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하로동선(夏爐冬扇)
여름 夏/화로 爐/겨울 冬/부채 扇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 곧 쓸데없는 사물, 버려지는 신세, 한가한 신세를 비유함.
왕충(王充)은 후한(後漢)의 학자이자 사상가로, 독창성이 넘치는 자유주의적 사상을 지녀, 선비적 사상이나 속된 신앙, 유교적인 권위를 비판했다. 그가 지은 《논형(論衡)》에 있는 말이다.
「이로울 것이 없는 재능을 바치고 보탬이 되지 않는 의견을 내는 것은, 여름에 화로를 바치고 겨울에 부채를 드리는 것과 같다. (作無益之能 納無補之說 獨如以夏進 爐以冬奏扇 亦徒耳)
《논형》은 당시의 전통적인 정치와 학문을 비판한 내용의 저술이다.
왕충은 이 글에서 「벼슬길에 나아감에 있어서의 운명」이라는 것을 의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학문이 높고 재능이 있는데도 연이 닿지 않아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하로동선」처럼 취급하여 너무 쉽게 말하며 비난하는 것을 비웃고 있다.
군주와 신하가 서로 연이 닿지 않으면 유익한 진언을 해도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기도 하고, 반대로 군주의 부덕을 지적하지 않음으로 인해 오히려 복을 받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록 여름의 화로라 해도 그것으로 젖은 것을 말릴 수도 있고, 겨울의 부채라 해도 그것으로 불씨를 일으키는 일을 할 수도 있다. 「물건은 사용하기에 따라 유용하기 마련」으로 무용지물은 없다는 것이다.
즉, 주군의 마음속은 신하가 헤아릴 수 없으므로 학문과 재능의 유무보다는 군주의 취향에 맞느냐의 여부로 신하의 운명은 결정된다고 본다.
여기서 「하로동선」이란 말이 나왔으며, 오늘날 철에 맞지 않는 물건이나 격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왕충은 동한(東漢) 사람으로 자는 중임(仲任)이며 회계군 상우현에서 태어났다. 왕충은 어려서 고아가 되었는데 훗날 경사(京師)에 가서 태학(太學)에서 공부하며 반표(班彪)에서 사사하였다. 빈한하여 집안에 책이 없어서 항상 낙양의 서점가를 돌아다니며 책을 읽었는데 한번 읽으면 바로 암기하여 마침내 백가의 학설을 두로 통달하였다.
왕충은 논설을 좋아하였는데 처음 들으면 괴이한 듯하나 끝내 이치가 담겨 있었다. 소인배 유학자들이 글자에만 집착하여 진실을 잃었다고 여겼다. 이에 문을 닫아걸고 은거하며 생각에 깊이 잠겼다. 경조사에 참석치 않고 창문이고 벽이고 할 것 없이 집안 곳곳에 붓과 먹을 준비하여 두고 《논형》 85편 20만여 글자를 지어 사물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서술하면서 세속의 의심스러운 부분을 교정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