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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 (매화 . 매화나무 : 매)

작성자昊山|작성시간17.10.16|조회수368 목록 댓글 0

梅 (매화 . 매화나무 : 매)



이 〈매〉자는 나무 목(木)변에서 7획을 찾으면 눈에 든다.


▶이 글자가 지니고 있는 뜻은? 「매화. 실과. 큰 나무」」등이다.

「이 매화〈매〉자는 사람들이 탐할(每:탐할. 각각 매)정도로 아름다운 나무(木)에 피는 꽃이라는 뜻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꽃이기에 탐할 정도로 표현했을까 짐작이 된다.


▶매화나무는 앵도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크기는 4∼5m정도다.

잎은 달걀꼴 또는 타원형이다. 매화의 열매를 흔히 「매실(梅實)」이라고 하는데 둥근 모양이며 6월쯤이면 익는다.


꽃은 하얀 꽃이 피는 백매와 붉은 꽃이 피는 홍매를 기본으로 색깔이 조금씩 다른 수많은 품종이 있다. 홑꽃이 기본이나 겹꽃도 있다. 꽃잎 다섯 장이 모여 둥그런 모양을 이루는 꽃은 꽃자루가 거의 없어 가지에 바로 붙어 있다.


열매는 과육으로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에 단단한 씨가 들어 있으며, 모양이 둥글고 짧은 털로 덮여 있다. 처음 열릴 때는 초록빛이나 익으면서 노랗게 되고 신맛이 난다.

매화나무와 살구나무는 비슷한 점이 많아 구별이 어렵다. 꽃이 피었을 때 꽃받침과 꽃잎이 붙어 있고 열매의 과육이 씨와 잘 분리되지 않는 것이 매화나무다.


반면 꽃받침이 꽃잎과 떨어져 뒤로 젖혀져 있으며 과육이 씨와 쉽게 분리되는 것이 살구나무다.


▶매화는 주로 마을 동구 밖에 많이 재생하는데 분포지역도 넓어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일본. 대만. 중국에 널리 퍼져 있다.


예부터 매화는 정원수로 많이 심었으며 과실은 신맛이 강해 식용 또는 약용으로 사용한다.

매화나무는 수많은 품종이 있고 쓰임에 따라 매실 수확을 목적으로 심는 실매(實梅)와 꽃을 보기 위해 심는 화매(花梅)로 크게 나뉜다.

그래서 나무 이름도 매실나무와 매화나무 양쪽을 다 쓴다.


▶매화는 아름다음을 지닌 만큼 별칭도 다양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즉, 목모(木母). 청객(淸客). 일지춘(一枝春)등의 아름다운 꽃만큼 이름이 덧보이는 별칭들이다.


매화나무는 매실 이용과 함께 차츰 꽃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매화가 관상식물로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한무제(기원전 141~87) 때 상림원(上林苑)에서 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매화는 시인과 묵객들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소재로서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오다 송나라에 들어오면서 문학작품 속에서도 활짝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매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비교적 이른 시기이다.

고구려 대무신왕 24년(41)의 《삼국사기》 기록에서 매화를 찾을 수 있다.

또 《삼국유사》에는 〈모랑의 집 매화나무가 꽃을 피웠네〉라는 시가 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적어도 삼국시대 초기 이전부터 매화 문화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매화는 중국을 떠나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몸만 달랑 온 것이 아니다.

사람과 맺은 소중한 인연도 고스란히 함께 갖고 왔다. 하지만 매화가 널리 알려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매화의 흔적은 그리 많지 않다. 고려 후기에 들어오면서 매화는 서서히 선비들의 작품 속에 녹아들어 갔다.


그래도 매화가 정말 만개한 시기는 아무래도 조선왕조에 들어오면서부터다. 난초, 국화,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의 첫머리에 꼽히고 세한삼우 송죽매(松竹梅)로 자리를 차지하면서 매화는 조선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의 문화이자 멋이었다


▶한편 매화도는 고려시대의 것도 몇 점 있지만, 조선시대의 그림이 대부분이다.

그 외에 어몽룡의 〈월매도(月梅圖)〉, 오달제의 〈설매도(雪梅圖)〉, 신사임당의 〈묵매도(墨梅圖)〉, 장승업의 〈홍백매화도〉, 민화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에 매화는 빠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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