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날]
씬1. 풀 숲 (낮)
남자아이의 거친 숨소리.
누군가의 위태로운 다리, 팔, 뒷모습. 곧 넘어질 듯 하다.
쫓아가는 누군가의 모습,
한 아이, 무성한 풀숲 사이를 달리다 넘어지고 만다.
넘어져 있는 아이 곁으로 다가선 남자.
아이, 얼굴을 슬며시 들어 올리면, 공포에 질린 종연이다.
강렬한 햇빛에 눈이 부셔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빛을 가리는 종연. 그 시선으로 남자의 얼굴 실루엣
카메라 옆으로 약간 팬하면,
화창한 하늘에서 타이틀, ‘어느 화창한 날’ 뜬다.
씬2. 초등학교 외경 (낮)
(E) 리코더 합주 소리
자막 ‘사흘 전’
씬3. 초등학교/교실
5명의 학생들, 칠판 앞에 서서 리코더를 연주한다.
끝에 선 종연, 다른 학생들과 보조를 맞춰가며 리코더를 불고
학생들과 선생님, 연주를 경청한다.
복도 창으로 다가서는 조여사(여, 50대)와 남자(30대).
조여사, 종연을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연주가 끝나자 학생들과 선생님 박수친다.
선생님 너무 잘했어요. 여러분 정말 잘했죠?
학생들 예.
선생님 이러다가 진짜 우리 반 일등 하겠는걸. 너무 잘하는 거 아냐?
아이들 웃고,
흐뭇해 하던 종연, 문득 복도 쪽을 보더니 얼굴이 굳어진다.
선생님 자 이제 제 자리로 돌아가고 ....대회가 얼마 안 남았으니깐 조금만 더 연습합시다.
학생들 예!
자리로 들어온 종연의 얼굴이 어둡다.
(E) 수업종.
학생들, 소란스럽게 일어나고 선생님, 나간다.
종연, 복도를 힐긋 보고 일어나 뒤로 나가려는데,
조여사와 남자, 종연에게로 다가온다.
조여사 얘, 꼬마야.
아이들과 장난치던 현도, 조여사와 종연을 번갈아 본다.
종연 (태연하게) 누구세요?
조여사 니 이름이 이종연이지?
종연 예.
조여사 아빠 이름은 이영길이구?
종연 예.
조여사 (회심의 미소 짓고) 저기... 이 아저씨가 니네 아빠랑 정말 친한 친구시거든? 근데 요새 아빠랑 연락이 잘 안되네. 아빠 꼭 만나야하는데 말이야.
종연 ...
조여사 아빠, 집에 계시니?
종연 일하러 가셨는데요.
조여사 엄마는?
종연 엄마두요.
조여사 그럼... 학교 파하구 아줌마랑 아저씨랑 같이 집에 갈까? 우리가 아빠한테 무지 급한 볼일이 있거든.
종연 (선선히) 예.
조여사 어유, 착하기도 하지. 누구 닮아서 이렇게 착하누. 우리, 요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나중에 보자.
종연 예.
조여사와 남자, 나가고,
현도 누구야, 종연아?
종연 (머리를 굴려보는) 현도야.
현도 응?
씬4. 초등학교/복도
지겨운 표정으로 복도에 앉아 있는 조여사와 남자.
수업종이 울리자 벌떡 일어난다.
학생들, 소리를 지르며 한꺼번에 뛰어나오자 당황하며 눈을 바쁘게 움직인다.
남자 (앞 문쪽을 보더니) 어, 쟤 아냐?
조여사 (보고) 어디? 어디?
종연과 윗옷을 바꿔 입은 현도, 맞은편으로 뛰어간다.
남자 저... 저 자식이!
조여사 어? 잡어!
현도를 잡기위해 뛰어가는 남자와 조여사.
갑자기 밀려나오는 옆 반 아이들에 막혀 주춤거린다.
남자 비켜! 비켜, 비켜, 비켜!
조여사 뭐해, 빨리 잡어!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가는 현도.
아이들을 헤치고 쫓아가는 남자와 조여사.
씬5. 학교 계단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현도.
남자, ‘야, 임마 거기 안 서!’ 하며 쫓아와 현도의 뒷덜미를 붙잡는다.
현도 아!
남자 이 자식이 어딜 도망 쳐!
현도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풀려나려 애쓴다.) 아저씨 왜 그래요?!
남자 ??
현도 이거 놔요! (하며 버둥거린다.)
남자 (당황해 뒷덜미를 푼다.)
조여사 (헐떡거리며 뒤따라 와) 잡았어? (현도 보고) 뭐야, 아니잖아?
남자 아이씨! (짜증을 내며 뛰어 올라간다.)
조여사 (어이없이 현도를 보면)
현도 엄마가 빨리 오랬는데... (조여사 눈치 보며 간다.)
조여사 ??
씬6. 놀이터
그네에 걸터앉아 발장난하는 종연.
헉헉거리며 뛰어오는 현도.
종연 (일어나며) 잘했어?
현도 엉.
종연 (윗옷을 벗는다.)
현도 (따라 벗으며) 근데 넌 왜 어른들이 자꾸 찾아와?
종연 몰라도 돼. (옷을 받아 입고) 공책 줘.
현도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주며) 글씨 다르게 써야 돼. 지난번처럼 선생님한테 걸리게 하면 안돼.
종연 걱정 마. 잘 가. (간다.)
씬7. 구멍가게 앞
신발주머니를 흔들며 걸어오는 종연, 구멍가게로 들어간다.
씬8. 구멍가게 안
종연 (들어오며) 안녕하세요.
가게아줌마 (TV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스낵을 먹으며) 어... 그래.
얼굴에 뭔가 잔뜩 묻은 순영.
아줌마 옆에 앉아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있다.
종연 에비, 이런 거 주워 먹으면 안 돼, 순영아.
종연이 순영의 손을 잡고 나가려는데
가게아줌마 니 엄마한테 외상값이랑 동생 봐준 거 내일까지는 계산해야 된다, 그래.
종연 예. (순영을 데리고 나간다.)
종연과 순영의 뒤로 깔깔거리는 가게아줌마의 웃음소리
씬9. 몽타주
1. 순환도로 횡단보도.
한 눈에 봐도 아이들이 건너기엔 너무나 위험스러워 보이는 왕복 팔차선 도로.
쌩쌩 달리는 차들.
신호등에서 파란불이 켜지기만 기다리는 종연. 순영의 손을 꼬-옥 잡고 있다.
종연 순영아, 횡단보도를 건널 땐 오른손을 높이 들어야 해.
드디어 파란불이 켜지고.. 종연, 오른손을 들고 건넌다.
종연, ‘순영아, 손, 손’ 하면서 순영의 오른손을 계속 들게 한다.
그때, 차 한대가 급정거를 하느라 정지선을 한참 넘어 거의 아이들 앞에까지 와서 멈춘다.
아이들, 놀라고... 안되겠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종연.
2. 육교.
손을 집어가며 한 계단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가는 순영.
뒤에서 보던 종연. 답답한 마음에 뒤에서 순영을 번쩍 안고 빠른 걸음으로 올라간다.
바둥거리는 순영의 발.
육교 위에 올라서자 다시 순영의 손을 잡고 걷는 종연. 순영을 보고 방긋이 웃는다.
육교 아래로 여전히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다.
씬10. 동네 일각
밝은 얼굴로 순영의 손을 잡고 가던 종연, 흠칫 놀라더니 발을 멈춘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앞집 할아버지.
비뚤어진 입가가 실룩거려 마치 노려보는 듯한 인상으로,
한쪽 팔을 떨고, 마비된 다리의 짧은 보폭으로 종연에게 점차 다가온다.
잽싸게 순영을 업는 종연, 옆으로 슬금슬금 피해가는 종연.
할아버지, 그런 종연을 빤히 쳐다본다.
마주 보다 잰걸음으로 도망치듯 가는 종연.
종연 (힐끔힐끔 돌아보곤, 순영에게 속삭이는) 순영아, 아줌마들이 그러는데, 저 할아버지는 피가 나빠서 저렇게 (흉내 내며) 팔도 덜덜 떨고 입도 삐죽 올라간 거래.
순영 (말똥말똥 종연을 본다.)
종연 너 저 할아버지 절대 따라 가지마. (겁을 주듯) 할아버지가 드라큘라처럼 순영이 피를 다 빨아먹을지도 몰라, 알았지?
순영 (무심결에) 응.
종연, 돌아보면 할아버지 등 돌려 가고 있다.
씬11. 종연의 집 거실
한켠에 주방이 있는 15평정도의 좁고 낡은 아파트 거실.
TV, 냉장고, 쌀통, 좌탁 정도의 살림살이. 저마다 압류스티커가 붙어있다.
종연, 싱크대에서 수건에 물을 묻혀 냉장고를 지나 거실에 앉은 순영에게로 온다.
종연 (순영의 얼굴을 닦으며) 아이고, 우리 순영이, 얼굴 닦으니까 더 예쁘네.
순영의 얼굴을 닦은 종연, 귀여운 듯 어르곤 무릎을 끌고 TV곁으로 다가온다.
TV옆에 놓여있는 공과금 청구서와 돈. 그 옆에 메모를 집어 드는 종연.
미진 (E) 종연아 오늘 은행가서 공과금 내고 와. 오늘 안내면 전기 끊어지니까 꼭 내야 한다.
종연 순영아, 은행 가자. (순영의 손을 잡고 일어선다.)
(E) 순번 알리는 신호음 소리
씬12. 은행
종연, 순영을 데리고 창구로 간다.
행원 안녕하십니까?
종연 (청구서와 돈을 행원에게 내민다.)
행원 너 혼자 왔니?
종연 동생이랑 왔어요.
행원, 몸을 빼어 순영을 보고 싱긋 웃곤 공과금을 처리한다.
옆에서 요란한 지폐계수기 소리 들린다.
종연, 시선을 돌리면, 만 원권 지폐가 계수기에서 요란하게 돌아간다.
행원 (영수증과 잔돈을 내 주며) 자 다 됐어.
종연 (계수기 시선 고정된 채) 아줌마.
행원 나 아줌마 아냐, 얘.
종연... 저기요. 저 만큼이 얼마예요?
행원, 종연이 가리키는 것을 보면,
다른 행원이 돈 한 다발 묶고 있다.
행원 백만원. 왜?
종연 (일,십, 백, 천..... 손가락을 세어보는)
행원 ?
종연 (한숨을 내쉬고 돌아선다.)
행원 (피식 웃곤 다음 번호 누르며) XXX번 손님.
순영의 손을 꼭 잡고 은행을 나서는 종연.
씬13. 문구점 앞
INS. 오락기 화면.
오락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 1.2. 외.
어깨 너머로 하고 싶은 듯 보고 있는 종연.
자신이 오락을 하는 양 캐릭터의 움직임을 따라 자신의 몸도 따라 움직인다.
게임 오버되자, 안타까워하는 아이들.
문득 주머니 속에 동전을 꺼내 만지작거리는 종연.
다시 집어넣고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를 뜬다.
씬14. 종연의 집 거실 (저녁)
박스 안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순영.
까르르 웃으며 종연을 본다.
종연 (라면 한 가닥을 후후 불고) 순영이 또 숨바꼭질 하네. 자, 이것부터 먹구.
순영 (박스 속으로 다시 숨는다.)
종연 (씩 웃고, 라면 내려놓으며) 어, 순영이가 어디 갔지? (박스의 옆면 아래로 숨으며) 순영이가 사라졌다. 어디 있나, 순영이?
순영, 박스 위로 다시 올라오면,
종연, 아래서 튀어나와 순영을 놀래킨다.
까르르 웃는 순영과 종연.
전화벨 울리고, 종연 받는다.
종연 여보세요. 아빠? 아니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언제 오세요? 진짜? 진짜, 내일 와? 아니 내일 오세요?... 예... 예. (기분 좋게 수화기를 내려놓고) 순영아, 내일 아버지 오신데. 기분 좋지?
순영 (손뼉 치며 좋아하는)
종연 자, 밥 먹자. (순영에게 라면을 먹인다.)
전화벨 다시 울리고 종연, 다가와 받는다.
종연 (밝게) 여보세요.
고모 (F) 고몬데, 엄마 있니?
종연 (마음에 안드는) 아니요.
고모 (F) 아빠는?
종연 안 계시는데요.
고모 (F) 그렇겠지.... 너, 너희 아빠 어디 있는지 알지?
종연 (전화기 어깨에 끼고 순영에게 라면 먹이며) 모르는데요.
고모 (F) 그럼, 언제쯤 오신다디?
종연 (덤덤히) 모르겠는데요.
고모 (F) 오긴 온다니?
종연 모르겠는데요.
고모 (콧방귀 끼며, F) 너희 엄마가 시키디? 나한테 전화 오면 무조건 모른다고 하라고?
종연 모르겠는... (실수했다.) 아... 아니요.
고모 (F) 참, 잘한다. 애들까지 그짓말이 입에 붙었네. 붙었어.
종연 ...
고모 (F) 니 엄마 오면 내가 전화했다 그래. 알았지?! 꼭 전해!
종연 예.
종연, 수화기 내려놓고, 순영에게 라면을 먹이며 태연하게 장난친다.
힘없이 현관을 들어서는 미진.
종연 어머니, 오셨어요?
미진 응. (라면을 먹는 종연과 순영을 안쓰럽게 보고) 엄마가 밥 해줄게.
종연 거의 다 먹었어요.
미진 밥 더 먹어. 조금만 기다려 (쌀통에서 쌀을 내리며) 별 일 없었어?
종연 아버지 내일 오신데요.
미진, 멈칫하다 이내 무감하게 쌀을 내리는데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는다.
미진 (답답한 표정짓다 일어나) 다른 일은?
종연 (태연히) 없어요.
미진 고모한텐 전화 안 왔어?
종연 (태연히) 안 왔어요.
씬15. 종연의 방 (밤)
작은 좌식 책상과 미니장이 있고, 한쪽 구석에 세워진 커다란 박스에는 인형들이 잔뜩 쌓여있다.
책상에 앉아 두 권의 수학 공책을 펴놓고 숙제 하는 종연.
<끝> 자 양쪽 공책에 써놓고,
종연 다했다. (공책들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씬16. 종연의 집 거실
종연, 방에서 나오면, 미진 식탁에 앉아 소주를 들이키고 있다.
미진 (종연 보고, 취기 있는) 우리 아들 아직 안 잤어?
종연 (다가간다.)
미진 쉬 마려서 그래?
종연 (끄덕이고) 술 그만 마시세요. 어머니.
미진 그러까? 그만 마실까? 우리 아들이 그만 마시라면 그만 마셔야지. 그래. (일어난다.) 잘 자, 종연이.
종연 예. 안녕히 주무세요.
미진 응. (허청허청 방으로 들어간다.)
술병과 잔등이 널려진 식탁을 보고 한숨이 나오는 종연.
익숙하게 술병들을 치운다.
쓰레기통 옆, 이미 여러 개의 소주병이 들어 있는 봉지가 있다.
종연, 봉지에 병을 넣고, 잔을 들고 싱크대로 가져간다.
바닥에 나직이 남아 있는 술을 버리려다 말고 가만히 술을 보는 종연.
잔을 들어 한 방울 혀에 살짝 떨어뜨려 본다.
입맛을 다시더니 쓴맛에 혀를 날름거리며 인상을 쓴다.
종연 캬악, 진짜 맛 없다. 윽.... (치를 떨며 잔을 씻어 선반에 올려놓는다.)
씬17. 베란다
베란다 창에 바짝 붙어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종연.
다리가 근질거리는지 다리 한번 긁고,
종연 공부도 열심히 했구요, 친구들이랑 싸우지도 않고, 동생도 잘 돌보고, 그리고... 존댓말도 썼어요. 하느님, 제가 생각하기에... 어제보다 조금 더 착해진 거 같거든요. 지켜보고 계시죠?
INS. 밤하늘에 떠 있는 달.
씬18. 종연의 아파트 외경 (아침)
노후한 아파트 외경.
자막 ‘이틀 전’
씬19. 거실
종연, 미진의 눈치를 살피며 아침을 먹는다.
미진 (순영에게 밥을 먹이며) 안 늦니? 얼른 먹고 가.
종연 어머니, 오늘 일 안 가세요?
미진 일이 없어, 오늘은.
종연 ... (수저를 내려놓고 그대로 앉아 있다.)
미진 뭐해? 안가?
종연 가요. (힘없이 가방을 들고) 다녀오겠습니다.
미진 (종연 보지 않은 채) 응.
종연 (미진을 쳐다보곤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나간다.)
씬20. 초등학교 교문 앞 + 건물 뒤
등교하는 학생들.
조여사와 남자, 교문 앞에 서서 학생들을 유심히 살핀다.
멀리 건물 뒤에 숨어 이를 지켜보는 종연,
조여사의 시선이 자신 쪽으로 오자 얼른 몸을 숨긴다.
건물 뒤 -
종연, 벽에 몸을 바짝 기대 있다 다시 내다보는데,
현도 (E) 종연아!
종연 (놀라) 헉!
현도 여기서 뭐해?
종연 (가슴을 쓸어내린다.)
현도 ?
종연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내밀며) 자.
현도 다했어? (하며 공책을 열어본다.)
종연 나 오늘 학교 못 가.
현도 왜?
종연 선생님한테 나 아파서 학교 못 왔다 그래.
현도 너 아퍼?
종연 아니.
현도 근데 왜 거짓말해?
종연 너 내가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대신 숙제해준 거 선생님한테 꼰질른다?
현도 (불퉁해서) 알았어.
종연 (내다본다.)
교문 앞 -
조여사, 한 남자 아이를 붙잡더니 얼굴을 확인하고 보내준다.
남자, 더워 짜증스럽게 손부채질을 한다.
건물 뒤 -
종연 (얼굴을 거두고) 간다. (뒤로 뛰어간다.)
현도 ?
씬21. 놀이터 (낮)
파고라 돌리고 있는 종연의 신나는 얼굴.
그러다 곧 혼자 노는 것이 재미없는 듯 파고라에 앉더니 가방에서 리코더를 꺼내 분다.
리코더를 불다 이상한 그림자에 눈을 들어보면,
앞집 할아버지, 서서 종연을 내려다본다.
흠칫 놀라 리코더를 멈추는 종연.
종연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팔을 뻗는 할아버지.
겁에 질린 종연, 얼굴 앞까지 팔이 뻗자 공포가 극에 달하는데...
얼굴 앞에 펴지는 할아버지의 손.
움찔하는 종연, 할아버지의 손을 보면, 굵은 알사탕이 놓여있다.
할아버지 자.
종연 (사탕을 보고만 있는)
할아버지 받어. 아주 맛난 거야, 이거.
종연, 머뭇거리다 사탕을 집으면
할아버지, 비뚤어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종연의 옆에 앉는 할아버지.
몸을 옆으로 살짝 피하는 종연.
할아버지 너 102호지?
종연 (경계하며 끄덕)
할아버지 나는 101호 살어. 오늘 학교 안 갔어?
종연 .....
할아버지 피리 잘 부르던데. 왜 계속 부르지.
종연 (고개 숙여 아무 말 하지 않고)
할아버지 (서운한 기색을 감추고) 사탕 먹어 봐.
종연 (눈치를 보고 일어나며) 집에... 가야 돼요.
할아버지 그래? 그래, 어이 가.
가방을 챙겨 일어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가는 종연.
뒤에 남겨진 할아버지, 파고라에 홀로 처연히 앉았다.
종연, 뒤돌아보면, 할아버지를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때 다 싶어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얼른 던져버리고 잰걸음으로 도망친다.
씬22. 아파트 입구 앞
종연, 노래를 흥얼거리고, 화단 펜스를 나뭇가지로 긁으며 걸어온다.
멈춰 서 입구를 확인하고 들어간다.
씬23. 아파트 입구 안
종연, 아파트로 들어서면 자신의 집 현관문이 열려 있는 것이 보인다.
무심히 계단을 오르려는데,
집안에서 살림살이 던지는 소리와 순영의 날카로운 울음소리 들린다.
놀라 멈춰 선 종연.
씬24. 종연의 집 거실
종연, 천천히 집으로 들어오면, 거실에 살림살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울고 있는 순영.
머리가 헝클어진 채 망연자실해 앉은 미진.
남자 (미진의 턱을 들어올리며) 아니 이 아줌마가, 남의 귀한 돈 막 갖다 쓸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입을 싹 닦으시나? 응! (미진을 밀친다.)
종연 (놀라 뒷걸음질치다 넘어진다.)
조여사와 남자, 돌아본다.
남자 어? (종연에게 다가오며) 쥐새끼 같은 게, 어제 잘도 내빼더라. 오늘은 어디 갔었냐? (머리를 밀며) 학생이 학교도 안가고 말이야.
조여사 애새끼 학교 안보내면 못 찾아 올 줄 알았냐? 부모가 돼가지고 잘 한다, 잘해. 꼬마야, 이 사람 니네 엄마 하지 마라. 이래저래 자격미달이다 야.
종연 (도끼눈을 뜨는)
남자 (다시 머리를 밀며) 쪼그만 게 엇다가 눈깔을 꼴아? 너 그러다 사팔이 돼, 임마.
종연 (남자를 노려본다)
남자 (때리려는) 이게!
조여사 (각서를 들고 일어서며) 됐다! 애가 무슨 죄냐? 부모 잘못 만나 지들도 고생인데. 내, 새끼들 봐서 오늘은 이만 하는데.... 근데, 명심해. 일주일이다. 그 안에 해결 못하면... (각서를 들곤) 알지? 몸 함부로 굴리지 말고 잘 간수해라.
남자, 종연을 밀치며 지나간다.
조여사, 종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씩 웃고 나간다.
종연, 조여사가 헝클어놓은 자신의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정리하면서 비척거리는 거실로 들어선다.
우는 순영을 안는다,
종연 우리 순영이, 이제 괜찮아, 울지마
종연, 망연자실한 미진을 본다.
씬25. 놀이터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0’를 그려 나간다.
종연 (E)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일억.
종연 (철봉 아래 웅크리고 앉아) 일억, (1위에 3을 덮어 그리고) 삼억.
현도 (철봉에 거꾸로 메말려) 뭐하냐?
종연 (속상한 듯 숫자를 나뭇가지로 지운다.)
현도 (철봉에서 내려와 옆에 앉으며) 뭐 하냐니깐?
종연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현도 음...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요즘은 부동산이 최고래.
종연 부동산이 뭐야?
현도 (다른 놀이기구를 타며) 나도 잘은 모르는데, 하여튼 우리 외삼촌이 부동산 해서 떼부자 됐다고 맨날 그래.
종연 정말?
현도 응. 우리 외삼촌 집 엄청 크다. 차도 크고, 텔레비전도 크고...
종연 그게 의사보다 더 돈 많이 벌어?
현도 아마 그럴 걸. 사장보다도 더 많이 벌 걸.
종연 그래? 그럼, 난 크면 부동산이 될 거야.
현도 참... 부동산은 되는 게 아니라, 사는 거야. 것두 돈 없으면 못한댔어, 엄마가.
종연 (한숨쉬고, 어른처럼) 아유, 돈이 뭔지?
현도 (놀이기구에서 내려와) 또 다른 방법도 있긴 한데?
종연 뭐?
씬26. 편의점 앞
현도 (복권(로또) 스티커를 가리키며) 이거야. 이거 걸리면 단번에 부자 된데. 우리 아빠는 매주 사. 아직 부잔 안됐지만...
종연 (복권 스티커를 다시 본다.)
씬27. 편의점 안
카운터에 앉아 핸드폰 통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점원(남, 20대).
점원 그래, 내 말이. 그 새끼, 그 거 돈 좀 있다고 거들먹대는데, 진짜 뵈기 싫어 환장하겠다, 내가.
점원을 바라보는 종연과 현도.
현도 아저씨.
점원 (무시하고 통화) 이건 뭐 그냥 심심해서 하는 거지.
종연 아저씨.
점원 (성가신) 왜?
종연 (로또를 가리키며) 저거 얼마에요?
점원 (힐끔 보고) 한 게임에 천 원. 다 칠하면 오천원!
현도 오천원!
점원 아, 미안. 이상한 꼬마 녀석들 때문에. (E) 이 동네가 좀 후져. 빨리 떠야지. 너는? 응. 응...
점원의 통화 위로, 현도와 종연의 대화.
현도 너 돈 있어?
종연 아니, 너는?
현도 나도 없는데?
종연 (난감한) 저기요...
점원 (통화하다 버럭) 왜. 또?!
종연 저거 1등 걸리면 얼마 줘요?
점원 아이, 진짜. (고갯짓하며) 저기 있잖아!
점원이 가리키는 쪽을 보면, ‘1등 당첨금액 XX억‘ 이라고 쓰인 싸인보드다.
현도 XX억!
점원 (통화) 어디까지 했냐?
종연 1등 걸리면 저거 다 줘요?
점원 (통화) 금방 때려치울거야. 아니.. 뭐 딱히...
종연 예, 아저씨? 다 줘요?
점원 (성질내며) 아이씨, 이게? 그래 다 준다 다 줘!
종연/현도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점원 복권 줘?! 살거야?!
종연 ...
점원 살 것도 아니면서... 가, 빨리!
종연 아저씨.
점원 (눈을 부릅뜨며 인상을 쓴다.)
종연 외상 돼요?
점원 외.. 외상? (휴대폰을 탁 내려놓고) 이 자식이 진짜? 너 내가 만만해? 응! 니들 어느 학교 몇학년 몇반이야! 응!
종연 (진지하게) 외상 안 되는 거예요?
점원 이 자식이? (때리는 시늉하며) 가, 빨리, 안가?!
종연/현도 (눈치보고 서 있는)
점원 (눈을 부릅뜨며) 안 가? 그래, 거기 있어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나오려한다.)
화들짝 놀라며 종연과 현도 동시에 OUT.
씬28. 종연의 아파트 주차장
시무룩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종연, 승합차에서 내리는 초췌한 모습의 영길이 보인다.
종연 (E) 아버지!
영길 (돌아보고) 어, 종연아.
종연 (반갑게 달려와) 아버지.
영길 종연이 잘 있었어?
종연 예.
영길 (빈손이 미안한) 아빠가... 오랜만에 오면서 아무것도 못 사왔네. (주머니를 뒤져 천원지폐 한 장을 꺼내 주며) 자, 이걸 루 가게 가서 과자 사먹어.
종연 (받아들고, 밝게) 예. 아버지. (뛰어간다.)
영길 (뛰어가는 종연을 본다.)
종연 (가다 돌아보며) 아버지, 이번엔 오래 계실 거죠?
영길 (서글픈 미소 지으며 주억거린다.)
종연 (좋아 껑충껑충 뛰어간다.)
씬29. 구멍가게 안
과자를 고르고 있는 종연.
손님, 밖에서 ‘아줌마 이거 얼마씩 해요?’ 하면 아줌마, 대답하며 밖으로 나간다.
과자를 들고 카운터로 가는 종연.
카운터 앞에 서면 살짝 열려 있는 금전출납기 속에 수북이 쌓여 있는 지폐 보인다.
일순, 맥박이 빨라지는 종연, 출납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금전출납기에 손이 간다.
지폐가 거의 손에 닿을 듯한데..
(E) 문 부딪치는 소리
종연, 화들짝 놀라 문 쪽을 본다.
아줌마, 문 옆에서 이상하게 종연을 보고, 이내 카운터로 와 출납기를 쾅 닫는다.
당황해 아줌마 눈치를 보며 돈을 내미는 종연.
의심스럽게 보며, 잔돈을 거슬러 주는 아줌마.
종연,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간다.
씬30. 구멍가게 앞
구멍가게를 나와 종종걸음 치는 종연.
과자를 안고 힐끔힐끔 돌아본다.
씬31. 아파트 외경(밤)
씬32. 종연의 집 거실 (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식사하는 네 식구.
영길 요즘도 청소일 나가?
미진 (보지 않고) 응.
영길 힘들지 않어?
미진 ...
무거운 침묵 흐르는 가운데,
종연, 영길과 미진의 눈치를 보며 밥을 뜬다.
전화벨이 울리고, 종연, 뛰어가 받는다.
종연 (뛰어와 받으며) 여보세요. (당황) 아... 안 계신데요.
미진, 영길 (종연을 본다.)
종연 (눈치보며) 예.... 모르겠는데요.
미진 (영길을 무섭게 본다.)
영길 ??
미진 (종연의 전화기를 뺏어, 차갑게) 여보세요! 예, 저예요!
종연 엄마?
미진 오빠도 있어요, 바꿔줘요!
영길 (미진에게로 와) 여보?
미진 왜요, 어때서요? 아... 죄인 주제에 왜 큰 소리냐?! (사이) 그래요, 나 미쳤어요. 돈 때문 에 돌았어요, 미칠 자격도 없는데.. 미쳐버렸어요, 왜요!
영길 (미진의 전화기를 뺏어 내려놓곤) 왜 이래, 당신!
미진 왜 이래? 왜 이러냐구? 종연이한테 물어 봐! 왜 이 얘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해대는지, 물어보란 말이야!
영길 (종연을 답답하게 본다.)
종연 (자신이 죄인인 양 영길의 눈치를 본다.)
전화벨 또 울리고, 영길,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영길 종연이 다 먹었으면 순영이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종연, 걱정스레 부모를 보며 순영과 방에 들어간다.
영길 미진아, 우리 이혼하자.
미진 이혼하면... 이혼하면 도대체 뭐가 해결되는데? 하늘에서 돈벼락도 떨어져 이영길, 정미진 빚더미서 해방시켜준대?
영길 (답답한) 그럼 어떡하니? 같이 있으면 니가 더 힘든데, 나한텐 이제 아무 희망도 없는데, 어떡해?
미진 (싸늘하게 보다) 그래서 죽을려고 했니?
씬33. 종연의 방
좁은 문틈으로 영길과 미진을 바라보던 종연.
미진의 말에 흠칫 놀란다.
씬34. 거실
방 안 종연의 시선으로,
영길 (당황한) 당신 무슨 소리야?
미진 (서랍을 벌컥 열고 약병을 꺼내 영길에게 내민다.) 이거 뭐야? 왜 당신 옷 속에 이게 있냐구? (빈정대듯) 죽을려구? 당신만 죽으면 그만이야? 당신이야 죽으면 편하겠지. 남은 우린, 우린, 시궁창을 뒤지든, 남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살든, 당신은 아무 상관없다는 거야?! (영길을 붙잡고 흔들며 절규하듯) 말해 봐. 우린 어떡케 살아야 돼! 말해보란 말이야!
영길 (눈 붉어 힘겹게 입을 열며) 미안하다. (얼굴을 돌린다.)
미진 (흐느낀다.)
씬35. 종연의 방
어두운 얼굴로 방문에 기대선 종연.
힘없이 순영이 곁으로 와 바닥에 엎드린다.
순영, 그런 종연의 등을 토닥인다.
종연 (슬픈 눈 들어) 순영아.
순영 (해맑게 보면)
종연 (긴 한숨을 내쉬고 슬픈 얼굴을 다시 묻는다.)
씬36. 베란다
두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하던 종연.
눈을 뜨고, 베란다 샷시를 붙잡은 채, 슬픈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종연 (울먹이지만 눈물 흘리지 않는) 제발, 제 기도 좀 들어주세요. 제발요. (눈물을 짜내려는 듯 눈을 끔벅하지만 나지 앉자, 낙심한) 저기요.... 제가 안 슬퍼서 안 우는 게 아니구요. 원래 눈물이 잘 안나오거든요. 저 정말 괴롭고 슬퍼요. (가슴을 치며) 마음이 아파 죽겠단 말이에요. (사이) 혹시... 삼억이 너무 많으세요? 그러면 반이라도 아니 반의 반만이라도. 예? (절박한 눈빛으로 하늘 올려다본다.)
힘없이 돌아서 거실로 들어가는 종연.
INS. 밤하늘의 달.
씬37. 종연의 집 거실 (아침)
아침 햇살이 가득한 거실.
자막 ‘하루 전’
종연, 금방 잠이 깬 모습으로 방에서 나오면 거실에 아무도 없다.
안방 -
종연, 안방문을 열면,
미진 (절박하게 수화기를 붙잡고) 미안, 이번만 좀 어떻게, 알지... 미안해 정말. 이번 한번만, 마지막으로 이번 한번만 도와줘, 응, 오빠. ... 여보세요? 여보세요?!
수화기를 내려놓고 넋을 잃고 앉은 미진.
다시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건다.
미진 여보세요. 어? 윤희니? 나 미진이.
(E) 상대편 전화기 끊어지고, 신호음만 들린다.
미진 여보세요, 여보세요!
미진, 넋이 빠져 수화를 내려놓더니 갑자기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종연 어머니 어디 가세요?
미진 엄마, 갔다 올 테이니까 순영이 보고 있어. (뛰어나간다.)
종연 (나가는 미진을 본다.)
씬38. 종연의 집 거실
순영의 고사리 같은 손을 기도하듯 모으는 종연.
속옷이나 잠옷만 입고 머리가 헝클어져 있는 두 아이.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모습이다.
종연 그래, 이렇게 해서. 이제 눈 감어. (자기 눈을 감아 보이며) 이렇게. 해봐.
순영 ...
종연 (낮은 소리로) 이제 기도하는 거야. (눈감고) 하느님 제 소원은... (하고 보면)
순영 (다른 곳으로 기어가고 있다.)
종연 (엉덩이를 잡아끌며, 작게) 순영아, 너도 기도해야 돼. 빨리 와.
순영 (칭얼댄다.)
영길, 현관문을 열고 맥없이 들어온다.
종연 아버지.
영길 엄마는?
종연 나가셨어요.
영길 (미진이 걱정되는, 그러다 종연 보고) 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종연.
영길, 측은히 아이들을 본다.
씬39. 중국집 (낮)
자장면 두 개를 시켜놓고, 하나는 종연이 입가에 자장을 묻혀가며 먹고 있고
나머지 하나는 영길이 순영을 먹이고 있다.
정신없이 자장을 먹던 종연, 뒤늦게 아버지 생각이 났는지
종연 (순영을 먹이기만 하는 영길을 한참 보다) 아버지, 이거 드세요.
영길 왜, 더 안 먹구?
종연 전 배불러요. (오버하며 배 만지고) 이것 보세요. 배가 불룩하잖아요.
영길 (거짓말인거 안다. 더 안쓰러워) 그래도 더 먹어. 너 자장면 젤루 좋아했잖아...
종연 ..... (자신 없게) 정말 배부른데....
영길 (짠해지고) 많이 먹어. (종업원에게) 여기 군만두도 하나 줘요. (종연 보고 웃는다)
종연 (따라 웃고, 다시 정신없이 자장면을 먹는다)
영길 (웃음기 가시고, 서글프게 애들 본다) ...... (그러다 못 견디겠는지, 씁쓸한 표정되고.. 종업원에게) 여기 고량주도 하나 주소.
종연 (입에 자장면 물고 본다) ?
씬40. 거리
술기운이 조금 오른 영길, 종연, 순영 손을 잡고 걸어온다.
포교하는 아주머니, ‘하느님 믿고 천국 갑시다’를 외치며 거리에서 유인물을 나눠준다.
어두운 얼굴로 걸어가는 영길에게 아주머니, 유인물을 건네며 ‘하느님 믿고, 천국 가세요’라고 한다.
유인물을 받아들고 보는 영길, 기막히고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런 영길을 이상하게 쳐다보고 가는 아주머니.
울음인지 웃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선 영길을 바라보는 종연.
씬41. 종연의 집/거실 (낮)
거실로 들어서는 영길과 종연, 순영.
영길, 거실로 들어오면, 미진, 전화기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다. 영길을 본다.
미진 (허하게) 여보.
영길 ?
미진 이젠 정말 끝내야 할 거 같아.
영길, 당황하더니 주머니에서 천원을 꺼내 종연에게 내밀며,
영길 놀다 와.
종연, 시무룩하게 받아들고, 신발을 신으려 현관 앞에 앉는다.
신을 신는 종연을 보고 미진에게로 가는 영길.
종연, 금방이라도 구멍이 날 듯한 운동화를 내려다보다 일어선다.
미진의 앞에 앉은 영길,
(E)현관문 소리.
현관에 종연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미진을 보는 영길.
영길 왜 그래?
미진 (넋이 빠져)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어. 죽을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어. 근데... 아무 것두 할 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여보.
영길 (안타깝게 본다.)
미진 여보, 우리... 떠나.
영길 미진아...
미진 나 진심이야. 더 이상 우리에겐 잡을 지푸라기라곤 없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일밖에 남지 않은 거야. 당신이나 나나 이 세상에 미련같은 거 없잖아. 응?
영길 (눈 붉어, 안타깝게 미진을 본다.)
미진 소원이야, 이 방법밖엔 없어. 우리 떠나. 당신, 나, 그리고.... 우리 애들.... (말을 잊지 못하다 갑자기 눈 그렁해) 우리 애들... 죄없는 우리 애들...?
영길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킨다.)
미진 (멍하게 눈물 흘리며) 그래, 가는 거야. 다같이.... 우리 다 같이...
영길 (울음을 토해내며 넋이 빠진 미진을 끌어안는다.)
씬42. 현관
현관문을 살짝 열어둔 채 문 앞에 서 있는 종연.
불안과 분노가 차오르는 얼굴이 닫히는 문과 함께 사라진다.
씬43. 문구점 앞 (해질녘)
상기된 얼굴로 무섭게 오락에 매달리는 종연.
비슷한 또래의 남자 아이1, 2 다가온다.
아이1, 옆에 앉아 동전을 넣으려고 하자, 종연, 투입구를 손으로 막는다.
아이1 뭐야?
종연 하지마!
아이1 왜?
종연 내가 할 거란 말이야.
아이2 너는 그거하면 되잖아.
종연 이것도 할 거야.
아이1 (기가 차서) 니가 두 개를 동시에 어떻게 해! 너 바보냐?
종연 할거야!
아이2 이게 다 니 꺼야? 왜 니가 다해?
종연 ...
아이1 (종연을 밀쳐내며) 그럼 니가 이거 해. 내가 여기서 할 테니까
종연,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 아이1을 밀쳐낸다.
아이1 아야! (하고 넘어진다.)
아이2 민수야! (종연을 밀치며) 야, 임마, 너 깡패야?!
종연 내가 다 한 댔잖아! (하며 앉는다)
아이1 (식식대며 일어나 종연에게 덤벼든다.)
아이1과 종연, 바닥에 뒹굴며 싸우고 주변의 아이들 몰려든다.
종연, 아이1의 배에 타 얼굴을 때리자 아이2가 종연을 밀쳐내고
아이1과 아이2 합세하여 종연을 때린다.
지나던 앞집 할아버지, 아이들에게 맞고 종연을 보고 놀라 다가온다.
할아버지 얘끼, 이놈들!
아이1, 아이2, (놀라 보면)
할아버지 어디 비겁하게 두 놈이 한 놈을 패! 이리 안나와!
아이1 (일어나며) 이 자식이 먼저 그랬단 말이에요!
할아버지 (지팡이를 들며) 어디, 이놈들이 그래도 잘했다고!
뒷걸음질치는 아이1, 아이2, 위협하듯이 종연과 할아버지에게 주먹을 튕기며 달아난다.
종연, 여전히 분한 듯 바닥에 그대로 앉아 있다.
할아버지 괜찮어?
종연 (눈 붉어 할아버지를 보곤 일어나 가버린다.)
할아버지 (가는 걱정스레 바라본다.)
씬44. 편의점 앞 (저녁)
씩씩대며 걸어오는 종연.
편의점 로또 사인을 보더니 안으로 들어간다.
점원, 킥킥대며 만화책을 보고 있다.
성큼성큼 카운터로 가 선 종연.
점원, 만화책에서 눈을 들어 우뚝 선 종연을 본다.
점원 너? 너 이 자식 왜 또 왔어?
종연 (점원을 쏘아보더니 마구 주머니를 뒤져 백원짜리와 십원짜리등이 섞인 동전들(600원정도) 을 꺼내 카운터에 탁 내려놓는다.)
점원 ? 뭐야?
종연 복권 주세요.
점원 뭐? 너 이 자식 또?
종연 (OL) 복권 줘요! 복권.
점원 이게 어디서 지금 땡깡을 부리고...
종연 (OL, 억지스러울 정도로 소리치며) 복권 줘요, 복권. 복원 달란 말이에요. 복권! 복권 달란 말이에요......
점원, 질린 표정으로 소리치는 종연을 본다.
씬45. 편의점 앞
종연을 옆에 끼고 나오는 점원.
종연, ‘놔요, 노란 말이야’ 소리치며 버둥거린다.
점원, 종연을 내려놓으면, 종연, 씩씩대며 점원을 쏘아본다.
점원 너 한번만 더 여기 얼씬 거려 봐? (때리려는 시늉) 그냥 확! 으유 진짜 별게 다 성질을 건드려! (들어간다.)
종연 (도끼눈으로 본다.)
점원 아! (돌아서 주머니에서 동전으로 꺼낸 후 종연의 팔을 잡아 당겨 손에 동전들을 올려놓으며) 자. 이걸룬 사지도 못하지만, 너 같이 꼬맹이들한텐 교육상으루도 못 팔어, 알어! 어디 쬐그만 게... 벌써부터 돈독이 올라가지고... 가! 으유 (인상쓰며 들어간다.)
분한 표정으로 손위에 동전과 편의점을 번갈아 보는 종연.
씬46. 종연의 집 거실(밤)
식탁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영길.
문여는 소리 들리고 보면, 화난 얼굴로 들어오는 종연이다.
영길 왜 이렇게 늦었어?
종연, 영길을 노려보곤 말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영길 ?
씬47. 종연의 방 (밤)
우뚝 서 있던 종연.
책, 리코더 등을 책가방에 챙겨 넣고, 옷장에서 옷가지를 꺼내 또 다른 가방에 쑤셔 넣은 후
두 가방을 인형이 든 박스 속에 감추곤 인형들로 잘 덮고 서서,
종연 (결연한) 난 안 갈거야.
씬48. 안방(밤)
미진, 초점 없이 멍한 모습으로 순영을 안고 앞뒤로 흔든다.
순영, 안겨 있는 것이 불편한 듯 칭얼댄다.
종연, 방으로 들어와 미진에게서 순영을 빼앗는다.
미진, 멍하니 보고만 있다.
순영을 데리고 나오는 종연.
씬49. 거실(밤)
안방에서 나오는 종연과 순영.
여전히 소주를 들이키고 있는 영길.
종연, 실망스럽게 바라보곤 자기 방으로 들어가며 문을 세차게 닫아버린다.
씬50. 종연의 아파트 외경 (밤)
씬51. 종연의 방 (밤)
어두운 방.
순영에게 다가와 볼을 살짝 치며 낮은 소리로 깨운다.
자다 깬 순영, 칭얼댄다.
종연 (당황해, 낮은 소리로) 순영아, 뚝! 울지마.
순영 (계속 칭얼대고)
종연 넌... 내가 지켜 줄거야. (다독이며) 울지마, 울지마.
더 크게 우는 순영 때문에 난감한 종연.
그때, 방문 열리고, 종연, 재빨리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자는 척 하는 종연.
미진, 다가와 순영을 보듬어 안고 나간다.
문이 닫히고 일어나 앉는 종연.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듯 답답하게 앉아 있다 일어선다.
박스에 숨겨둔 가방을 꺼내 메고, 다른 가방을 손에 드는데,
거실에서 순영의 칭얼대는 소리 잦아들며,
미진 (E) 미안해, 미안해 아가야. (흐느끼며, 점점 격앙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끊임없이 ‘미안해’라고 하며 우는 미진의 소리를 듣고 선 종연.
손에 든 가방을 뚝 떨어뜨리고 벽에 기댄 채 미끄러져 앉는다.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낮은 소리로 아프게 우는 종연.
씬52. 베란다
눈 붉어 베란다로 들어오는 종연, 고개 들어 하늘을 노려본다.
종연 (차갑게, 눈 그렁해) 기도하려는 거 아니야.. 내가 백번도 더 기도했는데... 착하게 살면 하느님이 도와준다더니 다 거짓말이야. 하느님도 가난한 사람은 싫은 거지? 나두... 그런 하느님은 싫어, 다신 기도 같은 거 안 해!
하늘을 노려보다 차갑게 돌아서는 종연.
나가려다 다시 돌아서 하늘을 향해 주먹을 튕기고 나가버린다.
INS. 밤하늘의 달.
씬53. 아파트 주변 - 몽타주 (아침)
유난히 화창한 아침 풍경들.
- 햇살이 내리쬐는 아파트 전경.
- 빛나는 미끄럼틀,
- 짙푸른 화단의 나무들.
- 여느 때와 다름없이 종연의 집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
자막 ‘어느 화창한 날’
씬54. 종연의 집 거실 (아침)
유난히 푸짐한 밥상.
이를 바라보는 종연의 얼굴이 어둡다.
영길 (식탁에 앉아) 먹어, 종연아.
미진 (얼굴 보지 않은 채, 순영이 밥을 먹이며) 오늘.... 할머니 뵈러 갈거야.
종연 왜요?
미진 .....(영길을 본다.)
종연 (눈치 보며) 학교 가야 하는데... 오늘 합주대회 있는데...
종연을 짠하게 보는 영길.
종연의 시선을 피하고 순영을 어르는 미진.
둘의 표정을 살피는 종연.
씬55. 거실 + 베란다.
거실에서 순영의 옷을 입히던 미진.
베란다에 우두커니 서 있는 종연에게 ‘종연아 뭐해?’ 한다.
종연, 베란다 창에 바짝 붙어 표정 없이 밖을 쳐다본다.
씬56. 아파트 앞
영길, 승합차에서 인형을 꺼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공짜 선물을 받은 아줌마와 아이들, 좋아하고,
영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 스친다.
멀리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굳은 얼굴의 종연.
씬57. 거실
종연, 힘없이 베란다에서 거실로 들어온다.
거실에 혼자 앉아 있는 순영을 보고 생각에 잠기더니 안방쪽을 본다.
열린 문으로 보면 넋을 잃고 앉아 있는 미진이 보인다.
씬58. 종연의 방
박스 속에 들어가 있는 순영, 해맑게 웃고 있다.
종연 (내려다보고) 순영이 좋아하는 숨바꼭질 하자.
순영 (끄덕인다.)
종연, 순영의 몸 위로 두 세 개의 인형들을 올린다.
쌓이는 인형들로 점점 사라져가는 순영의 모습.
씬59. 거실
순영을 찾아 헤매는 미진.
당황한 기색으로 ‘순영아‘ 부르며 화장실, 종연의 방, 베란다등을 뛰어다니며 뒤진다.
거실 가운데 우뚝 서 그런 미진을 바라보는 종연.
미진 (종연에게) 순영이 못봤어, 정말?
종연 (도리질한다.)
미진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안절부절 못하더니 종연의 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종연 (긴장한)
씬60. 종연의 방
미진 (이마에 손을 얹고 초조하게) 밖에 나갔을 리도 없을 텐데...
문 앞에서 보고 있는 종연.
미진, 안절부절 못하며 두리번대다 인형박스에 시선이 꽂힌다.
긴장하는 종연.
조금씩 움직이는 박스 속 인형들.
미진, 멈칫하더니 인형을 재빨리 치운다.
인형들을 다 꺼내면 박스 안에 땀에 젖은 순영이 앉아 있다.
놀란 미진, 순영을 재빨리 들어올려 방에 내려놓는다.
당황하며 순영의 땀을 닦던 미진, 멈칫하더니 종연을 무섭게 본다.
흠칫 놀라는 종연.
미진 종연이, 너? 너 어떻게?
종연 ...
미진 (종연의 팔을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긴다.)
종연 (움찔하고)
미진 (죄책감에 오히려 더 히스테릭해져) 재밌니? 엄마 갖고 노니까 재밌어? 절절매며 미친년같이 헤매는 엄마 꼴이 보고 싶었던 거야, 너! (눈 붉어, 종연의 엉덩이 때리며) 왜 그랬어? 왜 그랬어, 너! 너, 왜 그랬어!
종연 (억울하고 원망스런 눈으로 미진을 보는)
미진 (복받쳐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종연 (울먹울먹하며 미진 쪽을 본다.)
씬61. 아파트 앞 주차장
영길, 승합차 트렁크를 닫고, 보면,
순영을 안은 미진과 가방을 매고 시무룩한 종연이 나온다.
영길 종연이 가방은 왜 갖고 와?
종연 ...
미진 그냥 둬.
영길, 무거운 발걸음으로 앞좌석에 오르고,
미진, 순영을 데리고 차로 가는데,
종연,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미진 종연아.
종연 .....
미진, 다가와 종연의 팔을 끌지만 종연, 가지 않으려 버틴다.
미진 (이상히 보며) 왜?
종연 (고개 떨구고) .....
할아버지 (E) 어디들 가요?
종연, 눈을 들어 보면,
앞집 할아버지가 다가온다.
미진 예.... 가자. 종연아 (하며 끈다.)
할아버지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종연.
할아버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그냥 보고만 있는데,
승합차에 오르기 직전, 달아나는 종연.
미진 종연아!
종연 (할아버지에게로 달려오며) 할아버지...
할아버지 ??
미진 종연아!
종연 (할아버지에게 매달려, 눈 그렁해)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
미진 (OL, 종연을 잡고, 할아버지 의식하며) 종연아, 왜 그래? 아빠 기다리시잖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할아버지.
종연, 미진의 팔에 끌려가면서 계속 할아버지에게 절박한 눈빛을 보낸다.
할아버지 저기...
미진 예?
종연 (기대하는)
할아버지 어딜 가시나?
미진 시골... 갑니다.
종연 (고개를 슬며시 흔들어 보인다.)
미진 (종연의 도리질은 보지 못하고, 종연 팔을 끌며) 가자.
종연, 도리질하며 할아버지에게 신호를 보내지만 할아버지 안타깝게 쳐다볼 뿐이다.
차에 오른 종연.
할아버지, ‘저...’하고 부르며 차로 다가가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차창에 붙어 할아버지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종연.
불안하게 보던 할아버지, 팔이 더 떨리고, 입이 더 씰룩거린다.
영길의 차 움직이자,
할아버지, 다급하게 ‘저기!’하고 부르며 쫓아가다 이내 넘어지고 만다.
넘어진 할아버지를 절망스럽게 바라보는 종연.
불안한 얼굴로 바닥에 앉아있는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멀어져가는 영길의 차.
씬62. 달리는 차 안
운전석에 영길, 그 뒤에 종연, 순영, 미진 앉았다.
종연 (창밖을 보다 바로 앉곤) ..... 엄마 나 피자 먹고 싶어.
미진 아침 먹었잖아.
종연 그래도 먹고 싶어!
미진 왜 그래? 안부리던 고집을 다 부리구.
종연 (버럭) 엄마가 피자 사준지가 언젠 줄 알어!
미진 (놀라 보고)
영길 (룸미러로 보곤) 그래. 먹고 가자.
종연 (분이 풀리지 않은)
씬63. 피자가게
한풀이를 하듯 커다란 피자를 마구 먹어대는 종연.
미진 (콜라 주며) 콜라 먹으면서 먹어.
종연 (콜라 마시고, 피자를 입안 가득 쑤셔 넣는다.)
미진과 영길, 답답하게 종연을 본다.
씬64. 도로
도심을 달리는 영길의 승합차.
씬65. .차 안
종연 (창밖을 보며) 피부사랑, 두산 이발관, 채운서예, 일본직업소개소.
미진 종연아 똑바로 앉어.
종연 (아랑곳하지 않고) 해피 가요반주, 상업은행, 세계 여행사, 베른호프......
미진 ?
씬66. 국도
국도를 달리는 영길의 차.
씬67. 국도변의 영길의 차 안/밖
차 안 -
종연 (창밖을 보다 시무룩하게 앉아) 나 오줌 마려.
영길 조금만 참어.
종연 못 참겠어!
영길 조금만 가면 휴게소 나와.
종연 못 참겠어. 못 참겠단 말이야. 빨리 세워 줘!
미진 ??
하는 수 없이 갓길로 차를 세우는 영길.
씬68. 풀숲
잡풀들이 무성한 국도 변에 세워지는 영길의 차.
종연,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두리번대더니 풀숲으로 다가가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본다.
차에서 내리는 영길.
온 신경이 아버지의 행동에 쏠려 있는 종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는 영길, 담배각 안이 비어 있는 듯 구겨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볼 일을 마친 종연. 떨리는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 영길을 보면,
영길, 막막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이때다 싶어 반대쪽 풀숲으로 뛰어가는 종연.
뒤를 돌아서던 영길, 뛰어가는 종연을 보고 놀라, ‘종연아’ 부른다.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종연.
영길, 의아해하며 종연을 쫓는다.
- 차안 -
미진, 순영에게 물을 먹이다 영길이 뛰어가는 것을 본다.
- 차 밖 -
사력을 다해 뛰는 종연.
?아가다 선 영길, 다시 종연을 부르지만 종연, 계속 도망친다.
달리는 종연 뒤로 ‘종연아, 종연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종연, 뒤를 돌아보려다 풀밭에 넘어지고 만다.
넘어진 종연에게 다가선 영길.
종연, 불안한 얼굴 들어올리면,
영길, 숨을 몰아쉬며 서 있다.
영길 너 어딜 가는 거야?
종연 ....
영길 (종연을 일으켜 세우고) 어딜 갈려고 그렇게 뛰어, 너?
종연 ... 집에.
영길 ??
종연 집에 가고 싶어.
영길 (울컥해) 여기가 어디라고 혼자 집에 간다는 거야! 너, 정신이 있어!
종연 나도 길 알어.
영길 뭐??
종연 (울먹이며) 여기서 쭉 가면 진미가든 나오구, 거기서 왼쪽으로 돌면...
영길 !!
종연 나무들이 쭉 서 있잖아. 그 길로 계속 가면 사거리에서...
영길 (기막힌)
종연 오른쪽으로 돌아 가다가... 다리 지나서 (자신 없이) 왼쪽 아니 오른쪽...
영길 (OL) 이종연!
종연 (움찔하는)
영길 이종연, 너 오늘 왜 이래! 왜 이렇게 니 마음대로야! 너 합주대회 못나가게 했다고 이러는 거야? 그런 거야?!
종연 (울먹울먹하는)
영길 (종연 보다, 눈 붉어) 가자.
하며 종연의 손을 끌지만 종연, 안 가려 버틴다.
영길, 종연을 무섭게 보면,
종연, 무력하게 끌려간다.
차 안 -
영길, 종연을 차에 태우고 문을 닫는다.
미진 왜 글루 가?
종연 ...
영길 (운전석에 타고)
미진 (영길과 종연을 번갈아 본다.)
영길 (답답한, 시동 걸고 출발한다.)
씬69. 국도
국도를 달리는 영길의 차.
씬70. 차 안
잠들어 있는 순영.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미진과 운전하는 영길.
종연, 가방에서 꺼낸 리코더를 만지작대며 미진과 영길을 원망 섞인 눈으로 본다.
미진 (허하게) 여보, 얼마나 더 가야 돼? 지구 끝에라도 가는 거야?
영길 ....
종연 ... (은근히 항의 하듯이) 나 오늘 리코더 합주대회 있는데, 내가 우리반 대푠데....
미진 (무감하게 종연을 본다.)
종연 (점점 목이 메는) 엄만 우리 학교도 한번 안 왔어. 내 입학식 때두 안 왔구, 급식당번 때도 안왔어. 그래두 난 열심히 공부 했어. 운동도 열심히 하구, 리코더도 내가 우리반에서 제일 잘 분단 말이야!
영길 (답답한)
미진 (눈 그렁해) 맞어. 우리 종연인 엄마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장난감 사달라, 놀이동산 가자, 떼쓴 적도 없어.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는데도 불평 한마디 안하는 착한 아이야.
종연 착하면 뭐해?
미진 넌... 분명 천사가 될 거야.
종연 !
급정거 하는 차.
영길 앞으로 쏠린 몸을 일으키고,
영길 당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미진 (들리지 않는 듯 계속 종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착한 아기 천사. 엄마, 아빠가 불지옥에 떨어져도 절대 아는 척 하지 마. 절대...
종연 (놀란 눈으로 미진을 본다.)
영길 당신 미쳤어!
미진 (종연을 바라보며 얼이 빠진 채 눈물만 흘린다.)
영길 (답답하게 미진을 보다, 핸들을 마구 내리치며) 어쩌라는 거야!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야! 어떡케!
눈물만 흘리는 미진.
넋이 빠져 있던 종연, 리코더 들어 만화주제곡 같은 흥겨운 곡을 연주한다.
미진과 영길, 이런 종연 이상하게 본다.
종연, 굳은 얼굴로 계속 리코더를 부른다.
영길 그만해.
종연 (계속 부른다.)
영길 그만 하라니까!
종연 (더 세게 부르고)
영길 이종연, 그만 못해!
종연, 반항하듯 리코더를 신경질적으로 ‘삑삑’ 불어댄다.
참다못한 영길, 서둘러 차를 출발시킨다.
가속 페달을 밟는 영길의 발.
씬71. 도로
속력을 내는 영길의 차.
씬72. 영길의 차안
충혈 된 눈으로 속력을 내는 영길.
울어대는 순영.
그런 순영을 안고 흐느끼는 미진.
리코더를 부는 종연.
White out
# 베란다(밤)
F.I
베란다 창틀에 바짝 붙어 보호대를 움켜쥐고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는 종연.
또랑또랑한 눈으로 한참을 응시한다.
INS. 밤하늘의 달.
미진 (E) 종연이 뭐해, 일찍 자야지?
종연 (돌아보고) 예.
(다시 올려보며) ...약속하셨어요, 꼭이요...
살포시 미소짓는 종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