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 01
<프롤로그>
뇌 스캔 사진. 사진에서 멀어지면 스캔 사진을 보고 있는 의사와 엄마. 병원 복도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던 걸로 보이는데요.”
“그런데.. 애가 좀 이상해요, 절 꼭 모르는 사람 대하듯 하고 반응이 너무 차가워서..
완전히 다른 애가 됐어요, 슬픈 것도 없고 기쁨도 못 느끼는 거처럼.“
걱정스런 엄마, 병실을 보면,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소년이 보인다.
창밖을 보고 선 소년, 열넷, 열다섯 정도?
“수술 전엔 상태가 어땠죠?”
의사 물음에 엄마, 절망스런 한숨부터 나온다.
“그게 어렸을 때부터...”
. . .
한겨울. 어느 山寺. 향 연기 감아 오르는 법당 안.
나이 지긋한 스님 앞에 앉은 엄마, 두 손 모으고 간절히 얘기 중이다.
“제가 오죽하면 어린 걸 끌고 정신병원을 갔겠어요, 스님,
안 해본 게 없어요, 머리고 귀고 아무리 검사를 해도 하나같이 모르겠대요.”
끄덕이는 스님, 법당 마루 끝을 넘겨다본다.
마루 끝엔 작은 등을 보이는 열 살 정도 아이가 얌전히 앉았는데,
마루에 걸터앉은 아이, 바닥에 닿지 않아 흔들리던 작은 다리가 멈춰진다.
새 소리, 바람소리마저 스쳐가는 이곳..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아이, 눈 감는다. 이 고요함.... 완벽한 고요함의 찰나.
그러나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목탁소리.
찡그리는 아이, 눈 뜬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행자가 두드리는, 목탁소리.
아이, 귀 막는다.
다시 울리는 목탁소리. 머릿속에서 커다란 종이 울리는 것 같다.
다시 울리는 목탁소리. 벼락이 치는 것 같다.
아이, 괴롭다 못해 제 머리를 마루에 짓찧는다.
스님과 낮은 애기 나누던 엄마, 찧는 소리에 마루 돌아보는데, 아이가 없다.
놀라는 엄마, 일어서는데 마당에서 들리는 소리.
“얘가 왜 이래? 어어? 저리 가! 얘!”
아이, 목탁을 빼앗으려 행자에게 달려들었다. 잡아당기고 몸부림치고.
갑자기 아이가 덤비자 당황한 행자는 한 손으로 목탁을 높이 쳐들고 한손으로 아이를 막지만,
어린 것의 집념어린 몸부림에 행자의 소매가 뜯어질 정도인데,
“시목아! 그만해! 그만!”
법당에서 달려 나온 엄마가 아이를 떼어놓지만,
소리 지르며 엄마를 밀치고 뿌리치는 아이.
그때 스님, 행자의 손에서 목탁을 거둔다. 아이에게 내민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목탁을 낚아채 바위에다 내리찍는 아이.
하지만 부족한 힘, 옹골찬 목탁, 다시 내리치고 또 내리치고,
깨지는 건 목탁이 아니라 아이 손이다. 바위에 부딪쳐 긁히고 피 난다.
이 소동에 법당 한 구석에 묶인 개는 앞발을 들며 짖어대고,
더 이상 볼 수 없는 엄마, 아이를 부둥켜안는다.
엄마 치마폭에 얼굴 묻는 아이, 조막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괴로워한다.
“괜찮아, 시목아 괜찮아.”
괜찮지 않다, 하나도 괜찮지 않다.
이제 흥분한 개가 짖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까지 온통 섞여 아이를 공격하고 귓가를 후려친다.
스님도 아이를 진정시키려 애쓰지만,
머리를 엄마 다리에 강박적으로 짓찧는 아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엄마.
“엄마! 귀 아파!! 엄마아!!!”
아이를 둘러싼 온갖 소리는 한데 뭉쳐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 찌익!하는 날카로운 소음으로 변하고...
<1회>
1. 길/차안. 현재. 낮
프롤로그의 소음, 불쾌한 고주파 소리가 되어 찌이잉----- 울린다.
차 운전석에서 머리 누른 채 고통 참는 남자, 시목이다.
신경을 가닥가닥 찢어놓는 이명(耳鳴)에 시달리는 것이다.
시목, 고개 뒤로 젖히고 눈 감은 채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점점 잦아드는 소리.
시목, 눈 뜬다. 잠깐.. 여기가 어디지.. 주택가 골목길에 세운 차안이다.
머리 문지르는 시목, 곧 담담한 얼굴로 내린다.
2. 서민 주택가/골목+차안. 낮
오래된 양옥집, 다세대 주택이 즐비한 골목.
주변 둘러보는 시목, 옷도 머리 모양도 수수하고 다소 구부정한 자세.
주변 집들에 붙은 번지수 보면, 앞집은 74-6인데 그 옆은 생뚱맞게도 77이다.
그때 골목에는 양 손 가득 짐 든 할머니(무성母), 짧은 다리로 지척지척 오고 있다.
시목 : (주변 살피다 앞을 스치는 무성母에게) 실례지만 75-3이 어디죠.
무성母 : (놀라 우뚝 멈춘다. 우물쭈물하다 얼른 간다)
시목 : (잠시 무성母 쳐다보는. 그러다 성큼 쫓아온다)
무성母 : (다리 짧아 금방 따라잡히는) 왜, 왜요?!
시목 : 박무성씨 댁에 계시죠?
무성母 : (놀라) 그런 사람 몰라요!
시목 : 댁이시잖아요, 75-3.
무성母 : 아녜요, 절루 가요.
무성母, 얼른 뛰어가려 하지만 짐도 많고 원체 걸음이 느려 별 소용없는데,
모퉁이에서 빠르게 달려 나오는 파란색 소형차. 좁은 골목에서 사람 치게 생겼다.
무성母 : 에고머니나! (놀라 주저앉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피한 시목, 순간적으로 소형차 보면,
이라고 쓴 것만 얼핏 보이고 금세 사라진다.
무성母E : 아이고 아까운 거! (놀라느라 봉투에서 굴러 나온 반찬통들을 거둔다)
우리 무성이 줄 건데. (하다 질겁해서 시목 본다)
시목 : (그저 보는)
무성母 : (시선 피하는. 흙도 안 묻은 반찬통을 털고 매만지며 뜸 들인다. 어찌해야 하나, 하는 모습) 아녜요..
시목 : 저 빚쟁이 아닙니다.
무성母 : 빚쟁인 뭔, 왜 내가 빚쟁일 무서워해요?!
시목 : (무성母가 일어날 줄 모르자 옆에 내려앉아 반찬통을 봉투에 빠르게 넣는다)
댁도 좀 있음 넘어갈 텐데요. (봉투 들고 일어선다) 가시죠.
무성母 : (기정사실이지만 상처!.. 일어서는) 진짜 돈 땜에 온 거 아녀요?
시목 : 전 받을 돈은 없고 빚만 잔뜩인 사람입니다.
무성母 : (휴..) 난 또. (가는) 우리 무성이 후밴가?
시목 : 아닙니다.
무성母 : ?
무성母, 쭈뼛쭈뼛 모퉁이 돌아가면 시목, 따라 돈다.
3. 무성 집 앞/골목. 낮
모퉁이 끼고 돌면 택시 한 대가 바짝 주차돼있다.
무성母 : 동생네서 잔치가 있었거든요. 끝나도록 있음 음식 다 없어질까봐 얼른 챙겨 왔는데.
내가 없으면 우리 무성이가 밥을 안 먹어요,
시목 : (집주소만 체크. 듣는 둥 마는 둥)
무성母 : 요즘 우리 무성이 보러오는 사람이 도통 없었는데, 고마워요.
시목 : 여기네요. (오래된 양옥집 앞에 섰다. 75-3 주소 보인다)
무성母 : (벨 누르려다) 진짜 아니죠? 인제 돈 없어요. 불쌍한 애에요, 우리 무성이.
시목 : (더 안 기다리고 벨 누르는데 조용... 다시 누르려는데)
무성母 : (말리는) 얘가 자나보네. (가방에서 열쇠 찾으며 변명하듯) 얘가 요즘 밤에 도통 잠을 못 자놔서.
무성母, 열쇠로 대문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
4. 무성 집/현관 밖. 낮
넓지 않은 마당. 대문에서 서너 개 계단 위면 바로 현관으로 이어진다.
무성母, 현관문도 열쇠로 열려는데, 스윽, 그냥 열리는 문.
무성母 : 어? 이게 왜 열렸지? (들어가는)
시목 : (따라 들어간다)
5. 무성의 집/현관+마루. 낮
옛날식 양옥집. 커다란 창, 어두운 나무문양 마루가 집의 연식을 말해준다.
현관 옆에 낡은 장식장을 세워놓아 그걸 끼고 돌아야만 마루가 다 보이는 구조.
그런데, 집안이 폭탄 맞은 듯 어질러졌고, 살림살이는 죄다 뒤집어져 있다.
무성母 : (들어오다 놀라는)
시목 : (짐 내려놓고 소리 내지 말라는 신호. 혼자 마루에 오른다)
무성母 : (손 떨리고 어지럽고!)
장식장에서 만에 하나 무기가 될 만한 걸 챙긴 시목, 마루로 천천히.. 돌아드는데..
마루 안쪽에 쓰러진 남자 시신! 흰 티셔츠를 시뻘겋게 물들인 피는 마룻바닥에도 이미 흥건하다.
하지만 표정 변화 하나 없는 시목, 그 즉시 현관으로 돌아서는데,
이미 들어선 무성母, 소리도 못 지르고 그대로 굳었다.
시목 : 나가 계세요.
무성母 : (완전히 굳은. 소리도 안 나오고)
시목 : 실례합니다. (무성母를 반은 밀고 반은 안아 현관으로 데려간다)
무성母 : (비명도 울부짖음도 아닌 이상한 소리 아들에게 가려고 버둥대는)
시목 : (현관으로 데리고 나간다)
6. 동/현관문 밖. 낮
무성母를 아예 현관 밖에 옮겨놓는 시목, 무성母가 쥐고 있던 열쇠를 가져가서는 혼자 안으로 들어간다.
문 잠그는 소리.
무성母 : (마침내 터져 나오는 일성) 무, 무성아.. (문 두드리고 잡아당기고, 오열) 무성아!
7. 동/마루. 낮
밖에선 무성母가 오열하는 소리 들리는데,
무성母를 내보내느라 내려놓은 무기를 다시 쥐는 시목,
혹시 아직 범인이 있을지 모를 가능성에 실내를 빠르게 훑는다.
부엌, 아무도 없다. 문 열린 작은방. 안방, 모두 쥐죽은 듯 고요하다.
시목, 시신 곁으로 와 최소한의 터치로 맥이 뛰는지 보고, 흥건한 피에도 동요 없이 가만가만 시신 살핀다.
깊게 찔린 목과 옆구리, 팔에 난 자상.
시신 옆에 떨어진 칼. 싸구려 장미무늬가 있는 흔한 주방용 칼이다.
시목E : 자상 셋. 오른손잡이. 팔은 칼에 스쳤고, 옆구리 얕고, 목, (보는) 치명타.
세 번이나 찌른 건 원한.. 마구잡이인가?
무성 얼굴을 내려다보는 시목...
8. 서부지검/주차장/시목의 차안. 밤(시목의 회상)
운전석에 오르는 시목, 아직 제대로 앉기도 전에 조수석으로 무성이 밀고 들어온다.
무성 : (다짜고짜) 사람 무시하지 마! 니들 목숨 나한테 달렸어, 알어!
시목 : (보기만)
무성 : 나도 이판사판이야, 차장한테 가서 꼭 전해, 내가 입만 뻥끗하면 그 새끼 순식간에 생매장이야!
나 절대 혼잔 안 죽어!!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 급히 간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무성, 그를 쳐다보는 시목.
9. 무성의 집/거실. 낮(현재)
시목, 무성에게서 시선 뗀다. 집안 훑으면, 부엌과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시목, 집중하면, 무성母를 비롯한 모든 외부 소리가 지워지고 오직 현장과 시목만 부각된다.
시목의 눈동자가 제일 먼저 꽂히는 건 마루에서 훤히 보이는 부엌이다.
싱크대 건조대에 수저통 클로즈업하면,
대충 꽂힌 수저 따위 사이에, 시신 옆의 칼과 한 세트인 장미무늬 칼이 조금 보인다.
범행에 쓰인 칼과 세트이지만 조금 더 작다. 평범한 과도.
칼에서 시선 돌려 이번엔 소파 주목.
그 위에 아무렇게 구르는 tv 리모컨 부각됐다가, 소파 앞 작은 탁자로 시선 옮긴다.
휴대폰, 빈 커피 잔, 보다만 채로 엎어놓은 책, 차례로 부각된다.
시목, 전화 건다. 112눌러 귀에 대는 순간, 지워졌던 세상 소음이 다시 밀려들어온다.
시목 : (전화) 살인사건 신고합니다. (안방으로 간다)
10. 동/안방. 낮
안방은 더 심하다. 장롱 서랍마다 열려있고 다 뒤져 놨다.
시목 : 후암동 새빛로 75-3, 현장감식반도요. 피해자 사망했고.
간단한 세간. 책은 없고 최신형 노트북이 안 어울리게 낡은 밥상에 올려져 있다.
시목 : 보호가 필요한 70대 노인도 있으니까 응급차 보내세요.
112F : 신고하신 분 누구세..
시목 : (전화 끊고 나간다)
11. 동/마루. 낮
안방에서 나온 시목, 작은방으로 간다.
12. 동/작은방. 낮
반쯤 열린 문을 건드리지 않고 들어오는 시목.
딱 봐도 학생 방이다. 책상과 붙박이 장, 크지 않은 책장. 이 방은 손 타지 않은 듯, 멀쩡하다.
책장에 놓인 사진, 앳된 군인 아들과 무성, 무성母 사진이다.
그 뒤, 책이 쭉 꽂힌 책장에 책 한 권만 빠져나간 빈 공간이 눈에 띈다.
13. 동/마루. 낮
시목, 작은방에서 나와 성큼 tv로 간다.
지문 안 묻게 손톱으로 전원버튼 켜는데, no signal이란 글자만 둥둥 뜰 뿐, 화면 안 나온다.
그러자,
Flashback> -S#2. 서민 주택가 골목
파란색 소형차가 시목 옆을 스치는 순간 화면 정지.
정지한 화면에서 시목만 움직인다.
차체로 눈 돌리면, 앞 글자는 안 보이지만 마크 포착.
운전석 보면, 모자 쓴 운전자(男) 포착된다. 얼굴은 안 보인다.
번호판 보면, 흐릿하다. 안 보인다.
시목, 티슈 뽑아 조심스럽게 무성 핸드폰 집어 든다.
햇빛에 비추면 검은 액정에 잠금 화면 해제 패턴 따라 손자국 보인다.
자국 따라서 손톱으로 잠금 해제한 시목, 통화 목록 훑다 그 중 한 번호로 전화한다.
여자E : 안녕하십니까, 용산 케이블 TV
시목 : (O.L) 후암동 75-3, 박무성씨 댁 고장 접수 됐습니까?
여자E :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희미하게) 박무성씨 본인 되세요?
시목 : 기사분 몇 시에 오기로 했죠?
여자E : 잠시 만요, .. 아 2시 방문이신데 아직 안 오셨나요?
시목 : (시계 보면 2시 40분) 기사 이름하고 주소 부탁합니다.
여자E : 고객님 저희가 기사님께 연락해보고
시목 : 서부지검 황시목 검삽니다. 기사 이름하고 주소요.
여자E : 네에?
시목 : 사건 용의자라고요. 이름, 주소!
여자E : 어 잠시 만요, 강진섭 기사님인데, 주소가, 저기,
(희미하지만 급히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새창로 61번지요!
이때, 사이렌 소리.
시목 : 그 사람 사진, 지금 불러주는 번호로 보내요.
14. 동/대문 앞. 낮
구급차와 경찰차 와 선다. 김경사 훌쩍 내린다.
김경사 : (대문 두드린다) 경찰입니다! 계십니까?
15. 동/현관문 앞. 낮
김경사E : 안에 계세요? 경찰입니다!
현관문 열리고 시목 나온다.
무성母, 어느 샌가 두드리기를 멈추고 현관 앞에 넋 놓고 있다.
시목, 무성母 못 들어가게 막는데, 젖은 눈으로 멍하니 보기만 하는 무성母.
무성母 : (소리 거의 안 나오는) 주, 죽었..? (아니라는 듯 미약하게 고개 젓는)
시목 : 사망했습니다. (계단 내려가 대문 연다)
무성母 : (핑!...)
응급대원들 : (뛰어 들어온다)
시목 : (응급대원에게) 저분 모셔가요. (김경사에게) 마루에 시체 한 구, 범행 도구로 보이는 흉기도 있고요,
김경사 : 누구신데,
시목 : 서부지검에서 나왔습니다. 감식반은요?
김경사 : 지검이요? 그럼 검사
응급대원E : 할머니!!
시목과 김경사, 응급대원 쪽 본다. 무성母, 결국 정신 잃고 맨바닥에 쓰러졌다.
놀란 김경사, 그쪽으로 뛰어가고,
응급대원들, 산소호흡기 등 응급조치하고 얼른 무성母를 들것에 싣는다.
무성母, 핏기라곤 없는데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르...
하지만 그쪽에 관심 없는 시목, 대문으로 가버린다.
김경사 : (그제야 시목이 가는 것 보고) 어? 저기요? 저기요!
16. 동/대문 앞. 낮
동네 사람들 몇, 수군대며 기웃대는데, 차 한 대가 새로 온다.
여진이 내려 무성 집 대문으로 오는데, 막 나오는 시목과 부딪힐 뻔.
여진 : 죄송합니다!
시목 : (여진 상관없이 가는데)
김경사 : 저기요! (튀어나오며) 그냥 가면 어떡해요!
여진 : (보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시목이 꼭 도망치는 것 같다.
바로 쫓아 뛰는 동시에 묻는) 왜요? 누군데요!
김경사 : 서부, 아 일단 잡아요! (현장 돌아보는. 일단 현장으로 들어가며) 꼭이요!
모퉁이 쪽으로 벌써 저만치 간 시목.
여진 : (뛰어오는) 거기요! 서요!
시목 : (뒤도 안 돌아보고 모퉁이 돌아 사라진다)
17. 서민 주택 골목/모퉁이 일각. 낮
시목 : (모퉁이 돌아서 막 차에 오르려는데)
여진 : (쫓아온) 서라니까! 말 안 들려!
시목 : (차에 탄다. 바로 출발)
여진 : 야! (놓칠 새라, 급히 오던 길로 되돌아 뛴다)
18. 시목의 차안+길. 낮
골목을 달리는 시목.
곧이어, 사이렌 울린다. 여진이 사이렌 울리며 쫓아오고 있다.
여진, 추월해서 막고 싶지만 길이 좁아 앞뒤로 나란히 달릴 수밖에 없다.
시목, 뒤에 경찰이 쫓든 말든 가는데 문자 알림음 울린다.
보면, 케이블회사 유니폼 입은 강진섭 사진이 액정에 떴다.
시목, 길을 예의주시 운전하면서도 진섭 사진을 눈에 저장한다.
19. 도로. 낮
서울 시내를 질주하는 시목과 추격하는 여진.
여진 : (마이크에 대고) 4319, 4319 멈춰!
멈추기는커녕 속력 올리던 시목, 좌회전 깜빡이 켜고 신호등에서 멈춘다.
여진, 차에서 튀어내려 시목 차 범퍼를 세게 짚으며 막는다.
여진 : 내려!
시목 : (창문 내리고 검사 신분증 내민다) 서부지검 형사3부 황시목입니다.
여진 : 검사가 왜 도망가요?!
시목 : (전화에 사진 들어 보이는) 이름 강진섭, 용의잡니다.
여진 : 어떻게 압니까??
시목 : 사이렌부터 끕시다. 이러다 도망가겠네.
여진 : 어떻게 아냐니까요? 피해자 가족이세요? 어디로 가는데요?
시목 : (왼쪽 샛길을 가리켜 보인다) 새창로 61. 사이렌 끕시다.
신호 떨어진다. 여진이 막고 있어 시목이 출발 안하자 바로 빵빵대는 뒤차들.
주위 상관없이 시목 응시하는 여진, 전화에 사진 가리켜 보이는 시목.
여진, 결심하고 제 차로 뛰어간다. 바로 좌회전하는 시목.
20. 새창로 이면도로. 낮
인도와 차도 구분 없는 이면도로. 차 두 대 겨우 지나갈 정도 폭에 가게도 양쪽으로 늘어져서 복잡하다.
줄줄이 가는 차들 사이에 낀 시목과 여진의 차량(사이렌 껐다).
시목, 밖을 살피면서 가는데,
이면도로 옆에 난 샛길을 스치는 순간, 샛길 안에 세워진 파란색 소형차가 보인다!
시목, 급브레이크 밟고 차에서 뛰어내린다. 그 바람에 들이박을 뻔한 뒤차가 욕하지만 아랑곳없다.
이를 목격한 여진도 황급히 차 세우는데,
시목, 샛길 입구로 뛰어가면, 안쪽에 소형차 보인다. 선명한 용산 케이블 로고.
차로 뛰어가려던 시목이 우뚝 멈춘다. 뭘 봤는지 천천히 고개 돌리면...
바로 옆 금은방에서 모자 푹 눌러쓰고 나오는 남자가 있다.
남자, 모자 아래 눈빛이 불안한데, 시목과 눈 딱 마주친다.
남자, 사진 속 강진섭이다. 한눈에 알아보는 시목.
진섭도 멈춘다. 역시 본능적으로 위험 감지했다.
그 순간 샛길로 번개처럼 튀는 진섭. 시목, 지체 없이 뒤쫓는다.
여진도 쏜살같이 달려온다.
21. 전자상가 뒷길. 낮
죽어라 도망치는 진섭. 쫓는 시목과 여진.
뒤쫓던 여진 이대론 안 되겠다, 진섭과 시목과는 다른 우회로로 빠진다.
죽어라 달리는 진섭, 시목 돌아본다.
끈질긴 추적에 일그러지는 진섭, 구불구불한 샛길 모퉁이로 사라진다.
시목도 모퉁이로 뛰어드는 순간, 숨어 있던 진섭이 튀어나와 시목을 들이 받는다.
시목, 일격에 쓰러지며 이마를 땅에 세게 부딪친다.
그 사이 도망친 진섭, 꽤 멀어진다.
놓칠 위기인데, 우회로로 빠졌던 여진이 옆 골목에서 튀어나온다. 시목 돌아보지만 진섭 쫒는다.
진섭, 근처에 있는 전자상가 입구로 들어가는.
22. 전자상가 복도. 낮
한창 영업 중인 상가 내부, 가게 밖까지 내놓은 제품들이 쌓였는데.
그 사이 헤집고 도망치는 진섭, 숨 고르며 돌아보는데, 여진, 어느 새 발뒤꿈치까지 쫒아왔다.
에이씨! 다시 뛰기 시작하는 진섭. 하지만 체력이 거의 소진된.
잡힐 것 같자 주변에 있는 컴퓨터 용품들 여진에게 집어던지면서 건물 위로 튄다.
23. 아파트 복도. 낮
상가와 연결된 복도 달리며 추격전 벌이는 진섭과 여진.
진섭, 거의 숨넘어가기 직전이다.
24. 옥상. 낮
옥상까지 올라온 진섭. 가장자리 향해 달린다.
건너편 건물 옥상으로 튀려는데, 막상 끝에 이르러 뛰자니 겁난다.
여진이 거진 다 따라온 상황.
쭈뼛대다 결국 눈 질끈 감고 뛰어내리는 (혹은 다른 건물로 넘어가는) 진섭.
그에 반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리는 (혹은 다른 건물로) 여진!
25. 상가 골목길. 낮
헉헉대며 죽을힘 다해 도망가던 진섭의 눈앞에 나타난 막다른 길.. 뒤에는 이미 여진이 버티고 서 있다.
이대로 끝난 건가 싶다가.. 형사라고 해봤자 여자 아닌가,
힘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여진과 싸울 태세를 취하는 진섭.
여진, 테이저건 꺼내 쳐든다.
총인 줄 알고 식겁했던 진섭... 달려온다! 몸싸움 벌이는 두 사람.
여진, 쏘는 게 아니라 테이저건으로 진섭을 내리친다.
총을 쏠 줄 알았던 진섭 일격당하지만 덮치고, 죽을 힘 다해 싸우는 두 사람,
테이저건은 싸움 중에 멀리 밀쳐지고, 여진, 도망치려는 진섭을 물어뜯어서라도 잡는데,
이때 달려드는 시목,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도 진섭을 덮친다.
여진, 때를 놓치지 않고 마침내 진섭 팔 꺾어 수갑 채운다.
여진 : (헉헉) 직무집행법 3조 1항, 공무집행 방해로 긴급체포합니다.
변호사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시목 : (다짜고짜 진섭 주머니 뒤집어보면)
두둑한 돈다발!
26. 이면도로/금은방. 낮
금은방 주인,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패물 내준다. 제법 보석 박힌 장신구다.
여진 : 이게 답니까, 저 사람이 판 게?
입구에 수갑 채워진 진섭이 시목에게 잡혀 섰다.
창밖 이면도로는 시목과 여진이 세워놓은 차로 흐름이 엉망이다.
주인 : 네, 이게 다에요. 근데 돈 줬는데, 내 돈 어떻게 되는 거예요?
여진 : 나중에 돌려드려요. (곽휴지 뽑는데)
시목 : (더 볼 것 없다. 진섭 끌고 나간다)
여진 : 어딜 가요! 잠깐! (하지만 장물 두고 갈 수도 없고!)
(지문 안 묻게 급히 휴지로 싼 뒤 챙겨서 튀어나가는)
주인 : 언제 돌려줘요! (하지만 이미 나간) 아이씨, 재수 옴 붙었네...
27. 이면도로. 낮
여진 : (황급히 나오지만 이미 시목 차는 떠나간다. 열 받아) 야!!
28. 시목의 차안 + 도로. 낮
휴지 뽑아 이마에 상처 대충 닦는 시목, 그런데 진섭은 안 보인다.
뒤에서 끙끙대는 소리 난다. 보면, 진섭이 뒷좌석 바닥에 꿇어앉혀졌다.
수갑 찬 팔은 꼼짝 못하도록 조수석 등받이를 부둥켜안은 형태로 고정됐다.
마치 굵은 나무를 깍지 낀 손으로 그러안듯이 등받이를 끌어안았으니
다리는 바닥에 꿇고, 얼굴은 등받이에 박고, 아주 불편한 자세로 끌려간다.
시목, 조수석 안전벨트를 수갑 사이에 통과시켜 팔을 못 빼도록 고정까지 해놨다.
진섭 : (차가 흔들리면 수갑이 당긴다) 아.. 아파요...
시목 : (운전만 한다)
도심 도로 달려가는 시목의 차.
29. 용산 경찰서/외경. 낮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용산 경찰서.
30. 동/강력반. 낮
자리에 앉은 반장. 그 앞에 선 여진과 김경사.
반장 : 그래서 범인 뺏겼다고?
여진 : 죄송합니다..
반장 : 검사가 긴급체포해간 걸 어쩔 거야. 끗발 날리는 건수도 아니잖아?
김경사 : 집 꼬라지 보면 말도 안 나와요. 어떻게 알고 훔쳤는지 신기하다니깐.
반장 : tv 고치러 들락대면서 봤나? 근데 그 검사는 하필 왜 그 시간에 거기 있었대? 뭐 한 거야, 거기서.
여진 : 지금 가서 알아오겠습니다. 범인도 봐야죠.
반장 : 어어, 가봐. (자리 뜨는)
여진 : (나가고)
김경사 : (제 자리로 온다. 책상 가득 일거리가 쌓였다) 누가 내 사건은 압송 좀 안 해가나, 이것들을 어느 천 년에 해..
(전화 온다. 발신자 보더니 긴장해서 받는) 네!.. (벌떡 일어나는) 네?!
31. 동/복도. 낮
여진 가는데, 장형사가 온다.
장형사 : 오오! 검사한테 물 먹었다면서요?
여진 : 다시 물 먹이러 가는 중.
김경사 : (재킷 걸치며 뛰어오는) 저기요! (뒤를 가리켜 보이며) 병원부터 가라시는데?
여진 : 반장님이요? 그 할머니 깨어났대요?
김경사 : 에? 에, 검찰청은 내가 갈게요! (대답 안 듣고 뛰어가는)
여진 : 내가 가요!
김경사 : 어차피 가야 돼요! (벌써 저만치 간)
장형사 : 식구 된지 벌써 두 달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저기요네. 님자 붙이면 혀가 짜개지나?
여진 : (장난스레 어깨형님들처럼 구부리며) 장형사님 다녀오겠습니다.
장형사 : 아이고 그라십쇼 한경위님!
32. 서부지방검찰청/외경. 낮
마포대로 바라보며 서부지방법원과 어깨를 나란히 한 건물.
33. 동/형사3부 복도. 낮
이마 찢어진 시목, 진섭 붙들고 온다.
복도에 늘어선 많은 문 ‘황시목 검사실’ 명패 붙은 문으로 들어간다.
34. 동/시목의 검사실. 낮
시목 책상이 중앙 위쪽에 있고, 왼쪽에 수사계장과 실무관이 나란히 앉았고,
오른쪽엔 수습검사인 영은수 검사가 일하는 중이다.
시목이 진섭 끌고 들어오자 인사하려던 세 사람, 놀란다.
은수 : 어머 검사님 이마가!
계장 : 어디서 그러셨어요? (진섭 보고) 이놈이에요?
실무관 : 어디 약이 있을 텐데!
시목 : 괜찮습니다. (안쪽에 시목만 따로 쓰는 집무실로 진섭을 끌고 가자)
은수 : (태블릿 챙겨 얼른 따라오는데)
시목 : 영검산 나중에. 계장님. (은수 코앞에서 문 닫아버린다)
계장 : 예! (얼른 쫓아 들어가고)
은수 : (자존심 상하지만, 실무관이 쳐다보자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 쳐든다)
35. 동/집무실. 낮
계장 : 진술 거부권 숙지했습니다. (진섭 손 잡아 서류에 지장 받아내면)
시목, 굳이 바퀴달린 의자를 끌고 와 진섭 앞에 놓는다. 앉으라는 무언의 눈길.
이미 소파에 앉아있던 진섭은 영문 몰라 보지만, 무언의 눈길에 결국 옮겨 앉고.
계장은 뒤로 조용히 물러나고,
팔짱 끼고 서서 아무 말 없이 구부정히 내려다만 보는 시목.
팔걸이 없는 의자에 동떨어져 앉은 진섭, 불안해보이지만 약점 안 잡히려 굳은 표정.
하지만 물끄러미 보기만 할 뿐 계속 침묵하는 시목...
진섭 : (그게 더 불안한. 결국 더 못 참고) 주웠어요! 마당에서, 집안엔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시목 : 발 들어요.
진섭 : (그 말에 순간 불안이 스치는 게 분명 보이는데 곧, 자신 있게 든다. 두 발 밑창을 보란 듯이 들고) 됐죠?
시목 : (진섭 발을 꺾어 신발 벗긴다)
진섭 : 아! 뭐하는
시목 : (즉각 양말 벗겨 들어보이면, 양말바닥에 묻은 작지만 선명한 핏방울)
진섭 : (묻었는지 자기도 몰랐다. 놀란) 아녜요! 나 아녜요!
계장 : (책상에서 증거 봉투 집어 얼른 온다. 양말 받아 넣고 봉한다. 기록)
시목 : 처음부터 계획했다면 흉기도 준비했을 테고 신발도 신었겠지만
가보니까 사람은 혼자고 칼은 하필 손닿는 데 있고, ... 순간 눈이 뒤집혔나? 우발적 살인?
진섭 : 아녜요, 내가 갔을 땐 벌써 죽어있었어요! 놀래서 나오려는데, 근데 옆에, 옆에 목걸이랑 그딴 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내가 진짜 뭐가 씌어서! 그치만 그게 다에요, 안 죽였어요!
시목 : 현장엔 어떻게 들어갔죠.
진섭 : 문 열어줘서, 안에서 열어줘서 들어갔어요.
시목 : 누가.
진섭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시목 : 들어가 보니 벌써 죽어있었고 집에 딴 사람도 없었다, 방금 본인 입으로 한 말인데.
진섭 : ? (멍해지는)
시목 : 피해자 가족은 아들, 모친뿐이고 아들은 군복무, 모친은 외출,
집에 혼자 있던 사람이 이미 죽어있었다면 문은 귀신이 열어줬습니까?
진섭 : 내가 벨을 누르니까 분명히 안에서 열었다고요!
어! 그놈이 범인이네, 안에 있던 놈! 그 놈 잡아야 되는 거 아녜요?
시목 : 범인이 사람 죽이고서 밖에 누가 오니까 친절히 문까지 열어줬다?
진섭 : 그거야!.. 내가 들어가야 뒤집어씌우니까요??
시목 : 그런데 안 들어갔잖아요, 마당에서 주웠으니까, 그렇죠?
진섭 : 본 대로 말해봤자 안 믿을 거니까 그랬죠!
시목 : 전과자가 전과 숨기고 남에 집 안방까지 들어가는 일을 골랐으니까.
진섭 : 미치겠네 진짜, 전과자라고 무조건 사람 죽여요?
내가 갔을 땐 온 집안이 벌써 난장판이었다고요, 믿어주세요.
시목 : (다짜고짜 전화 액정 들이대는)
액정에 뜬 것, 단체사진에서 확대해서 내민 차장검사 이창준의 사진이다.
진섭, 뭐지?.. 멍하니 볼 뿐. 뒤에 자리한 계장은 사진인지 뭔지 안 보인다.
시목 : (사진 중에 다른 인물을 확대해서 보여주는데, 서동재 검사 사진)
진섭 : 뭐예요? (다소 멍한 눈길로 쳐다보는데)
시목E : (뜬금없어 하는 진섭의 눈, 약간 벌어진 입, 그냥 늘어뜨린 손가락을 차례로 체크한다)
당황한 게 아니다. 황당해하고 있다.
진섭 : (머리 감싼다. 지치고, 답답하다)
시목E : 모르는 척이 아니다. 본 적이 없다는 건..
시목, 손 안에 사진 보면, 미끈하게 잘 생긴 서동재 검사.
36. 동/차장검사실 앞/복도. 낮
사진 속 서동재 검사, 날아갈 듯 쫙 빼입은 양복 테와 달리 다소 허둥대며 간다.
차장검사실 노크하고 들어간다.
37. 동/차장검사실. 낮
방금 전 시목이 보여준 사진 속의 창준, 소파에 심각히 앉았다.
동재 : (얼른 들어와 인사, 앉으며) 무슨 문제 생겼습니까?
창준 : .. 박무성이 (동재 똑바로 보는)
동재 : (이런!) 죄송합니다, 계속 뒤지고 있습니다만 아직
창준 : 죽었어.
동재 : 네??
창준 : 박사장이 죽었어.
동재 : 언제 (하다) 어떻게..요?
창준 : 살인강도.
동재 : 예에?!
창준 : 범인, 여기 와 있어.
동재 : 벌써 잡혔다구요? (잠시 생각..) 축하드립니다, 차장님.
창준 : (으르는) 입 조심해.
동재 : 죄송합니다, 하지만.. 살인강도면 더할 나위 없지 않습니까.
창준 : 사체 제일 처음 발견한 거, 범인 검거한 거, 다 황시목이야.
동재 : 예에? 왜 하필요?
창준 : 하필 아냐. 우연도 아냐. 둘이 내통한 거야.
때마침 안 죽었음 황검사 손에 기소되는 건 범인이 아니라 우리였어.
동재 : 박사장이 황프로한테 다 불고 죽었음 어쩌죠?!
창준 : (당당한 척) 불고 말고 할 게 있나, 우리가 남들처럼 차를 받았어, 집을 달랬어? 밥 몇 번 먹어준 게 단데.
동재 : (서로 다 아는 처지에 위선임을 알지만 입 다무는)
창준 : 죽은 자는 말이 없어. 제일 중요한 핵심 요건이 사라졌어.
제 아무리 황시목이라도 당사자 없인 베팅 못 해.
동재 : 걜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독사 같은 놈이에요. 이걸 빌미로 더 파고들게 뻔합니다, 차장님.
창준 : (고민...)
동재 : 이 건 저한테 주십시오. 제가
창준 : (O.L) 영은수한테 넘겨.
동재 : (놀라) 황프로 방 수습이요? 걔야말로 더 큰일 날 애잖아요?
창준 : (재빠르고도 날카로운 눈빛)
동재 : (입 다문다)
창준 : 딱지 뗄 때 됐잖아. 황시목이 보다야 훨씬 주무르기 쉽지. 어떻게 되는지 이번엔 제발 잘 좀 감시해.
동재 : 너무 노골적입니다, 자길 배제하려는 걸 황프로가 모를 리 없어요.
창준 : 이미 노골적이야, 그놈은 우리 법복까지 다 벗겼는지도 몰라.
동재 : 그러니까 제가 맡아서
창준 : 황시목이 바보야? 고양이한테 쥐를 맡기려고 하겠어?
동재 : 제가 왜 고양입니까?!
창준 : 누구 앞에서 딴청이야. 박사장이 누굴 제일 원망했는데?
동재 : ...
창준, 골치 아프다. 관자놀이 누르는데
동재, 창준 보는 눈이 가늘어진다.
하지만 동재가 고개 돌리자, 이번엔 창준이 동재 보는 눈빛이 좋지 않다.
38. 동/시목의 집무실. 낮
시목, 천천히 물 따른다. 진섭, 입이 바짝 타는 데다 목도 마르다.
물 따르는 소리... 소리만 들어도 갈증 난다. 진섭, 침 꼴깍.
시목 : (그 소리에 진섭 본다. 컵 내밀면)
진섭 : (단숨에 마신다. 숨 몰아쉰다) ..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할 사람 구한다고 했어요.
전과자도 입에 풀칠은 해야 되잖아요, 먹고 살려고 그랬어요,
전과 숨긴 건 잘못이지만, 가족 같이 일하자고 해서, 근데 니미, 가족은 개뿔,
밥은 고사하고 오줌 눌 시간도 없어요, 고객 만족도 낮게 나왔다고 반성문 쓰게 하고,
한 군데서 쫌만 오래 걸리면 계속 쪼아대고, 이건 뭐 영업도 해야지, 토요일 일요일도 막 굴려요,
죽어라 시키고도 월급 얼만지 아세요? 오죽하면 월세가 밀렸겠냐구요!
시목 : 월세는 밀렸고, 빚도 있을 테고, 동기 충분하고.
진섭 : (절망스럽다) 검사님, 저 마음잡고 살려고 했어요, 저 애 아빠에요, 검사님, 제가 애가 있다고요!
애 엄만, 걘 낳기만 했지 내가 잘못되면 당장 버리고 튈 년이에요.
내가 봐줘야 돼요, 저 아님 아무도 없어요. 애 키우면서 잘 살려고, 잘 키우려고, 저 진짜 맘 잡았어요,
사람 죽은 거 보고도 욕심 낸 건 정말 잘못했는데요, 저 아녜요. 저 진짜 아녜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
시목 : .. (계장에게) 구치소 이송해요.
진섭 : 검사님!
계장 : 죄목은요?
시목 : .... 추후 보강.
계장 : 예. (바로 나간다)
진섭 : 난 죄 없다고요! 아니라고요! 왜 날 못 믿어!
시목 : (건조하게) 죄가 없다.. 니 말이 사실이래도 넌 피칠갑이 된 사람을 놓고 돈부터 움켜줬어.
아무나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 죄가 없어?
진섭 : 도둑질은 해도 사람은 안 죽인다고!!!
노크 소리. 계장이 청원경찰과 함께 들어온다.
진섭 : 아냐! (저항하며 끌려 나가는) 아냐!!
시목 : (잠시 가만 섰다. 뭔가 명쾌하지 않은 얼굴...)
39. 동/시목의 검사실. 낮
복도에선 아직도 울리는 진섭의 외침. 작아지고,
은수 : (전화 중)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끊고, 좋지만 침착한 척)
실무관 : 축하드려요.
계장 : (진섭 인계하고 들어오는) 단 한 놈도 지가 했다는 놈이 없어, 단 한 놈도. 나중에 보면 다 지들 짓거리면서.
실무관 : (계장에게) 영검사님 오늘로 수습 끝이래요.
계장 : 에? 벌써 6개월이 됐나? 와 시간도 참.. 축하드립니다, 영영감님?
은수 : (도도히) 덕분입니다.
시목 : (집무실에서 나와 은수에게 양말 봉투 준다) DNA 분석, 증거등록.
은수 : 이것도 마지막이네요.
시목 : ? (계장에게 메모 주며) 여기 연락해서 피의자 주민번호 받고 계좌 추적해주세요. (은수에게) 마지막?
실무관 : 영검사님 공판검사로 단독 임용 되셨어요.
시목 : (기계적인) 축하해. 첫 케이스가 중요한데, 뭐야?
은수 : 일단 오늘 들어온 거 중에 경제사범 정치범 빼고 일반 형사 건부터 시작하라십니다.
시목 : (멈추는)
계장 : 그러면은.. 어 방금 저놈부터 하셔야겠네요?
은수 : 조서부터 제가 쓸까요?
시목 :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안 돼.
은수 : 네?
시목 : 건드리지 마. (계장과 실무관에게) 저 나갑니다. (나간다)
은수 : 검사님! (쫓아나가고)
실무관 : 왜 저러시지? 심각한 거였어요?
계장 : 그냥 강도살인 같던데요?
40. 동/복도. 낮
은수 : (쫓아 나와) 검사님! 왜 안 돼요?
복도 끝에서 동재가 자기 방에서 나오다 두 사람 본다.
(이하, 동재가 본 시선에서)
시목 : (멈추지 않고 가며) 안 돼.
은수 : 제가 못 미더우세요?
시목 : 음. (가버린다)
시목 쳐다보는 은수, 동재 시선에선 뒷모습인데도 자존심 상한 게 느껴질 정도.
동재 : (뒤에서 다가간다. 캐고 싶지만 무심한 척) 왜, 오늘 살인사건 땜에?
(시목 향한 눈길) 박무성인가 누구 죽었다는?
은수 : (놀라는, 가까스로 소리 안 낸다)
동재 : 내가 그랬지? 니가 하필 제일 까다로운 수석 만났다고.
(시목이 코너 돌아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다 그제야 은수 보는) 욕심은 좀 많냐? 사건 안 주겠대지?
은수 : (놀란 표정 수습) 어떤 건지 아직 못 들어서요. 살인사건, 이었군요?..
동재 : .. (부드럽게) 차 한 잔 하지? ..와.
동재, 제 방으로 향하고 안색 어느 정도 돌아온 은수, 일부러 더 꼿꼿이 따라간다.
41. 동/건물 앞 계단. 낮
시목 : (빠른 걸음으로 계단 내려오는데)
김경사 : (올라오다 시목 발견) 황검사님! 또 뵙네요? 용산서 김수찬입니다.
시목 : (본다. 하지만 까딱 목례만. 가려는데)
김경사 : 어어 (막는) 아까도 그러시더니. 두 번은 안 되죠?
시목 : 저 땜에 오셨나요.
김경사 : 저희도 보고라는 게 있잖습니까, 그래서 (들어가려는 몸짓인데)
시목 : (움직이지 않는) 말씀하세요.
김경사 : .. (그냥 계단에 서) 용의잔 줄 어떻게 알고 쫓으셨어요?
시목 : tv 고치러 오기로 한 기사가 현장 근처에서 도주하는 걸 봤습니다.
김경사 : 그니까 고치러 오기로 했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요?
시목 : 자기 방엔 책 한권 없는 사람이 얼마나 심심했으면 아들 방에서 책을 뽑아 들었더군요.
혹시나 싶어 tv를 켜봤더니, 역시 고장이었습니다.
김경사 : 어어... 현장엔 왜 가셨죠?
시목 : 개인적인 친분입니다.
김경사 : 피해자 박무성하곤 무슨 사이신데요?
시목 : 개인적인 친분입니다.
김경사 : (순간 경멸이 스친다. 비웃는 듯)
시목 : (그 반응 눈치 챈...) 박무성씨 첫인상 어땠나요?
김경사 : 첫인상이요? 죽은 사람 첫인상은 왜요?
시목 : ..
김경사 : (뭔 뚱딴지?)
시목 : 더 질문 있으면 연락 주시죠. (목례. 빠르게 간다)
김경사 : (재수 없지만) 기소할 겁니까?
시목 : 해야죠.
김경사 : (안심하는.. 혼잣말) 그래야지..
시목 : (혼잣말) 죄목이 뭐냐가 문제지... (간다)
42. 무성의 집/마당 - 저녁
폴리스 라인 쳐지고 경찰이 지키는 대문.
시목, 신분증 보이고 마당으로 들어와 집으로 들어간다.
43. 동/안방. 저녁
낮에 시목이 훑었을 때와 똑같이 난장판인데.
시목, 들어오다 멈춘다. 낡은 밥상에 시선 꽂힌다. 밥상 위에 아무 것도 없다.
Flashback> - S#10. 박무성 시신 발견 직후의 안방.
밥상 위에 놓인 최신형 노트북.
시목 다시 보지만, 다른 건 다 똑같은데 노트북만 없다.
44. 박무성의 집/마루. 저녁
시목, 안방에서 나와 마루 훑는다. 마루 역시 시체만 없을 뿐 아직 피 웅덩이도 그대로다.
시목, 골목으로 난 커다란 창가에 서서 생각에 잠긴다.
진섭E : 내가 갔을 땐 벌써 죽어있었어요!
시목 : ... (문득 밖에 뭔가를 유심히 보더니.. 성큼 나간다)
45. 무성 집 앞/골목. 저녁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 뒤쪽에선가 ‘해피! 해피야!..’ 하는 소리 들린다.
대문에서 나온 시목, 곧장 맞은편 대각선 골목에 주차된 택시로 간다.
택시 앞유리창 살피더니 다세대 주택 올려다보는데, 세대수가 제법 많다.
시목, 택시 바퀴를 다짜고짜 찬다. 경보음 시끄럽게 울리고.
택시기사 : (3층 창문에 득달같이 나타나 내려다본다) 누구야!
시목 : (태연히 손 들어 보인다)
택시기사 : 뭐야 젓씨! 너 거 꼼짝 마!
쿵쾅대며 내려오는 소리, 희미하게 들리고.
택시기사 : (다세대주택에서 튀어나와) 어떤 색ㄲ
시목 : (검사 신분증 보이고) 협조 감사합니다.
택시기사 : (신분증 봤다 시목 봤다...)
잠시 후. 동장소.
택시기사, 택시 블랙박스에서 메모리 칩 꺼낸다.
택시기사 : (주기 싫어 투덜) 어디 안 가고 쭉 세워둔 건 맞는데, 이게 길만 찍혔지 뭐가 있겠나?..
(메모리칩 꺼내 택시에서 빠져나온다)
시목 : (칩 가져가려는데)
택시기사 : (싹 손 빼는) 이거 새로 살려면 몇 만 원인데?
시목 : 돌려드립니다. (칩 채간다. 곧바로 제 차에 오른다)
46. 시목의 차 안. 저녁
시목, 태블릿에 칩 끼우고 영상 확인하는데,
어느새 운전석 창밖에 와 기웃대는 택시기사, 영상 보려고 목을 뺀다.
시목, 아예 문 잠그고 안 보이게 몸 튼다. 택시기사, 쩝. 그래도 포기 않고 기웃댄다.
시목, 영상 재생시키면, 박무성의 집 앞 골목이 뜬다. 스크롤 끌어 이리저리 시간대 찾는데,
화면에, 케이블TV 차량에서 내리는 진섭 나타났다.
진섭이 무성 네 대문 앞으로 가는 걸 초집중해서 보는 시목.
47. 무성 집 앞/골목. 밤
언제 돌려주나, 택시기사가 고개 빼고 기다리는데,
차 시동 켜는 소리. 달려 나가는 시목의 차.
택시기사가 손사래 치며 쫓아가도 소용없다.
48. 서부지검/시목의 검사실. 밤
텅 빈 검사실. 밖에서 들리는 소리.
은수E : 수고하셨습니다.
실무관 : 내일 봬요!
잠시 후. 조용히 열리는 문. 은수다.
들어와 불 켜더니 곧장 시목 책상으로 가 파일 뒤진다.
파일 하나 빼내 펼치는데, 박무성 사건 파일이다.
흰 티셔츠 차림으로 엎어져 죽은 무성 사진이 첫 장부터 커다랗다.
사진 빼내 들여다보는 은수, 꽉 깨무는 입술, 손 떨린다.
파일 내용으로 눈 돌린다. 완전히 몰입해서 읽는데..
벌컥 문 열린다. 불쑥 들어오는 시목!
작은 비명마저 지르는 은수, 일어서며 급히 서류 덮는데 너무 서둘러서 사진 날린다.
하필 시목 발치에 제대로 떨어지는 사진.
시목 : (사진 집어서 보는)
은수 : (하필...) 경찰에서 조서가 넘어왔길래 제가 잠깐, 죄송합니다. (파일 주는데)
시목 : (받는다. 표지 클립에 사진 끼워서 돌려준다) 할 수 있겠어?
은수 : 예?.. 예!! 맡겨만 주세요!!
시목 : 어떻게 이길 건데.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
은수 : (앉으려다 흥분해서) 재판도 제가 직접 나가나요?
시목 : 공판 검사가 공판 나가는 게 질문거린가. (다시 앉으라는 손짓)
은수 : (앉는다. 파일 보며 목소리 가다듬고) 증거가 워낙 확실하네요.
용의자가 훔친 장물은 피해자 모친 걸로 확인됐고
아, 용의자 양말 혈흔도 피해자하고 일치하는 거로 나왔습니다.
시목 : 흉기에서 지문은?
은수 : 피해자 모친 지문 외엔 없습니다.
시목 : 용의자는 죽인 게 아니라 살인현장에 뒤늦게 들어가서 훔치기만 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서비스 접수를 정식으로 받았으니 처음부터 범죄를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이건 어떻게 뒤집지?
은수 : 아무리 정식으로 받았어도 월담을 하거나 강제로 들어간 건
이미 범죄를 목적으로 했단 거 아닌가요?
시목 : 누가 강제로 들어갔대?
은수 : ? (파일 뒤지는) 피해자 모친에 따르면 현장엔 피해자 혼자였고, 빚쟁이 때문에 문은 늘 잠가놨다는데
강제로 침입한 게 아니면 어떻게 들어가요?
시목 : 진범이 혐의를 뒤집어씌우려고 일부로 불러들였다고 하고 있어.
은수 : 말도 안 되죠.
시목 : 재판장한테도 그렇게 말할 건가?
은수 : (저도 모르게 혀 날름)
시목 : 그 혀 좀 어떻게 하지.
은수 : (순간 얼굴 빨개지는. 자존심 상했다) 죄송합니다.
시목 : 이 모든 걸 뒤엎을 수 있는 한 방이 뭐라고 생각해.
은수 : .. 그 시간에 피해자가 살아 있었단 결정적 증거요.
그치만 그런 게 있을까요? 집안에 cctv를 달아논 것도 아니고.
시목 : (태블릿에서 블랙박스 영상 재생시킨다)
은수 : 이게 뭔데요?
택시 블랙박스 영상 뜬다.
은수 : 이걸 어디서 (말 멈추는. 영상에 집중!)
진섭이 박무성 집 앞에서 하차하는 장면이 화면 끄트머리에 잡혔다.
대문에서 벨 누르면 거의 10초 정도 만에 금방 문 열린다. 진섭이 들어가는 모습.
은수 : 강제로 따고 들어간 게 아니란 건 증명됐네요?
그치만 이게 피해자가 당시 살아있었단 반증은 아니잖아요?
시목 : 어째서.
은수 : 용의자 주장대로 진범이 혐의를 뒤집어씌우려고 문을 열어줬단 것도 충분히 설득력 있어요.
시목 : 말이 안 된다며.
은수 : 그쪽 변호산 그걸 물고 늘어지겠죠.
시목 : 그래. (타임 스크롤을 뒤로 돌린다. 재생 누르고) 여길 봐.
은수, 시목이 가리킨 곳 보면, 골목을 향해 난 무성 집 거실 창문이다.
진섭이 파란 소형차에서 내려 대문 누르는 장면 재생되는데,
그가 대문 벨을 누르자 1~2초 후, 거실 창문에 한 남자가 어른대는 게 보인다.
커튼에 반쯤 숨어서 밖을 기웃대는 데다 멀리서 비스듬히 찍혀 명확하진 않지만,
분명 흰 티셔츠에 파란 트레이닝복 남자다.
눈 커다래지는 은수.
흰 티셔츠 남자, 창가에서 사라지고 몇 초 후, 대문 열린다.
은수 : (박무성 사체 사진 들어본다. 피에 물들었어도 흰 티셔츠 차림)
시목 : 빚쟁이한테 시달리다보면 누가 대문만 눌러도 일단 몰래 확인부터 하게 돼.
은수 : 용의자가.. 범인 맞네요. (그런데 기쁜 기색이 아니다)
시목, 그 표정 눈치 채지만 언급 않는다. 영상을 USB로 옮겨 태블릿에서 빼낸다.
은수, 받아가려고 손 내미는데, USB를 응시하는 시목.
은수 : ?... (달라고 끝을 잡는데)
시목 : (잡고 안 놓는)
은수 : (당기는) 검사님.. 검사님?
시목 : (도로 가져가 주머니에 넣는다) 퇴근해.
은수 : 왜요? 그게 있어야 저도 재판을 하죠, 결정탄데?
시목 : 내일. (책상으로 가 컴퓨터 켠다. 책상에 가득 쌓인 일 시작)
은수 : 내일 꼭 주세요, 네?... (대답 없자 입 나오지만... 나가면)
시목 : (전화) ..수고하십니다. 4층 형사분데, (USB 꺼낸다. 컴퓨터에 꼽는)
지금 영상 하나 보내드릴 테니까 분석 부탁드려요. (영상 클릭!)
49. 병원/영안실/복도. 밤
반장F : 그런 덴 범인 안 잡혀서 뭐 얻어걸릴 거 없나 할 때나 가는 거야. 육개장 얻어먹으려고 그래?
여진 : (영안실 확인하며 전화 중) 5분도 안 걸려요. 네. (끊는)
50. 동/영안실. 밤
한쪽 벽에 쪼르르 앉아 찬송가 부르는 교회 아줌마들.
여진 들어온다. 무성 영정 앞엔 향 꼽고 절 하려다 주춤, 교회 사람들 보더니 짧은 기도로 대신한다.
유족에게도 절하자 맞절하는 무성母. 그 옆에 짧은 머리의 경완도 절한다.
여진 : (힘겹게 일어나려는 무성母 잡고) 그냥 계세요.
무성母 : (손잡고) 고마워요..
여진 : (거칠어진 손만 문지를 뿐. 뭐라 할 말이 없다. 옆을 보는데)
경완 : (생기라곤 없는 무성母완 달리 눈물은커녕 메마른 얼굴로 인사)
무성母 : 우리 손자요.
여진 : 아, 군대 가셨다는.. 많이 힘드시죠.
경완 : (짧게) 네.
여진 : ? (잠시 보지만 인사하고 자리 뜬다)
여진, 나오기 전에 부조금 내는데, 봉투 내놓자마자 옆에 지켜 섰던 남자가 채간다.
여진, 놀라 부조금 받는 사람 보지만, 씁쓸한 표정 할 뿐 아무 말 못한다.
봉투 채간 남자는 잔뜩 성이 나 있는 게, 빚쟁이가 분명하다.
여진이 더 민망해 유족을 돌아보면, 무성母는 체념한 건지 돈이 문제가 아닌 건지 쳐다보지 않는데,
경완은 빚쟁이를 노려본다. 조문 받을 때완 달리 강렬한 눈빛이다.
여진.. 자리 뜬다.
51. 동/복도. 밤
여진, 영안실에서 나오는데 옆 식사하는 곳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다.
여진, 안 된 마음에 무성母 돌아보는데, 경완, 핸드폰이나 만지작대고 있다.
무성母, 경완 보지만 말 거둔다.
갸웃하는 여진.. 돌아보며 자리 뜬다.
52. 서부지검/시목의 검사실. 낮
여자F : (전화 목소리) 예 확실해요, 99% 원본 맞는 걸로 나왔거든요?
시목 : (손가락으로 USB 돌리며 전화 중) 알겠습니다. (끊는. USB 보지만...)
시목, 박무성 파일을 따로 빼서 책상 끝에 놓는다. 그 위에 탁 놓여지는 USB.
53. 서부지검/형사부 복도. 낮
시목 방에서 나오는 은수, 박무성 파일 옆구리에 끼고 총총 가는데,
동재, 자기 방에서 나온다.
두 사람, 일상적으로 인사하며 스치는데,
동재 : (뒤늦게 생각난 척) 후암동 거 기소한다며? 하필 데뷔전이 강력이라 버겁겠어?
은수 : (USB 들어 보이는) 승소는 따놓은 당상이거든요?
동재 : 뭔데?
은수 : 용의자가 꼼짝 못할 물증이요. 증거목록에만 올리면 돼요.
동재 : ..영은수, 평생에 한 번뿐인 데뷔전인데 화려하게 치러야지?
변호사가 찍소리도 못하게 압승 거두게 해줘?
은수 : ?
동재 : 증거목록, (USB 가져가 들어 보인다) 그딴 걸 왜 올려. 나중에 크게 쏴. (싹 웃는)
54. 동/복도. 낮
406호 법정에서 나오는 시목.
자막 - <2개월 후>
시목, 서류 보따리 들고 가다 407호 법정 본다.
출입구 옆 ‘오늘의 재판 안내’에 고지된 일정 중에 ‘담당 검사 : 영은수’가 보인다.
시목, 잠시 보는...
55. 동/407호 법정. 낮
진섭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인데, 시목 들어온다.
여진 : (증인석에서 진술 중) ..그런 다음 피고가 훔친 장물이 피해자 모친의 소유임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시목 : (눈에 안 띄게 맨 뒤에 조용히 앉는데)
변호사 : 물건을 훔친 게 곧 살인했다는 뜻은 아니죠?
여진 : 그렇지만 현장에서
변호사 : 네 아니요 대답해주세요, 훔쳤다, 가 곧 살인, 은 아니죠?
여진 : .. 아닙니다.
변호사 : 감사합니다. 더 이상 질문 없습니다. (자리로 가는)
판사 : 증인, 자리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여진 : (자리로 오는)
법정 문 열리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오는 동재.
동재, 자신에게 쏠리는 방청객 시선 의식하며 헐레벌떡 은수에게로 간다.
그리고는 은수에게 무언가를 건네고 귀엣말 한다. 은수도 심각하다.
시목 역시 다른 방청객들처럼 그 둘을 바라보고 있는..
은수 :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 재판장님, 새로 확보한 증거를 신청합니다.
시목 : (새로 확보한 증거?)
변호사 : 사전 통보 못 받았습니다!
은수 : 저희도 방금 전에야 확인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본 사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매우 중요한 증거입니다!
판사 : 양 측 앞으로 나오세요.
은수와 변호사, 판사에게 간다. 자기들끼리 머리 모으고 갑론을박한다.
시목, 동재 보면 동재, 방청석에 앉아 의기양양하다. 그 근처에 무성母도 보이고.
시목, 진섭 쪽 방청석 보면, 진섭 가까이 아기 안은 아기엄마(진섭妻)도 있다.
그런데 아기엄마와 뭐라 얘기하는 남자를 본 순간 시목, 눈썹 치킨다.
남자(정본), 좀 어리바리해 보이는데, 그에게 꽂힌 시목의 시선....
정본, 시선 느꼈는지 이쪽 보지만 못 알아본 눈치, 그냥 고개 돌린다.
시목, 무심히 앞을 보면, 부산스러운 재판장.
어느 새 간이 스크린을 설치했다. 프로젝터도 갖다 놓고.
은수 : 피고는 재판 과정 내내 살인이 일어난 후 현장에 들어갔다는 주장으로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영상을 봐주십쇼.
어젯밤까지의 탐문수사로 인근 차량에서 확보한 블랙박스 영상입니다.
시목 : (입모양) 어젯밤?
블랙박스 영상이 스크린에 선명하게 펼쳐진다.
법정 안의 모두가 주목하는데, 영상 속 거실 창에 비친 무성 주위엔 확실하게 동그라미까지 쳐놨다.
진섭은 눈이 튀어나올 듯 하고, 무성母는 아들 모습에 충격 받는다.
은수 : 여기 피고가 아직 현장에 들어가기 전에 피해자는 분명히 살아있습니다.
만에 하나 제 3자 개입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망 추정 시간 전 12시간 분량의 영상을 일일이 확인했지만
피고를 제외한 어떤 인물도 현장에 출입한 모습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 점 확인하느라 사전 제출하지 못한 점 양해바랍니다, 재판장님.
판사 : .. 변호인 추가 변론 있습니까.
진섭 : (변호사에게 아니라고 간절히 고개 저어 보이지만)
변호사 : 없습니다.
진섭 : 아녜요! 저건 가짜에요! 거짓말이야!!
판사 : 조용히 하세요!
동재와 눈빛 교환하는 은수.
동재는 엄지 세워 보이고, 승리의 미소로 화답하던 은수, 미소가 사라진다.
맨 뒤에서 일어나는 시목을 본 것이다.
시목, 비난의 눈초리는 아니지만 더 볼 가치 없다는 듯 법정 나간다.
56. 동/복도. 낮
조용한 복도 위로 울리는 소리.
판사E : .. 명징한 증거를 부정하고 그 어떤 반성도 않는 피고에게 징역 22년 형을 선고합니다.
법정 안의 소음이 잠시 들리더니 문 열린다. 재판 끝나고 사람들 몰려나온다.
무성母도 나온다. 힘없는 다리로 벽 짚으며 휘청휘청 가는데,
여진 : 어머님! (달려온다) 혼자 오셨어요?..
무성母 : (고개만 끄덕. 어딘가 다른 데 정신 팔린 듯)
여진 : 손자분은요? 복귀했어요? (전화 온다) 잠시 만요. (받는) 예!.. 끝났어요. (무성母 보는데, 어?)
무성母 : (혼자 휘적휘적 간다. 눈빛이 뭔가 단단하다)
여진 : (무성母 부르려다) 어디서요? 또?...아뇨 제가 갈게요! (급히 가는)
그 뒤로 변호사 나오고, 어리바리 따라 나오는 정본.
57. 동/건물 앞. 낮
정본, 뿔난 변호사 쫓아 부지런히 가다 시목을 지나치는데 흘끗 볼 뿐, 못 알아봤다.
하지만 중간에 멈추고 돌아본다.
시목 : ...
정본 : 저기 혹시.. 혹시, 그... 아 뭐였더라..
시목 : (더 기다리지 않고 명함 건넨다)
정본 : (명함 보며) 그래 황시목! 맞아 시목이! 야! 반갑다 친구야!
(시목이 뭐랄 새도 없이 끌어안는) 이게 몇 년 만이냐!
시목 : 20년.
정본 : 너 그때 말도 없이 갑자기 (하다 살짝 당황. 하지만) 짜식! 검사 됐구나? 맞다, 너 공부 엄청 잘했지?
시목 : 너도 같은 계열인 거 같은데.
정본 : 같은 계열은 뭐, 난 그냥 쪼고만 데, 사무장. (명함 주려고 뒤지는데)
경적 소리. 미리 차에 탄 변호사, 경적 울린다.
정본 : 어 나 지금
시목 : 가봐. 그럼. (먼저 돌아서 간다)
정본 : (가는 시목 보며 그래도 데헷, 해맑다) 미안해, 전화할게, 조만간 (술 마시는 손짓. 가며) 야 진짜 반갑다!
정본, 차에 올라 자리 뜨는데 시목을 한 번 더 돌아본다.
정본 사라지면 그 뒤로, 한껏 들뜬 은수가 동재와 함께 나온다.
동재 : (은수 흉내 내며) 재판장님, 새로 확보한 증거를 신청합니다! (시원하게 웃는) 잘 하던데?
은수 : 검사님 말씀대로 마지막에 터뜨리길 잘한 거 같아요.
동재 : 그런 게 노하우야. 재판도 스토리가 있어야 된다니깐. 무엇을 언제 어떻게 쾅! 터뜨리느냐.
은수 : 원수 꼭 갚겠습니다. (하는데 시목과 마주친다) 황검사님!..
시목 : (말없이 은수 봤다가 동재 봤다가)
동재 : 칭찬 한 마디하면 입이 부르트냐? 자기 수습 첫 승인데.
시목 : (말하는 도중에 휙, 자리 뜬다)
동재 : 선배가 말하는데 저ㅆ! (상욕 겨우 참는) 하여튼 저 씨..
은수 : (동재에게 급히 목례하고 시목 쫓아오며) 데뷔전이 중요하다고 서검사님이 많이 케어해주셨어요,
증거가 워낙 확실하니까 어드바이스 좀 받은 거뿐이에요.
시목 : 그런 거부터 배우지 마.
은수 : 이기면 되는 거 아녜요? 날조한 것도 아니고 이겼잖아요 어쨌든?
시목 : 어쨌든. (간다)
자존심 상한 은수, 그 뒤로 시목 노려보는 동재.
58. 동/주차장. 낮
교도소로 이송되는 진섭. 너무나 절망에 빠져 버스에 실린다.
커다란 돌을 움켜쥐고 오는 무성母, 진섭의 뒤통수가 멀지 않았는데,
아기엄마 : 오빠!
무성母 : !
아기엄마, 아기 안고 달려온다.
진섭, 정은아! 부르며 가려 하지만 경찰이 두 사람을 막고, 아기는 아빠에게 오려 울며 버둥대고.
오열하는 진섭, 결국 아기 손 한 번 못 만져보고 떼밀려 버스에 실린다.
버스는 얼른 떠나고, 아기엄마는 울면서 버스 쫓아가는데,
돌 쳐든 손, 갈 곳 잃은 무성母, 몸이 무너지며 주저앉는다.
범인이 잡혔어도 아들 잃은 고통은 그대로인데다 또 다른 부모자식의 찢김을 목격한 무성母,
정작 본인은 울지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주저앉았다.
그렇게 있는데 남자 다리가 앞을 지나간다. 시목이다.
시목, 무성母가 주저앉은 게 보이지만 그냥 지나치는데,
무성母 : 보고 싶어요..
시목 : (보는)
무성母 :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내 아들.. (눈물 방울 방울..)
내가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 같이 가고..싶어.. 같이 갔어야 했는데..
시목 : ... (담담히 자리 뜨는데)
시목母E : 엄마랑 죽자, 같이 가자 시목아..
59. 시목의 집/방 -낮(25년 전)
방 안이 엉망이다. 뻐꾸기시계를 바닥에 내려쳐 시계는 박살났고 방바닥은 찍혔다.
시계에서 뽑혀진 뻐꾸기는 죽은 새처럼 바닥에 버려졌다.
10살 시목을 잡아 앉힌 시목母, 이젠 지쳤다.
시목母 : (운다. 크게도 말 못하고) 너랑 나랑 그냥 같이..
시목 : (엄마 눈물 닦아주며) 잘못했어요, 엄마, 다신 안 그럴 게요.
시목母 : (호소도 아니고 한탄도 아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나 도저히 못 하겠어,
내가 널 이렇게 낳았으니까 같이 죽자..
어린 시목, 엄마한테 매달리고 울고. 하지만 시목母, 너무 지쳤다.
60. 서부지검/주차장 -낮(현재)
시목, 등을 구부리며 가고, 그 뒤로 홀로 남은 무성母..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61. 정본의 차 안 -낮
정본, 운전하고 변호사, 아직 패소의 기분이 좋지 않은데.
변호사 : 아까 만난 사람은 친구에요?
정본 : 예, 중학교 때요. (계속 운전하지만 표정 묘해지는...)
62. 서부지검/차장검사실. 낮
책상에 앉은 창준, 서서 서면보고하는 시목.
창준 : (서류 보며) 부잔 망해도 3년은 간다더니, 패물을 꽉 쥐고 있었네. 이러니 도둑이 꼬이지.
시목 : 다 처분하고 마지막 남은 거였다고 합니다.
창준 : 가슴 아프네. (여전히 서류 보며, 지나가는 투로) 그날 거긴 왜 갔어?
시목 : 그 질문 이제야 하시네요?
창준 : (서류 던지듯 놓고) 해봐.
시목 : 피해자는 부도를 막으려고 모든 인맥을 총동원했습니다.
창준 : 돈으로 쌓은 인맥이 돈과 함께 사라졌단 걸 곧 깨달았지.
시목 : 횡령죄만 피하면 재기할 수 있다고 자신했죠.
창준 : 시건방진 패착이야. 대한민국 검사를 지 뒷배로 착각하다니.
시목 : 착각할 만 했죠.
창준 : (싸늘...) 결론이 뭐야.
시목 : 결론은 (사건 서류 일별) 이거죠. 제 3의 인물에 의한 단순 강도살인.
창준 : 제 3의 인물이라. 이거 뭐, 제 2의 인물도 있단 소리로 들리네?
시목 : 입만 뻥끗하면 순식간에 생매장시킬 수 있는 것.
창준 : (눈썹 꿈틀)
시목 : 협박당한 인물이 있었죠. 뿌린 데로 거두는 데 실패한 박무성이 상납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한 인물.
창준 : .. .. 그 제 2의 인물을 함께 무너뜨리자고 박사장이랑 손잡았어? 부패한 동료들 싹 다 몰아내려고?
독야청청하시다는 황검사님께서?
시목 : 썩은 덴 도려낼 수 있죠. 하지만 아무리 도려내도 그 자리가 또 다시 썩어가는 걸 8년을 매일같이 봤습니다.
창준 : ........
시목 : 대한민국 어디에도 왼손에 쥔 칼로 제 오른팔을 자를 집단은 없습니다. 기대하던 사람들만 다치죠.
창준 : 박사장이 그러다 다쳤다? 협박당한 인물이 전과자 사주해서 죽였다?
황시목이도 별거 아니네, 전엔 반짝반짝하더니.
시목 : 남에 집 TV 고장 내고 수리기사 수배하고, 그 인물 방식이 아니죠.
창준 : 그 인물 방식은 뭔데.
시목 : 이미 죽어있었단 말, 사실일 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박무성을 제거하고 접대 증거를 없애려고 했겠죠.
온 집안을 뒤졌으니 패물이 정말 바닥에 뒹굴렀을 수도 있구요.
창준 : 근데 그 가설을 엿 먹인 게 다름 아닌 바로 너잖아?
시목 : 그렇습니다.
창준 : (웃음) 깔끔하게 해결했네, 믿고 쓸 만 해.
(만 원짜리 두 장 꺼내는) 속 쓰릴 텐데 가서 해장국이나 해. (시목 주머니에 돈 꽂는다)
시목 : (돈 빼는데) ... (목례) 맛있게 먹겠습니다.
창준 : (미간에 잡히는 주름)
시목 : (돌아서는데)
창준 : 박사장이 직접 알려줬어.
시목 : (멈추는)
창준 : 황시목이랑 손잡았다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인물이니까 진짜 찌르기 전에 지 문제, 해결해 달라고.
시목아, 착각하지 마. 널 믿어서가 아냐. 나한테 보여주려고 한 거야.
시목 : 그런데도 그날 왜 거길 갔냐고 하신 건, 제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아닙니까?
박무성이 차장님 협박한 거, 순식간에 생매장 시킬 수 있는 거. 그걸 제가 아는지.
창준 : (알고 있냐고 너무나 묻고 싶지만.. .. 결국 못 참고) 그래서?
시목 : (만원 두 장 중 한 장은 놓는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목례. 나간다)
창준 : (일그러지는...)
63. 동/복도. 낮
시목, 차장검사실에서 나와 어딘가 아래를 보며 간다.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다.
64. 무성의 집 앞/골목. 저녁
양옥집 앞에 차 선다. 뒤로 (무성 옆집인) 다세대주택이 보인다.
높이가 비슷한 무성 네 집도 귀퉁이 정도 보인다.
여진 : (차에서 내려 동네 보는) 이 동네 뭔 마가 쓰였나...
65. 주택/뒷마당. 저녁
마당 한구석, 파헤쳐진 흙속엔 개 시체가 썩고 있다.
여진 : (코 막았지만) 불쌍해라, 꽤 됐나보네..
집주인 : 우리 해피도 불쌍하지만, 우린 도망간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이 짓 해놓은 거 보면 개가 짖으니까 죽인 거 아닐까요? 도둑이 들었다가.
여진 : 도둑이요? 다치신 분은요? 뭐 없어진 건요?
집주인 : 아니 들었다는 게 아니고 몇 달 전에 (손짓하며) 조 뒷집 사람 죽어 나갔잖아요?
생각해보니까 우리 해피 없어진 게 그날 같아요.
여진 : ! (담벼락 보면)
벽돌담 자체는 높지 않지만 위에 방범용 쇠장식이 뾰족하다.
여진, 쇠장식을 붙잡고 담벼락을 기어오른다.
고개 넘겨보면, 무성의 집 옆에 있던 다세대주택 주차장이 코앞이다.
집주인 : (뒤에서 궁시렁대는 소리로) 어떤 썩을 놈인지, 요 쪼그만 게 짖으면 얼마나 짖는다고.
이렇게 된 줄도 모르고 도망쳤다고 했으니, 불쌍한 우리 해피, 세상이 참 어떻게 될라고...
여진, 아예 담을 넘어 다세대로 가보려는데 쇠장식에 신발이 걸린다.
발 거두는 여진, 그러다 문득, 발 밑 쇠장식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초록색 쇠장식에 거무튀튀한 얼룩이 묻어 있다.
담에서 점프하는 여진, 가방에서 면봉 꺼내 쇠장식에 거무튀튀한 얼룩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뻘겋게 묻어나는 물질..
김경사E : 그래서 이걸 분석해보겠다고요?
66. 용산서/강력반. 밤
김경사 : (나갈 준비하며, 면봉 넣은 봉투 별 관심 없는 듯 흘낏)
여진 : 혹시 모르니까 확실히 해두려고요.
김경사 : 줘요, 나 지금 국과수 가는 길이니까.
여진 : 괜찮아요, 내가 갈게요.
김경사 : 어차피 가는 길인데. (떠보듯) 손수 가시든가?
여진 : (봉투 바라보다..) 부탁해요, 그럼.
봉투 받아 나가는 김경사, 미간 찌푸렸다.
67. 서부지검/시목의 검사실. 밤
시목 혼자 일하는데, 문 밑으로 뭔가 쑥, 들어온다. 보면, 평범한 편지봉투다.
시목 얼른 문으로 가 열어젖히는데, 복도에 사람은 이미 보이지 않고 멀어지는 발소리만 울린다.
쫓아나가는 시목.
68. 동/복도. 밤
승강기 문 열리는 소리 난다.
시목 달려오지만 이미 닫히는 승강기. 사람은 확인할 수 없다.
69. 동/시목의 검사실+복도. 밤
검사실로 돌아온 시목, 봉투 집어 보면, 봉투 겉면엔 아무 글씨 없다.
뜯어서 속 안의 내용을 읽다가... 번개처럼 뛰어 나간다.
시목 : (뛰어가며 전화) 강진섭 신병 확보하세요, 지금 당장. 혼자 두면 안 됩니다.
70. 동/복도+승강기. 밤
시목, 서둘러 승강기를 잡아타고 닫힘 버튼 누르는.
진섭E : 너무 억울합니다, 억울해서 미칠 것 같습니다,
난 안 죽였어요, 다 거짓말이고 다 사기입니다! 난 무죄에요!
71. 남부구치소/복도. 밤
교도관 몇 명, 잠긴 복도 문 열고 서둘러 간다.
진섭E : 세상사람 다 몰라도 나는 압니다. 난 사람 안 죽였습니다.
모퉁이로 돌아드는 교도관들, 또 다른 잠김문, 연다.
진섭E : 검사가 증거를 조작해서 저를 살인마로 둔갑시켰습니다.
목에서 피가 나게 외쳤는데도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어요! 힘없고 빽없고 돈 없는 놈이니까!
72. 국과수/증거 분석실. 밤
국과수 직원, 혈흔이 묻은 면봉 분석하기 위해 끝을 자른다.
73. 남부구치소/마당. 밤
마당을 향해 난 작은 철창 너머 진섭이 밖을 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모두 잠든 밤에 홀로 멍하니 달을 보는 진섭, 모든 생기가 빠져나갔다.
진섭E : 왜 내가 짓지도 않은 죄로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야 합니까, 왜 내 자식이 살인범 자식이 돼야합니까,
평생 아빠도 없이 놀림 받고 무시당할 내 자식을 생각하면 죽어도 눈을 감을 수가 없어요!!
진섭, 천천히 윗옷 벗다 운다.
그때, 진섭 뒤로 아주 희미하게 스치는 그림자.
74. 동/수감실 복도. 밤
발소리 울리며 달려오는 교도관들.
진섭E : 날 개돼지 취급한 검사라는 인간!
교도관 : (수감실 문 급히 따고 몰려 들어간다) 36085!!
75. 국과수/증거 분석실. 밤
혈흔 분석기,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76. 서부지검 1층 정문 입구. 밤
1층 정문 양쪽으로 밀치며 나오는 시목, 계단을 빠르게 내려온다.
시목과 그 뒤로 펼쳐진 서부지검 위로,
진섭E : 나의 죽음으로 날 모함하고 핍박한 검사를 고발합니다!
내 죽음으로써 주장합니다, 난!!!! 안 죽였어....
화면으로 빠르게 다가오며 감정 알 수 없는 시목의 얼굴에서 엔딩.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