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춘] 진수완
S#1 프롤로그(아침)
암전 속. 어디선가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에 관한 방송이 지지직거리는 라디오 음향으로 작게 들리고 있다. 천천히 화면 F.I되면..
1979년... 얼음으로 표면이 완전히 덮여있는 호수 위.
그 위에서 썰매를 타고 있는 동네 꼬마아이 몇 명이 보인다.
까르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카메라 쪽을 향해 썰매를 달려오는 아이들.
너무 빨리 달린 탓에 썰매에 타고 있던 여자 아이 하나가 두 손을 얼음 바닥에 짚으며 앞으로 고꾸라진다. 그래도 재밌는지 깔깔깔 웃던 여자 아이, 어느 순간 뭔가를 발견한 듯 얼음 바닥을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순간 빠르게 떴다가 사라지는,
-(F.C) 풍덩! 큰 소리와 함께 커다란 거품을 내며 물 속으로 빠지는 박태식 선생의 이미지컷.
-(현재)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여자아이의 시선.
-(F.C) 물에 빠진 박선생의 시선으로 보이는 얼음 위.
교복 차림의 누군가의 모습이 호수 물결에 일렁거린다.
-(현재) 서서히 공포로 두 눈이 동그래지는 여자아이의 얼굴.
-(F.C) 박선생의 시선으로 보이는 텅 빈 얼음 위.
교복차림의 누군가가 얼음바닥 위에 뭔가를 줍고 있다.
-(현재) 함께 놀던 꼬마 아이들, 무슨 일인가 해서 여자아이 주변으로 몰려든다.
모두들 의아한 표정으로 여자아이의 시선이 향해있는 얼음바닥을 바라본다.
-호수 아래... 죽은 채로 꽁꽁 얼어붙어 있는 박선생의 얼굴에서 F.O
타이틀 '아름다운 청춘' 뜬다.
S#2 지태의 방(현재/새벽)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는 지태(30대 후반)
땀에 흠뻑 젖은 얼굴...악몽을 꾼 후의 거친 호흡...
시계를 보면 새벽 세시. 집요하게 울리고 있는 전화벨 소리.
지태 (땀에 젖은 얼굴 쓸어내리며 수화기 드는) 여보세요.네, 제가 한지탭니다.
(담배 꺼내 입에 물며) 누구시죠? (불 붙이려다가 멈칫 굳는, 담배 뽑아내리며)
방금...신영재씨 부인이라고 하셨습니까? (상대편에서 들려오는 어떤 대답에 한순 간 멍한 표정이 되며)
S#3 지태의 한옥집 마루(현재/새벽)
쏴아아---쏟아지고 있는 빗줄기.
지태, 마루 끝에 앉아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지태 (N) 20년 전... 호수에서 동사체로 발견된 박선생의 꿈을 꾸었던 그 날...
영재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S#4 지태의 다락방(현재/새벽)
낡은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어두운 다락방 안.
짐 상자 위에 손전등을 올려놓고 뭔가를 찾고 있는 지태의 모습.
낡은 졸업앨범을 찾아내는 지태... 손전등을 비춰 들고 한 장씩 넘겨보기 시작한다.
박선생을 중심으로 검정 교복을 입고 서있는 아이들의 단체사진...
그리고... 노란 공간 속으로 각각의 이름과 함께 하나씩 보여지는 얼굴들.
한지태...강준석..한강표...(각각 캐릭터에 맞는 표정들)
바라보며 어설픈 미소가 생기는 지태. 마침내 영재의 사진에서 멈추는 불빛...
울컥하는 심정이 되어 바라보는 지태.
그 모습 위로 음악 시작되면서,
S#5 논 길(아침)
1979년. 아직 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교복차림의 지태, 강표, 준석이 안개 속을 뛰어오고 있다.
강표 (뛰며, 헉헉대며) 몇분 남았냐? 가망 있겠냐?
지태 (숨 넘어가며) 말 시키지마 임마. 그냥 뛰어. 앞만 보고 뛰라구.
S#6 정류소 앞(아침)
시계를 보며 초조하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남학생들.
이미 만원이 된 버스 한 대가 정류소에 도착하면, 아이들 우루루 버스로 몰려든다.
그때 막 도착한 지태, 강표, 준석, 숨 고를 틈도 없이 그대로 버스로 달려든다.
차장 (밀어내며) 다음 차 타요! 다음 차!
강표 (사생결단으로 매달리며) 어우 씨, 이 차 못 타면 지각이란 말예요!
차장 (신경질 팍) 아, 글쎄 못 탄다니까! (확 밀어내고는) 오라잇!
(차 문 닫아버리고 출발시킨다)
어우 씨, 미치겠는 세 아이. 다시 모자 뒤집어 쓰고, 책가방 옆구리에 끼고는 죽기살기로 버스 옆을 달리기 시작한다.
같은 반 놈들 몇명이 버스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는 약을 올린다.
형철 야야, 니들 지금 장난하냐? 밤에 뭔짓을 했길래 그렇게 힘이 없썸마!
봉수 그렇취!!! 잘 한다! 달려!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
강표,준석 (달리며 약올라 미치겠는데)
지태 (달리는 채로 씩 웃으며) 야, 우리 저 새끼들 확 다 지각시켜 버릴까?
순간 눈빛을 교환하며 씩 웃는 세 아이, 갑자기 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버스 앞으로 달려간다. 버스 앞을 막아서서 달리는 세 아이.
운전기사 빵빵빵--- 클락숀 울려대고,
버스에 탄 아이들 창문으로 고개 빼 내밀고는 "야! 비켜! 안 비켜 니들!!" 소리쳐댄다.
영재 ... (맨 뒷좌석에 앉아 조용히 단어장을 보고 있다가 창문을 열고 달리는 아이들 을 바라본다) ... (가만히 가볍고 따뜻한 미소가 생기는)
낄낄낄 웃으며 버스 앞을 달리는 세아이의 모습 슬로우된다.
지태(N) (성인 지태) 그때 우리는... 우리의 피는...
열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그것처럼 뜨거웠다.
이제 막 시작된 청춘으로... 그리고... 알지 못할 누군가에 대한 살의로...
S#7 교실(아침)
화면 시작되면, 지태, 강표, 준석, 고개가 홱홱 돌아가도록 호되게 따귀를 맞고 있다.
살벌한 분위기.
박선생 (따귀를 갈기며) 지각은 이유를 불문하고 용서할 수 없다.
이렇게 썩어 빠진 정신으로 뭘 할 수 있겠나! 들어가!!
세아이 (꾸벅 인사하고 들어간다)
박선생 서형철, 박봉수, 나와!!
호명된 아이들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교탁 앞으로 나가는데,
자리 잡기도 전에 두 아이의 따귀가 돌아간다.
박선생 왜 맞았는지 알지?
형철 (억울하다) 모르겠습니다.
박선생 (다시 형철의 따귀를 때린다)
형철 정말 모르겠,
박선생 (다시 따귀를 때리려는데)
봉수 (얼른) 자,잘못했습니다!
박선생 뭘.
봉수 (차마 입이 안 떨어져서 입만 뻐끔거리는데)
박선생 (버럭) 뭘 잘못했냐고 묻잖아!!!!
봉수 (그 서슬에 기겁해서) 화,화,화장실에서 다,담배 피웠습니다.
박선생 니들이 양아치야!! 들어가(들어가는 아이들 출석부로 때리는)!!
형철 (돌아서서 씨, 눈 질끈 감으며 자리로 가다가 영재를 한번 매섭게 노려본다)
영재 ... (시선 피한 채 떨리는 손으로 수학문제를 풀고 있다)
박선생 (교탁 위에 풀어놓았던 손목시계를 차며) 앞으로 이유 없이 지각, 결석하는 놈들,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학교 다니기 싫으면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공장에 나가서 기계나 돌려라! 그게 국가나 사회를 위해서도 훨씬 좋은 일이다!
지태 (지겹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다)
박선생 세상이 좋아져서 니들 같은 돌대가리들도 쉽게쉽게 고등학교에 들어올 수 있었 지만, 사회는 학교와 다르다. 공부해서 남 주는 거 아니다. 다들 쓰레기같은 인간 이 되고 싶지 않으면 현재를 투자해라. 알겠나?
아이들 (고개 숙인 채로 씨....욕하고 있다)
박선생 알았나! (소리치는 데서)
아이들 (E)아아아아아아악-----! (기합소리)
S#8 운동장(낮)
교련복을 입은 아이들 아아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운동장을 뛰고 있다.
교련선생 기합소리 봐라 기합소리! 골대돌아 선착순 열명이다!
열명만 살아남고 낙오자들은 다시 운동장을 뛴다!
운동장 한바퀴를 돌고 라인으로 골인하는 아이들.
교련선생, 열 명까지만 스탠드로 들여 보내서 쉬게하고,
(지태,강표,준석 포함) 나머지는 계속 운동장을 뛰게 한다.
교련선생 (달리는 아이들을 향해) 두 번째 기회다! 다시 열명이다!
열명만 살아남고 낙오자들은 다시 운동장을 뛴다!
강표 (헉헉대며) 이런 씨(발), 도대체 학교를 다니는 거야 군대를 다니는 거야? 아침 부터 담임한테 터지고, 낮엔 뺑이 돌고, 염소라도 한 마리 끓여먹던가 해야지.
지태 (역시 헉헉대며) 야, 근데 담임은 우리 반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그렇게 훤히 알고 있는거냐 도대체.
준석 몰랐어? 우리 반에 쁘락지 한 마리 있잖아.
지태 쁘락지?
S#9 후미진 교정일각(낮)
영재가 구석으로 확 던져지고 있다.
영재, 쓰러진 채로 자신을 에워싸는 형철 일행을 노려본다.
형철 뭘 꼬나봐 새꺄! (발로 툭툭 치며) 억울해? 응? 억울해?
(발길질 거세지며) 너두 니가 왜 맞아야 되는 지 알 때 까지 맞아봐 새꺄!
이어 쏟아지는 발길질들.
형철(E) 고개 들어 새끼야! 누구한테 얻어터지는지 똑바로 봐둬야 또 선생한테 갖다 이 를꺼 아냐, 안 그래? 고개 들란 말이야 새끼야!
양팔로 얼굴을 가리고는 쏟아지는 발길질을 견대내는 영재.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다 황급히 담배꺼곤 밖을 내다보는 지태, 준석, 강표 뛰어 나간다.
이어 후다닥 달려와 말리는 지태.
지태 (형철을 뒤에서 붙잡으며) 야 임마, 너 미쳤어?
형철 (붙잡힌 채로) 놔! 이거 안놔? 저 쁘락지 새끼 내가 오늘 완전히 죽여버리고 말 꺼야!
지태 너 낼 아침 신문에 나고 싶어서 환장했냐? 애가 숨을 못쉬잖아 숨을!
형철 (잡힌 채로 버둥거리며 영재에게) 어쭈. 눈 깔어. 못 깔어 새끼야?
지태 (강표 준석에게) 야야. 얘 좀 끌구 가. 혼자 뭘 쳐 먹었는지 힘이 천하 장사다. 얼른 임마!
형철 (강표, 준석에게 끌려가면서도 길길이 날 뛰는)놔! 이거 안놔? 너 이 새끼 오늘 운 좋은 줄 알어! 담에 한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그땐 뼈두 못 추릴줄 알어!
알았어 새꺄?!! (끌려가면)
지태 (주머니에서 담배 꺼내 보곤) 에이 씨...다 구겨졌잖아.
(확 던지고 가려다가 문득 영재 쪽을 돌아보는)
영재 ... (허리 푹 꺾고 구석에 쳐박혀 하아...하아...괴로운 숨을 내쉬고 있다가 느껴지 는 시선에 상처투성이 얼굴을 들어 보는)
지태 ... (보며 어쩐지 안쓰러운)
영재 ... (하아..하아...괴로운 숨 쉬며 지태를 보는 위로)
지태 (N) 그때까지만 해도 난...영재와 담임과의 관계가 그저 모범생과 그를 편애하는 선 생...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꺼라고 생각했다.
S#10 박선생의 방(밤)
책상 위에 네 개의 돈봉투와 선물상자가 하나 놓여있다.
네 개의 돈봉투를 한데 모아서 책상서랍 속에 집어넣는 손. 박선생이다.
선물 하나를 끌러본다. 안에서 로렉스 시계가 나온다.
박선생 ... (표정 없이 보며)
S#11 과외방(밤)
네 명의 학생이 책상 앞에 앉아있다. 그 속에 영재의 모습도 보인다.
문이 열리면 아이들 자동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박선생 (아이들 앞에 와서 앉으며 학교에서와는 다른 친절한 모습) 어, 앉아. 앉아들.
아이들 (앉고)
박선생 (가방 열어 채점된 시험지 꺼내며) 저번에 제출한 숙제에 대한 첨삭지도다.
(한장씩 나눠주며) 동경대 입시 문제라 어려웠을텐데 잘들 했어.
영재 (받으려 손 내미는데)
박선생 (시험지 주며) 영재는 수업 끝나고 나 잠깐 보구 갈까?
영재 ... (멈칫 표정 어두워진다)
S#12 우동집(밤)
엽차잔을 놓고 마주 앉아있는 영재와 박선생.
영재 ... (엽차를 마시는 박선생의 손목에서 반짝이는 로렉스 시계에 시선이 머문다)
박선생 (느끼고, 웃으며 잔 내려놓고 약간 어색하게) 어머니한테 고맙다고 말씀드려라.
영재 ... (고개 숙인다)
박선생 (수학 시험지 한 장 꺼내 영재 앞으로 밀어준다)
영재 ... (본다)
박선생 다른 애들에 비해 니가 좀 딸리는 거 같아 특별히 준비한거다.
이번 기말고사 예상문제니까 한 문제도 남기지 말고 풀어봐.
영재 ... 감사합니다... (하며 시험지를 집으려는데)
박선생 (손으로 가만히 시험지를 누른다)
영재 ? (보면)
박선생 요즘 우리 반에 쓰레기 같은 도색잡지가 나돌고 있던데, 어떤 녀석이 공급천지 알고 있지?
영재 ... (시험지를 잡고 있던 손이 가만히 테이블 아래로 떨어진다)
S#13 낡은 창고 외경(밤)
(지태 일행이 아지트로 사용하는 곳이다)
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과 음악소리...웃음소리...
누군가의 뒷모습이 그곳을 바라보며 서있다.(영재다)
S#14 낡은 창고 안(밤)
난로 위에 라면이 끓고 있다.
강표와 준석 그 앞에 불 쬐고 앉아 도색잡지를 보며 키득거리고 있다.
낡은 전축 위에는 LP판이 돌아가고 있다.
지태 (앨범쟈켓 들고 서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흡족한 듯 미소짓는) 음, 역시 딜런이 형이야. (생각난 듯) 야, 한강표, 한강표 빨리 안 나오고 뭐해
(준석에게)강표 새끼 저기서 뭐하냐?
강표 (옷 추스르고 나오며) 야 숨 넘어 가겠다. 숨 넘어 가겠어.
지태 니 형한테 부탁 좀 해봤어?
강표 (도색 잡지 보며) 뭐. 어어. 밥딜런 음반? 거, 구하기가 힘들다던데?
지태 서울 명동 가면 빽판 구할 수 있다니까! 형한테 부탁하긴 한거야?
강표 (상관없이 준석이 보고 있는 잡지 뺏으며 거울쪽으로 가며) 야야야. 침 묻히지 말고 보랬지? 이거 낼 봉팔이한테 오백원에 팔 거란 말이야.
준석 히익! 뭐가 그렇게 비싸냐?
강표 (거울앞에 앉으며) 이 여자 가슴을 봐라. 보통 여자 두배잖냐.
(잡지 뒷 주머니에 넣으며) 그러니까 당연히 두배를 받아야짐 마!
지태 (강표 뒤쪽으로 다가와 잡지 뺏으며) 에라, 이 도둑놈아!
강표 일어나 지태에게 다시 잡지 뺏으려하고 재미있게 실갱이 벌이는 지태, 강표
준석 야야, 라면 끓는다 라면.
순간 우우우---! 좋아서 젓가락 들고 난로가로 몰려드는 아이들.
면발 싸움하며 킬킬대다가 문득 어떤 느낌에 창가 쪽을 보는 지태.
창가에 서서 안을 바라보며 서 있던 영재...
지태와 눈 마주치면 가만히 시선 거두고 돌아선다.
지태 라면 씹으며 시선은 창가에.
S#15 창고 밖(밤)
표정 가득 부러움을 담고 뒤 돌아선 영재... 천천히 걸어가는데.
지태 (나와 벽에 기대서며) 너 정말 쁘락지냐?
영재 (멈칫 돌아보면)
지태 (담배에 불 붙이며) 내일은 또 누가 밟히는 지 미리 좀 알 수 없냐?
영재 ...
지태 (씩 웃다가) 앗차차차!(과장되게 담배 뒤로 감추며) 내일은 내 차례겠다,
(울 듯이) 그치?
영재 ... (서글픈 감정으로 돌아서서 가는데)
지태 (O.L)(진지하게) 나라면 말이야, 다르게 사는 방법을 찾아보겠어.
영재 (선다)
지태 (영재쪽으로 다가오며) 권력에 빌붙어 살면 편하다는 건 알지만 말이다,
친구 안 팔아먹구두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잖아.
영재 ... (모멸감에 아랫입술 가만히 씹으며 그대로 가고)
지태 ... (보며)
S#16 학교 외경(아침)
S#17 교실(아침)
조회 전 소란스러운 교실. 영재 책상에 앉아 수학문제를 풀고 있다.
문득 지태 쪽을 돌아보는 영재.
만화책 보며 키득이고 있다가 어떤 느낌에 돌아보는 지태.
지태 (손가락으로 후우----담배 피는 시늉을 해 보인다)
영재 (시선 돌려버리고 다시 문제 푼다)
지태 (씩 웃고는 다시 만화책 본다)
영재, 머릿속 복잡하다. 연습장에 풀던 문제 볼펜으로 지지직 그어버리고는 마침내 불끈 자리에서 일어난다. 강표 자리로 가서 책상 위에 천원짜리 두 장 꺼내서 올려놓는 영재.
준석과 낄낄대며 짤짤이 하고 있던 강표, 벙찐 표정으로 영재를 올려다본다.
영재 살 수 있지?
아이들 ? (떠들다가 시선 집중되고)
영재 살 수 있냐고 묻잖아?
지태 ? (만화책 읽다가 돌아본다)
강표 (허, 요놈 봐라?) 몇권이나.
영재 니가 가진 거 전부 다.
강표 (피식 웃고는 서랍에서 서너권의 도색잡지를 꺼내서 주고는 책상 위에 돈을 가 져가려는데)
영재 (그 손 막는다) 서랍 밑에 숨겨 놓은 것두 전부 다.
허, 웃고는 책상을 바닥에 뒤집는 강표.
책상 밑에 비닐로 둘둘 싸서 테입으로 붙여놓은 잡지 몇권이 숨겨져 있다.
강표 (떼내서 주며) 조심해라. 이게 무지하게 쎈거거든.
초보자한테는 해로울 수 있으니까 보기 전에 반드시 우황청심환을, (하는데)
영재 (잡지를 낚아채 들고는 몽땅 난로 속에 집어넣어 버리고 자기자리로)
준석 (입 떡 벌어지며) 야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뛰쳐나오며) 안 볼꺼면 나나 주지! 태우긴 왜 태워! (난로로 후다닥 달려가는데)
박선생 (문벌컥 열고 들어온다)
아이들 (후다닥 자리로 가서 앉는다)
박선생 (시계 풀러 교탁 위에 놓고 앞으로 나오면서) 한강표 일어나!
강표 ? (자리에서 일어난다)
박선생 (다가와 강표의 따귀를 때린다) 왜 맞았는지 알지?
강표 (맞은 뺨을 부여잡고는) 모, 모르겠습니다.
박선생 몰라? (다시 따귀를 때린다)
강표 (휘청이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박선생 (아이들을 향해 돌아서서) 분명히 말해두지만, 니들의 추잡한 행동은 내 눈에 다 읽힌다. 앞으로는 교실 바닥에도 눈이 있고, 교실 벽에도 귀가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해라. 알았어! (하고는 강표를 향해 돌아서서는) 뭘 잘못했는지 몰라?
뭘 잘못했는지 니 눈으로 확인해봐!
하며 강표의 책상을 발로 콱 차서 넘어뜨린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엎어진 책상의 밑바닥을 확인하는 선생.
아무 것도 없자 얼굴이 굳는다.
아이들 (쿡, 터지려는 웃음을 입으로 막고)
박선생 !!! (매서운 눈빛으로 아이들 봤다가 영재를 본다)
영재 ... (떨리는 눈빛으로 책상 끝만 바라보며 앉아있다)
강표 ! (상황 파악하고는 환해져서 영재를 보고)
지태 (영재와 박선생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위로)
지태 (N)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의 권위가, 가장 믿었던 측근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을 보 는 것은... 생각보다 통쾌하고 짜릿했다...
S#18 세면대(낮)
영재, 채 풀리지 않은 공포와 긴장을 찬물로 진정시키려는 듯, 어푸어푸! 세수하고 있다.
잠시 세면대 짚고 서서 숨 고르는데.
지태 (E) 왜 그랬냐?
영재 ?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올려다본다)
지태 (세면대 위에 쪼그리고 앉아 영재 내려다보며 사과 씹고 있다)아까 왜 그랬냐고.
영재 ... (보다가 수도꼭지 잠그며) 니들처럼 한번 살아보구 싶어서.
지태 ? (씹는 거 멈추며)
영재 어디에 붙어야 안전할까, 누구 편에 붙어야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잔머리 굴리지 않고 한번 살아보구 싶어서. (가고)
지태 ... (보며 피식 웃는다. 제법 맘에 든다)
S#19 호숫가길(저녁 무렵)
하교길. 여전히 혼자인 영재, 단어장 들고 외우며 걸어오고 있다
문득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에 호수 쪽을 돌아보는 영재.
호수 위. 밝은 표정의 지태, 강표, 준석, 교복 웃옷을 벗고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축구를 하고 있다.
영재 ...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돌아서는데)
지태 (E) 어이, 신영재!
영재 ...? (본다)
지태 (달린 후에 거친 호흡으로 축구공을 발끝으로 툭 차서 손에 잡고는 밝게) 한판 할래?
영재 ... (보며)
지태 저 호수 말야, 다 꽁꽁 얼어서 안전해 보이지만, 어느 한 곳은 꼭 낚시꾼들 때문 에 뚫려있거든? 근데, 어디로 가야 안전할지, 어느 길이 더 편할 지 따지다 보면 경기는 재미없어져.
영재 ... (의미 알겠고)
지태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겠냐? 자기 혼자 안전하게 살자구, 친구두...살아가 는 재미두... 모두 버린다는 건, 사람 할 짓이 아니잖아. 안 그래?
영재 ...(보고)
지태 (그답게 씩 웃는다)
S#20 과외방(저녁)
책상 위에 주인 없이 놓여있는 한 장의 수학 프린트물.
세명의 아이들 문제를 풀다 힐끔 박선생의 눈치를 본다.
박선생, 굳은 표정으로 영재 빈자리를 보고 있다.
S#21 얼음호수 위 (저녁)
교복 웃옷을 벗어 던지고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
건강한 땀과 청량한 웃음... 얼음 바닥에 미끄러지기도 하고, 서로 공을 뺏으려고 등에 올라타기도 하고, 몸싸움도 하면서 환하게 아이들.
그 속에 땀에 흠뻑 젖은 채로 공을 차고 있는 영재의 모습이 보인다.
처음으로 보는 영재의 환한 웃음.
S#22 낡은 창고(밤)
난로 위에 놓인 냄비 속에서 끓고있는 작은 정종병...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낡은 군용 담요를 덮어쓰고 앉아 라면을 먹고 있는 영재, 지태, 강표,준석. 입에 젓가락 물고 끓고있는 정종병을 들고 오는 강표. '몸 녹이는 덴 이게 최고'라며 한잔씩 잔에 따라준다. 단숨에 비우고는 크---! 입맛을 다시는 아이들.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셔보더니 단숨에 잔을 비우는 영재.
차식, 제법인데, 영재의 머리를 헝크러트리며 웃는 아이들.
아직은 조금 어색해하던 영재, 처음으로 편하게 활짝 웃는 모습에서,
S#23 강가(현재/낮)
바람소리... 검정 상복을 입은 지태가 저만치 서있는 상복차림의 여인(영재의 처)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원경으로 보여진다.
지태에게 포장된 무언가를 건네는 영재처. 지태에게 몇 마디를 건네고는 먼저 조용히 자리를 뜬다. 혼자 남은 지태, 벤치에 앉아 영재처가 건네준 물건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포장에는 '한지태 앞'이라는 글자와 '신영재'라는 이름이 또박또박 적혀있다.
천천히 포장을 뜯어보는 지태, 멈칫 한다. 벗겨진 포장에서 나오는 낡은 밥딜런의 LP판.
지태 ...! (보며 울컥하는 심정이 되는 위로)
지태 (E) (18세의)(흥분된) 이거 밥딜런 원판이잖아!!!
S#24 낡은 창고(밤)
지태, 영재에게 받은 LP를 들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상태다.
지태 진짜야? 진짜 이거 나 주는 거야? 진짜? 진짜?
영재 그렇게 좋냐? 난 뭐 그 사람 노래 심심하구 밋밋해서 별루던데.
지태 무슨 소리야. 이 사람 노랜 가사가 예술이야.
영재 (웃으며) 어떻게 예술인데?
지태 진실을 알구, 불합리와 불의에 저항할 줄 아는 가수지.
강하진 않지만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
멋지지 않냐? 나두 한평생을 그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거 아니냐.
영재 (그런 지태 싫지 않아 웃고)
지태 (표정 확 구기며) 뭐냐 그 웃음은? 비웃는 거야 지금?
영재 (과장되게) 아아아니.
(어깨 척 걸며 장난스럽게) 넌 분명히 그렇게 살 수 있을꺼야.
지태 (역시 어깨 척 걸며) 차식, 사람 보는 눈은 있어가지구.
영재 (못말리겠다는 지태 머리 마구 헝크러트리며 웃는다)
S#25 창고 외경(밤)
창고에서 새어나오는 따뜻한 불빛...웃음소리....
앨범 쟈켓의 가사를 읽으며 노래를 따라부르는 영재와 지태의 모습이 창문을 통해 보인다. 따라 부르다가 틀리면 서로 머리 쥐어박기도 하고, 다시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르는...
두 아이의 따뜻한 풍경에서...
S#26 교정일각(낮)
장난치며 걸어가고 있는 교련복 차림의 지태,영재,강표,준석.
웃으며 고개 돌리다가 맞은 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박선생을 발견하고 멈칫 굳는 영재.
아이들 (인사하며 지나가고)
영재 (인사하고 지나가는데)
박선생 (영재 옆을 지나가며 흘리듯) 쓰레기 속에 있으면 너두 쓰레기가 된다.
영재 ... (겁먹은 듯 경직된다)
강표 (E) 정신 순화 교육?
S#27 체육관 혹은 운동장일각(낮)
교련복 입은 아이들, 여기저기 모여 앉아 훈련용 총을 닦으며 순화교육에 대해서 떠들고 있다.
강표 그게 뭔데?
준석 뭐긴 뭐야. 선생 말 안 듣는 새끼들 데려다가 까라면 까고, 구르라면 구르는 똥 개 만드는 데지.
강표 이런 씨, 그건 학교에서두 맨 날 하는 거잖아! 뭘 선발씩이나 해서 따루 훈련기 관까지 보내구 그러냐?
지태 그거랑은 차원이 다르지. (총 겨냥해 보이며) 여기서 하는 일인데.
아이들 ! (본다)
준석 하긴...작년에 갔다온 선배들 얘기 들어보니까 거기 인간이 갈 데가 못된다더라. 낮엔 신체 훈련이랍시고 뛰고 구르고, 밤엔 순화교육이랍시고 사람 잠도 안 재우 고, 군대랑 다를 바 없대. 거기 갔다온 선배들 완전 폐인 되서 왔잖아.
강표 이런 씨(발), 학생을 군인한테 팔아먹는 다는 게 선생들이 할 짓이야?
학생 팔아먹고 따뜻한 난로가에서 월급은 꼬박꼬박 챙겨 먹을 꺼 아니야!
준석 (기겁해서 얼른 입 막으며 작게) 얌마. 입 조심해. 지금이 어느 때라구 입을 함부 루 놀려. 그러다 니가 순화교육 가는 수가 있다?
강표 ! (움찔한다)
준석 다른 때 보다 더 조심해야 돼 임마. 담임이 맨날 하는 말 못들었냐?
벽에도 귀가 있고, 바닥에도 눈이 있다구 생각하구 행동하랬잖아.
강표 (얼른 주위를 살펴보고)
지태 (피식 웃는)
S#28 화장실 안(낮)
지태, 화장실 들어오는데 막 나오던 누군가와 어깨를 호되게 부딪힌다.
(남학생은 일부로 부딪힌 것이다)
지태 쓰으....(아파서 어깨를 손으로 문지르다가 문득 바닥에 떨어져있는 유인물 뭉치 를 발견한다)
줏어들고 보면 남학생은 벌써 가고 없다.
슬쩍 유인물 뭉치에서 한 장을 꺼내 읽어보는 지태.
순간 얼굴에 점차 놀라움과 긴장이 번지기 시작한다.
박선생 (E) 정신순화교육에 대해서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을꺼다.
S#29 교실(낮)
박선생 종례 중이다.
박선생 우리 반은 앞으로 일주일 후에 순화교육 대상자를 정하겠다. 지금까지 너희들의 실수나 교칙 위반은 모두 잊고, 개과천선할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다.
지태 (생각에 잠긴 얼굴로 손을 든다) 선생님.
박선생 (보고는) 뭐야.
지태 (일어나서 조심스럽게) 저....제가 알기로는 순화교육 대상자들은 이미 정해져서 문공부에 보고서를 올렸다고 하던데...사실입니까?
아이들 !! (순간 웅성이기 시작하고)
지태 이미 대상자가 정해진 상황에서 일주일간의 시간은 뭘 의미하는 겁니까?
(조심스럽게) 이를테면...알아서 기는 시간입니까?
박선생 개과천선할 기회라고 말했다.
지태 그럼 그 기간 동안 모두 순한 양처럼 잘 지내면, 저희 반은 아무두 순화교육을 안 가두 되는 건가요?
박선생 위에서 내려온 일이다. 학교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알도록!
(나갈려고 한다.)
지태 그럼 저희 반두 미리 명단을 알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박선생 (나가다 돌아서서 심사가 뒤틀리는 듯 지태보는)
지태 순화교육을 택하던지, 그게 싫다면 전학을 가던지,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셨으 면 합니다. 우리 인생이 걸린 문젠데 우리두 진실을 알 권리가,
박선생 (O.L)(앞으로 다가오며 버럭 터지며) 지금 니가 나를 가르치는 거야!!
지태 !!! (놀라고)
박선생 순화교육이란 바로 너 같은 놈들을 똑바로 교정시켜주는 교육이다.
뭐? 진실을 알 권리? 진실은 질서를 만드는 한 사람만 알면 된다!
그게 바로 나다! 니들은 만들어진 질서에 따르기만 하면 돼.
(출석부 들고 나간다)
아이들 (웅성이기 시작하고)
영재 (걱정스럽게 지태를 보면)
지태 (굳은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해보고 있다)
S#30 낡은 창고 안(밤)
어두운 창고 안에 손전등 불빛이 흔들리고 있다.
지태, 창고 구석에 놓여있는 낡은 박스 속에 숨겨놓은 뭔가를 찾고 있다.
낮에 줏은 유인물 뭉치다.
손전등을 비춰보면, '정신 순화 교육을 반대하며'라는 제목으로 글이 적혀있다.
긴장된 표정으로 유인물을 바라보는 지태.
지태 (N) 그건... 숨막히는 공포이자, 가슴 설레는 저항이었다.
S#31 교실(낮)
칠판에는 '교련-- 조용히 자습할 것'이라고 써있고.
창밖을 바라보며 시간 때우고 있는 교련선생.
아이들, 쥐죽은 듯 자습하고 있지만 어쩐지 긴장감이 돈다.
분단별로 누군가에서부터 시작된 종이 한 장이 책상 밑으로 돌고 있다.
마침내 강표와 준석의 자리까지 전달되는 종이.
강표 ...? (받아서 책상 밑으로 숨겨 읽어보고는) ...! (선생 눈치 살피며 몰래 서명을 하고 엎드려 자고 있는 준석에게 깨운다)
준석 (준석 일어나며 받으려고 손대는 순간)
교련 거기 둘! 그거 들고 이리 나와.
강표,준석 ! (헉! 고개 번쩍 들고)
지태 ! (눈 질끈 감는 데서)
S#32 운동장(낮)
엎드려 뻗쳐하고 있는 지태네 반 아이들.
교련 (무섭게 화난) 이 자식들이 겁도 없이 서명운동을 해?
(한명을 발로 차서 도미노처럼 무너뜨린다) 니들이 빨갱이야 새꺄! 원 위치!
아이들 (군인들처럼 우루루 일어나 다시 엎드려 뻗쳐한다)
교련 이 자식들이 학교 망신을 시켜두 유분수지. 뭐? 문교부에 탄원서를 올려?
문교부가 니들 놀이턴줄 알어?
(다시 발로 차서 무너뜨리고는) 주동자 누구야? 주동자가 누구야!
지태 (긴장과 공포로 눈 질끈 감는)
S#33 학교 외경(밤)
불꺼진 교사... 지태의 교실에만 불이 켜져있다.
S#34 교실(밤)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 꿇고 앉아있는 아이들.
강표와 준석은 박선생 앞에서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다.
이를 악물고 버텨내고 있는 두 아이.
박선생 (어디까지나 점잖은 말투로) 한 사람이 짊어지면 될 몫을 굳이 여러 사람이 나눠 질 필요는 없다. 그건 의리도 민주주의도 아닌 불합리다.
(강표 준석 보며) 일어나.
강표,준석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일어난다)
박선생 니들 스스로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꼬임에 넘어갔겠지.
(강표을 쳐다보며) 주동자가 누구야.
강표 (수도 없이 되풀이 한 말이다. 울 듯이) 정말 모릅니다.
박선생 (준석을 쳐다본다)
준석 저두 정말 모릅니다. 얼마 전부터 책상 서랍 속에 이상한 유인물이 들어 있었구, 오늘은 서명용지가 돌길래,
박선생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자르고는 아이들을 향해) 약속대로 이틀 후에 우리반 순화교육 대상자를 정하겠다. (손에 서명용지 들어 보이며) 여기에 적힌 이름들 은 유용한 참고자료로 쓰겠다.(나가고)
아이들 (웅성이기 시작하고)
지태 (미칠 지경이다)
S#35 라면집(밤)
아무 말 없이 고개 숙인 채 앉아있는 강표,준석,지태,영재.
테이블 위에 놓인 라면이 하얀 김을 내며 식어가고 있다.
준석 (침묵 깨고 눈치보며) 순화 교육...우리가 가겠지?
강표 ...
준석 미리 전학이라도 가야 될까?
강표 ... (힘없이 가방 들고 일어나며) 나 먼저 간다. (나가고)
준석 강표야. 한강표. (따라 나간다)
영재 ... (두 아이 보며 차마 붙잡지 못하고 안타까운데)
지태 ...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 치솟는 느낌이다.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 치고는 벌떡 일어난다)
영재 !! (놀라서 보며) 왜 그래? 어디 가게?
지태 (눈빛 살아서) 교무실. (나가고)
영재 (기겁하며 지태 가방 챙겨들고 ?아나간다)
S#36 학교 앞 거리(밤)
눈빛 살아서 걸어오고 있는 지태이고 그 뒤를 따라오는 영재.
영재 너 미쳤어? 지금 이 시간에 교무실은 왜 가! 뭐 하러 가!
지태 명단 빼돌려서 전교에 뿌릴꺼야.
끌려가기 전에 차라리 단체루 전학을 가게 만들거라구.
영재 (확 돌려세우며)미쳤어 임마! 들키면 순화 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퇴학이야 퇴학!
지태 (터지며) 그럼 넌 강표나 준석이가 순화교육에 끌려가두 좋단 말이야?
내가 끌려가게 되두 좋냐구!!
영재 아직 확실한 건 아니잖아!
지태 확실하면 늦어! (간다)
영재 알구 난 후에 전학 가두 늦지 않아!
지태 순화교육 갈 뻔했던 놈이라고 찍힌 후에 전학이 무슨 소용이야!
영재 한지태!
지태 (돌아서며) 우리 인생 볼모루 잡아놓구 사람을 개취급 하는데 보구만 있어?
언제까지야?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어야 되냐구!! (소리치는데)
영재 한지태!
박선생 (E) 뭐야 거기!
지태,영재 !! (돌아보고)
박선생 (늦은 퇴근길이다) 누구야 이 시간에!
순간, 하얗게 질리는 영재, 지태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한다.
가로등 불빛 속에 잠깐 지태와 영재의 모습이 보인다.
박선생, 어떤 느낌에 학교 쪽을 돌아본다.
S#37 낡은 창고 안(밤)
문 벌컥 열리고 들어오는 지태와 영재.
지태 (눈에 띄는 아무거나 발로 걷어차며) 아악!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머리 감싸쥐고 앉아버린다)
영재 (놀라서 멍한 채로) 지태야...?
지태 (머리 감싸쥔 채로) 나야.
영재 뭐?
지태 (괴로운) 우리반에 유인물 뿌린 놈이 나라구.
영재 ! (하얗게 질리는 데서)
S#38 교무실 앞 복도(밤)
어둠 속. 달빛만 들어오는 텅빈 복도.
교무실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박선생, 멈칫 선다.
교무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손전등 불빛)...
눈빛 매서워지며 교무실 뒷문으로 가는 박선생.
S#38-1 교무실 안(밤)
뒷문 확 열리고 들어서는 박선생.
손전등을 들고 뭔가를 뒤적이고 있다가 헉! 놀라 박선생쪽을 돌아보는 두명의 사람 형체. 튀어! 소리와 함께 교무실을 잽싸게 튀어나간다. 곧바로 쫓아나가는 박선생.
S#39 교사 앞(밤)
어둠 속을 뛰어가는 두명의 형체, 교문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간다.
뒤이어 교사에서 나오는 박선생, 더는 못 뛰겠는지 벽을 붙잡고 헉헉 가픈 숨을 몰아쉰다. 교문 밖으로 빠져나가는 두명의 형체를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는 박선생.
S#40 낡은 창고 안(밤)
지태, 한 손 이마에 붙이고 벽에 기대 앉아있고,
영재 그런 지태를 보며 걱정스러운데,
벌컥 문 열리고 들어서는 강표와 준석.
공포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헉헉대며 서있는 두 아이.
영재,지태 ?(보고)
준석 (공포로 멍한) 드...드...들켰어.
영재,지태 ?
준석 (멍한 채로 두서 없이 더듬더듬) 미리 좀 보자구... 그, 그럼 마음의 준비나 할 수 있을 꺼라구.... 강표가 망을 좀 봐달라구 해서.
영재,지태 ! (강표를 보면)
강표 (이씨...주먹으로 벽을 쾅 치고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지태 ! (하얗게 질리는 데서)
S#41 교무실(밤)
서류들 따위로 난장판이 된 박선생의 책상.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박선생.
S#42 낡은 창고 안(밤)
준석 ... (고개 숙인 채로 넋을 놓고 앉아있고)
강표 ... (눈 감은 채로 벽에 머리 기대고 서있고)
지태 ...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이고)
영재 ... (그런 아이들을 보며 심난한)
무거운 침묵... 그런 네 아이의 구도에서... F.O
S#43 학교 외경(아침)
박선생 (E) 어제 밤, 학교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S#44 교실(아침)
박선생, 교실 앞을 왔다갔다하며 취조하듯 조회를 하고 있다.
박선생 어젯밤 교무실을 습격 당했는데, 재밌는 건 내 책상만 털렸다는 사실이다.
그건 곧 우리반 놈의 소행이라는 건데...(걸음 딱 멈추고 아이들을 본다)
강표 ... (바싹 긴장되어 있고)
준석 ... (고개 숙인 채 겁에 질린 표정이고)
지태 ... (될 대로 되라 싶은 심정인데)
박선생 서명운동 주동자와 어제 교무실을 습격한 놈. 이 자리에서 솔직히 자백하면 처벌 을 가벼이 해주겠다. 이 기회를 놓치면 그 다음 일은 나두 책임지지 못한다.
반아이들 ...... (숨막히는 침묵과 공포)
박선생 없다 이거지...? 좋아. (출석부 챙기며) 신영재.
영재 ! (고개 번쩍 들고)
박선생 잠깐 나 좀 볼까? (나가고)
세아이 ! (겁에 질린 표정으로 영재를 보고)
영재 ! (눈 앞이 아득해진다)
S#45 상담실(낮)
박선생과 영재가 찻잔을 마주보고 앉아있다.
박선생 (찻잔 영재 쪽으로 밀어주며 웃는) 오랜만이다. 신영재.
오랜만에 니 도움이 필요한데...물론 도와주겠지?
영재 저,저는...아무 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박선생 (녹차의 티백을 컵 속에 집어넣었다 뺐다 하며) 학생이 교무실을 털었다.
그건 민간인이 부대로 쳐들어 와서 국가 기밀을 빼낸 것과 똑같은 일이지.
(보며 강조)이건 퇴학감이다.
영재 (고개 숙인 채로 움찔한다)
박선생 (자리에서 일어나 영재에게서 멀어지며 압박하듯) 어제 밤에 한지태와 너, 늦은 시간에 학교엔 무슨 일이었지?
영재 ! (순간 보며) 저,저희는 아닙니다!
박선생 (영재쪽으로 오면서) 저희는, 아닙니다... 저희는,이라...
(보며) 그럼 다른 누군가가 했다는 얘기네. 그렇지?
영재 (움찔 당황한다)
S#46 교실(낮)
침묵과 긴장 속에 앉아있는 아이들.
강표 ... (칼로 책상을 후벼파며 초조하고)
준석 ... (겁에 질린 채 거의 울 지경이고)
지태 ... (영재에 대한 한줄기 믿음)
S#47 상담실(낮)
취조가 계속되고 있다.
영재 (애원하듯) 전 정말 아무 것도 모릅니다.
박선생 그럼 그 시간에 학교 근처엔 왜 왔어!
영재 그,그건...(말 더듬기 시작한다) 우,우리는 그러니까...
박선생 (O.L) 두 놈이었다. 교무실 밖에서 망을 보고 있던 한 놈. 책상을 뒤진 한 놈.
숫자상으로도 니 둘이 맞아.
영재 (급해진다) 아,아,아닙니다! 믿어주세요!
박선생 (O.L)(몰아간다) 그럼 증명을 해봐! 증명을 못하면 너희 둘이 범인이 된다.
한지태와 너는 불행히도 같은 시각에 현장 근처에 있었어!
영재 (공포로 하얗게 질리고) 저...저희는!
박선생 한강표하고 강준석이지?
영재 !! (움찔해서) 모,모,모릅니다!
박선생 아니면 다른 두 놈의 이름을 대! 넌 분명히 알고 있어! 알고 있잖아!!
영재 (눈빛이 혼란스러워진다) 저,저는...
박선생 (O.L) 말 하지 않으면 너와 지태가 퇴학 당한다! 말해!! 어서 말해!!
영재 (겁에 질려 눈빛 흔들린다)
S#48 교실(낮)
문 벌컥 열리며 들어오는 박선생.
순간 숨막히는 공포와 긴장감으로 박선생을 바라보는 강표와 준석!
S#49 상담실(낮)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는 영재.
초점을 잃은 멍한 얼굴로 망연자실 앉아 있다.
S#50 낡은 창고 외경(밤)
성난 강표의 고함소리. 물건 부셔지는 소리.
강표 (E) 이 나쁜 새끼!!
S#51 창고 안(밤)
불처럼 성 난 강표가 영재의 멱살을 잡아 쾅! 벽에 갖다 붙인다.
바닥에 깨져있는 LP판과 전축, 의자,그릇 따위들.
강표 (멱살 잡고 흔드는 눈에 불이 튄다) 니네 둘이 살겠다구 우리 둘을 찔러!
니가 친구야? 니가 사람이냐구 새꺄! (주먹 날리고)
준석,지태 ... (말리지도, 거들지도 않은 채로 난로불만 바라보고 있는)
영재 (구석에 쳐박혀진 채 아무 저항 없이 멍한)
강표 (멱살 잡아 다시 일으켜 세우며) 너 일부러 우린한테 접근했던 거지?
서명 운동 찌른 것두 너 아냐? 너 원래 담임 개였잖아!
말해봐! 왜 말을 못해 새끼야!! (주먹 날리고)
지태 (강표 말리며) 그만해 이제.
강표 (상관없이 비척이는 영재 일으켜 세우며) 일어나 임마!
지태 (터지며) 그만해 그만 하라구 임마!
준석 (터지며) 너나 그만해 자식아!
지태 (준석을 본다)
준석 (보며)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새꺄. 서명운동만 안했어두, 담임 말대루 일주일동안 얌전히만 있었어두 이런 일은 없었잖아. 저 새끼(영재) 끌어들인 것두 너잖아!
지태 강준석!
준석 난 저 자식이 언젠가 배신 때릴 줄 알았어! 진작에 알았다구!!
(문 쾅 박차고 뛰어나가고)
강표 니들! (했다가 울컥 솟으며 눈가 붉어져서) 앞으루 내 눈에 띄지 마라.
(가방 들고 나간다)
지태 ... (머리 감싸쥐고 주저앉고)
영재 ... (멍한 채로)
S#52 박선생의 집 앞 길(밤)
박선생, 과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영재 (E) 이건 약속이 틀리잖아요.
박선생 ? (걸음 멈추고 돌아본다)
어둠 속에서 가로등 불빛 안으로 나타나는 영재.
영재 말하면 퇴학만큼은 막아주겠다구... 순화교육이랑두 아무 상관없다구...
그렇게 약속하셨잖아요.
박선생 (비식 웃으며) 내가...그랬던가?
영재 (눈물 차오르며) 약속하셨잖아요!!!
박선생 미안하지만 그건, 내 방법이 아니다.
안됐지만 널 제외 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구 생각해라.(가는데)
영재 ! (순간 눈에 서리는 적개심) 그럼, 저두 선생님에게 배운 방법을 쓰겠습니다.
박선생 (멈추고 돌아본다)
영재 선생님을....선생님을, 불법과외교사로 교육청에 고발하겠습니다.
박선생 ! (순간 움찔 굳고)
영재 (눈빛 살아서 보고 있다)
박선생 ... (보며)
S#53 박선생의 방(밤)
박선생 ... (책상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다. 담담한 표정)
S#54 학교 외경(아침)
S#55 교실(아침)
조회 전. 문이 열리고 박선생 들어온다.
반장 (일어나서 경례하려는데)
박선생 됐다. (막고는) 한강표, 강준석.
강표,준석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일어난다)
박선생 선도위원회에 선처를 부탁해서 퇴학은 막았다.
강표,준석 ??? (보고)
지태 ? (본다)
영재 (담담한)
준석 그,그럼 대신... 순화 교육으로 결정된 겁니까?
박선생 아니다.
강표,준석 ?? (서로 마주보며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고)
박선생 (아이들을 향해) 그 동안 순화교육을 둘러싸고 여러 안 좋은 일이 생긴 것에 대 해 나도 유감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 역시 대상자를 선정하는데 고충이 있었다 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
지태 ? (의중을 알 수 없고)
박선생 따라서, 이번 순화교육 대상자는 내가 아닌 너희들 스스로 민주적인 투표를 통해 선출해주길 바란다.
아이들 ! (웅성이기 시작하고)
영재 (안도의 편안한 미소)
S#56 후미진 교정 일각(낮)
강표, 준석, 형철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형철 나 참, 어떻게 된 조화 속인지 모르겠네. 웬 민주주의? 담임 어제 뭐 잘못 먹은 거 아니냐?
강표 백지표, 기권표는 인정 못한다잖아. 그게 뭔 민주주의야.
형철 각자 자기 이름 써서 내기루 했잖아. 그럼 각각 한 표 씩 나오는 거니까 무효 표 는 피하면서, 아무도 피 안 봐두 되구, 완벽하잖아.
준석 그걸 어떻게 믿어.
아이들 ? (본다)
준석 누군가 한 놈이라두 내 이름을 적어내면, 두 표가 되는 거잖아.
형철 (그러고 보니 그렇다) 이런 젠장, 차라리 누가 정해주는 게 낫겠네.
준석 애들을 믿어야지 뭐.
강표 믿어? (쓰게 픽 웃으며) 난 이제 아무두 못 믿어.
(담배 비벼끄며 돌아서다가 멈칫 한다)
영재 ... (바라보며 서 있다가 가만히 뒤 돌아간다)
강표,준석 ... (각자 표정)
S#57 교실 앞 복도(낮)
복도를 향해 난 창으로 보이는 교실풍경.
박선생이 아이들에게 투표방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고 있다.
반장에게 지시하고 창가로 가 먼 산 보며 서 있는 박선생.
S#58 교실(낮)
긴장된 표정의 아이들. 반장에 의해 반으로 접힌 투표용지가 나눠지고있다.
박선생은 창가에 앉아 참관만 하고 있다.
지태에게 전달되는 투표용지. 투표용지를 열어보던 지태의 표정이 굳는다.
투표용지를 열어보던 다른 아이들의 표정도 굳는다.
펼쳐지는 투표용지에는 이미 '이영재'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교실에 흐르는 묘한 기류...
지태, 가만히 영재 쪽을 돌아본다.
영재, 투표용지를 열어보고 있다. 영재의 표만은 백지표다.
영재, 미소지으며 백지표에 자기 이름을 적어넣는다.
지태 ... (반장을 본다)
반장 ... (의식하지만 외면하며 계속 표를 나눠준다)
지태 ... (박선생을 본다)
박선생 ...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먼 산 보고 있고)
지태 ... (강표와 준석의 자리 쪽을 본다)
강표 ... (괴로운 표정으로 '이영재'라고 써있는 투표용지를 조용히 접는다)
준석 ... (역시 괴로운 심정으로 조용히 접어 책상 위에 놓는다)
지태 ... (흔들리는 시선으로 자신의 투표용지를 바라본다) ...
눈 한번 감았다 뜨는 지태,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뒤에서 지태를 가만히 잡는 손. 강표다.
지태 ...! (돌아보지 못한 채로 느끼고)
강표 ... (고개 숙인 채로 눈 감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자신의 투표용지를 바라보는 지태, 연필을 쥔 손이 가늘게 떨린다.
어느 순간 딸깍...펜을 내려놓고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투표용지를 접는 지태.
지태 (N) 저항을 포기한 영혼, 마음 속에 분노를 잃어버린 인간에게 남는 것은...
비굴함과 초라함뿐이었다...
영재, 투표용지를 접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미소짓는 얼굴로 지태본다.
외면하는 지태.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이상해 하며 앞을 보는 영재
슬쩍 영재를 보고 있던 아이들 얼른 시선을 피한다.
어떤 느낌에 다시 지태 쪽을 바라보는 영재.
지태, 영재의 시선 느끼지만 차마 돌아보지 못하고 눈가만 붉어진다.
S#59 운동장(낮)
교복차림의 지태네 반 아이들 행진을 하고 있다.(영재는 없고)
반장 (분열 지휘하며) 우로--- ?!
아이들 (우측을 돌아보며)충! (경례하며) 성!
지태 (목에 핏대가 서도록 크게 충성!을 외치며 눈가 붉어진다)
S#60 빈 교실(낮)
텅빈 교실. 칠판 위에는 신영재라는 이름 옆에 여덟 개의 바를 정(正)자가 그려져 있다.
그 위로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훈련소리가 겹쳐진다.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멍하니 창가를 바라보고 있는 영재...
어느 순간 서글프게 피식 웃더니 가방을 들고 일어난다.
S#61 운동장(낮)
절도 있게 일산분란한 동작으로 행진하고 있는 아이들.
한곳을 향해, 똑같은 동작으로 움직이는 아이들.
그 뒤편으로 아이들과는 반대편 방향으로(교문 쪽) 걸어가는 영재의 모습...
그런 영재를 느끼며, 붉어진 눈으로 이를 악 물고 행진하고 있는 지태,
강표, 준석의 얼굴이 하나씩 보여진다. 그 위로...
S#62 교무실(낮)
교무실로 들어오는 교련 선생 앉아있는 박선생에게 다가오며
교련 박선생님 축하합니다.
박선생 (왜냐는 듯이 본다)
교련 모범교사 표창 받으시는거 말이예요. 한턱 내실꺼죠?
박선생 한턱은 무슨. 별 것두 아닌 일 가지구. (하면서도 기분은 좋다)
교련 별 것두 아니라니요. 구제 불능한 돌대가리들 열심히 다듬어서 그만큼 대학 보내 구, 해마다 모범학급 만들구, 다른 반 학부모들이 박선생님은 왜 자기 반 담임 안 주냐구 얼마나 성환지 아세요?
박선생 아부하기는 사람. 알았어 오늘 내가 술 살게. 됐어? (웃고)
지태 (교무실 청소를 하고 있던 중. 박선생을 바라보는 눈가에 살기가 돈다)
지태 (N) 죽이고 싶었다....
S#63 길(밤)
슬픔과 분노를 누르며 걸어오는 지태.
순간 우뚝 멈춰선다. 저만치 창고에 불이 켜져 있다.
지태 ... (보며 괴로운)
S#64 창고(밤)
온기 없이 썰렁한 창고 안...깨진 물건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영재, 한쪽 구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깨진 밥딜런의 판조각을 줍고 있다.
문득 창고 안을 한번 바라보는 영재.
썰렁한 창고 위로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짧게 들렸다가 사라진다...
S#65 창고 밖(밤)
창고에서 나오는 영재. 몇발자국 걸어가다가 멈춰선다.
잠시 뒷모습인 그대로 서있는 영재...
영재 ...(뒷모습으로) 갈께. (사이) 잘 지내... (간다)
영재가 사라지고 난 텅빈 창고 앞.
카메라 천천히 창고 옆으로 이동하면 거기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벽에 기대 서있는 지태.
지태 ...(이를 앙 물고 눈물 참아내고 있다가 마침내 고개를 들어 영재가 사라진 쪽을 바라본다. 참았던 눈물이 지이익---흘러나온다)
지태 (N) 그게... 내가 본 영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S#66 얼음 호수 위(이른 아침/S#1과 동일)
얼음으로 표면이 완전히 덮여있는 호수 위.
그 위에서 썰매를 타고 있는 동네 꼬마아이 몇 명이 보인다.
너무 빨리 달린 탓에 썰매에 타고 있던 여자 아이 하나가 두 손을 얼음 바닥에 짚으며 앞으로 고꾸라진다. 뭔가를 발견한 듯 바닥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여자아이.
얼음 바닥 아래...죽은 채로 꽁꽁 얼어붙어 있는 박선생의 얼굴 위로
꺄아아아악---소름끼치는 비명 겹쳐진다.
S#67 교실(아침)
조회전. 교실 앞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서는 상기된 표정의 형철.
형철 야야야야! 빅 뉴스!! 오늘 아침에 호수에서 우리 담임이 변사체로 발견됐대!
아이들 !!! (순간 웅성거리며 밖으로 몰려나가기 시작한다)
강표 ! (이게 어찌된 일인가 띵한 표정으로 곧장 일어나 나가려다 멈칫 서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는 지태, 준석을 보고 다가오는) 안 가볼거야?
지태 (굳은 채로 멍하고)
준석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다)
S#68 낡은 창고 안(밤)
모여있는 강표, 준석, 지태. 침묵...
강표 (초조한 표정으로 담배를 빡빡 피우며) 저,정말 사고살까?
지태 ... ?(본다) 무슨 소리야.
강표 좀 이상하잖아... 어제 그런 일 있구 나서 바루 이런 일이 생겼다는게.
호,호,혹시 누,누군가 죽인게 아닐까?
지태 무슨 헛소리야. 술먹구 발 헛디뎌서 지 혼자 죽은 거래잖아. 죽이긴 누가 죽여?
준석 (멍한 표정으로)(O.L) 나야.
강표,지태 ? (본다)
준석 내,내가 죽였어.
강표 (설마...멍해져서) 가,강준석.
준석 매일매일이 지겨웠어. 하루하루가 공포여서 죽었으면 좋겠다구 생각했어.
날마다, 하루두 빠짐없이 빌었단 말이야.
지태 (맥빠져서 달래듯) 준석아.
준석 (상관없이 눈가 그렁그렁해 지며) 영재 그렇게 보내놓구 미치는 줄 알았어.
심장을 작두 위에 올려논 거 마냥, 순간순간 섬뜩하구 무섭구, 아팠단말야.
그때마다 죽어라, 죽어라 했었어.
강표 (듣기 싫다) 입다물어 새끼야. 누가 듣기라두 하면 어쩌려구 그래 너.
준석 내가 죽였을까? (눈물 뚝뚝 떨어지며) 나두 모르게 내가 죽인거면 어떡하지? 응? 어떡하냐 나? (고개 무릎에 파묻고 울기 시작하고)
강표 (에잇! 머리 쓸어넘기며 미치겠고)
지태 (안타깝게 바라보는 위로)
지태 (N) 준석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모두 공범자였다...
S#69 얼음 호수 위(밤)
홀로 텅 빈 얼음 호수 위를 바라보고 있는 지태...
지태 (N) 그때 우린... 합리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고...
분출되지 못한 분노는 죄책감과 절망이 되어...그렇게 우리를...갉아먹고 있었다.
호수를 바라보는 열여덟 지태 얼굴 위로 서서히 겹쳐지는,
S#70 지태의 방(현재/밤)
창가에 서서 비오는 마당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지태.
문득 생각에서 벗어나 길게 남겨진 담배재를 재떨이에 비벼끄는 지태.
책상 위에 놓인 밥딜런의 판에 시선이 머문다. 애잔해지는...
밥딜런의 판을 들고 전축 앞으로 가는 지태.
쟈켓안에서 판을 꺼내 려는 순간 안에서 LP조각들이 쏟아진다.
그 조각들과 함께 묵직한 뭔가가 금속성으로 반짝이며 툭, 바닥에 떨어진다.
지태 ...? (줏어서 보면 낡은 손목시계다) ...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어느 순간 하얗게 굳어버리는 지태!!
박선생의 로렉스 시계다!
지태 !! (띵한 충격으로 천천히 내려앉는 모습 위로)
지태 (N) 청춘...그 시리도록 아픈 상처....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우리의 청춘은...우리의 젊은 날은...
S#71 호숫가길(밤)
인적이 끊긴 어두운 호숫가. 박선생, 술에 취해 휘청휘청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고 있다.
답답한지 시계를 풀러 주머니에 넣는다.
그 앞에 그림자 하나가 막아선다.
휘청 올려다보던 박선생의 입가에 비식 미소가 짓고 영재 무시하곤 그냥간다.
영재 (무섭게 굳은 표정) 선생님이 꾸민 부정투표라는 거 다 압니다. 약속대로 모든 걸 원점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경고한 대루 저 역시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박선생 ... (재밌다는 보다가) 넌 날 못 찔러.
영재 그럴까요?
박선생 날 찌르면 공무원인 느이 부모님도 함께 엮이거든.
영재 (움찔 굳는다)
박선생 순화교육 간 아들에, 부정 공무원이라... 그건 너무 비참한 일이잖아. 안 그래?
영재 ! (생각해보지 못했다)
박선생 (비식 웃으며) 역사 속에 수많은 민중봉기와 혁명들이 왜 실패했는지 아나?
바로 너처럼 상대를 과소 평가했기 때문이다.
영재 (본다)
박선생 넌 멍청하게두 최상급의 인생을 살 기회를 버리고, 내가 제시한 규율과 질서와 복종이라는 미덕을 평개쳤다. 그 결과가 뭔 줄 아나? 바루 니가 앞으로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게 될꺼라는 거다.
영재 (아득해진다)
박선생 건방진 놈. 감히 니가 날 협박해? 흐흥, 세상은 꼭 침묵할 놈들이 행동하고, 행동 할 놈들은 침묵하지. 난 니들 같은 양아치들이 커서 맡을 사회를 생각하면 자다 가두 끔찍해진다. 그래서 될 놈들은 밀어주고, 순화시킬 놈은 순화시킨다.
그게 이 사회의 질서고 내 교육철학이다! 알았나!
영재 (질린다)
박선생 (광기 서린 눈으로) 알았으면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자식아!!
영재 (질려서 보다가 뒤돌아 간다)
박선생 (그제서야 흡족한 듯 표정 풀리며) 너무 원망하지는 말아라.
질서의 편의와 효용성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소수의 희생자가 생기기 마련이야. (비죽이며 뒤 따라 걷기 시작한다)
멍한 영재의 어깨너머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는 박선생의 모습이 보인다.
어느 순간 휘청 발을 헛딛는 박선생.
노래 소리 뚝 그치고 박선생의 모습이 화면 밑으로 사라진다.
멈칫 그 자리에 서는 영재. 물소리가 들린다.
순간 사태 파악이 되며 띵해지는 영재. 그대로 바닥에 가방을 떨어뜨린다.
지태 (E) (S#19에서의) 어이, 신영재!
영재 ... (공포에 질린 눈으로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S#72 얼음호수 위(S#19의)
지태 (밝은 모습) 저 호수 말야, 다 꽁꽁 얼어서 안전해 보이지만, 어느 한곳은 꼭 낚 시꾼들 때문에 뚫려있거든? 근데, 어느 곳으로 가야 안전할지, 어느 길이 더 편 할 지 따지다 보면 경기는 재미 없어져.
S#73 얼음 호수 위(밤)
납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간신히 움직여 몇발자국을 걷는 영재.
그 시선에, 얼음 호수 위에 떨어져있는 박선생의 로렉스 시계.
박선생 (E) 날 찌르면 공무원인 느이 부모님도 함께 엮이거든.
순화교육 간 아들에, 부정 공무원이라... 그건 너무 비참한 일이잖아. 안 그래?
떨리는 손으로 시계를 줏어 주머니에 쑤셔넣는 영재.
공포에 질린 눈가에 서서히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멍한 눈으로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줍는다. 시체처럼 앞만 보며 걷기 시작한다.
문득 멈춰서서 하늘을 올려다 본다.
나풀나풀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멍하니 바라보는 영재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멀어진다.
내리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