요. 전등사에 사람을 놓아알아보시면 신원이            밝혀질 껍니다요.
부사      본인은 스스로를 윤중이라 하고, 너희들은 이자를 도편수라 하니. 허허.. 참 대체 너는            누구냐?
홍목      ...
사령      누구냐고 묻고 계시지 않느냐!
홍목      나는 도편수 박홍목이 아니라 전 호조판서의 아들, 예문관 대교를 지낸 대역죄인 이윤            중입니다. (거의 통곡과 절규에 가깝다)
배근      홍목아!
단금      오라버니!!

S#89. 나루터 (새벅)
  - 이미 사령들 철수해있고, 윤중, 오서방의 도움을 받아 배에 오르는 모습 보인다. 숲에서 지켜보던 효임, 윤중 쪽을 향해 큰절을 한다.

S#90. 감옥
  - 처참한 몰골의 홍목, 칼을 쓰고 있고 밖에는 좌우에 사령을 거느린 부사 판결문을 읽고 있다.
부사      대역죄인을 도와 주상전하를 기군망상한 죄, 목숨으로 그 죄를 물어야 마땅하나, 이미            어명을 받은 몸이니 하던 일을 마무리 짓도록 하라. 그 일이 끝나면 추후 다시 죄를             물을 것인 즉!!

S#91. 효임의 방
  - 소복 차림의 효임, 단정히 앉아 위패함을 보고 있다. 홍목, 들어오며
홍목      부인!
효임      ...
홍목      (효임의 손을 잡으며) 걱정마시오. 공사가 끝난다고 설마 날 죽이기야 하겠소. 이제야            정녕 함께 할 수 있겠구려.
  - 홍목, 효임을 안으려 하는데, 효임, 욱- 하며 붉은 피를  토한다. 흰 저고리에 배어드는 선혈.
홍목      (두 손으로 효임의 얼굴을 감싼다.) 왜 이러시오! 무슨 일이오!?
효임      (서글프게 미소 짓는다)
홍목      (벌컥문을 열고) 아무도 없느냐? 어서 의원을 모셔 와라!
  - 댓돌 아래 서있던 점순.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한다. 홍목, 의아해서 방으로 시선을 돌리며 위패함 옆에 놓인 빈 약사발, 효임의 소복. 그제서야 홍목, 모든 것을 깨닫는다.
홍목      (절규하듯) 안돼!
효임      (힘겹게) 부디.. 용서하십시오.
홍목      (분노) 이럴 수는 없소. 이럴수는!!
효임      어차피 저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씨 문중의 사람입니다. 넋이라도, 넋이라도 윤중 서            방님을 따르려 합니다 (울컥, 선혈을 토한다)
  - 홍목, 터져나오는 비명을 지르며 절규한다.

S#92. 전등사, 대웅전.
  - 홍목, 대웅전 기둥에 효임의 인물상을 새긴다. 광기에 사로잡힌 눈빛. CUT IN, 차갑게 식은 효임의 시신. 그 얼굴. 홍목, 울고, 웃으며 미친 듯 중얼거린다.
홍목      내 여기, 네 넋을 담으리라! 천년이구 만년이구, 억겁이 다 하도록 이 처마 밑에 가둬            두리라!

S#93. 전등사 대웅전 앞(현재)
  - 소담스러운 흰 눈이 내린다. 어느새 마당에는 수북히 눈이 쌓여있고, 홍목, 멍하니 인물상을 올려다 보고 있다.
단금      그만 가시죠. 저희 집에서 민박 하세요. 싸게 해드릴께요.
홍목      (고개를 돌리는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단금      (의아하게 홍목을 보면)
홍목      (그런 눈으로 단금을 본다. 입을 떼는데 목이 매여 소리로 나오지 않는다.)
단금      왜 그러세요?
  - 홍목, 하늘을 한 번 보고, 인물상을 한 번 보는데, 이때, 대웅전 안에서 절하던 여인, 밖으로 나온다. 다소곳한 걸음걸이로 사르륵 사르륵 눈쌓인 마당을 가로지른다. 홍목, 그녀를 보고
홍목      아!
단금      ?
  - 여자, 막 계단을 내려서기 시작한다. 홍목, 여자쪽으로 간다.
단금      이봐요!
홍목      (단금을 한 번 보고, 여자의 뒤를 따른다)
단금      ?
  - 홍목, 홀린 듯이 여자의 뒤를 따라간다. 단금의 시선 - 여자는 보이지 않고, 홍목 혼자 허우적대며 걸어간다. 눈 위에, 여자의 발자국은 없고, 홍목의 것만 선명히 찍혀간다. 홍목, 여자의 뒤를 따르지만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홍목      나 좀 봐요!!
  - 여자, 뒤돌아 보는데, 서글프게, 웃음짓는 여인, 효임이다.

(끝)

 

 

 

 

 

 

 

 

 

 

 

 

 

 

 

 

 

 

 

 

 

 

 

 

 

 

 

 

첨부파일 전등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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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다반향초 | 작성시간 14.11.14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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