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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대본

[라이카의 여름] 김미진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2.05.21|조회수726 목록 댓글 0

[라이카의 여름] 김미진

 

 

 

 

 

 

 

 

S1.  검은 화면
타다다닥..타이프 소리와 함께 자막, “죽음을 대하는 태도”

S2. 영안실
향불이 피워 오르는 할머니 영정앞에
조문객들이 절을 하고 있다.
그 옆으로 상복을 입고 늘어선 상주들.
엄숙한 얼굴로 서있는 신우 아빠,
화장을 곱게 하고 입을 앙 다문 채 서있는 신우 엄마,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고생-신우.
한 무리의 나이든 조문객이 엄마를 보고 쑥덕댄다.

조문객1 어허 거 참. 말세다 말세. 며느리 얼굴 좀 보소. 허연 분칠이 웬말인교?
조문객2 내 살다 살다 저리 독한 년 첨 본다 카이.

그 소리에 슬며시 고개를 드는 신우, 엄마를 흘깃 본다.
눈을 내리깔고 미동도 않는 엄마.
신우, 하품이 새어나오는 걸 억지로 참는데
율(19)이 절을 하러 들어온다.
신우를 보고 살풋 웃는 율, 그러나 심드렁하게 외면해버리는 신우.

S3. 병원 밖 벤치
신우와 율, 하드를 먹고 있다.

율  (서류철을 건네며) 자.
신우 뭐야?
율       기말고사 대신. 시험지 열장, 수학숙제, 그리고 여름방학 보충수업 계획표.
신우 (찡그리며) 보충 한대?
율  당연하잖아, 수능이 얼마 남았다고. 그리고 너희 반 방학 시작하고 바로  상담이래.
신우 또? 지겨워.. 할말도 없는데..
율  그냥 하던 얘기 하는거지 뭐. 어느 대학 갈건지... 무슨 과 갈건지.
신우  그 말이 그 말이잖아 븅신아.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는 신우, 몸을 크게 젖히고 하늘을 본다.
땡볕이 쏟아지는 눈부신 하늘.

신우 ...저 위에 둥둥 떠서 잠이나 실컷 잤으면 좋겠다...

멍하니 하늘을 보는 신우의 코에서 한줄기 코피가 주륵 흐른다.
대수롭잖게 슥 코피를 훔쳐내고 살포시 눈을 감는 신우.
어디선가 맴맴... 매미소리가 시끄럽다.

타이틀 라이카의 여름

S4.  신우 집 거실
조용한 거실 가득 TV소리가 흐른다.
비스듬히 누워 과자를 씹으며 티비를 보고 있는 신우.
안방 문이 열리고 엄마가 나오자 얼른 티비를 끈다.
유령처럼 축 늘어져 부엌으로 가는 엄마
물 한잔 마시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간다.
리모콘을 던지고 일어서는 신우.

S5.  동 안방
화장대 위에 놓여진 할머니 영정을 보며 눈물을 찍어내는 엄마,
문 열고 신우 들어오자 얼른 눈물을 감추고 이부자리에 눕는다.
두 팔로 엄마를 꼭 끌어안으며 등 뒤에 파고 드는 신우.

신우  엄마.
엄마 ...왜.
신우 할머니 돌아가신 게 그렇게 슬퍼?
엄마 ...슬프긴 누가. 가실 때 되서 가셨는데.
신우 난 엄마가 누구보다 슬퍼하는 거 알아. 엄마가 장례식장에서 화장하고  눈물도 안흘렸다고 다들 뭐라 했지만, 실은 아빠보다 엄마가 더 서운해 하잖아. 맞지?
엄마  ...아니야. 아빠 엄만데, 아빠가 더 슬프지.
신우 할머니, 여자가 맨얼굴로 다니는거 질색하셨어. 그래서 화장한거 아냐?  
엄마  ......
신우   엄마.
엄마  ...응.
신우 담부턴 화장해도 눈물은 좀 흘려. 그렇게 참으면 눈 아프잖아.
엄마 ...담부터?
신우 뭐, 또 누가 죽거나하면 말이야.

엄마, 눈물이 그렁한 채 딸의 손등을 쓰다듬는다.

S6.  신우 집과 율의 집 앞길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 율.
앞집에서 신우가 나온다.

율   (반갑게) 어! 좋은 아침~ 오늘부터 학교가?
신우   보면 모르냐.

율, 뭔가 더 말을 시키고 싶어 다가가지만
신우,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는다.
시무룩하게 졸졸 따라가는 율.

S7.   학교 신우 교실
드르륵- 문열고 들어서는 신우, 두리번거린다.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현정과 다독거리는 을화
옆자리에 신우가 털썩 앉는다.

을화  왔어? 힘들었지?
신우  학교 땡땡이쳐서 좋았지 뭐. (턱으로 현정이 가르치며) 왜 이래?
을화  담탱이가 엄마 모시고 오래.
신우  왜 또?
을화  이 분이, 컨닝을 하지 않았겠니, 것도 담탱이 시간에. 겁이 없는건지 멍 청한건지....

신우, 쯧, 하며 현정을 보다, 갑자기 인상을 찡그리고 배를 움켜쥔다.

을화  그날이야?
신우  (진땀 흘리며) ...아닌데.. 요즘... 자주 이러네.
을화 몇일이나 병원에 있으면서 뭐했어? 진찰이나 받아보지.

종소리와 동시에 드르륵- 문이 열리고 담임이 들어온다.

을화 (궁시렁대며 일어서는) 암튼 칼이야 칼. 차렷! 경례~
반원 반갑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속 배를 주무르는 신우.
S8.  병원
 회전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돌며 기다리고 있는 신우.
문소리가 나더니 사람 좋게 생긴 의사가 들어온다.

의사  (앉으며) 미안. 오래 기다렸죠?
신우  괜찮아요. 저 주사 맞아야 되요?
의사 (씁쓸히 웃으며) 주사보다... 학생, 부모님 모시고 다시 한번 와야겠는데?
신우  왜요? 
의사  상의할게 있어서.
신우  뭐 돈 많이 드는 병이라도 걸렸어요?
의사  부모님 오시면 그때 알게 될거야.
신우  혹시 입원해야 되요? 그럼 좋은데. 보충도 안하고.
의사  .....
신우  ...어? 진짠가부네?
의사  다음에 보호자랑 다시 와요. (밖에 대고) 다음 환자분!
신우 잠깐만요!

(잠시 후)
심각한 분위기의 신우와 의사.

신우 (무거운 얼굴로) ...그래서 저희 양부모님은 절 안좋아하세요. 게다가 지 금 해외여행 중이시라 저 같은건 안중에도 없죠.
의사  (한숨쉰다) 그래...? 안됐네.
신우  말씀해주세요. 뭐에요?
의사 ......
신우 네?
의사  ...감기증상이 오래 됐다고 그랬죠?
신우 네.
의사 코피도 자주 흘리고.
신우 네.
의사 생리도 오래 하고 열도 나고 오늘 보니 백혈구 수치도...
신우 (버럭) 아까 다 말씀 드렸잖아요! ...뭐에요?
의사 이런걸... 우리 의사들은 급성백혈병이라고 불러요. 일종의 혈액암이죠.
신우  ...네에?
의사 (쓰게) ...암이라구, 학생.

S9.   지하철 역
 승강장에 서있는 신우. 멍하다.

의사 (E) 급성림프구성혈액암은 청소년기에 종종 발견되는 암이에요. 매우 전 이가 빠르고 조기 발견이 어려워서 늦게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학생 처럼.
신우 ...암? 내가?

누군가 비틑비틀 신우 뒤쪽으로 다가온다.
사람들 모두 경멸에 찬 시선을 던지며 슬금슬금 피한다.
이상한 인기척에 신우, 뒤돌아 보면
부랑자인 듯한 한 중년 남자가 얼굴에 피를 질질 흘리며 풀석, 쓰러진다.
‘저위에.. 계단에.. 구걸... 어떤 못된 놈이 발로 차서...’  이런 말을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S10.   지하철 역 내 화장실 앞
물 묻힌 손수건을 건네는 신우.

부랑자 ...착하네. 요즘 어린 학생들, 남의 일 같은 건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신우  저도 오늘 같은 일 처음이에요. 평소엔 안이래요.

신우, 물수건을 빼앗아 손이 닿지 않는 곳의 피를 닦아준다.

부랑자  (빤히 보며) 이름이 뭐니?
신우  이신우. 아저씬요?
부랑자  ....중도.

S11.   학교 옥상
현정과 을화, 한 쌍처럼 꼭 붙어 담배피고 있다.

현정  바깥 쪽 향해서 피지마. 걸리고 싶어?
을화  걱정 마. 내가 닌 줄 아니.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신우. 두 사람에게로 다가오지만 눈치 못챈다.

신우   (목소리 깔고 흉내내며) 어이, 거기 학생들! 뭐하는 거야!

화들짝 놀라 주저앉는 둘.
신우, 피식 웃는다.

을화  뭐야, 너야? 깜짝 놀랐잖아~
현정  아이씨, 아까워. (떨어뜨린 담배를 줍고)
신우  적당히 좀 해. 그러다가.. 누구처럼 암걸린다?
을화  (일어서며) 암? 누가?
신우  나.

코웃음치는 현정과 을화. 그러다 진지한 신우를 보고.

을화  진짜?
신우  응. (손가락 세 개 펴 보이며) 앞으로 3개월.

투둑, 담배를 떨어뜨리는 두 사람.

현정  혹시.. 폐암이니?

어이없어 째려보는 을화, 킥킥거리는 신우.

(시간 경과)
못쓰는 책상을 붙여놓고 나란히 누워있는 세 사람.

을화  소감이 어때?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사망선고 받은 기분이?
신우  아무 느낌 없어. 앞으로도 한 50년은 더 살 것 같애.
을화  엄마 아빤 아셔?
신우  (도리도리)
현정  (일어나며) 잘못 된 거 아냐? 다른 병원 가서 다시 검사 받아봐.
신우  (피식 웃고) 그런데 너넨 친구가 죽는다는데 눈물도 한방울 안흘리냐?
을화  ...그러게. 드라마 같진 않다 야.

갑자기 시무룩해지는 세 사람.

신우  (벌떡 일어나며) 뭐, 이제부터 수능 공부 다 때려치우고 실컷 놀지 뭐.
을화  애초에 수능 준비 같은 건 안했잖아.

그 말에 모두 웃지만, 어쩐지 힘이 없다.

S12. . 병원
병원에 들어가는 을화와 현정.

S13. . 병원 진료실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있는 을화.

의사 음.. 빈혈이 좀 있네.
을화  (화들짝 놀라) 얼마나요? 위험한가요?
의사  (흠칫) 아니. 이정도는 여학생들에게 흔한 정도에요. 철분을 좀 섭취하 면 아무 문제 없어요.
을화 그것뿐이에요? 정말, 괜찮은거죠? 저 충격받을까봐 일부러 숨기는 거 아 니죠?
의사  (벙 쪄) ... 없어요. 건강해요.

S14. . 길
번화한 거리를 걸어가는 을화, 현정.

현정  난 니가 신우 병 확인하러 간 줄 알았어. 갑자기 병원은 왜 간거야?
을화  신우보고 무서워졌어.
현정  ...?
을화  죽음이란게,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거. 남의 일인줄만 알았는데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현정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을화 ......
현정  신우, 이제 어떻게 할까?
을화  글쎄...

S15. . 신우 집 부엌
식사하는 네 가족. 숟가락 소리만 들릴 뿐, 적막하다.
신우,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며 눈치를 본다.

신우 ...저...기 아빠 나...
아빠 당신, 왜 그래? 괜찮아?

일제히 엄마에게로 향하는 시선들.
고개를 떨구고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싸해지는 엄마.

해람 (울먹이며) 엄마 울지마... 울지마...
엄마 ...어머님이 담그신 김치도 이게 마지막이네...

엄마,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조용히 숟가락을 놓는다.
애틋하게 보며 엄마를 다독이는 아빠.

아빠 당신도 참. 자, 어서 밥먹자. 람이도 어서 먹어. 신우, 아까 뭐라고?
신우 네?
아빠 뭐 할말 있던 거 아냐?
신우 (물끄러미 엄마 보며) 아니에요, 아무것도.

S16.   신우방
침대위에 앉아 문자를 날리고 있는 신우.
배가 갈라진 저금통이 뒹군다.
<낼 6시 홍대앞. 내가 쏜다 바방! >

S17. . 홍대 앞
기다리고 있는 현정. 막 신우가 도착한다.

신우  을화는?
현정  좀 늦을거야. 걔네 엄마, 장난 아니잖어.
신우  (알만하다는 듯 고개 끄덕이고)
현정 그나저나 니가 웬일이야? 총을 다 쏘고? 마지막으로 인심 팍팍 쓰는거 야?

말해놓고 아차 싶어 얼른 입을 막는 현정.

신우  됐네. 나, 저금통 다 털었다? 뒤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돈부터 팍팍  쓰고  싶은 거 있지. (멀리 보며) 근데 얘는 언제 오는 거야?
현정  저기 온다!

S18.   바 구석자리
기가 찬 표정으로 을화를 보고 있는 현정과 신우.
을화, 술병을 부여잡고 술주정이다.

을화  ...내가, 왜 공부 열심히 하는 줄 알아? 우리 집 간섭에서 벗어날 길은 그 것밖에 없거든. ...죽도록 공부해서 외국으로 튀는 게 꿈이었는데....
신우  얼마 안 남았네. 가면 되잖아.
을화  못가! 이걸론 못간다고! ...이대로 의대가고, 의사되고, 엄마가 물고 온 남 자랑 결혼하고 그렇게 되고 말겠지? 에이씨, 그럼 콱, 죽어버릴거야!
 
 그 말에, 반사적으로 시선이 모이는 세 사람. 분위기 싸늘해진다.

을화  ...미안.
신우  늬네가 그러는게 더 불편해. 것보다 의사가 왜 싫어? 근사하잖아.
을화  근사? 인턴 딱지 떼고부턴 주말마다 선봐야 할거다.
현정 그게 왜 문제니? 복이지. 정 싫음 내가 대신 나갈게.
을화 (흘겨보고)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막중한 책임도 싫어. 난, 좀  더 자유롭게 막, 막살고 싶단 말야.
현정  막? 어떻게?
을화  음.... 숨겨진 보물 찾기 같은거!
신우  만화를 봐도 너무 봤어..
현정  보물섬이라도 찾아 갈꺼야? 그럼 무슨 과를 가야하나...
을화  (눈을 반짝이며) 일제시대 때 일본 부자들이 우리나라에 숨겨둔 보물 얘 기 알아? 갑자기 해방이 되는 바람에 찾지도 못하고 돌아갔데. 그런데...

(시간 경과)
꽤 마셨는지 발그레한 아이들. 파장 분위기다.
뚜껑만 딴 술병을 들어보는 을화.

을화 이거 아깝다.
현정 반납할까?
신우 아냐, 내가 가져갈게.

S19. . 지하도
일회용컵에 술을 따르고 안주 한줌을 펼쳐놓는 신우.
중도, 빙긋이 웃기만 할 뿐 마시지 않는다.

신우  왜 안 마셔요? 먹던 거라 싫어서? 따자마자 가져온 건데.
중도  아니. 그게 아니고...
신우  술 못 마셔요?
중요  (힘없이) 오늘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 빈 속에 먹으면 탈 나. 이 생활에 서 가장 중요한 철칙 하나, 절대 병나지 않는다. 허허.

신우, 말문이 막힌다.

신우  (자리털고 일어서며) 일어나요.
중요  왜? 기운 없는데...
신우  밥 먹으러 가요.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S20. . 근처 슈퍼앞 파라솔 테이블
김밥, 순대, 떡볶이 등등을 술과 함께 펼쳐놓고 있는 두 사람.
중도, 라면국물을 시원하게 마신다.

중도 아... 이제 살 것 같다.
신우  (오징어 다리를 물고) 아저씨, 오늘처럼 굶는 일, 자주 있어요?
중도  저~기서 점심때 무료급식 나눠주니까 하루 한 끼는 먹어.
신우  오늘은 왜 안 드셨어요?
중도  밥 때를 놓쳤거든. 기운이 없어서 자다 보면 종종 그래. 허허허.
신우  허,허,허,가 아니에요. 그러다 굶어죽으면 어떡해요.
중도  나한테 부양할 처자식이 딸린 것도 아니고, 아쉬울 건 없지. 부모님이 이  꼴을 안보고 가신게 얼마나 다행인지......
신우 정말 후회 안하세요?
중도 나는 덤으로 사는거다... 본전은 원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홀가분해.  이런 말, 이해하기 힘들지?
신우  그럼 아저씬, 죽는 게 두렵지 않아요?
중도  두렵지 않은 건 아니지만 친근하게 생각하지. 오늘도 내일도 지금 당장 도 곁에 있다, 하고.
신우 ......

S21. . 신우 동네
인적도 없이 가로등만 환한 길을 걸어오는 신우.
집에 들어가려다 문득 앞집 마당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본다.

S22.   율집 마당
끙끙거리며 물구나무서기를 하려고 용쓰는 율.

신우  (E) 그게 그렇게 안되냐?
율  어! (무지 반갑다. 그러나 신우 흉내내며) 보면 모르냐.
 
(잠시 후)
율이 자리를 잡고 있던 나무를 향해 힘껏 달려가는 신우
두 팔로 땅을 짚고 다리를 휙 넘기는데
나무에 다리가 딱 붙으며 제법 자세가 나온다.

율  우오오-! 된다, 된다!

신우의 눈에 거꾸로 된 밤하늘이 펼쳐진다.
별이 촘촘히 박힌 여름하늘.
하늘이 점점 핑- 돈다.
풀썩 쓰러지는 신우.

율  신우야!
신우  (한참 만에 일어나며) 괜찮아. 좀 어지러운 것 뿐야. 야, 저기 좀 봐.

고개를 드는 율.
두 아이, 한참이나 홀린 듯 하늘을 본다.

율  ...신우야.
신우  (건성으로) 응.
율  나 너 좋아해.
신우  (하늘만 보며) ...알아.
율  (티없이 맑은) 유치원 때, 우리 같이 목욕한 그날부터 쭉 좋아했어.
신우  어린 것이 일찍부터 밝혔네.
율 수능 끝나고 나면... 나랑 사귀어 줄래?

벙 쪄 바라보는 신우.
그러나 율, 너무 너무 진지하다.

신우  (빤히 보다) ...좋아.
율  좋다구? 저, 정말? 정말이지? 딴소리하기 없기다?
신우  알았다구. 대신,
율 ...대신?
신우 니가 이거 성공하면 그 순간부터 사귀자. 어때?
율  진짜? 
신우 진짜!  ...나도... 남자 친구 하나쯤은... 있어야지.  
 
 영문을 몰라 보는 율과, 후후후 웃는 신우.
 
S23. . 학교 신우 교실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담임.

담임  자, 지금 앞에 종이에다가 이번 여름방학 계획표를 작성한다. 몇시기상,  몇시까지 무슨 과목, 특히 수학!, 목표점수까지 2개월간의 계획을 아주  구체적으로 짜.

아이들, 우우- 원성을 보내며 억지로 끄적이기 시작한다.
난감한 듯 종이를 뚫어지게 보는 신우, 펜만 굴린다.
책상 사이를 다니다 한 남학생 앞에 멈추는 담임.

담임  (회초리로 가방을 찔러보며) 이거, 뭐냐?

진땀을 흘리며 우물쭈물하는 남학생.
담임, 가방을 확 뒤집으면
쏟아져 나오는 비디오 테입과 시디들.
 
담임  으이구, 이 자식...

모두 깔깔거리는 와중에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신우, 드디어 끄적이기 시작한다.
‘죽기전에 꼭 해야 하는 것들’

S24. . 교무실
담임앞에 서있는 신우.

담임   (눈이 휘둥그레져) 뭐어?
신우 대학 안간다구요.
 
노트를 잔뜩 들고 들어오는 을화, 신우 옆에 선다.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살피고.

담임  어, 반장 수고했다. (테입 주며) 이거 소각장에 버려. 이신우, 너 이자식..
E 종소리
담임  너, 일단 가. 일단 가고, 나중에 상담하자.

S25.   신우집 거실
탕수육에 자장면을 잔뜩 시켜놓고 기대하는 얼굴로 앉아있는 세 친구.

신우  빨리 좀 해봐. 람이 올 때 됐어.
을화  기다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리모콘으로 돌려가며) 근데 너,  담임이 왜 그래?
신우  뭐? 아... 보충 안한댔거든.
현정  정말? 좋겠다. 나도 병 걸렸다고 거짓말 하고 빠질까?
을화  (현정 째려보고)
현정 (시선 피하며) 아! 나올 껀가봐!

화면에 집중하는 세 사람.
이내 거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휘둥그레지는 여섯 개의 눈동자
 들고 있던 탕수육이 투두둑, 떨어진다.

S26. . 신우 방
침대에 누워 패션 잡지를 보고 있는 셋.

현정  자장면이 어디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네. 어휴- 남자들은 저런걸 뭐하러  기를 쓰고 본데?
을화  실망이야. 담엔 제대로 된 걸 구해보자. 아무래도, 저건 하급인거 같애. 현정 (잡지 넘기다) 헉! 이 남자 몸좀 봐, 죽이지?
을화 (흘깃 보고) 오~ 90점은 되겠다? 캬~ 이 키스를 부르는 입술!
신우  죽기 전에 이런 입술하고 키스 한번 해보고 죽어야 하는데...

신우 등을 찰싹 때리는 을화. 신우 악!

신우 (등 만지며) 그런데 너네... 키스 해봤어?
현정  해본 적 없지만... 하고 싶은 사람은 있어.
신우,을화 (화들짝 놀라) 누구?
현정  (부끄러워하며) 김주현.
을화  김주현? 김주현이 누구야? 몇 반이야?

하다가 빙글빙글 웃는 현정이 이상한 신우, 을화.

을화  설마.... 수학 김주현? 우리 담탱이?
현정 (고개 끄덕이고)
신우  야! 너, 맨날 그렇게 야단맞으면서 그러고 싶니?
현정  싸우면서 정든단 말도 있잖아. 말할 때 가만 보면... 입술이 무지 이쁘다?
을화  그 입에서 온갖 구박과 쫑크가 나와도?
현정   (끄덕)
신우  이.. 변태!

달려들어 퍽퍽 두들기는 신우, 을화.
깔깔거리며 배게 폭탄을 피해 창가로 빠져나오는 현정.
무심코 창밖을 보다 깜짝 놀란다.

현정    쟤, 뭐하는 거야?

착착, 옆에 서는 신우, 을화.

을화  쟤, 걔지? 3반 1등 강 율.

가만히 율을 보는 세 여자.

신우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몇 점?
을화,현정 (휘둥그레져 보며) 너어~!

S27.   율의 집 마당
나무에 기대 거꾸로 서있는 율.

신우  (빼꼼히 얼굴 들이밀며) 하이.
율  (힘들게) 하..이...
신우  잘 되가? 언제쯤이면 우리가 사귈 것 같니?
율  (부들부들 떨며) 그..글쎄. 노력하고 있어.
신우 그래? ... 너... 혹시 여자랑 키스 해봤어?

 쿵, 앞으로 꼴아박는 율.

신우  ...안해봤구나?
율  (몸을 일으키며) 키스?

신우, 느닷없이 몸을 숙여 율의 입에 맞춘다.

신우 (입을 떼며) 어차피, 사귈거니까.

신우, 기분 좋은 듯, 입술을 만지며 후딱 건너편으로 가버린다.
두근거린 채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율.

S28. . 신우 집 작은 방
할머니 유품을 정리하는 엄마와 신우.
엄마, 서랍 맨 밑에 숨겨져 있던 작은 공책을 발견한다.

엄마 이게 뭐지?

펴보면, 서투른 한글이 깨알같이 쓰여진 낡은 일기장.
엄마, 애틋한 눈으로 읽으며 애잔한 미소가 번진다.

엄마  이것 봐라 신우야. 할머니 비밀 일기장 인가봐. (넘기며) 할아버지가 할 머니 속 많이 상하게 하셨나부다...

신우, 갑자기 노트를 탁 덮어버린다.
의아하게 보는 엄마.

신우 할머니, 기분 나쁘실거야.

엄마, 감동한 듯, 대견하게 신우를 본다.

엄마 (머리 쓰다듬으며) 우리 신우, 철들었네.
신우 ......

S29. . 신우 방
침대에 주저앉아 일기장 보고 있는 신우.

신우  어우... 유치해 유치해. (또 넘기고) ...미쳤어 미쳤어.

S30. .마당
일기장이며 편지들을 태우는 신우.

S31. . 학교 체육관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신우, 을화, 현정.

현정,을화 뭐어?
신우   내가 줬던 편지, 다 돌려 달라구.
현정  어딨는지 모르는데? 그런데 너 나한테 편지 쓴 적 있었니?
신우  집에 가서 찾아봐. 그리고 한 장도 빠짐없이 다 돌려줘.
을화  너 무섭게 왜 그래? 이건 완전히 절교선언 하는 분위기잖아?
신우  그런거 아냐. 그냥.. 나중에 나도 없는데 그런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 나빠서 그래.
을화  나중에?

그제야 무슨 말인지 통한 세 사람. 싸늘해진다.

현정 너.... 진짜 못됐다.

표정이 굳어 신우를 밀치고 뛰어가는 현정.

신우  어, 야! (멀리 현정보며) ...오버하네 참. 사람 무안하게.
을화  섭섭하긴 나도 마찬가지야.
신우  (보며) ...야.
을화  우린, 너한테 그것밖에 안되는 사람이야? 최소한, 추억할 꺼리는 남겨둬 야 되는 거 아니니? 그렇게 싹쓸고 사라질거면, 우린 대체 왜 만난거니?

쌀쌀맞게 돌아서 빠르게 가버리는 을화.
신우, 우두커니 서 난감한 듯 한숨쉰다.

S32. . 율의 방
공부에 열중하는 율.
딱! 돌멩이가 창문에 날라온다.

율  어떤 자식이야!

내다보면, 컵라면 두개를 흔들고 있는 신우.

S33. .율의 집 마당
평상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율과 신우.

신우  넌 무슨 영화를 얼마나 볼거라고 그렇게 죽자살자 매달리냐?
율        딱히 하고 싶은 건 없는데, 1등은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일종의 보험이 지 뭐.
신우  독한 놈...!
율  (기죽어) 신우 넌, 학교 어디 갈지 정했어?
신우  ...너,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책 알아?
율  샐린저가 쓴거?
신우  거기보면 주인공이 그러잖아. 호밀밭에 앉아서 누가 절벽에 떨어지지나  않나 지켜보는 거 말고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나도 그래.
율  우리나라에 호밀밭은 없는데. 외국 나가 살거야?
신우  븅신. (하늘 보며) 난, 우주에 나가보고 싶어. ...러시아에서 최초로 인공 위성을 쐈을때 말야, 그 안에 개를 한 마리 넣어 보냈데.
율  알아. 스푸트니크호의 라이카.
신우  (흘기며) 넌 어째 모르는 게 없냐? 재미없게.
율    (풀죽어) ...미안.
신우  까만 우주에 둥둥 떠서 질릴때 까지 지구를 보는거야. 기분 죽이겠지?  내가 우주에 나가려면 몇 번을 환생해야 할까? 열 번? 스무 번?
율  이번 생에서도 충분히 가능해. 달에도 가고 화성도 가는 세상이잖아. 호 호 할머니가 되서야 가능하겠지만. (수줍게) 내가.. 잘 데리고 가줄게.
신우  ...물구나무서기 잘돼?
율  ...아직.
신우  너, 그거 3개월 안에 못하면 꽝이야.

S34. . 율의 마당/신우 방
-입술을 꽉 깨물고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율. 눈이 반짝 빛난다.
-약을 삼키는 신우. 책상위에 지도를 쫙 펼친다.

을화 (v.o) 바다?

S35. . 학교 복도
시끌시끌한 복도 한쪽에 서 있는 신우, 을화, 현정.

현정  싫어. 고3이 무슨 방학이야? 담주부터 바로 보충인데. 넌 곧 죽을거라  상관없는지 몰라도 우린 안그래.
을화  야-
현정  나 먼저 갈게.

 빠른 걸음으로 가버리는 현정.

신우  (현정 쪽 보며) ...오래가네..
을화  미안한데 나도 안될거 같애. 엄마가 과외 붙였어.
신우  그래. 할 수 없지 뭐.

S36.   신우집 거실
가부좌를 틀고 무섭게 앉아있는 신우와
잔뜩 긴장해서 무릎 꿇고 앉아있는 해람.
신우, 해람의 일기장을 보다가 해람 머리에 꿀밤을 때린다.
악! 소리 지르며 머리를 감싸안고 원망스럽게 보는 해람.

신우  몇 번이나 말해? ‘재밌었다’ 할 때 재자는 ㅏ,ㅣ야 ㅓ,ㅣ가 아니고, 고쳐.
해람  네.
신우 으이구... 너 누나 없음 어쩔거야? ...속상하게 정말. 콩알만한게.

S37.   상담실
상담하고 있는 을화.

담임 (성적표 보며) 의대 갈 성적은 되니까 걱정할 건 없고, 마무리 정리 잘하 고 컨디션 조절에 신경써.
을화  ....네.
담임  4군 다 의대지? ..응? 고고학? (보며) 욘석아, 라군이라고 대충 쓴거야? 

담임, 빨간 줄로 쫙쫙 긋고 의대라고 적는다.
우두커니 보는 을화.

담임 됐다. 나가봐.

을화, 문을 열면 현정이 기다리고 서있다.

S38. . 복도
현정을 기다리는 을화.
상담실 문이 열리고 현정 나온다.

을화  뭐래?
현정  (흉내내며) 주현정, 너 무뇌아냐? 고생 그만하고 시집이나 가라.
을화  재수. 그래도 좋았겠다? 키스를 부르는 입술이랑 마주보고 앉아서.
현정  (힘없이 웃고) ..신우, 상담하러 안왔지?
을화  너라면 오겠냐?
현정, 을화 ......
율 (E) 저... 1반 이신우, 친구들이지?

돌아보는 둘.
율이 우두커니 서있다.

S39. . 기차역
배낭을 맨 신우와 율.
율, 고개를 빼고 기웃거린다.

신우  너 왜 그래? 기차시간 늦겠다. 얼른 가.

마지못해 끌려가며 연신 뒤돌아보는 율.

S40. . 기차안
차창 밖으로 싱그러운 여름 풍경이 지나간다.
이어폰을 한 짝씩 나눠 낀 채 머리를 기대고 잠에 빠진 신우와 율.

S41. . 자전거 대여점
흥정하고 있는 신우.
율은 시계를 보며 안절부절이다.

신우  30분에 만원? 말도 안돼. 아저씨, 우리 어리다고 바가지 씌우는거죠?
주인  학생, 그런말 말어. 요즘 성수기라 올라서 그래. 이럴때 아니면 언제 우 리가 장사해먹나.
신우  성수기는 무슨, 손님도 없구만. (작정하고 앉아) 아저씨, 저 불치병이에 요. 3개월 있음 죽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친구랑 바다 보러 온거에 요. 그래도 안되겠어요?
주인 (뭐라 할말이 없다)......

S42. . 해안도로
신나게 자전거를 달리는 신우와 율.

신우  와아- 저기 좀 봐 율아! 끝내준다! 와아- 오기 잘했지? 잘했지?
율  조심해! 핸들 놓친다!

S43. . 해안도로 한켠
자전거를 세워놓고 바다를 보며 감상에 젖어있는 신우.
율, 신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웬지 눈물이 날것 같아 고개를 돌린다.
멀리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자전거 두 대.

율  신우야, 누가 왔는지 봐.

신우 고개 돌리면, 을화와 현정이다.
다가와 저전거를 세우는 두 사람.
현정과 신우, 분위기가 썰렁하다.

신우  ...자전거, 얼마에 빌렸어?
현정  ...30분에 만원.
신우  우린 오천원에 빌렸는데. 불치병 환자 특별할인 50%. 진작 나랑 같이 왔 음 바가지 안썼을거 아냐.

어이없어 차라리 웃고 마는 아이들.

S44. . 몽타주
-신나게 해안도로를 달리는 네 자전거.
-바다에 풍덩 들어가 물장난 치며 즐거운 넷.
-땀을 뻘뻘 흘리며 라면을 끓이는 율. 얌체같이 먹는 세 여자.
-텐트를 치는 아이들.
-조르륵 앉아 주황빛으로 물든 바다를 넋놓고 바라보는 네 사람.

S45. . 바다
밤. 신우를 끌고 바닷가로 나오는 율.
작은 고무보트가 준비되어 있다.

신우  이거 타자고? 이 밤에?
율  노는 내가 저을 테니까 넌 눈감고 누워있어.

신우, 픽 웃으며 올라탄다.
율, 얼른 올라타 힘차게 노를 젓기 시작한다.

율  내가 눈뜨라고 할 때까지 눈뜨면 안돼?
신우  알았다 알았어.

(잠시 후)
바다 가운데. 물소리만 찰랑찰랑 들린다.
눈을 꼭 감고 누워있는 신우.

신우  야, 너무 멀리 온거 아냐? 너무 조용해서 무서워.
율 (노를 멈추고) 신우야, 이제 눈떠봐.

살며시 눈을 뜨는 신우, 헉, 숨이 막힌다.
별이 총총 박힌 밤하늘이 검은 바다와 이어져 마치 거대한 우주같다.

율  ...라이카가 봤던 우주야.

신우, 눈가에 반짝, 이슬이 맺히고 입가엔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S46. . 기차역
짐을 둘러메고 인사를 나누는 아이들.

을화  잘 가. 나중에 전화할게.
신우  엄마 화 많이 나셨으면 내가 쓰러져서 병원에 있었다구 둘러대. 알았지?
현정  니 걱정이나 해. 너, 정말 괜찮아?
신우  멀쩡해. 
을화  율아 신우 잘 데리고 가. 우린 학교에서 또 보자.
율  그래.

돌아서 가는 을화와 현정.
손을 흔들고 돌아서던 신우,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진다.

율  신우야!

S47. .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신우, 살포시 눈을 뜬다.
시야에 들어오는, 걱정스런 표정의 율.

신우  ...놀랬지.
율  ...아니.
신우  아니긴. 얼굴이 노래졌구만. (천장보며) ...말이 씨가 된다더니, 딱 맞네.
율  뭔 소리야?
신우  을화말야. 내가 쓰러졌다구 뻥치라 그랬더니 바로 이렇게 되잖아. 뭐, 을 화 알리바이가 생겨서 다행이긴 하다.
율  (울컥) 지금 그게 문제야!

깜짝 놀라 휘둥그레지는 신우.
주변 환자들, 일제히 쳐다본다.

신우  조용히 해. 왜 화를 내고 그래?
율  너 이러는 거 진짜... 맘에 안들어!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율.
신우, 씁쓸해진다.
팔을 들어 링겔 주사를 보는 신우, 빙 시선을 돌려본다.
환자복, 환자들, 기계들, 분주한 응급실 모습들...

신우  (멍하니) ...아프니까 조금, 실감난다....

 신우, 이불을 머리 끝까지 폭 뒤집어 쓴다.

S48.   신우방
초조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신우.
몇 번이나 종이를 북북 찢는다.
다시 펜을 들고 쓰는 타이틀 “유서”

S49.   신우집 거실
탈탈탈...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 앉아 있는 신우. 주변을 돌아본다.
그림 숙제를 하고 있는 해람,
바둑 티비를 보며 바둑을 두고 있는 아빠,
창가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는 엄마.
신우,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 선풍기 앞에 아~아~아~ 소리를 내뱉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세 식구.

아빠 짜식, 고3 만만치 않지? 그래도 지나고 나면 그때가 그리울꺼다, 임마.

S50.   학교
모두 교실에 들어가고 텅 빈 운동장.
신우, 혼자 철봉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하드도 먹는다.

S51.   지하도
중도가 늘 있던 자리를 서성이는 신우. 중도가 보이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러 계단을 내려오는데
승강대 앞에 서있는 중도를 발견한다.

신우  아저씨!

빠앙-하고 들어오는 지하철.
그러나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꿈쩍 않는 중도.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지하철.
한걸음 더 앞으로 가서 서는 중도, 부딪힐 듯 아슬아슬하다.

신우  아저씨-!

쉬이익- 무서운 바람소리를 밀며 들어서는 지하철.
신우, 악-! 소리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파르르 떨며 손가락 사이로 눈을 뜨는 신우.
중도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사이, 망연자실 주저앉아있는 중도가 보인다.
신우와 눈이 마주 치는 중도.
신우, 파랗게 질려 도망쳐 버린다.

신우 (N) 나는........ 죽고 싶지 않다.

S52.   신우 집 부엌
엄마가 해준 콩나물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신우.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져, 얼굴이 눈물 범벅이다.

엄마  왜, 매워? 그렇게 매워? 자, 물마셔.
신우  (꺽꺽 울음을 삼키며) 이거... 진짜 맛있다. 엄마, 이거 매일 매일 해줘.
엄마  그렇게 맛있어? 엄마 이거 장사할까?

신우, 고개 끄덕이고 또 한 숟가락 가득 퍼넣는다.

S53. . 사진관
해람에게 유치원 졸업가운을 입히고 있는 신우,
마지막으로 학사모를 씌운다.

해람  이게 뭐야?
신우  나중에 람이 졸업할 때 입는거야.
해람  (눈 동그랗게 뜨고) 졸업? 졸업은 설날 스무밤 지나고 하는데?
신우  얼마나 이쁜가 누나가 보고 싶어 그래. 우리 이거 입고 사진찍자.
해람  누나, 더워.
신우  조금만 참아. 그리고, 엄마한텐 비밀이다? 안그럼 너 미술숙제 안해줄거 야.
해람  알았어 알았어.
사진사 자, 준비 다 됐으면 거기 앉아요.

신우, 해람을 안고 의자에 앉는다.
환하게 웃는 신우와 해람.

S54. . 학교
졸업앨범 찍느라 분주한 교정.
아이들, 삼삼오오 모여 사진사한테 찍어달라고 조른다.
몰라보게 핼쓱해진 신우, 을화, 현정도 같이 찍는다.
곳곳에서 독사진을 찍어달라고 떼쓰는 아이들.
신우, 을화 현정 몰래 사진사에게 다가간다.

신우 아저씨, 저 기억하시겠어요?
사진사 어라, 학생...

(잠시 후)
교정에 곱게 앉아 자세를 가다듬는 신우.

사진사 자, 학생, 위스키~쿠쿠다스~
신우 (어설프게) 쿠쿠다스...

병색이 완연하지만 활짝 웃는 신우
찰칵.

S55.   율의 마당
휴우... 크게 심호흡하는 비장한 표정의 율.
힘차게 달려와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다리를 차올린다.
이를 꽉 물고 부들부들 떨며 나무에서 천천히 발을 떼는 율.
마침내 완벽한 물구나무서기! 

신우 (웃으며) 장하다. 내 남친.
율 (일어서고) 어휴... 여자친구 하나 만들기 진짜 힘들다.
신우 고마워 율아.
율 응? 뭐가? 
신우 나도 남은 시간동안 뭔가 해야겠어, 너처럼.

 마주보고 씨익 웃는 신우와 율.
 나뭇잎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솨라락 지나간다.

S56.   신우 방
신우, 종이위에 “유서”를 지우고 새 타이틀은 쓴다.
“내 소중한.....”
오디오에 꽂힌 마이크를 들고 아,아, 테스트 해보는 신우.

S57. . 지하도
무기력하게 계단에 앉아있는 중도.

신우  (E) 아직 살아계셨네요.

S58. . 패밀리 레스토랑
테이블 가득 차려진 음식들.
사람들 중도와 신우를 흘끔거리고
중도,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중도  이런데 비쌀텐데... 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서.
신우  없죠, 당연히.
중도  (일어서며) 지금이라도 나갈까?
신우  지하철에 뛰어들려던 사람 맞아요? 안 어울리게 소심한척은.

머쓱해지는 중도.
신우, 무료쿠폰을 꺼내 탁자위에 탁 놓는다.

신우  공짜에요. 맘껏 드세요.
중도 ...공짜?
신우 네. 공짜.
중도  (환해지며) 그럼, 염치없지만... 실은, 요 며칠 무료 급식이 끊겨서 말이 지 허허허.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하는 중도.
신우, 물끄러미 바라본다.

신우  ...아저씨, 부탁이 있어요.

S59. . 화장실
세수를 하고 일어선 중도, 거울을 본다.
눈물이 고이자 다시 세수를 한다.

엄마  (E) 암요? 우리 신우가요?

S60. . 병원
멍한 눈으로 의사를 바라보는 신우모.

엄마  ...확실한가요? 우리 신우는 믿을 신, 벗 우자 쓰는데...
의사  맞습니다.
엄마 ......
의사  어떻게 아직까지 모르실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가는군요.
엄마 ...우리.. 신우...
의사  진작부터 애정을 보여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입양한 딸도 자식인데...
엄마 ...네..?
의사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겠어요, 가족에게 의지도 못하고 혼자서 말입니다.
엄마 ......

S61. . 신우 집
엄마, 사색이 된 얼굴로 헐레벌떡 들어온다.

엄마  이신우.
신우  엄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엄마  너..... 너......!

다짜고짜 신우에게 달려들어 때리는 엄마.
울음소리도 내지 못한 채 주체할 수 없이 눈물만 쏟아진다.
신우, 눈시울이 붉어진다.

신우  아파...엄마. ... 아파...나... 죽을 것 같이... 아파.....

S62. . 몽타주
-부엌/ 멍하니 식탁에 앉아 콩나물을 다듬는 엄마.
-욕실/ 머리를 빗는 신우. 한움쿰씩 머리카락이 빠진다.
-신우방/ 죽은 듯이 잠든 신우.
 문병 온 을화 현정, 코 밑에 살며시 손을 대본다.
-율의 마당/ 물구나무서기 한 채 밤하늘을 보는 율.

S63. . 신우 집 앞
엠뷸런스가 서있고 신우가 실려 나간다.
해람이 엉엉 울며 따라간다.
멀어지는 엠뷸런스 소리와 함께....    
F.O.

S64. . 장례식장
자막 “내 소중한 사람들의 자서전”
F.I.
향불이 피워 오른다.
교복을 입고 활짝 웃고 있는 신우의 영정.
조문객들 사이로 을화, 현정, 담임이 보인다.
화장한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엄마.
조문객들 그 모습을 흘깃거리며 수군거린다.

신우  (N) 우리 엄마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장례식장에서도 곱게 화장 을 하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이죠. 하지만 속으로만 우는 습관은 꼭 고쳤 으면 좋겠어요. 가슴에 멍이 들까봐 걱정이에요.

S65. . 학교
 상담실에 들어오는 을화.

신우  (N) 똑똑한 우리 반장 을화. 을화는 유명한 고고학자입니다. 조만간 일본 인들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을거에요.

S66.   재수학원
빽빽한 학생들 사이, 연신 부채질을 해대며 공부하는 현정

신우  깜찍하고 명랑한 현정이. 현정이는 이쁜 대학생이에요. 남자들이 가만 놔 두질 않죠. 첫키스는.... 비밀이에요.

S67.   유치원 졸업식장
학사모를 쓰고 꽃다발에 파묻혀 엄마 아빠와 사진 찍는 해람.
율이 사진을 찍어 주느라 분주하다.

신우 (N) 우리 꼬맹이 해람. 해처럼 밝고, 건강하고, 씩씩한 사람이 될거에요.
 그리고...

S68. . 신우 집
낙엽이 무성하게 떨어진 마당.
짧은 스포츠머리의 젊은 남자, 초인종을 누른다.
 
엄마 (E) 누구세요?
남자 ...저...율이에요.

S69.   신우 집 거실
집안의 티비에 신우의 어린시절 홈비디오가 돌아가고 있다.
유치원 시절 신우, 운동회하는 신우, 엉엉 우는 신우, 가족과 함께 웃고 울고 장난치는 신우의 환한 모습들...
그 영상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율, 잔잔한 미소가 떠오른다.

엄마 (물 한잔 주며) 얼마 전에 창고 정리 하다가 테입 두 개를 찾았어. 처음  만나는 사람 같지?
율 (웃으며) ...네. 참, 람이는요?
엄마  부엌에. 케잌 만들고 있어.
율  에? 괜찮을까요?
엄마 몰라~ 지가 한다고 저러네. 후후.

S70. .부엌
초등학교 4학년이 된 해람.
또래보다 키가 커 서너살은 많아 보인다.

해람 아이씨. 젠장. 엄마! 거품기 어딨어? (돌아보다) 어! 형!
율  짜식, 키가 또 컸어? 나보다 크는 거 아냐?
해람  어우. 형만해 갖고 돼? 남자가.
율  뭐어?

얼싸안고 바둥바둥 장난을 치는 두 사람.

 E 딩동~

S71. . 거실
까맣게 탄 을화와 요조숙녀 같은 현정이 들어온다.

현정  여어~군바리. 왔어?
율  군바리는 무슨. 재대한지가 언젠데.
을화  뭘. 아직도 군기가 팍팍 들어간게 민간인 되려면 멀었구만. 너 아직도 아 침 6시에 기상하지?
율  을화 넌 어째 갈수록 까매지냐? 오지탐험이라도 다녀?
을화  그렇게 간단히 찾아지면 그게 보물이 아니지. 어우- 덕분에 좋은 묘자리 를 실컷 보고 다녀. 너도 필요하면 말해. 소개비는 팅 한건, 오케이?

오랜만에 보는 듯 티격태격하며 화기애애한 친구들.
현정, 슬쩍 눈치를 살피다,

현정  ...아직, 안왔어?
율  응.
을화  오겠지 뭐. 잊어버린 적 없잖아.
E 딩동~
셋 왔다!

S72.   현관
문이 열리면, 우체부가 택배를 들고 서있다.

우체부  안녕하십니까~ 올해도 왔습니다. 하하

우체부가 주는 택배를 받는 율.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모두들 둘러서 주소를 본다.

  수신자 “모두에게”
  발신자 “우주에서, 이신우”

S73.   신우집 마당
테이블에 조촐한 음식을 차려놓고 화기애애한 모두들.
가운데 고깔모자를 쓴 신우사진이 놓여있다.
와아~ 박수소리와 함께 해람이 케잌을 들고 나온다.
마치 생일처럼, 크리스마스처럼 즐거운 분위기.
을화, 카세트 테입을 넣고 플레이를 누른다.

신우 (E) 아아, 여기는 우주, 스푸트니크호의 이신우입니다. 모두 출석했나요?

S74.   플래쉬 백/ 신우방
마이크를 들고 녹음을 하고 있는 신우.
 책상위에 친구들, 가족들 사진과 잡지들이 널려있다.
잡지의 멋진 남자 모델 사진을 보며

신우 (E) 올해는 여기 남자들에 대해 말해 볼게요. 진짜 여기 남자들은 별로 에요. 말도 많고 털도 많고 결정적으로... 키스를 너무 못해. 큭큭큭. 을 화 현정! 내말 듣고 있어? 율이한테 잘해~

S75.   신우집 마당
모두 애잔한 미소를 띈 채 신우의 소리를 듣고 있다.

신우 (N) ...여기서 내가 하는 일은 하루 종일 지구를 지켜보는 거에요. 우주 에 둥둥 떠서 질릴 때 까지 계속 쭉... 지구만 봐요. 
 
사람들 멀리 마당 구석에서 낙엽을 태우는 율.
문득 건너편 예전 자신이 살던 집을 본다.
<인터컷>
물구나무서기하는 소년 율.

예전처럼 힘껏 발구르기를 하고 나무에 달려가 보지만
번번히 다리가 떨어지며 실패하고 만다.
쑥스럽게 웃으며 손을 털고 일어서는 율.
연기가 올라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시리도록 푸른 늦가을 하늘.

율  (N) 중도 아저씬, 아직까진 살아계신거 같애. 니 메세지가 무사히 도착한  걸 보면.

S76.   지하철 안
손잡이를 잡고 한손엔 책을 보며 서있는 율.
문이 열리고 한 남루한 잡상인(중도)이 가방을 끌고 들어선다.

율 (N) 올핸 칫솔을 보내셨어. 지하철에서 칫솔 파는 아저씨를 보면 신우  아세요? 하고 물어볼까봐.

가방을 열고 칫솔을 꺼내는 중도.
말없이 사람들 앞에 칫솔을 들이민다.
손잡이를 잡고 서있는 율, 중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급하게 호주머니를 뒤적여 천원짜리를 들고 두리번거리지만
이미 가방을 닫고 옆칸으로 가는 중도.
 아쉬운 듯 고개 돌리는 율, 옆에 아줌마가 산 칫솔을 흘깃 본다.
 무지개빛 일곱가지 색깔 칫솔.
<인서트>
신우의 소포 속에서 나오는 일곱가지 색깔 칫솔.

율 (N) 신우야, 지난 여름도 무척 더웠어. 늘 그렇듯이.

S77.   신우집 마당
어서오라는 사람들의 소리에 문득 돌아보는 율.
손을 흔들고 다시 하늘을 본다.
파란 하늘 멀리 연기가 퍼져나간다.

율 (N) 우주는 어때?
 라이카는 만나봤니?
 ...지구는.... 여전히 아름답겠지?
...... 
신우를 찾듯 올려다 보는 율의 시선
안개처럼 흩어지는 연기를 따라 멀리 멀리 가며...
F.O.


 신우 (N) 율아. 우주는 아주 까매. 언젠가 니가 보여준 그 여름의 바다처럼.

 


the end. 라이카의 여름.

 

 

 

 

 

 

 

 

 

 

 

 

 

 

 

 

 

 

 

 

 

 

 

 

 

 

 

첨부파일 2006[우수작]라이카의여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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