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미 텐더] 이기원
씬 1 거리
명수의 차가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운전하는 명수, 두리번거리며 뭔가 찾는 듯
씬 2 재활용 센터 앞
명수의 차, 멈추고...
명수, 차에서 내린다.
씬 3 재활용 센터
다양한 중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구, 컴퓨터, 통기타 등등...
명수, 통기타의 줄을 딩- 튕겨 보고는 다른 전시대로 향한다.
TV, VTR, 에어콘, 세탁기, 오디오 등의 가전 제품들이 보이고...
랩으로 포장된 포터블 카세트들, 그 중 가장 작은 포터블 카세트를 집는 손.
명수, 카세트를 들고 요모조모 살피는데 판매원 다가온다.
판매원 2만원이면 거저예요.
명수 (돌아보면) ...
판매원 오늘 들어온 건데... 이런 중고는 바로바로 나가거든요
판매원, 랩을 벗겨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가요가 중간부터 흘러 나온다.
판매원 쓸만하죠? (끄고 건네주는)
명수 (살피며) 고장나면...
판매원 이런 건 고장 날 데도 없어요. 뭐, 언제든 가져오세요. 근데... 이왕 사시는 거 CD
되는 게 좋지 않나요?
명수 이게 딱이에요. 오디온 있거든요. (이젝트를 눌러 테입을 빼는) 이거...
판매원 올 때부터 있었어요. (도로 닫는) 넣어가세요.
명수, 과연 잘 사는 것일까... 카세트를 다시 살핀다.
씬 4 집필실
명수가 집필작업을 하는 자그마한 방이다.
명수, 카세트에서 그 녹음 전용 공테입을 꺼내 책상 한켠에 획 던진다.
명수, 새테입을 넣은 카세트를 플레이하고는 노트북을 두드린다. 그 위로...
재벌 (E) 사실은 말이야. 이작가... 그 공장을 안 팔면 가만 안 놔두겠다고 강짜 좀 부렸
거든. 근데 말야... 책에는... 그냥 좋게 샀다고 좀 써줘.
명수, 짜증이 나서 타이핑을 멈추고 카세트를 끈다.
책상에서 담배를 집는 손... 그 옆에 공 테입.
명수, 담배 연기를 한숨처럼 길게 내뿜는다.
명수 (Na) 대필 작가... 남의 인생을 폼나게 각색해주는 게 내 직업이다. 그래서 돈 좀
생기면 정말 쓰고 싶은 소설을 써보지만... 결국 또 이렇게 남의 자서전을 끄적거리게 된다.
명수, 의자를 뒤로 젖혀 편안한 자세를 취하다 뭔가 발견하면,
그 공 테입!
카세트에 그것을 넣고 틀면, 가요가 흘러나온다.
명수, 의자에 길게 누워 감상한다.
그때, 노래가 끊어지고 지지직 소리가 난다.
명수,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 준호의 목소리가 테입에서 흘러나온다.
준호 (E) (들뜬) 아, 아, 아... 영주씨... 안녕하세요. 준홉니다. 지금 기분이 무지 좋아요.
영화를 보자고 했을 때 사고가 다 날 뻔했다니까요.
명수, 놀라서 호기심으로 책상에 다가앉아 카세트를 보면....
준호 (E) 아.. 저 말 잘하죠?
씬 5 준호의 방
통기타를 든 준호(카세트의 원래 주인)가 앉아 녹음을 하고 있다.
준호 (E) 아.. 근데... 영주씨 앞에서는 왜 주눅이 드는 지 모르겠네요.
씬 6 집필실
명수, 흥미진진하게 내용을 듣고 있다.
준호 (E) 저... 영주씨한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어요. 흠흠... (어설픈 기타 반주 소
리와 엉성한 발음으로) 러브 미 텐더, 러브 미 스위트. 네버 렛 미 고....
노래가 흘러나오는 카세트.
씬 7 타이틀
준호의 노래 깔리며 블랙에 제목 “러브 미 텐더” 떠오른다.
씬 8 몽타쥬
준호의 러브 미 텐더가 깔리는 가운데...
C1. 횡단보도 앞에 늘어선 차들... 차 옆으로 택배 오토바이들이 나와 앞에 선다. 신호가 바
뀌기 무섭게 준호의 오토바이가 제일 먼저 출발한다. 허름한 구닥다리 오토바이다.
C2. 도심 빌딩 앞 벤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홀로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벤치에 앉아 빵
을 밋밋하게 뜯어먹고 있다. 문득, 신호가 온 듯 이어폰을 낀 귀에 손을 대고 응답을 하고는
빵을 입안에 구겨 넣으며 일어선다.
C3. 저녁 어스름이 내린 공원. 아베크 족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준호, 오토바이에 앉아
그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보며 쓸쓸히 담배 불을 붙인다.
C4. 준석의 집 옥상. 혼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준호.
씬 9 집필실
찰칵, 소리와 함께 카세트의 플레이 스위치가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노래에 심취해 있던 명수, 카세트를 본다.
이젝트하여 테입을 뒤집어 꽂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려다 전화를 받으러 간다.
명수 여보세요? (나야..) 아, 네... (김회장 있잖아) 그 노인네가 왜요? (보강할 게 있대)
아니, 인터뷰 테입 잔뜩 해놨는데 뭘 더 하재요? (몰라, 지금 당장 오래) 지금요? 정말... (인
상 지푸리고) 알았어요.
명수, 짜증으로... 전화를 끊고 책상의 수첩 등을 챙긴다.
씬 10 도로
대로를 달리는 명수의 차.
명수, 삶에 찌든 표정이 역력하다.
씬 11 빌딩 로비
화려한 로비. 젠틀한 사람들이 오가는데....
그 사이로 후줄그레한 명수, 걸어가고...
재벌 (E) 카터가 왔을 때 식전부터 뜀박질을 했잖아 왜. 그때 내가 같이 뛰었단 말야.
씬 12 회장실
테이블에 있는 워크맨이 돌아가고 있다.
소파에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는 재벌과 명수.
명수 네? 며칠 전에는, 카터 대통령이 왔을 때 인도네시아 벌목 현장에 계셨다고 했잖습
니까?
재벌 그런가? 어이... 이작가, 말해봐. 내가 그때 카터랑 뜀박질을 했다는 게 좋을까? 아
님... 인도네시아에 있었다는 게 좋을까?
명수, 어이없어서 할 말을 잃고... 엄청 짜증이 난다.
명수 저... 죄송한데요. 담배 한 대 펴도 되겠습니까?
회장의 뚱한 표정에서...
씬 13 엘리베이터 앞
명수,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담배를 피워 물고,
로비를 걸어 나간다.
명수 (Na) 이제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작가로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현실 때문이
라는 핑계로 늘 피해만 왔다. 하지만 이젠 물러설 곳이 없다. 이번 일만 끝나면... 정말 좋은
소설 한 편을 완성할 거다.
씬 14 집필실
책상에 앉은 명수, 워크맨에서 테입을 꺼낸다.
카세트에 있던 준호의 테입을 꺼내고 갈아 끼우려다 갑자기 짜증이 나 책상 한 구석에 팽개
친다.
다시 준호의 테입을 넣고 플레이를 누른다.
준호 (E) .... 그러니까... 영주씨..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럴려고 그런 건
아닌데...
씬 15 영주네 꽃집 (아침)
왼쪽 팔에 깁스를 한 영주, 어설픈 동작으로 꽃집 밖으로 화분들을 내놓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한다.
지나가는 꼬마의 뒤통수를 손으로 콕 찌르고 시침을 뚝 따기도 한다.
준호, 약간 떨어진 곳에서 영주를 보고 있다.
준호 (E) 하지만 모두 내 잘못인 것만은 분명해요. 내가... 주제넘게도 영주씨를 좋아했으
니까요.
씬 16 꽃집 안
영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꽃을 다듬어 포장을 하고 있다.
창 밖에서 안으로 보이는 영주의 모습.
준호, 창 밖에서 조바심으로 안을 들여다보다 들킨 듯 갑자기 사라진다.
영주, 고개 돌려보다가 갸웃거린 후 다시 꽃을 다듬는다.
준호 (E) 영주 씨를 볼 때마다 행복했지만 그럴수록... 가슴은 무거웠어요. 왜냐하면...
씬 17 집필실
호기심으로 가득한 명수, 담배를 찾아 물고
일을 작파한 듯 회전의자를 돌린 후 뒤로 제친다.
준호 (E) 두 달 전에 있었던 그 일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명수 두 달 전이라...
명수, 담뱃불을 붙이며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씬 18 자취집 앞 (저녁)
용식, 경주용 오토바이에 앉아 준호에게 자랑하고 있다.
용식 죽이지? 완전 새 거 같지 않냐? 돈 들고 갈 때는 좀 찝찝했는데... 막상 사서 타고
오는데 기분이 짱인 거야. 야... 내 형편에 언제 이런 오토바이를 타보겠냐? 딱 오는데... 그
거 아냐? 아스팔트를 찍어누르는 듯한 그 느낌.. 와... 엔진 필링이 장난이 아냐.
한쪽의 준호의 허름한 국산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다.
용식 (내리면서) 봐... 쫙 빠졌지? 줄리아 로버츠 저리 가라 아니냐.
준호 (말없이 쳐다본다) ...
용식 여기에 킹카를 태우고... 그냥 쏘면... (상상하듯) 음... (죽인다)
준호, 핸들을 한 번 잡아본다.
용식 (손가락에 키를 걸고 돌리며) 한 번 타볼래?
준호 (그러고 싶지만... 가만히 쳐다보는) ...
용식, 키를 던지면 준호, 엉겹결에 받는다.
용식 이거 한번 타면... 다신 니꺼 못 탈 거다.
준호, 엷은 미소로 오토바이에 올라 시동을 건다. 폭발하듯 소리가 터져 나온다.
준호, 다소 놀라고....
용식 (거 보라는 듯) 죽이지? 한 번 쏴 봐.
준호, 오토바이를 출발시킨다.
씬 19 도로 (밤)
오토바이를 타고 시원하게 달리는 준호... 기분 좋다.
성능좋은 오토바이임을 증명하듯 계기판의 바늘이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준호,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데...
뒤에서 머플러를 뗀 오토바이들의 굉음이 들린다.
돌아보면, 폭주족들이 와서 함께 달리는 형국이 되고...
이래저래 당황하는 준호....
설상가상으로 그 뒤를 패트롤카가 경광등을 울리며 쫓아온다.
준호, 당황하여 샛길로 빠지면, 경찰차가 그 뒤를 따라간다.
준호, 놀라서 돌아보면, 경찰 위압적으로 거리를 좁혀온다.
씬 20 꽃집 앞 (밤)
영주와 이모, 화환을 들고 나오고 있다.
굉음이 들려 보면, 준호의 오토바이가 덮치듯 다가온다.
영주와 이모, 기겁하며 놀라고....
준호, 역시 놀라고...
영주, 얼결에 이모를 밀치고...
오토바이, 영주와 스치듯 부딪히며 지나간다.
영주, 비명과 함께 뒤로 넘어진다.
화환이 팍 흩어지며 꽃들이 날아간다.
오토바이를 세운 준호, 두려움으로 돌아본다.
쓰러진 영주를 일으키던 이모, 준호를 노려본다.
둘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히고...
준호,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막 커브를 튼 경찰차가 달려온다.
준호,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달아나 버린다.
준호, 괴롭기 그지 없다.
경찰차, 영주 근처에서 멈춰선다.
씬 21 자취집 앞 (밤)
오토바이를 멈추는 준호, 얼굴이 사색에다 땀범벅이다.
용식,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고 나온다.
용식 어때 죽이지? 뒤에 여자만 태우면... (안색을 보곤) 야... 왜 그래?
준호 (다리에 힘이 빠진 듯 쭈그리고 앉고서) 나... 사람을 쳐, 쳤어.
용식 뭐? 어떻게 됐는데? (표정을 살피고) 죽은 건 아니지? 그치?
준호 (얼빠진 듯) ...
용식 (자기 오토바이를 살피고) 어디서 그랬어? 누구 본 사람은? (답답하다) 임마... 말을
해봐. 말을! 그래야 알 거 아냐!
준호, 갑자기 벌떡 일어나 자기 오토바이로 간다.
용식 어디가?
준호 (시동 걸며) ...
용식 가지마! 뺑소닌 바로 구속이야!
준호, 구속이란 말에.. 멈칫.. 그러나 오토바이를 출발시키는
용식 너 미쳤냐? (다가와 핸들을 잡는다)
준호 (뿌리치고 출발한다) ...
용식 (쳐다보며 답답하다는 듯) 야.. 임마! 어휴... 저... 병신....
씬 22 꽃집 근처
준호, 꽃집 근처 모퉁이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내린다.
떨리는 마음으로 몸을 숨긴 채 꽃집 쪽을 바라본다.
씬 23 꽃집 앞 (밤)
원경으로. 집 앞에 앰뷸런스가 서 있고,
영주 어머니가 의사들과 함께 영주를 부축해서 차에 오른다.
앰뷸런스가 출발한다.
씬 24 꽃집 근처
앰뷸런스가 준호의 앞을 지나간다.
멀어져 가는 앰뷸런스를 황망히 지켜보는 준호.
준호 (E) 저는 비겁했어요.
씬 25 집필실
명수 손에 끼인 담배의 긴 재가 툭 떨어진다.
준호 (E) ... 그런데... 그런 놈이 영주씨를 좋아하게 되다니... 참 우습죠?
명수, 문득 어떤 영감에 포즈를 누른다.
노트북 화면에 ‘거칠었던 나의 지난 날’ 제목 아래 대필 원고가 쓰여져 있다.
준호, 새문서를 불러들여 화면을 하얗게 만든다.
그 위에 ‘러브 미 텐더’하고 제목을 쓴다.
제목이 마음에 드는 듯 음미하듯 보고는
포즈를 해제하며,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경청한다.
씬 26 거리 (아침)
준호, 오토바이를 타고 온다.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한 듯.
오토바이를 세우고, 내리면...
저만치 꽃집이 보인다.
준호 (E) 다음 날 아침... 플로라 화원에 찾아갔더랬습니다.
씬 27 꽃집 앞 (아침)
준호, 무거운 마음으로 다가온다.
준호, 쇼윈도를 통해서 안을 들여다본다.
영주, 왼쪽 팔에 깁스를 한 채 삼각붕대를 하고 오른손에 칙칙이를 들고 난초에 물을 주고
있다.
준호, 다소간 안도하는 표정이다.
준호 (E) 그렇다고... 제 잘못이 용서되는 건 아니지만... 큰 부상이 아니라 다행이었어요.
영주, 갑자기 몸을 돌리다가 깁스가 큰 화분의 고무나무에 부딪히고... 아픈 듯 울상을 짓는
다.
준호, 마치 자기가 아픈 듯 마음이 아프다.
준호, 결심한 듯 안으로 들어가려하다 멈칫한다.
내실에서 이모가 나오고 있다.
씬 28 꽃집 안
영주, 고통스러워 하고...
이모 (포장 재료를 든 채) 많이 아퍼?
영주 (아픈...) 안에서 울려, 이모.
이모 (딱한) 어휴.... 팔이니 망정이지... 머리 같은데 다쳤으면 어쩔 뻔했니. (다가와 삼
각붕대를 바로 해주며) 나쁜 놈... 내 눈에 보이기만 해봐라.
영주 (씩씩한) 이만하기 다행이지. 뭐... 뺑소니로 사람도 많다는데.
이모 얘 말하는 것 좀 봐.
영주 액땜한 걸루 치지 뭐. 죽을 뻔한 걸... 이 팔로 막았다. 헤헤...
이모, 못 말린다는 듯 고개 흔들다가 문득,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면 쇼윈도에서 누군가 휙- 사라진다.
이모, 자기가 잘못 봤나 생각하는데....
씬 29 꽃집 밖
준호, 꽃집에서 멀어지고 있다.
준호 (E) 그날... 사실대로 말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씬 30 집필실
명수, 노트북에 ‘러브 미 텐더’ 원고를 탁탁탁 쓰고 있다.
‘준호는 그날 이후로 꽃집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준호 (E) 매일 플로라를 찾아갔지만... 마음만 앞설 뿐... 정작 말을 꺼내진 못했어요.
씬 31 꽃집 근처 (낮)
저만치에 꽃집이 보인다.
준호, 오토바이에 앉아 체크 리스트 보드에 낙서를 하고 있다.
‘플로라... 플로라...’
그때 무전이 온 듯 귀의 이어폰 줄에 매달린 마이크를 입에 가져간다.
준호 네... 13홉니다.
교환원 (E) 청담동에서 배달입니다.
준호 십삼 호... 현재 청담동입니다.
교환원 (E) 네 알고있어요. 플로라 화원앞이죠.
준호 (놀라는) 네...에? (하고 보면)
교환원 거기서 꽃배달의뢰들어왔어요.. 빨리가보세요.
준호 네..에.
준호의 시선으로 꽃집 간판.. ‘플로라 화원’이 점점 클로즈업 된다.
씬 32 꽃집 앞 (낮)
헬맷을 안은 준호,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거린다.
문 손잡이를 잡았다 놨다가 하는데, 문이 쑥 열린다.
준호, 놀라서 헬맷을 떨어뜨리면...
영주 배달 오셨어요?
씬 33 꽃집 안 (낮)
영주, 꽃바구니가 있는 곳으로 오고... 준호, 쭈삣쭈삣 따라온다.
영주 바로 저앞에 계셨죠. 아까보고 제가 정보를 줬죠. 나중에 커피한잔 사세
요
준호 아... 네...
영주 (꽃바구니를 집어 건네며) 신사동에 있는 승리 프로덕션이거든요.
꽃바구니를 받은 준호, 깁스한 영주의 팔을 보고 짠해지는...
영주 (시선을 의식하고) 뺑소니 당했어요.
준호 (정곡을 찔려 움찔하는) ....
영주 그래도 운 좋은 편이에요. 죽는 사람도 있다던데.. 헤헤..
준호 (입이 떨어지지 않는) ....
영주 (왜 그러지?) ....
준호 (용기를 내) 저....
영주 (아...!) 위치 잘 모르시죠? (책상에 팩스 용지를 집어준다)
준호 (얼결에 받으며) 네...
준호, 타이밍을 놓치고 하는 수없이 돌아서고...
문쪽으로 가다 결심한 듯 돌아선다.
준호 저...
영주 네?
준호 그러니까... 제가...
영주 아아...! 죄송해요. (다가와 만원권을 준다) 착불 아니거든요. (문 열어주며) 꽃송이
떨어지지 않게 주의해 주세요.
준호, 분위기에 밀려 나가고...
씬 34 횡단보도 앞
자동차들과 신호대기로 서 있는 준호. 오토바이 뒤에 꽃바구니.
준호 (E) 그땐 몰랐는데... 돌이켜 보니, 운명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신호가 바뀌고... 차와 오토바이들이 출발하지만...
준호, 멍하니 그대로 있다.
바로 뒤에 있던 차가 크랙션을 빵- 누르면,
그제서야 허둥지둥 출발하는 준호.
씬 35 코엑스 앞
벤치 주위에 오토바이들이 어지럽게 서 있고...
택배맨들 모여서 간단히 요기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고 담소 중이다.
용식, 얘기하고 준호, 김밥을 먹고 있다.
준호 요 며칠 강원이 형이 안 보이네. 돈 꿔준 거 있는데...
용식 몰라? 형 구속된 거?
준호 아니, 왜?
용식 술 먹고 들어가다 사람을 쳤잖아.
택배맨1 (끼어들며) 뺑소니구나?
준호, 피해의식으로 긴장하는...
용식 목격자가 있었는데도... 겁나서 그냥 내뺐대요.
택배맨1 아... 신세 완전히 망쳤네. 그건 빼도박도 못하는데...
용식 그러게요.
준호 (쥐구멍을 찾고 싶다) ....
택배맨1 니들도 조심해. 젊은 혈기로 막 달리지 말구.
용식 에이.. 제가 좀 쏘는 편이긴 해도... 뺑소니야 치겠어요?
말 못하는 준호, 입맛이 떨어진 듯 슬그머니 김밥 케이스를 덮는다.
용식, 그제서야 눈치채고... 준호를 미안한 시선으로 보는데...
씬 36 자취방
준호, 방에 멍하니 앉아 자기가 녹음한 노래를 듣고 있다.
이윽고, 한숨을 푹- 쉬고 스톱을 눌러 꺼버린다.
준호, 그냥 드러누워 버린다.
곧 팔베게를 하고 옆으로 눕고... 고민스럽다.
씬 37 집필실
카세트의 테입이 돌아가고 있다.
명수, 프린터에서 나오는 원고를 책상에 탁탁 쳐서 가지런히 한 다음 철한다.
명수 (Na) 어느 샌가 나는 준호의 고백성사를 듣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칸막이 바로 반
대편에 준호가 있기라도 한 듯 그의 존재가 느껴졌다. 그를 만나기 위해 플로라 화원에 가
보기로 했다. 그를 찾게 되면, 그의 눈을 통해 영주라는 아가씨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
며...
씬 38 꽃집 앞
(준호가 등장하는 과거의 꽃집과 명수가 등장하는 현재의 꽃집 사이엔 1년의 시차가 있다)
명수의 차가 다가와 선다.
고개를 앞으로 빼서 간판을 확인하는 명수... ‘아, 여기구나’ 하는 느낌.
차에서 내린 명수, 준호를 찾듯 주위를 살핀다.
한가로운 거리의 일상이다.
명수 (Na) 그러나 준호는 보이질 않었다...
가게 쪽을 살피면...
쇼윈도를 통해 일하는 영주(깁스를 안한 상태)의 뒷모습이 보인다.
‘저, 여자가 영주일까’하는 호기심으로...
씬 39 꽃집 안 (저녁)
명수, 문 열면 문 귀퉁이에 달려있는 종이 ‘딩동’ 소리(1년 후 꽃집에만)가 들린다.
영주 (돌아서며) 어서 오세요.
영주,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온다.
명수 (영주일 거란 생각에 미소로) 백합 좀 싸주세요.
영주 (뭐 이런 주문이 다 있나?) 어디 가져가실 건데요?
명수 네? (둘러대는) 그냥... 어머니가 아프셔서...
영주 아... 네....
씬 40 출판사 (저녁)
출판사 사장, 명수가 가져온 꽃바구니를 의외란 듯 보고 있다.
사장 여자한테 퇴짜 맞고 온 거 아냐?
명수 (웃는) 좋을대로 생각하세요.
사장 (어쨌든!) 원고 마감에다 꽃이라... 나쁘지 않군. 이젠 원고 털었으니... 뭐할 거야?
명수 연애 소설이나 써볼까 생각 중이에요.
사장 (솔깃해서) 정말? 청포도처럼 풋풋한 거야? 뼈와 살이 타는 거야?
명수 (풋....) 풋풋한 거예요. 럽 미 텐더라구...
사장 좋아. 그거 내가 찜했다. 내가 왕년에 엘비스 팬이었잖아. 럽 미 텐더... 럽 미 스
윗... 음... 좋아.
명수, 동의하듯 끄덕이며 써야겠다는 마음을 굳히는 듯...
씬 41 어느 사무실
준호, 경리 아가씨에게 물건을 건네주고,
경리 아가씨, 운송표에 싸인을 해준다.
그때 무전이 오고, 준호 받으면... 다소 심각한 표정이다.
준호, 사무실을 무거운 걸음으로 빠져 나온다.
준호 (E) 두 번째 배달 의뢰가 왔을 때, 이번엔 꼭 얘기해야지 생각했어요. 이번에 못하
면... 앞으로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으니까요.
씬 42 꽃집 안 (낮)
준호, 무표정하게 말없이 인사하고 들어온다.
영주, 깁스한 손으로 어설프게 꽃바구니의 리본을 묶고 있다.
영주 (미소) 왔어요? 빨리... 이것 좀 잡아주세요
준호, 무심결에 달려와 리본을 잡는데,
영주와 손이 닿고, 순간 정전기를 느껴 둘 다 손을 움찔 뺀다.
영주 아, 전기 올랐다. (웃는) 어, 우리 이러면 안 되는데...
준호, 왠지 얼굴 빨개져 버린다.
영주, 다시 리본을 잡고 쳐다보면...
준호, 행여 정전기가 오를까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려 본 다음 잡는다.
영주 (가위로 매듭을 자르며) 저한테 혹시... 할 말 있어요?
준호 (허를 찔린) 네?
영주 저번에 오셨을 때... 왠지 그런 느낌을 받아서...
준호 네? (감정을 가라앉히며) 네... 사실은...
영주 잠깐! 내가 관심법으로 알아맞춰 볼게요. (보는) 음...
준호 (시선이 부담스럽다) ...
영주 데이트 신청하려는 거죠?
준호 (얼결에) 네? 아, 아닌데요.
영주 어머... 민망해라... 하하하...
해맑은 영주의 얼굴에...
준호, 차마 말을 못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영주 (전화를 받고) 네, 플로랍니다. ...네... 네.....(애드립으로 말하고)
영주, 바구니가 놓여있는 책상을 가르킨다.
말할 타이밍을 놓친 준호, 하는 수없이 바구니를 들고 간다.
문 열 때 돌아보면,
영주, 전화를 받으면서 손을 흔들어 보인다.
씬 43 꽃집 밖
준호, 한방을 먹은 듯 피식 피식 웃으며 오토바이로 걸어간다.
준호 (E) 어쩌면... 말할 생각이 없었을 지도 몰라요.
그때 이모와 지나치지만... 준호는 의식하지 못한다.
이모, 멈춰 서 돌아보며, 어디서 본 듯한데... 갸웃거리고
씬 44 꽃집 안
이모, 들어와서도 뒤돌아보며 갸웃거리는
영주 (E) 이모.
이모 (돌아서서) 병원 가야지? 깁스 푼다며.
영주 (가방을 챙겨들며) 응. 이모... 이거 풀면, 젤 먼저 뭐할 건지 알아?
이모 니 엄마한테 간댔잖아.
영주 아니... 그보다 먼저... 이 손톱을 세워서... (깁스했던 부분을) 벅벅... 긁을 거야.
이모 (피식) 시원하겠다.
영주 (가려워) 미치는 줄 알았어. (확인하듯) 엄마한텐 절대 얘기 안했지?
이모 했으면 여태껏 언니가 여기 안 와봤겠냐? 가서 시침 뚝 따고 한 일주일 푹 쉬다
와.
영주 (나가며) 오케이.
이모 나 같으면... 엄마한테 안 가고 남자 친구랑 놀러 가겠다.
영주 치... 있기만 하면 나도 그렇게 해.
영주, 문 열다 말고 돌아서 눈을 홀기고...
씬 45 몽타쥬
-도로. 제법 큰 물건을 오토바이 뒤에 매달고 달리는 준호.
-직진하다가 에이.. 하는 심정으로 핸들을 꺽는다.
-꽃집 앞. 그 큰 물건을 매단 채 그 앞에 선다. 괜히 헬맷을 벗어서 끈을 고치는 시늉을 하
며, 슬쩍 꽃집을 본다.
-영주의 이모,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실망하고 출발한다.
-다른 날. 꽃집. 옷차림이 바뀐 준호, 꽃집으로 다가가 슬쩍 들여다 본다.
-영주의 이모, TV를 보며 깔깔 대고 있다.
-실망을 하며 돌아서는 준호.
준호 (E) 영주씨가 보이지 않자 겁이 덜컥 났었어요. 어디 아프지는 않나. 어디 먼데로
간 거는 아닐까. 별별 생각 다 들더라구요. 늘 있어야 할 곳에 영주씨가 있지 않으니까... 일
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씬 46 구멍가게
준호, 드링크를 마시면서 나오는데, 무전이 온다.
준호 (무전을 받는) 13홉니다.
무전 어디게세요? 청담동 플로라화원 배달입니다.
준호 네... (점점 화색이 도는) 네.. 알겠습니다.
준호, 마시던 걸 벌컥벌컥 마시고는 오토바이로 뛰어간다.
씬 47 꽃집 앞
오토바이에서 내려 급한 마음으로 가다가 멈칫하고, 한 쪽으로 숨는다.
꽃집 안에 이모가 꽃바구니 앞에서 팔짱을 끼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준호, 한숨을 푹 쉬는 그 위로...
인서트. 뺑소니 사고 때... 준호의 시선으로 보았던 분노에 찬 이모의 표정.
준호, 잠시 생각하다 무전을 때린다.
준호 본부... 저... 13혼데요. 오토바이가 고장나서 수리점에 와 있거든요. 다른 사람을 보
냈으면 해서요.
씬 48 꽃집 근처 (다른 날)
준호, 시무룩해서 오토바이를 달리고 있다.
준호, 꽃집을 지날 때 별 기대없이 보다가 브레이크를 밟는다.
영주가 화분을 옮기고 있는 중이다.
준호, 반가워서 본다. 영주의 깁스가 풀린 사실을 깨닫는다.
영주, 두 팔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보다가 무슨 생각이 난 듯 오토바이를 출발시킨다.
씬 49 코엑스 일각 (낮)
용식과 준호, 벤치에 앉아있다.
용식 (핸드폰을 들고) 짜식... (제법인걸...) 점심 사줄 거지?
준호 (끄덕끄덕) ...
용식 (폴더 열며) 번호 불러봐.
씬 50 꽃집
영주, 벨이 울리자 전화를 받는다.
영주 네, 플로랍니다.
용식 (F) 여기 승리 프로덕션인데요. 생일 축하 화환 하나 부탁합니다.
영주 네... 무슨 꽃으로 해드릴까요?
용식 (F) 뭐.. 대충 알아서 해주세요. 잘 하시잖아요.
영주 생일인 분 성함이...
용식 (F) 음... 용식이... 박용식으로 해주세요.
씬 51 코엑스 일각
용식 네, 수고하세요. (전화 끊으며) 야, 플로라면, 니가 전에(하며 돌아보는데)
준호, 어느새 자기 오토바이에 올라 출발하고 있다.
용식, 의구심을 품는 표정에서
씬 52 꽃집 일각
준호, 초조하게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다.
무전이 오면 기대를 하고 받는다.
준호 네, 13홉니다. (사이) (실망하는) 전 여의도에 있습니다.
무전을 끄는데, 준호 눈을 휘둥그레 뜬다.
원경으로. 영주, 직접 꽃바구니를 들고 나와 문에 ‘잠시 외출중’이라는 안내판을 걸고 걸
어간다.
준호,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황급히 오토바이를 출발시킨다.
씬 53 거리
영주가 저만치 걸어가고...
준호, 복잡한 심경으로 따라간다.
영주, 버스 정류장으로 들어서자
준호, 스피드를 올려 그리로 향한다.
씬 54 버스 정류장
꽃바구니를 든 채 의자에 앉아있던 영주, 일어선다.
버스가 와서 멈춘다.
영주, 보도를 내려서려는데,
준호의 오토바이가 와서 멈춘다.
영주 (깜짝 놀라며) 어.. 어머...
준호 (자기가 더 놀란 듯) 안녕하세요.
영주 (반가운) 어머, 준호씨.
준호 어디 가세요?
영주 네.. 승리 프로덕션요. 직접 한 번 가볼려구요.
준호 (처음 발견한 듯) 팔 다 나셨네요. 축하해요. 정말 다행이에요. 정말로...
그때 버스가 떠난다.
영주 (아쉬운 듯 버스를 힐끗 보는데) ...
준호 마침... 그쪽으로 가는데... 제가 배달해 드릴까요?
영주 아뇨... 됐어요.
준호 (당황하는) 거기... 정류장에서 한참 걸어야 하는데...
영주 (약올리듯) 좀 걷죠... 뭐...
준호 (애처롭다) 아, 아니... 제 말은... 거기까지....
영주 (씨익 웃으며 반응을 본다)...
준호 데려다 줄려고...
영주 (뭘 어렵게 말하냐는 듯 가볍게) 좋아요. 태워주세요.
준호, 안도하며 땀을 닦는다. 웃어보지만 잘 웃어지지 않는다.
영주, 준호 뒤에 탄다.
꽃바구니를 준호의 배 앞 쪽에 놓고 바구니를 양 손으로 잡는다.
준호, 긴장하며 얼어붙는다.
영주 (미소 지으며) 출발!
준호, 출발한다.
씬 55 거리
준호, 영주를 태우고 거리를 달린다.
영주, 장난스럽게 다리를 앞뒤로 흔들고
준호, 뒤쪽이 신경 쓰이지만 행복하다.
그렇게 거리를 달리는 준호의 오토바이.
씬 56 빌딩 앞
준호, 긴장된 표정으로 오토바이 멈추고
준호, 영주가 내릴 때 꽃 바구니를 받아준다.
영주, 꽃 바구니를 받으려 하면...
준호 제, 제가... 가, 갔다 줄게요. (그대로 뛰어 가버리는)
영주, 황당해서 바라보면
준호,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다.
영주, 따뜻한 미소로 바라본다.
씬 57 건물 로비
준호, 뒤돌아 영주가 따라오지 않은 걸 보고 안도한다.
그대로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씬 58 화장실
어떤 남자가 화장실로 들어가려다 뛰어나오는 준호와 부딪힌다.
준호, 나쁜 짓하다 들킨 사람처럼 급히 사라진다.
그 남자, 준호를 힐끗 쳐다보고는 좌변실로 다가가 문을 연다.
변기 위에 놓여있는 꽃 바구니. 리본에 ‘박용식님. 생일을 축하합니다’라고 씌여 있다.
그 남자, 황당해서 준호가 나간 출입문을 바라본다.
씬 59 빌딩 앞
준호, 헐레벌떡 뛰어온다.
영주, 오토바이 옆에 서 있다가 웃는다.
영주 고마워요.
준호 (돈을 내밀며) 저... 꼬, 꽃값이요.
영주 통장으로 넣어주는데...
준호 (당황해서) 그, 그러니까... 오, 오늘은...
영주 그냥 현금으로 줬구나. (집어넣고 웃는다) 태워다 줄 거죠?
준호, 화색이 돌아 끄덕이고는 오토바이에 오른다.
영주 (뭔가 미안한 부탁을 하려는 듯) 근데... 있잖아요.
준호, 무슨 일인가 쳐다보면...
씬 60 도로 (저녁 어스름)
영주가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준호가 뒤에 타고 있다.
준호, 영주의 허리를 잡으려다 차마 잡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
영주, 신나서 오토바이를 몰고... 입으로 거의 경주용 오토바이 소리를 낸다.
준호, 손처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어깨를 잡을까 말까하다가..
오토바이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준호, 영주 등에 탁 밀착된다.
준호, 화들짝 놀라서 떨어진 후에 보면...
교통경찰이 그들을 제지한 것이다.
경찰 헬멧 없이는 안됩니다. 내리세요.
영주 네? (하는 수없이 내리는) ...
준호 (사정하는) 하, 한번만... 바..봐...
경찰 헬멧 쓴 분은 타고 가시고... 없는 분은 걸어가던가 차를 타고 가세요.
준호 아, 아저씨...
영주 알았어요. (경찰을 등지고 윙크하며 애교로) 자기야...
준호 (당황하며) 으응...
영주 먼저 가. 나 차 타고 따라갈게.
준호 (경찰보며. 서툰 연기로) 그... 그래... (하고 행복한 미소)
준호, 오토바이를 타고 먼저 떠나고...
영주, 경찰 보며 어깨를 으쓱한다.
씬 61 도로 일각
이번에는 준호가 앞에, 영주가 뒤에 타고 달린다.
준호, 행복 그 자체다.
영주,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 친다.
영주 (손나팔) 있잖아요! 뒤돌아보지 말고 내 말 들어요!
준호 (엥? 그러나 고개 끄덕이고) ...
영주 (손나팔) 내일 저녁 영화 보여줄 수 있죠?
준호, 좋아서 입이 찢어진다. 순간, 오토바이 흔들리고... 뒤에서 영주가 어맛! 하며 꽉 안는
다.
다시, 오토바이 정상을 찾고... 그들이 탄 오토바이 멀어져 간다.
씬 62 자취방 (밤)
날아오를 듯한 기분으로 들어오는 준호.
자리에 털썩 앉는데... 자꾸 입가에 기쁨이 번진다.
준호, 문득 기타를 발견하고... 기타를 잡고 ‘러브 미 텐더’를 부르다가 문득 멈춘다.
주변에 있는 카세트를 가져다 놓고...
준호, 카세트 녹음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눈을 감고...
인서트. 준호의 상상으로 영주의 예쁜 모습들이 흐르며...
준호 (들뜬) 아, 아, 아... 영주씨... 안녕하세요. 준홉니다. 지금 기분이 무지 좋아요. 영
화를 보자고 했을 때 사고가 다 날 뻔했다니까요.
준호, 눈을 뜨고 미소를 짓는...
씬 63 영주네 꽃가게 (밤)
피자를 먹고 있는 영주와 이모.
영주 (피자를 물고 쭉 댕기면서) 이모... 낼 저녁 때 가게 좀 봐줘.
이모 왜?
영주 (건성으로) 그냥... 영화 좀 한 편 볼려구.
이모 누구랑?
영주 (귀찮은 듯) 남자랑.
이모 얘, 누군데 그래? 얘기 좀 해봐. 미남이야? 좋은 사람이야?
영주 어휴... 6시에 오기로 했으니깐... 직접 물어봐.
이모 얘... 너도 이젠 남자를 신중하게 만나야 할 나이야.
영주 아이고... 그냥 영화 한 번 보는 거야.
이모, 호기심을 느끼는 표정에서
씬 64 자취방 (오후)
준호, 순진하게 양복을 입고 거울에 비춰 보고있다.
경직된 그의 표정이 슬그머니 풀리며, 어설픈 미소를 짓는다.
씬 65 꽃집 (오후) + 내실
준호, 어색한 듯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들어온다.
영주 역시 나름대로 멋을 낸 복장으로 맞이한다.
준호 안녕하세요.
영주 어머, 일찍 왔네요.
영주 양복 입으니까 딴 사람이다.
준호 (머리 긁적이며) ...
내실 안. 이모, 비품을 정리하다가 왔구나 하며, 문을 약간 열고 본다.
이모의 시선으로... 준호의 얼굴이 보인다.
이모, 어디서 봤는데... 하며 미간을 지푸리고...
영주 오토바이는 두고 왔나봐요.
준호 네...
내실 안.
이모 (의아한) 오토바이? (하다가 순간, 표정이 굳어지면)
인서트. 사고 당시, 이모의 시선으로 본 준호의 얼굴!!!
영주 (E) 이모, 나갔다 올게.
이모, 내실 문이 확 열고 나간다.
이모 영주야! 잠깐만!
준호와 영주, 반사적으로 뒤돌아 서고...
준호, 이모와 시선이 부딪힌다.
이모 (다가오며) 이봐요. 나 알죠?
준호 (얼어붙은 채) 네? ...
이모 (싸늘하게) 뻔뻔스럽긴...
영주 ...?
이모 당신이 우리 영주치고 달아난 그뺑소니 아니냐구?...
영주 그게 무슨 소리야, 이모? (하며 이모와 준호를 번갈아 보는)
준호,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못한다.
이모 이 사람이 널 치고 달아났던 그 사람이야, 알아?
준호 (고통스런) ...
영주 (몰아부치는) 사실이에요?
준호 (벼랑 끝에 몰린) ... 네...
영주, 한 걸음 물러서며 경멸이 담긴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본다.
준호, 그 눈빛에 제압 당하고 만다.
영주 (싸늘한) 정말 나쁜 사람이군요.
준호 영주씨....
영주 신고는 안 할테니... 돌아가 주세요. (돌아선다)
준호 영주씨... 제 말 좀...
이모 이봐요! 가란 소리 못 들었어요?
준호, 애처롭게 영주를 보지면, 영주는 돌아서지 않는다.
영주, 뚜벅뚜벅 걸어서 내실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아 버린다.
준호, 닫힌 내실 문을 바라보다 힘없이 뒤돌아 선다.
이모 (E) 이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마!
준호, 문을 열고 나간다. 쓸쓸한 뒷모습이다. 러브 미 텐더 흐르며...
씬 66 집필실
명수, 마치 쓸쓸한 준호의 뒷모습을 보는 듯한 표정이다.
이윽고, 자판에서 손떼고 마른 세수를 하는데...
씬 67 준호의 방
불꺼진 방.
준호, 무릎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웅크리고 있다.
씬 68 꽃집
영주, 팔짱을 낀 채 창 밖을 멍하니 보고 있다.
도시의 불빛, 쇼윈도우에 드리우고....
씬 69 집필실
카세트에서 돌아가는 테입. 지익- 노이즈만 흘러나온다.
명수, 스톱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이젝트를 눌러 테입을 꺼낸다.
명수 (Na) 준호의 녹음은 일단 이렇게 끝나 있었다. 영주에게 말할 수 없었던 양심의 가
책과 사랑의 설레임을 담은 일종의 고백록이었다. 그런데 준호는 테입을 영주에게 전해주었
을까? 아니면, 영주에게 가지 못하고 재활용센타를 통해 내게로 온 것일까? 나는 해답을 가
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영주일 거라 생각했다.
씬 70 거리
명수, 착잡한 심정으로 차를 몰고 있다.
씬 71 꽃집 앞
명수, 차에서 내린다.
씬 72 꽃집 안
명수, 들어오면....
영주 어머, 안녕하세요? 오늘도 백합?
명수 (그게 아니라) 저... 실례이지만 혹시 준호라는 청년 알아요?
영주 네....?
명수 왜... 택배하던...
영주 (그제서야 기억나는) 아....
명수 저... 그 친구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게 있어서요.
영주 왜 그러시는 지 모르겠지만... 준호씨는 여기 안 와요. 마지막으로 본 게 일년도 넘
었으니까요.
명수 네? 일년이요?
영주 (고개를 끄덕이면) ...
씬 73 꽃집 앞 (새벽)
준호, 고개를 떨군 채 벌서듯 서 있다.
영주 (E) (싸늘한) 무슨 일이죠?
준호 (놀라) 아... 영주씨...
영주 (다가와 자물쇠를 여는) 서로 할 얘기 없을 텐데요.
준호 저... 드릴게 있어서요.
영주 (자물쇠 풀고 보는) ...
준호 (주머니에서 테입을 꺼낸다) 이거... 제가 말이 서툴러서...
영주, 테입과 준호 얼굴을 번갈아 보다
영주 (매정하게) 제가 그걸 왜 받을 이유가 없는 거 같은데요. (문열고 돌아보며) 다신
오지 마세요.
영주,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린다.
준호, 테입을 든 손을 차마 거두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데...
영주 (E) 그땐 정말 속은 것 같고 화가 났었지만...
씬 74 꽃집 안
테이블에 찻잔을 두고 영주와 명수 앉아있다.
영주 이제 그런 감정은 거의 없어졌어요. 오히려 준호씨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한
테... 여러 번 말하려고 애쓴 걸 알거든요. 가끔... 어디서 뭐하나 궁금해요.
명수 그럼... 그후 소식이 전혀 없었나요?
영주 네... 얼마 전 택배회사에 전화했더니... 그런 사람 없다고 하더라구요.
명수 그 택배회사 전화 번호 좀 알려 줄래요?
영주 네. (일어나 서랍을 열고 찾는다) 어기 어디 있을 텐데... 아, 여?다. (스티커를 건네
주고)
명수 (받는) ...
씬 75 택배 회사 앞
명수와 용식이 나온다. 오토바이들이 늘어서 있다.
용식 벌써 해가 바뀌었네요. 아마 꽃집 아가씨와 데이트한다던 날이었을 거예요. 원체 말
없는 애가 엄청 들떠있었는데... 데이트는 안하고 풀이 팍죽어 들어왔어요. 그리고 카세트에
뭔가 녹음을 하더라구요.
인서트. 녹음을 하는 준호
용식 (생각하기도 싫은 듯) 그리고 다음날은 아침 일찍 어딜 나갔다 오더니 하루종일 술
만 마셔댔어요.
명수, 용식에게 담배를 권하고, 자신도 하나 문다.
용식, 담배를 푸욱 품으면....
씬 76 자취방 (밤)
준호, 소주를 나발 불고 있는데, 용식, 문을 열고 들어온다.
용식 마, 왜 그래? (술병을 빼앗고) 술도 잘 못 마시는 게. 어젠 녹음기 앞에서 청승을
떨더니...
준호 청승? (훗... 두리번) 내 카세트 어딨지? 아, 여?다. (찾아서 녹음버튼을 누르며) 영
주씨... 저 준홉니다. (버튼이 눌러지지 않자 다시 보는) 아... (주머니에서 테입을 꺼내 넣고
녹음 버튼을 누른다) 영주씨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용식 (어이구.. 보는) ....?
준호 (스톱을 누르고... 슬픈) 용식아...
용식 왜 임마.
준호 근데... 아마... 알지 못할 거야.
용식 뭘?
준호 나... 누구한테... 사랑한다 말해본 적 없거든.
용식 다 알거야, 임마! 사랑을 어떻게 감추냐.
준호 그런가? (다시 녹음 버튼을 누른다) 영주씨... 사랑해요. 아냐.. 아냐... 이건 아냐.
용식 (쳐다보면) ....?
준호 직접 말해야 돼. 나 있잖아. 지금 영주씨한테 가서 사랑한다고 말해야겠어.
용식 가지마. 지금 몇 신줄 알어?
준호 아냐... 영주씨, 사랑해요. 이렇게만 말하고 올래. 금방 올게.
준호, 스톱 버튼을 누르고 비틀비틀 일어선다.
용식 (말리는) 야...
준호 영주씨한테.... 말하고 올게. 사랑한다고만 말하고 올게.
용식 (잡으며) 갈려면 내일 가..
용식, 일어나서 잡고, 준호 그를 밀쳐내고 문 밖으로 나간다.
씬 77 자취집 앞
준호, 비틀거리며 뛰쳐나와 오토바이에 올라타 시동을 건다.
용식 (문을 열고 나오는) 야! 너 미쳤어.
준호, 단호한 표정으로 용식에게 붙잡히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출발한다.
용식, 기를 쓰고 뛰어가 보지만... 어림없다.
용식 (울상인) 야....!
씬 78 코엑스 몰
명수, 걸어가고 있다.
씬 79 몰안 카페
기다리던 영주, 명수가 자리에 앉는다.
영주 무슨 소식 좀 들으셨어요?
명수, 대답 대신 테입을 내놓는다.
영주 (기억나는) 이거 어디서 나셨어요?
명수 준호씨 친구요. 영주씨한테 전해 주라던데요.
영주 아아... 근데 준호씨는 지금 뭐 한대요?
명수 .....
영주, 더 이상 묻지 않고... 추억을 떠올리듯 짠하게 테입을 바라본다.
씬 80 골목 입구
굉음과 함께 준호의 오토바이가 튀어나온다.
서 있던 사람, 비명과 함께 아슬아슬 피하고....
준호, 위태위태하게 멀어져 간다.
씬 81 영동대로
준호의 오토바이, 신호를 무시하고 위잉... 달린다.
준호, 절박한 심정이다.
오토바이 언덕을 넘어가고 있다.
용식의 오토바이가 언덕 너머로 사라진다.
잠시후... 끼익하는 소리와 파열음 들린다.
씬 82 택배회사 앞
용식, 담배 불똥을 튀겨서 날린다.
용식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넘었어요. 걔 물건들 중에서 쓸만한 건 다 재활용 센터
에 넘겼어요. 카세트도 그렇고, 통기타도 그렇고...
명수 (기억나는) 아... 통기타...
용식 (자기 오토바이에 오르며) 새로 이사했는데... 집이 좁아서 둘 데가 있어야죠. (시동
걸며) 그럼... (출발한다)
명수, 멀어지는 오토바이를 본다.
씬 83 카페
마주앉은 명수와 영주, 말없이 바라보는데... F.O
씬 84 꽃집안
오디오를 통해서 카세트를 듣고 있는 영주
가요가 나오다가 툭 끊기면... 준호의 녹음 내용이 나온다.
영주, 깜짝 놀라는...
준호 (E) 영주씨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 (툭 끊겼다가) 영주씨... 사랑해요.
아냐.. 아냐... 이건 아냐. ............ 직접 말해야 돼. 나 있잖아. 지금 영주씨한테 가서 사랑한
다고 말해야겠어.
용식 (E) 가지마. 지금 몇 신줄 알어?
준호 (E) 아냐... 영주씨, 사랑해요. 이렇게만 말하고 올래. 금방 올게.
영주, 짠한 표정이다. 눈물이 핑 도는....
다시 가요가 흘러나오다가 툭 끊기면...
준호 (E) (들뜬) 아, 아, 아... 영주씨... 안녕하세요. 준홉니다. 지금 기분이 무지 좋아요.
영화를 보자고 했을 때 사고가 다 날 뻔했다니까요. 아.. 저 말 잘하죠? 아.. 근데... 영주씨
앞에서는 왜 주눅이 드는 지 모르겠네요.
영주, 눈은 울고 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도는...
준호 (E) 저... 영주씨한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어요. 흠흠... (어설픈 기타 반주 소
리와 엉성한 발음으로) 러브 미 텐더, 러브 미 스위트. 네버 렛 미 고....
씬 85 사건 현장
연기가 피어오르는 오토바이 주위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다.
사람들 사이로 언뜻언뜻 준호의 시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