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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미니][경성스캔들] 진수완 - 시놉시스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1.03.29|조회수2,214 목록 댓글 0

[경성스캔들] 진수완 - 시놉시스

 

 

 

 

 

경/성/스/캔/들/

    왼 세상이 나를 보고 치자야, 약자야, 무능력한자야 하고 조소할 때에

   “옳다, 옳다. 네 말이 옳다. 나는 어리석고 약하고, 비겁하고 무능력하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나 이상의 재자도 없고 강자도 없단다”

                      - 홍난파 [정신병자의 수기] <신천지> 2월호 -

    왼 경성의 여자들이 나를 보고 오빠는 최고야, 황태자야, 인텔리야 하고

    환호할 때에 “옳다, 옳다. 네 말이 옳다. 허나 N양이 나를 보고

    당신은 재수야, 밥맛이야, 조국에 터럭만큼의 도움도 안 되는 잉여인간이야,
  
    했을 때에 나는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하얏다”

             - 선우 완 [N양 모던 껄 만들기]  월간 <지라시> 7월호 -

1. 제목  : <경성 스캔들>

2. 원안 : 이선미 作 <경성애사>

3. 주제  : “느끼는 만큼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 ‘사랑’이다”

4. 제 작 - 제이에스 픽쳐스

  가. 극 본 : 진 수 완

  나. 연 출 : 한 준 서

  다. 형 식 : 수목 미니 시리즈 (16부작)

  라. 방송예정 : 2007년 6월 6일~7월 26일

  마. 제작방향

    :
      1. 만화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유쾌한 캐릭터 플레이.    
      2. 극단적인 윤리관과 가치관을 가진 두 남녀의 최강 로맨스.
      3. 낭만과 비밀이 공존했던 1930년대 경성의 모습을 통해
         다양하고 신선한 볼거리 제공.
      4. 식민지 일제 치하.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갔던 젊은 청춘들의 모습을 통해
        가슴 찡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5. 기획의도

 

“항일 투쟁의 가장 강력한 혁명전술, 연애!”

   1930년대 경성.
   독립운동과 친일매국의 대결장이면서 동시에
   전근대적인 윤리관과 근대적인 자유연애가 충돌하던 문화적 전쟁터.
   현해탄에 몸을 던져 실연의 아픔에 종지부를 찍던 청춘들이 공존했던 시대.

 

   그곳에 한 남자가 살고 있다.
   경성 최고의 바람둥이 선우 완.
   십 분. 경성 여자들이 내 것이 되는 시간은 딱 십 분,이라며
   동경 유학파 출신답게 ‘저스트 텐 미닛!’을 외치고 다니던 이 남자가
   한 여자를 상대로 기록갱신에 도전한다.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모와 신지식을 겸비한 모던 걸이냐고?
   천만에. 그가 도전장을 던진 여자는 전근대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고전적인 신여성이자,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이 한 목숨 걸고 싸우는
   독립투사(!) 나 여경이다.

 

   그런데...
   한판의 내기로 시작된 이 거짓연애가 서서히 그를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거짓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 되고, 사랑의 아픔이 시대의 아픔이 되고,
   연적을 향했던 분노가 공적(일제)을 향하게 되고, 그녀를 향한 사랑이
   조국을 향한 사랑이 되고, 데카당스였던 그가 조선의 항일 무장 투사가
   되어 간다.

 

   신도들이 있다면 간증이라도 하고픈 사랑의 기적을 체험한 이 남자가
   지금 우리에게 지극히 도발적인 메시지를 남긴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켜내기 위해,
   뜨거운 열정을 품고 행동하며 실천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사랑은 혁명의 가장 강력한 각성제이며,
   연애는 지상 최고의 위대한 혁명 전술이라고.

 

   그렇다. 이 드라마는 가장 암울했던 그 시대의 항일 무장 투쟁사를
   가장 발랄하고 가장 유쾌한 방법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비장한 항일 무장 투쟁사와 경쾌 발랄한 청춘 로맨스의 조합’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으나 극단적인 윤리관이 충돌하고,
   극단적인 역사인식의 차이가 공존했던 시기였기에 가능한 설정이라 생각한다.
   가장 암울했지만, 가장 자유롭고 모던했던 1930년대 경성의 두 얼굴을,
   전형적이고 고루한 시대극의 틀에서 벗어나, ‘퓨전 시대극’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드라마 속에 녹여내 보고자 한다.

 

 

 

6. 드라마 키워드 & 제작 포인트

 

  “ 모던(modern) 남녀상열지사(相悅之詞)?
          모든(all) 남녀의열지사(義烈志士)! ”

 

   1) 개화기 경성
      - 비밀과 낭만, 혁명과 자유연애가 공존하던 수상한 공간!

 

      ‘문화 정치’를 표방한 총독부의 유화정책으로 식민지 역사상 가장
      흥청망청했던 1930년대 중반 경성.
      전차와 자동차, 자전거와 인력거가 활기차게 도시 사이를 움직이고,
      하꾸라이(舶來品)로 치장한 모던 걸, 모던 보이들이 최첨단의 유행을
      선도하던 문화의 도시.
      최신식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백화점에서부터, 식도원, 끽다점, 까페, 바,
      레코드점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서던 근대의 도시.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네온싸인 불빛과 까페에서 흘러나오는 스윙재즈의
      음율, 유끼깡(여급)의 세련된 웃음소리가 은밀한 유혹을 보내던 유흥의 도시.

 

      이 화려한 도시 어딘가에서 느닷없는 한 발의 총성이 들려온다 한들...
      어느 날 친일파 지주 아무개가 수상쩍은 자객에게 암살을 당하였다 한들...
      옆집 사는 무고한 아낙이 모진 고문 끝에 피를 토하며 죽었다 한들...
      신원이 불분명한 의문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한들...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던 이상한 시대, 수상한 도시.

 

      오직 그 시대, 그 장소이기에 가능한 상황과 설정 등을 통해 독특하고
      새로운 내러티브를 제공하고, 1930년대 경성의 낭만과 향수를 자극하는
      심미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2) 경성 톱 스캔들
      - 조선시대 마지막 요조숙녀 ‘모던 걸’ 만들기!

 

      ‘경성에서 가장 촌스러운 여자를 단 10분 만에 모던 걸로 만들겠다!’

 

      순전히 술김이었다. 경성 최고의 모던 보이답게, 모던한 객기로, 모던한 내기
      를 했을 뿐인데, 이거 판이 너무 커져버렸다.
      경성의 온 사교계가 이 내기에 주목하고, 돈을 걸고 난리가 났다.
      상대는 고전적인 신여성 나 여경! 그런데 이 여자, 만만치가 않다.
      촌스러운 주제에 성격 대단히 까칠하고 태도 무지하게 도도하다.
      게다가 알고 보니 이 여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친
      열혈 독립투사란다! 내 스타일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여자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이 여자의 뚝심이 맘에 들기 시작한다.
      이 여자를 힘들게 하는 식민지 조국이 짜증난다.
     
      극단적인 윤리관과 가치관을 가진 두 남녀의 로맨스를 통해
      드라마에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한다.

 

    3) 위장 연애
       - 항일 무장 투쟁의 가장 강력한 위장전술, 연애!

 

      나 조선의 데카당스 선우완, 조선의 독립투사 나여경을 사랑한다.
      나 조선 총독부의 이수현, 현재 나여경과 연애중이다.
      나 명빈관 최고의 기생 차송주, 총독부 보안과장 우에다를
      사랑한다.
      나 월간 <지라시>의 편집장 김탁구, 명빈관의 기생 차송주를 사랑한다.
      나 종로경찰서의 순사부장 이강구, 치 떨리게 나를 경멸하는 나 여경을
      사랑한다.
      나 조선의 독립투사 나여경, 총독부의 이수현을 사랑하게 되었다.

 

      질문 하나. 위에 열거한 사랑 중 진실 된 사랑은 과연 몇 개?
      힌트 하나. 위에 열거한 사랑 중 다수가, 자신의 생존과 조선의 독립을
      위한 위장 연애라면? 그러니까, 그야말로 치밀한 전략에 의해 계획된
      항일 투쟁의 강력한 위장전술이라면?

 

      생태계의 먹이 사슬 보다 더 복잡한 연애의 먹이 사슬!
      그 시대만이 가능했던 스릴 있는 위장 연애의 세계로 초대한다.


   4) 뉴-엔터테인먼트 & 뉴-쩌널리즘
      - 경성 최고의 대중문화 잡지, 월간 <지라시>

 

      ‘밤의 쾌락을 맛 볼랴는 남녀에게 권함’ 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삽입하여
      삼류에로잡지를 팔아먹는 사람.
      잘나가는 권번의 기생을 스카웃하여 3인조 여성 그룹을 조직하더니 소리판을
      찍어내어 돈을 버는 음반회사 사장.
      꾀꼬리 같은 내 노래 실력 온 국민과 공유치 않는 건 죄악이라며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라이브로 유행가를 열창하는 기생.
      얼굴 화끈 거리는 스캔들과 출처 불명의 가십거리를 조악한 합성사진과
      함께 기사화하여 판매 부수를 올리는 대중문화 잡지 월간<지라시>의
      편집장.

 

      드라마 속의 경성에는 참 별별 사람들이 다 살고 있다.
      조국은 왜놈들에게 짓밟혀 신음하고 있는데, 이 무슨 뻔뻔한 짓거리들
      이냐고? 아무리 드라마라고는 해도 이건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너무 염려하지는 말 것. 이 저속한 저널리즘과 다양한 연예활동이
      혁명에 이용되는 멋진 전술로 거듭 태어나리니.

      다양한 연예활동과 조악하지만 흥미진진한 저널리즘이 존재하던 시대.
      그 시대의 저널리즘과 연예활동을 화면에 담아내어,
      ‘엔터테인먼트 드라마’로서의 재미를 갖게 한다.

 

    5) 언더 커버
      - 둥지 안의 새는 무사하다!

 

      비밀 결사조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언더커버!
      그들은 경성 곳곳에 신분을 위장한 채 숨어있다.
      그들은 신변의 안전과 조직의 보안을 위해 서로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가끔 서로를 적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그들이 작전을 수행한 후 자신의 무사함을 알리는 암호는
      ‘둥지 안의 새는 무사하다’이다.

 

      과연 언더커버는 누구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한 명인가. 두 명인가.
      그리고 과연 그 피라미드의 끝에는 누가 있는가?
      그들의 정체가 하나씩 드러나는 과정을 통해 극의 긴장감을 더하고,
      조직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가슴 아픈 비하인드 스토리와
      애틋한 사랑을 통해 드라마의 감동을 더한다.

 

 

 

 

7. 등장인물

  

  선 우 완 (27세)

 

   그의 성격
   경성 최고의 멋쟁이다.
   그의 바람직한 기럭지와 화려한 옷발은 지금 바로 압구정동에 갖다 옮겨 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싶다. 로이드안경에 맥고모자, 폭넓은 넥타이에 가죽구두,
   신소재로 만든 스틱까지... 어떠한 옷도 거뜬히 소화해내는 그는 혼마찌(명동)
   에서 일명 ‘패션계의 소화제’로 통한다.
   뻔뻔스러운 바람둥이다. 근대 문물과 함께 탄생한 ‘자유연애’의 조류는 아마도
   신이 그를 위해 준비한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10분이면 충분하다. 10분이면
   왼 경성의 여자들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뻥이 아니라 실험에 실험,
   검증에 검증을 거친 확연한 사실이다.
   잘생겼다. 영화감독들이 만나기만 하면 영화 한편 찍자고 덤벼든다.
   너무 귀찮고 성가셔서 한 동안 까페 출입을 삼갔던 적도 있다.
   주색잡기로 공사다망하여 영화 따위에 신경 쓸 틈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가 맘먹고 영화계에 데뷔했으면 조선의 나운규나 미국의 쪼온 크로포드는
   끊긴 밥줄을 붙잡고 대성통곡해야 했을 것이다. 벌써 눈치 챘겠지만 재수가
   좀 없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거만함이 온 대지를 덮는다.
   마초기질이 다분하다. 대책이 안 설 만큼 혈기 왕성한 그의 객기만큼이나,
   그의 의리 또한 혈기왕성하고 대책 없다. 한번 뱉은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어도, 지킨다(중요한 말이다!). 그의 유일한 장점이다.
   온갖 잡스러운 기사들을 싣는 월간 대중문화 잡지 <지라시>의 객원기자다.
   선배 김탁구의 부탁도 있고, 노느니 땅 판다고 그냥 재미 삼아 시작한
   일이지만,  기사를 조작하는 탁월한 능력, 디씨인사이드 폐인들도
   무릎을 꿇을 만한 정교한 사진합성 실력(물론 사진을 오려 붙이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덕분에 그는 팽팽 놀고도 돈 받아간다. 얄밉다.

  

태어나보니 유한계급의 아들이었다. 운이 좋은 편이다.
   잘 먹고, 잘 입고,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태어나보니 식민지 조선이었다. 운이 나쁜 편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머리에 먹물 든 조선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으니까. 청운의 꿈을 안고 떠났던 동경 유학을 중도 작파했다.
   신학문은 그에게 절망만을 안겨주었다. 교과서 어디에도 조선을 위한
   이론은 없었다. 약육강식. 사회진화론. 모두 강국의 이론일 뿐이었다.
   먹물 적신 머리로 그는 선택해야만 했다. 친일세력에 편승하거나,
   민족해방 투사가 되거나, 프롤레타리아 세력과 규합하거나... 셋 다 싫었다.
   룸펜이 되었다. 그렇다고 방구석에만 쳐 박혀 지내는 건 체질에 맞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액티브한 그의 피가 그를 유흥의 세계로 안내했다.
   오호, 체질에 딱 맞았다. 이렇게 놀고, 먹고, 즐기다 보면 그럭저럭 한 평생이
   끝날 테고, 운이 좋으면 사는 동안 조국이 해방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물론 그도 조국 해방을 원하고는 있다. 하지만 그건 ‘투사’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의 몫이지 자신의 몫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여러 계급이 있고,
   여러 가치관이 있으며, 다양한 선택이 있는 법이다. 그는 그 중에
   ‘데카당스’ 로서의 삶을 선택 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평생을
   놀고먹어도 남아 돌 만큼의 재산을 소유한 아버지가 있다.
   신세기와 지민식 같은, 비슷한 부류의 친구들도 있다.
   여자들을 환장하게 만드는 멋진 시보레도 한 대 가지고 있다.
   공부 때려 친 지 한 달 만에 그는 ‘경성 사교계의 황태자’로 등극한다.
   실로 놀라운 성과라 아니 할 수 없다!

 

   그의 비하인드 스토리 (그의 트라우마)
   아버지를 경멸한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계셨다. 그런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 여자를 아내로 들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의 마지막 손을 잡아준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어린 나였다.
   일본에서 유학중인 형이 죽었다.
   경성 최고의 수재. 따뜻하고 강인한 인품. 형은 나에게 아버지 대신이었다.
   형이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형의 사망소식과 함께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밀고로 도주하던 형은 마주 오던 전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형을 밀고한 자가 이수현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아버지가 부리는 소작농의 아들. 형만큼이나 우수하고 명석하여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아이. 내 아버지의 돈으로 동경유학을 떠났던
   내 어린 날의 친구 이수현. 나는 절대 그를 용서할 수가 없다.
   형의 독립운동 사실이 경성에 알려졌다. 아버지가 일제에 헌납하는 재산의
   규모도 더욱 커졌다. 그 돈이 형의 ‘의로운 죽음’을 ‘사고사’로 바꾸어 놓았다.
   나를 위한 일이라고, 형의 불온한 이력이 앞길 창창한 내 발목을 붙들까봐
   나를 걱정하여 한 일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를 나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그렇다. 그때 나는 몰랐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이수현에 대한 증오가, 모두 오해였다는 것을...

 

   그의 멜로
   순전히 술김이었다. 아니, 빌어먹을 자존심 때문이었다.
   “경성에서 가장 촌스러운 여자를 단 십분 만에 끝내주는 모던 걸로
   변신시켜 주지!”
   아니, 내가 무슨 마술사도 아니고 어떻게 십분 만에 새로운 여자 하나를
   만들어 낸단 말인가. 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대충
   넘어갈 일이지 깐죽거리며 승부근성을 자극한 친구 놈들이 가장 큰 화근이었다.
   그깟 내기쯤 웃어넘기고 말라고? 사소한 내기 하나에 뭘 그렇게 목숨을 거냐고?
   무슨 소리. 앞 서 말하지 않았는가. 한번 뱉은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구가
   쪼개지는 일이 있어도, 지켜내는 마초 맨 선우 완이라고.
   “만약에 실패하면 내, 조선의 해방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치는
    독립투사가 되지! 하하하하!”
   아아... 마지막 말은 하지 말 것을... 마지막에 호탕하게 웃지나 말 것을...
   게다가.... 이 자식들, 상대를 골라줘도 너무 잘못 골라줬다.
   천하에 없이 촌스러운 이 여자, 십 분은커녕 십년이 걸려도 내게 넘어올 것
   같지가 않다. 죽는 날까지 저 촌스런 흰 저고리, 깜장치마를 벗을 것 같지가
   않다. 제대로 까칠하고 제대로 재미없고 제대로 짜증나게 옳은 말만 찍찍
   날리는 이 여자. 확 포기해버릴까!
   ....도 싶지만...그러면...독립투사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여자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어느 순간 이 여자의 강인함과 순수한 용기가 맘에 들기 시작한다.
   그녀가 독립운동 조직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종로 경찰서에 붙잡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리바이를 증명해주기 위해 종로 경찰서에 출두했다가
   그 곳에서, 운도 더럽게 없지, 이수현을 다시 만났다.
   어린 시절 친구이자, 내가 증오하는 인물이자, 되도록 보고 싶지 않은 얼굴.
   그런데 그가... 총독부의 개가 된 이수현이가, 현재 나여경과 목하 열애중
   이란다.
   친일파의 아들이라며 자신을 멸시하던 대쪽 같던 그녀가 매국노 이수현과
   연애를 하다니...! 어쩐지 수상하다...이거 뭔가 냄새가 난다...분명 뭔가가 있다.
   아마도 질투였을까? 자신도 모르게 두 사람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자진해서 지뢰밭으로 들어간다.

 

 

   나 여 경 (24세)

 

   그녀의 성격
   경성에 독보적인, 고전적 신여성이다.
   품위 있고 단아하다. 맑게 우린 녹차처럼 청명하고, 갓 따낸 복숭아처럼
   싱그럽다. 이화학당에서 신교육을 받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소중히 여긴다. 그녀의 복장 역시, 아직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다.
   친일파와 모던 걸, 모던 보이를 경멸한다. 의식도 사명감도 없이 유행이나
   쫓고 사치나 일삼는 그들은, 조국의 미래에 터럭만큼의 도움도 안 되는
   잉여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그녀, 쫌 과격하다. 과격한 만큼 강인하고,
   강인한 만큼 강단 있고, 강단 있는 만큼 고집이 쎄다.
   말도 얼마나 야무지게 잘하는지 모른다.
   게다가 옳은 말만 한다. 게다가 말한 대로 행동한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경성 시내 어딘가에서 그녀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그건 백이면 백,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는 남의 일에 그녀가
   참견하고 있는 것이다. 얼굴이 빨개져서 조목조목 따져드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다. 아, 그렇다고 그녀의 얼굴에 홀리면 절대 안 된다.
   만일 당신이 부당한 일을 하다가 그녀에게 딱 걸렸다면 대충 마무리 짓고
   빨리 그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다. 섣불리 말싸움에 이기려고 들면 못쓴다.
   말 빨로는 그녀를 못 이긴다.  그녀의 말 빨의 힘은 곧 독서의 힘이다.
   그녀는 엄청난 독서광이다. 마치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길을
   걸을 때도 그녀는 항상 책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그러다가 누군가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면 책을 탁! 덮고는 ‘잠깐만요!’
   야무지게 부르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녀는 꼬장꼬장하고, 도도하고, 똑 소리 난다.
   한번쯤 톡 분질러 보고 싶다는 도전 의식을 불러 올 만큼...
   도전 의식에 불타는 수많은 모던 보이들이 그녀에게 출사표를 던졌다.
   결과는? 쪽 제대로 팔려서 돌아갔다. 전설처럼 들리는 말에 의하면
   어떤 이는 무려 한 시간이 넘게 그녀의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고 한다.
   경성의 남자들은 더 이상 그녀에게 출사표를 던지지 않는다.
   대신 그녀를 ‘조마자(조선의 마지막 여자)’라 부르며 괜히 비아냥거린다.

 

   그녀의 비하인드 스토리(그녀의 트라우마)
   아버지는 고향에 제법 많은 땅을 갖고 계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지주가 아니었다. 소작농들의 벗이었다.
   농한기가 되면 그녀의 집 곳간은 항상 열려있었다. 배고픈 자는 와서 필요한
   만큼 쌀을 퍼 가고, 착한 그들은 여유가 생기면 잊지 않고 갚아주었다.
   어느 날 마을 청년 네댓 명이 불온한 세력들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순사에게
   끌려갔다. 한명이 죽고...두 명이 죽었다. 분노한 아버지는 무고한 청년들을
   당장 석방하라며 순사에게 저항하다 투옥되었다. 석방 된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어디로 갔는지 말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어느 날 어떤 이의 밀고로 여경은 아버지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만주에 계셨다. 그 곳에서 임정활동을 하다 돌아가셨다.
   그 일로 어머니와 여경은 순사들의 눈을 피해 경성으로 야반도주해 왔다.
   경성에 짐을 풀자마자 당장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두 사람은 전 재산을 털어 종로 한켠에 아버지의 호를 딴 ‘해화당(諧和堂)’
   이라는 이름의 서점을 차렸다. 어머니는 유한부인들의 한복을 깃거나 이불을
   수놓아 살림에 보탰다. 이화학당을 졸업한 여경은 동경유학의 꿈을 고이 접었다.
   대신 낮에는 서점을 운영하고, 밤에는 가난한 문맹자들을 위해 야학 활동을
   시작했다. 열일곱 살 소년 강인호 역시 그녀의 야학 제자였다.
   그 날 밤.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인호가 그녀의 서점 문을 두드렸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인호를 서점 안에 숨겨주었고, 다음 날 새벽
   북간도로 가겠다는 인호의 손에 여비를 쥐어주었다.
   그러나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강인호가 고리대금업자를 살해한 혐의로
   종로 경찰서에 체포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예상했던 대로 종로서의 순사 이강구가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이강구의 고문을 악으로 견뎌내었고, 총독부 보안과 이수현의
   예리한 심문을 깡으로 버텨내었다. 시종일관 신사적인 미소를 잃지 않는
   이수현의 얼굴이 그녀는 불쾌했다. 미소 짓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뱉어 주었다.
   그녀는 결국 불거불충분이라는 명목으로 풀려났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왔다.
   잔인한 고문과 심문을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겨 낸 그녀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우리에겐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애물단의 조직원이 되었다.
   그녀는 현재 비밀 결사 조직 애물단의 신참 부원이다.

 

   그녀의 멜로
   이강구와 여경은 동향으로 한동네에서 자랐다.
   그녀가 열여섯 살 되던 해부터 그는 여경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구애해왔다.
   어떠한 거절의 방법도 소용이 없었다. 그의 집요함에 지쳐갈 때 쯤 어느 날
   그가 훌쩍 고향을 떠났다. 아...! 그녀에겐 해방이었고 행복의 시작이었다.
   그를 경성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는 여전히 여경의
   뒤를 집요하게 따라 붙는다. 다만 예전에 단순했던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아닌 ‘순사와 야학교사’ 즉 ‘감시자와 요주의 인물’로의 관계변화만 있을 뿐이다.
   그는 악랄하고도 충실한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있었다.
   그의 집요한 감시 때문에 여경의 조직 활동에 발이 묶여버린다.
   어느 날 상층으로부터 지령이 내려온다.
   “이강구의 눈을 따돌려라. 고급 정보를 수집하라.
   이 두 가지를 위한 다음의 전술을 숙지하라.
   조선 총독부의 조선인 엘리트 이수현과 위.장.연.애.를.하.라!”
   여경은 기함을 한다. 그녀는 연애에는 완전 쑥맥이다. 이제껏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본 그녀다. 그런데 위장연애라니! 그녀가 먼저 남자에게 접근해 유혹을
   해야 하다니! 아아...차라리 도시락 테러를 시킬 일이지....
   터진 만두 속처럼 복잡해진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어떤 정신 나간
   룸펜으로부터 한 동안 뜸했던 출사표가 날라 온다.
   “조마자씨. 시간 괜찮으면 고히나 한잔 마시러 가지”
   경성 최고의 바람둥이 선우완!
   일제의 앞잡이 순사에, 총독부의 개에, 친일파 바람둥이까지!
   이거 완전 종합 선물 세트, 아니 종합 폭탄 세트다!
   그녀의 인생이 꼬인다. 꼬여도 너무 꼬인다.
   (*불행히도 선우완은 한 동안 여경의 이름이 조마자인줄 알고 있다)

 

 

   이 수 현 (27세)

 

   그의 성격
   조선 총독부 보안과에서 조선인으로서는 드물게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고 있는 동경 유학파 출신 엘리트다.
   깔끔한 업무처리. 예의바른 행실. 준수한 외모.
   무엇보다 그는 유능하다. 총독부의 보안과장 우에다 마모루가
   그를 얼마나 신임하고 의지하고 있는가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물론 그가 유능한 만큼 주변엔 적도 많다. 일본인 동료 야마시타 코우지가
   그렇고, 조선인 부하 이강구가 그렇고, 어린 시절 친구 선우 완이 그렇다.
   이들은 언제나 그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지만, 미안하게도 그는 눈썹 하나,
   머리카락 한 오라기도 동요하지 않는다.
   총독부의 개, 민족을 배신한 매국노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역시 흔들림이 없다. 그렇다고 당당하지도 않다. 속을 알 수 가 없다.
   이를테면 그는 포커페이스다. 하여 그와 마작이나 포커를 치겠다는 발상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의 패가 읽히지도 않을뿐더러 그가 쥐고 있는 카드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게임이고 뭐고 내 패를
   먼저 까 보이고 그의 카드를 얼른 읽어보고 싶어진다. 이것이 그의 수사
   원동력이다. 그는 이강구처럼 무식하게 고문 따위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표정 없는 얼굴로 앉아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번 피식
   웃는다. 그럼 수사 종료다. 그에 의해 모든 것이 밝혀진다. 심리수사의 달인이다.
   비극적이게도 일할 때의 그의 모습은 꽤나 멋있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총독부 건물 이곳저곳을 바삐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일하는 건물이 총독부가 아니라
   미국의 NASA본부나 CSI 본부였으면, 그가 일제의 치안담당 요원이
   아니라 우주의 세력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려는 비밀 특수요원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한마디로 그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방금
   툭, 튀어나온 인물처럼 멋있고 젠틀하다.
   선우 완이 하드웨어로 승부한다면, 그는 소프트웨어로 승부한다.
   다만 우리는 그 소프트웨어를 실행시킬 수 있는 시리얼넘버를 모른다.
   하여 그의 소프트웨어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극 중반... 드디어 그의 시리얼넘버가 풀린다.
   충격이다. 반전이다.

 

   그의 비하인드(그의 트라우마)
   아버지는 선우 관 어른의 땅을 부쳐 먹고 사는 소작농이었다.
   소작농의 삶이야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다행히 어른의 인품이 후덕하고
   따뜻하여 다른 소작농들처럼 학대를 받거나 비참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선우 완과 나는 계급의 귀천 없이 친구처럼 지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나는 여전히 소작농의 아들이었고, 빈민의 계급이었고,
   식민지 조국의 나약한 조선인일 뿐이었다.
   돌파구가 없는 운명이었다. 해결책이 없는 현실이었다.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경기고보에 진학했다. 그 곳에서 김범우 선생님을 만났다.
   내 평생 잊지 못할 은사...그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계급, 민족, 애국, 해방, 투쟁, 항일, 혁명, 아나키스트....
   가슴 한켠이 트이는 것 같았다. 돌파구가, 해결책이 조금씩 보이는 듯 했다.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명빈관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그 곳에서 나는
   여러 혁명 전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의 서찰을 그들에게 전달하는 일...
   그것이 나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나는 독립운동의 작은 세포 조직이 되어갔다.
   동경 유학 중에, 선우 현 선배(선우완의 형)를 만났다.
   선배 역시 김범우 선생님의 제자였다. 선배 역시 이제 막 활기찬 세포분열을
   시작한 조직의 젊은 핵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동지가 되었다.
   늦은 밤. 선배가 동지들과 약속된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나 역시 선배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선배의 뒤를 엄호하며, 주위를 감시하며,
   긴장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잠복해있던 일본경찰들이 선배의 앞을 막아섰다.
   순간 누군가의 밀고로 함정에 빠졌음을 알았다.
   순간 얼른 동지들에게 달려가 위험을 알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선배를 향해 뛰어야 하나, 동지들을 향해 뛰어야 하나 나는 망설였다.
   선배를 끌고 가던 경찰들이 멍하니 얼어붙어 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선배의 눈이 내게 어서 도망가라고, 너는 살아서 얼른 동지들에게 위험을
   알리라고 간절히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어렸던 나는, 공포에 질려있던 나는, 여전히 꼼짝할
   수가 없었다.
   선배가 나를 향해 ‘밀고자! 나쁜 자식!’이라고 외쳤을 때,
   선배의 마지막 외침이 나를 구하기 위한 위장임을 알았을 때,
   경찰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나를 향했을 때,
   내가 경찰들을 향해 ‘내선일체, 황국신민, 천왕폐하 만세!’를 외쳤을 때,
   도망치던 선배가 마주 오던 전차에 치이는 것을 보았을 때,
   그렇게 선배는 죽고 나만 살아남았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운명을 바꿔놓을 것임을.
   선배의 죽음이 경성에 알려졌다. 그 밀고자가 나라는 소문도 퍼져나갔다.
   늙고 가난한 아버지는 비통한 눈물을 삼키며 가족들과 함께 북간도로 이주해
   갔다.
   상부에서 지령이 내려왔다. 이 상황을 역 이용하자고... 너는 이대로
   동지를 팔아넘긴 밀고자가 되고, 일제에 협력하는 친일세력이 되자고...
   나는 총독부 보안과에서 초고속 승진을 달리고 있는 조선인 엘리트가 되었다.
   그렇다. 나는 애물단의 언더커버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공개 하지 않은 또 하나의 비밀이 남아있다.
   충격일 것이다. 반전일 것이다.

 

   그의 멜로
 
   명빈관 회식 자리에서 그는 그녀를 첫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그때의 그 아이가 분명했다.
   경기고보 시절,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명빈관에 갔던 날 밤.
   산발한 머리와 상처투성이 얼굴로 달빛 아래 앉아 홀로 울고 있던 어린 기녀...
   이제는 아름답게 성장하여 명빈관 최고의 기생이 된 그녀 차송주.
   이 여자가 어떻게 조직원이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날 이후 이 여자는 어떻게 살아온 거지? 묻고 싶어졌다.
   나를 기억하고 있나?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아는 체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물으려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해주어야 한다. 그녀가 왜 기생이 되었는지를 물으려면,
   자신이 왜 총독부의 개가 되었는지를 말해주어야 한다.
   그리고...무엇보다 그녀가 그를 알아보아서는 안 될 이유가 그에게는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명빈관에 회식 나온 총독부의
   손님으로만 대하고 있다. 다행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일까...그는 쓸쓸해진다.
   그런 그 앞에 또 한 명의 여자가 나타난다. 해화당 서점의 나여경...
   이강구가 집요하고도 악랄하게 괴롭히는 그 여자.
   이강구의 악랄한 고문과 그의 집요한 심문을 강인하게 견뎌내던 여자.
   그런데 이 여자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엉뚱하고, 당혹스럽다.
   어떤 날은 앞에서 불쑥 튀어 나와 모기만한 목소리로
   ‘커피 한잔 사주세요...’하고, 어떤 날은 뒤에서 불쑥 튀어 나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여....여....여...영화 한편 보여주세요....’ 한다.
   연애에는 전혀 소질이 없어 보이는 이 여자, 무슨 말만 해도 얼굴이 빨개져서
   더듬거리는 이 여자, 조금만 놀려대도 당황해서 뒤로 움찔 물러서는 이 여자.
   어느 순간 이 여자가 재밌어진다. 이 여자의 대책 없음이 귀여워진다.
   그녀의 순진함이 사랑스러워진다.

 

 

   차 송 주 (25세)

 

   그녀의 성격
   본명 차 연홍.
   고급 관리들이나 드나드는 최고급 요릿집 명빈관의 유명 기생이다.  
   치명적인 외모와 매력의 소유자다. 뇌쇄적이고 도발적인 카멜레온이다.
   누가 감히 그녀를 ‘노류장화(路柳墻花)’라 부르는가.
   그녀는 함부로 꺾을 수 있는 꽃도, 길가에 쉬이 피어있는 꽃도 아니다.
   오직 경성 최고의 갑부나, 대단한 권력의 소유자가 아니면 만날 수 없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꺾을 수 없는 절벽 위에 저 홀로 핀 치명적인 꽃이다!
   그 시대에 ‘폐인 문화’가 없었음을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 그 시대가 조금만 더
   근대화 되었다면 분명 ‘차폐모’ (차송주 때문에 폐인이 된 아들을 둔 부모들의 모임) 회원들의 촛불 집회로 광화문 네거리는 사시사철 교통 체증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그뿐인가? 그녀는 댄싱 퀸에 탑 싱어다. 그러니 충고하건데,
   까페 ‘깔패디엠(까르페 디엠)’에 그녀가 떴다는 사실을 적들에게 알리지 말라.
   그녀의 파격적인 패션과 도발적이고도 뇌쇄적인 춤,
   끈적끈적한 노랫소리에 ‘차폐모’회원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뿐이다.
   선전 선동의 대 마왕이다. 만일 악덕 포주들의 폭행과 부당한 대우에 기생들이
   단발을 하며 태업 또는 파업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면, 만일 경찰서 앞에
   도망친 기생을 찾는 탐인현상광고(探人懸賞廣告)가 붙었다면, 그건 백이면 팔십,
   차송주의 은밀한 선전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봐도 좋다.
   아, 그렇다고 그녀를 잡아들여 취조 할 생각일랑은 아예 안 하는 것이 좋다.
   아마 그녀는 샤론 스톤보다 백만 배는 더 강력한 뇌쇄적인 매력으로 그 취조를
   피해나갈 것이다. 뿐 아니라, 그 끝을 알 수 없는 엄청난 권력자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를 비호하고 나설 것이다. 그녀는 분명 그 특유의 나른한 말투와,
   필살기인 오묘한 웃음으로, ‘취조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언제 한번 명빈관에
   놀러오세요.’ 할 것이다. 절대 가면 안 된다!
   가정의 평화와 안전을 원한다면 절대, 절대 가지 말라!
   부자가 아니라서, 권력자가 아니라서, 그녀를 직접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드는가? 그렇다면 현해탄에 몸을 날릴 생각 말고 라디오를 틀어라.
   경성방송국에서 흘러나오는 그녀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라디오조차 없다면, 경성 역으로 가라. 조선 총독부 철도국에서 찍어낸 홍보
   포스터 안 에서 활짝 웃고 있는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연예인이 없던 그 시절, 조선 최고의 스타급 연예인이었다.

 

   그녀의 비하인드(그녀의 트라우마)
   가난했다. 소작농도 못 되어 화전민이었다.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다.
   어머니는 돌림병으로 죽은 지 오래였다. 늘 배가 고팠던 두 동생은
   혀에 백태가 끼고 얼굴에 버캐가 일었다.
   그녀는 예뻤다. 그녀의 예쁜 외모가 그녀 어머니에겐 늘 근심이었다.
   그녀 팔자가 혹독한 얼굴값을 치룰까 두려웠던 것이다. 어머니의 근심은 옳았다.
   첫 번째 얼굴값은 아버지 도박 빚 대신 기방에 팔려가는 것으로 치뤘다.
   천성인지 살고자 하는 의지였는지 다행히 춤도 노래도 금방 배웠다.
   가난에 찌들었던 얼굴은 고운 한복 맵시 속에 금세 가려졌다.
   화초 머리를 올리는 날. 그녀의 상대는 친일파 지주였다.
   술 취한 그는 잔인했고, 비열했고, 망나니였고, 짐승이었다.
   그녀를 실컷 능욕한 후 곯아떨어진 사내를 남겨두고 그녀는 방을 나왔다.
   적당한 나무 하나를 골라, 사내가 그녀를 묶었던 밧줄로 목을 메어 죽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적당한 나무 대신 그가 먼저 보였다.
   명빈관에 자주 심부름을 오던 경기고보 학생 이수현.
   서러울 만큼 환히 빛나던 달빛이.... 단정한 그의 교복이...
   그녀의 상처를 닦아주며 ‘그래도 살아라. 그것이 복수다’ 말해주던 그의
   목소리가, 텅 비어 있던 그녀 심장에 다시금 뜨거운 피를 채워주었다.
   그날 그녀는 자신을 묶었던 밧줄로 자신을 능욕했던 친일파 지주를 묶었다.
   사내의 입에 버선을 쑤셔 넣고, 자신을 때렸던 채찍으로 사내를 때렸다.
   화초장 위에 놓인 화병으로 사내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혼수상태에 빠진
   그를 리어카에 실고 나가 담담한 얼굴로 청계천 다리 밑에 던져버렸다.
   북간도건 오사카건 어디로든 도망가리라 결심하며 몸을 돌리던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우리의 일을 대신 해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굉장히 치밀하고, 깔끔하며, 좋은 솜씨라고 말해주었다.
   그가 애물단의 핵심 요원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그 남자의 도움으로 러시아로 도주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운전을 배웠고,
   바이크를 배웠으며, 독순술과 사격, 폭탄 제조기술, 수초 안에 총을 조립할
   수 있는 순발력까지, 그 모든 것을 춤과 노래를 익히듯 리드미컬하게
   익혀나갔다.
   7년 후. 그녀는 차 연홍이 아닌 차 송주가 되어 다시 경성으로 돌아왔다.
   도망친 그녀를 찾는 탐인 현상 광고문을 찢어들고 명빈관에 다시 나타났다.
   그녀의 화려한 컴백과 함께 명빈관엔 온 경성의 남자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뇌쇄적인 조선의 팜므파탈, 식민지 조선의 원더우먼, 애물단의 숨겨진 비밀병기
   니키타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녀의 멜로
   ‘애물단’의 조직원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다.
   상부로부터의 지시도 중간 전달자를 통해 받는다.
   다만, 자신이 지령을 내려야 하는 바로 아래 단계의 조직원만은 알 수 있다.
   이때에도 물론 본인이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닌, 중간 전달자를 통해 지령을
   전달한다. 하여 그녀는 자신의 상급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다만 자신의 하급자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해화당 서점의 나 여경.
   그녀는 이제 막 조직 활동을 시작한 여경을 언니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헌데 여경이 요즘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상대는 조선 총독부의 이수현.
   순간 그녀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릿한 심장의 통증을 느낀다.
   이수현... 명빈관에서 내 상처를, 내 눈물을 닦아주던 남자...
   명빈관 회식 자리에서 처음 그를 봤을 때 그녀는 첫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는 체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물으려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해주어야 한다. 그가 왜 친일파가 되었는지를 물으려면, 너는 왜 그때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기생이 되었느냐는 물음에 답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현재 조직의 지령을 수행중이다. 고급 정보 수집과 그녀의
   강력한 비호 세력을 만들기 위해 보안과장 우에다를 자신의 연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랑하는 그 남자 앞에서, 그의 상사인 우에다 품에 안겨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은 그녀에게 큰 고통이었다.
   바로 그때 선우 완의 내기 소식이 들려온다.
   여기서 잠깐. 경성의 많은 사람들이 까페 ‘깔패디엠’의 황태자와 디바,
   선우완과 차송주가 왜 연애를 하지 않는가를 늘 궁금해 하는데,
   그건 이 세계를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다. 선수와 선수는 절대 연애를
   하지 않는 법.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선수끼리의 연애가
   무슨 설렘이 있고, 어떤 스릴이 있겠는가.
   따라서 두 사람은 그저 쿨한 소울메이트일 뿐이다.
   어쨌든 그 선우완이 나 여경을 상대로 내기를 걸었단 말이지?
   그녀의 관심이 쏠린다. 선우 완의 내기가 성공하기를 은근히 바라는 그녀의
   마음은 이수현에 대한 사랑의 감정,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굿 럭 프린스! 힘내라 선우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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