戊寅譜 跋
人家譜牒不惟明其所自來 又因以統治其族屬 蓋族屬隨世代寖遠而親者疏近者遠 其不至於情或不通而路人同視者 鮮矣 余庸是爲懼 選在甲戌與諸族設親睦會 至戊寅又設譜役 蓋自癸丑譜以後近三十年間 生齒之蕃 行墓地之何處不可續修而非但親睦是講也 於是僉謀詢同修單 響從不費幾何日月而就緒 可期於成 噫 是豈但余一人倡始之力也 實由秀一、成勳、大範、仁範、庸錄、庸澤、敬華、錄奐甫之周旋盡誠耳 因竊惟念吾陳氏自勝國迄李朝上下七八百年 勳業文章節行聯如珠昭如鏡 而爲東方大姓矣 苟使參於是譜者 各思所以克肖先休 禔躬勉學 常若親承乎詩禮之訓 誨耳面之提命 則一氣所感 善端油然自發 可以收渙散敦親睦而得免於路人同視也願與諸族共勉焉
昭和戊寅仲春之下澣 後孫基佰謹跋
무인보 발문 (戊寅譜 跋)
사람의 족보는 단지 자기 가문의 근원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또한 이를 통해 종족과 친족을 통합하고 다스리는 역할을 한다. 대체로 친족은 세대가 멀어짐에 따라 가까웠던 사이도 점차 소원해지고, 마침내 정이 통하지 않아 서로를 길 가는 사람처럼 여기게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나는 이를 매우 염려하였다. 그래서 갑술년(甲戌)에 여러 종친들과 친목회를 만들었고, 무인년(戊寅)에 이르러 다시 족보 편찬 사업을 시작하였다. 계축보(癸丑譜, 甲寅譜)를 만든 뒤 거의 30년 동안 자손이 크게 번성하였고, 선영(先塋)의 위치나 여러 사항도 계속 보완·수정할 필요가 있었으니, 단지 친목만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이에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수단(修單)을 받아들였고, 모두 호응하여 그리 많은 시일을 들이지 않고도 일이 정리되어 완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이것이 어찌 나 한 사람의 창도한 힘 때문만이겠는가. 실로 수일(秀一), 성훈(成勳), 대범(大範), 인범(仁範), 용록(庸錄), 용택(庸澤), 경화(敬華), 녹환(錄奐) 여러분이 두루 힘쓰고 정성을 다한 덕분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진씨는 고려 시대로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7~8백 년 동안 공훈과 학문, 문장과 절개와 행실이 구슬처럼 이어지고 거울처럼 밝아 동방의 큰 성씨가 되었다. 만약 이번 족보에 참여한 사람들이 각자 선조의 아름다운 유업을 본받을 방법을 생각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학문에 힘쓰고, 항상 직접 시례(詩禮)의 가르침을 받고 귀로 듣고 얼굴을 마주하여 훈계를 받는 것처럼 여기면, 같은 혈통의 기운에 감화되어 선한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고, 흩어진 친족을 다시 모으고 친목을 돈독히 하여, 서로를 길 가는 사람처럼 대하는 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라건대 여러 종친들과 함께 이를 힘써 실천하고자 한다.
무인년(1938년) 음력 2월 하순에 후손 기백(基佰)이 삼가 발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