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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한자

120. 복룡봉추(伏龍鳳雛)

작성자昊山|작성시간16.08.18|조회수115 목록 댓글 0

120. 복룡봉추(伏龍鳳雛)

엎드릴 //봉새 /병아리

 

 

엎드려 있는 용과 봉황의 새끼라는 뜻으로, 초야에 숨어 있는 인재를 이르는 말.

 

촉지(蜀志)제갈량전에 있는 이야기다.

 

제갈량(諸葛亮:181-234)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난세 속에 숙부를 따라 형주(荊州)의 양양(養陽)으로 피난 왔는데 숙부가 죽자 양양의 서쪽에 있는 융중(隆中)에서 정착하였다. 그는 난세를 피해 이곳에서 은거하면서 독서로 세월을 보냈다.

 

이때 유비(劉備:161-223)는 황건적(黃巾賊)의 난 속에서 전공을 세우지 못한 채 형주에 와서 유표(劉表:142-208)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유비는 비로소 이때부터 인재를 찾으러 나섰다.

 

어느 날 유비는 같은 식객들 중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수많은 우수한 인재를 알고 있는 수경(水鏡)선생이라고 불리고 있는 사마휘(司馬徽:173-208)에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물었다. 당시 전략적인 자문위원을 원하고 있던 유비는 사마휘가 훌륭한 인물을 추천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오로지 글만 읽는 저야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슬픈 학자들이나 속물들인 정치꾼들은 천하의 형세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아주 걸출한 인물이 아니면 천하의 형세를 환히 내다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야 이곳에 계신 복룡(伏龍)과 봉추(鳳雛) 선생께서 잘 아시겠지요.

 

이 글에서 복룡봉추가 유래하였고,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십팔사략(十八史略)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

 

복룡은 초야에 은거하고 있는 제갈량이고, 봉추는 방통(龐統:178-213)을 가리킨다. 비록 제갈량과 방통이 초야에 묻혀 살고 있지만 그들의 재주는 비상하였다. 제갈량을 가리켜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고도 한다.

 

유비는 삼고초려로 제갈량을 맞아들이고 방통을 참모로 등용하였다. 제갈량의 계략으로 형주에서 기반을 구축하던 중, 조조(曹操:155-220) 휘하의 하후돈과 우금이 유표를 공격해오자 이를 물리친다. 208년 유표가 죽고 그의 아들 유종(劉琮)이 조조에게 항복하자, 조조는 대군을 거느리고 형주를 공격해왔다.

 

마침내 제갈량은 유비를 도와 오()나라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의 대군을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와 익주를 점령하였다. 221년 한나라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나라 제위에 오르자 제갈량을 승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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