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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발리에서 생긴 일] 20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1.12.27|조회수1,877 목록 댓글 0

[발리에서 생긴 일] 20

 

 

 

 

 

 

 

 

 

 

S#1. 마케팅 사무실 (밤)

 

어두컴컴한 사무실.

인욱, 자기 자리에 스탠드만 켜 놓고 앉아 사직서를 들여다보고 있다.

인욱, 사직서를 접어 봉투에 담아 서랍 속에 넣고 서랍의 키를 잠근다.

인욱, 일어나 양복저고리를 입고 가방을 들고 나가려다가 전화기를 꺼내 전화를 하며 어두운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인욱 : 나야. ... 사무실. ... 일이 좀 있어서. ...잠깐 들를께.

 

인욱의 모습이 사라진다.

 

 

S#2. 마당 (밤)

 

수정, 마당으로 들어서며 핸드백에서 열쇠를 찾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여 고개를 들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평상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 재민과 눈이 마주친다.

 

재민 : (술 취한 목소리로) 이제 와?

 

수정, 재민을 무시하고 핸드백에서 열쇠를 찾아 들고 방문 앞으로 가는데

재민, 비틀 걸음을 옮겨 수정의 팔을 잡으며 앞을 가로막고 선다.

 

재민 : 사람을 봤으면 아는 척은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수정 : (어처구니없지만) 안녕하세요?

재민 : 안녕 못해. 너 땜에.

수정 : ...

재민 : 너, 나 염장 지르려고 내 눈 앞에서 보란 듯이 그 놈하고 붙어 다니는 거지?

수정 : (기가 막히다)...

재민 : 너, 나랑 만나기 전부터 그 놈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였지?

수정 : (기분이 더러워져 재민을 빤히 노려본다)...

재민 : (이런 얘기 하려고 온 게 아닌데 얘기가 이상하게 진행이 된다) ... 너, 강인욱이 사랑하냐?

수정 : (느닷없는 질문에 순간 대답을 못한다) ...

재민 : 강인욱이 사랑하면서도 순전히 돈 때문에 나하고 잔 거야?

수정 : (눈물이 핑 돈다) 그래. 그러니까 꺼져.

재민 : 근데 왜 돈 안받았어?

수정 : ....

재민 :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그런 애가 돈을 왜 거부해? 너무 적어서?

수정 : ....

재민 : 그래?

수정 :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꾹 참는다)

재민 : 그럼, 얼마면 돼?

 

수정, 재민의 귀뺨을 사정없이 갈긴다.

재민, 고개가 홱 돌아간 채 피식 웃는다.

 

수정 : 비켜.

재민 : ... 너, 내가 이혼하고 오면 나랑 결혼할래?

수정 : ....

재민 : 왜냐하면 내가 죽을 거 같애서 그래. ...어떻게든 참아볼라 그랬는데.....

         다른 건 다 참겠는데... 니가 화를 내는 것도 참겠는데 ... 니가 나를 외면하는 건 정말 못 참겠어.

수정 : ...

재민 : 그러니까 기다려. 아무데도 가지 말고 기다려. 다 버리고 데리러 올게.

 

재민, 비틀거리며 돌아서는데 인욱이 언제부턴가 입구에 서서 두 사람을 보고 있다.

재민, 인욱을 보고 피식 웃는다.

 

재민 : 어, 강대리. 자주 보네?

 

재민, 인욱을 지나쳐 사라진다.

인욱, 굳은 얼굴로 두 사람을 보고 있다가 가는 재민을 돌아보고 다시 수정을 본다. 수정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다.

인욱, 수정에게 다가간다.

 

인욱 : 무슨 일이야?

수정 : 아무 일도 아니에요.

인욱 : 아무 일도 아닌데 울었어?

수정 : ... 들어가서 차 한 잔 할래요?

인욱 : 아니야. 그냥 갈께. 잘 자.

수정 : 저기,

 

인욱, 돌아서 가버린다.

수정, 잡지도 못하고 멍하니 가는 인욱의 뒷모습을 보다가 안으로 들어간다.

 

 

S#3. 미희 방 (밤)

 

수정, 방으로 들어와 불도 켜지 않고 방 가운데 우두커니 앉아 있다. 도대체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S#4. 언덕 (밤)

 

인욱, 언덕을 내려가다가 저만치 비틀거리며 내려가는 재민을 본다.

인욱, 그 자리에 서서 내려가는 재민의 모습을 빤히 본다.

 

 

S#5. 재민이네 집 (밤)

 

재민, 술이 취해 비틀거리고 들어온다.

영주, 평상시의 재민이처럼 TV를 틀어놓고 멍하니 보고 있다.

재민, 그런 영주를 잠시 보다가 부엌에서 술을 꺼내 영주 앞에 앉으며 텔레비전을 꺼버린다.

 

재민 :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거냐?

영주 : ...

재민 : 너, 인생 끝장난 놈한테는 매력 못 느낀다 그랬지?

영주 : (본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

재민 : 내가, 니 말대로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거든? 그래서 인생 끝장낼라 그러는데. 어떻게 생각해?

영주 : (비웃는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냐.

재민 : (피식) 너, 나 우습게 본다? 나도 한다면 하는 놈이야.

영주 : 할 수 있으면 해. 누가 말려?

 

영주, 다시 텔레비전을 켠다.

 

재민 : 나, 그래서 너하고 이혼할 거거든?

 

영주의 입가에서 비웃음이 사라진다.

 

영주 : 이혼?

재민 : 응. 너랑 이혼하고 이수정하고 결혼할 거야. 결혼해서 멀리 가서 살 거야.

영주 : 강인욱이 놔준대?

재민 : 그 자식이야 뭐, 곧 끝장날 텐데 뭐. 흐흐흐...

영주 : 무슨 얘기야?

재민 : 넌 몰라도 돼. 아무튼 니가 끝까지 이혼 안 해 준다 그래도 난 갈 거야. 수정이하고. 그렇게 알아.

 

재민, 술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간다.

영주, 평소와 다른 재민의 행동에 불안해진다.

 

 

S#6. 범진이네 집 (밤)

 

일민, 소파에 앉아 술 한 잔을 손에 들고 TV를 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통쾌하고 스스로 대견한지 참으려고 해도 자꾸 웃음이 나온다.

 

일민 : 음하하하.......음하하하....흐흐흐흐....흐흐흐흐...으하하하하.

 

범진, 지나가다가 그런 일민을 이상한 눈으로 보고 텔레비전을 본다. 심각한 다큐멘터리다.

 

범진 : 뭐, 좋은 일 있냐?

일민 :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 한다) 아, 아닙니다.

범진 : 미친 놈.

 

범진, 방으로 들어간다. 일민, 표정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S#7. 마케팅 사무실

 

재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로 들어간다.

재민, 다른 직원들의 인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리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인욱만 뚫어져라 노려보며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S#8. 재민의 사무실

 

재민, 자리에 앉자마자 문이 벌컥 열리고 일민이 들어온다.

 

일민 : 술 좀 깼어?

재민 : 아침부터 웬일이야?

일민 : 어제 니가 얘기한 거 말이야. 정리 좀 해봤거든?

 

일민, 들고 들어온 파일을 재민 앞에 내려놓는다. 재민, 파일을 내려다본다.

 

일민 : 아무리 형제간이라도 말이야, 분명히 할 건 분명히 해두고 넘어가야 나중에라도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지 않겠냐?

         찬찬히 읽어봐. 궁금한 거 있으면 전화하고. (돌아서다가) 아, 그리고 니가 부탁한 건 조만간에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재민 : 어떻게?

일민 : (씩 웃으며)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달라며?

 

일민, 발걸음도 가볍게 사무실을 나간다.

재민, 피식 웃고 파일을 열어볼 생각도 않고 의자를 돌려 밖을 본다.

 

 

S#9. 마케팅 사무실

 

일민, 재민의 사무실에서 나와 인욱의 자리를 보는데 없다.

일민, 인욱의 책상 위를 괜히 기웃거리다가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S#10. 복도

 

인욱, 아무도 없는 복도 끝에서 그때처럼 전화를 하고 있다.

 

인욱 : (영어로) ... 내가 보기엔 시간을 더 끌 필요가 없을 거 같은데...

         물론이지, 최회장 쪽 자금이 들어오게 되면 조건이 훨씬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있으니까 ... 그래, 서두르자고.... 음.... 음...

 

 

S#11. 갤러리

 

영주, 전화를 하는데 계속 통화중이자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전화를 하는데 송여사가 들어온다.

영주, 얼른 전화를 끊고 일어난다.

 

영주 : 나오셨어요?

송 : 어.

 

송, 불안해하는 영주를 슥 보고 자리에 앉는다.

 

송 : 무슨 일 있니?

영주 : 아뇨.

송 : 미스 김은?

영주 : 은행 심부름 보냈어요. 차 한 잔 드릴까요?

송 : 어, 그래.

 

영주, 일어나 차를 준비하는데 전화벨 울린다.

 

송 : 여보세요. ... 어, 재민이니?

영주 : (차를 타다가 돌아본다)

송 : ... 왜? 영주 바꿔줘? ... 아니, 별 일 없어. ... 그래, 그럼 이따 집에서 보자. (갸우뚱하며 끊는다)

영주 : 재민씨가 왜요?

송 : 글쎄다. 오늘 저녁에 집에 온다는데?

 

영주, 불안하다.

 

 

S#12. 범진이네 집 (밤)

 

범진과 일민, 바둑을 두고 있고 송여사와 영주, 부엌에서 케잌과 차를 준비하고 있고

재민, 따로 떨어져 앉아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영주, 말없이 따로 앉아 있는 재민을 불안한 얼굴로 자꾸만 돌아본다.

 

일민 : (바둑을 두며 범진에게) 그래서 유동성 문제는 걱정 안 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범진 : (일민을 살피듯 보며) 그래?

일민 : (자신 있게 웃으며) 예. 이번 협상만 잘 마무리 되면 유통 쪽 신규 투자에 대한 자금수요까지 넉넉히 충당할 수 있을 겁니다.

범진 : 음...

재민 : (결심한 듯 강아지를 내려놓으며) 아버지.

범진 : 응?

재민 : 저, 이혼할게요.

 

범진과 일민, 놀란 얼굴로 재민을 돌아보고 주방 쪽에서는 뭔가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식구들, 영주를 돌아본다.

 

재민 : 결혼하기 전에 말씀드렸어야 되는데 죄송합니다. 나가라면 나가구요, 하라는 대로 할게요.

 

식구들, 너무 놀라 다들 굳어 있는데.

 

재민 : 그 여자애 때문은 아니구요. 걔는 저 싫어하거든요. 그냥 제가 못 견디겠어서 그래요. 이해해 주세요. 영주야, 미안하다.

 

재민,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들고 나간다.

 

송 : 얘! 얘! 얘! 재민아!

 

송여사, 따라 나가다 서서 영주와 범진의 눈치를 본다.

영주, 굳은 듯 그 자리에 서서 파랗게 질려 있고 범진 역시 굳은 듯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일민,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범진과 송여사, 그리고 영주의 반응을 살핀다.

 

송 : 쟤가 미쳤구나. 영주야. 이게 웬일이니?

영주 : (싸늘하게) 이혼이 안되면 그 기집애랑 도망가겠대요.

 

일동, 영주를 돌아본다.

 

 

S#13. 거리 (밤)

 

달리는 재민의 차.

재민, 한편 홀가분하기도 하고 한편 걱정스럽기도 하다. 재민, 생각에 잠겨 운전을 하다가 전화를 한다.

 

 

S#14. 당구장 (밤)

 

텅 빈 당구장. 수정, 미친 듯이 청소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수정, 카운터로 뛰어가 전화를 꺼낸다. 재민이다.

수정, 잠시 망설이다 받는다.

 

수정 : 여보세요.

재민 : 어디야?

수정 : ... 당구장인데요.

재민 : 별 일 없어?

수정 : 무슨 일이요?

재민 : 어, 아니야.

수정 : ...

재민 : 내가 그리 갈게.

수정 : ... 오지 마세요. 저, 퇴근할 거예요.

재민 :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 그래. 기다려. (끊는다)

 

수정, 전화를 끊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 퇴근준비를 서둘러 하고 불을 탁탁 끄고 나가려는데

문이 벌컥 열리고 깔끔한 남자(회장 경호원) 둘이 들어온다.

 

수정 : 영업 끝났는데요.

남자 : 이수정씨?

수정 : (깜짝 놀란다) ...누구세요?

남자 : 우리하고 어디 좀 같이 가야겠는데?

수정 : (무섭다. 뒷걸음질친다) 누구신데요.

남자 : 가 보면 알아.

 

남자들, 수정에게 다가가 수정의 양팔을 잡으려는데.

 

수정 : (비명을 지르며 당구대 뒤로 도망을 간다) 왜 이러세요?

 

이때 인욱이 들어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란다.

 

인욱 : 니들 뭐야?

 

남자들, 인욱의 등장에 흠칫 놀라고 수정, 얼른 인욱의 뒤에 숨는다.

 

인욱 : (수정에게) 괜찮아?

수정 : 네.

인욱 : 니들 누가 보냈어? 뭐 하는 놈들이야?

 

인욱, 전화기를 꺼내드는데 남자들,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다짜고짜 인욱을 공격해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남자들과 격투를 벌이는 인욱, 하지만 남자들의 노련한 손놀림과 발놀림에 상대가 되지 않자

큣대를 뽑아들고 닥치는대로 휘둘러 남자들을 물러나게 하고 수정의 손을 잡고 밖으로 도망친다.

남자들, 뒤따라 뛰어나간다.

 

 

S#15. 당구장 건물 안 (밤)

 

수정의 손을 잡고 달리는 인욱, 입구로 빠져 나가려다가 생각을 바꿔 계단 위로 올라간다.

수정과 인욱이 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남자들, 달려와 밖으로 뛰어 나간다.

 

 

S#16. 당구장 앞 (밤)

 

남자들, 두리번거리며 인욱과 수정을 찾지만 간데없다.

 

 

S#17. 당구장 건물 안 비상계단 (혹은 여자화장실)

 

수정과 인욱, 어둠 속에서 숨을 몰아쉬며 숨을 죽이고 숨어 있다.

 

인욱 : 옛날 그 깡패들이야?

수정 : (공포) 아뇨.

 

인욱, 뭔가 심상치 않다.

 

 

S#18. 당구장 문 앞 (밤)

 

재민, 당구장 안에 불이 꺼 있자 의아한 얼굴로 보다가 문을 밀어본다. 열린다.

 

 

S#19. 당구장 안 (밤)

 

재민, 안으로 들어오다가 느낌이 이상해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본다.

수정은 보이지 않고 큣대가 어지러이 널려있다.

 

재민 : (불길한 예감이 든다) 수정아. 이수정?

 

재민,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해보는데 당구대 뒤에서 벨소리가 울린다.

재민, 조심스럽게 가 보면 떨어져 있는 수정의 핸드백 안에서 벨소리가 울린다.

재민, 심장이 쿵 내려 앉아 수정의 핸드백을 집어 들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S#20. 인욱이네 집 (밤)

 

인욱, 불을 켜고 들어온다. 수정, 겁에 질린 얼굴로 인욱의 뒤를 따라 들어와 소파에 앉는다.

 

인욱 : 앉아. (옷을 벗고 가방과 열쇠를 책상 위에 홱 던지며) 미희씨한테 한 번 전화해 봐.

수정 : (그제야 백을 찾는다) 백을 놓고 왔나 봐요.

 

인욱, 전화를 꺼내 전화를 한다.

 

인욱 : 미희씨?

 

 

S#21. 미희방 (밤)

 

미희, 라면을 먹으며 전화를 받다가 인욱의 목소리에 뜨거운 라면이 그냥 꿀떡 넘어간다.

 

미희 : (너무 뜨겁다) 아니, 인욱씨가 저한테 전화를 다 주시고... 별 일이요?..좀 전에 웬 남자들이 수정이 찾으러 왔다 갔는데요.

         수정이 이년은 도대체 뭘 흘리고 다니는지 찾아오는 남자도 많고, ...아, 예. 안녕히 계세요.

 

미희, 인욱의 전화가 꿈만 같은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재민 : (소리) 수정아, 수정아.

 

문 두드리는 소리.

 

미희 : (이를 부드득 갈며 버럭) 이수정, 내 이년을 기냥!

 

미희, 맨발로 뛰어나가 문을 벌컥 열면 재민이 초조한 얼굴로 안으로 슥 들어선다.

 

미희 : 무슨 일이세요?

재민 : 안에 있어요?

 

 

S#22. 인욱이네 집 (밤)

 

인욱, 수정이 앞에 차를 내려놓고 마주 앉는다.

 

인욱 : 무슨 일인지 확실히 알 때까지 그냥 여기 있어.

수정 :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다) ...어떻게 그래요.

인욱 : 껄끄럽겠지만, 그래도 여기가 제일 안전할 거야.

수정 : ...

 

인욱, 일어나 갈아입을 옷을 꺼내준다.

 

인욱 : 씻고 갈아입어.

 

인욱, 어색하게 등을 돌리고 서서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 옷을 갈아입는다.

수정, 민망하다.

 

 

S#23. 범진이네 집 (밤)

 

범진, 거실 소파에 앉아 전화를 받고 있고 일민, 그 앞에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다.

 

범진 : ... 응... 응... 응, 알았어.

 

범진, 전화를 끊는데 송여사, 현관에서 재민을 맞이한다.

송여사, 안으로 들어서는 재민을 째려보고 범진, 돌아보지도 않고 일민, 범진의 눈치만 보고 있다.

 

재민 : 어떻게 하셨어요?

송 : 재민아. 아버지 혈압도 있으신데 너무 신경 쓰시게 하지 말고 오늘은 가라.

재민 : (눈이 홱 돌아) 수정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범진 : (일민에게) 재민이 카드, 전부 사용정지 시켜.

일민 : 예, 아버님.

재민 :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른다) 어떻게 하셨냐구요!!!

범진 : 누구든지 재민이한테 일원짜리 한 장이라도 주다가 나한테 걸리면 알아서 해.

일민 : 예, 아버님.

범진 : (송여사에게) 당신도!

송 : 알았어요.

재민 : 제 말 안들리세요? 수정이 어쨌냐구요!!!! 수정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시는 건데요, 아버지!!!

 

범진, 재민의 말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재민 : 나, 돈 필요 없어요. 다 필요 없어. 아버지가 아무리 그러셔도 저, 영주하고 이혼해요.

범진 : (한심하다는 듯 재민을 싸늘하게 보다가) 얘, 다음부터 집에 들이지 마. 나가! (버럭) 내 집에서 당장 나가!!!

 

송여사와 일민, 범진의 호령에 눈치를 보며 벌벌 떨고 재민, 가족들을 슬픈 눈으로 둘러보다가 홱 돌아서 나간다.

 

범진 : (나가는 재민의 등에 대고) 어따 대고 이혼이야! 이혼이!

 

범진, 고개를 푹 숙이고 잠자코 있는 일민을 슥 흘겨보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S#24. 재민이네 집 (밤)

 

재민, 수정의 핸드백을 들고 깜깜한 집으로 들어와 불을 켠다. 영주가 없다.

재민, 방문을 열어본다. 역시 없다.

재민, 수정의 핸드백을 들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초조한 얼굴로 백을 만지작거리다가 수정의 핸드백을 뒤져본다.

낡은 콤팩트, 립스틱, 지갑, 휴대폰, 동전, 휴지 등등이 나온다.

재민, 수정의 지갑을 열어본다. 오천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두어 개가 들어 있다.

재민, 수정의 주민등록증에 붙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어루만진다. 재민의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진다.

재민, 핸드폰을 열어 일번을 눌러본다. 강인욱이다.

재민, 백에 얼굴을 묻고 막 울기 시작한다.

 

 

S#25. 인욱이네 집 (밤)

 

인욱,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 놓고 일을 하다가 기지개를 켜는데 발리 호텔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인욱, 침대를 돌아본다. 잠들어 있는 수정이 보인다.

인욱, 자리에서 일어나 수정에게 다가가 잠든 수정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수정이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왜 이리 뿌듯한지 모르겠다.

시간경과 - 아침

수정, 침대에서 부스스 눈을 뜨다가 낯선 공간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 방안을 둘러본다.

식탁에 아침이 깔끔하게 차려져 있고 소파에는 이불이 개켜져 있다.

수정, 일어나 두리번거리며 인욱을 찾다가 식탁에 놓인 메모지와 열쇠, 돈 몇 만원을 본다.

갔다 올게. 몸조심하고 이따 보자.

수정,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수정,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한다.

 

 

S#26. 갤러리

 

송여사와 박여사 마주 앉아 있다. 송여사,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박여사, 부들부들 떨고 있다.

 

박 : 재민이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와이프가 친정에 와서 누워 있는데 어떻게 전화 한 통을 안 합니까?

송 : 죄송합니다.

박 : 내가 그 기집애 집에도 갔었는데 깜쪽 같이 없어졌더라구요.

송 : 저희도 찾고 있어요.

박 : 그리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따대고 재민이 입에서 이혼하잔 소리가 나옵니까?

      와이프에 대한 열등감을 그런 식으로 푸나 보죠?

송 :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열등감이라뇨?

박 : 그런 거 아닙니까? 와이프가 너무 똑똑해서 못견디겠으니까 급사애 하고 살겠다는 거 아니에요?

      재민이 수준이 그거 밖에 안되나보죠?

송 : (참다참다) 말씀이 너무 지나치시네요. 애초에 누구 때문에 시작된 일인데요? 내가 말씀 안 드리려 그랬는데. 아유, 관둡시다.

박 : 아니, 왜 관두세요? 어디 말씀해 보시죠?

 

송, 못 참겠는지 서랍에서 인욱과 영주의 사진을 들고와 박여사 앞에 내민다.

 

박 : 이게 뭡니까?

송 : 보시면 아실 거 아니에요?

 

박, 보다가 속으로 흠칫 놀라지만.

 

박 : 이게 뭐 어쨌다구요? 그래서 영주가 집안에 문제 일으킨 거 있습니까?

 

송, 그 엄마에 그 딸이다.

 

박 : (벌떡 일어나며) 이제와서 이런 식으로 영주한테 책임을 뒤집어씌우시겠다? 어디 두고 봅시다.

 

박, 나간다. 송, 난처하다.

 

 

S#27. 재민의 사무실

 

재민,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다.

비서, 다급하게 들어온다.

 

비서 : 회의 안 들어가십니까? 지금 다 가셨는데요?

 

재민, 마지못해 일어나 유령처럼 밖으로 나간다.

 

비서 : 저, 팀장님.

 

비서, 필기도구를 챙겨 들고 따라 나간다.

 

 

S#28. 복도

 

범진, 일민과 다른 중역들을 거느리고 회의실로 들어가다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재민을 본다.

범진, 싸늘하게 재민을 외면하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재민도 범진을 싸늘하게 외면한다.

 

 

S#29. 대회의실

 

범진, 일민, 그 외 중역들과 외국인들이 회의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있다.

범진과 일민, 인욱이 나누어주는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외국인들과 서로 맞교환을 한다.

싸인을 마치고 계약서를 다시 교환하고 외국인들과 악수를 나누는 범진과 일민.

장내에 있던 사람들, 박수를 친다.

일민,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다가 서류를 챙기는 인욱을 의미심장한 눈길로 돌아본다.

재민,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딴생각만 하고 있다.

인욱, 그런 재민의 모습을 눈여겨본다.

 

 

S#30. 일민의 사무실

 

일민과 인욱, 사무실에 들어온다.

 

일민 : 앉아.

 

일민, 서류를 책상에 소중히 내려놓고 인욱과 마주 앉는다.

 

일민 : (기분 좋게 웃으며) 아, 이번에 진짜 수고 많았어.

인욱 : 별 말씀을요.

일민 : 휴가 좀 줄까? 어디 가서 머리 좀 식히고 올래?

인욱 : 괜찮습니다.

일민 : 괜찮기는.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으면 얘기해. 내가 휴가비 두둑히 챙겨 줄테니까.

인욱 : 고맙습니다.

일민 : 언제 갈래?

인욱 : 예?

일민 : 말 나온 김에 날 잡지 뭐?

인욱 : ...

일민 : 다음 주로 할까?

인욱 : ...네?

일민 : 당분간은 강대리 없어도 될 거 같으니까 한 일주일 푹 쉬다 와!

인욱 : ..고맙습니다.

일민 : 고맙긴.

 

일민, 인욱을 읽으려는 듯 빤히 보며 웃는다. 인욱도 같이 일민의 눈을 마주보며 미소로 답한다.

 

 

S#31. 마케팅 사무실 (밤) 

 

인욱, 불 꺼진 사무실에 혼자 앉아 책상에 다리를 올려놓고 빙글빙글 웃으며 전화를 하고 있다.

 

인욱 : (영어로) 그러게, 그 돈 어디다 다 쓰지? .... (웃다가) 요트나 하나 살까? ... 물론 빌려주고말고.

         ...입금계좌는 내가 부탁한 대로 처리하는 거 잊지 말고. ... 다음주 쯤?

         ... 안 그래도 휴가까지 줘서 떠나기가 훨씬 수월해졌어. ... 오늘은 안 돼. ... 빙고! 애인한테 다시 차이면 안 되잖아?

 

 

S#32. 인욱의 오피스텔 앞 (밤)

 

인욱, 막 달려와 현관으로 들어가려다가 서 있는 영주 차의 전조등이 깜빡이는 것을 보고 선다.

영주, 차에서 내린다.

 

영주 : (인욱에게 다가오며) 늦었네? 하루 종일 통화 중이던데? 뭐가 그렇게 바빠?

인욱 : .... 또 무슨 일이야?

영주 : 그렇게 사무적으로 대하지 좀 마.

인욱 : ...

영주 : 안 들어가?

인욱 : 그냥 여기서 얘기해.

 

영주의 차 안 (밤)

인욱과 영주, 나란히 앉아 있다.

 

영주 : (자조적으로) 참, 자존심도 없지.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찾아 오냐?

         난, 이수정이란 애가 자존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요새 보면 정말 나야말로 자존심이라곤 없는 거 같애.

인욱 : ...

영주 : (픽픽 웃다가 굳는다) 정재민이 이혼하재.

인욱 : ...

영주 : 이수정이하고 살겠대.

인욱 : ...

영주 : 그래서 나도 곰곰 생각해봤어. 내가 안 해주면 이혼은 안 되는 건데, 까짓 거 나도 다 버리고 너하고 살까?

         근데 이젠 버리지 않아도 가능하겠더라고. 나, 이혼하면 우리 결혼하자.

인욱 : (피식 웃음이 나온다)

영주 : 뭐, 그래도 반대는 하겠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못이기는 척 져주지 않을까? 자기 딸이 이혼년데?

인욱 : ... 영주야. 너, 아직도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

영주 : ... (참고 있던 눈물이 핑 돈다)

인욱 : 나, 이제야 너, 겨우 잊었어.

영주 : 잊지 마. 왜 잊고 그래? 난 아직 너 사랑하는데?

인욱 : 정말 왜 이러니, 너?

영주 : 그런 기집애 뭐가 좋아? (눈물이 후드득 떨어진다) 뭐가 좋아서 그런 기집애랑 결혼까지 하겠다는 거야?

         정재민, 너! 니네 둘 다 미쳤어.

인욱 : ... 그래... 미친 거 같다.

 

인욱, 문을 열고 내리려는데.

 

영주 : 정재민이가 그러데? 너, 끝장났다고.

인욱 : 고맙다. 미리 알려줘서.

 

인욱, 픽 웃고 문을 꽝 닫고 내려 후닥닥 뛰어 들어간다.

영주, 오피스텔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인욱이 이상하다.

 

 

S#33. 인욱이네 집 (밤)

 

현관벨이 급하게 울린다. 수정, 문을 열면 인욱이 들어온다.

인욱, 수정이 열어주는 문으로 쑥스럽게 들어서며 좋아하는데 수정, 걱정스러운 얼굴로 인욱을 맞이한다.

 

인욱 : (안으로 들어오며) 아무 일 없었어?

수정 : 네.

인욱 : (겉옷을 벗고 넥타이를 풀며)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지?

수정 : 저기, 당구장 문 안 잠그고 온 게 자꾸 맘에 걸려서요, 오빠하고 미희한텐 전화했어요.

인욱 : ... (약간 마음에 걸리지만) 잘 했어.

수정 : 미희한테 최영주씨 엄마도 찾아왔었다 그러더라구요.

인욱 : 그래?

 

인욱,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고 부엌 쪽으로 가는데 식탁에 상이 차려져 있다.

 

수정 : (인욱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외면하고 서 있다가) 저, 이제 가볼게요.

인욱 : (본다)

수정 : 생각해보니까 내가 죄인처럼 숨어 있을 이유가 없더라구요. 언제까지 피해 다닐 수도 없구요.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요?

인욱 : ... (식탁 의자에 앉으며) 밥 먹었어?

수정 : 아뇨.

인욱 : 갈 때 가더라도 같이 먹자. 이렇게 다 차려 놓고 그냥 가는 법이 어딨어?

 

수정, 잠시 갈등한다.

 

인욱 : 앉아.

 

시간경과

수정과 인욱, 말없이 밥을 먹고 있다. 긴 침묵.

 

인욱 : (불쑥) 나랑 있는 게 싫어?

수정 : (당황한다)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인욱,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들고 돌아와 수정의 앞에 내려놓고 다시 앉아 밥을 먹는다.

 

수정 : 뭐예요?

인욱 : 열어봐.

 

수정, 봉투를 열면 발리행 비행기표가 나온다. 수정, 놀란다.

 

인욱 : 니가 가든 안 가든 난 갈 거고, 돌아오지 않을 거야. ... 니가 결정해. 기다릴게.

 

인욱, 다시 밥을 먹기 시작한다.

수정, 엄청난 제의에 황당하다.

 

 

S#34. 미희방 (밤)

 

수정 : 미희야... 미희야...

 

미희, 자고 있다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퍼뜩 일어나 불을 켜고 나간다.

미희, 문을 열면 수정이 들어온다.

미희, 문 밖을 살피고 문을 꼭 잠근다. 수정, 옷을 갈아입고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간다.

 

수정 : 어으 추워.

미희 : 왜 왔냐? 나 같으면 핑계 김에 그냥 눌러 있겠구만.

수정 : 별 일 없었어?

미희 : 정말 살다 살다 별 꼴을 다 본다, 내가. 아니, 어떻게 인간들이 그러냐? 사람을 납치해서 폭력이라도 쓰겠다는 거야, 뭐야?

         법치국가에서 이게 무슨 일이냐고?

 

미희,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수정의 옆에 눕는다.

 

수정 : ... 혹시 정재민씨 안 왔었어?

미희 : 왔었지.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오는지 몰라도... 너한테 무진장 미안해는 하더라마는....

         그 사람도 참, 어쩌다 너 같은 애한테 꽂혀갖고... 마누란 뭐야, 도대체. 오죽하면 그 집안에서 널 잡으러 다니겠냐?

 

미희, 어느새 가볍게 코를 골며 잠이 들고 수정, 일어나 불을 끄고 다시 눕는다.

수정, 잠을 청하려고 애쓰지만 정신이 더욱 말똥말똥해지면서 재민과 인욱의 말이 떠오른다.

 

재민 : 그러니까 기다려. 아무데도 가지 말고 기다려. 다 버리고 데리러 올게.

인욱 : 니가 가든 안 가든 난 갈 거고, 돌아오지 않을 거야. ... 니가 결정해. 기다릴게.

 

수정,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S#35. 마당 (밤)

 

재민, 초췌한 얼굴로 들어와 불 꺼진 미희 방을 잠시 보다가 평상에 앉는다.

 

 

S#36. 인욱이네 집 (밤)

 

인욱, 집 안을 정리하면서 필요한 것들(책, 옷, 등등)만 박스에 담는다.

 

 

S#37. 미희방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수정.

 

 

S#38. 마당 (밤)

 

재민, 초점 없는 눈으로 평상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간다.

 

 

S#39. 미희방

 

수정,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결심한 듯 서랍을 뒤져 여권을 찾아 꺼내든다.

 

 

S#40. 고급식당

 

인욱, 숙자와 마주 앉아 스테이크를 썰고 있다.

 

숙자 :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아들 덕분에 이런 데서 밥도 다 먹어보고. 내가 아들 하난 정말 잘 낳았어. 그지?

인욱 : (씩 웃는다)

숙자 : 근데 어디로 출장을 가는데 그렇게 오래 가 있어?

인욱 : 여기저기 가요.

숙자 : ... 나가면 고생인데 먹는 거 잘 챙겨 먹고 다녀.

인욱 : 엄마.

숙자 : 왜?

인욱 : 죄송해요.

숙자 : 뭐가?

인욱 : 이런 데 처음 모시고 와서.

숙자 : 엄마가 장사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그리고 밥집 하는데 왜 남의 식당에 와서 밥을 먹어?

인욱 : ...

숙자 : 근데... 걔는 어떻게 됐냐?

인욱 : 잘 지내요.

숙자 : 만나?

인욱 : 엄만 걔가 그렇게 싫어?

숙자 : 사람은 서로 좀 엇비슷하게 만나야 돼. 그래야 행복한 거야.

인욱 : 행복할 거야. 걱정하지 마.

숙자 : 그래. 니 인생이니까 니가 알아서 해라.

 

인욱, 통장과 카드를 꺼내 내민다.

 

숙자 : 이건 왜?

인욱 : 거기 돈 좀 넣어놨으니까요. 꺼내 쓰세요.

숙자 : (농담처럼) 원 없이 한 번 써보라고?

 

숙자, 좋아하며 통장을 열다가 기겁을 한다.

 

숙자 : 이게 웬 돈이야?

인욱 : 적금 탄 거예요.

숙자 : 아니, 무슨 적금을 이렇게 많이 타?

인욱 : 원 없이 써보고 싶다며? 원 없이 써봐.

숙자 : (믿을 수가 없다) 아니, 얘..

 

숙자, 불안한 얼굴로 인욱을 본다.

 

인욱 : 엄마도 행복해야 돼.

 

숙자, 점점 더 불안해진다.

 

 

S#41. 인욱이네 집

 

깔끔하게 정리 돼 있는 집 안. 인욱, 간단한 트렁크를 옆에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티켓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인욱, 시계를 들여다보고 실망한 얼굴로 티켓을 안주머니에 넣고 가방을 들고 일어나 현관으로 간다.

인욱, 다시 한 번 집 안을 둘러보고 문을 여는데 수정, 상기된 얼굴로 벨을 누르려다가 놀라 본다.

 

수정 : 아직 안 늦었어요?

 

인욱, 말없이 수정을 와락 끌어안는다.

 

 

S#42. 재민이네 집

 

영주, 문을 열고 들어오면

커튼을 컴컴하게 쳐 놓고 어둠 속에서 TV를 켜놓고 멍하니 앉아있던 재민이 문소리에 돌아보고 다시 고개를 돌린다.

영주, 잠시 그런 재민을 보다가 안방으로 들어간다.

영주, 트렁크를 꺼내 옷가지들과 소지품을 대충 담고 가방을 들고 다시 거실로 나온다.

그때까지도 넋을 놓고 있던 재민, 영주가 나오자 다시 돌아본다.

 

재민 : ....아주 가는 거야?

 

영주, 들은 척도 않고 문을 꽝 닫고 나가버린다.

재민, 다시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S#43. 출국장 로비

 

인욱, 체크인 카운터에서 짐을 부치고 보딩 패스를 받아들고 수정이 앉아 있는 쪽으로 돌아온다.

 

인욱 : 다 됐어. 가자. (씩 웃으며 손을 내민다)

 

수정, 인욱을 잠시 올려다보다가 인욱의 손을 잡고 일어난다.

인욱, 수정의 손을 더욱 세게 잡고 출국 심사대쪽으로 걸어간다.

 

 

S#44. 출국심사대 앞

 

수정, 인욱에게 손이 꼭 잡힌 채 안으로 들어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뒤를 한 번 돌아본다.

인욱과 수정이 안으로 들어가면 문이 굳게 닫힌다.

 

 

S#45. 기내 비즈니스 클래스

 

인욱, 수정의 손가방을 좌석 위 트렁크에 올려놓고 수정의 옆자리에 앉는다.

수정, 상기된 얼굴로 창 밖을 보고 있다.

인욱, 수정의 손을 꼭 잡는다.

 

인욱 : ... 고마워. ... 와줘서...

 

수정, 인욱을 돌아본다.

 

 

S#46. 마당 (밤)

 

재민, 하염없이 기다리다 돌아서 간다.

 

 

S#47. 일민의 사무실

 

일민, 책상 의자에 앉아 있고 일민의 앞에는 날카롭게 생긴 젊은 남자직원이 서 있다.

일민, 책상 서랍에서 파일을 꺼내 젊은 직원 앞에 던진다.

 

일민 : 그 안에 다 있으니까 강인욱이 엮어 넣는 건 일도 아닐 거야. 강인욱이 휴가 끝나고 복귀하기 전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해.

직원 : 예.

 

직원, 파일을 들고 깍듯이 인사하고 나간다.

일민, 직원이 나가자 갑자기 콧노래를 부르며 컴퓨터를 부팅하고 인터넷으로 해외 은행에 계좌 접속을 시도하는데

패스워드를 입력할 때마다 번번이 계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뜬다.

일민, 느긋한 자세에서 콧노래가 사라지며 점점 초조한 자세로 바뀐다.

일민, 몇 번을 시도하다가 안 되자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한다.

 

일민 : (영어로) 하이. 나 팍스그룹의 정일민인데, 계좌에 문제가 생겼다. ... 뭐? ... 뭐? ... (깜짝 놀라) 강인욱이가?

         ... 아니, 내가 다시 전화하겠다.

 

일민, 평상심을 잃고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사색이 된다. 일민, 점점 숨쉬기가 곤란해진다.

 

 

S#48. 마케팅 사무실

 

재민, 초췌한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인욱의 자리가 비어 있다.

재민, 인욱의 자리를 슥 돌아보고 들어간다.

 

 

S#49. 재민의 사무실

 

책상 위에 사직서가 올려져 있다.

재민, 가방을 벗어 놓고 자리에 앉아 사직서를 집어 드는데 비서가 문을 벌컥 열고 사색이 되어 뛰어 들어온다..

 

비서 : 큰 일 났습니다.

 

 

S#50. 일민의 사무실

 

재민, 열린 문으로 들어오면 바닥에 일민이 쓰러져 있고 의사 두어명이 산소호흡기를 대고 응급 처치를 하고 있다.

재민, 뭐가 뭔지 모르겠다.

 

 

S#51. 마케팅 사무실 (다른 날)

 

직원들,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고 있다.

 

여직1 : 정전무가 강인욱씨를 옭아매려다가 자기가 당한 거라면서요?

직원1 : 정전무가 회사돈을 그렇게 많이 빼돌렸대.

직원2 : 그래서 이번에 투자유치 하면서 그거 좀 메꿔 볼라고 페이퍼 컴퍼니 하나 만들어서 장난친 건데

           그걸 중간에서 강인욱이가 쓱싹한 거지.

여직2 : 얼마나 해 먹었는데요?

직원1 : 한 삼천만불 된다는 거 같던데.

직원들 : (경악한다) 힉? 뭐? (등등)

여직1 : 그럼, 우리 회산 어떻게 되는 거야?

직원2 : 오늘 채권단회의 열린대니까 두고 보자고.

 

 

S#52. 재민의 사무실

 

재민, 책상에 주먹을 올려놓고 그 위에 이마를 박고 앉아 비서의 보고를 듣고 있다.

 

비서 : 자카르타에서 돌아올 때부터 뭔가 계획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수정이가 의도적으로 팀장님한테 접근을 한 게 아닌가

         보여지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카르타에서 돌아올 때도 같은 비행기로 돌아오고 여기 와서도 옆집에 살고,

         더군다나 출국 직전까지 전무님이 마련해준 강인욱씨 집에서 동거했던 걸로 확인됐습니다.

         물론 출국도 같은 비행기로 했구요.

재민 : ...

비서 : 발리까지 간 건 확인 됐습니다만 어디에 묵고 있는지는 찾고 있는 중입니다. 발리에서 제 삼국으로 도피했을 가능성도 있고

         또 워낙 작은 규모의 호텔들도 많아서 찾기가...

재민 : ... 나가봐.

 

재민의 머리에 식당에서 강인욱과의 운명에 대해 말하던 수정의 모습이 떠오른다.

 

-

재민 : 강인욱씨하고는 어떡하다 옆집에 살게 됐어?

수정 : (인욱이를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환해진다) 그게 정말 이상해요.

         발리에서두요, 내가 사는 방, 바로 옆방에 묶었었거든요? 거긴 정말 일부러 찾을래도 찾기 힘든 뒷골목에 있는 건데.

재민 : (기분이 이상하다) 그래?

수정 : 그리고 귀국 할 때도 같은 비행기에, 그것도 바로 옆자리였거든요?

재민 : (언짢다) 우연히?

수정 : (신기하다는 듯) 네에.

재민 : (기분이 점점 더러워진다) 그런데 여기서도 옆방이다?

수정 : 네에!! 그것도 우리 집도 아니고 친구 집이거든요?

재민 : 대단한 인연이네?

수정 : 그러게요. 정말 이상하죠? 무슨 운명 같아요.

-

 

재민, 갑자기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재민,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엉엉 운다.

 

 

S#53. 인욱이네 집

 

재민, 텅 빈 집으로 들어와 싸늘하게 둘러본다.

재민, 침대를 살피다가 반짝이는 수정의 목걸이를 발견하고 집어든다. 재민의 눈에서 분노의 눈물이 맺힌다.

재민, 목걸이를 한 손에 콱 움켜쥐고 돌아서는데 벽에 붙여진 발리의 호텔사진이 눈에 확 박힌다.

인적 드문 바닷가의 작은 호텔을 인수하는 게 꿈이라던 수정의 말이 떠오른다.

재민,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재민, 천천히 다가가 사진을 확 떼어낸다.

 

 

S#54. 공항 가는 길

 

달리는 재민의 차. 재민, 넋 나간 얼굴로 미친 듯이 속도를 내고 있다.

 

 

S#55. 출국장 입구

 

재민, 발레서비스 주차장 입구에 아무렇게나 세우고 입구로 걸어 들어간다.

 

 

S#56. 출국장 로비

 

짐도 없이 간단한 백 하나만 든 재민, 보딩패스를 손에 들고 넋이 나간 얼굴로 앉아 있다.

 

 

S#57. 착륙하는 비행기

 

 

S#58. 거리

 

달리는 택시 안 뒷자리에 앉아 마치 심장이 얼어붙은 사람처럼 표정 없이 차가운 얼굴로 창 밖을 응시하는 재민.

지나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S#59. 발리 암시장

 

청계천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좁고 복잡한 골목.

문신을 시술하는 가게 앞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들과

담배와 마약을 파는 어린아이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낯선 외국인에게 꽂힌다.

재민, 그런 사람들 사이를 표정 없이 지나친다.

 

 

S#60. 암시장 다른 켠

 

재민, 누군가에게 돈뭉치를 건넨다.

담배를 꼬나문 장사꾼, 잽싼 솜씨로 돈을 헤아리더니

얼른 품 안에 갈무리하고 따라 들어오라는 턱짓을 하고 가게 안으로 사라진다.

재민, 주변을 살벌한 눈빛으로 둘러보고 장사꾼의 뒤를 따라 들어간다.

 

 

S#61. 바닷가

 

인적이 드문 고급리조트의 해변.

인욱, 파라솔 밑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책을 읽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수정이 바다에서 달려 나와 인욱의 위로 몸을 던진다.

인욱, 몸을 돌려 수정을 바로 눕히고 수정의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고 키스하려는데

수정, 인욱의 옆구리를 간질이고 호텔 쪽으로 도망친다. 쫓아가는 인욱.

두 사람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해변에 울려 퍼진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는 재민이 보인다.

 

 

S#62. 호텔방

 

수정과 인욱, 땀에 젖은 얼굴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다. 흐트러진 시트가 격렬한 정사의 흔적을 보여준다.

수정, 인욱의 팔베개를 베고 있다.

 

수정 : 무슨 생각해요?

인욱 : 우리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수정 : ...

인욱 : 너랑 나, 정말 질긴 인연인 거 같다.

수정 : ... 그래요.

인욱 : 이런 게 운명이겠지?

수정 : ... 나도 정재민한테 그런 얘기 한 적 있는데...

인욱 : (정재민이란 단어만 나와도 거슬린다) ...

수정 : ... 정말로 안 돌아갈 거예요?

인욱 : 돌아가고 싶어?

수정 : ... 아뇨.

 

수정의 눈에 눈물이 핑 맺히더니 또르르 옆으로 굴러 팔베개를 한 인욱의 팔에 떨어진다.

 

인욱 : ... 행복해?

수정 : ... 불안해요.

인욱 : 뭐가?

수정 : ... 나하고 전혀 상관없는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에요. 이런 게 바로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했는데...

인욱 : 아닌가 보지.

수정 : 모르겠어요.

인욱 : ... 두고 온 거에 미련이 있던가...

수정 : ... 그런 거 없어요. 내가 두고 올 게 뭐가 있다고...

인욱 : ... 가끔 니 눈빛에서 그리움을 느껴. 공허한 슬픔 같은 것도. 이유가 뭘까? 왜 행복해하지 않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봤어.

         그리고 깨달았어. 니가 마음을 두고 왔다는 걸.

 

수정,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인욱 : 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갈 생각도 없지만 ... 언제나 그랬듯 넌 자유야. ... 널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 새처럼...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 난 언제나 여기 있을 테니까.

 

수정, 팔을 베고 누운 채 엉엉 울기 시작한다.

 

수정 : 정말 마음까지는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것만은 마지막 자존심으로 지키려고 했는데...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인욱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두 사람, 그 자세 그대로 눈물을 흘리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재민이 들이닥친다.

수정과 인욱,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는데

재민, 두 사람이 침대에 나란히 누워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고 완전히 이성을 잃고

들고 있던 권총을 들어 인욱을 쏘고 수정을 쏜다.

인욱과 수정, 몸을 일으키다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진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부릅뜬 채 침대에 쓰러진 수정과 인욱의 주위로 하얀 시트가 붉게 물들어간다.

재민,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자기를 보고 있는 수정과 눈이 마주친다.

재민, 순간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눈물을 철철 흘리며 수정 앞에 다가간다.

수정, 간절한 눈빛으로 재민을 보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작게 속삭인다.

 

수정 : 사랑해요...

 

재민, 그제야 수정을 부둥켜안고 때늦은 오열을 터뜨리지만 수정, 재민의 품 속에서 눈을 뜬 채 축 늘어진다.

 

 

S#63. 꾸따(레기안) 해변

 

호텔(하드락처럼 바다와 호텔 사이에 길이 있는)에서 빠져나와 달리는 차들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 해변으로 내려가는 재민.

석양이 땀에 흠뻑 젖은 재민의 얼굴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힘없이 내려뜨린 소매 끝에 권총의 총구가 보인다.

재민, 바다를 향해 걸어오다가 무릎을 꿇고 지는 해를 바라본다.

마치 마약을 한 사람처럼 풀린 재민의 눈에 다른 아무 것도 들어오질 않고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재민,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알지 못할 소리를 내며 웃다가

권총을 관자노리에 갖다대자마자 방아쇠를 당겨버린다. 옆으로 픽 쓰러지는 재민.

놀란 주변 사람들, 슬로우 모션으로 모여들고

천천히 눈을 감는 재민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S#64. 호텔 방

 

붉게 물든 침대 시트에 아까 그 자세 그대로 죽어 있는 인욱과 수정의 모습이 쓰러진 재민의 얼굴 위로 겹쳐지다가

환하게 웃던 수정의 얼굴이 마지막으로 오버랩된다.

 

 

 

 

 

 

 

 

 

 

 

 

 

 

 

 

 

 

 

 

 

 

 

 

 

 

 

 

 

 

 

 

첨부파일 발리에서_생긴일_20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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