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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영호남수필

영호남수필문학회 전북회장, 김정길(구천동 크로키, 33景)

작성자송파332|작성시간20.05.17|조회수34 목록 댓글 0

구천동 크로키, 33景

영호남수필문학회 전북회장, 김정길

무주가 아름다운 것은 넉넉하고(裕) 덕스러운(德) 덕유산 때문이요. 덕유산이 아름다운 것은 심산유곡의 대명사 구천동과 천혜의 33景 때문이다.

나는 가끔 덕유산의 백미로 일컫는 구천동 33景을 카메라의 눈과 마음의 눈으로 그리며 주유(周遊)하는 버릇이 있다. 나제통문에서 장장 70리를 흘러가는 금강의 상류 구천동 계곡을 따라 32경이 연이어지다가 덕유산 향적봉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제1경으로 알려진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나제통문 앞에 서면 우리 동족인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백제를 멸망시킨 동족상잔의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거북바위가 숨어 있는 모습의 은구암(隱龜巖)을 거쳐, 청금대(廳琴臺)의 물소리에 귀를 기우리면 마치 거문고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백옥 빛 물길을 따라 오르면 용이 승천하려고 10년 공들였다는 와룡담(臥龍潭)이 눈길을 끈다. 마치 일사대를 휘감아 오르는 물이 마치 누운 용같이 생긴 바위주변을 맴도는 담(潭)이 인상적이다. 옛적에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鶴巢臺)의 노송은 어디로 갔는지 행적조차 묘연하다.

조선 말기의 문신 일사 송병선이 아름다운 경치에 매혹되어 서벽정을 짓고 후진을 양성했던 일사대(一士臺)는 수성대가 천년송(千年松)을 머리에 인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봄이면 자주색으로 단장한 철쭉꽃이 개울을 곱게 물들이는 함벽소(函碧沼)는 동양화를 연출하고, 가의암(可意巖)에서 바둑을 두던 신선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임진왜란 때 명장 김천일 장군의 장인이었던 양 도사가 가을밤 연못에 비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달을 보고 도를 깨쳤다는 추월담(秋月潭)에서는 불현듯 담양호에 비친 추월산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낚시터로 유명한 개여울 만조탄(晩釣灘)은 구천 승려들이 먹을 쌀을 씻은 물이 하얗게 흘러서 뜨물재 또는 뜸재로도 불리는 10경의 명소다.

파회(巴洄)는 구천계곡을 휘어 감는 맑은 물이 급류를 타고 돌아 쏟아지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폭포수에서 무지개가 피어오른다. 백옥처럼 깨끗한 마음 같다는 수심대(水心臺)와 세심대(洗心臺)에서 세속에 찌든 심신을 씻고, 물거울로 불리는 수경대(水鏡帶)에서 설익은 내 삶을 비춰본다. 월하탄(月下灘)은 기암을 타고 쏟아지는 은빛 물결이 달빛에 비치면 장관을 이룬다. 신라 인월화상이 절을 짓고 수도하던 인월담(印月潭)과 칠봉의 사자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사자담에 이르면 저절로 시 한 수가 읊조려진다. 바닥이 깨끗한 반석으로 깔려 있는 청류동(淸流洞)과 선녀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비파를 뜯었다는 비파담(琵琶潭), 선인들이 차를 달여 먹고 담배를 피웠다는 다연대(茶煙臺)가 어우러진 풍광은 마치 선계에 와 있는 듯하다.

백련사 계곡과 월음령 계곡의 물이 만나는 구월담(九月潭)과 여울소리가 거문고의 음률처럼 들리는 금포탄(琴浦灘)은 심산유곡의 청류와 바람소리가 절묘하게 하모니를 이룬다. 칠봉의 호랑이가 산신령의 심부름을 가다가 안개 때문에 빠져 울부짖었다는 호탄암(虎灘巖)에서 안심대까지 이어지는 맑은 계곡은 청류계(淸流溪)로 불린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어느 신하가 세조에게 쫒기다 여기에 와서 마음을 놓았다는 안심대(安心臺)는 백련사를 오가는 산꾼들의 휴식공간이다.

신양담(新陽潭)은 무성한 숲 터널이 이어지다 비로소 하늘이 열리며 햇빛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거울처럼 물이 맑은 명경담(明鏡潭)과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구천폭포, 그리고 백련사 스님들이 몸과 마음을 씻었다는 백련담(白蓮潭)을 지나면 여러 개의 직소폭포가 연꽃처럼 수놓은 연화담(蓮花潭)이다. 사바세계를 떠나는 중생들이 속세와의 연을 끊는 곳, 이속대(離俗臺)는 백련선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백련사(白蓮寺)에서 지척이다. 백련사에서 다리를 쉬고, 사찰 뒤로 오르면 어느덧 33경의 절정인 덕유산 향적봉에 닿는다.

지정학적으로 본 덕유산은 민족의 정기가 서린 백두산에서 내닫는 백두대간이 금강산. 태백산, 추풍령을 넘어 지리산 천왕봉으로 뻗어나가는 요충지에 솟구쳐 올라 산과 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곳이다. 구천동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왜적의 침입에 의한 막심한 피해와 당쟁에 의한 참혹한 살상으로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사는 풍조가 일어나기도 했다. 예부터 도참사상이 유행한데다, 무풍과 설천은 남사고(南師古)의 십 승지 중 하나로 알려져 무주로 피란하거나 이주한 사람들이 많아 구천동이 더욱 유명해졌다.

주목이 군락을 이루는 정상에서 산들바람에 땀을 식히며 첩첩이 다가오는 지리산, 가야산, 그리고 민주지산, 기백산, 백운산, 운장산, 대둔산을 굽어보는 조망은 산꾼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려니 싶다. 특히 덕유산 종주 산행 때 이른 아침에 만끽하는 일출과 운해, 백암봉 남쪽의 고원인 덕유평전의 푸른 초원길과 늦여름의 원추리의 향연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바로 내가 구천동 33경 크로키에 마음을 빼앗긴 이유다. (201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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