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
S#1. 오프닝 (저녁)
화면 열리면 해질녘의 한적한 시골길.
카메라, 누군가의 발걸음을 따라 조용하고 인적도 없는 한갓진 시골마을을 훑는다.
때때로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 그것도 멀리서 나직이 들린다.
소리가 조금씩 열리면서 카메라가 길모퉁이를 돌면 상갓집이 나오고
집 앞에 내 걸린 붉은 상갓집 등이 해질녘 검푸른 하늘과 기묘한 콘트라스트를 이룬다.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는 붉은 등.
S#2. 상갓집 (저녁)
분주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지만 상갓집 같지 않게 조용하다.
통곡도 없고 떠드는 소리도 없다.
죽은 이의 가족들도 그저 조용히 울음을 삭히며 오열할 뿐이다.
시신이 놓여져 있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비스듬히 경찰정복과 사복차림의 남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돌아보면 최순경, 긴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는다.
소 장 : 별일 없지?
최순경 : 별일은 이것보다 더 별일이 어딨겠어요?
소장의 헛기침소리와 동시에 졸지에 남편을 잃은 여자가 음식을 들고 상 앞으로 다가온다.
음식을 내려놓는 희고 매끄러운 손이 그들의 눈에 들어오고
그녀가 갓 결혼한 새색시임을 알 수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속내를 복잡하게 만든다.
모두들 그녀가 음식을 다 내려놓을 때까지 어색한 표정과 자세를 취하고 있다.
조용히 그녀가 물러나고.
물러난 사이로 죽은 이의 영정이 보인다.
모여있던 사람들 망연한 표정으로 영정사진을 바라보다가.
소 장 : 전화기 좀 줘봐. (최순경의 전화를 받고 번호를 누른다)
신호가 가고
소 장 : 박순경. 어, 나야. 소장야. 별일 없지? 어? (시계를 보다가) 뭐 서너 시간 있겠지.
........... 잘하라구. 그려, 알았어.
최순경 :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음 ......... 나참 귀신도 곡할 노릇일쎄......
모두들 표정들이 착잡하다.
소장, 상위의 고추를 하나 집어들어 아그작 깨문다
S#3. 파출소 (저녁)
무심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일지를 작성하던 박순경,
어디선가 빈 벽에 나사 돌리는 듯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살며시 이맛살을 찌푸리며 소리에 집중한다.
소리가 멈춘다.
다시 일지를 쓴다.
잠시 뒤 다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박순경, 숨을 죽이며 소리의 방향을 찾아본다.
또다시 집중하면 소리는 뚝 멈춘다.
고갤 갸웃하던 박순경,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일지를 작성한다.
손위에서 무료할 때마다 빙그르 원을 그리던 볼펜이 떨어져 책상 위를 도르륵 구른다.
책상 밑으로 떨어지는 볼펜을 겨우 잡았을 때,
그 앞에 언제 들어왔는지 창백하고 푸석한 느낌의 여자 하나가 서있다.
어? 하며 깜짝 놀라는 박순경.
여자는 그냥 그대로 서있고 잠시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정적이 흐르다가
- 사이에 경찰은 이 여자가 언제 들어왔지?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
박순경이 여자를 빤히 쳐다보다가.
박순경 : 무슨 일로 ...... 오셨습니까?
여자는 대답 없이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인다.
박순경 : 이게 뭡니까? (사진을 받아보고) .......... 이분이 누구시죠?
여 자 : 동생인데요.
박순경 : ..... 그런데 무슨 일로 ......
여 자 : (잠시 아래 입술 질끈 깨물더니) 동생이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박순경 : 이게 최근 사진입니까? (앞뒤를 빠르게 번갈아 보며)
여 자 : 아니요. 아마 .....삼 년 전쯤 사진입니다.
박순경 : 집을 나간지 얼마나 됐죠...... ?
여 자 : ...........
박순경 : 집을 나갔을 만한 이유가 있나요?
얼른 대답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울먹울먹 거린다.
경찰은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서랍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박순경 : 이게 어디 있지?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제가 상황 근무는 오늘이 처음이라 ......
자리에 일어나 캐비닛을 열고 이것저것 뒤지더니 서류 한 장을 꺼낸다.
박순경 : 아 여깄다. 우선 여기에다.......
(볼펜하나를 집어 나오는지 직직 긋다가 건네며)
거기 자세히 보시고 빠짐없이 적어 주세요.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자,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끝으로 찍어내듯 닦으며
진정하려는 듯 약한 한숨을 내쉬더니 용지를 받아 꼼꼼히 적기 시작한다.
경찰, 한동안 여자의 모습을 하나 하나 관찰하듯 본다.
어딘지 지쳐 보인다.
박순경 : (대충 기재사항들을 힐끔 보더니) 가족이 많지 않으신가 봐요?
여 자 : ......
박순경 : (대답을 안 하자 무안한 듯 기재사항들을 보며 다른 참견거리를 찾는다)
여기에 이름 쓰시고요 ...... 연락처 하나 써 주시구요.
용지를 받아 쥔 경찰, 한번 쭉 훑어보더니
박순경 : 됐습니다. 그만 가보셔도 좋습니다.
여 자 : .........
여자, 엉거주춤 일어나 인사를 하고 나간다.
박순경 : 저 잠깐만요.
여자, 나가다말고 문 앞에서 뒤돌아보면
박순경 : 혹시 .... 지금 어디 편찮으신 가요? ......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
여 자 : ...... 아뇨. 괜찮습니다.
후닥닥 일어나 문을 열어주는 경찰,
마치 병약한 사람처럼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흘깃 바라보다
돌아와 자기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비스듬한 시선으로 다시 한번 기재사항을 보다가 컴퓨터를 켠다.
카메라, 천천히 백트랙킹 하면서 파출소 밖으로 나온다.
그녀가 걸어가고 있을법한 길목으로 천천히 팬 한다.
그녀는 보이지 않고 텅 빈 길목만 보인다.
마치 누군가의 시점처럼 양쪽 길 끝을 수평 이동한다.
카메라, 다시 파출소를 비추면 파출소 앞 보안등이 틱하고 들어온다.
빠른 속도로 어둠이 내리고 ......
S#4. 파출소 (밤)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고있던 또 한 명의 순경,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니터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다가
마침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박순경을 부른다.
오순경 : 이상하네 ........ 박순경님.
박순경 : 에?
오순경 : (박순경, 수건으로 젖은 얼굴을 닦으며 다가오면) 이거 이상한데요.
박순경 : 뭐가요?
오순경 : 이거보세요. 조회가 안 뜨는데요?
몇 시간 전에 써 놓고 간 조서의 인적사항들이
아무리 클릭을 해도 컴퓨터 화면에 뜨지 않는다.
박순경 : 다운된 거 아닌가.......?
오순경 : 다운된 거면 이런 게 안 먹죠. 자 보세요.
오순경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자 바로 뜬다.
박순경 : 어, 어 .......... 이상하네......
조회를 해보지만 그럴 때마다 컴퓨터는 먹통이 된다.
계속 클릭을 하면 최종적으론 이상한 바이러스 먹은 것 같은 화면이 뜨는 게 반복된다.
오순경 : 이게 이상한 게, 그냥 먹통이 되 버리잖아요.
오순경 답답한지 마우스며 모니터를 손바닥으로 툭툭 쳐본다.
소 장 : 야 임마. 그게 무슨 고장난 라디오냐? ...... 내일 날 밝으면 박순경이 가봐.
오순경 : 이게 그런 문제가 아닌데요.
소 장 : 그런 거 없을 때도 다 발로 뛰면서 해결했었어.
요즘 애들은 뭘 전부 앉아서 할려구 그래? 오순경 네가 서에 들어가서
직접 찾아서 보고하고 박순경은 집으로 찾아가 봐.
박순경 : 네..........
아까부터 골똘히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표정이던 최순경이 난데없이
최순경 : ..... 근데 거 희한하지 않아요?
소 장 : 뭐가?
최순경 : 조순경 말이에요.
소 장 : 조순경 뭐?
최순경 : 조순경, 여기 그날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있을 때 말이에요.
일 동 : ?
최순경 : 얼굴 보셨어요?
소 장 : 아니 .... 왜?
최순경 : 그러니까 조순경이 여기 바닥에 엎드려 있는데
......무엇인가에 심하게 놀래서 겁에 질려있는 얼굴 이였거든요.
순간적인 죽어있던 조순경의 얼굴 플래시컷.
최순경 : 난 그 얼굴이 ..... 그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아 .......
손엔 무슨 일이었는지, 볼펜을 꽉 움켜잡고 말야 ......
일 동 : ........
소 장 : 거 쓸데없는 얘기하지 말고 ....... 오늘 일직이 누구야? 오순경야?
나머지들은 퇴근들해. 어서.
모두들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 있거나 책상 위를 정리한다.
S#5. 시골길 (밤)
박순경이 탄 자전거가 땅거미가 내려앉은 시골길을 털털거리며 가고 있다.
주위는 어둡고 자전거의 라이트를 의지해 음침하고 적막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는데
건너편 저수지 뚝방길위에 희끄무레한 물체하나가 우두커니 서있는게 보인다.
박순경이 자전거를 멈추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정체를 확인하려고 한다.
자전거에서 내려 살그머니 그쪽으로 다가간다.
박순경 : 여보세요 - 거기 누구 있어요?
희끄무레한 물체가 잠시 꿈틀하는 것 같더니 다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다.
박순경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누구냐고 외쳐보지만
그의 외침은 대답 없는 메아리로 돌아온다.
박순경이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가려할 때
반대쪽 저수지에서 첨벙하는 잉어 물 치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시선을 빼앗긴다.
다시 고개를 돌려보면 그 하얀 물체는 온데 간데 없다.
고갤 갸웃거리는 박순경.
페이드 아웃
S#6. 시골길 / 뚝방길 (낮)
- 약간의 시간 경과.
한적한 시골의 숲길을 걷는다.
인적도 없고 가끔 새소리만 멀리서 괴이하게 들린다.
-길양쪽으로 크고 작은 저수지가 나뉘어져있고 길고 좁은 듯한 뚝방길이 나있다.
뚝방길을 걷다가 수로관 앞에서 농로쪽으로 물을 내고 있는 마을주민을 본다.
박순경 : 물내세요?
원 씨 : 에 - (건성으로 대답하고 다시 물길을 내다가) 근데 어디 가시유?
박순경 : 저기 작은 저수지위에 있는 3층집있죠?
원 씨 : (박순경이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며) 거기 누가 있대요?
박순경 : 네?
원 씨 : 거기 아무도 안 살 텐데. (기구를 내려 놓곤 약간 웃음기에 서린 얼굴로)
거기 구신 나오는 집인데...
박순경 : 네?
원 씨 : 거 몰라요? 여기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데...... 거기 구신 나오는 집이여.
박순경 : 거기 사시는 분들 좀 아세요?
원 씨 : 뭐 낱낱이 잘은 모르지만
가끔 여기 일손 거두는 이처럼 보이는 사람만 왔다갔다 한다고 하더만 ..........
박순경 : 여자 분 안 사세요?
원 씨 : 여자요? ..... 글쎄 ...... 없을 텐데? .......아, 가끔 어떤 미친 여자가
빈집인지 알고 담을 몇 번 탔다고 하던데....
박순경 : 그래요? 몇살 정도의 여잔데요?
원 씨 : (생각을 곰곰이 하다가 피식 웃는다) 그러게 난 도대체 미친 여자들은
나일 분간 못 하겠단 말야. 한 40줄 좀 됐나?
박순경 : 아.... 네.
원 씨 : 어이 가지마요. 거기 구신 나와.
(배수로관 안을 갈퀴로 긁어내며) 근데 ..... 이게 뭐가 이렇게 막힌거여?
싱거운 시골아저씨군 하는 표정의 웃음을 지으며 다시 발길을 돌리는 박순경.
S#7. 수미 집 앞 (낮)
나무사이로 언뜻 언뜻 집이 보였다가 입구에 다다르자
3층의 낡고 오래된 일본식 목조건물이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드러난다.
작은 창문이 여러 개 나있고 창문들은 모두 닫혀진 채로 무거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어쩐지 사람이 살고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런 집이다.
박순경, 굳게 닫혀진 녹슨 쇠창살문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정원이 있고 집 옆쪽으론 낮고 가지 많은 나무들이 우거져있어
그 밑으로 연못이 어슴푸레 보인다.
정원이며 현관입구며 낙엽과 쓰레기들로 집안은 전체적으로 황폐하게 보인다.
박순경, 문을 더욱 세차게 흔들며
박순경 : 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세요?
아무런 응답 없이 정적만 무겁게 흐른다.
어디서 트럭한대가 집앞으로 지나가며 뿌연 먼지를 일으킨다.
먼지가 가라앉을때쯤
박순경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온 길을 되돌아 내려가다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집안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에 집중하는 것 같더니
재빨리 뛰어가 막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려는 남자를 부른다.
박순경 : 여보세요! 저기요!
남자 멈칫하더니 불안하게 좌우를 살피면서 철문으로 걸어오다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더 이상 가까이 오지 않는다.
40대중반의 초췌하고 어두운 표정을 가진 남자다.
박순경 : 하곡 파출소 박순경입니다. 여기 혹시 ........ 아 ..... 여자 분이시던데 ......
혹시 가족 중에 어제 실종신고 하신 분 계십니까?
남 자 : 어제요? ....... 그런 사람 없는데요.
박순경 : 어떤 여자 분이 동생 분을 찾는다고 왔었거든요.
남 자 : 그럴 리가 ........ 아마 뭔가 잘못 된 거겠지요.
박순경 : 아니, 여기에 .....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기도 전에)
남 자 : 죄송합니다. 지금 하던 일이 있어서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박순경 : 잠깐만요. 저기요.
그때 좀 전 까진 닫혀있던 창문하나가 열려져 있는 것이 보인다.
남 자 : .......
박순경 : 잠깐만요. 지금 안에 다른 분이 계십니까? 저기 .......
남자는 박순경의 시선을 받아 뒤를 힐끔 보더니 열린 창문을 바라본다.
남 자 : 아뇨.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만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그럼 .....
박순경 : 아니, 여보세요. 여보세요!
남자가 성큼 성큼 집으로 들어가려하자 박순경이 재빨리 사진을 빼내 들어 보인다.
박순경 : 잠깐 이 사진 좀 확인해주세요. 잠깐만요! 이 사진요!
남자가 멈칫한다.
한동안 망설이다가 문 쪽으로 다시 조심히 걸어온다.
사진을 보려고 미간을 약간 찡그려뜨린다.
박순경 : (남자의 표정을 살피다가) 이분이 가족 되십니까?
남 자 : ..........
박순경 : 자세히 보세요. 가족 분되세요?
남 자 : ....... 그런데....... 그게 어떻게?
박순경 : 어떻게 되시죠?
남 자 : 제 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게 .......
박순경 : 어떤 여자 분이 이분을 찾는다고 왔었거든요.
남 자 : 네? ...... 누가 ...... ?
박순경 : 동생 분을 찾는다고 하면서....... 이름이 뭐더라 .....
(다시 쪽지를 꺼낸다) 배 ...... 수미씨?
남자,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이윽고,
덜컹하고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을 것만 같은 녹슨 쇠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S#8. 거 실 (낮)
넓고 독특한 구조의 거실과 주방,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현관에 바짝 붙어있고
1층은 각방으로 통하는 좁다란 마루복도가 연결되어있다.
유난히 문이 작고 많다는 느낌이 들고
전체적으로 앤틱한 분위기의 목재재질의 일본식 가옥구조로 되어있다.
어딘지 낡고 오래된 음습한 기운이 감돈다.
박순경은 낯선 집안의 분위기로 인해 집안 이곳 저곳을 휘둘러보다
탁자위를 손가락으로 쓰윽하고 문지른다. 손가락 끝에 먼지가 뽀얗게 묻는다.
남자가 주방에서 차를 준비하며 찻잔을 닦는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릴 뿐
적막감이 돈다.
남자가 찻잔을 들고 온다.
박순경 앞에 차를 따라 내민다.
꽃잎 차를 처음 보는 박순경이 차 위에 둥둥 떠있는 마른 장미꽃잎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남 자 : 꽃잎차입니다.
박순경 : 아네, 감사합니다. 전 처음 마셔보는데요.
(집안을 둘러보며) 집이 무척 독특하네요.
남 자 : 원래 일본식 2층집이었는데 전 주인이 확장하면서 개조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박순경 : 아 .....
남 자 : 서울 분이신 가요?
박순경 : 네. 발령 난지 3일 됐습니다. .......... 서울분이시죠?
남 자 : 네.
박순경 : (집안을 둘러보며 슬쩍 떠보는 기미로)
이렇게 큰집인데 ....... 혼자 사시나 보죠?
남 자 : .......... 어제 어떤 여자가 동생을 찾는다고 했었죠.
박순경 : 네. 여기 그 분이 쓰고 간 내용입니다.
남자, 박순경이 건네준 실종신고서를 어두운 표정으로 한참을 내려다보는 것 같더니
갑자기 인상이 일그러지면서 호흡이 커진다.
급기야 남자의 눈이 심하게 충혈된다. 충혈된 두 눈에 엷게 눈물이 고인다.
당황스런 박순경.
남 자 : 죄송합니다.
박순경 : 아니요 .... 그런데 ......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남 자 : ..... 그러니까 그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할지 난감합니다.
(길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더니)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 지금부터
제 가족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를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 서울에 있던 우리 애들이 다시 이 집으로 내려온 게 ..........
남자 진정하려는 듯 입가에 찻잔을 갖다댄다
한참을 머뭇거리며 망설이다가 이윽고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입을 연다.
남 자 : 그러니까 그게........
페이드 아웃 - 십수개월 전.
S#9. 수미 집 앞 (낮)
한결 정돈되고 깨끗한 상태의 일본식 3층 목조건물.
쇠창살문이 열리고 짙은 그레이 중형 승형차 한대가 들어온다.
현관 앞에 멈추고 운전석이 열리며 남자가 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 현관으로 들어선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일봐주는 장씨라는 아저씨 하나가 남자를 맞는다.
집안으로 들어가려던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뒤쪽을 쳐다본 뒤 차 앞으로 다시 걸어간다.
검게 코팅된 뒷좌석 창문을 톡톡 두드린다.
남 자 : 안 내려? ........
고개 짓으로 내리라는 신호를 가볍게 주고는 다시 집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남자.
그리고 차 뒷문.
한동안 꿈쩍을 안 하던 문이 삐걱 열리며 여자 애 두 명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내린다.
자매로 보이는 여자 애들은 차 문을 닫고선 머뭇거리다가 앞마당을 서성인다.
둘은 마치 합의라도 본 것처럼 자연스럽게 저수지 쪽으로 향한다.
언니로 ( 수미 ) 보이는 20대 초반의 여자의 얼굴엔 노골적인 불만스런 표정이 보이고
동생인 듯한 ( 수연 ) 여자 앤 14세에서 17세 사이의 어딘지 병약해 보이는
혹은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두 자매는 정원을 걷기 시작한다.
언니가 빠르게 걸어가면 동생이 종종걸음으로 바싹 따라붙는다.
아직 손질을 안한 정원.
한쪽으로 작은 그네가 보이고 다른 한쪽엔 우거진 낮고 가지 많은 나무숲이 을씨년스럽다.
그 뒤로 억새풀들이 약한 바람에 살랑거린다.
언니가 정원을 가로지르면서 걸을 때
누군가 창문을 통해 커튼 사이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 게 보인다.
무심코 동생이 그쪽으로 고갤 돌리려하자
수 미 : 고개 돌리지마. 그냥 걸어.
언니의 짧고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에
동생은 멈칫하다가 언니 쪽으로 가까이 붙더니 손을 잡는다.
창문 커튼 사이로 그들을 지켜보던 그 누군가는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응시한다.
어느정도 시야에서 벗어났을때쯤
갑자기 작은 저수지로 뛰어가는 언니와 놓칠세라 덩달아 언니를 쫓아 뛰어가는 동생.
S#10. 저수지 (낮)
저수지 선착장위에 앉아 두발을 물에 담가놓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두 자매.
언니는 누워있다 상체를 일으킨 동생의 머릴 손가락으로 쓸어 내린다.
손가락 사이로 윤기 있는 동생의 머리칼이 드러난다.
바람이 불어 동생의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지럽게 하자
동생은 손으로 귀찮다는 듯 크게 쓸어 넘긴다.
그걸 본 언니는 장난으로 목뒤에서 목덜미와 귀 쪽을 향해 입으로 바람을 부드럽게 분다.
동생은 그것도 모르고 자꾸 목뒤며 귀 쪽에 손을 갖다댄다.
그러다 언니가 또 한번 불려고 입을 오므리고 있는데 동생한테 그 모습이 들킨다.
들키자 까르르 웃어버리는 언니.
수 연 : 간지러워.
한동안 깔깔거리던 수미는 웃음을 그치고 다시 두 팔을 크게 펼쳐 눕는다.
새파란 하늘과 그림 같은 구름을 보며 감상에 빠져든다.
수 미 : 우와, 정말 이쁘다.
수 연 : ...........
말대꾸를 안 하자 옆으로 고갤 돌려 동생을 쳐다보면
동생은 연못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바람이 불어와 작은 물 파장을 일으키는 작은 저수지.
이때, 언니를 부르는 남자의 소리가 들린다.
일어나 옷을 툴툴 터는 두 자매.
S#11. 현 관 (낮)
입구를 들어서면 내부의 공간이면서 복도 같은 약간의 길목이 나있고
길목 끝에 내부로 연결되는 현관이 나온다.
그다지 좁지 않은 복도 같은 길목을 걸어 들어가 현관문을 열면,
S#12. 거 실 (낮)
거실 중앙에 30대 초중반의 여자가 꽤 차려입은 옷을 입고 그녀들을 맞이하려는 듯 서있다.
두 자매, 그녀를 보고는 멈칫한다.
새엄마 : 어서 와. 이게 얼마 만이니? 수연인 그 동안 많이 변했네. 더 이뻐졌구나.
그런데 너희들 너무 섭섭하다 얘. 난 하루종일 집안 청소며 음식도 만들면서
너희들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쩜, 너희들은 오자마자
이럴수가 있니? 뭐했어? 놀다온거야? 선착장에 갔던거야? 그럴 거면 들어와서
옷이라도 갈아입을 것이지...... 어쨌든 너희들 내려온 거 정말 축하하고 환영해.
너무나 건조하고 느낌 없는 말투로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마치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어 내려가듯 하는 새엄마.
두 자매, 아무런 반응 없이 그녀를 쳐다본다.
사이에 어정쩡한 분위기가 흐르고
여자는 동생의 발 밑을 쳐다보다가 동생 앞으로 불쑥 다가간다.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는 동생.
새엄마 : 어머, 왜 놀라니? (살짝 웃더니 동생을 아래위로 훑어본다) 너 건강해졌구나.
네가 건강해져서 난 너무 기뻐. 수미, 너두 많이 나아진 거지?
(잠시 수연이를 무표정하게 보다가) 너 ........ 점점 엄마 닮아가는구나.
두 자매, 대꾸 없이 시선을 피하는 동시에 그곳을 빠져나가려 하자 여자는 놓치지 않고
새엄마 : 그래 피곤하지? 어서들 올라가. 일단 푹 쉬었다가 저녁 먹으러 내려들 와.
너희들 좋아하는 특별 요리를 준비했거든.
분명히 두 자매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2층으로 올라가며 외면하는 분위기인데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엄마는 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다.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광문을 열어 쓰레받이와 빗자루를 꺼낸다.
두 자매가 떠난 자리,
조금 전 동생이 서있던 자리에 연못가에 앉아 있었을 때 옷에 묻어 떨어진 잡초를
빗자루와 쓰레받이로 아주 정성스럽게 쓸어 담는다.
쓰레기를 담고는 그녀들이 들어온 통로를 따라
떨어진 잡초나 흙가루가 더 있나 유심히 살핀다.
더 이상 떨어진 것이 없는걸 확인한 다음 1층 베란다로 통하는 거실 문을 열고
새장 안의 새들에게 모이를 주며 즐거워하는 새엄마.
S#13. 수 미 방 (낮)
수미가 방에 들어선다.
한낮이지만 두껍게 드리워진 커튼 때문인지 방안은 어둡다.
커튼을 열고 양옆으로 묶고는 낯선 표정으로 자기 방을 훑어보다가 흠칫 놀랜다.
방안에 거의 완벽하게 자신의 방이 꾸며져 있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하다.
자신의 물건들이 고스란히 미리 옮겨져 와있는 것이다.
그것도 병적으로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다.
작은 액자며 화장대위 소소한 화장품이며 침대 위 커다란 인형까지.
수미,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옷장으로 다가간다.
천천히 옷장손잡이를 잡아본다.
수 미 : 제발 ......
옷장 문을 확 열어 보면 촘촘히 걸려있는 수많은 똑같은 색상의 같은 옷가지들.
선반 위며 서랍까지도 그녀의 옷가지며 장식구들이 빽빽이 차있다.
어금니를 지그시 깨문다.
책상엔 최근까지도 그림을 맞춰보았던 것 같은 완성되지 않은 퍼즐그림이 놓여져 있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동생 방으로 후다닥 뛰어나간다.
S#14. 수 연 방 (낮)
동생방문을 열자 동생이 우두커니 서있다.
방안을 둘러보자 자기 방보다 훨씬 빽빽이 들어선 동생의 물건들.
거의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한 것 같지 않은
아주 잘 정돈된 물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동생을 쳐다보자 동생이 고르지 못한 숨을 내쉬고 있다.
수 미 : 왜 그래?
동생, 자기 앞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언니가 시선을 받아 고갤 돌아보면
작고 낡은 나무 옷장이 보인다.
수 연 : ........ 저거.
수미는 재빨리 서랍장에서 푸른 천을 꺼내 옷장을 덮어버린다.
수 미 : (옆에 있는 동생을 부드럽게 안는다) 괜찮아. 괜찮아.
언니 품에 깊숙이 안겨보지만 커다란 눈은 불안하게 옷장을 보고 있다.
수 미 : 일어나. 내 방으로 가자.
S#15. 2층 복도 → 안 방 → 욕실 앞 (낮)
2층으로 통하는 중간복도에 작은 붙박이 서랍장이 하나있고 그 문을 열었다가 닫는 새엄마.
여자가 계단을 내려와 안방으로 들어가서 장롱을 열고
남편의 갈아입을 내의를 정성 들여 곱게 포개고는 조심스럽게 들어 욕실로 향한다.
집안의 좁은 통로를 쭉 따라가다가 욕실 앞에 다다르면
욕실 문 앞에 곱게 포개진 또 다른 남편의 내의가 보인다.
여자 문득 멈춰 선다.
한참을 뚫어지게 문 앞에 놓여진 내의와 자신이 들고있는 내의를 번갈아 보더니
갑자기 아줌마를 부른다.
새엄마 :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후다닥 달려오고
경황없이 달려온 아줌마의 행색을 보곤
새엄마 : 죄송해요. 저 .... 이거 아줌마가 갖다 논거예요?
아줌마 : (아줌마, 여자의 표정을 하나 하나 뜯어보다 그녀가 들고있는 내의를 본다)
네? 이게 뭐래요?..... 전.....
아, .... 선생님 내의는 사모님이 보관 하시잖아요. 제가 갖다 논 게 아닌데요.
새엄마 : (잠시 의아해하더니) 아, 알았어요. 제가 ..... 깜빡 했나봐요.
아줌마, 머쓱해 하며 물러나면 천천히 고갤 들어 2층을 올려다본다.
S#16. 수 미 방 (낮)
수미 자기 책상앞에서 무언가 만지고 있고 수연인 피곤한 듯 침대에 옆으로 누워있다.
옆으로 누운채 어딘가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수 연 : 그때, 왜 안왔어?
수연, 정면을 향해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하듯 느닷없이 입을 연다.
수 연 : ........... 몰랐었던 거야?
책상앞에서 무언가를 끄적거리던 수미, 동작을 멈추고 수연쪽으로 돌아본다.
수 미 : .......? 방금 나한테 뭐라고 그랬니?
수연, 대답없이 눈을 감는다.
S#17. 정 원 (저녁)
장씨가 정원한구석에서 갈고리로 낙엽이며 지저분한 것들을 긁어모으는 것이 멀리 보인다.
어슴푸레한 정원에 있는 외등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넓은 정원에 삭풍이 한번 분다.
오른쪽 담 앞에 그네가 한번 가볍게 출렁인다.
억새풀이 요동을 치고,
S#18. 식 당 (밤)
식당으로 쓰이는 공간은 거실과 반쯤 이어져있고 반쯤 분리되어 있으며
주방과 응접실 겸 쓰이는 곳으로 조금 넓은 듯한 독특한 형태를 가진 공간이다.
직사각형의 식탁에 아빠와 새엄마, 두 자매가 아주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다.
그릇 달가닥거리는 소리, 접시에 젓가락이 약하게 부딪치는 소리만 들릴 뿐
기이할 정도로 조용하다.
남자는 오로지 음식에만 집중하는 것 같고
두 자매는 먹는 둥 마는 둥 무표정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여자가 세 식구의 안색을 살피는 듯하다가 정적을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연다.
새엄마 : 아, 정말 이번 주말 저녁에 선규랑 선규처 불러서 같이 저녁 먹기로 했어요.
무 현 : (여자에게 눈 한번 주지 않고) ...... 그래?
새엄마 : 모처럼 애들도 왔는데 멀리 있는 애들도 아니고 그 동안 연락도 못했구
....그래서요.
역시 남편은 대꾸 없이 꾸역꾸역 식사를 한다.
얼핏 눈이 마주치면 느낌 없이 살짝 미소를 보내고는 또다시 밥이며 반찬을 집는다.
두 자매는 그런 분위기가 너무 끔찍하다.
빠른 속도로 식사를 마친 남편은
컵에 물을 따르고는 쭈욱 한번에 들이키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무 현 : 우아 - 잘먹었다. (입가심을 하고는) 정리할게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
(손목시계를 보더니) 피곤할 텐데 이거 내일 치우지.
새엄마 : 당신 ..... (무언가 말하려다)
남편이 쓰윽 일어나 컵에 물을 따르고 여자 앞에 내려놓고는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새엄마 : (물 컵을 내려다보다가 고갤 천천히 들어 수미를 보며 차분하게 묻는다)
네가 아빠 내의 갖다 놓은 거니?
수미, 대답하지 않는다.
새엄마 : 그런 거 내가 해도 돼. 내 일인 거 같아.
서재 쪽에서 나온 남편 다시 화면 안으로 들어와 여자 앞에 두개의 알약을 내려놓는다.
수 미 : (아빠가 돌아서 식탁에서 멀어지는걸 느끼고 작지만 빠르게)
난 저녁 같이 안 할 거야.
새엄마 : 응?
수 미 : 그 사람이랑 저녁 같이 안 할 꺼라구.
새엄마 : 그 사람이 아니고 너희 삼촌이야.
수 미 : ..........
수미, 수저를 내려놓고는 일어서 2층으로 올라간다.
수연, 혼자 남아 새엄마의 눈치를 본다.
새엄마 : 넌?
수 연 : ......
새엄마 : 넌 왜 안 따라가? 언니 하는 대로 따라야 하잖아.
수연이도 수저를 내려놓고 슬며시 일어나 뒤따라 올라간다.
혼자 남은 여자, 깊은 한숨을 내쉬다가 진정하려는 듯 알약을 들어 삼킨다.
잠시, 집안을 둘러다본다.
별다른 이상이 있는 건 아니지만 거실이며 반쯤 열린 지하창고 문이며 어쩐지 으스스하다.
그러다가 주방 쪽에서 아주 미세하게 벽을 긁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새엄마, 이상한 기분이 들어 주방으로 조심히 들어간다.
어두운 주방 어디선가 소리는 극도로 작지만 계속해서 들린다.
불을 탁 켠다.
주방위 형광등들이 틱틱 소리를 내며 어지럽게 들어오고 소리가 없어진다.
신경과민이군 하는 표정으로 다시 불을 끄고 거실로 나와 지하 광문을 닫으러 간다.
열린 문을 통해 어두운 지하 광을 바라보다 광문을 닫는다.
안방으로 들어가기 전, 거실 베란다 옆 새장에 가서 새들을 보며
새장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본다.
새엄마 : (환하게 웃으며 새소리를 작게 낸다) 잘 자라. 안녕.
빛이 들어오지 않게 새장 가리개를 씌여준다.
S#19. 서 재 (밤)
거실 쪽에서 여자가 서성거리다 방으로 들어가는 발소리가 들린다.
남편 무현은 8미리 비디오 테이프를 손에 들고 굳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
S#20. 안 방 (밤)
여자가 잠옷만 걸친 채 화장대 앞에서 얼굴에 바른 크림을 지우고 있다가
문 쪽으로 발소리가 가까워져 오자 얼른 침대로 들어간다.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손엔 캠코더가 들려져있다.
무현은 캠코더를 진열대에 집어넣고는 할 일 없이 방안을 왔다갔다한다.
새엄마 : 주방에 쥐들이 있나봐. 뭘 갉아 대네.
(대꾸 없자 남편을 쳐다보더니) 뭐해요? 뭐 찾아요?
무 현 : 아니, 그냥.
새엄마 : 안 자요?
무 현 : 어 먼저 자.
새엄마 : 뭐야. 또 나 혼자 자라구?
무 현 : ....... 아니 그런 게 아니구.
새엄마 : 그런 게 아니면 빨랑 자.
무 현 : 글쎄, 그게 ...... 정리할게 좀 남았어.
새엄마 : 어어? 정말 이상하네. (벌떡 일어나며) 나 그러면 안 잔다.
안자고 밤새 당신만 쫓아다닌다.
남편, 할 수 없이 침대에 눕는다.
남편이 엉거주춤 침대 안으로 들어오자
여자는 남편의 팔을 잡아 자기 어깨 앞으로 잡아당긴다.
한동안 편한 자세를 만들려고 몸을 뒤척이다 이내 만족스런 표정을 짓는다.
잠시 정적.
새엄마 : 여보.
무 현 : 어?
새엄마 : 아직도 전부인, 잊지 못 하는 거예요?
무 현 : 아냐. ....... 아니니까 .......편히 자.
사이 ....
새엄마 : 내가 잘 못하나봐.
무 현 : 왜 그런 말을 해?
사이 .....
새엄마 : 여보.
무 현 : (대답대신 가벼운 호흡으로 응답한다)
새엄마 : 큰앤 ......... 수미는 어떤 애예요?
무 현 : ........
새엄마 : 응? (말이 없자) 알았어요. 말 안해도 알아요.
무 현 : 뭘?
새엄마 : (대답대신 긴 한숨을 내쉬며) 나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무 현 : 알아...........
새엄마 : ........
무 현 : .... 수미 ..... 좋은 애야.
사이 ..... 여자가 금새 잠이 든 것 같다.
쌔근쌔근 잠이 든 모습이 마치 아이처럼 보인다.
남자 여자를 내려다보다 아주 조심히 팔을 꺼내려고 한다.
여자 아주 미세한 인기척에 반응하며 남자의 팔을 자기 가슴으로 끌어다 웅크린다.
남편, 멈춘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다시 조심히 팔을 꺼내 극도의 작은 움직임으로 진열대로 걸어간다.
진열대의 캠코더와 여자의 약병과 작은 집기들을 만지는 척 하며 여자의 상태를 살핀다.
여자가 몸을 뒤척인다.
무현은 잠시 숨을 죽였다가 다시 방을 빠져 나온다.
S#21. 서 재 (밤)
남편, 서재로 가더니 소파에 매트를 깔고 누워 시트로 몸을 덮는다.
S#22. 안 방 (밤)
침대에서 곤히 자던 여자, 불현듯 눈을 뜬다.
옆을 본다. 남편이 없다.
스르륵 일어나 마치 몽유병에 걸린 여자처럼 방문을 열고 나간다.
S#23. 수 연 방 (밤)
2층 복도를 쓱쓱 거리며 마루바닥을 쓰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수연 방문 앞에서 멈춘다.
극도로 천천히 문이 열린다. 삐이걱 거리는 소리가 음산하게 기분 나쁘다.
수연은 질끈 눈을 감는다.
누군가 옆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머리를 덮은 시트를 누군가 스르륵 내린다.
시트를 내리자 수연의 얼굴이 드러난다. 수연은 계속 눈을 감고 자는척한다.
누군가가 자기를 한참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눈을 뜬 채 옆으로 고갤 돌린다.
아무도 없다.
불을 켠다.
역시 아무도 없다.
수연이 침대에서 뛰어 내려와 베개 하나를 들고 언니 방으로 뛰어간다.
S#24. 수 미 방 (밤)
수미, 잠결에 눈을 떠보니 수연이가 침대 안으로 파고 드는게 느껴진다.
잠에 겨운 목소리로
수 미 : 왜 그래? .......... 꿈꿨어?
수 연 : (고갯짓)
수 미 : 옷장 때문에 그래?
수 연 : (고갯짓)
수 미 : 그럼 왜 그래?
수 연 : ........ 누가 내방에 있다 나갔어.
수 미 : ?
S#25. 2층 복도 → 거 실 (밤)
복도로 나온 수미는 동생 방을 살며시 열었다가 방안을 훑어보곤 다시 조용히 닫는다.
조심히 계단을 내려가 거실 쪽으로 향한다.
거실 쪽에서 빛이 흘러나온다.
거실에는 정규 방송이 끝난 상태의 텔레비전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혼자 켜져 있다.
거실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가 서재 문을 살짝 열어보면 아빠가 소파에서 잠들어 있다.
아빠의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흘러내린 시트를 덮어준다.
아빠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 넘겨준다.
소 리 : 아빠 주무시잖아.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면 새엄마가 거실에 꼿꼿이 서있다.
수 미 : ......... 알아.
새엄마 : 근데 왜 깨우려고 그래?
수 미 : 누가 깨워?
새엄마 : 지금 네가 깨우려고 하고 있잖아. 아빠한테 뭐 할 말 있어?
수 미 : (어이없다는 표정) ......
새엄마 : 내 얘긴 아빠 주무시니까 깨우지 말라는 얘기야. 내말 못 알아듣겠니?
수 미 : 나, 물 마시러 내려 온 거야.
새엄마 : 아빠 주무시니까 조용히 얘기해. .........
상대할 가치를 못 느낀다는 듯 외면해버리는 수미.
뒤에서 새엄마의 또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무시한다.
S#26. 주 방 (밤)
속이 타는지 주방에서 물을 벌컥 벌컥 들이마시는 수미.
마시다가 왜 텔레비전을 안 끄고 저러고 있지? 하는 생각을 한다.
수미는 다시 거실 쪽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S#27. 거 실 (밤)
텔레비전이 지지직 소릴 내며 틀어져있고
그 앞 소파에 새엄마가 정규 방송을 시청하듯 넋 나간 표정으로 보고 있다.
수미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춘다.
새엄마가 아주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수미를 쳐다본다.
하지만 꼭 수미를 의식하고 쳐다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녀의 표정이 상당히 기이하다.
수미와 눈이 마주치지만 새엄마는 아무런 느낌이나 감정 없이
오히려 살짝 미소짓는 얼굴을 해 보이더니 다시 텔레비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의 수미.
S#28. 수 미 방 (밤)
자기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끔뻑이던 눈을 크게 뜨는 수연.
그 목소리는 아주 낮고 어두워 음침하게까지 들린다.
누군가 보자기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벽장 앞에 서있다.
수연, 그걸 가만히 쳐다보다가 손으로 잡아당기면,
수미가 쓸려 내려지는 보자기 때문에 머리가 헝클어진 채 뚱한 표정으로 수연을 본다.
수 미 : 무섭지?
수 연 : 바보 같아.
수 미 : .......... 그래?
수 연 : 응.
수미, 침대 안으로 들어간다.
수 연 : .......... 내 방에 가봤어?
수 미 : 어.
수 연 : 뭐 이상한 거 없었어?
수 미 : 아니 없었어. ............ 그 여자 빼곤.
수 연 : 누구? ..... 새엄마?
수 미 : 응.
수 연 : 왜? ............. 그 여자가 들어왔었던 거야?
수 미 : 그런 것 같아.
수 연 : (곰곰이 생각해본다) ........ 내방에 왜 들어온 거지?
수 미 : (극히 단조롭고 건조하게) 미친 여자야.
수 연 : ..........
수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든다.
수미, 수연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수 미 : 이리와. 그 여자 무서워?........ 내가 있으니까 안 무섭지? 그지?
수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고갤 들어 수연을 쳐다보던 수미, 더욱 깊숙이 동생을 끌어안는데.
수연을 감싸안은 손바닥의 느낌이 이상하다.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수 미 : 수연아, 나 잠깐 봐봐. 너 왜 이렇게 땀을 흘려?
수 연 : 몰라. 그냥 ...... 몸이 이상해.
수 미 : 열나는 거야?
수 연 : 그냥 몸이 ....... 이상해.
수 미 : 일어나서 약먹고 자.
수 연 : 싫어. 약 안 먹어.
수 미 : ........ 아마, 오늘 피곤해서 그럴 꺼야. 나두 좀 그런거 같거든.
푹 자면 괜찮을 꺼야. 이리와.
수연, 고갤 끄덕이며 커다란 눈망울만 불안하게 끔벅거린다.
수미, 수연을 더욱 바짝 끌어당긴다.
몸이 밀착되어지고 서로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미세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S#29. 서재 → 거실 → 주방 → 안방 (아침)
열린 창문 사이로 커튼이 살랑이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이어진다.
한기 때문에 덮은 시트를 어깨위로 올리는 무현.
그러다 아침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부스스 일어난다.
집안이 텅 비어 있다.
침대에 새엄마는 없고 흐트러진 침대시트만 보인다.
다시 거실로 나와 창문을 통해 정원 밖을 내다본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2층을 올려다본다.
S#30. 수 미 방 (아침)
커튼이 두껍게 쳐진 수미의 방.
구석의 틈새로 엷은 빛이 들어오지만 전체적으론 어둡다.
수미, 깊은 잠에 빠져있다.
잠결에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너무 눈꺼풀이 무거워 눈을 뜰 수가 없다. 누군가 침대 안으로 파고든다.
그 누군가는 처음엔 수미가 자고 있는지 살피는 것처럼 조심스레 움직이더니
점점 대담하게 수미의 신체를 더듬으며 바짝 몸을 갖다댄다.
그러다 갑자기 수미위로 올라타 수미를 누르고 있다. 수미의 숨이 막혀와 갑갑하다.
소 리 : 눈뜨지마.
수 미 : ............ 수연아, 저리가 .......... 답답해.
그때, 불현듯 수연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있는 힘을 다해 눈을 뜬다. 동생은 옆에서 쌔근거리며 자고 있다.
수미, 등뒤에서 이상한 한기가 느껴지지만 무서워 차마 뒤를 돌아볼 수가 없다.
수미는 속으로 제발 ..... 제발 ..... 이란 말을 뇌까리며 천천히 고갤 돌려본다.
돌아보면,
옷장 앞에 어떤 여자가 뒤돌아 웅크린 채 가만히 앉아있다.
뒤돌아 앉아있는 상태로 방바닥에서 무언가를 손으로 주워서
옷장 서랍에다 넣는 동작을 기괴하게 반복한다.
그러나 손에 쥔 것도 넣는 것도 없다.
순간, 수미의 머리끝이 쭈삣 선다.
수 미 : 엄마?
- 어린 시절의 수미의 모습.
어슴푸레한 해질녘의 시골숲길을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엄마를 부르짖으며 뛰어다닌다.
뛰다가 길바닥에 떨어진 엄마의 물건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훌쩍이며 천천히 다가가 그것을 손으로 집는다.
물컹하는 느낌이 들어 손을 올려다본다.
선홍빛의 끈적한 액체가 손에 묻는다.
- 다시 현실 : 여자가 갑자기 동작을 멈춘다.
여 자 : 내가 ...... 눈뜨지 말랬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공포가 온몸을 덮쳐온다.
여자가 불현듯, 한쪽어깨를 바짝 쳐 올린 채
기이한 형태로 마치 누군가가 잡아 당겨지는 듯한 형태로 일어선다.
그 상태로 천천히 수미 쪽으로 돌아선다.
수미는 용기를 내서 그 형태를 따라 올라가 얼굴을 올려다본다.
머리를 길게 내려뜨린 창백한 인상의 여자가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턱하고 숨이 멎는 것 같다.
수 미 : 엄마!
수미, 다시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반대로 천천히 내려다보면
그 여자의 다리 사이로 눈 코 입이 불분명하게 생긴 여자아이가 거꾸로 매달려있다.
갑자기 쿵쿵쿵 소리가 나고 검붉은 물체가 바닥에 쿵하고 떨어진다.
S#31. 수 미 방 (아침)
헉! 하는 비명을 지르며 수미가 벌떡 일어난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쿵쿵쿵 문을 두드린다.
잠에서 깨어나는 수미.
무현이 쿵쿵쿵 문을 두드리다 인기척이 없자 문을 열어본다.
틈새로 보이는 실내 커튼이 쳐져 어두컴컴하다.
인기척에 누군가 부스럭거리지만 어두워서 분간이 안 간다.
실내를 둘러보는 무현.
문을 통해 연한 빛이 들어오자 수미가 잠을 깬다.
무 현 : ....... 일어났니?
수 미 : (온몸에 땀이 배인걸 느끼며) 에.....
무 현 : 들어가도 돼?
수 미 : 아니.
무 현 : 내려와. 밥 먹자.
수 미 : 어.....
무현, 문을 닫으면 수미는 이마에 배인 식은땀을 닦아 내며 겨우 상체를 일으킨다.
온몸에 뻑적지근한 통증이 온다.
옆에선 아직도 자고있는 수연을 내려다보며 어깨를 조심히 흔든다.
수 미 : 일어나. 내려가자.
수 연 : 으응 ..... 싫어. 나 밥 안 먹어.
돌아눕는 수연. 수미는 그런 수연의 상체를 끌어당겨 깨우려고 한다.
수연은 투정을 부리는 말투와 표정으로 다시 돌아눕는다.
수미는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시트를 제치고 두 다리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수연이 쪽으로 돌더니 시트를 확 제친다.
수연의 다리사이, 하얀 매트 위에 붉은 한 점의 혈을 발견한다.
수연의 다리를 본다.
조심히 수연의 잠옷자락을 걷어올린다.
걷어올리면서 아직 미성숙한 수연의 다리가 드러나고 팬티에 스민 붉은 자국을 발견한다.
끄응하는 잠에 취한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이는 수연.
침대에서 내려와 가방과 옷장 서랍 등 여기저기를 뒤지며 무언가를 찾지만 나오지 않는다.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 수미.
S#32. 안 방 (아침)
문을 조심히 열자 새엄마는 아직 침대에서 자고 있다.
숨을 죽이며 새엄마의 화장대 서랍을 열어본다.
거기도 찾는 물건이 없다.
안방 화장실에 들어간다.
욕실 진열장을 열자 거기에 생리대가 수북히 쌓여있다.
몇 개를 집어 다시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새엄마가 침대에 걸터앉아 수미를 쳐다보고 있다.
기겁하는 수미.
새엄마 : 뭐하니? 거기서. (수미 손에 쥐어진 생리대를 보고) 생리니?
수 미 : .... 내 ..... 내가 아니고 수연이.
새엄마 : 수연이가? 어머머....... 웃긴다.
수 미 : ?
새엄마 : 어쩜 나랑 날짜가 똑같을 수 있지? 근데 그 애 첨 아냐?
내가 올라갈까? 놀란 거 아냐?
수 미 : 아니..... 내가 할 수 있어.
긴말하지 않고 재빨리 방을 빠져나간다.
S#33. 2층 계단 (아침)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다가 수미, 이상한 기분이 들어 멈칫한다.
천천히 고개를 내려다본다.
S#34. 2층 화장실 (아침)
잠옷 치마를 걷어올리는 수미.
낭패스런 한숨을 쉰다.
S#35. 수 연 방 (아침)
방문을 열자 침대 위에 양반자세로 앉아있던 수연, 무덤덤하게 언니를 쳐다본다.
매트 위에 작은 붉은 혈점이 찍혀있고 손가락 끝에 묻은 피를 내려다보는 수연.
수 연 : 언니.....
수 미 : 괜찮아. 내려와.
수연의 손을 잡아 침대에서 내려오게 한다.
매트와 시트를 재빨리 걷는다.
옆에서 뚱한 표정으로 있던 수연이 걸리적거리니까 한쪽 벽으로 비켜난다.
문을 살짝 열어 주의를 살핀다.
손짓으로 수연을 오라고 한다.
S#36. 2층 화 장 실 (아침)
욕탕에 시트와 옷가지를 넣고 발로 꾹꾹 누르고 있는 수미.
수 미 : 멀었어?
수 연 : 잠깐만.
샤워커텐 사이로 낑낑거리며 생리대를 착용하는 수연의 실루엣이 보인다.
챠악- 하는 소리와 함께 샤워커텐이 제쳐지면 수연이 뻘줌한 표정으로 나온다.
수 미 : (그런 수연이를 잠시 쳐다보다가) ...... 축하해.
수 연 : 뭘?
수 미 : 네가 여자라는 걸.
수 연 : 찝찝하구 구질구질해.
수 미 : 받아들여. 이슬 먹고살래?
수 연 : ....... 이젠 매달 이래야 되는 거야?
수 미 : 일종의 형벌이지 뭐. 근데 ..... 근데 알아?..... 그 여자도 생리하는 거.
수 연 : 정말?...... 그럼 우리 셋이 똑같이 생리하는 거야?
수 미 : (끄덕 끄덕) 불행하게도.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말야.......
근데 첨인데 양이 많더라.
수 연 : 으 ...... 비릿해.
수미, 씨익 웃으면 수연도 따라 어설프게 웃는다.
수연이 어딘지 어색해하며 서있다. 그런 수연이의 몸을 쳐다보다가.
수 미 : 몸 .... 이쁘다. ...... 넌 어쩜 아직도 아기 같니?
수 연 : 내 몸이 뭐가 이뻐? 언니 몸이 이쁘지.
수 미 : 가슴 나오고 엉덩이 커지는 거 싫어. 여자 같아서 .... 네 몸이 더 이뻐. ......
수 연 : 치-
수연, 아까 손에 묻어 말라버린 핏자국 냄새 맡으려고 코에 갖다대고 킁킁거린다.
수미가 그런 수연의 손을 찰싹 때린다.
수 미 : 손씻어.
수돗물이 콰아 소리를 내며 힘차게 쏟아진다.
S#37. 2층 베란다 (낮)
수연의 잠옷과 시트가 빨래 줄에 걸려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흰색의 잠옷과 시트가 눈부시게 보인다.
S#38. 1층 베란다 (낮)
거실 오른쪽 유리문을 통해 정원 쪽으로 난 1층 목조 베란다.
천장과 기둥사이에 새장이 하나있고 새장 안에 두 마리 잉꼬 새들이 있다.
그 밑으로 흔들의자에 수미와 수연이 앉아있다.
오후의 따뜻한 햇볕이 나른한 기분을 들게 한다.
수연이 새장을 올려다본다.
수 미 : 죽여버릴까?
피식하고 웃는 수연.
그때, 찰칵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면
무현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두 자매를 찍고 있다.
지이익하고 현상되어 나온 사진을 흔들어 보이는 무현.
무 현 : 괜찮아?
수 미 : 뭐가? .....
무 현 : 얼굴이 안 좋은데? 어디 아퍼?
수 미 : 아니. 괜찮아.
무 현 : 아닌 것 같은데? 말해봐. 어디 아픈 거야?
수 미 : 글쎄 아니라니까 ........ 수연이 방 옷장이나 좀 치워줘.
무 현 : 옷장?
수 미 : 응.
무 현 : 그 방에 옷장이 있었나?
수 미 : 관심도 없지?
무 현 : (흔들던 사진을 올려다본다) 잘나왔다. 볼래?
수 미 :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아빨 외면한다) 아니. 나중에 .
무 현 : (뻘줌한 표정이 되어) 서재에 갖다 놀게.
수미, 아빠가 거실로 들어가는 걸 뒤돌아본다.
수 미 : 여기 있을 꺼니?
수 연 : 어디 가는데?
수 미 : 그냥 산책.
수 연 : 난 여기서 그냥 쉴래.
수 미 : 많이 아파?
수 연 : 언닌, 안 아파?
수 미 : (대답대신 얼굴을 찡그려뜨린다)
S#39. 숲 길 (낮)
가볍게 허밍을 하며 - 얼핏, 새엄마가 새 모이를 줄 때 흥얼거리는 멜로디와 흡사한 -
이름 모를 들꽃들을 수북히 따면서 어디론가 걷고 있는 수미.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빛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진다.
이윽고 도착한곳은 폐축사 또는 폐창고.
S#40. 폐 창 고 (낮)
마치 홍수에 떠밀려온 가재도구들이 아무렇게나 방치 되어버린 것처럼 놓여져 있는 내부.
농기구와 크고 작은 공구들, 그리고 한쪽 선반 위엔 보라색 작은 병들이 놓여져 있다.
수미가 먼지가 잔뜩 묻은 가재도구들을 한쪽으로 치우자 작은 나무상자하나가 나오고
상자 뚜껑을 열면 어렸을 때 수미의 소지품들로 보이는 사진이며 노트며 장난감들이 나오고
엄마의 유품들도 하나씩 나온다.
그것들을 하나 하나 꺼내 보이는 수미.
어렸을 때 사진들. 가족 사진들.
수미는 가족사진 특히 자기와 수연이 함께 찍은 사진을
빙그레 웃음기 어린 얼굴로 보고있다.
그런 다음 일기며 낙서장들.
태엽을 감으면 발레리나가 돌아가며 음악이 나오는 작은 뮤직박스를 들여다본다.
뮤직박스를 꺼내 태엽을 감는다.
발레리나가 돌아가며 음악이 흐르고 폐창고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선반 위의 보라색 병을 꺼낸다.
수미는 보라색 물병을 손에 든 채 내려다본다.
폐창고 내부 어디선가에서 푸득푸득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쥐들이 돌아다닌다.
수 연 : 뭐해?
수 미 : (깜짝 놀라며) 넌 여기서 뭐해?
수 연 : 언니 쫓아왔지. 손에 든 거 그거 뭐야?
수 미 : ......... 농약, 쥐약 ......
수 연 : .......... (말이 없다가) 그거야?......... 그게 엄마 물건들이야?
수미, 수연을 올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연신 돌아가던 발레리나는 서서히 멈추고 음악도 서서히 느려진다.
S#41. 2층 복도 ( 오 후 )
장씨 아저씨가 낑낑거리며 수연이 방에서 빼온 장롱을 끈으로 내리고있다.
거실로 향하고 ........
S#42. 숲 길 ( 초저녁 )
수연이 수미의 손을 잡고 숲길을 내려온다.
한손에 폐창고에서 갖고 나온 엄마의 유품들이 들어있는 가방이 들려져있다.
내려오다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걸음을 멈춘다.
수 미 : 무슨 소리 못들었어?
수 연 : 아니? ..... 왜?
주위를 둘러보면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며 웅웅 소리를 낸다.
웬지 스산한 기분이 들지만 다시 걸음을 옮기는 수미와 수연.
수연, 눈을 껌뻑이며 겁먹은 표정으로 연신 뒤를 돌아다본다.
S#43. 서 재 ( 저녁 )
무현, 캠코더를 만지작거리며 누군가와 통화중이다.
무 현 : 응, 지금 밖에 있어. 아직.... 아직 내려오긴 좀 그럴 것 같아.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글쎄 ..... 지금 상태는 그렇게 좋은 것 같진 않거든.
응 ..... 내려와서 부딪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냐. 응 .... 그래.
알아 알아. (주의를 의식하며) 음.... 나중에 다시 통화하지. 나가봐야 될것 같아.
그래.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아참, 오늘 선규랑 선규처 오기로 했어.
괜찮을 거야.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끊어. 잘 ........
수화기를 내려놓은 무현, 만지작거리던 캠코더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책상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팔짱을 낀다.
피곤이 몰려오는지 얼굴을 비벼댄다.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다가 그냥 재떨이에 구겨버리고는 책상 위에 있는 껌을 씹는다.
그때 문이 열리며 장씨가 장롱을 옆에 두고 헉헉거리고 있다.
장 씨 : 이거 어디 놔둘까요?
무 현 : 수고하셨습니다. 이리로 옮겨주세요.
서재 한쪽 켠에 장롱을 갖다 놓는다.
새엄마 : 어머, 이걸 왜 내려놓은 거예요?
언제 들어왔는지 새엄마가 수연방의 옷장이 내려온 걸 보고 참견한다.
무 현 : 잘 알잖아. (무현, 말이 길어지면 피곤해질 것 같다)
새엄마 : 정말 유별나긴 ........
무 현 : 그건 그렇고......... 선규 ..... 다음에 부르면 어떨까?
새엄마 : (금새 표정이 바뀌며) 무슨 말이에요? 안돼요. 걔도 바쁜 앤데.
겨우 쉬는 날 잡아 약속 한 건데 ...... 무슨 일 있었다고? .... 안돼요.
무 현 : 정말 괜찮겠어? 피곤해 보이는데 ......
새엄마 : 왜? 난 괜찮아요. 내가 어린애예요?
가만, 지금 몇 시지? 어머, 아줌마 저녁 준비는 다 된 거야?
무 현 : 그 가방은 뭐야?
새엄마 : (나가다 말고 손에 들린 가방을 내려보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듯) 큰애 방에
못 보던 가방이 있길래 뭔가해서 가지구 내려왔어요.
무 현 : 왜 자꾸 남의 물건을 만지고그래?
새엄마 : 남이라뇨? 당신까지 ..... 그렇게 말씀하시는거예요?
무 현 : 수미가 화를 내니까 그렇지.
새엄마 : 알았어요.
무 현 : 놔둬. 내가 올려놀게.
여자, 뾰루퉁해진 표정으로 가방을 서재앞에다 툭하고 내려놓는다.
무 현 : 그리구 ......
새엄마 : ?
무 현 :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
새엄마 : 뭐요?
무 현 : 옷장 말야.
새엄마 : 옷장 뭐요?
무 현 : 옷장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어? .........
그 옷장, 애들 방에 올려놓지 말라구. ...... 전에 말했지?
새엄마, 잠시 문 앞에 멈춰 서서 남편을 빤히 쳐다본다.
새엄마 : ........ 그랬어요?
S#44. 시골길 국도 (밤)
좁고 불빛 하나 없는 시골길을 차 한대가 달린다.
헤드라이트하나만으로 의지한 채 차 앞창으로 보이는 시골길은
어쩐지 무시무시하게 보인다.
차안에는 다소 무거운 표정의 두 남녀가 타고 있다.
S#45. 현 관 앞 (밤)
딩동 차임벨 소리가 계속해서 울리고 문이 열린다.
20대 후반의 선규와 20대 중반의 선규처인 미희가 앞에 서있다.
무현이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입구로 들어서면
2층 계단에서 내려오던 새엄마와 눈이 마주친다.
새엄마를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어딘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선규와 미희.
새엄마의 표정이 환하게 피어난다.
S#46. 식 당 (밤)
무현과 새엄마, 선규와 선규처가 마주보고 식사를 하고 있다.
새엄마, 무엇이 즐거운지 상기된 표정으로 수다를 떨며
선규와 선규처 앞에 있는 접시 위에 음식을 덜어준다.
선규와 선규처는 어딘지 조금은 불편한 상태인 것 같다.
그냥 새엄마가 몰아가는 분위기에 조금씩 맞춰 주는 정도다.
특히 선규처의 행동이나 표정은 불안함과 불편함이 역력하다.
무현은 그런 분위기를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고
새엄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수다를 떨고 있다.
새엄마 : 그런 적이 있었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그런 적 있었던 것 같아.
그게 몇 년 전이니? 얘, 그건 기억나니? 네가 동네 조그만 냇가에서
고기 잡는다고 뛰어들어가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려서
온 동네를 벌컥 뒤집어 놨었잖아.
선규와 선규처, 그냥 대꾸 없이 따라 웃는다.
새엄마 : (무현에게 고갤 돌리면서) 한번은 그런 일도 있었어요. (기억을 더듬듯이)
거 뭐니? 으음 .....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래, 맞다. 동네에 미친 사람 하나
있었잖아. 근데 웃기는 게 그 사람 평상시엔 아무렇지도 않다가 비만 오면
갑자기 핑 도는 거야. 밭에 가서 밭 갈다가도 비가 오면 갑자기 옷을 마구
훌러덩 벗어 던지고 길거리로 신작로로 마구 뛰어 다니고 그랬잖아.
젤 웃겼던 게 한번은 비가 오락가락한 거야. 그랬더니 그 사람 옷을 벗었다
입었다가 하다가 자기도 지치니까 그냥 집으로 들어갔잖아.
그때 동네 사람들 얼마나 배를 잡고 웃었는지. (혼자 까르르 웃는다)
근데 쟤가 그걸 한번 보구선 쟤가 아주 어릴 땐데, 그 사람을 보고선 자기도
옷을 훌훌 벗어 던지더니 같이 뛰는 거예요. 엄마가 그 광경을 보고
질색했었잖아. 그거 기억나? 기억나지? (또 한번 웃는다)
선 규 : ........
새엄마 : 왜 말을 안 해? 기억 안나?
선 규 : ............
새엄마 : 기억 안나? 기억나지?
모두들 선규 쪽으로 시선을 집중한다.
선 규 : 아니, 기억 안나.
새엄마 : 뭐?
선 규 : ......... 그런 기억 없다구.
무 현 : !
새엄마 : (여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진다) 왜 기억 안나?
선 규 : .........
새엄마 : 너, 미쳤어?
무현과 선규, 그녀의 서슬에 움찔한다.
그때 선규 옆에서 잔뜩 긴장해있던 선규처가 음식이 얹혔는지 갑자기 밭은기침을 해댄다.
그러다 점점 강도가 심해지면서 갑자기 바닥으로 픽하고 쓰러진다.
모두들 놀란다.
선규처는 바닥에서도 아주 심한 기침을 하면서 갑자기 온몸을 바르르 떤다.
가슴이 답답해지는지 자기 가슴을 세차게 쿵쿵 치면서 바닥에 먹은걸 토해낸다.
선규가 달려가 미희의 상체를 일으킨다.
미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고 고개를 아주 심하게 꺽은 채
거의 흰자위만 보이는 두 눈은 위로 치켜 뜬 채 몸을 부들부들 떤다.
선 규 : 왜 그래? 미희야! 왜 그래? 말해봐. 어디가 불편해?
S#47. 수 연 방 (밤)
잠을 자고 있던 수연, 갑자기 눈을 커다랗게 치켜뜬다.
S#48. 폐 창 고 (밤)
수미가 들어보였던 보라색 병이 놓여져 있고 카메라 천천히 이동하면
구석 이곳 저곳에서 독약 먹은 여러 마리의 쥐들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죽어가고 있다.
S#49. 식 당 (밤)
사람들 모두 얼어붙은 듯 서있고 미희는 온몸에 경련이 일며 부들부들 떨고 있다.
입이 쩍쩍 벌어지며 미희의 치켜 뜬 눈으로,
새엄마의 다리사이 냉장고 옆 싱크대 밑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동공이 더욱 커지며 심한 경련을 일으키는 미희.
귀청을 때리는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진다.
S#50. 정 원 (밤)
선규가 미희를 부축하고 나온 뒤 차 뒷좌석에 태운다.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한 미희, 선규가 모포로 감싸준다.
옆에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무현이 서있다.
무 현 : 괜찮아?
선 규 : 괜찮구 뭐고 더 이상 저두 이런 일 지겹습니다.
무 현 : 미안하네.
선 규 : 돌아갈게요.
선규 차에 타고 시동을 건 뒤 급하게 출발을 한다.
미희가 뒤를 돌아본다. 멀어져 가는 집.
S#51. 차 안 (밤)
운전 중에도 걱정스럽게 미희를 의식하는 선규.
아직도 공포와 충격에 헤어 나오지 못한 넋 나간 표정을 하고 있는 미희.
미 희 : 자기야 ......
선 규 : 왜?
미 희 : 나 아까 ....... 이상한 거 봤어.
선 규 : 뭘 봤는데?
미 희 : 그 집에서 ....... 귀신 봤어.
- 순간적인 플래시컷 : 새엄마의 다리 사이 냉장고옆 씽크대 밑으로
너무나 흉측하게 생긴 어떤 여자아이가 납작하게 웅크린 채
고개를 밖으로 치켜 뜨고 있는 모습이 얼핏 보인다.
선규의 머리끝이 쭈뼛 선다.
미희, 말을 끝내자마자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떨어진다.
S#52. 거 실/ 식 당 (밤)
선규와 미희를 보내고 들어온 무현,
새엄마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있는 것을 본다.
무 현 : 들어가 쉬어.
새엄마 대꾸 없자, 무현은 식탁 위에 물 한잔과 알약 두 알을 놓고
그냥 서재로 들어가 버린다.
새엄마,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있다.
텅 비어버린 것 같은 적막감이 집안을 감돈다.
잠시 후, 어디선가 아주 미세하게 식기들이 흔들리는 소리 같더니
그 소리는 벽 또는 벽장을 긁어대는 소리로 바뀐다.
전에 듣던 소리와 비슷하다.
새엄마는 얼이 빠진 얼굴로 소리가 들리는 주방 쪽으로 고갤 돌린다.
새엄마 있는 곳은 어둡고 주방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보기에도 아주 오래된 싱크대 문 하나가 끼이익 소리를 내며 아주 천천히 열린다.
찻잔을 쥐고있던 새엄마의 손이 덜덜덜 떨린다.
떨림의 진동을 타고 찻잔의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환하게 켜진 주방, 냉장고에 조금 가려진 한쪽 벽에서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거림 같은 게 들리더니 느닷없이 벽에서부터 머리를 양옆으로 땋은 어떤 여자애가
너무나 느린 속도로 천천히 가로질러간다.
팔과 다리를 아주 크고 힘차게 흔들어 대면서 가는데 기이할 정도로 느린 속도로 걷는다.
그건 사람의 속도가 아니다.
새엄마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다.
여자앤, 계속 아주 크고 힘찬 모습으로 다른 쪽 벽면을 향해 가다가 갑자기 멈춘다.
새엄마 쪽으로 천천히 몸을 돌린다.
아이의 얼굴엔 눈 코 입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이
입 쪽에 커다란 구멍 하나만 입을 크게 벌리듯 뚫려 있다.
그 여자아이는 새엄마 쪽으로 몸을 완전히 돌리더니 다시 팔과 다리를 크게 움직이면서
느리게 느리게 새엄마에게 걸어온다.
새엄마, 숨이 턱하고 멈출 것 같다.
느리게 오던 여자아이, 갑자기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새엄마에게 돌진한다.
새엄마, 동공이 커지면서 경악한다.
어디선가 빼액 하는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S#53. 거 실 (낮)
불에 올려놓은 스팀형 주전자에서 삐익 소리를 내며 물이 끓고 있다.
박순경 : 그게 뭐죠?
무 현 : 그런 거 느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박순경 : 네?
무 현 : 전생이라던가 영혼이라던가 ....... 초자연적인 현상들요.
박순경 : 귀신을 말하는 건가요?
무 현 : 그녀는 그렇게 믿고 있었어요.
박순경 : 어렸을 때 동네 사람들이나 할머니한테서 귀신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전 한번도 본적도 없고 느껴본 적도 없었어요.
가끔 악몽이나 한두 번 가위에 눌려 본 적은 있었지만.............
박순경의 말을 아무 소리 없이 듣고 있다가 차를 한잔 따른다.
박순경 : (피식 웃으며) 하여튼, 뭐...... 전 귀신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잠시 서로 아무 말이 없다.
무현,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주전자 불을 끈다.
멀리서 마른번개가 치며 나직이 천둥소리가 들린다.
박순경,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좌우를 살핀다.
분위기를 바꾸려고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간다.
박순경 : (고갤 돌려 창문을 통해 밖을 보며) 비가 올 것 같죠?
무현, 다가와 자리에 앉으면 박순경 도로 돌아와 자리에 앉다가
한쪽 벽에 세워놓은 낚시도구와 가방을 발견한다.
박순경 : 골프를 즐기시나보죠.
무 현 : (박순경이 쳐다보는곳을 힐끗 보더니) 아뇨. 그건 낚시 도구들입니다.
박순경 : 아..... (민망해하며) 아, 하하, 예...... 제가 낚시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요.
그냥 서울, 도시에서만 살아서요. 그럼 요즘도 즐기시나보죠?
무 현 : 아닙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서부터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박순경 : 아네........... 아참, 근데 따님들이 어디가 아팠었나요?
무 현 : (잠시 침묵) .......대단한 것은 아니었고 ...... 전처가 죽은 다음
아이들이 일종의 신경쇠약증 같은 증세가 생겼어요. 수연인 약간의 사고도 있었구요.
.....아무튼 그러던 차에 아이들의 새엄마가 들어오자 그 증세가 좀더 심각해져 갔어요.
한 일년쯤 서울근교 요양원에 있었습니다.
많이 좋아졌고 다시 명랑해져서 회복이 됐다고 판단한 거죠.
박순경, 차를 호호 불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박순경 : 친엄마께서도 .......
무 현 : 네, 그 여자도 평소 지병을 앓고 있었죠. 그리고 그걸 비관했구요.
박순경 : 네 ....... (한숨을 가볍게 내쉬다가 화제를 바꾸려고 한다.)
그럼 따님과 새엄마와의 사이는 ....... 더 안 좋아진 겁니까?
S#54. 수미 집 전경 (밤)
바람이 몹시 불어 정원의 마당 한가운데 낙엽들과 꽃잎들이 굴러다닌다.
집 외경과 내부 곳곳의 음침하고 을씨년스런 인상들 인서트.
- 박순경과 무현 오프 보이스
무 현 : 아무튼, 그 일이 있은 후 집안일을 하시던 분들의 소식이 갑자기 끊겨 버렸죠.
아주머니도 장씨도 ........ 집안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니까 겁이 나셨던지 모두들
나오시질 않는 겁니다. 그런데 진짜 이상한 일들은 그 날 이후부터 시작되지요.
박순경 : 이상한 일이라뇨? 누구한테서요? 부인한테서요? ....... 아님 따님한테서요?
무 현 : ...... 집안 곳곳. 집안 곳곳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주 기이한 일들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S#55. 안 방 (밤)
새엄마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있고 그 옆에 무현이 걱정스런 얼굴로 침대에 걸터앉아있다.
무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빠르게 손을 잡는 새엄마.
새엄마 : 그냥 여기 있으면 안돼?
무 현 : ......... 왜?
새엄마 : 이 집에 ..........
무 현 : ?
새엄마 : ...... 이 집에 뭐가 있어요.
무 현 : 뭐가 있는데?
새엄마 : .......... 여자애.
무 현 : 여자애? .......... (긴 한숨) 그게 무슨 말야 ...... 있긴 뭐가 있다고 그래?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 거야. 우선 이 약 먹어.
새엄마 : (멍한 표정으로 알약을 바라보다 무기력하게 받아먹는다)
무 현 : 자, 누워. 푹 자고 나면 한결 나아질 꺼야. 내가 나가서 집안을 좀 살펴볼게.
무현이 시트로 몸을 덮어준 다음 밖으로 나가려한다.
무현 나가고 새엄마는 불안한 눈으로 방안을 둘러본다.
텅 빈 방안, 방안에 한기가 도는 것 같다.
S#56. 거 실 (밤)
거실과 식당, 복도와 창고 등 1층 내부를 천천히 돌아보는 무현.
전체적으로 음습하고 어딘지 한기가 돌지만 별다른 이상한 징후를 느끼진 못한다.
거실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다가 커튼을 치려고 고갤 올리는데
반대편 커튼 상단 위가 약간 불룩하게 나와 조금씩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순간 긴장하며 천천히 커튼을 잡는다.
서서히 커튼을 열자 수십 마리의 나방들이
구더기 우글거리듯 한쪽 창문 벽에 다닥다닥 붙어 우글거리고 있다.
흠칫 놀라는 무현.
천천히 거실 한쪽에 있는 대빗자루를 들어 커튼을 힘껏 내리친다.
순간 기이하게도 수십 마리의 나방 떼들이 날아가지 않고 뭉쳐서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 날지 못하고 서로 엉켜 꿈틀거리는 나방 떼들을 인상을 찌푸린 채 치우는 무현.
쓰레기통에 버린 뒤 분사식 살충제를 몸을 뒤로 빼고선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입을 틀어막고 마구 뿌린다.
S#57. 2층 복도 (밤)
2층으로 올라온 무현, 천천히 복도를 지나간다.
2층의 아이들 방의 문고리를 체크한다.
S#58. 광 입구 - 식당 - 서재로 (밤)
광문을 열어 잠시 안을 들여다본 뒤 식당과 복도와 계단 등 집안 이곳 저곳을 들여다본다.
다시 서재로 들어가 여자가 놓고나간 수미의 가방을 열어본다.
가방을 열어보자 거기에 죽은 아내의 유품들과 사진들
그리고 이상한 몇 개의 약병들을 차례차례 들여다보며 냄새를 맡는데
목덜미에 이상한 한기를 느낀다.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S#59. 거 실 (밤)
무현, 가방을 들고 나오는데 새엄마가 거실 소파에 나와 앉아있다.
무 현 : 왜 나와있어? 쉬고 있으라니까.
새엄마 : 그 안에 뭐 들어있었어요?
무 현 : 아 ............ 그냥 수미 물건들.
새엄마 : 죽은 사람 물건들을 왜 자꾸 집안으로 갖고 들어오는 거래요?
무 현 : ....... 신경쓸 거 없어.
새엄마 : 그러니까 자꾸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지.
도대체 이러니 내가 마음 붙이고 살래야 살수가 있어야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거야?
........... 선규일만 해도 그래요. 그 애가 왜 아까 그러고 갔겠어요?
그래도 명색이 삼촌인데 나와 인사는커녕, ...... 저런 괴상망측한 짓들이나 벌이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정말이지 .........
무 현 : 이거 좀 갖다 놓고 올 테니까 들어가 쉬어.
새엄마 : 이게 뭐예요? 이게 뭐냐구요? 내가 이럴려고, 이런 꼴 당할려고 당신한테 온 거예요?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는 내가 죽은 사람보다 나은 게 뭐가 있냐구요?
무 현 : ...........
무현은 대꾸하지 않고 베란다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손전등을 들고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간다.
S#60. 1층 베란다 (밤)
주위는 칠흙같은 어둠이 내려와 앉아있고 베란다로 나가다
새장 바로 밑바닥에 몇 방울의 마른 피와 새깃털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것을 본다.
손전등을 들어 새장을 비쳐본다.
새가리개를 열어보고는 새장을 툭툭 친다.
새장을 연다.
두 마리중 한 마리는 보이지 않고 한 마리의 잉꼬 새가 빳빳하게 죽어있다.
잉꼬 새를 꺼내 내려다보는 무현.
잉꼬 새들이 먹는 먹이통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는 무현. 무언가 이상한 냄새를 맡는다.
먹이통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통 주변에 푸른색을 띄는
이상한 마른 찌꺼기 같은 것들이 달라붙어 있다.
조금전 다락방에서 보았던 작은 약병의 색깔과 냄새를 띄운다.
무현이 죽은 새를 들고 정원으로 내려간다.
거실창문을 통해 그것을 지켜보던 새엄마.
어떤 노여움으로 아랫입술을 짓깨물다가 거실의 커튼을 신경질적으로 닫는다.
S#61. 수 연 방 (밤)
수연 방을 세차게 두드리는 새엄마.
문을 열려고 하자 안에서 잠겨있어 열리질 않는다.
더욱 세차게 문을 두드리는 새엄마.
S#62. 안 방 (밤)
신경질적으로 안방 서랍장을 여는 새엄마.
와락하고 서랍 안 내용물들을 다 쏟아내더니 열쇠 꾸러미를 찾는다.
열쇠 꾸러미가 찰랑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S#63. 수 연 방 (밤)
황급히 열쇠를 꽂아 수연의 방문을 따들어 가는 새엄마.
수연, 잠에서 깨 놀란 나머지 소스라치며 몸을 침대구석으로 움츠린다.
새엄마, 한쪽 시트를 걷어내자
거기에 털이 무참하게 뽑혀 흉측하게 죽어있는 새 한마리가 놓여져있는 것을 발견한다.
새엄마와 수연, 동시에 놀란다.
몸을 바르르 떨며 물러서는 수연의 양팔을 잡아 매몰차게 침대 앞으로 끌어내는 새엄마.
새엄마의 우악스런 손끝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던 수연이, 새엄마의 손목을 할퀴게된다.
이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새엄마.
핏기 없이 새엄마가 휘두르는 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둘리는 수연.
다짜고짜 수연의 양팔을 꺽을 듯이 낚아챈다.
새엄마 : 사실대로 말해. 누가 그랬어?
수연은 영문도 모른 채 겁에 질려 눈만 끔뻑거린다.
새엄마 : 말 안 할꺼야? 말 안해? 네가 그랬어? 네 언니가 그랬어?
수연은 고개 짓만 연신 할뿐 벌벌 떨며 대답할 길이 없다.
새엄마는 대답을 오래 기다리지도 않고 발버둥치는 수연의 몸을 제압하고
팔을 뒤로 꺽은채 옷장을 열고 그 안으로 넣으려고 한다.
새엄마 : 그래 죽은 네 엄마 물건 보니까 속이 시원하디? ......... 이제 살 맛나?
격한 비명을 지르며 옷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수연.
그런 수연의 입을 틀어막고 옷장으로 집어 넣어버리고는
옷장 안의 홑이불로 수연을 둘둘 말아버리는 새엄마.
새엄마 : 너희 것들은 이래야 알아들어.
그리고는 밖에서 옷장 문을 걸어 잠가버리고 나가버리는 새엄마.
옷장 안에서 발버둥치는 수연.
S#64. 수 미 방 (밤)
무슨 소리에 잠을 깨는 수미.
일어나긴 했지만 잠에 취해 곧바로 정신을 못 차린다.
얼굴을 비비면서 침대에서 일어선다.
문으로 나가는 수미.
S#65. 2층 복도 (밤)
아직 정신이 차려지지 않는 수미.
수연방에서 쿵쿵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퍼뜩 놀란다.
수연방으로 뛰어가는 수미.
S#66. 수 연 방 (밤)
문을 확 제치고 들어서는 수미.
옷장에서 쿵쿵 소리가 들린다.
또다시 올려놔진 옷장을 보며 기겁을 하는 수미.
재빨리 옷장 문에 채워진 잠금쇠를 떼어내고 옷장 문을 확 제치면
수연이 홑이불에 둘둘 말려 금새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백지장같은 얼굴에 흰자위만 보이는 눈을 치켜 뜨고 온몸이 빳빳하게 마비되어 있다.
수 미 : 수연아!!
수연이를 옷장 안에서 빼내는 수미.
수연이는 호흡장애를 일으키며 몸이 뻣뻣해져가고
그런 수연을 부둥켜안고 온몸을 주무르며 진정시키는 수미.
수 미 : 수연아!! 정신차려!!
수연이의 손가락 하나 하나에 검푸른 피멍이 들어있다.
S#67. 정 원 (아침)
집 뒤쪽으로 붉은해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 붉은해는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딘지 불길한 기운을 띄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S#68. 식 당 (낮)
한낮인데도 식당 안은 그리 밝지는 않다.
새엄마와 수미, 수연이 식탁에 앉아있다.
새엄마는 한 손엔 잡지를 한 손엔 차를 연신 들이키고 있다.
수미는 그런 새엄마를 적대감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다.
애써 수미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새엄마.
새엄마가 틀어놓은 거실의 오디오에선 무거운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새엄마가 수연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건넨다.
새엄마 : 과자 좀 더 먹을래?
수연은 대답도 고개 짓도 못하고 겁먹은 듯 새엄마와 수미를 번갈아 본다.
수미는 그런 새엄마가 극도로 증오스럽다.
수연이가 대꾸가 없자 새엄마,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남편 무현을 부른다.
새엄마 : 여보 - 차 식어요.
무 현 : (멀리서) 잠깐만.
수 미 : 아무렇지도 않아?
새엄마 : 뭐? 뭐가?
수 미 : 어떻게 그 짓을 하고서도 그런 표정으로 있을 수가 있냐구?
새엄마 : 인과응보야. 잘못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해.
수 미 : 그게 수연이가 한 거야? 왜 수연이한테 그래?
새엄마 : 네가 한 거니? 그럼 너두 벌받으면 돼.
수 미 : 아빠한테 다 말할 꺼야.
새엄마 : 그래? 그럼 아빠를 불러. 내가 불러줘?
수미, 벌떡 일어선다.
수연, 깜짝 놀라고
새엄마 : (낮지만 단호하고 음산하게) 앉아. 왜이래 버릇없이? 너 친엄마한테도 이랬어?
수 미 : 엄마 얘기하지 마.
새엄마 : 잘 들어. 너희 엄만 나야. 알아? 너희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이 세상에 너희들이 엄마라고 부를 사람은 안타깝게도 나밖에 없어. 견디기 어렵지?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다 이래. 알아?
수 미 : 시작하는 거야?
새엄마 : 시작하는 거냐구? 그래 네가 변하지 않는 한. 이걸 받아들이지 않는 한
내일이고 모레고 너랑 나랑 두 눈뜨고 한 집에 살고 있는 한 끝나지 않아.
수 미 : 아빠도 알아? 당신이 한 짓? ......... 죽은 새도 당신이 수연 이방에 갖다 놓았지?
새엄마 : 뭐? (잠시 수미를 쳐다보다 실소를 하듯) 너 ........ 왜 내려온 거니?
수 미 : ?
새엄마 : 아직 병이 나은 게 아니었구나.
수 미 :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당신은 범죄자야. 곧 벌을 받을 테니까 두고봐.
새엄마 : 너 ..... 내가 무섭니?
수 미 : 뭐?
수미의 얼굴이 흥분과 분노와 모멸감으로 처참한 표정이 되어간다.
그때 무현이 서서히 걸어온다.
새엄마, 금새 표정을 바꿔서.
새엄마 : 이리 오세요. 차 드세요.
무현, 머뭇거리다 차를 손으로 집어든다.
그걸 바라보던 수미,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찻잔을 들어 벽에 던져버린다.
벽에서 박살나는 찻잔들.
무 현 : 또 왜 그래?
수 미 : 최악이야.
무현, 새엄마, 수미, 수연 모두들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벽을 타고 흘러내린 찻물이 마치 피가 흐르는 느낌으로 주방 싱크대 밑으로 무겁게 흐른다.
무겁고 어두운 느낌으로 ......... 디졸브.
S#69. 거실/ 식당 (저녁)
디졸브 되면 음산하게 텅빈 거실이 꽤 오랫동안 비추어지고 ........
서재에서 나와 거실을 통해 욕실로 가려던 무현은 주방에서 여자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걸음을 멈추어본다. 확실히 여자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현의 시점으로 보면 벽에 가려 보이지 않고 주방에서 여자가 주방을 정리하며
누군가에게 주절주절 신경질적인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무현, 누구지? 하며 여자를 바라보는데 또 갑자기 말을 그치고 식기만 열심히 닦고 있다.
그러다 간헐적으로 한쪽 벽면을 향해 뭐라고 지껄이고 있다.
무현이 여자 쪽으로 다가가자 뒤를 힐끔 보더니 미소를 짓는다.
새엄마 : 주방엔 왜요? 시장하세요?
여자가 젖은 손을 앞치마에 쓱쓱 문지르더니 거실 쪽으로 나오면서 무현을 맞는다.
마치 주방 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선다는 느낌이다.
새엄마 : 야식 준비할까요?
무 현 : 어? .... 아냐. 아냐.
무현, 약간 뻘줌한 상태로 잘못 들었나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냥 욕실로 들어간다.
S#70. 욕 실 (저녁)
꺼칠한 얼굴을 들여보던 무현, 진열장문을 열고 면도기를 꺼낸다.
면도기 날을 갈고 비누거품을 만들어 얼굴에 묻힌다.
슥슥 턱 주변과 목 부분을 면도한다.
무슨 소리에 잠시 멈칫한다. 수도꼭지를 돌려서 물소리를 죽인다.
또 주방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살짝 문을 열어보면 역시 여자가 안 보이는 벽면을 향해
좀 전 보다는 좀더 언성을 높인 채 뭐라고 떠들어댄다.
문을 닫고 얼른 비누거품을 씻어내고 밖으로 나온다.
S#71. 주 방 (밤)
식당 거실에 새엄마가 쓰던 앞치마만이 반듯하게 걸려져있고 주방엔 아무도 없다.
무현은 고갤 갸웃거리다 뒤돌아서는 찰라,
주방 구석진 곳에서 누군가 약하게 흐느끼는 소리에 깜짝 놀란다.
주방 불을 켜면 주방 한쪽 구석에서 수미가 쭈그리고 앉아
얼굴을 파묻은 채 소리를 죽인 채 오열하고 있다.
무 현 :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수미는 눈물이 뒤범벅이 된 얼굴을 잠시 들었다가 다시 고갤 파묻고 서럽게 오열한다.
무현은 조용히 다가가 수미의 어깨를 감싸쥔다.
그때 너무나도 느닷없이 발작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무현의 손을 뿌리치는 수미.
수미의 시선과 손끝에 독기가 느껴지고 순간 소름이 돋는 무현. 당혹스럽다.
수 미 : 저리가! 손대지마!
무 현 : 너 왜 그런 거야?
수 미 : 몰라서 물어? 수연이 방에 옷장은 왜 또 올려 논거야?
무 현 : 무슨 옷장?
수 미 : 왜 또 올려 논거냐구?
무 현 : 무슨 소리야? 그거 서재에 있어.
수 미 : 뭐라구? ....... 정말이지 ....... 지독한 여자야. 정말이지 ........ 지독해.
(발작적인 반복) 지독해 ..... 지독해.
무 현 : 수미야. (거의 탈진해있는 수미를 일으켜 세우며) 내말 들어봐.
수 미 : 필요 없어. 위로하려고 들지마. 다 똑같아.
무 현 : 그렇지 않아. 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 네가, 전혀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잖아.
제발, 제발 ...... 조금만 ..... 조금씩만 이해해주고 다가가 줘.
............... 아빠도 모를 수 있잖아. 나도 모르는 게 있다구.
도대체 내가 모르는 게 뭔지 네가 속 시원히 말해 줘. 말해 줘 봐.
수미의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진다.
입술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난다.
입을 열 듯 말 듯 조금씩 움찔거리기 시작한다.
무현은 긴 한숨을 고르게 내쉬며 자신을 진정시킨다.
무 현 : 수미야 ..... 내가 ... 내가 너한테 나쁜 아빠란 거 알아.
수 미 : ...... (버럭 소릴 지르며) 나쁜 아빠조차 안 되잖아!
무 현 : 수미야. 너 ...... 너 정말, 이러지 마. 이러면 안돼. 이러면 또다시 아프게 돼.
수 미 : 뭐?
그때, 거실 쪽에서 전화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수미의 얼굴에 일말의 회한 같은 표정이 스친다.
수 미 : 알았어. .............. 앞으로 이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아빠가 불러놓은 이모든 더러운 일. 아빠가 책임져.......... 아빠는 ......
이 모든 죄악의 근원이야. 더 이상 할 말 없으니까 전화나 받아.
싸늘하고 건조하게 말을 내뱉고는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가는 수미.
혼자 남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있는 무현.
S#72. 서 재 (밤)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전화를 받고 있는 무현.
무 현 : 어.... 아무래도 안되겠어.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야. 내일 내려와 줘.
도저히 내 힘으론 ...... 응 ...... 벼랑 끝에 선 기분이야. 아주 비참해
.......그래. 내가 나갈 테니까 내려오면 바로 전화해. 그래. 그럼 내일 봐.
딸깍 소리가 나고 무현은 소파에 피곤한 듯 길게 눕는다.
덩그러니 옷장이 눈에 들어온다.
한동안 옷장을 바라보던 무현, 갑자기 피로와 짜증이 몰려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린다.
잠시 멍한 상태로 있다가 후다닥 2층으로 뛰어 올라가는 무현.
S#73. 수 미 방 (밤)
방문을 확 열어제치며 들어오는 무현.
침대 위에 웅크리고 누워있다가 상체를 급격하게 일으켜 세우는 수미.
조금은 놀란 표정.
상기된 무현.
무 현 : 말해봐.
수 미 : 뭘?
무 현 : 왜 우는지? 아니, 여기 내려와서 네가 여태껏 했던 행동들, 말들,
나 몰래 지었던 표정까지! 모두 말해봐!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수 미 : .......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무 현 : 뭘?
수 미 : 그 여자가 우리한테 저지른 짓 말야.
무 현 : (갑자기 짜증스런 얼굴로) 도대체 그게 뭔데? 말을 해보란 말야.
수 미 : 구차하게 나한테 이러지 말고 그 여자가 있는 방으로 가버려.
무 현 : ......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니?
수 미 : 그 여자가 자꾸 수연일 괴롭히잖아!
무 현 : 왜? 왜 괴롭히는데?
수 미 : (발작적인 고함을 내지르며) 엄마 닮았다구!
무 현 : 뭐?
수 미 : 못 알아들었어? 엄마 닮았다구! 엄마 닮았다구 수연일 괴롭히고 있잖아!
무 현 : 뭐......뭐라구?
수 미 : 악질적으루 ..... 악랄하게도 매번, 매번 수연일 옷장 안에 가둬놓잖아!
무 현 : 수미야 제발 그러지마. (무현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수 미 : 뭘 그러지 말라는 거야? 아빠두 알잖아. 수연이가 무서워하는거!
무 현 : 제발 그러지마. 수연인 ..... 죽었잖아. 수연인 죽었다구.
수 미 : .......... 뭐?
무 현 : 수연인 이미 죽었어!
수 미 : ? ............ 아 ....... 아냐.
무 현 : (거의 눈물을 글썽이며) 수미야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꺼니? 응?
수 미 : (눈물을 글썽거리며) 아니, ..... 수연이 안 죽었어. 저기봐 ......... 저기 있잖아.
그때 방안에 열려져 있던 창문과 방문들이 바람 때문인지 어떠한 힘 때문인지
쾅! 쾅! 소리를 내며 닫힌다.
문 하나는 쩍하며 금이 가며 갈라지는 소릴 낸다.
소리에 놀란 무현, 음산한 한기를 느끼고 수미가 쳐다보는 곳을 천천히 뒤돌아보는데.
책상위의 선풍기가 틱틱 소리를 내며 느린 속도로 돌아가고 있다.
천천히 전선을 타고 내려와보면 전원코드가 빠져있는데 돌고 있는 선풍기.
S#74. 수미 집 외경 (밤)
삭풍이 몰아치는 밤.
붉은 보름달이 크게 떠있고 먹구름이 달을 가리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한다.
S#75. 수 미 방 (밤)
불은 꺼져있지만 휘황한 달빛에 방안은 군데군데 어둠과 밝은 곳이 콘트라스트를 이룬다.
침대 위에 쓰러져 얼굴을 파묻고 오열하는 수미.
손을 더듬어 침대 위에 있는 큼지막한 아기인형을 끌어다 품에 안고 서럽게 흐느낀다.
누군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있다.
그 인기척에 고갤 천천히 들어보는 수미.
수 미 : 수연이니?
어두운 그림자는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대답하지 않는다.
수 미 : 수연아 ....... 왜 거기에 그러고 있어?
수 연 : (아주 낮고 음침한 목소리) ........... 왜 울어?
수 미 : 아빤 내가 아직 아픈 걸로 생각하고 있어. ....... 내가 미친 거야?
아니잖아 ........... 너 이렇게 살아있잖아. 맞지?
수 연 : ...........
수 미 : 미안해.
수 연 : 뭐가.
수 미 : 몰랐어. ............. 널 내버려뒀었잖아.
수 연 : .......... 할 수 없지. 이제 그러지 마. 안 그래도 돼.
수 미 : 아니 ..... 미안해. 다시는 그런 실수하지 않을게.
수 연 : ........ 힘들어? ....... 나 때문에?
수 미 : (수미의 눈이 점점 붉어지더니 갑자기 표현할수 없는 설움이 밀려온다)
수 연 : 나 돌아갈까?
수 미 : 아니. 그러지마.
수 연 : 아빠가 ....... 아빠가 나 죽은 거 알아.
수 미 : 아니 ...... 아빠만 몰라 ..........네가 살아있다는거.
왜 돌아왔는지 .......... 아빠만 몰라.
수 연 : .......... 이젠 어떡할 꺼야?
수 미 : ............
수 연 : 어떡할 꺼야?
수 미 : 그 여자 ..... 죽일 꺼야.
수 연 : ................
수 미 : 그렇게 해서 알려야돼. 네가 왜 돌아왔는지.
그 여자가 너한테 어떤 짓을 했는지 ....... 아빠한테 알려야돼.
수 연 : 지금 할 꺼야?
수 미 : 응?
수연, 스스륵 일어선다.
수 연 : 내방으로 갈래.
수연이 어둠 속에 있다가 문 쪽으로 이동하면서 환한 달빛에 전신이 드러나면 ......
온몸이 반쯤 썩어 문드러진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다.
S#76. 안 방 (밤)
수미가 안방에 몰래 들어가 새엄마가 먹는 약병하나를 집어든다.
새엄마가 자다 몸을 뒤척인다.
수미 멈칫하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조용히 방을 빠져 나온다.
S#77. 정원 뒤뜰 (밤)
폐창고로 가는 수미.
달빛이 훤한 밤 숲길은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S#78. 폐 창 고 (밤)
수미는 여러 상자를 열어 무엇인가를 찾는다. 추운지 몸을 덜덜덜 떨고 있다.
전에 들고왔던 가방을 열어 무엇인가를 꺼낸다.
보라색의 작은 물병.
약을 꺼내 나무 판자 위에 펼쳐놓은 다음 투명한 물약을 그 위에 붓으로 바른다.
수미의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진다.
S#79. 안 방 (밤)
수미 다시 몰래 들어가 진열대를 열고 약병을 조심히 집어넣는다.
이 모든 일들을 아주 냉담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주도면밀하게 진행한다.
S#80. 주 방 (밤)
수미가 갈증이 나는지 냉장고문을 열어 물을 벌컥 벌컥 들이마시며 숨을 고른다.
물병을 집어넣고 이마며 목에 배인 땀을 닦아내며 냉장고문을 닫는다.
잠시 냉장고안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을 본 느낌이 든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냉장고 손잡이를 쥔다.
확 하고 열어보지만 이상한 건 없다.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도로 문을 닫는 순간,
무언인가 따악 하는 소리가 수미의 귓가를 때린다.
화들짝 놀라는 수미.
바람에 식당창문이 요동을 치고, 문을 잠그고 돌아서 고갤 돌리자
무현이 식탁에 고개를 떨군채 어딘지 지치고 암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무슨일인지 섬뜩한 기분이 든다.
무 현 : (천천히 고개를 들며) 수미야 .........
수 미 : ?
무 현 : (무언가 상당히 힘들게 입을 연다) 내가 ...... 이제야 .......
수미말을 ....... 알았어.
수 미 : ..........
무 현 : 네가 아까 한말 ........ 그 여자가 수연이한테 한짓 나두 ........ 알아. 하지만,
수 미 : (얕은 한숨) 알았어. 내일 얘기해. 오늘은 정말 피곤해.
무 현 : ....... 그래 ...... 그래 ....... (사이에 긴한숨) 내일 얘기하자. 내일이면
수 미 : 내일이면 다 밝혀질꺼야.
무 현 : 그래 .... 내일이면 다 밝혀지겠지 ........
수미를 망연히 쳐다보다 천천히 발을 옮긴다.
수 미 : (측은한 마음에 힘없이 내려가는 무현을 향해) ....... 주무세요. 여보.
여보란 말에 무현, 소스라치게 쳐다보고
- 그건 마치 놀란 표정이라기보단 얼핏 흉포한 표정같기도 하다 -
여보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깨어나는 수미.
S#81. 서 재 (낮)
요란한 전화벨소리로 인해 무현, 소스라치며 잠에서 깨어난다.
높게 달린 작은 창문으로 빛이 들어와 눈이 부시다.
미간을 찌푸리다 쩌렁 쩌렁 울려대는 벨소리에 허둥대며 전화를 받는다.
무 현 : 여보세요. ........ 응. 지금? ....... 알았어. 어디야? 알았어. 곧 갈게.
끊어. .....아, 잠깐, 여보세요! 여보세요!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끊는다.
무현은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받지 않는다.
무현은 전화를 내려놓고 잠시 정신을 추스른다.
서둘러 옷을 챙기고는 밖으로 나간다.
S#82. 수 미 방 (낮)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수연이는 보이지 않는다.
한기를 느껴 부스스 일어나 열려져 있는 창문을 닫는다.
책상 위에 있는 독극물이 눈에 들어와 흠칫 놀란다.
서둘러 독극물을 서랍에 집어넣는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주의를 둘러본다.
수미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꿈인지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
혼미한 정신을 더듬어보는 수미, 하지만 가늠할 수가 없다.
일단 문을 열고 나가려다 문 밑을 통해 방으로 들어온 메모지를 발견하고 집어든다.
'수미야, 잠시 외출한다. 오후에 들어올 거야. 문 꼭 걸어 잠그기 바란다.'
S#83. 2층 복도 (낮)
방을 나와 복도를 천천히 걷는다.
수연이 방앞에 서서 문을 조용히 두드리며 수연이를 부른다.
대답이 없자 문을 조심히 연다.
문이 안에서 잠겨있는지 열리지 않는다.
수 미 : 수연아! 수연아! 문좀 열어봐!
문고리를 힘차게 돌려보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연이방의 문은 위 아래로 못질이 되어있다.
놀라는 수미.
사색이 되어 1층으로 내려가는 수미.
S#84. 거 실 - 집 안 곳곳 (낮)
밑에도 수연이는 없다.
아니 집안 전체에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집안 여기저기 수연이를 부르며 찾아다닌다.
갑자기 눈물이 벌컥 하고 쏟아질 것 같다.
수연이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 다니는 수미의 모습은 마치 길에서 엄마를 잃고
훌쩍거리는 아이처럼 처량하게 보이기도한다.
S#85. 서 재 (낮)
서재에 들어선다.
역시 아무도 없다.
무현의 책상엔 캠코더와 8미리 테이프들.
폴라로이드로 찍은 몇 장의 사진들이 놓여져있다.
무심히 책상 위에 있는 폴라로이드사진을 힐끔 쳐다본다.
전에 수미와 수연이가 베란다에 있을 때 무현이가 찍었던 사진이 놓여져있다.
그 사진은 서재 어디선가 들어오는 빛으로 인하여 발광되어 반쯤 보이지 않고 수미만 보인다.
사진을 보려고 다가가다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드는 수미.
누군가 집안을 조용히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S#86. 거실 (낮)
카메라는 누군가의 발걸음을 쫓아 아주 낮게 따라간다.
누군가의 발은 가다가 멈춘다.
그러다 쿵 소릴 내며 포대기에 쌓인 무엇인가를 내던지듯 놓는다.
S#87. 서 재 (낮)
수미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서재 문틈으로 가 밖을 내다본다.
새엄마가 보자기에 쌓인 무엇인가를 질질 끌다가
또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쿵소리를 내며 놓고는 주위를 왔다갔다한다.
수미의 동공이 커다래지고 ........
새엄마가 무엇인가를 가지러 가는지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기다렸다가 후닥닥 뛰어나가 현관으로 향한다.
S#88. 현관/거실 (낮)
현관문을 잠근다.
현관문을 잠그고나서 주방이며 뒷문이며 베란다 문을 모두 잠가버린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문을 잠근 것을 확인한 수미는
새엄마가 거실에다 내던져놓은 보자기가 있는 쪽으로 뛰어간다.
- 마루에 피와 물이 썩어 연홍빛을 띄우고 그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물에 흠뻑 젖어 피와 얼룩이 뒤범벅이 되어있는 누런 포대기를 발견한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호흡이 가파온다.
천천히 누런 포대기 쪽으로 가보지만 차마 만져보지는 못하고
포대기를 싸맨 매듭을 풀어보려고 한다. 그러나 너무나 꽉 쪼여진 끈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수미가 주방으로 뛰어간다.
S#89. 주 방 (낮)
주방으로 뛰어와 칼을 찾을 때 어디선가 유리창이 박살나는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소리에 놀란 수미는 다급히 칼을 찾아보지만
마음만 급해져 아무리 찾아도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어쩔 수 없어 몸을 돌리는 순간 수미는 소스라친다.
식당의 형태와 구조가 이상하게 바뀌어있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공간처럼 음습하고 음산한 분위기로 바뀌어
수미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S#90. 거 실 (낮)
사력을 다해 포대기가 있는 곳으로 뛰어와 보지만 포대기는 온데 간데 없다.
그 대신 새엄마가 거실 소파에 다소곳하게 앉아 숨을 고르며 물한잔을 들이키고 있다.
기겁하며 놀라는 수미.
새엄마 : 왜 그렇게 놀래?
수 미 : (너무 놀라 수연이 말을 잇지 못한다.)
새엄마 : 왜 문을 다 걸어잠근거야? 아무리 불러도 대답도 없고.
수 미 : 수.... 수연이 어딨어?
새엄마 : 넌 어떻게 된 애가 그렇게 세상모르고 잠을 자니?
........ 수연이 서울 갔어. 여기 있기 너무 싫다고 울며불며 하길래 서울 올려보냈어.
수 미 : 아까 그 포대기는 뭐야?
대답없이 목이 타는지 물만 비정상적으로 벌컥 벌컥 들이마신다.
새엄마 : ............... 너두 그거 봤어?
수 미 : !!
새엄마 : 그게 뭔지 알아?
수 미 : ...........
새엄마 : (갑자기 표정이 바뀌며) 아무한테도 말하지마.
수 미 : .......
새엄마 : 니가 이집에 내려오고서부터 이집에 아주 더러운 것들이 붙기 시작했어.
수 미 : ........
새엄마 : 내가 왜 죽은 사람들까지 상대해야 되는지 모르겠어. ........ 지금도 보이니?
수 미 : !!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수미.
놀라는 수미의 얼굴을 쳐다보며 씨익웃는 새엄마.
마치 장난을 거는듯한 표정으로 실실 웃더니 그만 가보라는 투로 손짓을 한다.
그때 서재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수 미 : 저거 무슨 소리야?
새엄마 : 다 소용없어. 넌 수연일 내가 죽였다고 생각하지?
니네 아빠가 말안했니? 아직 말안한거야? 수연인 니 엄마가 죽였어! 알아?
니가 지금 보고 있는것들 다 니가 지어낸 망상이야. 이젠 정신좀 차리지.
수 미 : (어금니를 짓깨물며) 거짓말 ....... 죽여버릴꺼야 .....
새엄마 : 뭐?
새엄마의 눈꼬리가 서서히 치켜 올라가는 게 순간 소름이 돋는다.
새엄마 : 어쩜 너두 하는 짓거리가 네 동생이나 너나 하나도 빠짐없이 네 에미랑 똑같냐?
새엄마를 무시하고 서재로 뛰어가는 수미.
S#91. 서 재 (낮)
서재로 뛰어든 수미.
또다시 무현의 탁자 위에 무현이 전에 베란다에서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거기에 수연은 보이지 않고 수미만 놀란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하고 있다.
순간 어떻게 된 거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천천히 다가가 옷장을 확 하고 열면.
옷장 안에서 포대기가 꿈틀거린다.
수 미 : 수연아!!
무현의 여러 개의 책상서랍을 바닥에 쏟아내며 칼이며 가위를 찾다가
진열대에 놓여 있는 가위를 집어든다.
S#92. 거실 / 주방 (낮)
그걸 거실에서 지켜보던 새엄마, 혀를 쯧쯧 찬다.
새엄마가 주방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연신 고갤 설레설레 흔들며 혀를 차면서 무언가 중얼중얼거린다.
가스 위에서 펄펄 끓는 주전자를 집어든다.
S#93. 서 재 (낮)
새엄마는 주방에서 펄펄 끓는 주전자를 들고 수연을 풀어주던 수미에게 터벅터벅 걸어온다.
새엄마 : 넌 어쩌면 병이 들어도 그렇게 더럽게 들었냐?
이게 다 니가 자초한 거니까 더러운 꼴 당해도 니 팔자겠지.
수미, 뒷걸음질친다.
뜨거운 주전자를 수미에게 들이밀면서 다가오는 새엄마.
수미, 뒷걸음을 치다 새엄마가 다가오자 가위로 있는 힘껏 내리친다.
가위가 새엄마의 주전자를 든 손에 찍히면서 악 소릴 냄과 동시에 주전자를 놓친다.
동시에 새엄마를 밀치며 빠져 나오려다 새엄마가 수미의 다리를 낚아챈다.
수미의 몸이 기우뚱하는 것 같더니 바닥에 미끄러져 머리를 책상에 부딪친다.
수미가 의식을 잃는다.
새엄마가 벌떡 일어서며 비틀거리며 광으로 내려간다.
뭐라고 쉴새없이 웅얼거리며 집안의 내력이며 수미에게 악에 찬 저주를 퍼부으며
수미를 지나쳐간다.
새엄마 :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어. 다 니가 불러낸 것들이니까.
이젠 니집 식구들이라면 아주 지긋지긋하고 치가 떨린다. 정말 지긋지긋해.
새엄마는 계속 혼자 중얼거리며 광쪽으로 간다.
깜빡 깜빡 정신이 들 때면 새엄마가 광에서 삽을 질질 끌며 걸어오는 게 보인다.
의식은 겨우 차렸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새엄마 : 너나 나나 다 똑같아. 알아?
의식이 들었다 나갔다 하면서 빠른 속도로 이상한 환각이 보인다.
-열 손가락에 피를 뿜으며 무엇인가를 박박 긁어대는 손.
-옷장 안에서 음독 자살하여 처참하게 죽어있는 엄마.
-울면서 엄마를 부르며 뛰어 다니는 수미의 어린 시절.
-옷장 안에서 발버둥치며 옷장 문을 손으로 마구 긁어대다가 서서히 죽어 가는 수연.
그 옆에, 그 옆에 누군가가 있다. 누군가가 보인다.
새엄마가 수미를 내려다보며 뭐라고 말을 한다.
수미는 입만 벙긋거리는 새엄마를 보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새엄마가 천천히 삽을 머리 뒤로 들어올린다.
수미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머리 뒤로 올린 삽을 내려치려는 순간.
현관문이 열린다.
무 현 : 수미야!
겨우 의식을 차려 현관 쪽으로 보면, 무현이 들어온다.
수미의 눈에 눈물이 핑그르 돈다.
수 미 : 아 .... 아빠 .....
집안은 온통 아수라장이다.
어느새 새엄마는 보이지 않고 수미만 바닥에 누워있다.
무현은 놀란 얼굴로 뛰어들어가 수미를 일으킨다.
뭐라고 입이 열리진 않지만 수미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무현이 수미의 정신을 들게 한다.
수미, 무현이 가져온 물을 받아 마시고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앉는다.
수 미 : 아빠 .....
무 현 : 그래 .... 아빠야. 정신이 드니? 이젠 괜찮아.
수 미 : 아빠 ...... 이제 알겠어? 이젠 알겠지?
무 현 : 그래 알았어. 천천히 해.
수 미 : 그 여자 말야. 그 여자 어딨어?
지금 그 여자가 날 죽이려고 그랬어..... 날 죽이려고 그래.
무 현 : 그래 .... 알아. 알았으니까 그만해. 이젠 괜찮아.
수 미 : ......... 뭘 알았다는 거야? 수연이 ........ 수연이 살려야 돼.
무 현 : 수미야. 그렇지 않아. 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 그거 다 거짓말이야.
수 미 : 뭐?
무 현 : 수미야. ..... 그만 좀 해. 너 많이 아파.
수 미 : .........? 수연인? 수연아! (서재에 옷장을 가리키며) 수연이 꺼내 줘! 수연이!
수미의 팔에서 피가 번져서 마루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무현, 황급히 뛰어와 피를 지혈한다.
수미는 이게 언제 생긴 상처지? 하는 표정으로 피나는 곳을 쳐다본다.
수미, 손짓으로 옷장을 가리킨다.
수 미 : 아빠, 저기 ...... 수연이.
무현, 열려진 옷장을 바라본다.
이불위 포대기 사이로 인형하나가 여기 저기 뜯겨 그로테스크하게 굵은 줄로 묶여있다.
무현, 인형을 쳐다보고는 지혈이 잘 안 되자 후다닥 안방으로 뛰어간다.
수미,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묘한 표정으로 인형을 바라보고 있다.
S#94. 안 방 (낮)
안방에 들어가 진열대를 열고 소독약과 붕대를 꺼낸 다음 알약 두개를 꺼낸다.
S#95. 거 실 (낮)
거실에 나오면 서재에 수미는 보이지 않고
새엄마가 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린 채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있다.
무현이 나오자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얼굴엔 눈물자국이 채 마르지 않은 채로 무현을 돌아본다.
새엄마 : 수미는요? 수미는 괜찮을까요?
무 현 : .......... 약 먹어. 한결 나아질 거야.
무현, 다가가 소파 앞 탁자 위에 물과 알약 두개를 내려놓고
새엄마의 팔에 난 상처를 붕대로 둘둘 말아 응급 처치한다.
소독약을 찾으러 다시 어디론가 뛰어가는 무현.
혼자 남아서 알약을 내려다보는 새엄마.
그때 현관 차임벨이 울린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문고리가 천천히 돌아가다가 문이 삐이걱 열린다.
문이 열리면 새엄마가 들어선다.
거실의 새엄마, 현관 앞에 들어선 새엄마를 바라본다.
현관앞 새엄마 : 수미야......
거실의 새엄마 : ........
현관앞 새엄마 : 수미야 ......
거실의 새엄마 : ...........
거실의 새엄마, 현관 앞 새엄마를 바라보는 두 눈이 붉게 충혈 되면서 눈물이 맺힌다.
거실의 새엄마 : ....? ........
현관앞 새엄마 : 수미야 .........
거실의 새엄마는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수미가 앉아있다.
수 미 : ...... 새엄마?
수미, 골똘히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본다.
주위의 모든 공간이 조금씩 틀려져있다.
한동안 사람이 쓰던 공간은 아닌 듯 하게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수미, 점점 코끝이 매워오면 눈물이 글썽거려진다.
수미, 다시 무언가를 생각한다.
- 장면은 천천히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꾸로 된 시간대의 장면은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다 갑자기 난폭한 속도로 진행되더니
어떤 장면에서 갑자기 멈춰 선다.
- 전 씬의 포대기를 질질 끌고 나오는 사람은 새엄마가 아니라 바로 수미 자신의 모습이다.
- 인형을 포대기 안에다 우악스럽게 집어넣는 수미.
또다시 화면은 역 시간대의 장면들이 빠르게 진행되다가 또다시 멈춘다.
- 69씬과 71씬 재연.
수미가 무현에게 ?? 시장하세요? 야식 준비할까요? ?? 라고 하자,
수미의 입장에서 무현은 너무나 어정쩡하고 건조하게 ??됐다??라는 말을 한다.
무현, 살갑게 대하는 수미만 남기고 욕실로 향하자
수미의 표정이 갑자기 침울해지기 시작하며 울음을 터트린다.
천천히 주방 벽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오열하는 수미.
수미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이 주르륵 흐른다.
화면은 또다시 거꾸로 빠르게 흐르고 또다시 한 장면에서 멈춘다.
- 46씬 재연.
수미 앞에서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선규와 선규처, 그런 분위기를 어쩔 줄 몰라하는 무현.
회상은 점점 더 빠르게 지나가고
- 어린 수연이 옷장 문을 열다가 옷장 안에서 음독 자살한 엄마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랬다가
발을 구르고 울부짖으며 엄마를 꺼내려고 무조건 엄마를 잡아당기는 수연.
엄마의 손을 힘껏 잡아당길수록 엄마의 목은 옷장내의 옷걸이에 걸려 더 조여만 온다.
어린 수연은 마구 울부짖으며 엄마를 잡아당기다 옷장이 앞으로 쓰러지며 수연을 덮친다.
- 산책로를 걷다가 멈추고 뒤돌아 보는 수미. 잠시 멈춰있다가 다시 걷고.
- 죽은 엄마의 시체는 수연을 누르고 좁은 공간 안에서 틈새로 손가락을 넣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수연.
- 중환자실로 실려들어오는 의식불명의 수연. 그리고 뛰어들어오는 수미와 무현 그리고 새엄마.
- 많은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호전되어있는 수연이 휠체어를 타고 있다.
수미가 수연에게 다가가지만 수연은 수미를 알아보지 못한 채 그냥 멍한 표정으로 있다.
수미가 수연에게 음식을 먹이면 먹이는 대로 도로 내뱉는다.
그걸 다시 수연의 입으로 넣어주려고 안간힘 하다 울음을 터뜨리는 수미.
- 휠체어를 태워주던 수미가 수연과 밖으로 나온다.
밖의 아름다운 풍광을 수연에게 보여주며 미소짓는 수미.
- 이미 너무 멀리 나와버린 수미와 수연이 저수지 뚝방길을 가고 있다.
- 저수지 선착장에서 멈춰선 수미.
- 멀리서 풍덩하는 소리가 들리자 건너편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
이상한 기분이 들어 건너편 저수지를 바라보고.
- 수연과 수미가 있던 저수지엔 빈 약병과 휠체어만 덩그라니 놓여져있다.
-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수미가 사람들에 의해 저수지에서 꺼내진다.
수미, 가늘게 눈을 떠본다.
수연의 시체를 찾으려고 시체인양부들이 수색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멀리 보인다.
어느새 수미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두 뺨 위로 주르륵 흐른다.
수미, 새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탁자 위에 올려진 알약 두개를 바라본다.
수미의 두 눈엔 뜨거운 눈물이 주루 주룩 흘러내린다.
알약을 집어든다.
안방에서 나온 무현, 순간적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어 약병을 본다.
약병 안의 약들이 모두 변색되어 있다.
무 현 : ........... ?
수미, 무현과 새엄마를 동시에 번갈아 보더니 씨익 웃는다.
그리고는 천천히 알약을 입안에 넣는다.
무 현 : !!!
무현, 달려들지만 알약을 입에 넣고 삼켜버리는 수미.
무 현 : 수미야!!!
페이드 아웃.
S#96. 병 원 내 어떤 공간 (낮)
화면이 열리면, 그 동안 집안에서 의사의 지시대로 수미의 행동을 찍었던 캠코더 화면이 흐른다.
- 앞씬의 이상했던 장면들.
정신과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의사가 고갤 돌리면 무현이 들어선다.
그에게 옆자리를 권하는 의사.
무 현 : 수미는?
의 사 :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독극물은 모두 위세척으로 깨끗해졌지만 .....
..... 그런데 .......
무 현 : ..........
의 사 : 여기 화면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처음엔 두세 가지 정도의 인격이 심하게 충돌 하는
상태였는데 지금은 열 가지 이상의 각기 다른 인격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 현 : 더 안 좋아진 건가요?
의 사 : 유감스럽게도 ......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숨을 쉬는 무현.
무현을 바라보던 의사.
의 사 :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
무 현 : .........
의 사 : 자신이 대표되는 주인격과 다른 인격들은 다 생존해 있는 인격들인데 ......
무 현 : .........
의 사 : 왜 자꾸 죽은 사람의 인격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어요.
무 현 : ........
의 사 : 저두 이렇게 심각하고 복잡한 다중 인격 장애를 보이는 환자는 처음이지만 ........
보통의 경우엔 죽은 사람의 인격을 불러오지는 않거든요.
....... 하여튼 문제는 수미양이 왜 죽은 사람의 인격에 집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무 현 : .......
의 사 : 수미양이 어떤 메시지를 줄기차게 보이려고 한 건 없습니까?
무 현 : 메시지요? ...... 글쎄요. ....... 전 .....
의 사 : 뭐, 차근차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천천히 수미 양에게 들어보도록 하죠.
.......... 따님을 잠깐 보시겠습니까?
무 현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S#97. 병원 복도 (낮)
간호사를 따라 수미가 입원해있는 병실로 향한다.
병실 앞 소파엔 새엄마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앉아있다.
창문을 통해 수미가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수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본다.
수미는 무현과 새엄마를 아무런 감흥 없이 바라보다가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입을 벙긋거린다.
새엄마, 수미가 무슨말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문을 열려고한다.
간호사가 달려와 새엄마를 제지한다.
무현도 그런 새엄마를 다독이며 부축해나간다.
S#98. 병 실
텅 빈 병실, 수미만 혼자 있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수 미 : 수연아.
카메라, 수미가 돌린 고개쪽으로 pan하면 어두운 구석엔 아무도 없다.
수 미 : 수연아 어딨어? 이리나와. 이젠 괜찮아.
수 연 : ( 소리만 ) 언니.....
수 미 : 이제 널 찾아줄꺼야. 미안해 수연아.
수 연 : ..........
마임이라도 하는 듯 누군가를 얼싸안는 동작을 취한다.
S#99. 저수지 물 속 (낮)
풍덩! 소리와 함께 둘이 껴안은 채 물 속으로 뛰어든 수미와 수연.
수연, 수미의 목을 껴안고 물 속 깊이 밑으로 밑으로 내려간다.
수연은 눈을 치켜뜬 채 수미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마치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수미의 목을 강하게 휘감고 있다.
그것은 수연이가 수미를 물속 깊숙이 끌어 내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수미의 표정은 왜 그런지 평화롭게 보인다.
S#100. 차 안 (낮)
달리는 차안의 무현과 새엄마, 다분히 지쳐있는 표정으로
차창 밖 지나가는 시골 풍경들을 마을입구와 시골길, 저수지를 무감하게 바라보고 있다.
S#101. 집 (저녁)
무현과 새엄마 힘없이 집으로 들어오고 무현은 어지럽혀진 집안을 대충 치우려고 한다.
새엄마는 천천히 주방으로 들어간다. 옷을 벗어 식탁의자에 올려놓은 뒤 의자를 끌어내 앉는다.
식탁의 빈 의자들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 조금씩 어깨를 들먹이는 것 같더니
얼굴을 감싸쥐며 아주 오랜 시간 조용하고 서럽게 오열하기 시작한다.
S#102. 수미 병실 (저녁)
수미 죽은 듯이 잠들어있고 수미의 평온한 얼굴에 눈물자국이 채 마르지 않은 채 있다.
S#103. 거 실 (낮)
박순경, 무현의 이야기를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창밖을 보자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다.
무 현 : 제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박순경, 한동안 말이 없다. 몸과 마음이 천근같은 무거움으로 느껴진다.
박순경 : 죄송하지만 지금 현부인 되시는 분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무 현 : 그건 왜 그러신거죠?...........
박순경 : 신고접수가 된 이상 이것 저것 조사할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 재혼을 결심하신 이유가 .........
무 현 : 네 애들한테 새엄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순경 : 네. ........그런데 말이죠 ..........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 몇가지 일들이 있는 것 같아요.......
무 현 : 네?
박순경 : 수미 양이 새엄마에 대한 적개심을 병적으로 가지게 된 이유 말입니다.
무 현 : .............. ( 조금 망설이다가 )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그 앤 아팠습니다.
박순경 : 그럼 수연양일은 어떻게 된거죠?
무 현 : 애들 엄만 자신의 지병을 비관했고 ........ 결국 음독까지 한겁니다.
그걸 수연이가 보게됐구 ........ 거기서 사고가 생긴겁니다.
수미는 내 가족이 이 지경이 된 이유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뭐, 그랬을지도 모르죠 ...........
박순경 : 그럼 수연양의 시신은 .........
무 현 : ......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펼쳤는데 ........ 그렇게 큰 저수지도 아닌데
........... 결국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박순경 : 그게 언제 일이었습니까?
무 현 : 네?
박순경 : ....... 달력이?
박순경,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달력을 발견하고는 일어나 달력을 넘겨본다.
그러다 날짜가 안맞는다는걸 느낀다.
박순경 : 이건 ........ 올해 달력이 아니네요?
무 현 : 달력이 그다지 필요치 않아서 ......
박순경 : 네......... ( 약간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다시 돌아와 앉으며 )
무 현 : ( 괴로운 듯 인상이 조금씩 일그러진다 ) 죽은사람과 대화하지 말라는 말을 아십니까?
박순경 : 네? 그게 ...... 무슨 .......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무 현 : ( 조금 진정시키려는 듯 호흡을 고르며 ) .......... 정말 파출소로 찾아온 여자가
수미라고 생각하십니까?
박순경 : 네?
무 현 : 어제 찾아왔다던 그 여자가 정말 수미라고 생각하시냐고 물었습니다.
박순경 : 수연양 사진을 가지고 와서 동생 분이라고 ....... 아니 근데 무슨 말씀이시죠?
저한테 찾아온 여자 분이 수미 양이 아니란 말입니까?
무 현 : ............ 그 앤 죽었어요. ...........자살했습니다.
박순경 : ( 놀라며 ) 네? ..........
무 현 : ......... 죽었다구요.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이에 천둥과 벼락이 멀리서 친다.
박순경 : 저 ......... 잠깐만요. 제가 좀 혼란이 와서 그러는데 ...........
죄송하지만 ......... 수미씨 사진을 볼수 있나요?
무 현 : ....... 아마 서재에 있을 겁니다. .....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순경 : .............
박순경의 표정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극도로 혼란스런 표정이 되어간다.
무 현 : 아빠가 되는 것과,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은 다른 것 같습니다.
(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다 갑자기, 금방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 같다. )
만약 그애가 찾아왔다면, 그 애라면 무슨 사연이 있었겠죠.
무언가 말을 할게 남아 있었나봅니다.
박순경 : 네에?
무 현 : 잠깐만 기다리세요. 잠시 들어갔다 나오겠습니다.
무현, 서재로 들어가고 창문을 때리는 비는 더 억수같이 쏟아져 내린다.
박순경, 혼자 남아있는 상태로 주방이며 현관입구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어쩐지 집안 전체에 으스스한 공기가 감돈다.
한참을 기다려도 무현은 나오지 않는다.
불현듯 박순경은 불길한 기분이 든다.
박순경 : 저기 여보세요! 배선생님!
박순경은 천천히 일어나 서재로 다가간다.
박순경은 쾅쾅 문을 두드리다 응답이 없자 문을 열어본다.
S#104. 서 재 (낮)
사방에 있는 각종 약품과 낚시도구 등, 말할 수 없는 기기한 냄새와 물건들의 배치는
박순경에게 강한 인상을 심는다.
그러나 서재엔 문제의 옷장만 덩그러니 있을 뿐 거기엔 아무도 없다.
무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무현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서재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쳐져 있어 무현이 사라질 문이나 공간은 없다.
그러다 박스처리된 물건들 사이에서 액자와 사진들을 발견한다.
죽은엄마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빙 둘러앉은 모습의 가족사진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금의 현재부인이 간병인차림으로 죽은엄마 옆에 서있는 사진이다.
연속적인 사진은 죽은엄마의 병색이 점점 짙어지는것과 반대로
점점 가족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 새엄마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러다 박순경은 기겁하며 액자를 떨어뜨린다.
바닥에 떨어진 액자는 무현의 영정사진이다.
순간,
- 씬 3 동생을 찾아달라는 수미의 모습.
전씬의 죽은자와 대화하지 말라는 것과 수연의 시신을 못 찾았다는 무현의 대사.
앞씬의 원씨가 배수로를 긁어대며 어디가 막혔나하는 대사들.
섬광처럼 스쳐가는 소름끼치는 단상들.
박순경의 목덜미로 한기가 돌며 소름이 온몸에 쫘악 돋는다.
S#105. 집 앞 ( 외경 )
집을 뛰쳐나오는 박순경.
비는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고 뛰어나오는 박순경 뒤로 집이 음산하고 황폐하게 서있다.
어디론가 뛰어가는 박순경.
S#106. 저수지 ( 같은 시간 )
커다란 배수관을 들여다보는 박순경.
비가 와서인지 물이 불어있다.
후레쉬로 안을 들여다본다.
무언가 검은 물체가 쇠창살에 걸려 물살에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볼 정도로 자세히 들여다보지만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볼수가 없다.
겨우 손을 넣어 그 검은 물체를 움켜쥐면
한움큼 손안에 쥐어지는 진득한 이물질에 뒤엉킨 머리카락.
흠짓 놀라 뒤로 물러서는 박순경.
박순경, 설마 하는 극도의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더 가까이 가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다.
도무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의 박순경.
물살이 조금씩 빨라지면서 쇠창살에 걸린 그 검은 물체도 조금씩 부유하는 것이 빨라진다.
그때, 박순경은 순간 잘못 보았나 하는 생각을 갖는다.
물살이 빨라져서 무언가 자기가 잘못 봤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 물체는 물살에 따라 이리 저리 움직이는 것 같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박순경, 심장이 턱하고 멈출 것 같다.
그 검은 물체는 어느 정도 몸을 일으키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박순경, 몸을 덜덜덜 떨며 놀래서 떨어뜨린 후레쉬를 더듬 더듬 찾는다.
그때, 더 이상 움직이지 않던 검은 물체가 똑바로 일어선 상태로 앞으로 조금씩 걸어온다.
다급해진 박순경, 후레쉬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한다.
아주 천천히 치렁 치렁한 긴머리를 늘어뜨린 채 그것은 박순경앞으로 걸어온다.
움직일때마다 진득해진 머리카락들이 한움큼씩 몸을 타고 흘러내려와 듬성 듬성 빠진다.
후레쉬를 비췄을 때, 얼굴이 몹시 물에 불려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너무나도 끔찍스럽고 흉측한 얼굴이 화면 가득히 채워진다.
기겁하며 몸을 움찔하는 박순경.
박순경이 몸을 덜덜덜 떨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뒷걸음으로 배수관을 빠져나올 때.
갑자기 바로 앞에서 찢어지는 괴성과 함께 무언가가 튀어올라
박순경의 목을 잡고 박순경과 함께 물속으로 사라진다.
컷 아웃.
S#107. 파 출 소 (밤)
텅빈 파출소.
파출소의 여닫이문이 바람 때문에 조금씩 끼이익 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거린다.
확하고 순간적으로 강한 바람이 불어와 책상 위에 있던 용지들이 휘리릭 날린다.
용지들이 공중에 한번 약하게 떴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박순경, 두눈을 부릅뜨고 무언가 놀란 듯하고 또는 어딘가 뚫어지게 바라보는 듯 한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져있다.
한 손엔 볼펜을 꽉 움켜진 채 마치 조순경이 죽은 광경과 흡사하게 그렇게 쓰러져있다.
그의 표정은 어떻게 보면 슬픈 표정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무언가에 크게 놀란 표정 같기도 하다.
카메라, 마치 무엇인가를 회상 하는듯한 커다랗게 치켜 뜬 박순경의 눈으로 천천히 들어가면.
<에필로그>
- 흔들의자에 병색이 완연해진 얼굴로 간병인인 새엄마와 장을 보고 들어오는 무현을
바라보고 있는 전부인.
- 애써 차려놓은 음식에 입도 안대는 수연.
그걸본 새엄마 참지못하고 히스테리컬하게 수연앞에 있는 식기도구들을 치워버린다.
울음을 터트리는 수연, 보다못해 수연의 손을 잡고 2층으로 데려가는 수미.
- 수미방에서 잠을 깨는 수연. 언니는 보이지 않는다.
눈을 비비며 복도로 나와 자기방으로 들어간다.
방 한쪽 옷장문이 스르르 열리고 ....... 옷장안에서 죽은 엄마를 발견한다.
놀란 수연이 엄마를 잡아당기고 목에 걸린 옷걸이가 튕기면서
앞으로 쏠린 엄마무게 때문에 옷장과 함께 수연을 덮친다.
- 주방에서 모처럼 선규가 찾아와 즐거워하는 새엄마는 선규와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하던 중
2층에서 쾅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 울부짖는 소리로 옷장 벽을 긁어대던 수연, 옷장의 문틈사이로 그 앞에 잠시 서 있다가
천천히 발길을 돌리는 새엄마가 보인다.
- 산책로를 걷다가 2층 수연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불길한 기분이 들어
집으로 빠르게 내려가는데 2층 베란다에서 새엄마가 극도로 무심하고 건조한 표정으로
열려진 베란다 문을 조용히 닫으려한다.
새엄마를 보자 걸음을 멈추는 수미.
새엄마는 정원에 있는 무현을 바라본다.
무현은 산책로에 있는 수미를 바라본다.
수미는 베란다에 있는 새엄마를 바라본다.
잠시 망설이다 발길을 돌려 다시 산책로를 걷기 시작하는 수미.
콧노래로 허밍을 하는 무표정한 수미의 얼굴에서 정지화면 된다.
-끝.
*출처 : 대본과시나리오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