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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대본

[도시괴담, 무섭지 않은 이야기] 황다은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2.01.19|조회수725 목록 댓글 3

[도시괴담, 무섭지 않은 이야기] 황다은

 

 

 

 

 

 

 

#. 타이틀백

CCTV를 통해 잡히는 도시의 공간과
그 공간들 속으로 들어왔다 사라지는 익명의 사람들이 교차된다.
(엘리베이터, 지하철, 빌딩 복도, 지하 주차장, 한밤의 골목, 교각..)

건조하고 위험한 도시의 이미지들 뒤섞이다가 암전.

[1화] 축하해줘, 나 취직했어.

1. 지하철 역/낮

승강장 안전선 바깥에 서 있는 발, 성호다.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매달려 있는 모니터 속으로 반대편 쪽의 상황 보여진다.
모니터 상황 속으로 들어서는 누군가. 모니터 카메라를 본다.
모니터를 보고 있는 성호와 모니터 속의 남자 눈이 마주친다.

(E)지하철 들어온다는 신호음과 안내문

모니터 안의 남자, 안전선 안쪽으로 걸어간다.
안전선을 넘더니 선로 가까이 뚜벅뚜벅 걸어간다.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 가까워지고..
모니터 밖의 성호, 불안한 시선으로 선로 반대편을 보지만
사람들에 가려 반대편 상황 안 보인다. 다시 모니터를 본다.
모니터 안의 남자, 선로 바로 앞에 떨어질 듯 서 있다.
놀라는 모니터 밖의 성호 얼굴 앞으로 빠르게 진입하는 지하철.
그 바람에 날리는 성호의 머리카락..
모니터를 보면, 위태하게 서 있던 남자 사라지고 없다.
(F.O)

2. F.I/ 지하철 안/낮

출근길 인파로 가득 차 있는 지하철 안.
누군가의 목소리. 쉴 새 없는 말들. 사람들, 소리가 나는 쪽을 보지만
꽉 찬 사람들 속으로 목소리의 주인공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남자(off) (중얼중얼, 신문 사설을 랩처럼 숨도 안쉬고 읊어댄다) 경기불황 계속돼
청년실업 가중돼 내수침체 한몫해 환율하락 두몫해 경영환경 악화돼 인력
채용 저기압.

빈틈이라곤 없을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밀치고 이동하는 남자(씬1의).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양복을 입은 남자, 겉보기엔 멀쩡해 보인다.
사람들 짜증내며 자리를 내주고.. 남자는 쉴 새 없이 떠들며 이동한다.
머리와 옷이 이미 많이 흐트러져 있다.

남자수십가지 자격증 성형수술 서너번 그래봤자 힘들어 외국연수 기본에
토익만점 필수야 그래봤자 떨어져 바늘구멍 좁아져 취업전쟁 잔인해
살겠다고 해봤자 죽겠다고 해봤자 울어봤자 일없어.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성호 옆을 지나간다.
성호와 남자, 눈이 마주친다. 남자, 성호를 지나쳐 문 앞에 선다.

성호(E)낯이 익다.

지하철 문이 열린다. 사람들이 내린다. 남자도 내린다.
성호도 내리려 하지만, 미처 나가기도 전에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점점 안쪽으로 밀려들어오게 된다. 결국, 못 내리고 문이 닫힌다.

3. 거리/낮

늦어서 뛰는 성호. 시계를 보며 빌딩을 향해 달려간다.

4. 빌딩 엘리베이터 앞/낮

간발의 차이로 엘리베이터를 놓친다.

5. 빌딩 계단/낮

성호, 계단으로 뛰어간다. 두 계단씩 뛰어 올라간다.
누군가 힘없이 내려오는 발이 보인다. 그 발과 엉킨다.
성호, 위를 올려다본다. 성호를 내려다보는 얼굴, 지하철에서 본 그 남자.
지하철에서 봤던 모습과 달리 너무 의기소침한 모습이다.
왜소하고 창백한 피부의 남자는 현수이다. 성호, 이제야 알아본다.

현수이제 알아보겠어?
성호(E) 대학 졸업 후로 처음 본다.
성호어.. 오랜만이다. (애매하게 미소 짓는)

성호의 시선으로, 현수의 가슴께에는 매달린 접수증 보인다.

성호면접.. 봤냐?
현수(텅 빈 표정으로) 그렇지.. 뭐. (성호를 스쳐 지나며) 잘 해라.

성호,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왜소한 현수를 보며

성호(E) 살이 빠져도 너무 빠졌다. 몸무게와 함께 영혼도 빠져나가버린 것 같다.
남들 눈에 나도 저렇게 허깨비처럼 보일까..

성호, 잡념을 떨치듯 서둘러 뛰어 올라간다.

6. 면접실/낮

접수증 가슴에 달며 허겁지겁 들어서는 성호. 땀을 비 오 듯 흘린다.
면접관들 표정 냉담하다. 말없이 어느 곳을 가리킨다.
보면, 사훈이 걸려 있다. ‘약속은 생명이다’.
문이 열리고 성호, 쫓겨난다. 성호 뒤로 냉정하게 닫히는 문.

7. 엘리베이터 안/낮

성호 손에서 구겨지는 접수증. 몹시 절망하고 있는 성호.
엘리베이터 구석에 서서 초라하게 서 있다. 직원들이 오르고 내린다.
중간층에서 문이 열리고 아까 계단에서 마주친 현수가 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두 사람만 나란히 서 있다.

성호아직 안 내려갔냐?
현수다시 올라 가려구. (올라가는 버튼을 누른다)
성호(어이없다) 내려가던 거 안 보이든?
현수(집요하게) 당장 올라가야 돼.
성호(할 말이 없다) 계속 눌러봐라 어디.

갑자기 엘리베이터 불이 꺼지고 멈춘다.

성호씨- (현수를 노려본다) 가지가지한다.
현수(어쩐지 편안해진 얼굴이다)
성호그러니까 멀쩡한 엘리베이터를 왜 괴롭혀? (호출 버튼을 누르며) 여기요!

호출 버튼을 암만 눌러도 답이 없다. 성호, 짜증이 올라오는데..
조용히 있던 현수 갑자기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엘리베이터 문에 바짝 붙어서 머리를 찧기도 한다.

현수(중얼중얼) 수십가지 자격증 성형수술 서너번 그래봤자 힘들어 외국연수
기본에 토익만점 필수야 그래봤자 떨어져 바늘구멍 좁아져 취업전쟁 잔인해
살겠다고 해봤자 죽겠다고 해봤자 울어봤자 일없어.

성호, 갑자기 현수가 두려워져서 가만히 떨어져 서 있는데..

현수(중얼거림을 멈추고 문득) 이 빌딩에 우리가 일할 자리 하나 없을까.
성호(짐짓 대범한 척) 찌질한 소리할래?
현수만약, 주어진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
성호일단 여기서나 벗어나 보고, 엉?

성호, 호출기를 누르는데 집중할 뿐이다.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다시 작동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다시 올라간다.

현수(혼자 중얼거린다) 난 올라갈 거야.
성호그러시든지.

현수,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서야 내린다.
현수를 내려놓고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힌다.
닫히는 문틈으로, 현수와 눈이 마주친다. 문이 닫힌다.

성호미친 놈.

엘리베이터 내려간다. 그런데 왜 이리 느리게 느껴질까.

8. 로비/낮

1층 로비. 오가는 직원들 사이에 홀로 서 있는 성호.
보면, 각 층마다 들어선 회사들의 이름이 가득 붙은 벽면 앞이다.

현수(E)이 빌딩에 우리가 일할 자리 하나 없을까?

씁쓸해지는 성호. 주변을 둘러본다. 자연스럽게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
홀로 이방인이 된 기분이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
안내 데스크에 마네킹처럼 서 있는 여직원의 애매한 미소.

9. 다른 회사/낮

점심시간. 직장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다.
성호, 그들을 바라보며 통화 중이다.

민경(F)오늘 면접 있다고 하지 않았어?
성호있었지. 이제 합격 발표만 기다리면 돼.
민경(F)잘 됐네. 근데, 나 외근 중이야. 올 필요 없어.
성호그래..? (하다가 얼굴이 굳는다)

보면, 민경 직장 동료로 보이는 남자와 다정히 걸어 나오고 있다.
민경도 성호를 보고 얼굴이 굳는다.

10. 회사 일각/낮

심각하게 서 있는 성호와 민경.

민경헤어져.
성호안 들켰으면 안 헤어졌고?
민경(얼굴색 하나 안변하고)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성호(보는)
민경적어도 취직할 때까지는 알게 하고 싶지 않았어.
성호눈물 나게 고맙다.
민경오늘 면접 잘 했다니, 다행이네. 꼭 좋은 소식 전해줘.

민경, 성호를 지나쳐 가려 한다. 성호, 자기도 모르게.. 민경 손 잡는다.

성호점심이나 사주라.
민경(어이없이 쳐다본다)
성호(손 안 놓는다) 그 동안 기다린 거 아깝지도 않냐. 다 보상해 줄게, 내가.
민경(냉담하게) 그만 인정해. 자긴 신용불량이야.
성호(잡은 손 놔준다)

민경, 가고.. 성호, 참담한..

11. 거리/낮

성호, 비틀비틀 걷는다. 벌써 낮술에 취해 있다.

12. 다른 회사/낮

대기업 사원증을 매달고 있는 정석, 로비로 나온다.
누군가를 발견하고 반가운 얼굴이 된다. 보면, 성호가 비틀비틀 다가온다.

성호친구야! (정석을 끌어안는다)
정석(술 냄새가 고약해서 당황하는) 오랜만이다.
(옷매무새 다듬고) 근데, 웬일이냐. 동창회 해도 안 나타나던 녀석이.
성호그래서 보고 싶어서 왔잖냐. 이 형님 얼굴도 보여주고. (히죽 웃는)
정석(성호를 찬찬히 보는) 낮술 마셨냐?
성호오늘 좋은 일이 좀 있었거든.
정석(사람들 시선 의식되기 시작한다)
성호(정석을 위 아래로 훑으며) 우와, 대기업 사원이라 확실히 다르다, 응?
(사원증에 손을 뻗는다) 금메달보다 더 따기 힘든 거. (키득)
정석(몸을 뒤로 빼며) 급한 일 아니면, 퇴근하고 보자.
성호한번 만 걸어보자. (사원증에 손을 뻗는다)
정석(피한다) 있다가 전화하자.
성호(집요하게) 한번 만 걸어보자.
정석(짜증이 올라온다) 일하다 내려왔다, 지금.
성호그러니까 잠깐만 걸어보고 주께. (사원증에 손이 닿는다)
정석(성호 손 거칠게 내치며, 차갑게) 술 깨고 와라.
성호디게 비싸게 구네. 그러지 말고 나도 폼 좀 내보자.

성호, 다시 손을 뻗어 정석의 사원증을 빼내려 한다.
정석, 화가 나서 성호를 밀친다. 성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정석마시려면 곱게 마셔라. 어디 와서 꼬장이야?
성호(그대로 주저앉아 있는)
정석쪽팔려.

성호, 일어날 생각도 안하고 그대로 앉아 있다.
정석 로비를 가로질러 가는데, 갑자기 사원증 끈을 잡아당기는 손.
성호, 무조건 정석에게 달려들어 사원증을 빼내려 한다.
정석, 성호의 턱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성호, 쓰러진다.

정석한심한 새끼. (뒤돌아 간다)

13. 포장마차/저녁

술을 마신다. 진창 마신다. 술값을 계산해야 하는데 지갑이 비어 있다.

성호(완전 취해서) 카드, 카드 안돼요?

성호, 지갑에서 카드 꺼내 허공에 대고 긋는데, ‘던킨 포인트 카드’ 류.
주인, 성호의 지갑에 있는 돈 동전까지 털고 손목의 시계 빼낸다.
밖으로 성호를 던져 놓고 가방 던진다.
바닥에 떨어진 가방에서 쏟아지는 이력서들.. 성호 눈물이 고이고.
이력서 챙겨들고 비틀비틀 어디론가 간다.

14. 빌딩 앞/밤

어딘가에 쓰러져 잠들어 있는 성호. 눈을 뜨니 깜깜한 밤이다.
문 닫힌 빌딩 앞에 쓰러져 누워 있다.
옷은 더러워져 있고 얼굴엔 상처투성이다. 가방도 없고 지갑도 없다.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접수증만 깨끗이 빛나고 있을 뿐이다.
성호, 접수증에 붙어 있는 자신의 사진을 본다.
결심한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 빌딩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간다.

15. 면접실/밤

성호, 취해서 문을 두드리며 소동을 피우고 있다.

성호(접수증을 단 가슴을 탕탕 치며) 내 목숨이 걸린 문제라니까요, 네?
약속만 생명이고, 사람 목숨은 아주 우스워? 오늘 콱 죽어버린다?
면접 한번 만 봅시다. 당신들 귀한 인재 놓치는 거야, 알아?

씨알이 먹힐 리 없다. 성호, 쫓겨난다.

16. 엘리베이터 앞/밤

성호,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최선을 다해 버틴다.
직원들, 성호를 엘리베이터에 구겨 넣더니 내림 버튼을 눌러 버린다.

17. 엘리베이터 안/밤

엘리베이터 내려가고.. 구석에 엉망이 되어 쓰러져 있는 성호.
자기도 모르게, 지하철 안에서 현수가 떠들던 대로
쉴 새 없이 혼잣말을 하기 시작한다.

성호(중얼중얼) 바늘구멍 좁아져 취업전쟁 잔인해
살겠다고 해봤자 죽겠다고 해봤자 울어봤자 일없어

또 고장인가.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숫자 버튼에 불도 꺼져 있다.
성호, 호출기를 누를 힘도 없다. 그냥 그대로 어둠 속에 머물러 본다.
어쩐지 삐질삐질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순간, 엘리베이터에 불이 들어오고 문이 열린다. 낯선 사무실이 보인다.
문이 닫히려는 틈으로 낯익은 얼굴(현수)이 보인다. 열림 버튼 누른다.

18. 사무실 앞/밤

성호,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현수도 성호를 보고 환히 웃는다.
아침까지만 해도 인생 안 풀리게 생겨 먹었던 녀석이
지금은 얼굴에 빛이 난다. 하지만 어쩐지 기묘한 느낌.

성호낮 동안에 좋은 일 있었냐?
현수축하해줘, 나 취직했어.
성호(믿을 수 없다, 현수 뒤쪽으로 사무실을 힐끔 본다)
현수(낯선 생기를 뿜으며) 첫날부터 야근이다, 아주.
(명함을 내민다) 회사가 좋긴 좋드라. 명함도 당일로 나온다.
성호(뭔가 뒤죽박죽이다)
현수너도 생각 있음 와라.

현수, 사무실 자동문을 지나 들어가고..
성호, 명함을 든 채로 멍하니 사무실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성호,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자동문 앞으로 가서 문을 열어보려 하지만
자동문은 열리지 않고, 유리 문 너머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만 보일 뿐.

19. 엘리베이터 안/밤

내려가고 있는 엘리베이터. 성호, 돌연 올라가는 버튼을 눌러댄다.

성호(현수가 그랬듯이 중얼거린다) 올라 갈 거야.

20. 옥상/밤

빌딩들 가득한 도심의 야경을 눈앞에 두고 서 있는 성호.
핸드폰 액정에 민경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있다.

성호조금만 기다려주지.. 이번 예감은 진짜 좋았는데..

문득, 핸드폰을 놓고, 가슴께에 엉망으로 매달린 접수증을 바로 한다.

성호(면접관 앞에서 말하듯) 접수번호 1201번, 이성호입니다.
이번이 백 한 번째 프로포즈입니다. 이력서만 100통 썼습니다.
오늘 5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신용불량, 맞습니다.

성호, 눈물이 고인다. 접수증을 거칠게 떼어내어 찢어버린다.
깜깜한 허공에 날려 버린다.
성호, 눈물이 고인다. 도심의 빌딩 숲을 내려다본다.
옥상 아래로 발 하나를 내밀어 본다. 휘청.. 놀란다.

성호쪽팔려. (키득 웃는다)

이내 곧, 웃음을 거두고 다시 발을 내밀어 본다. 진지하다.
금방이라도 뛰어들 듯 점점 허공에 깊이 발을 딛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성호, 깜짝 놀라서 균형을 잃고 몸이 앞으로 쏠린다.
겨우 균형을 잡고 안도의 한숨 내쉬며 핸드폰을 연다.

정석(F)어, 성호야. 전화 받는구나. 다행이다. 다행.
성호아까는 미안했다..
정석(F) 아냐, 임마. 취하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성호(할 말이 없다)
정석(F)너 오늘 소식 들었냐? 윤현수, 기억하지?
성호어.
정석(F)현수 그 자식이 빌딩에서 뛰어내렸데.
성호...!!!
정석(F)넌.. 괜찮은 거지?

성호, 주머니를 뒤진다. 명함이 나온다. 명함에 박힌 이름, 윤현수 맞다.

20-1. 엘리베이터 안/밤

일정한 간격으로 열리고 닫히고를 반복하는 엘리베이터 문.
성호, 계속 층마다 버튼을 누르고 있다.
매번 다른 사무실 전경이 보인다. 현수의 사무실은 안 보인다.

21. 빌딩 로비/밤

(인서트)
수십 개의 보안용 모니터에는 무채색의 빌딩 안 풍경들이 잡힌다.
CCTV 화면 안으로 이따금씩 지나가는 직원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성호 모습 보인다.
어떤 화면에 현수의 모습 나타났다 사라진다.

성호, 빌딩 사무실 이름이 붙어 있는 벽면에서 명함에 적힌 이름을 찾는다.
못 찾겠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까. 주변을 둘러본다.
적요한 가운데 안내 데스크에만 빛이 떨어지고 있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안내 여직원이 정물처럼 서 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비어 있던 안내 데스크이다.

안내데스크 앞에서 여직원에게 명함을 내미는 성호.
기계적인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던 여자의 눈이, 명함을 보더니 번뜩인다.
곧 차분해진 눈빛으로 성호를 보는 여자.

22. 엘리베이터 앞/밤

직접 엘리베이터 앞까지 안내를 해주는 여자.
버튼을 누르고 같이 기다려 준다.
성호는 왠지 한기를 느낀다. 로비는 더 적요해져 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문이 열리고 성호가 혼자 올라탄다.
문이 닫히는 틈으로 보이는 여자, 섬뜩한 표정을 짓고 있다.

23. 엘리베이터 안/밤

성호, 서 있다. 서늘한 느낌.. 엘리베이터가 어디론가 올라간다.

숫자들에 차례로 불이 들어온다. 어느 층인지 모를 곳에 멈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깜깜한 벽이다.
성호, 놀라서 닫힘 버튼을 누른다. 문이 닫힌다.
그런데 다시 자동으로 열린다. 이번에는 벽이 아니라 문이 나온다.
창백한 피부, 세련된 차림의 현수, 기다렸다는 듯이 성호 앞에 서 있다.

24. 사무실 안/밤

현수의 뒤를 따라 성호, 홀린 듯 문을 열고 들어간다.
유난히 환한 사무실이 보인다.
유난히 빛이 나는 얼굴로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성호를 돌아보는 사람들,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미소를 보낸다.
이내 일에 집중한다.
현수, 성호를 빈자리로 안내한다.
책상에는 이미 성호의 명함이 놓여 있다.
성호, 자신의 이름이 박힌 명함을 떨리는 손으로 집어서 본다.

현수이 빌딩 안에 우리가 일할 자리 하나 없을 리가 없잖아.
성호(혼란스런 눈으로 현수를 본다)
현수뭘 망설여. 니가 원하는 자리잖아.

현수 의자를 빼준다. 성호, 그 의자에 앉을까 말까 고민한다.
어쩐지 심장이 뛰고, 얼굴에 핏기가 없어지는 느낌이다.

현수난 후회하지 않아.
성호(슬픈 눈으로 현수를 보는)

성호, 뭔가를 결심한 듯 의자 위에 안는다.
처음엔 두려웠지만, 맞춘 것처럼 편안한 의자에 깊숙이 앉으며 편안해진다.
자신의 책상을 쓰다듬어 본다. 명함을 소중히 들여다본다.
만족스러우면서도 일말의 두려움이 묻은 눈으로 사무실 풍경을 본다.
자기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현수가 보인다. 그리고 창백한 사람들.
기묘한 느낌.. 성호, 창밖을 본다. 창문 너머로 다른 빌딩들을 본다.
불이 꺼진 빌딩들에 일제히 어느 층에만 불이 들어와 있다.
불 켜진 창문 너머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전화벨이 울린다. 성호, 핸드폰을 받는다.

민경(F)울먹이며) 장난이지? 장난친 거지?
성호...?
민경(F)왜 그런 문자를 보내고 그래. 설마 진짜 죽으려는 거 아니지?

성호, 갑자기 추위가 엄습한다. 멍하다.
지금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걸까. 어쩐지 입이 안 떨어진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뛴다. 창문 닫힌 사무실에서 성호의 머리카락이
센 바람에 휘날리듯 갑자기 헝클어진다. 심장이 탁 막히는 느낌.
성호, 겁에 질린 얼굴로 창밖을 바라본다.

민경(F)정말 빌딩 옥상이야? 농담이지? 농담 맞지?
너무 해. 왜 이렇게 사람을 놀래켜. 왜 그렇게 못났어, 진짜.

민경은 전화기에 대고 울먹이고,
그 위로 낯설고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낯설지만 이건 자신의 목소리가 틀림없다.

성호(F)축하해줘. 나 취직했어.

그 순간, 창밖의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
이제 막 옥상에서 뛰어내린 자기 자신이다.
그제야 성호의 머리에 피가 흥건해진다.
어쩐지 편안해지는 성호, 슬픈 미소를 짓는다.
눈물 그렁한 얼굴 위로 피가 드리워진다.
(F.O)


[2화] 이건 비밀인데, 난 좀비라네.

1. 콘도/낮

콘도 산책로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는 여자.
가까운 데서 들려오는 다수의 환호 소리에 깜짝 놀란다.
보면, 플랭카드 걸려 있는 건물. ‘**기업 사원 워크샵’

경민(os) 쉬시는데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내일이면 올라갑니다.
여자 아니요..

**기업이라고 적힌 워크샵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경민.
강아지, 경민을 보고 겁을 먹는다. 겁을 먹은 중에도 으르릉 거린다.
경민 강아지를 돌아보고 미소 짓고.
여자는 당황해서 강아지를 안는다. 강아지의 시선으로 경민 보이고.

(F.O)

2. F.I/ 콘도 회의실/낮

‘** 기업 사원 워크샵’ 플랭카드 아래 같은 옷을 입고 모여 있는 직원들.
그들 사이로 에너지 넘치는 진우가 보이고. 단합을 강조하는 구호들.

구호또 하나의 가족, 피보다 진한 우리는 한 가족.

사원들 따라하고, 진우도 따라 외친다.

3. 콘도 룸/밤

(인서트) 야경.

직원들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 369 게임을 하며 벌칙으로 술을 마신다.

(시간경과)
다들 취해 있다. 이제 게임은 진실 게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맥주병을 돌려 입구가 향하는 쪽에 앉은 사람이 폭탄주를 마시고
비밀을 고백하는 거다. 여직원 걸렸다.

여직원이건 비밀인데요.. 부분 가발을 하고 있어요.

직원들, 여직원의 머리에 시선 모이고.

여직원이번 프로젝트 때문에 야근하느라 원형 탈모 생겼단 말이에요.
남직원산재 처리해야겠다.
여직원수당도 얹어주면 좋고요.

(시간경과)
사람들 하나 둘 쓰러져 있고.
게임이 이어진다. 맥주병 돌아가고, 멈춘다. 경민이 걸렸다.

진우(눈치껏) 다들 취했는데 그만 하시죠.
경민.... (망설이는)
진우(경민 앞에 놓인 폭탄주를 원샷하며) 끝!입니다.
경민원칙대로 해야지.
진우(굳이 더 말릴 거 없다) 역시, 멋지십니다. 부장님.
경민(뜸 들이는)
진우(기다리는)
경민진짜 털어 놔도 되겠나.
진우걱정마세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란 거 말 안하겠습니다.
경민이건 진짜 비밀인데.. (술 한잔 털어 마시고 힘겹게 꺼내는) 난 좀비라네.
진우(마시던 술이 사래 걸린다)
경민(진지한 표정으로 술을 마신다)
진우아하.. 좀비족이시라구요?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니십니까?
무사안일주의가 아니라, 평화주의시잖아요.
경민(차분히) 진짜라네. 난 좀비야.
진우(농담 받아친다) 그럼 인육도 먹고 그러시나요? 부장님?
경민(정색을 하고) 자넨 좀비를 오해하고 있군.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라서 그래. 하긴 헐리우드 영화가
망쳐놓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말이야. 우리 좀비들을 그렇게
멋대로 해석하고 이용하는 건 맘에 들지 않아. 우리도 알고 보면
불쌍한 존재들이네. 사실, 좀비는 부두교를 믿던 사람들이 주술과 약물을
통해 죽은 자들을 살려내서 노예로 쓰던 것에서 유래가 있어.
쉽게 설명하면, 우린 살아있지도 죽지도 않은 완벽한 노예인 셈이지.

멍하니 듣고 있던 진우, 속으로 한마디.

진우(E)주사가 참으로 독특한 양반이네.
진우예예, 알겠습니다. 이제 정리할까요? 많이 마셨습니다, 저희.

진우, 술자리를 정리하려한다. 둘러보니, 다들 술에 취해 뻗어있고
이 웃기지도 않은 비밀을 혼자 듣고 있었다. 혼자 피식 웃는 진우,
문득 깜짝 놀란다. 경민의 손이 검푸른 색으로 변해 있다.
진우.. 설마 싶어 조심스럽게 경민의 팔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는데...
경민의 얼굴 멀쩡하다. 다시 한번 웃음이 나오는 진우.

경민아직도 못 믿는 얼굴이군. 그거 아나? 좀비는 원래 인육을 먹지 않아.
하지만 자네가 한 점 적선한다면 실험적으로 도전은 해 보고 싶네.

경민, 진우의 팔을 잡더니 살 냄새를 맡는다.
진우, 이 양반의 주사가 어디까질까 싶어 걱정스레 보는데.
경민, 진우의 팔을 덥썩 문다. 제법 아프다.
좀 짜증이 나서 팔을 빼고 경민의 얼굴을 보는데 얼굴이 굳는다.
부장의 얼굴이 좀비처럼 변해 있다. 기절하는 진우.

4. 콘도 룸-세면실/낮

진우, 잠에서 깬다. 꿈일까 생시일까. 이상한 꿈이다.
세수를 하다가 팔을 본다. 상처가 나 있다.
세면실 문이 열리고 거울 속으로 경민의 얼굴이 들어온다.
화들짝 놀라 휘청이는 진우.

진우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경민, 진우 옆으로 와서 세수를 한다.
그 경민의 얼굴을 찬찬히 보는 진우.

5. 빌딩 사무실/낮 (며칠 후)

근무를 하고 있는 진우.. 이상하게 팔목의 상처가 잘 안 낫는다.
부장님의 이빨 자국 그대로 계속 덧나고 있다.
설마, 그날 밤의 기억이 꿈이 아니라 실제였을까.

(인서트) 좀비로 변해 있던 경민이 진우의 팔을 문다.

진우(E)정말 이상한 꿈이었다.

6. 사무실/낮

진우의 훔쳐보는 시선으로 경민의 일과가 보여진다.
평온한 얼굴로 깔끔하게 회사 생활을 해 나가는 경민의 모습들.

진우(E)부장님은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않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분이다.
그러니까, 나의 이상형. (구호처럼) 또 하나의 가족, 피보다 진한 사원 가족.

7. 음식점/밤

회식 자리. 육회를 맛있게 먹고 있는 경민을 보는 진우.
진우는 어쩐지 입맛이 없다. 육회를 거의 안 먹고 채소만 골라 먹는다.

경민가족이 뭐라고 생각하나.
진우..
경민가족을 식구라고도 하지. 먹는 입, 식구. 가족은 먹는 입이 모인 거야.
마찬가지로 회사 역시 먹는 입들이 모여 어쨌든 살아보자는 곳이지.
진우..
경민많이 먹으란 소릴세. (육회를 진우 앞쪽에 놓아준다)

8. 노래방/밤

진우, 바른 자세로 앉아 탬버린을 치고 있다.
스테이지에 나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경민이 보인다.
조명에 따라 색이 변해가는 경민의 얼굴.
술에 취해 있는 경민은, 평소의 잰틀한 모습과는 달리 터프해 보인다.
노래를 부르는 중간 중간 폭탄주를 원샷하기도.
자꾸 뭔가를 물어뜯는 입모양을 허공에 대고 한다.
같이 있던 직원들 그런 경민을 따라하며 웃어댄다.
진우, 경민과 눈이 마주친다. 경민 허공을 또 물어뜯는다.
진우도 애매하게 웃으며 같은 입모양으로 화답한다.

9. 거리/ 밤

경민 만취 상태다. 진우가 택시를 잡아 준다.
경민을 택시에 태우는데, 경민이 진우까지 잡아 태운다.

10. 택시 안/밤

경민과 진우, 다정히 어깨동무를 하고 앉아 있다.

경민난, 자네가 좋네.
진우(불편하다)
경민자네와 난 특별한 사이야.
(진우의 상처 난 팔을 보며) 비밀을 공유한 사이. (미소 지으며 잠이 든다)
진우(E) 꿈이 아니었다.

진우, 어쩐지 소름이 끼친다.

11.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밤

경민을 부축해 서 있는 진우, 슬슬 겁이 난다.

진우부.. 부장님.. 그때 그 말씀은 농담이었지요? 그러니까.. 좀비..
경민(느리게 눈을 떠 진우를 본다)
진우(무섭다) 아.. 아니요. 제가 농.. 농담입니다.
경민(미소 짓는다)
진우(휴-)
경민(진우 귀에 대고 무슨 말을 하려는데 입이 잘 안 떨어진다)
진우네..? (귀 기울이는)
경민(힘들게 말한다) 604호.

진우, 괜히 긴장했다 싶은.. 자꾸 무너지려는 경민을 일으켜 세우는데
진우의 어깨 쪽에 기대어진 경민의 얼굴,
경민 하품을 하는데, 거울 속으로 얼핏 보던 진우
경민이 자신의 어깨를 물려는 줄 알고 깜짝 놀라서 경민을 놓친다.
바닥에 고꾸라지는 경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12. 아파트 안/ 경민의 집/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부장의 두 팔을 끌고 안으로 들이는 수진.

진우제가.. (경민을 부축하려는)
수진됐어요. 여기까지 끌고 오기도 힘들었을텐데.

혼자 힘으로 축 늘어진 경민을 끄는 수진.
바닥에 질질 끌려 침실로 들어가는 경민을 보고 서 있는 진우.
이마 돌아가려고 뒤돌아서는데.. 진우의 손을 잡는 수진.
진우, 놀라서 보는.

수진차라도 한잔 하고 가요.
진우아니요.. 늦어서..

진우, 돌아서 가려는데 수진 흐느낀다. 진우, 돌아보면

수진무서워서 그래요.
진우...?
수진혼자 있기 무섭단 말이에요.

때마침 밖에서는 빗줄기가 굵어지고.. 천둥 번개까지.
진우, 발이 묶인다.

(점프)
거실에 어색하게 앉아 있는 진우.

수진같이 사는 사람이 낯선 느낌 알아요?
진우(시선도 못 마주친다)
수진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존재감이 없어요. 이건 살아 있는 게 아니라구요... 무서워요.
진우사모님도 알고 계신 거에요?
수진(눈물 닦고 보는)
진우부장님이요.. 저도 무서워요.
수진무서워요. (자연스레 진우에게 안긴다)
진우(밀어내지 못하고) 어.. 언제부터 아셨어요?

13. 엘리베이터 안/밤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진우. 흐트러진 옷차림.
거울 속으로 자신을 보는 진우, 스스로 낯설다.

진우(E)뭔가 이상해지고 있다. 좀비에게 팔을 물린 이후로...

엘리베이터 거울에 고개를 기대고 눈을 감는 진우. 지쳐 보인다.
거울에 반사되는 진우의 얼굴, 서서히 검어진다.
눈도 어쩐지 빨갛게 충혈된 것 같다.

14. 옥탑방/밤

화면 가득 좀비의 충혈된 눈이 보인다. 괴기한 좀비의 모습들.
진우, 이불을 뒤집어쓰고 좀비 영화를 섭렵하고 있다.
방 안 가득 좀비 관련 비디오와 DVD 테입들. 창밖에는 천둥 번개.
화면에선 계속 등장하는 좀비들의 다양한 모습.

진우(E)어쩌면 나도 이미 좀비가 아닐까.

진우, 거울 앞에서 좀비 표정을 흉내내 본다.
경민이 배어 물려던 팔을 스스로 물어본다. 아프다.
밖에서 들려오는 천둥 번개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진우.

15. 몽타주/낮-밤

-진우, 육회를 먹어본다. 이상하게 더 맛있게 느껴진다.
-야근을 하고 있는 진우. 사실은 게임 중이다. (좀비 캐릭터 등장하는)
-업무상 접대를 하고 있는 진우. 폭탄주가 돌아간다. 과감히 마신다.
 허공에 대고 물어뜯는 입모양을 한다. 사람들 재밌어 한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지친 자신을 바라보는 진우. 무표정.
 거울 속의 모습 낯설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어진 것 같다.
 찬물을 틀어 세수를 한다. 다시 거울을 보는데.. 좀비가 되어 있다.
 비명을 지르는 진우.

16. 모텔 안/밤

악몽에서 깨어나는 진우. 식은땀 범벅이다.
옆에서 손을 뻗어 땀을 닦아주는 여자의 손, 수진이다.

수진악몽 꿨어? 진땀을 흘리네 아주. 보약이라도 한첩 먹어야겠다.
진우(아직도 악몽이 덜 가신 얼굴.. 물을 벌컥 마신다)
수진(웃으며) 혹시, 우리 그이 나온 꿈 꿨어?
진우(무표정하게 보는)
수진아직도 그 사람이 무서워?
진우사모님은 안 무서우세요?
수진무서우면 같이 못 살지.
진우(김샌다.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옷을 입는다)
수진벌써 가려구? (진우의 팔을 잡는다)

진우, 수진의 팔을 잡아 문다.
수진, 아파하지만 결국 좋다고 웃는다.
진우, 더 어이가 없다. 서둘러 옷을 입는다.

진우(E)좀비한테 물린 이후로, 모든 게 엉망이다.

수진먼저 가 그럼. 난 한숨 자고 갈래. (늘어진다)

17. 모텔 복도/밤

진우,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
보면, 옆 방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 경민이다.
두 사람 애매한 미소를 짓는다.

18. 엘리베이터 안/밤

모텔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치는 진우와 경민.
경민, 진우에게 다가와 와이셔츠의 단추를 잠궈준다.
진우, 숨을 못 쉬게 불편한..

경민어쩐지 우리가 닮아가는 것 같군. (진우의 넥타이까지 바로 잡아주는)
진우(불편하다) 제가 하겠습니다. (넥타이 느슨하게 푸는)

양쪽 거울에 겹겹이 비치는 진우와 경민의 모습.
진우의 시선으로, 거울 속으로 겹겹이 늘어서 있는 경민의 모습.
뒤로 갈 수록 얼굴이 어두워지고 눈이 충혈되고..
거울이 아니라, 바로 앞에 서 있는 경민의 얼굴 또한
좀비의 형태는 아니지만 충분히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준다.

경민내가 두려운가? 난 자네가 두려운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경민.
진우, 겁이 나지만 눈을 부릅뜨고 경민과 눈싸움을 한다.

진우(E)그와 난 다르다.

19. 옥탑방/밤

진우, 무언가를 찾아 방바닥에 늘어놓고 있다.
최종 면접 서류, 합격증, 사원증, 첫 월급내역서, 적금통장,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사진, 우수 사원 감사패 등등..
그것들을 모아 놓고 보니, 안심이 되는 얼굴이다.
그 옆으로 누워 잠을 청하는 진우. 기분 좋은 잠이 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내 눈이 떠진다. 불안이 엄습한다.
새벽이 밝는다.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진우(E)내가 좀비라는 증거도 없지만 좀비가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
나는 언제부터 좀비가 되어 있었을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면 수진이다.

(점프)
진우와 수진이 나란히 누워 있다.

수진자기, 이사할래? 우리 신혼집 알아보자.
진우(무표정하게 있다가 수진의 팔을 깨문다)
수진또야? 취향도 참..
진우난 좀비에요.
수진(웃는다) 자기가 좀비면 난 뭐할까? 처녀귀신?
진우(수진의 팔을 다시 깨문다)

수진, 간지러워하며 웃다가 점점 얼굴이 굳는다.
아프다. 진짜 아프다.
보면, 진우가 진짜로 수진의 팔을 깨물어 버린다. 피가 난다.
수진, 놀라서 뺨을 후려치고 가버린다.
피 묻은 입을 닦지도 않고 멍하니 앉아 있는 진우의 얼굴에서 F.O.

진우(E)난 언제부터 좀비였을까.

20. 지하철 안/낮

출근인파 속에 서 있는 진우.
손잡이를 잡고 있는데, 상처가 나아가는 팔이 보인다.

사람들 사이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린다.

여자(E)손목아지 비틀기 전에 안 치워? 집에 가서 니 마누라나 만져!

사람들 별로 동요하지도 않는다. 남의 나라 일처럼.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진우도 그들 속에 밀려 내린다.
그 인파 위로,

진우(E)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노예들..

21. 빌딩 앞/낮

빌딩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직원들 보인다.
진우, 들어가지 않고 얼마간 떨어진 위치에서 그들을 낯설게 보고 있다.

진우(E)정상인처럼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좀비들..

진우의 주관적인 시점으로, 양복을 입은 좀비 빌딩 안으로 들어간다.
그 뒤를 따라 들어가는 진우.

22. 몽타주/낮

진우의 회사 생활이 보여진다. 그리고 같은 직장인들의 모습들이 보인다.
그 모습들 중에 좀비가 된 채로,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섞여 있다.

진우(E)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이용당하고 있는 존재들.
성공이란 주문과 돈이란 약물에 의해 좀비가 되어 가는 사람들.

-사람들 가득한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다.
 진우와 좀비, 서로 연민의 눈 마주친다.
-어깨를 구부리고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좀비.
-점심시간, 발 디딜 틈 없이 왁자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어떤 좀비, 이를 쑤시고 있다.
-좀비의 얼굴을 한 경민, 흡연실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야근 중이다. 직원들 하나 같이 다 좀비가 되어 있다.
 그들 중에 좀비 모습을 한 경민과 유일하게 사람 모습을 한 진우가
 서로 눈을 마주친다. 경민과 진우, 아무 표정이 없다.
 어느 순간, 진우가 카메라를 돌아 본다.
 진우의 얼굴, 서서히 좀비가 되어 간다. 무표정에 차가운 미소가 깃든다.

23. 빌딩 앞/밤

간간히 불 켜진 빌딩. 야근을 마치고 나오는 진우가 보인다.
좀비가 아닌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진우, 지금 막 빠져 나온 빌딩을 돌아본다.
불 꺼진 빌딩에 어느 층만 불이 켜 있다.
그 층 사무실에 서 있는 성호와 빌딩 밖 진우가 서로를 쳐다보는 것 같다.

진우(돌아서서 걸어간다)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다.
하지만 달리 어떤 해결책도 없다. 오늘 퇴근해서 내일 출근할 뿐이다.

진우, 프레임 아웃된 데로 옥상에서 떨어지는 성호(1화 주인공).
(F.O)

24. F.I/ 콘도/ 밤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진실 게임이 이어진다.
진우는 바른생활맨처럼 보이는 신입사원에게 비밀을 고백한다.

진우이건 비밀인데, 난 좀비라네.

(F.O)


[3화] 비상구, 하차, 그리고 피크닉.

1. 은행 창구/낮

화면을 보고 앉아 있는 정만, 텅 빈 시선.
그 위로 키보드 두드리고, 프린트 되고.. 각종 소음들.
마지막에 ‘띵동’ - 은행에서 들리는 상담 순서를 알리는 신호음.

여(off)죄송합니다만, 고객님. 더 이상의 대출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정만부탁합니다.

보면, 대출 코너에 앉아 상담을 받고 있는 정만.

여직원(조금 고민하다가) 환율이 곧 안정될 거에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
고 기다려보시는 게 어떨까요. 송금액을 좀 줄이는 방법도..
정만부탁합니다.
여직원(할 수 없다, 졌다) 기러기 아버님들 대단하세요, 진짜.
저희 고객 가족 중에 포기하고 돌아오신 분들 많아요.
(서류 챙기며) 끝까지 약속 지키시려는 의지, 존경합니다.
(정만 앞으로 서류 내밀며) 삼천만원 마이너스 통장입니다.
표시한 데 기입해주세요.

정만, 서류를 받아들고 기입사항을 또박또박 적어가기 시작한다.
(F.O)

2. F.I/ 원룸/낮

잠들어 있는 얼굴. 무심히 눈을 뜬다.
시야에 들어오는 낮은 천장. 그리고 바로 눈 위에 붙은 가족사진.
복층에서 아래로 연결된 계단을 내려서는 파자마 아래로 나온 다리.
좁은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걸려 있는 커다란 가족사진.
그 위로 전화벨이 울린다. 받지 않자, 녹음 메시지로 연결된다.

아내(F)나에요. 보내 준 돈 잘 받았어요. 아이들은 잘 있어요. (사이)
당신도 많이 힘들죠? 미역국이라도 챙겨 먹어요. 오늘 생일이잖아요.

컵라면에 김치 한 가지로 아침 식사를 하는 정만.

아내(F)아이들이랑 다시 전화할께요. (끊는다)

빨래 다 됐다는 신호음 들리고.
양복을 입은 채 빨래 건조대에 빨래를 널고 있는 정만의 모습.
정만, 집을 나서고. 어둠 속에 남겨지는 좁고 고독한 공간.

3. 버스 정류장/낮

통근 버스에 오르고 있는 직장인들. 정만 마지막으로 버스에 오르고.

4. 버스 안/낮

자리에 앉아 있는 정만, 무심히 창밖을 보고 있다.
창밖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풍경들-다른 버스에 가득한, 운전 중인, 걷는..
정만의 시선, 사람 많은 버스에 힘겹게 서 있는 샐러리맨에게 고정된다.

정만(E)매일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던 가장이 있다..

신호에 걸려 멈추는 통근 버스와 정만의 시선을 잡고 있는 시내 버스.
버스 안에서 힘겹게 서 있는 샐러리맨, 열리는 버스 문을 보고 망설인다.

정만(E)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출근 길.. 중간에 버스에서 내린 뒤로..

버스에서 내려오는 샐러리맨의 발 느린 속도로 보여지고.
인도에 내려 선 샐러리맨을 뒤로 하고 떠나는 버스.

정만(E)사라져 버린다.

버스의 사이드 미러로 남자가 서 있던 사라에서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정만(E)난 매일 아침.. 그렇게 ‘하차’하는 꿈을 꾼다.

정만, 못 견디겠다는 듯이 일어나 버스 문을 두드린다.

정만(결연히) 이제 그만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버스 기사, 무심한 얼굴로 정만을 본다.

정만(조금 자신이 없어진 채 끝을 흐리는) 내리겠다구요..
기사다 왔어요.

통근 버스, 빌딩 입구로 다가가는 중이다. 회사 앞이다.

5. 빌딩 앞/낮

버스에서 힘없이 내려서는 정만.
아득한 시선으로 빌딩을 올려다본다.

6. 사무실 안/몽타주/낮

-사무실 정만의 자리. 영문 서류를 사전 검색하며 힘겹게 작성하고 있다.
-거래처 사람들과 협상을 하고 있는 정만.
-회의실. 젊은 직원이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고,
 정만은 커피를 마시며 집중하고 있다. (dis)
 빈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정만은 졸고 있다.

여직원(os) 팀장님!

 정만 눈을 뜨면, 사람들 회의실을 빠져 나가고 있다.
 젊은 여직원들 정만을 뒤돌아보며 키득거린다. 정만, 낭패다.

7. 복도/낮

좁게 열리는 창문, 담배 연기가 빠져나가고 있다.
정만, 담배꽁초를 모래 위에 비벼 끄고.
갑자기 혼자서 어딘가로 달려가는 포즈를 취해 본다.
정만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곳을 보면, 비상구 표시.
정만, 아예 비상구 표시등으로 다가가 바로 옆에서 그 동작을 취한다.
빛을 발하고 있는 비상구 표시등 속에서, 어딘가로 달려가는 동작의 남자.
비상구의 녹색 남자, 문득 차렷 자세로 바뀐다. (dis)
자연스레 차렷 자세의 남자 검은 색으로 바뀌고..

8. 화장실/낮

‘남자 화장실’ 문 앞에 매달린 그림 (차렷 자세 남자).

깨끗한 화장실 안. 유일하게 문 닫힌 칸막이 안.
정만이 좌변기에 앉아 있다. 미세하게 힘을 줬다 말았다.. 표정에 드러난다.
정만, 콧등에 침을 바른다. 다리가 저리다.
다시 힘을 준다. 성공할 듯... 집중하는데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실패.
정만, 고개를 빼서 문틈으로 밖을 본다.
주관적으로 점점 벌어지는 문틈 사이로 지나가는 피크닉 가방.

보면, 남자 화장실에 들어와 있는 청소부 아줌마.
파란색 유니폼과 어울리지 않게 왕골로 짠 피크닉 가방을 들고 있다.
가방을 열고 청소 도구를 꺼내서 세면기를 닦아가는 모습과
남자 화장실에 어울리지 않게 놓여 있는 피크닉 가방 위로,

정만(E)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노래 부르던 목소리 일그러진다)

잔뜩 힘을 주고 있는 정만의 얼굴.
얼굴이 빨개지는가 싶더니, 혈압이 오른다. 힘주는 걸 멈추고 숨을 고른다.

9. 사무실 안/밤

텅 빈 사무실에 불이 켜 있다.
파티션 안쪽에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정만.
보면, 뭔가 긁히는 소리. 책상 위에서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팔.
동전으로 복권을 긁고 있다. 벌써 몇 장 째 긁고 있다.
마땅히 될 리가 없다. 실망해서 동전과 복권을 내려놓는데..
동전,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굴러간다. 정만의 시선 따라간다.
바닥을 굴러 책장 밑으로 들어가 버리는 동전.
정만, 쭈그리고 앉아 책장 밑으로 손을 넣어본다. 안잡힌다.
동전을 꺼내려는 행동에 쓸데없이 몰입해 가는 정만.
무표정했던 하루 표정 중에서 가장 생기가 돈다.
정만, 책장을 아예 옆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동전이 깔린 책장을 옆으로 밀어놓는다. 동전 드러난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동전을 집는 정만의 시선, 어딘가에 고정된다.
책장이 있던 벽에 나 있는 자그마한 문. 그리고
그 위에서 유난히 형광 빛을 발하고 있는 ‘비상구’ 표시등.
정만, 자연스럽게 달려가는 동작을 취해본다.
가만히 문손잡이를 만져본다. 돌려본다. 돌아간다. 문 밀어본다. 열린다.
정만, 상체를 숙여 문 밖을 내다본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밝아지며 길다간 복도가 보인다.
정만, 문 밖으로 한발을 내디뎌 본다.

10. 복도/밤

정만 문 밖으로 나와 있다. 어딘가로 통해 있는 복도를 바라보고 서 있다.
갑자기 뒤에서 문 닫히는 소리. 정만 깜짝 놀라고.
뒤돌아 다시 문을 열려고 하지만, 이미 굳게 잠겨 있는 문.
정만,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다.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겨본다. 뒤에서 뭔가 인기척을 느낀다.
두렵지만 용기를 내 돌아본다.
길게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가 꺾이어 벽에 어른거리고 있다.

좁고 긴 복도, 비상구 표시등을 따라 걸어가는 정만.
문이 발견될 때마다 열려고 한다. 하지만 안 열린다.
유일하게 문손잡이가 돌아가는 문.. 연다.

11. 어떤 방/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내다보는 정만..
보면, 좁은 창고 같은 방에 웅크린 채로 잠들어 있는 청소부 아줌마들.
각각 피크닉 가방을 품에 안은 채로 누에처럼 잠들어 있다.
정만,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어 괜한 두려움마저 생긴다.
조심스럽게 문을 닫으려던 정만의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
보면, 청소부 아줌마의 몸에서 연결된 전선이 콘센트에 연결되어 있다.
다른 청소부 아줌마의 몸에도 전선들이 연결되어 있다.
잠들어 있던 아줌마 한명이 눈을 뜬다. 기계 같은 눈빛으로 정만을 본다.
정만, 놀라서 얼른 방문을 닫아버린다.

12. 복도-계단/밤

정만,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홀로 걸어가고 있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누군가 스윽 지나간다. 정만, 깜짝 놀란다. 하지만 곧 따라간다.

정만잠깐만요.

쫓아갔지만 다시 텅 빈 공간들. 정만, 계단을 내려간다.

정만(계단 아래로) 거기 누구 없어요?

아무런 답이 없다. 정만 창밖을 본다.
밖으로 보이는 빌딩, 한 층만 유일하게 불이 들어와 있다.
유령처럼 부유하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2화의 사무실)이 보이고.
정만, 시선을 돌리고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을 내려가는 정만의 시선에 무언가가 잡힌다.
계단 아래로 언뜻 언뜻 보이는 누군가의 등.
정만 조심스레 내려가다 보면, 청소부 아줌마가 등을 웅크리고 앉아 있다.
예의 피크닉 가방이 아줌마 옆에 놓여 있고..
청소부 아줌마 소리 없이 우는지 어깨가 들썩인다.

정만괜..찮으세요..?

아줌마의 어깨에 손을 내미는데.. 아줌마 돌아본다.
정만, 아줌마의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정만(입모양만) 엄마..

계단 아래서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정만은 그 학생을 알아본다. 자기 자신이다.
고등학생 자신과 엄마는 마치 정만이 안 보이듯 둘에게만 집중한다.

학생겨우 이러고 살려고 이혼했어?
엄마(눈물 그렁한) ...
학생(울부짖는다) 이런 꼴 보이려고 집 나갔냐구!

고등학생, 피크닉 가방을 발로 뻥- 차버린다.
계단을 굴러 떨어지는 가방. 쏟아지는 내용물들.
쑤세미, 락스, 솔.. 등의 청소도구 흩어져 있고.
먹다 남은 삼각 김밥과 두유 팩도 보인다.
고등학생, 아악- 소리를 지르며 계단을 내려가고.
엄마는 그대로 주저앉아 흐느낀다.
정만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이고.. 흩어진 물건들을 집어주기 시작하는데..
엄마가 먹다 남긴 삼각 김밥을 드는 손 떨린다.
울컥- 눈물이 나오는 정만. ‘엄마’ 부르며 돌아보는데..
텅 빈 계단. 엄마도 피크닉 가방도 다른 물건들도 없다.
정만의 손에 들린 삼각 김밥만 남아 있다. 멍한 정만..

(점프)
정만, 엄마가 앉아 있던 계단에 주저앉아 삼각 김밥을 먹고 있다.
한입 한입 천천히 먹는..

13. 엘리베이터 앞/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정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안에 들어 있는 사람 성호와 현수.
(1화 주인공. 두 사람 모두 세련된 차림에 자신감 가득한 얼굴)
정만과 눈이 마주친다. 정만, 반가운..

14. 엘리베이터 안/밤

나란히 서 있는 성호와 현수, 그 앞에 정만.
정만의 시선으로, 엘리베이터 층 번호들이 일제히 꺼져 있는 게 보인다.

정만(층 번호 누르며) 고장인가봐요?

성호와 현수, 정만을 보고 미소 짓는다.
엘리베이터 멈추고 문이 열린다. 성호와 현수, 내린다.
내리는 성호와 현수의 뒷모습을 보던 정만 얼어붙는다.
엘리베이터 닫히는 문 사이로 보이는 성호와 현수, 뒤통수에 피범벅이다.
엘리베이터 문 닫히고 올라간다. 정만 겁에 질려 있다.
엘리베이터 멈춘다. 문 열리고 누구 탄다. 2화 주인공 진우다.
정만, 두려운 시선으로 진우를 보지만 다행히 외상은 없이 멀쩡하다.
나란히 서 있는 진우와 정만. 정만.. 그래도 점차 두려워진다.
정만, 옆 시선으로 진우를 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와이셔츠 밖으로 나와 있는 손이 검푸스름하다.
정만 겁이 나서 차마 진우의 얼굴을 올려다보지 못한다.
엘리베이터 멈췄으나 문이 안 열린다. 정만, 다급히 열림 버튼만 눌러댄다.
안 열린다. 정만의 손을 덮는 진우의 검은 손.
정만, 놀라서 주저앉고.. 진우의 손, 열림 버튼 누른다.
문이 열린다. 정만 기다시피 엘리베이터를 나간다.

15. 사무실 안/낮

정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본다.
문틈 사이로, 좀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진우가 보인다.
한숨 돌리고 뒤를 돌아보는데, 어느 새 사무실 안이다.
다시 뒤를 돌아보면 엘리베이터 문 사라지고 사무실 책장만 보인다.
정만, 이제는 어지럽기까지 하다.
각자의 일로 분주한 사람들, 정만이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신경 안 쓴다.
정만의 어깨와 부딪히는 여자.

여자죄송합니다.

장난스럽게 정만을 보고 윙크하는 여자(지혜), 지나간다.
정만,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16. 회의실 안/낮

회의실 테이블에 페이퍼를 놓고 있는 지혜.
정만, 눈 앞에 지혜가 믿기지 않는 듯 바라보고 서 있다.

지혜(다정하게) 뭐해요. 얼른 앉으세요.

정만, 가까운 자리에 앉는다. 시선은 계속 지혜를 보고 있다.
지혜, 미소를 지으며 정만 옆에 안더니, 테이블 밑으로 정만의 손을 잡는다.
정만의 얼굴에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환한 미소가 지어진다.
정만, 애틋한 눈으로 지혜를 보는데... 회의실로 들어서는 직원들.
지혜, 자연스레 손을 빼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직원뭐야, 두 사람 너무 가까이 앉은 거 아냐?

직원들의 시선으로 보이는 정만과 지혜. 아랑곳하지 않는 지혜.
삼십대로 보이는 남자직원, 정만을 지나 지혜 옆에 가까이 앉는다.
정만과 삼십대 남자의 눈 팽팽히 부딪히고.
지혜의 손, 테이블 밑으로 정만의 손을 다시 잡는다.
정만, 그런 지혜의 손을 소중히 감싸 쥔다.

17. 계단/낮

농도 짙게 엉키는 남녀의 손. 지혜, 비밀스럽게 누군가와 포옹하고 있다.
계단을 내려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떨어지는 두 사람.
누군가는 정만이 아니라 씬16의 삼십대 남자이다.
계단을 내려서던 사람은 정만이다.
다시 보게 되는 고통스런 장면에 몹시 괴로운 얼굴이다.
삼십대 남자 난처한 표정으로 자리를 옮기고,
둘만 남은 지혜와 정만.
정만, 냉랭한 지혜를 보며 가슴이 아파서 말도 안 나온다.

지혜(담담하다) 곧 사직서 낼 거에요. (가려는)
정만(안타깝게 손을 잡는다)
지혜구질구질하게 이러지 마세요. 나 몇 주 더 회사 다녀야 돼.

18. 엘리베이터 안/낮

지혜, 엘리베이터에 타 있고 문 닫히려는데 다시 열린다.
정만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지혜, 불편하다. 멀찍이 떨어진다.

정만(낮은 목소리로) 하나만 물어보자.
지혜(시선 외면하고 있는)
정만왜 나는 아니고 그 인간은 됐어?
지혜사직서를 내고 못 내고의 차이랄까.
정만(고통스럽다)
지혜난 평생 일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김대리님과 산다면 사직서
따윈 절대 꿈도 못 꾸겠지. 그 사람은 본인 사직서도 맘 내키는 대로 쓸 수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눈물 그렁한)
정만그렇게 살면 행복할 것 같아?
지혜(가슴 아프지만 단호하게)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거, 그거 행복 아니에요. 나한텐 엘리베이터가 필요해요.

위로 올라가고 있는 화살표 표시.
문이 열리고 지혜 내린다. 정만, 절박하게 지혜의 손을 잡는다.
밖의 지혜의 손목을 잡은 안쪽 정만의 팔이 닫히려는 엘리베이터 문에
부딪히고 또 부딪히고를 반복한다.

정만(혼잣말처럼) 너만.. 너만 떠나지 않았어도..

지혜 눈물 그렁하고, 정만도 울고 싶다.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프다.
지혜, 팔을 거칠게 뿌리치고 가고.. 정만의 팔 떨궈지고.
엘리베이터 닫힌다.

정만(정신이 번쩍 든다. 닫힌 문을 두드리며 외친다) 지혜야, 너만 내 곁에 있어주면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나, 행복할 수 있어!

정만, 주저앉아 고개를 파묻고 괴로워한다.

19. 로비/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정만.

아내(off) 피곤해 보이네.

고개를 들면, 정만이 앉아 있는 곳은 로비로 바뀌어 있다.
정만 옆에 앉는 정만의 아내. 피크닉 가방을 들고 있다.

정만(놀라서) 당신, 언제 온 거야..

아내, 말없이 피크닉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 펼쳐 놓는다.

아내밥은 먹고 일해요? 좀 들어요.

정만, 아내를 보자 어쩐지 안심이 된다.
밥을 먹지만 입맛이 없다.

아내국물도 좀 떠요. (국그릇을 열면 미역국이다)
정만(미역국을 한 술 뜬다.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생일이라고 와줬구나..
아내(시선 돌리고 앞만 본다)
정만확실히 개운해, 고기 안 넣고 미역만 끓인 게 좋더라.

정만, 맛있게 미역국을 먹어 가는데, 그 위로..

아내(os)이혼해요.
정만(먹던 걸 놓고 한숨을 쉬는) 또 그 소리야?
아내(마치 따로 이야기하는 듯) 말 꺼내기까지 속으론 몇 번을 삼켰어요.
근데, 넘어가지 않고 자꾸 걸려요.

정만, 그제야 아내를 찬찬히 본다. 과거의 모습임을 알아간다.

아내살면서 당신 하잔 대로 다했어요. 이번만은 나 하잔 대로 해줘요.
정만(체념하듯 혼잣말처럼) 당신 하잔 대로 했어야 할까..
아내위자료 넉넉히 줘요. 나도 내 인생 좀 살아야겠어. 당신 고집 덕분에
맞벌이 안하고 고맙게 살아왔지만, 여기까지에요. 나도 숨 좀 쉬고
살아야겠어.
정만(고통스런) 그래서 숨이 쉬어지던가? (쓸쓸한 미소)
아내(정만을 이상하게 본다)
정만요즘은 나도 숨 좀 쉬고 싶어..
아내이상해요, 당신.
정만이상하지. 이건 꿈이니까. 현실보다 더 생생한 꿈. 걱정마. 곧 깨겠지..

정만, 지친다. 아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잠이 쏟아진다.
아내, 감정 없이 정물처럼 앉아 있다.

정만근데, 좀 천천히 깨도 될 것 같아. 여기도 무섭지만.. 깨는 것도 무섭거든.

스르륵 눈이 감기려는데.. 문득 정만의 시선으로 피크닉 가방이 보인다.

정만(얼굴 굳어진다. 고개 바로 하며) 저거 싫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아내(동문서답) 아이들은 내가 데리고 있을께요.
정만이혼은 안돼.
아내(비행기 티켓을 꺼내 놓는다) 아이들이랑 다녀올께요. 가서 자리 잡을 데
있나 좀 보고 올께요. 위자료 나 위해서 안써요.
정만이혼은 안돼!

20. 화장실 안/밤

피로가 쌓인 정만의 얼굴, 거푸 세수를 한다.
충혈된 눈을 꿈벅이다가 눈을 감고 눈 주변을 지압하는데..
눈을 뜨는데.. 거울 안으로 등 뒤 벽에 붙어 있는 ‘비상구’ 표시가 보인다.
정만, 서둘러 뒤돌아본다. 비상구 표시들 그대로 있다.
비상구 표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가 보는 정만.

21. 복도/낮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 있는 비상구를 따라 달려가는 정만.
긴 복도를 지나 어떤 문 앞에 도착한다.
처음 그 문이다. (씬10)
정만,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린다. 돌아간다. 문을 민다. 열린다.

22. 사무실 안/밤

문을 열고 빼곰히 고개를 내미는 정만의 얼굴 보인다.
씬9의 사무실 풍경 그대로다. 책장이 옆으로 밀려 있고..
파티션 마다 텅 빈 책상들.. 창백한 형광들 불빛들.
정만, 다시 사무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까 말까 망설인다.
앞으로 내디뎠던 발을 다시 문 밖으로 거둬들이는데.. 뭔가를 발견한다.
사무실 책상 밑으로 발이 보인다. 구두는 벗겨져 있다. 누군가 쓰러져 있다.
보면.. 정만의 구두와 정만의 발이다.
정만, 문득 자기의 발을 내려다본다. 구두 없이 한쪽 발은 맨발이다.
정만, 놀라서 얼른 이쪽으로 넘어온다.
정만, 책장 밑으로 가서 쓰러져 있는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쓰러진 정만의 몸이 축 늘어져 무겁다. 정만, 겁이 덜컥 난다.
정만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응급 구조를 한다.

정만(다급히)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F)다른 외상은 없구요?
정만그냥 쓰러져 있어요. 갑자기 쓰러져 있어요.
(F)호흡은요?
정만(쓰러져 있는 자신의 가슴에 귀를 기울인다) 모.. 모르겠어요.

정만, 당황해서 핸드폰을 놓친다.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F)이번에도 과로산가?

정만, 끔찍한 소리 말라는 듯이 핸드폰을 닫아버린다.
갑자기 생각난 듯 다시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전화 신호음이 이어지고, 연결된다. 영어로 메시지가 들린다.
정만의 아들과 딸이 영어로 메시지를 녹음해 놓은 것.

(F)영어로) 수정과 수현의 집입니다. 지금은 부재중이니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녹음으로 연결되는 기계음 이어지고.

정만(절실하게) 수정아, 수현아, 아빠야. 아빠.. (눈물이 난다)

정만 메시지 남기는 도중에 뜬금없이 영어 메시지 끼어들고..
정만은 핸드폰을 던져버린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초라하고 고된 몸을 본다.

정만(넋을 놓고 혼잣말)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어..

정만, 자신의 몸을 가만히 안아본다. 끝내 눈물이 터진다.
소리 없이 시작된 오열.. 점점 거세진다.
그 뒤로, 비상구 표시등 아래 문이 저절로 조용히 닫히고..
녹색 빛을 발하던 비상구 표시등.. 가만히 꺼진다.
암전.

23. 원룸/낮

어스름한 그늘 속에 텅 비어 있는 원룸.
건조대의 빨래 마른 채 그대로.. 빈 컵라면이 놓인 식탁.
그리고 가족사진. 그 위로 전화 녹음 메시지 들린다.

아이들(F) (영어 발음 굉장히 좋다) 해피버스 데이 투 유, 해피 버스데이 투 유~

(F.O)

24. F.I/ 통근 버스 안/낮

정만, 평화로운 얼굴로 통근 버스를 타고 있다.
버스가 신호에 걸려 멈춘다.
룸미러로 기사와 정만의 눈이 마주친다.
기사, 다 안다는 듯이 문을 열어준다.
정만, 버스 문을 향해 차분히 걸어간다.

25. 거리/낮

통근 버스에서 내려서는 정만의 발 보인다. 그렇게 ‘하차’한다.
정만을 남겨 두고 통근 버스는 달려가고.
정만은 한적한 길에 혼자 서 있다.
정만, 호흡을 가다듬은 뒤 한발 내 딛는다. 그렇게 걷는다.

26. 들/낮

자갈길을 걷는 정만의 발. 풀길을 걷는 정만의 발.
호숫가를 걷는 정만의 발.

그 위로, 정만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허밍 소리 들려온다.

정만, 꽃들이 펴있는 강변을 걷고 있다. 볕이 좋다.
저만치 잔디 위에는 피크닉 가방을 든 청소부 아줌마들이 보인다.
아줌마들의 피크닉 가방에서 샌드위치와 김밥을 꺼낸다.
아줌마들 가운데 엄마도 있다. 엄마가 손짓을 한다.
정만, 걸음마를 처음 하듯이 한발 한발 엄마에게 다가간다.

엄마의 무릎을 배고 누워 있는 정만. 미소가 번지고.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고 손을 흔들어 준다.
보면, 1화 2화에 등장했던 성호와 진우가 눈부신 햇살 아래
가벼운 걸음으로 산책을 하고 있다.

한편의 유화 같은 풍경.. 스틸. 바깥에 사각의 틀이 생기고...
카메라 점점 뒤로 빠지면, 빌딩 로비, 혹은 사무실에 걸린 유화.
카메라 점점 더 뒤로 빠지면서 빌딩, 거리, 도시,
분주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엔딩.


-The End-

 

 

 

 

 

 

 

 

 

 

 

 

 

 

 

 

 

 

 

 

 

 

 

 

 

 

 

 

 

 

 

첨부파일 황다은-도시괴담-rivertrue1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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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성공현 | 작성시간 13.07.26 감사합니다 잘볼께요 ^^!!
  • 작성자다반향초 | 작성시간 14.11.14 고맙습니다.
  • 작성자hollci | 작성시간 19.06.1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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