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그리고 세포
육십을 이순(耳順)이라 공자님은 표현했습니다.
귀가 순해져 그 어떤 말을 들어도 화내지 않고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름을 표현한다 합니다.
그런데 6학년이 되어 보니 아직 인격 수양이 모자라서 그런지 별로 달라지지 않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상사는 이치와 사람을 대하는 기준은 나름대로 세워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본능적으로 경계 대상으로 삼아야 할 이라든지, 첫 만남으로 사람을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는 점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나름의 원칙이 정해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흔히 임산물 채취를 주업으로 하는 분들의 말처럼, 독버섯일수록 화려하다는 말은 인생살이에서도 적용된다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초면임에도 자신의 직분을 내세우며 믿어주기를 요청하는 이들을 만나는 경우 패스합니다.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방학동안 잘했다 여기는 것 중 하나는 장편소설을 읽었던 점입니다.
그중에서도 소설가 조정래님의 태백산맥은 이념이 무엇이며, 편향된 이념의 희생양은 결국 일반 국민임을 알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물론 조정래님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소설 태백산맥은 한국사회에 전쟁의 참상과 이념의 편향성이 빚어내는 비극의 참혹성을 깨우쳐준다 하겠습니다.
전 10권의 내용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몇 장면이 있습니다.
이십년이 지난 세월의 간극이 있음에도 태백산맥이라는 네 글자가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편향된 이념의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위험하고 심각한 것은 일명 좌파라고 칭하는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일반인들은 너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세월이 흘러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느끼게 되는 점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 이단 사이비인 신천 지와 사회주의자들의 유사성입니다.
이 둘은 상당 부분 공통점이 있음을 이들과 접촉을 해 볼수록 느끼게 됩니다.
그중에 하나는 유체이탈 화법입니다.
신 천지가 제사장 나라라는 화려하고 달콤한 언어로 무수한 이들을 현혹했다면, 사회주의자들은 유토피아 곧 모두가 잘 사는 나라 라는 화려한 언어로 일반인들의 마음을 앗아 갑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 둘은 맹목적(광신적)충성입니다.
신천 지에 빠져 가정과 재산 심지어 젊음을 허비한 무수한 이들을 보면 교주 2만희씨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절대시합니다.
좌파에 빠진 이들을 그동안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최근 발견한 헌정 노래를 보면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단순한 이념적 접근이 아니라 거의 영적 문제로 들여다 봐야겠구나 싶어집니다.
왜냐하면 신 천지인들에게 이만 희씨가 절대자인 것처럼 좌파인들에게 김씨 일가는 종교적 숭배 대상임이 노랫말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현직 목사이며 그리도 교회 개혁을 주구장창 외친 선구자(?)중 한 사람의 정체는 개인적으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소설 태백산맥을 보면 사실 새로울것은 없습니다.
그들의 언어로 자기 세력들을 세포라는 언어로 부릅니다.(우리는 이중 간첩이라 하겠지요)
신 천지 용어로는 추수꾼으로 부를수 있는 세포들은 평소에는 성실한 시민이고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살지만 보통의 시민과 다른 점은 그의 과업과 목적은 당과 인민에 있다는 점입니다.
평범하게 생업을 이어가며 얻은 정보를 또 다른 세포에게 전달하는 일이 주요 사명입니다.
이러한 세포들이 2026년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가는 역설적이게도 지난 계엄선포시에 드러났다고 기자들의 입으로 증언되었습니다.
현재 잠실에서 진행중인 제2의 민주화 운동을 취재하는 어떤 기자의 비교에 따르면 잠실에 모인 2030들의 대표적 특징이 손으로 그려진 피켓이랍니다.
반면에 계엄 선포시 국회앞에 모인 시민들, 그것도 90분안에 모인 시민들의 손에는 일괄 제작된 피켓 구호였다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26년 대한민국의 싸움은 조직화된 소수 정예와 비조직인 일반 다수의 체제 전쟁이라 규정해 볼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나마 감사한것은 자유와 주권의 가치와 소중함을 모르는 줄 알았던 2030들이 죄파로 부르는 공산주의 자들의 실체와 거짓 선동의 방법과 목적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민주화와 평등, 사람사는 세상, 인간다움이라는 미사여구에 현혹되어 변별력을 갖지 못했는데, 그들이 말하는 화려한 언어들이 얼마나 선택적이고 자극적인 용어들인지가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투표지 부족이라 하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단 사이비의 창궐은 기성교회와 목회자들의 책임이 막중하듯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편향된 이념의 세포들이 활개칠 수 있는 것은 보수 세력들의 부정과 부패가 한 몫 했다 하겠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겨레와 민족을 긍휼히 여기셔서 지금이라도 나라의 근간을 다시금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음에 감사하며, 나라와 민족 그리고 2030 젊은이들의 안전을 위해 두 손 모아 봅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