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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보 수보 자료방

11세 산음현감 휘 유 묘갈명

작성자길장|작성시간26.06.14|조회수7 목록 댓글 0

 

 

조봉대부(朝奉大夫) 행산음현감(行山陰縣監) 진공(陳公) 휘(諱) 유(猷)의 묘갈명

 

공의 이름은 유(猷, 1437~1486)이고, 자(字)는 백략(伯畧)이며, 여양(驪陽) 사람이다. 고려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진준(陳俊)의 후손이다. 진준의 6대손인 사언(斯彥)은 공에게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증조할아버지는 가선대부 개성부윤을 지낸 사언(斯언)이며, 할아버지는 형조참판을 지낸 중성(仲誠)이며, 아버지는 광양현감을 지낸 치중(致中)이시다.

공은 천성이 강개(慷慨, 의롭고 기개가 있음)하였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벗에게 신의가 있었다. 처음 관직에 나아가 별좌(別坐)가 되었고, 인의(引儀)로 전임되었다가 외직으로 나가 산음현감(山陰縣監)을 지냈다. 정치는 청렴하고 형벌은 간소하게 하니, 고을을 떠난 후에도 백성들이 그리워하는 정이 있었으며, 명관(名宦)으로서 지리지(地誌)에 기록되었다. 명나라 선덕 정사년(1437년)에 태어나 성화 병오년(1486년)에 돌아가시니 향년 50세였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정충석(鄭忠碩)의 딸에게 장가들어 3남 3녀를 두었다. 첫째 아들 복담(福聃)은 진사(進士)이다. 둘째 아들 복령(福齡)은 생원(生員)이다. 셋째 아들 복명(福命)은 진사(進士)이다.

첫째 딸은 참봉(參奉) 박심(朴諶)에게 시집갔고, 둘째 딸은 진사 이고(李翺)에게 시집갔으며, 셋째 딸은 별검(別檢) 이필신(李弼臣)에게 시집갔다. 손자와 증손자 등 남녀 후손이 70여 명에 이르니, 선행을 쌓은 경사스러움이 참으로 끊이지 않는구나. 처음에는 경상도 단성(丹城)에 장사 지냈으나, 후에 파주(坡州) 삼고개(三古介) 자좌오향(子坐午向,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는 방향)의 언덕으로 이장하였으니, 바로 선영(조상의 무덤)의 곁이다. 가정(嘉靖) 갑진년(1544년)에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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